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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창조사 - 1 -

2013.08.10 조회 6,119 추천 65


 <무한의 창조사 1권 - 상>
 
 
 
 
 
 
 
 [※] 이 글은 픽션으로 이 글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상품, 기관 등은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프롤로그
 
 
 
 
 촤아아아아!
 가공할 만한 급류가 만든 소용돌이는 태현을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렸다.
 “으아아! 사…… 살려줘!”
 태현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지만, 소용없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온 물이 목구멍을 타고 폐에 들어찼다. 숨이 턱턱 막혀왔고, 몸부림칠수록 물은 더욱 많이 밀려 들어왔다.
 “크르릅! 끄어억……!”
 바위에 부딪혀 찢어지고 깨진 것보다 숨을 쉬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더욱 컸다. 정신이 조금씩 아득해져가는 순간 태현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크으……! 살려줘! 난 살고 싶어! 제발!’
 대체 무슨 수로 이 급류를 벗어날 수 있을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력한 존재일 뿐인 것을.
 기를 쓰고 살아보려 했지만 태현의 의식은 점차 흐려졌다.
 ‘이…… 이대로 주…… 죽는 거냐?’
 
 태현은 현재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다 모처럼 쉬는 날 경기도 가평에 있는 용추 계곡을 찾았다.
 그런데 급작스런 호우로 인해 갑자기 계곡물이 불어났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급류에 빠져 떠내려가는 어린아이를 목격한 것!
 아이를 붙잡아 물가로 밀어낼 때까지만 해도 무릎 정도에 불과하던 수위가 순식간에 허리 위로 차오를 줄이야.
 경황 중에 가까스로 아이는 구해냈지만, 정작 본인은 힘이 빠져 급류에 저항하지 못했다. 태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급류의 가공할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 * *
 
 “으……. 그런데 여긴 어디야?”
 태현은 왠지 느낌이 기이했다. 더 이상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바위에 부딪혀 부러진 팔도 멀쩡했고 숨도 편안하게 쉬어졌다.
 뭔가 이상했다.
 태현은 방금 전 일을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물에 떠밀려 가는 어린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힘에 부쳐 물에 휩쓸려 간 상황이었다.
 그때 정신을 잃었으니, 필시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이상해. 내가 왜 살아있는 거야? 난 분명 죽었잖아!’
 가공할 급류의 물살에 휩쓸렸던 기억을 떠올린 태현은 돌연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오한을 느꼈다. 물살에 떠내려 갈 때에 엄습했던 공포감,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태현을 덮쳐 왔다.
 “주…… 죽었잖아? 나는?”
 본능 저편에서부터.
 태현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는 감각이 가슴속에 아로새겨졌음을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태현은 자신이 죽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정말 죽은 거야?’
 태현의 몸이 떨렸다. 하긴 그 가공할 급류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청춘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불과 20세의 나이에 죽다니.
 태현은 11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원에서 지내다 작년에 대학에 합격하며 고아원을 나왔다.
 등록금은 장학금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간신히 충당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삶이 무척 힘겨웠지만 졸업 후의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며 태현은 이를 악물었다.
 태현이 생각하는 더 나은 미래는 사실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대학을 졸업한 후 열심히 돈을 벌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따스한 미소가 넘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동안 고아로 살았던 것이 너무 서러웠기에,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남들처럼 행복하게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는데…….
 이놈의 인생에는 행복이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나 보다.
 ‘흐윽……!’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허망함과 무거운 절망감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그동안에는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왔는데, 죽어 버렸으니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제길…….’
 서러움에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을까?
 슬픔 속에서도 태현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죽었으면 저승사자든 천사든 뭔가가 나타나야 정상일 것이다. 왜 아무도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는지 이상했다.
 ‘왜 꼭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냐?’
 그럴 리는 없었다. 그 상황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분명 자신이 그때 확실히 죽었다는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태현이었다.
 ‘하긴 내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이상한 옷을 입고 있을 리가 없지.’
 태현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망자들이 입는 옷이 분명해.’
 아주 칙칙한 갈색 빛의 셔츠와 바지. 게다가 발에는 정체불명의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었다. 투박한 재질의 그것들은 마치 영화에서 봤던 중세 유럽 시대의 하층민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것이었다.
 ‘여긴 어디? 난 어디로 가야 돼?’
 태현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사방 어디에도 마치 바다처럼 드넓고 푸른 초원만 보였다.
 ‘경치는 좋군.’
 탁 트인 초원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러나 태현은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 그런 풍경들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화아아악!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허공에 환한 빛이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그 빛을 쳐다본 태현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황당하게도 허공에 이상한 빛으로 이루어진 글자들이 떠 있는 것이었다.
 
 [퀘스트] 어둠의 카모리를 처치하라!
 [보상]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태현은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마치 게임에서나 볼 법한 퀘스트 설명 창이었다.
 
 
 
 
 
 
 
 
 
 
 
 
 
 
 
 
 
 1. 고대의 신 두마니스
 
 
 
 
 태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난데없이 게임의 퀘스트 창이 보이다니,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잠깐! 이거 혹시 꿈 아니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혹시? 어쩌면 급류에 휘말린 일도 꿈은 아닐까? 자신이 죽은 것도 혹시 꿈?
 ‘어……어쩌면!’
 태현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상황은 정말로 꿈에서라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꿈이면 제발 좀 빨리 깨어라.
 20세의 나이에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하단 말이다!
 그것도 급류에 떠내려가던 어린 소년을 구해 주다 죽는 건 너무 어이없지 않은가?
 태현은 당시 위험한 줄 알았지만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보고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뿔싸!
 아이는 구했지만, 태현은 급류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런 일들이 뉴스에서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자신에게 벌어질 줄이야.
 아이를 구해 준 상을 받지는 못할망정 대신 죽게 되었으니, 정말로 억울한 일이었다.
 ‘눈을 뜨면 자취방일지도 몰라.’
 지금 이 괴이한 상황뿐 아니라 급류에 휘말려 죽은 것도 모두 꿈일 것이리라. 태현은 마음을 졸이며 그렇게 확신했다.
 ‘정신 차려, 태현! 넌 이제 꿈에서 깨어나는 거야!’
 잠시 후 심호흡을 하며 조심스레 눈을 떴다.
 ‘……!’
 그러나 상황은 그대로였다.
 환하게 트여 있는 넓은 초원 지대.
 태현의 발밑으로는 백색의 커다란 원형 마법진 비슷한 그림이 생겨나 있었고, 허공에는 여전히 빛으로 이루어진 글자들이 반짝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말도 안 돼! 여기 정말 어디야?”
 태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점입가경이라고 할까? 어이없게도 눈앞에 또 다른 글자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름] 강태현
 [레벨] Lv.1[Exp 00.00%]
 [직업] 없음
 [HP] 50/50
 [MP] 50/50
 [힘] 10 [민첩] 10 [체력] 10
 [지혜] 10 [지능] 10
 
 난데없이 레벨이라니!
 그뿐인가? HP와 MP도 나와 있다. 힘과 민첩을 비롯한 스텟들도 보인다.
 ‘대체 왜 이런 게 또 보이는 거야? 어째서?’
 분명 가상현실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현실이 아닌 컴퓨터로 만들어진 게임 속에 존재하는 가상공간! 그곳은 오직 가상현실 캡슐을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태현은 비싼 가상현실 캡슐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과 캡슐방에 놀러가 그것을 몇 번 사용해 본 적은 있었다.
 그래서 문득 태현은 현재 자신의 몸이 가상현실 캡슐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가상현실 게임의 아바타인 지도 몰라. 이따위 괴상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면 태현의 실제 몸은 현재 가상현실 캡슐에 누워 있다는 말이었다. 대체 급류에 떠밀려 정신을 잃었던 자신이 어째서 가상현실 캡슐 안에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태현은 사실 가상현실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가상세계에서 할 일 없이 노닥거리는 짓이었으니까.
 먹고살기 바빠 매일 일을 해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하는 태현에게 있어 게임이란 부모 잘 만난 놈들이나 할 수 있는 사치스런 행위였던 것이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여기서 빨리 나가보자.’
 대체 왜 가상현실 캡슐에 누워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살아난 것이 확실하다면 할 일이 많았다.
 이제 다시 일을 해야 한다.
 내일부터 택배회사 물류 창고로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곳에서 상, 하차 분류를 도와주면 일당을 제법 받을 수 있다.
 사실 편의점이나 커피숍 서빙과 같은 좀 더 편한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시급이 낮아 비싼 등록금과 학비, 생활비에 필요한 돈을 모으기엔 부족하다. 몸이 힘들더라도 돈이 좀 되는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따라서 택배 회사 물류 상, 하차 분류 아르바이트나 각종 건설 현장에서 힘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주로 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한 달에 200만 원을 넘기기 힘든 게 현실이니, 가급적 하루라도 공을 치는 일이 없어야 했다.
 ‘이게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로그아웃을 하면 될 거야.’
 어떤 가상현실 게임이든 로그아웃을 통해 가상공간으로부터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게 된다.
 “로그아웃!”
 태현은 큰소리로 외쳤다. 순간 낯설고도 무미건조한 여인의 음성이 태현의 귓전을 때렸다.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당신은 로그아웃을 할 수 없습니다.
 
 가상현실 게임상의 시스템 음성인 듯했다.
 그런데 로그아웃 불가라니!
 게임에서 어째서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외쳐 봤다. 그러나 몇 번을 외쳐도 동일한 음성만 들려올 뿐이었다.
 “미치겠군. 왜 안 되는 거냐?”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현실로 돌아간단 말이냐?
 ‘그렇지. 운영자를 불러 따져 봐야겠군.’
 가상현실 게임에는 운영자 즉, GM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기에 게임의 유저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태현은 GM들과 상담을 시도해 보았다.
 
