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1983 전생 만화왕

응답하라 1983 (1)

2018.11.09 조회 80,159 추천 967


 “나 먼저 간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근처에 있던 애들의 시선이 몰린다.
 
 “어? 갑자기 왜? 좀 있다가 2차도 가야지. 윤환이 너 바쁘냐?”
 “그래, 더 놀다가. 너 빠지면 재미없잖아.”
 “맞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빠진다니 말이 안 되지.”
 
 그런 분위기 때문에 내가 슬쩍 손을 들고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늘 집에 중요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우리 꼰대가 명령했거든. 그러니까 미안.”
 
 그 말에 동창 녀석들이 수긍하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너네 아버지 명령이라면 이해가 된다.”
 “맞아. 쟤 아버지 장난 아니게 무섭잖아.”
 “와, 넌 진짜. 그런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숨 쉬고 사냐?”
 
 여기 있는 대부분의 녀석들이 내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쉽다야. 조만간 다시 모이자. 알겠지?”
 “그래, 네가 있어야 동창모임도 재밌잖아. 안 그러니?”
 
 여자애들도 내가 가는 게 아쉽다는 반응이다.
 
 “미안, 다음에 모일 땐 시간 완전히 비워둘 테니까.”
 “그래. 멀리 안 나간다.”
 “어. 그래.”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그때였다.
 
 “윤환아, 잠시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여자애가 있었다.
 이름이 뭐였지?
 김·····지수 인가?
 고등학교 때와 완전히 달라진 외모 때문에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름 날 열심히 따라 다닌 애들 중 하나였었는데.
 애들은 이미 내가 자리를 뜨자마자 관심도 없다는 듯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문 앞에서 서둘러 다가온 김지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추어 섰다.
 
 “······왜?”
 “저기, 내일 연락해도 돼?”
 “응? 연락? 왜?”
 
 내 말에 그녀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입술을 살짝 깨문다. 하지만 그런 티를 안 내려고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냥 너랑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다시 연락하며 지내는 게 어떤가 싶어서.”
 
 그래도 옛날보다는 많이 발전했네.
 그때는 곁에 잘 다가오지도 못하더니.
 어쨌거나 난 별로 그럴 생각이 없다.
 내가 김지수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미안, 나 좀 바쁜데.”
 “상관없어.”
 “아니, 내가 상관이 있어.”
 “······.”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은색의 금속 문손잡이를 밀며 다른 손으로는 슬쩍 들며 말했다.
 
 “다음 동창모임 때 보자.”
 “······.”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게 슬쩍 보였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호프집 건물을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그리고 차가운 밤공기처럼 머리도 차갑게 변했다.
 슬쩍 건물 2층의 호프집을 올려다본다.
 평소에 연락도 없이 지내는 녀석들과 별달리 할 말도 없었고,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엄마가 사람들이랑 자주 어울리라며 부탁한 게 아니라면 이런 모임 따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녀석들이 아직도 내게 호감을 많이 보이고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엄청 잘나서도 아니고, 사회성이 좋아서도 아니다.
 그저 우리 집이 한때 지역 지주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 잘 나갔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한때’와 ‘잘 나갔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내가 군대입대 후에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서 결국 홀라당 전 재산을 날려버리셨고, 결국 아버지는 무책임하게 자살까지 해버리셨다.
 아, 씨.
 또 아버지 생각하니까 짜증난다.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전 재산을 몽땅 날려서가 아니다.
 무책임하게 엄마와 날 두고 멋대로 죽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는 우리에게 빚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도망치거나 위장이혼 같은 방법도 있었는데, 굳이 목숨까지 버릴 이유가 있었을까. 때문에 그 충격으로 엄마는 2년을 넘게 골방의 폐인처럼 지내왔었다.
 엄마는 오로지 아버지만 바라보고 살아오셨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그 충격이 오죽했겠나.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버지에 대해 짜증이 밀려온다.
 아무튼 고교 졸업 후에 집을 옮기고 나서 벌어진 일이라 동창모임에서 그 사실을 아는 녀석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어딘가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임에 왔을 때 환호와 사이사이에 보인 반응들을 보면.
 날 따라 나왔던 김지수도 아마 그랬을 거다.
 
 “후우.”
 
 밤공기가 한꺼번에 입안으로 몰려들어온다.
 찬 공기 덕분에 약간 취기가 들었던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그때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누구일지는 짐작된다.
 역시나 엄마다.
 
 - 아들, 오늘은 천천히 재밌게 놀다 들어와. 엄마는 먼저 잘게.
 
 식당일 하다가 이제야 들어오신 모양이다.
 하루 12시간이라는 시간동안 하는 일임에도 예전 같은 연약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꿋꿋하다.
 
 - 응. 먼저 주무셔. 나 천천히 놀다 들어갈 거니까.
 - 알았어. 사랑한다. 아들.
 - 아, 낯간지럽게.
 - 뭐, 어떠니. 엄마인데.
 - 알았어, 알았으니까.
 - 너무 늦지 말고.
 - 어.
 
 문자만으로도 엄마가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옛날엔 정말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어린애 같은 엄마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많이 변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기나긴 시간동안 계속 방에서 꼼짝 않고 울기만 하시더니, 어느 날 눈물이 다 말랐던 모양인지 나에게 불쑥 이렇게 말하셨다.
 
 “윤환아, 너 하나쯤은 내가 어떡하든 먹여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힘내 알았지?”
 
