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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학사 001화

2018.12.20 조회 4,196 추천 24


 1권
 
 서장.
 
 
 
 <협조 공문
 내용
 학문에 조예가 있고, 도교 경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을 본산에 추천을 해 주기 바랍니다.
 추천을 해 준 자가 본산에 고용이 될 경우 그에 대해 장문인께서 친히 치하를 하실 것입니다.>
 
 짧게 적히고 무성의한 공문··· 하지만 이 공문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성의한 공문이 아니었다.
 공문이 날아온 곳이 바로 무당산, 무당파였으니 말이다.
 
 
 
 1장. 죽대선생의 반찬 투정
 
 
 
 호북 방헌현.
 방헌현은 대나무가 유명한 마을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죽기가 유명했고,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죽엽청, 대나무를 이용한··· 어쨌든 대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파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곳이 바로 방헌현이었다.
 그리고 방헌현에 한 가지 명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름 하여 방헌학관,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죽대선생 박현이 낙향을 하고 제자 한 명을 데리고 중원을 떠돌다 방헌현의 대나무들을 보고 정착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박현 자신을 보고 대나무를 뜻하는 죽대, 높여서 죽대선생이라고 칭하니 대나무가 우거진 방헌현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박현을 죽대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진정한 군자이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지조와 절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가 늘 차고 다니는 죽대, 즉 대나무 허리띠가 영향이 컸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매를 아끼는 것은 그들을 잘못 키우는 것이라는 엄사지도嚴師至道를 가진 박현은 언제 어느 때라도 제자들을 훈계할 수 있는 도구, 즉 죽대를 차고 다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박현을 죽대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현은 죽대선생이라는 칭호를 싫어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죽대라는 의미가 대나무를 뜻하기에 군자가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호인 것이다. 그래서 박현은 아예 자신의 호를 죽대로 바꿨다.
 그런 그이니 방헌현의 대나무 숲이 마음에 들 수밖에······.
 
 방헌현 외곽에 위치한 대나무 숲에 죽대선생이 연 방헌학관이 위치해 있었다.
 방헌학관의 문지기 오진은 입구를 쓸고 있었다.
 스스슥! 스스슥!
 작은 소리와 함께 입구 근처에 흩어져 있던 대나무 잎들이 한 군데로 모여졌다.
 대나무 잎들을 모아서 대나무 숲에 가져다 버린 오진이 문 옆에 빗자루를 내려놓고는 허리를 폈다.
 휘이익!
 한 줄기 바람이 부는 것과 함께 대나무 숲이 출렁거렸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오는 청아한 선향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은 오진이 중얼거렸다.
 “시발.”
 작게 욕설을 뱉은 오진이 방금 내려놓은 빗자루를 다시 집어 들었다.
 대나무 숲에서 흘러나오는 선향을 맡는 것은 오진도 기분이 좋은 일이다. 단지······.
 후두둑!
 바람이 불고 나면 대나무 잎들이 비처럼 쏟아지지만 앉는다면 말이다.
 하늘에서 누가 쏟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지는 대나무 잎들을 보며 오진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방헌학관 입구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나온다.
 원래는 방헌학관에 수학을 하러 오는 인재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에 간단한 운동을 시킬 생각으로 만들어진 마당이지만··· 지금은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죽대선생과 제자, 그리고 몇 몇의 고용인들뿐이었다.
 마당을 지나면 진정한 방헌학관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개의 방이 나온다.
 매난국죽을 이름으로 삼는 학사들이 수학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네 개 방은 사용하지 않은 기간이 십년이었다. 즉 죽대선생이 정착을 하고 난 후 한 번도 학사들이 이 방에 들어 온 적이 없었다.
 매난국죽을 지나면 죽대선생과 그 제자가 머무는 별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별채에서 죽대선생과 제자, 호현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
 
