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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인가?(1)

2018.10.14 조회 144,324 추천 1,972


 “뭐해? 빨리 안 오고? 이러다 좋은 구경 놓친다고.”
 아델이 신후를 재촉했다.
 성큼 앞서가는 아델을 마지못한 걸음으로 터벅터벅 따라가는 신후의 눈앞에 하늘 높이 우뚝솟은 성 하나가 들어왔다. 그 앞에는 이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클라이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번잡한 모습에 신후가 주춤 걸음을 멈추자 앞서 걷던 아델이 답답하다는 듯 신후의 팔을 잡아끌었다.
 “비싼 돈 주고 엘리시온까지 왔으면 구경은 제대로 하고 가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얼마간을 인파를 헤집다 보니 눈앞이 환해지며 그 아름답고 화려한 성이 시야를 가득채웠다.
 환호성이 터진 것은 그때였다.
 “와! 산왕들이다!”
 “13인의 산왕들이 다 모였어!”
 “와아아아아!”
 아름다운 성과 육중하고 거대한 철문, 그리고 그 앞에 당당히 선 13인의 산왕.
 붉은 황무지가 나타난지 60년 만에 드디어 101층 ‘축복받은 자들의 성지’에 도전하는 첫 번째 도전자들이 모인 것이다.
 부럽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갑주를 걸치고 태산처럼 크고 당당히 선 그들이.
 그저 구경이나 하려고 이곳에 와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울 만큼.
 그리고 분했다.
 산왕들 중 둘은 그와 같이 들어온 13차 원정대였기에.
 어쩌다 이렇게 격차가 나버린 것일까?
 정말 열심히 했는데.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는데.
 돌이켜보면 몇 번의 작은 선택들 때문이었다. 그 작은 선택들이 그를 59층에서 멈춰 서게 만들어버렸다.
 ‘아니, 다 변명이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최고가 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너무도 극명하고 단순한 차이.
 재능.
 저들과 그의 사이에는 그저 극복할 수 없는 재능의 차이가 존재했을 뿐이다.
 “야. 이신후. 이 경사스러운 날에 왜 아직도 똥씹은 표정이냐?”
 “넌 안 부럽냐?”
 “뭐가? 산왕들이? 부러워할 게 뭐 있어? 여기서나 밖에 나가서나 어차피 우리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인데. 그리고 우리도 명색이 하이클라이머인데 남부러워할 입장은 아니지.”
 하이클라이머란 51층에서 70층 사이의 클라이머를 말한다. 아델의 말마따나 하이클라이머만 되어도 귀환 후의 삶은 충분히 풍요롭고 명예롭다.
 “아닌 게 아니라, 이신후. 나 이번 산왕들의 도전이 끝나면 덴마크로 돌아갈 거다.”
 “뭐?”
 아델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신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웃는 게 참 멋진 이 금발머리의 덴마크 사내는 붉은 황무지에서 그가 마음을 터놓고 사귄 단 한 명의 친구였다.
 그런 아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가 신후는 당혹스러웠다.
 “아니, 왜?”
 “왜긴······ 할 만큼 했잖아.”
 아름다운 얼굴에 흐리게 그려지는 씁쓸한 미소.
 “······.”
 “‘도전자들의 갈림길’에서만 벌써 5년이야.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도전자들의 갈림길’에 남아 있지. 결국 여기가 끝인 거, 더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거 너나 나나 잘 알잖아. 부질없는 꿈을 5년이나 꾸었으면 이제 그만 깰 때도 됐지.”
 홀가분하다는 듯 웃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그 아쉬움이 두꺼운 현실의 벽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그래. 이젠 그만할 때가 됐지.’
 신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련스럽게 버티고 있었다. 1렙 1렙 올리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지만 다시 5년을 더 머물러도 더 이상 위로는 올라 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 부질없는 꿈이었어.”
 헛된 기대에 매달려 기약 없는 시간을 더 낭비하기에는 붉은 황무지에서의 지난 17년은 너무도 길고 고단한 시간이었다.
 “좋아. 나도 돌아간다.”
 클라이머에게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귀환의 기회. 그러니 만큼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한 줌의 가능성마저도 사라져버리지만 이젠 정말 끝낼 때가 됐다.
 “너까지 왜? 넌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잖아?”
 “희망?”
 “특성스킬 말이야. 특성스킬만 개화되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잖아?”
 아델의 말에 신후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눈은 자연스럽게 시야 왼쪽 귀퉁이에 떠올라있는 노란색 바를 향한다.
 Lv.1
 처음에는 회색이었던 것이 7년 전부터 풀게이지 표시인 노란색으로 채워졌다.
 그랬다. 풀게이지가 된 게 벌써 7년 전이다.
 그런데도 발동이 되지 않는다.
