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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태극검 1권 (1)

2018.10.15 조회 2,889 추천 22


 # 서
 
 
 
 용이다.
 크고 붉은 용.
 녀석은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발톱을 세운다.
 하지만 녀석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갇힌 채로 으르렁거릴 뿐.
 나는 녀석이 갇힌 곳을 본다.
 녀석이 갇힌 곳은 바로 사람들의 가슴.
 
 
 
 # 초원의 소년
 
 
 
 내 몸은 차디차게 식어 있다.
 손에 쥔 검에는 피가 잔뜩 말라붙어 있고 파리 떼는 주변을 맴돌았다.
 아저씨는 그런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 걸까?
 아저씨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가슴의 용이 꿈틀거린다.
 용은 사람들을 죽인다.
 나는 용이 무섭다.
 
 활활 타오르는 불.
 불 한가운데 아저씨가 누워 있다.
 나는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내가 사냥을 다녀온 그날 저녁.
 아저씨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륜륜侖侖이 말했다.
 검을 쥔 내 모습이 싫다고.
 나는 검을 쥐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가 알면 실망하겠지만 더 이상 검은 필요 없다.
 그러나 나는 검을 버리지 못했다.
 다만 쥐지 않을 뿐.
 
 아저씨는 편지를 남겼다.
 타타이무他他李茂 아저씨가 편지를 읽고 말했다.
 아저씨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고.
 지키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라고.
 나는 아저씨의 유언을 지키기로 했다.
 
 나는 출발했다.
 그러고는 말을 달렸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무당산을 향해 달렸다.
 
 내 이름은 운총.
 아저씨가 내게 준 것은 한 자루의 검과 이름뿐.
 
 
 
 # 뒤집힌 찻잔
 
 
 
 운총은 한 시진 전부터 찻집 점원의 눈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차 한 잔을 시켜 놓고 벌써 두 시진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찻집에서는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나가 주는 것이 예의인데 운총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점원은 몇 번이고 운총에게 다가가 차를 더 따라 주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한 잔을 마시고 나가 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운총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그는 찻잔을 뒤집은 뒤, 그 위에 찻잔 뚜껑을 올려놓았다. 이는 차를 더 마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차도 마시지 않으면서 찻집에 죽치고 앉아 있는 손님은 골칫거리였다.
 그나마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손님들로 붐빌 때 저런 짓을 했다면 점원은 속이 터져 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운총을 일각 이상 지켜보고 있는 이가 한 명 있었다.
 바로 무당파 삼 대 제자인 이수화였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운총의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나이는 십오륙 세 정도, 고생을 제법 한 얼굴이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소년은 올해 열여덟이 되는 자신보다 두세 살 정도 어린 것 같았다.
 이수화는 천천히 위아래로 시야를 확대했다.
 ‘흠······ 색다르군.’
 운총의 옷과 신발, 허리띠는 중원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상의와 모자, 말을 탈 때 입는 바지, 발목을 덮는 털 신발.
 운총은 감숙이나 몽고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찻잔에서 입을 떼며 중얼거렸다.
 “봇짐 아래 매어 둔 것, 가죽으로 덮고 있긴 하지만 검이 틀림없다.”
 허리의 봇짐을 아직 내려놓지 않는 것을 보면, 잠깐 기다리겠다고 생각한 것이 예상 이상으로 길어진 듯 보였다.
 무당파 삼 대 제자인 이수화가 운총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운총이 찻잔 뚜껑 위에 젓가락을 하나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무당파가 다른 문파와 접촉할 때 사용하는 표식이었다.
 이수화는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입문 시험을 통과했지만 아직 명첩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수화는 명첩도 받지 못한 자신이 문파를 대표해서 운총과 접촉해도 되는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운총이 봇짐을 들고 일어섰다.
 운총이 일어서자 점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드디어 그가 떠나는 것이다.
 이수화는 운총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엽전 두 개를 탁자에 놓고 일어서는 순간,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눈 똑바로 뜨고 다녀!”
 운총이 찻집 입구에서 한 사내와 충돌했다.
 목소리를 높인 쪽은 운총과 부딪힌 사내였다.
 사내는 키가 작고 몸이 호리호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만은 어느 대한 못지않게 컸다.
 이수화는 그를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평범한 사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내가 운총의 품에서 주머니를 빼내는 것을 보았다.
 ‘묘수로군. 그 짧은 시간에 돈주머니를 털다니. 소매치기치곤 솜씨가 제법인데······ 하지만 무당 제자인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목소리가 큰 사내의 정체는 소매치기였다.
 이수화는 운총을 바라보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자네 운이 좋군. 내가 아니었다면 돈주머니를 잃어버렸을 거야.’
 그녀는 운총의 돈주머니를 찾아 주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때였다.
 운총이 사내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돌려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야!”
 그러자 운총이 미간을 좁혔다.
 “두 번 말해야 하는 건가? 돌려줘.”
 사내는 그의 맑은 눈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림인을 건드린 것 같았다.
 사내는 생각했다.
 ‘크으, 돈 많은 외지인인 줄 알았는데 무림인이라니, 오늘 재수 꽝이군. 설마 이런 곳에서 검을 뽑거나 하지는 않겠지? 제길······ 그러면 끝장인데. 어떻게 하지? 이대로 내가 소매치기라고 인정할 수도 없잖아.’
 망설이던 사내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는 운총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꺼져! 먼저 부딪혀 놓고 어디서 행패야. 대체 뭘 내놓으라는 거야!”
 운총은 속으로 혀를 찼다.
 ‘거참, 중원에는 왜 이리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많을까?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군.’
 그는 오른손을 들어 사내의 왼쪽 어깨를 툭 쳤다. 그러자 사내의 균형이 순간적으로 무너졌다.
 운총은 그 틈에 사내의 품속에서 자신의 돈주머니를 꺼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운총의 동작은 고수가 아니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소매치기는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운총이 문밖으로 나가자 저승사자가 떠나간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 녀석, 급한 일이 있는 건가? 이거 십년감수했군.”
 소매치기는 품속으로 손을 가져가 돈주머니를 확인하려 했다.
 그는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외쳤다.
 “없다! 녀석이 가져갔다.”
 처음부터 소매치기한 주머니였다.
 그는 주머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방금 소매치기를 당한 것처럼 외쳤다.
 그러나 소매치기는 곧 운총이 자신을 봐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깨닫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솜씨. 나이는 어리지만 십중팔구 무공을 익힌 고수다.’
 만약 운총이 그를 해하려 했다면, 소매치기는 절대로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내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의자에 걸터앉았다.
 “호랑이 입에서 빠져나온 건가?”
 이수화가 소매치기를 스쳐 지나가면서 말했다.
 “잘 알고 있군. 자네 오늘은 운이 참 좋았어. 이봐, 소매치기면 소매치기답게 상대를 잘 보고 손을 써야지.”
 “뭐라고······ 흐흡······.”
 소매치기는 그녀의 검을 보곤 입 밖으로 나오려던 욕을 급히 목 뒤로 삼켰다.
 병장기는 바로 무림인의 증거였다.
 이수화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뒷골목의 삼류 소매치기와 검을 찬 무림인 사이에는 엄청난 벽이 존재했다.
 사내는 다시는 이 찻집에서 손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멀어져 가는 이수화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소년을 쫓아가는 건가? 결투라도 하려는 모양이군. 무섭군, 무서워. 무림인들이란······.”
 
  * * *
 
 이수화는 운총의 빠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훌륭한 솜씨였다. 앞서 사내가 주머니를 빼낼 때보다도 훨씬 빨랐다. 저 소년, 설마 나보다 고수는 아니겠지?’
 그녀는 동년배 중 자신보다 실력이 나은 자는 극히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방금 운총의 솜씨는 그녀의 자신감에 상처를 주기 충분했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반복해서 연습을 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저런 수법을 펼칠 수는 없다. 저 나이에 저런 실력이 가능하다니. 설마 저 소년, 흑도에 속한 자는 아니겠지?’
 이수화는 찻집을 빠져나오자마자 걸음을 빨리했다.
 운총은 큰 걸음으로 대로를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아마 묵고 있는 객잔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였기 때문일까?
 미행은 쉽지 않았다.
 이수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보다도 사람이 많잖아. 복장이 특이하지 않았다면 쫓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겠군.’
 그녀는 운총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집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북적이던 사람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골목을 몇 번 돌자 사람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 나왔다.
 이수화는 미간을 좁혔다.
 ‘돈이 없어서 변두리 객잔에 묵고 있는 건가?’
 그녀가 한숨을 내쉰 순간 누군가 운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무당산으로 가고 있나?”
 운총은 즉시 반응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당산에서 온 사람입니까?”
 골목에 몸을 숨긴 사람이 말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무당산으로 가고 있나?”
 운총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무당산에서 오신 분이라면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후후후, 제대로 찾아왔군. 나는 무당산에서 왔다.”
 이수화가 미간을 좁혔다.
 이렇게 날카로운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무당산에는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무당파 사람인가?’
 운총은 골목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찻집에서 절 보신 겁니까?”
 이수화는 골목 안쪽에 있는 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정체를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했다.
 이수화는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했다.
 ‘할 수 없지. 이쯤에서 나서는 수밖에······.’
 그녀는 날렵하게 경공을 전개해 담장 위로 올라섰다.
 ‘저쪽이다.’
 이수화와 달리 운총은 목소리의 주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저씨가 남긴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한진에 가서 신호를 보내면 무당파 사람이 마중을 나올 것이다.
 
