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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9.01.24 조회 2,558 추천 14


 프롤로그
 
 
 
 
 
 무림 역사상 다시없을 거대집단을 창설한 자, 백의천(白義天)!
 
 ‘고금천추제일천하환우무적최강지존(古今千秋第一天下環宇無敵最强至尊).’
 
 그를 부르는 성인들의 칭호였다.
 
 그리고 성인이 아닌 중원의 이야기꾼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삼초무적자(三招無敵者)!
 
 그는 나서지 않는다. 동시대에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천하제일이라고 불렸을 두 호법이 모든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그가 검을 뽑았을 때, 상대는 삼 초를 버티지 못했다.
 
 천하십대고수 중 수위에 드는 갈무혁이 그의 손속에 두 팔을 잃었고, 정파의 상징인 소림의 방장이 가슴이 뻥 뚫린 채로 시원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런 그가 세운 파천무황성(破天武皇城).
 
 세간인들이 무황성(武皇城) 또는, 마황성(魔皇城)이라 줄여 부르는 곳이다.
 
 오로지 홀로 존재하고 판단하며, 강호 무림을 누구보다 자유롭게 활보하는 집단. 생겨나는 은원도 코웃음 한 번으로 넘겨 버리는 그곳!
 
 단일 세력에는 따라올 곳이 없지만, 세상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때는 천둥과 번개가 치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 * *
 
 
 
 파천무황성(破天武皇城) 법항 제일조(第一條)
 
 -오는 적, 마다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은 바로 성주 백의천이 세운 법항 제일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의천과 그의 무황성이 무림공적이 된 사연은 이렇다.
 
 그는 성을 세워 놓고도 강호를 주유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의 호위는 오직 일당천이라는 두 호법밖에는 없었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정파든 사파든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대로만 행동했던 백의천은 그런 성격 덕에 강호를 주유하며 많은 은원을 쌓았다.
 
 그에게 잘못 보여 죽은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물론 그가 목숨을 건져 준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은혜보다는 원수가 더 진하고 오래가는 법.
 
 극히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 원한은 점점 큰 복수를 불러왔다. 한 사람을 혼내 주면 더욱 강한 사람이 그 원수를 갚으러 왔다.
 
 그때마다 발휘된 것이 바로 제일법항, ‘오는 적, 마다하지 않는다’였다.
 
 백의천과 두 호법들은 덤벼 오는 적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원한은 커지고 커져 각 문파들의 장로급까지 나서서 그와 그의 성을 마황성이라 칭하고 공적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 * *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한 사내가 자신들을 포위한 적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성주, 백의천이었다.
 
 무황성이 붕괴된 것은 순식간이었다.
 
 겉으로는 정의를 읊어 대는 정파 놈들이 성내의 수뇌들을 얄팍한 수단으로 꾀어 낸 것이다. 그 때문에 성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 결국은 백의천밖에 남지 않았다.
 
 언제나 그와 함께했던 두 호법조차 당했을뿐더러, 거의 만독불침의 몸이라 자부했던 백의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에 중독이 되고 말았다.
 
 포위한 적들 중, 무당파라는 놈이 시끄럽게 입을 열었다.
 
 “마두여,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죽음을 맞으라!”
 
 “염병.”
 
 성주 백의천이 입 밖으로 욕을 내뱉었다. 고강한 무공 덕택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소모한 내공의 양이 위험할 정도로 많았다.
 
 앞에 있는 무인 하나하나는 그냥 벨 수 있을 만한 필부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을 벨 때마다 이 척에 달하는 검강과 같은 신위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죽이려는 자들이 이렇게 많은가.”
 
 침통했다.
 
 그렇게 큰 세력을 가진 집단을 만들었건만, 이렇게 자신밖에 남지 않았으니 모든 것이 꿈과 같았다.
 
 백의천이 포위하고 있는 적들을 바라보았다.
 
 사내로 태어나 사내로서, 사내답게 살고자 했을 뿐이다.
 
 성주는 눈을 감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파와 사파의 숙련된 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주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백의천이 무겁게 입을 열어 그의 적들에게 물었다.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들리도록 천음조화의 수법을 사용했다.
 
