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사 자일 1화]
#버려진 아이 그리고 인연 (1)
미슐랭은 가르투스 공작령의 거점 도시 중 하나로, 수도와 몬스터 랜드의 중간 지역으로서 많은 상인들과 용병들이 유동한다.
내성은 공작을 비롯한 귀족의 거처와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외성은 상인 길드와 용병 길드 등 다양한 조합이 들어섰는데, 어느 정도 부유한 상인이나 용병 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아가 된 자일은 부모의 먼 친척이 오갈 데 없는 그를 잠시 키우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미슐랭으로 데려가 버렸다.
자일을 처음 발견한 경비대는 울며불며 친척을 찾는 자일에게 싸늘한 현실을 말했다.
“넌 버려진 거다.”
처음엔 믿지 않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자 자일은 자신이 버려진 것을 깨달았다.
“버려진 녀석이다.”
경비대들은 최근 뇌물 씀씀이가 괜찮은 뒷골목 패거리에 자일을 넘겨주었다.
패거리는 깡마른 자일을 못마땅해했지만 구걸시키기에는 괜찮다 싶어 그들의 구역에서 비럭질을 시켰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가 않았다.
넙죽 엎드려서 구걸해도 인심은 야박했고, 패거리는 알아주지 않았다.
몰매 맞는 일이 다반사였으며 입은 옷은 넝마에 몸은 항상 얻어맞아 퍼런 멍이 가득했다.
현실은 가혹했다.
매일같이 소득은 거두지 못하고 몰매만 맞는 자일을 보다 못한 패거리는 도저히 일을 못 하겠다 여겼다.
그들이 봐도 아이의 얼굴은 못생긴 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외모가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갖다 버려라.”
패거리의 리더가 결정을 내렸고, 아이는 힘없이 끌려가 죽을, 아니 이미 죽은 사람들의 최후의 장소라고 불리는 하수구에 버려졌다.
그곳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불법적인 일을 꾸미는 자들이 몰래 시체나 곧 죽을 사람들을 버리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그렇게 자일이 버려졌다.
***
“흑흑흑.”
자일은 이미 하수구에 버려진 사람들의 죽은 시선을 보며 공포에 떨었다.
그들과 같은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런 자일에게 따듯한 손길이 다가왔다.
“안녕.”
힘없는 목소리지만 너무나 따듯했다.
꿈에서 매일 그리던 엄마의 목소리 같은 울림에 자일이 웅크린 얼굴을 내밀자 힘없이 웃는 여인이 보였다.
“누, 누구세요.”
자일은 겁에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의 얼굴엔 온갖 화상이 가득해 흉측하고 머리는 민머리에 팔 하나가 잘려 있었다.
단지 목소리가 어머니와 같았지 외관은 어린 자일에게 괴물처럼 보였다.
“내 이름은 라쉬야. 넌 이름이 뭐니?”
그녀의 입가가 웃는 것 같았다.
안심시켜 줄려고 그런 것일까.
자일은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자일요.”
“예쁜 이름이네.”
“라쉬도 예뻐요.”
자일은 라쉬가 건네 오는 말에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다.
라쉬는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길었다. 창녀라는 생소한 직업을 가진 여인으로 마법사의 꾐에 넘어가 실험체로 쓰이다 버려진 것이라고 했다.
“자일. 넌 아직 어리니까 이곳에서 꼭 살아 나가야 해.”
이야기를 마칠 때쯤이면 라쉬는 메말라 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자일은 그녀가 죽을까 봐 걱정되었다. 라쉬의 모습은 하수구에서 죽어 나가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라쉬, 죽으면 안 돼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아냐, 난 틀렸어. 더 이상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걸.”
“아니에요. 라쉬는 죽지 않을 거예요. 내가 라쉬를 보살펴 줄 거예요.”
그때부터 수동적이던 자일의 행동이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건강한 사람들은 깨끗하단 것을 상기하며 라쉬를 힘겹게 그나마 덜 더러운 장소에 눕히고 음식을 구하러 움직였다.
죽어 가는 사람들이 버려지는 이유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버려지며 아무것도 없는 그들은 한낱 쓰레기일 뿐, 유용하지가 않았다.
음식을 구해야 했다.
하수구에서는 결코 깨끗한 음식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는 길이 없었다. 머리를 써야 했다.
위로 올라가려면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자일은 이미 죽어 버린 시체들의 옷가지 등을 뒤적거렸다.
시체 썩는 냄새가 머리를 강하게 쑤셔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찾았다.”
가늘지만 기다란 밧줄과 녹이 슨 단검 여러 개를 발견했다.
하수구를 타고 올라가는 벽을 만져 보니 습기가 찬 흙이었다.
밧줄을 허리와 단검에 묶고 두 손으로 단검을 벽에 박았다.
벽에 잘 들어가자 단검 하나를 디딤대로 밟고 올라갔다.
