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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 X 1권 (1)

2018.10.19 조회 2,599 추천 18


 포식자 X 1권 (1화)
 인트로
 
 양평 근교, 인적 없는 산속의 고요한 정적을 뚫고 하나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둘러 덮은 듯한 흙을 헤치며.
 만약 누군가가 봤다면 기절초풍할 장면이다.
 흙투성이 손은 주변을 더듬거리다 이내 옆에 있는 나무뿌리를 잡고 당겼다. 그러자 곧 한 남자가 바닥을 헤치며 튀어나왔다. 남자는 바닥에 엎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교복으로 보이는 와이셔츠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빌어먹을 새끼들.”
 엿 같은 세상이다.
 아주아주 기분이 더러워서······ 아주아주 눈물이 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저주하고 싶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곳에 묻힐 때까지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머리 위로 흙이 덮일 때까지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차량 번호 3268의 아우디 차량. 운전자는 젊은 남자였다. 자신을 치지마자 문을 열고 나와서 나와서 한다는 첫마디가 ‘씨발, 존나게 재수 없네’였다.
 운전자는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서 코에 손가락을 댔다. 술 냄새가 심하게 난다. 분명 자신은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충돌의 충격 탓에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기운을 모조리 끌어모아 세게 숨을 쉬었다.
 하지만 운전자는 전혀 아랑곳없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죽었네, 죽었어. 아, 젠장.’
 그 순간, 옆에 타고 있던 여자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녀 역시 술에 잔뜩 취했는지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큰일 났네······. 오빠, 이거 들키면 사법연수원에서 퇴출되지 않아?”
 “알아, 병신아. 입 닥쳐.”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 씨발, 지가 노루야, 뭐야? 갑자기 도로에서 왜 튀어나오고 지랄이냐고!”
 남자는 뭐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야, 안 되겠다. 빨리 이 새끼 태워.”
 “뭘 어쩌려고?”
 “보면 몰라? 어차피 뒈졌잖아. 나는 판사가 될 사람이고.”
 “설마······ 유기하려고?”
 “유기는 무슨. 이런 고삐리랑 나랑 누가 더 중요해? 나라를 위해서 누가 더 희생을 할 것 같냐고.”
 “당연히 오빠지.”
 “그렇지? 그럼 어서 날 도와. 내가 꼭 보답할 테니까.”
 “왜? 나랑 결혼이라도 하게? 그럼 나는 땡큔데.”
 “일단 도와. 그건 나중에 할 얘기인 것 같다.”
 “노노노. 지금 확답을 들어야겠어.”
 여자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기를 켰다.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꽤 용의주도한 모습.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얻을 것은 모두 챙긴다.
 “알았어. 결혼해 줄게, 올해 내로. 됐지?”
 “흐흐흐, 나중에 딴말하지 마? 딴말을 했다가는······ 확!”
 “알았다니까. 어서 이 자식이나 트렁크에 실어.”
 “오케바리.”
 운전자와 여자는 그렇게 남자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러고는 서울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양평의 산속에 그를 묻어버린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남자는 드글드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삼켰다.
 그런 후,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됐는지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천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친 듯이 거리를 내달렸다. 그 와중에 한쪽 신발이 벗겨졌지만,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주변에서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시선이 쏟아졌지만, 천혁은 개의치 않았다. 1분 1초라도 빨리 동생을 확인하고 싶었다.
 설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이윽고 도착한 영안실에서 천혁은 힘없이 무너져 내려 무릎을 꿇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두 사람은 지금까지 힘을 합쳐 살아왔다. 둘은 형제였지만,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여느 가족들의 감정, 그 이상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꿈이야!”
 천혁은 머리를 부여잡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도로는 오가는 차량 없이 한적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차량 한 대가 그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하지만 역시 환상처럼 느껴질 뿐이다.
 마치 천사의 불빛인 듯.
 천우야, 나를 부르는 거니.
 환상은 강렬한 고통으로 그에게 안겨주었다.
 콰아아아앙!
 
 
 
 어둠으로 회귀
 
 
 “으으윽.”
 흙구덩이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천혁은 억눌린 신음성을 토해냈다.
 분명 마지막 기억은 시야 가득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들어왔고, 자신은 둔중한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어갔다.
 마지막 순간에 들려온 두 남녀의 대사는 자신이 사고를 당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몸이 멀쩡하다.
 분명 뒤틀린 사지와 기형적으로 꺾인 목의 기억이 생생했는데······.
 마치 한바탕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다.
 아니,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처럼 동생이 저녁을 차려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구수한 김치찌개의 내음과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 풍족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먹기에 전혀 과하지 않을 식탁 위에서, 언제나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지만······ 역시 이것은 꿈이 아니다.
 이 낯선 곳, 차갑게 와닿는 주변 공기는 지금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말해준다.
 그렇다면 여기에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이성을 잃고 뛰어나오기는 했지만, 천우는 아직도 차가운 영안실 침대 위에 쓸쓸히 누워 있을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비록 못난 형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 끝까지 보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미치자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천혁은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헤맨 끝에 산을 내려온 천혁은 길게 뻗어진 도로를 발견했다. 표지판을 보니 양평 어딘가였다.
 동생을 보기 위해서는 먼 길을 걸어가야 할 듯하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새삼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이게 다 그 뺑소니 운전자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법연수생이라고? 기가 막혀서. 그런 놈이 술을 먹고 운전한 것도 모자라 사람을 생매장해?
 어이가 없다 못해서 화가 머리끝가지 치밀어 올랐다.
 이미 차 번호는 외워뒀다.
 동생과의 만남을 갈라놓은 놈.
 너는 절대 나에게서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천혁은 도로 위를 터벅터벅 걸었다. 외지이기도 하고 부슬부슬 비고 오고 있어 통행하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종종 지나치는 차량을 향해 손을 들어보았지만, 한 대도 서지 않는다. 그냥 지나친다.
 인심 한 번 더럽네.
 할 수 없이 천혁은 뛰었다. 최소한 버스 정류장이 보이는 곳까지 뛸 생각이었다.
 그런데······.
 천혁은 희한한 일을 경험했다. 자신의 다리가 허공으로 붕붕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말이다. 그는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족히 몇 미터 이상은 뛰어넘었다.
 그다지 운동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육상부 애들만큼 빠른 듯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이 따가울 정도로 얼굴에 부딪쳤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쳤다. 휙휙 소리는 그의 답답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것 같았다.
 힐끗 뒤를 돌아봤다.
 전력으로 수킬로미터를 뛰었다. 예전에는 100미터를 전력으로 뛰고 나면 숨이 차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는데······.
 800미터를 뛰면 아예 드러누워서 거친 숨을 헐떡거릴 정도였다.
 그런 자신이 100미터를 달리는 속도로 수킬로미터를 질주했다고?
 이게 말이 돼?
 주위를 돌아봤다. 누군가 지나가고 있다면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이게 말이 돼냐고.
 그는 자신의 어금니가 뾰족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양평가도의 외진 구석.
 어둠 속에서도 불을 밝힌 편의점 앞에는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평소 경춘국도 근처는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자전거를 타거나 고급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그만큼 길이 잘 닦여 있기도 하고,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기도 하다. 물론 먹거리도 많았다.
 하나 지금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다 밤도 늦은 터였다. 이런 날씨에는 라이더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차되어 있는 오토바이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보통 라이더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단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고, 하나같이 쇼바를 올리고 화려하게 치장을 했다.
 폭주족들이다.
 천혁은 잠시 긴장했다.
 현재 자신의 몰골은 정상이 아니었다.
 와이셔츠와 바지는 핏자국과 흙으로 뒤범벅이었다. 얼굴도 마찬가지. 비가 내리고 있지만, 지저분한 모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차를 얻어 타기란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었다.
 화장실로 가서 대충이나마 얼굴과 머리, 옷에 묻은 피와 흙을 씻어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폭주족들이 문제였다. 오토바이에서 터져 나오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들렸다.
 과연 이놈들 사이를 지나가야 하나? 왠지 시비가 붙을 것 같은데······.
 잠시 다른 곳을 갈까, 고민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편의점은 이곳 한 군데밖에 보지 못했다. 또 얼마나 걸어야 편의점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천혁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는 폭주족 사이를 유유히 걸어갔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킥킥거리던 폭주족의 웃음이 뚝 멈췄다. 그들은 마치 이상한 생물을 보듯이 천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모두의 얼굴에서 ‘감히’라는 표정이 엿보였다.
 하지만 천혁은 거칠 것 없이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대개 일진, 폭주족, 조폭 같은 부류들은 약한 자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다. 거의 본능적이란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눈앞의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약하게 보이면 더 심하게 괴롭힌다. 절대 이놈들에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 굴복하는 순간, 뼛골까지 빼 먹힌다.
 천혁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힘으로 억눌려 본 적이 없다. 당하면 당한 만큼 이를 악물고 받아버렸다. 부모님이 없어서, 동생과 둘이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더 독하게 반발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수없이 많은 싸움을 벌였고, 여느 일진 무리와 달리 천혁은 대부분 혼자였기에 어느새 늑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니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의 습성을.
 천혁이 걸어가는 길 앞으로 가로막듯이 뿌연 담배 연기가 뿜어졌다.
 “어이, 꼬마. 어디 가니?”
 역시나.
 양쪽 귀에 피어싱을 하고 이마에 해골 마크를 문신한 사내가 천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놈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천혁의 얼굴로 천천히 내뱉었다.
 “화장실.”
 천혁은 눈앞에 담배 연기를 손으로 걷어내며 말했다.
 “응아 마려서?”
 “씻으러.”
 “이 새끼 보게? 애야, 말이 짧잖아. ‘씻으러요’라고 공손히 대답해야지.”
 “······상관하지 말지?”
 천혁은 시비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내가 그런 천혁의 팔을 움켜잡았다.
 억센 압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놈의 인상을 보면 분명 한껏 힘을 준 듯한데, 이상하게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았다.
 놈은 천혁이 멈춰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기가 살았는지 더욱 발광을 떨어 댔다.
 “씨발! 내가 싫어하는 새끼랑 존나게 닮았다, 너.”
 어지간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폭력에 대한 본능이 치밀어 올랐다.
 두근두근.
 놈들의 정맥이 뜀박질하는 목 줄기에 절로 시선이 간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천혁이었다.
 문득 저 목을 물어뜯어 정맥을 찢고는 콸콸 흘러내리는 피를 실컷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천혁은 애써 고개를 흔들어 떠오르는 상념들을 털어냈다.
 그런 후에 서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너, 나 알아?”
 