 “검수들이여, 나를 죽이고 싶은가.”
 
 “당연하다, 대마두여! 네놈들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들에 비하면 지금의 죽음은 그저 달게 받아야 할 것이야!”
 
 중의 목소리다. 아마 소림사에서 온 승려일 것이다.
 
 예전 같았다면 저따위 말을 지껄이기도 전에 목을 쳤겠지만, 자신은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사자는 이빨과 발톱이 빠져도 사자다.
 
 “내 목숨 값은 결코 싸지 않다.”
 
 “닥쳐라, 대마두! 모두 진법을 펼치시오!”
 
 승려의 말에 따라 각 문파들이 독문 진법을 펼쳐 백의천을 조여 왔다.
 
 천둥이 치는 날 밤. 백 년을 간다던 무황성이 무너졌다.
 
 
 
 Chapter 1. 도약을 준비하는 자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지, 델포임의 처녀 로웰린은 언제부터인가 아버지가 하는 주점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성실한 그녀가 아버지의 일을 돕지 않고 집에만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로웰린의 행동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이유인즉, 그녀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하고만 살아온 그녀에게 집에 머무는 식객이 있다는 것은 꽤나 설레는 일이다.
 
 그 식객이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들어갈게요.”
 
 그녀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따뜻한 수프를 가지고 앞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방문 너머에는 임시로 아버지의 옷을 빌려 입고 있는 그 남자가 있었다. 로웰린은 웃었다.
 
 “자, 저녁 드세요.”
 
 “······.”
 
 남자는 상냥한 그녀를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로웰린은 남자가 항상 수프만 먹어서 물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별스런 음식은 먹일 수 없어요. 다 나으면 우리 가게에서 잘하는 요리들, 많이 먹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요.”
 
 흰 옷 안에는 그녀가 정성스레 매어 준 붕대가 이곳저곳에 칭칭 감겨 있었다. 로웰린의 말에 남자는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남자는 로웰린의 아버지가 음식 재료를 사러 큰 장이 열리는 이웃 영지에 갔을 때 ‘주워 온’ 사람이다.
 
 발견 당시 남자가 가지고 있던 것은 이국적인 한 벌 옷과, 검 한 자루뿐.
 
 물론 그걸로 그의 신분을 알 수는 없었지만, 로웰린의 아버지는 단번에 남자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곧 죽을 듯 피도 철철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응급처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웰린의 집안이 남자에게는 은인이 된 셈이다.
 
 남자는 주어진 수프를 스푼으로 몇 번 휘젓더니 벌컥 마셔 버렸다.
 
 로웰린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 그렇게 한꺼번에 마시면 혀 데는데.”
 
 “으음.”
 
 그러나 남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작은 신음소리뿐이다. 아마 맛있다는 뜻 같았다. 로웰린이 남자가 누워 있는 침대 발치에 앉으며 물었다.
 
 “맛있어요?”
 
 “으음.”
 
 대답은 역시 ‘으음’이었다.
 
 로웰린은 바닥을 보고 실망한 듯이 중얼거렸다.
 
 “······하긴, 말을 모르는 사람인데. 나도 참 바보같이.”
 
 남자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혀가 다쳐서’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는 아니었다. 처음엔 로웰린도 그저 환자이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불쌍하게도 대륙공통어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봐서는 기억상실증이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야 손짓발짓으로 어떻게든 통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대화할 수는 없다.
 
 로웰린은 웃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나중에, 말을 가르쳐 줄게요.”
 
 “으음.”
 
 그래 봤자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는 그저 ‘으음’ 하며 한차례 신음할 뿐이었다.
 
 수프를 다 먹고, 말이 통하지 않는 불친절한 대화 끝에 로웰린이 방 밖으로 나가자 남자는 그 방문을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대륙의 사람이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고마운 여자다.”
 
 그것은 중원이라 불리는 땅의 말.
 
 놀랍게도 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이 세계에는 한 명도 없었다.
 
 남자의 본래 이름은 백의천.
 
 이름을 들으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무황성(武皇城)의 성주였다. 안타깝게도 전(前) 성주가 된 몸이지만.
 
 “며칠이나 된 건지.”
 
