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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3차대전. [E]

3차대전 1-1권

2019.01.09 조회 4,427 추천 23


 프롤로그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3남 김정은으로 후계가 굳어지는가 싶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장남인 김정남이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치적인 싸움으로 시작했으나 급기야 군벌이 개입하면서 내전으로 치닫게 되었다. 평양의 주인이 수시로 바뀌면서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고,
 전연군단의 제1군단이 김정남을 지지하며 가세하자 제5군단도 기다렸다는 듯이 김정은이 정통성을 이은 후계자임을 외치며 개입하는 바람에 내전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졌다.
 북한 전역에서 총성이 그칠 날이 없었고 그렇지 않아도 오랜 식량난으로 정부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장장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내전을 지켜보던 중국 지도부는 군사적 개입을 결정했고 중국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자 내전이 주춤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군의 개입은 남한을 자극했고 수세에 몰린 김정남이 남한 당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개입시기를 엿보고 있던 한미연합군은 즉각적인 행동에 들어갔다.
 북한 내전 때문에 주일미군에 배치되었던 F-22랩터 스텔스전투기대대가 북한 상공을 장악하는 사이 국군 제1기갑이 판문점을 돌파했다.
 김정남을 지지하는 군벌들이 제1기갑이 평양에 입성할 수 있도록 방패막이를 해준 탓에 제1기갑은 어렵지 않게 평양을 장악할 수 있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에 투입했던 부대의 남하를 중지시키고 한국과 미국을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에 굴할 한미연합군이 아니었다.
 김정은을 지지하는 군벌이 가진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지만 한미연합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는 김정남의 세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미연합군과 김정남을 추종하는 군벌의 압도적인 파괴력 앞에 반란군으로 내몰린 김정은 세력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졌고 그렇게 김정은의 세력이 토벌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배수의 진을 친 협상에 들어갔다.
 명목상으로는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3억이라는 인구 때문이지 GNP(국민총생산)는 고작 4,000달러를 조금 웃도는 정도에 불과한 중국이었다. 따라서 배짱을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이 서방의 모든 자본을 빼낼 수 있다는 말을 흘리자 중국은 미 연방정부 채권을 무기삼아 대응했다. 미국의 조치가 엄포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중국은 서방자본이 빠져나기 시작하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로 휘청거리고 있는 미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통제권 안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핵무기 중 단 하나라도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에 넘어가는 날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통일.
 한민족의 염원이자 소원이었던 통일은 그렇게 폭풍처럼 찾아왔다.
 
 
 
 
 
 
 제1장. 또 다른 갈등
 
 
 
 
 
 
 한민족의 염원이었던 통일은 되었으나 헌법을 개정 하는 등 처리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2012년 4월과 12월에 각각 치러질 예정이었던 총선과 대선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무려 6개월이 넘은 지루한 협상 끝에 마침내 통일한국의 헌법초안이 확정되었다. 미국 대선과 총선의 형태를 모방한 선거법이 만들어졌고 지난 과거에 행해졌던 행위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인다는 특별법도 만들어졌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한국이라는 국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영어 이니셜 또한 COREA로 바꾸기로 결론이 지어졌다. 그러면서 정부부처의 명칭도 확정했다.
 특이한 점은 내무부가 부활하고 에너지부가 신설되었다는 점이었다. 통일이 된 터라 통일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여성부를 길동무로 삼는 등 정부 부처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부처 명칭을 바꾸느라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던 점을 감안해 헌법에 정부 부처의 명칭을 바꿀 수 없도록 아예 헌법에 명시를 해버렸다.
 그리고······.
 2013년 12월.
 국회가 해산되고 마침내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시작되었다.
 비리의 온상 혹은 국개의원이라고 비아냥거림을 듣던 국회가 해산되기 직전 그들도 한 마음이 되어 통일조국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별회계 예산을 통해 100조원을 긴급 편성하고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 뒤 2년 후에 치러질 총선 때까지 매년 50조원의 통일비용을 편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특별법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것이었다. 그 재원은 통일세를 걷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국방비도 GDP대비 5퍼센트로 대폭 올렸다.
 향후 10년 동안 시행되는 한시적인 이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통일한국의 국방 분야에서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것도 논의가 되었으나 지역구를 나누는 문제에 봉착해 대선을 치른 뒤 2년 뒤에 총선을 치르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국회가 해산되었다.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주는 상징성 때문인지 후보들도 우후죽순처럼 난립했다. 기존의 유력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김정남 등 북한의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다녔다.
 통일 이전의 정당에서 배출한 후보들은 세를 과시하고 다녔고 김정남도 이제 뒤질세라 북한지역 인사들을 대동하고 다니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개표 결과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당선 되었다.
 이수홍.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수홍 후보였다. 그가 내건 대선공약은 경제를 살리자는 것도 아니고 복지한국을 만들겠다는 달콤한 말도 아니었다.
 그가 내건 공약은 단 하나,
 우리의 뿌리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뿌리가 제대로 내린 식물이어야 건강하게 자라는 법.
 후손들에게 날조된 뿌리가 아닌 진정한 뿌리를 되찾아주자고 열변을 토했다.
 정쟁과 이념대렵,
 그리고 온갖 비리 정치인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이수홍 후보의 공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표로써 나타난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 되었던 통일 이전의 집권 한나라당의 박XX 후보와의 표차이가 무려 7백만 표나 되었다.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수홍은 수락인사에서 한민족의 뿌리가 깊게 내려 한민족의 기상이 천년만년 이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말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동안 청와대 인사들은 물론이고 정부부처의 수장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연 지연 등 대통령과 인맥이 닿아 있는 사람이 임명되었다. 그것이 지난 6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통례였다.
 정부부처의 수장들이 비리에 연루될 때마다 정부는 홍역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이수홍 대통령은 청와대 인사들을 비롯해 정부부처의 수장들을 각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전문가들로 임명했다.
 철저한 검증을 거친 사람들로 구성된 각 부처의 수장들은 즉각적으로 산하기관들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방만하게 경영했던 공기업의 CEO(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구속 되었으며 빈둥거리는 직원들은 해고되는 등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건강함을 회복했다.
 정부산하 기관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을 본 시중은행들도 ‘앗 뜨거워라’하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착수하면서 일시적인 자금경색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통일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 때문에 소요사태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2015년 6월1일 청와대
 2015년 12월 18일 금요일에 총선을 치르기로 했으니 총선까지는 6개월 남짓 남은 상태였다.
 세월은 유수라고 했던가?
 엊그제 통일한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 같은데 어느덧 이수홍 정부가 출범한지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상태였다.
 창당하고 각 지역구에 내보낼 후보들을 검증하려면 6개월은 빠듯한 시간이었다. 야당은 벌써 창당하고 후보선출을 하고 있는데 이수홍 대통령은 집권당이 되어야 할 당은 아직 당명도 정해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님, 이제 창당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수홍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년 후에 치러질 총선에서 450명의 국회의원 중 절반인 225명을 뽑는 총선을 치르기로 선포한 상태였다.
 미국과 똑 같은 선거방식을 택한 것은 정부와 국회가 견제와 협의를 통해 한국을 좀 더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넌지시 물었다.
 “정치인들 아니 국회의원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요. 통일 이전의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비리덩어리 아니었습니까. 그것을 근절시키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총선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이수홍 대통령의 고민이 바로 그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통일이전의 남북한 인사들 대부분은 비리에 만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일도 뇌물이면 통하는 세상이 무려 6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수홍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비리를 근절시킬 생각이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그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겠군요.”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통일 이전의 정치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국민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한데 그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그보다는 미국이 문제입니다.”
 이수홍 대통령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표면적으로는 미국과 통일한국은 민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수홍 대통령의 희망사항은 핵무기에 대해서는 NCND정책으로 정리하고 장거리미사일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폐기하더라도 IRBM(중거리탄도미사일)은 보유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에 대해서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정책을 펼치게 되면 미국으로부터 포화상태에 이른 핵연료 재처리 문제도 양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미간의 원자력협정의 시한은 2014년이었지만 급작스럽게 찾아온 통일로 인해 2년 뒤로 미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시한이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때문에 원자력협정은 거론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통령님, 손안에 있는 핵무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통일 이전의 대한민국은 수출비중이 80%가 넘었기 때문에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강대국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싶어도 보유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8천만 명에 달하는 내수시장을 가진 지금은 입김은 통일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손에 넣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한국이 출범하자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한국의 입장을 지지를 표명하고 나서면서 동북아 전체가 묘한 기류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러시아가 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서는 이면에는 유아시아철도를 비롯해 송유관 등 경제적으로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이 자국의 무기를 사용했던 만큼 수백억 달러 아니 그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통일한국의 무기시장은 러시아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합니다.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핵무기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였다.
 뛰이.
 “대통령님, 맥그리거 대사가 예방했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맥그리거 신임 주한 미국대사가 부임 인사차 예방한 모양이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미국 정부가 매파인 맥그리거 대사를 한국으로 발령한 것은 압박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저는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이수홍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이현빈 대통령실장이 일어나 허리를 굽혀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또 어떤 행동을 보일지 궁금하군. 하지만 핵무기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맥그리거 대사가 매파라는 사실은 이수홍 대통령도 익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압박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인도가 그랬고 파키스탄이 그랬듯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면 미국도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
 일본과 대만을 의식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NCND정책을 묵인하는 수준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았다. 한국으로서는 러시아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지금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
 
