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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1화

2018.11.27 조회 1,018 추천 14


 [프라이드 1권 1화]
 
 
 
 
 프롤로그 (1)
 
 
 1256년 8월 어느 날.
 “중대장님.”
 포수인 베르너 하사가 알렉세이 중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야릿한 꿈을 꾸고 있던 알렉세이 중위가 잠에서 깼다.
 그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베르너 하사의 눈과 마주쳤다.
 차내에 적색등이 켜져 있어 베르너 하사의 눈동자가 유약 바른 도자기처럼 반짝였다.
 “이런, 내가 얼마나 자고 있었지?”
 그는 회녹색의 장교모자를 벗어 뒷머리를 긁었다.
 사흘 동안 감지 않아 그의 머리는 머릿기름으로 떡이 져 있었지만, 최대한 가지런하게 뒤로 넘겼기 때문에 그리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한 40분 정도 자고 있었습니다.
 전차병들이 차내에서 통화하기 위해 마련된 헤드셋을 통해 마이어 병장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이 친구는 전차의 운전수로 자기가 고생하는 사이 잠을 자던 알렉세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고 그것을 눈치챈 알렉세이는 뒷머리를 또 긁었다.
 “미안하군, 마이어.”
 “좋은 꿈을 꾸고 계셨습니까? 자는 내내 웃으시더군요.”
 장전수인 가브리엘 상병이 웃으며 물었다.
 “별거 아니야. 꿈도 꾸지 않았다고.”
 중대 지휘관이자, 전차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전차장이 잠들어 버리다니······.
 민망해진 알렉세이는 수줍게 얼굴을 붉혔지만, 적색등으로 켜진 차체의 불빛 덕분에 다른 승무원들에게 들키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무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한 채 전차장에게 주어진 스테레오 거리측정기에 애써 시선을 돌리자, 가브리엘 상병과 베르너 하사는 서로를 마주보고 빙긋 웃었다.
 알렉세이가 어찌나 코를 골던지 승무원들의 헤드셋을 통해 계속 들렸던 것이다.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고 이런 무안한 자리를 피할 겸 알렉세이는 해치의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원형의 강철 문밖의 하늘은 푸르고 층적운(層積雲) 사이로 부드러운 햇빛······.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 천국을 감상했다.
 그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황홀해진 그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기름과 화약 연기로 오염된 차체의 냄새와 다른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가죽장갑을 벗어 끈적한 땀으로 범벅된 손으로 흙먼지 묻은 얼굴을 닦아낸 그는 기운차게 의자를 밟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지옥이 강림했다.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적의 야전진지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말고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야전포병대의 사전 준비 포격은 끝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흙먼지가 잔뜩 일어나 있어 시야가 불량했다.
 그리고 저 흙먼지의 안갯속에서 적들은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과 감탄, 동경심으로 가득했던 얼굴은 이내 차갑게 식어버리고 뒷목은 뻣뻣해졌다.
 그는 목에 걸어두었던 쌍안경을 들어서 적진을 살펴보며 헤드셋의 수신 버튼을 눌렀다.
 “펜리아, 무전기를 중대 전체 발신으로 바꿔.”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있었던 소소한 재미로 빙긋 웃고 있던 무전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명령을 이행했다.
 알렉세이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배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중대, 정지.”
 중대라고 해봤자 고작 4대밖에 없는 중(重)전차 소대가 그대로 멈추었다.
 사실 그는 정식 중대장이 아닌 임시중대장으로 중대 최선임 장교라서 중대장의 직책을 맡고 있던 것이지 원래 중대장은 지난 전투에서 죽었다.
 그가 속한 제107중전차대대는 지난 적국인 발레스 연방의 공세에 완전히 박살나면서 대대 자체가 와해되었던 것이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47분, 작전 개시 시각은 50분이었다.
