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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슈퍼재벌 초신성 [E]

슈퍼재벌 초신성 1-1권

2018.10.17 조회 3,078 추천 9


 # 신비한 아이, 초신성
 
 시아버지는 얼굴을 붉히고 만삭의 몸인 며느리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몰아세우고 있었다.
 “너! 너! 너! 너 이제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아들 내외는 본가로 들어와 부모에 의지해 살고 있는 리터루족(Returoo族)이었다. 갈 곳이 없는 아들 내외를 앞에 앉혀놓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호통을 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바라보며 계속 소리쳤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잘나가던 내 자식 창창하던 앞길 다 망쳐놓더니, 이제 내 집까지 말아먹고 사업체까지 넘어가게 생겼으니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며느리는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시아버지의 호통을 듣고만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요즘 세상에 그런 말씀이 어디 있으세요? 다 내가 잘못해서,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일이라 이렇게 되어 버린 거라고요. 아버지도 아버지 일을 잘못 처리하셔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버지는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게 다 여자가 집에 잘못 들어와서 그런 게 아니고 뭐냐? 네 처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 이렇게 돼 버렸잖느냐. 이제 어쩔 거냐? 어쩔 거냐고!”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거들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녀는 며느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도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이혼을 하든지 이 집에서 나가든지, 선택을 해!”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저희 갈 데 없는 거 아시잖아요. 이 사람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드셔도 그렇지 손자를 임신한 사람한테 너무들 하시는 거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들에게 애원하듯 말을 이었다.
 “애기는 우리가 키우마. 우리를 위해서 좀 그렇게 해다오. 제발 부탁이다. 그동안 키워왔던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졌잖느냐. 이렇게 가다간 우리도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잖아!”
 며느리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무 말이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가 만삭인 배를 움켜잡으며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오빠. 나 배가 너무 아파. 악! 나 죽을 거 같아.”
 그녀는 남편의 손을 꼭 붙들며 남편에게 간신히 기대었다.
 “오빠! 오빠!”
 “주연아! 주연아!”
 그녀가 쓰러졌다. 남편은 연신 아내를 불러 보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앉아 있던 바닥에는 물이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어머나. 애기가 나오려나 보다. 진통인가 봐.”
 “양수가 터졌나 봐요.”
 “어서 병원으로 옮기거라. 어서!”
 어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호통을 치고 있는 중에 진통이 시작되어 미안한 눈치였다.
 
 아들은 아내를 양팔로 들고 아파트 현관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그는 낡은 소형 자동차에 아내를 태웠다.
 그녀는 다시 정신이 드는 눈치였다.
 “주연아, 괜찮아?”
 “오빠, 너무 아파. 이게 이렇게 아픈 건 줄 몰랐어.”
 “병원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주연아.”
 주연은 있는 힘껏 용을 쓰다가 소리를 질렀다.
 악!
 “오빠. 나 죽을 것 같아. 나 죽을 것만 같아.”
 악!
 주연은 비명과 함께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주연아! 주연아!”
 남편은 아내를 불러 보았지만, 아내에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주연은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약 한 시간 후,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보자기에 싼 한 아이를 안고 나왔다.
 “박주연 산모 보호자분 어디 계십니까?”
 “네. 제가 보호자인데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남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기의 두 눈은 유난히 똘망똘망 빛나고 있었다.
 “멋진 왕자님이 태어났습니다. 한번 안아 보세요.”
 “네.”
 그의 손은 떨렸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태어난 보물이라 더욱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아들을 가슴에 폭 안아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말을 걸어 보았다.
 ‘내가 네 아빠야. 반가워, 아들!’
 아이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그의 귀에는 아이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려왔다.
 ― 아빠! 제가 아빠를 지켜 드릴게요!
 그는 깜짝 놀랐다. 아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다.
 수술실 앞에는 어른 몇 명만 보일 뿐, 그런 목소리를 낼만한 아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놀란 표정으로 아기를 쳐다보았다.
 아기는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옆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무슨 소리 못 들으셨어요?”
 “네? 무슨 소리요?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요.”
 그는 고개를 돌려 다시 아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귀에는 다시 한번 아기의 소리가 또랑또랑 들려왔다.
 ― 제 이름은 초신성이에요. 저도 반가워요, 아빠!
 그는 깜짝 놀란 듯 다시 한번 눈을 동그랗게 말아 떴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방금 우리 아기가 하는 말 못 들었어요? 초신성이라고 하는 말 못 들었어요?”
 “초신성이요?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말을 해요?”
 간호사는 미간을 찡그리며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기 데리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서둘러 아기를 뺏어 안았다.
 “제왕절개 분만이라 저희가 케어할 게 좀 많거든요. 아기 보고 싶으시면 면회 시간 맞춰서 신생아 면회실로 가시면 됩니다.”
 간호사는 신성의 아빠를 다시 한번 이상하게 쳐다보고는 아기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신성의 아빠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라? 헛것이 들렸나? 뭐지? 분명히 들렸는데······. 초신성? 헛것이라도 이름은 괜찮네. 그래, 네 이름은 초신성이다. 내 아들 초신성!”
 신성의 아빠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며칠 후.
 아기의 할머니는 외출복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를 몰아세우던 그녀는 손자가 태어나자 빨리 가서 만나 보고 싶은 눈치였다. 외아들의 첫 손자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옆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은근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영감. 그래도 애를 낳았다는데 가서 한번 보기라도 합시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신문만 주시하며 말했다.
 “애 낳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거기까지 가서 보고 말고를 해? 퇴원하면 집으로 데리고 올 것을. 그때 보면 되지.”
 “그렇게 잘생긴 아들이랍니다. 안 가실 거요?”
 “제 에미를 닮아서 잘생기긴 했나보이.”
 “안 가면 나 혼자 가요.”
 “그래. 가서 그 잘났다는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그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들어 아내를 쳐다보며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집에서 나와 택시에 올랐다.
 
 노부부가 신생아 면회실로 들어서자 간호사가 물었다.
 “산모 이름 알려 주시면 아기 면회시켜 드리겠습니다.”
 “새아기 이름이 뭐였죠?”
 아기의 할머니가 물어보았지만, 아기의 할아버지도 며느리의 이름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뭐였더라··· 박가였는데······. 맞아! 박주연. 박주연이에요.”
 “네. 잠시만 기다리시면 왕자님 보여 드릴게요.”
 간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성을 안고 신생아 면회실 유리창 가까이 다가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기는 부드러운 검갈색 머리카락에 뽀얀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성이었다.
 신성은 창밖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노부부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을 벌린 채 아기를 바라보고 있던 신성의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게 말이에요, 여보.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우리 현우 어렸을 때랑 똑같이 생겼잖아. 이건 닮았다기보다 완전 똑같아.”
 “어쩜 저렇게 똑같이 생겼을 수가 있죠?”
 현우, 초현우는 신성의 아빠 이름이었다.
 노부부는 미동도 않고 아기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 그들은 신성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할아버지, 할머니. 너무 반가워요. 저 신성이에요, 초신성이요.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노부부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들었어?”
 “당신도 들었어요?”
 노부부는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신성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또랑또랑하게 들려왔다.
 ―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엄마, 아빠한테 사과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할아버지, 할머니 도와드릴게요.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기는 귀여운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기 시작했다.
 