떨어질 때도 몇 번 있었지만 밧줄이 그나마 느슨하게 버텨 주어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은 덜했다.
그렇게 몇 번을 시도하니 하수구에서 나오게 되었다.
“올라왔다!”
자일은 스스로 해낸 일에 기뻐했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라쉬는 이 순간에도 죽어 가고 있었다.
항상 어두운 하수구와 달리 지상은 땡볕이 쬐고 있었다.
자일은 단검과 밧줄을 품에 챙긴 뒤, 패거리의 눈에 안 띄는 곳으로 이동했다.
근처에 상인들이 좌판에 늘어트린 과일과 먹을거리가 가득했지만 훔쳤다가는 뼈도 못 추리리라.
자일이 돈을 버는 방법은 패거리가 가르쳐 준 구걸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전의 구걸과는 달랐다.
“제발 도와주세요. 라쉬가 죽어 가고 있어요. 제발 한 푼만 주세요.”
자일은 예전 어떤 사람의 바지 자락에 달라붙다 걷어차인 적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진 못했지만 근처에서 울 듯한 얼굴로 엎드리며 열연을 펼쳤다.
예전 같으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했지만 지금은 진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사람의 심리가 묘한 것이 자일이 라쉬라는 이름을 꺼냈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모나 누나, 혹은 여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측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효과를 보았다.
“이거라도 보태라.”
“쯔쯧.”
사람들은 혀를 차거나 안쓰러운 얼굴로 한 푼 두 푼 구릿빛 동전을 던져 주었다.
어떨 때는 은빛 동전을 주기도 했다.
화폐의 개념을 모르는 자일은 받은 화폐를 모아 모아 상인들에게 갔다.
상인들은 땟물이 흐르다 못해 시커멓고 깡마른 자일의 행색이 딱해 제값을 치러 주고 덤으로 주기도 했다.
그렇게 올 때처럼 밧줄과 단검을 이용해 하수구로 내려온 자일은 라쉬에게 음식을 먹여 주었다.
“음, 이 귀한 걸 어떻게 구했니.”
라쉬는 며칠을 굶주린 듯, 빵과 과일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해치웠다.
자일은 배가 너무 고팠지만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자 배가 저절로 부르는 것 같았다.
자일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구걸해서 모았어요.”
“아아, 자일. 정말 고마워.”
라쉬는 눈물을 흘렸다. 얼마 만에 먹어 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던가.
그녀가 눈물을 터트리자 자일도 엉엉 울었다. 그녀와 자신의 처지가 딱했던 것이다.
한바탕 울음을 터트리다 서로를 마주보다 웃음이 터졌다. 자일은 더 이상 그녀가 흉측하지 않았다.
그날 밤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포근한 그녀의 가슴에 자일은 오랜만에 부모를 찾지 않고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다음 날부터 자일은 바빠졌다.
몸이 성치 않은 라쉬를 위해 매일같이 하수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구걸해 받은 화폐로 음식을 날라 왔다.
라쉬는 음식을 먹는 대신 자일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어깨너머로 글을 배운 적이 있었다.
“자일, 받은 동전 중에 구릿빛이 브론즈야. 브론즈 2개면 사과 하나를 살 수 있어. 빵은 조금 비싸. 그리고 구릿빛 10개를 모으면 은빛 동전 하나랑 같아. 그게 실버야.”
“······.”
“내가 한참 인기 있었을 때는 도시의 모든 남자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지. 특히 갈라코 후작은 엽색가로 아주 유명하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도 마다하지 않았어.”
“······.”
“마법사는 허공에 불이나 물을 뿜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대개 그런 사람들은 칙칙한 로브에 지팡이를 항상 들고 다니는데, 보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야 해!”
“······.”
“자일, 살아남으려면 정보가 가장 중요해. 나는 많은 남자를 상대했지만 가장 명줄이 긴 사람들은 대게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었어.”
라쉬는 눈을 빛내고 경청하는 자일을 위해 매일같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의 눈이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아담한 움막도 지어 놨다.
사방이 시체 썩는 냄새와 신음하는 자들로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 고요할 때도 있었다.
그때 하수구에서 산 사람은 그 둘뿐이었다.
“살아남으려면 정보가 중요하다고 라쉬 누나가 그랬어.”
라쉬는 누나라고 불리길 원했다.
그녀는 양아치 패거리의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걸리는 즉시 돈을 뺏기고 구타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 돈을 다 쓰는 게 아니라 조금씩 모아 가기 시작했다.
한 끼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그들에게 돈의 가치는 매우 중요했다.
“자일, 조심해라. 패거리가 너를 찾고 있다.”
단골 빵가게 상인이 물건을 사러 온 자일에게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구슬픈 목소리와 애절한 눈빛으로 구걸의 경지가 높아졌으나 그에 따라 수입이 줄어든 패거리가 이를 갈고 찾는다는 것이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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