 -죄송하지만 당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슨 게임이 운영자와의 연결조차 되지 않는단 말인가?
 혹시나 이에 대한 설명이 있나 게임의 상태창이나 퀘스트 창을 살펴봤지만 소용없었다. 설마하니 게임 속에 갇히기라도 한 것일까?
 사람이 게임에 갇히다니.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태현은 문득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럼 나는 지금 어떻게 된 거야? 살아난 것 같기도 한데…….’
 왜 게임에 들어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게임에 있는 걸 보면 살아있는 것인지도.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급류에 휩쓸리고도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토록 멀쩡하다니 이상할 뿐이다. 초라한 중세 유럽풍의 옷을 입고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역시 뭔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죽은 것일까?
 그렇다면 이곳이 혹시 사후세계?
 “무슨 헛생각이냐?”
 태현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사후 세계가 게임과 같은 곳이라니 무슨 터무니없는 망상인가?
 “으아아! 여긴 대체 뭐야? 난 살아 있는 거야? 아니면 죽은 거야?”
 태현은 절규하듯 크게 외쳤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때 갑자기 상공에서 울려 퍼지는 음성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로그아웃 불가를 설명하던 시스템의 음성이 아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에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위엄이 서려 있었다.
 -절망하지 마라. 그대는 나 두마니스에게 선택되었다.
 두마니스?
 ‘누구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신과 같은 음성을 발하는 자의 이름인 듯했다.
 그런데 선택되었다고? 급류에 휩쓸려 비참하게 죽은 사람에게 대체 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태현은 울컥하여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대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라.
 주어진 임무라면? 설마 조금 전 보았던 퀘스트를 말하는 것일까? 태현은 가까스로 힘을 내서 입을 열었다.
 “대체 여기는 어디죠?”
 -이곳은 파라다피아라 불리는 게임 속 세계다.
 이럴 수가! 짐작했던 대로 게임 속 세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파라다피아라는 게임도 있었나?
 파라다이스도 아닌 파라다피아라니 왠지 우습다.
 ‘어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그러고 보니 근래 들어 뉴스 등을 통해 꽤 자주 들어본 익숙한 이름이 아닌가? 메이저급 게임 회사인 SY소프트에서 얼마 전 오픈한 가상현실 게임의 이름이 다름 아닌 <파라다피아>였다.
 이 게임이 각종 매체 등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유는 얼마 전 작고한 <네르옹>이라는 한국계 프랑스인 천재 개발자가 만든 전설적인 인공지능 때문이었다.
 그 인공지능의 이름은 <파라존>.
 <파라존>은 별다른 운영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혼자서 파라다피아의 전반을 완벽하게 관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퀘스트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했다.
 파라다피아라는 가상현실 세계를 스스로 진화시키는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
 그로 인해 <파라존>은 이른바 신의 인공지능이라 불리고 있었다.
 무한대로 생겨난 각종 퀘스트는 각 유저의 성향에 따라 개별적인 퀘스트를 발생시키고, 그로 인해 유저들은 흡사 게임이 아닌 실제 판타지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했다.
 그런 만큼 게임 좀 해봤다는 이들부터 게임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까지 모두가 파라다피아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곳이 설마 그 게임은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파라다피아라는 게임과 이곳 세상이 같은 곳일 리는 없다. 게임과 같은 퀘스트 창이 나타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 이곳은 엄연히 사후세계가 아닌가?
 그래도 왠지 기분이 이상해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여기가 사후 세계인가요?”
 -그대는 죽었다. 허나, 그렇지 않기도 하다.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대…… 대체 난 지금 어떻게 된 거죠?”
 -시간의 흐름이 그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리라. 이제 시험의 때가 왔다.
 “시험? 무슨 시험인데요?”
 -시험을 통과했을 때 그대는 다시 삶을 얻을 것이나, 실패한다면 다시 죽을 것이다.
 두마니스는 시험을 통과하라는 말만 거듭하고 있었다.
 통과하면 다시 삶을 얻지만, 실패하면 죽을 것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무엇보다 태현은 도무지 자신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마니스는 사후세계가 아니라 했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어찌 아는가?
 살았다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죽었을까?
 하지만 죽은 사람이 게임 속에 무슨 수로 접속해 있단 말인가?
 태현은 점점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참, 그렇지. 시험이라면?’
 태현은 고개를 돌려 허공에 아직도 남아 있는 퀘스트 창을 쳐다봤다. 그 사이 퀘스트 창은 좀 더 상세한 설명이 나타나 있었다.
 
 [퀘스트] 어둠의 카모리를 처치하라!
 [보상]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설명] 두마니스의 선택을 받은 자여! 마신 헤르피어스의 하수인인 어둠의 카모리(Lv20, Boss)가 그대를 죽이기 위해 출발했다. 반드시 카모리를 격파하여 그대의 생존을 도모하라!
 
 “혹시 저 퀘스트를 통과하라는 것입니까?”
 -그러하다. 하지만 그대는 아직 약하여 어둠에 대항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속히 강해지라! 그리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시험을 통과하라니! 태현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두마니스의 말을 들어 보건대, 어둠의 카모리라 불리는 게임상의 괴물이 태현을 찾아오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게임 속에 들어와 있고, 또 그런 괴물과 싸워야 되는지 태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레벨 20이나 되는 몬스터를 죽이라는 거야?’
 어둠의 카모리(Lv20, Boss).
 태현은 게임을 자주 해보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현재 태현의 레벨은 고작 Lv1.
 그런데 퀘스트 설명을 보면, 지금 태현을 찾아오는 어둠의 카모리라는 놈은 무려 Lv20의 몬스터다.
 게다가 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놈이 네임드 몬스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는 보통 몬스터보다 훨씬 강한 몬스터! 같은 레벨의 다른 몬스터에 비해 몇 배나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면 말을 안 한다. 그 뒤에 Boss라고 적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어둠의 카모리는 단순한 네임드 몬스터 정도가 아니라, 네임드 보스 몬스터인 것이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는 네임드 몬스터보다 몇 배 이상 강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본다면 태현은 보통의 Lv20 몬스터보다 가히 10배 이상, 어쩌면 그 이상 강할 지도 모르는 무식한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Lv1의 태현과 Lv20 네임드 보스 몬스터의 대결!
 승부의 결과는 뻔했다. 어둠의 카모리와 마주치는 순간 태현은 처참하게 뭉개질 것이다.
 태현이 현실에서 아무리 검도와 격투기를 수련한 몸이라 해도 이곳은 게임! 레벨의 격차를 무슨 수로 극복하란 말인가?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겁니까? 어둠의 카모리는 네임드 보스 몬스터잖아요?”
 -운명을 걸고 싸우라! 불가능을 가능케 하지 않는다면 그대에게 미래의 시간은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운명을 걸고 싸워?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고? 말이야 쉽다.
 “대체 내가 왜 그런 무서운 놈과 싸워야 되는데요?”
 -그대가 싸워 이기면 저절로 알게 되리라!
 “쳇! 누가 이따위 미친 짓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시죠.”
 -정녕 시험을 회피하려 하는가? 그렇다면 그대에게 남은 건 끔찍한 죽음뿐이다. 살고 싶다면 어둠의 카모리와 싸워 이기라!
 두마니스의 차가운 음성에 태현은 몸을 흠칫 떨었다.
 ‘뭐? 싸워 이기지 않으면 끔찍하게 죽어?’
 그냥 죽는 것도 아니고 끔찍하게 죽는다니.
 설마 그럴 리가 있는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태현은 두마니스의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이 퀘스트를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하지만 고렙의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지금 이 상태로라면 내가 놈을 이길 가능성은 없어. 그놈과 마주치면 끝장이야.’
 놈과 싸워 이기려면 태현 역시 레벨을 상승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할 수 있다면 무조건 레벨 업에 치중하는 게 좋으리라.
 그러던 태현은 문득 퀘스트의 보상 부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보상] 현실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니, 저건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까는 경황이 없어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정말로 저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설마?’
 아무래도 잘못 쓴 듯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잠깐만! 진짜로 저 퀘스트 보상이 가능해요?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그러하다. 그대가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면 그 보상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보상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말이 돼?’
 태현의 얼굴이 세차게 일그러졌다. 어지간하면 참고 들어주려 했건만.
 ‘정말 못 들어 주겠군. 이따위 개 헛소리를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보자보자 했더니 사람을 무슨 보자기로 보는 거냐?
 시험에 통과하면 현실로 보내 준다니!
 ‘만일 내가 죽은 상태라면 무슨 수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거야?’
 물론 태현은 여전히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 보니 태현은 두마니스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두마니스의 음성에는 태현으로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신비한 권위가 서려 있었다.
 태현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두마니스! 대체 당신의 정체는 뭐지요?”
 두마니스라는 정체불명의 존재. 사람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현실로 보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혹시 신입니까?”
 -그대는 후에 알게 되리라.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두마니스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근데 왜 나를 이 이상한 게임 속으로 들어오게 한 겁니까?”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태현으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기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대가 매우 특별한 선한 의지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선한 의지요? 전 별로 착한 사람이 아닌데요?”
 -그대는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해 남을 도울 줄 아는 자가 아닌가.
 태현은 그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급류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구하고 대신 죽은 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태현은 속으로 씁쓸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야 뭐? 솔직히 말하면 대신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요?’
 아이가 떠내려가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뛰어든 것뿐이다. 정말로 자신이 죽을 줄 알았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때 두마니스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선한 의지를 가져 선택된 자여! 그대는 앞으로 나를 도와 매우 중대한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그대는 외관상 파라다피아의 다른 유저들과 같은 게르로서 성장해 나가게 될 것이라.
 “다른 유저들도 있나요?”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했지만 정말로 이곳 세계가 파라다피아라는 실제의 가상현실 게임이었다니.
 그런데 이곳 게임에서는 유저를 게르라 말하는가 보다.
 -게르들을 만났을 때, 나와 있었던 일을 말해서는 안 됨을 명심하라. 발설 시 그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왜죠? 발설하면 그땐 당신이 나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그대는 나 두마니스의 선택을 받은 자! 설령 그 어떤 극한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내가 그대를 죽일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
 두마니스의 음성은 이어졌다.
 -다만, 그대가 나의 선택을 받은 자임을 마신 헤르피어스의 부하들이 알게 되면 그대는 매우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때는 나 역시 그대를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
 “마신 헤르피어스가 누군데요?”
 -그에 대해서는 차차 알게 되리라. 부디 강해지라. 그리고 살아남으라. 그대의 투쟁에 그대의 삶이 걸려 있으니!
 그 후로는 태현이 무슨 질문을 해도 두마니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태현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퀘스트 창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막막하네.’
 대체 무슨 수로 어둠의 카모리라는 놈을 처치한단 말인가?
 지금으로서는 레벨을 상승시키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레벨 업(Level up)!
 레벨을 올리려면 보통 몬스터를 해치우거나 혹은 또 다른 퀘스트를 해결해서 경험치를 획득하면 된다. 어떤 게임이든 초반은 레벨 업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일단 활용 가능한 정보부터 파악해 봐야겠군.’
 태현은 게임 설명창을 살펴보기로 했다. 게임을 많이 해보지 않아 익숙하지는 않지만, 게임을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들은 바로 스텟을 비롯한 캐릭터의 능력치와 장비, 인벤토리에 들어 있는 아이템들, 그리고 현재 시전 가능한 스킬의 확인 등이었다.
 
 [이름] 강태현
 [레벨] Lv.1[Exp 00.00%]
 [직업] 없음
 [HP] 50/50
 [MP] 50/50
 [힘] 10 [민첩] 10 [체력] 10
 [지혜] 10 [지능] 10
 
 스텟은 모두 10포인트로 동일했다.
 도움말에서 레벨이 상승할 때마다 모든 스텟이 1포인트씩 상승하며 임의로 분배할 수 있는 보너스 스텟이 2포인트 주어진다 했다.
 그런데 레벨 10이후부터는 각 직업에 따라 스텟 상승의 폭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레벨 10이 되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전투 관련 직업군은 전사, 마법사, 사제, 궁수, 암살자 계열 등이지만, 특별한 인연을 통해 희귀한 직업들도 습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태현은 진지하게 레벨 10이후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했다.
 두마니스는 이번 퀘스트를 해결하면 현실로 내보내 주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섣불리 믿기도 힘들다. 두마니스에게 어떤 꿍꿍이가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이러다 어쩌면 게임 속에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지도 결정해야 했다.
 기왕이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을 선택해야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괴이한 미래를 헤쳐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뭐 나야 당연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남자는 주먹(?), 아니 전사다!
 태현은 운동을 좋아하는 체질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꾸준히 검도와 격투기 수련을 해왔다. 그러니 게임에서도 그와 같은 직업을 선택하는 게 적성에 맞을 것이다.
 전사 계열을 자세히 살펴보니 검사, 권사, 창술사, 수호사 등을 비롯해 무려 10여 개나 되는 세부 직업들이 존재했다.
 태현은 내심 그중에서 검사를 점찍어 두었다.
 계속해서 장비 창과 인벤토리 창을 열어 보았다.
 
 [장비]
 
 [*] 투박한 여행자용 갈색천 상의
 -등급 일반
 -내구 23/23
 -물리 방어력 3
 
 [*] 투박한 여행자용 갈색천 하의
 -등급 일반
 -내구 17/17
 -물리 방어력 2
 
 [*] 투박한 여행자용 부츠
 -등급 일반
 -내구 24/24
 -물리 방어력 1
 -회피율 1
 
 [인벤토리]
 -비어있음
 
 장비창에는 여행자용 기본 장비가 세팅되어 있고, 인벤토리에는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무기도 없고 지도도 없군.’
 게임에서 그리 흔하디흔한 목검과 같은 기본 무기도 없다니. 설마 몬스터를 만나면 맨주먹으로 싸워야 하는 거냐?
 게다가 지도가 없으니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아볼 수도 없었다. 보통 게임에서는 자동적으로 현재 좌표와 미니맵이 표시되는데 , 이 게임에서는 설마 지도를 획득해야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여러모로 골치 아프군.’
 태현은 마지막으로 스킬 설명창을 살펴봤다.
 
