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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는 연예 매거진 1-1권

2018.11.30 조회 2,087 추천 15


 #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우웅―
 MRI 기기의 고주파 불빛이 등고선처럼 얼굴 위를 스쳐 갔다.
 엊그제부터 다시 시작된 두통.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통증에 차라리 뇌가 떨어져 나갔으면 싶었다.
 
 “거, 움직이지 마세요.”
 
 옷이 배겨 몸을 살짝 비틀었을 뿐인데, 대놓고 짜증을 내던 방사선사.
 그가 오늘따라 극존칭을 사용한다.
 
 “검사 끝나셨습니다. 내려오셔도 됩니다. 어르신.”
 
 내 정체를 알고서 주눅이 들었다고나 할까.
 매 맞고 사탕을 쥐여준 동네 꼬마처럼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MRI 촬영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는다.
 검진복을 수거함에 넣고 걸치는 옷은 다름 아닌 푸른 죄수복.
 그렇다. 성남교도소 13번 방, 수감번호 278번. 이름 정용석.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4년째 복역 중인 조폭 출신이다.
 조직의 사활을 건 혈투에서 사시미 칼로 상대편 보스와 중간 보스 둘을 난자해 세상과 작별시켰다.
 
 처음 두통을 호소했을 때, 교도소장은 내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식은땀과 신음으로 불면의 밤이 지속되자 뒤늦게 정밀검사를 지시했다.
 재소자들이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신입의 응급 수술이거나 고참의 꾀병.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감방.
 신입이 들어오면 위계질서와 서열을 위해 신고식이 치러진다.
 밖에서 한가락 하던 놈들이 형님! 하며 순순히 굽실거릴 리는 만무하고.
 상대방 기를 죽이며 ‘나 건들지 마!’ 똘끼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흔히들 자해를 선택한다.
 칫솔이나 수저를 집히는 대로 꿀꺽 삼켜 버리고 구급차에 실려 간다.
 
 그렇다면, 나 같은 장기 복역수는 어떨까?
 <쇼생크 탈출> 모건 프리먼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거다.
 신고식 짬밥은 아니고, 꾀병 부릴 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그만큼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
 병원에서 1차 결과를 통보했지만, 당국은 결정을 유보했다.
 교도소장이 재검진을 지시했을 때 나는 결과를 예감하고 있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 거니까.’
 
 교도소로 돌아가는 길.
 담벼락에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다.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몸이 변하니 마음도 변하고, 보이는 것도 변하나 보다 싶었다.
 
 ‘제기랄, 감상적이라니··· 안 어울리게시리.’
 
 ***
 
 교도소 내 분류심사실.
 세 명의 심사관이 나란히 앉아있다.
 
 “복역하는 동안 느낀 게 있습니까?”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의무관한테 검사결과는 들으셨죠?”
 “···예.”
 “뭐라고 하던가요?”
 “···뇌종양 말기. 길면 3개월이라고···.”
 
 심사관들이 나직이 속닥거리며 논의를 시작했다.
 
 “내보내도 뒤탈은 없겠지요?”
 “검사결과 봤잖아요. 감방에서 송장 치를 순 없잖습니까.”
 “그래도 수감 생활은 모범적이었는데··· 흠.”
 
 심사관들이 혀를 차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류에다 도장을 쾅 찍었다. 사진 옆에 찍힌 형집행정지 마크.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지막 질문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다.
 잔인하다. 하루살이에게 ‘내일 뭐 할래?’ 묻는 거랑 뭐가 다르지?
 순간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졌고, 암울했던 과거가 스쳐 간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동네 애들이 아빠 없는 놈이라고 놀려대던 코찔찔이 때는 아니고, 학창시절도 절대 아니다. 그땐 사회 불만에 가득 차 때리고 깨부수고 반항만 했으니까.
 엄마가 물어준 합의금만 모았어도. 에효~ 한숨만 나온다.
 모란파(牡丹派)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
 주먹이 곧 법이라 여기던 조폭 시절은 나를 차디찬 감방으로 이끌었다. 결국엔.
 
 ‘흐아아학···!’
 
 정말 미쳐버리겠다.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단 말인가. 정녕코?
 막장 쓰레기, 시궁창 같은 인생.
 나는 인간이 아니라 죽어 마땅한 한 마리 짐승일 뿐이었구나.
 
 ‘잠깐만··· 아니다. 나도 있다!’
 
 군 제대 후 면접을 통해 회사에 들어갔을 때.
 남들처럼 출퇴근이란 것을 해보았을 때.
 짧은 기간이지만 그때만큼은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인간(人間)이었다. 짐승이 아닌.
 당당히 세금도 내고, 첫 월급으로 엄마에게 내의도 사드렸다.
 
 “용석아, 난 니가 마음잡고 살 줄 알고 있었다. 우리 아들은 말썽은 피웠어도 천성이 착한 놈이거든. 암···.”
 
 엄마는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글썽거리셨지.
 
 “다시는 폭력 같은 건 쓰지 말거라. 니가 다른 사람을 때리면 내 심장도 같이 찢어진다. 이 애미랑 약속하자.”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약속할게요.”
 
 난생처음 가슴속에 꿈이란 것도 가져 보았다.
 그래. 내게도 꿈이 있었지. 적어도 그때는.
 
 ‘매니지먼트 업계의 대부가 되어보리라.’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은 다름 아닌 연예 기획사였고, 나는 로드매니저로 일했다.
 몸은 피곤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표가 부도를 내고 날라 버리기 전까지는.
 
 ‘씨부랄.’
 
 ***
 
 철커덩―
 철문이 열리고, 사복 차림으로 교도소를 걸어 나왔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을 돌아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몸 안의 찌꺼기를 걸러내듯이.
 정류소를 향해 한참을 걸어가 서울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방 안에는 세월의 더께가 쌓인 물건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어머니가 반입해 준 성경책, 여동생 복희가 던져놓고 간 TV 가이드와 연예 매거진.
 아무 생각 없이 잡지를 넘겨보다 다시 덮었다.
 
 ‘뭐야 이거. 전부 아는 내용들이잖아.’
 
 24년 동안 변화무쌍했던 연예계의 사건·사고들.
 연예계 대소사들이 부지불식간에 내 머릿속에 흘러가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한 게 후회가 되어 감방 안에서 책도 많이 읽었다.
 바깥세상이 궁금해 신문도 꼬박꼬박 읽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연예계 뉴스는 영 생소한데··· 이거.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버스가 덜컹거렸다.
 삐― 이이잉―
 귓가에서 울리는 이명. 날카로운 금속음이 고막을 찔렀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머리가 어질해졌다.
 몽롱함이 밀물처럼 내 의식을 잠식해 들어왔다.
 교도소에서 뇌를 후벼 파던 고통과는 다른 유체이탈의 몽롱함.
 
 ‘아, 이렇게 내 인생이 마감되는 건가.’
 
 앞 좌석에 고개를 처박고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형, 일어나 봐. 큰일 났어.”
 
 누군가 나를 심하게 흔들어 깨운다.
 버스 안에서 깜빡 졸았던 거 같은데 벌써 종점까지 와버렸나.
 그렇다고 버스 기사가 나에게 형이라고 부를 리는 없을 텐데.
 부스스 눈을 떴다. 어리고 말끔하게 생긴 녀석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녀석의 다급한 표정. 거의 울기 일보 직전이다.
 
 “형, 회사가 망했어. 쫄딱 망했다구.”
 “무슨 회사?”
 
 대체 여긴 어디지. 나는 왜 이 녀석 말에 거부감 없이 대꾸하고 있을까.
 이 상황이 뭔가 개운치가 않다.
 
 “무슨 회사긴. 우리 회사지. 옐로우 서브마린.”
 
 녀석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켜보니 구석진 곳에 놓인 소파 위.
 벨벳 재질의 푹신한 쿠션감.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을 되살리려 애를 쓴다.
 주위를 휙 하니 둘러본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공간. 노란 잠수함의 사무실이긴 맞긴 한데.
 내가 앉은 소파는 가끔씩 짱 박혀서 잠을 잤던 곳이고···.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가.’
 
 벽에 걸린 선남선녀들의 브로마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매력을 발산하며 웃고 있다. 생기발랄하게.
 왼쪽에서 두 번째 걸린 사진. 나를 깨운 이 녀석이다. 홍우민!
 
 “엄마야~ 너 누구야!”
 
 화들짝 놀라서 소리를 내질렀다. 하마터면 소파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홍우민은 옛날에 죽었는데··· 그것도 자살로.
 내가 귀신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도 죽어서 귀신이 된 건가?
 그러기에는 구석구석 전해지는 내 몸의 감각이 너무나 리얼하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홍우민의 귀공자 같은 얼굴선.
 짜장면 냄새가 빠지지 않은 사무실 공기.
 유치한 방법이지만 허벅지를 힘껏 꼬집어 보았다. 아야! 통증마저도 실제상황.
 혼란스러운 가운데 녀석이 청각 기능까지 되살려주었다.
 
 “정신 차리라고. 혀~엉. 한가롭게 자고 있을 때가 아냐. 우리 이제 좆됐다구.”
 
 새삼 느끼지만, 홍우민의 목소리는 끝내준다. 예나 지금이나.
 성대가 아닌 융단을 거쳐 나오는 듯한 명품보이스.
 참 아까운 녀석이다. 방송에 단 한 번이라도 출연했더라면 운명이 달라졌을 텐데.
 
 “근데 너, 안 죽고 살아 있는 거냐?”
 “뭐라구? 죽고 싶은 심정인 거 어떻게 알았어? 혀 깨물고 확 그냥···.”
 
 녀석이 어처구니없어 할 때, 통유리에 언뜻 내 모습이 스쳐 갔다.
 뽀송뽀송한 피부. 앞머리를 무스로 추켜올린 더블 컷. 맞아, 그땐 이게 유행이었지.
 인생에서 가장 멋을 부린 20대 중반의 얼굴이 떡하니 비치고 있다.
 홍우민과 투 샷을 잡으면 쭈그리 오징어가 되긴 했지만. 니미럴.
 
 “오늘이 몇 월 며칠이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자꾸 할 거야? 됐다 그래, 씨발.”
 
 열이 뻗친 듯 홍우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대화를 하다간 돌아버리겠다는 표정이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작업복 입은 사내들이 사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사무실 집기를 밖으로 하나씩 빼 내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뭐야? 왜 저래?”
 
 홍우민이 황당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나는 얼른 화이트보드에 적힌 달력을 확인했다.
 소속 연예인마다 스케줄을 빼곡히 적어 놓은 주간일정표.
 그 위에 빨간 밑줄이 쳐진 오늘의 날짜. 1993년 4월 15일.
 
 그제야 알았다. 나는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24년 전, 옐로우 서브마린이 부도가 나던 그날로.
 이건 뭐. 딱히 할 말이 없다.
 행복했던 때를 상상했건만. 하필 행복 끝, 불행 시작인 날이냐고!
 운명의 신이 있다면 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장난치는 기분이다.
 허망함에 고개를 떨굴 때, 홍우민의 치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요! 왜 이래요. 이러지 마세요.”
 
 홍우민이 작업복 사내들을 가로막고 선 것이다.
 그들은 길가에 놓인 짐짝을 치우듯 홍우민을 옆으로 밀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묵묵히.
 알고 보면 회사 부도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일 뿐. 청소 용역업체의 일용직들이었으니까.
 지금 벌어지는 상황은 채권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일 뿐이다.
 몇 푼 되지 않는 중고 집기라도 팔아서 손해를 메우겠다는 추심 행위.
 그래 봤자, 대표에게 떼인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그런데 홍우민 저 녀석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걸까?’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아니면 망해버린 소속사에 미련과 애착이 남아서 저러는 건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이제야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이 회사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그때가 새록새록.
 
 ***
 
 평소 입어본 적 없는 어색한 정장 차림.
 긴장을 떨쳐 내려 우황청심환을 쪼개 먹었었지.
 들키면 쪽팔리니까 몰래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옆에는 경쟁상대들이 다섯 명이나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매니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 차례가 왔을 때,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정신없이 지껄여 댔다.
 
 “연예인의 손과 발이 되는 것,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면 뭔가요?”
 
 지루한 듯이 인상이 굳어 있던 면접관이 호기심을 보였다.
 아싸, 일단은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친구가 되는 거죠. 스타는 외로운 법이니까요.”
 
 면접관이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옆에 앉은 간부들도 눈치를 보다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내심 뿌듯했다. 나름 멋진 대답이라 생각했으니까.
 이쯤 되면 면접 점수도 꿀리지 않겠는걸.
 결과 통보를 받기까지 일주일. 마치 한 달처럼 느껴졌다.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축하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시면 됩니다.”
 
 합격 전화를 받고 쾌재를 불렀을 때, 엄마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 계셨다.
 엄마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부르시는 입 모양을 보았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효도를 한 기분.
 용암이 차오르듯 가슴 속에 뜨거운 뭔가가 울렁거렸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지?
 모집 공고에는 분명히 매니저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매니저면 다 같은 매니저지, 왜 앞에다가 ‘로드’ 자를 붙이는 거야. 기분 나쁘게.
 고양이와 길고양이는 엄연히 존재감이 다르잖아.
 
 입사 첫날에야 비로소 알았다.
 주어진 업무는 연예인을 태우고 밤낮없이 차를 모는 일.
 알고 보니 날 뽑은 이유는 운전병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리 알았다면 이 회사에 원서를 안 넣었을까?
 그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했을 거 아냐. 니미럴.
 출근 후 이틀이 지났을 때, 잘생긴 녀석 하나가 살갑게 다가왔다.
 
 “형, 내가 두 살이나 어리네요. 말씀 낮추세요.”
 
 자신을 홍우민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놈들은 데뷔도 못한 주제에 대한민국 톱스타라도 되는 양 내 앞에서 거드름을 피웠지만, 홍우민은 달랐다.
 