 아저씨가 남긴 신호란 찻잔을 뒤집은 뒤, 뚜껑 위에 젓가락을 얹은 행동을 말했다.
 운총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을 마중 나온 무당파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당산은 여기서 가깝습니까?”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답했다.
 “가깝단다, 아주. 그러니까 이쪽으로 오거라.”
 이수화는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녀가 만난 무당 제자 중 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자는 가짜다.’
 그녀는 재빨리 담을 타고 움직였다. 무당파를 찾아온 운총이 위험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운총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없었다.
 골목길은 우중충했다. 하지만 좁지는 않았다.
 장창은 어려웠지만 검이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총의 잔잔한 마음에 의심의 파도가 일었다.
 ‘왜 이런 곳으로 불렀을까? 설마 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직 상대를 단정하기에는 일렀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까?”
 목소리가 대답했다.
 “후후후. 무당파 사람들은 밖으로 자신을 내세울 수 없는 법이란다.”
 운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제가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그는 낯선 이의 대답을 반만 믿었다. 다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여러 신호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상대방을 부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운총은 상대를 경계하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슈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파공성.
 이런 소리를 내는 물체는 십중팔구 암기였다.
 운총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의 의도는 너무나 뻔했다.
 ‘날 죽이려 하는 것인가? 이것이 무당의 대답인가?’
 그는 자신을 찾아온 무당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켰다.
 “무당파란 정말 한심하군!”
 운총은 두 손을 내밀어 암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내미는 순간, 한 자루의 검이 그의 손과 암기 사이에 끼어들었다.
 탕!
 검은 암기를 위로 쳐 냈다.
 검의 주인은 진짜 무당 제자인 이수화였다.
 그녀는 소리를 듣자마자 검을 뽑아 청음타격의 수법으로 암기를 쳐 낸 것이다.
 청음타격聽音打擊.
 이것은 꽤나 어려운 수법으로, 이수화의 청음타격은 불완전했다.
 그녀는 암기를 쳐 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쳐 냈군.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운총은 그녀가 자신을 계속 미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살기를 품지 않았기에 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담담하게 이수화에게 물었다.
 “왜 날 도와준 겁니까?”
 그녀가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이쪽이 진짜 무당 제자야.”
 운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겁니까? 그쪽이 진짜 무당 제자? 그렇다면 저쪽은 가짜란 말입니까?”
 “늦어서 미안해. 네가 어떤 이유로 무당 제자를 만나려 하는지 잘 몰라서 말이야.”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무당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꼬마 녀석을 혼내 주려 했었는데. 진짜 무당 제자라니. 이거 생각지도 못한 물고기가 걸렸군.”
 이수화가 가슴을 펴면서 말했다.
 “나는 무당파 삼 대 제자 이수화다. 무당파를 사칭하는 녀석은 이름을 대라.”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딱딱한 얼굴을 가진 노파였다.
 이수화는 미간을 좁혔다.
 ‘쳇, 노파였군. 하지만 방금 전의 암기는 꽤나 날카로웠어. 방심할 수 없는 상대야.’
 운총은 이수화와 노파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아주 쉽게 알겠네요.”
 노파가 말했다.
 “난 무당파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운총이 혀를 찼다.
 “무당산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무당 제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고······.”
 노파가 입술 끝을 올렸다.
 “무당산이 무당파 소유란 말이냐? 어림도 없는 소리.”
 이수화가 노파와 운총 사이에 끼어들었다.
 “당신은 무당파를 모욕했다! 무당파는 숨어서 다른 사람을 암습하지 않는다.”
 노파가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검은색 고리가 들려 있었다.
 “오호, 무당 여협께서 화가 나셨구려.”
 이수화가 운총에게 말했다.
 “내가 앞을 막겠어. 넌 왼쪽으로 돌아가. 할 수 있지?”
 운총은 보았다.
 노파의 손에 머무르고 있는 용을······.
 아저씨는 운총에게 말했다.
 용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강하다.
 운총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하지? 옆에 선 무당 제자의 무공은 노파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역시 내가 해결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는 중원에 나온 뒤 처음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조심하세요. 상대는 강적입니다.”
 이수화는 검을 세우면서 대답했다.
 “상대가 보통 이상이라는 건 이쪽도 알 수 있어. 왼쪽, 맡아 줄 거야?”
 “예. 문제없습니다.”
 노파는 두 사람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디 실력을 볼까?”
 노파의 오른손에서 한 쌍의 고리가 뻗어 나왔다. 두 개의 고리는 각각 운총과 이수화를 노리고 있었다.
 운총은 작은 고리에 담긴 용을 보았다.
 ‘이 공격은 위험하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가죽 옷이 찢어지고 말 것이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위험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막지 못할 정도로 까다로운 공격은 아니었다.
 ‘연계 공격이 온다는 건가?’
 이수화는 검을 들어 고리를 쳤고, 운총은 낮게 몸을 움츠려 고리를 피했다.
 그의 예상대로 노파의 진짜 공격은 한 쌍의 고리가 아니었다.
 노파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이건 어떨까?”
 이수화는 운총과 달리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수십 개의 은침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녀는 수많은 은침을 검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천화우?”
 이수화는 급히 경공을 전개해 담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운총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앗!”
 운총은 공력이 모자랐는지 제때 담 위로 피하지 못했다. 그는 몇 발인가 은침을 맞고 말았다.
 이수화는 그것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몸동작은 빠른데. 아직 경공은 나만 못한 건가?’
 운총은 이수화가 예상하지 못한 노파의 연계 공격을 꿰뚫어보았다.
 연계 공격을 예상한 그였다. 피하지 못해서 맞은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 은침을 맞아 준 것뿐이었다.
 그는 팔에 박힌 은침을 보면서 생각했다.
 ‘독을 쓰는 자는 검을 쓰는 자보다 훨씬 속이기 쉽다. 독에 중독된 것처럼 연기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독이 가지고 있는 위력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훨씬 쉽게 방심을 하고 마는 것이다. 방심은 치명적인 독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운총의 생각을 모르는 이수화는 그가 중독되었다고 생각했다.
 “위험해. 독이야!”
 큰 암기는 독이 없고, 작은 암기에는 독이 있다. 이것은 무림의 불문율이었다. 이수화는 어떻게든 해독약을 빼앗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합!”
 그녀는 노파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동시에 검을 뻗었다.
 일진보라는 경공 수법을 이용한 빠른 공격이었다.
 그러나 노파는 그런 이수화의 공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왼손을 뻗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아미지가 들려 있었다.
 탕!
 검과 아미자가 충돌하자 불꽃이 튀어 올랐다.
 노파는 빠른 움직임으로 이수화의 검을 봉쇄한 뒤, 오른손을 뻗었다.
 이수화는 그녀의 오른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왼손을 뻗었다.
 펑!
 장과 장이 마주쳤다.
 이수화는 왼손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을 깨닫고 급히 뒤로 물러섰다.
 “큭······.”
 노파가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괜찮은 솜씨구나. 하지만 아직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해.”
 이수화는 검으로 상체를 보호하면서 왼손의 상처를 살폈다.
 왼손에 작은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독사에 물린 건가? 내 장법을 뚫고 손바닥에 상처를 낼 수 있는 독사가 있단 말인가?’
 노파가 말했다.
 “두 녀석 모두 유화도의 박복은침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구나.”
 이수화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비겁하게 장심에 은침을 숨긴 것이냐?”
 노파가 냉소했다.
 “비겁? 비겁한 것은 내가 아니지. 두 사람이 한 명을 공격하면서도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오는 거냐?”
 운총은 생각했다.
 ‘무당 제자도 독에 중독된 것인가? 좋아, 이건 기회다. 두 사람 모두 독에 중독되었으니 노파는 마음을 완전히 놓게 될 것이다. 곧 내가 원하는 틈이 생길 것이다.’
 운총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거 손이 저려 오는데······ 침에 뭔가 묻어 있는 것 같군.”
 이것은 명백한 연기였다.
 이수화는 오른손으로 왼팔의 혈도를 찍어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았다.
 “아직도 혈도를 찍지 않은 거야? 어서 혈도를 찍어!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지.”
 운총이 고개를 갸웃했다.
 “혈도? 그게 뭡니까?”
 이수화는 순간 난감해졌다.
 ‘혈도도 모르는 건가? 저 녀석······ 장성 밖에서 온 것 같은데. 거기서는 다른 말을 쓰는 건가?’
 그녀는 급히 단어를 바꿔 말했다.
 “몸의 대혈 말이야. 어느 곳을 찌르면 흐르던 피가 멈추고, 또 어느 곳을 찌르면 몸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 말이야.”
 운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그런 곳을 모릅니다.”
 상승의 점혈 수법을 사용할 수 있는 운총이 어찌 혈도를 모르겠는가? 그는 단지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뿐이었다.
 노파가 웃었다.
 “호호호, 저 아이는 아직 점혈을 배우지 않았군.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한 시진을 넘기지 못할 거야.”
 이수화가 검을 세우면서 말했다.
 “해독약을 넘겨라!”
 노파는 대답 대신 아미자를 뻗었다.
 슉!
 “어디 뺏어 보시지.”
 이수화는 그녀의 장기인 무당검법을 펼쳤다.
 무당검법은 날카로움이 무림 제일이었다. 이수화는 무당검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하극퇴세下克頹勢!”
 그녀의 검이 아래로 크게 휘면서 노파의 다리를 노렸다. 하극퇴세는 상대가 도끼나 단극처럼 짧은 무기를 사용할 때 위력을 발휘하는 초식이었다.
 노파가 미소를 지으면서 오른손을 뻗었다. 그녀는 이수화의 초식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흥! 무당검법의 하극퇴세구나. 사부가 가르쳐 주더냐?”
 이수화는 노파의 말에 크게 놀랐다.
 ‘이 노파······ 내 초식을 알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무당검법을 알고 있다는 건가?’
 노파는 손을 내밀어 이수화의 검을 잡으려 했다.
 맨손으로 검을 잡는 검수劒手.
 검수는 일류 고수라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검수는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 손으로 행하는 검수는 일수제검이라고 해서 대단히 위험한 수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노파는 망설임 없이 일수제검의 수법을 펼쳐 냈다. 이는 상대의 초식을 꿰뚫고 있을 때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이수화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달았다.
 그녀는 급히 검을 거둬들였다.
 그 순간 노파의 아미자가 그녀의 미간을 노렸다.
 이수화는 크게 놀랐다.
 ‘큭! 이대로라면 당한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날렸지만, 노파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노파는 이수화를 압도했다.
 운총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가슴의 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무당 제자의 가슴에는 용이 없다. 그녀가 노파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수화는 체념했다.
 ‘끝이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내가 경솔했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노파의 왼손이 높이 올라갔다.
 짧은 비명을 내뱉은 것은 이수화가 아닌 노파였다. 노파는 왼손을 부여잡은 채 뒤로 물러섰다.
 “크윽······.”
 이수화는 보았다.
 운총이 오른발로 노파의 손을 걷어차는 것을.
 이수화는 고개를 돌려 운총에게 말했다.
 “대단한 공격이었어. 어떻게 그런 공격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운총이 미간을 좁혔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타격을 입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닙니다. 상대는 강적입니다.”
 이수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을 바로 했다.
 “아······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지.”
 운총의 작전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노파는 운총을 이수화보다 낮게 봤고, 결국 방심을 하고 말았다. 그녀는 마지막 공격을 하면서 운총을 전혀 상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운총은 하수가 아니었다.
 운총은 그녀의 방심을 틈타 그녀의 팔에 일격을 가할 수 있었다.
 노파는 운총을 노려보았다. 자세가 안정되어 있는 것이, 무공이 낮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른팔이 시큰거리는 것을 깨닫고는 미간을 좁혔다.
 ‘큭······ 뼈에 금이 간 건가? 저런 애송이에게 당하다니. 나도 늙긴 늙은 모양이군. 후, 이 이상은 무리야. 여긴 무당산하고 너무 가깝단 말이지. 무당칠협이란 녀석들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목숨이 위험해진단 말씀이야. 암, 그건 피해야지. 어차피 두 녀석 모두 중독되었으니. 감히 날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노파는 다시 한 번 만천화우의 수법으로 은침을 날렸다.
 이수화와 운총은 그녀의 은침 때문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또 만천화우인가?”
 두 사람이 뒤로 물러선 사이 노파가 담 위로 올라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 두지. 호호호······.”
 운총은 그녀를 추격하지 않았기로 했다. 상대는 아직 여력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른 퇴각을 의심했다. 함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다스렸다.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운총은 추격하려는 이수화의 어깨를 손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이수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해독약은?”
 “그건 제가 어떻게든 구해 보겠습니다.”
 노파가 운총을 비웃었다.
 “해독약을 구할 수 있다고? 호호호······ 박복은침의 해독약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녀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담장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수화는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 거야? 망설이는 사이에 도망쳐 버렸잖아.”
 운총이 고개를 저었다.
 “소리를 들어 보세요. 그녀는 아직 도망치지 못했어요.”
 “뭐라고?”
 “담 아래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그녀를 막고 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노파가 다시 담 위로 올라섰다. 노파의 표정은 방금 전과 많이 달랐다. 그녀의 얼굴은 흡사 호랑이를 만난 나무꾼처럼 창백했다.
 “너, 너는······.”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나타난 것이다.
 이윽고 노파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헉!”
 이수화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검에 찔렸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검에 찔린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설마 무형검?
 무형검은 검기를 다룰 수 있는 고수만이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었다.
 이수화는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미간을 좁혔다.
 “무형검이라니······ 대체 누구지?”
 운총이 그녀에게 말했다.
 “저 노파······ 심장을 찔렸습니다. 다시는 숨을 쉬지 못할 겁니다.”
 그는 보았다.
 푸른 용이 노파의 심장을 찌르는 것을.
 노파의 가슴에서 바르르 떨던 붉은 용이 사라졌다.
 그녀도 용도 죽은 것이다.
 이수화는 운총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심장을 찔렸다고? 넌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는 거지?”
 운총이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방금 전의 장면을 재현해 보였다.
 “보였으니까요. 누군가 무형검으로 이렇게 노파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
 투툭.
 담 위에 서 있던 노파의 시체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한 사내가 담 위에 나타났다.
 운총과 이수화는 그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 무당산
 
