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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루 001화

2018.12.24 조회 3,036 추천 16


 작가 서문
 
 
 
 어려서부터 무협을 좋아하던 독자로 시작하여 첫 작품인 ‘궁귀검신’을 선보인지 햇수로 어느덧 14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다지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지 않건만 이십 중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 어느덧 두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고 사십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세월 참 무상합니다.
 함께 글을 쓰며 수많은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던 동료, 선후배님들과의 즐거운 기억들도 점점 그리운 추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제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인데 요즘 들어 왠지 뿌듯하면서도 외롭고 서글픈 감정도 드는군요.
 그래도 이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니까요. 그것이 때로는 고통스런 축복일지라도요.
 전작 ‘장강삼협’을 마무리 짓고 새롭게 글을 시작합니다.
 늘 그렇듯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독자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제1장 무영도(無影島)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바닷가.
 진유검(陳流劍)은 갯바위에 걸터앉아 미쳐 날뛰는 바다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집채만 한 파도가 거칠고 매섭게 바위를 때리고 자칫하면 파도에 흔적도 없이 쓸려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 마치 정신줄을 놓고 있는 듯 보였다.
 “후우~”
 진유검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갯바위에 오른 지 반 시진이 흘렀고 애써 평정심을 회복해 보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나오니 그저 한숨뿐이었다.
 
 @아버지는 풍랑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서체적용
 
 사부이자 정신적 지주셨던 작은할아버지를 당신께서 남기신 유언대로 바다에 보내드리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말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왔다.
 진유검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거친 파도가 갯바위를 때리고 그 여파로 몸이 흠뻑 젖을 때 진유검의 등 뒤로 한 청년이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조각같이 매끈한 피부, 오똑한 콧날이며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실로 매력적이다.
 “아직도냐?”
 섬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유일한 친구 독고무(獨孤武)의 등장에 진유검의 굳었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독고무가 혀를 차며 들고 있던 술병을 흔들었다.
 “마실래?”
 “독주가 아니면 소용없다.”
 진유검이 아직까지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은 발밑의 술병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벌써 수십 병을 마셨는데 취하기는커녕 정신만 더 멀쩡해지는 느낌이야.”
 “기운 빠지는 소리를 하는 걸 보니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마셔봐. 이건 좀 다를 테니까.”
 “그렇다면야.”
 진유검은 사양하지 않고 술병을 받았다. 그리고 단숨에 병을 비웠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독한 기운이 식도를 타고 위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뭔가 후끈한 느낌.
 “조금 낫네.”
 진유검이 덮쳐오는 파도를 향해 술병을 던지며 말했다.
 “한 잔만 마셔도 사흘을 취해 쓰러진다는 천일취(千一醉)를 병째로 마신 놈이 할 소리는 아니다만.”
 “천일취? 조금 독하기는 해도 그런 이름이 붙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이상한 거야. 살짝 맛만 본 놈은 저 꼴이 되었다.”
 독고무가 모래사장 뒤쪽의 나무에 기대어 정신없이 졸고 있는 전풍(田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화상이야 애당초 술에 관해선 젬병이고.”
 “술만?”
 “음, 술뿐만이 아니군.”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진유검과 독고무가 마주 보며 웃었다.
 웃음이 사라질 즈음 진유검이 물었다.
 “너도 알고 있었냐?”
 진유검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독고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미안하다.”
 독고무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어머니도 사실대로 말씀하지 못하신 것을 네가 어찌 말해. 그런데 작은할아버지지?”
 “그래. 잠시만 비밀을 지켜달라고 당부하시더라. 그 잠깐이 삼 년일 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후~ 그러게.”