 “내가 다녀올게요. 카드만 줘요. 형.”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식을 사 올 때도 자기가 쪼르르 뛰어나갔다.
 
 “형은 차에서 푹 쉬고 계세요. 두 곡만 부르면 끝나거든요.”
 
 지방 행사를 뛰러 갔을 때도 나를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한 거군. 기특한 녀석. 나와는 영 딴판으로 컸네.
 우리는 차 안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서로의 집안 사정을 비롯하여 참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전국 방방곡곡 도로란 도로는 다 누비고 다녔으니까.
 녀석은 항상 운전석 옆자리, 조수석에만 탔다.
 나중에 들어 보니 내가 졸음운전을 할까 봐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을 붙였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우민이 나에게 불쑥 말했다.
 
 “두고 봐. 난 꼭 슈퍼스타가 되고 말 거니까. 형은 매니지먼트 업계 대부가 되라고.”
 “으응···. 대부?”
 
 대부면, 돈을 빌려주는···? 끄응. 험험.
 
 “그러려면 형도 공부를 해야 된다고.”
 “무슨 공부?”
 “연예 잡지를 구독해서 탐독하란 말이야. 스포츠 신문 연예 기사도 스크랩하고. 판 돌아가는 걸 알아야지.”
 
 녀석의 충고대로 연예 매거진을 사서 읽었다.
 퇴근 후 꾸벅꾸벅 졸아가며 난생처음 공부란 걸 해 봤다.
 
 홍우민은 데뷔 음반을 내기 위해 녹음 중인 신인이었다.
 그럼에도 회사는 매출을 올리려고 녀석을 지방 나이트클럽으로, 소도시 행사장으로 마구 내돌렸다.
 파김치가 되어 곯아떨어진 홍우민을 새벽마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에휴, 스타 되는 게 쉬운 게 아니군.’
 
 녀석을 보고 느꼈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홍우민에게 흠이 있다면, 때가 묻지 않아 너무 순진하다는 점?
 좋게 말해서 순진한 거고, 안 좋게 말하면 현실 파악이 느리다는 거.
 
 우리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무실 집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형, 이제 우리 어떻게 되는 거야?”
 
 얼빠진 얼굴로 홍우민이 물어왔다.
 
 “어떻게 되긴. 다 끝난 거지. 게임 오버.”
 “나 행사비도 아직 정산 못 받았는데. 어떡하지?”
 “엥? 몇 달 치나 못 받았는데?”
 “한 육 개월 정도 되려나.”
 “이런 병신···.”
 
 어이가 없었다.
 나야 월급도 받았겠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손해가 아니라 쳐도, 녀석은 받을 돈이 잔뜩 밀려 있었다.
 부친이 병상에 누워 계셔 집안 형편도 어려운 판국에. 어이구, 이 멍청한 놈.
 
 “김 대표님 찾아가서 돈 달라고 사정해볼까?”
 “네가 무슨 수로 그 양반을 찾아? 그 새끼 벌써 해외로 토꼈겠지. 저거 안 보이냐? 빚쟁이들이 눈 시뻘게져서 찾다가 안 되니까 책상까지 빼가는 건데.”
 “대표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돈 구하러 다니는 건지도 모르잖아.”
 “야 이, 똘박아. 상황 파악 좀 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 되냐?”
 “흐하아··· 씨발.”
 
 홍우민이 자책하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넌 이 판국에 대표님 소리가 나오냐? 순 날강도 같은 씹새끼한테.”
 “그래도 우리가 모셨던 분인데···.”
 “웃기고 자빠졌네. 난 인마, 그 씹새끼 얼굴 딱 한 번 봤다.”
 
 정식 인사도 아니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옐로우 서브마린. 비틀즈 노래에서 따왔다고 들었을 때 막연히 생각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분이구나. 그래서 소속 연예인을 가족처럼 생각하자는 사훈을 내걸었구나.
 그런데 웬걸? 목사님이 염불 외고, 스님 찬송가 부르는 소리다.
 한마디로 헛소리. 전부 개사기란 말이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연예 잡지를 뒤적거린 게 후회스럽다.
 그 시간에 잠이나 실컷 자둘걸.
 아, 벨벳 소파나 집에 갖다 놓는 건데. 아깝다.
 
 저녁이 되자 소속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것이다.
 넋이 나간 얼굴들. 태풍이 휩쓸고 간 사무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는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
 또 누구는 청와대에 탄원서를 넣자고 소리쳤다.
 다들 정산받아야 할 돈이 홍우민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 월급은? 첫 달이라 나온 건가. 아니면 껌값이라 지급되었나.
 어쨌든 내게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땡큐~ 흐흐.
 저들이 난리를 치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까웠지만, 솔직히 다른 한편으론 고소하기도 했다.
 목에 깁스를 한 채 잘난 척하던 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매니저를 지네들 수발드는 집사쯤으로 여기는 우물 안 개구리들.
 대책 위원회를 구성한답시고 모인 개구리들 끄트머리에 홍우민도 서 있었다.
 
 “형, 변호사 사서 단체로 소송 걸 거래. 형도 같이 이름 올릴래?”
 “무슨 돈으로?”
 “다들 조금씩 갹출하자는데?”
 “나는 빠질란다. 받을 돈도 얼마 없는데, 배보다 배꼽이 크겠다.”
 
 시무룩한 홍우민을 뒤로하고 냉정히 돌아섰다.
 부질없는 짓. 버스 떠나간 뒤에 손 흔드는 꼴이지.
 
 건물을 나서는데, 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하아앗···. 이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옐로우 서브마린이 부도나던 날. 그러니까 1993년 4월 15일.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은 과거와 모두 똑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눈앞에서 펼쳐졌던 일들이며, 사람들의 행동과 나의 반응. 하물며 주고받은 대화들.
 나는 과거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또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은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이었다.
 왜 하필 오늘이 아니라, 오늘이라서 천만다행이었다.
 
 ***
 
 버스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들.
 24년 전 도심이라 아련할 법도 한데,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막힌 우연에 섬뜩한 전율만이 온 신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동네 어귀에 위치한 정류소.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몇 발자국 걸어가면 어머니의 단골 가게인 개미 슈퍼가 나온다.
 잠시 후 가게 앞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보자마자 반갑게, ‘어이 용석아! 오랜만이다~’ 크게 소리칠 것이다.
 공고 다닐 때 서클 OB 선배였던 고경철. 나를 무척 아꼈던 형님이었다.
 무슨 서클이냐고? 당연히 폭력 서클이지.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싸움이었으니까.
 지금 제일 잘하는 건··· 운전이겠지만. 빌어먹을!
 
 “용석이 너, 회사에 취직했다며?”
 “관뒀어요. 오늘부로.”
 
 과거의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경철에게 되묻는다.
 
 “형님, 일자리 같은 거 없을까요?”
 
 걸쭉하게 웃어젖히며 고경철은 기다렸다는 듯이 명함을 건넨다.
 
 “너같이 똘똘하고 야무진 놈이 엉뚱한 데서 썩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국가적 손실이자 낭비라고.”
 
 그리고는 내일 중으로 사무실에 한번 들르라고 말한다.
 나는 다음 날 오후에 고경철을 찾아간다. 그리고 모란파의 식구가 되어 함께 일을 시작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조폭의 길을 걷게 되는 가슴 아픈 스토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한참을 걸어도 내 앞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기억이 잘못된 건가. 분명 개미 슈퍼 앞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언덕을 꽤나 많이 올라와 있다. 아이구 다리야.
 
 지이익―
 창문을 내리는 소리. 옆을 보니 검은색 각 그랜저가 한 대 멈춰서 있다.
 아니나 다를까 고경철이 웃고 있다.
 
 “야~ 너 오랜만이다. 취직했다며?”
 
 슈트 차림의 고경철이 차에서 내렸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냐?”
 
 침을 꿀꺽 삼켰다.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다.
 
 “예.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고경철이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콩알만 한 글씨로 직함만 한가득 적혀있다.
 도시락 상무. 방산시장 상인조합 홍보실장. 프랜차이즈 날아라 치킨 부대표.
 벌써부터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긴다.
 가만있자. 도시락이 뭐였더라? 아, 룸살롱이었지 참.
 
 “와··· 형님, 성공하셨네요.”
 
 겉치레라도 인사는 건네줘야 했다.
 
 “시간 날 때 사무실 한번 들러라. 너는 말이야. 직장생활 하기엔 아까운 놈이야. 남자는 모름지기 사업을 해야 해. 큰물에서 놀아봐야지.”
 “알겠습니다.”
 “두태 형님도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더라. 꼭 들러.”
 
 강두태. 폭력서클을 만들었던 대진공고의 전설. 모란파 오야붕이다.
 고경철이 각 그랜저 뒷좌석에 오르자, 깍두기 머리의 운전기사가 차를 몰고 유유히 사라졌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과거가 그대로 재연되는 건 아니구나.’
 
 고경철은 옛날보다 훨씬 뽀대가 나고 부자가 되어 있으니.
 살짝 부러웠지만, 인생은 한 방에 훅 가는 거다.
 어어··· 하는 사이에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는 거지.
 감방 안에서 도 닦으며 뼈저리게 느낀 바다.
 나는 고경철의 명함을 꼬깃꼬깃 구겨 하수구 구멍에 내던져버렸다.
 이제는 찾아가려야 갈 수가 없겠지. 아무리 돈이 궁하고 일자리를 얻고 싶어도.
 나는 내 머릿속 주소와 연락처를 모조리 지워 버렸다.
 
 ***
 
 어느새 집 앞에 다다랐다.
 현관에서부터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내 코를 찔러 왔다.
 문을 열자, 앞치마를 두른 채 불쑥 고개를 내미는 어머니 얼굴.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엄마다··· 우리 엄마!
 한평생 못난 자식 옥바라지만 하다 암으로 돌아가신 불쌍한 엄마.
 나는 어머니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은 천하의 불효자식이었다.
 
 “우리 아들내미 일찍 왔네. 조금만 기다려. 얼른 저녁 차려줄게.”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신호가 왔다.
 주인의 미어지는 심정은 아랑곳 않고서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눈치 없는 것들.
 어머니는 나를 보자 손길이 바빠지셨다.
 시금치와 깨소금 버무린 잡채며, 보글보글 끓는 우렁이 된장찌개.
 세상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
 아들 녀석 취직했다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음식을 정성껏 만들고 계신다.
 어머니의 밥상을 받는 순간,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내일부터 다시 백수 신세가 될 텐데.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을 감추고 한숨을 삼키며 밥을 우걱우걱 씹어 댔다. 씩씩하게.
 어머니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어른들한테 인사는 잘하고 다니지? 자고로 고개 숙이는 사람한테 뒤통수 때리는 놈은 없는 법이다.”
 “그럼요. 인사를 너무 많이 해서 허리 디스크 걸릴 지경이라니까.”
 “윗분들 잘 모시고 말씀도 잘 듣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누구 아들인데요.”
 
 어머니에게 회사는 특별한 의미였다.
 아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월급을 주는 차원을 넘어 자식새끼 사람 만들어 주는 고마운 곳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굴뚝같지만, 목구멍에서 턱 하고 걸렸다.
 
 ‘엄마, 착하게만 사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뒤통수 제대로 맞았다고요. 세상에 나쁜 놈 천지라서 놈들보다 독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착잡한 마음과 달리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밥 위에 반찬을 올려 주시는 어머니에게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는 듯이.
 
 우당탕탕.
 현관에서부터 들려오는 인기척.
 신발을 제멋대로 벗어 던지고 마루로 뛰어들어오는 복희.
 가방도 아무 데나 휙 내팽개친다.
 
 “오빠!”
 
 여드름 무성한 중학교 3학년 복희. 여동생 얼굴을 보자 킥킥 웃음부터 새어 나왔다.
 복희가 마지막 면회를 왔을 때 뱃살 처진 파마머리 아줌마였는데.
 자기가 훗날 그런 얼굴과 몸매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하겠지.
 모르는 게 약이다.
 
 “오빠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뭐가?”
 “월급 받았으면 선물이 있어야 할 거 아냐. 이건 하나뿐인 여동생에 대한 매너가 아니지.”
 
 입술이 뿌루퉁. 복희가 툴툴거리면서 잡채를 향해 오른손을 쭉 내뻗는다.
 그러다 찰싹― 엄마한테 손등을 한 대 얻어맞는다.
 젓가락을 들고 잡채를 입 안에 마구마구 쑤셔 넣을 때, 어머니가 타이르듯 말했다.
 
 “새로 산 교복. 네 오빠가 월급 타서 해준 거다.”
 “엥? 지금 장난쳐? 엄마한테는 백화점 최고급 내의 사주고. 여동생한테는 싸구려 교복이 말이 되냐고.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거야?”
 “기집애 말본새하고는···.”
 
 엄마가 눈을 흘기지만 왈가닥 복희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복희는 김밥 행상을 물려받았다.
 복희가 면회를 올 때마다 가난과 세파에 찌든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다.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청바지 하나 사줘. 메이커 있는 걸로.”
 
 게스, 캘빈클라인, 마리떼프랑소와 저버, 닉스.
 한 벌에 십만 원도 훌쩍 넘는 유명 브랜드.
 외모에 부쩍 관심을 가질 나이긴 하지만. 니미럴. 너무 비싸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몽땅 꺼내 복희에게 건넸다.
 팔만 원쯤 되려나.
 
 “돈이 이거밖에 없네. 다음 달 월급 타면 많이 줄게.”
 “아싸~ 심 봤다.”
 
 복희가 돈을 낚아채더니 희희낙락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거 저거. 철딱서니 없는 거 봐라. 저거.”
 
 어머니는 한심한 듯 혀를 차더니 나에게 화살을 돌리셨다.
 
