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평민에서 재벌까지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저승입니다

2018.11.20 조회 61,791 추천 903


 “저어, 아저씨 죄송한데 문 좀 열어주세요. 벨 누르는 걸 깜빡해서...”
 
 뒤 돌았다가 난처한 표정의 여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다음부턴 미리미리 벨 좀 눌러주세요.”
 
 으이그 저런 사람이 꼭 있지. 버스 타자마자 스마트폰만 주야장천 들여다보다 하차 벨도 안 누르고 갑자기 내려달란 사람. 가끔은 좀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직업인걸.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졸업 후에도 이것저것 시도는 많이 해봤지만, 결국 딱히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었다. 그나마 운전은 자신 있어서 현실과 타협하여 선택한 직업이 지금의 버스 운전기사다.
 
 지금 모습이 내가 어릴 적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내 직업이 좋다. 피곤에 찌든 직장인들을 한가득 태우고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기분. 아주 이른 새벽 첫차부터 내가 모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타는 이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서민들이 주 고객층이어서 인지.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내 버스에 오르는 승객. 데이트 가는 길인지 향수냄새 풍기며 올라타는 밝은 얼굴의 승객. 가끔 무거운 짐을 힘겹게 들고 오르는 그들. 모두 남일 같지가 않아.
 난 그들을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삑.
 
 “아이고, 아직 다인승 카드 입력도 못 했는데...”
 “네?”
 “두 분이시잖아요.”
 “아~ 하하하. 한 번만 봐주세요. 한 명분은 더 크면 낼게요.”
 
 임신해서 배가 부른 승객이 타기에 괜히 농담을 걸어봤다. 하루 종일을 차 안에만 갇혀있으니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이 직업도 해 먹기 힘들다. 나의 재미없는 농담을 센스 있게 받아준 임산부가 빈자리를 찾아 앉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버스를 출발시켰다.
 
 ‘좋았어. 실력 발휘 좀 해보자.’
 
 출발도 정차도 최대한 스무스하게 했다. 퇴근 시간을 지나서 9시가 다 된 시각. 막히던 길도 한산해져 가고 그리 급할 것도 없는 시간대라 부릴 수 있는 약간의 여유. 하지만 그러면서도 앞차와 배차 간격을 놓치지 않는 나는 베테랑 버스 드라이버다.
 
 “어? 뭐야 저거.”
 
 좌회전을 받기 위해 중앙차선으로 차를 붙이며 차선을 옮기는 중에, 중앙선 너머 맞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덤프트럭의 모습이 조금 불안해 보였다.
 
 ***
 
 아마 2010년쯤 이었나보다.
 죽마고우인 동수가 비트코인이란 거에 투자 좀 할 생각 없냐고 꼬실 때 내가 그랬었다.
 
 “가상화폐? 그딴 거에 투자해서 괜히 아까운 돈 날리지 말고, 정신 차리고 적금이나 들어 인마.”
 
 미친, 내가 그때 왜 그랬지. 그냥 속는 셈 치고 동수 말대로 얼마라도 사두고서 묵은지 묵히듯 푹 묵혀만 뒀다면, 나도 돈 좀 벌었을 텐데. 에효, 그냥 생각을 말자. 이미 버스는 떠나갔는데 인제 와서 손 흔들면 뭐 하겠나 나만 초라해진다.
 
 ‘아? 내가 버스운전 기사지~ 하하하.’
 
 올해 서른아홉 살. 나도 어쩔 수 없는 아재인 모양이다. 시덥잖은 과거의 일과 현재 내 직업을 매치시켜 나 홀로 개그를 쳐봤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 나와서 말인데, 굳이 비트코인이 아니라도 내겐 인생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었다.
 
 그중 오래됐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거라면,
 내 나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 처음으로 사봤던 로또복권.
 
 ‘크아~~~!’
 
 진짜로 아쉽게 딱 한자리가 틀려 3등에 당첨된 쓰라린 기억. 그때 1등 당첨자가 세 명이었다. 1등 당첨금은 대략 50억. 나는 딱! 한 끗 차이로 3등에 당첨됐다. 그래서 내가 받은 당첨금이 고작 172만 5천 3백원.
 
 20살 나이에 생긴 꽁 돈치고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1등에 비하면 말이 안 돼는 금액.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 그때 생각을 하며 이불 킥을 하곤 한다.
 
 당시 추첨 회차, 내가 샀던 번호, 그리고 1등 번호까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외우고 있을 정도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니 또 우울함이 몰려 온다. 진짜, 그때 번호 하나만 바꿨어도. 그랬다면 내 인생도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근데 오늘 진짜 좀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옛날 일이 떠오르는 거야.‘
 
 “선생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이분 맥박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심장 제세 기동기 준비하고, 일단 기도확보해서 인공호흡이라도 해. 골절부위 있을지 모르니 흉부압박은 함부로 하지 말고.”
 “네.”
 
 귓가에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머니가 드라마라도 보고 계신가. 소리 조금만 줄여 주시지. 졸려 죽겠는데...’
 