 ***
 
 신성의 아빠는 신성의 엄마와 입원실에 같이 있었다.
 “수고했어. 너무 고마워, 주연아”
 “나도 고마워, 오빠.”
 “그래. 우리 아기 잘 키우자.”
 “응. 난 우리 아기 절대 포기 못 해. 꼭 내가 키울 거야.”
 “그래. 그때 어머니가 말씀하신 건 좀 심하셨어. 내가 사과할게.”
 “고마워, 오빠. 그런데 아기 이름은 지었어?”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신성이 어때? 초신성?”
 남편의 말을 들은 주연이 깜짝 놀랐다.
 “어? 초신성? 나도 지금 그 이름 말하려고 하고 있었어.”
 “정말? 우리 완전 통한 거야?”
 “오빠. 나 너무 신기한 일이 있었어.”
 현우는 눈을 한번 힘껏 깜빡였다. 자신에게 신기한 일이 있었기에, 아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눈에 힘을 주어 주연에게 물어보았다.
 “신기한 일?”
 “응. 제왕 절개 수술 때문에 마취해서 난 자고 있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지만, 너무 또렷하게 아기가 나한테 말을 하는 거야.”
 현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 정말?”
 “응! ‘엄마, 반가워요. 내 이름은 초신성이에요. 내가 엄마를 지켜 드릴게요.’하고 말하는 거야. 근데 오빠 왜 그렇게 놀라?”
 현우는 흥분한 듯 소리쳤다.
 “뭐라고? 너한테도 그랬어?”
 주연도 놀라는 눈치였다.
 누워있던 그녀는 배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럼, 뭐야? 오빠한테도 그랬단 말이야?”
 “어. 수술실 앞에서 아기 처음 안아봤을 때 나한테도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분명히 그랬거든. 자기 이름은 초신성이라고, 그리고 날 지켜 주겠다고.”
 “헐! 진짜야? 자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기가 오빠한테 그랬다고?”
 “그럼! 내가 왜 없는 말을 하냐? 아기가 입으로 말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난 분명히 들었어. ‘제 이름은 초신성이에요. 저도 반가워요, 아빠!’라고 하는 거. 그래서 나도 아이 이름을 초신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주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정말? 우리 아기 이상이 있는 거 아냐?”
 “나도 생각을 해 봤는데, 이상이 있으면 우리한테 이상이 있는 거 아니겠어? 아기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들었으니까. 게다가 정확하게 들리긴 했는데 귀로 들리는 것 같진 않았어. 뭔가 전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내 생각에는 우리한테 특별한 아기가 태어난 것 같아.”
 “그럼 내가 정말 복덩이를 낳은 거야?”
 “그런가 봐. 아무래도 보통 아기는 아닌 것 같지?”
 “응.”
 주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진짜 신성이 잘 키우자.”
 “응. 정말 신성이한테 최선을 다하자.”
 “그래, 오빠.”
 젊은 부부는 손을 잡은 채 미소를 짓고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똑똑.
 주연과 현우가 있는 입원실로 신성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어왔다.
 그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아들 내외를 바라보았다.
 신성의 할아버지가 먼저 신성의 엄마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얘야. 그동안 정말 미안했구나.”
 주연은 고개를 돌린 채 여전히 아무 표정 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신성의 할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내가 너한테 정말 몹쓸 말도 많이 하고······. 너무 미안하구나.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맙구나.”
 그녀는 고개를 들어 신성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차례로 쳐다보았다.
 “알겠어요. 어머니. 그리고 아버님.”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주연과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식구 똘똘 뭉쳐서 열심히 살아 보자꾸나.”
 “정말요?”
 “그럼! 현우 너는 내일 나랑 같이 출근하자꾸나.”
 “네?”
 “내 일을 좀 도와!”
 “정말요, 아버지?”
 “그래.”
 “아버지. 그동안 속만 썩여 드렸는데······. 정말 열심히 해 볼게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모두를 바라보며 중요한 발표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자. 내 손주의 이름은 신성이라고 할 것이다. 초신성. 이의 없지?”
 신성의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현우는 아버지에게 살며시 물어보았다.
 “혹시 아버지도 신성이한테 들으셨어요?”
 신성의 할머니가 대답을 이었다.
 “너도 들었어?”
 주연은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도 들으셨어요?”
 신성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들었니? 아, 참. 우리한테 들렸으니 신성이 목소리가 너희들한테도 들리는 게 당연하겠구나.”
 신성의 할머니는 남편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왜 당연해요?”
 “얘들은 우리보다 가까워. 신성이 부모잖아.”
 “하긴 그렇네요.”
 신성의 할머니는 현우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애가 좀 이상이 있는 게 아니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
 주연은 신성의 할머니를 무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이상이라뇨. 이상이 있으면 아기 목소리가 들리는 우리한테 이상이 있는 게 맞지 않아요?”
 신성의 할머니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게 다가왔다.
 “하긴, 그렇긴 그렇지······.”
 신성의 할아버지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복덩이가 태어났나 봐. 태어나자마자 우리에게 말소리를 들려주잖아.”
 신성의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정말 그럴까요?”
 주연이 말을 이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아버님. 우리 신성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 태몽도 그랬었거든요.”
 “태몽? 아가 너 태몽도 꿨었니?”
 “네.”
 “그런데 왜 얘길 안 했어?”
 “그동안 그럴 기회가 없었잖아요.”
 “그래. 어떤 태몽이었느냐?”
 신성의 할아버지가 묻자, 신성의 엄마는 잠시 입술을 눌렀다. 그리고 진지하게 태몽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
 
 주연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달도 숨어버린 칠흑 같은 밤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매던 그녀는 이리 긁히고 저리 찢겨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땅바닥에 쓰러진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와 앉았다.
 그녀는 힘없이 읊조렸다.
 “정말 예쁘다. 하늘의 별들은 나와 정말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어.”
 그녀는 생각했다.
 ‘맞아. 별에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지?’
 가시덤불 속에 쓰러진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그녀는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고 있는 별 하나를 바라보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별님, 아름다운 별님. 이 고통 속에서 저를 구해 주세요. 저도 별님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 주세요.”
 그녀의 간절한 기도는 노랫소리처럼 울려 퍼져 별빛에 가 닿았다.
 그 별은 점점 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고, 온 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리고 하얀 별에서 빛줄기 하나가 내려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빛줄기는 그녀의 앞에서 뭉쳐져 더욱 환하게 빛났다.
 그 빛은 주연의 앞에서 말을 걸었다.
 ― 저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셨죠? 그래서 제가 찾아왔어요. 저를 불러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 빛은 그녀 가까이 다가가더니,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님. 별님. 어디로 가셨어요? 별님.”
 그녀가 애타게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곧 주연의 몸은 점점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연은 그 빛으로 어둠을 헤쳐 나가 왕궁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그녀의 몸을 본 문지기들은 무릎을 꿇어 그녀를 맞이했다.
 그러자 거대한 왕궁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하게 걸어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
 
 태몽을 듣고 있던 신성의 할머니는 주연을 바라보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것참 신기한 일이구나. 어쩜 그런 꿈을 꿨니?”
 신성의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 꿈은 보통 꿈이 아닌 것 같구나. 일단 우리 가족만 아는 것으로 하자꾸나. 태몽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
 “네. 아버님.”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는 걸 듣기만 했는데, 우리 집에 그런 아이가 태어나다니, 너무 신기해요.”
 신성의 할머니가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기들이 태어날 때 몸에 특이한 것들이 생길 수도 있고 특별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다 크면서 없어지는 것이더구나. 너무 걱정은 말거라.”
 “네, 어머니.”
 신성의 엄마는 아무런 표정 없이 대답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멋쩍은 듯 손을 올려 시계를 보았다.
 “우리 복덩이 한 번 더 보고 가고 싶은데 면회 시간이······.”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아기 부모한테는 하루에 한 번 시간에 관계없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저희랑 같이 가서 보세요.”
 “그래? 그러면 가서 한 번 더 보자꾸나.”
 신성의 부모와 조부모는 신생아실로 향했다.
 
 그들은 신생아 면회실로 들어섰다.
 신생아실의 간호사가 주연과 현우를 알아봤는지, 미소를 짓고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오셨어요?”
 간호사는 신성이 누워있는 침대를 끌고 유리창 앞으로 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아 가족에게 보여 주었다.
 “어머. 보면 볼수록 신기해. 현우 너 어렸을 때랑 어쩜 이렇게 똑같이 생겼다니.”
 “맞아요. 내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그래. 그렇다니까.”
 주연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간호사가 아기를 데리고 유리창 앞으로 조금 더 다가와 주었다.
 찰칵.
 주연은 신성의 사진을 찍었다.
 신성이 하품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성의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휴. 저 쪼그만 것이 하품한다. 너무 귀여워.”
 주연이 휴대폰을 덮자, 그녀는 신성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 엄마. 다시 찍어요. 다시 한 번 더 찍어 봐요.
 주연은 휴대폰을 열어 다시 면회실 유리창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신성이 방긋방긋 웃기 시작했다.
 주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사진을 찍었다.
 신성의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현우를 한 번 더 쳐다보며 말했다.
 “어쩜 저렇게 웃는 모습도 예쁘니? 현우 너 태어났을 때 웃는 모습이랑 똑같구나.”
 “정말요?”
 “그럼.”
 신성의 할아버지는 주연에게 말했다.
 “정말 잘했다, 아가.”
 “감사해요, 아버님.”
 ― 할아버지! 할아버지!
 신성의 할아버지에게 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아기를 쳐다보았다.
 “응?”
 신성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 할아버지. 내일 계약할 때 우리 아빠도 데리고 가세요. 꼭이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주연에게 물었다.
 “너도 금방 들었니?”
 “어떤 거요, 아버님?”
 “금방 애기가 나한테 한 말 말이다.”
 “아뇨.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아기를 쳐다보았다.
 신성은 여전히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현우에게 신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빠!
 “어?”
 현우는 면회실 유리창 가까이 몸을 바짝 붙였다.
 ― 아빠. 내일 계약할 일이 있으면 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계약 꼭 성사시키세요. 꼭이요.
 “어? 계약?”
 ― 네. 꼭이요.
 “그래. 알았어.”
 현우가 대답하자, 신성은 해맑게 웃으며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병원 입구를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며 쉽지 않은 말을 꺼냈다.
 “저도 저렇게 조그마했을 텐데······. 엄마, 아버지. 정말 감사해요.”
 현우의 눈에선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현우의 어머니는 현우의 손을 잡았다.
 “너도 이제 철이 드는구나. 아기 낳으니까 이제 부모 마음이 어떤지 알겠지?”
 “부모 마음은 다 그런 거야. 신성이 잘 키워.”
 “네. 엄마.”
 그때 신성의 할아버지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초지훈 사장님 되십니까?
 “네. 그런데 누구십니까?”
 ― 프라임피자에 공급지원서 내셨죠?
 “아. 네. 예전에 낸 적이 있습니다만······.”
 ― 저는 이번에 계약을 맡은 김태진 대리입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 사장님께서 내주신 공급지원서를 검토한 결과 적합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놀란 듯, 그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그는 전화에 대고 대답을 이어갔다.
 “아, 정말요? 이거 감사합니다.”
 ― 그래서 계약을 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면 내일 저희 회사로 방문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네. 가야죠. 가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내일 프라임빌딩 9층 프라임피자 사업지원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김태진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내일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는 신성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 할아버지. 내일 계약할 때 우리 아빠도 데리고 가세요. 꼭이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내일 프라임피자에서 계약을 하자는구나.”
 “잘됐네요, 아버지. 아버지가 원하시던 거잖아요.”
 “그래. 내일 계약하는 데 너도 같이 좀 가자꾸나.”
 “저도요? 정말요, 아버지?”
 현우는 놀랐다.
 없는 자식으로 치겠다며 항상 자신을 무시하고 질책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 늦지 말고 시간 잘 맞춰서 와. 운전 조심하고.”
 “네. 아버지.”
 “그럼 우린 이만 가 보마.”
 “애 엄마 옆에서 잘 챙기고.”
 “네. 걱정 마세요.”
 “먼저 들어가.”
 “네.”
 현우의 모습이 병원 안으로 사라지자, 노부부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자신생아 면회실에서 간호사는 주연에게 아기를 건네주었다.
 “네. 맞아요, 어머님. 너무 완벽하게 아기를 안으세요. 경험 있으신가 봐요.”
 “아뇨. 처음이에요.”
 “너무 자연스럽게 잘하고 계세요.”
 “네. 너무 좋은데요.”
 “아기를 자주 안아주는 게 정서발달에 많은 도움이 된대요.”
 “네. 감사해요.”
 간호사가 모자신생아 면회실을 나가자, 주연은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성은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엄마와 눈을 맞추었다.
 그러자 주연의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엄마. 울지 마요. 저도 너무 좋아요.
 주연은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엄마한테 와 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
 ― 네. 엄마. 제가 엄마 꿈, 꼭 이룰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정말이야? 그런데 엄마는 벌써 신성이하고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걸?”
 ― 정말이에요, 엄마. 제가 꼭 엄마 꿈을 이룰 수 있게 해 드릴 거예요.
 “그래. 고마워. 건강하게 잘 자라야 해.”
 ― 네. 엄마.
 신성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다.
 