 “너는 무슨 돈이 있다고 덥석 줘버리냐. 오빠가 따끔하게 혼도 내고 그래야지. 오냐오냐하면 애 버릇만 나빠져.”
 “에이. 괜찮아요.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
 “네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엄마, 다음 달부터 시간외수당도 나올 거예요. 근무시간도 들쭉날쭉하고 이쪽 일이 빡세잖아. 고생한 만큼 돈을 더 주시겠대.”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정말이냐? 아이고. 고마운 사장님이시네. 우리 아들, 회사 한번 자알 들어갔다.”
 
 어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지난번과 똑같다. 회사에 나가는 것처럼 출근해야 했고, 월급을 받아 용돈을 드려야 했다.
 그래서 고경철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였다.
 
 식사를 마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희뿌연 연기.
 불투명한 앞날이 오버랩 되는 거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하수구를 뒤져서 명함을 다시 찾아볼까.’
 
 에휴. 미친 새끼. 정신 차리자.
 헛된 망상은 이쯤에서 그만.
 
 드르르륵―
 책상 위에 놓아둔 삐삐가 진동한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홍우민이다. 그래, 녀석도 나처럼 갑갑하겠지.
 
 ***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텅 빈 놀이터.
 홍우민이 그네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녀석은 이미 소주 한 병을 마신 뒤였다.
 
 “인마, 이럴 거면 진즉에 부르던가. 청승맞게 혼자서 술을 마셔?”
 
 녀석이 시무룩하게 있다가 입을 열었다.
 
 “형. 나 다른 데로 팔려 가게 생겼어. 몸값이 1억이래.”
 “우와~ 대박! 이 자식, 축하한다.”
 
 진심으로 기뻤지만, 녀석은 뚱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쁜 날에 웬 똥폼이야? 계약금 1억이라면서. 그렇게 통 큰 회사가 도대체 어디냐?”
 “그게 아니고, 옐로우 서브마린 사장 새끼가 우릴 팔아넘긴 거였어. 소속 연예인들 명의로 보증 걸어놓고 돈 땡겨서 도망친 거라고.”
 “엥? 그게 정말이야?”
 “내일부터 다른 소속사에 나와서 일하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츄에이션이야? 완전 날강도 같은 놈이잖아. 그 새끼.”
 
 황당해서 머리가 띵할 정도였다.
 이 새끼, 부도만 내고 짼 게 아니었군.
 이건 조폭보다 더한 놈일세. 그래도 조폭은 뻔히 보는 앞에서 빼앗아 가는데.
 홍우민의 입술이 사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 이제 어떡하지? 1억 깔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잖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단체로 소송 걸 거라며. 변호사 고용해서.”
 “그렇긴 한데. 들어 보니까 승소할 확률도 반반이래.”
 “왜? 니들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채권 넘겨받은 회사도 마찬가지로 속은 거잖아. 게네들도 가만히 앉아서 손해 보려고 하진 않을 거야. 더 비싼 변호사 사서 대응할 거래. 그래서 다들 멘붕이야.”
 
 홍우민은 침통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연예인이 소속사를 잘 만나야 된다는 말은 이래서 나왔나 보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어이없고 열 받는 일이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코도 석 자고.
 
 “형, 나랑 그 회사에 같이 가주면 안 돼?”
 “내가 가서 뭐라고 그러냐?”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 기획산데. 대표가 되게 무서운 사람이래.”
 
 나 원. 삥 뜯길까 봐 학교 가기 싫다는 고삐리도 아니고.
 이 판국에 그따위 걱정을 하다니.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대표가 소속 연예인을 개 패듯이 때린다냐?”
 
 사업만 투명하게 잘 한다면 차라리 무서운 대표가 낫지.
 사기나 치고 도망치는 새끼보다는.
 
 “그 새끼가 때리면 형한테 얘기해. 아주 혼을 내줄 테니까.”
 “그거 말고. 형 취직을 부탁해 보려고. 형도 일자리가 필요하잖아.”
 
 어쩔시구? 날 걱정하고 있네. 까딱 잘못하면 1억 노예 계약을 해야 할 놈이.
 녀석의 순진함은 가끔 어처구니가 없지만, 미소도 짓게 만든다.
 
 “됐다. 인마. 그 지겨운 일을 또 해? 다른 일이나 알아볼란다. 니들이야 상품이지만 얼떨결에 딸려 온 놈한테까지 월급 주면서 나를 쓰겠냐고?”
 “대표한테 사정해볼게. 난 형이 있어야 돼.”
 
 홍우민이 애원하듯 내 팔을 붙잡았다.
 
 “우민아, 이젠 그 월급 받고 일 못 해. 내 몸값이 비싸졌다.”
 
 녀석의 등을 두어 차례 두드려주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의사 표현. 용기를 내라는 뜻도 겸해서.
 우리는 놀이터 앞 포장마차에서 각각 소주 한 병씩을 마신 후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도 꿀꿀하고 술이 약간 부족한 것 같아 개미 슈퍼에 들렀다.
 냉장고에서 캔맥주 서너 개를 꺼내 들고 주인 앞으로 다가갔다.
 
 “취직하더니 인물도 훤해졌네.”
 
 아주머니의 형식적인 인사. 저번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니만.
 대꾸가 귀찮아 옅은 미소로 대신했다. 쩝··· 남의 속도 모르고.
 아주머니가 하품을 몇 번 하더니 들고 있던 파리채를 허공에 휘둘렀다.
 지갑에 현금이 없어 신용카드를 내밀었고 아줌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카드는 안 되는데. 그냥 가져가고 돈 내일 줘.”
 “고맙습니다.”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설 때였다.
 붕붕― 파리채 휘두르는 소리, 아줌마의 짜증 섞인 혼잣말이 뒤통수에서 울려 퍼졌다.
 
 “요새 파리는 약을 쳐도 도무지 죽지를 않아.”
 
 번개가 내려치듯 뇌리를 때리는 또 다른 기억.
 캔맥주가 든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슈퍼를 빠져나왔다.
 언덕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헉헉헉―
 
 급한 마음에 도로 한가운데로 달려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홍우민의 집으로 향하며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나의 병신 같은 기억력을 저주하며.
 
 ‘제발 살아만 있어라. 우민아. 제발.’
 
 당시의 기억에 의하면, 홍우민은 자신의 집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근데 왜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과거의 사건들이 조금씩 바뀌어 재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날, 홍우민은 나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대책회의를 한 후, 저녁을 먹고 홀로 귀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홍우민이 1억의 빚을 떠안고 신생 회사로 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서에는 단지 미안하다, 네 글자만 남겨 놓았을 뿐이었다.
 
 택시가 홍우민의 집 앞에 다다랐다. 택시비를 건넬 겨를조차 없었다.
 대문을 두드리다 담을 넘어 우민의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그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우민아!”
 
 그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돌아보는 홍우민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혀··· 어엉···.”
 “너 인마. 괜찮아?”
 
 홍우민이 나를 부둥켜안고 감정에 북받쳤는지 서러운 울음을 토해 냈다.
 나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약병 같은 게 떨어져 있는지.
 침대 맡에 놓인 검은 유리병이 시선에 들어왔다.
 
 “이 약, 이거 뭐야? 빨리 말해.”
 “······.”
 “이 수면제 니가 먹었냐고. 이 자식아!”
 
 그때였다. 방문 앞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려온 것은.
 나는 고개를 돌렸고,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시간이 멈춰버렸다.
 그와 동시에 홍우민의 몸이 시체처럼 축 처지고 말았다.
 
 
 # 제이제이지 엔터테인먼트.
 
 사람이 뭔가에 홀리면 감각이 무디어진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니까.
 나는 잠시 그녀에게 넋이 나가 있었다. 의식을 잃은 홍우민보다,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정신 차려. 우민아!”
 
 그녀가 홍우민의 두 볼을 찰싹찰싹 때리더니, 침착하게 119에 신고를 한다.
 홍우민이 구토와 함께 게슴츠레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내게 물었다.
 
 “근데 그쪽은 누구세요?”
 “그러니까··· 저는···.”
 
 그녀는 아쉽게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홍우민은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당직 의사는 입원실 복도에서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응급조치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회복 중이니까 이틀 정도 쉬다 퇴원하시면 될 겁니다.”
 
 괜히 머쓱해졌다. 긴장이 풀려 소파에 기대어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류에 감전된 듯 내 안의 감각을 얼어붙게 만든 저 여자는 누굴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튿날로 미뤄야 했다. 그녀가 금방 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형, 우리 누나야. 인사해.”
 
 다음 날, 홍우민이 병원 밥을 먹으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수면제 처먹은 녀석이 맞나. 지가 죽으려 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건가.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와의 인사가 더 중요하다. 흐흐.
 
 “안녕하세요. 정용석입니다.”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우민이 누나예요. 평소에 우리 우민이 많이 챙겨 주신다고.”
 
 간밤에 슈퍼우먼 같았던 그녀는 홍우민의 하나뿐인 친누나, 홍미란이었다.
 그녀는 뜻밖에도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인 줄 알았다는 기억의 왜곡까지. 남매끼리 왜 이러니.
 
 “근데 어제는 어쩐 일로···?”
 “헤어질 때 우민이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요. 혹시나 싶어서 들렸던 거예요.”
 “봤지, 봤지? 이 형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녀석이 잘난 척을 하듯 으스대고 있다. 저런 얼빠진 놈을 봤나.
 환자복을 입은 동생에게 홍미란이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쪼다같이 자식이 약해 빠져 가지고. 쟤가요, 집에 오더니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거예요. 글쎄.”
 “그만하지? 누나.”
 “콱 그냥 죽어버리게 놔둘 걸 그랬어. 아주.”
 
 동생의 싫은 내색에도 불구하고 홍미란의 타박은 계속됐다.
 홍우민의 디테일한 표정까지 그럴싸하게 흉내 내가면서.
 
 “다 큰 녀석이 말예요.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흐흐흑··· 난 스타가 되고 싶었다고, 누나. 한 방에 뜰 줄 알았어. 근데 모든 게 끝장이야. 이제 다 끝났다구. 엉엉.”
 “그만하라니까. 씨···!”
 
 홍우민이 쪽팔려 하며 으르릉거렸다. 녀석의 양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시뻘게졌다.
 그래도 자기가 처한 절박한 상황을 전부 털어놓진 않았나 보다. 부채 1억!
 나는 홍미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미인일 줄이야.
 그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우선은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푸하하하. 바보같이 왜 그랬어. 우민아.”
 
 미안하다. 홍우민···.
 
 “아이 씨. 그런 거 아니라니까. 형.”
 “어쨌거나 우리 우민이 잘 좀 부탁드려요. 맘도 여리고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아서요.”
 “염려 마세요. 어떨 때는 저보다 형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걸요.”
 
 엄마 없이 자란 우민에게 홍미란은 누나이자 엄마 같은 역할이었다.
 짓궂게 놀려도 그녀의 시선에는 동생에 대한 애정과 안쓰러움이 묻어 있다.
 
 “근데, 우민이가 그쪽 방면에 자질이 있긴 있나요?”
 “당연하죠. 조금만 고생하면 성공할 겁니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으니까요. 제가 장담하죠. 이 녀석 곧 우리나라 톱스타가 될 겁니다.”
 
 듣고 있던 홍우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형, 그러면 나랑 제이제이지 같이 가는 거야?”
 “제이제이지?”
 “새로 들어가게 된 회사 있잖아.”
 “으응? 그러니까 거기는···.”
 
 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 말문이 막혔다.
 대답을 기다리는 홍미란의 눈빛.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신뢰의 눈빛.
 
 “같이 가야지. 넌 내가 평생 케어할 거라니까. 대표가 어떤 놈인지 확인도 해봐야지.”
 
 계획에도 없던 일인데.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지는구나.
 감각이 무디어지니 머리와 입이 따로 놀고 있고. 니미럴.
 
 “거봐. 내가 말했잖아. 멋진 형이라고. 누나는 알지도 못하면서. 매니저 새끼들 전부 깡패 양아치 같다고. 아얏!”
 
 남동생의 허벅지를 꼬집는 홍미란이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다.
 저 모습마저 이쁘네. 허엉. 양아치들이야 많죠. 하지만 난 아니랍니다. 으허허헝.
 눈에 콩깍지가 끼면 이런 증상이 나오나.
 
 “형이 뒤에 있으니까 이상한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마. 알았냐?”
 “무슨 생각?”
 “이를테면 수면제를 다시 먹는다든지··· 험험.”
 “어쩌다 실수로 그런 거야. 내가 그렇게 약해 빠진 놈 같아?”
 “그니까. 약에 빠지면 안 된다고.”
 
 아악! 좋았던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홍우민의 나라 잃은 표정. 홍미란은 초면이라 억지로 웃어 주었다.
 
 “괜··· 괜찮아요. 호호··· 호호호. 참 재밌으신 분이시다. 우민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홍우민은 내 염려보다는 강한 녀석이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도 있었지만.
 
 ***
 
 제이제이지(J.J.G) 엔터테인먼트.
 바짝 쫄아 있는 홍우민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신생 회사치고는 꽤나 공을 들인 인테리어. 산뜻하다.
 자금줄이 탄탄한 회사 같은 느낌. 얼굴마담이나 캐쉬카우 연예인도 없다는데.
 겉만 번지르르 한 거로는 알 수가 없지. 빛 좋은 개살구가 뒤통수치는 바닥이니까.
 옐로우 서브마린 소속 연예인들은 아침부터 개별 면담을 위해 다녀간 상태였다.
 가수 부문을 맡고 있는 제정균 이사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홍우민의 에이전트라도 되는 양 주저리주저리 입장을 표명했다.
 우선 1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채무에 대해 따졌고, 일을 하게 된다면 매월 정확한 정산을 요구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홍우민을 스타로 만들 회사의 체계적인 플랜에 대해.
 제정균 이사는 가만히 듣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저들이 갑의 입장이니 화내거나 황당해할 법도 한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래요. 그렇겠죠. 많이 억울할 겁니다.”
 