 [*] 배시(Lv1)(Active)
 -무기를 휘둘러 적에게 물리적 타격을 준다.
 -공격거리 : 2m 이내
 -공격력 : 3-5
 -숙련도 00.00%
 -소모 MP 5
 
 ‘배시? 공격 스킬이 고작 이거 하나야?’
 배시는 그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공격 스킬이지만 위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지금은 하다못해 각목과 같은 손에 쥘 수 있는 무기 하나 없는 상태가 아닌가?
 이런 상태로 몬스터를 만나면 무슨 수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면 꾸준히 갈고 닦은 검도와 격투기 실력으로 어지간한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곳은 게임!
 당연히 모든 전투력이 디지털화된 수치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수치는 스텟과 장비, 그리고 스킬 등을 종합해 계산되는 것이기에, Lv1인 태현의 수준으로는 약한 저렙 몬스터와 싸워 이기는 것도 쉽지 않을 터였다.
 ‘흠? 근데 이건 뭐지? 얼티메이트 스탤스……?’
 상태 창의 하단에 버프 창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현재 태현이 받고 있는 한 가지 축복 버프가 설명되어 있었다.
 
 [버프] 얼티메이트 스탤스
 -두마니스의 축복 버프
 -시간 : 무한
 -본인의 게임 접속과 관련된 모든 로그 기록이 은폐되며, <파라존>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놀랍게도 현재 태현의 접속 상태를 파라다피아의 인공지능인 파라존이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버프였다.
 이런 사기적인 버프가 있다니.
 어떻게 게임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신의 인공지능 파라존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두마니스가 준 버프였다.
 ‘그에게는 인공지능을 속이는 능력도 있나?’
 그토록 가공할 능력을 가진 두마니스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하긴, 태현의 영혼을 게임 속으로 불러들여 아바타가 되게 만들기도 했으니 새삼스레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게 진실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직 태현이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오히려 머리만 지끈거릴 뿐이었다.
 그러한 고민을 하기보다 차라리 지금은 Lv1 정도 수준의 몬스터가 있는 사냥터를 발견해 레벨을 올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일단 아무 데나 가보자.’
 멍하니 서 있기보다 움직여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방 어디를 살펴봐도 광활한 초원 지대만 펼쳐 있을 뿐이다. 몬스터는커녕 작은 풀벌레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가야 몬스터들이 있는 거야?’
 무턱대고 걷는다고 능사는 아닐 텐데.
 한참을 걷던 태현은 큼직한 바위 하나를 발견했다. 바위에는 웬 글자들이 정교하게 파여 있었다.
 
 [크람 마을] 북서 방향 4.5km
 
 ‘크람 마을?’
 북서쪽으로 4.5킬로미터 정도 이동하면 마을이 나타난다고 적혀 있었다.
 ‘좋아. 저곳 크람 마을로 가보자.’
 마을에 가면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사냥터와 관련된 정보를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적지 않은 정보나 혹은 퀘스트를 획득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새로운 퀘스트 [크람 마을을 방문하라!]가 생성되었습니다.
 
 태현은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허공에 또 다른 퀘스트 창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새로운 퀘스트?’
 바위 이정표를 읽었을 뿐인데 퀘스트가 생성되다니. 대체 어떤 퀘스트일까?
 
 [퀘스트] 크람 마을을 방문하라!
 [보상] 소정의 Exp
 [퀘스트 완료 NPC] 크람 마을의 촌장 나르엔
 [설명] 북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난민들이 개척한 마을이 나타난다. 그곳에 가서 촌장 나르엔을 만나라.
 단, 그 어떤 상황에도 그대가 용맹한 게르임을 잊지 말도록 하라.
 
 설명을 읽어 보니 태현이 크람 마을로 가서 촌장을 만나기만 하면 완료되는 그야말로 초간단 퀘스트였다.
 ‘이 퀘스트를 완료하면 경험치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건가? 후후, 어차피 이 마을에 갈 생각이었는데 퀘스트가 생기니 잘됐네.’
 경험치 보상은 곧 레벨 상승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태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크람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정표 역할을 하는 바위에 북서쪽의 방위가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쪽으로 오솔길도 호젓하게 나 있어 크람 마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2.초보자 마을
 
 
 
 
 크람 마을은 대략 400여 명이 거주하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1백여 채의 급조된 가옥 외곽으로 두꺼운 통나무로 만든 방책이 둘러져 있었고, 방책을 따라 무려 16개의 방어탑이 보였다. 각각의 방어탑마다 활을 든 궁수들이 서너 명씩 배치되어 엄중한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저길 봐! 누가 온다!”
 “수상한 녀석이 마을로 접근하고 있다!”
 낯선 인물인 태현이 마을에 접근하자 곧바로 비상이 걸렸다. 곧바로 가죽갑옷으로 무장한 경비병 2명이 날카로운 단창과 둥그런 방패를 앞세우고 태현을 향해 달려왔다.
 “거기 멈춰라!”
 “누구냐? 낯선 이는 신분을 밝혀라!”
 태현은 흠칫하며 멈춰 섰다. 그는 자신이 중세 유럽풍의 갑옷을 입은 경비병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 왠지 신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이들이 뾰족한 창을 내밀고 흉흉한 눈빛으로 태현을 노려보고 있다는 데 있었다. 여차하면 저 창에 찔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태현은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마을에 중요한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들어가면 안 될까요?”
 “흠, 물론 얼마든지 들어가도 된다. 다만 그 전에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하지. 우선 너의 출신부터 말해보겠느냐?”
 “그건…….”
 태현은 문득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자 경비병이 인상을 찡그리더니 차갑게 말했다.
 “출신이라고 말하니 어렵나? 그럼 쉽게 말해 주지. 너의 국적을 말하라는 것이다. 또한 신분도 말해야겠지. 또한 왜 우리 마을에 나타났는지, 너의 목적을 말해라.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질문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재빨리 설명 창을 뒤져보았지만 그런 건 나와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국적을 뭐라고 해야 된단 말인가?
 “빨리 말해! 뭘 꾸물대는 거냐?”
 “흐흐! 아무래도 창에 찔리고 싶은가 보군.”
 뭐? 창으로 찌르겠다고? 태현은 황급히 대답했다.
 “저는 한국에서 왔고 대학생입니다. 그리고 목적은…….”
 “잠깐, 한국이라고? 그런 나라도 있었나?”
 경비병이 돌연 뒤를 돌아 동료 경비병에게 물었다.
 “없지. 그런 나라가 어딨어? 대학생이라는 신분도 처음 들어보는군 그래.”
 이럴 줄 알았다. 태현은 흠칫 놀랐고 경비병들의 눈초리는 험악해져 있었다. 그 사이 경비병들은 더욱 모여들었고 어느새 10여 명이 넘는 경비병들이 태현을 포위했다.
 “이 녀석 왠지 수상해. 횡설수설하는 것도 그렇고. 혹시 유레아 제국의 첩자 아니야?”
 “그럴 지도 몰라. 일단 가둬 놓고 심문해 보자.”
 태현은 즉시 체포되었다. 10여 명의 경비병들에게 포위된 상태라 저항도 불가능했다. 태현은 이내 꽁꽁 묶여 어둑한 지하실로 끌려갔다.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단검을 든 사내가 나타나 태현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의 정체는 뭐냐?”
 “나는 당신들이 우려하는 첩자가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그러자 사내는 입술을 실룩이며 웃었다.
 “큭! 첩자 스스로 자신이 첩자라 밝히는 거 봤나? 하지만 언제까지 말 안 하고 버틸 수는 없을 거야. 그래봤자 한쪽 눈알이 뽑히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까 말이야.”
 뾰족한 단검의 끝이 태현의 왼쪽 눈을 향해 다가왔다. 태현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뭐야? 진짜로 눈을 파내려는 거야?’
 사내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소름끼치는 일을 당할지 모른다. 태현은 아무리 현실이 아닌 게임이라지만 결코 눈알을 뽑히는 끔찍한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이 마을의 촌장인 나르엔 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사내의 두 눈이 커졌다.
 “어떻게 나르엔 님을 알고 있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퀘스트……아니,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나의 임무를 마칠 수 있습니다.”
 “임무라고? 무슨 헛소리냐? 다짜고짜 촌장님을 만나려 하다니 역시 수상하군. 네놈은 유레아 제국의 첩자가 분명해.”
 사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가 손에 쥔 단검의 끝이 다시 태현의 왼쪽 눈을 향해 사납게 다가왔다.
 그 순간 태현은 퀘스트의 설명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그 어떤 상황에도 그대가 용맹한 게르임을 잊지 말도록 하라…….’
 
 그러고 보니, 깜빡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혹시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게르!”
 태현이 황급히 외치자 사내의 손이 멈췄다.
 “바…… 방금 뭐라 했느냐?”
 “게르! 그것이 바로 나의 신분입니다.”
 
 * * *
 
 태현의 입에서 게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사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내 로핀은 차갑고도 딱딱한 눈빛으로 태현을 노려보더니 불쑥 돌아서서 나갔다.
 “잠시 기다려라.”
 대체 저들에게 게르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놀라는 것일까? 태현이 알기로 파라다피아라는 게임 속 세계에서 게르라는 종족은 분명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철컹!
 로핀은 금세 다시 나타났다.
 “따라와라. 일단은 나르엔 님이 네놈을 만나 보겠다고 하셨다.”
 로핀의 표정은 약간 상기된 듯하면서도 여전히 냉랭했다.
 “흐흐! 그러나 나는 솔직히 네놈을 믿을 수 없어. 만일 게르라는 말이 거짓이라면 처절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응분의 대가라니요?”
 “목을 따버리겠다는 것이다.”
 태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좀 전에는 눈알을 파내려 하더니 이번에는 무식하게 목을 자른다?
 “난 게르가 맞으니 목 잘릴 각오는 할 필요가 없겠군요.”
 “큭! 부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라지.”
 로핀은 태현을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밧줄에 묶여 답답하긴 했지만 태현은 속으로 안도했다. 이제 촌장 나르엔을 만나기만 하면 [크람 마을을 방문하라!]는 퀘스트가 완료될 것이다.
 ‘하마터면 저 무식한 인간에게 눈알이 뽑힐 뻔 했네.’
 게임이라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마을로 불쑥 접근한 것인데, 이와 같은 험악한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긴장하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 쫄 필요도 없다. 두려움에 눌리지는 말되 정신은 바짝 차리자는 거다.
 태현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담담히 로핀의 뒤를 따라갔다.
 “이 봐! 여긴 나르엔 님이 계신 곳이다. 그분께 무례를 범하는 순간 네놈의 목은 바닥을 구르게 될 거야. 내가 네놈의 목을 따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라.”
 로핀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2층 집 앞에 멈춰 서서는 또다시 태현에게 한바탕 엄포를 놓았다. 태현은 힐끗 그를 노려봤다.
 “보자보자 하니까 툭하면 목을 자르겠다고 지랄이군. 내 목이 그리 못마땅하냐?”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이 태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편에서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리라.
 “이쪽이다.”
 그때 로핀은 태현을 통나무집 안으로 끌고 갔다.
 복층으로 지어진 통나무집의 내부는 밖에서 본 투박한 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깔끔했다. 푸른색 양탄자 위에 테이블과 의자, 소파 등으로 꾸며진 아래층은 집무실로, 위층은 침실로 사용하는 듯했다.
 그런데 아래층에는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떠질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오연히 서 있는 것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부드러운 금발에 연분홍색 피부. 짙푸른 눈동자는 마치 푸른 보석처럼 반짝였다. 전신에서 인간 같지 않은 신비한 기운을 풍기는 저 아름다운 여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미소녀 엘프인가? 아니면 요정? 정말 예쁘구나.’
 무엇보다 가슴이 완벽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글래머 미인이랄까?
 풍만한 가슴을 가진 미인! 그것은 태현의 이상형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이자 꿈이었을 뿐, 태현은 지금껏 그런 애인을 사귀어 본 적은 없다.
 아니, 아직껏 태현은 여자와 연애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고아원에서 독립한지 이제 2년째! 힘든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는 태현에게 연애란 사치에 불과할 뿐이니까.
 ‘젠장!’
 그 생각을 하자 문득 울컥하고 서러운 감정이 복받쳤다.
 사실 태현은 대학생이 되면 예쁜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 사랑을 키워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멋진 가정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런데 설마 물에 빠져 처참하게 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과연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다시 살아날 수는 있는 거야?’
 지금은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알 수 없는 괴이한 유저 상태로 게임에 갇혀 있을 뿐이다. 막연한 미래를 생각하자 태현은 가슴이 답답했다.
 여인이 다가왔다.
 “그자인가요, 로핀?”
 “예. 나르엔 님. 이자 스스로 자신이 게르라고 말했습니다만, 거짓말 같으니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유레아 제국의 첩자일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물론이에요. 첩자일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요.”
 고개를 돌려 태현을 쳐다보는 나르엔의 두 눈이 싸늘하게 빛났다.
 한편 태현은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반색했다.
 ‘나르엔? 그러면?’
 퀘스트 완료 NPC의 이름이 나르엔이다. 설마 크람 마을의 촌장이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일 줄이야.
 