 
 
 “장 사숙.”
 이수화는 담 위에 올라선 사내를 알고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어떤 고수가 서 파파를 몰아냈는가 했더니 수화였구나.”
 운총은 그를 보자마자 이수화에게 말했다.
 “저 사람 강합니다.”
 그는 장 사숙이라 불리는 남자가 무형검을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강한 것만이 아니야. 가슴의 푸른 용의 기세가 무섭다. 이자는 고수다. 어쩌면 나보다 더 강할지도 몰라.’
 이수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강하지. 장 사숙은 강호를 주름잡는 무당칠협 중 한 분이셔. 장철담, 장 사숙을 모르는 강호인은 없지.”
 운총은 중원에 발을 내딛은 뒤 많은 강자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장철담처럼 강렬한 용을 지닌 자는 없었다.
 장철담의 몸 안에 있는 용은 아저씨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장철담은 검을 검갑에 밀어 넣으면서 생각했다.
 ‘수화가 물리친 것이 아니다. 저 소년이 물리친 것이다. 서 파파는 일류는 아니라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고수다. 수화의 실력으로 그녀를 꺾는 것은 무리다. 저 소년······ 대체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장철담이 말했다.
 “음······ 그렇구나,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서 파파를 상대한 것이로구나. 그러나 수화야, 서 파파와 같은 고수에게는 함부로 검을 들이대면 안 되느니라. 혼자라면 필시 당했을 것이다.”
 운총도 그와 생각이 같았다.
 ‘저 사람 말이 옳다. 이수화라는 무당 제자는 아직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
 이수화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장철담이 시선을 운총에게 돌렸다.
 “자네는 수화의 친구인가? 일단 수화를 구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군.”
 운총이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전······ 초원에서 무당파를 찾아왔습니다.”
 장철담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초원에서? 이거 멀리서 오신 손님이시군.”
 이수화가 재빨리 운총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소년은 방금 전 객잔에서 우리 무당의 신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까지 같이 온 것입니다.”
 이수화는 같이 왔다고 말했을 뿐, 자신이 미행을 한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탁.
 짧고 경쾌한 소리.
 장철담이 아주 우아하게 담 아래에 내려섰다.
 운총은 생각했다.
 ‘훌륭한 경공과 민첩한 동작, 굳이 가슴의 용을 보지 않아도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고수라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 사람은 처음이다.’
 장철담이 이수화에게 물었다.
 “음······ 우리 무당의 신호라면, 어떤 것이었지?”
 이수화가 대답했다.
 “찻잔 뚜껑 위에······ 이렇게 젓가락을 얹어 놓고 있었습니다.”
 장철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히 우리 무당파에서 사용하는 신호였군.”
 그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이수화에게 내밀었다. 이수화는 그가 내민 물건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은?”
 장철담이 대답했다.
 “영환단이란다.”
 “영환단이라면······.”
 영환단은 강호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영단이었다. 하지만 조제하기가 힘들고 재료가 비싸 삼 대 제자는 물론 장철담 같은 이 대 제자도 함부로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이수화의 경우, 영환단을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녀가 영환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사형들에게 들은 소문이 전부였다.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이 귀한 것을······ 제게······.”
 장철담이 미소를 지었다.
 “사천에서 한 가지 일을 처리하기 위해 가지고 갔던 것이지. 하지만 다행히도 사용할 일이 없더구나. 그리고······ 이건 수화에게 주는 것이 아니란다.”
 이수화의 눈이 커졌다.
 “네?”
 “수화는 은침을 맞은 뒤 혈도를 막지 않았느냐? 그 정도라면 객잔에 들러 내력과 내단으로 치료를 해도 된단다.”
 “그럼 영환단은······.”
 “저 소년에게 필요한 것이지. 서 파파의 은침을 몇 대 맞은 것 같으니.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이다.”
 이수화는 즉시 운총에게 영환단을 가져갔다. 그러나 운총은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이수화는 살짝 화가 났다. 영환단은 무당파의 보물로서,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 귀한 물건을 내주려 하는데 괜찮다니.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을 치료하지 않는다면 죽고 말 거야.”
 운총이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독은 제게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운총은 진심이었다.
 장철담은 생각했다.
 ‘설마 저 나이에 만독불침지체인가?’
 만독불침지체.
 모든 독이 통하지 않는 강건한 신체.
 일반적인 만독불침지체는 심후한 내공과 대량의 영단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운총의 경우는 달랐다. 어째서인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독에 내성이 있었다.
 이수화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독에 중독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설마 만독불침 같은 걸 믿는 건 아니겠지? 영환단을 먹는 것이 좋을 거야.”
 운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두 팔을 벌리면서 대답했다.
 “전 정말로 괜찮습니다.”
 그녀는 어떻게든 운총에게 영환단을 먹이려고 했다.
 “독침을 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없잖아. 아까 팔이 저리다고 했잖아.”
 운총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수화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거짓말이었던 거야?”
 “이기기 위해서 살짝 상대를 속인 것뿐입니다.”
 장철담은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이기기 위해서 속였다. 이 소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요령을 확실히 알고 있군. 실전 경험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대체 정체가 뭐지?’
 그는 운총에게 흥미가 생겼다.
 “자네, 무당파를 찾아왔다고 했지? 스승님은 어느 분이신가?”
 운총이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은 없습니다만······ 무공을 가르쳐 주신 분은 있습니다. 절 키워 주신 아저씨께서 무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저씨께서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다.”
 장철담이 말했다.
 “음······ 강호에는 그런 분들이 많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후배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분들. 그리고 그런 분들 중에는 은거기인이 많지.”
 운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봇짐을 내려놓았다.
 “아저씨도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다른 분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봇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수화가 물었다.
 “무엇을 꺼내려는 거야?”
 운총이 대답했다.
 “돌아가신 아저씨께서 남기신 편지가 있습니다. 전 그것을 무당에 전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겁니다.”
 이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돌아가신 분의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온 거구나.”
 장철담이 미간을 좁혔다.
 ‘흠, 무당으로 편지를 보냈다. 혹시 소년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사람은 우리 무당파와 관계된 사람이 아닐까?’
 운총은 봇짐에서 반쯤 접힌 편지를 꺼내 장철담에게 내밀었다.
 “이 편지입니다.”
 장철담은 편지를 받은 뒤 조심스럽게 그것을 살폈다.
 편지에는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어차피 무당파에 보내는 거니까. 딱히 표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건가?’
 그는 조심스럽게 겉봉을 뜯었다.
 그러자 한 장의 속지와 한 통의 편지가 나왔다.
 ‘편지 안의 편지군.’
 그는 우선 속지를 읽어 내려갔다.
 
 가르침을 받을 제자를 무당산으로 보낸다.
 
