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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절무적 1권 (1)

2018.12.12 조회 2,440 추천 24


 # 1. 사부를 모시다
 
 
 
 중원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 낙양洛陽은 들떠 있었다. 오 년마다 개최되는 낙양비무대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숭산에 웅크리고 있는 소림사의 영향인지 무공에 대한 낙양 백성들의 관심은 꽤나 높았다.
 하지만 실제로 무인들이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무대회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매번 오는 기회가 아니니 너도 나도 비무대회를 구경코자 하는 것이다.
 지난 대회가 끝난 지 정확히 오 년이 흘러 열리게 된 금번 비무대회는 낙양 동편에 위치한 백마사白馬寺에서 진행되었다.
 장장 열흘 동안 열리는 낙양비무대회는 십오 세 미만의 소년 소녀들이 참가하는 초년부, 십오 세부터 이십삼 세까지 참가하는 청년부, 이십사 세에서 삼십오 세까지 참가하는 성년부로 각 등급이 나뉘어 있었다.
 처음 이틀은 초년부의 비무 시합이 개최되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의 비무는 유치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정방형의 비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관중석에는 빈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흑오죽으로 만든 죽립을 머리에 푹 눌러쓴 채 비무대를 주시하는 사내의 모습이 유독 눈에 밟혔다.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흑색 장포를 걸친 사내는 왼팔 소매가 텅 빈 채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는데 왼팔이 존재하지 않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그의 눈이 비무대에서 한시도 떠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죽립에 가려져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성년부, 아니 청년부의 비무 시합이라면 그럴 만도 하지만 초년부의 비무는 조악하기 짝이 없어 집중해서 볼 만한 건더기가 없었다.
 역시나 흥미가 사라진 것인지 죽립 사내가 돌연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미련 없다는 듯 비무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양천종梁天宗으로, 무림에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자라면 능히 알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비록 그것이 상당히 오래전인 과거의 것이었지만.
 본시 그는 복건 지방의 무이산武夷山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 먼 낙양까지 흘러들어 온 것은 모두가 낙양비무대회를 관람하기 위함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관람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관람, 즉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문을 계승할 인재를 찾기 위해 낙양까지 왔고, 비무대회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양천종이 가장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초년부의 비무였다.
 그가 어제오늘 조악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비무를 죽립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한데 애석하게도 마음에 차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더라도 문제는 있었다.
 낙양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좋든 나쁘든 모두가 사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본시 한번 정한 사문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절대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즉, 마음에 차는 동량지재棟梁之材를 발견했다손 치더라도 사문의 후계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는, 그래서 사문의 후계로 삼을 여지조차 남기지 않는 지금의 경우보다는 백번 천 번 나은 일이었다.
 ‘하아······. 또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인가.’
 양천종은 내심으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문의 후계에 어울릴 만한 인재를 찾고자 천하를 주유한 것이 벌써 두 해가 훌쩍 지나고 있었다.
 이러다 수십 년간 준비한 것들이 모두 허사로 돌아갈까 봐 양천종은 심히 두려웠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우뚝!
 관중석을 빠져나가던 양천종의 걸음이 돌연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재빨리 죽립을 들어 올렸다.
 주름이 가득한 그의 노안老眼에서 일순 번쩍임이 일었다.
 ‘호오!’
 내심으로 탄성을 자아낸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중원을 떠돌기를 이 년, 드디어 마음에 드는 재목을 찾아낸 것이다.
 양천종의 노안이 향하는 곳에는 비취빛 비단 장포를 곱게 차려입은 열 살가량의 소년이 앉아 있었다.
 흔히 무림에 떠도는 말로 천무지체니 신마지체니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껄이는 허무맹랑한 소리에 불과했다.
 근골은 사람마다 다르다. 얼굴이 제각각이듯 절대로 같은 근골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특정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근골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무공에 가장 적합한 신체를 보기 좋게 부르는 말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양천종이 발견한 소년의 근골은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상이며, 거기서 또다시 상중하로 나누었을 때 역시 상일 정도로 극히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과연 그 말대로군.’
 양천종은 천골天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소년의 근골에 만족해하며 그의 바로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 소년은 양천종이 뒷자리에 앉은 것도 모른 채 비무대 위의 대결을 집중해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를 뜨기 전 양천종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양천종은 소년의 모습에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복색으로 미루어 그가 귀한 집 자식이리라는 것이 첫 번째요, 그가 무공에 관심이 높으리라는 게 두 번째였다.
 무공에 관심이 높다는 점은 소년을 사문의 후계로 삼는 데 이롭게 작용할 테지만 그가 귀한 집 자제라는 사실은 악조건임이 분명했다. 특별히 무가武家가 아닌 이상 명문가에서 무부武夫의 삶을 허락할 리 만무한 까닭이다.
 ‘어떻게 해서든 무이산으로 데려가야 한다. 납치를 해서라도······.’
 양천종은 실제로 절대 행하지 않을 일까지 떠올리며 의지를 다졌다.
 “와아아-!”
 “관평關平이 최고다!”
 양천종의 상념을 확 깨우는 함성과 외침이 울렸다. 초년부의 결승 비무가 끝난 것이다.
 우승은 관평이란 아이가 차지했는데, 그는 낙양사문洛陽四門 중 한 곳인 청룡장靑龍莊 소장주의 아들이었다.
 청룡장은 자신들이 관우의 적통 후예라 주장하지만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었다.
 어쨌든 초년부의 비무가 관평의 우승으로 끝이 나자 관중들이 비무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양천종의 앞에 앉은 소년은 서두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간 후에야 몸을 일으켜 나갔다.
 ‘적어도 화급한 성정은 아니겠군.’
 양천종이 소년을 따라 일어서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무공을 익힘에 있어 화급함은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지만 소년의 경우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무장을 완전히 빠져나온 소년은 호위로 보이는 사내와 함께 마차에 오르더니 낙양대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양천종은 급히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들어선 후 건물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마차를 쫓아 신법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무서운 속도로 뛰어넘는 양천종의 움직임은 확실히 대단한 바가 있어 금세 마차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마차를 쫓길 한참, 마차가 질주를 멈췄다.
 고풍스러운 장원 앞이었는데, 육중한 대문 위로 단가장檀家莊이라 적힌 편액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장원의 도련님인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육중한 대문이 열리고 마차가 그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언제 열렸냐 싶게 대문은 도로 닫히며 장원을 외부와 차단시켰다.
 그렇게 소년의 거처를 확인한 양천종은 오늘은 일단 물러나기로 결정하고, 어제 하룻밤을 묵었던 객잔으로 향했다.
 
  *    *    *
 
 하오문 낙양 지부의 일원인 단삼段三은 흑색의 죽립을 눌러쓴 사내를 마주하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단삼은 사람 보는 능력 눈만큼은 탁월했다. 역시나 그는 흑색 죽립의 사내, 양천종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박에 간파할 수 있었다.
 “무슨 정보를 원하십니까?”
 단삼이 정중히 물었다.
 “단가장에 열 살 정도의 사내아이가 한 명 있던데.”
 “단가장이라면······ 단우경檀宇鏡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모양이로군요.”
 “단우경이라······. 그 아이와 단가장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은데 가능한가?”
 한차례 단우경의 이름을 읊조린 양천종이 물었다.
 “뭐, 수임료만 맞는다면 가능합니다.”
 “얼마를 지불하면 되는가?”
 “은자 다섯 냥입니다.”
 “비싸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저희만큼 싼 곳도 없습니다.”
 양천종의 말에 단삼이 너스레를 떨며 한 푼도 깎아 줄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애초에 깎을 생각도 없었던 양천종은 전낭에서 은자 다섯 냥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단삼이 마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빠르게 은자를 집어 갔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실내 왼편에 설치되어 있는 문을 열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방 안으로 되돌아온 그의 손에는 반으로 접힌 서신용지書信用紙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단삼이 서신용지를 내밀었다.
 양천종은 그것을 받아서 펼친 후 안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신용지에 수록된 정보의 형식은 인물별로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낙양에 처음 단가장을 세운 단패극檀覇極을 첫 번째로 기록하고 있었다.
 
 단패극
 무림의 인물로, 팔비창八臂槍이라는 별호를 얻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고수였으나 그의 나이 오십에 이르러 돌연 금분세수를 행하여 무림에서 은퇴한 후 낙양 근교에 단가장이란 조그마한 장원을 열고 은거.
 
 단철륭檀鐵隆
 단패극의 독자로, 아버지로부터 황룡창법黃龍槍法을 전수 받았다. 장성한 이후 반원운동에 참가, 상우춘의 부대에서 활약하였다. 금상今上이 명조를 개국한 이후 개국공신이었던 유백온劉伯溫과 서달徐達이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하자 회의를 느껴 군문에서 은퇴한 후 단가장으로 돌아옴. 현재 생존하여 부모를 잃은 손자 단우경을 돌보고 있음.
 
 단호중檀湖重
 단철륭의 일남 이녀 중 장남으로, 아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문에 투신하였다. 이후 양국공凉國公 남옥藍玉의 휘하에서 북원北元의 나하추納哈出 정벌전에 참여해 상당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듬해 원나라 순제順帝의 아들 토구스테무르脫古思帖木兒를 토벌하기 위하여 떠난 몽골 원정에서 전사.
 
 단우경
 올해 열 살로 단호중의 죽음으로 인해 단가장의 소장주가 되었으며, 칠 세에 사서삼경을 독파하여 신동으로 불림. 조부 단철륭의 뜻에 따라 가문의 비전인 황룡창법을 익히지 않은 채 과거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
 
 ‘황룡창법이라······.’
 양천종은 군문의 사대창법 중 하나가 황룡창법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무림과 군문의 무공은 근본적으로 간극이 존재하는데 단가장을 세운 단패극의 경우를 봤을 때 군문의 것이라고 경시할 만한 창법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단우경이 황룡창법을 익히지 않은 이상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단우경이 과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단호중이 전장에서 전사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었다.
 아들을 잃은 단철륭으로서는 단우경이 무신武臣이 아닌 문신文臣으로서 나라에 충성하길 바랄 확률이 높았다.
 정말 그렇다면 설득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후우······ 정말 납치라도 해야 되는 건 아니겠지.’
 양천종은 내심으로 난색을 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는 만족하셨습니까?”
 마주 일어선 단삼이 살살거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조금 비싸다는 것만 빼면.”
 양천종은 피식 웃으며 대꾸하고는 하오문 지부를 나섰다.
 그가 나가자 단삼도 바쁘게 움직였다.
 하오문 낙양 지부장에게 양천종에 관한 일을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    *    *
 