 튀어나올 듯 부릅뜬 눈에는 그전까지 못 보던 굳은 의지가 서려있었다.
 키도 조그만데다 왜소하기만 하던 엄마가 어쩐지 그때만큼은 커다랗게 보였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변했으니, 나 역시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고, 나도 그런 엄마에게 지지 않으려고 적당한 공장에 취직해서 나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휴학한 대학교는 엄마가 반드시 다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나 역시도 굳이 대학에 다시 다녀야한다는 생각도 없고.
 
 어느새 도착한 버스 정류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놀다가 들어간다고 했는데, 일찍 들어가는 것도 뭐해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백팩을 풀어 뒤적거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한국만화 역사에 대한 책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세 번이나 빌려 벌써 열 번도 더 읽은 책이다.
 물론 열 번 이상 읽은 게 이것 뿐만은 아니다.
 도서관에 있는 만화에 관한 책은 죄다 이정도 읽은 것 같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 대한 만화계의 이야기를 특히나 좋아해서 도서관에 없는 건 서점에 가서 읽기도 한다.
 이쯤 되면 눈치 챘을 텐데, 나는 만화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
 한글을 알기도 전, 꼬꼬마시절부터 장난감보다 만화책을 좋아했다는 엄마의 증언도 있을 만큼 내게는 오래된 취미이기도 하다.
 한때는 만화가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고 그 덕분에 만화책뿐만 아니라 만화에 대한 것이라면 뭐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중도 포기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내 취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어도, 인터넷의 정보를 찾는 것도 오로지 만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만화가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내게는 관심의 대상이었을 정도로 이쪽분야에만 몰입했었다.
 그 때문일까, 날 아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오타쿠니, 덕후니 하며 부르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나마 고등학교 시절엔 엄마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들을 수시로 집으로 불러 대접했고, 친한 친구들에겐 선물이나 용돈까지 쥐어주기도 했다.
 덕분에 학창시절엔 힘 꽤나 있는 친구들을 많이 둬서 왕따 생활은 면할 수 있었고, 지금도 날 기억하는 애들이 많은 것이다.
 어쨌건, 그럼에도 내게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다.
 
 저녁이라 어둡기는 하지만, 정류장에 있는 광고판 덕분에 글씨는 잘 보인다.
 여기서 좀 읽다가 천천히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싶다.
 그렇게 정류장 벤치에 앉아 책을 읽은 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새 사람들도 제법 모여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대충 한 시간 가까이 흘러버렸다.
 그 사이 몇 대의 버스가 그냥 지나쳐 갔을 것이다.
 
 쯧.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책을 백팩에 다시 넣었다.
 계속 이렇게 정신 잃고 책을 읽다가는 정말 이곳에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빵빵거리는 소리도.
 
 “······?”
 
 경적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도로 한쪽 편에 리어카가 서있고, 뒤에서 금방 세차라도 한 건지 표면이 푸른색으로 번들거리는 멋들어진 쿠페가 서있다.
 
 빵빵.
 
 “아, 진짜! 도로에서 뭐하는 거야! 빨리 치우지 않고!”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젊은 남자가 소리쳤다.
 무슨 일이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쭉 빼고 상황을 살핀다.
 도로위에 골판지 박스들이 쏟아져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박스를 싣고 가던 리어카에서 쏟아진 모양이었다.
 리어카의 주인으로 보이는 모자 쓴 노인이 허둥대며 서둘러 박스를 쌓고 있었는데, 높이 때문에 쌓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아, 씨발. 빡 치게! 시간 없어 죽겠는데, 별 거지같은······.”
 “아 왜 저런데?”
 
 조수석의 창문이 열려있고, 그곳에 보이는 여자도 짜증을 부린다.
 그런데 여자의 얼굴이 낯이 익다.
 어? 김지수?
 아까 동창모임에서 봤던 김지수였다. 그런데 그녀가 승용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김지수가 투덜거리며 팔짱을 낀 채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순간 그녀의 눈이 커지더니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러더니 곧 내가 버스 정류장에 서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곧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오빠, 됐으니까, 그냥 피해가자.”
 “아씨, 짜증나게스리.”
 
 차안에서 버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길게 차량이 이어지는 1차선 쪽으로 천천히 진입해 들어간다. 더불어 뒤에 오던 차량들도 천천히 1차선으로 들어가며 리어카를 피해간다.
 난 멀어지는 승용차를 슬쩍 보고는 피식 웃었다.
 내 꼴을 보니 정나미가 뚝 떨어진 모양이다.
 뭐, 내 생각이 맞았네.
 하지만 별로 상관은 없다. 애초에 관심도 없으니까.

작가의 말

신작은 늘 긴장으로 시작하는 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댓글(71)

마아카로니    
건투를.
2018.11.09 23:19
Friday    
일단 게임마켓하고 넘버링이 같은게 조금 독특하네요.
2018.11.10 13:31
필로스    
신작 축하합니다!
2018.11.10 13:40
판다큐마    
일단 선호작 등록후 쌓이길 기다리겠습니다!! 신착 축하드리고 건필하세요
2018.11.10 14:41
[탈퇴계정]    
잘봤습니다.전작처럼 1등으로 마무리 했음 좋겠네요.
2018.11.10 17:31
국화밭그놈    
손작가님인줄 알았는데 스메작가님이시네
2018.11.10 20:48
에피루    
기대돼요. 이번 작품은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
2018.11.11 12:17
ar******    
잘보고갑니다~!!
2018.11.11 13:18
언행일치    
기대되는 스토리네요.
2018.11.12 10:54
다현.    
화이팅
2018.11.13 13:10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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