 -퀘스트 [크람 마을을 방문하라!]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경험치 2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예상대로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태현은 퀘스트가 완료됨과 동시에 보상으로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로 인해 태현의 레벨은 곧바로 Lv1에서 Lv2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름] 강태현
 [레벨] Lv.2[Exp 20.00%]
 [직업] 없음
 [HP] 55/55
 [MP] 55/55
 [힘] 11 [민첩] 11 [체력] 11
 [지혜] 11 [지능] 11
 [미분배 보너스 스텟 포인트] 2 points
 
 ‘후후, 레벨이 올랐구나.’
 몬스터를 사냥한 것도 아닌데 퀘스트만으로도 경험치를 획득해 레벨이 올랐다. Lv10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태현은 왠지 흐뭇했다.
 ‘미분배 보너스 스텟은 힘에 올인해야겠군.’
 태현은 즉시 힘 스텟에 2포인트를 분배해 13으로 상승시켰다.
 ‘왠지 힘이 불끈 솟는구나!’
 주먹을 꽉 쥐어본 태현의 두 눈이 강하게 번뜩였다.
 전사 계열의 직업을 선택하려면 힘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힘 스텟이 상승하면 물리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대 HP가 상승하는 체력 스텟에도 투자해야겠지만, 그것은 레벨이 좀 더 오른 후에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저렙인 지금은 물리 공격력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쪽이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유리할 터였다.
 “아! 그 빛은!”
 “오오! 설마?”
 그때 나르엔과 로핀이 태현을 쳐다보며 감탄성을 발했다.
 물론 그들은 조금 전 태현의 몸을 휘감았던 눈부신 빛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빛은 유저 즉 게르의 레벨업 시에만 일어나는 특수효과로, 나르엔 등에게는 그 빛이야말로 게르임을 증명하는 특별한 징표로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아! 설마 했지만 이 마을에도 게르가 찾아올 줄은 몰랐어.’
 나르엔은 세차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곳 미개척지의 수많은 마을에는 멀리 바다 건너 칸디아스 대륙에서 유레아 제국의 폭정 아래 있다가 반기를 들고 탈출한 난민들이 모여 있었다.
 검술과 창술로 유명한 베라카 왕국의 인간들을 필두로 쉬르 숲의 엘프족과 테힐라 산의 드워프족, 아이노스 숲의 페어리족, 마지막으로 마탑이 있는 에파이노스 공국이 바로 반제국 동맹군이었다.
 
 베라카 왕국
 엘프족
 드워프족
 페어리족
 에파이노스 마탑
 
 그러나 반제국 동맹군은 유레아 제국 연합군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마검술로 유명한 알라조네 왕국을 필두로 파괴적인 단검술을 구사하는 셰케르 숲의 다크엘프족, 끔찍한 마물들을 소환하는 카자브 산의 메나족, 가공할 전투 보병군단을 보유하고 있는 프라우드 오크 왕국, 마지막으로 사악한 흑마법을 구사하는 보스터스 흑탑 등이 유레아 제국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다.
 
 유레아 제국
 알라조네 왕국
 다크엘프족
 메나족
 오크 왕국
 보스터스 흑탑
 
 전쟁이 시작된 후 반제국 동맹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휘하의 수많은 인간들과 이종족들이 유레아 제국 연합군의 포로로 전락했다.
 엘프와 페어리의 숲이 불탔고, 왕국과 산은 점령당했다. 많은 광산과 각종 진귀한 아이템들을 무수히 소유해 칸디아스 대륙을 통틀어 가장 부유했던 드워프들의 모든 보물들은 유레아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반제국 동맹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대부분 포로가 되거나 일부는 바다를 건너 이곳 미개척지의 대륙으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개척지는 척박하기 그지없었다. 뜨거운 죽음의 사막을 지나 초원 지대를 찾았지만 곳곳에 각종 몬스터들이 득실거려 생존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뜻이 맞는 난민들끼리 모여 크고 작은 마을들을 형성해 가까스로 살고는 있지만, 몬스터의 습격은 점점 더 난폭해졌다. 더욱이 유레아 제국에서 이곳 미개척지로 토벌군을 보낸다는 소문도 있어 하루하루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바로 그때 놀랍게도 헤르피어스라 불리는 신의 가호가 일어났다.
 헤르피어스.
 그는 자신을 파라다피아 세계의 주신(主神)이라 칭했고, 자신을 섬기는 사제들을 통해 난민들에게 뜻을 전했다.
 조만간 미개척지 도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간들과 이종족들을 위해 용맹한 이방인 구원자들을 보내주겠다는 것.
 게르.
 헤르피어스는 그 이방인 구원자들을 일컬어 게르라 했다.
 그로 인해 미개척지에 흩어진 인간들과 이종족들은 게르가 어서 오기를 학수고대했고, 그러한 가호를 베풀어 준 헤르피어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곳곳에 신전을 만들었다.
 그 후로 이곳 이름 없던 미개척 대륙의 이름은 신의 이름을 따 헤르피어스 대륙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 그토록 고대했던 이방인 구원자 게르들이 대거 나타나 미개척지의 마을들을 돕고 있다는 소문도 났다.
 그러나 제법 남부에 위치한 이곳 크람 마을에는 아직까지 게르가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에게 게르의 징표가 나타나는 것을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당신이 용맹한 게르라는 것을 확신하기 어렵군요.”
 나르엔은 상기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봤다.
 “모든 것은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법이죠. 당신은 시험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나요?”
 시험이라니. 혹시 퀘스트를 말하는 것인가? 태현은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무슨 시험인데요?”
 “용기의 시험이랍니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마을 외곽에 사악한 언데드들이 접근해 오지요. 이 검을 빌려드릴 테니 그것들을 모조리 해치워주세요. 무사히 성공하고 돌아오시면 당신에게 게르의 자격을 증명하는 신분패를 드리겠어요.”
 나르엔은 그 신분패가 있으면 크람 마을 뿐 아니라 미개척 지역의 어느 난민 마을에 가도 게르로서 인정을 받는다 했다.
 신분패가 있어야 마을의 상점에서 거래가 가능하고, 여관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했으니 태현으로서는 솔깃한 제의였다.
 
 -퀘스트 [용사의 자격을 증명하라!]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No
 
 그 순간 시스템 음성이 들려오더니 허공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용사의 자격을 증명하라!
 [보상] 초보자용 기본 무기, 소정의 Exp, 게르의 신분패
 [설명] 해가 저물고 어둠이 몰려오면 사악한 언데드들이 활동을 시작한다. 크람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누구도 그 저주받은 존재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가 용기 있는 구원자 게르라면 그 저주받은 존재들과 능히 맞서 싸울 수 있으리라.
 용사여!
 이제 크람 마을의 촌장 나르엔이 준 홀라이팅 소드를 들고 크람 마을 외곽에 출몰하는 스켈레톤 무리를 모두 해치워라.
 그대의 위대한 용기로 인해 크람 마을은 언데드의 저주와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될 것이다.
 
 ‘흠, 이건 필수 퀘스트인 것 같은데?’
 어차피 레벨을 올리려면 몬스터를 해치워야 한다. 퀘스트까지 겸하면 보너스 경험치를 받을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특히나 이 퀘스트를 완료하면 게르의 신분패를 획득할 수 있으니 오늘처럼 유레아 제국의 첩자로 오인 받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초보자용 기본 무기도 준다고 하니, 현재 쓸 만한 무기가 없는 태현에게는 더없이 적절한 퀘스트가 아닐 수 없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태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나르엔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좋아요. 당신이 무사히 시험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대할게요. 부디 당신의 실력을 발휘해 사악한 스켈레톤들을 모조리 쓰러뜨려 주세요.”
 그녀는 푸르스름한 빛이 반짝이는 가늘고 긴 검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이 검은?”
 “홀라이팅 소드에요. 그 검은 하급 어둠의 저주나 마법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거예요. 하지만 물리적 타격으로부터는 보호해 주지 않으니 조심하세요.”
 어둠의 저주나 마법을 물리쳐 주는 신성한 검이라!
 ‘흠.’
 태현은 홀라이팅 소드를 살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검신이 대략 90여 센티, 손잡이가 대략 20여 센티 정도.
 검신이 가늘고 무게가 무척 가볍다.
 따라서 빠른 찌르기와 베기가 가능한 반면 육중한 무기를 든 상대와 맞서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 홀라이팅 소드
 -등급 희귀
 -내구도 120/120
 -공격력 5
 -공격속도 1.5
 -하급 수준의 어둠 속성의 저주나 마법을 막아 준다.
 -레벨 제한 없음
 -판매불가/거래불가
 
 ‘오! 희귀 등급의 검이네!’
 파라다피아에서 아이템의 등급은 다섯 개로 분류된다. 이는 도우미 설명 창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었다.
 
