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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vs전생자 1화

2018.11.28 조회 7,398 추천 72


 모든 것을 건 무모한 도박은 결국 확실한 파멸을 가져왔다.
 ‘결국 이렇게 죽는 건가? 복수도 못하고?’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허무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가 영혼을 두드렸다.
 [최초로 히든 업적 ···을 완료하셨습니다.]
 [여신의 눈물을 획득하였습니다.]
 [여신의 눈물 기본 능력. ‘다시 한 번의 기회’ 발동합니다.]
 그리고 그랑은 5년 전, 멸문한 가문을 뒤로한 채 대륙을 떠돌던 그 순간에서 깨어났다.
 
 * * *
 
 두근두근.
 수백 년을 살아왔음에도 지금처럼 긴장되는 일은 몇 없었다.
 이미 모든 패를 오픈하고 올인한 상황.
 어떤 결과가 나오건 기다리는 것 외에는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지만······.’
 나직한 한숨에는 기대보다는 체념이 담겨있었다.
 목표의 모든 전력을 분산시키고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은 본거지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을 쏟아부었다.
 단순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음모는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겠지, 아마도.’
 그것은 단순한 직감이 아닌 경험에 의거한 예상.
 지금처럼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미지의 적을 외통수로 몰아넣었던 때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영문도 모를 이유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최소한 그 이유라도 알아내야 해.’
 초조한 마음에 서성이는 그.
 마음을 안정시키는 특제 향초도, 어떤 상황에서도 소유자를 지켜준다는 에픽(Epic)등급의 아티팩트인 에밀의 목걸이도 그 불안감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결국 결론을 내렸다.
 “역시 실패인가, 하아.”
 성공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연락이 왔어야 했다.
 방안에 설치된 통신용 수정구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체념이 깃드는 순간, 사람의 머리만 한 수정구에 푸른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설마?!”
 절망은 한순간 환희로 바뀌고, 늘어졌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흐음. 거기인가. 생각보다 가깝군.
 통신구에 비친 얼굴은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이의 모습이었다.
 “······뭐?”
 그가 멍한 표정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있는 화려한 방안에 거대한 마력의 파동이 퍼졌다.
 우우우웅.
 동시에 웬만한 성인이 드나들 만한 타원형의 푸른빛 마력이 가득 찬 공간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흐음, 너였구나. 나를 이렇게 귀찮게 만든 놈이.”
 금발의 푸른 눈. 건장한 체격에 어울리는 고위 귀족의 예복을 입은 청년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너, 넌? 어, 어떻게 이런······.”
 청년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아니 알고 있었기에 그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간 포탈? 8등급 마법?’
 현시대의 인간은 불가능하다 알려진 고위 등급의 마법. 그가 알고 있는 눈앞의 청년은 이런 힘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는 존재였다.
 아니, 천 년 전 마왕 전쟁 이후 어떤 인간도 8등급의 마법을 시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보통 국보급으로 취급되는 공간이동용 아티팩트를 사용했다고 하기엔 적의 마력에 따라 사라지는 포탈의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꿈인가?’
 하지만 현실임에는 확실했다.
 고위 각성자라 할 수는 없어도 4등급 마스터, 수위 기사급 각성자인 그의 감각은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지 않았다.
 “흐음, 역시 나를 아는군. 그래봤자 내가 세상에 보여준 정도겠지만. 자, 어디 보자.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런 짜증 나는 상황을 만든 것인지.”
 “흡!”
 금발의 청년이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그에 반응하듯 세상의 마나가 움직이며 순식간에 그를 속박했다.
 단숨에 굳어버린 몸, 눈동자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진 그는 믿을 수 없는 적의 힘에 놀랄 여력도 없이 다가오는 적을 직시해야 했다.
 청년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에 또다시 반응하는 마나.
 그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의 마법이 순식간에 실현되며 들끓는 마력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니, 파고들려고 했다.
 파직.
 “음? 그래도 한 수가 있다는 건가? 귀찮게.”
 자신의 마법이 허무한 소음과 함께 무산되자 청년의 짜증 어린 표정이 더욱 진해졌다.
 눈살을 찌푸린 그는 자신의 마력에 반응하는 물품을 찾아 그의 가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 안 돼!’
