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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으로 지존까지! 1권 (1)

2019.01.25 조회 6,121 추천 57


 # 인생, 시발(始發)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개나 고양이처럼 흔한 애완동물부터, 햄스터와 이구아나까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라면 뭐든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동물을 키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친구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이나 동물 방송을 보며 만족해야 했다.
 이 때문인지 동물과 관련된 진로를 찾던 중 수의사가 눈에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쳤다. 이후 선배가 운영하던 병원을 접는다는 소식을 듣고 이어받으면서, 20대 후반에 운 좋게 내 이름으로 된 동물병원을 차리는 데 성공했지.
 이렇게 준비한 스무 살 후반. 머리가 빠져 정수리가 휑해졌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프로페시아라는 현대 의학의 힘으로 월 6만 원 인생 정액제를 끊지 않았다면 더 끔찍한 미래가 찾아왔을지도 몰라.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지금의 난 풍성하다.
 반쯤······.
 
 “낑.”
 이쪽은 3개월짜리 귀여운 믹스견 금순이. 일명 발바리라고 불리는 종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곳저곳 만져서인지 녀석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이웃집에서 데려온 뒤 밥을 잘 안 먹는다 했는데, 주변 환경이 변해서일 뿐 큰 문제는 아니다. 겁에 질려 동그랗게 뜬 검은 눈이 어찌 이리 귀여운지 모른다.
 위생 장갑을 벗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인 할머니에게 건넸다.
 녀석은 할머니 품에 안긴 뒤에도 내 쪽을 보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어머님, 혹시 금순이 예방 접종하셨나요?”
 “예방 접종? 전 주인이 했겄지.”
 “안 한 거 같은데요? 오신 김에 예방 접종도 하실래요?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에 금순이가 많이 아플 수 있어요.”
 강아지를 건네받은 할머니의 표정은 좋지 않다.
 경험에 의하면 이런 표정 뒤에 나오는 말은 십중팔구 비슷하다.
 “개새끼야 뭐 아프면서 크는 거지··· 거 뭐냐, 저 앞은 예방 접종인가 뭐시냐 이야기 꺼냈더니 25만 원 달라고 하더만.”
 한숨이 나오는 걸 참고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할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님. 그건 6차 예방접종까지 다 했을 때 비용이에요. 오늘 예방 접종하시면 4만 원 밖에 안 해요.”
 “아니 됐어. 다른 데서 할 테니 신경 쓰덜 말어.”
 강아지를 품에 안은 할머니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각종 방송과 강형옥 훈련사 같은 전문가들의 조언 속에서 많은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 ‘기본’에 관심이 많아졌다. 기본과 책임. 동물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몇몇 분들은 여전히 동물에게 돈 쓰는 것에 회의적이다. 이런 사람들을 설득시키느라 피곤해질 필요 없으니 포기하자.
 “진료비는 2만 원입니다, 어머님.”
 “약도 안 주고 주사도 안 놨는데 2만 원?”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다른 동물병원들은 청진기만 대도 3, 4만 원을 부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시끄러워지기 전에 그냥 봉사한 셈 치기로 했다.
 “······지만! 오픈 기념으로 절반 할인 중이거든요? 만 원만 주세요. 여기 금순이 먹을 통조림은 서비스! 여기가 아니더라도 예방접종은 꼭 하셔야 해요. 아셨죠?”
 “에잉. 뭔 개 병원비가 사람 병원비랑 같아 쯧쯧.”
 사실 개 진료비가 사람 진료비보다 비싸다. 이 병원은 오픈한지 반년이 지났고.
 노인과 입씨름할 필요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여기 있수 의사 양반.”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 일곱 장과 동전 몇 개를 꺼냈다.
 주머니를 더 뒤지며 동전을 찾는 할머니를 보자 아차 했다. 재빨리 카운터에 놓인 돈을 대충 세고 담았다.
 “만 원 딱 맞아요! 제가 다 셌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 그려? 고마워 총각. 나이 먹으니까 세는 게 느려져서.”
 “네, 네, 그럼 들어가세요!”
 “우쭈쭈, 우리 금순이 많이 아팠어? 가자 쭈쭈!”
 흰색 발바리는 병원 문을 나선 뒤 비로소 할머니의 얼굴을 핥았다.
 얼굴을 피하면서도 웃음기 가득한 할머니의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의 지갑에서 나온 돈은 7천 8백 원. 큰 건물이 몇 개 들어서긴 했지만 이 근방은 여전히 생계가 어려운 노인들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스쳤다.
 수의사로서의 나와, 사람으로서의 나는 의견이 달랐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데도 돈이 필요하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강아지 예방 접종 4만 원도 할머니에겐 너무 큰 돈이겠지. 잠시나마 자격 없는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문을 닫으며 병원 앞 대형 동물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3평짜리 내 병원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와 번쩍번쩍 빛나는 간판.
 강아지들이 주인 품에 안겨 진료를 기다리는 줄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 저 정도 줄이면 내가 한 달 내내 받은 손님과 같다.
 ‘포기하고 닫아야 하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내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다.
 두 달 전 내 병원 바로 앞에 대형 동물병원이 들어서더니 좋지도 않은 주머니 사정은 더 안 좋아졌다.
 할머니도 저 병원에 들렀다가 터무니없는 가격에 놀라 내 병원으로 오셨겠지.
 시계는 4시를 지나고 있다. 24시 하는 저곳을 두고 내 쪽으로 올 손님은 아마 없을 거다. 미련 없이 문을 닫고 퇴근했다.
 