 목표는 이곳에서 대략 남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아드라강의 도시 페로나였다.
 공세로 나서는 부대는 1개의 임시편성 기갑대대와 1개의 기계화보병연대로 급조 편성된 기계화전투단 에델바이스.
 부대 자체가 임시편성이 된 덕분에 알렉세이가 속한 중대를 제외한 다른 전차들은 전부 타 부대 소속이었고 기계화보병연대 또한 처음 만나는 부대들이었다. 즉, 패잔병들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각 차량 상태 점검. 이제 파티가 시작될 거야.”
 “엔진, 연료계 이상 없음.”
 조종수 마이어 병장이 답했다.
 “무전기, 차체기관총 이상 없음.”
 무선수 펜리아 일병이 답했다.
 “주포 폐쇄기 이상 없음.”
 장전수 가브리엘 상병이 답했다.
 포탑이 살짝 좌우로 움직이더니 포신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중전차의 105밀리, 52구경장 포는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주포 조준경, 조작기구 이상 없음.”
 -로엔그린 02, 전투 준비 완료······. 로엔그린 03······.
 모든 준비가 끝났다.
 “로엔그린 01이 로엔그린 전체에게.”
 로엔그린은 그의 중전차 중대의 수신부호였다.
 “이번 전투는 우리들의 조국, 메멜란트의 국운이 걸린 매우 중요한 전투다. 발레스 놈들은 페로나에 교두보를 만들었고 공격의 준비를 하고 있다. 놈들이 진격하게 된다면 우리 조국의 미래는 없다. 지금 군단에서 가용 가능한 기동 병력은 고작해야 급조 편성된 우리 기계화전투단뿐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후퇴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페로나를 점령하고 다리를 무너트려야 한다. 그래야 아드라강을 통한 자연적인 방어선 형성이 가능하다. 자, 제군들······. 준비되었나?”
 -예!
 우렁찬 대답들이 들려왔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고 빙긋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가 무사히 끝나면 내가 거하게 맥주를 쏘도록 하지.”
 그의 말에 중대수신채널을 통해서 온갖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그는 ‘죽지 마라’라고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 하면 재수 없게 생각하니까.
 “각 차 건투를 빈다. 이상.”
 “승산이 있는 전투입니까?”
 펜리아 일병이 물었다.
 “급조 편성된 1개 기계화전투단으로 적의 교두보를 공격하라니······. 너무 무모한 것 같습니다.”
 “시끄러, 어떠한 적이 나타나도 훌륭한 전차병만 있으면 막을 수 있어!”
 베르너 하사였다.
 “그리고 여기에 탄 사람들은 전부 매우 훌륭한 전차병이고 우리가 탄 전차는 매우 강력한 중장갑에 포 또한 강력하지.”
 “그렇습니다.”
 장전수 가브리엘 상병이 맞장구쳤다.
 “우리의 105밀리 포는 그 어떠한 적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래, 맞아.”
 알렉세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 2년 동안 합심해서 잘 싸워왔어. 여태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거야. 평소처럼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면 아무리 힘든 전투라도 돌파할 수 있다. 그러니까, 펜리아. 걱정하지 말고 모두를 믿어.”
 -로엔그린, 응답하라 여기는 아서왕.
 아서왕은 대대본부였다.
 “여기는 로엔그린.”
 알렉세이가 대답했다.
 -전방에 특이사항 있나?
 그는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좋아, 그러면 작전대로 개시한다. 각 중대, 전진한다. 중앙은 로엔그린, 우측은 모드레드, 좌측은 랜슬롯이 맡는다. 군단 정보참모의 말에 따르면 전방의 적의 방어선에서 적의 대전차 세력은 전무한 것으로 판단된다. 모두들 건투를 빈다. 대대, 전진!
 “중대, 전진! 전투 대형을 이뤄라.”
 알렉세이는 중대 전체에 명령을 내린 직후 큐폴라위에 머리만 내민 채 쌍안경으로 계속 전방을 주시했다.
 포병들의 포격으로 적들의 야전진지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고 로엔그린 중대는 시속 25킬로미터의 속도로 전면을 향해 전진했다.
 에델바이스 전투단은 반드시 페로나를 점령해야 했다. 아니, 적어도 페로나의 북부는 반드시 장악해야 한다.
 조국, 메멜란트는 지난 2년 동안 치른 전쟁 중에서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
 군대는 아드라강 남부의 영토, 이는 전체 국토 30%에 해당하는 영토를 상실한 채 북부로 내몰렸다.
 사령부의 높으신 분들은 동서로 흐르는 거대한 강인 아드라강을 통해 자연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고자 했지만, ‘행정적 실수’ 때문에 그 다리를 파괴하는 것은 물론, 수비 병력은 고작 1개 보병대대 병력밖에 두지 않았다.