 변칙적인 방법으로 헌법의 맹점을 이용한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은 또 다시 집권을 할 수 있었다. 예상 밖으로 고전하기는 했지만 다시 권좌에 오른 그는 대대적으로 숙청을 감행했다.
 총리 재직시절 공개적으로 푸틴 대통령을 비난했던 인사들은 비리를 저질렀다는 철퇴를 맞아야만 했다. 그렇게 감옥행 혹은 야인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무려 수백 명에 달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한국의 무기시장을 우리 것으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푸틴 대통령의 눈에 광채가 번뜩였는데 그 눈빛이 흡사 굶주린 승냥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뛰이.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상념에 젖어 있는 푸틴 대통령을 일깨웠다.
 “무슨 일이야?”
 “총리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드미트리 아나톨리예비치 메드베데프 총리가 들어섰다.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푸틴 대통령과 껄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밀약을 지킨 공로로 다시 총리에 기용된 것이었다.
 “어서 오시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소.”
 푸틴 대통령이 자리를 옮겨 앉자 메드베데프 총리가 맞은편에 앉았다.
 “홍상현 대사는 만나 보았소?”
 “네 각하, 아마도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을 보니 미국과 물밑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한국에 제시한 것은 로켓기술을 비롯해 공동개발을 통한 전투기의 기술이전 등 통일되기 이전의 대한민국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들이었다.
 “양키들이 수작을 부리고 있다 이 말이지······.”
 푸틴 대통령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민족주의가 강한 그는 미국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예전에는 국내의 경제상황이 열악한 관계로 사안이 생길 때마다 양보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유가로 인해 곳간이 가득해진 터라 이제는 미국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각하, 중국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메드베데프 총리가 얼굴을 들이밀며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네자 푸틴 대통령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중국을?”
 “각하께서 아시다시피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 혹은 더 낫다고 자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점을 이용하자는 말이오?”
 메드베데프 총리의 말뜻을 단박에 알아들은 푸틴 대통령이 되물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메드베데프 총리가 중국을 이용할 방법들을 설명해나갔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푸틴 대통령의 날카로운 눈빛은 쉼 없이 번뜩였다.
 한국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미국에게 자존심이 짓밟힌 중국은 와신상담 외국자본을 규제하는 등 내실다지기에 집중해 있는 상태였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오만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던 러시아를 발가락에 묻은 때만큼 우습게 여기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만든 무기의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기술을 제공하거나 러시아무기를 모방한 것이었다.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함재기, 바로 함재기입니다.”
 함재기로 사용될 J-15전폭기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항모를 운용해본 경험도 없고 J-15전폭기 자체가 러시아의 Su-33전폭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터라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러시아가 Su-33전폭기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중국은 우크라이나로부터 설계도를 빼내 J-15전폭기를 개발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항공기 기술이라는 것이 설계도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흐음.”
 중국에게 무기를 제공한 뒤 여러 차례나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는 터라 푸틴 대통령은 선뜻 메드베데프 총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침음성만 흘렸다.
 “중국은 함재기만 충분하다면 당장이라도 원양으로 나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미국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메드베데프 총리의 말인 즉,
 미국과 중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번개처럼 한국과의 문제를 해결해 버리자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제안이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봅시다.”
 “각하!”
 메드베데프 총리가 강한 톤으로 푸틴 대통령을 불렀으나 푸틴 대통령은 대답대신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앞으로는 중국 놈들에게 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다. 총리의 말도 일견 일리가 있지만 좀 더 심사숙고 할 필요는 있다.’
 
 같은 시각.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수홍 대통령과 김정남 총리가 머리를 맞대고 미국과의 협상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수홍 대통령이 총리에 김정남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할 때만 해도 정가가 크게 요동쳤으나 북한지역을 감안한 인사라는 점 때문에 곧 진정되었다.
 의외로 김정남 총리는 해외를 전전한 탓인지 탁 트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탓에 각 부처의 장관들과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통령님, 맥그리거 대사를 저대로 그냥 둘 것입니까.”
 맥그리거 대사는 공공연하게 한국을 비난하고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나마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고 있는 터라 한국 정부로서는 그를 제재할 명분이 없었다.
 “일전에 맥그리거 대사가 예방했습디다. 그 자리에서도 침을 튀어가며 우리 정부에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더군요.”
 이수홍 대통령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맥그리거 대사의 말마따나 과거 공산화 될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미국이요 통일이 된 것도 미국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도움으로 통일된 한국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내놓지 않으려고 하니 어찌 배신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미국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수홍 대통령은 손안에 들어온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입을 싹 닦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북한군이 사용했던 무기들 중에서 일부 포병장비와 미사일 그리고 상륙장비와 RPG-7휴대용로켓 등 개인장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태시킬 예정이었다.
 120만 명으로 계획하고 있는 정규군을 무장시키려면 단기적으로는 수백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며 10년 동안 무려 5천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구입해야 하기로 계획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 엄청난 양의 무기들 중 전투기를 비롯해 헬기전력과 공대공 공대지미사일 등 한국이 개발하지 못한 무기 전부 미국으로부터 사준다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핵도미노 현상을 우려한 미국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폐기시키면서까지 한국군을 자국산 장비로 무장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한미 양국을 갈등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 기회에 러시아산 무기로 바꾸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김정남 총리의 말에 이수홍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제 무기는 검증이 된 반면 러시아산 무기는 그동안 과대평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세계최고의 성능을 가졌다고 평가 받은 S-400지대공미사일에 사용된 기술 일부가 한국의 IT기술과 접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과 러시아의 무기 공동개발은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과의 영토문제도 있고 실제로 독도를 놓고 일본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터라 미국과 서방진영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럼 언제까지 미국에게 끌려만 다닐 생각입니까.”
 “우리가 가진 패를 하나 더 보여줄 생각입니다.”
 “우리가 가진 패라면······.”
 “장거리탄도미사일입니다.”
 ICBM은 포기를 할 의향이 있다는 의중은 아직 미국에게 내비치지 않은 상태였다. 동맹국인 미국과 전쟁을 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에 ICBM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한국으로서는 그저 가상 적국인 중국의 영토 대부분을 사정거리에 넣을 수 있는 IRBM정도만 보유하면 충분했다. 그 패가 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정도만 해도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모양새였다.
 “그 패는 너무 빨리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김정남 총리는 은근히 과거 북한이 보여주었던 벼랑 끝 전술을 펼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수홍 대통령은 단호했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의무가 있어요. 괜히 동맹국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은 삼갑시다.”
 “대통령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그나저나 군을 개편하는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수홍 대통령이 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현재 통일한국군은 120만 명을 목표로 개편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이한 점은 사단을 없애고 군단 예하에 6개 중(重) 여단체제로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통일이 된 만큼 기존의 해군함정들도 개명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고 이수홍 대통령 자신도 해군함정의 개명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군 조직을 개편하는 일이 우선인 터라 해군함정들의 개명작업은 체제 개편이 끝난 뒤로 미루어진 상태였다. 그동안 군 장비에 부여 되었던 K자를 C자로 바꾸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군 조직 개편 중 가장 먼저 끝난 곳은 합동참모본부였다. 통일된 한국이라는 의미로 합동참모본부가 통합참모본부로 바뀌었다.
 의장의 계급은 원수로 확정되었으며 통참(통합참모본부) 직할부대인 핵무기와 지대지 미사일 등을 통제하는 전략사령부와 해병대사령부 그리고 남북한 특수부대를 통폐합시켜 창설한 특수임무부대(제11군단)는 편제를 완료한 상태였다.
 3개 야전사령부와 1개 후방사령부의 사령관이 4성 장군이 맡고 있는 터라 각 군의 참모총장은 북한군이 사용했던 계급인 차수의 계급이 부여될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편제를 따르는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수홍 대통령은 뚝심으로 밀어붙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또한 잊을만하면 불거지는 장병들의 호칭 문제도 해결했다. 자신이 속한 부대가 아닐 경우 상대를 아저씨 혹은 아제라고 부르는 것은 군 기강에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대외적으로도 볼썽사납기 때문에 군인다운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위관급 이상 장교들에게는 직급을 부르게 하고 위관급 이하 장병들은 타 부대 장병들이라고 해도 자신보다 선임자에게는 계급 뒤에 반드시 ‘님’자를 붙이도록 했다.
 호칭문제를 위반하는 장병은 군기교육대 혹은 영창에 보내는 가운데 모범적인 장병에게는 특별휴가를 보내는 등 당근과 채찍 전략을 병행한지 1년여 만에 호칭 문제는 일단락 된 상태였다.
 “아직 절반 정도 밖에 편제를 마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터라 부대를 새롭게 편제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수홍 정부가 들어선 직후부터 군 부대 개편이 시작되었음에도 아직 절반 밖에 편제를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도 군 조직을 개편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라는 이수홍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기에 이 정도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30퍼센트 정도 밖에 편제를 마치지 못했을 터였다.
 “그 정도만도 빠른 것이지요. 앞으로 2년 정도만 사고가 없으면 좋겠는데······.”
 이수홍 대통령이 말끝을 흐렸다. 미국과는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국경은 중국군이 증강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군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있는 터라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
 
 통일한국의 초대 국방부 장관이 된 강태호는 군 장성 출신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이었다. 이 또한 이수홍 대통령의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 출신이어야 한다는 이수홍 대통령의 확고부동한 의지 때문이었다.
 “장관님, 요즘 중국군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정해국 통참의장은 정보부대에 가용할 수 있는 정보수단을 모두 동원해 중국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라고 특명을 내린 상태였다.
 “설마 국경을 넘기야 하겠습니까.”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중국이 전면전을 걸어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엔 상임이사국인 중국이라고 하더라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을 침략한다는 것은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놈들이 국지전을 걸어올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국민들에 대한 통제력이 강한 중국은 국지전을 치르더라도 손실이 크지 않겠지만 한국 국민들은 개방적인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국지전이 벌어지게 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사 놈들이 국지전을 걸어온다 하더라도 우리 군은 놈들을 궤멸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놈들이 국지전을 걸어오는 순간 우리 특전사령부 예하 장병들이 중국으로 잠입할 것입니다.”
 그 말은 중국이 국지전을 걸어올 경우 특수부대를 투입해 소수민족을 부추긴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중국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데 중국 정부도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제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러시아제 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빨리 결정을 내려주어야 무기를 선택할 터인데 큰일입니다.”
 군사 분야의 중장비는 도깨비방망이로 ‘나와라 뚝딱’하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무기를 선택해서 구매를 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못한 탓에 어떤 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선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이 실정이 통참의장으로서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대통령님과 총리님을 만나 다시 한 번 군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터라 강태호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우, 미국과 빨리 합의를 도출해야 할 터인데 답답하기 짝이 없구나.’
 
