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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의 시대 1화

2018.12.27 조회 1,849 추천 15


 [패자의 시대 1화]
 
 
 
 
 
 
 대관식장의 참사
 
 
 교황은 토르의 머리 위로 왕관을 씌워주고 있었다.
 크지 않은 황금 왕관의 중앙엔 지름 5㎝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좌우로 루비가 크기 순서대로 뒤까지 연이여 박혀있었다.
 토르는 대관식이 열리는 승리자의 홀을 가득 메운 6천여 명의 사람들, 그리고 대관식의 중계를 보는 족히 수천만은 될 패자의 시대 유저들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서비스 10년 만에 처음으로 유저가 거대 왕국의 왕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날은 이해득실을 떠나 패자의 시대를 즐기는 모든 유저들에게 축제날이었다.
 토르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왕실악단의 연주 소리도, 승리자의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10년 전 별생각 없이 클로즈베타 테스터로 당첨되어 접했던 패자의 시대.
 ‘이건 현실이야.’
 토르는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사실감을 구현한 이 게임을 감탄하면서 클로즈베타 테스트에 매진했고, 오픈베타 일주일 전에 주위 사람들의 만류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람이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오센일렉트로닉스를 관두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전 세계 수억 명이 즐긴다는 패자의 시대 최초의 유저 출신 국왕이 되기에 이르렀다.
 오늘 갈라시아 왕국의 국왕이 되지만.
 토르에게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같았다.
 1막이 국왕이 되기까지의 여정이었다면, 이 이후로는 2막의 시작이었다.
 대관식 며칠 전부터 좌불안석이었지만, 막상 대관식이 진행되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감회에 젖었다.
 이젠 떨리지도, 새롭지도 않았다.
 너무나 큰 기쁨 때문일까 오히려 현 상황을 초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관은 드디어 토르의 머리 위에 씌워졌다.
 엄청난 함성이 승리자의 홀에 울려 퍼졌다.
 멀리서 축포 터지는 소리도 들렸고, 악사들의 흥겨운 연주도 흘렀고, 하늘에서 온갖 색종이와 꽃잎이 떨어졌다.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패자의 시대 최초의 유저 출신 국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가 이제부터 갈라시아 왕국에서 시작된다.
 이날을 위해 한 달 전부터 갈라시아 왕국은 이벤트를 준비했고, 대관식과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서 전 세계 각지에서 구름 떼같이 사람이 몰려들어 왔다.
 왕궁 밖의 광장에는 20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왕관을 쓴 토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토르 앞으로 무언가 위에서 떨어졌다.
 작은 골프공 크기의 공.
 작은 공이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공이 터지면서 초록색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응?’
 토르는 대관식 이벤트의 하나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첫 숨을 들이마시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반경 30m 안은 천사초의 독에 중독됩니다.]
 [반경 30m 안의 모든 시계는 5분간 제로가 되어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됩니다.]
 [천사초에 중독되면 10초마다 1,00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천사초의 독은 특정 해독제를 쓰지 않는 한 3일간 유지됩니다.]
 
 ‘이게 뭐야?’
 토르의 안색은 금세 굳었다.
 패자의 시대에서의 독은 일반적으로 대미지가 크면 지속시간이 짧고, 지속시간이 길면 대미지는 작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천사초의 독은 지속적인 대미지를 주는 독인데도 그 지속시간이 너무 길었다.
 말이 되든 안 되든 빠르게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토르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오늘, 지금 왜? 나에게 왜?’
 토르가 아직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던 때.
 토르의 상태창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심한 통증이 뒷목에서 전해졌다.
 
 [토르 님은 치명적인 일격으로 생명력의 50%를 잃었습니다.]
 
 ‘크헉, 뒷목에 치명타 한 방 맞았다고 생명력의 50%가 빠지다니 이런 개사기가 어딨어?’
 토르는 패자의 시대 최고의 장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버그나 핵에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독에 중독되고 시야가 차단되고 치명타까지 맞고 나니 패자의 시대 최고의 전사이며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토르도 심히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독연무 속에서 토르가 입은 중갑 관절 부위의 틈만 골라 들어오는 공격을 몇 대 더 맞자 몸이 스스로 반응하며 전투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토르는 일단 뒤로 크게 물러나며 애검인 ‘아벨의 검’을 뽑음과 동시에 전방을 베었다.
 독연무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공격들이 앞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앞쪽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오른발을 들었다가 바닥을 크게 찧으며 ‘대지의 분노’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시전자를 중심으로 반경 30m에 파도가 일듯 바닥이 춤을 추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적이 몇 명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토르는 상대가 공황에 빠졌을 거라 가정하고 바로 자신에게 버프를 걸었다.
 ‘전사의 함성’ 스킬을 사용하자 힘과 방어력이 20% 상승했고 곧이어 ‘스워드 샤프니스’를 시전했다.
 검의 내구도가 5% 하락하지만 날카로움이 두 배로 늘어나 쇠나 바위도 잘라 버릴 수 있게 검이 강화되었다.
 토르는 강화된 아벨의 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우고 ‘뇌제의 축복’도 시전했다.
 그러자 아벨의 검으로 사방에서 빛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모여든 빛은 전류로 바뀌어 검을 타고 흘러내려 토르를 뒤덮었다.
 