 민철은 물끄러미 천혁을 바라봤다.
 비가 내 귓구멍을 막아버렸나?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지?
 그는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개기는 놈들을 싫어한다. 괜한 깡으로 앞뒤 안 보고 덤비는 놈들도 싫어한다.
 내가! 까라면 까야 한다! 그게 법이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다. 그게 장관 아빠와 사립대 총장 엄마를 둔 나의 배경이다. 이 배경이 바로 나의 힘이다.
 이제껏 나의 힘을 넘어서는 새끼들은 보지 못했다. 하다못해 우리 학교 교장도 내 앞에서는 쩔쩔맨다. 경찰서장이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한다. 아버지 잘 계시냐고.
 그런 나다.
 그런데 저 새끼는 나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긴 생긴 것 봐라.
 더군다나 ‘나 알아?’라니.
 별 거지 같은 새끼가 눈깔에 힘을 준다. 뒈지려고.
 “이 새끼가 방금 뭐라고 하는지 들었어?”
 민철은 친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웃어 대며 배꼽을 잡았다. ‘저 새끼가 미쳤네’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민철은 친구들의 반응에 기꺼워하며 천혁에게 압박을 가했다.
 “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할 일 없으면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 괜한 사람 붙잡아 시비 걸지 말고.”
 천혁은 민철의 팔을 뿌리치고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민철은 튕겨진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굳어 있던 민철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있던 헬멧을 들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천혁의 뒤통수를 갈겼다.
 빠아악―
 천혁의 고개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해머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몇 대만 더 맞으면 눈알이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천혁은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가격한 민철을 바라봤다.
 “너, 지금 그걸로 날 친 거냐?”
 민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힘껏 휘두른 헬멧인데, 저렇게 멀쩡하면 안 되는 거다.
 민철은 헬멧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보았다.
 탕탕!
 묵직한 쇳소리가 난다.
 제대로 안 맞았나?
 민철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다가가 천혁의 면상을 향해서 다시 한 번 헬멧을 휘둘렀다.
 예전에도 시험해 봤는데, 벽돌로 상대의 면상을 찍는 것보다 헬멧으로 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었다. 대체로 한 방이면 끝이다.
 합기도를 배운 놈도, 유도를 배운 놈도, 제아무리 싸움 좀 한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는 놈들도 이것 한 방 맞고 일어서는 꼴은 보지 못했다.
 천혁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헬멧을 뚫어져라 보았다.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 느리다 못해서 하품이 난다.
 천혁은 얼굴로 떨어지는 헬멧을 가볍게 손바닥으로 받았다.
 “어?”
 주변에 있는 민철의 친구들이 보기에는 천혁의 손에 헬멧을 그냥 쥐어준 것처럼 보였다.
 “에이, 장난하냐! 뭐야, 그게!”
 “야! 야! 쓸데없는 짓 하려거든 그냥 가자. 재미없게.”
 민철의 친구들이 엄지손가락으로 밑으로 내리며 야유를 보냈다.
 “씨발, 지켜보기나 해! 내가 이 새끼를 어떻게 조지나.”
 화가 치민 민철은 허리에 차고 있던 체인을 죽 당겼다. 체인은 빗물 사이로 철컹,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천혁은 체인을 들고 있는 민철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체인으로 맞으면 살갗이 뜯어진다. 꿰매기도 어렵다. 자칫 스치기라도 한다면 평생 흉터로 남을 것이다. 차라리 칼을 맞는 것이 낫다.
 양아치, 일진 중에서도 상대에게 체인을 휘두르는 놈들이 가장 악질인 이유였다.
 “하아······.”
 천혁의 입에서 거친 숨결이 뱀의 혀처럼 흘러나왔다.
 악질은 어떻게 상대를 해줘야 할까.
 악질을 상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놈들과 똑같은 버러지가 되면 된다.
 그럼 쌤쌤이니까.
 서로 욕해봤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 그럼 징벌 시작.
 천혁은 민철에게서 뺏은 헬멧을 크게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큰 동작이라 피하기는 쉽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 천혁이 휘두른 동작은 번개처럼 빨랐다. 아무도 천혁이 휘두른 헬멧을 보지 못했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그들의 귀에 들렸다.
 빠각!
 민철의 면상이 깨졌다. 안면이 움푹 들어가며 눈알이 반쯤 튀어나온다. 민철은 항공모함이 침몰하듯이 푹 주저앉았다. 단 한 방에 눈빛은 맛이 갔다. 흐릿하다. 의식이 반쯤 나간 듯했다. 그런 민철의 면상을 천혁은 전혀 주저 없이 발등으로 후려쳤다.
 빠아악!
 민철은 볼링 핀이 쓰러지듯 옆으로 자빠졌다. 완전히 의식이 증발한 듯했다. 부러진 이빨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떨어졌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천혁은 천천히 헬멧을 들어 올렸다.
 찌그러진 헬멧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다.
 꿀꺽.
 천혁은 피를 보자 왠지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기이한 열기를 참지 못했다. 그는 헬멧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아아아!
 이런 맛이라니.
 세상에 어떤 진미를 맛보는 것보다 좋았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근사한 식당에 가서 먹은 최고급 소고기보다 더.
 할짝할짝할짝.
 부슬부슬 비가 오는 밤. 흐릿하게 달빛 아래 갑자기 나타난 지저분한 몰골의 사내. 게다가 그 사내는 혀를 길게 내밀어 피를 핥고 있다.
 그 기괴함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뭉쳐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들의 뇌리에서 울리는 경고를 무시하고 말았다.
 “이런 씨발 놈이!”
 폭주족들이 일제히 천혁을 향해서 덤벼들었다.
 꿀꺽.
 피를 삼킨 천혁은 잠시 눈을 감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이 치솟고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눈을 뜨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먹잇감이 가득하다.
 천혁을 피로 범벅이 된 혀를 길게 내빼 입술을 핥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옆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잡았다. 한 손으로 거침없이 들어 올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폭주족들을 향해 던졌다.
 빠아아악―
 놀랄 겨를도 없었다.
 두 명의 폭주족은 날아든 오토바이에 그대로 깔리게 생겼다. 두 놈의 두 눈이 호박처럼 커지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콰직!
 끔찍한 소음과 함께 둘은 오토바이와 한데 뒤엉켜 굴렀다. 한껏 가죽 재킷을 입고 멋을 낸 그들은 팔과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인 채 콘크리트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르륵,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비와 함께 뒤섞여 콘크리트 바닥을 붉게 적셨다.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던 폭주족들이 멈칫했다.
 뭐, 뭐야. 저건?
 오토바이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고? 말도 안 돼. 우리가 잘못 본 거야.
 “크크크큭.”
 천혁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쩐지 엿 같은 기분이 조금 풀린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영안실에 누워 있을 천우도, 자신을 암매장한 뺑소니 운전자 놈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한껏 따듯한 피를 만끽하고 싶을 뿐이었다.
 천혁은 쓰러져 있는 민철의 머리채를 다시 쥐어 잡고 질질 끌었다. 그러다 땅에 떨어진 체인을 주워 들고 그의 목을 휘감았다. 조금 당기자 살점이 투툭, 찢어졌다. 핏방울이 주르륵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그 끔찍한 광경에 폭주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왜들 그러고 서 있지?”
 천혁은 폭주족들에게 손짓을 했다.
 자, 너희들 친구가 여기 있다.
 용기를 내.
 용기를 내서 네 친구를 구하러 와.
 너희들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폭주족이잖아. 안 그래?
 마치 야수와도 같은 천혁의 모습에 폭주족들은 질려 버리고 말았다.
 
 ***
 
 새벽이 돼서야 천혁은 집에 도착했다.
 다가구 주택의 허름한 반지하층. 아침이면 어느 정도 햇볕도 들고, 작지만 방도 두 개다. 위치가 나빠서 그렇지, 두 사람이 가진 돈으로 이 정도 방을 구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비록 없는 형편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기에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천우는 이제 없다.
 천혁은 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기 한 점 없는 냉골 바닥. 그의 몸에서 떨어진 빗물이 방바닥에 흘러내렸다. 춥지는 않다. 기분만 더러울 뿐.
 천혁은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댔다. 어제 급하게 뛰쳐나간 탓에 TV는 켜진 채였다. 지금도 같은 채널이다.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화면 속 연예인들은 하하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몸에서 힘이 빠져 TV를 끌 기운도 없었다.
 먹은 것은 없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다.
 문득 며칠 전 천우의 말이 떠올랐다.
 
 “형, 형은 엄마, 아빠 보고 싶지 않아?”
 “부모님? 보고 싶지. 잘들 계시나 몰라. 잘들 계시겠지. 워낙 금슬이 좋은 분들이셨잖아.
 “그렇지? 그래도 우리 많이 보고 싶어 하실 거야.”
 “당연하지.”
 “그래서······ 나 엄마, 아빠 보러 가려고.”
 “그래, 보러 가야지. 나중에 우리 같은 자식들 낳은 다음에.”
 “······.”
 
 그때, 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은 받았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원래 뭐든 척척 잘하는 동생이었니까.
 원래 뭐든 잘하는 동생?
 정말로 그럴까?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다.
 경찰은 자살 미수라고 결론지었다. 경찰이 발견했을 때까지는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그대로 죽지. 멍청한 놈.
 목과 척추가 부러진 채로 몇 시간이 그렇게 방치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불쌍한 놈.
 너무 불쌍한 놈.
 하나뿐인 형이······ 아무것도 모르다니.
 정말 자살이라고?
 그래, 경찰이 자살이라니까 자살이겠지. 그런데 왜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을까?
 학교 폭력? 성적에 대한 압박감? 입시 스트레스?
 뭐든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경찰은 위로의 말만 몇 마디 건넸을 뿐이다. 학교에서는 담임에게 전화 한 통화만 왔었다. 천우가 응급실에 실려 갔으니 어서 가보라고.
 가보라니. 담임도 같이 갔어야 정상 아닌가.
 전교 1등이었잖아. 왜 그렇게 방치를 하는 건데.
 너무 무책임하잖아.
 당신! 선생 아니야?
 천혁은 코를 막았다. 구린내가 물씬 풍겼다. 그는 벌떡 일어나 천우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연습장, 낙서, 일기장부터 사소한 하나까지······ 모조리 뒤졌다. 뭔가 나올 것이라 예상을 하면서.
 천혁이 원하는 증거는 쉽게 발견됐다.
 일기장과 연습장.
 먼저 연습장.
 놀랍게도 연습장은 온통 시커멓게 칠해져 있었다. 볼펜으로 모조리 검게 칠해 버린 것이다. 연습장을 넘겼다. 다음 장에는 붉은 볼펜으로 누군가의 목을 자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반 전체 아이들의 목이 잘려 있기도 했다. 하물며 교단에 서 있는 선생은 사지를 잘라났다.
 꿀꺽―
 천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연습장을 통해 천우의 괴로운 심경이 읽히는 듯했다. 동생은 마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는 듯했다.
 뭐지? 도대체 너한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천혁은 일기장으로 넘어갔다.
 일기장은 사전만큼이나 무척 두꺼웠다.
 일기장을 잡고 넘겼다. 한 장씩,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이내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눈물은 일기장을 타고 흘렀다.
 동이 튼다.
 천혁은 한 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동생의 일기를 끝까지 읽었다.
 날이 밝았다.
 여전히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분을 참지 못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입술이 찢어진다. 그럼에도 천혁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정오가 다 돼서야······.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이윽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일기장을 덮었다. 천혁은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마치 그곳에 동생이 있다는 듯이.
 천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천우야······ 많이 힘들었겠구나······. 미안하다. 형이 돼서······ 네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구나.”
 천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울 앞에 섰다. 피범벅이 되어버린 몰골이 흉측했다. 그는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동생과 매우 흡사하다. 둘은 쌍둥이이니 당연히 닮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뿌드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이젠······ 내가 천우로 산다.”
 
