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지옥에서 돌아온 용병

1화

2019.01.02 조회 82,299 추천 856


 1999년 12월 31일.
 뉴욕의 타임스퀘어 거리는 새천년을 맞이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친구들, 연인들, 가족들 모두 한 마음으로 전광판의 시계를 바라봤다.
 살면서 다시 볼 수 없는 세계의 축제.
 
 전광판 밑에서는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진행됐고,
 카운트다운이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흥분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사람이 기다리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10
 9
 8
 7
 
 숫자가 하나 줄어들수록 사람들의 기대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6
 5
 4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키스를 하며 지금을 영원히 추억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3
 2
 1
 그리고 0.
 
 마침내 기다리던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하지만, 새천년 새해를 알리는 팡파르 대신, 그들에게 찾아온 건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진 듯한 정전이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전광판에 익숙해진 눈은 어둠 속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뭐야?”
 “설마 Y2K? 진짜 밀레니엄 버그인가?”
 “무슨 일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해서 환호성을 질렀던 사람들도,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들도 갑작스러운 정전에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몇몇 사람이 주변을 밝히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지만 하나같이 방전이라도 된 건지 어떠한 빛도 내지 못했다.
 
 그때.
 “끼아아아!”
 
 어둠마저 찢어 버릴 것 같은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이 타임스퀘어의 거리에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정전 때문에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의문의 비명에 일순간 입을 닫았다.
 
 “······.”
 “······.”
 
 어둠 때문에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비명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숨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소름이 끼치고 숨이 막힐 거 같은 고요함.
 
 “······.”
 “······.”
 
 하지만, 그 고요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으아아악!”
 “살려 줘!”
 “끼아아아!”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비명.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며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타임스퀘어 거리에는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정전으로 앞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
 
 대피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뒷사람은 도망치기 위해 앞사람을 밀치고
 앞사람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힘으로 버텼다.
 
 몇몇은 뒷사람의 힘에 못 이겨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이미 어둠과 비명에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점점 가까워지는 비명에서 도망치기 위해 발밑에 밟히는 사람을 무시하고 달릴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아비규환.
 
 그때, 다시 전기가 들어왔고 전광판과 가로등이 어둠을 걷어 냈다.
 
 단 3분간의 정전.
 
 하지만, 타임스퀘어의 모습은 이전과 판이했다.
 
 바닥뿐만 아니라 건물 벽면까지 빨갛게 피로 물들었고 조각난 사체들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공포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높이만 3m가 넘을 것 같은 거대한 검은색 늑대 다섯 마리.
 크기도 크기였지만 그 모습이 일반적인 늑대와 판이했다.
 
 눈은 심해어처럼 퇴화해 온데간데없었고 온몸에는 털 대신 기괴하고 날카로운 검은 가시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시에는 오뎅 꼬치처럼 사람들의 시체 파편이 꽂혀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누군가는 살아있는 상태로 가시에 꽂혀 있기도 했다.
 
 “사, 살려······줘.”
 
 가시에 온몸을 관통당한 그는 피를 흘리며 숨넘어갈 거 같은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러한 참상을 보고 그 누구도 괴물 늑대에 다가가서 그를 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끔찍한 모습에 더욱 공포에 질렸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뿐이었다.
 
 “으아아악!”
 
 괴물 늑대는 소리에 반응하듯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놈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은 무참하게 썰려 나갔다.
 
 -탕!
 
 그때, 경찰 한 명이 괴물 늑대를 향해 권총을 쐈다.
 그것은 시민을 구하겠다는 용기보다, 살고 싶다는 본능적인 방어 행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권총의 화력으로는 놈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이 쏜 총알은 놈의 가시에 튕겨 나가 도망치던 사람의 등에 박혔다.
 
 현장에서는 괴물 늑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이 괴물들의 살육 사건은 런던 타임스퀘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는 괴물 늑대.
 어디에서는 움직이는 거대 석상.
 어디에서는 괴조.
 어디에서는 반투명한 막으로 총알과 포탄을 막는 괴물.
 어디에서는 죽지 않는 시체.
 어디에서는 끝도 없이 재생하는 괴물.
 어디에서는 키가 10m 넘는 거인.
 