 그는 그 모습에서 수백 년의 삶 동안 겪어본 적이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가 목에 걸고 있는 아티팩트는 둘.
 그중에 가장 중요한 아티팩트는 그 누구의 인식도 불허하는 그야말로 ‘갓(God)’등급의 아티팩트였지만, 상대는 듣도 보도 못한 8등급의 마법을 사용하는 괴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가장 큰 밑천이 탄로 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생기자 그는 적의 손이 그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평생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비장의 한 수를 발휘했다.
 ‘터져라!’
 번쩍!
 꽈아아앙!
 그가 목에 걸고 있던 또 다른 아티팩트가 산산이 부서지며 새하얀 빛과 함께 거대한 마력을 움직였다.
 그를 속박하던 모든 마력을 흩어내고, 적의 손길을 튕겨냈다.
 “큭!”
 등장한 이래 자신만만한 표정을 유지하던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 빛의 방패 안에서 그랑은 또 다른 아티팩트를 꺼냈다.
 “세상을 속이고 있었구나. 이반 폰 그라시엘로. 그러나 다음엔 이렇게 쉽지 않을 거다.”
 콰직.
 품속에서 꺼낸 빛나는 수정구를 부수자, 그의 몸을 감싼 빛의 방패 안에 또 다른 푸른 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의 청년, 이반이 등장할 때 썼던 마법과 비슷한 현상.
 공간 포탈.
 범인은 평생 구경해보기도 어렵다는 에픽 등급의 아티팩트를 두 개나 소멸시키며 만든 기적은 그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잔재주를!”
 인상이 일그러진 청년이 손을 휘두르자, 검은 마력이 사방에 퍼지며 방안 전체를 장악했다. 그 순간부터, 빛의 방패는 흐려지고 푸른 포탈은 삽시간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청년이 사납게 웃었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괴물 자식.’
 이번 생에 모아온, 모든 재산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최고급 아티팩트 둘을 소멸시키면서도 도망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떠올렸다.
 “도망을 못 가게 막으면······.”
 품 안에서 또 다른 아티팩트를 꺼낸 그는 초월적인 마력을 뽐내며 사납게 웃는 적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새롭게 꺼낸 아티팩트는 유니크급으로 마력 증폭의 효과밖에 없는 장식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스러트리며 검고 푸르고 하얀, 초월적인 마력들이 부딪치는 공간으로 던져 넣자.
 “같이 죽을 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파지지직.
 거대한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도의 수도, 한 건물 속에서 제도 남부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앙!
 “크크. 어처구니가 없군. 에밀의 목걸이에 그롬의 수정구, 에픽 아이템 두 개를 한순간에 소멸시키고 마력 폭주까지 일으켜? 너 같은 놈 하나 상대하면서 부상을 입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크크크.”
 쿨럭.
 청년, 이반 폰 그라시엘로는 불타는 제국의 수도를 보면서 피를 토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랑이 자폭을 시도했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살아남아 공간이동에 성공한 것이었다.
 피라미라 생각했던 놈의 마지막 발악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피해를 만들었다. 너무나 황당한 마음에 분노보다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우우웅.
 반대로 다시금 신체가 제압되어 허공에 떠오른 그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눈앞의 압도적인 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지직.
 “여전히 정신지배는 안 되는군.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 건지 보자고.”
 입가에서 흐른 피를 채 닦지도 않은 채 웃는 미청년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로테스크해 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몸을 수색하는 그 손길에서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안 돼. 제발!’
 하나, 단 하나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다행히 보답받았다.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무한의 주머니에서 인식 마법까지 가볍게 풀어가며 그 안의 물품들을 감정하는 청년의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도대체 알 수가 없구나. 어떻게 정신 마법을 버티는지.”
 ‘여신의 눈물은 무사하다.’
 가장 중요한 그것을 이 괴물 같은 적도 인식하지 못하자, 그제야 그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것이 괴물의 신경을 건드렸다.
 “웃어?”
 파지지직!
 “크으윽!”
 어느새 음성의 속박은 풀어주었는지, 온몸을 지지는 벼락같은 충격에 그는 비명을 토했다.