 선한 인상에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여러분들 편입니다만, 대표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니미 어쩐지. 결정권은 대표가 쥐고 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라니.
 그러면 지금껏 뭐 하러 떠들고 있었던 거지?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한테.
 여비서가 들어오더니 귓속말을 전했고 제정균 이사가 일어섰다.
 
 “대표님이 방금 들어오셨답니다. 홍우민 씨 얼굴을 보자고 하시네요. 미안하지만 정용석 씨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예. 그러죠. 뭐.”
 
 제정균 이사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홍우민의 옷매무시를 고쳐 주었다.
 옷깃을 바로 하고 셔츠 위에 단추도 채워주었다.
 이건 마치 사단장 면담을 준비하는 군 간부의 모습이다.
 무슨 대기업 총수의 신입사원 면접이라도 되나? 쳇···.
 홍우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 소처럼 나를 돌아보았다.
 
 접견실에 앉아서 벽에 붙은 회사 로고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제이제이지···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로고 디자인하며.’
 
 방금 받은 제정균 이사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헐···.
 그 순간, 머릿속에 연예 매거진의 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횡령 및 뇌물 공여 혐의로 전 회장이 구속된 후, 주주들의 90%가 넘는 동의로 제이제이지 새 대표에 취임하게 된 제정균 이사. 그는 취임 첫 일성으로 빠른 시일 내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의 동요를 막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뜻에서 회사명을 제이앤케이(J&K)로 바꾸겠다고···.]
 
 마치 눈앞에 떠 있는 것처럼 또렷이 보이는 기사 내용.
 훗날 우리나라 3대 매니지먼트사로 군림하게 될 회사.
 이주만 회장의 에스엔(S.N)과 양형석의 와이에이치(Y.H), 더불어 제이앤케이(J&K).
 감방 안에서 보았던 내용이 아니다. 와우 이럴 수가. 내 입에서 탄식이 튀어나왔다.
 
 잠시 후, 제정균 이사가 접견실로 들어왔다.
 
 “대표님이 용석 씨도 보자고 하시네요.”
 
 아까처럼 내 옷매무시를 만져 주는 제정균 이사.
 군대 사열을 준비하는 부사관처럼 긴장된 표정이었다.
 대표실로 들어섰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얼이 빠져 버렸다.
 우연과 필연을 넘나드는 기막힌 상황의 연속!
 홍우민이 벌떡 일어나 나를 반겼다. 얜 또 왜 이래.
 
 “형, 대표님께서 형도 여기서 일하게끔 허락하셨어.”
 
 대표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장용석 씨라고? 나 장정구요. 같은 종씨네.”
 “정용석입니다.”
 “아, 미안 미안. 이름을 잘못 들었구만.”
 
 장정구. 은퇴한 권투선수와 동명이인. 이쪽 계통에서는 짱구로 통하는 인물.
 이쪽 계통이란, 연예계가 아닌 주먹세계다.
 짱구는 내가 몸담았던 모란파의 라이벌 조직 해동파의 넘버 투. 여기서 만날 줄이야.
 
 “홍우민 씨한테 조건을 다 들었수다. 안 그래도 매니저를 충원하려고 했으니까. 월급은 저번 회사보다 두 배로 올려 주는 걸로 하자고.”
 
 짱구가 지시하자 제정균 이사가 깍듯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제정균에게서 접견실에서의 부드러운 인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확인을 할 겸 짱구에게 물었다.
 
 “우민이 부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잠시 고민을 하더니 짱구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부실 채권 떠안은 거라 요구 조건 다 들어주면 파산이오. 그렇다고 우민 씨 꺼만 풀어줄 수도 없고. 이렇게 합시다. 연예활동 수입으로 빚을 갚으라는 말은 않겠소. 활동을 하다가 5년 지나면 자연스레 채무를 탕감하는 걸로. 그 안에 계약을 파기하려거든 돈을 뱉어내고 나가면 되는 거고. 어떻소?”
 
 듣고 보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우민이가 스타로 뜨게 되면 5년 후에 이적하면 되는 거다.
 대개의 전속이 7년인데, 짱구는 2년이나 짧은 계약 기간을 제안하고 있었다.
 짱구에게 이렇게 화통한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해동파는 이권 사업에 있어 사사건건 모란파와 부딪치는 사이였고, 결국 조직간 전쟁을 치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떠올리기 싫은 일이지만 나는 해동파 보스와 중간보스를 제거했다. 보스는 짱구의 친형이었고, 중간보스는 짱구의 절친한 동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 바람에 무기징역을 살게 된 거였고.
 하지만 그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겠지. 절대로.
 
 어찌 됐든, 짱구의 제안에 홍우민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대표님, 너무 좋은 분이세요. 겁먹었었는데.”
 
 짱구가 파안대소했다.
 
 “자, 두 분 조건을 어느 정도 맞춰 드렸으니 이젠 내 요구를 말해야겠지? 그 전에 내가 나이도 있고 하니 말을 좀 낮췄으면 싶은데.”
 “그러셔야죠. 안 그러면 저희도 불편합니다.”
 
 짱구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우민이 니 노래를 한번 들어 보고 싶은데?”
 “여기서요?”
 “응. 여기서.”
 
 ***
 
 “여기서는 좀···.”
 
 홍우민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자 짱구가 되물었다.
 
 “왜? 쑥스러워서?”
 “그건 아닌데요. 녹음 스튜디오에서 들으시면 좋을 거 같아서요.”
 “감안하고 들을 테니까 한번 불러 봐.”
 “대표님, 여기는 MR도 없는 데다가··· 제가 오디션 보러 온 것도 아닌데 굳이···.”
 
 그 순간, 짱구의 얼굴이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심기가 불편한 듯 몇 번 빨지도 않은 장초를 재떨이에 부러뜨렸다.
 눈알을 굴리던 제정균 이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이거 봐, 고작 우리 세 명 앞에서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떡해? 장차 잠실체육관 수만 명 앞에서 콘서트도 가져야 할 친구가.”
 
 제정균 이사가 눈썹을 찡그리며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홍우민은 싸한 분위기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여간 이 녀석은···.
 내가 중간에서 제정균 이사를 거들었다.
 
 “그래. 우민아 한번 불러 줘 봐. 형도 니 신곡은 못 들어봤잖아.”
 
 내 독촉까지 더해지자 녀석의 심정이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흠··· 그럴까?”
 
 홍우민이 목을 쭉 빼더니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한다.
 
 “으험― 험. 따리리 따리라. 으헝 흐헝. 헛둘 핫둘. 스빠라빠~앙~”
 
 탁한 헛기침과 높낮이가 극과 극인 기이한 교성을 번갈아 냈다. 무슨 짐승 소리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우스꽝스럽게 음감을 잡는 모습을 남들 앞에 보여주기 싫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또 다른 이별을 찾아서> 입니다.”
 
 드디어 홍우민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는 타고난 미성의 소유자였다. 행사장에서 잡음 섞인 스피커를 통해 들어 보긴 했지만 생목소리로는 나 또한 처음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 가운데 은빛 깃털이 하늘하늘 나부끼며 빚어내는 음색이랄까. 한마디로 죽인다는 거지.
 연습이 아니라 타고난 음색. 부러울 따름이다.
 나도 모르게 녀석의 노랫소리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가사는 더럽게 꽝이다. 누가 썼는지 당최 몰입이 되지 않았다.
 
 “널 잊을 순 없지만♬ 언젠가 치워 버려야 해. 내 마음의 이삿짐. 행복은 배달되는 거야. 가까이에 있어.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달릴 거야♬”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유치짬뽕이다. 쌍팔년도식 사랑 타령을 천상의 음색에 갖다 붙이다니.
 노래가 끝났고, 묘한 적막감이 실내를 휘감았다.
 슬며시 짱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탐탁잖은 표정으로 뒷목을 긁적거렸다.
 
 “아쉬워, 뭔가 많이 아쉬워.”
 
 가사 때문이리라.
 
 “가사는 참 좋은데 말이야.”
 
 허걱―
 벙찐 눈으로 짱구를 다시 쳐다보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었다.
 노골적인 불만 표시. 제정균 이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역시나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었고.
 
 ‘햐··· 이 회사도 첩첩산중이구나.’
 
 대표가 감이 떨어지면 전문가에게 믿고 맡겨야 한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는 오너 비즈니스. 엿장수 맘대로가 아니라 대표 맘대로라는 뜻이지.
 짱구가 쩝쩝 입맛을 다시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런 류의 노래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
 “······.”
 “자네들 혹시 배호라고 아나?”
 
 때마침 연예 매거진 특집기사가 내 머릿속에 나열되고 있다.
 
 [배호를 기린다. 영혼을 울리는 불세출의 가수. 최고 전성기 때 생을 마감한 천재 가수. 그를 칭하는 별명은 수없이 많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대표곡이다···.]
 
 “너네 둘은 어려서 잘 모르겠다만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지. 제 이사는 들어봤지?”
 “그럼요. 죽기 전까지 딱 5년만 활동했는데 전설로 남았잖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1964년 데뷔하여 29살에 요절했으니까. 그럼에도 그의 사후에 배호를 사칭하는 가짜 음반이 판을 쳤고, 현재까지 그를 추모하는 모임과 공연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우민이 자네, 배호 음색을 한번 연구해 봐.”
 
 홍우민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분은 혹시 트로트 가수 아닌가요?”
 “나는 앞으로 전통가요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거라고 보네. 대신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신나고 발랄하게 불러야지. 추임새도 넣어 가면서.”
 “저보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라는 말씀이세요?”
 
 홍우민의 불만 섞인 항변.
 짱구의 안색이 다시금 시멘트처럼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웬만하면 지켜보려고 했다. 회사의 첫 방문인 데다가 우선은 짱구와 제정균의 인물탐구, 캐릭터 파악이 우선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대표님, 제가 연습을 시켜 보겠습니다.”
 “오 그래. 자네가 있었군.”
 “혀··· 엉!”
 
 홍우민은 나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쏘아보았다.
 
 “너도 회식 자리 같은 때 노래방 가면 트로트 곧잘 불렀잖아.”
 “그거랑은 다르지.”
 “안 되는 게 어딨어. 니 실력이면 어떤 장르의 노래든 다 소화할 수 있어.”
 “허··· 말도 안 돼.”
 
 짱구가 흡족한 듯 두어 번 손뼉을 쳤다.
 
 “자자. 얘기 끝났고. 우민이가 아주 유능한 매니저를 데려왔구만. 용석이라고 했나?”
 “···네.”
 “이번 일은 자네한테 맡기겠네. 나머지 일정은 제 이사한테 들으라고.”
 
 대표실을 나서는데, 내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소곤거렸다. 가시가 돋친 홍우민의 음성.
 
 “나 뽕짝 가수 만들려고 따라온 거였어?”
 “이따 얘기하자. 이따가.”
 
 이사실로 들어간 우리는 각자의 고민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제정균은 좀 전의 상황을 정리하느라 심각해져 있었고, 홍우민은 붉으락푸르락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나는 짱구의 단순 과격한 캐릭터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제정균 이사는?
 글쎄.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다.
 짱구에게 분위기를 맞추며 자리 보전하는 인물인지, 뒤에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야심가인지.
 오랜 침묵을 깨고 제정균 이사가 입을 뗐다.
 
 “앞으로 자네들 명심할 게 있어. 대표님이 시키는 건 웬만하면 다 한다고 해. 괜히 토 달지 말고.”
 
 아까의 상황에 짜증이 났었나 보다.
 홍우민이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와서 따져 물었다.
 
 “이사님도 제가 트로트 가수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어떤 쪽에 재능이 있는지 회사에서 파악도 안 하셨나요?”
 
 제정균 이사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5년 후에 1억을 탕감하겠다는 뜻이 뭐였겠나? 여기 있을 거면 시키는 대로 하고, 안 따라올 거면 뱉어 내고 나가라는 뜻이야.”
 
 홍우민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냐는 듯이.
 물론이다. 소속 연예인의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 이보다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냐만 적어도 이 회사에선 아니다. 짱구의 의견에 반기를 들 만한 사람은 제이제이지 내에서는 없다.
 제정균 이사가 짐짓 무거운 톤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다음 주에 행사가 하나 있어. 우민이 자네가 무대에서 배호 노래 세 곡을 불러야 돼. 대표님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니까.”
 “다음 주요? 일정이 너무 촉박하잖아요. 노래도 잘 모르는데.”
 “죽어라 연습을 해야겠지. 이번에 옐로우 서브마린에서 영입한 가수 중에 트로트 부를 사람이 널렸어. 그런데 자네한테 덜컥 기회를 준 거야.”
 “그분들 시키면 되잖아요.”
 
 제정균 이사가 처음으로 벌컥 화를 냈다.
 
 “나도 그게 못마땅하다니까.”
 
 사실 홍우민이 짱구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 행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즉흥적이다. 최종 결정권자들은 왜 그럴까. 너무 즉흥적이다. 그러고 나서 금세 뒤집는다. 심지어 자기가 뭘 시켰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니미럴.
 그럼에도 각종 경영서에는 그걸 직관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어쨌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홍우민의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형은 내 편이야, 저 사람들 편이야?”
 “글쎄다. 나는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지.”
 “회색분자였네. 박쥐 같은 인간이었어. 좆도.”
 
 나는 신중히 회상에 잠겨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연예 매거진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었다.
 저런 마인드로 짱구는 제이제이지를 어떻게 글로벌 매니지먼트사로 키우게 된 것일까. 아무리 기사를 떠올려 보려 애를 썼지만 머릿속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
 
 아침부터 복희가 놀려 대는 한마디.
 
 “애인 생겼어? 왜 이렇게 난리굿을 피워.”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벗었다를 수차례.
 머리를 세웠다 눕혔다 무스를 한 통 다 써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래 봤자야. 돼지 얼굴에 화장품 찍어 바르는 거지. 원판 불변의 법칙도 모르냐?”
 