 * * *
 
 “짠!”
 “······.”
 “뭐야 인마. 왜 이리 힘이 없어.”
 “아냐 미안.”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맛깔나는 갈색으로 변했다.
 상추에 고기 몇 점 얹어 입으로 집어넣던 내 친구 김상혁은 우울해 보이는 나를 놓치지 않았다.
 금세 소주를 한잔 비운 상혁이는 방금 넣은 것을 우물우물 씹으며 병을 들었다.
 쪼르르.
 따라주는 소주로 잔을 채우자마자 목구멍으로 넘겼다. 녀석의 표정은 더 구겨졌다.
 “뭐야. 말을 해 인마.”
 “크, 내 병원 앞에 큰 동물병원 생긴 거 알지?”
 “요즘 그런 일이 한두 개냐.”
 자작하려는 상혁이의 손에서 병을 빼앗아 녀석의 잔을 채웠다. 상혁이는 한 모금 입안에 털어 넣고 반 정도 남은 잔을 내려놓았다.
 “자영업자는 다 힘든 법이야. 우리 아버지 슈퍼 문 닫을 때 기억 안 나냐?”
 “맞아, 아버님 요즘 뭐 하시는데?”
 “노가다.”
 녀석은 한마디 짧게 하고 상추쌈을 크게 한 입 넣었다.
 어린 시절 상혁이네 아저씨가 주신 사탕을 나눠먹던 슈퍼는 근처에 생긴 대형마트에 밀려 문을 닫았다. 추억이 잠긴 곳이 사라질 때마다 그 아쉬움은 말할 수 없다.
 “나도 우리 아버지가 일 안 하고 쉬면 좋지. 근데 어쩌나. 나도 세금 떼면 130 겨우 넘는데.”
 “그 유지 보수 일?”
 “밥이나 먹어 짜샤.”
 상혁이는 허허 웃으며 남은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대형 동물병원 탓에 손님이 없다는 이야기를 털어낼 처지는 아니었다. 요즘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는가. 끝부분이 살짝 탄 고기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야, 야, 앉아 인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는 상혁이를 앉히고 내 쪽에서 계산했다.
 “이 자식 이거 술만 취하면 지갑을 벌린단 말이야.”
 “헤헤. 우리 아버지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 했어.”
 녀석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허 웃었다.
 둘이 함께 걸어 나오며 주변을 살폈다.
 누구나 힘든 세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밝은 전광판과 웃음소리들이 묘하게 다가왔다. 마치 슬픔에 빠진 광대가 억지로 웃는 세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학생 때나 떠올릴법한 감성에 빠져있을 때 옆에 있던 상혁이가 툭툭 쳤다.
 “야 친구야. 우리도 저거 해볼래?”
 “뭐?”
 녀석이 가리킨 것은 가상현실 체험 방이었다.
 물론 손가락이 향한 건 가상현실 야동 체험. 나도 모르게 팍 썩은 얼굴로 녀석을 바라봤다. 지나가던 여자 둘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마! 합법이야!”
 “됐어! 남자 둘이 쪽팔리게 무슨!”
 애초에 장난삼아 말한 건지 상혁이도 웃기만 할 뿐 크게 고집부리지 않았다. 함께 웃고 있던 중 야동 체험 아래 있는 익숙한 게임 광고판이 보였다.
 
 [진짜 살아 숨 쉬는 판타지의 세계로! 힐레아]
 
 “힐레아?”
 “힐레아? 아 저거? 너 저 게임 같이 해볼래?”
 내 입에서 나온 단어에 상혁이는 칼같이 반응했다. 애초에 상혁이가 일하는 유지 보수 일이 가상현실 게임기 관리였으니 알만하다.
 “아냐 됐어. 일하기도 바쁜데 게임은 무슨. 기기도 비싸잖아.”
 “비싸진 않아. 인기 덕분에 양산돼서 중고는 30만 원이면 사거든. 내 고객 중에 요번에 신형 제품으로 바꾸는 분 있는데. 그분이 쓰던 기기라도 살래? 소개해줄게.”
 “그래도 게임은······.”
 “거기 네가 좋아하는 동물도 나온다? 늑대, 곰, 코끼리! 어릴 때부터 동물 키우고 싶어 했잖아.”
 녀석은 내 취향을 칼같이 집어냈다. 늑대를 언급할 때 내가 흠칫하는 걸 느꼈는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냥꾼도 있고, 테이머도 있고.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거기에 최초로 동물병원을 차리던지. 아! 힐이 있어서 동물병원이 쓸모없구나? 하하!”
 “놀리냐.”
 “됐고, 나도 그 게임 가끔 하거든. 기기 필요하면 말해. 아이템 하나만 잘 주워도 내 한 달 월급이다? 시팔!”
 상혁이는 큰소리로 웃었다.
 주변에 몰리는 시선에 양해를 구하며 녀석을 버스에 태워 보냈다. 술도 약한 녀석이 심심하면 술을 먹자고 하는지 참.
 
 집으로 돌아와 양치하며 엄지발가락으로 컴퓨터를 켰다.
 새로 올라온 뉴스와 시사 정보를 보는 중에도 힐레아에 관한 이야기로 세상은 들썩들썩했다.
 엄청난 자유도와 상상을 이뤄주는 판타지 세계. 중 고등학교 때 보던 게임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후기들은 마우스를 멈추지 않게 했다.
 게다가 일부 아이템들은 현금 수백, 수천만 원을 부른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는 형님이랑 함께 했던 린이지의 지팽검이 떠올랐다.
 “그놈의 게임이 뭐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손은 자연스럽게 그린 위키에서 힐레아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가 가득한 설명을 제쳐두고 클래스에 관한 정보를 찾던 중 상혁이가 말했던 녀석을 찾아냈다.
 테이머!
 
 [테이머]
 1. 개요
 힐레아의 클래스 중 하나. [테이밍] 스킬을 중심으로 필드에 흔한 동물이나 몬스터를 길들여 함께 전투를 하는 클래스다. 별명으로는 개장수, 밀렵꾼, 납치범 등이 있다. 사냥꾼 클래스와 같이 동물을 길들여 함께 사냥한다. 하지만 트랩과 화살 등 전투에 특화된 사냥꾼과 달리 이쪽은 길들이고 판매하는 데 특화돼있다.
 특별하게 히든 클래스로 박제된 게 아니라면 자주 사용하는 스킬에 따라 클래스가 달라지는 힐레아의 시스템 상, 전투를 병행하는 테이머 플레이어는 필연적으로 사냥꾼 클래스가 된다.
 만약 테이머로 표시된다면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뉴비거나 순수하게 테이밍만 하는 진성 유저(변태) 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인지 테이머 클래스 유저들 중엔 유독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여성들이 많다.
 
 2. 게임 내 역사
 베타 초 동물을 길들인다는 매력을 느낀 플레이어가 많아 연구되었다. 하지만 전투 시스템의 단조로움과 극악의 테이밍 성공률로 순수하게 테이머를 목표 삼는 플레이어는 많이 사라졌다. 다만 애완동물이나 탈것 시스템처럼 게임에서 필수적······.
 
 여기까지 읽자 내 손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으로 향했다.
 뚜르르······.
 “어 나다.”
 “버스다.”
 “졸리다.”
 “잠깐! 자지 말아봐. 그 힐레아 하는 데 필요한 기기. 30만 원이면 구해줄 수 있다고?”
 
 * * *
 
 “왔다!”
 경비실에 맡겨뒀던 상자를 찾아왔다.
 기다리던 물건인 만큼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풀고 그 안에 있는 물건을 꺼냈다.
 겉으로 보기엔 오토바이 헬멧에 플라스틱 눈가리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뇌 스캐너’!
 처음엔 수면 보조 장치로 개발된 물건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뇌파를 무리 없는 방향으로 조절한다고 하나?
 그러다가 일본의 한 오타쿠가 이 물건으로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모두의 꿈이었던 만큼 가상현실 게임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가상현실 게임의 정점에 있는 게 바로 힐레아!
 지금부터 내가 시작할 게임이다.
 “헤드와 연결된 코드를 게임기기에 연결합니다······. 미리 스캔했던 아이디카드로 기기에 로그인합니다.”
 중고 제품이지만 설명서는 거의 새것과 같았다. 역시 설명서 같은 건 안 보는 하이패스의 한국인답다.
 설명서의 안내를 따라 헬멧과 기기를 연결했다.
 기기는 굳이 설명하자면 ‘플수’나 ‘악수박스’를 닮았다. 헬멧을 쓰고 침대에 누우니 처음엔 새카맣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VR로 보는 화면이 아니라, 뇌파를 건드려 주변이 새하얗게 변한 거다.
 캬, 신기술 만세! 설렌다, 설레!
 이어서 허공으로 낯선 메시지가 떠올랐다.
 