 단철륭의 취미는 난초를 가꾸는 일이었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는 난초를 돌보고 있었다.
 활짝 열어 놓은 창가로 새어 들어오는 오후 녘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난 잎을 닦아 내고 있는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이 시간을 즐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여가餘暇는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며 막을 내려야 했다.
 똑똑!
 “장주님, 소인 고량高梁입니다.”
 “들어오게.”
 단철륭이 한차례 미간을 찡그리고는 그를 불러들였다.
 “죄송합니다. 장주님을 꼭 뵈어야겠다는 객客이 찾아온지라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객이라고?”
 “양천종이라 이름을 밝혔는데, 소인이 보기에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양천종이라······.”
 기억에 있는 이름인가 떠올려 보던 단철륭의 눈이 별안간 크게 뜨였다.
 그러고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분명 양천종이라 했는가?”
 “그, 그렇습니다. 한데 어이 그러십니까?”
 “그의 행색이 어떠하던가?”
 “흑색 죽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선천적으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왼팔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허리에 검은색 천으로 돌돌 말린 막대기 같은 것을 차고 있었는데, 소인의 생각으로는 검인 듯싶었습니다.”
 “음······.”
 단철륭이 가슴 어름까지 내려온 수염을 어루만지며 침음성을 삼켰다.
 ‘양천종이라면 검문구절劍門九絶 중 섬전일검閃電一劍의 이름과 같은데······ 설마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인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나, 아니 섬전일검 양천종은 이미 군마련群魔聯과의 싸움에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상하게 자신을 찾는다는 검객이 그일 것 같은 마음이 일었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로, 단철륭으로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 그가 무슨 일로 보자던가?”
 고개를 저어 상념을 날려 버린 단철륭이 물었다.
 “도련님과 관련된 일이라 하였을 뿐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경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단 말이지······.”
 단철륭은 무슨 일일까 고민해 봤으나 양천종이 섬전일검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전무했다.
 “어찌할까요?”
 고량이 조심스레 물었다.
 “빈청賓廳으로 들이게.”
 “무인으로 보이는데 괜찮겠습니까?”
 고량이 걱정스레 물었다.
 “쌓아 놓은 원한이 없을진대 무얼 두려워하겠는가? 들이게.”
 “명대로 하겠습니다.”
 고량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빈청으로 들어서는 양천종을 바라보는 단철륭의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무위경無爲境의 고수란 말인가.’
 단철륭은 비록 무림에서 활동한 적이 없으나 그의 본신 무위는 무림의 일류 고수들과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살핀 양천종은 무위無爲, 그야말로 자연의 일부인 듯 전혀 아무런 기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양천종의 경지가 높아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확실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흑색 죽립을 벗어 등 뒤로 넘긴 양천종이 단철륭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포권을 취한 후 입을 떼었다.
 “양천종이라 합니다. 미리 약조도 하지 않고 찾아온 무례를 탓하지 않고 이리 만나 주시니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아닙니다. 그쪽으로 앉으시지요.”
 단철륭이 자신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양천종이 다시 한 번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착석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인데, 귀공께서는 섬전일검이라는 네 글자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에둘러 말했으나 그것은 섬전일검이 아닌지 묻는 것이나 다름없는 물음이었다.
 “이미 세상에서 잊힌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직 기억하는 이가 있군요.”
 양천종이 고소苦笑를 지으며 자신이 섬전일검임을 인정했다.
 “역시 그렇군요. 한데 무림의 이름 높은 고인高人께서 폐장?莊은 어인 일로 찾으신 것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대인의 손자분을 폐문?門의 후계로 삼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우경이를 말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던지 단철륭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일전 낙양무림대회에서 손자분을 처음 보았는데 천골이 따로 없더군요. 사문의 후계를 찾고자 이 년 넘게 중원을 떠돈 끝에 겨우 발견한 재목인지라 이리 염치없게 청하는 것이니 부디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양천종이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며 정중히 요청했다.
 “음······.”
 단철륭이 굳어진 얼굴로 침음성을 흘렸다.
 그는 무림에 몸을 담지 않았으나 양천종의 사문을 모르지 않았다.
 비록 군마련의 발호로 멸문지화를 당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양천종의 사문인 천검문千劒門은 그 전까지만 해도 천하사패天下四覇로 꼽힐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고, 삼척동자라도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사실 석년의 천검문에서 우경을 후계로 삼겠다고 청해 왔다면 이처럼 고민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기연의 다름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천하사패로 위세를 떨쳤던 천검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비록 천검문에서 문주를 제외하고 가장 강했다는 검문구절 중 한 명인 양천종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개인과 단체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철륭은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어미와 아비를 잃은 자신의 손자가 평탄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만일 양천종의 요청을 들어주어 천검문의 후계가 된다면 평탄한 삶 대신 고생스러운 삶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양천종이 제자가 아닌 사문의 후계라 칭한 것은, 단우경에게 다름 아닌 천검문의 재건을 맡기겠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불가합니다.”
 단철륭이 단호히 거절했다.
 그가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 양천종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저와 사형들이 수십 년을 바쳐 준비한 일입니다. 그 처절했던 시간들을 수포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형들과 함께 수십 년을 준비했다는 것은······.’
 단철륭은 양천종의 말을 통해 군마련과의 일전에서 양천종뿐 아니라 다른 검문구절도 목숨을 잃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수십 년 동안 천검문을 재건하기 위한 모종의 준비를 했고, 지금에 와서 그것을 단우경에게 쏟아부으려 한다는 것을 예상했다.
 검문구절과 같은 절정의 고수들이 수십 년 동안 마음먹고 준비했다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내심 단우경을 맡겨 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뿐 단철륭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손자 놈이 평안히 살길 바랍니다. 그러니 그만 포기하시고 다른 아이를 찾아보십시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경이보다 더 뛰어난 아이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단철륭이 또다시 거절의 뜻을 비치자 양천종은 얼굴을 굳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외람되나 손자분의 생각도 대인과 같을 것이라 자신하십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만일 우경이라면 귀하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란 말입니까?”
 단철륭이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양천종이 말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 대인의 아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손자분에게 황룡창법을 전수하지 않고 학문을 익히게 하고 계신다고요?”
 “그게 어쨌다는 것입니까?”
 “외람되나 대인께서 손자분에게 가문의 창법 대신 학문을 익히게 하는 것은 고인이 되신 아드님과 같은 일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함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한데 과연 그것이 손자분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일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대인께서 손자분을 아끼는 마음이 결코 작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니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입니까? 설마 우경이가 강호의 무인이 되고 싶어 한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단철륭이 불쾌함이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마지막에 이르길 오해 말라 했으나 남의 가정사를 들먹이는, 그것도 가장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양천종의 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처음 손자분을 본 것은 낙양무림대회의 비무장이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화려하지 않고 아무런 재미도 없는 초년부의 비무가 열리는 날이었지요.”
 “그것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단철륭이 여전히 냉랭한 시선을 유지한 채 물었다.
 “무공에 지대한 관심이 없고서는 그 지루한 비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몰두해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흥! 그래서 결국 노부의 손자가 사실은 무공을 익히고 싶어 한다 이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로구려.”
 냉소를 흘린 단철륭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양천종은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 늙은이의 청을 거절하시기 전에 손자분의 의향을 한 번만이라도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일 손자분께서 무武에 전혀 뜻을 두지 않고 있다 말한다면 저 역시 깨끗이 포기할 테니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리해 주시겠습니까?”
 단우경의 의중을 살펴보자는 양천종의 제안에 단철륭은 바로 대꾸하지 않고 미간을 찡그렸다.
 그의 말이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단우경의 보호자이긴 하나 엄밀히 따지면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권한은 없었다.
 양천종의 말대로 만약 단우경이 무에 뜻을 두고 있다면, 그의 뜻에 따라 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우경이의 생각을 들어 보아야겠구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단철륭이 돌연 빈청 밖을 향해 크게 외쳤다.
 “고량! 안으로 들어오게!”
 기다렸다는 듯 빈청의 문이 열리고 고량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처럼 빨리 들어온 것을 보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하명하십시오.”
 그가 읍을 하며 명을 기다렸다.
 “가서 우경이를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고량이 대답과 함께 바로 빈청을 나갔다.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냥 거절하지 않고 자신의 청을 들어준 단철륭을 향해 양천종이 감사를 표하며 포권을 취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본인의 뜻이 가장 중하다는 양 공의 말이 옳기에 들어준 것뿐이니 말입니다.”
 단철륭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양천종은 여전히 그가 손자를 자신에게 맡기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지금으로써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단우경이 자신의 뜻에 부응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야 한 가닥 희망이 생길 테니 말이다.
 
 한편 단우경은 서책을 보고 있다가 할아버지가 찾는다는 고량의 말을 전해 듣고는 빈청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내심 궁금했으나 어차피 빈청에 도착하고 나면 알게 될 것이기에 고량을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빈청에 도착하자 고량이 문을 열어 주며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
 “들어가 보십시오, 도련님.”
 단우경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청 안으로 들어섰다.
 정면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단철륭의 맞은편에 앉아 있어 등판밖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시선에 들어왔다.
 ‘누구지?’
 단우경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단철륭과 양천종이 마주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부르신다 하여 왔습니다.”
 단철륭 앞에 이른 단우경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
 “강호의 이름 높은 고인인 양 어르신이다. 인사드려라.”
 단철륭이 양천종을 가리키며 말하자 단우경은 그쪽으로 몸을 돌려 정중히 인사했다.
 “폐장의 소장주 단우경이 양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양천종이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구나.”
 양천종이 빙그레 웃으며 화답했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단철륭은 한차례 헛기침을 하여 단우경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린 후 말했다.
 “크흠! 우경이 너를 부른 것은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이니라.”
 “하문하세요.”
 단우경이 공손이 대답했다.
 “양 어르신께 듣자 하니 네가 낙양무림대회의 비무를 열중해서 보았다더구나. 맞느냐?”
 “네, 그리하였습니다.”
 단우경이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하면 묻겠다. 너는 무武에 관심이 있느냐?”
 “그것은 어찌하여 물으시는 것인지요?”
 단우경이 의문 어린 얼굴로 물었다.
 “일단 무에 관심이 있는지부터 대답해 보아라. 이는 매우 중요하니 일말의 숨김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솔직히······ 소손, 가문의 창법을 익히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할아버님께서 원치 않는다면 영원히 익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로구나.”
 단우경의 대답에 양천종이 반색하며 끼어들었다.
 “네.”
 그런 양천종을 한번 쳐다본 단우경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묻겠다. 무와 문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너는 무엇을 택하겠느냐?”
 단철륭이 재차 물었다.
 “그것은······ 문무겸전文武兼全······.”
 “갈喝! 이 할애비 눈치 볼 것 없다. 애매한 대답으로 네 의중을 숨겨서도 안 된다. 사내대장부답게 네 속에 품은 뜻을 말해 보아라.”
 문무겸전을 들먹이며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려 하자 단철륭이 일갈하고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손······ 무를 택하고 싶습니다.”
 망설이는 듯하던 단우경이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심중의 뜻을 밝혔다.
 “음······.”
 그에 단철륭이 미간을 찡그리며 침음성을 삼켰다.
 “혹 소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입니까?”
 단우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여 자신의 대답으로 단철륭의 심기가 상한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음이다.
 “아니다. 일단 돌아가 있어라.”
 단철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가 미간을 찡그렸던 것은 단우경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그동안 손자의 마음도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또한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손자 놈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이처럼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럼 소손 돌아가 보겠습니다.”
 단우경은 단철륭과 양천종에게 인사하고는 빈청을 빠져나갔다.
 “이런데도 계속 반대하실 것입니까?”
 단우경이 빈청을 나가자 양천종이 물었다.
 단철륭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후우······ 대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명분이니 의협이니 떠들어 대지만 무림은 누가 뭐래도 강자존强者存, 약자멸弱者滅의 세상, 양 공은 우경이 그 아이를 세상 누구보다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시오? 노부는 이미 아들을 먼저 보냈습니다. 정말이지 거기에 손자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묻는 것이니 대답해 보십시오.”
 단우경의 안위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단철륭의 마음을 짐작한 양천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손자분께서 저와 제 사형들이 지난 수십 년간 준비한 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그 상대가 누구라 해도 적어도 쉽게 지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광오한 말이었으나 단철륭은 양천종의 말을 의심치 않았다. 그의 사문인 천검문은 본래 천하사패 중 일세였다.
 그러한 근간 위에 검문구절이 절치부심한 수십 년의 세월이 더해졌다면 말 그대로 불패의 무인을 양성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것으로 단철륭의 마음은 완전히 기울어졌다.
 본래 문인이었다면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웠겠지만 비록 군문에 있었다 하나 그는 엄연히 무인이었기에 딱히 이해 못 할 바가 아니었음이다.
 “좋습니다. 손자 놈이 양 공을 따르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반대하지 않도록 하지요.”
 “아아! 감사합니다. 대인이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양천종이 화색이 만면하여 말했다.
 “그 말은 손자 놈을 거두고 난 이후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과연 그렇군요. 이 양천종이 너무 성급했나 봅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양천종의 얼굴은 이미 단우경의 수락을 받기라도 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    *    *
 
