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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 1화

2018.11.22 조회 2,599 추천 32


 
 
 귀향
 
 
 
 두 다리를 벌리고 선 강기철은 앞쪽 2층 창문 커튼이 조금 젖혀지는 것을 보았다. 커튼이 걷히면 창문이 열리고 인질범이 인질과 함께 모습을 나타낼 것이었다. 한낮의 태양이 머리끝에서 직사되는 오후 한시 반이다. 7월 하순의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여서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눈으로 스며들었지만 강기철은 오히려 눈을 부릅떴다.
 
 두 손으로 움켜쥔 베레타 92-F의 묵직한 중량으로 어깨가 뻐근했지만 앞으로 1분 안에 결판이 날 것이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뒤쪽에 엎드린 특공조 세 명도 모두 고인 침을 삼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강기철은 어깨를 천천히 부풀리면서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길게 내뿜었다.
 
 인질범은 세 명이다. 여자의 목을 팔로 휘감고 몸을 뒤로 숨겨 머리 반쪽만 내놓은 주범은 손에 권총을 들었다. 다른 두 명도 각각 기관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어 실수 한 번이면 인질도 죽고 자신도 죽는다.
 
 그 순간 2층 창문의 커튼이 걷혀졌다. 거리는 22미터, 유효사정거리 안이지만 20미터가 넘으면 명중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더구나 과녁은 지름 15센티 정도의 머리 반쪽이다.
 
 강기철은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커튼이 다 걷혔고 창문 뒤쪽으로 여자와 인질범의 모습이 보이더니 곧 창문이 활짝 열렸다.
 
 “총을 버려라!”
 
 인질범의 굵은 목소리가 벼락치듯 마른 땅과 대기를 울렸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를 죽인다!”
 
 인질범이 쥔 권총은 토카레프였다. 러시아제로 장탄수 8발, 약실 안의 1발까지 합하면 9발이다.
 
 “총을 버려라!”
 
 다시 인질범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숨을 들이마셨던 강기철은 베레타의 방아쇠에 걸려 있던 검지를 부드럽게 당겼다.
 
 “탕!”
 
 첫 번째 총탄이 발사된 순간 진동으로 이마에 걸려 있던 땀방울이 또 눈으로 들어갔으므로 강기철은 저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다음 순간 강기철은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옆쪽 창문에 모습을 비친 인질범을 향해 연속해서 두 발을 쐈다.
 
 “탕! 탕!”
 
 두 발을 연사한 순간 강기철은 발사된 첫 번째 유탄이 여자를 잡고 있던 인질범의 두 눈 사이에 명중된 것을 알았다.
 
 강기철은 두 눈으로 보고 그것을 머리로 인지한 그 찰나에 옆쪽 인질범을 향해 연사를 했던 것이다. 다시 몸을 돌린 강기철은 연사한 두 발이 기관총을 쥔 인질범의 목과 가슴에 명중된 것을 보았다.
 
 “탕! 탕! 탕! 탕!”
 
 이번에는 권총을 쥔 인질범을 향해 네 발을 쏘았다. 첫 번째는 가슴, 두 번째 총탄은 이마 한복판에 명중했지만 나머지 두 발을 배꼽 근처에다 쏴맞춘 것이다. 두 발은 덤이다.
 
 “그만!”
 
 뒤에서 고함소리가 울렸으므로 어깨를 내린 강기철은 몸을 돌렸다. 판정관 이종복 소령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눈을 치켜떴지만 입술은 웃고 있었다.
 
 “자식, 대단하구나.”
 
 이종복이 힐끗 2층 창문의 마네킹을 보고는 말했다.
 
 “딱 이 초 걸렸다. 네가 제일 낫다.”
 
 이종복의 뒤쪽에는 엎드려 있던 특공조 세 명이 일어나 있었는데 김빠진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보조 역할인 것이다. 그때 사격장으로 행정병 오 하사가 달려 들어왔다.
 
 “강 중사님, 대장님 호출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가선 오 하사가 말을 이었다.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십시다.”
 
 ***
 
 제9797특공사는 공수특전단에서 분리된 특수부대로 국군의 유일한 대 테러 전담 부대이다. 따라서 부대원은 모두 직업군인이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되는 터라 정예 중의 정예라고 불러도 결코 과언은 아니었다.
 
 강기철이 부대장 박재성 준장 앞에 섰을 때는 그로부터 5분쯤 후였다. 40대 후반의 박재성은 특공사의 창립 부대장으로 부대원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매사에 엄격했다. 특히 훈련에는 인정사정없어 낙오자 뒤에서 권총을 쏘아대는 것으로 유명했다.
 
 강기철이 절도 있게 신고했을 때 박재성은 읽고 있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었다. 햇볕에 탄 검은 얼굴에서 두 눈이 매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넌 지난 2월에 미군 훈장을 탔더군. 골드메달인가?”
 
 “그렇습니다, 대장님.”
 
 강기철이 박재성의 가슴께에 시선을 준 채 배에 힘을 넣고 대답했다. 골드메달은 미 육군이 작전에 참가한 타국 병사에게 수여하는 전투공로 메달이다. 강기철은 지난 3년간 미 육군 특수부대인 레드 코만도로 파견되어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하고 지난 3월에 원대 복귀했다.
 