 그 후로도 몇 번 분풀이 하는 듯한 마법이 그의 몸에 작렬하였지만, 거의 반 시체 상태가 된 그를 이반은 너무나도 손쉽게 회복시켰다.
 “과연 어디까지 견디는지 보자고.”
 그리고 그렇게 아무런 질문도 없는 마법 고문은 한나절이 넘게 계속되었다.
 “일반 마법은 통하는데. 왜 정신 마법은 안 될까? 어이, 뭘 더 숨기고 있는 거냐?”
 옷은 걸레가 되었지만, 그 안에 보이는 몸은 방금 전까지 화상과 동상이 섞여 반 시체 상태였던 것 같지 않게 생생했다.
 놈은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극한의 고문을 당해도 다시 멀쩡히 살려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이미 반 시체 상태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만 수십 차례.
 자신의 생사가 적의 손에 완전히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체감한 후라면 대부분의 인간은 생의 의지를 잃고 포기하기 마련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크으, 주, 죽여라.”
 ‘적어도 이놈이 흑막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됐다. ‘이번 생’의 최소 목표는 달성했어.’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깨끗한 죽음뿐이었다.
 물론 적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흐··· 아직도 기가 살았다 이거지? 적당히 머릿속을 읽어내고 깨끗하게 죽여 버리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우우웅.
 말과 함께 청년의 손에서 새하얀빛이 모이며 검의 형태를 취했다.
 부정형의 빛이 모여 형성된 눈부신 검은 그 빛나는 모습과 별개로 보는 이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주었다.
 덜덜덜.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몸이 떨렸다.
 ‘이게 뭐야,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7등급 극에 이른 그랜드 오러 마스터의 광검(光劍)도 몇 번이나 보았던 그였기에, 그것이 단순한 마법이 아닌 오러보다 훨씬 고등한 수준의 파괴 권능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8등급의 마법을 사용하는 이가 그에 버금가는 오러의 권능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울 블레이드. 너 같은 놈에게 쓰기에는 아까운 권능이지. 영광인 줄 알아. 영혼까지 소멸하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다 털어놔야 할 거야. 이건 아까랑 좀 다를 거거든. 아! 일단 가볍게 맛이라도 보여주지.”
 푸욱.
 가볍게 그의 뱃속을 관통하는 검.
 “자, 이것도 통하지 않을까?”
 히죽 웃는 적을 태연한 표정으로 비웃어 주고 싶었다.
 반복된 생에서 그가 겪어본 고통은 범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기에 그는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도 직전까지 당했던 마법 고문에서 그는 비명은 질러도 그 어떠한 정보도 토해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고통은 그야말로 그 모든 생의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끄아아아악!”
 몸이 속박되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자살해서 벗어나고 싶은 고통.
 적의 말대로 마치 영혼이 찢겨지는 듯한 통증은 절대로 웃으며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이건 통하네. 자, 그럼 말해보실까? 네 정체부터.”
 “커, 크흑. 그랑, 그랑 폰 아란시아. 끄아악, 아란시아 백작가의 생존자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결국 진실을 토하게 만들었다.
 “음··· 아! 그 천년 백작가. 그래, 그래서였군. 그리고?”
 그랑은 고통 속에서 적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내뱉었다. 멸문의 화에서 살아남은 후 여기까지 오는 과정.
 그가 ‘이번 생’에서 복수를 위해 한 모든 행위들을 말이다. 고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오히려 이전의 마법 고문을 견뎌 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런 때를 위한 장치.
 처음부터 털어놓는 이보다는 치열한 고문 끝에, 마침내 굴복한 이의 답에 신뢰가 더 가는 법이니까.
 ‘한 가지. 한 가지만 지키면 돼.’
 다른 모든 사실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랑은 죽어가는 몸을 느끼면서도 고통에 굴복해서 모든 것을 토해내는 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아니, 연기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가 지금 말하는 모든 것은 진실.
 그저 그 모든 사실을 합친 것보다 가치가 큰,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할 하나의 비밀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리고 그 발악은 잘 먹혀 들어가는 듯싶었다.
 “그만, 그만 됐어. 마지막 한 가지. 그런데 왜 넌 정신 마법에 면역이지? 그냥 보통 인간인 데다가, 더 이상 아티팩트도 없는데?”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영혼이 찢겨나가는 통증이 진실을 대답하고 어서 빨리 쉬고 싶게 만들었지만, 그랑은 필사적으로 그 유혹을 참아냈다.