 단 한 줄.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장철담은 또 한 장의 편지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뜯어 봐야 알 수 있겠군.’
 하지만 그는 편지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보고는 손을 멈췄다.
 ‘천이 자문에게? 이건······ 대체······ 내가 뜯어 볼 수 있는 편지가 아니다.’
 장철담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문에게······ 음······ 이건······.”
 이수화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까?”
 장철담이 얼굴을 굳히면서 대답했다.
 “이건 보통 편지가 아니구나. 소년의 아저씨가 관 사숙께 보내는 편지란다.”
 이수화가 눈을 크게 떴다.
 “관 사숙이라 하시면······.”
 “그래. 네게는 관 사숙조가 되시는 분이지.”
 장철담의 사숙인 관숙, 그의 자는 자문이었다.
 그는 편지를 품에 조심스럽게 갈무리한 뒤 운총에게 속지를 돌려주었다.
 “직접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운총은 속지를 받아 읽었다.
 “가르침을 받을 제자를 무당산으로 보낸다······ 흠······ 아무래도 여기 적힌 가르침을 받을 제자란 절 뜻하는 것 같습니다.”
 장철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구나.”
 그는 편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는 운총의 내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후, 보통 소년이 아니었군.’
 이수화가 말했다.
 “아, 그러니까 아저씨란 분이 돌아가시면서 무당산에 제자를 부탁한 것인가요?”
 “그런 것 같구나.”
 “사숙, 그럼 이 소년은 무학관에 머물게 되는 건가요?”
 장철담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좀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관 사숙께 보낸 편지가 있으니 말이야. 관 사숙께서 직접 이 소년을 제자로 받아들이면 무학관을 거칠 필요가 없지.”
 이수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했다.
 “관 사숙조께서 저 소년을 제자로 받아들이신다고요? 그럼 저 소년이 제 사숙이 되어 버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겠지. 억울하다고 생각하느냐?”
 이수화가 두 손의 손가락을 서로 마주치면서 대답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보다 어린 사숙이라니······.”
 장철담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직 결정된 일은 아니니,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꾸나. 그냥 무당파에 제자를 부탁하는 편지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소년이 무학관에 입관하게 된다면 네 사제가 될 것이다. 아······ 들고 있는 영환단은 수화, 네가 복용하도록 해라.”
 이수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영환단을 먹어도 되는 겁니까? 저 소년에게 필요할 것 같은데요?”
 장철담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서 파파의 독이 생각보다 약했던 것 같구나.”
 이수화는 입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장철담의 말이 모순된다고 생각했다.
 ‘서 파파의 독이 약하다고 하면서 나보고는 영환단을 복용하라고 하시다니······. 영환단은 약한 독을 치료하기 위한 약이 아니잖아.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더 물으면 장 사숙께서 화를 내시겠지?’
 장철담이 운총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데. 혹시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운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운총, 운총이라고 합니다.”
 장철담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좋다. 운총, 나와 함께 무당산으로 가자꾸나. 내가 널 무당 제자로 만들어 주마.”
 운총은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에게 말했다.
 용이 없는 손길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철담의 손에는 용이 없었다.
 
  * * *
 
 무한진에서 무당산은 매우 가까웠다.
 세 사람은 모두 말을 타고 움직였기 때문에 얼마 걸리지 않아 무당산에 도착했다.
 운총은 구름이 가득 낀 봉오리를 보면서 소리쳤다.
 “저곳이 무당산입니까?”
 장철담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무당산이란다.”
 무당산은 장철담에게 언제나 새로운 얼굴을 보여 주곤 했다.
 오늘도 그랬다.
 장철담은 몇 달 사이 무당산의 얼굴이 또 한 번 변했다고 생각했다.
 ‘저 엷은 안개는 소년을 반기는 것인가? 아니면 소년에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것인가? 아직은 알 수가 없구나.’
 무당산으로 가는 길.
 여기서부터 산문까지는 갈림길이 없는 대로였다. 이 길은 여덟 필의 말이 나란히 달려도 부딪히지 않을 만큼 넓었다.
 먼 옛날 한 황제가 무당산 가까이 있는 무산을 방문하겠다고 선언했다. 신하들은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무산으로 향하는 길을 닦았다.
 무산으로 향하는 길을 닦던 신하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폐하께서 천하의 명산 중 하나인 무당산을 지나치실 리 없다.”
 그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무당산으로 향하는 길도 황제의 어가가 지날 수 있을 만큼 넓게 닦았다. 하지만 황제는 무당산에 들르지 않았고, 이 넓은 길은 무당산을 향하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었다.
 길 맞은편에 한 사내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장철담은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살기나 탁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묵묵히 말을 몰았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내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사숙, 안녕하십니까?”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내는 장철담의 사질 중 한 명인 도숙아였다.
 장철담은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게 멀리서 인사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도숙아는 재빨리 뛰어와 장철담에게 다시 인사했다.
 “도숙아, 사숙을 뵙니다.”
 장철담은 그가 등에 봇짐을 멘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숙아,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가느냐?”
 장철담이 고개를 갸웃한 것은 그가 혼자 멀리 여행하기에는 항렬이나 무공이 낮았기 때문이다.
 도숙아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집안에 일이 생겨 하산하는 길입니다.”
 하산.
 하산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무당산에서의 수련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장철담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운총은 보았다.
 도숙아의 가슴에 있는 파란 새끼용을.
 그의 가슴에는 파란 새끼용이 몸을 웅크린 채로 잠들어 있었다.
 운총이 잠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도숙아의 새끼용이 몸을 웅크린 채 꼼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철담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앞으로 삼 년만 더 수련을 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일 것을······.”
 도숙아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사실은 저도 수련을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안 일이 여의치 않으니 하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숙, 전 산을 내려간다고 해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당에서 배운 것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장철담은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도숙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숙아, 산을 내려가더라도 네가 무당 제자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거라.”
 도숙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도숙아는 이수화와도 몇 마디를 나누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대부분 잘 지내라는 인사말이었다. 도숙아는 마지막으로 장철담에게 큰절을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장철담은 도숙아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 아쉬운 인재가 또 한 명 무당산을 내려갔구나.”
 운총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많이 아쉬워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로 산을 내려가기 때문일까요?”
 운총이 장철담에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이수화가 대신 대답했다.
 “무당산을 내려가면 말이야, 더 이상 사부에게 무공을 배울 수 없게 되잖아. 도 사형이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야.”
 운총이 고개를 갸웃했다.
 “흠······ 산에서 사부에게 무공을 배울 수 없는 것이 많이 아쉬운 것이군요.”
 이수화가 자랑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많이 아쉬운 일이지. 무당파의 무공은 천하제일이니까. 천하제일의 무공을 배울 기회가 있는데, 그것을 눈앞에서 놓치게 되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운총은 속으로 생각했다.
 ‘무공을 배우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인데. 무엇이 아쉽단 말인가? 흠, 천하제일의 무공은 뭔가 다른 구석이 있는 건가? 뭐, 그렇다면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내가 알고 있는 무공은 힘들고 또 힘든 것뿐이니까.’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과 이수화가 알고 있는 무공이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수화가 장철담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 사형 안타깝게 되었어요.”
 장철담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십 년을 노력해서 어렵게 명첩을 받아 정식 제자가 되었는데. 이렇게 일찍 하산을 하게 되다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이수화는 도숙아의 일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도 머지않아 도숙아처럼 무당산을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녀는 장철담처럼 평생 무당산에 머물 수 없었던 것이다.
 매년 많은 제자들이 도숙아처럼 무당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명첩을 받게 된다 해도 소림 제자와 달리 무당 제자는 속세와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다.
 
 
 
 # 무학관
 
 
 