 ***
 
 천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말살시켰다.
 태우고 찢고 불태웠다. 이제 천혁이란 사람은 없다. 남은 사람은 천우뿐이다.
 동생은 나와 함께 천우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동생을 화장했다.
 동생의 유골은 행주대교 밑에 뿌렸다.
 마지막으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었다.
 부모님한테 먼저 가 있어. 너를 그렇게 만든 놈들은 내가 반드시 하나 빠짐없이 데리고 갈 테니까.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마.
 이제 나는 천우다.
 하지만 더 이상 여린 천우가 아니다.
 철저하게 잔인한 천우가 되어주마.
 천혁은 치렁치렁하던 머리를 단정하게 깎았다. 껄렁하던 옷들도 모두 버렸다.
 단정하게.
 또 단정하게.
 이제 누구도 우리를 분간하지 못한다.
 그것만큼은 장담한다.
 성격, 취미, 두뇌,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 좋아하는 음식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딱 하나만은 똑같았다.
 바로 외모.
 하다못해 얼굴에 박힌 점의 위치까지 닮았다.
 덕분에 둘이 바뀐 것을 아무도 몰랐다. 세상 누구도 두 형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혁은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목소리도 비슷했다. 부모님도 목소리 구별은 하지 못할 정도. 안경을 쓰고 안 쓰는 것으로 겨우 구별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담임은 꽤 놀란 음성이었다.
 [어? 너, 너는······.]
 놀라긴, 씨발 놈. 뒈진 줄 알았겠지? 하긴 옥상에서 떨어졌으니.
 담임은 몸은 괜찮냐고 더듬거리며 물었다.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왜 살아 있냐고 묻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당신, 교사 맞아?
 “아직 몸이 안 좋아서 일주일 뒤에 등교하겠습니다.”
 천혁은 애써 분노를 삭이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일주일이라······.]
 담임선생은 일주일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왜? 학교에 천우가 살아 있다고 소문을 쫙 내시게? 천우를 그렇게 만든 아이들에게 일러바치시게?
 그래, 개새끼들과 함께 준비해라.
 너희는 나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천혁은 일주일 동안 천우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완전히 똑같을 수야 없을 테지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동생과 18년을 함께 살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속속들이 훨씬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자신이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이상하게 느낀다면, 옥상에서 떨어진 이후 기억이 잠깐잠깐 끊긴다고 둘러댈 참이었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천혁으로서의 삶도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천우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보는 너와 나의 얼굴.
 쨍―
 천혁은 주저 없이 거울을 깨트렸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내가 차에 치이고도 다시 살아났다면 그 의미가 있을 터.
 분명 동생이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나를 살려주었을 것이다. 이제 그 의지에 따라 살아주려고 한다.
 자, 가자.
 지옥으로.
 너를 그렇게 만든 개자식들에게 늑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러 가자고.
 천혁, 아니, 새롭게 태어난 천우는 현관문을 열고 무거운 첫발을 내디뎠다.
 
 
 
 악의 부활
 
 
 일류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기로 유명한 대성 고등학교.
 이곳은 8학군에서도 특히나 유명했다.
 단지 뛰어난 진학률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정치인들이 상당수는 이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법조인이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국가기관뿐 아니라 각 대기업마다 대성고 졸업생 모임이 따로 있을 정도니까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면 대성 고등학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대성고의 졸업생이라는 명분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대성고를 나왔다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큰 메리트가 되는 것이다.
 천우는 그런 학교의 2학년생이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학교 정문을 바라봤다. 입구에는 책을 들고 있는 서 있는 석상이 있었다. 석상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지랄.
 “나 같으면 이렇게 쓰겠다. ‘가장 파렴치한 곳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대성 고등학교다’라고.”
 천우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는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봤다. 아이들인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빤하다. 당연히 죽었으리라 여긴 사람이 살아왔으니까.
 표정들 하곤. 죽다가 살아난 사람 처음 보냐, 개새끼들아.
 “뭘 보냐?”
 “······.”
 아이들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몇몇은 아예 천우를 못 본 척하고 교문을 향해서 서둘러 움직였다.
 다른 몇몇은 천우와 친분이 있는 듯했다. 그들은 뭔가 말을 걸려고 입을 우물우물거렸다. 하지만 이내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보고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천우는 입매를 뒤틀었다. 본래 그가 다니던 학교는 골통 집합소로 유명했다. 하루라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으면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뭐랄까, 시원한 느낌이 드는 학교랄까. 집단 괴롭힘이나 왕따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오로지 누가 더 ‘강한가’에만 관심이 있는 특이한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겉만 평화롭다. 속을 들여다보면 시궁창 냄새가 물씬 난다.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라, 이게 뉘기야?”
 아이들이 기피하던 인물. 키는 대략 180센티가 넘는다. 어깨가 넓고 얼굴선이 시원시원하다. 코가 오뚝해서 입체적으로 보이는 인상. 쉽게 말해서 호감형이다.
 하지만 행동거지를 보니 호인은 아닌 듯했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내뱉은 그가 천우를 향해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천우의 어깨에 팔을 휘감았다.
 “와! 뒈졌다고 하더니, 멀쩡하네? 너 좀비냐? 분명 옥상에서 떨어진 것을 봤는데. 대단하다.”
 천우는 그 자식의 명찰을 확인했다.
 이민우.
 뇌리에 박힌 일기장을 뒤졌다.
 이 새끼에 대한 이름은 세 번 나온다.
 
 첫 번째.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서 수학 점수가 떨어졌다. 그 자식들은 나의 성적을 떨어트리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듯했다.
 내가 비록 그들보다 힘은 약하지만, 공부로는 이길 수 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도 놈들의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갑작스런 뒷머리의 충격과 함께 이마가 책상에 부딪쳤다. 코피가 난다. 코를 막고 뒤돌아보니 민우가 싱글싱글 웃으며 서 있었다.
 소름이 끼친다. 욕을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민우는 그런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겠지.
 결국 머리채를 잡힌 채 화장실로 끌려갔다. 거기서 나는 오줌이 가득 담긴 변기의 물을 마셨다. 몇 번이나 토했지만, 민우는 그런 나를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두 번째.
 등교를 하고 보니 책상이 없었다. 주변을 돌아봤다. 의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에 있는 진구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거친 욕설뿐.
 내가 욕먹을 짓을 했나?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교실 밖에서 민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오라 손짓을 한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나름 반항인 셈이다. 역시나 그는 내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 내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민우가 점심을 가져와 화장실에서 먹으라고 한다. 손으로 치워 버렸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내 입속에 욱여넣었다.
 
 세 번째.
 참다못해 담임에게 가서 지금껏 당한 일을 모두 얘기했다. 물론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웃기는 개소리다.
 그거야 일진들에게나 통하는 소리고, 나 같은 약자에게는 그런 말은 지옥에서 닥치고 살아가라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보호는 해줄 줄 알았다. 담임은 귀찮은 모양이었다. 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냐고 말한다. 나는 당한 증거도 많다고 대답했다.
 담임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그런다. 여기가 무슨 학교인지 아느냐고, 얼마나 대단한 학부모들이 있는 곳인지 아느냐고 몇 번이나 얘기한다. 넌 공부 잘하니까 좋은 대학 가서 나중에 그런 부모가 되라는 말까지.
 담임은 종례 시간에 뒤통수를 쳤다.
 요즘 왕따가 반에서 일어나는 모양이야. 모두 사이좋게 지내. 특히 천우는 괴롭히지 마라. 열심히 하잖아.
 그것으로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자율학습 시간에 발가벗겨진 채 여자 일진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짓거리를 당해야 했다.
 복수하고 싶다.
 나를 괴롭힌 놈, 같이 웃은 놈, 비열한 선생 놈······.
 하나 빠짐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내겐······ 힘이 없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난 그 지렁이만도 못하다.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형, 미안해.
 