 몇몇 곳에서는 경찰의 화력으로 괴물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런던 타임스퀘어처럼 군대가 와서야 정리가 가능한 곳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
 새천년, 새해의 시작 하루 만에 수백만 명이 괴물에게 목숨을 잃었다.
 
 -
 
 첫날 열린 게이트는 선전포고에 불과했다.
 이후로도 게이트는 끊임없이 열렸고 무시무시한 괴물을 뱉어 냈다.
 
 때로는 인류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게이트가 열리기도 했다.
 
 
 그중의 하나가 200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직경 100m의 거대 게이트였다.
 
 거대 게이트를 통해 이 세계로 넘어온 괴물은 단 한 마리.
 하지만, 그 한 마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웬만한 빌딩보다 큰 덩치의 그 괴물은 단순히 힘만으로 전차를 찢어 버리고 입에서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을 뿜어냈다.
 
 방어력 또한 높아서 전차나 폭격기의 화력으로는 그 괴물에게 상처도 줄 수 없었다.
 
 러시아 정부는 거대 괴물을 막기 위해 자국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수십 발의 핵미사일을 쏠 수밖에 없었다.
 
 이 게이트에서 넘어온 거대 괴물 한 마리에게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갔다.
 
 이후로도 높은 게이트 출현율 때문에 모스크바는 더 이상 일반인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하지만, 이것도 2011년 멕시코에 열린 게이트에 비하면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이전까지의 게이트는 짧으면 몇 분, 길어도 수 시간 안에 소멸했다.
 
 그렇기에 한 번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수는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열린 게이트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쉴 새 없이 괴물을 쏟아냈다.
 
 군사력 1위 국가인 미국은 국경을 사수할 수 있었지만, 남아메리카는 멕시코에서 넘어온 수많은 괴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다.
 
 그 결과 남아메리카에서 민간인만 수억 명이 죽었고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죽음의 땅이 됐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만한 대참사였다.
 
 하지만, 괴물 덕분일까.
 
 인류는 괴물의 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라는 종의 보존을 위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몬스터 사체를 이용해 만든 특수탄을 시작으로 많은 국가가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단단한 피부를 뚫거나 베리어를 무시하는 다양한 종류의 특수탄.
 기능성 슈트.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시약.
 
 그리고 강제적으로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반물질 폭탄까지.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멕시코 게이트를 닫기는커녕, 국경을 수비하는 게 전부였다.
 
 미국이 멕시코 게이트에 전력을 쏟고 있는 동안에도 전 세계에서는 다른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넘어왔다.
 
 인류는 몬스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에 점점 패색이 짙어졌다.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극소수의 인류는 진화에 성공했다.
 ‘마나’라는 힘을 각성한 각성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보다, 괴물에 가까운 특이한 힘이었다.
 
 각성자들은 마나의 힘을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누구는 괴물을 힘으로 찢어 버릴 수 있는 신체 강화,
 누구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강력한 화염조종,
 또는 강력한 염력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국제연합에서는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위 기관인 국제헌터연합을 세우고 체계를 잡았다.
 
 국제헌터연합은 각성자들을 크게 세 분류로 나누었다.
 
 몬스터와 싸우는 ‘몬스터 헌터’
 능력을 이용해 범죄를 일으키는 ‘빌런’
 그런 빌런과 싸우는 ‘빌런 헌터’
 
 비록 빌런들이 많은 사회 문제를 일으켰지만, 사람들은 각성자의 등장으로 언젠간 이 지옥이 끝날 것이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분위기를 이용해 남아메리카 수복 작전을 진행했다.
 
 수년에 걸친 네 번의 작전.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과학의 발전과 헌터들의 출현에도 끝없이 넘어오는 몬스터를 감당할 수 없었다.
 
 멕시코 게이트가 열린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미군은 남부 국경에 24시간 쉬지 않고 포격을 가하며 몬스터의 접근을 막았지만 이미 한계에 달했다.
 