 ***
 
 다음 날.
 현우와 신성의 할아버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신성의 할아버지가 현우에게 물었다.
 “차는 어쩌고?”
 “또 고장이요. 카센터에 맡겼어요.”
 “나를 도와달라고는 했지만, 너도 이제 제대로 된 일 찾아서 자리 잡아야지. 그래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해야지. 아버지 말 무슨 뜻인 줄 알지?”
 “네. 아버지. 신성이까지 태어났으니 이제 정말 제대로 해야죠.”
 신성의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현우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우리 집에 복덩이가 태어난 게 틀림이 없는 것 같구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어젯밤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프라임피자에서 나한테 전화를 해서 계약을 한다고 하는지······. 믿을 수가 없지 않느냐.”
 신성의 할아버지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
 
 신성의 할아버지는 식자재사업을 크게 하고 있었다. 인근을 포함해 시내 대부분의 구내식당과 점포에 납품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선식품 중 일부에서 잔류농약이 기준치의 0.01%만큼 가까이 검출되었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에서 납품 중단을 통보해 왔다.
 하지만 신성의 할아버지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프라임피자에 공급계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임피자에 공급이 시작되면 전국적으로 식자재를 납품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납품하고 있는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큰 계약이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계약서에 사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차를 타고 프라임피자 본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 프라임피자, 김태진입니다.
 “네. 지금 본사로 가고 있습니다. 15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 아뇨.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깜짝 놀란 듯했다.
 “오늘 계약하기로 해놓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 잔류농약이 검출되었다면서요?
 “잔류농약이 검출된 게 아니라,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검사항목 중에 기준치가 있는데 그걸 넘어서진 않았습니다.”
 ― 그럼 기준치 가까이 나왔다는 건 문제가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어쨌든 오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계약을 취소하신다고요?”
 ― 아직 계약이 된 건 아니잖습니까. 이건 계약취소도 아닌 거죠. 그저 청약철회일 뿐입니다.
 무시하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가 직원의 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네? 청약철회요?”
 ― 네. 그런 것도 모르면서 사업하시는 거예요? 저희는 청약철회 고지해 드렸습니다.
 “뭐라고요? 고지만 하면 다예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는 이미 끊겨있었다.
 그때부터 신성의 할아버지가 하던 잘나가던 사업이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그 모든 것이 집안에 사람을 잘못 들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현우와 주연의 결혼 시기가 사업이 주저앉은 시기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신성의 조부모는 주연을 구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현우가 옆에 앉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좀 그렇긴 하죠. 프라임피자에서 먼저 전화를 하다니······. 저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것도 신성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됐다는 게 정말 신기할 따름이에요.”
 현우의 대답이 끝나자, 듣고 있던 택시 기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기는 아무렇게나 오는 게 아닌가 보더라고요.”
 “네?”
 “저도 손자 봤는데, 그러고 나서 이 택시 받았잖아요. 개인택시요.”
 신성이 할아버지가 되물었다.
 “그러셨어요?”
 “그럼요. 그 전에는 아무리 요놈의 딱지 하나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되지 않던 것이, 떡두꺼비 같은 손자 놈이 태어나더니 그냥 받을 수 있었어요. 참 신기하죠?”
 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아버지랑 같이 계약을 하러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신성이가 그렇게 말하든?”
 “어떤 말이요, 아버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현우와 신성의 할아버지는 택시에서 내려 프라임빌딩으로 들어섰다.
 신성의 할아버지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직원이 다가왔다. 그리고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습니까. 사장님.”
 신성의 할아버지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거 오랜만입니다.”
 프라임피자 직원은 신성의 할아버지, 현우와 차례로 악수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는 신성의 할아버지와 현우를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담당자와 같이 오겠습니다.”
 직원은 문을 닫고 나갔다.
 현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우리 상황도 있고 하니 어떻게든 계약이 되도록 해야지. 저번 같은 일은 있어서는 안 될 텐데······.”
 “너무 걱정 마세요. 잘될 것 같아요.”
 “그래. 그래야지.”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았다.
 사고만 치던 아들이었던지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어느덧 장성한 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식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정말 마음이 편안한 것이 나쁘지 않군!’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흡족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직원과 함께 담당자가 들어왔다.
 직원은 계약서를 신성의 할아버지와 현우 앞으로 한 부씩 내밀었다.
 “저번 계약서와 거의 동일하고 바뀐 부분은 연필로 체크해뒀으니 확인해 보세요.”
 신성의 할아버지는 천천히 계약서를 읽어 내려갔다.
 현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미동도 않은 채 계약서만 읽고 있었다.
 직원들은 서류를 뒤적거리며 계약서에 체크를 하고 있었다.
 현우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그늘이 세상 어떤 그늘보다 크다고 하더니, 이제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나도 신성이한테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우도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신성의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계약서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감정이 실렸는지 너무 세게 내려놓아 ‘쿵’하고 소리가 났다.
 직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신성의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프라임피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건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게 대놓고 갑질하겠다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그는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까지 분출하며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계약서의 연필로 동그라미가 쳐진 너무 터무니없는 조항을 읽고선 발끈했던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계약을 거절당했던 적이 있는 곳이라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현우는 테이블 밑으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는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며 눈을 끔뻑였다. 진정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자신이 얘기해 보겠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러자 신성의 할아버지는 목을 가다듬듯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현우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프라임피자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마지막에 ‘갑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만 조금 순화해서 고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대로 두더라도 이 부분은 불공정계약으로 효력이 없을 것 같거든요. ‘갑과 을은 계약해지에 관하여 언제든 협의할 수 있고, 합의에 따르기로 한다.’ 이렇게 순화해서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만 고칠 수 있으면 바로 계약하겠습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다시 고개를 돌려 현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신을 대신해 나서는 모습이 대견했으리라.
 계약서를 보며 잠시 생각을 하던 담당자는 고개를 들어 현우를 쳐다보았다.
 “그것보다 저희가 걱정하는 부분은 납품량을 항상 잘 맞춰 주셔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러지 못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해지되겠지만, 또 저희 판매량에 바로 영향을 주게 되거든요. 항상 모자라지 않게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현우는 자신 있게 대답을 이어갔다.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가공해서 매일 신선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저희가 계속해오던 일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담당자는 못 미더운 눈초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저번처럼 식자재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아야 해요. 물론 잔류농약이 기준치를 넘지는 않았지만, 먹거리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현우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입니다. 그때 있었던 일을 교훈 삼아 더 철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세척단계를 2단계에서 4단계로 늘렸고, 세척하는 단계에서도 농약 성분을 제거하는 천연세정제를 이용하여 잔류농약이 검출되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현우를 바라보며 외쳤다.
 “좋아요! 그렇게 계약하기로 합시다.”
 담당자는 옆에 있는 김태진 대리를 쳐다보았다.
 “김태진 대리님.”
 “네. 이 과장님.”
 “그렇게 고치고 다시 출력해서 도장만 받으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네.”
 프라임피자 직원들이 회의실을 나가자,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번 잔류농약 검출 건은 너무 억울하잖아. 기준치를 넘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건 너무 억울했어.”
 “맞아요. 그런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셨잖아요. 그때 잘 넘기셨어요, 아버지.”
 “저번보다 계약조건이 많이 바뀌었어. 이렇게 계약하면 저번보다 이문이 확 줄어들잖아.”
 “아버지. 지금 프라임피자 체인 가맹점이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어요. 아마 지금 덩치를 키우고 있는 것 같아요. 거기에 우리 회사가 납품하면 엄청난 양을 공급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럭저럭 괜찮은 이윤은 남길 수 있을 거예요. 이렇게라도 돼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신성이 말 듣길 잘했어요.”
 “신성이가 뭐라고 했어?”
 “오늘 꼭 계약을 성사시키라고 했거든요.”
 “신성이가 그랬어? 어제 나한테는 너를 꼭 데리고 가라고 그러더구나.”
 “정말요, 아버지? 신성이 녀석 정말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아요. 신성이를 한번 믿어 보자고요.”
 문이 열리자, 김 대리가 들어왔다.
 그는 가까이 걸어와 회사 도장이 깔끔하게 찍힌 계약서를 신성의 할아버지 앞에 내려놓았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계약서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서명을 하고는 도장집을 꺼내 들었다.
 현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신성의 할아버지는 현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점잖게 말을 이었다.
 “그래요. 그렇게 하도록 해요.”
 현우는 계약서 첫 장부터 차례로 계인과 간인을 하며 도장을 찍어나갔다.
 