 ***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과 맥그리거 대사가 마주앉아 끝장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한미간의 의견차가 너무 큰 터라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장관께서도 아시겠지만 우리 미국은 수십 년 동안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보유는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그 무기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되면서 북한이 보유하고 있던 것을 자연스레 갖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투명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팟팟팟팟.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었다.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노려보고 있는 맥그리거 대사의 안면에 주먹이라도 꽂아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젠장맞을.’
 어금니를 꽉 깨문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이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길게 심호흡했다. 이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 정부도 한걸음 물러서겠습니다.”
 “한국이 어떤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도 본국 정부의 의지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말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가상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따라서 ICBM은 양보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장관께서는 조금 전에 제가 한 말을 곡해한 모양이군요. 본국 정부의 의지는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맥그리거 대사가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을 일축해버렸다. 사실 한국이 ICBM을 폐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맥그리거 대사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것이었다.
 한국이 이 정도 양보를 했으면 본국의 훈령을 기다린 뒤 다시 의논을 하자고 했어야 정상인데 강하게 나가다보니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만들 의지가 그렇게 강한데 미국은 어째서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 그것은······.”
 정곡이 찔린 터라 말을 더듬는 맥그리거 대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미국을 혈맹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미국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60여 년 동안 혈맹인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강력하게 지지를 했던 것입니다.”
 “으음.”
 맥그리거 대사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동안 우리는 MTCR(미사일기술 통제체제)과 한미 미사일지킴이라는 사슬에 묶여 우리 스스로를 지킬 자위수단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통일이 되면서 그 수단들이 손에 들어왔지요. 대사 같으면 그것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한국은 타국을 침략한 예가 없습니다.”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역설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맥그리거 대사에게 전해진 것인지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 반론을 펼치지 않았다.
 “ICBM을 포기할 의향이 있는 것도 혈맹인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을 위해 어마어마한 자금이 소요되는 무기시장의 독점권을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라도 여러 차례 도움을 준 미국을 돕고 싶은 것이 우리 정부의 마음이며 의지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한국이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미국은 한국을 더욱 압박할 수도 있고 현 상황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의 무기시장은 위축되어 있는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
 
 이수홍 대통령이 NSC(국가안보회의)를 주제한 것이 벌써 쉰다섯 번째였다. 한국의 통일은 국제정세에 태풍의 핵이 될 수밖에 없는 터라 국무회의를 주제하는 것만큼이나 잦을 수밖에 없었다.
 “외교통상부 장관, 요즘 미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일단은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당장에 가지고 가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내보인 패는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하던 것 중 하나였다. 따라서 한국의 제안은 미국으로서는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당장 이양해 가라고 압박을 해오고 있는 중이었다.
 올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 받기로 합의한 상태이지만 통일한국 정부는 아직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이 된 이상 전시작전통제권은 반드시 이양 받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압박의 수준이 약해진 것을 보면 미국도 우리가 내민 패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최종적으로는 핵무기를 현 단계에서 동결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수홍 대통령의 시선이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에게서 강태호 국방부 장관에게로 이어졌다.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는 몇 개나 됩니까.”
 “현재까지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통일이 된 이후 미국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면서도 핵탄두의 개량과 생산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100킬로톤급 핵탄두 50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의 핵 동결은 한국으로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였다.
 “흐음.”
 이수홍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머릿속은 중국 혹은 주변국과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50기의 핵탄두가 충분한 핵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미국과 동맹관계가 유지되는 한 일본과 전쟁을 벌일 일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원만한 상태라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둘 수밖에 없다. 과연 50기의 핵탄두로 중국에게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통일이 된 이상 간도지역의 반환요구는 필연이었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잦은 마찰을 빚게 될 것이므로 주변국과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대상이 중국일 가능성이 높았다.
 “국방부 장관, 우리가 보유한 핵탄두로 중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 말에 NSC에 참석한 관계 장관들이 놀란 눈으로 이수홍 대통령을 쳐다보았다.
 “만약을 가정한 것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억지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 본인의 판단입니다.”
 ···라는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이수홍 장관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국 전역을 초토화시키려면 최소한 100기 이상의 핵탄두가 필요할 것입니다.”
 “100기라······.”
 현재 한국이 가진 기술력을 감안한다면 핵탄두 숫자를 50기를 더 늘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단지 미국과의 관계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핵탄두를 늘리는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미국과 협상을 진행하면서 핵탄두를 최대한 많이 늘립시다.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보수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데 어느 정도가 더 필요합니까.”
 “현재 성능이 개선 된 백두와 금강을 비롯해 4대의 피스아이와 3척의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이지스함은 12척의 미니 이지스함의 건함계획이 잡혀 있기 때문에 차치하고서라도 한반도 전체를 24시간 동안 쉼 없이 감시하려면 피스아이도 4대 정도 더 필요한 상태였다.
 시급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최소한 3기 이상의 정찰위성을 비롯해 글로벌호크급 고(高) 고도 무인정찰기도 8대 정도가 필요하며 해상초계기를 비롯해 낙후된 대잠헬기를 교체하는 등 대잠전에 대한 강화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흐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지겠군요.”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언급한 정보수단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소요되는 자금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거기에 C4I(전술지휘통제체계)를 비롯해 링크K로 명명되었던 링크100(전술데이터링크)의 구축도 시급한 상황이었다.
 엄청난 양의 무기획득비용과도 맞물려 있고 해군함정의 건함계획도 잡혀 있는 터라 이 어마어마한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앞이 깜깜할 정도였다.
 “그렇습니다. 자세한 것은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
 세세하게 보고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터라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서면으로 보고한다는 것으로 대답을 마무리 했고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이 끼어들었다.
 “대통령님, 통일예산을 무기를 획득하는데 투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 자금은 북한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통일비용의 필요성은 통일이 되기 이전에 공론화 된 상태라 통일된 이전에 국회에서 통일비용으로 조성한 200조였으며 대기업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이 무려 20조였다.
 통일비용으로 1천조 혹은 그 이상의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인 것을 감안한다면 220여 조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현재 120조에 달하는 자금을 북한지역에 쏟아 부었지만 내전으로 폐허가 된 곳만 복구하기에도 빠듯했다. 이에 이수홍 대통령은 북한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글로벌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천연자원의 가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탓에 북한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자원과 싼 노동력은 글로벌기업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아직 남아 있는 통일비용 100조를 투입하지 않고도 북한지역의 낙후된 SOC(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북한지역의 천연자원에 대한 권리는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통일비용이 넉넉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직 투입하지 않고 있는 100조를 자금을 무기 혹은 정보자산을 획득하는데 쓴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 돈은 SOC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북한지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쓸 돈이었다.
 따라서 지금은 다소 어렵더라도 국채를 발행하거나 세금을 더 거두는 등 다른 방법을 써서 자금을 확보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발발한 북한의 내전 때문에 편성했던 긴급 자금을 비롯해 2013년의 특별회계 국방비 중에서 전력증강에 소요되는 자금은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과의 알력 때문에 2년 동안 전력증강비를 집행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2012년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전력증강예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인데 그 자금이 무려 50조가 넘었다.
 이렇듯 엄청난 예산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통일이 된 만큼 방어할 영토도 넓어진 터라 필요한 장비도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태되어야 할 전투기가 많은 공군은 비상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제2장. 총성 없는 전쟁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시발점이 되었던 글로벌경제 위기는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신용이 강등되면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상황이 악화일로를 치닫자 유로체제의 버팀목이었던 독일이 마르크화의 부활을 요구하는 시위가 격해지면서 유럽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비관론을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연일 현재 불어 닥치고 있는 글로벌경제 위기는 1929년 10월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대폭락 즉 검은 목요일에서부터 출발한 대공황을 능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비관론을 주장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될 즈음에는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지금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들이 많은 관계로 대공황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일부 극단론자들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차 대전에 필적하는 대규모 전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글로벌경제가 홍역을 앓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국가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이었다. 글로벌경제 위기 속에서도 홀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내실이 튼튼한 성장이 아니라 공산당 주도로 밀어붙이기식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관계로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삶이 윤택해질수록 좀 더 많은 자유와 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이 가진 습성이었다. 그런데 인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중국 당국의 억압으로 인해 소요사태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중동의 민주화 시위의 시발점이 되어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들을 몰아냈던 재스민 혁명이 들불처럼 다른 국가로 퍼지고 있는 와중에 통일한국의 등장은 중국 당국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쾅.
 “젠장맞을!”
 티베트에서 또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는 말에 시진핑 주석이 탁자를 강하게 내리치며 분개했다. 임기 5년의 국가 주석은 2번 이상의 연임을 할 수 없다는 헌법에 따라 후진타오 주석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공산당이 최상위 권력기관인 중국은 표면적으로는 헌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회가 있지만 실제로 중국을 움직이는 실제 권력은 중앙군사위원회와 정치국 상무위원회였다.
 아직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후진타오는 덩사오핑 전 국가 주석과 장쩌민 전 국가 주석이 그랬듯이 막후에서 중국 지도부를 조종하고 있었다.
 에둘러 표현을 삼가고 있지만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첫 임기 내에 확실한 업적을 세워야 하는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예기치 않은 통일한국의 등장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간도문제로 통일한국과 충돌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잦아지는 소수민족들의 민주화 운동은 시진핑 주석을 짜증의 도가니로 밀어 넣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한민족과 전쟁을 치렀던 중국의 왕조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핵 강국이다. 창검으로 전쟁을 했던 시대가 아니다.’
 그렇게 자위를 해보지만 그럴수록 6.25전쟁 당시 중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대가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도 더 강해졌다.
 핵무기를 보유한 통일한국은 간도 문제를 공론화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뛰이.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시진핑 주석의 상념을 깨트렸다.
 “무슨 일이야.”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터라 목소리 자체도 까칠할 수밖에 없었다.
 “총리 동지께서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
 “넷.”
 잠시 후,
 인민복 차림의 리거창 총리가 들어섰다. 시진핑 주석의 라이벌이기도 한 그는 한때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보다 더 주목을 받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주석 동지,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입니까.”
 “어서 오시오. 총리 동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 복잡하구려.”
 시진핑 주석이 자리를 옮겨 앉자 시진핑 부주석도 맞은편에 앉으며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주석 동지, 러시아가 한국의 무기시장을 탐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한국이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유지한다면 우리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 뒤에는 미국이 버티고 있소.”
 사사건건 미국과 충돌을 빚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겁내는 것은 아니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중국은 미국과 정면으로 충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중국인 특유의 자만은 중국이 미국과 동등하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시진핑 주석 아니 중국 지도부들이 미국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예전과는 달리 중국도 미 본토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큰소리를 치면서도 미국을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돈은 넘쳐나지만 기술이 부족한 터라 아직 미 해군의 항모전단을 상대할 해상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바르야그호를 개조해 취역한 스랑호와 진수를 앞두고 있는 2척의 원자력항모에 올릴 함재기만 충분하다면 미 해군의 항모전단과 어느 정도 자웅을 겨룰 수 있다고 자신하는 중국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았다.
 Su-33전폭기를 가피한 J-15전투기를 개발하고는 있지만 함재기라는 것 자체가 일반 전투기에 비해 최첨단 기술이 더 많이 들어가다 보니 J-15전폭기의 개발은 요원한 상태였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미국이 과연 우리와 전쟁을 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시진핑 주석 역시 다른 중국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과 툭하면 마찰을 빚었었다. 그 때마다 미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섰던 것이 중국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 것이었다.
 근래 들어 중국이 미국에게 양보한 것은 한반도가 통일 될 당시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은 물론이고 중국 지도부 모두가 미국을 아예 종이호랑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주석 동지, 일단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맺은 조약의 당위성을 내세워 한국을 압박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반응을 보자는 것이오?”
 아직 북한과 맺었던 조약에 대해 한국이 아직 거론을 하고 있지 않은 터라 그 조약들이 유효하다 할 수 있었다. 통일 이전에도 한국과 중국의 교역은 1500억 달러가 넘었었다.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통일한국에게 중국의 거대한 시장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아직 북한과 중국이 맺은 조약들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나선지구를 개방해주는 대가로 50년 간 나선항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얻은 중국은 나선항을 이용한 패가 상당히 많았는데 리거창 총리가 언급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나선항은 한국의 영토이지만 우리의 영토이기도 합니다.”
 “흐음.”
 고개를 끄덕거리는 시진핑 주석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리거창 총리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러시아 때문이었다.
 ‘나선항에 군함을 보낼 경우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다. 통일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알력을 빚게 된다면······.’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공산권의 맹주 자리를 중국에 넘겨야만 했던 러시아였지만 아직도 전 세계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통일한국의 등장이 껄끄러운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러시아와 알력을 빚는 것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주석 동지, 제 생각에는 러시아에 밀사를 보내 양해를 구하는 한편 푸틴의 손에 제법 큰 당근을 쥐어 준다면 우리가 나선항에 군함을 파견한다고 해도 러시아에서 문제를 삼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의 의중을 읽은 리거창 총리가 얼굴을 들이밀며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밀사라······.”
 밀사라는 말은 창검을 주 무기로 삼던 시대에나 사용했던 말이었다. 요즘은 좀 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특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런 점을 모르지 않을 리거창 총리가 밀사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보다 은밀하게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도 덩달아 밀사라는 단어를 뇌까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맡겨 주신다면 제가 깔끔하게 처리해 보이겠습니다.”
 “총리 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어떤 복안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려.”
 “서너 가지 방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방법이 바뀌게 될 것임으로 주석 동지께 말씀을 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리거창 총리의 표정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매사에 신중한 총리가 자신감을 보이는 것을 보면 러시아와 교감이 있었던 모양이로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시진핑 주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나선항에 군함을 파견하는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오. 상무위원들을 소집해 의견을 모아보겠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거창 총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집무실을 나섰다.
 