 [힐레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용할 닉네임을 확인합니다. [시드]가 맞습니까?]
 
 “넵.”
 상혁이와 통화하고 이틀 뒤 기기가 도착했다.
 중고지만 깔끔하게 관리된 기계였다. 그 사이 게임 숍에서 아이디 카드를 등록하고 전신 스캔을 마쳤다.
 
 [게임 숍에서 스캔한 본인의 몸을 기본으로 사용합니다. 흉터 및 문신처럼······]
 
 “스킵.”
 이런 식상한 문구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웹 소설 읽을 때도 이런 복잡한 설정이나 시스템은 후루룩 넘겨버리는 나다.
 재빨리 스킵하고 기본 조작법을 읽었다.
 하지만 이런 식상한 문구조차 고등학교 때 유행했던 겜판소의 향수를 떠오르게 하기는 충분했나 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히든 클래스, 계획에도 없던 레어 아이템, 명예와 돈, 그리고 예쁜 여주인공까지.
 뻔한 클리셰라고 하지만 이런 내용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재미없는 이야기들.
 물론 나에게 이런 일은 없을 거다. 이런 게 실제로 가능했다면 이 게임을 즐기는 모두가 히든 클래스였겠지.
 
 [그럼 즐거운 모험되시길!]
 [초보자 마을 콜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람쥐 사냥 가실 분!”
 “낡은 가죽 옷 떨이합니다!”
 사람이 가득한 중앙 광장.
 푸른 하늘과 탁 트인 전경에 마음이 뻥 뚫렸다.
 역시 최고 인기의 게임답게 초보자 마을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파티와 아이템을 구하고 있었다.
 메인 스토리니 달성 과제가 몇 개 있지만, 다 제쳐두고 곧장 가까운 필드로 향했다. 내 목적은 살아 숨 쉬는 털북숭이들에게 볼을 부비는 거뿐이었으니까.
 
 [밤 숲]
 
 밤 숲은 특별할 거 없는 숲이었다.
 나무 사이를 뛰노는 다람쥐와 지저귀는 새들.
 나와 비슷한 레벨의 유저들은 이곳에서 다람쥐 사냥, 나무하기 등 시시한 퀘스트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세세하게 구현된 세상에서조차 쫓기듯이 몬스터만 사냥하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며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토실토실한 다람쥐가 나뭇가지 위에서 코를 움찔거리다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까마귀 서너 마리는 까악 거리며 주변을 배회했다.
 마치 없던 시체가 금방이라도 하나 생길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어림없지.”
 녀석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숲 안쪽으로 걸어갔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테이밍하기로 마음먹은 건 인류의 영원한 친구 개. 아무래도 숲에 들어가면 들개 몇 마리는 만나지 않을까?
 테이밍은 기본 스킬이니 적당한 녀석 앞에 가서 멋들어지게 테이밍! 이라고만 외치면 된다.
 보조 스킬과 도구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 기구일 뿐. 수년에 걸쳐 단련된 현직 수의사라면 맨손으로 개를 제압할 수 있다.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 수풀을 헤치며 들어가던 중 털이 복슬복슬한 두 마리의 무언가를 발견했다.
 “좋아! 테이밍!”
 
 [실패했습니다.]
 
 “컹?”
 두 마리의 복슬이들이 멍하니 이쪽을 쳐다봤다.
 자, 전문가로서 말하건대 이럴 때 절대 눈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뒤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알다시피 나는 프로다. 갑자기 움직이는 건 동물을 자극해 위험······.
 
 [사망하셨습니다. 마을로 귀환됩니다.]
 [10레벨 이하는 사망 페널티가 없습니다.]
 
 “허업!”
 눈을 질끈 감은 채 마을로 귀환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분수대에 앉아 시스템 창을 켜고 정보를 찾는 척했지만 소용없었다.
 “죽었나봐.”
 “죽었네.”
 사실 대단한 건 아니다. 기본 퀘스트도 하나 마치지 않은 초보자가 필드에서 죽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겠지.
 게다가 그 복슬이들은 그냥 개가 아니었다. 빨간 글씨로 회색 늑대라고 쓰여 있었지?
 “회색 늑대 정보.”
 
 [밤 숲 회색 늑대] Lv 3~8
 밤 숲에서 서식하는 늑대. 두 마리 이상 무리 지어 활동한다. 상처 입으면 동료를 불러 모으기 때문에 확실한 제압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방법.
 
 ‘내 레벨이 1이니까 적어도 나보다 2 이상 높네.’
 무리한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하긴 레벨 1로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하지. 화면을 눌러 시키는 대로 튜토리얼을 끝냈다.
 
 [레벨 업]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생명력과 스태미나가 회복되었습니다.]
 [시드] Lv 1 → Lv 2
 초보 모험가
 
 레벨 2를 달성하고 중앙 광장 분수대로 돌아왔다.
 분수대 근처에 걸터앉아 베이컨을 하나 씹으며 퀘스트 목록과 보유 스킬들을 천천히 살폈다. 테이밍과 관련된 건 하나뿐이었다.
 
 [테이밍]
 대상을 길들여 [조련수]로 만듭니다. [조련수]가 된 대상은 명령에 복종하며 함께 싸웁니다. 시전자의 레벨과 스킬 레벨이 대상보다 높을수록 스킬의 성공 확률이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 : 1
 -성공률 : 0.01%
 
 “성공률 0.01%?!”
 마을에 흔한 병아리한테만 사용해도 1만 번 시도해서 한 번?
 맥이 풀린다. 괜히 이런 직업을 거르는 게 아니었어.
 게임 내 커뮤니티를 통해 테이머에 관한 이야기를 살피던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베타 당시 유저들은 무난한 성공률의 테이밍으로 조련수를 수십 마리 끌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조련수들을 방패 삼아 보스를 쉽게 사냥하니 파티 플레이도 필요 없게 되고, 이후 너프에 너프를 거쳐 지금의 스킬이 되었다나. 하여간 적당히를 몰라요, 적당히.
 “왕! 왕!”
 여관 앞을 지나던 중 순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코를 드밀고 들어왔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보를 살펴보니 여관에서 키우는 개였다. 우리 병원에서도 몇 번 봤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테이밍 스킬 정보를 읽으며 애꿎은 녀석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테이밍.”
 분명 늑대처럼 실패했다는 정보가 뜰 거다.
 
 [이미 주인이 있는 조련수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응?”
 혀를 내밀고 헥헥 대는 녀석에 무언가 떠올랐다. 시스템 창을 클릭했다.
 
