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블러드 제너럴

1화

2019.01.11 조회 2,471 추천 20


 Prologue
 
 
 
 
 
 
 
 내 평생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해 왔으며 이제껏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노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명.
 
 위대한 군인, 농노의 아들로 태어난 블러드 제너럴이라 불리는 크리스 폰 나시엔만은 달랐다. 분명 전장에서 불운한 운명을 맞이했어야 할 그가 어떻게 무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 마가레트 왕국은 제국과의 전쟁에서 멸망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래서 오히려 내 예언이 틀린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 운명의 예언서 발췌
 
 
 
 
 
 Chapter 1 전쟁의 조짐
 
 
 
 
 
 
 
 “난······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이다. 웬만한 연예인들은 내 앞에서 명함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잘생긴 얼굴에 쫙 빠진 몸매. 크~ 정말 완벽 그 자체지.”
 
 밀이 익어 가는 황금빛 들판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던 소년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왜 이딴 곳에서 밭이나 갈아야 하냐고!”
 
 느닷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소년.
 
 더 이상 바랄 수도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자신인데 왜 이런 생뚱맞은 곳에서 농노라는 신분으로 밭이나 갈고 있어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거하게 한 잔 하고 옆에 누군가를 끼고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뿐인데······.
 
 “그래. 농노는 농노답게 밭이나 갈면 되지, 휴.”
 
 잠시 하늘을 노려보던 소년은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다시 밭을 갈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열다섯 살에 신분은 귀족도 아닌 농노······ 내 인생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이런 젠장!!”
 
 챙그랑!
 
 한동안 말없이 밭을 갈던 소년은 또다시 버럭 외치며 들고 있던 쇠스랑을 거칠게 내팽개쳤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고 체념을 하려고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치솟아 오르는 가슴속 깊은 무언가를 억누를 수 없었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매일이 똑같은,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
 
 밤에는 사육당하는 가축들처럼 좁디좁은 통나무집에서 부모와 동생들과 한데 뭉쳐 잔다.
 
 그런 휴식 시간도 잠시, 동이 트기도 전에 부랴부랴 잠에서 깨어나 영주 직영지를 경작해야만 했고 끼니라고 부르기도 정말 미안한, 개나 돼지도 먹지 않을 정도의 부실한 음식을 받아먹었다.
 
 “아침저녁으로 겨우 두 끼. 그걸로 어떻게 살아! 게다가 무슨 북한 식량 배급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삼시 세끼를 입이 호사를 누리는 음식을 먹었던 그였다.
 
 아침은 프랑스 요리, 점심은 김치와 찌개가 들어가는 푸짐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한정식, 저녁은 담백한 일식이나 와인을 곁들인 양식.
 
 미식가를 자처하는 그라서 매번 맛있는 곳이 아니면 절대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먹는 거친 음식.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개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을······.”
 
 하지만 어쩌리? 살기 위해서는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을 테니까.
 
 그런 생활을 벌써 3년째 하고 있었다.
 
 “차라리 군대나 갈까? 영지 수비군들은 밥은 안 굶고 산다던데······.”
 
 군대라도 가야 하냐는 생각이 들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꿈에서라도 다시 군대에 입대하는 것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었다. 군대를 다녀온 모든 이들이 똑같다. 예비군 훈련도 가기 싫어서 온갖 핑계를 대는데 하물며 재입대야. 두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다.
 
 그런데 단지 배를 곯지 않기 위해 군 입대를 생각해야 하는 자신이 괜히 서글퍼지는 그였다.
 
 “내가 왜 이딴!”
 
 퍽!
 
 소년이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솥뚜껑만 한 손이 날아와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아얏!”
 
 눈앞에 밤이나 되어야 보이는 별이 보였다.
 
 하나도 아니고 수많은 별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버지인 햄버트가 아니면 감히 누가 자신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냅다 갈길 수 있을까?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 느낀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머리를 얻어맞는 것보다 기분 나쁜 것은 또 없으니까.
 
 “이익!”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아버지를 노려보던 소년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성질 참 좋아졌다. 에휴.”
 
 본래의 성질대로라면 아버지고 뭐고 다짜고짜 멱살부터 쥐고 흔들었을 터였다.
 
 “일하기 싫냐? 굶고 싶어?”
 