 졸리다.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 운전 중이 아니었나...?
 
 “심장제세기동기 준비됐습니다. 120줄 충전.”
 
 퍼엉...
 
 “반응 없음. 150줄로 올려.”
 “150줄 충전.”
 
 퍼엉...
 
 따지고 보면 꼭 로또나 비트코인만이 아니다. 내가 40년 인생을 살면서 놓쳐버린 기회들은. 아 정말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건지. 내가 살아온 나날들이 영화필름처럼 눈앞을 지나간다. 그리고 눈앞에 지나가는 내 인생의 파노라마는 후회와 아쉬움의 순간으로 가득 차 있다.
 
 “반응 없음 170줄.”
 “170줄 충전.”
 
 퍼엉...
 
 “커어헉. 헉.”
 “선생님, 선생님. 정신이 드세요? 조금만 참으십시오.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정신 잃지 말고 견뎌내셔야 합니다.”
 
 참을 수 없는 격통이 온몸을 엄습했다.
 
 흐릿한 내 시야에 구급대원의 걱정 어린 얼굴이 보였다.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격통. 아! 기억났다. 좌회전하려고 중앙차선 쪽으로 붙었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정면으로 덮쳐왔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본 것이 죽기 직전 보인다는 주마등인 모양이다.
 
 “선생님, 힘내세요. 병원에 거의 다 왔습니다.”
 
 구급대원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태어나서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일 텐데. 이렇게 진심으로 날 살리려 한다니 무척이나 고맙다. 그런데 온몸의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빨리 죽고 싶어질 정도다.
 
 ‘아... 다 필요 없고 엄마나 보고 싶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곤, 여자 혼자 힘으로 나를 키운 우리 어머니. 이날 이때껏 효도 한 번을 제대로 못하고, 손주는커녕 아직 며느리도 못 보셨는데.
 
 ‘포기하지 말고 이 악물고 살기 위해 버텨볼까. 혹시 살지도 모르잖아.’
 
 몸이 부서질 듯한 격통을 참아내며 정신 줄을 잡기 위해 노력해 봤다.
 
 ‘이대로 죽을 수는...’
 
 .....아! 아니구나....
 
 그냥 이대로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몸 상태 내 눈으로 확인 할 순 없어도 가까스로 산다고 해도 분명 성치는 못할 터. 혹시라도 불편한 몸으로 평생 엄마의 짐이 되는 건 아닐까. 문득 스친 생각에 나는 바로 삶에 미련을 버렸다. 그래야만 했다. 그 대신에 진짜 죽는 거라면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뜻대로 되지 않고 실패와 실수만 하던 인생 마지막 정도는 폼 나고 당당하게 가고 싶다.’
 
 “우으으으.”
 “선생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조금만 견디세요.”
 
 부러진 건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을 움직이려 애썼다.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가까스로 주머니로 향했다.
 
 “주머니에 뭐가 있으세요? 꺼내드릴까요?”
 “우으으...”
 
 고개를 끄덕이는 것마저도 힘겹다.
 
 “여기 있습니다. 지갑에 가족사진이라도...”
 
 지갑에 가족사진은 없다.
 구급대원이 펼쳐 든 내 지갑에 면허증을 가리켰다.
 피 묻은 내 손이 면허증에 닿아 꺼내진 못하고 미끄러졌다.
 
 “면허증? 면허증이요.”
 
 구급대원이 내 지갑에서 면허증을 꺼내든 걸 보고 편하게 눈을 감았다. 5년 전에 했던 사후 장기기증 서약. 면허증에는 내가 사후 장기기증을 약속한 사람이란 표식이 되어있다.
 
 대박은커녕 평타도 제대로 못 쳐본 내 인생.
 마지막 가는 길로 이 정도면 됐나?
 
 ‘....씨바...엄마 미안해요.’

댓글(48)

신세계신    
2018.11.27 09:39
아봉    
찡하네 가는길 보시하고 가시네 존경스럽지 아니한가 !
2018.11.28 20:00
OTlL    
2018.11.29 09:34
칼없어요    
좋은 사람이군요
2018.11.29 16:08
여유만만    
정말 우리 일상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이시네요 좋은신분
2018.11.29 18:37
사막여우12    
죽는 순간에 사후 장기기증 생각하다니.
2018.12.01 17:47
데르데르곰    
키워드에 한번 들어와봤는데... 연예가 연애를 잘못 쓰신 건지 궁금하네요. 되도않는 이상한 여자랑 엮이는 건 너무 지겨운데... 연예인이랑 엮이는 것도 식상하고요. 그런데 도입부가 재밌어 보이네요.
2018.12.01 19:44
이블바론    
캬 최후 멋지다.. 죽기직전에 장기기증 생각하다니..
2018.12.02 13:20
진호(珍昊)    
비밀글입니다.
2018.12.03 06:29
ReadytoDie    
비밀글입니다.
2018.12.03 13:57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