 동생의 일기 속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머리가 빙하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반면에 가슴은 용암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른다.
 네가 민우구나.
 어쩐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더라니.
 정말 반갑다, 씨발아.
 “내가 멀쩡해서 기뻐?”
 천우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다. 이렇게 쉽게 만날 수가 있다니. 기뻐서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 졸라 기쁘지. 우리 학교 공식 샌드백이 없어지면 너어~무 서운하잖아.”
 “내가 샌드백이야?”
 “그럼 대성고 공식 샌드백이잖아. 까먹었어? 한 번 뛰어내리더니, 머리 다쳤냐?”
 “흐음······.”
 샌드백이란 말을 듣는 순간, 천우의 뒷덜미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호오, 이 새끼. 사람 열 받게 할 줄 아네.
 “새끼 봐라? 표정이 왜 이렇게 편안해?”
 “그렇게 보여?”
 “야, 야, 야. 이제 슬슬 시작해야지. 니가 병원에서 자빠져 있느라 가져오지 않은 내 돈, 삼십만 원. 이제 줘야지?”
 민우는 천우의 턱을 손등으로 툭툭, 건드렸다. 천우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목이 잡힌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당하면 압박감이 상당하다.
 매일 아침마다 천우가 이런 꼴을 당했다고?
 우선 분위기나 알아보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참지 못하게 만드네.
 “뭔 삼십만 원?”
 “떨어질 때 대갈통부터 박았니? 왜 모른 척을 하고 그래. 내가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돈. 너는 나만의 램프의 요정, 지니잖아.”
 민우는 계속해서 천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네가 나한테 돈을 맡겼어?”
 “오늘따라 진짜 왜 이래? 월말이 되면 네 주머니에서 뿅! 하고 나오잖아, 내 돈.”
 “아하, 그래서 램프의 요정 지니구나? 내 주머니를 열어서 돈을 가져간다고 해서.”
 “정말 머리 다쳤나 보네. 어디 보자, 대갈통이 부서졌나.”
 민우는 천우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오, 씨발. 머리 좀 감고 다녀. 비듬 봐라.”
 “아침에 머리 감았는데······. 그리고 비듬은 내가 아니라 네 거야. 교복 어깨 봐라. 아씨, 더러워. 나한테 이 옮겠다.”
 “뭐?”
 “이 옳을 것 같으니까 이것 좀 놔주면 안 되겠냐?”
 민우가 멈칫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천우와 눈을 맞췄다. 빤히 쳐다본다. 이 새끼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싶은 눈초리였다.
 “머리가 다친 것 같으니까, 내가 고쳐 줄게. 다시 제대로 맞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말과 함께 민우는 점점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천우의 턱이 덜그럭 소리를 낼 정도의 강도였다.
 “한 번만 더 치면······ 뒈진다, 너.”
 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뒈진다고.”
 “······.”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민우는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한다. 그러고는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이내 정색한 그는 천우의 목을 더 세게 졸랐다. 아니, 조르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민우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천우가 그의 팔목을 잡고 뒤로 돌린 것이다. 민우의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뒤틀리며 팔목이 뒤로 꺾였다. 그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상태 그대로 천우가 민우의 목을 휘감았다. 완전히 둘의 자세가 뒤바뀐 것이다. 천우가 팔을 당기자 얇은 팔뚝이 민우의 목젖을 짓눌렀다. 민우의 얼굴이 금방 새빨갛게 변했다.
 “야, 야, 야.”
 천우는 민우의 턱을 툭툭, 건드렸다.
 “입장이 바뀌었어. 오늘부터 너, 삼십만 원 가지고 와. 점심시간까지 안 가져오면 어깨를 뽑아버릴 거야.”
 “씨벌······ 놈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민우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천우는 입술을 비틀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래도 등굣길이라 그런지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굳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천우는 민우의 목을 잡은 채 건물 뒤로 돌아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이좋은 모습으로만 보였다. 물론 천우와 민우의 관계를 아는 아이들은 ‘또 천우가 크게 당하겠구나’ 여겼다. 그렇다고 도움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지만.
 천우는 본래 당하는 컨셉이니까. 그러니 졸업 때까지 저렇게 살 것이다. 출신도 비루한 게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이 씨발, 이거 안 놔? 넌 뒈졌어, 개새끼야.”
 185센티, 110킬로그램의 민우가 훨씬 작은 천우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쳤다. 그는 두꺼운 주먹으로 천우의 옆구리를 마구 때렸다.
 퍽퍽퍽!
 그러나 천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민우는 당황했다. 주먹에서 아무런 반응이 느껴지지 않은 탓이다. 마치 스펀지를 힘껏 친 것처럼 허무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있어. 금방 놔줄 테니. 어라?”
 마침 건물 뒤에는 세 명의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셋 모두 머리 색이 노랗다. 키도 비슷하다. 생긴 것도 비슷하고, 귀에 피어싱을 한 것도 똑같았다. 그렇다고 얼굴까지 닮은 것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비슷해서 형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확실히 똑같지는 않다.
 참, 개성 없는 새끼들이군.
 그들은 민우를 보자, 담배를 등 뒤로 숨기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천우는 실소했다.
 이 병신들은 지금 상황이 안 보이나? 인사를 할 때와 안 할 때 구별도 못하나 보네. 아주 끼리끼리 노는군.
 “닥치고 당장 이 새끼부터 죽여 버려! 어서!”
 민우가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천우, 이 개새끼. 이것만 풀려봐. 넌 그냥 맞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아아! 정말 달콤한 말이야. 맞아, 그냥 맞는 정도로 끝나면 안 되지.
 천우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꼬붕 원, 투, 쓰리를 보며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천우는 손등을 핥았다.
 꼬붕 원, 투, 쓰리의 피가 주먹 가득 묻어 있었다. 간만에 사람을 치려니 힘 조절이 잘 안 된 탓이다.
 저런 쓰레기들 쯤이야 예전 학교에서처럼 잽잽, 원투를 날렸다면 놈들의 머리통은 터진 수박이 되어서 여기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아~ 확실히 그날 이후 무언가가 변한 것 같다. 폭주족 놈의 헬멧을 맞고도 멀쩡하더니, 한 손으로 오토바이를 들어 올리는 힘과 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피에 대한 갈망······.
 그런데 힘이라는 것이 생기면 이런 게 귀찮아지는구나. 한 대 때릴 때마다 죽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니.
 아니, 차라리 죽여 버리는 게 편할까?
 “으으윽.”
 꼬붕 원이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그로서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린 적은 없을 것이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듯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놈은 검은 동공이 전기에 맞은 것처럼 마구 떨렸다.
 “자자, 나를 봐봐. 너희들이 즐기는 행동이야? 어때? 기분 좋아?”
 천우는 페널티킥을 차듯이 꼬붕 원의 머리통을 뻥 내질렀다. 꼬붕 원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저러다 목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대개 상황이 이 정도까지 이르면 일진들은 구타를 멈춘다. 자신들의 장난감을 망가트리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우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직 학교 곳곳에는 수많은 장난감들이 가득 널려 있으니까. 천우의 일기장에 적힌 놈들을 잡아다가 은행 겸 장난감 겸 샌드백으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천우는 멈칫했다. 그러더니 양쪽 손바닥으로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요즘 들어 생긴 버릇이다. 피를 볼라 치면 살의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눈동자까지 붉어진다. 당장에라도 눈앞에 있는 상대의 혈관을 찢어버리고 싶다.
 갈기갈기.
 그 속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다.
 간신히 약간의 이성이 돌아왔다. 이제 이성이 돌아왔으니 적당히 해야 한다.
 천우는 얼굴을 잡고 쓰러져 있는 꼬붕 원의 배를 마구 걷어찼다.
 퍽! 퍽! 퍽!
 꼬붕 원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양쪽 팔이 축 늘어진다.
 어라, 인간의 몸이 이 정도에 부서질 정도로 약했나?
 “야, 야, 죽었냐?”
 천우는 발등으로 꼬붕 원의 면상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꼬붕 원은 미동도 없었다.
 “네가 죽으면······ 다른 놈들도 다 죽어야 돼. 알지?”
 천우는 꼬붕 투와 쓰리, 민우를 번갈아가면서 바라봤다. 꼬붕 투와 쓰리, 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다리가 골절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천우가 그들의 발목을 짓밟아 부러트린 탓에 고통으로 인해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 답답하네.”
 천우는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죽으면 나는 증거 인멸을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네 친구들도 죽어야지. 그리고 저기 있는 돼지 새끼한테 다 뒤집어씌울 거라고. 이해돼? 나는 왕따잖아. 너희들을 내가 죽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어줄까, 아니면 저 돼지 새끼가 죽였다는 것을 믿어줄까?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세 명이나 죽였으니······ 한 5년은 받지 않을까? 뭐, 나야 상관없지.”
 민우는 두 눈을 껌뻑거렸다. 천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아니, 대충 알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되새김질을 하기 싫었다. 자신이 아는 천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저 세 명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다고?
 이 자리에 천우와 자신이 남는다. 경찰이 둘을 발견한다. 누가 봐도 자신이 살인을 했을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만다.
 “야! 경수야! 일어나! 일어나라고! 씨발, 여기서 죽을 생각이야? 그럼 안 된다고!”
 민우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지가 풍을 맞은 사람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야, 넌 조용히 해. 이 새끼가 죽어야 내 속도 좀 편해지지.”
 천우는 꼬붕 원의 뒤통수를 주저 없이 밟아버렸다. 꼬붕 원의 이마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치며 피를 뿜어냈다.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 바닥은 꼬붕 원이 흘린 피로 가득했다.
 천우는 그의 피를 마시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참아냈다.
 양평 근교의 야산에서 깨어난 이후, 확실히 자신은 달라졌다. 폭주족들과의 싸움에서도 그렇고, 체력이나 맷집 등 신체 능력이 전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힘을 쓸 때마다 알 수 없는 욕망이 꿈틀꿈틀 치솟는 이 기분.
 잠시라도 이성의 끈을 놓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의식하려 하지 않아도 그날 그 산속에서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천우의 생각으로는 앞뒤가 딱딱 맞는 것 같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아니다.
 천혁이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이 학교에 용서할 수 없는 새끼들이 가득하다는 것.
 동생의 일기장을 읽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상황.
 동생과 연관된 놈들은······ 단 한 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미성년자? 학생? 그게 뭐?
 이것들은 악마보다 질이 나쁘다.
 영안실 속, 비참한 동생의 주검만 떠올리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었다.
 천우는 양 손바닥으로 벽을 짚고는 그 밑에 쓰러져 있는 꼬붕 원의 배를 마구 걷어찼다.
 퍽! 퍽! 퍽!
 “꼬붕 새끼야, 좀 뒈져라. 너 죽이고 나서 저 새끼들마저 다 처리하려면 나도 바쁘다. 종 치기 전에 들어가야 하잖아. 나름 학생인데, 학업에 열중해야지.”
 살벌한 분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꼬붕 투, 쓰리와 민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이 보기에 천우는 완벽한 미친놈, 그 자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 사람은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도 한 발은 움직인다. 그렇다면 얼른 큰길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지랄들 하고 있네.”
 물론 천우는 그들을 마음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천우는 바닥에 있던 벽돌을 집어 들고 천천히 다가가 세 사람의 머리를 내려쳤다.
 빠각!
 세 사람은 필사의 발버둥이 허무할 정도로 힘없이 쓰러졌다.
 “너희는 인과응보란 말은 모르냐?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말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은? 다 모른다고? 그러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다, 병신들아. 공부 좀 해라. 음,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하다만.”
 천우는 손에 쥔 벽돌을 바라봤다. 민우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때 반으로 쪼개졌다.
 벽돌이 약한 건지, 저놈 대가리가 단단한 건지······.
 천우는 반 토막이 되어버린 벽돌을 든 채 꼬붕 원에게 다가갔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꼬붕 투와 쓰리가 애처롭게 외쳤다. 그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의리가 두터워 친구가 죽지 않기를 바라서?
 개 염병할 소리 하고 앉아 있네. 꼬붕 원이 죽으면 다음에는 자신들 차례니까, 그게 무서워서 저렇게 짖는 것이다.
 천우는 꼬붕 원의 머리 위로 벽돌을 내려찍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 순간, 꼬붕 투와 쓰리의 외침도 멈췄다.
 “내가······ 왜 너희를 죽여야 하지? 겨우 열여덟 살밖에 안 됐는데, 꼭 살인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자조 섞인 말투였다.
 “그래, 우리 죽여서 뭐가 남아. 맹세할게. 다시는 너한테, 아니, 선배한테 담배 사 오라고 안 할게요. 아니, 아예 선배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게요. 그러니까 제발······ 화를 푸세요.”
 꼬붕 투와 쓰리가 번갈아가며 처절할 정도로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그러더니 구구절절, 자신들이 얼마나 불우한 형편인지를 늘어놓는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자신이 먹여 살려야 할 동생이 세 명이나 있다느니, 3년 전 집 나간 어머니에 할머니는 치매, 아버지는 장애인······.
 “아, 너희들······.”
 천우는 눈 사이를 꾹 눌렀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만큼 애절한 사연.
 이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힘들게 살아왔다. 학교에는 억지로 다니고 있을 테지. 천우는 꼬붕 투와 쓰리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들의 볼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런 후, 말했다.
 “그래서?”
 “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너희들 졸라게 가난하니까 나더러 그만하라고? 그럼 한 번 물어보자. 너희는 나한테 왜 그랬냐?”
 “······.”
 두 녀석은 순간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뭔가 변명거리를 찾는 모양이었다,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보면.
 “할 말 없지?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유언이나 생각해 둬.”
 그 말에 꼬붕들의 표정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바로 그때였다.
 “나······ 안 죽었어요. 내가 안 죽으면 되는 거죠?”
 꼬붕 원, 경수의 입에서 쥐어짜 낸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어라? 안 뒈졌어?”
 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만해 주세요. 아무도 안 죽었으니까······.”
 “흠······.”
 천우는 팔짱을 끼고 경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경수는 힘겹게 숨을 헐떡거렸지만, 감히 천우의 눈과 마주치지는 못했다.
 “뭐, 좋아. 그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 즐겁게 등교하자고.”
 천우는 손바닥을 짝, 치며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민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민우는 아직 수긍하지 못하겠는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천우를 노려봤다. 눈빛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냄비 같다.
 “새끼, 반성이 없네. 너, 점심시간까지 30만 원 가져와. 오늘부터 넌 내 램프의 요정, 지니야. 만약 안 가져오면······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끽하게 될 거야.”
 