 운총은 장철담과 이수화의 안내 덕분에 무사히 무당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철담은 산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산문에 오를 수 있는 자들은 무학관의 모든 과정을 끝낸 제자뿐이었다.
 운총은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턱대고 입산부터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장철담이 산문 앞에서 멈추자 이수화가 물었다.
 “사숙, 어떻게 하지요?”
 운총에 대해서 묻는 것이었다.
 장철담이 대답했다.
 “관 사숙께서는 아직 제자를 한 명도 거두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운총을 제자로 거두실 거라고는 장담을 할 수가 없구나.”
 그는 관숙에게 보내는 편지가 단순히 무당파 입문을 부탁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장철담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운총, 우선 무학관에서 무공을 배우는 것이 좋겠구나. 지금의 실력이라면 금세 입산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수화가 다시 장철담에게 물었다.
 “그럼 관 사숙조께서 운총을 제자로 삼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철담이 대답했다.
 “내 사제가 되겠지.”
 이수화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냥 남암궁에 머물면 안 되는 건가요?”
 장철담이 차분하게 말했다.
 “수화야, 사람을 불러올리는 것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란다. 하지만 올라와 있는 사람을 아래로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법이지.”
 이수화는 장철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올라가는 것과 내려가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르겠지요.”
 운총이 장철담에게 물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드려도 되겠습니까?”
 장철담이 미소를 지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해 보거라.”
 운총이 말했다.
 “제가 무당 제자가 되면 아저씨의 유언을 지키게 되는 겁니까?”
 장철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에 적혀 있는 것이 전부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왜,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느냐?”
 운총이 대답했다.
 “다시는 초원에 있는 친구들을 못 만날까 두렵습니다.”
 장철담이 가볍게 웃었다.
 “하하,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느니라. 네가 수화처럼 정식 무당 제자가 되면 언제든 초원으로 달려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단다. 물론 사부의 허락 정도는 필요하겠지.”
 운총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저씨의 유언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타타이무 아저씨께서는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철담이 미소를 지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사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남자라 할 수 없지.”
 운총은 주먹을 쥐었다.
 장철담의 말대로였다.
 아저씨는 그에게 있어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유언을 저버린다는 것은 그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저······ 반드시 무당 제자가 되겠습니다.”
 장철담이 말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는 운총에게 말한 뒤 이수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수화야, 네가 운총을 무학관으로 안내해 주겠느냐?”
 이수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헌데······ 운총이 아예 무당 제자가 되지 못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관 사숙조께서 편지를 보고 실망하신다든가······.”
 장철담이 품속에서 명첩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이수화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관 사숙조께서 거절하신다면 그때는 내가 운총을 맡겠다.”
 이수화는 그의 말에 크게 놀랐다.
 “사숙께서 제자를 받으신다는 말입니까?”
 장철담이 담담하게 말했다.
 “안 될 것이 없지 않느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내 명첩을 소개장 대신 가져가거라. 이것이면 주 사형도 별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수화는 장철담의 명첩을 받으면서 깜짝 놀랐다. 명첩은 함부로 남에게 빌려 주는 물건이 아니었다.
 “장 사숙······.”
 장철담이 말했다.
 “운총의 재능은 우리 무당파에 충분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운총을 제자로 삼는다면, 그것은 운총이 무학관의 과정을 끝내고 난 다음이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자 빨리 일을 처리하고 사숙께 명첩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운총과 이수화는 산문 앞에서 장철담과 헤어졌다.
 이제부터는 두 사람뿐이었다.
 운총과 이수화는 산 아래 보이는 건물들을 향해 걸었다.
 느릿한 걸음 속에 적막이 흘렀다. 그러나 적막은 곧 운총에 의해서 깨어졌다.
 그가 줄줄이 늘어선 건물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곳이 무학관이라는 곳입니까?”
 이수화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곳이 바로 무학관이야. 무당 제자가 되려는 이는 우선 저곳에서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게 되지. 진짜 무당 제자가 되는 것은 그다음이야.”
 “그렇군요. 그럼, 제가 해야 하는 일은 저 무학관에서 기본적인 무공을 배우는 것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녀는 운총의 무공이 기본적인 것을 배우기에는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했다.
 ‘운총은 싸움에 능숙해. 무한진에서 서 파파를 물러서게 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 이 아이의 무공은 나보다 높은 것이 아닐까? 무당칠협으로 불리는 장 사숙께서 제자로 삼고 싶다고 말씀하실 정도니까 일단 재능은 있다고 봐야겠지.’
 운총이 길게 늘어선 수양버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건 무슨 나무죠?”
 초원에서 자란 운총은 중원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는 그중에서도 특히 숲과 나무에 눈이 갔다.
 이수화는 수양버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니?”
 운총이 말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나무는 아닙니다. 단지 초원에는 저런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수화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건 버드나무야. 한자로는 양楊이라고 하지.”
 운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 양 자가 바로 저 나무를 가리키는 것이었군요. 중원의 나무들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는 버드나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꽤나 기쁜 것 같았다. 이수화는 운총에게 의외로 귀여운 구석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공은 뛰어나지만 아직 아이 같은 면을 가지고 있는 건가?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거구나?’
 운총은 그녀와 함께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런데 저기······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이수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나?”
 운총이 짧게 대답했다.
 “네.”
 이수화가 아미를 살짝 굽히면서 말했다.
 “흠, 후엔 내가 사질이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사자라고 부르면 될 거야.”
 “아······ 감사합니다, 이 사자.”
 이수화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얼굴이 꽤 곱상하네. 고생을 한 흔적이 없다면 부잣집 외동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얼굴이잖아. 훗,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귀여운 사제가 생겼군.’
 운총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아까 그분 있죠. 이 사자보다 강했습니다······.”
 “아까 그분? 장 사숙 말이야?”
 “아니요. 이렇게 옆으로 퍼진 분 말입니다.”
 이수화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도 사형을 말하는 거군. 옆으로 퍼진 사람이라니. 도 사형이 약간 풍채가 있긴 하지만 뚱뚱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닌데 말이야. 이거 도 사형이 들으면 억울하다고 울상을 짓겠는데?’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숙아, 도 사형 말이야?”
 운총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그분······.”
 이수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흠, 도 사형의 실력이 이쪽보다 위란 말이지?”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수화는 운총의 말에 혀를 빼어 물었다.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 걸까? 설마 내가 여자라서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무공의 고하는 몸무게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고.”
 운총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지요.”
 이수화는 가볍게 흘려 넘기는 듯 말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신경을 썼다.
 ‘도 사형이 나보다 더 강하단 말이야? 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감춰 둔 실력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운총이 날 약하게 보는 걸까?’
 사부들의 평가나 정식 입문에 걸린 시간은 이수화 쪽의 압승이었다. 그런데도 운총은 도숙아 쪽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운총은 생각했다.
 ‘괜한 말을 한 건가? 가슴의 용이 보인다고 말해도 이 사자는 믿지 않을 텐데······.’
 이수화의 가슴에도 푸른빛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용이라 부를 수 없는 아주 흐릿한 푸른빛이었다.
 용이 없는 사람은 약하다.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다.
 아저씨의 기준대로 무공을 평한다면 이수화는 도숙아를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무학관에 가까이 가자 기합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하합! 하합!’ 하는 기합 소리였다.
 운총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수화에게 말했다.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걸까요?”
 이수화가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에 입문한 제자들은 다 이곳 무학관을 거치게 되어 있지. 아까도 말했지만 이곳에서 무공의 기초를 배우지 못하면 산에 오를 수 없어.”
 이수화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것을 깨달았다. 무학관에 처음 들어와서 허둥대던 일, 다른 제자들보다 실력이 낫다고 자부하다가 선배들에게 형편없이 패한 일.
 이수화는 머리를 흔들었다.
 “후······ 생각하지 말자.”
 운총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디 아프신가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무학관에 대해서 짧게 설명했다.
 “무학관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승급 심사를 해. 이 심사에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
 “음······ 단계가 꽤 많은 것 같군요.”
 “매난국죽梅蘭菊竹. 이렇게 사당이 있어서, 모두 통과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 년은 필요해.”
 운총이 한숨을 내쉬었다.
 “더 빨리는 안 되는 겁니까?”
 “그게 규칙이니까. 하지만 운총은 다를 수도 있지. 관 사숙조께서 제자로 삼겠다고 하시면 다 건너뛰고 바로 무당 제자가 될 수 있어.”
 운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다 건너뛴다. 뭐랄까요. 처음에는 그편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 보니 그건 조금 비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다른 제자들이 힘들게 통과하는 심사를 단지 사부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만으로 끝낸다면 다른 제자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건 운총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너무 쉽게 통과한다면 다들 조금 좋지 않게 생각하겠지. 질투도 많이 할 거고······.”
 “그렇겠죠? 아무래도 무학관 심사를 모두 통과하는 쪽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뭐, 운총의 실력이라면 쉽게 통과할 테니까. 문제는 없겠지.”
 무학관 앞에 이르자 두 소년이 이수화를 알아보고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이 사자 아니십니까?”
 “이 사자, 오랜만입니다.”
 이수화가 말에서 내리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오랜만이야.”
 그녀와 운총이 말에서 내리자 오른쪽에 서 있던 소년이 고삐를 받았다.
 “그런데 이 소년은 누구입니까?”
 이수화가 고삐를 건네주면서 대답했다.
 “새로 입관하려는 제자야.”
 그녀의 말에 두 소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나이에 입문하는 겁니까?”
 “꽤 늦었군요.”
 운총의 나이는 열다섯 살, 무학관에 입문하기에는 꽤나 늦은 나이였다. 무당파에 입문하는 제자들은 열 살 전후가 가장 많았다.
 문지기를 맡고 있는 두 소년은 운총과 비슷한 연배였지만, 이들은 죽림당 제자들로서 입산을 위한 마지막 심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수화는 운총이 단번에 모든 심사를 통과할 테니 나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입문이 빠르다고 방심하면 큰코다칠걸? 운총의 무공은 정말 대단하니까. 게다가 관 사숙조나 장 사숙께서 제자로 삼으시게 되면······ 단번에 위로 쑥 올라가겠지. 그러면 나도 운총을 사숙이라 불러야 할 테고······ 후, 이쪽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고삐를 받아 든 소년이 말했다.
 “말은 표를 적어 마구간에 매어 두겠습니다.”
 이수화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게 해 줬으면 해.”
 이수화와 운총은 말을 맡긴 뒤,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목검을 든 제자들이었다. 수십 명이 나란히 줄을 맞춘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다른 제자들과 달리 기합을 내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느리지만 힘을 주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수화는 운총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리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에 입문하는 제자들은 다 처음부터 저 무당검법을 배우고 싶어 하지. 운총도 검법을 알고 있을까? 검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서 파파하고 싸울 때도 쓰지 않았으니. 도대체 어떤 검을 쓰는지 알 수가 없네.’
 두 사람은 검을 수련하고 있는 널따란 광장을 지나쳐 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목표로 했던 무극전에 도착했다. 이 무극전은 무학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운총은 무극전의 규모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크네요. 마치 옥문관의 관문 같습니다.”
 이수화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학관의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니 당연히 크지. 이 무극전은 무학관 동관에서 가장 큰 건물이야.”
 무극전의 안과 밖은 노자와 장자의 고사를 그린 그림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운총의 시선이 화려한 그림으로 쏠렸다.
 “이건 선녀군요. 저쪽은 나비인 것 같고요. 혹시 장자지몽이라는 고사인가요?”
 이수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운총의 말을 고쳐 주었다.
 “장자지몽이 아니라 호접지몽.”
 그녀는 운총이 이제야 또래에 걸맞은 얼굴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이수화는 장철담이 건네준 명첩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것이 있네. 장 사숙께서는 왜 직접 운총을 데려오지 않으신 거지? 장 사숙이 직접 이곳으로 오셔서 설명하신다면 명첩이나 소개장이 필요 없을 텐데 말이야. 여기 오지 못하실 정도로 바쁜 일이 있으신 걸까?’
 그녀는 장철담과 무학관의 입관 심사를 맡고 있는 주첨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역시 그 때문인가? 서로 얼굴 보는 것이 껄끄럽다는 건가? 후, 무당파도 다른 문파들처럼 복잡하군. 어른들의 일에 내가 나설 수는 없지.’
 이수화와 운총은 무극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자 한 소년이 청석판을 밟으며 다가왔다.
 다가온 소년은 운총보다 나이가 어렸다. 하지만 발걸음만큼은 무당 제자답게 가볍고 날렵했다.
 운총은 그의 몸놀림이 가벼운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움직임입니다. 말을 잘 탈 수 있을 것 같군요.”
 이수화가 가볍게 웃었다.
 “풋. 말보다는 무공을 익히는 데 좋은 몸놀림이겠지.”
 “그렇습니까?”
 소년이 이수화에게 말했다.
 “이 사자, 무슨 일이십니까?”
 이수화가 얼굴에 웃음을 지우면서 말했다.
 “주 사부를 뵈러 왔다. 주 사부께서는 계시느냐?”
 “안에 계십니다. 무슨 용무라고 전해 드릴까요?”
 “장철담, 장 사숙의 소개를 받은 소년을 데려왔단다.”
 “아,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소년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안으로 들어갔던 소년이 주첨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알렸다.
 “주 사부께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이수화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운총, 들어가자.”
 