 뭐라고 한마디 딱 쏘아붙여 주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자신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아버지에게 그만 기가 죽어 꼬리를 말고 말았다.
 
 “쳇, 착한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지기 싫은 성미에 힐끔 쳐다보며 혀를 차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제나 무뚝뚝한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다.
 
 말수도 적고 행동으로 자신을 내보이는 그.
 
 거기에 차가운 눈빛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그.
 
 그런 아버지를 아직 힘으로 그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저 흘깃 쳐다보며 투덜거리는 것 외에는.
 
 괜히 자신의 성질대로 했다가는 더 골치가 아파질 것이 자명했다.
 
 “휴우, 지친다, 지쳐?”
 
 하는 수 없이 체념하고 쇠스랑을 다시 집어 들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밭을 갈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오늘 저녁마저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마지못해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러한 몸짓이었다.
 
 햄버트는 맥 빠진 소년을 보고는 ‘쯧쯧’ 소리 내어 혀를 찼다.
 
 “빨리빨리 움직여. 오늘도 영주성에 불려가서 치도곤을 당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네 녀석 때문에 애꿎은 식구들이 그런 같잖은 꼴을 당하는 것이 기분 좋다면 계속 꾸물거려도 좋다.”
 
 무뚝뚝한 햄버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소년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휴, 이놈의 인생은 왜 이리 박복한지, 원······.”
 
 혼자 중얼거리는 소년을 향한 햄버트의 눈빛이 잠시였지만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
 
 언제나 겉으로는 냉정함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아비로서 자식에게 해 준 것 하나 없이 어려서부터 밭을 갈게 했고, 가축처럼 사육당할 수밖에 없는 신세로 만든 것이 정말 미안했다.
 
 ‘크리스, 네 녀석 마음은 잘 안다. 애비라고 어찌 네 마음을 모르겠냐? 마치 사육당하는 가축과 같은 신세인 네 녀석과 네 동생들을 보면 그저 미안한 마음밖에는 없다. 후우.’
 
 목구멍까지 그 말이 치밀어 올랐다.
 
 미안하다는 말이.
 
 하지만 그 생각을 말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중심을 딱 잡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족들을 지키는 길이었으므로.
 
 ‘너만 아니었으면 십팔 년 전 그날······.’
 
 자신의 피붙이인 크리스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십 수 년 전 영주의 목이 떨어지던 그날, 자신의 목 또한 내놓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매일매일 고생을 하고 있는 피붙이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기도 했다. 그냥 고집을 꺾고 새 영주에게 봉사를 했다면 지금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햄버트는 한숨을 내쉬듯 중얼거리며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명에 간 영주였다.
 
 평민이었던 자신에게 뛰어난 자질이 있다며 기사의 작위를 수여했던 영주였다. 마치 부모처럼 전쟁 고아였던 자신을 언제나 살뜰히 살펴 주던 그였다.
 
 자신의 주군, 때로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영주를 죽인 자에게 봉사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심장이······.
 
 햄버트의 그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심장은 신임 영주를 향할 때면 차갑게 식어만 갔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충성의 대상이었던 영주는 죽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피붙이들 때문에 신앙과도 같았던 기사도를 저버렸다는 사실로 인해 꽤 오랜 세월을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야만 했다.
 
 “제가 잘하는 것일까요?”
 
 누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한 번쯤은 그리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햄버트의 물기 어린 시선이 영주성으로 향했다.
 
 “차라리 그때 영주님을 따라갔어야 합니까?”
 
 아직까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의문이었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이.
 
 자신의 주군을 따라 가지 않은 것이.
 
 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뭘 저리 중얼거리지? 일도 안 하고. 쳇.”
 
 크리스는 상념에 빠져 있는 햄버트를 곁눈질로 쳐다보고는 별수 없다는 듯 밭을 갈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 며칠 계속해서 영주성에 불려가 치도곤을 당했던 그의 가족들이었다. 게다가 저녁밥도 얻어먹지 못했다. 물론 그 원인의 제공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크리스 자신이었다.
 
 “휴. 인생 참 더럽게도 꼬이네.”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는 크리스. 오늘 하루 내뱉은 그의 한숨은 자신의 나이보다 많았다.
 
 
 
 * * *
 
 
 
 본헤이 제국.
 