 
 # 파란 별이 된 신성
 
 7년 후.
 반짝이는 갈색 커트 머리에 웨이브 파마를 한 꼬마가 주연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신성이었다.
 주연은 신성과 함께 ‘마음 클리닉’이라고 적혀 있는 정신과 병원으로 들어섰다.
 약 한 시간 뒤.
 신성은 뇌파검사실을 나와 진료대기실에 있는 주연에게 뛰어왔다.
 “다 끝났어?”
 신성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주연에게 말했다.
 “엄마! 여기 완전 이상해요. 어서 가요.”
 “왜 그래, 신성아. 왜?”
 “마음을 수치로 측정할 수 있대. 아, 완전 어이없어.”
 “응?”
 “어서 가요, 엄마.”
 신성은 주연의 손을 끌고 병원을 나와 버렸다.
 
 신성과 주연은 병원을 나와 택시에 올랐다.
 주연은 신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성아, 괜찮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신성이 주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 괜찮아요.”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에요. 별일 없었어요. 근데, 엄마.”
 “응, 얘기해.”
 “우리 이사 가면 안 돼요?”
 “응? 이사? 갑자기 이사는 왜?”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이사 가면 저 전학 가게 되잖아요.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응?”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신성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도 초등학생이니?”
 “아뇨. 유치원생인데요.”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주연을 한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부모 모르게 아이가 민감해서 그럴 수 있어요. 우리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이가 엄청 울어대더라고요. 그런데 우연찮게 그때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사를 하자마자 울음을 딱 그치더라고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니까요.”
 주연은 택시 기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부터 해 보셔야죠. 우리 아이는 지금 병원에서 검사받고 오는 길이에요.”
 “그렇죠? 아마, 그때 우리 아들 검사해 봤으면 귀가 아주 예민하다고 그랬을 것 같아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전에 살던 집에 우리가 모르던 소음이 있었더라고요.”
 “소음이요? 층간소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뇨. 보일러 소음이었어요.”
 “보일러 소음이요?”
 “네. 나하고 우리 아내는 모르고 살았는데, 보일러 소음이 아기한테는 너무 잘 들렸나 봐요. 귀가 예민하던 그 아들이 지금은 악기 제작하면서 먹고 살잖아요.”
 “아, 그러시구나.”
 신성은 주연을 시무룩하게 쳐다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애들이 재건축 단지에 산다고 엄청 놀린단 말이에요. 엄마. 이사 가요. 제발요.”
 “어디로 이사를 가잔 말이니? 안 돼.”
 택시 기사가 말을 이었다.
 “요즘 재건축 아파트 말이 많죠? 그런데 재건축 아파트 붐이 확 꺼져 버려서, 원······. 그래서 그런지 우리 손자 녀석도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린다고 이사 가자고 아주 난리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유치원생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나 봅니다. 유치원생까지 그런 걸로 놀림을 받으니까요.”
 주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죠? 아무래도 사는 곳을 기준으로 학군도 나누고, 갈 수 있는 학교도 정해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출신 학교가 인생을 결정하던 시대가 언젠데, 아직도 지역으로 학교를 나누고 학교로 애들을 나누는 건지······.”
 “또 그것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학교에 따라 학생들 학력 차가 제법 많은 것 같더라고요.”
 “학력 차요?”
 “네. 극단적인 예로 산골의 폐교 예정된 초등학교 분교에 다니는 애들하고, 서울 한복판에서 밤 12시까지 학원 다니고 개인교습 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애들 학력이 같을 순 없으니까요.”
 “그렇게 놓고 보면 또 그렇네요. 그래도 재건축 예정 아파트에서 나오기 쉽지 않잖아요. 되면 로또나 다름없는 거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저흰 시부모님 댁에 살고 있어서······.”
 주연이 고개를 돌려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성은 주연과 택시 기사가 얘기를 나누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성이 입을 열었다.
 “엄마.”
 “왜 그래?”
 “우리 녹평으로 이사 가면 안 돼요?
 “응? 녹평?”
 “네.”
 택시 기사는 룸미러로 주연과 신성의 눈치를 살폈다.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만 같아, 택시 기사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주연이 말을 이었다.
 “그 시골로 이사를 가잔 말이야?”
 “네, 엄마. 이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안 돼!”
 주연은 단호했다.
 “왜요?”
 “하여튼 거긴 안 돼. 갑자기 녹평은 또 왜 녹평이야? 너 녹평이 어딘지나 알고 얘기하는 거야?”
 “엄마! 그러지 말고요. 거기가 정말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신성아. 거기 완전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어. 허허벌판이야. 거길 가서 어떻게 산단 말이니? 게다가 집도 없고, 거기가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집 살 돈도 없어.”
 신성은 살며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집은 걱정하지 마요. 내가 다 준비할게요.”
 주연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뭐라고? 집을 준비한다고?”
 “네.”
 신성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아. 네가 어떻게 집을 준비해? 그리고 서울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살 수 있니? 서울 벗어나면 사람이 살 수가 없어. 백화점이 있길 해, 문화 공간이 있길 해, 그렇다고 교통이 좋아······. 엄만 이사 못 가!”
 “엄마―!”
 신성은 엄마에게 애교를 부려 보았다. 그건 신성에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주연은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 돼! 못 해!”
 주연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신성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번져갔다.
 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나도 정말 집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서 살고 싶다. 우리 식구 셋이서 살아 본 적이 없잖아.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그런데 신성이 네가 어떻게 집을 준비하니? 말이 안 되지. 마음만이라도 너무 고마워, 신성아.
 그녀는 미소를 짓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몇 주 뒤.
 뒷좌석에 주연과 신성을 태운 현우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차 안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다.
 해는 서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에 걸려 하루의 마지막을 황홀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현우의 차는 논도 밭도 없는 비포장 길을 먼지를 일으키며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주연이 신성을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신성아. 여길 꼭 와서 봐야 알겠어? 엄마가 여기 아무것도 없다고 그랬지? 이제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더 할 말 없지?”
 “엄마, 잠깐만요.”
 “왜 또?”
 “외할머니가 사 놓으신 땅 정확히 어디예요?”
 “그건 또 왜?”
 “한번 보고 싶어서요.”
 주연은 귀찮은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신성아― 여기 상태 보면 모르겠어? 거기 가 봐야 별 볼 것도 없어. 더 안쪽이라 여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진짜 아무것도 없어.”
 “더 안쪽이요?”
 신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차가 향하는 맞은편에도 야트막한 산이 하나 보였다.
 “그럼 저 앞에 있는 산에서 가까워요?”
 주연은 손바닥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아마 저 일대가 모두 외할머니가 산 땅일걸.”
 현우는 깜짝 놀란 듯했다. 그는 룸미러로 주연을 한번 쳐다보고는 물었다.
 “어? 저 일대?”
 “응. 왜?”
 “저렇게 넓은 땅을? 제법 비쌀 것 같은데?”
 “완전 오래전에 사둔 거라 그때는 여기 땅 얼마 하지도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럼 지금은 땅값만 해도 엄청 올랐을 거 아니야. 제곱미터 당 십만 원만 잡아도, 못해도 몇십억은 될 것 같은데?”
 “그러게······. 그래도 지나온 세월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제법 많이 올랐겠지? 땅값은 거의 내리진 않잖아. 매년 조금씩 오르지. 아, 근데 이 비포장 길을 계속 가야 해?”
 그녀는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성아. 이제 그만하고 가자. 여기 아무것도 없고, 허허벌판인 거 봤잖아. 이사 올 수 없다는 거 확인했잖아. 해도 이제 거의 다 졌는데, 그냥 가자. 크리스마스이브에 이게 뭐야?”
 신성은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전 그 땅을 밟아보고 싶은데요.”
 주연은 신성의 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달래듯 신성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땅을 왜? 땅 밟아서 뭐 하려고? 눈으로 볼 땐 가까워 보여도 도로가 포장이 안 돼 있어서 한참 가야 된단 말이야. 하필이면 이렇게 늦게 가자고 그래가지고. 오늘 크리스마스이브잖아.”
 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 여보. 크리스마스도 좋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신성이 말대로 땅을 밟아보기라도 하자. 몸도 좀 풀 겸.”
 신성은 주연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2 대 1이니까, 가는 거 맞죠?”
 현우는 룸미러로 주연의 눈치를 살폈다.
 주연은 도끼눈을 뜨고 현우를 노려보았다.
 현우는 주연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돌려 버렸다.
 