 [테오] Lv 2
 개. 황색 래브라도 리트리버.
 -주인 : 에른와스
 
 주인. 그러니까 이 녀석은 이미 테이밍되어있는 상태다.
 병아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정보 창을 열었다. 역시 같은 방식으로 주인의 이름이 표시된다.
 NPC들이 이런 동물을 일일이 테이밍할 리 없다. 더욱 저런 병아리와 닭까지 일일이 테이밍하는 건 이 확률로는 어림도 없다.
 마침 여관 앞을 쓸고 있던 NPC가 보였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이 녀석 이름 테오 맞나요? 잘생겼네요!”
 “네 하하, 고놈 잘생겼죠? 예쁜 녀석이에요.”
 여관 주인 에른와스씨는 갑작스러운 칭찬에 머쓱하게 웃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칭찬하는데 기분 나빠할 주인은 없다.
 “저도 개를 좋아하거든요. 새끼 때부터 키우셨나 봐요?”
 여관 개 테오도 이것이 자신의 칭찬이라는 걸 아는지 킁킁대며 몸을 일으켰다.
 얼굴까지 닿는 녀석의 혀와 끈적한 침, 그리고 이 부드러운 털. 너무 좋아!
 “그럼요. 이 녀석이 태어날 때 제가 직접 받았습니다. 그 쬐깐한 녀석이 이렇게 커서는 허허.”
 그의 말을 통해 가설은 더 그럴싸해졌다.
 몬스터나 동물이 태어나는 순간 그걸 받아내면 자동으로 조련수 상태가 된다. 오리가 처음 본 것을 부모로 각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동물의 소유나 친밀도 시스템이 테이밍의 메커니즘과 관련 있는 게 분명하다면, 주인이 있는 대상이 테이밍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 아녜요.”
 마침 따뜻한 바람에 비릿한 개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이게 게임이라는 걸 잠시 잊을 정도였다.
 “저도 테오 같은 친구를 얻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그럼 우리 테오가 새끼를 낳는다면 한 마리 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이런 귀염둥이랑 함께 여행하면 얼마나 행복할지!”
 에른와스는 보는 사람이 흐뭇해질 정도로 밝게 웃었다. 이 둘을 보자 방금까지 메커니즘이니 뭐니 따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조심히 가십쇼. 여관에서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하시고요.”
 다시 밤 숲으로 향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정리했다.
 마침 나뭇가지 위에 자리한 종달새의 둥지를 발견해 그 앞에 섰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그냥 새끼가 태어나는 순간을 노려 훔치면 되잖아?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무를 잡았다.
 게임이라는 핑계로 타협점을 찾으며 나무에 오르던 중, 먹이를 물고 날아온 어미 종달새와 마주쳤다.
 어미 종달새는 낯선 방문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를 보자 새끼를 훔치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핑계를 대도, 새끼를 잃을 어미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다.
 “퀘스트 중인가요? 닌자 퀘스트?”
 나무를 내려오던 중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이런 숲에서 다른 유저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아저씨는 커다란 장작 도끼를 쥔 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다이어 울프 길들이기
 
 
 “아뇨 퀘스트는 아니고 저 위에 볼일이 있어서요.”
 “네?”
 “저 위에 새 둥지······.”
 나무를 오르느라 이것저것 달라붙은 옷을 털었다.
 아저씨는 손가락 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나무옹이 쪽에서 어미 종달새의 모습이 눈에 닿자 아저씨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마을 아르바이트군요? 새를 잡으라니. 궁수라도 데려와야겠어요.”
 “그런 건 아니고 알이 있으면 얻어 가려고요.”
 “아아! 요리사 퀘스트? 근데 달걀도 아니고 종달새 알?”
 “아뇨 테이머······.”
 예상외의 답변이었는지 아저씨는 눈을 가늘게 떴다.
 종달새 알을 훔쳐 ‘자동 테이밍’ 한다는 계획을 설명하려다 어색해질 거 같아 멋쩍게 웃었다. 어차피 포기한 계획이기도 하고.
 턱을 만지던 아저씨는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아 테이머! 스킬 올리는 게 그렇게 빡세다고 허허! 마을에 가면 사냥꾼 길드가 있어요. 거기서 도구 몇 개 구해다가 하시면 편한데. 지도에 핑 찍어 드릴까요?”
 “아뇨, 스킬 레벨을 올리려는 게 아니라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에헤이. 이 게임 처음이구먼? 저도 낚시도 하고 별거 다 해봤는데 처음엔 뭘 해도 재밌죠. 그래도 결국엔 효율 좋은 루트 찾아서 하게 된다니까요?”
 오지랖 넓은 아저씨였다.
 “저는 은빛검객이에요. 저도 게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린이지 하던 동생들이 같이하자고 얼마나 조르던지 하하!”
 
 [은빛검객] Lv 5
 [금란지교 길드]
 벌목꾼
 
 “예, 안녕하세요. 저는 시드에요. 시스템은 벌목꾼이라고 나오는데 검객 지망인가 봐요?”
 “이거야 뭐, 동생들이 검사 루트 타려면 장작 패기 노가다를 일주일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해서.”
 말을 듣고 나서야 그의 등 뒤에 있는 은색 검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한 번도 안 썼는지 반들반들하다.
 “노가다 끝난 다음 검사 길드로 가시려고요?”
 “그렇죠. 게임의 꽃은 역시 검객 아니겠습니까? 검! 객! 하하!”
 은빛검객은 호쾌하게 웃었다. 여느 게임에서나 쉽게 볼법한 아재 유저였다. 좋다면 좋은 사람이고, 귀찮다면 귀찮은 그런 사람 말이다.
 “컹!”
 수풀 사이로 회색 늑대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놀랄 새도 없이 장작 도끼가 녀석의 머리에 박혔다.
 늑대의 주둥이를 밟고 능숙한 자세로 도끼를 뽑아낸 은빛검객은 이쪽을 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밤 숲에는 늑대가 많아요. 시드님 레벨로는 위험한데 저처럼 마을 퀘스트부터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벌써부터 대화가 피곤해진다. 깔끔하게 끊자.
 “도와주셔서 감사하지만 일단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지만, 아저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굳어졌다.
 귀찮은 티가 났는지 아저씨의 도끼가 날카롭게 빛난다.
 저 도끼가 내 머리로 향하면 손 놓고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하, 까불지 말걸.
 하지만 아저씨는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제가 또 그··· 오지랖이 너무 심했네요. 미안해요! 나이 먹고 주책이라··· 이러니 꼰대니 뭐니 소리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 게임 재밌게 해요!”
 예상에도 없던 반응이다.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숲을 나섰다.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자 옛 생각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이것저것 알려주던 길드 형님. 허세도 심하고 입도 더러웠지만 여러 가지로 잘 챙겨줬다. 정모에서 만났을 땐 얼마나 기뻐하던지. 이후 결혼한다고 캐삭한 뒤로는 만나지 못했다.
 연락처 하나 따지 않았던 나는 그 형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그냥 보내기는 힘드네.’
 “은빛검객 님!”
 “네?”
 “오지랖은 무슨, 정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더 여쭤보고 싶은데 친구 등록 가능할까요?”
 은빛검객은 갑작스러운 친구 추가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쑥스럽게 웃으며 확인을 눌렀다.
 “저도 같은 초보인데 허허.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괜히 오지랖 부려서 기분 상하지 않았나 몰라.”
 
 [친구 목록에 [은빛검객]님이 추가되었습니다.]
 