 ‘저런 걸 동생이라고. 확 그냥···.’
 
 복희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홍우민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이유. 홍미란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크흐흥.
 
 “이 형은 말이다. 니가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줄 작정이야. 니가 움직이느니 차라리 내가 한 발자국 가깝게 다가갈 거니까.”
 
 이후로 약속 장소를 홍우민의 집으로 정했다.
 홍우민이 배호의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고, 아쉽게도 홍미란은 집에 없었다.
 나는 집안을 굼뜨게 둘러보며 넌지시 물었다.
 
 “너네 누나는 안 보이네. 학원에 가셨나?”
 “학원 그만뒀어.”
 “왜?”
 “몰라. 미용기술 배워서 미용사 자격증 딸 거래.”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게 꿈이라고 했었다. 캬~ 백의 천사 홍미란. 어쩐지 응급처치가 능수능란하더라니.
 한데 느닷없이 간호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미용학원에 다니기로 했단다.
 생각보다 끈기가 없는 건 단점이군. 아쉬워. 마이너스 1점. 백 점 만점에 99점.
 홍우민은 테이프에서 나오는 배호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다.
 녀석이 나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형, 난 아직도 이걸 왜 불러야 되는지 모르겠어.”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실리 위주로. 짱구 말에 대립각 세워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난 어쩌라고? 뽕짝 가수로 낙인찍히면 다른 장르는 부르기 힘들다구.”
 “나도 너를 그 길로 보낼 생각 없다. 이건 방송도 아니고 일회성 행사일 뿐이야. 이번 한 번만 짱구한테 맞춰 주고 이후에 우리 살길을 모색해 보자고. 형을 믿고 한번 따라와 봐.”
 
 심각함은 진지함으로 받는다.
 홍우민이 내 논리에 수긍을 하는가 싶더니.
 
 “근데 짱구가 누구야?”
 
 ‘아차······.’
 
 녀석이 알겠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하여간 별명 하나는 기똥차게 짓는다니까.”
 
 그가 마음을 다잡고 연습을 하려는 듯 오디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가 흘러나왔다.
 끝 모를 깊이에서부터 울림대를 훑으며 나오는 음색.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
 
 역시 천재 가수였군. 중후한 저음과 애절한 고음을 넘나드는 창법은 나훈아와 남진이 하나씩 나눠 가졌다고 평가될 정도였으니. 노래가 끝나고 홍우민에게 물었다.
 
 “가사는 다 외웠어?”
 “방금 봤잖아. 다 외운 거.”
 “인마, 테이프 틀어놓고 따라 불러놓고 뭘 다 외워. 무대에서 가사 틀리면 어쩌려고 그래.”
 “이거 내가 부른 건데?”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말문도 막혀버렸다.
 녀석은 반주 테이프를 틀어놓고 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거였다.
 배호의 목소리와 똑같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 중앙시장 상인축제.
 
 상인조합 건물 2층.
 창문 너머로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거린다.
 
 ‘중앙시장 상인축제. 일시: 1993년 5월 5일.’
 
 내 앞에는 계약서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노래 3곡에 홍우민의 출연료 100만 원.
 짱구가 말한 중요한 행사가 겨우 시장 축제였다니. 이거야 원, 장난치시나.
 그렇다고 가수들만 나오는 음악전문 행사도 아니다.
 시장 조합원들의 장기자랑을 비롯, 개그맨 콩트 등 여러 이벤트 중 맨 마지막.
 초대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출연 가수는 달랑 2명뿐.
 계약서를 들이밀며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는 대머리 사내.
 그는 자신을 상인축제 집행 위원회 사무국장이라고 소개했다.
 
 “혹시 추미자라고 알아요? 홍우민 씨랑 소속사도 같던데.”
 
 그런데 잠깐. 추미자라··· 추미자···.
 추미자라면 옐로우 서브마린에서 제이제이지로 같이 넘어온 여가수잖아. 그 여자를 왜 물어보는 거지? 내 기억으로 추미자는 매니저를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싸가지없는 가수. 지방 행사에 갈 때마다 그 지역 특산물을 공짜로 달라며 생떼를 쓰는 아줌마였다.
 벽에 붙은 홍보 포스터를 쳐다보았다.
 40대 중반. 화장인지 변장인지 백설기같이 하얗게 떡칠한 얼굴.
 눈가엔 중년의 색기가 흘렀고, 볼륨감을 강조하듯 바짝 모은 가슴 사이로 깊은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대머리 사내는 추미자의 굴곡진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는 간간이 침을 삼켰다. 꿀꺽.
 
 “알긴 하지만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
 “추미자가 소속사 옮기고 나서 일이 잘 풀렸나 봐. 매니저도 둘씩이나 달고 다니고. 차도 바꿨더라고.”
 
 그럴 리가. 등짝에 거액을 떠안고 제이제이지로 왔을 텐데. 홍우민처럼.
 대머리 사내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안 그랬거든. 뒤를 봐주는 스폰이라도 생긴 건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잘 몰라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밖이다. 추미자는 휴게소에서 간간이 팔리는 트로트 한 곡으로 지방 행사를 뛰는 생계형 가수였다. 대표곡은 ‘우렁각시의 순정’
 갑자기 추미자에 대해 궁금한 게 생겼다.
 
 “추미자 씨는 이번에 행사비는 얼마나 받나요?”
 “그거는 피차간의 영업비밀 같은 거라며?”
 “그냥 한번 여쭤보는 겁니다. 회사에 가면 금방 알 수 있는 걸 가지고.”
 
 대머리 사내가 입을 다문 채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삼백만 원?
 무명에다 TV 출연 경험도 없는 도긴개긴 연예인들이다. 그럼에도 홍우민보다 세 배나 더 챙겨 준다? 이건 뒤에 뭔가가 있다는 뜻. 구린 냄새가 난다. 모락모락.
 
 ***
 
 구경꾼으로 가득 들어찬 시장 공터.
 상인들의 장기자랑 코너가 진행되고 있었다.
 음치, 박치, 몸치··· 개성 넘치는 노래와 시장의 숨은 재주꾼들이 펼치는 개인기.
 사회를 보는 개그맨의 거침없는 입담에 청중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자지러진다.
 이 순간만큼은 고된 장사를 잊고 모두가 하나 되어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다.
 
 “내가 첫 번째로 부를게요. 다음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대기실에서 추미자가 말했다. 생선 비늘 같은 야한 은빛 드레스를 입고.
 자기는 인어공주 컨셉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냥 생선이다.
 
 “마음대로 하세요. 저희는 상관없으니까요.”
 
 그녀의 잔머리가 빤히 읽혔다. 시장에 오래 있어봤자 시간 낭비라는 거다.
 지명도 있는 큰 행사라면 기를 쓰고 대미를 장식하려고 했을 테지.
 진행 요원이 들어와 초대 가수의 스탠바이를 확인했다.
 
 “30초 전이요.”
 
 추미자가 목을 뻣뻣이 세운 채 무대로 이어지는 통로를 향해 걸어 나갔다.
 간드러지는 콧소리. 청중들을 홀리는 인사말에 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추미자.
 
 “우렁각시의 수우운~~ 저엉~~”
 
 세 곡이 모두 끝났다.
 술에 취한 청중들이 휘파람 소리와 괴성을 질러 댔다. 그녀가 강조하는 중년의 색기에 대한 반응이지만, 그녀는 가창력에 대한 반응으로 착각하는 듯 보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모실 가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홍우민이 초조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갑작스러운 이미지 변신에 걱정이 되는 모양.
 
 “괜찮아. 아무 지장 없어. 넌 잘 해낼 거야.”
 
 녀석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었다. 장풍을 쏘듯.
 
 “작전대로 밀어붙이는 거다. 히얍!”
 
 불끈 쥔 주먹을 내밀자, 홍우민이 어정쩡하게 맞부딪쳤다.
 나는 홍우민의 어깨를 감싸며 무대 앞까지 함께 걸어 나갔다.
 쭐레쭐레 무대 위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 연습한 대로 되어야 할 텐데. 긴장되는 순간이다.
 
 무대 아래로 귀빈석에 앉아있는 짱구가 보였다.
 짱구가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끊임없이 뭔가를 소곤거리고 있다. 상대는 행사 초반에 소개되었던 V.I.P. 이 지역의 국회의원이다.
 그리고 반대쪽을 돌아보았을 때, 나는 낯익은 얼굴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꿍한 표정으로 귀빈석 구석에 앉아있는 사내. 다름 아닌 고경철이다.
 그러고 보니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지난번 받았던 고경철의 명함에 적힌 직함 중 하나. 방산시장 상인조합 홍보실장. 바로 옆 동네 시장이었다.
 모란파와 해동파는 각각의 구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를 확장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짱구가 입만 열면 트로트, 트로트 하는 건가? 시장 행사에선 뭐니 뭐니 해도 트로트니까.
 
 무대 위에 선 홍우민이 마이크를 잡았다.
 녀석에게 무대 공포증 같은 건 없지만 문제는 청중들의 분위기였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막바지에 다다른 축제.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과 추미자를 다시 불러오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사람들.
 별 볼 일 없는 연예인만 나온다며 욕지거리를 하며 돌아서는 사람들까지.
 공터를 메웠던 흥겨움은 어느샌가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여러분이 깜짝 놀랄 가수 한 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준비했던 인사말이다. 홍우민이 기관실에 수신호를 보내자 전주가 흘러나왔다.
 첫 곡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홍우민은 배호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연해 불렀다.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노래를 듣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저 가수가 대체 뭘 하는 거지. 음반을 틀어놓고 립싱크를 하나?
 모두 미심쩍은 눈초리다.
 그래. 됐어. 거의 다 된 밥이다. 홍우민이 실수로 코만 빠뜨리지 않으면···
 홍우민이 청중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넣고 멘트를 날렸다.
 
 “중앙시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두 번째 노래를 부르자 주위 공기가 숙연해졌다.
 홍우민이 선택한 곡은 <두메산골>.
 상인들은 콧잔등을 훔치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말들이 없어졌다. 자세히 보니 눈물을 참아 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하늘 너머 옛집을 찾아··· 두 번 다시 타향에 아니 떠나리··· 너와 살련다.”
 
 중앙시장 상인들 대부분이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
 코를 훌쩍거리다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기저기서.
 
 ‘이제 분위기를 확 뒤집어엎는 거다. 우리 페이스로.’
 
 마지막 곡은 분위기를 바꾸어 배호의 노래를 변형하여 불렀다.
 율동과 함께 최대한 신나고 발랄하게. 재미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가기.
 관객들에게 감정의 청룡열차를 경험하게 하는 것.
 집에서 연습할 때 예측했던 것처럼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사실 홍우민이 심혈을 기울인 건 춤이었다. 녀석의 몸에서 어색함과 뻣뻣함을 제거하느라 시간이 꽤나 걸렸다. 홍우민이 나의 전략을 미심쩍어할 때마다 녀석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던 건 차라리 덤이었고.
 
 “형만 믿고 따라와 보라니까.”
 
 어느새 세 번째 곡도 모두 끝이 났다.
 쏟아지는 상인들의 기립 박수와 환호. 앵콜 소리가 허공 위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애쓰신 여러분을 위해 건배!”
 
 상인조합에서 마련한 뒤풀이 자리.
 삼겹살집에서 길게 늘어앉아 소주잔을 치켜들었다.
 상인조합 회장의 소개가 이어졌다.
 
 “행복하고 살기 좋은 중구 국회의원이신 박진동 의원님께서 소감을 한마디 하시겠습니다.”
 
 박진동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앙시장 상인축제가 이렇게 성황리에 끝나게 된 것을 축하드리면서. 마지막에 나온 젊은 가수. 가수 배호 님이 살아서 돌아온 줄 알았습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손짓 하나하나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끝내주는 무대였어요.”
 
 박진동 의원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알고 보니 박진동 의원은 가수 배호의 광팬이었고, 배호 기념 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짱구가 홍우민에게 배호 노래를 부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거다.
 그리고 고경철이 공연 도중 잔뜩 찡그린 얼굴로 사라져버린 이유도 납득이 간다.
 결과적으로 나는 해동파 사업에 큰 조력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전 생애와 신분이 다르니 큰 미안함은 없었다.
 
 지난주, 홍우민은 나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가 배호의 음색을 똑같이 구현해 냈을 때, 놀란 표정의 나를 보면서 구시렁거렸다.
 
 “형은 내 매니저 맞아? 프로필도 아직 안 본 거야?”
 “무슨 프로필?”
 “내 특기란에 뭐라 적힌 줄도 모르지?”
 “······?”
 
 녀석은 나중에 스타가 돼서 예능에 나가면 모창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짱구는 홍우민의 장기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거다.
 물끄러미 짱구를 쳐다보았다. 그는 마치 자신이 노래를 부른 듯 의기양양해져 있다.
 박진동 의원은 그런 짱구에게 흡족해하며 연신 건배 제의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불렀던 창법도 죽이던데. 내가 기대한 게 바로 그런 거였어. 신세대풍 트로트.”
 
 화장실에서 마주친 짱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칭찬을 했다.
 
 “이번 무대는 용석이 자네가 만든 작품이야. 우민이 자식, 별로 내키지 않아 한 거 잘 알고 있어.”
 “아닙니다. 우민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보너스 두둑이 챙겨 줄 테니까 기대하라고.”
 
 짱구가 마치 비밀을 속삭이듯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난 오늘 홍우민의 가능성을 봤네.”
 
 그 순간, 며칠 전 떠올리려 애썼던 연예 매거진의 한 페이지가 펼쳐졌다.
 불과 몇 년 후의 일.
 