 빈청에서 단철륭에게 실로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단우경은 무엇 때문에 조부가 그와 같은 하문을 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던 양 어르신이라는 무림인과 관련이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기 어려웠다.
 “뭐, 조만간에 알게 되겠지.”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자 단우경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더 생각해 본들 달라질 것이 없을뿐더러 때가 되면 자연 알게 될 것임을 짐작한 까닭이다.
 과연 빈청을 다녀온 지 채 이각이 지나지 않아 단우경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양 어르신이라 불렸던 무림인이 그를 직접 찾아왔고 빈청에서 단철륭이 던졌던 물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양천종이라 이름을 밝힌 무림인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그를 천검문이라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문파의 후계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통해 단우경은 단철륭의 물음이 가진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단철륭이 이번 일을 전적으로 자신의 뜻에 맡기기로 결정했음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울러 단우경은 그와 같은 단철륭의 결정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파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눈앞의 양천종이 충분히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뜻이 아무리 무에 있다 하더라도 단철륭이 양천종을 그에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단우경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의 제안에 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혹 천검문의 후계가 되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까?”
 “네가 수락한다면 복건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천검문의 비처秘處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천검문의 후계가 되지 않겠습니다.”
 “무슨······?”
 양천종이 당혹하여 물었다.
 “제가 비록 무에 뜻을 두고 있지만 조부님의 곁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천검문의 후계는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단우경이 결연한 얼굴로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깐, 잠깐만! 그리 성급히 결정할 것이 아니다.”
 “제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우경이 단호히 말했다.
 양천종은 고집 서린 그의 표정에서 설득하기가 불가능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후우······ 산 넘어 산이로구나.’
 양천종이 내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무공이야 어디서 배운들 무슨 상관이 있나 싶겠지만 반드시 무이산의 비처에서 무공을 익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단우경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양천종은 일단 시간을 두고 설득하기로 마음먹고는 입을 열었다.
 “하면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을 들어준다면 천검문의 후계가 되겠느냐?”
 “그렇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허나 만일 시간을 두고 절 설득시킬 생각이시라면 일찌감치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전 세상 어떤 것보다 조부님이 우선이니 말입니다.”
 ‘영악스러운 놈.’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듯한 단우경의 말에 양천종은 흠칫했다.
 “그래, 잘 알겠다. 네 뜻대로 이곳에서 머물며 무공을 전수하도록 하마. 그럼 된 것이지?”
 양천종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최종적으로 물었다.
 “단가장 소장주 단우경, 사부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단우경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장읍하며 말하고는 사부에 대한 예로서 구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양천종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의 구배를 받았고, 그것으로 단우경은 천검문의 후계가 되었다.
 
 
 
 # 2. 무공에 입문하다
 
 
 
 양천종은 드디어 천검문의 후계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구배를 끝낸 단우경이 말했다.
 “사부님! 한 가지 간청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양천종이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사문의 무공을 전수받기 전에 가문의 창법을 익히고 싶습니다.”
 “가문의 창법을 말이냐?”
 예상치 못한 청에 양천종이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사문도 중하나 가문 역시 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는 본 가의 유일한 후계, 응당 가문의 비전을 이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네 생각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네 말처럼 사문이 중한 만큼 가문도 중한 법인데 내가 어찌 말릴 수 있겠느냐? 그리해라. 단, 사문의 업을 잇는 데 차질이 없도록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제자 명심 봉행하겠습니다.”
 “좋다.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자꾸나.”
 “알겠습니다.”
 단우경의 대답을 끝으로 그의 처소를 나온 양천종은 단철륭을 만나 경과를 알렸고, 단철륭은 양천종에게 건물 한 채를 내주어 그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하루가 지나고 양천종의 말대로 수련이 시작되었다.
 단우경이 비록 무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초짜 중의 초짜였다.
 그렇기에 양천종은 내공심법을 전하기 전에 먼저 무공이 만들어진 배경, 그 원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강론을 하였다.
 이는 무려 한 시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자칫 지루할 법한 이야기임에도 단우경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경청하여 양천종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지루했을 텐데 잘 들어 주었다. 그럼 이제부터 사문의 내공심법을 전수할 것이니 집중하여 들어라.”
 “네, 사부님.”
 “사문의 내공심법은 현문정종의 것으로, 그 이름은 태허무극신공太虛無極神功이라 한다. 본시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주 간에는 하나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을 일러 무극기無極氣 또는 혼원일기混元一氣라 한다. 태허무극신공의 심법은 바로 그 무극기를 몸 안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천하에 다시없을 신공이라 할 수 있느니라.”
 단우경은 양천종이 말하는 무극기라는 것이 일전에 읽었던 주역의 ‘태극은 음양인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가 서로 결합하여 만물, 즉 육십사쾌를 낳는다’는 말에서 태극과 일맥상통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아 주역에서 이르는 태극太極은 곧 태허무극신공의 무극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에도 양천종의 설명은 계속되어, 태허무극신공의 구결을 구술하기에 이르렀다.
 신공이란 말이 들어가는 만큼 태허무극신공의 구결은 난해하기 짝이 없었고, 그것을 한번 일러 주고 풀이하는 데만도 장장 두 시진이 소요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단우경의 오성이 뛰어나 양천종이 불러 주는 구결을 듣는 족족 기억했고, 구결에 대한 풀이 역시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행간에 숨은 깊은 의미까지 파악한 것은 아니었으나 태허무극신공을 수련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이해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음이었다.
 머리로 이해를 끝냈으니 남은 것은 실제로 행하는 것, 단우경은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의식을 집중했다.
 내공 수련은 기氣를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기를 느끼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단전을 구축할 수 없고 내공도 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는 분명히 존재하나 추상적이다. 실제 눈에 보이지 않으며 감촉으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를 느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평생 가도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했다.
 단우경의 근골과 무재武才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곧바로 기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단우경의 이마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의식을 집중한다는 것은 심력의 소모를 의미했고, 심력의 소모는 육신의 피로와 연결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양천종은 말없이 단우경을 지켜봤다.
 사실 그가 나선다면 쉽게 기를 느끼게 할 수 있었다. 그가 연성한 태허무극신공의 공력을 단우경의 몸속에 투입시켜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양천종은 그리하지 않았다.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대자연에 흐르는 기운을 느끼는 것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느끼는 것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내심 단우경이 기와 얼마나 친밀도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단우경이 기를 느끼기 위해 가부좌를 취한 채 의식을 집중한 지도 어느새 사흘이 흘러가고 있었다.
 단우경은 자신의 재능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에 자꾸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더욱더 집중하여 태허무극신공의 기감결氣感訣에 따라 호흡을 조절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을 보냈을까. 단우경은 분명 눈을 감고 있음에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자신의 온몸을 돌연 간질이며 타고 흐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기라는 것인가!’
 본능적으로 그것이 기라는 것을 깨달은 단우경은 의식을 더욱 집중하는 한편 구결을 기감결에서 축공결蓄功訣로 전환하였다.
 구결과 함께 변화된 호흡에 따라 우주 간에 가득한 기운의 한 줌이 단우경의 내부로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했다. 정말 티끌만도 못한 미미한 양이었으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단우경은 자신의 호흡을 따라 단전으로 흘러들어 가는 기를 느끼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굳게 닫혀 있던 하단전의 기혈氣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비로소 태허무극신공의 공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우경은 지금까지도 그랬으나 더욱 의식을 집중하여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게 하였다.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무엇보다 중한 법, 하단전을 크고 단단히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훗. 사흘 만에 반관내조返觀內照에 이어 응신입기혈凝神入氣穴이라. 가히 나쁘지 않구나.’
 양천종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렸다.
 반관내조라 함은 자신의 내부를 관조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자연의 기를 느끼기 위한 단초다. 그리고 응신입기혈은 하단전의 기혈을 열어 내공을 쌓을 기반을 구축함을 이르는 말이었다.
 양천종이 단우경으로부터 아무런 말을 듣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단우경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가 절정을 넘어선 화경化境의 고수임을 감안한다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각설하고, 그렇게 단 사흘 만에 단우경은 스스로의 힘으로 내가무인으로서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    *    *
 