 ***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고 있는 김동연 국가정보원 원장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격변의 중앙에 선 통일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보다 정확하고 의미 있는 정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통일한국 시대에 걸맞게 부서를 개편하느라 한때는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통일 이전보다 덩치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국정원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요원들을 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의 특사로 보이는 자가 비밀리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이거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걸까······.”
 보고서를 내려놓은 김동연 국정원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묘한 시기에 중국의 특사가 러시아를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국가정보원의 수장으로써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대통령님께 보고는 해야겠지?”
 보고서를 들고 일어서려던 김동연 국정원장이 도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저들의 의도가 뭔지 밝혀낸 이후에 보고해도 늦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대통령에게 확인되지도 않은 일을 보고하는 것 보다는 중국이 특사를 러시아에 보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결론을 내린 김동연 국정원장이 인터폰을 눌렀다.
 뛰이.
 “네 국장님.”
 “1차장에게 내가 좀 보잔 다고 전하시오.”
 잠시 후,
 눈매가 날카로운 유광수 제1차장이 들어섰다. 특이하게도 그는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가 아니라 국정원 출신이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요원 중 한 사람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유광수 제1차장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자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를 집은 김동연 국정원장이 자리를 옮겨 앉으며 유광수 제1차장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오.”
 “네 원장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인 유광수 제1차장이 김동연 국정원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유 차장은 중국이 러시아에 특사를 보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고 있소?”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해줄 것을 주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광수 제1차장이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이를 테면 핵무기 문제?”
 “중국은 조만간 우리가 간도문제를 들고 나올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한국을 상대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보다 유리할 것입니다.”
 “흐음.”
 김동연 국정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음성을 흘렸다. 미국이 핵무기 해체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도 경제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러시아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러시아도 한국의 핵무기 문제를 걸고 나올 경우 미국은 경제제재라는 강력한 무기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한국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군.’
 “유 차장, 러시아에 있는 요원들을 통해 한국 정부가 러시아제 무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현역 장교들을 상대로 실사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시오.”
 국정원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몇 가지 대책을 세워놓고 있었는데 정보를 흘려 상대를 기만하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괜찮겠습니까.”
 유광수 제1차장이 엄지를 세워 보이며 물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전례였고 원칙이었다.
 “그냥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뿐이니 문제가 될 것도 없소.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차라리 중국의 특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고 러시아 마피아의 소행으로 꾸미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에 김동연 국정원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유광수 제1차장의 말처럼 마피아가 저지른 것처럼 일을 꾸밀 수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종종 일어나는 것이기에 부담을 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동연 국정원장은 러시아 정부에 보다 확실한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시간을 벌려는 것이었다.
 