 ***
 
 천우가 다시 큰길로 나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아직도 등교하는 아이들이 꽤 됐다.
 “이걸 어쩌지?”
 얼굴과 옷에 꽤 많은 피가 튀었다. 이러고 다니면 꼼짝없이 신고가 들어갈 만한 상황. 얼른 얼굴이라도 씻어야 할 판이었다.
 까톡, 까톡, 까톡.
 바로 그 순간, 갑작스럽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두 통이 아니었다. 대량의 카톡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뭐야, 이건?
 천우는 핸드폰을 열어서 확인했다.
 가장 많은 카톡이 온 것은 단체방이었다. 2―A반이라고 적힌.
 
 ― 오! 너, 살았다면서? 호규가 너 봤다더라. 깜짝 놀랐대. 좀비네, 좀비.
 ― 와! 그거 괜찮다. 오늘부터 천우 새끼는 좀비라고 부르면 되겠다.
 ― 야야! 내기할까? 좀비를 옥상에서 떨어트리면 다시 살아날까, 뒈질까? 난 ‘살아난다’에 만 원을 걸지.
 ― 그거 괜찮네. 난 ‘불구가 된다’에 만 원.
 ― 병신들, 걔가 진짜 좀비냐. 차라리 현실적으로 내기를 하자. 뼈가 몇 개 부러져서 죽느냐로.
 ― 그건 의사가 아닌 이상 확인이 불가능하잖아. 차라리 이건 어때? 목이 뒤로 돌아가느냐, 아니냐.
 ― 그거 괜찮네. 야, 좀비 보고 있냐? 얼른 와라. 야자 시간에 옥상에서 뛰어내려야겠다. 한 번 뛰어내려 봤으니 두 번째는 더 쉽겠지?
 
 천우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흐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천우야, 천우야······. 너는 참 더러운 세상에 살았구나. 도대체 어떻게 버텼니. 이 불쌍한 것.
 천우는 동생이 왜 그토록 핸드폰을 보여주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핸드폰만 잡으면 경기를 일으키듯이 빼앗아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뭣도 모르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씨발, 정말 기분이 더러워진다.
 천우는 단체방에 카톡을 남겼다.
 
 ―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 보고 싶어?
 ― 당근이지.
 ― 좋아. 그럼 해볼까? 너희들이 원한다면.
 ― 예이! 니가 드디어 해탈했구나.
 ― 보고 싶어! 보고 싶어!
 ― 오늘?
 ― 와우우우! 축제다, 축제!
 
 천우의 말에 수십 개의 카톡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대체로 신나서 죽겠다는 표정들.
 그래, 오늘 밤은 정말 신날 거야.
 천우는 다시 한 번 댓글을 올렸다.
 
 ― 보고 싶으면 오늘 모두 남아. 축제를 벌일 거야.
 
 피의 축제를 말이지.
 
 
 
 페스티벌
 
 
 주변은 빗소리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시끄럽다. 오늘따라 한층 더 소음이 심한 듯했다.
 천우는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냈다. 젖어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위로 쓸어 올렸다. 닦을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어쩐지 온몸에 화력발전소가 있어서 젖은 몸을 말려주고 있는 듯했으니까. 조금만 더 화력이 셌다면 몸에서 연기가 풀풀 났을지도 모른다.
 천우는 교실 앞에서 멈췄다.
 2―A반.
 동생의 인생이 끝장난 곳이자, 고통스런 청춘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곳.
 자, 가볼까. 뒤틀린 너의 인생을 바로 잡으러.
 각오를 다진 천우는 교실 문을 열었다.
 “으음······.”
 그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퍼퍼퍼펑!
 갑작스러운 폭죽 세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러 곳에서 폭죽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입을 모아 ‘따다단 딴딴따, 서프라이즈!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건강을 축하합니다’라고 노래를 불러 댄다.
 긴 생머리, 귀염성이 가득 붙은 동그란 눈, 하얀 치아, 한쪽 볼의 인상적인 보조개를 가진 여자아이가 천우에게 다가와 하와이에서나 볼 법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누가 보면 학교에 놀러온 줄 알겠네. 왜 이러는 건데?
 천우는 무덤덤한 얼굴로 2―A반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무척이나 잘생긴 얼굴의 아이가 다가오더니 천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야, 반갑다, 친구야. 이렇게 얼굴을 보니까 새삼 네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생긴 아이는 웃었다.
 명찰을 슬쩍 본다. 이름은 현상태.
 옥상에서 뛰어내리라는 메시지를 남긴 새끼. 일기장에도 현상태라는 이름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악질 중의 악질.
 결과적으로 넌 사형.
 짝짝짝짝―
 그러는 사이, 주변으로 몰려든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축하해! 천우야!”
 “네가 영웅이다. 우리 모두를 살렸어!”
 “내 공부 좀 봐줘. 네가 가르쳐 주면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
 “점심 같이 먹을까? 우리 같이 먹은 적 없지? 이제 종종 같이 먹자. 우리는 친구 아이가.”
 아이들이 웃으면서 한마디씩 한다.
 더러운 가식들.
 우웁.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밀려왔다. 속이 뒤집힌다. 수천 마리의 지네가 배 속을 자글자글 갉아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장에라도 이 새끼들의 머리채를 잡고서 저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참자.
 축제는 오늘 수업이 끝나고 해가 진 후에 시작이다.
 꽃목걸이를 걸어준 아이가 다가왔다. 아이는 천우의 가슴에 손을 댔다. 눈동자는 비가 내리는 연못 위에 내려앉은 파랑새처럼 파르르 떨렸다. 천우를 보며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명찰을 바라봤다.
 
 고현미.
 
 일기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여자 중 한 명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내는 모른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었다.
 이 여자는······.
 씨발, 쌍것이다.
 동생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쌍년이었다. 일기장에 적인 현미란 이름 때문에 당분간 현미를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왕따다. 심각할 정도로.
 형에게 걱정을 시킬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형도 나만큼 걱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형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왕따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다.
 내가 참으면 된다. 이제 겨우 1년 반만 참으면 된다.
 한국대학교에 가면 모든 악몽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 가자. 한국대학교에. 대한민국 최고라는 한국대학교에 가면 나는 해방될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언제부터인가 현미가 나에게 다가온다. 나긋나긋. 그 아이의 샴푸 냄새가 좋다. 가까이 다가와서 나에게 수학 문제를 물어볼 때면 황홀하기까지 했다.
 현미는 내게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물었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이 아이는 내가 어떤 꼴을 당하고 사는지 모르는 건가.
 
 현미와 나는 놀랄 만큼 친해졌다. 다른 이가 보면 사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인생이 달라졌다. 학교 가는 게 기대되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괴롭힘은 여전히 지속되었지만, 그쯤은 참아낼 수 있었다. 현미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현미가 말했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해달라고.
 모두가 알 수 있게, 우리 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고.
 그래,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꽃다발을 들고.
 가슴이 미치도록 뛰었다. 아마도 태어나서 이만큼이나 떨린 적은 없던 것 같다. 옥상 문을 조금 열어봤다.
 언제나 일진 애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없었다. 깨끗했다. 바닥에 담배꽁초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옥상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을 몇몇 학생들이 보았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어쩐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외쳤다.
 현미야! 사랑해! 내 사랑을 받아줘!
 그리고 그 순간이 절망으로 빠져드는 첫걸음이었다.
 
 현미가 나를 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하지만 감격에 젖은 모습은 아니다. 차라리 그 표정은······.
 나는 이때 깨달아야 했다, 어차피 이 학교에 내 편을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현미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서럽게 울었다. 몇몇 아이들이 다가와서 그런 그녀를 달래준다.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욕설을 내뱉는다.
 과거 역도를 했다는 체육 선생 지춘수와 배구 선수였다던 엄형태가 옥상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들은 다짜고짜 나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때렸다.
 입술이 찢어졌지만, 아픈 줄도 몰랐다.
 나는 선생들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갔다. 그러면서도 이해를 할 수 없어 현미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보고 말았다.
 엉엉 울던 현미가 멀쩡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웃고 있는 것을.
 아~ 바보처럼.
 나는 또 속았구나.
 선생들에게 죽도록 맞았다.
 대성고는 대한민국 우수 학교로 선정된 곳이다. 학교 폭력은 몇 년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욕설을 하는 모습도 없었다. 밝고 건강한 얼굴만 세상에 알려져 있다.
 그럼 나는 뭔데.
 매일 죽도록 얻어맞는 나는 이 학교 학생이 아닌가.
 하도 맞아서 엉덩이의 살점이 터지고 말았다. 피가 교복에 엉겨 붙었다. 체육선생 지춘수는 그런 나의 엉덩이에 침을 발라주더니 엄형태와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씨발 것들.
 니들이 선생이냐!
 하체가 마비가 된 것 같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이끌고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나를 위해서 노래를 불러줬다.
 나는 현미를 바라봤다.
 왜 그랬어?
 현미는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러더니 거친 욕설을 토해냈다.
 병신 새끼, 당연한 것 아냐? 감히 너 따위가 날 넘볼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는 절망했다.
 다시금 끝없는 지옥의 불구덩이로 빠져들었다.
 세상은 나를 반기지 않는다.
 
 일기장에 적힌 현미에 대한 글이었다.
 그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천우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당장 손을 뻗어서 저년의 목을 잡고 툭 분질러 버리고 싶다.
 손만 뻗으면, 손만 뻗으면 닿는다.
 “너, 나 원망 많이 했지?”
 현미는 다짜고짜 천우의 가슴에 안겼다. 동생이 느꼈을 그 샴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정말로 아찔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암컷의 페르몬이다.
 “네가 유서에 내 이름을 적지 않았다고 들었어. 정말이야? 너무 고마워. 나는 네가 날 미워하는 줄 알았어.”
 유서?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동생아, 너는 유서를 남긴 거니? 그런데 왜 나는 그걸 보지 못했지?
 아무래도 유서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
 “화 풀 거지?”
 현미는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천우를 바라보았다. 뭔가 잔뜩 바라는 눈빛이었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아이들이 열광적으로 외쳐 댔다.
 그 함성과도 같은 소리가 천우의 피를 차갑게 식혔다.
 현미는 천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와아아아!”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현미는 자신만만하게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흥분한 아이들이 사진을 마구 찍기 시작했다.
 순간, 현미가 천우에게서 떨어지며 자신의 상의를 찢으려 들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거야 대충 예상을 했지.
 니들의 더러운 수작 따위에 말려들 내가 아니다.
 그 순간, 현미도, 아이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쭈우우욱.
 현미의 아랫입술이 벌건 속살을 드러내며 찢겨져 나간 것이다.
 교실은 정적에 휩싸였다. 아이들이 두 눈을 껌벅껌벅거렸다.
 뚝뚝뚝뚝―
 현미의 입술에서 쉴 새 없이 피가 떨어졌다. 입술은 너덜너덜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치 흉측한 마녀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현미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바닥에 피가 떨어지고······.
 곧 극심한 아픔이 밀려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서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손가락에 잔뜩 피가 묻어났다.
 “피······ 피? 이게 내 피라고?”
 현미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저 새끼가! 저 새끼가 내 입술을 물어뜯었어! 고소할 거야! 너, 이 새끼, 내가 꼭 고소할 거야!”
 천우는 차가운 눈으로 현미를 바라봤다. 질겅질겅, 그는 껌처럼 뭔가를 씹고 있었다.
 퉤―
 현미의 아랫입술이 천우의 이빨에 짓뭉개진 채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후, 천우는 한쪽 무릎에 손을 대고 현미와 눈을 맞췄다. 뱀처럼 차가워진 그의 눈빛이 발작을 일으키던 현미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맛없어.”
 “······뭐?”
 “네 살집은 네년만큼이나 맛이 없다고.”
 “이 개새끼······. 너는 이제 끝장이야. 콩밥 먹을 줄 알아. 감히 내 입술을 이렇게 만들어? 넌 끝장이야!”
 