 “게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말 걸어 주신 분인걸요. 나중에 꼭 연락드릴게요.”
 “네! 그럼 즐겜 해요!”
 은빛검객은 아이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별거 아니지만 흐뭇하다.
 바스락!
 ‘또 늑대······.’
 이별의 여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뒤를 돌아보자 고개는 더 위로 올라갔다. 늑대치고는 많이 크다.
 이쪽을 쳐다보지만 포인터 행동은 아니다. 다행히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게 분명했다.
 녀석은 킁킁대며 죽은 늑대에 관심을 보였다. 섣불리 움직여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 조용히 정보 창을 켰다.
 
 [밤 숲 다이어 울프] Lv 14~20
 밤 숲에서 서식하는 다이어 울프. 이름은 늑대지만 늑대와는 별개 종이다. 고대 늑대라고도 불린다. 두세 마리의 작은 무리만을 형성하며 늑대나 곰과는 영역 문제로 경쟁한다.
 
 정보를 보는 사이 녀석은 늑대의 사체를 물고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다이어 울프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무에 기대 주저앉았다.
 순수한 공포인지, 늑대 특유의 저주파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게임 광고 그대로 엄청난 리얼리즘이었다.
 “후우.”
 늑대가 사라진 쪽을 봤다. 핏자국은 숲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있다.
 공포가 가시자 방금 마주했던 다이어 울프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멋들어진 갈기며 튼튼한 앞다리, 반들거리는 코, 찰랑거리는 꼬리.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다.
 ‘저런 녀석을 길들여 타고 다니면 아무리 쪼렙이라도 무시하지 못할 텐데.’
 왠지 모를 도전심이 생겼다.
 다이어 울프의 생태는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육식 동물이 먹이를 물고 간다면 둘 중 하나다. 안전한 곳에서 식사를 즐기거나 무리와 나눠먹기 위해서.
 무리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새끼도 있겠지.
 핏자국을 따라 무작정 숲으로 향했다. 죽어봤자 마을로 귀환하겠지 뭐.
 
 부스럭
 정신없이 숲을 헤치며 핏자국을 쫓아 올라갔다.
 핏자국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끊겨 있었다. 아쉽게도 모험은 여기까지다.
 뒤늦게 주변을 살폈다. 해가 중천일 때 들어왔는데 언제 이렇게 어두워졌는지 돌아갈 길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바위에 앉아 지도를 열었다.
 “밤 숲 정보!”
 
 [밤 숲] 적정 레벨 3~20
 초보자 마을 콜헨 옆에 자리한 숲. 숲의 깊은 곳은 낮에도 밤처럼 어두워 밤 숲이라고 불린다. 마물이 존재하지 않아 초보자가 활동하기 좋은 숲이다. 하지만 늑대와 곰, 밤에만 출몰하는 거미 등은 주의가 필요하다. 숙련자들조차 밤에 길을 잃는다면 굶주린 거미와 늑대의 공격으로 쉽게 사망하곤 한다.
 
 “거미······.”
 지도를 보려고 했지만, 의도에도 없던 불편한 정보를 발견했다. 작은 녀석도 징그러운데 사람을 습격할 정도면 이미 마물이다.
 소름이 돋는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어서 마을로 귀환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사각사각
 어둠 사이로 살얼음 위를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름 돋는 소리. 아까 본 정보 때문에 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지 쉽게 상상됐다.
 “사악!”
 퍽!
 미리 쥐고 있던 초보자용 나무 몽둥이로 쳐냈다.
 내 넓은 취향으로도 귀엽다고 말하지 못할 흰색 털 뭉치다.
 녀석이 떨어진 반대 방향으로 뛰어내린 뒤, 달빛으로 반짝이는 시냇물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거미! 밤 숲 거미? 아무튼, 저거 정보!!”
 
 [흰 거미] Lv 2
 밤 숲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흰 거미. 꾸준히 독을 주입해 먹이를 중독시킨다. 한 마리 한 마리는 별 볼 일 없지만 수십 마리가 무리를 지어 먹잇감을 포위한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방을 울리는 소리에 이게 판타지 게임인지 공포 게임인지 헷갈린다.
 방금 공격으로 생명력이 2 소모된 거미가 빠른 속도로 쫓아왔다.
 두세 번 더 패면 쓰러뜨릴지도 모르지만 한 놈씩 상대하다 보면 90년대 좀비 영화처럼 천천히 포위돼서 죽을 거다.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달렸다.
 사망 페널티가 없어도 녀석들에게 둘러싸이는 끔찍한 과정을 감당하고 싶진 않다. 어떻게든 거미 떼를 떼어낼 방법이 필요하다.
 우직! 우르르······!
 갑자기 디딘 곳이 무너지며 아래로 굴렀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됐지만, 사방에서 울려오는 사각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달렸다.
 “이 망할 거미들. 다시는 밤에 여기 오지 않을 거야!”
 나뭇가지에 긁히고 땅바닥을 구르면서 생명력과 스태미나 포인트가 서서히 떨어졌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린다. 스태미나가 바닥나면 달릴 수 없다. 한때 유명했던 다크스트 던전이었다면 진작 심장마비로 죽었을 거다.
 “사악!”
 “시팔!”
 갑자기 튀어나온 거미에 놀라 반사적으로 쳐냈다. 입에서 욕이 튀어나올 정도로 깜짝 놀랐다.
 거미는 붕 떠서 날아오르더니 뒤쫓아 오던 흰색 무리 속으로 떨어졌다.
 거미들은 동료가 떨어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수많은 다리가 녀석을 짓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레벨 업]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생명력과 스태미나가 회복되었습니다.]
 [스태미나를 한계까지 소모하여 보너스 스텟을 얻었습니다. 하체에 근육이 붙는 기분입니다.]
 [시드] Lv 2 → Lv 3
 초보 모험가
 
 “좋았어!”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끼며 더 빠르게 내달렸다. 덕분에 살았다.
 