 ***
 
 한반도 주변국들 가운데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보유한 통일한국의 등장을 가장 껄끄럽게 여기고 있는 국가는 독도와 동해표기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일본일 수밖에 없었다.
 전범국인 독일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피해보상 문제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며 주변국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그에 반해 독일과 똑 같은 전범국인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자존심을 뭉개는 행동만 일삼으며 보통국가로 나아가려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타국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려는 행동도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불쾌감만을 심어주었다.
 “빠가야로.”
 2013년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온 자민당은 평화헌법을 아예 헌법에서 삭제시키기 위해 조용히 은밀하게 의견을 모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언론에 그 일을 흘려버리는 바람에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과 중국 등 과거 일본에게 짓밟혔던 국가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일본 대사를 불러 일본 정부의 진실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등 비교적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일본을 강하게 비난하며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난사군도에 군함을 파견하겠노라고 천명하는 등 평화헌법으로 촉발된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게는 비공식 루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했기 때문이다.
 “총리 각하, 고정하십시오. 언론에 평화헌법에 대한 것을 흘린 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고노 관방장관이 대가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하네다 총리는 극우성향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다. 그 영향 때문에 내각 구성원들 중에 극우성향이 있는 인물들도 상당수였는데 고노 관방장관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겠지. 문제는 그 자가 꼬리를 자를 수 있다는 것이오. 이 기회에 우리 일본의 미래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모두 쳐내야 할 것이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나카야마 외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보였다.
 “어서 오시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요?”
 “중국이 러시아로 특사를 보낸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평화헌법을 헌법에서 삭제하는 문제로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중국이 러시아로 특사를 보냈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 오랑캐들이 또 무슨 수작을 벌이려고······.”
 “총리 각하, 센카쿠열도 문제 때문에 특사를 보낸 것이라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고노 관방장관의 말인 즉,
 중국이 무력을 사용하기 위해 러시아에 특사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최첨단기기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과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본의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었다.
 무려 20년 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영업과 중국의 값싼 노동력 그리고 천연자원을 무기삼아 도전해오는 터라 일본은 글로벌경제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본의 장점인 부품소재 산업도 곧 한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인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천연자원을 무기삼아 글로벌경제를 호령하는 중국과의 무력충돌은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진핑 그 자가 끝내 우리와 해보자는 것인가.”
 하네다 총리가 이를 부드득 갈며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으로서는 중국이 무력행사를 한다 하더라도 대응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칙쇼, 그 놈의 평화헌법에 발목이 잡히지만 않았더라도······.”
 아마도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앞세워 무기를 개발했을 것이기 때문에 재래식 전력만 놓고 본다면 미국에 버금가는 전력을 갖추었을 터였다.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럽시다. 외상께서는 크리스 대사를 만나 미국 정부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시오.”
 미국의 동맹들이 다 그렇다시피 일본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미국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이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미국을 배경으로 두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서방진영의 운명이기도 했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지칭하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점이 바로 가면 속에 숨어서 온갖 악행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이 특히 그런 양면성을 보이고 있는데 일본주재 미국 대사인 크리스도 그런 사람들 중 한사람이었다.
 “하하하, 외상과 이런 자리를 갖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포르노 왕국이라고 하지만 정작 포르노의 제국은 일본이었다. 온갖 형태의 변태행위가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아메바처럼 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번지고 있었다.
 고귀한 성을 돈을 주고 매매하는 것은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성매매관광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만만치 않다보니 세계 각국은 형식적으로만 단속을 할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변태들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리스 대사와 나카야마 외상 사이에 있는 식탁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그녀의 몸에는 온갖 종류의 사시미와 샐러드가 올려져 있었다.
 “자자자, 한잔 하시지요. 난 이런 맛에 일본이 좋다니까.”
 크리스 대사가 잔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원샷으로 잔을 비운 뒤 나신 위 젖무덤에 올려져 있는 고깃점을 집어 들었다.
 “크크크크, 난 요기에 있는 게 왜 이리도 감칠맛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 정부의 속내를 물어보고 싶지만 자칫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나카야마 외상은 그저 크리스 대사가 말할 때마다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크리스 대사께서 원하신다면······.”
 나카야마 외상이 말끝을 흐리며 수도로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그런 행동은 미성년자도 제공할 수도 있음을 나타낸 것인데 그것을 마다할 크리스 대사가 아니었다.
 “흐흐흐, 외상께서는 좀 더 은밀한 자리를 원하는 것 같군요.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렇습니까. 대사께서 흡족해 하시니 저도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나카야마 외상이 손뼉을 두어 번 쳤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30대 중반의 아리따운 여성이 들어섰다. 고위 공무원들을 많이 상대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름다고 귀티가 촬촬 흐르는 미모였다.
 “아까 말해둔 것 있지? 30분 후에 나갈 터이니 준비해주게.”
 “네 장관님.”
 일본인 특유의 공손함이 엿보이게 예를 올린 여자가 밖으로 나갔다.
 “오늘 대사와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흐흐흐, 기대가 됩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분 후,
 나카야마 외상과 크리스 대사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요정을 나섰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국가정보원 소속 요원들이었다.
 미국과 관계가 소원한 상태이다 보니 한국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에 대한 일환으로 일본 지부 요원들을 대폭적으로 늘린 상태였다.
 “그냥 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뻔 하잖아. 이곳은 일본이야 일본, 포르노의 천국 일본이란 말일세.”
 권수철 요원이 다소 거친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특명을 받고 충원된 요원이었다.
 “대기하고 있는 요원에게 연락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요원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미행을 하게 되면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릴레이식 미행이었다.
 일본 지부의 요원들은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다른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릴레이식 미행을 하더라도 목표를 놓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던 이수홍 대통령은 집무실로 되돌아와 국방부에서 올린 보고서를 보고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통일이 되었을 당시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1,600원대를 오르내렸었다. 주가는 아직도 1,5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환율은 1,200원대까지 떨어져 통일이 되기 이전의 수준을 거의 되찾고 있었다.
 통일로 인해 주가는 1,000선에서 환율은 1500원대 이상이 최소한 10년 동안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통일한국의 초대 대통령을 선출한지 불과 1년6개월 만에 통일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한 것은 제2의 새마을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가장 못 사는 국가 중 하나였다.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만 했고 동맹국들의 원조에 의지해야 했던 국가였다.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잘 살아보세’라고 외치며 국민들을 차돌처럼 단단하게 뭉치게 만든 새마을운동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칭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을 정도로 새마을운동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로 똘똘 뭉친 통일한국의 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세계 만 방에 보여주었다.
 “후우.”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쉰 이수홍 대통령이 국방부에서 올린 보고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사청(방위사업청)이 사업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군.”
 이수홍 대통령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방사청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 때문이었다. 방사청에서는 지금 과거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던 낙후된 전투기들을 해체와 재조립을 통해 역설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각에서는 낙후된 전투기에서 얻어낼 기술이 없을 것이며 괜한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방사청은 낙후된 전투기에서 기술을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낙후된 전투기들을 분해조립과 역설계를 하는 와중에 러시아제 전투기들의 발전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미그-29전투기의 분해조립과 역설계를 통한다면 원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사청의 생각이었다.
 전술통제기를 비롯해 고등훈련기를 개발하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FA-50전투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공동개발사인 록히드마틴사가 핵심기술을 이전해주지 않은 터라 기술자립도는 50~60퍼센트 수준에 불과했다.
 과거 북한군이 사용했던 낙후된 전투기들의 발전하는 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미그-29전투기를 분해조립과 역설계를 통해 전투기 분야의 기술자립도를 90퍼센트 이상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그것이 결코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미국의 압박이 약해진 것을 보면 우리가 보여준 패가 통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무기구매 의사를 타진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
 현재 가장 시급하게 확충해야 할 장비는 전투기였다. 작전기의 절반이 도태되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중국은 국경에 병력을 증강시키는 등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압박을 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해 글로벌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과 3차 F-X사업의 유력한 후보기종인 F-35스텔스전투기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한국에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유러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의 제조사인 EADS(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사가 3차 F-X사업은 물론이고 통일이 되면서 덩치가 커진 X-F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EADS사는 3차 F-X사업에 참여하면서 3단계로 나누어 한국에서 면허 생산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거기에 더해 X-F사업에 공동참여 하면서 한국형전투기를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부품으로 한국에서 최종 조립한다는 방안인데 그 기초가 되는 기종이 바로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였다.
 이런 파격적인 제안에도 한국이 선뜻 응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와 ICBM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3차 F-X사업에 T-50(Pak-Fa)스텔스전투기로 참여할 것을 천명했다. 거기에 더해 T-50스텔스전투기를 기반으로 X-F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는 S-400대공시스템과 차세대 대공시스템인 S-500이 한국의 IT기술과 접목해 이룬 성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러시아와의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는 것도 꽤나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정부도 S-400대공시스템을 개발할 당시의 상황을 역설하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인상으로 한국 정부를 유혹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T-50스텔스전투기 역시 F-35스텔스전투기와 마찬가지로 개발이 지지부진한 탓에 러시아제 전투기가 선택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대가로 한국의 무기시장의 독점권을 약속했기 때문에 결국 3차 F-X사업은 미국제 전투기가 선택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보유한 F-15전투기의 제조사인 보잉사와 F-35스텔스전투기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지만 고민이 많은 한국 정부는 선뜻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보잉이냐 록히드마틴이냐 그것이 문제인데 후우, 답이 안 나오는군.”
 록히드마틴사의 F-35스텔스전투기를 선택하자니 기술이전도 거의 없고 정비도 미군이 지정한 정비창에서 받아야 하는데 록히드마틴사가 아시아의 F-35스텔스전투기의 정비창을 일본에 둔다는 것이 문제였다.
 통일이 된 만큼 3차 F-X사업의 규모도 커졌는데도 록히드마틴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F-35스텔스전투기의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도 한국 정부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F-35스텔스전투기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남은 기종은 한국이 들여왔던 F-15전폭기와 세미스텔스기로 개량한 F-15SE전폭기 그리고 FA-18E/F 슈퍼호넷 전투기뿐이었다.
 한국이 보잉사로부터 슬램이글(구 F-15K)을 구입할 당시 절충교역으로 요구한 기술이전에 대해 약속을 어긴 것을 비롯해 F-15전폭기의 생산라인이 폐쇄되었다는 이유로 부품을 바가지 씌운 사실 때문에 선뜻 보잉사를 선택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뛰이.
 인터폰소리가 이수홍 대통령의 상념을 깨웠다.
 “국방부 장관께서 오셨습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법,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왔다는 말에 이수홍 대통령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잠시 후,
 집무실로 들어선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허리를 굽혀 보였다. 이에 보고서를 들고 자리를 옮겨 앉은 이수홍 대통령이 강태호 국방부 장관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 많았었는데 잘 왔습니다. 그리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인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빈 자리에 앉았다.
 “ADD(국방과학연구소)와 방사청이 이번에는 일을 제대로 할 모양입니다.”
 “2025년 양산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방사청장 말로는 양산을 시작할 무렵이면 전투기 분야의 기술자립도를 95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호, 그래요?”
 이수홍 대통령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항공기분야의 강대국들이 스텔스전투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에 비한다면 F-15전폭기에 준하는 성능을 가진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어쩌면 비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2025년경이면 지구의 하늘은 온통 스텔스전투기가 날아다닐 터인데도 비 스텔스전투기 개발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강 장관께서는 3차 F-X사업에 어떤 기종이 적합하다고 봅니까.”
 “미국제 전투기들이 후보기종이니 뻔 하지 않겠습니까.”
 전투기 확충이 시급한 터라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아무래도 개발이 덜 끝난 F-35스텔스전투기보다는 당장이라도 들여올 수 있는 F-15전폭기와 FA-18E/F전투기 쪽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수홍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다가 이내 어떤 결심을 했는지 당찬 얼굴로 변했다.
 “강 장관, 슬램이글로 3개 비행단을 완편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네에?”
 슬램이글 전투기로의 3개 비행단의 완편,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누구도 슬램이글로 3개 비행단을 완편 하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다.
 이수홍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편제한다면 무려 360대의 슬램이글 전투기를 보유한다는 뜻인데 이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F-16전투기와 FA-50전투기를 감안한다면 가히 동북아 최강의 공군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꿀꺽.”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전력 확충이 가장 시급한 곳이 바로 공군 아닙니까.”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야금야금 들여올 것이 아니라 큰 것 한방으로 일괄 구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가격도 후려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파는 쪽에서 제시하는 금액을 왕창 후려치는 국가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국가들이 브라질과 인도였다. 그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수홍 대통령의 말도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이 없는 탓에 절충교역에 너무 집착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바가지도 옴팡 쓴 것 아니겠습니까.”
 지극히 옳고도 옳은 말인지라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절충교역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AESA(능동전자주시사식레이더)레이더를 탑재하더라도 슬램이글 전투기를 들여올 때보다 훨씬 싸게 후려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존의 슬램이글 전투기들도 AESA레이더로 교체를 해주는 조건입니다. 아, 스나이퍼 포드 등 전자장비도 포함되겠군요.”
 “으헉.”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터트렸다. 무려 60대나 되는 슬램이글 전투기에 그 비싼 AESA레이더를 공짜로 달아달라는 것도 모자라 스나이퍼 포드 등 전자 장비를 무상으로 달아줄 것을 요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슬램이글 300대와 최소한 다섯 소티에 해당하는 암람(중거리공대공미사일)을 들여온다면 불황에 허덕이는 미국 경제도 숨통이 트일 것입니다. 아, 되도록 EA-18G그라울러 전자전기도 10대 정도 구매하는 것도 타진해 보십시오.”
 이런 정도의 옵션 구매라면 미국 정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좀 더 비싸게 팔기 위해 공작을 펼칠 터이지만 결국은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한국이 제시한 당근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대, 대통령님, 설마 공군에 몰빵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해군도 록히드마틴사가 제안한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12척을 보유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SPY-1F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한 미니 이지스함의 가격이 척당 1조 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장보고3 사업을 비롯해 FFX(차기 호위함)도 건조하고 있는 것 등을 감안한다면 해군에만도 최소한 20조에 가까운 예산이 필요한 상태였다.
 “몰빵을 한다기보다는 가장 시급한 전력부터 확충하자는 것입니다. 해군은 필요한 예산을 당장 투입하지 않아도 되고 육군은 과거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던 장사정포가 있지 않습니까. 아파치공격헬기 2개 대대라면 당장은 충분할 것으로 봅니다.”
 이수홍 대통령이 조목조목 짚어가며 말하자 강태호 국방장관으로서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통일이 되기 이전에 슬램이글 전투기를 들여올 때 프로그램코스트 가격으로 1.2억 달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국방에 관한한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이수홍 대통령의 국방 분야에 관한 지식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 된 것은 외교안보 라인의 비서관들이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과의 알력 때문에 무기에 관한 정보를 수도 없이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AESA레이더를 포함해 1억 달러 정도를 목표로 협상을 하면 되겠군요.”
 그 말은 8천만 혹은 9천만 달러를 제시해 협상을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무려 300대의 전투기와 그에 필요한 중거리공대공미사일을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한국이었다. 따라서 미국도 마냥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00억 달러 정도라면 전투기 도입을 비롯해 피스아이와 글로벌호크 그리고 공중급유기와 부족한 대잠초계기를 확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인은 이 일괄적인 사업을 맹호사업이라고 명명하겠습니다.”
 즉흥적이긴 했지만 한국이 호랑이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제3장. 더러운 밀약
 