 백발과 백염이 무척 잘 어울리는 노학사와 열여덟 소년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백발의 노학사 죽대선생은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했다.
 젓가락을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얼굴이 굳어져 있는 죽대선생을 향해 제자이자 방헌학관의 총관을 맡고 있는 호현이 말을 걸었다.
 “스승님.”
 호현의 부름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느냐?”
 “심기가 불편해 보이십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잘 말했다는 듯 밥상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죽순, 죽순, 죽순, 죽순··· 왜 찬이 모두 다 죽순 요리냐! 죽을 날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는 아무거나 처먹으라는 것이냐!”
 죽대선생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요 근래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이 모두 죽순으로 된 요리들뿐이었던 것이다.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대단한 학식과 인격을 가진 죽대선생도 미각이라는 것을 가진 인간, 그리고 죽대선생은 미식가였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 반찬 투정을 하는 것 같아 그 동안 참고 지냈지만 죽순만 올라오는 밥상을 열흘 가까이 받자 죽대선생이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을 한 것이었다.
 “스승에게 죽순이나 먹이라고 내 너를 그리 가르쳤느냐!”
 반찬을 가지고 가르침까지 운운하는 죽대선생을 보며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네 이놈! 지금 스승이 말하는데 한숨을 내 쉬어! 이제는 네 학문의 경지가 나를 비웃을 경지에 오른 것이냐! 이제는 스승인 내가 우습게 여겨지느냐!”
 죽순 요리에 맺힌 것이 많았는지 죽대선생은 학문과 스승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화를 냈다.
 “스승님 제가 어찌.”
 “그럼 왜! 반찬이 죽순 요리 하나 뿐이냐!”
 죽대선생의 일갈에 호현이 한숨을 쉬다가 입을 열었다.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돈? 무슨 돈?”
 “휴! 스승님 학관에 돈이 이제 없습니다. 여기 있는 죽순도 저와 철이 아줌마가 같이 대나무 숲에 가서 캐온 것들입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낙향을 할 때 가지고 온 돈이 꽤 있을 터인데? 그게 벌써 떨어지다니 말이 되느냐?”
 “스승님 저희가 이곳에 정착을 한 지가 십년입니다. 십년 동안 들어오는 것은 없고 나가기만 하니······.”
 잠시 말을 멈췄던 호현이 이번 기회에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스승님께서 모으신 고서적들의 구입비에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어허! 어찌 학사라는 자가 서적 구입에 들어가는 돈에 아까워하는 기색을 보이느냐.”
 “그 서적 구입에 들어가는 돈만 아껴도 죽순 요리가 아닌 스승님이 좋아하시는 고기 요리를 장만 할 수 있습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눈을 찡그렸다.
 ‘이 놈이 머리가 컸다고 이제는 대들어? 현이를 키울 때 매를 아끼지 말았어야 했음이야.’
 호현이 들으면 ‘언제 매를 아끼셨습니까? 그 죽대로 맞다가 살이 터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라고 할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죽대선생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언제 쯤 돈이 들어오겠느냐?”
 죽대선생의 물음에 호현이 한숨을 쉬었다.
 “스승님··· 돈 들어올 곳은 없습니다.”
 학관이 돈을 벌려면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데··· 수학을 하고 싶다고 온 학사들을 시험해 본 죽대선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모두 쫓아 버린 것이다.
 그래서 방헌학관에는 현재 죽대선생이 낙향을 하면서 데리고 온 자신만이 있는 것이다.
 아니, 한 군데 방헌학관에 학생들 말고도 돈이 들어오는 구멍이 하나 있기는 했다.
 방헌현과 인근 현에 현관이 바뀌거나 호북성에 고위 관리가 임명이 되 내려오면 그들이 죽대선생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다.
 죽대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한림원에서 그에게 수학을 한 학사들이 중앙 각부 요직에 남아 있어 그들과의 인맥은 살아 있는 것이다.
 허니 죽대선생과 안면을 트려는 관리들이 가끔 방헌학관을 찾아왔고, 뇌물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작은 성의를 표시하고 갔다.
 허나 문제는 요즘은 인사이동 시기가 아니라 선물을 들고 올 관리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죽대선생에게 경제관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들어오는 돈보다 죽대선생이 사들이는 고서적 구입비로 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 것이다.
 “뭐라? 그럼 계속 이 죽순이나 씹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아도 돈을 해결하기 위해 죽대선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던 호현이 슬며시 말했다.
 “스승님 그래서 말인데··· 사형들에게······.”
 사형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죽대선생이 손으로 식탁을 쳤다.
 탁!