 
 
 # 일검쌍원 주첨
 
 
 
 일검쌍원 주첨.
 그는 십 년째 이곳에서 입관 심사를 맡고 있었다.
 무당 제자들은 먼 곳에서도 그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한 가지 큰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첨의 특징은 바로 뚱뚱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 둘을 합해 놓은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주첨이 대나무로 만든 부채를 부치면서 말했다.
 “음······ 철담이 소개를 했다고?”
 장철담과 주첨은 같은 이 대 제자지만, 주첨 쪽이 입문이 빨랐다.
 이수화는 주첨 앞으로 나아가 포권을 취했다.
 “제자 이수화, 사숙을 뵙니다.”
 주첨이 앉아 있는 의자는 다른 의자보다 배는 컸다. 평범한 의자로는 그의 비대한 몸을 버텨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아, 그래, 사부님은 잘 계신가?”
 이수화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사질, 무한에서 방금 돌아와 아직 사부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운총은 주첨이 고수란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의 비대한 몸 안에는 붉은 용이 길게 누워 있었다.
 ‘힘이 없는 목소리와 느릿한 움직임, 주 사부란 사람은 일부러 약한 체하고 있는 건가? 어쩌면 살 쪽은 가짜일지도 모르겠군.’
 주첨이 말했다.
 “철담은 여전히 바쁜 모양이군. 이번에는 몽고에 다녀온 건가?”
 주첨의 눈썰미는 좋은 편이었다.
 그는 운총의 복장을 한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내력을 어느 정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장 사숙은 사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운총과 만난 것은 무한진에서였습니다.”
 주첨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무한진이라······ 흠······ 그건 그렇고 무당파에 입문을 하려고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주첨이 눈썹을 살짝 위로 올렸다.
 “날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입문을 하려 한다는 뜻이겠지. 소개장은 어디 있나?”
 무당파에 입문하는 모든 제자가 소개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당 제자의 소개장이 있으면 한결 쉽게 무당파에 입문을 할 수가 있었다.
 이수화는 품속에서 장철담의 명첩을 꺼내 공손히 주첨에게 내밀었다.
 “장 사숙은 소개장 대신 명첩을 제게 맡기셨습니다.”
 주첨은 장철담의 명첩을 받아 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철담은 부지런한 것 같으면서도 게으른 구석이 있단 말이야. 예전부터 그랬지. 자신이 해야 할 것만······ 아니, 사부님께서 시키신 것만 열심히 했지. 다른 사람을 챙기는 것도 좀 열심히 했으면 좋으련만······.”
 과거 주첨은 장철담이 입문하기 전까지 촉망받는 무당 제자였다. 그의 재능은 여러 사숙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장철담이 입문한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가 받았던 찬사와 호평을 장철담이 모조리 빼앗은 것이다. 장철담은 재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장철담의 그러한 자세는 사부는 물론 다른 사숙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시작은 주첨이 빨랐지만, 무공 성취에 있어서는 장철담 쪽이 훨씬 빨랐다. 장철담은 입문 삼 년 만에 주첨의 무공을 따라잡았다.
 이후, 두 사람의 무공 수위는 날이 갈수록 벌어졌다.
 주첨은 어느 순간 자신이 도저히 장철담을 능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주첨은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옆으로 불어났으며, 무공은 퇴보했다.
 사부는 그런 그에게 큰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는 주첨에게 올바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는 말을 남긴 채 폐관에 들어갔다.
 사부에게 쓴 소리를 들은 주첨은 다시 무공 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과 달리 무공은 쉽게 늘지 않았다.
 주첨의 무공은 아주 서서히 늘었다.
 수련은 쉽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무공을 늘려 나이 마흔에 중수 반열에 올랐다. 중수가 되었지만, 사부는 그에게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강호를 누비며 명성을 쌓는 동안 그는 계속 무당산을 지켰다. 무공이 높아질수록 장철담에 대한 시기심도 커졌다.
 그러던 와중에 사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날로 무당산을 내려와 무학관에 자리를 잡았다.
 주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무학관의 관주 태원후였다.
 태원후는 올해 나이가 아흔일곱인 무당파의 원로로, 이제는 일선에서 완전히 은퇴해 무학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주첨을 무학관으로 불러들인 뒤 입관 심사를 맡겼다.
 입관 심사를 담당하는 자리는 그리 높은 무공이 필요치 않았다.
 입관 심사는 소년들의 기초나 내력을 알아볼 수 있는 눈만 있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주첨은 입관 심사를 맡아 보기에는 무공이 지나치게 높았다. 그러나 그는 이 일에 만족했다. 입관 심사 자리는 약간의 뇌물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이 대 제자들과 달리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무당 제자들은 그 자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름을 날릴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첨은 달랐다. 그는 보통 제자들과 달리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장철담의 위명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쫓지 못한다.
 그러니 잊자.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주첨이 이수화에게 명첩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무당파에 입문하고 싶다고? 그럼 입문금은 가지고 왔겠지?”
 입문금이란 말이 나오자 이수화가 멈칫했다.
 무당파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금전적인 예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재능이 뛰어난 경우에는 이런 입문금이 면제되었다. 무당파도 다른 문파들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입문금이 반드시 필요했다.
 모든 문파는 유지하는 데 돈이 필요했다. 이것은 무당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당산에는 아홉 개의 궁과 여기에 딸린 수십 채의 건물이 있었다. 이것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일 년에 은자 수천 냥이 들었다.
 물론 무당파에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당파도 어느 정도의 돈줄은 가지고 있었다.
 우선 황실에서 기부한 두 개의 장원이 있었다. 여기서 나는 수익은 모두 무당파의 것이었다. 이외에도 무당산 주변에 약간의 토지가 더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수입만으로는 무당파의 방대한 살림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무당 제자는 많았지만 이들 중 돈을 벌어들이는 자는 극히 적었다.
 선을 닦고 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았다.
 이천 명에 달하는 무당 제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다. 무당파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무학관을 세우고 무당 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입문금과 교학금을 받았다.
 물론 무당파는 강호의 대문파답게 돈을 낸다고 해도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당파는 무학관 제자를 받을 때도 가문과 심성에 대한 심사를 했으며, 여기에서 탈락한 자는 입문금을 아무리 많이 지불해도 받지 않았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입문금은 입문할 때 필요한 돈이며, 교학금은 가르침에 감사하며 매년 내는 돈이었다.
 이수화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장 사숙은 아마도······ 감원 제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첨이 미간을 좁혔다.
 “이 녀석을 감원 제자로?”
 감원 제자란 무공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 입문금 없이 받아들이는 제자를 말했다.
 주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안 될 말이군. 아무리 철담의 소개가 있다고 해도······ 감원 제자가 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감원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부들의 추천이 필요하다.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수화, 난 누구의 부탁을 받아 규정을 어기는 그런 사내가 아니다. 입문을 위해서는 입문금이 필요하다.”
 이수화는 미간을 좁혔다.
 무당칠협으로 불리는 장철담의 추천이라면 여러 사부들의 추천이 없더라도 충분히 감원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첨은 장철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장철담의 뜻대로 운총을 감원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주첨은 운총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감원 제자라니, 날로 먹을 작정이냐? 게다가 날 위한 선물조차 준비해 오지 않다니. 철담 녀석, 무학관을 너무 쉽게 보고 있군.’
 이수화는 잠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주첨이 운총에게 말했다.
 “거기,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운총이라고 합니다.”
 “뭔가 돈이 되는 것을 가지고 있느냐?”
 무당 제자답지 않은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운총이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타고 온 말이 있긴 합니다만······.”
 주첨이 냉소했다.
 “말? 그런 것으로는 힘들지. 다른 것은 없나?”
 그는 운총의 봇짐에 매달려 있는 검을 주목했다.
 ‘흠······ 검인가?’
 주첨은 운총의 검에 호기심이 생겼다.
 “거기 매여 있는 검을 한번 보고 싶구나.”
 운총은 흠칫했다.
 ‘이 검은 안 된다. 이건 아저씨께서 남겨 주신 유일한 물건이다.’
 주첨은 그런 운총의 생각을 읽었다.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보기만 하겠다는 것이다. 무당 제자인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운총이 봇짐을 내리면서 말했다.
 “보기만 하시는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만······.”
 그는 심호흡을 한 뒤 검을 가죽 주머니째 주첨에게 내밀었다.
 ‘주 사숙은 무공이 약한 사람이 아니니 검을 본다 해도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주첨은 검을 받아 들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검이 왜 이리 가볍지? 설마 이렇게 검갑만 달랑 있는 것은 아니겠지? 흠······ 검이 없다고 해도 이 무게는 이상한데?’
 주첨이 생각하기에 운총의 검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이 정도 길이의 장검이라면 몇 근은 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운총의 검은 한 근도 채 나가지 않는 것 같았다. 주첨은 재빨리 검을 감싸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벗겼다.
 이수화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운총의 검을 바라보았다.
 찻집에서 만났을 때, 이수화는 가장 먼저 운총의 검에 시선이 갔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무기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이수화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검일까? 설마 엄청난 명검은 아니겠지?’
 주첨이 가죽 주머니를 벗겨 내자 금색으로 빛나는 검갑이 드러났다.
 그의 두 눈이 빛났다.
 ‘이렇게 호화로운 검갑은 아무 검에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검갑만 보아도 평범한 검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수화는 탄성을 터트렸다.
 “아······ 정말 대단해.”
 주첨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것은······.”
 운총은 속으로 꽤나 불안했다.
 ‘그렇게 대단하거나 한 검은 아닌데······ 무척 위험하기만 할 뿐이야.’
 주첨은 속으로 연방 검을 찬양했다.
 ‘검신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명검이다. 그것도 아주 보기 힘든. 이런 검이라면 천 냥이 아니라 만 냥도 부족할 것이다. 어떻게 저 어린것이 이런 귀한 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어떻게든 이 검을 손에 넣고 싶구나.’
 그는 검갑에 새겨진 한 마리의 용을 감상하면서 말했다.
 “좋은 검이군. 명검임이 틀림없다.”
 주첨은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았다.
 스르르릉.
 검을 뽑는 감촉도 좋았다.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은 검은 뽑을 땐 그 느낌이 좋지 않은 법이었다. 그런데 이 검에는 그런 안 좋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길이 잘 들여진 검이란 소리였다.
 검신이 그 옷을 벗고 나서자 주첨이 다시 한 번 탄성을 터트렸다.
 “역시 좋은 검이군.”
 그가 검을 들자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사방을 덮쳤다.
 “이것은······.”
 주첨은 재빨리 내력을 끌어 올려 전신을 보호했다. 평범한 명검이 아니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면서 검신을 살폈다.
 그는 보았다.
 검신에 새겨진 세 글자를.
 패룡검覇龍劒.
 주첨은 세 글자를 보자마자 검갑을 닫았다.
 탁!
 그의 두 손은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큭······ 장철담······. 이 녀석······.”
 주첨은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두 눈을 감았다. 이수화는 주첨이 동요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명검에 감명을 받았다고 해도 이건 좀 심했다.
 이수화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주 사숙, 왜 그러십니까?”
 주첨은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안 된다. 이것은 안 된다.
 그는 자신을 타이르고 있었다.
 패룡검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격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화가 닥치는 법이다.
 주첨은 자신의 욕망을 억눌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총에게 패룡검을 건네주었다.
 운총은 담담하게 패룡검을 받아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휴, 다행이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 녀석도 나오지 않았고 말이야.’
 주첨은 패룡검을 운총에게 건네주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이수화에게 말했다.
 “수화, 운총을 매화당으로 데려가거라.”
 매화당은 입문하는 제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이수화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운총을 감원 제자로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주첨이 고개를 끄덕였다.
 “철담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 것 같구나. 운총을 일단 감원 제자로 받아 두겠다.”
 이수화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패룡검과 황보천
 