 현우는 차를 세우고 기어를 ‘P’로 바꾸었다.
 “자, 이제 다 왔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와 앉아 있었다.
 신성은 안전벨트를 풀고 주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뾰로통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신성을 바라보며 새침하게 대답했다.
 “왜?”
 “같이 내려요, 네?”
 “엄만 차 안에 있을래. 아빠랑 둘이 가서 보고 와.”
 “엄마도 같이요. 네?”
 “그래. 당신도 잠시 내려서 좀 둘러보는 게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었잖아.”
 “여기 볼 게 뭐가 있다고!”
 신성은 주연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미소를 짓고 말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도 같이요. 아빠랑 엄마랑 나, 이렇게 가족이잖아요. 네?”
 신성은 손으로 주연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어머, 얘가 왜 이래.”
 주연의 얼굴에선 웃음이 방긋 튀어나왔다.
 “그래, 알았어. 엄마가 져 준다.”
 “우리 엄마 최고!”
 주연은 안전벨트를 풀어 내릴 준비를 하였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며 말했다.
 “나오니까 공기도 맑은 것 같고 좋긴 좋네.”
 현우가 말을 이었다.
 “여기 참 한적한 것 같다. 여기 산에서부터 저 앞까지 연결되는 도로가 있으면, 집 하나 짓고 살기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주연은 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느 세월에?”
 “그렇지?”
 “아마 그렇게 되려면 못해도 강산이 세 번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영영 그럴 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환경보호, 도시발전억제 그런 것 때문에 개발 안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게 말이야. 엄마는 이런 데다 왜 땅을 사 놓으셨는지 모르겠어.”
 “혹시 모르잖아. 서울 외곽이니까 나중에 아웃렛 단지 들어서거나 신도시가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면 완전 대박 터지는 거잖아.”
 “진짜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되겠지.”
 주연은 주위를 빙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여기는 좀 아닌 것 같아.”
 “왜?”
 “저기 산은 어떡할 거며, 여기 황무지 같은 이 땅은 어떡할 거야? 그리고 서울 외곽이긴 해도 접근성이 좀 떨어지잖아.”
 “그래, 그건 좀 그래.”
 주연은 고개를 돌려 신성을 바라보았다. 신성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뭐 하고 있어? 땅 둘러본다고 하지 않았어?”
 신성은 고개를 돌려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고 있는 중이에요.”
 신성은 산과 땅 그리고 하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한테는 집 준비해 놓는다고 그래 놓고선. 신성이 너······.”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신성이를 째려보았다.
 “환경이 이러니까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지. 엄마가 이번에는 봐줄게. 와서 보니까 이제 알겠지? 엄마가 왜 이사 안 된다고 한지?”
 현우가 주연에게 물었다.
 “신성이가 집을 준비한다고 그랬다고?”
 “그러게 말이야. 가끔 힘들 때 신성이가 우리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그랬었잖아. 그래서 나는 또 이쪽이 개발이 돼서 덩실한 집이라도 하나 사 놓고 그런 말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그랬어?”
 주연과 현우는 하늘을 쳐다보는 신성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해는 저물어 주변에 노을이 아주 옅게 깔렸다.
 서쪽 하늘에 초승달이 나타났고, 그 옆에 노을 사이로 개밥바라기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내 깜깜해진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펼쳐졌다.
 하늘에 나타난 별들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아름답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현우와 주연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와! 여기 진짜 장난 아니다.”
 “정말. 진짜 별 너무 예쁜 것 같아. 어머! 당신 봤어? 금방 별똥별 떨어진 거?”
 “어? 어디?”
 “저기 말이야.”
 “신성아. 넌 봤니?”
 ······.
 주연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현우가 불러 보았다.
 “신성아. 초신성?”
 ······.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불빛 하나 없는 그곳은 갑자기 깜깜해져 버렸다.
 그곳에 깔린 암흑은 신성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신성이 어디 간 거야? 신성아! 신성아!”
 “여보, 저기!”
 현우가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주연이 고개를 돌려보았다.
 조금 전 신성이 있던 곳에서 조그만 파란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현우는 파란 불빛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
 “어머. 저게 뭐야? 무슨 빛이야? 신성아, 초신성?”
 주연과 현우는 신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엄마. 아빠. 차에 들어가 계세요. 빨리요.
 “응? 그럼 넌?”
 ― 잠깐만요. 전 별들이랑 볼일이 좀 있어요.
 파란 불빛은 이글거리더니 점점 커지며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연은 파란 불빛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였다.
 그때 현우가 주연의 손을 잡았다.
 “여보. 신성이가 차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잖아. 당신도 신성이 목소리 들었지?”
 “응. 그런데 애를 깜깜한 여기 놔두고 어떻게 차 안에만 있어? 안 그래?”
 현우와 주연은 다시 신성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 엄마, 아빠. 빨리요. 시간이 없어요. 때를 잘 맞춰야 해요.
 현우는 주연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서. 신성이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를 여기 혼자 두고······. 난 엄마란 말이야.”
 현우는 주연에게 진중하게 물었다.
 “난 신성이 믿는데, 당신도 신성이 믿지?”
 주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우리 아들인데 우리가 안 믿으면 누가 믿어?”
 현우는 주연을 이끌고 차에 올랐다.
 
 조그맣게 빛나던 파란빛은 이글거리며 점점 커져 신성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중심에 있던 파란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연은 파란 불빛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여보! 신성이야. 우리 신성이잖아.”
 “그래, 맞아. 신성이하고 완전 비슷해.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파란 불빛처럼 보일 수 있는 거야?”
 “지금 그게 문제야? 애를 저렇게 혼자 두면 안 되잖아. 이렇게 캄캄한 밤에 그것도 허허벌판에 혼자 두면 안 되잖아. 빨리 데리고 와야지.”
 주연은 몸을 돌려 차에서 내리려고 하였다.
 그때 현우가 주연의 팔을 잡았다.
 “신성이가 차 안에 있으라고 했잖아. 나도 빨리 데려오고 싶어.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 당신도 알고 있잖아.”
 주연은 현우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지금은 아니지. 저러다 어떻게 될 줄 알고? 절대 아니야. 지금은 절대 아니야. 나 신성이 데리러 갈래.”
 주연은 차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어? 이거 왜 이러지? 왜 차 문이 열리지 않지?”
 그녀는 잠금장치를 잠갔다가 다시 풀어 손잡이를 당겨 보았다.
 “여보, 이상해. 문이 열리지 않아.”
 “여보, 저기! 저기 좀 봐!”
 현우는 파란 불빛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응? 어디?”
 신성의 형상을 한 파란 불빛은 현우와 주연을 향해 몸을 돌렸다.
 주연과 현우는 다시 신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엄마. 아빠. 절대 차에서 나오시면 안 돼요. 어떤 일이 있어도 차에서 기다리셔야 해요. 꼭이요.
 신성의 형상을 한 파란 불빛의 머리 부분, 두 눈이 있을 만한 곳에 하얀 별빛이 반짝이다 사라졌다.
 현우와 주연은 파란 불빛이 신성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주연이 현우에게 소리쳤다.
 “여보. 우리 신성이 맞지? 우리 신성이 확실하지?”
 “그래. 맞아. 우리 신성이 맞아.”
 “어떡해야 하지? 신성이 저렇게 두면 안 되는 거잖아. 저러다 무슨 일 생길까 봐 너무 겁나.”
 “우리 신성이 믿고 기다려 보자. 신성이도 기다리라고 하잖아.”
 파란 불빛은 산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성의 형상을 한 파란 불빛은 점점 조그맣게 변하면서도 더욱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연은 손으로 입을 막다 말고 말했다.
 “여보. 신성이 모습이 사라졌어. 어떻게 된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현우는 아내의 질문에 대답도,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록 파란 불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이었지만,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는 앞에서 이글거리는 파란 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글거리는 파란 불빛은 계속해서 작아졌다. 하지만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더 영롱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암흑 속에 있는 파란 불빛은 마치 까만 하늘에서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는 하나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파란색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던 별빛은 점점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우가 소리쳤다.
 “여보! 저기!”
 “어? 저 빛 왜 저래? 우리 신성이 맞지? 신성이 맞는 거지? 나 나가야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야겠어.”
 주연은 차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나도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저러다 우리 신성이 잘못되면······.”
 현우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손잡이를 잡고 당겨 보았다. 하지만 그들을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공중으로 솟아오른 파란 별빛에서는 이미 투명한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하얀빛은 현우의 차를 온전히 비추고 있었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은 현우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앗! 이거 왜 이렇게 차가워.”
 “문이 열리지 않아. 어떻게 된 거야?”
 차 앞창에 하얀 성에가 끼기 시작하더니, 차 겉면을 완전히 얼려 버렸다.
 현우와 주연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너무 춥다. 겨울이긴 해도 오늘 날씨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오늘 좀 따뜻한 편이었잖아. 갑자기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추운 거지?”
 “그래, 꼭 갑자기 냉동고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근데 우리 신성이는? 신성이는 어떻게 된 거야?”
 주연은 파란 불빛만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추우니까 시동 걸어서 히터부터 좀 켜자.”
 현우는 시동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차에 시동이 걸리려고 하다가 꺼져 버렸다.
 “어? 이거 왜 이러지?”
 현우는 다시 한번 시동 버튼을 눌러 보았다.
 차에서는 시동을 거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이거 고장 났나 봐. 어떡하지?”
 주연은 옷깃을 여미며 창밖에 떠오른 파란 불빛만 응시했다.
 그때 파란 불빛에서는 반짝이는 분홍빛이 새어 나왔다. 그 분홍빛은 하얀빛이 감싸고 있었다.
 반짝이는 분홍빛은 하얀빛과 함께 현우의 차에 가서 닿았다. 그리고 분홍빛만 창문을 통해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차 앞 유리창에 있는 성에가 녹기 시작했다.
 현우는 차 안으로 비춰 들어오는 분홍색 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점점 따뜻해지는데! 저 분홍빛이 따뜻하게 해 주는 것 같아.”
 주연은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앗, 차가워. 왜 이렇게 문이 안 열리는 거야?”
 “아무래도 문이 얼어붙은 것 같아.”
 “그런데 차 안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잖아.”
 “내 생각엔 아무래도 신성이가 우리를 위해서 따뜻한 빛을 쏘아 주고 있는 것 같아!”
 현우와 주연은 고개를 들어 다시 파란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신성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 엄마. 아빠. 절대 차에서 나오시면 안 돼요.
 주연이 소리쳤다.
 “신성아, 어디 있어? 어떻게 된 거야?”
 “신성아. 괜찮지? 아빠가 도와줄까?”
 ― 엄마.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괜찮아요.
 주연은 울먹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괜찮은 거야? 네가 보이지도 않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신성은 웃음소리를 내고는 말을 이었다.
 ― 엄마, 아빠를 위해서 선물 드리려고요. 제가 집 준비한다고 그랬잖아요.
 주연은 소리쳤다.
 “신성아. 엄마한테 장난치지 말고 빨리 와. 엄마는 집 필요 없어. 엄마는 그냥 신성이만 있으면 돼. 신성아!”
 ― 엄마! 아빠! 잠깐 다녀올게요. 잠시면 돼요.
 현우가 물었다.
 “어디 간다고? 어딜 가는데?”
 현우와 주연은 신성의 웃음소리만 느낄 수 있었다.
 