 양천종은 단우경에게 태허무극신공의 기초를 다지게 한 후로는 조석으로 심법을 수련하라는 명을 내렸을 뿐 따로 간섭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었다. 이미 약조한 대로 단가의 비전인 황룡창법을 익힐 시간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배려에 따라 단우경은 조석으로 심법을 운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부인 단철륭에게 황룡창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 군문사대창법軍門四大槍法으로 손꼽히는 황룡창법은 총 열두 가지 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변變을 그 기본 무리로 삼았다.
 쉬쉬쉭!
 단철륭의 손에 들린 창이 어지럽게 허공을 누비며 파공음을 뿌렸다.
 한쪽에서는 단우경이 단철륭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해 보였다.
 ‘괜찮은 움직임이로구나.’
 단우경의 옆에 앉아 있던 양천종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황룡창법을 인정하였다.
 단씨 가문의 비전인 황룡창법의 시현을, 비록 단우경의 사부라 하나 외인이랄 수 있는 그가 지켜보는 것은 모두가 단철륭의 부탁 때문이었다.
 단철륭은 황룡창법이 절정의 무공에는 미치지 못함을 모르지 않았고, 그래서 평생토록 보완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무공을 창안하는 것만큼이나 수정, 보완 하는 일도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무공이 경지에 올라선 고수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은 몰라도 본래 있던 것을 더욱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양천종은 화경의 고수다. 비록 평생토록 검만을 연마했다 하나 만류귀종이라 하였으니 그의 깨달음이라면 황룡창법의 부족함을 메우고도 남으리라는 것이 단철륭의 생각이었고, 황룡창법의 보완을 위해 자신의 시현을 직접 봐 달라고 청을 했던 것이다.
 “어떤 것 같으냐?”
 집중하고 있는 단우경에게 양천종이 물었다.
 “네? 무슨 말씀 하셨어요?”
 단우경은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역시 대단한 집중력이야.’
 양천종은 단우경이 보이는 집중력에 내심 만족하였다.
 무릇 학문이나 무공이나 성취가 높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좋아야 한다. 자고로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태로 한 시진 동안 책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단 일각일지라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책을 보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다.
 집중력은 후천적으로 배양할 수도 있겠으나 선천적인 부분이 컸다. 그런 점에서 단우경의 어른 못지않은, 아니 평범한 어른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높은 집중력은 크나큼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사부님?”
 “응, 그래. 네 조부께서 펼치는 황룡창법이 어떻게 느껴지느냐 물었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하여 마치 팔이 서너 개 더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무리 가운데 환이나 변을 구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우경이 나름대로 느낀 것을 아뢨다.
 “그래, 제대로 보았다. 그럼 묻겠다. 환과 변의 차이는 무엇이라 했느냐?”
 양천종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환과 변은 상대의 눈을 현혹시킨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환이 허초虛招를 그 중심에 두고 있는 반면 변은 실초實招를 그 중심에 두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단우경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청산유수와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다. 환에서의 변화는 그저 환영일 뿐이나 변에서의 변화는 환영이 아니라 진체 그 자체다. 단가의 황룡창법은 네가 본 그대로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 변화의 근간을 보자면 환이 아닌 변이니라. 만일 공력이 화경에 달한다면 능히 일 수에 열여덟 번의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양 사부! 그 말이 정말이십니까?”
 마침 시현을 마치고 다가오던 단철륭이 양천종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물론입니다.”
 그 물음에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 양천종이 돌연 몸을 일으키며 검을 빼 들었다.
 단씨 조손이 무엇을 하는 것인가 쳐다보는 가운데 양천종은 손에 든 검을 몇 번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다 돌연 전방의 허공을 향해 검을 내저었다.
 파바바바!
 대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정확히 열여덟 개의 꽃송이가 허공에 피어올랐다. 십팔 방을 아우르는 검화劍花는 한없이 아름다웠다.
 그 광경을 본 단철륭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황룡만화黃龍滿花!”
 양천종은 놀랍게도 한 번 본 황룡창법의 최강 초식을 정확히 펼쳐 낸 것이다. 그것도 창이 아닌 검으로.
 “제가 느낀 대로 펼쳐 본 것인데 어떻게, 괜찮았습니까?”
 양천종이 검을 거두고는 멋쩍은 듯 물었다.
 “저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인데 괜찮다는 말로는 부족하지요.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단철륭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단가의 창법이 그만큼 뛰어난 때문인 게지요.”
 양천종이 겸양했다.
 그러자 단철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양 사부께서 이 노부를 민망케 하시는군요. 양 사부님의 광속검예光速劍藝에 비하면 본가의 창법은 그야말로 달빛 아래 반딧불이지요.”
 “그리 낮추실 필요 없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단가의 황룡창법은 무림에 이름 높은 양가창법이나 악가창법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어 보이니 말입니다.”
 양천종의 지금 말은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 그는 양가창법과 악가창법을 견식할 기회가 있었는데, 단철륭이 보여 준 황룡창법도 그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그것이 오직 창술槍術 그 자체에 국한된 비교라는 사실이었다. 조금 의아하다 싶을 정도로 단철륭이 지니고 있는 공력은 그의 고절한 창술에 비해 크게 부족했던 것이다.
 “허허, 그리 평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룡창법을 높게 평가하는 양천종의 말이 싫지는 않은 듯 단철륭이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한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대인의 창술은 참으로 고절한 바가 있는데, 그에 비해 내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입니까?”
 “특별한 이유는 무슨, 그저 황룡창법을 뒷받침할 만한 심법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요. 뭐, 애를 좀 썼다면 상승의 내공심법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림이 아닌 군문에서 활동했던지라 지금의 내공심법만으로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리된 것이로군요. 하지만 이제 문제없을 것입니다. 우경에게 전한 태허무극신공은 세상에 다시없을 내공심법이니 말입니다. 만일 우경이 태허무극신공을 바탕으로 황룡창법을 펼친다면 양가나 악가의 창법에 뒤지지 않는 위력을 충분히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허. 그 말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가르쳐 주세요. 빨리 배우고 싶어요.”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단우경이 단철륭을 졸랐다.
 “그래, 그러자꾸나. 자! 창을 들고 이쪽으로 따라오너라.”
 단철륭이 기분 좋게 대답하고는 연무장의 중심부로 단우경을 이끌었다.
 그리고 창을 쥐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 주기 시작했다.
 양천종은 처음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검술부터 익히게 하고 싶었으나 가문의 비전을 중시하는 단우경의 마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미 약속한 바도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후우······ 그나저나 무이산으로 어찌 데려가지.’
 양천종은 이내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와 사형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무이산의 비처에 마련된 연검구관鍊劍九關에 들어야만 했다.
 물론 그가 만들어 낸 한 가지 초식은 이곳에서도 가르칠 수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더구나 검법뿐 아니라 외공과 내공을 연성하기 위한 안배도 모두 무이산의 비처에 있었다.
 단우경을 진정한 천검문의 후계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이산으로 데려가야 했다.
 한데······ 무슨 핑계를 대고 그를 데려간단 말인가.
 양천종의 고민은 계속되었으나 좀처럼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그러는 사이에도 단우경은 단철륭으로부터 열심히 창술을 전수받고 있었다.
 
  *    *    *
 
 양천종이 단가장에 머문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단우경은 조석으로 태허무극신공을 수련하는 한편 황룡창법을 꾸준히 전수받아 지금에 와서는 열두 초식으로 이루어진 황룡창법의 투로를 대충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초식의 형形이 가진 함의含意를 깨달아야 했으며, 그에 따른 내력의 운용 역시 숙련시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창술을 구현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우경이 창술을 습득해 가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단우경이 그렇듯 황룡창법의 기초를 다지자 양천종도 본격적으로 천검문의 근간이며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검술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검을 쥐는 법, 즉 파지법把持法이었다. 그냥 검을 쥐면 되는 것이지 뭐 그런 것을 따로 가르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검술에 무지한 자가 지껄이는 소리일 뿐이다.
 파지법은 검술의 기초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제대로 검을 쥐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검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이지 못할뿐더러 효율적으로 힘을 실을 수도 없는 까닭이었다.
 양천종이 단우경에게 전하고자 하는 검술은 기본적으로 우수검右手劍에 편수법片手法을 취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의 검사들은 쌍수파지를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나머지 한 손이 여유로워야 예기치 못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검문도 같은 이유로 편수법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천검문의 문주에게 대대로 전해져 오는 기검奇劍을 좌수에 착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으로써는 오직 양천종만이 알 뿐이었다.
 각설하고, 파지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 양천종은 본 검술을 전하기에 앞서 기초를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삼재검법을 전하기로 결정했다.
 삼재검법은 검의 본산이라 칭해지는 무당파에서 창안된 검법으로, 동작이 단순하면서도 검술의 각종 기법을 망라하고 있어 고도의 검술을 익히기 전 입문형入門形으로 각광받았다. 지금껏 검을 들어 본 적도 없는 단우경이 익히기에는 이보다 적합한 검법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삼재검법을 무시해서는 곤란했다. 오직 삼재검법만을 익히고도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삼재검법은 소진배검蘇秦背劍으로 시작하느니라. 그 자세는 이 사부가 보여 주는 것과 같은데, 먼저 왼손으로 검을 거꾸로 쥐어 직립부동直立不動 자세를 취하고 시선은 전방을 향하며, 오른손은 검결지劍訣指를 취한 후 팔을 뻗어서 몸의 측면에 자연스럽게 두면 되느니라.”
 양천종이 삼재검법의 첫 번째 초식인 소진배검의 자세를 취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을 해 주었다.
 왼팔이 잘려 나가고 없는 양천종이 어떻게 시범을 보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특별히 제작한 의수義手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요?”
 단우경이 곧장 양천종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사실 소진배검은 일종의 기수식으로 정지된 상태에서 자세를 잡는 것이기에 단우경도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리하면 되느니라. 그럼 다음으로 두 번째 초식인 선인지로仙人指路를 설명하마. 먼저 오른발에 체중을 실어 굳건히 한 후 무릎을 약간 구부린 상태로 왼발을 전방으로 내어 발끝을 가볍게 세워야 하느니라. 이때 오른손의 검결지를 정면 방향 코와 같은 높이로 천천히 내야 하느니라. 이어 몸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왼발의 무릎을 높이 올려 검을 쥔 왼손으로 무릎의 주위를 후리고, 오른손은 검결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밑에서 돌려 어깨 위로 이동시켜야 하느니라. 그다음으로 왼발을 이렇게 전방으로 내디뎌 궁전식弓箭式을 취하는 동시에 오른손의 검결지를 전방으로 찔러 내면 되느니라.”
 양천종은 동작 하나하나를 끊어 내듯 취해 보이며 세세한 설명을 덧붙였고 단우경은 그의 시범과 설명에 따라 어색하게나마 동작을 취해 보였다.
 양천종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때그때 지적을 해 주었고, 이와 같은 과정은 마지막 초식인 비홍횡강飛虹橫江까지 쭉 이어졌다.
 “다 숙지하였느냐?”
 비홍횡강을 펼쳐 보인 양천종이 단우경에게 물었다.
 “제자 미숙하여 미처 다 외우지 못하였어요. 송구하오나 한 번만 더 보여 주세요.”
 단우경은 한 번에 다 기억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숙여 보였으나 과연 누가 있어 삼십이 초식의 동작들을 단 한 번 보고 머릿속에 넣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 하늘이 작정하고 낸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천종 역시 단우경이 아무리 총명하다 해도 단 한 번만에 삼재검법 삼십이 초식의 모든 동작을 숙지할 것이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기에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펼칠 것이니 집중해서 보아라.”
 “네, 사부님.”
 단우경이 이번에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말겠다는 듯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기꺼워 양천종은 한차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삼재검법의 시현에 들어갔다.
 소진배검에 이어 선인지로, 금침암도金針暗渡, 나탁탐해那托探海를 연속적으로 선보였다.
 처음의 시현보다는 빠른 편이나 여전히 단우경이 동작 하나하나를 살피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속도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양천종이 엽리장신葉裡藏身, 독헐반미毒歇反尾, 비홍횡강飛虹橫江을 차례로 펼치고는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 번 더 보여 줘야겠느냐?”
 “이번에는 제가 해 볼게요. 사부님께서 봐 주세요.”
 단우경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당차게 말했다.
 “좋아. 시작해 보아라.”
 “네, 사부님.”
 단우경은 힘차게 대답하고는 소진배검을 시작으로 삼재검법의 초식들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천골天骨인가.’
 양천종은 단우경이 펼쳐 내는 삼재검법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이 감탄하고 말았다.
 단 두 번 보여 주었을 뿐이건만 단우경은 무리 없이 모든 동작들을 펼쳐 내고 있었다.
 천골은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상의 근골을 타고났음을 의미하지만 그러한 근골을 타고난 이들 대부분은 무재 역시 극히 뛰어났다. 심신일체心身一體라고, 하늘은 최상의 신체 조건에 걸맞은 최상의 두뇌를 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단우경이 바로 그러했는데, 천골에 미치지 못하는 양천종으로서는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천골을 타고난 단우경이라 해도 삼재검법의 초식들이 지니는 현묘한 이치까지 꿰뚫을 수는 없었고, 큰 틀은 흉내 낼 수 있을지언정 미세한 부분까지 일치시키지는 못했다. 그 부분을 보완시키고 충족시켜 주는 것은 사부인 양천종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단우경이 삼재검법의 시현을 마치자 양천종은 초식별로 나누어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주기 시작했다.
 