 수백 년의 삶. 그 삶을 통해 쌓아온 업(業)과 한(恨)은 그랑에게 있어서 고작 자신의 영혼의 평안을 위해 버릴 수 없는 지고한 가치였다.
 “으으···그, 그건······.”
 “그건?”
 “네 마법이 형편없어서······. 크아악!”
 굳어진 안색, 무심결에 손아귀에 들어간 힘. 빛의 검은 그랑의 몸속을 더욱 깊게 파고들며 고통을 가중시켰다.
 “하찮은 놈이 끝까지 화를 돋우는구나. 쯧.”
 가뜩이나 망가진 그랑의 몸이 급속도로 죽음을 향해 다가갔다. 그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그랑은 힘겹게, 아주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너, 네가 정말 이반 폰 그라시엘로인가?”
 복수의 대상에 포함된 이였기에 얼굴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그라시엘로 공작가의 서자 출신의 삼남. 공작가 내부에서도 실권에서 멀어진 방구석 폐인으로 알려진 자.
 그런데 그런 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이고 있었으니 그 결과로 이렇게 죽어가면서도 그랑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 그럼 내가 누구로 보이지?”
 “너, 너는, 아니 당신은 혹시 용(龍)인가?”
 용(龍), 드래곤(Dragon)
 천 년 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세상의 조율자들.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그 강대한 종족들은 전설 속에서 간혹 다른 생명으로 변해 유희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랑으로서는 8등급 마법과 소울 블레이드를 동시에 사용하는 눈앞의 적을 도무지 인간으로 볼 수 없었기에 한 물음.
 하지만 그 대답은 예상외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이 하찮은 놈이 감히 나를 그따위 도마뱀들과 비교해?”
 나직한 음성에 서린 지극한 분노.
 겉으로 티 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을 상대해본 그랑은 적이 나타난 후 보인 반응 중 가장 격렬한 반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의문은 부인되었지만, 갑작스런 이 분노 또한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잘 들어라, 하찮은 별종아. 나는 온 세상을 통틀어 가장 존귀한 분의 피를 이은 자. 천 년 간 대륙을 떠돌며 다른 삶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아온 자. 그리고 마침내 다시금 영광의 길을 열 위대한 존재다.”
 “······?”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
 급속히 생명이 꺼져가는 그랑은 그 말을 이해할 힘조차 없어 이상한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진짜 적을 알았으니 이번 생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생의 의지를 막 포기하려는 찰나, 힘없이 떨어진 그랑의 고개를 다시 끌어올려 졌다.
 그리고 불타는 듯한 적은 눈동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똑똑히 기억해둬라. 그리고 영광으로 여겨라. 이 세상의 유일한 전생자에게 소멸되는 것임을.”
 번쩍.
 그랑의 배를 관통한 빛의 검이 더욱 환한 빛을 내뿜는 순간, 그 빛이 자신의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불태우는 것을 느끼며 그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그랑 폰 아란시아.
 세상에서 유일한 회귀자의 열 번째 생의 끝이었다.

댓글(8)

내가보는건    
재밌다
2018.12.16 22:51
루즐이    
댓글이 없엉 ㅠㅠㅠㅠ 너무 재밌는데
2018.12.30 18:10
mun피a    
이건또 참신하네ㅋㅋㅋㅋ즐감!
2019.01.02 19:43
la***    
히든업적 : 죽음 칭호획득 : 죽음을 거부하는자 -영원히 회귀
2019.01.02 22:22
펩클롭    
차기작이 나왔었는지도 몰랐네요. 전편 결제하고 정주행 갑니다.
2019.03.16 16:54
작면    
재밌담서 구매수 엄청 낮네.. 타플에서 온건가
2019.06.05 15:17
미니초코    
선발대 보고 바란다!
2019.06.07 07:44
신사고양이    
본게 아까워서 끝까지 봤다 발암이다 주인공은 했던 실수 계속 반복하고 끝까지 끌려다니며 고구마를 조낸 처먹다가 끝난다
2019.10.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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