 대개의 특성스킬이 1차 전직 후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자신의 특성스킬은 어떻게 된 것이 전혀 개화될 기미가 없다. 심지어 무슨 스킬인지조자 모른다. 다른 클라이머들에겐 최고의 절기인 특성스킬이 그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만일 특성스킬이 지금이라도 개화가 된다면 아델의 말대로 상황은 좀 더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닥 희망을 품기에는 지난 17년의 기다림이 지나치게 길었다.
 ‘그래. 17년을 끌어온 아둔한 미련은 여기까지다.’
 그렇게 신후가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힐 때였다.
 그그그그긍―
 “와! 문이 열린다! 드디어 101층의 문이 열리고 있어!”
 문이 열리고 있었다.
 장엄하다 싶을 만큼 거대하고 육중한 성문이.
 지난 60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비밀의 정원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13인의 산왕이 압도적인 기도를 뿜어내며, 눈부신 갑주를 번쩍이며 당당히 그 문을 넘었다.
 그그그그긍―
 쾅!
 문이 닫혔다.
 13인의 산왕을 삼켜버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정적만이 남았건만 어느 누구 하나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역사의 현장이, 그 순간의 감동이 그들의 발을 묶고 있는 것이다.
 신후와 아델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것이 붉은 황무지에서의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이 순간 진하게 올라오는 마음의 여운이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났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더 지나도록 축복받은 자들의 성지에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리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해도 지겨운 건 어쩔 수 없다.
 그 사이 이미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도 꽤 되었다.
 그렇게 다들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에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
 콰앙!
 돌연 성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렸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열린 성문으로 향했다.
 기다림에 지쳐 풀려있던 눈빛들이 언제 그랬냐 싶게 기대로 반짝인다.
 드디어 공략이 끝난 것일까?
 드디어 산왕들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일까?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그 안에서 뛰어나온 것은 온 몸을 피투성이로 물들인 사내였다.
 씩씩 토해내는 숨소리는 불안정하고 거칠다.
 시뻘건 혈광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에선 어떤 광기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분노와 절망에 찬 욕설.
 “씨발! 뭐 이런 엿같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았다. 시뻘건 혈광으로 번들거리는 눈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 광인처럼 보이는 사내가 이틀 전 성 안으로 당당히 들어갔던 13인의 산왕 중 하나라는 것 뿐.
 ‘대체······.’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저 사내가 박차고 나온 문틈으로 무저갱처럼 보이는 어둠이 왠지 모를 불길함으로 다가온다.
 그때였다.
 돌연 신후의 시야가 이상해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그 순간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버린 것이 아닌가.
 그리고 뜨는 메시지 창 하나.
 
 [생존확률이 0.00000992퍼센트로 낮아져 특성스킬 ‘생명을 위한 은총’이 시동됩니다.
 시스템을 초기화하시겠습니까?
 시스템 초기화 시 생존 확률 보정 작업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작가의 말

추천과 코멘트는 아낌없이 팍팍 부탁드립니다^^

댓글(39)

호박준    
한번 달린다
2018.10.15 11:58
slut    
뒤질것 같은 상황에서 발동하는건가?
2018.10.16 12:09
엘렌    
인류의 생존인지 개인의 생존인지는 잘 모르겠네
2018.10.17 09:04
노아s    
잘 봤습니다.
2018.10.17 16:29
항마력3성    
으응? 여기서 초기화?? 옴마야 ,,
2018.10.22 19:16
호파람    
산왕하면 오노다 사카미치가생각나는군요
2018.10.23 21:28
와리질러슬    
시작부터 꿀잼이네여 오오
2018.10.25 18:33
강산드들    
굿
2018.10.26 15:03
에쥬씨    
0.00001
2018.10.27 15:35
젤리매니아    
산왕~산왕~ 산왕머니 ~ 걱정마세요~~
2018.10.2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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