 * * *
 
 한숨은 돌렸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각 소리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마침 돌무더기 틈의 개구멍을 발견해 그쪽으로 몸을 던졌다.
 와르르!
 “새액!”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던 돌이 지나는 동시에 무너졌다.
 덕분에 등 뒤까지 바짝 붙었던 거미는 보기 좋게 납작해졌다.
 겨우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말라붙은 계곡으로 보이는 이곳은 커다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방이 막힌 이곳이라면 거미들이 돌무더기를 넘어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다.
 “일단 루팅!”
 거미의 독니와 독주머니를 얻었다.
 게임 시작 후 처음 얻는 전리품이다.
 사각사각 사각 사각사각······.
 바위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다. 거미들이 포기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바위를 잡고 올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어깨까지 올라오는 풀들을 헤치고 무작정 앞으로 향했다. 어차피 보이는 것도 없으니 더듬거리며 앞으로 갈 뿐이었다.
 ‘아직도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트라우마 생길 거 같다. 사각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건 결코 기분 탓이 아닐 거야.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던 중 수풀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컹!”
 “깨갱!”
 한두 마리의 소리가 아니다. 숨을 죽이고 천천히 기어갔다.
 이내 사방이 반딧불 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곳에 도착했다. 길게 자란 풀들을 치우고 살짝 엿보자 두 마리의 다이어 울프가 보였다.
 쉬지 않고 덤벼드는 열댓 마리의 늑대들을 상대로 녀석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전에 정보 창에서 봤던 영역 다툼인 모양이다.
 “깨갱!”
 커다란 늑대가 공중으로 떠올라 땅바닥으로 내팽개쳐졌지만, 곧바로 다음 늑대가 뛰어오르며 다이어 울프의 목덜미를 물었다.
 상처투성이인 다이어 울프에 세 마리의 늑대가 물고 늘어졌다.
 맹렬한 공격이 이어지자 저 큰 녀석도 별수 없는지 다리를 굽혔다. 때마침 다른 다이어 울프가 몸에 붙은 녀석들을 털어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광경이다. 한참 싸움에 정신 팔려 구경하던 중 다이어 울프들 사이로 무언가 눈에 들어왔다.
 눈도 못 뜬 검은색 새끼 한 마리가 동굴 구석에서 꼬물대며 움직이고 있다.
 마침 늑대 한 마리가 어미의 눈을 피해 새끼 쪽으로 향했다.
 ‘새끼를 지키고 있었구나.’
 다이어 울프 두 마리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늑대는 점점 새끼에 가까워져 간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녀석들이 정신없이 싸우는 지금이 새끼를 훔쳐낼 절호의 찬스일 지도 모른다. 아니, 훔치는 게 아니라 구해낼! 재빨리 동굴 근처까지 기어갔다.
 마침내 늑대가 새끼에게 뛰어들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려 녀석을 덮쳤다.
 “흣차!”
 “컹?!”
 늑대는 갑자기 튀어나온 태클에 걸려 동굴 구석에 부딪혔다. 잿빛 다이어 울프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늑대 한 마리는 새끼를 노리고 있고, 낯선 사람은 이를 막고 있다. 몸을 돌려 새끼 쪽으로 오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늑대는 몸을 일으키고 으르렁댔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손에 땀이 나도록 몽둥이를 쥐었다. 그래도 뭐 수의사답게 동물을 위해서 죽는구나. 늑대가 달려들자 반사적으로 새끼를 감쌌다.
 쾅!
 “깨갱!”
 이쪽에만 정신이 팔렸던 늑대는 거대한 발에 짓눌리며 땅에 처박혔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거대한 송곳니가 머리통을 물고 마구잡이로 흔들자 비로소 움직임이 멈췄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머리가 이쪽을 향했다.
 낮에 만났던 잘생긴 다이어 울프다. 나를 공격할 마음은 없어 보인다.
 녀석은 거대한 머리를 가까이 대고 내 눈을 바라봤다.
 온몸이 갈라지고 피투성이에 배 쪽엔 내장까지 튀어나왔다. 분명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녀석은 아픈 소리 하나 없이 새끼를 물어와 앞에 내려놨다.
 등 뒤로 검은색 다이어 울프는 진작 쓰러져 늑대들의 이빨에 헤집어지고 있었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어미가 무얼 원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책임질게.”
 “킁.”
 어미는 콧소리를 크게 내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새끼를 그 안에 넣었다.
 밖으로 나오자 모든 늑대들이 이쪽에 주목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다이어 울프 탓에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는 눈치다.
 녀석들을 뒤로하고 숲 쪽으로 뛰었다.
 필사적으로 막는 어미의 사이로 한 마리가 빠져나와 등 뒤에 붙었다. 내가 달리는 속도로는 금세 녀석에게 붙잡힐 거다.
 넘어질 걸 각오하고 더 빨리 달렸다. 등 뒤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사악!”
 “깨앵! 깨애애앵! 깨갱!”
 난데없이 튀어나온 거미에 물린 늑대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녀석은 거미를 털어내기 위해 땅을 뒹굴었지만, 이내 수십 마리가 녀석을 더 덮치면서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뒤이어 더 많은 거미들이 수풀 사이로 튀어나왔다.
 늑대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거미에 당황하며 허둥댔다.
 거미와 늑대들끼리 싸우는 사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숲 밖으로 향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뒤돌아봤을 때 어미 다이어 울프는 조용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거미들이 그쪽을 덮쳤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렸다.
 
 “후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숲을 지도의 현재 위치에 의존하며 걸어온 끝에, 새벽이 다 돼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간밤에 부모를 잃은 새끼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가방 안에 곤히 잠들어있다.
 굳이 가방을 열지 않아도 창을 이용해 아이템을 꺼낼 수 있어 거미의 독주머니와 독니를 꺼냈다.
 ‘경매장에 올릴 수준은 아니겠지.’
 잡화점으로 향했다. 마침 가게 문을 열고 있던 NPC를 발견했다.
 “이 물건 좀 봐주실래요?”
 “어이쿠 이른 새벽부터 손님이네, 껄껄. 주시죠.”
 첫 손님부터 이런 잡템을 건네면 실망이 클법하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독니와 독주머니를 건넸다.
 짙은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물건을 받아든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거미 독니 아닙니까?”
 “맞는데, 안 받으시나요?”
 “아뇨 당연히 받죠. 운 좋게 거미 시체라도 발견하신 모양입니다?”
 “네?”
 잡화점 주인의 눈이 허리춤에 있는 초보자용 몽둥이로 향했다. 시퍼런 거미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주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직접 잡은 겁니까?”
 “네. 간밤에 거미들한테 쫓기다 겨우 한 마리 잡았어요.”
 “허허! 미치지 않고 밤에 그 숲을 갈 사람은 없는데!”
 아저씨는 혀를 차며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이내 14실버가 짤랑 소리를 내며 좌판 위에 올랐다.
 괜찮은 철검 두 개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다.
 “가끔 마취약 소재로 찾는 사람들은 있는데 거미들한테 쫓기면서까지 구하는 사람들은 드물거든요. 죽은 거미는 다른 거미들이 금방 먹어치우니 남는 것도 없고.”
 맞는 말이다. 나도 다시는 안 갈 생각이다.
 “14실버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필요한 물건 있으신가요?”
 “음, 그럼 이거 파실래요?”
 상점 안을 살피던 중 아저씨의 아침 식사였던 우유가 눈에 들어왔다.
 1실버로 우유와 땅콩 몇 개를 얻어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분수대에 걸터앉아 새끼를 꺼내 무릎 위로 올렸다. 입에 우유를 조금 묻혀주니 품 안에서 꼬물거리던 녀석이 신나게 핥아먹기 시작했다.
 “잘 먹네!”
 새끼의 입에 병을 대고 인 게임 커뮤니티를 살폈다.
 잡화점 주인의 말대로 밤 숲은 밤이 되면 난이도가 상승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가느니 다음 마을의 고블린을 사냥하는 게 효율도 좋고 벌이도 좋다나.
 거미의 독니와 독주머니는 마취약의 재료로 쓰인다. 하지만 레벨 30대의 구역으로만 가도 마법이나 다른 소재들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고레벨 유저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거미를 사냥할 이유가 없다.
 다만 밤 숲에서만 출몰하는 필드 보스 ‘터주’는 고급 아이템과 명성치까지 주기 때문에 이를 노리는 유저가 존재했다.
 잡았다는 유저 왈 커다란 곰이었다고 하고, 다른 댓글에서는 거대한 자이언트 까마귀였다고 하니, 숲에서 생성되는 무작위 개체가 터주가 되는 모양이다.
 “멋진데?”
 필드 보스라는 말에 흥미를 느껴 정보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는 특별한 시스템의 보호를 받아 테이밍되지 않았다. 고로 논외다.
 “아웅!”
 그새 우유병을 다 비웠는지, 새끼는 머리를 비비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밤처럼 까만 털과 이마에 박힌 새하얀 점. 어젯밤 숲에서 본 밤하늘이 떠올랐다.
 개과 동물보다 곰의 새끼로 보일 정도로 큰 덩치다.
 강아지 마사지를 하며 녀석의 다리와 몸을 주물럭거렸다.
 내가 아는 그 어떤 개보다도 뼈가 두껍다. 그래도 품 안을 파고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녀석이 성장해서 부모처럼 크면 정말 끝내줄 거야.
 “좋아. 그럼 이름을 짓자. 뭐로 지을까? 케르베로스, 점박이? 아니야. 적당히 멋있으면서 귀여운 게 좋겠어.”
 새끼를 들고 연상되는 단어를 찾았다. 검은색··· 다이어 울프······.
 “그래 로키!”
 