 여느 왕국과는 다르게 널따란 홀.
 
 값비싼 대리석 기둥과 바닥. 그리고 거기에 깔린 붉은 양탄자에 가득 새겨진,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만 같아 보이는 황금 사자 문양이 제국의 위용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양편으로 놓인,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의자들은 벌써 각자의 주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들 앞의 테이블에는 은색 찻잔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가장 상석에 있는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된 옥좌의 주인만은 아직 자리에 없었다.
 
 웅성웅성.
 
 수많은 귀족들은 저마다 오늘 소집에 대한 의견을 나누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정식 국사를 처리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중대한 발표가 있다는 명(命)으로 모였지만 도무지 황제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었기에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끼이익.
 
 귀에 약간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며 옥좌의 옆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60대로 보이는 대머리 노인이 들어섰다.
 
 웅성거리던 홀은 삽시간에 조용해지며 등장한 노인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음. 역시 이 분위기가 좋단 말이야.’
 
 노인은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시종장이였다.
 
 그는 항상 황제가 등장하기에 앞서 홀로 들어선다. 그러고는 자신에게로 주목되는 바로 이런 시선을 즐기곤 했다.
 
 그런 것을 바로 호가호위(狐假虎威)라고 하는 것이리라.
 
 “황제 폐하 납시오.”
 
 가래가 잔뜩 낀 것처럼 들리는 불쾌한 목소리로 황제의 등장을 알리는 시종장.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귀족들의 얼굴은 마치 소태를 씹은 것처럼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귀족들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예를 표했다.
 
 “자리에들 앉으라.”
 
 화려한 수가 놓인 의복을 입은 6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황제가 뒷짐을 쥔 채 천천히 등장했다. 황제의 목소리는 감히 누가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잔뜩 서려 있었다.
 
 뒤를 이어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황태자가 등장했다.
 
 “황태자를 뵈옵니다.”
 
 허리를 폈던 귀족들은 또다시 허리를 숙여 황태자를 맞이했다.
 
 “예를 그만 거두고 자리에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황태자의 목소리에는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위엄과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작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홀 전체를 낮게 울리는 묘한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귀족들은 황제보다 황태자를 더 두려워하면서도 따르는지도 몰랐다.
 
 귀족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황제가 먼저 운을 뗐다.
 
 “오늘 경들을 이 자리에 청한 이유는······.”
 
 위엄이 가득 담긴 황제 특유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은 귀족들의 시선이 그의 입에 집중되었다.
 
 갑자기 꿀이라도 먹은 것인가?
 
 귀족들은 기다려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황제를 이상하다 생각했다.
 
 꿀꺽!
 
 그들의 목울대가 출렁거리며 침을 삼키는 소리가 황제의 귀에 들리는 듯했다.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극도의 긴장감을 해소하려는 행동인 것 같았다.
 
 ‘쥐새끼만도 못한 것들.’
 
 황제는 자신을 바라보는 뭇 귀족들의 불안한 시선을 느끼며 내심 그들을 잔뜩 비웃었다.
 
 황제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강력한 황권을 손에 거머쥔 이후 귀족들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일종의 유희와도 같았다.
 
 그가 황태자 위(位)에 있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황권이 미약할 대로 미약했으니까.
 
 황제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득였다.
 
 귀족들은 그의 시선이 자신들의 속내를 훑어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어 몇몇 귀족들은 황제의 시선을 감히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지은 죄가 있는지······.
 
 원래대로 돌아갔던 황제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러고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네 차례라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황태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경들 모두가 잘 알 것이오.”
 
 순간 귀족들 몇몇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황태자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껏 비웃음을 날렸다.
 
 황제와 비슷한 웃음을.
 
 ‘감히 제국에······ 하지만 그대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훗.’
 
 속마음은 감춘 채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황태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첩보에 의하면 마가레트 왕국이 불측하게도 비밀리에 군사를 모은다고 하오. 덧붙여 십 년 전 속국을 자처한 그들이 공공연히 칭제(稱帝)를 하고 있소이다.”
 
 황태자의 음성은 칭제라는 단어에서 격앙되었다.
 
 그와 같은 첩보를 미리 접한 몇몇 고위 귀족들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귀족들의 안색은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가,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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