 [제이제이지 엔터테인먼트가 가요계 돌풍을 일으키다. 그들은 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트로트 가요를 전 연령층으로 확장시켰다. 대표적 인물은 장유정과 박훈빈 같은 신세대 가수. 다른 장르를 준비하던 이들을 트로트로 전향시켜 대박을 터뜨린 것. 제이제이지 대표 장정구는 이 같은 전략으로 각종 행사를 휩쓸며 돈을 갈퀴로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유 없는 성공은 없다. 오늘은 짱구에게 제대로 한 수 배운 셈이다.
 
 화장실을 나와 보니 왁자지껄 술판이 무르익고 있었다.
 박진동 의원은 홍우민의 팔을 붙잡고 앞자리에 앉힌 후 술을 따라 주었다.
 홍우민에게 최고라는 듯이 연신 엄지를 치켜올렸다. 그 와중에 홍우민이 나를 슬쩍 쳐다보았다.
 
 ‘마셔도 괜찮아?’
 
 녀석에게 술자리에 가더라도 반드시 나에게 확인받을 것을 주문한 터였다. 그 어떤 술자리라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수고했고.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껏 즐겨라.’
 
 이때, 가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 상체를 절반이나 드러낸 은빛 드레스.
 무대 의상을 갈아입지도 않은 추미자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박진동 의원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빈정거리듯 내뱉는 추미자의 목소리. 내 귀에까지 들렸다.
 
 “남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 건 실력이 아니지.”
 
 어디서 술을 한잔 마셨는지 추미자의 볼은 발그레해져 있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겠지. 축제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홍우민이 되어버렸으니.
 추미자의 심술을 달래려는 듯 박진동 의원의 폭풍 칭찬과 아부가 쏟아졌다.
 
 “우리 추 가수님 무대도 끝내줬지. 모든 게 최고였어.”
 “···치.”
 
 가만히 보니 둘은 초면이 아니었다.
 박진동의 입에 발린 칭찬. 추미자도 싫지 않은 듯 꿀꿀한 기분이 금세 풀어졌다.
 그리고 나는 목격했다.
 테이블 아래, 추미자의 손이 국회의원의 허벅지 위에서 피아노를 치며 놀고 있는 것을.
 당황한 박진동 의원은 주위 눈치를 살피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러자 재빠른 동작으로 상의를 벗어 그들의 손장난을 가려 주는 짱구.
 추미자를 밀어주는 스폰은 다름 아닌 박진동 의원이었고, 둘을 연결시킨 장본인은 보나 마나 짱구였던 거다. 흐미.
 
 홍우민이 그 틈을 타서 슬그머니 가게 입구로 걸어 나왔다.
 나는 홍우민을 향해 넉넉하게 웃어 주었다.
 
 “형이 약속할게. 너 내가 꼭 스타로 만들어 준다. 히얍!”
 
 홍우민이 주먹을 맞부딪치며 화답하듯 웃었다. 피식.
 
 
 # 미도파 레코드.
 
 행사가 끝나고 이틀째. 식전 댓바람부터 짱구의 호출을 받았다.
 홍우민을 데리고 회사로 얼른 들어오라는 것.
 
 ‘니미럴, 오늘은 스케줄도 없는 날인데···.’
 
 긴장이 풀린 홍우민은 헬렐레 곯아떨어져 있을 게 뻔하다.
 하루만 더 쉬게 놔두지. 하여간 윗대가리들은 순전히 지들 밖에 모른다.
 
 홍우민을 깨우느라 무진장 애를 먹었다.
 덜컥― 홍미란이 화장도 안 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그녀는 나를 돕는답시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홍우민이 애벌레처럼 돌돌 말고 있는 이불을 휙 하니 걷어 버린다.
 그녀의 거침없는 행동. 화장을 안 한 얼굴이 저렇게나 이쁘다니. 유후.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
 
 “어이~ 어서들 오게나. 제이제이지 유망주들.”
 
 대표실에 들어서자 짱구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반긴다.
 며칠 전과 비교하면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중앙시장 후원회장의 체면을 한껏 살려 줬으니. 음험험.
 
 “나랑 급히 가볼 데가 있다. 우민이랑 같이.”
 
 짱구가 나에게 차 키를 불쑥 내밀었다.
 뽑은 지 얼마 안 된 최신형 벤츠라 운전대를 함부로 맡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어딜 가나 이놈의 운짱 신세. 빌어먹을.
 짱구는 주소만 간략히 말해 주고는 가는 동안 카폰을 들고 주야장천 통화만 했다. 무려 30분 동안이나.
 조수석에 앉은 홍우민은 시트에 등짝을 붙이자마자 졸기 시작했고. 꾸벅꾸벅.
 전화 통화를 하는 짱구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예, 형님. 안 그래도 지금 찾아가고 있습니다. 시장 축제요? 거, 말도 마십쇼. 모란파 고경철이 있잖습니까. 초대도 안 했는데 불쑥 나타나서 행사 막판에 똥 씹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데··· 형님이 그 새끼 상판대기를 봤어야 했다니까요. 크하하.”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상대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해동파 오야붕인 장정호. 짱구의 친형이다.
 내가 속했던 모란파와의 조직 간 혈투에서 나의 칼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사내.
 감방 안에서 품어온 죄책감이 습관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새로 시작된 인생. 지난번의 참극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
 어머니와 복희가 나로 인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절대로.
 짱구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의 다짐을 일깨웠다.
 
 “형님도 참··· 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를 깠겠죠. 박진동 의원이 우리 손에 꽉 잡혀있는 걸 똑똑히 봤을 테니까요. 그 양반이 은근히 순진한 게요, 여자 품 안에서 헤어나질 못한다니까요. 추미자가 지네 집 강아지 다루듯 갖고 놀아요 아주. 크크큭. 그러니까 형님은 굿이나 보시고 떡이나 잡수시면 됩니다. 모란파 놈들한테 빼앗긴 천호동 사업권도 제가 다시 찾아 드릴 테니까요. 우리가 지고는 못사는 성격 아닙니까. 또.”
 
 조직을 낀 엔터 사업가들이 회사 덩치를 키우는 방법.
 지역 행사를 유치하여 유력정치인의 포섭.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
 그런 다음, 각종 로비와 뇌물 공여를 통한 기타 사업권 획득.
 전형적이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차 안에서 저렇게 떠드는 것은 의외였다.
 나를 온전히 자기편이라 여긴 걸까. 아니면 내가 엿들어도 내막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여하튼.
 짱구의 벤츠는 어느새 신사동 건물 앞에 도착했다. 미도파 레코드 사옥.
 이 양반이, 아침부터 설쳐댄 이유가 있었군.
 
 “우민이가 여기서 음반을 내면 하루아침에 전국구가 되는 거다. 물량 공세로 밀어붙일 거거든. 결국은 돈 싸움이지.”
 
 짱구가 자신 있게 말했다.
 동시에 연예 매거진의 1993년 가요계 근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권불십년이라던가. 언더그라운드 가객들을 무수히 배출한 동화기획, 대중 가수의 산실 우주레코드 등이 자본의 힘에 밀려 쇠락해가고 있다. 지난 80년대를 주름잡던 음반 제작사들이 힘을 잃어가는 동안, 금융자본을 유치해 순식간에 메이저로 자리 잡은 레이블이 있었으니··· 이들은 음반 제작은 물론 유통과 배급, 심지어 가수 매니지먼트, 영화제작에까지 문어발로 손을 뻗치는 중이다.]
 
 미도파 레코드의 현재 위상이었다.
 건물로 들어서자 미니스커트 차림의 프론트 여직원이 전무실로 안내했다.
 얼굴에 기름기 반질한 사내가 우리를 맞이했고, 짱구는 그 사내에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격한 감정 표현.
 
 “아이고 선배님.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장 사장 왔는가? 일전에는 술을 너무 거하게 얻어 마셨네 그려.”
 “술 고프시면 언제든 부르십시오. 제가 기꺼이 모시겠습니다.”
 “에이, 다음번엔 내가 사야지.”
 
 짱구가 고개를 조아리며 사내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저런 모습은 또 처음이네. 아, 박진동 의원 앞에서도 한 번 봤구나.
 해동파 장정호를 통해 소개받은 인물이 틀림없다.
 책상 위에 보이는 황금색 음각의 명패. 미도파 레코드 전무이사 이한성.
 
 “선배님, 엊그제 말씀드렸던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 회사의 보물. 저한테 돈다발을 떠안겨 줄 녀석입니다.”
 “그래? 어디 보자.”
 
 뻘쭘하게 선 홍우민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이한성 전무.
 축산물 시장에서 등급을 매기는 품질원의 눈초리다. 합격? 불합격? 아니면 몇 등급?
 
 “가다는 제법 나오겠구만. 요샌 인물에서 한코 먹고 들어가는 세상이거든.”
 “에이~ 얼굴은 보너스고요, 무엇보다 노래 실력이 기가 막힙니다. 선배님도 들으면 뿅 가실 겁니다. 우민아, 한 곡조 뽑아볼래?”
 “이봐, 됐네 됐어. 내가 들어서 뭘 아나? 전문가들이 판단하겠지. 우리 회사 전속들은 아무나 안 만나주는데 후배님 부탁이라 특별히 신경을 썼네.”
 
 마침 여비서가 커피 세 잔을 들고 들어온다.
 이한성이 여비서에게 지시했다.
 
 “강 선생 와있지? 내 방으로 잠깐 오시라 그래.”
 
 휴··· 아침도 못 먹고 왔는데 속 쓰리게 커피라니. 그것도 블랙.
 근데 강 선생은 또 누구지? 이한성은 누굴 부른 걸까.
 
 기다리는 동안 호화로운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구석에는 골프 퍼팅기가 놓여 있고, 책장에는 온전히 디스플레이용 서적들, 청소년 선도위원 감사패를 자랑삼아 진열해 놓은 원목 장식장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빵모자를 쓴 강 선생이라는 작자가 들어왔다.
 전날 마신 술 냄새가 코에서 풀풀 풍겨 나오는 문제의 사내.
 
 “강 선생, 이 친구 델고 가서 테스트 좀 하지? 우리 회사에서 음반을 내도 되는지 말이야.”
 
 강 선생이 홍우민을 물끄러미 보더니 귀찮은 듯 턱짓을 한다.
 자기를 따라와 보라는 제스처. 벙어린가. 무슨 말도 없이··· 썅.
 나는 홍우민과 함께 강 선생이란 작자를 따라나섰다.
 짱구가 우리와 함께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이한성이 팔을 붙잡았다.
 
 “자네는 왜 일어나? 나랑 같이 여기 있어야지.”
 “옆에서 코치를 좀 해야 될 거 같은데요.”
 “이 양반아, 매니저까지 달고 와놓고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나랑 이바구나 털면서 놀자고.”
 “······.”
 
 사무실에 둘만 남게 되자, 이한성이 짱구에게 놀리듯 물었다.
 
 “이전 회사에서 음반 작업을 했던 친구면서 뭘 그렇게 불안해해? 자신 없어?”
 “그게 아니구요. 지가 뭘 잘하는지 모르는 거 같아서요.”
 “뭘 잘하는데?”
 “천재 가수 배호 아시죠? 목소리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눈 감고 들으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거든요.”
 
 짱구를 뚱하니 쳐다보는 이한성. 그리고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웃어 댔다.
 
 “이보게, 장 사장. 요즘은 기계가 노래하는 세상이야. 자네 목소리? 배호가 아니라 배호 할아버지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전부 컴퓨터의 힘이지. 냇 킹 콜이랑 그 딸이 부르는 노래도 못 들어 봤나?”
 “···그게 뭡니까?”
 “흐음, 그런 게 있어. 공부도 좀 하고 그래.”
 
 이한성은 아는 자의 미소를 슬쩍 흘려보냈다. 머쓱해지는 짱구.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가수가 노래를 못 부르면 어떡합니까. 기본은 있어야죠.”
 “내 말인즉, 노래 실력보다는 작곡이 우선이라는 말일세. 가수는 노래를 못해도 앨범 대박이 나올 수 있지만, 곡이 안 좋으면 대박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법이야. 자네도 이쪽에서 크려면 한참 배워야겠구만. 크허허.”
 
 짱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무시당한 느낌. 거기에다 가요계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는 건가, 스스로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
 
 녹음 스튜디오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강 선생은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문득 강 선생이란 작자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기억의 회로를 되돌려 연예 매거진 기사를 검색했다.
 뭐야, 듣보잡인가?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복도를 걸어가다 강 선생이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오너가 주먹계통이라더니. 회사 꼬라지 자알 돌아간다. 아이고, 내 팔자야.”
 
 홍우민이 생뚱맞게 나를 보았고, 나는 강 선생에게 물었다.
 
 “저희는 어떤 테스트를 받게 되나요?”
 
 강 선생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내가 낙하산한테 신경 쓸 만큼 한가한 사람인 줄 아나? 곡 작업도 미뤄놓고 끌려 나왔구만. 대충 시간이나 때우다가 가시게. 음반은 내주라고 할 테니까.”
 
 함께 들어선 녹음실은 그야말로 삐까뻔쩍했다.
 최신형 믹싱 콘솔과 서라운드 스피커. 최첨단 사운드를 구현해 내는 음향 시스템.
 컨트롤 룸에는 몇몇 엔지니어들이 갓 들여놓은 고급 장비를 테스트하는 중이었고, 강 선생은 원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소주를 홀짝홀짝 마셔 가며 오선지에 곡을 쓰기 시작했다. 담배도 꺼내 뻑뻑 피워 댔다.
 
 “선생님, 여기서 담배 피우시면 안 된다니까요. 저쪽에 흡연실 만들어 놨잖아요.”
 
 엔지니어 중 한 명이 강 선생에게 다가와 주의를 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니들 내가 누군지 몰라?”
 “아는데요. 선생님. 스튜디오 안에서는 피차간에 약속을 지키기로···.”
 “야 이 새꺄, 내가 누군지 아냐고.”
 