 공중에 솟아오른 파란 불빛은 더욱 영롱한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 파란 불빛은 빛의 궤적을 남기며 점점 더 높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연은 소리쳤다.
 “신성아, 안 돼. 안 돼, 신성아. 가지 마.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다 잘못했어. 가지 마.”
 현우는 주연의 두 팔을 붙들었다.
 궤적을 남기며 높이 올라간 파란 불빛은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파란 불빛은 하늘의 수많은 별 중,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파란 불빛은 반짝이는 파란 별이 되어 다른 별들과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다.
 현우와 주연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뭐야? 금방 하늘로 올라간 거 뭐야? 우리 신성이 맞아? 신성이 맞지?”
 하늘을 바라보는 주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맞네. 우리 아들 신성이 맞네. 하늘에서도 제일 가운데에서 가장 예쁘게 빛나고 있네.”
 현우는 손가락을 뻗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 좀 봐. 하늘에서······.”
 주연도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로 올라간 파란 별 가장 가까운 곳에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는 별이 하나 있었다. 파란 별은 그 초록색 별에 하얀 빛줄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하얀 빛줄기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별을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초록색으로 바꾸어놓았다.
 “정말 예쁘다. 우리 신성이 하늘에 올라가서도 저렇게 다른 친구들을 예쁘게 밝혀 주는 거야?”
 주연은 눈물을 흘리며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파란 별빛은 주변의 별들에 하얀빛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파란 별빛에서 하얀빛을 전해 받은 별들은 주변의 별에 하얀빛을 보내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바꿔놓았다.
 주연은 계속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계속 하얀빛이 번져가. 너무 아름답지 않아?”
 현우도 하늘에서 일어나는 별빛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보. 연결된 별들이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응? 어떻게?”
 그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듯 별을 연결해 보았다.
 “이렇게, 이렇게 보면 거북이 같지 않아? 여기가 머리고 여기가 몸통 그리고 이쪽이 꼬리.”
 “어? 정말 그러네. 정말 거북이가 밤하늘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같이 보여.”
 “어? 저건 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밤하늘에 반짝이는 거북이에서 찬란한 빛이 피어나더니 현우와 주연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하양, 파랑, 초록, 노랑, 빨강, 보라, 분홍, 주황, 검정, 금빛, 은빛으로 온갖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 빛들은 오로라가 한들거리듯 바뀌기도 하고 겹치기도 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지면에서 시작된 파란빛 궤적의 시작점에서는 영롱한 파란빛이 나타나더니 더욱 밝아졌다.
 파란빛은 하늘에서 내려온 여러 가지 빛과 만나 공중에서 별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별꽃들은 지면에 내려 앉아 눈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짝이는 고유한 그 빛은 잃지 않았다.
 별꽃이 많이 쌓인 곳은 곧 투명한 하얀색이 되어 빛나기 시작했다.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왜 저래? 저기 장모님 땅 한가운데잖아.”
 “그러게 어떻게 저기부터 저렇게 쌓이기 시작하지? 그런데 별 모양 눈 색깔이 꼭 보석 색 같아.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자수정이랑 비슷하지 않아?”
 “맞아. 우리가 흔히 보는 그런 색이랑은 다른 것 같아.”
 “게다가 별 모양 눈이 바닥에 쌓이니까 생긴 게 꼭 다이아몬드랑 비슷하게 생겼잖아. 색깔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우리 신성이는 어디 간 거야? 파란 불빛이 다시 밝혀진 게 신성인 거야, 아니면 하늘로 올라간 게 신성인 거야? 애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현우는 호기롭게 말하기 시작했다.
 “난 우리 신성이 믿어. 신성이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잖아. 난 파란 불빛이 우리 신성이든, 하늘로 올라간 게 우리 신성이든, 하늘에 있는 파란 별이 신성이든, 그 셋 다 신성이가 아니든, 우리 신성이 꼭 돌아올 거라고 확신해.”
 주연은 현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 우리 신성이 잃어버리면? 우리 신성이 다치거나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책임질 거냐고?”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차에 성에도 끼고, 손잡이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밖은 완전 추운 것 같지 않아? 그런데 차의 시동을 켜지도 않았는데, 저 파란 불빛에서 밝은 빛이 차 안으로 들어와서 우린 전혀 춥지 않잖아.”
 “그게 우리 신성이 없어진 거랑 무슨 상관인데?”
 현우는 파란 불빛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우리 신성이 믿어. 우리 신성이가 우리를 이렇게 지켜 주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이럴 수가 없는 일이잖아. 당신 신성이가 한 말 기억나?”
 “어떤 거?”
 “신성이가 태어나면서 우릴 지켜 준다고 그랬잖아. 기억 안 나?”
 “기억나.”
 “당신 신성이 못 믿어?”
 주연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당연히 믿지. 우리 아들인데 당연히 믿지. 그런데 애가 없어져서 너무 걱정되니까 그렇지.”
 주연도 고개를 들어 창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별꽃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별꽃이 쌓인 곳은 어떤 물질보다 투명했으며 마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별꽃은 앞에 있는 산을 가릴 만큼 높이 쌓여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꽃산은 마치 하나의 보석처럼 보이기도 했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는 아주 크고 투명한 하얀 별꽃이 살며시 내려와 앉았다.
 
 주연은 어느새 입을 벌리고 별꽃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어. 주연아.”
 별꽃산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현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신비로운 그 광경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저거··· 우리가 보고 있는 거··· 저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도대체 저게 뭐지?”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마치 아주 큰 보석을 보는 것만 같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세상에서 가장 큰 보석······.”
 “그렇지? 내 생각도 비슷해. 우리 지금, 세상에서 가장 큰 보석 앞에 서 있는 거야?”
 주연은 고개를 내밀어 파란빛의 궤적을 따라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여전히 파란빛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별은 유난히 밝았으며 아름다웠다.
 “여보. 우리 신성이는? 우리 신성이는 어떻게 된 거지?”
 현우도 고개를 내밀어 파란빛의 궤적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진짜 예쁘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지?”
 주연은 현우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우리 아들 예쁘다고. 아름답다고.”
 “지금 말 다했어? 그럼 오빤 저 별이 우리 신성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현우는 차분하게 주연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주연아. 오빠 말 오해하지 말고 잘 들어. 난 저 별이 우리 신성이라고 생각해. 우리 신서······.”
 “그만해!”
 주연은 현우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눈을 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생각이라고, 내 생각. 잘 봐. 아까 파란 불빛이 신성이 같았던 거 기억나지? 파란 불빛이 저 별처럼 작아지면서 아주 밝아졌잖아. 그리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거 너도 나랑 같이 봤잖아.”
 “그만해! 그만하라고!”
 주연은 소리를 질러 버렸다.
 “저게 신성이면, 하늘에 있는 저 별이 신성이면, 우리 신성이 이제 못 본다는 거잖아!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잖아!”
 주연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현우는 주연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를 들어 별이 반짝이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 대저택의 출현
 