 
 
 
 
 
 통일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리비아의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40년이 넘는 철권통치를 해온 독재가 무하마르 카다피가 자신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사살된 사건이 뉴스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무하마르 카다피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모습이 방영되자 리비아 국민들은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리비아가 독재자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새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과 대선을 실시한다고 천명할 때까지만 해도 리비아의 미래는 장밋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리비아의 상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리비아의 새로운 내전의 시작은 시민군 즉 NTC(과도국가위원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하마르 카다피를 축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유럽 즉 나토 국가들은 NTC가 이라크 등 기존의 서방 국가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의 지도부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얼마가질 못했다.
 정부군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행동이 과격해지던 시민군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무하마르 카다피에 대한 신병처리는 국제관례에 따라 행동했어야 옳았다.
 무하마르 카다피가 시민군에게 생포되어 피를 흘리며 모습이 전 세계로 방영되었는데 그 장면이 호송되는 과정에서 시민군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사실이 밝혀진 것이 리비아를 미래가 불확실성한 세계로 이끈 것이었다.
 무하마르 카다피를 자신이 죽였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로 인해 무하마르 카다피를 지지했던 부족의 반발을 불러왔고 무하마르 카다피가 처참하게 살해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차남인 사이프 알 이슬람은 격분하면서 결사항전을 외쳤다.
 사이프 알 이슬람이 니제르 등 주변국과 리비아를 오가며 게릴라전술을 펼치자 무하마르 카다피를 추종하던 자들도 세를 모아 가세하면서 리비아는 끝을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하나······.
 NTC는 리비아가 해방되었음을 선포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리비아는 전통적으로 동 서 지역의 갈등이 심했던 국가였다. 140여 개의 가문과 무려 500여 개의 부족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NTC는 해방선포에 앞서 무하마르 카다피를 지지했던 부족을 끌어안는 한편 각 부족들과도 의견을 모아야 했다.
 그런 문제점들을 뒤로한 채 성급하게 리비아가 독재자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선포하고 무하마르 카다피의 시신을 안일하게 처리했던 것이 빌미가 무하마르 카다피를 지지했던 부족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된 것이었다.
 NTC가 거의 그대로 이동한 임시정부는 새 헌법의 초안조차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무하마르 카다피를 축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나토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이권에 개입하면서부터 리비아는 다시 분열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리비아의 내전으로 인해 졸지에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신세가 되어버린 유럽 국가들은 군사적 개입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들의 엄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리비아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무하마르 카다피를 지지했던 부족들이 NTC를 강하게 비난하며 십자군을 운운하며 복수를 천명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었다.
 나토 국가들은 카다피를 축출할 때에는 독재자를 축출하겠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명분조차 없기에 유럽 국가들은 미국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린 실정이었다.
 “우리 국민들의 소개하는 작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시민군과 무하마르 카다피의 친위대가 내전을 벌일 당시 국민들과 교포들을 소개할 때 구설수에 올랐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한국 정부는 리비아가 내전에 휩싸이자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리비아 국내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이자 이수홍 대통령은 독도함과 대조영함을 지중해로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민간선박이 아닌 군함을 보낸다는 것은 자칫 갈등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지만 한국만 군함을 보낸 것이 아니라 다수의 국가들이 군함을 보내 자국민들을 소개시키고 있어 큰 문제는 없었다.
 “리비아에 거주하고 있던 국민들과 교포들 대부분은 독도함에 태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 그래요?”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의 대답에 이수홍 대통령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현재 리비아에는 건설사 직원 8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그들도 독도함에 승선하게 되면 곧바로 한국으로 귀환하게 될 것입니다.”
 “국내의 반응을 어떻습니까.”
 이수홍 대통령이 구용희 내무부 장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정부의 재빠르고 단호한 대처에 국민들이 대체적으로 호의적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단호하고도 발 빠른 대처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군함을 파견함으로써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가 경직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어쩌면 리비아 내전의 여파가 주변국으로 확대될 수도 있으니 그런 점도 염두에 두고 리비아의 주변국 상황도 예의 주시하기 바랍니다.”
 “네 대통령님.”
 장관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수홍 대통령이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 장관, 미국 쪽에서는 아직 좋은 소식이 없습니까.”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반대했던 강경파들이 방위산업체들과 무기 로비스트들의 압력에 버티지 못하고 강경입장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무기 로비스트들의 압력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비리를 저지를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는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데 온갖 명목으로 지원받은 무기 로비스트들의 자금이 지금에 와서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기 로비스트들의 입김이 통하기 시작했군요.”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뜻을 단박에 파악한 이수홍 대통령의 말에 이석철 외교통상부 장관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달 안으로 어떤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달이라······.”
 이수홍 대통령이 내달이라는 말을 뇌까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에 묵묵히 듣고만 있던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대통령님, 중동 국가 전체가 내전에 휩싸이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 등 강대국이 그런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민주화시위가 발생한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없을 터였다.
 그리고 또 한 곳,
 사사건건 미국과 알력을 빚고 있는 이란도 요주의 대상이었다. 재스민 혁명의 여파가 자국에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혁명수호위원회와 이란 정부는 인터넷 매체의 검열을 강화하는 등 검열과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어 국민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중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중 그 어느 한 국가라도 내전이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발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휘청거리고 있는 글로벌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럴 때 제7광구를 개발할 수만 있었어도······.’
 중국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통일 이전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7광구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천명하고 국제사회로부터 7광구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인정받아냈다.
 7광구에 매장된 가스와 원유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매장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것이 확인 되었으나 당시 대한민국은 7광구를 개발할 기술과 자원이 없어 일본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국익보다는 개인의 영달에 목을 매었던 위정자들 때문에 이제는 7광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7광구에 막대한 양의 천연자원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일본과 중국은 오랫동안 로비를 펼쳐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7광구를 개발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중국은 이어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7광구를 아예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해적이나 할법한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타국의 유전에서부터 100킬로미터 이내에서는 유전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 국제법이었다. 그것은 빨대효과 때문인데 중국은 그 같은 국제법을 아예 무시해 버리고 7광구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동남아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스프래틀리(난사군도)군도에 툭하면 군함을 파견하기도 했고 또 2011년에는 인도에 병사들을 보내 무려 17곳이나 되는 벙커를 파괴하기도 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러 국제사회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7광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중동 전체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더라도 우리 국민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너지를 총괄하는 주무 장관으로써 엄청난 양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 제7광구가 남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용희 내무부 장관이 정호영 에너지부 장관의 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아직 안정을 되찾지도 못한 지금 중국과 충돌을 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그럼 제7광구를 포기하자는 말씀입니까.”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면서 회의실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이수홍 대통령이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나섰다.
 “아아아, 그만, 그만들 하십시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언쟁을 벌이던 두 사람이 이수홍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여전히 상기 되어 있는 상태였다.
 “두 분께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7광구에 대한 권리를 다시 찾아오는 것도 맞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도 맞습니다. 사람은 흥분하게 되면 혜안이 흐려지는 법입니다. 당면한 과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갑시다.”
 “송구스럽습니다.”
 언쟁을 벌였던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에 이수홍 대통령이 강태호 국방부 장관에게로 다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중국이 국경에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국방부 장관께서는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이에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국제 깡패가 되어버린 중국은 중국내 소수민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국지전을 걸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게 가장 예민한 것은 소수민족이었다. 그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면 중국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예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중국도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어찌 국지전을 걸어올 수 있겠습니까.”
 “인도 역시 핵 강국입니다. 그런 인도를 상대로 병사들을 보내 벙커를 파괴한 자들이니 무슨 짓인들 못 하겠습니까.”
 강태호 국방부 장관은 중국이 국지전을 걸어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을 상대로 국지전을 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보다는 한국과 국지전을 벌이는 것이 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시비를 벌이고 있는 일본에게도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는 이점도 있었다.
 “우리의 대응수위는 정해졌습니까.”
 “일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만약 중국이 국지전을 걸어온다면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11군단 즉 특임대를 투입해 사회전반에 걸쳐 혼란을 야기하겠다는 뜻이었다. 개편된 군단들이 6개의 중(重) 여단으로 구성되는 것과는 달리 11군단은 10개 여단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과거 대한민국의 특수부대와 북한군 특수부대를 합쳐 만든 11군단이 가진 능력은 중국 전역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혹여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됩니까.”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면 중국은 한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칠 수 없습니다. 11군단이 가진 작계(작전계획) 중 하나가 바로 소수민족을 자극하고 RPG계열의 로켓을 지원해주는 것입니다.”
 과거 북한군이 7호 발사관이라고 명명했던 RPG계열의 로켓은 파괴력도 클 뿐만이 아니라 휴대도 용이한 터라 쉽게 중국 내로 반입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개량된 RPG계열의 로켓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군이 사용했던 로켓은 소수민족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흐음, 그렇군요. 강 장관은 회의가 끝나면 집무실에서 그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를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강태호 국방부 장관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중국이 국지전을 걸어오기 전에 미리 RPG계열의 로켓을 지원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수홍 대통령이 강태호 국방부 장관과 독대를 하려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오싹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RPG계열의 로켓으로 무장한 소수민족들이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중국은 감히 한국을 상대로 국지전을 걸 생각을 하지 못할 터였는데 이 같은 생각이 바로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수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특사를 접견한 푸틴 대통령은 특유의 싸늘한 눈빛을 번뜩이며 미소를 지었다.
 중국 특사의 제안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중국에게 여러 차례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는 터라 푸틴 대통령은 특사의 애간장만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중국은 Su-33전투기를 모방해 개발하고 있는 J-15전투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보유한 전투기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J-15전투기를 개발하고 말겠다는 중국의 의지다.’
 그렇다면 중국이 원하는 대로 Su-33전투기를 파는 대가로 최대한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어마어마한 무기시장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제안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중국이 내미는 당근을 덥석 물지 않고 낼름거리기며 중국 특사의 애간장만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한국 정부에서도 어떤 결론을 내릴 때가 되지 않았나······.”
 과거 소비에트연방 시절에 KGB에서 근무했던 푸틴 대통령은 일선 장교들을 상대로 러시아제 무기의 성능에 대해 검증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지금 한국이 원하는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국가는 러시아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 한국 정부가 일부러 정보를 흘린 사실을 알면서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과 충돌케 한 뒤 그 사이에 한국의 무기시장을 장악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사전작업을 하고 있는 터라 푸틴 대통령으로 미국의 움직임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뛰이.
 “총리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메드베데프 총리가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그래 카일 대사는 뭐라고 합디까.”
 “말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고 있지만 표정으로 보아 아직 한미간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흐음.”
 푸틴 대통령이 턱을 쓰다듬으며 신음을 흘렸다. 한미 간의 지금과 같은 관계가 3개월 정도만 더 지속된다면 한국의 무기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러 관계를 동맹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중국이 원하는 Su-33전투기를 판매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완제품으로 구입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그리고 3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 아닙니까.”
 러시아는 2009년 중국에게 2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는 대가로 20년 간 매년 30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해 주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중국은 Su-33전투기를 완제품 형태로 구입하면서 또 다시 35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원유 혹은 가스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는데 이는 메드베데프 총리의 말대로 러시아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나 마찬가지였다.
 “흐음.”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하지만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창궈 대사에게 내일 만나자고 전하시오. 그리고 총리는 특사와 점심식사나 하시오.”
 푸틴 대통령이 특사가 아닌 창궈 대사를 만나려는 것은 주변국들이 특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정보부에 몸을 담았던 경험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주변국들의 정보부 요원들의 시선을 자신이 아닌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돌리고 자신은 느긋하게 일을 마무리 지을 심산이었는데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방법 치고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결심이 서신 것입니까.”
 “이미 Su-33전투기의 다운그레이드는 완료된 상태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소?”
 러시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북한이 내전에 휩싸일 때부터 이런 상황을 가정해 중국에 제공할 50대의 Su-33전투기의 다운그레이드를 완료해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중국과 미국이 충돌하는 사이 한국의 무기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중국에 제공될 Su-33전투기의 다운그레이드를 완료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구매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대기하고 있는Su-33전투기 50대가 중국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양키들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지는군.”
 푸틴 대통령이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그 눈빛은 먹이를 눈앞에 둔 백호의 눈빛이었고 야망의 화신이 불태우는 투지의 눈빛이었다.
 
