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운한소회[개정판]

운한소회 001화

2018.12.20 조회 2,209 추천 12


 운한소회(개정판) 1권
 
 목차
 제1장 토사구팽(兎死狗烹)
 제2장 흑영(黑影)
 제3장 짐승이 아니다
 제4장 대답은 들었습니다
 제5장 남궁세가(南宮世家)부터
 제6장 압도하다
 
 
 
 제1장 토사구팽(兎死狗烹)
 
 
 
 항주 초입에 위치한 작은 주점 홍빈루.
 저녁부터 시작된 사내들의 술자리는 자정이 넘어도 끝날 줄 몰랐고 의견은 여전히 모아지지 않았다.
 “표국이 어떨까? 어차피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그나마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덩치는 상당했지만 흔하디흔한 얼굴을 지닌 사내 홍자성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동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친놈! 우리가 칠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이유를 좀 생각해 봐라. 그게 다 우리 몸에 배어 있는 피 내음과 칼 내음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표국을 하자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홍자성의 정면에 앉아 있던 진우가 손등에서 굴리던 동전을 던지며 화를 냈다.
 “저런 헛소리는 무시하고 네 생각이나 말해봐.”
 홍자성의 왼편에 앉아 있던 엄효가 날아든 동전을 낚아챈 뒤 슬며시 주머니에 챙겨 넣는 홍자성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진우에게 말했다.
 “글쎄, 아직 뚜렷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저런 멍청한 말을 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진우의 비웃음에 딴청을 하고 있던 홍자성의 고개가 홱 돌려졌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말해보든가. 얼마나 잘난 의견이 있는지 이 몸이 귀를 씻고 들어주지.”
 “최소한 표국을 하자는 네놈보다는 낫겠지.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뭐라고!”
 “조용히! 싸우지 말고 빨리 의견이나 말해봐.”
 홍자성과 진우의 음성이 커지자 지금껏 말이 없던 노조린이 입을 열었다.
 노조린은 평범하게 생긴 홍자성이나 눈꼬리가 말려 올라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엄효, 그리고 산도적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험악하게 생긴 진우와는 달리 마치 백면서생을 연상시킬 정도로 가녀린 몸과 작은 체구를 지녔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에 지금껏 떠들어대던 홍자성과 진우의 입이 거의 동시에 닫힌 것을 보면 은연중 이들의 우두머리로 인정을 받는 모양이었다.
 “말해봐.”
 노조린의 시선을 받은 진우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기, 기루가 어떨··· 까?”
 조심스런 진우의 태도와는 달리 홍자성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을 뒹굴며 웃었다.
 “기, 기루? 크크크! 크허허허! 기루래! 하하하!”
 “웃지 마! 기루가 어때서 그래?”
 홍자성의 과장된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린 진우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노조린을 바라보았으나 노조린의 고개는 홍자성이 땅을 구르기도 전에 이미 엄효에게 돌아가 있었다.
 “엄효, 너는 어때?”
 엄효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객점이 어떨까?”
 “객점?”
 “그래. 그저 오가는 여행객만 상대하면 되니까 별 재주 없는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것 같아서. 자리만 좋다면 수입도 꽤 괜찮을 것 같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니 벌써 알아본 모양이네. 하긴 우리보다 한참 전에 항주에 도착했으니까. 자세하게 말해봐.”
 싱긋 웃으며 질문을 하는 노조린의 반응에 환히 웃은 엄효가 입을 열었다.
 “여기 항주는 북경이나 남경에 비해 비록 규모에선 상대가 되지 않을지 모르나 굴러다니는 돈만큼은 만만치 않아. 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
 당연하게 여기는 진우나 홍자성은 물론이고 믿었던 노조린마저 침묵을 지키자 당황한 엄효가 재빨리 설명을 이어갔다.
 “이, 이런 말이 있지. ‘하늘에 천당이 있으면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그만큼 경관이 뛰어나다는 말이야. 특히 서호를 품고 있는 항주는 일 년 내내 수없이 많은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중원에서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도 구름같이 몰려든다. 그것은 곧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자연적으로 기루, 주점, 객점 등이 번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다면 이미 수없이 많은 객점들이 들어섰을 것인데 지금 우리가 객점을 차린다고 하여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조심스런 진우의 반박에 홍자성이 박수를 쳤다.
 “오! 오랜만에 말 같은 소리를 하는군. 네 말이 전적으로 옳다.”
 진우의 말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홍자성은 한껏 목소리를 높이며 비아냥댔다.
 “여기 있는 객점들은 이미 단골들도 많이 확보를 했을 것이고 난생처음 해보는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 성공할 가능성은 눈곱만치도 없다고. 안 그래? 거지 되기 십상이라구!”
 “시끄러!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들어보나 마나 뻔한 거 아냐? 괜히 창피하니까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모양인데 그게 더 비참하다. 그냥 조용히 입 다무는 게 어때?”
 “너라는 놈은 정말······.”
 엄효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아직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노조린에게 못다 한 설명을 이어갔다.
 “진우의 말이 맞아. 우리의 자금력과 실력으로 지금 객점을 열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기존의 객점을 우리가 인수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순간 노조린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며칠 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서호의 동편 쪽에 그다지 크지도,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객점이 하나 있다. 너희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어제 이미 그 객점을 사들였어. 내 멋대로 결정해서 미안하다.”