 진유검이 씁쓸히 웃었다.
 “사실 당시에는 나 또한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저 무황성(武皇城)에 혼란이 오면서 네 부모님은 물론이고 가문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 정도만 확인을 했지. 사실 그때는 세부적으로 어떤 문제가 얽힌 것인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정보망이 갖춰지지 않아서 말이야.”
 “하면 지금은 그 내막을 제대로 파악을 하고 있다는 말이네.”
 “어느 정도는.”
 “그럼 얘기를 해 봐. 어머니를 통해서 대충은 전해 들었지만 파악이 잘 안 돼. 네 말대로 그 안에 어떤 문제가 얽힌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미친놈들이 다른 곳도 아니고 무황성과 의협진가(義俠陳家)를 건드린 것인지 말이다. 그래야 복수라는 것도 해보지.”
 순간, 독고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결심을 한 거냐?”
 “결심을 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잖아. 당연한 거지. 불구대천(不俱戴天)! 자식 된 도리로써 의당 해야 할 의무라고나 할까. 어머니도 원하시는 것 같고.”
 “하지만 금제는··· 설마?”
 한없이 커진 눈. 독고무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금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면 어머니는 아직도 침묵을 지키고 계셨겠지.”
 진유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 구나.”
 “내 자유를 묶던 금제가 풀린 이상 지금 당장 움직여도 문제될 것은 없어.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뭐가?”
 “생각만큼 슬픔이 크거나 화가 치솟지는 않아. 가슴 깊은 곳에서 이는 분노야 당연한 것이지만 어쩐지······.”
 그 역시도 정확하게 정의를 하지 못한 것인지 진유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하지 않을까? 만약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처럼 담담하지는 못했을 거다. 아마도 당장 미쳐 날뛰었을 걸. 삼 년 전 네 모습을 생각해 봐. 근 한 달여를 폐인처럼 지냈잖아. 나는 물론이고 섬에 있는 모두가 네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랬냐? 하긴 내가 못난 꼴을 많이 보였지. 생각해 보면 몇 년에 한 번. 그것도 열흘 남짓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였던지라 그만큼 간절하고 애틋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그 상실감은······.”
 “안다. 아버지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는 나도 모르지 않아. 그래도 넌 운이 좋은 거다. 내가 반역자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이곳에 왔을 때가 몇 살인지 알지?”
 “알지.”
 “지금 생각해 보면 네 덕분에 그래도 빨리 슬픔을 극복했던 것 같다.”
 “그랬냐?”
 “그래.”
 애써 환한 표정을 지은 독고무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삼 년이다. 그 시간 동안 네 슬픔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씩 희석되었다고 보면 지금의 혼란스런 심정은 당연한 거야.”
 “그런가?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도 방심하진 마라. 막상 원수를 눈앞에 두면 지금은 조용히 잠자고 있는 분노가 미쳐 날뛸 수도 있으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한데 어떤 놈들이냐? 아버지를, 본가를 공격한 놈들이?”
 독고무는 착 가라앉은 진유검의 눈빛에서 그와 척을 진 자들이 스스로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알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결코 적으로 두지 말아야 할, 그야말로 최악의 상대를 원수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제 떠날 거냐?”
 독고무의 뜬금없는 물음에 멈칫하던 진유검이 독고무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삼 일 후에.”
 “음, 생각보다 시간이 빡빡하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의 상황을 세세하게 파악을 하려면 고생 좀 하겠어.”
 “삼 일 안에 가능하긴 하냐?”
 진유검이 놀라 물었다.
 “새롭게 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쌓인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는 정도니까 가능하지 싶다.”
 “그럼 부탁 좀 하자. 기왕이면 무림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지. 그런데 저놈도 데리고 갈 거냐?”
 독고무가 아예 양팔을 허벅지 사이에 낀 채 쓰러져 자고 있는 전풍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야 그냥 떼놓고 가고 싶긴 한데 아마도 불가능하지 싶다.”
 진유검의 표정에서 더없이 떨떠름한 기색을 느낀 독고무가 절대적으로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진유검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뒷감당을 해준다면 혼자 갈 생각도······.”
 “그냥 데리고 가라.”
 전에 없이 냉정한 말투였다.
 