 [‘뇌제의 축복’을 시전했습니다.]
 [5분 동안 뇌제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전류로 인해 마법 방어력이 100% 증가합니다.]
 [5분 동안 몸을 감싼 전류는 모든 종류의 근거리 물리 공격에 대항해 공격자에게 전기적 대미지를 줍니다. (원거리 공격 제외)]
 
 ‘뇌제의 축복’까지 사용한 토르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자신을 도와줄 지원군은 없지만, 이 정도의 세팅만으로도 누구와 싸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그는 허리띠에서 최고급 포션을 꺼내어 떨어진 생명력을 보충하려고 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암기가 날아와 포션 병을 깨버렸다.
 토르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발바닥이 뜨끔했다. 또다시 대미지를 입어 생명력이 떨어졌고 새로운 독에 중독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독이 발린 삼각뿔 형태의 철침이 바닥에 좍 깔려 있었다.
 토르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슈슈슉.
 그때 독연무 속에서 작은 소리가 무수히 들리기 시작하자, 멀리서 암기를 던진 거라고 생각하곤 아벨의 검을 회전시켜 날아오는 암기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암기가 날아왔다.
 앞도 안 보이고, 움직이지도 못했기에 모두 막지 못했다.
 그나마 하나하나의 대미지가 그리 세지 않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대로 시간을 끌면 이곳은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었기에 저놈의 암살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규모 전투나 정면대결에 익숙했기에 암살자와의 싸움이 영 체질에 맞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 느슨해지려는 찰나.
 아까와 같은 파공성을 내며 날아오는 암기를 인식하고 다시 ‘아벨의 검’으로 막으려고 휘둘렀다.
 암기와 아벨의 검이 서로 부딪히는 순간 ‘쾅!’ 하는 폭발이 일어나며 그 충격으로 토르는 엉덩방아를 찧었고, 무언가 앞에서 거대한 기운이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독연무로 눈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기운만으로 토르는 얼어붙었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한 그는 아벨의 검을 그냥 쭉 내밀었다. 방어도 공격도 뭣도 아닌···.
 힘없고 자신 없는 그의 행동이 운명을 암시하듯 토르의 상태창에 메지지가 떠올랐다.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
 
 무려 일곱 번이나 연속으로 치명타를 맞았고.
 순식간에 토르의 시야는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의 눈앞에 접속종료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10분 안에 부활할 수 있으니 기다리라면서 초읽기가 들어가는 숫자가 보였다.
 토르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접속종료를 선택했다.
 주변에 있는 사제들의 부활을 기다릴 법도 하건만, 그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대관식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던 터라 토르는 접속종료하고 바로 게임 중계방송에 접속했다.
 누구보다 더 자신을 암살한 범인을 보고 싶었다.
 