 박재성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 메달은 잘 보관하고 있나?”
 
 “아닙니다.”
 
 강기철이 기운차게 대답했을 때 박재성이 시선을 들었다.
 
 “아니라구?”
 
 “예, 대장님.”
 
 “잊었나?”
 
 “아닙니다, 팔아서 술 마셨습니다.”
 
 눈썹을 치켜 올렸던 박재성이 다시 덤덤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넌 다음 달에 상사로 진급된다. 그리고 일급 기장도 받게 될 것이다.”
 
 강기철은 19세에 입대하여 올해로 28세가 되었으니 직업군인 생활이 햇수로 10년째다. 그동안 장교로 임관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양하고 작전 지역으로만 옮겨 다녔다. 상사는 준사관의 최고위 계급이며, 일급 기장은 특공사의 최정예 엘리트임을 증명하는 징표나 다름없었다.
 
 박재성이 말을 이었다.
 
 “너처럼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뛰어난 병사는 특공사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강기철은 긴장했다. 3년은 외국에 나가 있었지만 특공사 생활 5년 동안 박재성이 누구를 칭찬했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불길한 예감이 드는 법이다. 그때 박재성이 강기철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네 가족은 형님 한 분뿐인가?”
 
 “예, 대장님.”
 
 “어제 네 형님이 사고로 사망하셨다.”
 
 박재성은 강기철의 시선을 잡은 채 내려치듯이 말을 이었다.
 
 “일주일 휴가를 줄 테니까 귀향하도록······. 알았나?”
 
 “예, 대장님.”
 
 “그리고······.”
 
 박재성이 서랍을 열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어 책상 위로 밀었다.
 
 “이건 장례비용으로 써라. 받아라.”
 
 강기철이 눈만 껌벅였을 때 박재성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집어.”
 
 “예, 대장님.”
 
 “삼가 애도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특공사 엘리트답게 처신하고 귀대하도록. 알았나?”
 
 “예, 대장님.”
 
 강기철은 절도 있게 경례했다.
 
 강기철의 어머니는 세 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열 살이 되었을 때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 강기철의 형 강용철은 여덟 살이나 위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모와 삼촌이 한 사람씩 있었지만 모두 무심한 사람들인지라 그때부터 단둘만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를 중퇴한 강용철은 중국집 배달원부터 시작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강기철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따라서 강용철은 기철에게 부모 이상 가는 존재였다.
 
 강기철은 해외 전투에 파견되었을 때 10여 명의 적을 사살한 경험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동굴 안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탈레반을 대검으로 찔러 해치운 적도 있었다. 그러고도 10분도 안 되어 미군 코만도 동료들과 레이션을 까먹으면서 농담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형의 시신이 안치된 해남의 병원까지 가는 동안 강기철은 끊임없이 자신이 전장에서 살해한 적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러자 머릿속에 넣어둔 것 같지도 않았던 새로운 장면들이 떠올랐다. 보스니아에서 총에 맞았던 사내는 어렸다. 미처 스무 살도 안 되었을 것이다. 50미터쯤의 거리에서 강기철이 쓴 총탄을 상체에 대여섯 발이나 맞고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는데 평온한 표정이었다. 사내는 1분도 안 되어 숨이 끊어졌으니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강기철이 자꾸 지난 장면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형의 죽음을 자신이 죽인 적들의 죽음으로 상쇄시켜보려는 의도였다. 형의 죽음을 가볍게 넘겨보려는 나름대로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해남에 도착하여 병원 영안실로 들어섰을 때 강기철의 의도는 빗나갔다. 강기철을 발견한 형수 김옥현이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마음씨 착한 김옥현은 세상에서 강기철의 생일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강기철의 옷깃을 움켜쥔 김옥현이 서럽게 울었다.
 
 “어떡하면 좋아요. 어떡하면······.”
 
 그때 강기철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보스니아도, 아프가니스탄의 동굴 속 사내도 다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겨우 그렇게 물었던 강기철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강용철은 차와 함께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사망했다는 것이다. 운전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다. 김옥현을 진정시킨 강기철은 곧 상복으로 갈아입고 문상객을 맞았다. 강용철이 시내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맡고 있었으므로 문상객은 건장한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다. 일찍 세파에 뛰어든 강용철은 조직폭력단에 가담했고, 여러 번 곡절을 겪은 후 하급 보스가 되어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지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문상객들이 술렁거리더니 곧 양편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한 사내가 거침없이 다가왔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는 건장한 체격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이었다. 영정 앞으로 다가선 사내가 곧 절을 올리더니 강기철의 앞으로 돌아서서 다시 맞절을 했다. 사내에게서 짙은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서로 마주 앉았을 때 사내가 강기 철을 정색하고 보았다.
 
 “내가 자네 형님을 동생처럼 생각했던 민광준이라고 하네.”
 
 강기철이 머리만 숙여 보이자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뭐라고 말하지도 못할 만큼 애통하네. 자네는 하나뿐인 형님이 이렇게 되었으니 나보다 더하겠지.”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세.”
 
 사내가 일어섰을 때 강기철은 다시 향수 냄새를 맡았다. 분위기와 맞지 않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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