  *    *    *
 
 단우경은 아버지 단호중이 세상을 떠난 후로 지금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림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 단호중이 무릎에 앉혀 놓고 들려주었던 무림 영웅들의 협객행에 흠뻑 빠져든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흔들리고 말았다. 여전히 그의 가슴속에는 무림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존재했으나 자식을 잃은 슬픔에 그를 문사文士로 키우겠다고 다짐한 조부 단철륭의 뜻을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두 부모를 모두 잃게 된 단우경에게 남은 피붙이는 오직 단철륭뿐이었다.
 두 명의 고모가 있었으나 그들은 출가외인, 단우경이 의지할 수 있는 이는 단철륭이 유일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우경은 단철륭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무에 대한 열망을 가슴 한쪽에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한데 돌연 양천종이 나타났고, 단철륭의 허락을 얻어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사부로 모시게 된 양천종은 무림에서 이름 높은 영웅이라 하였다.
 과연 사부의 실력은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하늘과 같이 높은 것이었다.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기뻤고, 그렇듯 강한 사부의 가르침을 받게 된 것도 기뻤다.
 옛말에 이르길 ‘천재는 노력가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가는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천골을 타고난 단우경은 천재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깨닫지 못한 채 열성을 다해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한없이 즐기고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실력이 일취월장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    *    *
 
 시간은 흘러 양천종이 단우경의 사부가 된 지도 어느덧 반년이 흘러가고 있었다.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들었다.
 단우경은 태허무극신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양천종의 말을 의심하지도 않았으나 지금에 와서는 태허무극신공의 공능을 완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이 현문정종의 내공심법을 익힌 이후로 잔병치레를 전혀 하지 않았을뿐더러 힘든 수련을 하고도 신공을 운기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벼워짐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능은 태허무극신공이 가진 공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나 열 살의 단우경을 매료시키기 충분했고, 단우경은 열과 성을 다해 태허무극신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후우······ .”
 단우경이 운기를 끝내고 길게 호기呼氣하였다.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킨 그는 방 한쪽에 세워 둔 목창과 목검을 양손에 쥐고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새벽의 싸늘한 공기가 전신으로 엄습해 들었다.
 “으으, 추워라.”
 단우경이 한차례 몸을 떨고는 앞마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리가 내린 앞마당은 완전히 얼어붙어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단우경은 개의치 않으며 목검을 앞마당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석대石臺에 올려놓고는 목창을 잡았다.
 “후우웁.”
 심호흡과 함께 싸늘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단우경은 태허무극신공의 공력을 끌어 올리는 동시에 황룡창법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왼발을 반 보가량 앞으로 내디디고 창 하단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전방으로 쭉 뻗었다.
 쉬이익!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휙휙 잘도 휘어져 나가는 목창이 전방을 향해 쾌속하게 뻗쳐 나갔다.
 황룡창법의 첫 번째 초식인 황룡출세黃龍出世의 수법이었다. 만일 공력이 일천하지 않았다면 창로를 따라 압축된 공기가 일시에 터져 나갔겠으나 고작 여섯 달을 수련한 단우경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가상으로 설정한 상대의 가슴을 꿰뚫는 데 성공한 단우경은 오른손을 회수함과 동시에 왼손으로 목창의 중앙부를 파지하며 손목이 부러질 듯 좌우로 재꼈다.
 휘이익!
 목창이 좌우로 크게 휘어지며 양측 면을 공략하였다.
 황룡쌍취黃龍雙取의 초식으로 양옆으로 달려드는 적을 격살하는 데 제격인 수법이었다.
 그에 이어 단우경은 오른발을 뒤로 쭉 빼내었다. 그리고 자세를 낮추는 한편 왼발을 축으로 하여 신형을 크게 회전했다. 몸의 회전과 함께 목창이 크게 원을 그렸다.
 이는 사방의 적을 일시에 격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황룡회미黃龍回尾의 초식이었다.
 그 후로도 단우경은 쉼 없이 황룡창법의 초식들을 펼쳐 냈고 마지막 초식인 황룡만화를 전개하고 나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황룡창법의 열두 초식을 모두 펼친 단우경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가 얼마나 격렬히 움직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앞마당으로 나왔을 때 느꼈던 추위는 어느새 잊어버린 단우경은 석대로 다가가 목창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목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허공에 대고 몇 차례 휘둘러보았다. 창을 쥐고 있다가 검을 드니 아무래도 착 감기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길 잠시, 단우경은 길게 심호흡을 하며 소진배검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바로 선인지로의 초식으로 들어가며 삼재검법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다.
 삼재검법을 수련한 지 다섯 달밖에 지났지 않았음에도 단우경이 펼쳐 내는 삼재검법은 그 특유의 간단명료한 검로를 그리면서도 저마다의 초식이 지닌 묘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는 삼재검법을 한두 해 동안 꼬박 수련한 자도 쉽게 보여 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단우경이 이처럼 빠른 진경進境을 보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무재武才가 극히 뛰어나다는 점도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는 삼재검법을 가르친 이가 양천종이란 사실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었다.
 양천종은 이십수 년 전에 이미 섬전일검으로 불리며 쾌검에 있어서만큼은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이십 년간 절치부심으로 검술을 닦았으니 그 경지가 얼마나 높아졌을지는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흔히 고수의 손에 의해 펼쳐지면 삼류 초식도 능히 일류의 초식이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고수라 불리는 자들은 삼류 초식이 함의한 본연의 무리를 정확히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삼재검법은 상승 검술로 이행하기 전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검법으로, 현재에 와서는 은자 몇 냥만 지급하면 어디서나 쉽게 구하는 그저 그런 검술로 취급받고 있으나 그것은 애초 무당파의 고수들이 삼재검법에 심어 놓았던 무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양천종은 삼재검법이 담고 있는 무리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그에 더해 열 살에 지나지 않는 단우경에게 그것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낼 수 있는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단우경이 보기 드문 기재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진경을 선보일 수 없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후우······ .”
 삼재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비홍횡강을 펼치고 난 단우경은 자세를 바로하며 호기하였다.
 휘우웅!
 동트기 직전의 세찬 한풍寒風이 온몸을 할퀴듯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단우경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 주어 시원한 느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난 후 찬 공기를 오래 쐬면 몸에 좋지 않은 법, 단우경은 석대에 걸쳐 세워 둔 목창을 집어 들고 방 안으로 향했다.
 “이제 오세요?”
 방 안으로 들어서니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준비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십 대 여인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단우경을 젖먹이 때부터 키운 유모로, 이름은 유설화柳雪花였다.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읜 단우경에게는 어머니나 다름없는 여인이었다.
 “유모, 잘 잤어?”
 단우경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네, 잘 잤답니다. 그보다 고뿔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니 어서 옷 벗고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그녀가 물음에 답하고는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재촉했다.
 단우경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는 유설화가 가리킨 곳으로 가 앉았다.
 유설화가 기다렸다는 듯 대야에 담긴 물에 수건을 적셨다. 대야 위로 훈김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따뜻하게 데운 물인 듯싶었다.
 유설화는 물에 적신 수건을 대충 짜내어 적당량의 물기만을 남겨 두고는 그것으로 땀에 젖은 단우경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    *    *
 
 그날 오후 단우경은 양천종과 함께 단가장을 나서 낙양의 북쪽에 위치한 북망산北邙山으로 향했다.
 북망산 하면 무덤을 떠올릴 만큼 그곳은 유독 묘지가 많았는데, 그에는 이유가 있었다.
 낙양은 동주東周 이후 당나라 측천무후 때까지 아홉 개 왕조의 수도였던 데다 그 토질과 지세가 좋아 고대로부터 영생永生을 꿈꾸는 수많은 왕들과 귀족들이 사후 안식처로 북망산을 택했기 때문이다.
 양천종과 단우경이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수련을 위해서였다.
 하체의 단련을 위해서는 산길을 달리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는데, 그 훈련을 위한 장소가 북망산이었다.
 사실 북망산은 망자들의 안식처이면서 백 장 높이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인지라 수련 장소로는 전혀 걸맞지 않은 곳이었지만 낙양 인근에는 북망산이 유일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단우경은 북망산에 도착하자마자 양천종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남쪽에서 시작되는 경사면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열 살의 소년인 단우경에게 양천종이 업혀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으나 달음질을 하는 단우경의 표정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단우경의 얼굴은 달음질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해 삼십 장가량 올랐을 때는 아예 땀으로 범벅이고, 다리도 보기 흉할 정도로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양천종이 그리 비대하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모습이었으나 실상을 알고 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단우경이 그처럼 힘겨워하는 것은 그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양천종이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해 그를 한계치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까닭이었다.
 “헉······헉······.”
 단우경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연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쯔쯧. 이리 약해 빠져서야. 어서 호흡을 바로잡지 못할까!”
 단우경의 등에 올라탄 양천종이 무섭게 일갈하였다.
 사부의 호통에 움찔한 단우경은 이를 악물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를 썼다.
 “어허! 점점 느려지는구나. 벌써 꾀를 부리는 것이더냐?”
 호흡을 조절하느라 다리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지자 양천종이 여지없이 다그쳤다.
 단우경은 양천종의 명을 어기지 않고 다리의 움직임에 속도를 더했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는 말 그대로 비 오듯 땀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학대에 가까운 행위였으나 본래 수련은, 특히 외공의 수련은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여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물론 무턱대고 극한까지 내몰게 되면 도리어 신체가 망가져 버릴 수도 있으나 양천종은 그 한계를 명확히 인지했고 수련이 끝난 후에 과부하된 신체의 피로를 풀어내는 방법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어쨌든 단우경이 힘든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이 수련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단우경은 북망산의 남쪽 경사면과 북쪽 경사면을 오가는 행위를 정확히 열 번 반복해야 했는데 그것은 족히 한 시진을 잡아먹는 고행苦行이었다.
 단우경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양천종의 온갖 타박을 감내하며, 금방이라도 어그러질 것만 같은 몸을 애써 부여잡으며 북망산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한 시진 후 단우경의 고행은 끝이 났다.
 “헉, 헉! 사부님······ 정말······ 죽을 것······ 같아요.”
 단우경이 대자로 널브러지며 힘겹게 말했다.
 그의 등에서 내려온 양천종이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고는 단우경의 머리맡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단우경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것도 잠시, 양천종이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널브러져 있던 단우경이 그 손길을 따라 허공으로 떠올랐다. 절정의 능공섭물凌空攝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단우경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몇 달째 계속 겪고 있는 일인 까닭이었다.
 허공에 단우경을 띄운 채 양천종의 손이 움직였다.
 파바바바!
 분영수分影手를 방불케 하듯 양천종의 손이 수없는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단우경의 전신을 격타하기 시작했다.
 이는 추궁과혈로, 과부하가 걸린 단우경의 근육을 풀어 주기 위한 고도의 작업이었다.
 양천종은 중간 중간 단우경의 몸을 뒤집어 가며 손을 움직였고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는 정확히 일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단우경은 한결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태허무극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추궁과혈을 통해 일차적으로 풀어진 전신 근육을 다시 한 번 어루만져 주기 위함이었다.
 단우경의 운기는 이각 동안 계속되었고, 그사이 양천종은 소비한 공력을 회복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단우경과 반 장가량 떨어진 곳에서 호법을 섰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운기를 마친 단우경이 몸을 일으켜 장읍하며 말했다.
 “녀석······. 그만 가자꾸나.”
 양천종은 기특하다는 듯 단우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수련할 때는 한없이 엄하고 독하나 끝나고 나면 인자해지는 양천종이었다.
 “사부님! 같이 가요!”
 단우경이 환하게 웃으며 양천종의 옆으로 달려갔다.
 그리하여 두 사제는 나란히 북망산을 벗어났다.
 북망산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양천종은 등 뒤로 넘겨 놓았던 검은색 죽립을 머리에 눌러썼다. 그는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 괜히 노출되어 귀찮음을 겪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숲길을 지나 낙양의 대로변으로 나온 양천종과 단우경은 다른 곳으로 새지 않고 곧장 단가장으로 향했다.
 ‘이 기운은······?’
 단가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양천종의 기감에 범상치 않은 자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 기운을 향해 고개를 살짝 돌리니 화산파의 도복을 입은 도사 하나와 단우경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아가 보였다.
 한데 도사의 손을 잡고 있던 여아가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보고 활짝 웃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이유인지 고민할 사이도 없이 예쁘장한 여아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우경아!”
 양천종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여아가 웃은 이유는 자신의 옆에 있는 단우경 때문임을.
 “어!”
 단우경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여아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는 아이더냐?”
 “네. 허창에 아버지의 고우셨던 사원명謝元明 숙부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의 여식이에요. 한데 쟤가 여긴 무슨 일이지?”
 단우경은 양천종의 물음에 대답하는 한편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원명과 함께였다면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그녀가 처음 보는 도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경이 맞네.”
 어느새 근처로 달려온 여아가 방실대며 말했다.
 “영榮아, 숙부님도 없이 네가 여긴 웬일이야?”
 단우경이 물었다.
 “그게, 이번에 화산파에서 무공을 배우기로 했거든. 그래서 사부님을 따라 화산으로 가는 중이야.”
 여아, 사월영謝月榮이 자랑하듯 대답했다.
 “네가 단가장의 소장주인 단우경인 모양이로구나. 본 도는 영아의 사부가 된 영호중令狐仲이라고 한단다.”
 사월영의 옆에 서 있던 도사가 어느새 다가와 단우경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우경이라 합니다.”
 단우경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였다.
 “옆에 계신 분은?”
 영호중이 범상치 않은 복장의 양천종을 슬쩍 쳐다보며 묻는다.
 “제 사부님입니다.”
 “양무명梁無名입니다. 사정이 있어 얼굴은 보일 수 없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우경의 대답과 함께 양천종이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하는 한편 죽립을 벗지 않는 실례에 대하여 미리 사과하였다.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름이 정말로 무명일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는 것은 얼굴뿐 아니라 이름까지 밝히지 않겠다는 뜻, 영호중은 내심 불쾌한 한편 의심이 일었으나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양천종에게 특별히 사기邪氣나 마기魔氣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소개하지요. 화산파의 영호중입니다.”
 영호중이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사월영은 단우경을 향해 말했다.
 “우경아, 오늘 저녁 단가장에서 묵고 싶은데 괜찮지?”
 “그건 할아버지한테 물어야지.”
 “단 할아버지는 당연히 허락해 주실걸.”
 사월영이 자신했다.
 그를 통해 양천종은 두 가문 사이에 상당한 인연이 쌓여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이의 말대로 해도 되겠는가?”
 영호중이 단우경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일단 본 장으로 걸음하시지요, 사부님.”
 단우경은 영호중에게 예의 바르게 말하며 양천종을 바라봤다. 양천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단우경과 영호중 그리고 사월영이 따랐다.
 잠시 후 네 사람은 단가장에 당도하였다.
 양천종만 그의 처소로 향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곧장 단가장의 장주 단철륭을 만났다. 사정을 들은 단철륭은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영호중과 사월영에게 방을 내주었다.
 