 주연은 어깨를 토닥이는 현우에게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신성이가 파란빛으로 변해서 하늘로 올라간 거 맞잖아. 나도 다 확인했잖아. 내 두 눈으로 다 확인했잖아. 오빠 말이 다 맞잖아. 이제 우리 신성이 못 보는 거잖아.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거잖아.”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냐.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아. 신성이가 한 말 기억나?”
 주연은 울음을 그치고 두 손으로 눈에 번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현우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 거?”
 “신성이가 분명히 그랬잖아. 곧 돌아온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그랬잖아.”
 주연은 다시 울먹이며 말했다.
 “애가 없어졌잖아. 신성이가 사라져 버렸잖아. 신성이가 사라져 버렸는데, 애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모르잖아. 그런데 부모로서 어떻게 기다리고 있어? 빨리 찾아야 할 것 아니야.”
 주연은 차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밀어 보았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현우는 주연의 팔을 잡았다.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신성이 돌아온다고 했잖아. 돌아올 거야. 꼭 돌아올 거야. 신성이 믿지?”
 “당연히 믿지. 우리가 신성이를 믿지 않으면 누가 신성이를 믿겠어? 당연히 믿지.”
 현우는 주연의 어깨를 감싸 안아 끌어당겼다.
 그러자 주연은 현우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은 자신만의 색을 발하며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파란빛의 궤적 끝에 걸린 파란 별은 유난히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었다.
 주연과 현우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파란빛의 궤적과 연결된 파란 별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거북이처럼 연결된 별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별똥별이 하나 떨어졌다.
 현우는 별똥별이 떨어진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보. 별똥별! 어? 별똥별 나도 보이네. 금방 봤어? 별똥별 떨어지는 거?”
 현우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주연은 조수석 쪽으로 몸을 옮기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현우의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 별똥별?”
 주연은 하늘에 있는 파란 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파란 별이 무사한지 확인한 것이다.
 그 별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현우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여보! 지금 별똥별이 중요해?”
 현우는 당황스러운 듯했다.
 “응? 안 보이던 별똥별이 아까 보였어. 나도 별똥별을 봤다고.”
 “지금 신성이가 없어졌는데, 별똥별 본 게 중요해? 그깟 별똥별이 뭔데? 지금 애가 없어졌잖아! 난 신성이가 떨어지는 건 줄 알고 엄청 놀랐단 말이야.”
 “아······. 어······.”
 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우가 소리쳤다.
 “여보, 저기!”
 그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어 거북이 모양을 내는 빛이 더욱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옅어져 거북이 모양은 사라져 버렸다.
 “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신성인? 신성이는?”
 밤하늘을 헤엄치던 거북이는 사라졌지만, 그들은 파란 별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지면에서 연결된 파란빛의 궤적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현우가 파란빛의 궤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보. 걱정 마. 저 파란빛을 따라가면 우리 신성이 바로 찾을 수 있잖아. 우리 신성이 저기 있네. 저기서 아직도 반짝이고 있네.”
 “난 우리 신성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그래도 우리 놓지 않으려고, 우리가 찾아볼 수 있게 저렇게 끈을 만들어 놨나 봐. 우리 신성이 참 기특해. 그치?”
 “그러게 말이야. 우리 신성이 참··· 기트윽······. 여보! 여보!”
 현우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여보! 저기 파란빛! 파란빛!”
 주연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파란빛을 내던 궤적은 지면으로부터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내 그 궤적은 파란빛의 별이 연결된 곳까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주연은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안 돼! 신성아, 안 돼!”
 현우는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라지는 파란빛의 궤적을 따라가 그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현우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신성이 보여? 하늘에 신성이 보여?”
 주연도 파란빛을 내는 별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까만 하늘에 가득한 별과 섞여 있는 파란 별은 다른 별들과 비슷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안 보여.”
 그녀는 침착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현우가 말을 이었다.
 “저 별이 신성이 같기도 하고, 저 별이 신성이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헷갈리지? 저쪽에 있었던 건 맞지? 확실하지?”
 주연은 하늘만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주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보, 괜찮아? 주연아, 괜찮니?”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는 울림이 큰 명상 음악 같은 것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현우는 그녀의 팔을 잡아 흔들어 보았다.
 “주연아, 주연아!”
 그녀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힘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 어떤 게 신성인지 모르겠어. 신성이가 사라졌어. 신성이가 사라져 버렸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현우를 바라보았다.
 “오빠. 신성이가 없어졌어. 신성이가 없어졌다고.”
 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도 상기되기 시작했다.
 주연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오빠, 어떡해? 나 이제 어떻게 살아? 신성이 없이 어떻게 살아? 나 신성이 없으면 못 살아. 오빠는 살 수 있어? 신성이 없이 살 수 있어?”
 현우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나도 못 살아. 신성이 없이 어떻게 살아? 난 못 살아. 난 못 산다고.”
 주연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때 주연의 옆에 있던 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조금 열렸다.
 주연은 손잡이를 잡고 힘껏 문을 밀어 보았다.
 차 문이 열렸고, 그녀는 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산처럼 쌓여 있는 별꽃은 그녀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현우도 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주연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신성아! 신성아! 초신성!”
 그녀는 힘이 빠진 듯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연아, 괜찮아?”
 그들의 입에서는 하얀 김이 나왔다.
 “여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어서 들어가자. 차에 어서 들어가자.”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와? 신성이 좀 불러 봐. 신성이 들을 수 있게 신성이 좀 불러봐.”
 현우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힘껏 외쳤다.
 “신성아! 초신성! 어디 갔어? 야, 초신성!”
 하늘에는 있는 별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아름다운 빛들만 발하고 있었다.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이러고 있다가 감기 들어. 어서 들어가자. 어서.”
 그는 주연을 부축해 차 가까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연은 현우의 팔을 뿌리치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목청껏 소리쳤다.
 “신성아! 초신성! 신성아!”
 그녀는 울부짖고 있었다.
 그 소리는 하늘에 닿을 만큼 크고 깊게 울려 퍼졌다.
 그때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점점 빛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분명 파란빛으로 빛나던 그 별이었다.
 주연과 현우는 그 별이 신성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별은 순간 밤하늘을 온통 하얗게 밝혀 내었다.
 그 파란 별은 파란 불빛의 궤적을 그리며 주연과 현우의 앞에 있는 별꽃산 꼭대기로 떨어져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꽃산은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했기에 주연과 현우는 별꽃산 속에서 파란빛을 내는 그 별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별꽃산의 표면은 매서운 겨울 개울이 얼어붙어 개울 바닥을 감추듯 점점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속에 담아둔 파란 별을 감추는 듯했다.
 결국 주연과 현우는 더 이상 파란 별을 볼 수 없었다.
 주연은 현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우리 신성이 맞지? 오빠! 우리 신성이 확실하지?”
 “맞아. 그런 것 같아. 하늘에서 파란 별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거 너도 봤지?”
 “맞아. 확실히 봤어.”
 주연은 별꽃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안 보여? 이제 왜 안 보이는 거야?”
 주연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신성이! 우리 신성이!”
 주연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별꽃산을 향해 몇 걸음을 옮겼다.
 현우는 주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가지 마. 너무 춥잖아. 차에 들어가자.”
 별꽃산에 가까워진 그녀는 그 상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현우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주연아! 여보!”
 현우는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별꽃산에서 퍼져나가는 한기로 그 주변은 점점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현우는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갔다.
 “어? 여긴 왜 이렇게 따뜻하지?”
 차 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현우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주연이 얼어 버린 거야? 죽은 거야? 진짜 죽은 거야?”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차 안은 왜 이렇게 따뜻해?”
 별꽃산에 쌓인 빨간 별에서 빨간빛이 새어 나와 현우의 차 안까지 비춰 주고 있었다.
 현우는 별꽃산에 있는 빨간 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빛은 또 뭐야? 맞아! 그래서 신성이가 차 안에 있으라고 그랬던 거야? 신성이는 어디 갔어? 주연이는 어떡하지?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현우는 눈에 힘을 주어 주연과 별꽃산을 쳐다보았다.
 그때 별꽃산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별꽃산에 쌓인 별들은 제각각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공중으로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같은 빛을 내는 별끼리 만나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금빛, 은빛, 검정빛의 별들은 서로 어우러져 도로를 깔고 바닥의 토대를 다졌다. 그리고 집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속으로 하양, 파랑, 초록, 노랑, 빨강, 보라, 분홍, 주황빛 등의 별들이 스며들었다.
 그 빛들은 집 형태의 곳곳으로 들어가 자신의 빛을 점점 밝게 비춰 내기 시작했다.
 그 빛들로 인해 집의 형태가 더욱 완전해지기 시작했다.
 별들이 모여 집의 지붕을 연결시켰고, 건물의 외곽이 덮였다.
 파란빛을 내는 별 하나는 집이 만들어지고 있는 장소 앞에 내려앉아 분수대 모양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집의 형태를 갖춘 별들은 더욱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빛으로 인해 새로 나타난 집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별꽃산은 하나의 완전한 저택으로 바뀌어 버렸다.
 현우는 그 광경을 오롯이 지켜보고 있었다.
 “맙소사! 내가 지금 본 게 뭐야? 지금 내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분명히 별 모양 보석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잖아. 그것도 믿지 못할 일인데, 이건 또 뭐야? 그 별들이 집 한 채를 만들어 놓은 거잖아. 저기 저 파란빛은 뭐지?”
 저택의 중앙 현관에서는 파란 불빛이 비춰 나오고 있었다.
 
 현우는 별처럼 반짝이는 저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맞다! 신성이! 신성이가 집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지? 직접 준비한다고······. 그럼 지금 이걸 신성이가 다 준비했단 말이야?”
 현우는 녹평으로 오는 차 안에서 주연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 신성이가 집을 준비한다고 그랬다고?
 ― 그러게 말이야. 가끔 힘들 때 신성이가 우리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그랬었잖아. 그래서 나는 또 이쪽이 개발이 돼서 덩실한 집이라도 하나 사 놓고 그런 말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현우는 저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집이 신성이가 만든 거라고? 에이, 말도 안 돼. 그런데 신성이는 어디로 간 거야? 파란 별은 별꽃산 안으로 들어가 버렸잖아.”
 현우는 중앙 현관과 분수대 사이에 얼어붙은 주연을 바라보았다.
 “주연이는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진짜 추워져서 언 것 같긴 한데, 설마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그런데 여기 차 안은 왜 이렇게 계속 따뜻해?”
 마지막으로 남은 빨간 별 하나는 여전히 현우의 차를 비춰 주고 있었다. 그 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빨간 별에서는 또 다른 빨간빛이 새어 나와 저택의 꽃밭과 정원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꽃밭에는 일제히 싹이 돋아나더니 곧 꽃이 피어났고, 키가 큰 나무가 자라났다. 그리고 정원에는 싹이 트더니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자라났고, 곧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어? 저렇게 꽃이랑 나무랑 자라는 거면, 이제 밖이 춥지 않다는 얘기잖아. 그럼 주연이는 아직 왜 저러고 있는 거야?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나가 볼까?”
 현우는 문을 열어 보았다.
 “이거 왜 안 열리는 거야? 뭐가 잘못된 거지?”
 그는 다시 문을 힘껏 밀어 보았다.
 “뭐야? 얼어붙은 거야?”
 그는 시동 버튼을 눌러 보았다. 여전히 차의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그냥 얼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건지, 고장이 나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건지, 원······.”
 그때 저택의 중앙 현관에서 파란빛이 나타나 밝아지기 시작했다.
 