 정신을 잃고 깨어난 뒤에 꼬박 7번 정도 낮과 밤이 바뀌었다. 백의천은 자신의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의 일을 회상했다.
 
 
 
 * * *
 
 
 
 아무리 그 무위가 대단하다 해도 중독된 상태에, 심한 내력 소모를 하고서 그 많은 무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니, 초반의 몇 순간만큼은 백의천이 압도했다.
 
 상대는 정파, 사파를 통틀어 가장 강한 고수들.
 
 한 사람을 벨 때에도 만전을 기해야만 한다.
 
 “오라, 저승 가는 길에는 모두가 동무이니!”
 
 쐐애액!
 
 검풍만으로 상대를 벤 백의천은 뒤돌아 자신을 노리고 있던 또 다른 사내의 목을 뚫었다. 쉴 틈은 없다. 적보다 한 박자 빠르게 검무를 추어야만 살 수 있다.
 
 일검삼살(一劍三殺).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세 명의 사내를 죽였다. 그런 살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렀다.
 
 그의 손에 죽은 자들 중엔 독룡(毒龍)이라는 자도 있었고, 도신(刀神)이라는 자도 있었다.
 
 모두가 상처 입은 백의천의 수급을 따 공을 세워 이름을 드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었으나, 백의천의 목숨은 그리 값싸지 않다.
 
 죽이려 한 자에게는 죽음을 돌려주었다.
 
 자신이 무서워 피한 자에게는 손쓰지 않았다.
 
 그러나······.
 
 파각!
 
 한 사내가 수많은 검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섬광처럼 날아온 검에 허벅지를 찔렸다. 호신강기로 보호된다 해도 적 역시 검기의 신위를 가지고 있다.
 
 “크읏······!”
 
 다음은 왼쪽 팔,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급소를 빗겨나가게 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백의천의 검에 꽂힌 검들이 모두 네 자루.
 
 뚝뚝 떨어지는 피가 시야를 붉게 가린다.
 
 전신에 검과 피를 뒤집어쓴 백의천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악귀라 할 만했다. 지옥에서 온 사신도 이와 같지는 않으리라.
 
 그 후로는 무아지경이었다.
 
 몸이 검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검이 몸을 이끈다.
 
 그렇게 수백을 죽였다.
 
 누구도, 그 앞에 서는 자는 없었다. 이제 없었다.
 
 남겨진 자들은 백의천의 악귀 같은 검결에 질려 버린 자들뿐. 백의천은 웃었다.
 
 “오라.”
 
 오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사신의 목소리다.
 
 그 사신의 목소리에 이끌려 용기를 내어 나온 한 청년이 있었다. 무황성주를 죽이기 위해 선발된 사람치고는 젊은 청년이었다.
 
 모두가 백의천에게 질린 가운데, 청년 하나만 나섰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청년은 소리 질렀다.
 
 “으아아아!”
 
 딴엔 기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만,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앳된 청년에게 위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목을 바로 치는 대신, 백의천은 물었다.
 
 “배짱이 있구나. 네 이름은 무엇이냐?”
 
 그것은 변덕이라면 변덕이라 부를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인을 이름조차 묻지 않고 단칼에 죽였다. 그런데 새삼스레 마지막에 나온 앳된 청년의 이름만 물어보는 것이라니.
 
 청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원수!”
 
 “내가, 네 아비를 죽였다는 말이냐.”
 
 백의천이 피에 전 검을 내렸다. 언제든 들어 올려 공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청년의 말을 듣고 싶었다.
 
 “내 아버지 이름, 검진천! 기억하고 있겠지!”
 
 “하.”
 
 기억하고 있다, 는 대답 대신에 백의천은 한 번 웃는 것을 택했다.
 
 기억나지 않았다.
 
 검진천이 누구인지, 이 청년의 아비가 누구인지, 백의천은 도무지 기억나지가 않는 것이었다.
 
 청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백의천은 슬퍼졌다.
 
 

댓글(2)

MR.Kang.    
너무 많은 사람을 가볍게 죽이고 살리고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군요
2019.02.28 11:07
b4*****    
첨부터 나무 거창하고 황당 전형적 구무협 첫줄 읽고 퇴장함
2019.03.01 23:3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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