 순간, 나의 뇌리에 강 선생의 과거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가 쓴 히트곡이나 음악 활동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검색이 잘못된 건가.
 
 [1990년, 작곡가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한 강필두. 회원들의 권익과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 그리고 작곡가에 대한 저작권료 배율 인상에 힘쓰겠다는 약속···.]
 
 ‘이런. 공약 사항이 전부잖아.’
 
 때맞춰 강 선생이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내가 인마. 니들 젖먹이 때부터 작곡한 사람이야. 83년도 MBS 10대 가수. 87년 골든디스크 성인가요 부문. 송태광, 한철, 최진화 게네들 중에 내 곡 안 받아간 가수가 없어. 알기나 해?”
 
 엔지니어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애를 썼다.
 
 “선생님을 몰라본 게 아니구요. 레코딩 기계에 안 좋으니까 드리는 말씀이잖아요.”
 “지랄하네. 담배 연기랑 무슨 상관인데? 전국노래자랑 8년 연속 최장기간 심사위원이다. 매주 야외방송인데 저따구 앰프 기기 한번 안 다뤄본 줄 알아? 눈 감고도 만져.”
 
 눈짓을 주고받던 엔지니어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나가 버렸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 심정들. 백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맥없이 한숨만 나왔다.
 
 ‘니미럴. 미도파 레코드에서 꼰대를 붙여 주다니.’
 
 이름값만 믿고 다짜고짜 찾아온 짱구도 마찬가지다.
 이 자리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홍우민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이왕 왔으니까 노래나 한번 불러 봐.”
 
 강필두가 무슨 심보인지 홍우민에게 노래를 부르란다.
 홍우민이 나를 바라보았다. 형, 어떻게 할까 묻는 듯이 보였다.
 나는 녀석을 한쪽으로 데려가 쑥덕쑥덕 뭔가를 속삭였다.
 이심전심. 홍우민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거 재밌겠다는 듯이. 흐흐.
 
 
 # 그들만의 네트워크.
 
 잔뜩 기대 어린 짱구의 표정.
 
 “뭐래요? 어떻게 됐답니까?”
 
 이한성은 방금 강필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테스트 결과를 전해 들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이한성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기분 나쁘게 듣진 말라구. 홍우민이라는 친구, 가수보다는 개그맨을 하라는데?”
 “예?”
 
 짱구가 황당한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노래는 곧잘 하는데, 그거보다는 예능이 더 잘 어울릴 거라 그러네.”
 “무슨 말씀이세요. 그 양반 지금 어딨습니까? 강 선생인가 뭔가 하는 사람.”
 “집에 갔어. 곡 작업 땜에 이틀 밤을 회사에서 꼴딱 샜거든.”
 “나 원, 미치겠네.”
 
 짱구가 허공을 향해 긴 탄식을 내뿜었다. 이 새끼들이. 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거야.
 
 “예능 쪽에 관심 있으면 자기가 다리를 놔주겠대. 전국노래자랑 인기상쯤은 받을 수 있을 거라는데? 그걸로 TV 진출하면 잘 풀릴 거 같다고 그러네.”
 
 짱구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자제했다.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마지막으로 이한성이 조언을 덧붙였다.
 
 “마인드를 젊게 가져. 그래야 오래 간다. 장 사장.”
 
 이한성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짱구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잠시 후, 이한성의 책상 위에 전화벨이 울려 댔다.
 
 “여보세요.”
 
 상대편 얘기를 듣던 이한성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전화기 백 대가 한꺼번에 울릴만한 데시벨 크기였다.
 
 ***
 
 그로부터 약 30분 전. 녹음 스튜디오.
 강필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홍우민이 녹음 부스에 들어가 마이크를 신장 높이에 맞췄다.
 나는 불안한 표정을 지어가며 강필두에게 물었다.
 
 “선생님, 기계를 다룰 줄이나 아세요? 이건 최신형 같은데요.”
 “믹싱기도 못 만질 줄 아냐? 오선지에 콩나물 그린다고 날 바보라고 생각해?”
 “컴퓨터는요?”
 “인마, 내가 우리나라에서 컴퓨터로 작곡 처음 했던 사람이야. 너 옥소리 알아? 모르잖아. 오선지가 편해서 쓰는 거라고.”
 
 강필두가 자존심을 내세우듯 콘솔 데스크 앞에 앉았다.
 홍우민이 부스 안에서 손짓 발짓으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콘덴서 마이크가 작동이 안 된다는 뜻.
 
 “저 보세요. 소리가 안 들린다잖아요.”
 “씁! 가만있어 봐. 정신 사납게시리.”
 
 강필두가 짜증스럽게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 댔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옛날에 시스템이 이것보다 훨씬 복잡했어. 젊은 놈들은 시대가 좋아진 것도 모르고 불만투성이지. 요새는 전부 사용자 편의대로 만들어졌다고.”
 
 입출력 잭을 꽂았다 뺐다, 마이크 앰프를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는 그 순간.
 삑―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윽고 홍우민의 음성이 들렸다.
 
 “봤지? 이 자식아. 봤지? 안에 잘 들리냐? 들리면 오른손 들어봐.”
 
 미간을 찡그리며 양어깨를 으쓱거리는 홍우민. 소리가 다시 약해졌다는 시늉.
 강 선생이 마스터 컨트롤 레버를 업 다운하며 버튼을 조작했다.
 옆에서 보았을 때, 아무 장치나 마구 만져 대는 것 같았다.
 
 “뭐가 좀 이상한데···.”
 
 알콜 탓이 분명한 수전증으로 손을 떨던 강 선생.
 그의 손동작이 모처럼 빨라졌다.
 
 “이제 들려요. 좋습니다. 사운드.”
 
 홍우민이 손가락을 둥글게 모아 오케이 마크를 지어 보였다.
 잠시나마 당황했던 강 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럼 고렇지.
 
 “됐어. 좋아. 이제 노래나 한번 불러 봐라. 너 트로트에 소질이 있다며.”
 “잘은 모르지만, 회식 자리에서 종종 부르는 노래로 한 곡 뽑겠습니다. 흥을 돋울 때 부르는 노래거든요.”
 “사설이 길다. 암거나 니 꼴리는 대로 해. 들으나 마나일 테니까.”
 
 최신형 믹싱 콘솔에 어울리게 컴퓨터에는 노래방 기기의 모든 음원이 내장되어 있었다.
 홍우민과 사전에 상의했던 곡을 리스트에서 골랐다.
 우리가 선택한 곡은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
 홍우민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믹스된 다양한 트로트곡이 흘러나왔고, 홍우민은 원곡 가수들을 흉내 내며 신나게 불러 댔다.
 ‘저 녀석 제법이네’, 하는 눈빛으로 게슴츠레 바라보는 강필두.
 술기운 솔솔 풍기는 그의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스피커에서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불길하게 들려왔다.
 모르는 내가 들어도 잭의 접촉이 불안정할 때 나는 소리 같았다.
 강필두는 자신이 작곡한 노래 부분이 들려오자 황급히 믹싱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밸런스를 조정하려 뭔가를 자꾸 만져 댔다. 노이즈를 줄이고 반주와 음색을 어우러지게.
 그건 마치 자신의 곡만큼은 기계로 인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집착 같은 거였다.
 그 와중에 위우웅― 하울링이 울리며 한차례 귀를 따갑게도 했다.
 
 “쟤는 가수는 안 되겠고, 팔도 모창대회를 나가야겠다.”
 
 모처럼 기기가 정상이 되자 강필두는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렸다. 걸쭉한 뽕짝에 흥이 난 듯 동작도 커져 갔다. 클럽 DJ라도 된 듯한 강필두의 몸짓. 마치 여객버스로 ‘묻지 마 관광’을 떠나온 아저씨 같았다.
 
 ***
 
 짱구는 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할 때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작곡가 앞에서 개그를 펼친 거야 뭐야? 도대체가.
 짱구가 씩씩거리며 물었을 때 해명을 해야 했다. 홍우민은 내 지시에 따랐을 뿐이니까.
 
 “니들은 노래를 어떻게 한 거냐? 무슨 노래 불렀어?”
 “배호 노래를 하려고 했는데 굳이 자기가 작곡한 곡을 부르래요.”
 “곡이 뭔데?”
 “죄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니까요. 모른다고 했더니 조용필 선배님 노래를 하래요.”
 “조용필? 그래서 뭐 불렀는데?”
 
 뒤늦게 홍우민이 나서며 대답했다.
 
 “<허공>, <그 겨울에 찻집>. 마지막 곡은 템포 빠른 걸로 하라고 해서 <모나리자> 불렀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습니다.”
 
 면접 점수는 고득점을 받았으나 인맥에서 떨어졌다는 구직자 코스프레.
 의외로 홍우민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제가 볼 땐 지난번 시장 축제 때보다 훨씬 잘했습니다. 그분 취향과는 안 맞았을 수도 있지만요.”
 
 내가 옆에서 거들자, 짱구가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짱구는 불현듯 모욕감을 느꼈다.
 
 ‘이것들이 돈 싸 들고 와서 음반을 내라는 수작이군.’
 
 학생 대하듯 한 수 가르치려 들었던 이한성.
 조용필 노래를 세 곡씩이나 부르게 해놓고 예능 쪽으로 나가라는 강필두.
 
 “이 새끼들이 우릴 가지고 놀았어. 장난감처럼.”
 
 홍우민과 시선이 마주친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짱구는 어쩔 수 없는 이 방면의 문외한이었다.
 오디션에서 모창을 선보이는 건, ‘나 뮤지션이 아니라 예능인이에요. 게다가 아마추어예요.’ 라고 떠드는 것과 같다. 이런 데까지 와서 배호 노래를 부르라니. 원.
 
 그 시각, 이한성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짱구가 나가고 녹음 스튜디오에서 걸려 온 엔지니어의 전화 한 통화.
 
 “점심 먹고 왔더니 콘솔을 완전히 고장 내놨습니다.”
 “누가?”
 “강필둔가 뭔가 하는 작곡가 있잖아요. 맨날 여기서 라면 끓여 먹고 술 처먹고. 그 양반이 멋대로 기계를 만져 갖고 망가뜨렸다니까요. 전무님, SSL 콘솔 이게 얼마짜린 줄이나 아세요? 이거 고치려면 외국에서 전문가 불러야 돼요.”
 “······.”
 
 이한성은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다시 1층.
 기분이 상해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짱구의 뒤를 쫓아 회전문에 다다랐을 즈음.
 로비 입구에서 사내들의 실랑이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로 들어오려는 20대 청년과 출입을 한사코 막으려는 경비원.
 군대에서 갓 제대한 젊은 사내는 야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경비원에게 사정사정하다가 급기야 언성을 높였다.
 
 “한 번만 들여보내 달라니까요. 글쎄.”
 “이 친구가 말귀를 못 알아먹어. 안 된다니까 그러네.”
 “이 테이프만 전해 주고 갈 거라구요.”
 “미리 약속을 하고 왔어야지. 여기가 맘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덴 줄 알아? 얼마나 바쁜 곳인데. 자네 같은 사람이 한두 명 찾아오는 게 아니야. 이리 내놔. 내가 이따가 전달해 줄 테니까.”
 
 경비원이 손을 내밀자 사내가 테이프를 뒤로 쏙 감췄다.
 
 “아저씨를 어떻게 믿습니까?”
 “못 믿어? 못 믿겠으면 그냥 가. 어린 친구가 뭔 의심이 그렇게 많어.”
 
 경비 아저씨가 기분이 언짢은 듯이 경비실로 들어가 버린다.
 원망스러운 듯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사내. 그리고 그 젊은 사내의 손에 들려 있는 공테이프. 그는 무명 작곡가인 게 뻔했다.
 밤낮없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작곡. 그것을 메이저 음반사에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
 경비실 구석에는 저런 친구들이 가져온 자작곡 테이프가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미도파 레코드가 대세긴 대세구만. 니미럴.’
 
 대한민국 가요계의 밝은 미래이자, 씁쓸한 자화상.
 왜 씁쓸하냐고? 대한민국 어느 분야든 마피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재적 감각이 있어도 주류 네트워크에 편입해야만 기회를 가진다.
 네트워크의 편입은 실력이 아니라 운과 인맥, 그리고 정치다.
 
 ***
 
 건물 주차장.
 짱구의 벤츠에 오르기 직전,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한적한 조각공원의 이름 없는 청동상처럼, 한동안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안 타?”
 
 가뜩이나 언짢은 판국에 넋 놓고 서 있는 나를 보며 짱구가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잔뜩 인상을 찌푸려가며.
 
 “속이 안 좋아서요. 화장실에 좀 들려야겠습니다.”
 “아··· 이 더러운 새끼. 얼른 갔다 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먼저 들어가십쇼. 저는 볼 일보고 곧장 집으로 가겠습니다.”
 
 짱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홍우민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럼, 차는 우민이 니가 몰아.”
 “대표님, 제가 장롱 면허라서요.”
 “이것들이 오늘 쌍으로 염장을 지르는구만. 차 키 이리 내.”
 
 부아앙. 짱구의 짜증을 RPM으로 전환시킨 듯 급발진을 일으키며 벤츠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즉시 미도파 사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홍우민을 그냥 내버려 둔 채.
 딱딱한 구두에 발바닥이 욱신거렸지만, 시간아 멈추어다오··· 속으로 되뇌며 죽어라 달려갔다.
 
 헉헉. 허억―
 
 가쁜 숨이 나의 기관지를 심하게 자극한다.
 신경을 집중시켜 연예기사를 되새김질한다.
 짱구의 벤츠에 오르기 직전,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던 특집 기사를.
 
 천재 작곡가의 등장. 제목부터가 요란스럽다.
 
 [군대 시절, 틈틈이 모아둔 악상을 제대 후 악보에 옮기다. 처음 발매한 앨범의 전곡이 방송 차트 순위권에 한꺼번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서울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을 만큼 공부도 곧잘 했지만 대학을 포기, 음악의 길을 선택하다.]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후회하진 않아. 대신 식당 하나 차려 드리겠다.’
 