 그로 인해 페로나를 적국인 발레스 연방에게 빼앗기면서 그곳에 있는 다리를 통해 적들의 군대가 강을 넘어 진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페로나를 점령하고 다리를 무너트려 버리는 것이 에델바이스 전투단의 전략적 목표였다.
 적들은 페로나를 점령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적들의 방어선은 그리 강력하지 않았다.
 지뢰나 대전차방어물, 심지어 철조망도 없이 참호만 판 야전진지는 중전차에겐 매우 쉬운 방어선이었다.
 -로엔그린 03이 01에게.
 알렉세이가 생각에 잠긴 사이 헤드셋을 통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중대장 겸 전차소대 지휘관인 쇼하르트 소위였다. 그는 알렉세이의 1년 후배로 그와 함께 2년 가까이 같이 전투를 한 남자이기도 했다.
 “01, 수신.”
 -해치를 닫아주십시오. 적의 저격병이 의심됩니다.
 ‘녀석.’
 알렉세이는 콧방귀를 뀌었지만, 상체를 전차 안으로 넣고 해치를 닫고 큐폴라(전차의 관측용 해치)의 잠망경을 통해 바깥을 보았다.
 중대가 적 야전진지의 500미터 앞까지 접근했는데도 불구하고 적의 전선은 고요했다.
 적들은 진지를 포기하고 도망간 것인가?
 다리를 장악한 지 아직 하루밖에 안 되었고 그로 인해 아직 방어선이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조잡한 야전진지를 고수하는 것보다 비교적 방어하기 쉽고 은엄폐가 쉬운 시내로 들어가······.
 -경보! 2시 방향에 대전차포!
 헤드셋을 통해 쇼하르트 소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알렉세이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섬광이 번쩍이면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포탄이 측면장갑을 맞고 튕겨나가는 소리였다.
 “기동 정지. 포탑 2시 방향으로.”
 알렉세이는 명령을 내렸고 큐폴라에 있는 관측용 잠망경을 통해 적의 대전차포를 찾았다. 적들이 사용하는 76밀리 대전차포였다.
 물론 알렉세이의 중전차의 전면장갑을 뚫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근거리에서 피격당하면 매우 위험한 데다 측면을 맞을 경우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 튕긴 것은 비껴 맞은 덕분이지 단순히 장갑이 두꺼워서가 아니었다.
 “거리 500, 목표 적 대전차포, 유탄 장전!”
 경보가 떨어지기 무섭게 알렉세이는 베르너 하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포탑이 돌아가는 사이 가브리엘 상병이 얼른 유탄을 꺼내 약실에 밀어 넣고 주포 폐쇄기를 닫았다.
 “장전!”
 “쏴!”
 폭음과 함께 포신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이 빠른 속도로 뒤로 후퇴했다.
 중대의 전 차량의 105밀리 유탄을 먹으면서 적의 대전차포가 폭발에 크게 들썩이더니 뒤로 넘어가 버리고 대전차포를 운용하던 대전차병들이 쓰러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포신은 다시 전진하면서 자동적으로 폐쇄기가 열렸고, 약실에서 탄피가 나와 그 밑에 마련된 탄피받이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빈 탄피에서 회색의 화약 연기와 연소 가스가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포탑 안을 가득 메웠지만, 천장에 비치된 환풍기를 통해 연기와 가스가 빠져나갔다.
 “다시 전진한······.”
 총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적의 최전방 참호 너머에 있는 제2참호선에서 쏘는 총격이었다.
 아까 파괴된 대전차 포 말고도 그자들은 다른 대전차포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76밀리 대전차포가 중대의 차량을 때렸지만, 매우 두꺼운 균질압연강판에 경사각을 가지고 있던 아군의 중전차에게는 위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궤도가 맞으면 전차가 돈좌될 수 있었기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거기에 적들은 소화기를 집중적으로 큐폴라와 포탑을 노리고 총격을 가했는데, 큐폴라의 관측창이나 포수의 조준경의 렌즈를 깨트리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전차 세력이 없다고?’
 그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중대, 최고속도! 전방의 적 참호를 돌파한다! 발연탄 발사! 대전차포들이 있으니 주의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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