 “우경아, 너 언제부터 무공을 배운 거야?”
 금세 짐을 던져 놓고 온 사월영이 단우경에게 달라붙으며 물었다.
 “여섯 달 전부터.”
 “만날 재미없는 서책들만 쳐다보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대?”
 “그러는 넌 어떻게 된 거야?”
 “나? 우경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뛰어난 편이잖아. 사부님께서도 이 사월영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신 것이지.”
 사월영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뛰어나? 누가?’
 단우경은 내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사월영이 한번 삐치면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네 사부님은 어느 문파 분이야?”
 “넌 말해 줘도 모를 거야.”
 사월영이 발끈하며 말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딘데? 어서 말해 봐.”
 “그런 데가 있어.”
 단우경은 대충 대답을 회피하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야!”
 사월영이 화가 나서 소리치며 그런 단우경을 쫓았다.
 사가장謝家莊은 무림에 적을 두고 있는 가문이었다.
 단우경의 증조부인 단패극이 무림에 몸담았을 때 사가장의 선조와 인연이 닿았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월영이 이처럼 자유분방한 성정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가문이 무가인 영향이 컸다.
 ‘귀찮아 죽겠네.’
 단우경은 자신을 쫓아 처소 안까지 들어오는 사월영의 모습에 귀여운 얼굴을 찡그렸다.
 “언제까지 쫓아올 건데?”
 단우경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물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 보라는 의미가 담긴 물음이다.
 사월영은 어리석지 않아 그 뜻을 알 수 있었으나 부러 모른 척하며 말했다.
 “나 보고 싶어.”
 “뭐가?”
 사월영의 뜬금없는 말에 단우경은 불길함을 느끼며 반문했다.
 “여섯 달 동안 무공 배웠다며. 그동안 배운 것 좀 보여 줘 봐. 해 줄 거지?”
 “나중에.”
 “안 돼. 이번에 화산에 가면 몇 년은 못 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보여 줘.”
 “하아······.”
 단우경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처소 한쪽에 위치한 무기 진열대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에 익은 목창을 빼 들었다.
 “뭐야? 황룡창법 보여 주려고?”
 사월영이 시큰둥하니 물었다.
 “그럼?”
 “네 사부님한테 배운 거 보여 줘. 황룡창법은 단 할아버지가 펼치는 것 봤단 말이야.”
 “나 사부님한테는 아직 삼재검법밖에 안 배웠는데.”
 “뭐야, 김빠지게.”
 “그러니까 나중에 보여 준다고 했잖아.”
 단우경이 짜증 난 듯 눈썹을 꿈틀거리자 움찔한 사월영은 재빨리 표정을 바꾸었다.
 “알았어. 그럼 그거라도 보여 줘.”
 사월영을 잠시 노려보던 그가 목창을 내려놓고 목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마당의 중앙 쪽으로 움직인 후 소진배검을 시작으로 삼재검법의 삼십이 초식을 빠른 속도로 펼쳐 나갔다.
 사월영은 처음에는 유심히 지켜봤지만 몇 초식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었다. 그녀 역시 삼재검법을 익혔는데 그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단우경에게 무공을 보여 달라고 조른 것은 새로운 무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한데 이미 알고 있는 삼재검법을 펼치는 단우경을 보니 흥미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일 이곳에 영호중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단우경의 목검은 삼재검법 본연의 무리를 너무도 잘 구현했고, 사월영과 달리 영호중은 그것을 간파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단우경은 사월영이 자신의 시현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검법을 중도에 멈추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수련이라 생각하면 그녀의 태도 따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우경은 전력을 다해 마지막 초식까지 완전히 펼쳐 내고는 목검을 거두었다.
 “보여 달라고 조를 때는 언제고 그 태도는 뭔데?”
 그가 사월영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미안. 하지만 재미가 없었는걸. 난 새로운 무공을 보고 싶었단 말이야.”
 “하아······ 말을 말자.”
 “대신 이거 줄게.”
 사월영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단우경에게 건넸다. 황룡이 새겨진 손수건이었다. 한눈에도 조악하기 짝이 없는 게 아마도 사월영이 직접 만든 듯했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데?”
 단우경이 선뜻 받지 않고 물었다.
 “너 주려고 만든 거니까.”
 “날 주려고 만들었다고?”
 “응. 얼른 받아. 팔 아프니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얼굴을 살짝 붉힌 사월영이 한발 앞으로 다가서며 손수건을 단우경의 손에 쥐여 주었다. 단우경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절대로 안 잃어버릴게.”
 “약속했다.”
 “그래.”
 단우경의 대답에 사월영은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왜 저래?’
 단우경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아직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월영이 건네준 손수건에 담긴 의미 또한 전혀 알지 못했다.
 
 
 
 # 3. 시련을 겪다
 
 
 