 
 
 운총의 입관이 결정된 그날 밤.
 주첨은 무당산에 올랐다. 이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첨은 무학관에 내려간 이래 장문 사백의 부름 없이 무당산에 오른 적이 없었다. 장철담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런 주첨이 향한 곳은 장철담의 숙소가 있는 남암궁이었다.
 그는 비탈진 길을 재빠르게 올라 남암궁에 도착했다.
 “삼 년 만인가?”
 남암궁의 현판이 선명하게 보였다.
 남암궁은 원 무종이 천을진경만수궁, 명 영락제가 대성남암궁이라는 칭호를 하사할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근처에는 진무대제가 신선이 되어 날아올랐다는 비선대가 있었다.
 이곳의 현재 주인은 무림오절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관자문, 관숙이었다.
 평소 왕래가 없던 두 사람이 남암궁 한편에 마주 앉았다.
 장철담의 얼굴에 여유 있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반면 주첨의 얼굴은 한겨울 철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주첨이었다.
 “철담, 무슨 속셈이지?”
 장철담이 대답했다.
 “이 사제는 사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첨이 미간을 좁혔다.
 “패룡검을 보았다.”
 패룡검이라는 말이 나오자 장철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주첨처럼 딱딱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방금 전과는 분명 느낌이 달랐다.
 “역시 패룡검이었습니까?”
 주첨이 마른침을 삼켰다.
 “확인도 안 해 본 건가?”
 “확인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주첨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어째서!”
 “운총의 눈에는 사악함이 없었습니다.”
 주첨이 혀를 찼다.
 “패룡검은 수백, 아니 수천 명의 피를 빤 검이다. 그 검을 쥔 자는 검마가 되어 무림을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장철담은 주첨의 말을 잘랐다. 그가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형, 그것은 과장된 소문입니다. 패룡검은 명검이긴 하지만, 그것을 쥔 자는 결코 검마가 되지 않았습니다. 운총이 그 사실을 증명해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 아이가 이성을 잃은 채 날뛰는 검마란 말입니까?”
 주첨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후우······ 후······ 철담 넌 모른다. 패룡검이 얼마나 무서운 검인지. 당장 장문 사백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장철담은 난간 밖 용수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에 젖은 용수석은 지난 수백 년간 무당을 지켜 온 수호신이었다. 오늘따라 용수석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장철담이 말했다.
 “장문께 알리는 것은 관 사숙이 돌아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까 합니다.”
 주첨이 멈칫했다.
 “설마 이번 일······ 관 사숙께서 지시한 것인가?”
 장철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는 않다니. 대체 무슨 말이 그러한가?”
 장철담이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패룡검의 주인이 관 사숙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이 바로 이 편지에 쓰여 있을 것입니다.”
 주첨은 지금이라도 당장 탁자 위에 놓인 편지를 뜯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무당태극검의 유일한 계승자인 관숙은 무림오절로 꼽히는 절대고수였다. 사형인 무당 장문인 백선운조차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엄청난 사숙에게 온 편지를 함부로 뜯어 볼 수는 없었다.
 “관 사숙은 지금 어디 계시지?”
 장철담이 대답했다.
 “반년 전 해남에 가셨으니, 곧 돌아오실 겁니다. 그때까지는 사형께서도 패룡검과 관련된 모든 것을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첨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알겠다. 패룡검은 비밀로 하지. 하지만 운총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건가?”
 “무학관에 입문했으니 무학관 제자로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른 척하란 말인가?”
 “관 사숙께서 오실 때까지만 기다리면 됩니다. 어차피 그 아이는 무당 제자가 될 것입니다. 남은 것은 누구의 제자가 되느냐 하는 것 정도인데, 이것은 그리 큰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주첨이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운총, 그 아이가 태풍을 몰아왔군. 설마 장문 사백과 관 사숙의 힘 싸움은 아니겠지? 무당파에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는 무당파 내에서 이뤄지는 힘 싸움에 말려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칫, 귀찮은 일에 휩쓸리고 말았어. 패룡검이라니.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름이야. 관 사숙께서 어서 돌아와 모든 것을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군.’
 주첨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 철담, 내가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여기서 말을 해 주게.”
 장철담이 편지를 갈무리하면서 말했다.
 “사형, 당분간은 그 아이를 곁에서 지켜 주십시오.”
 “그 아이를 감시하라는 건가? 아니면 말 그대로 지켜 달라는 말인가? 뭔가······ 그 아이에게 밝힐 수 없는 내력이 있는 것이겠지?”
 장철담이 아주 태연한 얼굴로 엄청난 이야기를 내뱉었다.
 “운총은 아마 황보천의 제자일 겁니다.”
 주첨의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황······보······천······!”
 장철담은 담담히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황보천은 패룡검의 마지막 주인이었습니다. 운총, 그 아이가 패룡검을 가지고 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첨이 얼굴 표정을 수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천의 제자가 왜 무당 제자가 되려 하는 것이지?”
 황보천.
 마교라 불리는 광명교의 대호법大護法으로 서천검마西天劒魔라 불리던 사내.
 그의 무공은 십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압도해 무림오절을 위협했다.
 그런 엄청난 스승을 두었다면 그 제자의 무공도 결코 약하지 않을 것이다.
 주첨은 그렇게 생각했다.
 장철담이 말했다.
 “제가 가진 이 편지, 그가 죽기 전에 쓴 것입니다. 절친했던 관 사숙에게 하나뿐인 제자를 맡기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주첨은 등골이 오싹했다.
 “큭, 황보천이라니. 기분 나쁜 일에 끼어들게 되었군.”
 이십 년 전 황보천은 마교 교주 단목패를 섬기고 있었다. 당시 그의 무공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십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위협했다. 교내에서도 교주인 단목패를 제외하면 단연 제일이었다.
 장철담의 눈이 매서워졌다.
 “정말로 마교와 관련되어 있다면 우리 선에서 끝날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마교가 처음부터 마교로 불린 것은 아니었다.
 마교의 원래 이름은 광명도원교로, 운남과 사천성 남부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토착 종교였다. 그러던 광명도원교가 마교가 된 것은 오십 년 전이었다.
 광명도원교의 교주 단천명은 자신의 무공을 믿고 동쪽으로 세력을 넓혔다.
 그러는 과정에서 광명도원교는 사마외도의 수법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이 때문에 광명도원교는 마교라 불리기 시작했다.
 단천명 다음 교주인 단목패는 한발 더 나아가 중원 제압을 목표로 했다.
 단목패의 무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중원의 이름난 고수들조차 그의 무공을 당해 내지 못했다.
 가공하다고 할 만한 무공이었다.
 단목패가 이끄는 마교가 서쪽에서부터 밀려오자 십대문파는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십대문파는 천릉에서 대연맹을 맺고 마교를 막기 위해 무림맹을 만들었다.
 무림맹과 마교.
 두 세력은 이십 년 전 중원 무림에서 처참한 전쟁을 벌였다.
 수백, 수천의 무림인이 죽어 갔다. 길고 참혹한 싸움이었다. 오 년을 싸웠지만, 무림맹도 마교도 승리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전쟁은 마교 교주 단목패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단목패는 십대문파와 싸우다 죽은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십대문파의 손에 죽었다면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으리라.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긴 전쟁에 지친 내부 세력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주첨이 무거운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철담, 나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네. 솔직하게 말해, 오늘 들은 것은 모두 맑은 바람으로 씻어 내 버리고 싶은 심정일세. 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장철담은 평소와 달리 남암궁 밖까지 나와 사형을 전송했다.
 “사형, 살펴 가십시오.”
 주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네도 잘 있게나.”
 주첨은 빠른 걸음으로 남암궁을 내려왔다.
 남암궁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주첨은 한숨을 내쉬었다.
 “철담 녀석도 이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눈치던데······ 관 사숙께서 정말로 다 처리해 주실까? 설마 다시 전쟁이 시작 되는 것은 아니겠지?”
 마교의 대호법이었던 황보천의 손에 죽은 십대문파 제자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무당파에서도 열여섯 명의 제자가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제자들 중에는 주첨과 친했던 사람도 몇 명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분노가 일지 않았다.
 분노보다는 오히려 공포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주첨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럴 일은 없다. 황보천이나 단목패는 죽었다. 남은 것은 무당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제자뿐이다.”
 장철담은 남암궁 난간에 서서 산을 내려가는 사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사형, 사형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그 아이는 무척 다루기 힘들 겁니다. 자칫 방심하면 사형마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아이는 황보천의 제자니까요.”
 