 힘차게 포부를 밝힌 신예 작곡가 김준선. 기사의 하단에는 쑥스럽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
 바로 그 친구였다.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던 아까 그 젊은 사내.
 
 헐레벌떡 도착한 빌딩 정문.
 그 앞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야상을 입은 김준선이 고개 떨구며 돌아섰을 회전문.
 그 회전문이 마지막 바퀴를 빙그르르 돌다 탄력을 잃은 채 서서히 멈춰 서고 있었다.
 
 ***
 
 김준선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느 방향으로 사라졌을까. 사거리를 몇 번씩이나 오가며 뛰어다녔다.
 다시 돌아온 경비실 부스.
 눈살을 찌푸려가며 책을 탐독 중인 경비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읽고 있었다. 마 교수의 구속 이후 판금이 되어 관심 없던 사람도 돌려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나는 유리문을 몇 차례 두드렸다. 독서 중에 죄송하지만.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경비 아저씨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조금 전에 여기서 나간 친구 있잖아요. 아저씨.”
 “누구?”
 “좀 전에 음반사에 테이프를 주고 싶다고 했던 친구요.”
 “왜··· 그 친구가 뭐?”
 “혹시 연락처 같은 거 안 남겼나 해서요.”
 “뭐 때문에 그러는데?”
 
 경비 아저씨가 고개를 돌리더니, 귀찮은 듯 시선을 책상 위로 쭉 훑어갔다.
 
 ‘놓고 갔구나. 오, 하늘이시여!’
 
 아저씨가 구석에 던져놓은 테이프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공테이프가 들어 있는 투명 케이스. 그 안쪽의 흰 라벨 종이.
 
 “그 테이프 저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지. 남의 건데.”
 
 사인펜으로 적어놓은 이름과 삐삐번호가 언뜻 보였다. 김준선. 012―XXX―XXXX.
 
 “이한성 전무님께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돌파구.
 경비 아저씨가 미심쩍은 듯 나를 째려보았다.
 
 “그분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정식절차로 접수된 거 아니면 버려도 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아뿔싸. 잘못 짚었나.’
 
 하지만 짧은 순간, 경비 아저씨의 눈빛을 읽었다.
 공짜로 내줄 수가 없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 모든 재화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경제 논리. 당연하죠. 어르신.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집히는 대로 몽땅 꺼내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담배라도 사서 피우세요. 아까처럼 무데뽀로 들이닥치는 별별 놈들 땜에 고생도 많으신데.”
 “아이···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에이, 받으십시오.”
 
 경비
 아저씨는 마지못해 접수한다는 듯이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다.
 김준선의 테이프를 안주머니에 꽂아 넣고, 가뿐한 마음으로 미도파 사옥을 빠져나왔다.
 
 와하하! 가까스로 세상을 얻은 기분. 황홀함 그 자체다.
 하늘을 보니, 태양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스폿 같은 햇살을 내리쬐고 있다.
 때마침 저만치에서 홍우민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홍우민에게 뛰어가 녀석을 와락 껴안았다. 가슴이 터질 만큼 힘차게.
 
 “아무것도 묻지 마. 넌 이제 됐어. 별이 될 거니까. 히얍! 히얍! 히얍!”
 
 녀석의 등을 세차게 두드려주었다.
 영문을 모르는 홍우민이 숨이 막힌다며 켁켁거렸다.
 
 “왜 이래. 징그럽게.”
 
 미친놈 보듯 나를 쳐다보며 홍우민이 투덜거렸다.
 
 “배고파 뒤지겠어. 밥이나 사 줘.”
 
 그러고 보니 나도 배가 고팠다. 뒤질 만큼.
 
 ***
 
 압구정에 위치한 최고급 중국집.
 건물 입구에는 외제 차가 발레 파킹을 기다리느라 줄지어 서 있었다.
 원탁 테이블에 앉은 홍우민은 메뉴판을 보지도 않은 채 주문을 했다.
 
 “짜장면 곱빼기. 형은 짬뽕시켜. 반반씩 나눠 먹자.”
 “야, 가오가 있지. 이런 데선 맛있는 거 시켜도 돼.”
 “나중에 반띵하자고 할 거 아니지?”
 “야 임마. 내가 니 매니저야.”
 
 종업원이 우리들의 값싼 대화에 고개를 돌렸다. 자기마저도 비참해진다는 듯이.
 푸짐한 코스요리의 메뉴판을 펼쳐 홍우민에게 자신 있게 들이밀었다.
 녀석이 꾸물거리자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이것저것 종업원에게 주문을 해 버렸다.
 홍우민이 돌연 의구심에 가득 찬 눈으로 흘겨보았다.
 
 “형, 대표님한테 금일봉 받았지?”
 “무슨 금일봉? 뜬금없이 뭔 말이래.”
 “여기 엄청 비싼 음식점이잖아. 가격표 잘 보라고.”
 
 잠깐만··· 그러고 보니 짱구가 문득 괘씸하게 느껴진다.
 중앙시장 행사 직후,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주겠다며 큰소리 빵빵 쳤었잖아. 하지만 지금까지 유야무야. 결국엔 흐지부지일 거다.
 회사에 들어가서 짱구에게 다시 말을 꺼내볼까.
 미도파 레코드에서의 해프닝 때문에 보너스의 ‘ㅂ’ 자도 못 꺼낼 분위기일 텐데. 어떡하지? 에이 관두자. 니미럴.
 
 “사실은 오늘 기분 째지는 일이 있어서 그래. 형이 특별히 쏘는 거니까. 맘껏 먹어.”
 “아까 그 꼰대 작곡가 골탕 먹인 거 때문에?”
 
 홍우민이 기억이 다시 떠오른 듯 킥킥거리며 웃어 댔다.
 
 “미도파는 무슨 그런 양반을 데려다 놓고 개폼을 잡고 있어.”
 “그 양반이 작곡가협회 일을 봤나 봐. 결국 이쪽도 네트워크야. 친목 위주로 곡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거지. 그래서 요즘 노래가 비슷비슷한 거고.”
 “그럼 내 말이 맞구만. 그 꼰대 양반 엿 먹인 거.”
 “아니. 그거 아닌데?”
 “기분 째질 일이 뭐가 있어? 아무 일도 없었잖아.”
 
 나는 뜸을 잠시 들이다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드디어 작곡가를 찾았다. 니 데뷔 앨범을 만들어 줄 작곡가 말이야.”
 
 가자미처럼 찢어졌던 홍우민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게 누군데? 작곡가를 언제 찾았다는 거야?”
 “조금 전에. 여기 음식점에 들어오기 30분 전에.”
 
 홍우민이 곰곰이 시간을 거슬러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분 전이라면?
 계속 둘이 같이 붙어 있었는데 누굴 말하는 거지.
 혹시 재수 덩어리 강 선생을 두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
 
 “형··· 혹시··· 트로트?”
 
 군침이 도는 코스요리가 나왔을 때, 홍우민의 추궁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홍우민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 넣기 바빴다.
 나는 녀석의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신기하게도 아까 전까지 뱃속에서 요동치던 허기가 말끔히 사라졌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왜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오른손을 가슴팍에 가져갔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듯. 행여나 부정이라도 탈 새라 경건한 자세로.
 후··· 안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네모난 감촉. 김준선의 데모 테이프. 이렇게 든든할 수가.
 내 심장은 그의 곡에 따라 요동치며 뛰고 있다. 아직 들어 보진 못했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 가슴 떨리는 느낌. 크크큭.
 
 “비싼 음식 시켜놓고 뭐 하는 짓이야? 형, 금일봉 받은 거 맞지?”
 
 입 안 가득 우물우물. 홍우민의 지분대는 태도가 우스꽝스러웠다.
 녀석에게 찬란한 미래를 예언해 주고 싶다. 말을 해줘도 안 믿겠지만.
 
 ‘넌 인마, 이번 앨범으로 대박을 칠 거라니까. 두고 봐라.’
 
 테이블 위에 김준선의 데모 테이프를 슬그머니 올려놓았다. 기쁨도 나누면 두 배니까.
 
 “이게 니 데뷔 앨범이 될 거다.”
 
 홍우민이 씹는 동작을 멈추고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작곡가가 누구냐고···.”
 
 테이프를 살펴보던 홍우민이 라벨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
 
 “김준선? 처음 들어 보는 작곡가네. 트로트 쪽은 아니겠지?”
 “약속했잖아. 너를 그 길로 빠지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다행이다 싶었는지 홍우민이 음식을 다시 씹어 댔다. 반응이 시답잖네. 이 자식이.
 
 “자, 얼른 먹고. 너네 집 가서 음악을 한번 들어 보자. 어떤 곡이 담겼는지.”
 “우리 집에서?”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그래. 인마. 너네 집에서. 미란 씨 얼굴도 볼 겸. 흐흐흐.’
 
 “근데 형··· 데뷔 앨범을 내준다니까 기분은 좋은데, 대표님한테 먼저 컨펌을 받아야 되는 거 아냐? 형 멋대로 진행했다가 1억 물어내라고 하면 어쩔 건데?”
 
 홍우민이 무심코 내던진 말.
 허공에 떠 있던 심장이 돌덩이와 함께 바닷속으로 풍덩 가라앉는 느낌이다.
 생각이 짧았다. 그리고 계산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첫째, 김준선이 우리에게 곡을 줄지 안 줄지 아직 확실치 않다. 그의 눈높이는 메이저인 미도파 레코드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둘째, 짱구라는 커다란 관문이 남았다. 곡을 들어 보고 좋으면, 당장이라도 제작을 서두르겠지. 그렇게 되면 떼돈을 버는 것은 짱구지 내가 아니다. 나는 중개자 역할에 그칠 것이고.
 마지막으로, 이 음악이 짱구의 마음에 안 든다면? 짱구 수준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 경우, 홍우민을 트로트 가수로 데뷔시킨다는 계획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손안에 든 원석을 놓치는 꼴이 된다. 보석으로 가공을 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아, 내 다이아몬드여.
 
 제기랄.
 머리를 굴렸더니 칼로리가 소모됐는지 배가 고파졌다.
 게걸스럽게 요리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아구아구 씹으면서 궁리했다.
 
 ‘매듭을 풀어야 한다. 차근차근.’
 
 ***
 
 짱구가 대표실에 홀로 앉아 비디오를 틀었다.
 냇 킹 콜과 나탈리 콜. 흑인 부녀가수가 함께 부른 ‘언포게터블’.
 짱구는 턱을 괸 채 이한성이 지적한 말을 뼈저리게 곱씹고 있었다.
 
 ‘컴퓨터로 목소리를 만지는 세상이라고?’
 
 전설적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를 컴퓨터로 합성, 부녀지간의 호흡을 선보이며 만들어 낸 듀엣곡. 뮤직비디오는 짱구의 메말랐던 감성을 흠뻑 적셔 주고 있었다.
 짱구가 냉정을 되찾고서 제정균 이사를 호출했다.
 
 “자네, 혹시 저 노래에 대해 알고 있나? 언포게터블.”
 “작년에 그래미상 3개 부분을 수상한 곡으로 알고 있습니다.”
 
 짱구가 얕은 헛기침을 뱉어 냈다. 험험.
 
 ‘뭐야, 이 유명한 노래를 나만 모르고 있었나.’
 
 짱구는 태연한 척 말했다.
 
 “그래 아는구만. 몇 번 들어도 좋은 노래야. 그치?”
 “예.”
 “그나저나 홍우민 있잖아. 자네 생각에 트로트 가수가 어울린다고 보나? 실은 오늘 미도파에 들어갔다 나왔거든.”
 “결과는 어떻게···?”
 “별로라는군.”
 
 제정균 이사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괜찮아. 뭐라고 안 할 테니 자네 의견을 솔직히 얘기해봐.”
 “··· 트로트에만 국한시키기엔 홍우민의 재능이 조금 아깝습니다. 조용필 씨도 발라드며, 록이며 여러 장르를 아우르다가 <허공>을 발표했으니까요. 전통가요를 부르는 걸 온 국민이 다 알지만 조용필 씨를 트로트 가수라고 인식하진 않거든요.”
 “그래. 빠른 템포의 <모나리자>도 있으니까. 그치?”
 
 짱구가 동의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니까 요즘엔 가수가 노래를 안 부르는 시대가 된 거야.”
 “······?”
 
 제정균 이사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컴퓨터로 가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시대라고. 요즘 트렌드지.”
 “아 예.”
 “뭐, 내 생각도 자네랑 크게 다를 바가 없네. 홍우민 앨범을 만들어 줄 작곡가를 수소문해 봐. 트로트에 국한시키지 말고. 젊은 감각을 가진 애들로다가.”
 “알겠습니다.”
 
 대표실을 나온 제정균은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후···.”
 
 제정균이 허탈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마우스를 잡았다.
 컴퓨터로 작업 중이던 문서를 휴지통으로 끌어와 삭제시켰다.
 홍우민의 신세대 트로트 가수 변신 방안. 그와 관련된 기획서였다.
 피곤한 듯 목을 이리저리 돌리던 제정균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대여섯 개의 카세트 테이프가 나뒹굴고 있었다.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묵혀놓은 데모 테이프들.
 대충 손에 집히는 것을 꺼내 오디오 데크에 꽂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잡음 섞인 전주 음이 흘러나왔다.
 
 “······!”
 
 테이프 흰 라벨에는 김준선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미래를 보는 연예 매거진』 1-2권에 계속>

댓글(2)

mo******    
재미있는데 추천수가 ... 잘보겠습니다~~^^
2018.12.18 11:26
n1**********    
사문서 위조가 명백한데... 그리고 연예 회사를 잘 모르지만 인감까지 제출하게 하진 않을 것 같은디..
2019.01.01 22:4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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