 사월영이 화산파로 떠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사이 원단元旦이 지나 단우경은 열한 살이 되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우경은 여전히 수련에 매진했고, 착실히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정월의 막바지에 이르러 양천종은 단철륭을 찾았다. 단우경을 무이산으로 데려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단우경을 직접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는 단철륭의 협조를 얻어 그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백번 나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자, 드시지요.”
 단철륭이 시비가 우려 온 차를 권하였다.
 “감사합니다.”
 양천종은 훈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한 모금을 마시고 도로 내려놓았다.
 “이 시간에 저를 찾아온 것을 보면 긴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우경이에 관해 말씀드릴 것이 있어 찾아온 것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우경이를 조만간 무이산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경이를 제자로 받기 전 대인과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그 아이의 조건을 수락했던지라 말을 꺼내기가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대인의 곁을 떠나 무이산으로 갈지도 미지수고 말입니다.”
 단철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렇군요. 한데 꼭 무이산으로 데려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무이산에 본 문의 모든 안배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곳으로 가야지요. 우경이는 제가 설득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대인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한시름 놓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왕 양 사부께 맡겼으니 응당 그리해야지요.”
 “한데 우경이가 대인과 쉽게 떨어지려 할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니 말입니다.”
 “부모를 일찍 여읜 탓이겠지요. 하지만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니 양 사부를 따라 무이산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정히 안 되면 노부가 무이산으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경이를 보낼 것이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차라리 대인께서도 함께 무이산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곳에 비하면 불편하겠지만 세속의 풍파를 겪지 않고 조용히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하하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세속에 너무나 찌들어 그런 고즈넉한 곳에서는 아마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일구신 이곳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이런. 제 생각이 짧았군요. 죄송합니다.”
 양천종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에게 천검문이 중하듯 단철륭에게는 단가장이 중할 것이다. 비록 천검문의 후계가 되었다고 하나 단우경은 엄연히 단가장의 소장주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단가장의 장주가 될 것이다.
 단가장은 그저 단순한 장원이 아니라 단가 그 자체였다. 그런 곳을 버리고 무이산으로 함께 가자고 하였으니 실례 중의 실례라 할 수 있었다.
 양천종은 그 사실을 깨닫고 사과한 것이다.
 “아닙니다. 양 사부께서 어떤 마음으로 하신 말씀인지 모르지 않으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단철륭이 손을 내저었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니까 그러십니다. 그보다 우경이는 무이산에서 얼마나 지내야 하는 것입니까?”
 “우경이의 자질이 뛰어나다지만 아무리 못해도 십수 년은 지내야 할 것입니다.”
 “음······ 짧지 않은 시간이로군요.”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고 나면 장담컨대 우경이는 상대가 그 누구라도 쉽게 지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 알 수 없었으나 양천종의 신념 어린 눈빛을 보고 있자면 그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그때까지 눈을 감지 말아야 할 텐데 과연 그리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철륭이 내심의 염려를 토로했다.
 그의 나이가 이미 육십이 넘었음을 감안하면 해 봄 직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양천종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그런 말씀을 하실 나이는 아닌 듯합니다만.”
 “이런. 제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은 격이로군요.”
 양천종의 농담 섞인 핀잔에 단철륭이 객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단철륭에 비해 양천종이 정확히 스물아홉 살이나 더 많은 까닭이다.
 육십이 갓 넘은 단철륭이 구십을 넘긴 양천종 앞에서 오래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은 확실히 이치에 맞지 않았다.
 “훗. 노부가 보기에는 십수 년이 아니라 수십 년도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피식 웃은 양천종이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양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니 과연 안심이 됩니다. 하하하.”
 단철륭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저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제가 배웅하지요.”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앉아 계시지요. 그리고 차 잘 마셨습니다.”
 양천종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단철륭을 만류하는 한편 형식적인 인사를 던지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양천종이 방을 나가자 단철륭은 곧바로 고량을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단우경을 데려오게 하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양천종에게 부탁받은 것을 지금 바로 시행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단우경이 방으로 들어섰다.
 “찾으셨어요?”
 “오냐. 그리 앉아라.”
 단우경은 단철륭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무슨 일일까 궁금함이 한가득이었다.
 “이 할애비가 듣자 하니, 양 사부가 너를 제자로 거둘 때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구나.”
 “네. 소손은 할아버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주지······.”
 “갈!”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철륭이 돌연 호통을 치며 단우경의 말을 잘랐다.
 “하, 할아버지?”
 갑작스러운 일갈에 단우경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 어떤 제자가 스승을 맞이할 때 조건을 단다고 하더냐? 말해 보아라.”
 “그것이······.”
 단우경은 단철륭이 화를 내는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으나 조부의 무서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딱히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가 왜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벌였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내심으로는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도 있느니라. 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스승을 맞이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조건을 내건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느니라. 너는 이 할애비의 말을 어찌 생각하느냐?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소손이 잘못하였습니다.”
 단우경이 바로 잘못을 시인하였다.
 “진정이냐?”
 “네. 앞으로는 사부님을 모시는 데 있어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하겠습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세요.”
 “좋다. 그렇다면 날이 풀리거든 양 사부님을 따라 무이산으로 들어가거라.”
 “네? 그리하면 할아버님은······.”
 “이런 어리석은 놈을 보았나. 네가 사문의 업을 이어받는 것을 소홀히 한 채 이곳에 있는다고 해서 이 할애비가 좋아할 것 같으냐? 정녕 그리 생각하는 것이냐?”
 “······.”
 단우경은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이성적으로는 조부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깨달았으나 감성적으로는 여전히 조부의 곁을 떠나는 것이 망설여지는 때문이다.
 그의 내심을 짐작한 단철륭이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말을 하였다.
 “무이산으로 가거라. 그곳에서 크게 성장하여 이 할애비에게 돌아오너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고, 이 할애비가 가장 바라는 일이니라.”
 “소손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말에 단우경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순순히 수긍했다.
 “이제라도 알았으면 되었다.”
 단철륭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소손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내 노파심에서 이르는데 너와의 약조를 어겼다 하여 양 사부님을 원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 사부님은 사문을 위해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와신상담한 어찌 보면 불쌍하신 분이다. 무엇보다 그분의 말을 듣자니 천검문의 정화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부득이 무이산으로 가야 하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 너와의 약조를 어긴 것을 탓하지 마라. 그분으로서도 고육지책으로 이 조부에게 부탁했을 테니 말이다.”
 “어찌 제자가 되어 사부님을 원망할 수 있겠어요. 걱정 마세요.”
 “그래야지. 그럼 그만 가 보아라.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네, 할아버지.”
 단우경은 공손히 예를 올리고는 조부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사부 양천종의 처소로 향했다. 회랑을 지나고 월동문을 통과하여 처소에 도착하니 사부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헉!”
 그런데 단우경은 돌연 걸음을 멈추며 경악했다.
 양천종은 처소 앞마당의 석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의 손을 따라 검 하나가 자유자재로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름 아닌 이기어검의 신기였다. 단우경으로서는 정말이지 눈이 뒤집히고도 남을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왔느냐?”
 단우경의 경악성에 검을 회수한 양천종이 석대에서 내려오며 제자를 반겼다.
 “사부님! 어찌하여 검이 허공을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인가요?”
 “이는 이기어검이라는 수법으로, 기로써 검을 조종하는 고도의 기술이니라. 네가 사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는다면 이보다 더한 신기神技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해찰하지 말고 무공에 정진해야 할 것이야.”
 “사부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북망산에 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왜 찾은 것이냐?”
 “할아버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입니다.”
 “이 사부가 너와의 약조를 어기고자 함을 들었겠구나.”
 양천종이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제가 무지하여 감히 사부님께 불경을 저질렀습니다. 미욱한 제자를 부디 용서해 주세요.”
 단우경이 돌연 죄를 빌었다.
 양천종이 당혹감을 느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사부님과 같은 기인을 사부로 모심은 다시없을 광영이온데 미거한 제자가 그것도 모르고 건방지게 조건을 달았으니 죄를 비는 것입니다.”
 “난 또 무어라고. 그것이 어찌 네 잘못이겠느냐? 제자와의 약조를 지키지 않은 이 사부의 위선이 잘못된 것이지.”
 양천종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단우경이 재빨리 고개를 젓고는 아뢨다.
 “아니에요. 사부님께서 오직 사문을 위하는 일념으로 그리하신 것을 제자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제자, 사부님을 전혀 원망치 않으니 그런 말씀 마세요.”
 그는 단철륭의 꾸지람을 듣고 확실히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사려 깊은 단우경의 이와 같은 대답은 양천종의 심금을 울렸다.
 그것은 대소大笑로 이어졌다.
 “하하하! 내 전생에 무슨 복이 있어 너와 같은 기특한 제자를 얻었을꼬. 고맙구나. 이 사부의 고심을 이해해 주니 말이다.”
 “제자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아니다, 아니야. 어디 가서 너 같은 제자를 얻을 수 있을까. 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하면 되느니라.”
 양천종이 단우경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두 사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그렇게 한층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단가장의 훈훈한 분위기와 달리 대명의 국도國都인 응천부應天部의 황궁에서는 살벌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금의위錦衣衛 지휘指揮 장환이 돌연 남옥藍玉이 반역을 꾀하려 한다는 보고를 황제 주원장에게 올린 까닭이었다.
 남옥은 개국공신인 개평왕開平王 상우춘常遇春의 처남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날쌨으며 무예 또한 출중하여 명조 초기에 북원을 정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명장이다.
 그는 무수한 전공을 세워 양국공凉國公에 태자태부太子太傅의 지위까지 올랐지만 안하무인, 방약무인傍若無人하여 함부로 아무 말이나 내뱉고,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법령을 따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처리하곤 하였다. 때로는 황제인 주원장의 처사에도 불만을 터트리며 면전에서 따지기까지 하여 결과적으로 주원장을 노엽게 만들었다.
 본래 의심이 많은 주원장은 공을 믿고 날뛰는 남옥을 경계하고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는 황태자 주표朱標의 죽음과 맞물려 있기도 했는데, 당시 남옥은 다년간 군대를 거느려 전쟁을 수행한 덕분에 그 휘하에 강대한 군대와 다수의 용장勇壯을 두었다.
 주원장은 이러한 군사대권의 집중이 그 자신뿐 아니라 앞으로 황위를 이을 황태손 주윤문朱允?에게도 화가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장환의 보고를 들은 주원장이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주원장은 그 즉시 명을 내려 남옥을 체포하였고, 남옥은 금의위의 형옥에 갇힌 채 심문을 받기에 이르렀다.
 본래 금의위 형옥은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곳으로 유명하여 남옥은 형옥을 관리하는 진무사鎭撫使의 참혹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경천후 조진曹震, 학경후 장익張翼 및 이부상서 첨징詹徽, 호부시랑 부우문傅友文 등을 반역의 동조자로 거론하였다. 또한 구체적으로 춘경春耕에 진행되는 제사 활동인 적전의식籍田儀式에 맞춰 정변을 도모하려 했음을 진술하였다.
 이 같은 진술이 진실인지, 금의위의 형옥에서 조작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공식적으로는 남옥의 진술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반역이 적발되었으니 피바람이 부는 것은 자명한 일, 주원장은 주모자인 남옥을 능지처참에 처하고 삼족을 멸하였다.
 그리고 반역에 연루된 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남옥과 내왕하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여 참하라는 명을 내렸다.
 주원장의 명에 따라 응천부는 물론 각 성의 병력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남성도 예외가 아니어서 하남성을 총괄하는 제형안찰사사提刑按察使司는 도지휘사사都指揮使司와의 공조하에 남옥의 반역에 연루된 인사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제형안찰사사 소속의 첨사僉事 관호덕關浩德은 낙양에 적을 둔 반역 인사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오백의 병력을 이끌고 낙양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말 등에 앉은 채 낙양대로로 진입하는 관호덕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이 잡아들여야 할 인사와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의 죽은 아들과 고우古友였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었지만.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단가장이었다.
 전장에서 전사한 단호중은 본래 남옥의 휘하에 있었고, 단철륭 역시 한때 남옥과 같은 부대에 소속되었기에 금번의 화를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서둘러라!”
 낙양사문 중 청룡장 출신으로 단호중과 우정을 나눴던 관호덕은 뒤를 따르는 병사들을 향해 외치고는 말고삐를 잡아챘다. 히잉! 소리와 함께 관호덕을 태운 말이 속도를 올렸다.
 마음은 아프나 명을 받은 이상 잡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닌 반역과 관련된 행사였다. 자칫 어설픈 인정을 베풀었다가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청룡장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기에 냉정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래 단가장의 위치를 알고 있던 관호덕은 어렵지 않게 단가장에 당도했고, 대동한 병사들 중 사백 명에게 장원을 엄중히 포위하라 명을 내렸다.
 그 후 곁에 남은 백호百戶 정후겸鄭厚謙에게 눈짓을 보냈다. 휘하에 백 명의 병사를 거느린 정육품의 지휘관답게 강인한 인상을 지닌 정후겸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명을 내렸다.
 “진입하라!”
 그와 동시에 병사 둘이 움직여 단가장의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
 콰앙!
 얼마나 세게 찼는지 안쪽의 빗장이 부러져 나가며 대문이 활짝 열렸다.
 “반역과 관련된 죄인들이다. 불문곡직하고 모조리 잡아들여라. 알겠느냐!”
 “존명!”
 백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복명하고는 단가장의 장원 안으로 우르르 달려 들어갔다.
 