 [일반] [희귀] [영웅] [전설] [신화]
 
 가장 낮은 등급이며 아이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 등급이며, 각각에 특별한 옵션이 붙거나 동종의 아이템에 비해 월등히 강한 위력을 가진 것들은 등급이 상승하여 [희귀] 등급으로 구분된다.
 [영웅] 등급은 흔하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옵션이 붙거나, 혹은 동종의 희귀 아이템에 비해 월등한 위력을 발휘하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그 밖에 [전설] 등급은 고대로부터 전승된 유물급을 의미하고, [신화] 등급은 말 그대로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신비한 아이템들에게나 붙여지는 파라다피아 최고의 등급이었다.
 “멋진 검이군요. 잘 쓰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검은 사용한 후에 돌려주셔야 해요. 앞으로 찾아올 게르의 용사들도 그 검을 통해 또 다른 용기의 시험을 받게 될 것이랍니다.”
 “알았습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바깥으로 나갔다. 검을 돌려줘야 한다니 왠지 아쉬웠다.
 ‘좋다 말았군. 뭐 어쩔 수 없지.’
 검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래봤자 초보용 무기 아닌가.
 어차피 지금은 대단해 보여도 나중에 레벨이 상승하면 쳐다보지도 않을 저렙용 잡템이 되어버릴 테니 굳이 이 검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 * *
 
 날이 저물고 크람 마을의 외곽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마을 밖으로 나선 태현은 오른손으로 홀라이팅 소드의 손잡이를 꽉 쥔 채 주위를 돌아봤다.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일까?
 괴이하게도 바람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뭔가 비정상적인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사아아아!
 그런데 어느 순간 차가운 한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저주스런 어둠이 순식간에 주변을 잠식해 버렸다.
 ‘으음!’
 태현은 몸을 떨었다. 정말로 온몸이 오그라들 만큼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더럽게 실감나네.’
 태현은 비교적 겁이 없는 편이라 그나마 담담히 있을 수 있었다. 만일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음침하고 귀기스러운 분위기에 졸도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여긴 어차피 게임 속 가상현실이다. 스켈레톤이 나온다 했지만 실제가 아닌 게임의 NPC 몬스터일 뿐 아니겠는가.
 차르르!
 “키키키키……!”
 그때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뭔가가 나타났다.
 ‘저건 죽은 시체?’
 틀림없었다. 시체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래된 무덤에서 튀어나온 듯 시체는 심하게 부패해 앙상한 뼈만 보였다.
 시체라기보다는 뼈에 가까운 괴물!
 머리는 괴이한 짐승의 두개골이었지만, 괴이하게도 몸체는 인간의 뼈와 흡사했다.
 스켈레톤!
 다름 아닌 대표적인 언데드 몬스터라 할 수 있는 스켈레톤이었다.
 “키키키키! 거기 누…… 누군가 있구나.”
 스켈레톤의 한 손에는 도끼가,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원형의 방패가 들려 있었다. 놈은 태현을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와 도끼를 휘둘렀다.
 “사…… 살아있는 것들은 다 죽인다.”
 듣는 순간 귀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이 드는 음침한 음성과 함께 시커먼 도끼날이 날아들었다.
 휘잉!
 태현은 머리를 향해 쇄도하는 도끼를 몸을 숙여 가볍게 피한 후 홀라이팅 소드로 스켈레톤의 가슴을 찔렀다.
 파아악!
 검도를 했던 태현이라 본능적으로 나오는 몸의 반응이었다. 다행히 홀라이팅 소드는 스켈레톤의 가슴팍에 정확히 적중했다.
 “키아아아악! 가……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키키키! 그러나 나는 죽지 않는다. 인간!”
 가슴뼈가 부러진 스켈레톤은 비틀거리며 한 발 물러났을 뿐, 이내 다시 원독어린 눈빛으로 태현을 노려봤다. 그 눈빛은 전설 따라 어쩌고 했던 영화에 나오는 처녀 귀신의 그것처럼 섬뜩했지만, 그래봤자 어차피 게임의 몬스터인데 무서워할 필요는 없으리라.
 “입 닥치고 꺼져라! 배시!”
 현재 태현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공격 스킬인 배시! 게임의 스킬인 만큼 입으로 스킬네임을 외쳐주면 자동적으로 펼쳐지게 되어 있었다.
 쒸잉!
 전방에 밤색의 포물선이 그려지는 듯하더니 그것이 스켈레톤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배시는 공격 스킬이니 제법 데미지를 입었으리라.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스켈레톤은 멀쩡했다.
 “키키키! 소용없다, 인간! 나는 죽지 않는다.”
 스켈레톤이 도끼를 휘둘렀다. 태현은 잽싸게 뒤로 물러나 피하고는, 이번에는 스켈레톤의 머리 쪽을 겨냥해 배시를 펼쳐 보았다.
 “배시!”
 파악!
 “키아아아악!”
 스켈레톤의 머리가 부서져버렸다. 처참한 비명과 함께 널브러지는 스켈레톤을 보며 태현은 놀라면서도 쾌재를 불렀다.
 ‘이 놈들은 머리가 약점이었나?’
 조금 전 가슴뼈가 부서져도 멀쩡했던 스켈레톤이 두개골이 박살나는 순간 허수아비처럼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머리가 급소인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인지 시험해볼까?’
 그래서 태현은 배시 스킬을 펼치지 않고 검으로 다른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후려쳐보았다.
 콰직!
 “꾸어어어억!”
 두개골이 처참히 함몰된 스켈레톤은 맥없이 쓰러져버렸다. 태현은 씩 웃었다.
 ‘예상대로네. 그렇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야.’
 그런데 그 순간 스켈레톤 하나가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키키키키! 가소롭구나. 살아있는 존재여! 위대한 어둠의 이름으로 죽음을 하사하겠다……!”
 그와 함께 시커먼 연기와 같은 것이 태현의 몸을 휘감았다.
 ‘윽! 이건?’
 시커먼 연기가 밧줄처럼 몸을 휘감자 태현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뭔가 저주에 걸린 듯했다. 이대로라면 스켈레톤들에게 반항도 못해보고 죽게 될 것이다.
 화아악!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태현이 쥐고 있는 홀라이팅 소드에서 발생한 빛이 그 검은 밧줄같은 연기들을 모조리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즉시 태현은 몸이 자유로워졌다.
 ‘이 검이 나를 저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하더니 정말이었군.’
 저주를 해제하는 검!
 스켈레톤이 펼친 알 수 없는 저주를 홀라이팅 소드가 즉시 해제시킨 것이었다. 그로인해 태현이 쉽게 저주에서 벗어나자 스켈레톤이 광분하여 소리쳤다.
 “키이이이! 가증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는 죽는다, 인간!”
 “헛소리 말고 너나 죽어!”
 태현은 바람처럼 나아가 스켈레톤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직!
 두개골이 함몰된 스켈레톤은 전신을 부르르 떨다 주저앉았다.
 ‘후후! 역시.’
 스켈레톤의 약점을 알아낸 이상 이제 몇 마리가 나타나건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키키키키! 살아있는 가증스러운 것들은 다 죽인다!”
 “키이익! 너의 추악한 생명의 흔적을 지워 주겠다, 인간이여!”
 뒤쪽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태현을 향해 흡사 원수를 보듯 분노하며 달려왔다. 그러나 태현은 침착하게 검을 휘두르며 맞섰다.
 “얼마든지 와라! 머리통을 모조리 부셔주지!”
 태현은 스켈레톤들의 두개골을 정확히 노려 검을 내리쳤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태현은 순식간에 스켈레톤 5마리를 쓰러뜨렸고, 그 덕분에 레벨이 2단계나 상승했다.
 현재 레벨은 Lv4!
 태현은 신이 나서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면 레벨 10 정도야 껌이겠군.’
 그러나 스켈레톤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태현 역시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시커멓게 깔린 어둠 사이사이로 스켈레톤들이 나타났고, 태현은 어느새 10여 마리의 스켈레톤들에게 포위되었다.
 대부분 원형의 방패를 한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무식해 보이는 도끼를 들었지만, 간혹 할버드나 사이드와 같은 장병기를 든 것들도 보였다.
 “키키키키! 새…… 생명 있는 사악한 존재여! 거룩한 어둠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리겠도다……!”
 “어둠이 뭐가 거룩하다는 말이냐? 너야 말로 심판을 받아라.”
 태현이 휘두른 홀라이팅 소드가 정면에 있던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콰직!
 스켈레톤이 쓰러졌지만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좌측에 있던 스켈레톤이 저주를 퍼부으며 기다란 낫창 즉, 사이드를 휘둘러왔다.
 쒸익!
 시퍼런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오는 사이드의 날은 오금이 저릴 정도로 섬뜩했다. 가볍게 스치기만 해도 팔 하나쯤은 싹둑 잘려나가고 말 것이다.
 차앙!
 그러나 멍하니 당하고 있을 태현인가? 태현은 잽싸게 검을 휘둘러 사이드를 쳐냈다. 그 순간 우측에서 태현의 머리를 향해 할버드의 시커먼 도끼날이 쇄도했다.
 후우웅!
 할버드는 사이드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기다란 창의 끝에 도끼날이 달려 있는 무식한 무기니까.
 후우웅!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병이라도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이 가공할 위력의 무기를 스켈레톤이 들고 있을 줄이야.
 후우웅!
 태현은 감히 검으로 막지 못하고 몸을 숙여 피했다. 그 사이 정면에서 날이 시퍼런 사이드가 또 날아들었다.
 차악!
 태현의 왼쪽 팔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사이드의 날에 적중된 왼쪽 팔뚝이 반쯤 날아가 버린 것이다. 싹둑 잘려나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지만, 피투성이가 된 팔뚝은 허연 뼈가 드러나 너덜거리고 있었다.
 “크으으으!”
 태현은 몸을 떨었다.
 “크윽! 마…… 말도 안 돼! 왜 이렇게 아픈 거야?”
 끔찍한 고통에 태현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물론 살을 크게 베였으니 이 정도 고통은 당연하고도 남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 현실이 아닌 게임이라고 했지 않은가?
 ‘크으윽! 이게 뭐야? 게임이라며! 게임인데 왜 이렇게 아프냐고?’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가는 것은 특수효과니 그렇다고 치자. 대체 죽을 듯이 엄습하는 이 가공할 통증은 무엇이란 말인가?
 “키키! 무척 오랜만에 맡아보는 생자의 피 냄새로다.”
 “키이이이! 맛있겠군. 어서 저 놈을 죽이고 그 피를 몽땅 마시자!”
 태현의 피를 보자 스켈레톤들의 동공에 시뻘건 흉광이 번뜩였다. 피 맛을 본 모기떼처럼 광분하며 날뛰는 스켈레톤들의 공세는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지만, 태현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으! 으윽! 내……내가 순순히 당할 것 같냐?’
 너덜거리는 왼팔을 포기하고 태현은 오른 손으로 검을 마구 휘둘렀다.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배시! 배시……!”
 지금은 스킬 남발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MP를 아끼다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인가? 이럴 때 쓰라고 스킬이 있는 것! 대충 자세만 취하고 스킬네임만 외치면 스킬은 저절로 나가니,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스킬은 펼칠 수 있었다.
 파악! 파악!
 우직! 쿠지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배시의 스킬에 가격당한 스켈레톤 두 마리의 두개골이 박살났고, 그 순간 태현의 레벨은 Lv5로 상승했다. 놀랍게도 그 즉시 피투성이였던 왼팔의 상처가 말끔하게 나아버렸다.
 ‘역시!’
 태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사기와 같은 회복 능력!
 이곳은 게임 속이니 당연한 일이다. 게임에서는 레벨업 시 모든 상태가 회복된다.
 부상을 입었을 때 고통만 참을 수 있다면, 그리고 스킬을 펼쳐 경험치를 획득하기만 하면 죽지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태현은 상처를 입을 때마다 고통에 전신이 떨렸지만 절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다 덤벼! 이 해골 새끼들아! 배시! 배시!”
 콰직! 콰직!
 어느덧 태현이 박살낸 스켈레톤들의 두개골이 수십여 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남아 있는 스켈레톤들은 몇 마리 되지 않았다.
 그 사이 태현의 레벨은 Lv8로 상승했다.
 보너스 스텟은 모두 힘에 올인해 현재 31.
 그로 인해 물리 공격력과 방어력이 대폭 상승했다. 스켈레톤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스켈레톤은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아 있었다.
 “죽어랏, 배시!”
 콰직!
 
 -레벨이 올랐습니다.
 