 사흘 후, 무영도(無影島)에서 유일하게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다.
 사시사철 거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무영도였지만 암석군이 초승달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는 선착장만큼은 파도의 영향에서 그런대로 벗어날 수 있었다.
 “네가 부탁한 것은 항주에 도착하면 바로 받아볼 수 있게 조치해 뒀다. 떠나기 전에 준비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쉽지 않네.”
 독고무가 미안해하자 진유검이 고개를 흔들었다.
 “상관없다. 여기서 얻으나 거기나 얻으나 다를 건 없으니까. 나야 준비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진유검의 말에 불안한 표정으로 독고무의 등 뒤에 시립해 있던 중년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독고무의 명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 터에 진유검의 반응에 따라서 자신이 어떤 책망을 받게 될지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언제쯤 움직일 생각이냐? 요즘 보니까 대충 준비는 되어 가는 것 같던데.”
 진유검이 독고무와 그 주변에 있는 노인들, 그리고 선착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완벽한 포진으로 독고무를 보호하고 있는 그림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직 충분하지 않아. 무엇보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래도 조만간 움직일 생각이다. 너도 떠나고 저놈도 가고 나면 혼자 심심해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독고무가 잔뜩 등이 굽은 노인으로부터 한참 잔소리를 듣고 있는 전풍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마라. 무리하다가 아차 하면 심마(心魔)에 빠진다.”
 “음.”
 “뭐,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심마에 빠졌다가 극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되니까.”
 진유검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심마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요원한 일인지 잘 알고 있던 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독고무만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도저히 안 된다고 생각되면 네 의견도 고려해 봐야겠다.”
 “소존(少尊)!”
 독고무의 좌측에 있던 외꾸 노인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독고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어머님은? 나오시지 않는 거냐?”
 “아침 일찍 귀왕사(歸往寺)에 가셨다. 인사는 미리 드렸고.”
 “그러셨구나. 막상 네가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다.”
 “아무래도 섬을 나가는 목적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걱정도 하시는 것 같고.”
 진유검이 씁쓸히 웃었다.
 “걱정은 네가 아니라 저쪽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려야겠다.”
 독고무가 육지를 향해 고갯짓을 하며 웃었다.
 “어쨌든 네가 섬을 떠날 때까지 만이라도 어머니 좀 부탁하자.”
 “걱정하지 마. 네 녀석보다 더 잘 모실 테니까.”
 “그리고 하나 더. 네 목표도 중요하지만 난 무영도가 평온했으면 좋겠다.”
 독고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특히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조금은 격해졌다.
 “그건 공자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니······.”
 후미에 서 있던 사내의 호기로운 외침은 애꾸 노인의 살벌한 눈짓에 금방 막혔다.
 진유검은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의 고향 같은 곧 아니냐. 자의든 타의든 이곳에 정착한 이들도 그렇고.”
 “그건 걱정하지 마. 온 세상이 뒤집어 진다고 해도 무영도는 아니다.”
 독고무는 언제 흠칫거렸느냐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걱정? 걱정을 왜 해요. 내가 주군을 모시고 가는데.”
 할아버지의 잔소리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온 전풍이 겨우 앞의 한 단어를 알아듣고 끼어들었다.
 “난 형님이 걱정이요. 떨거지들 몇 데리고 뭔 일을 도모하려는지는 몰라도 영 불안해.”
 졸지에 떨거지로 전락한 이들이 눈에 불을 켜며 전풍을 노려보았지만 그 정도에 흔들릴 전풍이 아니었다.
 “아무튼 곤란한 일이라도 생기면 재빨리 연락해요. 바람처럼 달려갈 테니까.”
 “어련하려고.”
 골치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독고무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진유검을 바라보았다.
 “이놈아! 뭐가 바람처럼 달려가! 네놈의 임무가 소주 곁을 지키는 것임을 잊은 것이냐?”
 오 척 단구에 그나마 허리까지 잔뜩 굽어 더욱 작게 보이는 노인이 들고 있던 곰방대로 전풍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어이쿠! 할배!”
 전풍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형님이라니! 독고 공자께선 소주의 친구분이다. 어디서 맞먹으려고 들어.”
 노인이 노여움에 몸을 떨었지만 독고무를 힐끗 살핀 전풍은 노인의 호통에도 콧방귀를 낄 뿐이었다.
 “주군은 주군이고 형님은 형님이지. 안 그렇소?”
 전풍이 노려보며 묻자 독고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누가 뭐랬냐?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봤지. 형님도 인정하잖아.”
 전풍이 득의양양하여 말하자 이를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이놈이 그래도!”
 곰방대를 거칠게 휘두르며 전풍을 향해 달려가는 노인을 보다 못한 진유검이 말리고 나섰다.
 “할아범.”
 “예, 소주.”
 언제 흥분을 했느냐는 듯 고개를 숙이는 노인의 태도는 더없이 공손했다.
 “다녀올 테니까 어머니를 부탁해.”
 “염려 마십시오, 소주. 이곳의 일은 이 늙은이에게 맡기시고 부디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노인이 절이라도 할 기세로 몸을 낮추었다.
 “할아범도 잘 지내고. 할아범과 어머니를 두고 가려니 영 발이 떨어지지 않네.”
 “소, 소주······.”
 노인이 감격에 몸을 떨자 더 이상 보기 심란했던 전풍이 진유검의 팔을 확 잡아챘다.
 “주군, 이제 그만 갑시다.”
 “풍아, 소주 잘 모시고······.”
 “걱정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우리 걱정 말고 할배 몸이나 챙기라고. 손자 몰래 감춰둔 음식들 맛나게 드시고 또 쌀쌀한 아침에 돌아다니다가 괜히 풍이나 맞지 말고.”
 퉁명스레 내뱉는 전풍의 말엔 혼자 남을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쓸데없는 걱정은! 네놈은 그저 소주를 잘 모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니까.”
 “아, 진짜! 걱정을 해두 뭐라고 한다니까.”
 전풍이 버럭 신경질을 냈다.
 이후에도 한참이나 투닥거리며 이어지던 두 사람의 대화는 결국 전풍이 심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훌쩍 배에 오르며 끝이 났다.
 “다시 만날 때는 저곳이 되겠지?”
 진유검이 서쪽을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마도. 섬을 떠나도 금방 만나지는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해야 하는 일이 서로 다르니까.”
 “몸조심해라.”
 진유검이 독고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너도.”
 말을 하던 독고무가 피식 웃고 말았다.
 애당초 몸조심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괴물이 아니던가.
 “풍이 말대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고.”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정말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주저없이 부르마. 귀찮다고 외면하지나 마라.”
 그 말을 들은 전풍이 심란해하던 표정을 싹 바꾸며 소리쳤다.
 “그건 걱정하지 마요. 그럴 땐 내가 주군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데리고 갈 테니까.”
 무례하기 그지없는 말에 노인이 두 눈을 치켜뜰 때 독고무가 선착장이 떠나가라 웃어젖혔다.
 “하하하! 그래. 너만 믿는다, 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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