 방금 전까지는 투정 비슷하게 화를 냈다면 지금 죽대선생은 진정 화가 난 듯 했다.
 “너에게··· 사형들은 없다.”
 싸늘하게 식은 죽대선생의 음성에 호현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런··· 스승님께서 사형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실수를 했구나.’
 “죄송합니다.”
 호현이 고개를 숙이는 것에 죽대선생이 한숨을 쉬고는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먹자구나.”
 죽대선생이 죽순볶음을 집는 것을 본 호현이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조용히 밥을 먹던 죽대선생이 문득 호현을 바라보았다.
 “학관에 돈이 다 떨어졌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오씨 부부 급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오씨 부부는 학관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을 하는 고용인으로 남편인 오진은 학관 문지기를 하고, 아내인 철이 아줌마는 음식과 집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번 달 급여를 못 주었습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선생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근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허! 오씨 부부는 이곳에서 버는 돈이 전부인데 그것을 못 주었다니··· 어찌한다.”
 “스승님, 그렇지 않아도 제가 저희 학관의 재정을 늘릴 방도를 생각한 것이 있는데 말을 해도 되겠는지요.”
 “그런 생각이라면 어서 말해 보거라.”
 “스승님도 아시다시피 이제 두 달 후에 원시가 열립니다.”
 명나라 과거는 동시, 원시, 향시, 회시, 전시 다섯 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원시는 이 중 두 번째 단계의 시험이었다.
 “그래서?”
 “원시를 준비하는 동생(동시 합격자)들에게 수업료를 받고 원시를 대비한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준비를 이곳에서 시키자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호현의 답에 죽대선생이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호현이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정착한 후 십 년, 그 동안 스승님에게 사사를 받고 싶다고 찾아온 학사들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찾아온 학사들은 모두 돌아가야만 했다. 찾아온 학사들 중 죽대선생의 눈에 차는 자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고작 원시를 준비하는 학사들을 받아들이라니··· 그것은 죽대선생의 자존심을 꺽으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저희도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속으로 죽대선생에게 중얼거린 호현이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죽대선생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르치겠다.”
 자신이 말을 하기는 했지만 죽대선생이 승낙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호현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헉! 스승님 진정이십니까?”
 “어쩌겠느냐···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삶이기는 하지만, 내 자존심 살리자고 밑에 있는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일이니··· 또한 죽으면 사라질 지식 지금이라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전해야겠지.”
 잠시 말을 멈춘 죽대선생이 말을 이었다.
 “허나··· 배움에 대한 열의가 없는 자들은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없는 자는 저희 방헌학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동생들을 모아 보거라.”
 “알겠습니다.”
 죽대선생의 허락에 호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았다.
 ‘오늘 하루는 분주할 듯 하니 배를 채우고 움직여야겠다.’
 호현의 젓가락질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
 
 죽대선생이 동생들을 가르치기로 결정을 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죽대선생은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대석학이다. 그런 사람이 십년 동안 학관에 학사들을 들이지 않다가 갑자기 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선언을 했으니··· 호북에 사는 학사들 그 중 동생들 입장에서는 가뭄에 소나기가 쏟아진 격이었다.
 대석학인 죽대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학사들에게는 한 가지 이로운 점이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가르친 사람이 죽대선생이라는 간판이었다.
 원시를 볼 때 감독관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한림원 대학사를 지낸 죽대선생을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같은 점수를 받은 학사가 있다면 죽대선생 밑에서 수학을 한 학사가 더 이로울 것이다.
 하여튼 이런저런 상황이 맞물리자 방헌학관의 문을 향한 동생들의 두들김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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