 ***
 
 승리자의 홀에 있던 사람들은 토르의 머리에 왕관이 쓰이는 것을 보았다.
 중계방송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토르 앞에서 녹색 연기가 피어올라 토르와 주변 사람들을 삼켜 버렸다.
 모든 사람은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녹색 연기 속에서 비명이 들리기 전까지는···.
 승리자의 홀에 초대된 6천 명의 사람들은 소마 대륙의 각 왕국에서 보낸 사절단과 토르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 패자의 시대에서 나름 유명한 유저들, 게임 방송의 중계팀 그리고 토르가 길드장으로 있는 ‘대양의 바람’ 길드의 주요 길드원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 9할은 전투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만, 대관식에 참석한 거라 모두 무기의 착용을 금지당해 아무 무기가 없었고.
 대관식을 주관한 ‘대양의 바람’ 길드 출신의 유저들도 의장용 무기와 갑옷을 착용하고 있어 실제 전투엔 무리가 있었다.
 상식적으로 대관식에 암살자가 난입해 국왕을 죽이리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이들은 토르가 독연무에 삼켜졌을 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대양의 바람’ 길드 출신의 근위병 중 일부가 길드장이며 국왕인 토르를 도와주기 위해 독연무 속으로 들어갔다가 시야까지 차단되자 섣불리 나서지도 못하고 뒷걸음치며 독연무 속에서 빠져나왔다. 중독만 된 채로···.
 독연무 속에서 몇 차례 칼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토르의 외침과 스킬 시전 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일단 천사초의 독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암살자가 먼저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토르가 누군가?
 유저 출신 최초의 국왕이 되는 유저였고.
 패자의 시대 최강인 ‘대양의 바람’ 길드장이며, 게임사에서 6개월마다 발표하는 유저 랭킹 2위에 올라있는 전쟁의 신이 아니던가?
 수없이 많은 공성전을 치르고 대규모 전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최강의 전사였다.
 토르를 암살하겠다고 시도한 것부터가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승리자의 홀에 있던 대양의 바람 길드의 고위 마법사가 바람을 일으켜 독연무를 걷어 냈을 때 모두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메시아는 독연무를 컨트롤하기 위해 애를 쓰느라 독연무 아래의 상황을 못 봤지만.
 승리자의 홀에 있는 6천 명과 실황중계로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은 모두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죽어 쓰러져 있는 토르와 교황, 대주교, 일반 사제, 시동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사람.
 아마도, 이들을 모두 죽였거나 죽게 하였을 암살자.
 몸에 달라붙는 옅은 광택 나는 검은 가죽옷에 검은 천의 짧은 망토.
 신발, 장갑, 허리띠, 두건 등 온통 검은색인데 어떤 건 진하고 어떤 건 덜 진한 왠지 매치 안 되는 차림새였다.
 얼굴은 가리려고 했는지 가면을 썼는데 은빛 찬란한 은색 가면이었다.
 워낙 은빛이 강하게 나는 가면인지라 얼굴만 보인다고 나 할까.
 모든 시선이 얼굴에만 집중됐다.
 암살자는 오른손에는 끝이 뾰족하고 손잡이 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칼날 길이 50cm 정도의 삼각형 형태의 단검을 들고 있었다.
 암살자와 사람들의 시선이 마주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암살자 본인도 메시아가 독연무 전체를 천장 쪽으로 들어 올릴지는 예상 못 한 듯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암살자가 사라지고 당황하던 잠깐의 찰나의 시간에 갑자기 메시아가 있던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메시아가 있던 곳은 궁중 수석마법사인 메시아와 그 외 다른 마법사들 그리고 대신들이 있던 곳으로, 근접 전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에 암살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사방으로 칼을 휘두르며 암기를 뿌려댔고.
 마법사들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토끼우리에 풀어 놓은 사자처럼 암살자는 마법사들을 쓰러뜨렸는데, 신기하게도 왕국 대신들과 ‘대양의 바람’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추풍낙엽으로 마법사들이 쓰러졌고. 아직껏 독연무를 컨트롤하던 메시아마저 일격에 절명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메시아가 다루던 독연무가 창문으로 빠져나가 독연무로 인한 추가 피해는 없었다.
 춤을 추는 듯한 몸놀림을 보이며 마법사들을 쓰러뜨리던 암살자는 갑자기 전투 계열의 유저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려가더니 2개의 작은 공을 던지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며 깨진 작은 공에서는 흰색의 연기와 빨간색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흰색 연기에 삼켜진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속시간 20분 동안 반경 50m 안의 모든 대상의 시야를 차단합니다. 연기를 벗어나면 원래 시야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마갈초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해독을 바로 하지 않는다면 5분 동안 모든 행동력이 20% 하락합니다.]
 
 빨간색의 연기에 삼켜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속시간 10분 동안 반경 30m 안의 모든 대상의 시야를 차단합니다.]
 [싸이펀의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해독을 바로 하지 않는다면 5분 동안 모든 공격력이 20% 감소하고, 1분마다 불규칙적으로 5초간 마비 증상을 일으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암살자 고유의 스킬인 연막탄이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
 대개 도주에 사용하는 게 연막탄이었는데 이놈의 암살자는 자기가 공격하기 위해 연막탄을 사용하고 있었다.
 시야가 차단되고, 능력치 하락, 상태이상을 당한 상태에서 암살자와 싸워야 하니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했고, 다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연막탄에 삼켜진 사람들은 일단 뒤로 빠져 연기 속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승리자의 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카메라도 연기에 삼켜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연기 속에서 무수한 비명과 욕하는 소리, 칼 소리, 앓는 소리 등은 계속 중계가 됐기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더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승리자의 홀에 설치된 많은 카메라 중 한 곳에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잡혔다.
 그는 좀 전에 마법사 메시아가 녹색 독연무를 몰아냈던 창문틀에 서 있었다.
 암살자는 허리춤에서 큰 병을 하나 꺼내더니 빨간 연기가 퍼져 있는 곳에 던졌다.
 그러고는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듯했다.
 하지만 빨간 연기 속에선 계속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끔찍한 비명이 승리자의 홀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비명은 오래가지 않아 멈췄고, 싸우던 병장기 소리도 멈췄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20분이 흘렀다.
 대관식 중계를 보고 있던 전 세계 수억 명이 흰 연기 빨간 연기만 가득한 모니터를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보고 있을 때 드디어 연기가 옅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모니터 화면에는 바닥에 누워있는 무수한 시체가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자세히 보니 시체와 바닥엔 검은색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바퀴벌레처럼 생긴 까만 벌레들 수백 마리는 이윽고 날개를 펴고 모두 날아올랐다. 그러곤 암살자가 사라진 그 창문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다.
 사람이 웅성거렸고, 중계자의 흥분된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날은 패자의 시대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날로 모두에게 각인되었다.
 아마도 이날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들은 토르와 게임 서비스사인 ‘퓨쳐홀릭’이지 않을까.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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