 다음날.
 푸틴 대통령과 마주앉아 있는 창궈 대사는 중국인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과장된 행동을 곁들여 덕담을 건넸다. 생각 같아서는 능글거리는 창궈 대사의 면상에 주먹이라도 꽂아 넣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꾹 눌러 참으며 창궈 대사의 덕담에 화답했다.
 “창궈 대사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 자신감은 아마도 백호의 기세도 누를 듯 해보입니다.”
 가시가 내포된 말임에도 불구하고 창궈 대사는 여전히 능글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이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자 창궈 대사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대통령 각하께서 저를 은밀하게 부르신 것을 보니 중요하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창궈 대사를 한 차례 쏘아보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머쓱해진 창궈 대사가 엉덩이를 뒤척였고 그제야 푸틴 대통령이 말문을 열었다.
 “특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소.”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푸틴 대통령의 말에 창궈 대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에 푸틴 대통령이 강한 톤으로 단서를 달았다.
 “그 대신!”
 “러시아에서 원하는 조건이 뭔지 몰라도 우리 정보는 가능한 것이라면 수용할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궈 대사가 말을 끊자 푸틴 대통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푸틴 대통령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접하고 나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창궈 대사가 머쓱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숙여보였다.
 “중국 정부가 한 가지 제안을 수용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Su-33전투기를 인도해 줄 수도 있소.”
 “아 네네.”
 푸틴 대통령의 눈빛에 기가 죽은 창궈 대사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만약 내가 원할 경우 한국과 국경에서의 긴장감을 조성해주시오. 국지전이 벌어진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중국의 뒤에는 우리 러시아가 있으니 유엔에서 문제를 삼아도 걱정 없을 것이오.”
 푸틴 대통령이 중국의 뒤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었다. 한국이 미국과 다시 밀월관계가 될 것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중국에게 국지전을 걸게 하는 한편 유엔에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러시아는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문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세상사란 의도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푸틴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자칫 중국 정부가 모든 것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창궈 대사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가는 것은 그 역시 중국이 난처한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 말을 다한 푸틴 대통령은 팔짱을 낀 채 느긋한 표정으로 창궈 대사를 쳐다보았다.
 ‘왕빠단, 이 작자가 아주 돌아버린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어쩌랴?
 칼자루를 쥔 쪽은 러시아인 것을.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지만 그 순간 자신의 미래도 없어지는 것임으로 괘씸하고 약이 오르지만 인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언급한 문제는 제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알겠소. 그럼 본국의 훈령을 받은 뒤 다시 만납시다.”
 결론을 내리지 못할 위치에 있는 사람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푸틴 대통령이 창궈 대사와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는 시진핑 주석과 리거창 총리 두 사람 모두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창궈 대사로부터 러시아가 Su-33전투기를 판매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잔칫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러시아가 Su-33전투기를 판매하며 내건 조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싹 바뀐 것이었다.
 “푸틴, 이 작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요구를 한 것인지 모르겠군.”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어떤 이유로 그 같은 조건을 달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터라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탓에 대외적으로는 서로 협력하고는 있지만 과거 러시아와 중국은 무력충돌을 빚기까지 한 사이라 양국은 동맹이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점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러시아에서 민감한 요구를 해온 터라 중국 지도부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러시아의 요구가 과연 국익에 부합하느냐 그것을 먼저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의 요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덥석 받아들였다가는 자칫 엄청난 국부를 날릴 수도 있기 때문에 리거창 총리의 말대로 푸틴 대통령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교부장으로 서열이 상승한 우다웨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주중 주한 대사관의 외교특사를 거쳐 외교부 한반도 특별대표를 역임한 그는 저돌적인 면이 있는 인물로 중국 최고의 한반도 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순간 러시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그래도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를 몰살시킬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소. 외교부장의 말대로 종이호랑이임에는 틀림없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니요.”
 리거창 총리가 우다웨이 외교부장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핵무기요? 그것은 정치적인 무기이지 전쟁에서 사용될 무기가 아닙니다. 따라서 푸틴의 요구는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겉치레일 뿐입니다.”
 “흐음.”
 우다웨이 외교부장의 말을 들은 시진핑 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을 흘렸다. 러시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리거창 총리의 말도 맞고 푸틴이 자존심을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는 우다웨이 외교부장의 말도 아주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랑호를 빈껍데기로 둘 수도 없으니 이거 고민이로군.’
 한국의 독도함이 탑재할 헬기도 없는 행사용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자금을 들여 취역한 항공모함이 행사용으로 전락한다면 절대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중국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 통일한국 때문에 우리의 경제여건도 튼튼해졌다. 설사 서구 자본이 빠져나가더라도 우리가 받는 타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겪기는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수 있는 중국 경제의 기반을 다져주는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안이 너무나도 중대한지라 시진핑 주석 독단적으로 결정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시다.”
 중국의 명목상 최고 권력기관은 전인대(전국인민대표자대회)이며 산하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전인대 폐회기간 동안 전인대를 대표해 전인대의 직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 실질적으로 중국을 이끌어가는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주석 동지, 상무위원회까지 갈 것 없습니다. 주석 동지께서 결정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우다웨이 외교부장이 다시 한 번 강경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자 리거창 총리가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장, 주석 동지께서 상무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처리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듣지 못했소?”
 “······.”
 리거창 총리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자 우다웨이 외교부장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자자자, 그만하고 이만 회의를 마칩시다.”
 종회를 선언한 시진핑 주석이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이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밖으로 나가고 우다웨이 외교부장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쾅.
 “왕빠단.”
 우다웨이 외교부장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거친 반응을 보였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초일류 강대국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던 그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무시해버려도 될 사안을 가지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까지 가지고 가기로 한 결정이 마뜩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시진핑 주석은 집무실로 이동해 홀로 깊은 고뇌에 빠졌다.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주고서라도 당장 Su-33전투기를 확보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상무위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과제였다.
 ‘외교부장의 말대로 먼저 조치를 한 뒤에 상무위원회에 보고를 했어야 옳았던 것은 아닐까.’
 결정을 번복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중국 집단체제는 겉으로는 평화로워보여도 물밑으로는 그 어느 국가보다도 권력싸움이 치열했다.
 비록 국가 주석직에 오르기는 했지만 중국 집단지도체제의 특성상 국가 주석이 되었다고 해서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실질적인 중국의 최고 권력자인데 후진타오가 아직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유지하고 있는 탓에 중국의 최고 권력자는 아직도 후진타오 주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곧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도 꿰차게 될 터이지만 한치 앞의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사였다. 따라서 시진핑 주석으로서도 몸조심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한번 뱉은 말을 되 담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괜히 구설수에 오르는 것보다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맞다.’
 그때였다.
 똑똑똑.
 인터폰을 통해 알리면 될 것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고개를 갸우뚱거린 시진핑 주석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인기척에 화답했다.
 “들어오시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리거창 총리가 들어섰다.
 “총리 동지께서 웬일이시오?”
 “주석 동지께서 답답해하실 것 같아 온 것입니다.”
 리거창 총리가 시진핑 주석의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답답했었는데 마침 잘 오셨소.”
 “러시아의 요구 때문입니까.”
 리거창 총리의 물음에 시진핑 주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상무위원회에서도 주석 동시의 뜻대로 통과될 것입니다.”
 중국 집단지도체제의 특성이 또 하나 있는데 집단지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지도자 반열에 오른 사람이 제출한 법안이나 의견은 거의 통과된다는 것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요구사항도 다소 시간이 걸릴 따름이지 시진핑 주석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100퍼센트에 가까웠다.
 “러시아가 판매하기로 결정한 Su-33전투기가 50대라고 하지 않았소? 50대 가지고는 지금 건조하고 있는 항모에 탑재하려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보이는데 총리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시진핑 주석이 슬쩍 화제를 돌렸다.
 중국이 지금 건조하고 있는 2척의 항공모함은 취역한 스랑호와는 달리 원자력추진을 채택했으며 규모도 스랑호보다 규모가 훨씬 큰 함정이었다.
 중국이 계획하고 있는 항공모함에 탑재될 전투기는 스랑호에 2개의 전투공격비행대대 그리고 지금 건조하고 있는 항공모함은 3개의 전투공격비행대대로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러시아가 판매하기로 한 50대의 Su-33전투기는 기존에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함재기를 감안한다고 해도 부족한 면이 있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것과 러시아가 판매하기로 한 50대를 합친다고 해도 스랑호와 또 한 척의 항모를 무장시킬 수 있는 정도 밖에 안 됩니다.”
 따라서 50대 이상의 Su-33전투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이는 러시아와 협력해 얼마든지 추가로 들여올 수 있지만 그것은 푸틴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시진핑 주석이 신음을 흘렸다.
 “주석 동지,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선양군구의 제39기계화 집단군 예하 1116혼성사단을 훈련을 명목으로 좀 더 한국 쪽으로 이동 전개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116혼성사단을 말이오?”
 “일단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푸틴에게도 그가 요구하는 것을 수용한다는 모양새가 될 것입니다.”
 한국과의 국경에는 무경사(무장경찰사단) 등 16집단군 예하 부대들이 전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통일이 된 이후 선양군구 직할부대인 무경117사단과 무경120사단이 추가로 전개해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2개 무경사를 추가로 전개해 놓았지 않소. 그 정도 병력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116혼성사단을 추가로 전개할 필요가 있겠소?”
 시진핑 주석은 현재 한국과의 국경에 3개 무경사를 비롯해 16집단군의 예하부대들을 전개해 놓은 것도 많다고 보고 있었다.
 “물론 한국과의 국경에 전개 되어 있는 병력들이 과한 면은 없지 않습니다. 훈련을 목적으로 116혼성사단을 한반도 쪽으로 전개해 놓는다면 푸틴은 우리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믿게 될 것입니다.”
 “흐음.”
 시진핑 주석이 다시 한 번 신음을 흘렸다.
 리거창 총리의 말대로 116혼성사단을 한반도 쪽으로 전개해 놓는 것만으로도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만큼의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반도 쪽에 전개 되어 있는 병력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만 가지고는 육군력이 막강한 한국을 상대로 국지전을 펼칠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이 되기 이전에도 육군의 전력만 놓고 본다면 미 육군과 대등한 파괴력을 가진 한국군이었다.
 통일이 된 지금은 더욱 강해져 육군전력만으로 세계 최강인 러시아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진 상태였다. 그런 한국군을 상대로 무장이 빈약한 부대가 국지전을 건다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한국군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기회에 한국군의 기를 눌러 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시진핑 주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동지와 상의해 116혼성사단을 한반도 쪽으로 전개하도록 하겠소.”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총리 동지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답답함이 많이 가셨구려. 우리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좀 더 진지한 대화를 나눕시다.”
 “하하하,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리거창 총리가 호탕하게 웃으며 먼저 일어났다. 그러고는 마치 무협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행동을 해보였다. 그러자 시진핑 주석도 껄껄거리며 자신이 마치 무협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한 행동으로 화답했다.
 