  * * *
 
 운총과 이수화는 무극전을 나와 매화당으로 향했다.
 이수화가 말했다.
 “그 검 뭔가 내력이 있는 모양이네.”
 “아저씨께서 남겨 주신 유일한 물건입니다.”
 “흠······ 그런 건가? 그 검신에 아저씨의 이름이 쓰여 있다든가, 그런 것일까? 그래서······ 주 사숙도 운총을 인정하게 된 것이고······.”
 운총은 검신에 단지 세 글자만 쓰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패룡검이라는 세 글자는 아저씨의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면 주 사부는 왜 날 허락한 것일까? 혹시 검에 살고 있는 녀석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 그는 무당 제자가 되기 위해 매화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매화당에 들어서자 한 청년이 다가왔다. 그는 막 다림질을 마친 깨끗한 흰옷을 입고 있었다. 이수화는 사내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문 사형.”
 사내는 이수화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사매.”
 운총은 사내가 이수화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흠······ 관심이 많은 눈치잖아. 두 사람은 꽤 친한 사이가 아닐까?’
 운총은 아저씨와 단둘이 살았기 때문에 남녀 관계에 관한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는 단지 사내가 이수화와 아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내는 이수화 뒤에 서 있는 운총을 발견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저 아이는 누구지?”
 이수화가 재빨리 운총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오늘 입관하게 될 제자입니다.”
 사내가 미소를 지었다.
 “아하, 그렇구나.”
 운총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반갑지 않은 건가?’
 아주 작은 용이 사내의 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가 아니란 뜻이었다.
 사내가 운총을 향해 말했다.
 “나는 매화당을 맡고 있는 문우청이라고 한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운총은 재빨리 포권을 취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문우청이 그의 포권을 받으면서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한다.”
 세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이수화가 문우청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죠?”
 “일단은 숙소가 있는 매화당으로 가야겠지.”
 “숙소라고요?”
 “입관식은 내일 해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늦었으니까.”
 “그렇군요.”
 문우청은 걸음을 옮기면서 운총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운총은 그가 자신을 거북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있어서 뭔가 하려는 말을 못 하고 있는 것 같군.’
 이수화는 그런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매화당 앞에 이르자 걸음을 멈췄다. 문우청이 고개를 돌렸다.
 “응?”
 그러자 이수화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서부터는 남자들 숙소잖아요.”
 문우청이 얼굴을 붉혔다.
 “아, 그렇지.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곧 돌아올 테니까.”
 문우청은 이수화가 기다리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아뇨. 여기 일을 처리하면 장 사숙께 명첩을 돌려 드려야 해요.”
 “명첩?”
 이수화가 품속에서 장철담의 명첩을 꺼내면서 말했다.
 “보세요. 진짜 장 사숙의 명첩이죠.”
 문우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명첩은 중요하지. 장 사숙께 명첩을 전해야 한다니 어쩔 수 없구나.”
 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문우청의 관심은 온통 이수화에게 쏠려 있었다. 그에게 새로 온 제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수화는 별반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문우청이 아닌 운총에게 쏠려 있었다.
 이수화가 운총을 가볍게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운총, 무당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운총이 남자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맡겨 주세요.”
 운총의 대답을 들은 문우청이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수화가 운총에게 보이는 관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체 무슨 관계지? 단순한 입문 제자와 무당 제자의 관계는 아닌 것 같군.’
 이수화는 운총을 놓아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에 봐.”
 문우청은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철렁했다. 방금 그 미소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매력적이었다.
 ‘원래 사매도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줄 아는구나. 그런데 왜 내게는 이런 미소를 보여 주지 않는 걸까.’
 이수화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곤 고개를 돌렸다.
 운총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느껴진다. 대체 왜?’
 잠시 뒤, 이수화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흠흠······.”
 이수화가 사라지자마자 문우청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지?”
 운총은 문우청에게 별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상대는 무학관의 사부였다. 그는 가능한 한 격식을 차려 말했다.
 “무한진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이 사자께서 절 여기까지 안내해 주셨지요.”
 문우청은 그가 격식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미간을 좁혔다.
 “겨우 그뿐이라고? 그런데 어째서 사매는 널 그렇게 감싸고도는 거지? 게다가 방금 그 미소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짓는 것이 아니었다.”
 운총은 멈칫했다.
 그도 약간 의문이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친절할까? 자신이 서 파파에게서 그녀를 구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먼저 몸을 날려 서 파파의 암기를 쳐 낸 것은 이수화였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문우청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사매가 이 녀석을? 그럴 리 없다. 이 녀석은 사매보다 훨씬 어리지 않은가? 하지만 여자가 항상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후······ 어린아이에게 질투를 하다니 한심하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어느덧 그의 마음에 질투심이란 이름의 꽃이 피어났다.
 터무니없는 질투였다.
 그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자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었다.
 문우청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질투심을 약간 덜어 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그는 운총을 보면 볼수록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운총, 무당 제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알고 있습니다. 네 번의 심사를 통과해야 입산 제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당연한 대답이었는데도 문우청은 기분이 나빠지고 말았다.
 그는 운총이 무당파를 무시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각 심사를 통과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렇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한 번에 통과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빨리 무당 제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운총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지만 문우청은 달리 생각했다.
 ‘뭐? 한 번에 통과하겠다고? 이 녀석 산이 얼마나 높고 물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군. 내가 무당파의 무공에 대해서 좀 알려 줘야 할 것 같군.’
 약간 혼을 내 준다.
 문우청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운총의 혈도를 찍어 몸을 마비시킬 생각이었다. 점혈 무공을 모르는 제자들은 이 신기한 수법에 크게 놀라곤 했다.
 문우청은 오른쪽 혈도를 따라 내력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는 패착이었다.
 운총은 문우청의 작은 용이 오른손을 타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용이 움직인다. 문 사부······ 설마, 나를 상대로 살수를 펼치려는 건가?’
 문우청은 오른손 식지를 뻗었다. 그는 아주 가벼운 공격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운총의 혈도를 찍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운총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문우청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위험하다. 살수다! 문 사부는 대체 왜 내 목숨을 노리는 걸까? 설마 서 파파처럼 가짜 무당 제자인 건가?’
 문우청은 무당파의 삼 대 제자답게 날카로운 일지를 뻗었다.
 운총은 그가 진짜 문 사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자가 불안해했던 것은 진짜 문 사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문 사부를 알고 있는 이 사자를 줄곧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가 아닌 가짜다.
 운총은 이렇게 가정하면 모든 것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얼굴은 아마 인피면구 같은 것으로 고쳤을 것이다. 목소리는 최대한 비슷하게 맞췄겠지.’
 상대가 가짜란 것을 알았으니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문우청의 손가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당파의 점혈 수법인 도선지道仙指는 문우청의 자랑이었다.
 문우청은 운총이 자신의 손가락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을 보았다. 그는 크게 놀랐다.
 ‘이 바보 같은 녀석! 도선지에 손이 닿으면 진짜로 다친단 말이다!’
 운총은 태연한 표정으로 문우청의 손가락을 잡았다.
 우려했던 내상 따위는 전혀 입지 않았다. 문우청은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런 조그만 녀석이 내 도선지를 막았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이건 꿈이다. 도선지는 이렇게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우청은 내력을 기울여 손가락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운총의 손은 쇠로 된 집게처럼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공격을 막은 것도 모자라 완벽히 손을 봉쇄하다니.
 문우청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 녀석······.”
 운총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가짜란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는 문우청의 무공이 자신 아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본색을 드러내 주마.’
 문우청이 미간을 좁혔다.
 ‘가짜? 이 녀석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 어린 녀석이 나보다 무공이 강한 거지?’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냉정하게 대처할 여유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사부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소년이 다른 문파의 밀정 또는 사파의 첩자라면?
 그렇다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한쪽 팔이 불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소년을 제압해야 한다.’
 문우청은 제압당한 오른손 대신 왼손을 써서 공격했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상대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무당파에 입문한 이래 처음으로 펼치는 살수.
 첫 살인이 어린 소년이라니.
 문우청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내력을 가득 담은 손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문우청은 상대를 쪼갤 듯 일장을 내리쳤다.
 “천량파석!”
 무당장법의 아홉 번째 초식인 천량파석千量破石.
 이 일격에는 당연히 십이 성의 힘이 실려 있었다.
 이수화나 도숙아였다면 감히 맞받아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총은 그의 일장을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도 문우청을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하합!”
 펑!
 장과 장이 마주치자 거친 타격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뒤로 밀려난 건 문우청이었다.
 “크윽······.”
 그는 밀려난 것은 물론, 꼴사납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기열이 끓어올라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우청은 눈을 치켜떴다.
 “괴물 같은 녀석······.”
 그는 말을 마치고는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쿨럭······.”
 문우청은 자신의 상처가 가볍지 않음을 알았다.
 ‘큭, 단 일격에 내상을 입은 건가? 이런 어린 녀석에게 무당산에서 십 년 이상 수련을 한 내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운총이 그의 얼굴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자! 진짜 얼굴을 보여라.”
 그는 문우청의 인피면구를 벗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우청은 가짜가 아니었다.
 운총이 힘을 쓰자 피부가 살짝 찢겨졌다.
 “으악······.”
 그는 문우청의 비명을 듣고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운총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짜가 아니다?”
 문우청이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하지. 내가 왜 가짜란 말이냐.”
 운총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전 가짜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먼저 손을 쓴 것은 그쪽입니다.”
 문우청이 씁쓸하게 웃었다.
 “후후후······ 그래 이쪽에서 먼저 손을 썼지. 그리고 형편없이 지고 말았지.”
 문우청이 입에 묻은 피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무당파에 입문하려는 것이냐? 말해라! 네 녀석은 다른 문파에서 온 첩자인 것이냐?
 운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첩자라니요. 아닙니다. 전 다만 아저씨의 유언에 따라 무당 제자가 되려는 것뿐입니다.”
 “아저씨?”
 “절 키워 주시고, 무공을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문우청은 그제야 운총이 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크······ 그런 건가? 다른 곳에서 무공을 배우고 왔기 때문에 강한 것이란 말인가?”
 멀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문우청은 일어서고 싶었다. 다른 제자들에게 못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어설 수 없었다. 기혈이 뒤틀려 버려 당분간은 휴식이 필요했다.
 “칫······.”
 그가 얼굴을 찡그린 사이 한 소년이 나타났다. 소년은 문우청이 피를 토한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달려왔다.
 “문 사부님!”
 문우청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청목이냐?”
 “예, 제자 청목입니다.”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구나.”
 청목은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청목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재빨리 말했다.
 “제자가 달려가서 다른 사부님들께 알리겠습니다.”
 문우청은 청목의 소매를 잡았다.
 “그럴 필요 없다.”
 “문 사부님······.”
 문우청은 시선을 운총에게 돌렸다.
 “청목아.”
 “네, 문 사부님.”
 “네 옆자리가 비었지?”
 “그렇습니다.”
 “그럼 저 아이를 네 방으로 데려가거라.”
 청목은 운총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새로 입문한 제자다. 저 아이를 데려가 다오. 나는 여기서 운기행공을 해야겠구나. 잠시 기혈이 뒤틀린 것이니. 운기행공을 하면 곧 나아질 것이다.”
 복도 한가운데서의 운기행공, 청목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사부의 말이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제자가 데려가겠습니다.”
 문우청은 운총에게 말했다.
 “청목을 따라가라. 네 입관식은 내일 아침 진행하겠다.”
 운총이 대단히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과는 그만 되었다. 어서 청목을 따라가거라.”
 운총은 생각했다.
 ‘문 사부는 대체 왜 날 공격한 것일까? 가짜 제자도 아니면서. 후······ 나중에 다시 사과를 하든지 해야겠어. 중상을 입혀 버렸으니. 저래서는 당분간 아무것도 못 할 거야.’
 청목이 운총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가자, 내가 안내해 줄게.”
 운총은 순순히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문우청은 복도에 앉은 채로 두 소년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무공을 펼칠 수 있는 거지? 나하고는 수련의 강도가 다른 건가?’
 문우청의 머릿속에서 이수화에 대한 질투심이나 건방지다는 생각은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솔직한 감정은 경악이었다.
 압도적인 실력과 그에 대한 공포가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문우청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는 이 한 동작으로 공포와 놀라움을 떨쳐 내려 했다.
 그러고는 자책했다.
 “후, 상대가 강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한 것이다. 한심하게······ 여자 생각이나 하고······ 그러니까 약해진 것이다. 더 이상 약해지지 않으려면 내일부터는 제대로 수련을 해야 한다. 제대로 좀 더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무당 제자로 설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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