 
 천우는 현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죽여 버릴 거야! 반드시 끝장을 내고 말 거라고! 야! 야! 어딜 꼴아봐! 당장 무릎 꿇고 빌어. 내 발밑에서 엎드려 빌란 말이야! 이 씨발 놈아!”
 현미는 미친년처럼 눈이 뒤집혀서 외쳤다.
 “마음대로 해봐.”
 천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그녀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잡아채 당기면서 오른손으로 따귀를 날렸다.
 짜아악―!
 날카로운 따귀 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던 아이들이 움찔거렸다. 모두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몸이 얼어붙었다.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죽었다 살아난 천우가 혹시 미친 것은 아닌지.
 한편, 뺨을 후려맞은 현미의 입술에서는 더욱 많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피가 항상 붙어 다니던 친구들의 하얀 블라우스에 튀었다. 아이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어떡해, 어떡해.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야, 일단 화장실로 가자. 닦아야지.”
 그녀들은 쓰러져 있는 현미를 나 몰라라 한 채 후다닥 교실 밖으로 나갔다. 현미가 도망치듯 움직이는 그녀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당장 경찰을 부르라며.
 미친년, 아직 덜 맞았구나.
 천우는 다시 연속으로 현미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그녀의 얼굴이 금방 시뻘겋게 부풀어 올랐다. 본래 예쁘장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흉측하게 변하고 말았다.
 천우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현미의 귀에 들려주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현미의 귀에만 들렸다. 그녀의 부운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현미야, 이래도 나 고소할 거니?”
 천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달콤한 사베트가 입술을 넘어가듯이.
 현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증오 섞인 눈빛으로 천우를 쳐다봤다.
 “큭큭큭, 그 눈빛 좋아. 그럼 생각해 봐. 둘이 같이 사이 좋게 감방에 가도 난 상관없어.”
 천우는 다시 손을 들었다. 현미의 턱까지 부러트릴 생각으로.
 그때, 누군가가 천우의 팔목을 잡았다. 꽤나 억센 힘이다. 천우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현상태가 있었다.
 “그만하지. 좀 심한 것 같은데 말이야.”
 천우는 현상태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그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 보니, 지금 그는 매우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자신이 알던 천우가 아니니까. 지금쯤이면 바닥에 엎드려서 울고 있어야 정상이니까.
 만약 그랬다면 이토록 점잖게 자신의 팔을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짜고짜 대걸레 자루부터 휘둘렀겠지.
 너도 똑같은 놈이야.
 천우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장 교복을 바로 했다. 손에 묻은 피를 현상태의 교복에 닦자, 현상태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눈매도 살벌하게 변한다.
 “이 새끼가 뒈지려고······.”
 굳이 현상태의 서열을 정리하자면 교실에서 다섯 번째쯤 될까. 학교에 왜 나오는지 모를 네 명의 쓰레기는 아직 등교 전이었다.
 비가 오니 집에서 뭉기적거리겠지.
 점심시간이나 돼야 나올 확률이 컸다.
 천우는 현상태의 뺨을 잡고 머리를 들이댔다. 둘의 이마에서 쿵, 소리가 난다. 현상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상태야!”
 바로 코앞에서 천우가 현상태의 이름을 불렀다. 교실 전체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그런 둘을 바라봤다.
 “상태야!”
 더 크게.
 현상태가 계속 뒤로 물러난다. 놀란 눈빛이 역력했다. 점점 겁을 먹고 있다. 커다래진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우를 매섭게 바라보던 눈빛이 점점 아래를 향했다.
 “우리, 학교 끝나고 축제를 벌일 거잖아? 그렇지?”
 천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번에 알아차린 상태였다. 다시 옥상에서 뛰어내리겠다는 말.
 “정말 할 거냐?”
 “내가 미쳤다고 그냥 뛰어내리겠냐. 그러다 죽으면 누구 좋으라고? 번지점프할 거다.”
 옥상에서 번지점프라고?
 그것 역시 미친 생각이다.
 하지만 상태는 혹여 딴소리가 나올까 싶어 재차 물었다.
 “정말 할 거지?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 된다.”
 “내가 왜 다른 말을 해? 한다고 했잖아. 어쨌든 내기나 하지 그래? 번지점프든 뭐든 내가 뛰어내리면······.”
 “뛰어내리면?”
 상태가 조심스레 물었다.
 왕따를 멈춰 달라는 얘기인가?
 “나한테 이천만 원 가지고 와.”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못 들었어? 내가 뛰어내리면 이천만 원 가지고 오라고.”
 “내가 왜?”
 “내가 목숨을 거는데······ 너희도 뭔가 걸어야지. 니들 돈 많잖아. 걸어, 돈.”
 “못 뛰어내리면?”
 “그땐 너희들이 알아서 해.”
 “그래, 좋아. 씨발 새끼. 내가 잘 아는 장기 매매 업자가 있거든? 만약 못하면 네 속에 든 순대를 모조리 팔아버릴 거야. 불만 없지?”
 “오호, 그런 사람들도 알아? 좋아, 팔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그러니까 수업 끝날 때까지는 좀 조용히 있자.”
 그제야 천우는 현상태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러더니 가장 뒷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그가 이천만 원을 요구한 이유는······ 동생이 저놈한테 천만 원이란 돈을 반년 사이에 뜯겼기 때문이다.
 천만 원. 자신의 집안 형편으로는 상상도 못할 거금이다.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동생은 가지고 있는 인생을 팔아버렸다.
 끝없는 추락의 시작이다.
 그럼 너도 뱉어내야지.
 최소한 천 배 이상으로.
 이천만 원은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너도 이제 똑같이 인생의 추락을 맛보여주지.
 현상태는 가장 뒤에 앉은 천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일진 애들이 오면 저 거만한 자세도 끝날 것이다.
 지금이야 죽기 살기로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일 테지. 그래, 예전의 로이처럼. 그 새끼도 막판에 저렇게 미쳐서 날뛰었다.
 상태가 보기에 천우의 행동은 죽기 전의 발악이나 다를 게 없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지켜볼 생각이다. 괜한 유서라도 써놓고 뒈지면 골치 아파지니까.
 “야, 얘 어서 양호실로 데리고 가든지, 병원으로 데리고 가. 찡찡거리는 거 시끄러워 죽겠다.”
 상태는 현미의 엉덩이를 발등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현미는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을 손수건으로 막은 채 매섭게 상태를 바라봤다. 손수건은 이미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뭘 봐? 넌 가서 입술이나 꿰매. 저 새끼는 내가 담글 테니까. 궁금하면 저녁에 구경이나 오고.”
 “개새끼.”
 현미는 분노를 짓씹으며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그제야 폭풍처럼 몰아치던 교실에서의 긴장감이 조금씩 누그러졌다.
 
 ***
 
 민우는 교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교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분한 적은 처음이었다. 상대가 학교 일진이나 지성, 현태, 영목이 같은 아이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천우였다.
 대성 고등학교 공식 지정 왕따.
 얼마 전에는 혼자서 훌쩍거리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린 병신.
 당시 그 새끼가 유서에 자신의 이름을 썼을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던가. 친구들이 좆됐다는 말을 할 때는 뒷목이 서늘하기도 했다.
 개새끼, 유서에 내 이름을 적어놓기만 해봐. 가족한테 찾아가서 손해배상 청구할 테니까. 이 나라에서 못 살게 만들어 버릴 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새끼는 죽지 않았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 정도로 해서는 안 죽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 이제 마음껏 데리고 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온 녀석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뭐, 나한테 매달 30만 원을 가지고 오라고? 미친 개새끼. 죽여 버릴 테다. 반드시 오늘 놈을 저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릴 거야.
 민우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딩동딩동―
 점심시간의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까지 나한테 돈을 가져오라고? 웃기는 개소리 하고 앉아 있네. 이번에는 네 면상에다 담뱃불을 지져 주지.
 마침 경수와 혁진이 그의 앞을 지나쳤다. 반쯤 구겨진 우산을 쓰고는.
 저런 우산을 쓰니 비는 비대로 맞고, 짜증은 짜증대로 나지.
 “경수야, 혁진아.”
 민우는 반에서 가장 많이 어울려 다니는 경수와 혁진을 불렀다. 아침에 천우에게 당하고 나서 저들한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 녀석들은 지성이나 현태, 영목과 같은 일진이 아니다. 하지만 일진 녀석들도 이 둘은 잘 건드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 특별한 점도 없다. 머리 염색도 하지 않았고, 피어싱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둘에게는 머리에 총을 맞은 것 같은 똘기가 있었다. 경수는 하도 본드를 불어 대서 뇌가 살짝 맛이 갔다. 아마 반쯤 뇌가 녹지 않았을까 싶은 상태에서 학교 성적은 민우보다 뛰어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혁진도 마찬가지. 저 새끼는 손버릇이 고약하다. 하도 물건들을 훔쳐서 별명이 대도였다. 자기는 집 한 채 값은 될 정도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하는데, 민우가 보기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수천만 원 어치는 되는 것 같다. 일진들이 그를 안 건드리는 이유는 콩고물이 많이 떨어지는 때문이다.
 그렇다고 둘 모두 일진들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아니었다. 일진들과 어울리지 않을 뿐이지, 싸움 실력은 충분했다.
 “아침부터 왜 전화질이야? 너 때문에 잠 못 잤잖아.”
 경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민우를 바라봤다. 재밌는 일이라도 있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학교에는 왜 나오니?
 “누구 좀 까러 가자.”
 “누구?”
 “천우 새끼.”
 “천우?”
 “응.”
 “대성고 대표 왕따?”
 “맞아.”
 “일없다. 전교생이 그 새끼 괴롭히는데, 내가 거기에 꼭 껴야 되겠냐. 차라리 좀 쌈박한 애 좀 찾아봐라. 조금 가르치면 내 앞에서만 개 흉내를 낸다든지.”
 “걔가 우리 주머니인 것은 알지?”
 “그거야 당연. 아, 그 새끼······ 돈 안 가져왔어? 안 되는데. 오늘 유리랑 데이트 있는데.”
 경수가 허리를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그걸 보던 혁진이도 벽을 잡고 허리를 흔든다.
 미친놈들. 저런 정신 나간 행동을 하는데도 여자애들은 죽자 살자 저놈들한테 달라붙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젠 돈 없단다.”
 천우가 자신에게 돈을 가져오란 말은 뺐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쪽팔린 소리를 하지 못하겠다.
 민우는 생각했다. 아침에는 그 새끼가 미쳐서 날뛰긴 했지만, 지금쯤은 엄청 쫄아 있을 것이다. 여기는 학교다. 그 자식의 편이 돼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르긴 해도 2―A반에 도착하는 즉시 다구리를 당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민우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뭐? 돈이 없어? 그러면 안 되지. 우리의 지갑이 돈이 없으면 지갑으로서 구실을 못하게 되는 거잖아.”
 “어쨌든, 그 새끼 돈이 없단다. 아니, 이제 돈 내기 싫단다. 아무래도 손을 봐줘야겠지?”
 “그런 씨부럴 새끼가! 내가 손을 안 대니까 방구로 보나 보네. 가자, 그 새끼 잡으러.”
 민우는 씨익 웃었다.
 아침에 잘도 잘난 듯이 지껄였겠다? 지금도 똑같은 소리를 지껄일 수 있나 한 번 봐주지.
 민우는 담뱃불을 바닥에 던졌다. 빗물에 담뱃불이 저절로 꺼졌다.
 그때!
 교문 사이로 천우가 나타났다.
 