 아무리 미국이 군사력 강국이고 특수탄 제조기술의 독점으로 큰돈을 번다고 해도 자원이 남아날 리 없었다.
 
 현재 2019년 가을.
 미국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도움을 청하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5차 수복 작전을 진행했다.
 
 게이트가 출현하는 국가에서는 특수탄 제조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또, 게이트가 출현하지 않는 극소수의 안전 지역 국가들은 세계정세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차출된 일반 병사만 120만 명.
 
 하지만, 들려오는 전보는 잔혹하고 지독한 실패였다.
 
 -
 
 한때는 같은 용병단의 전우,
 지금은 용병 에이전시이자 가장 오랜 친구인 첸이 찾아왔다.
 
 “새로운 임무야. 늦었지만 5차 수복 작전에 참여해 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국에서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온 첸은 다짜고짜 나에게 지옥으로 가 달라는 임무를 전해 줬다.
 
 “휠체어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그거 때문이야?”
 “전황이 안 좋아.”
 “······오랜만에 만나서 쓸데없는 이야기 말고, 용병 신입은 잘 뽑혀?”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임무가 듣기 싫어 말을 돌렸다.
 
 하지만, 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내가 그 임무를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핵 샤워도 실패하고 멕시코 남부에 상륙한 2군은 일주일도 못 버티고 무너졌어.”
 “뭐, 웬만큼 능력 있는 애들은 다 헌터로 빠지겠지만.”
 “마지막 자원까지 짜낸 작전이야. 이번 작전 실패하면 미국도 얼마 못 가.”
 “하긴, 용병보다 돈도 더 많이 벌고 여기저기서 영웅 대접해 주는 헌터가 더 폼 나지.”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시한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만큼 각자의 의지가 확고했다.
 
 나는 그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고 첸은 어떻게 해서는 나를 그곳으로 보내려 했다.
 
 “미군 측에서 새로운 임무를 제안해왔어. 네가 맡아줘.”
 “거절할게. 이미 실패한 작전이잖아. 내가 가면 뭐가 달라져?”
 
 첸은 내 거절 의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격양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이 무너지면 캐나다도 연속으로 무너질 거고 그러면 또다시 수억 명이 죽을 거야.”
 
 지독한 소모전 때문에 국경 수비에 실패하면, 멕시코 게이트의 2차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수억 명 죽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의미였다.
 
 그러자 첸은 성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수억 명이 죽게 생겼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다. 아무렇지 않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떠받들어 주는 헌터가 아닌, 이름 없는 용병일 뿐이다.

댓글(35)

소설보러    
잘보고갑니다
2019.01.12 12:47
김영한    
잼히땃
2019.01.20 13:05
김영한    
유엔 아래에 헌터협회라.. 세계관도 깔끔하고, 2,000 밀레니엄 공포에 기반한 임팩트도 굿. 다만 설정이 좀 긴게 흠.
2019.01.20 13:07
김영한    
아시아로 치면, 중국 남쪽의 필리핀에서 지속형 게이트 열렸는데, 뜬금없이 남쪽 바다 너머의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멸망당한 상황. 이렇게 말하면 좀 이해되시려나?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아무리 개호구여도 옆대륙에 지속형 게이트 열린 거면 북해안쪽만 막으면 되는데, 못 막을 이유가..
2019.01.20 13:15
김영한    
그래도 필력 조으시다
2019.01.20 13:24
김영한    
ㅅㅅ
2019.01.20 13:24
김영한    
ㅠㅠ
2019.01.20 13:24
덕재    
1999년에 핸드폰이 있었나..요?
2019.01.28 19:25
코리앤트    
ㄴ 그 당시에도 휴대폰 있었어요. 무전기처럼 생긴데다 더럽게 비싸서 그렇지.
2019.02.06 00:00
ToHome    
ㄴ1999년 당시에 액정이 초록색으로 빛나는 핸드폰이 있었습니다.
2019.02.06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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