 말을 마친 엄효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가 어제 객점을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은 분명 그만의 돈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사분지 일만이 엄효의 돈이었고 나머지는 친구들의 재산이었다. 엄효가 아무리 자기의 판단을 믿고 있다 해도 친구들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돈을 써버린 것은 틀림없는 잘못이었다.
 “뭐, 뭐야! 그래놓고 그렇게 시치미를 뗀 거란 말이야? 이미 돈을 다 써놓고. 뭐? 의견을 말해봐? 오냐, 의견을 말하마. 내 오늘부로 사람 장사를 해야겠다. 그 시작은 사내 구경 못 한 과부에게 네놈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시작하련다.”
 가장 먼저 흥분한 것은 성격 급한 홍자성이었다.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이 엄효를 노려보는 홍자성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하지만 무심한 음성으로 툭 던진 노조린의 한마디는 무시무시했던 홍자성의 태도를 그대로 짓뭉개 버렸다.
 “난 찬성. 그리고 네 돈이 가장 적잖아? 누가 들으면 다 네 돈인 줄 알겠다.”
 “흐흐흐. 암, 가장 적지. 물론 나도 찬성.”
 진우가 괴소를 터뜨리며 노조린의 말에 동조했다. 순간 당황한 홍자성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 하지만······.”
 “잔소리하지 말고 엄효에게 맡겨. 우리에게 말할 시간도 없이 사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급했다는 거잖아. 내 말이 틀려?”
 노조린이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효에게 물었다. 엄효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홍자성을 향해 콧방귀를 뀌며 대답을 했다.
 “당연하지. 급하지 않았으면 내가 그럴 리가 있나? 소면 몇 그릇 사 먹으면 없어질 돈을 가지고 지랄을 하는 놈의 불평을 어찌 감당하라고.”
 “이 자식이!”
 홍자성이 발끈하여 소리를 쳤지만 엄효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에겐 아주 좋은 기회야. 겨우 오십 냥이라고. 우리에겐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지만 금화 오십 냥을 가지고 그만한 객점을 샀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아. 이곳에서 제대로 된 객점을 사려면 그보다 열 배는 더 주어도 사기 힘들걸.”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싼값에 객점을 팔아? 뭔가 이상한데······.”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가 하는 일을 믿고는 있지만 나 또한 진우의 생각과 같다. 그렇게 싼값에 객점을 판다는 것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
 노조린의 얼굴도 살짝 굳어졌지만 엄효는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문제가 조금 있어, 아주 사소한.”
 “그럴 줄 알았지.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문제가 없을 리가 없지. 어디 제정신이 박힌 놈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객점을 내놓겠냐? 어림도 없지. 사기당한 거야, 사기!”
 홍자성이 예의 도끼눈을 뜨고 소리쳤다.
 “해결했다.”
 “그러니까 해결을 해야··· 응? 해··· 결했다고?”
 홍자성이 눈을 꿈뻑거리며 물었다.
 “그래. 주인이 학을 뗄 정도로 귀찮은 파리가 좀 꼬였는데 완전히 정리를 했다.”
 “그럼 우리가 객점을 취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네.”
 노조린의 말에 엄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좋아. 그럼 이것으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결정된 건가? 재밌겠어.”
 만족한 노조린이 활짝 웃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바로 가자. 우리의 객점으로.”
 진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진우의 외침에 앉아 있던 삼 인 또한 몸을 일으켰다.
 “참, 그런데 객점의 이름은 뭐야?”
 “뭐긴, 서호에 있으니 서호객점이지.”
 “······.”
 “이름하고는······.”
 홍자성의 불평을 뒤로한 채 사내들은 홍빈루를 떠나 자신들을 기다리는 서호객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섬서성 화음현엔 무당파와 더불어 중원의 이대검파로 명성 높은 화산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산이 높고 험하여 화산의 문하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화산파. 때때로 하늘을 떠도는 구름만이 부드러운 몸짓으로 보듬어줄 뿐 늘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간간이 무공을 익히는 제자들의 우렁찬 기합만이 울려 퍼지던 화산파에 며칠 전부터 제법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 막 도착한 무당파의 인원을 끝으로 언제나 열어놓았던 정문이 굳게 닫혔고 화산파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고요한 침묵 속에 빠져들었지만 외양과는 달리 각 문파의 대표들이 모인 삼청각의 분위기는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혈성과의 싸움이 끝난 지 칠 년, 그간 무림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욱일승천하던 흑도의 기세가 많이 꺾였고 반대로 백도는 나날이 발전해 이백 년 이래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혈성과의 싸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우리 칠파일방과 삼대세가가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며 동조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내심 만족한 미소를 지은 화산파 장문인 조공루가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리라는 법은 없겠지요. 우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한.”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약점이라니요?”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