 
 
 받은 만큼 돌려주기
 
 
 천우 역시 마침 민우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이놈이 어디로 도망쳤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까지 돌아다녔는데.
 사실 학교 구조를 잘 몰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몇몇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무슨 벌레라도 보는 것처럼 쳐다본다. 감히 말을 붙인다는 표정이랄까.
 기가 막혔다.
 붙잡고 이유를 묻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아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우를 지나쳐 갔다.
 저들의 이름은 일기장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취급을 당했는데도······ 동생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던 것이다.
 전교 1등에 꽤 잘생긴 외모, 깨끗한 피부, 천혁 자신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분위기는 누가 봐도 훈남이라 여길 만했다.
 그런 동생이 왜 그토록 끈질긴 왕따를 당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천우가 민우의 반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린 이유는 층이 달랐기 때문이다. 놈의 반은 한 층 위에 있었다. 그는 계단을 올랐다.
 놈을 찾아갈수록 다시금 살의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분명 경고를 했는데, 놈은 무시했다. 그러니 이후의 일은 전적으로 놈이 책임을 져야 한다.
 천우는 입술을 뒤틀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빤하다. 지금쯤 친한 아이들을 모아서 나를 칠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런 놈들이 생각하는 것은 눈을 감고도 예측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냐.
 그건 싫다. 성격에도 안 맞고.
 동생과 나는 이제 한 몸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예의겠지.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다. 도리이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줬으면 자신은 두 배로 돌려받아야 한다.
 우연히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교문 근처에서 민우를 발견했다.
 야산에서 깨어난 후, 시력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졌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곳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막말로 민우가 서 있는 곳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개미도 보일 정도였다.
 새끼, 거기 숨어 있었냐.
 천우는 활짝 웃으며 놈이 있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민우가 몸을 숨기고 있는 건물의 공터로 들어섰다.
 건물을 짓고 남은 폐자재들이 잔뜩 남아 있는 이곳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기름이 묻은 나무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바닥에 둥둥 떠다녔다.
 “어이! 지갑! 이게 얼마 만이야?”
 지갑?
 천우는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멀쩡하게 생긴 아이를 보았다. 눈빛이 게슴츠레하다. 마치 술이라도 진탕 마신 것처럼. 동공이 좌우로 마구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명찰에는 경수라고 적혀 있었다. 일기장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민우, 혁진, 경수······ 이 세 명은 시간이 날 때마다 천우의 주머니를 털어간 놈들이다. 그런 일들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사실 돈은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특이한 방법으로 동생을 괴롭혔다.
 동생의 앞가슴과 등에 특이한 화상이 있었다. 모두 합쳐 스무 개 정도 되는 그것은 모두 담배로 지진 흔적이었다.
 어릴 적에는 자주 목욕을 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난 이후로는 같이 씻은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공중목욕탕도 같이 가지 않았다. 머리가 커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저놈들이 그런 것이다.
 
 놈들에게 나는 지갑이다.
 아니, 전교생의 지갑이겠지.
 그나마 다른 반 아이들은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해서 괴롭힘이 덜하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은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았다.
 반장부터 꼴찌까지······ 모두가 예외 없이 나를 때린다.
 나는 점점 겁이 난다. 이제 맞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맞지 않으면 언제 맞을까, 두려울 정도였다.
 이런 내가 싫다.
 맞는 것이 익숙한 내가 싫다.
 이제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 며칠 전에는 대학교 도서관에 들어가서 노트북 다섯 대를 훔쳤다. 그것을 인터넷에 싸게 올려서 팔았다. 다섯 대를 팔고 받은 돈은 백만 원. 그것 모두 애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다. 내가 남긴 돈은 한 푼도 없다.
 나는 미쳐 가고 있는 듯하다.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그저 놈들의 폭력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이 나를 기쁘게 했다.
 오늘도 무사히 넘겼구나.
 
 언제부터인가 경수가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웃통을 까보라며 옷을 벗기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그 말에 저항하지 못했다.
 경수는 내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며 욕을 했다. 심지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가축 취급을 하며 날 몰아붙였다.
 난 억울했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놈은 내 비굴한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벌을 받아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
 나는 그렇게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미친놈한테 대꾸라도 하는 날이면 머리통이 깨지고 만다. 놈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나를 때린다. 저번에는 부러진 녹슨 부엌칼로 나를 찌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혁진이 말려서 간신히 살았다.
 경수는 벌을 주겠답시고 나의 젖꼭지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치욕이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그럴 용기가 없는 내가 너무 싫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경수는 피우고 있던 담배로 나의 가슴을 지졌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머리로 치달았다.
 살이 타며 지울 수 없는 흉터가 가슴에 새겨졌다.
 그럼에도 경수는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나의 가슴에는 흉측한 상처가 늘어갔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진심으로······ 죽고 싶다.
 
 경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천우에게 다가왔다, 여느 때와 같이 입에는 담배를 물고서.
 “네가 경수?”
 “뭔 소리여? 그럼 내가 경수지, 쟤가 경수겠냐?”
 경수는 민우를 가리키면서 웃었다.
 “본드를 하도 불어서 머리에 구멍이 생겼다고 하더니, 진짠가 보네.”
 “뭐여? 누가 그래? 야, 니가 그랬어?”
 경수가 사나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민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니는?”
 이번에는 혁진을 바라본다.
 “개 잡소리 좀 그만해. 자꾸 그러니까 저 새끼 말처럼 뇌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잖아.”
 혁진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 씨벌, 그러니까······.”
 경수는 천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니가 헛소문을 맨들고 다닌다, 이거제? 요고요고, 며칠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컸네. 그래, 머리는 괜찮냐? 대갈빡 안 부서졌어? 저기 옥상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문서?”
 “너랑 말을 섞으니 내 머리도 썩는 것 같다. 야, 너.”
 천우는 민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민우가 흠칫 놀란다. 아직 아침에 당한 충격이 남아 있는 모양인지 자신도 모르게 천우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천우는 피식 웃었다.
 저 자식의 대갈통은 깨질 뻔했다. 사실 깨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내려쳤다. 하여간 사람의 목숨이란 꽤 질겨. 그렇게 내리쳐도 단단한 두개골은 좀체 박살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진짜로 네 손으로 뇌수를 만지게 해줄게.
 “야, 안 들려?”
 천우가 민우를 다시 불렀다.
 “왜, 이 새꺄!”
 민우는 거칠게 소리쳤다. 아침에 벌어진 일을 떨쳐 내려는 듯이.
 천우는 손바닥을 내밀며 흔들었다.
 “뭐야, 저게?”
 혁진과 경수는 천우의 손바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천우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지금 민우한테 돈을 달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양이 늑대를 잡아먹는 행위이고, 쥐가 고양이를 무는 짓이었다. 4살짜리 아이가 UFC 선수를 KO로 이긴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마디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천우가 하는 행동은 딱 그것이었다.
 뭐지, 이건?
 “안 보여?”
 천우가 다시 말했다.
 “그게 뭔데?”
 “너는 귓구멍이 막혔냐? 사람 말이 말 같지가 않나 봐. 그지?”
 천우는 민우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야, 지갑. 뭐하는 거야?”
 경수가 천우를 불렀다. 천우는 귀찮다는 듯이 경수를 보며 말했다.
 “너랑은 조금 있다 얘기할 테니까, 거기 자빠져서 쉬고 있어.”
 “뭐? 이런 좆만 한 새끼가.”
 경수가 나서려고 하자 혁진이 잡았다.
 “냅 둬. 옥상에서 뛰어내리더니 머리통이 다쳤나 봐. 민우한테 대차게 깨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럴까?”
 경수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불을 붙이고 길게 내뿜는다.
 이 담배를 다 피울 때쯤이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왕따 새끼일 것이다. 그럼 웃통을 까고 다시 한 번 교훈을 새겨주지.
 그래, 아예 상의를 찢어버리자. 그럼 얼마나 재밌을까. 상의를 벗은 채 학교로 돌아갈까, 아니면 집으로 갈까? 어디로 가든지 뒤쫓아가면서 실시간으로 동영상을 찍어야겠다.
 ‘개변태의 오전 일과’라고 올려야지.
 그런데······.
 “어라?”
 상황은 경수와 혁진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민우는 천우를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천우를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휘두른 주먹이 아니다. 경수와 혁진이 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액션만 취한 것이다.
 그런 주먹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릴 리가 만무했다.
 주먹은 너무도 쉽게 허공을 갈랐다.
 그러는 사이, 천우는 민우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 정확하게 명치를 가격했다.
 민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입이 벌어졌다. 침도 튀어나왔다. 제대로 맞은 모양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민우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천우의 팔꿈치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정면을 후려쳤다.
 덜컥!
 비록 소리는 크지 않지만, 꽤 큰 충격이 전달될 법한 타격이었다.
 민우의 고개가 뒤로 휙 젖혀졌다. 그의 턱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조금 전의 팔꿈치 휘두르기가 민우의 턱을 박살낸 것이다.
 “크흡.”
 민우는 무릎을 꿇으며 턱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에서 진위를 알 수 없는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민우의 뒤통수를 인정사정없이 밟아버리는 천우.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민우의 이마가 바닥에 찍혔다.
 천우는 운동화로 민우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의 턱과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천우의 운동화를 적셨다.
 “닦아.”
 “······.”
 “셋 셀 동안 닦지 않으면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지.”
 “좆 까, 씨발 새끼야.”
 민우는 전혀 반성이 없는 눈빛이다. 여전히 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민우의 눈빛은 경수와 혁진에게로 향했다.
 끝까지······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이제 너희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겠다.
 어중간하게 대하지 않도록 하지.
 모두 똑같이······ 대우를 해주겠다.
 천우는 피가 묻은 운동화로 민우의 면상을 짓이겨 버렸다.
 