 ***
 
 하네다 총리로부터 모종의 지시를 받은 나카야마 외상은 굳은 얼굴로 크리스 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그는 크리스 대사에게 향락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똑똑똑.
 “들어와.”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츠보미가 들어섰다. 포르노 배우 출신인 그녀는 예쁘고 귀여운 얼굴로 한국 남성들에게도 국민 여동생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다. 그런데 어느덧 정객들을 상대하는 요정의 주인이 된 것이었다.
 “크리스 대사님께서 오셨어요.”
 “안으로 모시거라.”
 “네.”
 츠보미가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 나간 뒤 밝은 표정의 크리스 대사가 들어섰다.
 “하하하, 제가 좀 늦었지요.”
 “아닙니다. 저도 방금 전에 왔습니다. 앉으시지요.”
 크리스 대사가 나카야마 외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나카야마 외상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박수를 쳤다.
 짝짝.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츠보미만큼이나 예쁘고 귀여운 용모의 아가씨들이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상을 들고 들어왔다.
 “이따가 다시 부를 터이니 너희들은 그만 나가 있어.”
 “네.”
 크리스 대사가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자자, 한잔 하시지요.”
 나카야마 외상이 술이 담긴 도자기 주전자를 들자 크리스 대사가 술잔을 들어 내밀었다.
 쪼르륵.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영롱한 빛의 액체가 두 개의 술잔에 채워졌다.
 “드십시다.”
 나카야마 외상이 따끈하게 데운 사케를 단숨에 비웠다. 이에 크리스 대사도 원샷으로 화답했다.
 “오늘 대사를 만나자고 한 것은 대사와 더불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하하하, 좋지요. 저는 이렇게 외상과 함께 있을 때가 더 없이 편안합니다. 아마도 외상께서는 저에게 마음의 안식처인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아부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나카야마 외상에게 받은 향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무려 500만 달러라는 현금까지 뇌물로 받은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 대사에게는 나카야마 외상이 안식처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크리스 대사, 당신은 통일한국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나카야마 외상이 미묘한 문제를 거론하자 크리스 대사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그러자 나카야마 외상도 정색을 하며 목소리에 악센트를 주었다.
 “미국은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이 무엇입니까. 이건 배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크리스 대사에게 향응을 제공하며 크리스 대사가 한국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 나카야마 외상은 미국 우월주의자인 크리스 대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렇다고 한국을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한국이 동북아의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한국이 무너지게 되면 일본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이 미국이 지닌 아킬레스건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통일로 인해 막강해진 한국이 중국 혹은 러시아 진영으로 넘어가게 될 경우 일본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발언권이 약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지형적으로 한국은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칼끝과도 같은 형태였다. 그런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진영에 가세할 경우 일본은 고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진영에 가세할 경우 대만도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이 배 째라는 식으로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고 있어도 강력하게 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대책을 세우자는 말입니다. 미국과 우리 일본 아니 나와 대사가 힘을 합친다면 대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나카야마 외상이 얼굴을 들이밀며 은근한 투로 말을 건넸다.
 “대안이라면······.”
 “예를 들자면 중국과 한국이 충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카야마 외상의 말인 즉,
 크리스 대사에게 미 의회를 설득해 달라는 뜻이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이 중국과 충돌할 경우 자국을 방어한다는 목적으로 한국에 자위대를 파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화헌법도 무력화시키려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게 되면 국민들이야 반발하겠지만 중국과 무력충돌을 빚고 있는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었다.
 어차피 한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임으로 일본은 앉아서 달콤한 열매를 따 먹고 미국은 한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폐기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음으로 미국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 같은 계획을 수립한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충돌하게 만드는 공작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미국은 단지 우리 정부의 입장만 이해해주면 됩니다.”
 “흐음.”
 크리스 대사의 입에서 고뇌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나카야마 외상이 눈빛을 번뜩이며 의미심장한 말을 뱉었다.
 “어차피 크리스 대사께서는 우리와 한 배를 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크리스 대사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새삼스럽게 왜 이러십니까.”
 탁.
 나카야마 외상이 품속에서 소형녹음기와 CD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본 크리스 대사는 온 몸의 털이란 털은 죄다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이게 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께한 지난날들이 이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크리스 대사는 맥이 쫙 빠져 나갔다. 물론 국가를 위해 자수를 한다면 일본 정부의 만행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매장을 당할 수밖에 없는 터라 눈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내가 이 냄새나는 원숭이들의 함정에 빠지다니······.’
 “아무리 높은 파도라 할지라도 협력이 잘 되면 배는 무탈하게 파도를 넘을 수 있습니다.”
 “······.”
 지금으로서는 크리스 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따라서 나카야마 외상의 말에 대답할 말도 없었다. 그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카야마 외상을 노려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크리스 대사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바람에 어색한 침묵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나카야마 외상은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미국이 국제사회에 욕을 먹는 일도 아니니 나도 살도 미국도 살려면 일본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비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결론을 내린 크리스 대사가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휴우, 제가 할 일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 이외에 대사께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함께 배를 탄 동지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추후에 또 다른 일을 부탁할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말에 크리스 대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아차 싶었던지 나카야마 외상이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
 “한국과 중국이 무력충돌을 할 경우 이 녹음기와 CD는 대사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보장합니까.”
 그 말에 나카야마 외상이 또 다른 소형녹음기를 꺼내 크리스 대사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한 대화는 모두 이안에 녹음되어 있습니다.”
 크리스 대사가 작정하고 녹음기를 언론에 건넨다면 나카야마 외상은 물론이고 하네다 내각은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나카야마 외상의 이런 행동은 배수의 진을 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즉 당신 혼자 죽게 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라는 무엇의 메시지였다.
 ‘일본인들이 무섭다고 하더니 정말로 무서운 자들이로군. 소름끼칠 정도야.’
 이제야 비로소 과거 일본이 강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 크리스 대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하하, 의견이 통한 것 같으니 이제 즐겨봅시다.”
 짝짝짝.
 나카야마 외상이 호탕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자 상을 들고 들어왔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들어와 나카야마 외상과 크리스 대사 옆에 앉아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호호호, 아잉~”
 품안에 묻혀 아양을 떨고 있는 아가씨를 내려다보는 크리스 대사의 눈동자가 흔들림을 보였다.
 ‘흐흐흐, 크리스 너는 헤어나지 못할 덫에 걸린 셈이다.’
 나카야마 외상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도 유사시 똘똘 뭉쳐야 할 동맹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이 와해되지 않는 한 말이다.
 한국의 가상적국들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을 사이에 두고 밀약이 오가는 가운데 한국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미국의 주일대사는 일본 정부의 간악한 술수에 걸려 일본 정부의 꼭두각시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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