 [개체의 친밀도가 확인되었습니다. 자동으로 소유자가 선택되었습니다.]
 [조련수가 등록되었습니다. 조련수를 잘 보살펴 주세요!]
 [로키] Lv 1
 펜리르
 -주인 : 시드 (친밀도 90%)
 
 이름이 결정된 로키는 눈을 뜨고 내 얼굴을 사정없이 핥았다. 이 따뜻함과 끈적함! 바로 이거다.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
 “왕!”
 로키는 무릎 아래로 내려와 주변을 방방 뛰었다.
 ‘자동 테이밍’ 상태가 되면서 급성장한 모양이다.
 
 [테이밍 첫 성공으로 보상 아이템을 습득했습니다.]
 [보상 아이템 : 초보자용 목줄]
 초보 테이머를 위한 목줄. 착용한 조련수의 친밀도를 소폭 하락시켜 강제로 명령을 이행시킨다.
 
 초보자용 목줄을 손에 넣었다. 명령을 강제로 듣게 만드는 아이템인 건가?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로키의 정보 창에 주목했다.
 뭔가 이상한 단어가 있다. 펜리르?
 
 
 # 망할 XX!
 
 
 “펜리르?”
 다이어 울프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상한 이름이 있다. 분명 판타지 게임이나 소설에서 몇 번 들어본 이름이다.
 “펜리르 정보!”
 
 [펜리르] 보스 몬스터
 대륙의 일부를 집어삼켰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괴물. 대륙 이곳저곳에서 발견되지만, 생태는 확인되지 않았다.
 
 “보··· 보스 몬스터!”
 화들짝 놀라 소리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입을 막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펜리르의 정보를 읽었다.
 일 년에 한두 마리밖에 발견되지 않는 필드 보스.
 사람 하나를 꿀떡 삼킬만한 덩치에, 마법 면역이 있어 특별한 공략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심지어 펜리르의 가죽으로 만든 장비는 마법 대미지를 절감해서 받으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나? 그나마도 매물이 없어서 난리다.
 ‘나 참. 몬스터로서의 이야기는 없고 죄다 아이템 이야기뿐이네.’
 로키가 쪼르르 달려와 발밑에서 고개를 좌우로 기울였다. 겁나 귀엽다. 스크린 샷 찍어야지.
 이렇게 귀여운 녀석을 아이템으로 만들 생각만 하다니. 하여간 낭만이 없어.
 “아웅!”
 재롱부리는 로키를 들어 올려 유심히 살폈다.
 통통하게 오른 볼과 툭 튀어나온 똥배가 귀엽다.
 사실 강아지와 늑대 새끼를 구별하는 것도 일이지만, 펜리르는커녕 다이어 울프 새끼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 현실 지식은 아무 소용없었다.
 그나저나 이 귀여운 강아지가 괴물이라니.
 펜리르가 다이어 울프 아종이라던지 돌연변이 개체라는 건가? 생태도 파악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
 광장의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드 님! 여기 있었네요!”
 “은빛검객 님! 갑자기 불러내서 죄송해요.”
 “에이, 됐어요. 내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그 강아지는? 이야 결국 성공했구먼?”
 광장에서 은빛검객 아저씨와 재회했다.
 아저씨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로키를 살폈다.
 “만져도?”
 “네 괜찮아요! 안물··· 거예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은빛검객은 흐뭇한 미소로 로키를 쓰다듬었다. 로키도 낯선 사람의 손이 나쁘지 않은지 마구 핥으며 방방 뛰었다.
 “그동안 동물을 보면 소재로 해체할 생각만 했는데. 시드 님처럼 테이밍해서 데리고 있는 걸 보면 또 색다르네요.”
 “귀엽죠? 허허!”
 “역시 게임을 즐길 줄 아는 분이구먼! 자, 그럼 기본적인 장비부터 구합시다. 가요!”
 지난밤 거미에게 시달리면서 장비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숲을 나오며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아저씨는 흔쾌히 승낙해줬다.
 은빛검객은 여러 장소를 능숙하게 소개하며 장비들을 소개했다. 자신의 친절이 오지랖으로 보일까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친한 형 같다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럼 형님이라고 부를까요?”
 “형님? 어허허 이거 부끄러운데.”
 편하게 지내자고 이야기한 뒤 다용도 단검과 큰 가방을 샀다.
 인벤토리 창이 20칸 더 늘어났다.
 “그리고 이건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쓴 건데 받아요. 상점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더 좋을 거예요.”
 은검 형님은 초보 때 사용했다던 경갑 장비를 내밀었다.
 “이런 걸 어떻게 그냥 받아요. 5실버 드릴까요?”
 “에헤이. 나도 길드 동생들한테 그냥 받은 거예요. 부담 없이 써요. 그럼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 볼게요, 동생!”
 “말 놓으세요 형.”
 “다음에 만나면 놓을게요! 안녕!”
 은검 형님이 로그아웃하고 분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로키는 몇 시간씩 걸어서 녹초가 됐는지 가방 속에서 잠들었다. 몇 번 봐도 귀엽다.
 오늘 얻은 장비들을 찬찬히 살폈다.
 무난한 다용도 단검과 은검 형님에게 받은 경갑 방어구. 옵션을 보니 꽤 좋은 아이템이다.
 “나 참. 이런 아이템을 그냥 준단 말이야?”
 언젠가 꼭 신세를 갚기로 했다.
 인벤토리를 뒤적거려 보상으로 받은 초보자용 목줄을 찾아냈다.
 곤히 잠든 로키와 목줄을 번갈아 봤다.
 어젯밤 만났던 어미처럼 커도 내 말을 들을까 걱정된다. 게다가 그냥 다이어 울프도 아니고 펜리르가 아닌가.
 ‘이 녀석. 지금은 이렇게 귀여워도 나중에 크면 위험할지도 몰라. 미리 목줄을 채워두면 도망가려고 할 때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목줄이나 입마개는 애견인으로서 당연한 거잖아.’
 “우웅?”
 눈을 뜬 로키가 고개를 반대로 돌려 눈을 맞췄다. 귀여워!
 “그래 이런 갑을 관계의 상징은 나 같은 짐승이 차는 거야.”
 차마 로키에게 목줄을 걸 마음이 들지 않아 장난스럽게 내 목에 목줄을 맸다. 이게 불행의 시작일지는 미처 몰랐다.
 띠링!
 