 
 경수와 혁진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방금 전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눈을 비볐다.
 조금 전, 천우가 보여준 솜씨는 자신들로서는 따라 하지도 못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이건 도저히 일반적인 몸놀림이 아니었다. 흡사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듯한, 자신들의 막 싸움과는 많이 달랐다.
 “씨발, 어쩐지 민우 새끼가 아침부터 전화질을 하더라니. 얼굴도 씹창 나 있고. 너한테 깨졌구만.”
 경수는 바닥에 담배를 뱉었다.
 치익.
 빗물에 담배가 젖으며 빠르게 꺼졌다.
 쏴아아아―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천우는 홀딱 젖었다. 그럼에도 추위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몸속에서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다해서 열기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천우의 몸에서 허연 김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발밑에서 끙끙거리던 민우를 마치 공을 차듯이 멀리 차버렸다. 민우는 데굴데굴 굴러가서 기름이 뒤섞여 냄새나는 물에 처박혔다.
 “이 새끼, 정말로 대갈통에 이상이 생겼나 보네. 살다 살다······ 왕따가 이렇게 변하는 것은 처음 보네.”
 경수는 우산을 던져 버렸다. 어차피 반쯤 교복이 젖은 상태였다. 이래로 저래도 젖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폐자재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서 각목을 하나 쥐어 들었다. 끝부분에는 녹슨 못이 몇 개쯤 박혀 있었다.
 “꽤 오랫동안 맛을 못 봤지? 한 한 달 되나?”
 “한 달?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보름이다.”
 “보름? 이상하네, 내가 알기론 한 달인데. 야, 한 달 아냐?”
 경수는 혁진을 보며 물었다. 혁진은 담배를 빗물에 튕기며 말했다.
 “한 달.”
 “봐, 한 달 맞잖아.”
 “······.”
 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한 달이라고? 천우가 죽은 후, 한 달이나 지났단 말이야? 말이 안 되는데······.
 천우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들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 테지. 그만큼 동생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뭐,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보름이든······ 어디서 한 수 배워서 오셨나 봐요? 그죠? 오우, 좀 놀랐다. 병신 민우가 저런 꼴이 돼서 나자빠질 줄이야. 이제 쪽팔려서 저 새끼랑은 같이 못 다니겠다. 왕따한테 뒈지게 맞기나 하고, 참 잘하는 짓이다.”
 경수는 개처럼 킁킁거리며 웃었다. 혁수도 웃었다.
 천우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건지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다만······ 너희, 짜증 난다.
 쏴아아아아―
 천우는 큰 걸음으로 걸어 두 사람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놈들의 가슴에 똑같이 담배를 지져 주기 위해서.
 아니지. 오늘은 왠지 비가 온 탓인지 기분이 좋다.
 마치 쓰레기들을 씻어내라는 하늘의 계시라도 받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참회하라는 의미로 십자가를 새겨줘야겠지.
 정말 교훈적이잖아. 그렇지?
 조금 전에 민우가 당한 걸 봤으면서도 혁진과 경수는 전혀 경계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였다. 입가에는 미소마저 감돈다.
 천우가 다가서자 경수는 들고 있던 각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꽤 효율적으로 배웠어. 그건 인정. 하지만 이런 것도 배웠으려나? 너도 알지? 녹슨 못에 박히면 무슨 병에 걸린다던데. 뒈진다고. 킥킥킥, 그러니까 넌 뒈졌어.”
 그 말과 동시에 경수는 천우를 향해서 각목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병신, 파상풍도 모르나.
 천우는 입가에 비웃음을 매달며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경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경수와 혁진이 오판한 것.
 천우를 여전히 자신들의 밥이라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천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란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 자체도 바뀌었지만, 되살아나듯 새로 깨어난 천우는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통 인간 이상의 힘과 발달된 초감각은 경수와 혁진의 심장박동 소리마저도 잡아내고 있었다.
 경수의 각목은 거칠고 강하게 허공에서 휘둘러졌다. 그러는 동안 그의 품에서 천우가 빠르게 회전했다. 180도로 한 바퀴 몸을 돌린 천우의 팔꿈치가 정확히 목을 찔렀다.
 빠직.
 경수의 목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맞는 순간의 모양도 이상했다. 마치 마네킹의 목이 해머에 맞아 튕겨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랄까.
 천우는 반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수의 머리채를 틀어잡았다. 그러고는 경수의 무릎 뒤쪽을 발로 내리찍었다.
 자연 다리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머리채를 잡힌 채 무릎 꿇려진, 굴욕적인 자세.
 천우는 지체 없이 흙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기름에 뒤범벅된 더러운 흙이 경수의 코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절로 꼬로록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동생이 말했지, 형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녀석이 그런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 너희의 지옥은 어디일까? 내가 데려다 주지.”
 경수의 얼굴이 점점 깊게 바닥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늪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팔과 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살려 달라는 신호.
 하지만 누구한테 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이곳은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폐자재 창고 앞이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봤자 간신히 들릴까 말까 할 정도다.
 자, 발악해 봐라. 좀 더.
 천우는 경수의 머리통을 쿡쿡 쑤셔 박았다. 이제 경수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나고,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이런 개호로새끼가 미쳤나!”
 보다 못한 혁진이 천우의 등 뒤에서 각목을 휘둘렀다. 천우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바닥을 펴 각목을 막아냈다.
 퍼억!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한 듯하다. 각목에 박힌 못이 천우의 손바닥을 뚫고 나왔다.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찢어졌다. 찢긴 피부 사이로 상당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혁진은 흙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경수를 빼냈다.
 “푸아아악, 콜록콜록!”
 경수는 무릎을 꿇은 채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배 속에 있는 것들을 연신 게워냈다. 대충 씹어 삼킨 듯한 삼각 김밥의 내용물과 바닥에 고인 더러운 기름이 뒤섞여 튀어나왔다.
 “너, 너······ 이 개새끼, 뒈졌어!”
 경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천우를 노려봤다. 살쾡이 같은 살기가 천우의 전신을 찌릿찌릿하게 핥았다. 진심으로 천우를 죽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경수와 혁진을 바라보며 그는 손바닥에 꽂힌 각목을 뽑아냈다. 피가 분수처럼 울컥울컥 솟구쳤다.
 “카하하하, 너 이 새끼, 넌 끝장이야! 녹슨 못에 찔렸으니······ 넌 끝장이라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경수와 혁진은 배꼽을 잡고 웃는다.
 천우는 저놈들의 두개골을 열어서 뇌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코드가 왜 이렇게 다른 건데? 지금 이 상황이 뭐가 그렇게 웃긴 거지?
 천우는 찢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의 상처는 빠르게 아물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해 못할 상황.
 이내 핏자국만 남기고 상처는 치유됐다. 손바닥을 쥐었다 펴봐도 불편한 점은 없었다.
 나, 불사신이라도 된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뭐, 나쁘지는 않다. 어지간히 상처를 입지 않고서는 병원에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앞으로 복수를 해 나가려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달라진 몸 상태는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너희한테 무슨 몹쓸 짓이라도 했나?”
 천우는 못 박힌 각목을 주워 들었다.
 쏴아아아―
 세찬 빗줄기가 각목에 묻은 피를 모두 씻어냈다.
 “씨발, 그럼 지갑 따위가 감히 주인한데 개기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천우는 이마를 긁적거렸다.
 그래, 지금까지는 천우가 말 잘 듣는 지갑이었을 테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겠지.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어. 넌 개고, 내가 주인이다.
 내가 짖으라 하면, 넌 짖어야 할 거야.
 “오늘은 첫날이니까 봐주지.”
 “뭐?”
 “내일부터 너희 셋이 합쳐서 삼십만 원씩 가져와. 혹시 못 알아들었을까 봐 자세히 얘기해 주지. 너희 셋이 매일 점심때마다 삼십만 원씩 나한테 가져오는 거야. 왜냐고? 너희는 이제 내 지갑이니까. 기한은 졸업할 때까지야.”
 “뭐?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혁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이 천우에게서 받은 상납금은 일주일에 삼십만 원이었다. 그런데 저 새끼는 한술 더 떠서 매일 삼십만 원씩 가져오라고 한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저 헛소리에 짜증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새······ 아아아악!”
 혁진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의 어깨 위로 내려쳐진 각목 때문이다. 문제는 각목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못들.
 녹슨 못이 살을 찌르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살을 찢고 들어오는 그 섬뜩한 느낌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미치도록 아픈 통증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밀려왔다. 한두 대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겨우 한 대 가지고 엄살은.”
 천우는 경수와 혁진을 향해 무자비하게 각목을 휘둘렀다.
 푹! 푹! 푹! 푹!
 어깨, 발, 허벅지, 옆구리······ 어디 한 군데 가리지 않고 온몸에 못이 찔렸다. 두 사람은 밀려드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고통을 참지 못해 바닥을 기어서 도망쳤다.
 첨벙첨벙.
 천우가 둘의 뒤를 쫓으며 등허리에 사정없이 각목을 내리찍었다.
 “으아아아악! 잘못했어! 용서해 줘!”
 민우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이 믿기지 않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머릿속에 쾅쾅 박혀들었다.
 싸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건 살인행위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동이다.
 다시 학교로 나온 천우 놈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다.
 저 멈추지 않는 광기에 집어삼켜진 혁진과 경수는 제대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묵사발이 났다.
 이윽고 천우의 매질이 멈췄다.
 경수와 혁진은 숨만 겨우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둘은 숨을 할딱이며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천우의 눈치를 살폈다.
 “삼십만 원. 알았어?”
 “······.”
 경수와 혁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것이리라.
 지금 자신들이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몽둥이찜질을 당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군다나 매일 삼십만 원이라는 상납금까지 바쳐야 한다는 건······.
 “씨발, 개소리하지 마!”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겨난 것인지, 혁진이 벌떡 일어나 천우에게 덤벼들었다. 젖 먹던 힘을 쥐어짜 내 어깨로 천우의 배를 들이받았다. 왕따 새끼한테 삥을 뜯기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 같았다.
 하지만······.
 혁진의 큰 덩치가 천우의 가느다란 팔에 의해서 너무 쉽게 제지당했다.
 “어, 어어어어?”
 천우는 혁진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던져 버렸다. 그의 몸이 빙글빙글 돌아서 폐자재 위로 떨어졌다.
 와지끈―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혁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슴이 들썩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숨은 간신히 붙어 있는 듯했다.
 “어어어어······.”
 민우는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천우를 가리켰다.
 “맞아. 너는 악마를 만나게 된 거야. 아니지. 악마를 만들어낸 거지.”
 어느새 다가온 천우가 민우의 귓속에 속삭였다.
 달콤하게, 느리게, 듣다 보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로.
 “히이익.”
 민우는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이 녀석과 엮이기 싫었다. 혁진과 경수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지성이를 부르자. 지성이와 현태라면 충분히 이 개새끼를 죽여 버릴 수 있을 거야.
 민우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몸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뒷덜미를 천우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놔! 이 정신병자 새끼야!”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너희는 내 지갑이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돈 가져와.”
 “엿이나 먹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우는 민우의 뒤통수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와지끈!
 민우의 면상이 콘크리트 벽면에 갈린다. 한쪽 얼굴이 맷돌에 갈리는 두부처럼 심하게 긁혔다.
 “으아아아아악!”
 공포에 물든 민우의 비명이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 둔다면 민우의 얼굴은 완전히 갈리고 말 것이다.
 “그만해.”
 그때였다.
 누군가가 천우의 팔목을 잡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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