 단철륭은 고량으로부터 변고를 듣고는 부랴부랴 처소를 나섰고, 곧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너는 호덕이 아니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호덕이 단 숙檀叔께 인사 올립니다.”
 관호덕이 정중히 예를 취했으나 단철륭의 눈에 그것이 들어올 리 없었다.
 “인사는 되었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불쾌한 얼굴로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송구하오나 단 숙께서는 금번 황성에서 벌어진 반역 사건과 연루되었기에 부득불 이렇게 무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반역? 지금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 게냐?”
 “양국공이자 태자태부였던 남옥이 황제 폐하를 시해하려다 발각되었음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게 정녕 사실이냐?”
 금시초문인 사실에 단철륭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단 숙께서는 그 사건과 관련한 죄인의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허니 순순히 오라를 받으시지요.”
 “이 단철륭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사람이다. 한데 무슨 이유로 오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냐?”
 “뭣들 하느냐! 당장 잡아들이지 않고!”
 단철륭의 노기 어린 물음에 미간을 찡그린 정후겸이 병사들을 향해 일갈했다.
 “정 백호!”
 관호덕이 정후겸을 노려봤다. 단철륭을 잡아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래도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을 정후겸이 방해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관 첨사님, 어찌 이리 시간을 끄시는 것입니까? 안찰사 按察司께서 불문곡직하고 모조리 잡아들이라 한 것을 잊으신 것입니까?”
 “허나······.”
 “공무를 행함에 있어 어찌 사감私感을 끼워 넣는 것입니까? 송구하나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정후겸이 단호히 말하고는 병사들에게 눈짓하였다.
 병사들이 창검을 곧추세우고 단철륭을 향해 다가갔다.
 “모두 멈춰라!”
 그때 돌연 사자후를 방불케 하는 외침과 함께 검은색 죽립을 눌러쓴 양천종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그의 옆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단우경이 서 있었다.
 “방해하는 자는 참하라.”
 정후겸이 그들을 일별하고는 싸늘히 외쳤다.
 “사부님!”
 단우경은 깜짝 놀라 양천종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양천종이 그런 단우경을 내려다보며 다짐을 받았다.
 “네.”
 단우경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양천종의 신형이 단우경의 옆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그를 주시하고 있던 정후겸과 관호덕의 눈이 부릅뜨였다.
 순간.
 스아악!
 단철륭의 머리 위에서 원형의 검기가 쏟아져 내렸다.
 “조심!”
 관호덕이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단철륭을 향해 창을 뻗치고 있던 병사들의 머리가 일제히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 뒤를 이어 머리가 잘린 목으로부터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올랐다.
 본시 무림인은 관과 척짓는 것을 무척이나 꺼린다. 이는 양천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양천종의 손 속은 과감하기 짝이 없었다.
 “갑시다.”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병사의 목을 잘라 낸 양천종이 단철륭의 옆으로 내려서며 말했다.
 그리고 단철륭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그의 허리를 휘감으며 몸을 날렸다.
 단철륭이 무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천종은 단 두 번의 도약을 통해 단우경이 있는 곳으로 내려섰다.
 “놓치면 안 된다. 쫓아라!”
 예기치 못한 변고에 놀라 있던 정후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할아버지!”
 단우경이 단철륭에게 안겨 들었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단철륭은 단우경을 토닥여 주며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탄은 나중에 하시고 속히 움직입시다.”
 양천종이 단철륭을 재촉했다.
 “아마 장원을 이미 포위했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벗어나야지 않겠습니까? 일단 북측으로 갑시다.”
 말과 함께 양천종이 검을 날렸다.
 이기어검으로 날아간 검이 가까이 달려든 병사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 내고는 다시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어서 갑시다.”
 양천종이 재촉하는 한편 단우경을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렸다. 단철륭도 거의 동시에 신법을 펼쳤다.
 슈슈슉!
 그때 좌우에서 파공성이 일었다.
 장원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던 병사들이 변고를 확인하고 곧장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양천종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좌우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기에 단철륭의 신법은 너무도 한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치겠군.’
 양천종은 내심으로 한바탕 짜증을 내고는 돌연 단철륭에게 단우경을 내던졌다.
 “받으십시오!”
 화살을 피하려던 단철륭은 그의 돌연한 행동에 당황했으나 재빨리 손을 움직여 단우경을 놓치지 않고 받아 들었다.
 따다다다당!
 그와 동시에 좌우에서 밀려들던 화살들이 벽에라도 부딪친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모조리 튕겨 나갔다.
 그 짧은 순간 양천종은 놀랍게도 양쪽으로 검막劍膜을 둘러친 것이다.
 슈슈슉!
 하지만 또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양천종은 검을 거두고는 단철륭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러고는 지면을 박찼다.
 마치 물 찬 제비처럼 세 사람의 신형이 허공으로 일제히 솟구쳐 올랐다.
 허공을 가른 화살들이 우두두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그들이 딛고 있던 땅바닥으로 박혀 들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화살 꼬치가 되었을 판이었으나 다행히 세 사람은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다시 한 무더기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양천종은 지체 없이 건물의 지붕을 내달렸고, 처마 끝에 이르러서 용천혈로 공력을 분출하였다.
 콰앙!
 건물의 지붕이 그의 공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 나갔다. 그에 따른 도약력은 고스란히 양천종에게 옮겨졌고, 단철륭과 단우경 두 조손을 안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신형은 쾌속하게 앞쪽으로 뻗어 나갔다.
 화경에 달한 심후한 공력을 바탕으로 펼치는 전궁만리행電弓萬里行이라는 신법의 가공할 위력이었다.
 가히 독보적인 무공으로 화살의 포화를 벗어난 양천종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장원의 북측으로 향했다.
 죽립을 눌러쓰고 있어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전궁만리행은 본래 공력의 소모가 심한 신법인 데다 단철륭과 단우경 두 사람을 안고 가야 했기에 곱절로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장애물이 나타났다.
 장원의 북쪽을 포위하고 있던 백호 탁사정卓謝貞의 백호대百戶隊였다.
 그들은 활에 이미 화살을 걸고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장원으로 들이닥쳤던 백호 정후겸이 죄인이 도주했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쏴라!”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양천종과 단씨 조손이 눈에 들어오기 무섭게 탁사정이 외쳤다.
 슈슈슉!
 직사로 쏘아진 화살이 대기를 갈가리 찢으며 양천종 등을 향해 쇄도했다.
 양천종은 황급히 천근추를 시전했다.
 아래에서 누가 잡아끌기라도 하듯 그의 신형이 푹 가라앉으며 궁병들의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잠시 숨을 돌린 양천종은 다시 전궁만리행을 전개하였다.
 지면이 터져 나감과 동시에 단씨 조손을 안은 양천종의 신형이 사선으로 빠르게 솟구쳐 올랐다. 그에 맞춰 화살의 포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허공으로 치솟는 양천종의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궁병들의 화살은 모조리 빗나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양천종은 발밑으로 스쳐 가는 화살 하나를 재빨리 밟으며 탄력을 이어 갔다.
 사선으로 올라가던 그의 신형이 허공에서 급격히 궤적을 틀며 궁병들을 향해 직선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궁병들과의 거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화살을 맞을 확률은 높아졌다.
 다시 화살을 건 궁병들이 재빨리 시위를 당겨 쇄도하는 양천종을 겨냥하고는 손을 놓았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는 순간.
 “먼저 가십시오!”
 양천종이 단철륭의 입장에서 듣기에 당혹스러운 말과 함께 다짜고짜 단우경을 안고 있는 그를 앞쪽으로 내던졌다.
 그 힘은 실로 대단해 허공으로 쭉 솟구쳐 오른 단철륭과 단우경은 금세 궁병들의 머리 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편 단철륭을 내던지는 힘을 받아 아래쪽으로 곤두박질 친 양천종은 화살의 포화를 다시 한 번 벗어났다. 그에 그치지 않고 홀가분해진 상태로 바닥을 박차며 전궁만리행을 전개하였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궁병들의 머리 위를 통과한 양천종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내리꽂히는 단철륭의 지척으로 다가섰고, 재빨리 손을 뻗었다.
 단철륭의 목덜미가 그의 손에 잡힘과 동시에 세 사람의 신형이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설명으로는 길었으나 이는 불과 몇 호흡 만에 이루어진 일로, 양천종의 신법이 얼마나 빠른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사히 벗어났다 싶은 순간.
 슈아악!
 돌연 불길한 파공성이 일었다.
 퍼억!
 그러고는 양천종이 어찌할 사이도 없이 화살이 단철륭의 왼쪽 등을 파고들었다.
 “크헉!”
 단철륭의 입에서 격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
 단철륭의 품에 안긴 단우경이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해 냈다.
 ‘젠장.’
 파앗!
 양천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불의의 일격을 당한 사실에 이를 갈며 바닥을 박찼다.
 또다시 뒤를 쫓아 날아드는 화살을 피해 세 사람의 신형이 쾌속하게 멀어져 갔다.
 
  *    *    *
 
 꽤 넓은 동굴 안.
 타닥타닥.
 모닥불이 요란스럽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옆으로 죽은 듯 누워 있는 단철륭과 그의 머리맡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단우경이 보였다.
 양천종은 보이지 않았는데, 단우경이 수시로 동굴의 입구 쪽을 보는 것으로 미루어 잠시 어딜 간 모양이었다.
 한편 왼쪽 가슴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는 단철륭은 파리한 안색으로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할아버지, 조금만······ 조금만 참으세요. 사부님이 곧 의원을 데려올 거예요.”
 단철륭의 손을 꼭 잡은 단우경이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으으으.”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단가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식을 잃었던 단철륭의 입에서 미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할아버지! 정신이 드세요?”
 반가운 외침과 함께 단우경이 얼른 그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음성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신음이었는지 단철륭의 눈은 여전히 꼭 감겨 있었고, 안색 역시 너무도 파리했다.
 “이 안이오.”
 그때 동굴 밖에서 양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우경은 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돌려 동굴의 입구를 주시했다.
 과연 의원 복장을 한 이가 왕진용 가방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쪽이요, 이쪽.”
 단우경이 다급히 의원을 부르며 단철륭을 가리켰다.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단철륭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상의를 옆으로 젖혔다.
 양천종이 응급처치로 혈도를 점해 출혈을 막은 후 금창약을 뿌려 놓은 흔적이 보였으나 화살은 여전히 가슴에 꽂혀 있는 그대로였다. 화살을 잘못 빼냈다가는 출혈이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놓아둔 것이다.
 “음······.”
 상처를 살핀 의원이 침음성을 흘리고는 단철륭의 맥을 잡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진맥을 하던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철륭의 손을 내려놓았다.
 “어떻소, 살릴 수 있겠소?”
 의원의 표정에서 불길함을 느낀 양천종이 얼른 물었다.
 “후우, 화살에 심장이 크게 상했습니다.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이분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원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의원님. 할아버지는 이대로 돌아가실 분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얼른 치료를 해 주세요. 네? 제발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단우경이 의원을 붙잡고 애원했다.
 “후우······ 소공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원이라지만 실상 생사는 하늘의 소관이라네. 하늘이 공자의 조부님을 귀천시키기로 결심한 이상 안타깝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네, 그러니 내게 이러지 말게나.”
 의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우경아, 그만 놓아주어라.”
 양천종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의원을 붙잡은 단우경을 말렸다.
 그 말을 듣고 의원을 붙잡은 손을 푼 단우경은 이번에는 양천종을 붙들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사부님, 사부님은 신인과 같은 능력을 지니셨으니, 그러니 제발 할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네? 제발요, 사부님.”
 “우경아.”
 “사부님, 제발요. 할아버지만 살려 주신다면 시키시는 것은 뭐든 다 할 테니, 그러니 할아버지 좀 살려 주세요.”
 단우경이 계속해서 매달렸다. 억지라는 것을 단우경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에 그는 멈추지 못했다.
 “후우, 의원은 침술로 심부의 출혈을 억제해 주시겠소?”
 양천종이 한숨을 내쉬고는 의원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한들 소용없습니다.”
 “이미 알고 있으니 일단 내 말에 따라 주시오.”
 양천종의 말에 난색을 표하던 의원은 할 수 없이 침통을 꺼내 단철륭의 상처 부위에 시침을 하기 시작했다.
 “다 끝났습니다.”
 잠시 후 의원이 시침을 끝내자 양천종은 여전히 의식이 없는 단철륭을 일으켜 앉혔다.
 “무슨······.”
 의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으나 양천종은 아랑곳하지 않고 단철륭의 요혈 몇 군데를 두들겼다.
 “커헉!”
 의식이 없던 단철륭이 격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 내며 정신을 차렸다.
 “할아버지!”
 단우경이 얼른 단철륭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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