 홀라이팅 소드가 마지막 스켈레톤을 박살냄과 동시에 태현의 레벨은 다시 Lv9로 한 단계 상승했다.
 널브러진 스켈레톤들의 잔해는 저주스런 어둠의 기운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졌다. 맑아진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났다.
 ‘휴! 힘들었다.’
 무슨 초보자 퀘스트가 이렇게 어려운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테스트한다고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다. 태현에게 담력과 용기가 없었다면 스켈레톤들을 이기기란 불가능했을 테니까.
 ‘음? 뭔가가 반짝이는데?’
 스켈레톤들이 사라진 땅바닥 위에서 뭔가가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태현이 가서 주워 보니 동전이었다.
 2쿠퍼…… 1쿠퍼…… 3쿠퍼…… 2쿠퍼…….
 모두 합쳐 63쿠퍼다. 쿠퍼 동전들은 손에 쥐자 저절로 아공간의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갔다.
 ‘63쿠퍼? 이 정도면 여기서 얼마나 되는 돈인 거야?’
 스켈레톤들을 쓰러뜨리고 게임상의 머니를 획득한 태현은 설명 창을 뒤져 파라다피아의 화폐 시스템을 알아보았다.
 
 1골드 = 100실버
 1실버 = 100쿠퍼
 
 쿠퍼 동전 100개가 모이면 은화 1실버가 되고, 은화 100개가 모이면 금화 1골드가 된다.
 따라서 태현이 밤새 스켈레톤들을 해치우며 획득한 63쿠퍼는 은화 한 개의 가치도 되지 않는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야호! 돈 벌었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을 버니 흐뭇했다. 게임이건 현실이건 돈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나저나 목이 마르네! 어디 물 같은 거 없나?’
 레벨업을 통해 몸 상태가 회복되어 피곤한 것은 없었지만, 왠지 갈증이 심하게 났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박살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체험은 아니다. 인공지능 파라존이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끔찍스럽고 혐오스러운 장면을 포함하여 현실감을 놀라울 만큼 극대화시켜 놓았다.
 또한 스켈레톤들은 해치웠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 특히나 네임드 보스 몬스터인 어둠의 카모리라는 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과연 태현이 레벨을 조금 올린다고 해서 놈과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일단 마을로 돌아가 볼까? 마을이라면 물을 마실 만한 곳이 있겠지.’
 물뿐만 아니라 음료수나 혹은 맥주도 상관없다.
 ‘이럴 땐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죽일 텐데.’
 사실 게임에서 그런 것들을 마신다고 갈증이 풀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처를 입었을 때 고통을 느끼고 레벨업을 통해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 갈증 역시 뭔가를 마시면 풀릴 듯했다.
 ‘뭐 이 돈으로 맥주 한 잔은 살 수 있겠지.’
 보통 중세 시대에는 1쿠퍼가 맥주 한 잔, 혹은 자그마한 빵 한 덩어리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이라 들었지만, 이곳 게임에서는 1쿠퍼가 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금액인지 알 수 없으니 문제였다.
 일단 마을로 들어가 보면 알 것이다. 퀘스트를 해결했으니 보상도 받아야 할 테니까.
 태현은 크람 마을의 남쪽 입구로 들어섰다.
 마을 광장에는 촌장 나르엔과 로핀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서 있었다.
 “오오! 구원자 게르 님이 무사히 돌아오셨다.”
 “주신 헤르피어스 님의 가호로다!”
 맨 처음 경계하며 불신하던 때와는 달리 태현을 쳐다보는 그들의 표정에는 존경과 격동의 감정이 가득했다.
 ‘뭐지? 이거 마치 내가 영웅이라도 된 것 같네?’
 어색하게 서 있는 태현에게로 미녀 촌장 나르엔이 다가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역시 당신은 구원자 게르가 틀림없군요. 당신의 위대한 용기로 인해 크람 마을은 사악한 스켈레톤들의 저주와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어요. 마을을 대표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모두 촌장님이 좋은 검을 빌려 주신 덕분입니다. 그로 인해 스켈레톤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지요.”
 태현은 씩 웃으며 홀라이팅 소드를 나르엔에게 돌려줬다. 나르엔은 검을 받으며 웃었다.
 “용사답게 겸손하시네요. 이제부터 당신은 저희 마을뿐 아니라 모든 개척자 마을에서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홀라이팅 소드를 돌려주셨으니 당신께 다른 쓸 만한 무기를 하나 드리고 싶어요. 부담 갖지 말고 저 중에서 하나 골라보세요.”
 나르엔이 가리킨 곳에는 장검과 장창, 단궁 등 다양한 무기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이게 적합하겠군요.”
 그 중에서 태현은 주저 없이 장검을 집어 들었다.
 
 [*] 아이론 소드
 -등급 : 일반
 -내구도 : 80/80
 -공격력 : 7
 -공격 속도 : 2.0
 -레벨 제한 Lv10
 -판매불가/거래불가
 
 공격력을 무려 7포인트나 올려주는 검이었다. 홀라이팅 소드와 같이 저주를 막아 주는 특별한 마법은 깃들어 있지 않지만, 물리 공격력만큼은 그보다 뛰어났다.
 “무기는 마음에 드시나요?”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한데요? 잘 쓰겠습니다.”
 그러자 나르엔은 커다란 백색의 패를 하나 꺼내들며 말했다.
 “이제 여기에 당신의 이름을 새겨야 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모르고 있답니다.”
 순간 시스템의 음성이 태현의 귓전을 때렸다.
 
 -당신의 캐릭터는 아직 이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름이 없으면 당신의 본명인 <강태현>이 캐릭터 명으로 됩니다. 만일 다른 캐릭터 명을 만들고 싶으면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캐릭터 명이라고?’
 파라다피아라는 가상현실 게임의 캐릭터 명을 의미할 것이다. 본래는 게임에 접속할 때 캐릭터 명을 만들어야 하지만, 태현의 경우 매우 괴이한 상황으로 접속한 상태라 아직 캐릭터 명이 없었다.
 갑자기 질문을 받자 태현은 생각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그냥 내 이름으로 할까? 아니야.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게 좋겠다.’
 게임 속의 캐릭터에게 자신의 본명을 그대로 쓰자니 왠지 우스웠다. 왜냐면 현재 게임 속 태현의 모습은 현실 세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게임 속에 있는 태현은 신비롭게 흩날리는 은발 아래 하얀 피부, 푸른 눈을 가진 중세 유럽풍 귀공자의 외모였다.
 이에 반해 현실의 태현은 짧고 스포티한 검은 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 훤칠한 체격을 가진 다소 야성적인 스타일이었다.
 “자아, 어서 당신의 이름을 말씀해 주세요.”
 촌장 나르엔이 재촉했다. 태현은 고민하다 불쑥 내뱉었다.
 “트루! 이게 제 이름입니다.”
 “아! 트루! 멋진 이름이네요.”
 나르엔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순간 그녀의 손에 있는 백색의 패에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새겨졌다.
 
 [트루]
 -종족 : 게르
 -타이틀 : 크람 마을의 구원자
 
 “트루 님! 약소하나마 선물을 드리고 싶군요.”
 나르엔은 백색의 패를 태현에게 내밀었다.
 “받으세요. 트루 님. 이 패가 앞으로 트루 님의 신분을 증명해 줄 거예요.”
 그와 동시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퀘스트 [용사의 자격을 증명하라!]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아이템 [아이론 소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 [게르의 신분패]를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크람 마을의 구원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 50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속으로 들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퀘스트 완수로 인해 경험치를 획득하자 태현의 레벨은 Lv10으로 상승했다.
 
 
 
 
 
 
 
 
 
 
 
 
 
 
 
 
 3. 창조사가 되다
 
 
 
 
 크람 마을의 촌장 나르엔이 준 용기의 시험 퀘스트를 무사히 통과해 게르로서 인정받은 태현은 게르의 신분패와 아이론 소드 등을 비롯한 보상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또한 나르엔의 배려로, <털보 한스의 주점>이라는 작은 술집에서 시원한 술 한 잔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털보 한스는 40대 후반의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내였다.
 “오! 크람 마을의 구원자를 만나 뵈어 영광이오. 술 맛이 어떻소?”
 “이거 대체 무슨 술이죠?”
 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술이 이렇게 신 것일까? 레몬을 잔뜩 갈아 넣어도 이토록 시지는 않을 텐데.
 “이럴 수가! 류그주를 모른단 말이오?”
 “류그주요?”
 “신맛으로 유명한 과일인 류그로 만든 술이오.”
 “류그라는 과일도 있나요?”
 “허허! 류그도 모르다니 정말 외지에서 오셨나 보오. 이게 바로 류그요. 제철이 아니라 제 맛이 나진 않겠지만 하나 드셔 보시려오?”
 한스는 누르스름한 과일 하나를 내밀었다. 오렌지나 귤처럼 생겼는데 크기가 사람 머리통만 했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신맛이 진동하는 것 같아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습니다. 그보다 혹시 여기 맥주 같은 술은 없나요?”
 “쯧! 맥주 같은 소리를 하시오. 개척자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류그주나 오드오드주뿐이오.”
 류그주나 오드오드주? 모두 처음 들어보는 술 이름이었다.
 ‘여긴 무슨 술집에 맥주도 없어? 류그주라니. 정말 맛도 더럽게 없는 술이네. 먹어 보진 않았지만 오드오드주 역시 맛이 없을 거야.’
 태현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술을 들이키자 한스의 인상이 험악하게 변했다.
 “염병할! 내가 만든 류그주가 그렇게 맛이 없나? 맛이 없으면 억지로 먹지 말고 당장 꺼지라고!”
 “하하, 마…… 맛이 없긴요. 정말 맛있는데요.”
 그러자 한스의 인상이 펴졌다.
 “허헛! 그렇군. 그럼 싸게 줄 테니 한 잔 더 하겠소?”
 “하하!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태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술을 들이켰다. 무척 시긴 했지만, 갈증을 풀어주는 데는 꽤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공짜 술이 아닌가.
 옛말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류그주는 보통 한 잔 당 3쿠퍼라고 한다. 이렇게 맛없는 술을 그 돈 주고 마시는 건 미친 짓이리라.
 태현은 잔에 반쯤 남은 류그주를 홀짝 마신 후 주점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지?’
 우여곡절 끝에 Lv10을 달성했지만, 이대로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만간 찾아온다는 어둠의 카모리라는 네임드 몬스터를 해치우려면 레벨을 좀 더 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조급해진 태현은 촌장 나르엔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르엔에게 또 다른 몬스터가 있는 곳을 물어봐야겠군. 그 전에 내 상태를 좀 확인해 볼까?’
 그러고 보니 오늘 퀘스트 보상으로 타이틀을 하나 받았다.
 
 [타이틀] 크람 마을의 구원자
 -효과 : 체력 +2
 
 타이틀 효과로 인해 체력 스텟이 2포인트만큼 추가 상승했다.
 Lv10이 된 지금까지, 레벨 상승으로 얻은 보너스 스텟을 모조리 힘에 올인한 터라 태현의 힘 스텟은 무려 37포인트나 되었다.
 
 [이름] 트루
 [레벨] Lv.10[Exp 02.81%]
 [직업] 없음
 [타이틀] 크람 마을의 구원자.
 [HP] 105/105
 [MP] 95/95
 [힘] 37 [민첩] 19 [체력] 19(+2)
 [지혜] 19 [지능] 19
 [미분배 스텟 포인트] 0 point
 
 힘 스텟에 올인한 결과 태현의 물리 공격력은 기본 37포인트에 아이론 소드를 장착해 추가로 7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최선의 방어는 공격!
 태현은 당분간 계속 힘 스텟에 투자할 생각이었다. 늘어나는 힘 스텟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참, 레벨 10이 되면 직업 획득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도움말에 의하면 게르가 Lv10을 달성하면 특별한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했는데, 아직 직업이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직업을 얻을 수 있을까?
 ‘어라! 그러고 보니 퀘스트가 생겼잖아? 모르고 있었네.’
 태현은 퀘스트 창을 보다 깜짝 놀랐다.
 