 파란 별은 중앙 로비에 둥둥 떠올라 있었다. 그 별은 이글거리는 아이의 형상으로 바뀌었고, 곧 신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신성은 중앙 로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한번 둘러볼까?”
 신성의 두 눈에서 파란 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파란 별에서는 파란 광선이 나왔다.
 신성은 몸을 돌려 집 전체를 둘러보았다.
 신성의 눈에 있던 파란 별과 거기서 나오던 파란 광선은 곧 사라져 버렸다.
 “집도 이 정도면 튼튼하게 잘 지어진 것 같네! 그럼 집 밖도 한번 훑어볼까?”
 신성은 중앙 현관으로 걸어 나갔다.
 
 현우는 신성이 중앙 현관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 저거 신성이잖아. 신성이 맞지? 신성아! 신성아!”
 신성의 모습이 보이자, 현우는 소리를 크게 질렀다.
 “신성아!”
 현우는 문을 가리키며 신성에게 말했다.
 “문이 안 열려! 왜 문이 안 열려?”
 신성의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잠깐만요!”
 신성은 중앙 현관 앞에 얼어붙은 주연을 바라보았다.
 현우는 신성이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 주연이한테 걸어가네. 안 되는데······. 신성이 충격받는 건 아니겠지? 신성이 괜찮으려나?”
 신성은 엄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얼어붙은 주연의 앞에 선 신성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슬픔에 잠겨 있는 듯했다.
 신성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 그래. 신성아. 엄마 왜 이래? 엄마 움직일 수가 없어. 그리고 너무 추워.
 신성은 엄마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마는 왜 절 믿지 않으셨어요?”
 ― 엄만 신성이 믿어. 엄마가 우리 신성이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어? 안 그래?
 “엄마는 말로만 그렇게 얘기했지 진심으로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잖아요.”
 ― 그게 무슨 말이야, 신성아. 응? 그런데 엄마 왜 움직일 수가 없어?
 “그건 엄마가 진심으로 절 믿지 않으셔서 그래요.”
 ― 응? 진심으로 널 믿지 않아서 그렇다고?
 “네. 엄만 말로만 절 믿는다고 하시고,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고 계속 의심하고 계셨잖아요.”
 ― 언제? 엄마가 언제 그랬어?
 “제가 잠시 다녀온다고 그랬을 때도, 제 궤적이 사라졌을 때도, 차 안에서 기다리라고 한 것도, 엄마는 믿지 않으셨잖아요.”
 ― 그건 당연하지. 자식이 없어졌는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어디 있어? 안 그래?
 신성은 주연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엄마. 자식이 없어져서 그리워하며 찾는 것과 자식을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엄마가 절 진심으로 믿으셨다면, 그리워하기는 하셨겠지만 제가 온전히 돌아온다고 믿으셨을 거예요. 그러셨다면 엄마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 응? 그럼 엄마가 이렇게 된 게, 엄마가 널 믿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라고?
 “네. 맞아요. 제가 없는 동안 진심으로 절 믿으시고,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잘 돌보고 계셨어야 했어요. 나중에 다시 만날 그 시간을 위해서요. 진심으로 절 믿으셨다면 엄마가 이렇게 얼어붙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엄마가 저를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건 진심으로 저를 위한 게 아니에요. 진심으로 저를 위하신다면 엄마는 엄마 스스로의 시간을 지키셔야 해요. 엄마의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엄마의 인생이니까요. 그러면 저도 정말 진심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엄마가 진심으로 저를 믿을 수 있을 때,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온전히 사실 수 있을 때 엄마는 마법에서 풀려날 수 있을 거예요.”
 ― 응? 마법?
 “네. 별의 마법이요.”
 주연은 깊은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성이 태어난 전후의 주연의 삶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신성이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님, 남편, 그리고 일······.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신성이 태어난 뒤, 주연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자신에게 맞추어져 있던 이전의 모든 것은 신성을 중심으로 바뀌었고, 주연도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게 하기에, 엄마와 아빠도 나에게 그렇게 했기에,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돌려 보려고 부단히 노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맑은 눈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신성의 얼굴을 볼 때면 그 생각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곳에는 어느새 신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현우는 답답한 나머지 신성에게 손짓을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신성아!”
 신성은 고개를 돌려 차를 비추고 있는 빨간 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자 빨간 별은 차 외부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차 문은 덜컥 열렸고, 현우는 차에서 내렸다.
 “아, 추워. 오늘 왜 이렇게 추운 거지?”
 그는 옷깃을 여미며, 신성의 곁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현우는 신성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신성아. 너 어떻게 된 거야? 괜찮아?”
 “네, 아빠. 전 괜찮아요.”
 현우는 고개를 돌려 주연을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주연을 바라보며 신성에게 물어보았다.
 “신성아. 설마 엄마 죽은 건 아니지?”
 “돌아가시긴요. 지금 저랑 이렇게 얘기하고 계시잖아요.”
 “얘기?”
 “네. 아빠는 들리지 않으실지 몰라요.”
 “너랑 엄마랑 얘기하는데 왜 아빠는 안 들려?”
 주연과 현우는 신성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 중요한 건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소리로 들을 수도 없어요. 오직 마음으로만 알 수 있어요.
 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 맞아. 마음으로······. 음······.”
 현우는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했다.
 주연은 신성의 목소리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 엄마.
 ― 그래. 신성아. 엄마 어떻게 해야 하지?
 ― 전 엄마가 벌써 알고 계신 것 같은걸요!
 ― 응? 어떻게?
 ― 엄마가 진심으로 제가 말한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자동으로 마법은 풀릴 거예요. 그리고 별이 도와주기 시작할 거예요.
 ― 음······. 엄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 널 진심으로 믿고, 널 위해서는 널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 맞니?
 현우는 신성과 주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얼어붙은 주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빨간 별은 얼어붙은 주연의 몸에도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얗게 얼어붙은 주연의 몸은 심장부터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현우가 주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보! 괜찮아? 주연아! 괜찮니?”
 주연은 서서히 몸이 풀리고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응, 괜찮아. 신성이. 신성이.”
 신성은 고개를 들어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괜찮아요?”
 주연은 신성을 보자마자 꽉 끌어안았다.
 “그러는 게 어디 있어, 이 바보야. 엄마 너무 걱정했잖아.”
 신성은 방긋 웃으며 주연을 감싸 주었다.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 여기 있잖아요, 엄마.”
 주연은 신성의 어깨를 잡고 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이 바보야. 어떤 부모가 자식 내버려두고 자기 인생 살겠다고 하겠니? 부모에게 자식은 자기 인생이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거야.”
 주연은 다시 신성을 꽉 안아 버렸다.
 그러자 현우도 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신성아. 엄마 말이 맞아. 부모는 자식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아.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도 자식을 살려내는 게 부모니까.”
 “아, 그런가? 그래서 이상했어요. 분명히 빨간 별만 엄마를 녹일 수 있었는데, 엄마 가슴이 벌써 엄마를 녹여내고 있어서요.”
 현우는 미소를 짓고 신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그건 사랑일걸. 신성이에 대한 엄마의 뜨거운 사랑으로 그 얼음보다 차가운 한기를 녹여냈을 거야. 사랑은 그 무엇보다 따뜻한 법이니까. 그렇지, 여보?”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따뜻해지더라고. 아무래도 신성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
 주연은 신성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아들! 약속 지켜 줘서 너무 고마워.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네. 엄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해요.”
 주연의 두 눈엔 신성의 뒤로 펼쳐진 저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연은 저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아무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집이 어떻게 생긴 거야?”
 신성은 고개를 들어 주연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한테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집 준비한다고요.”
 “응?”
 주연은 고개를 숙여 신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성은 엄마의 손을 잡았다.
 주연은 신성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신성아. 이거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신성은 엄마를 바라보며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의 힘을 이용했어요. 오늘 밤이 정말 좋은 때였어요. 별들이 조금씩 움직여 정확하게 우주에서 거북이자리를 만들어 내는 날이었거든요. 여기에서 보면요.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인데도 오늘 오자고 그런 거예요. 엄마, 집 마음에 들어요?”
 주연의 입은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신성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집을 만들어 낼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슈퍼재벌 초신성』 1-2권에 계속>

댓글(4)

dnrlrlgo    
한얘기하고 또하는 얘기가 너무길어요
2019.04.03 11:52
유월우    
1권도못읽겠네요
2019.04.14 00:30
    
총각이죠?
2019.04.30 19:50
    
읽다보니까 작가의 정신세계가 심히 궁금하다. 개막장 판타지 드라마작가하시면 대성하실듯
2019.04.30 20:34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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