 [퀘스트] 특별한 직업을 선택하라!
 [보상] 직업 획득
 [설명] 두마니스에게 선택된 선한 의지를 가진 자여! 그대는 이제 직업을 선택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었다.
 그러나 장차 마신 헤르피어스의 세력을 물리쳐야 하는 그대에게는 평범한 직업이 어울리지 않다.
 부디 그대에게 맞는 특별한 직업을 골라 강력한 용사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직업 획득 퀘스트 같은데?’
 태현은 퀘스트 설명창을 유심히 읽어 보았다. 설명대로라면 태현이 특별한 직업을 획득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어떤 식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때였다. 장엄한 음성이 태현의 귓전을 울렸다.
 -크람 마을의 구원자 트루! 나 두마니스의 선택을 받은 자여! 이제 그대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보라.
 두마니스의 음성이었다.
 크람 마을의 광장을 걷고 있던 태현은 어느새 푸른 초원의 하얀 마법진 위에 서 있었다. 두마니스에 의해 소환된 모양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이 있나요?”
 태현이 묻자 허공에 곧바로 글자들이 나타났다.
 
 [광권사] 무적의 권법가가 되고 싶다면 선택하라.
 [마투사] 최강의 전투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 선택하라.
 [극검사] 검술의 극의를 추구하고 싶다면 선택하라.
 [강화사] 무엇이든 강화하고 싶다면 선택하라.
 [창조사] 무엇이든 창조하고 싶다면 선택하라.
 [진화사] 글쎄! 이건 그대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
 
 ‘음…….’
 무려 6개나 되는 괴이한 직업들!
 태현은 그것들이 하나같이 특별한 직업들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당연히 보통의 직업 설명 창에서는 구경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지금껏 그 어떤 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직업들은 보지 못했다.
 -그대는 이것들 중 오직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한 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하라.
 “근데 진화사는 어떤 직업이죠?”
 나머지 5개의 직업에 대해서는 대략이나마 설명이 나와 있지만 진화사는 그리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설명만 나와 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다. 진화사는 그대에게 별로 적합하지 않은 직업이다. 그럼에도 그대가 굳이 원한다면 진화사가 될 수는 있다. 그대는 정말 진화사가 되고 싶은가?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태현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이 들긴 했지만 무엇인지도 알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뭘로 하지?’
 태현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가장 끌리는 것은 극검사였다. 검도를 수련한 몸이니 검술의 극의를 추구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무적의 권법사라는 광권사 직업도 끌렸다. 검도와 함께 격투기도 수련했던 태현이었으니 말이다.
 ‘그보다 다른 직업은 어떨까? 마투사는 마법사니 별로고, 강화사는 또 뭐지? 설마 무한의 강화사?’
 태현은 문득 예전에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판타지 소설책이 떠올랐다. 도합 12권으로 이루어진 그 소설의 제목은 다름 아닌 <무한의 강화사>였다.
 그 책의 주인공은 게임 속 강화사의 능력을 가지고 이세계로 들어가 멋진 모험을 펼쳤다. 돌멩이를 강화해 폭탄을 만들거나 심지어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기도 했는데.
 설마 정말 그러한 능력을 가진 강화사란 말인가? 무엇이든 강화한다는 설명을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강화사는 신체도 강화할 수 있나요?”
 -그러하다. 처음에는 일단 신체의 여덟 부위만 강화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추가 부위도 강화를 할 수 있다.
 꿀꺽!
 역시 예상대로였다. 태현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신체 부위를 살펴봤다.
 ‘으음…….’
 무한의 강화사의 주인공이었던 카론은 눈이나 손, 발과 같은 신체 부위를 강화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곳마저 강화했다.
 그곳? 그러니까 차마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곳 말이다. 정말 부러운 능력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신체 강화!
 신체 부위를 강화해 강력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
 태현이 소설책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게다가 그곳까지 가능하니!
 물론 태현은 굳이 그곳을 강화할 생각은 없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로 강화사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해봤던 태현으로서는 강화사가 가지는 강력한 매력에 가슴이 떨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후후! 나도 무한의 강화사가 되어 볼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강화사가 되기로 결심을 굳히는 태현의 눈에 문득 창조사라는 직업이 들어왔다.
 ‘창조사? 무엇이든 창조한다? 대체 뭘 창조한다는 거야?’
 그때 두마니스가 물었다.
 -그대는 강화사가 마음에 드나보군. 그럼 강화사로 선택하겠는가?
 “그게…….”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왠지 창조사란 직업이 마음에 걸렸다.
 “잠깐! 창조사의 특기인 창조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무엇이든 창조가 가능한가요?”
 -그러하다. 창조사는 아이템, 스킬, 심지어 퀘스트도 창조가 가능한 직업으로 그대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직업이기도 하다.
 “으음. 그렇군요.”
 태현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고 보면 강화보다는 창조가 뭔가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게다가 두마니스의 추천까지 있으니 왠지 더욱 끌렸다.
 ‘그래. 강화보다야 창조가 훨씬 낫지. 뭐든 창조해 버리면 되니까 말이야.’
 창조사라!
 구체적으로 어떤 스킬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사기적인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쩌면 게임에서 창조주 즉,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극검사나 광권사, 마투사 따위는 창조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강화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 이제 말하라. 어떤 직업을 선택하겠는가? 선한 의지를 가진 자여!
 “창조사가 되겠습니다.”
 -창조사라! 탁월한 선택이군. 그러나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 한 번 선택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으니! 그대는 진정으로 창조사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습니다.”
 순간 태현의 전신에 찬란한 자줏빛 오러가 휘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짜릿한 기분에 태현은 몸을 떨었다.
 -선한 의지를 가진 크람 마을의 구원자여! 그대의 신중한 선택을 존중한다. 이로써 그대는 파라다피아의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직업인 창조사가 되었다. 하나 이는 오직 그대와 나만의 비밀. 외부적으로는 그대의 직업이 검사로 표시될 것이다.
 “검사라고요?”
 -그렇다. 이제 창조사의 스킬에 익숙해지도록 하라.
 그 후로는 두마니스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았다. 태현이 뭔가를 질문해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로 익숙해지라는 건지 모르겠군. 스킬이라도 있어야 뭐라도 해볼 텐데.’
 상태 창에도 여전히 직업은 없음으로 나와 있었고, 스킬 설명창을 봐도 새롭게 생성된 스킬은 없었다.
 ‘이상하네. 나 창조사로 전직한 거 맞나?’
 바로 그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퀘스트 [특별한 직업을 선택하라!]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특별 직업 [창조사]로 전직합니다.
 -창조사 특별 스텟인 [창조력] 스텟을 획득하셨습니다.
 -[창조석] 3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직업 스킬 [유사창조]를 획득하셨습니다.
 -직업 스킬 [퀘스트 창조]를 획득하셨습니다.
 -직업 스킬 [창조자의 눈]을 획득하셨습니다.
 -직업 스킬 [창조각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연계 퀘스트 [무엇이든 창조한다!]가 생성되었습니다.
 
 정신이 없이 들리는 음성들. 태현은 멍하니 상태창을 살펴봤다.
 ‘창조력 스텟이 생겨? 창조석은 또 뭐야? 대체 무슨 스킬들이 이렇게 많아?’
 
 [이름] 트루
 [레벨] Lv.10[Exp 02.81%]
 [직업] 창조사
 [타이틀] 크람 마을의 구원자
 [HP] 105/105
 [MP] 95/95
 [CP] 50/50
 [힘] 37 [민첩] 19 [체력] 19(+2)
 [지혜] 19 [지능] 19 [창조력] 10
 
 ‘오! 정말 창조력 스텟이 생겼구나.’
 기존 다섯 가지의 스텟 이외에 창조력이라는 스텟이 추가로 생성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CP라는 새로운 지수도 생성되어 있었다.
 ‘CP는 또 뭐지? 창조력과 관련된 지수인가?’
 태현은 호기심을 빛내며 스킬 설명창을 살펴봤다. 창조사 관련 직업 스킬 설명을 읽어 보면 CP에 대한 용도도 알 수 있으리라.
 
 [*] 유사창조(Active)
 -창조사 전용 스킬
 -창조 레시피에 등록된 사물이나 스킬을 유사창조할 수 있다.
 -창조시 대상의 특성에 따라 일정 분량의 CP와 창조석이 소모된다.
 
 사물이나 스킬을 창조할 수 있다니! 역시 창조사는 예상대로 창조가 가능한 직업이었다.
 ‘근데 왜 이름이 유사창조야?’
 그냥 창조가 아닌 유사창조라! 비슷하게 창조된다는 말인가? 태현은 그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았다.
 유사창조는 창조시 창조된 아이템이나 스킬 성능이 무작위로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즉, 창조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템이나 스킬이 본래보다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창조사의 레벨이 높을수록 좋은 성능의 아이템이나 스킬이 창조된다고 했다.
 또한 이 스킬을 펼칠 때는 CP와 창조석이 소모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직업 획득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창조석 3개가 인벤토리에 들어 있었다.
 ‘뭔가 꽤 복잡하네. 일단 창조를 한 번 해보자. 게임이니 스킬 네임만 외치면 되겠지?’
 뭐든 이론적인 설명으로 보면 머리가 아프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한 번 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유사창조!”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창조의 대상을 말씀해 주십시오.
 
 시스템으로부터 에러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무턱대고 스킬 네임만 외치면 안 되는 것이었나 보다.
 하긴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상을 뭘로 정할까?’
 한 번 창조 스킬을 사용하는데 CP가 얼마 소모되는지 모르지만, 창조석은 적어도 1개씩 소모될 테니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무기가 좋겠어.’
 조만간 어둠의 카모리(Lv20, Boss)라는 놈이 나타난다고 했으니 놈과 싸워 이기려면 강력한 무기가 필요할 것이다.
 ‘혹시 총도 창조가 가능할까?’
 어둠의 카모리라는 놈이 아무리 강해도 총에 맞으면 어찌 버텨낼 수 있겠는가?
 ‘잠깐! 그런데 총을 창조하려면 총알도 창조해야 되잖아.’
 창조석이 3개뿐이니 유사창조 스킬은 세 번만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총을 만드는 데 한 번 사용하고, 나머지 2번은 총알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면?
 과연 유사창조 한 번에 총알이 몇 개씩 창조될까? 만일 1개씩이라면 획득할 수 있는 총알은 고작 2개뿐이다.
 그걸로 네임드 몬스터를 해치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총알이 떨어지면 총은 무용지물이 될 텐데.
 그리고 영화에서 흔히 나오듯 만일 그 카모리란 놈이 총알도 통하지 않는 괴수라면 어떻게 될까?
 ‘확실히 총은 좀 그렇군.’
 차라리 수류탄이 낫다. Lv20의 네임드 몬스터 따위라면 수류탄에 적중되는 순간 산산 조각나 버릴 것이니 말이다.
 좋아! 수류탄 3개를 창조하는 거다. 태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킬 네임을 외쳤다.
 “유사창조 수류탄!”
 
 -잘못된 명령어입니다. 창조는 창조 레시피에 등록된 것만 가능합니다.
 
 또 다시 실패했다. 태현의 인상이 구겨졌다.
 ‘창조 레시피? 그건 또 어떻게 등록하는 거야?’
 도무지 쉽게 되는 게 없다. 아무거나 원하는 대로 창조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태현은 다시 창조사 스킬에 대한 용어 설명을 찾아봤다. 일단 창조 레시피가 뭔 지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 창조 레시피
 -아이템이나 스킬을 창조각인을 통해 창조 레시피로 등록할 수 있다. 유사창조는 창조 레시피에 등록된 것들만 가능하다.
 
 ‘흠, 그렇군.’
 그러고 보니 아무거나 창조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창조각인을 통해 창조 레시피에 등록된 아이템이나 스킬 등만 창조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창조각인이라는 스킬도 있었나?’
 그러고 보니 조금 전 획득한 창조사 직업 스킬 중 아직 살펴보지 않은 스킬이 3개나 있었다.
 
 [*] 창조각인(Active)
 -창조사 전용 스킬
 -창조자의 능력으로 대상의 본질을 기억한다.
 -유사창조 가능한 사물 및 스킬을 창조 레시피에 등록한다.
 -소모 CP 5
 
 [*] 창조자의 눈(Active)
 -창조사 전용 스킬
 -창조자의 신령한 눈으로 창조 가능한 사물 및 스킬 등의 상태를 파악한다.
 -소모 CP 없음
 
 [*] 퀘스트 창조(Active)
 -창조사 전용 스킬
 -대상과 관련된 퀘스트를 창조할 수 있다.
 -퀘스트의 특성에 따라 일정 분량의 CP가 소모된다.
 
 ‘흠.’
 두마니스에게 들은 대로 창조사는 아이템이나 스킬뿐 아니라 퀘스트까지 창조가 가능했다.
 다만 창조사 마음대로 마구 창조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
 즉, 창조각인을 통해 창조 레시피에 등록한 것들만 창조할 수 있으며, 그것도 동일하게 창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창조 된다는 것이었다.
 그냥 창조가 유사 창조라!
 똑 같은 것이 아닌 그와 비슷한 것이 창조된다는 뜻이다.
 운이 좋으면 본래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쉬운 건, 매번 랜덤한 확률을 통해 창조되니 창조사 자신도 뭐가 나올지 완전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CP나 창조석이 없으면 창조 스킬을 펼칠 수도 없었다. 퀘스트 창조의 경우는 창조석이 필요 없긴 하지만 말이다.
 ‘뭐 이렇게 제약이 많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강화사로 할 걸 그랬나…….’
 왠지 창조사가 된 것이 후회가 되는 태현이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창조사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창조사의 스킬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만큼 대단한 위력이 있다면 까짓것 조금 복잡한들 상관없었다. 몇 번 해보면 금세 익숙해질 테니까.
 화악!
 그때 퀘스트 창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태현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창조사 전직 퀘스트가 끝나며 생겨난 연계 퀘스트인 듯했다.
 
 [퀘스트] 무엇이든 창조한다!
 [보상] 소정의 경험치, 창조석 1개
 [설명] 두마니스의 선택을 받은 크람 마을의 구원자여!
 그대는 이제 파라다피아의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직업인 창조사가 되었다.
 그러나 순수한 창조란 본디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인 그대에게는 일단 그 능력과 유사한 작은 능력만 주어졌을 뿐이다.
 유사창조와 퀘스트 창조가 대표적이다.
 그것들을 무수히 펼쳐보아 창조에 익숙해져 보라.
 그대가 하기에 따라 언젠가 경천동지할 창조 능력을 얻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하는가? 어서 창조사의 스킬들을 하나씩 시험하여 장차 무한의 창조사가 되기 위한 기본을 쌓으라.
 
 ‘뭔가 거창하군.’
 신이 가진 창조 능력과 유사한 능력이 주어졌다라! 그로인해 장차 뭔가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경천동지할 창조 능력!
 무한의 창조사!
 비록 게임이라지만 태현은 왠지 가슴이 뛰었다. 예상대로 역시 뭔가 있긴 있었다.
 퀘스트의 설명은 이어져 있었다.
 
 1) [창조자의 눈]으로 아이론 소드를 살펴라!
 2) [창조각인]으로 아이론 소드를 창조 레시피에 등록해라!
 3) [유사창조]로 아이론 소드를 창조해라!
 4) 창조된 아이론 소드로 [퀘스트를 창조]해라!
 
 위의 네 가지를 모두 수행해야 [무엇이든 창조한다!]라는 연계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후후, 이건 그냥 간단한 퀘스트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먼저 이 검을 살펴보라고 했지?’
 태현은 창조자의 눈을 펼쳐 아이론 소드를 살펴봤다.
 “창조자의 눈, 아이론 소드!”
 화악!
 태현의 눈에서 환한 자주색의 빛이 일어나 아이론 소드를 휘감았다. 그 순간 설명창에 아이론 소드의 정보가 나타났다.
 
 [*] 아이론 소드
 -등급 : 일반
 -내구도 : 80/80
 -공격력 : 7
 -공격 속도 : 2.0
 -레벨 제한 Lv10
 -판매불가/거래불가
 -유사창조가능(창조각인 가능 레벨 Lv10)
 -퀘스트 창조불가
 
 ‘오? 못 보던 설명이 추가되어 있네?’
 아이론 소드의 정보 밑에 새로 추가된 내용들이야 말로 창조자의 눈 스킬이 파악한 창조에 관한 정보가 분명했다.
 
 -유사창조 가능(창조각인 가능 레벨 Lv10)
 -퀘스트 창조 불가
 
 즉, 유사창조가 가능하다는 정보와 퀘스트 창조 불가라는 정보였다.
 다시 말해 아이론 소드는 유사창조 스킬을 통해 창조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즉, 창조석과 CP만 있으면 이 아이론 소드와 똑 같은 검을 만들든지 혹은 비슷한 검을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퀘스트 창조 불가라는 내용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검을 통해 어떤 퀘스트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다음은 뭐였더라? 창조각인을 하라고 했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태현은 설명을 읽으며 침착하게 퀘스트를 수행해 나갔다.
 그러고 보면 아이론소드를 유사창조할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그렇다 해서 무작정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아이론 소드를 창조 레시피 창에 등록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창조각인]이라는 스킬이었다.
 
 창조각인 가능 레벨 Lv10
 
 아이론 소드는 창조각인 가능 레벨이 Lv10이라 나와 있으니, 현재 캐릭터의 레벨이 Lv10인 태현에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창조각인을 한 번 펼치는 데는 CP가 5포인트 소모된다고 했지?’
 다행히 현재 50포인트가 남아 있으니 그것을 펼치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태현은 자신있게 외쳤다.
 “창조각인, 아이론 소드!”
 
 -아이론 소드가 창조 레시피에 성공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설명 창에 창조 레시피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 창조 레시피 - 아이론 소드
 -아이론 소드와 유사한 무기를 창조할 수 있다.
 -성공 확률 80%
 -소모 CP 15
 -소모 창조석 1개
 -유사창조 가능 레벨 Lv10
 
 ‘성공이다!’
 창조 레시피가 생겨났으니, 이제 이걸로 유사창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까는 방법을 몰라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정해진 방법대로 했으니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창조 레시피 - 아이론 소드]의 성공 확률이 80%라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80% 정도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문제는 실패 확률도 20%나 된다는 데 있었다.
 “유사창조, 창조 레시피 아이론 소드!”
 태현은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스킬 네임을 외쳤다. 부디 성공해야 할 텐데.
 ‘과연?’
 번쩍!
 
 -[창조 레시피 - 아이론 소드]의 유사창조에 성공했습니다.
 -[투박한 아이론 소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환한 백색의 빛이 번쩍이며 태현의 앞에 푸르스름한 장검 하나가 나타났다.
 “하하하! 성공했구나!”
 태현은 환호했다. 그저 창조석과 CP만을 가지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는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드디어 창조사의 길로 어든 것이다.
 ‘창조자의 눈, 투박한 아이론 소드!’
 어떤 성능의 아이론 소드가 만들어졌을지 궁금해 태현은 곧바로 창조자의 눈을 펼쳐보았다.
 
 [*] 투박한 아이론 소드
 -등급 : 일반
 -내구도 : 48/48
 -공격력 : 5
 -공격 속도 : 2.3
 -레벨 제한 Lv7
 -판매가능/거래가능
 -유사창조불가
 -퀘스트 창조가능(소모 CP 25, 성공 확률 80%)
 
 ‘뭐야? 성능이 형편없잖아.’
 운이 나쁘게 작용했는지 유사창조된 투박한 아이론 소드는 내구도나 공격력, 공격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본래보다 성능이 대폭 하락했다. 판매 및 거래 불가에서 가능으로 바뀌었다지만, 이따위 쓰레기 아이템을 누가 사갈지 의문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퀘스트를 창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걸로 무슨 퀘스트를 만들 수 있는 거지?’
 어차피 [무엇이든 창조한다]라는 연계 퀘스트를 완수하려면 퀘스트를 창조해 봐야 한다.
 퀘스트 창조 스킬을 펼치려면 CP가 25포인트 소모되는데, 성공 확률은 80%였다. 다행히 현재 CP는 30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퀘스트 창조, 투박한 아이론 소드!’
 번쩍!
 
 -[투박한 아이론 소드를 전달하라!]의 퀘스트 창조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투박한 아이론 소드를 전달하라!]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퀘스트 창이 반짝였다.
 
 [퀘스트] 투박한 아이론 소드를 전달하라!
 [퀘스트 완료 NPC] 크람 마을의 대장장이 마스
 [보상] 마스와의 친밀도 상승. 약간의 경험치
 [설명] 크람 마을의 대장장이 마스는 보다 뛰어난 품질의 검을 제작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검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 검은 보통의 아이론 소드에 비해 무척 투박하고 위력도 떨어지지만 대장장이 마스는 매우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오, 이건!’
 스킬 네임 그대로 새로운 퀘스트가 창조되었다. 이제 이 투박한 아이론 소드를 크람 마을의 대장장이 마스에게 전해 주기만 하면 마스와의 친밀도가 상승할 뿐 아니라 약간의 경험치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퀘스트까지 창조할 수 있다니. 대단하군.’
 아이템을 창조 할 뿐 아니라 심지어 퀘스트를 창조해 경험치도 획득할 수 있다니.
 보통 게임에서 퀘스트는 그저 게임에서 만들어 놓은 것을 유저가 찾아내 수행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퀘스트는 수행 후에 보상이 존재하기에 누구나 좋은 퀘스트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태현의 경우에는 자신 마음대로 퀘스트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CP의 제약이 있긴 하지만,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퀘스트를 창조해 완수한 후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능력이 아니겠는가?
 ‘창조 스킬!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 따로 없구나.’
 태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금은 비록 투박한 아이론 소드 정도를 유사창조한 상태지만, 나중에는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태현의 레벨이 상승하면 [전설] 등급이나 [신화] 등급과 같은 게임 상에서 정상적으로 획득하기 극히 어려운 아이템도 유사창조할 수 있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그 못지않은 보상이 주어지는 퀘스트를 창조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퀘스트 [무엇이든 창조하라!]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습니다.
 -창조석 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 2000점을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경험치로 인해 태현의 레벨은 Lv11로 한 단계 상승했다.
 
 [이름] 트루
 [레벨] Lv.11[Exp 32.32%]
 [직업] 창조사
 [타이틀] 크람 마을의 구원자
 [HP] 110/110
 [MP] 100/100
 [CP] 60/60
 [힘] 38 [민첩] 20 [체력] 20(+2)
 [지혜] 20 [지능] 20 [창조력] 12
 [미분배 보너스 스텟 포인트] 2 points
 
 창조사가 되어 레벨이 오르자 창조력 스텟은 2포인트, 나머지 스텟들은 1포인트씩 자동 상승했다.
 ‘흠, 미분배 보너스 스텟을 어디에 배분할까?’
 그동안은 검사가 될 줄 알고 포인트를 힘 스텟에 몰아 줬지만, 창조사가 된 지금부터는 창조력에 몰아주는 게 나으리라.
 ‘창조력에 2포인트 추가!’
 유사창조나 퀘스트 창조, 창조각인 등을 펼치려면 CP가 필수적으로 소모된다. 창조력 스텟이 상승하면 CP의 최대치도 올라가니, 당분간은 창조력 스텟에 몰아주기로 했다.
 
 [CP] 70/70
 [창조력] 14
 
 늘어난 창조력 스텟과 CP 지수를 보며 흡족해 하던 중, 태현은 돌연 환한 빛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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