 [퀘스트 달성. 인간 조련사 - 인간을 테이밍 [1/1]]
 [테이머의 상위 클래스를 달성했습니다. 테이밍 관련 스킬에 보너스 포인트가 적용됩니다.]
 [스킬 : 테이밍 - 마물 길들이기를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 테이밍 - 복종을 습득하셨습니다.]
 [재능 : 가학성을 습득했습니다.]
 [재능 : 피학성을 습득했습니다.]
 [레벨 업]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생명력과 스태미나가 회복되었습니다.]
 [금기의 재능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이 나를 피할지도 모릅니다.]
 [시드] Lv 3 → Lv 4
 [시드] Lv 4 → Lv 5
 테이머
 [히든 클래스 : 마족 조련사로 전직 가능합니다. Y/N]
 
 “싫어.”
 뭔가 우르르 뜨면서 당황했지만 고민할 필요 없이 N을 눌렀다. 어디 감히 함정 상품을 은근슬쩍 끼워 넣으려고.
 직업의 이름부터 수상하다. 특히 이 직관성.
 ‘마족을’ 조련하는 건지, ‘마족으로써’ 조련하는 건지 설명이 모호하다. 보통 이런 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히든 클래스 : 친절한 마족 조련사로 전직 가능합니다. Y/N]
 
 “싫어! 앞에 ‘친절한’을 붙이면 누가 좋아할 줄 알았냐?”
 시스템 주제에 질기다.
 
 [클래스 : 테이머로 고정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스킬 레벨이 오르더라도 메인 클래스에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
 힐레아의 클래스는 숙련도가 높은 스킬에 따라 자동으로 변경된다.
 몇몇 히든 클래스로 박제되지 않는 이상 원하는 클래스를 가지고 다니는 건 힘들다고 했다는데 이건 마음에 든다.
 
 [레벨 5가 되었습니다. 진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영을 선택하면 비동맹 진영과 대립 상태가 됩니다. 중립도시를 벗어난 곳에서는 자동으로 피케이 대상이 됩니다. 초보자는 진영 선택을 미루는 것을 추천합니다.]
 
 “몬스터한테 죽는 것도 서러운데 피케이까지 당하라고? 안 해.”
 너무 많은 창이 떠서 혼란스럽다. 일단 안전한 길을 선택하자. 취소 버튼을 찾아 창을 살피던 중 익숙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띠링!
 
 [진영이 선택되었습니다. 지지세력 : 마족]
 
 눈앞의 광경에 시스템 창을 멍하니 쳐다봤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달성한 퀘스트, ‘인간 조련사’는 사람을 테이밍 해야 달성되는 상위 퀘스트다.
 내가 나 자신한테 목줄을 채워서 달성된 거지만 일단 해냈으니까 여러 가지 스킬을 얻은 거다.
 좋아. 여기까지는 이해됐어.
 그럼 히든 클래스로 떴던 ‘마족 조련사’는 마족을 조련하는 게 아니라 마족으로써 조련하는 걸 말하는 거다. 근데 나는 분명 거절했잖아. 그런데 왜?
 천천히 다시 생각해보자.
 내가 사람을 테이밍 한 시점에서 인간을 등졌다 이런 건가? 인류의 배신자?
 뭔가 크게 망했음을 직감했다.
 고개를 떨구고 애꿎은 로키의 머리를 세게 쓰다듬었다. 녀석은 이것도 좋은지 꼬리를 흔들었다.
 “로키야.”
 “와웅?”
 “나 캐삭하고 다시 만들까 봐.”
 로키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쪽을 볼 뿐이었다.
 졸지에 마족 지지자가 돼버렸다. 여당이나 야당 지지자면 신념이라도 있어 보이지, 이건 스스로를 친일파라고 선전하는 꼴이다.
 심지어 안전한 마을을 벗어나면 다른 유저들에게 있어 나는 평범한 마족 1일 뿐이다.
 아니 초보자용 목줄 하나 자기 목에 찼다고 이런 끔찍한 이벤트가 일어나? 경고 메시지라도 띄워 주던가. 테이밍 첫 보상으로 받은 목줄을 자기 목에 걸어본 사람이 오픈 이후로 한 명도 없었단 말이야? 목줄이 예뻐서 장신구 삼으려고 찰 수도 있잖아!
 재빨리 인 게임 커뮤니티를 뒤져 ‘초보자용 목줄’, ‘마족 세력’등 여러 가지를 검색했다. 하지만 나 같은 꼴을 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서버 최초였다.
 바보같이 자기 목에 목줄을 걸어 마족 지지자가 된 플레이어.
 “망할 목줄!”
 홧김에 목줄을 잡아당겼지만 풀어지지 않았다.
 공손한 자세로 마음을 정갈히 한 뒤 양손으로 잡아당겨도 목줄이 풀리는 일은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착용 아이템 목줄 정보.”
 
 [인간 목줄]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착용시킨 목줄. 특별한 마법으로 보호받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유대가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끊어지지 않는다.
 -주인 : 시드
 
 “야 이! 해제! 분리! 해방! 자유! 방목! 노예해방! 프리덤! 망할!”
 생각나는 단어는 다 뱉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광장을 지나던 사람들이 수상하다는 눈으로 흘겨봤다. 테이머 퀘스트 첫 보상치고는 너무 끔찍한 보상이 아닐 수 없다.
 캐삭 할까······.
 
 * * *
 
 결국, 분수대 옆에 걸터앉아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에 목을 비췄다. 갈색 가죽에 은색 스파이크가 박힌 투박한 디자인이다. 패션 아이템이라고 하면 믿을 수도 있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로 얻은 스킬이나 시험해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밤 숲으로 향했다. 로키는 폴짝폴짝 뛰며 옆을 따랐다. 새로 얻은 스킬들은 업적 덕분에 모두 레벨이 10씩 올라있었다.
 
 [업적 : 인간 조련사]
 인간의 조련을 성공한 외도 조련사. 테이밍 관련 스킬에 10레벨 포인트를 추가로 얻습니다.
 [테이밍]
 대상을 길들여 [조련수]로 만듭니다. [조련수]가 된 대상은 명령에 복종하며 함께 싸웁니다. 시전자의 레벨과 스킬 레벨이 대상보다 높을수록 스킬의 성공 확률이 증가합니다.
 [테이밍 : 마물 길들이기]
 동물이 아닌 마물을 [조련수]로 길들일 수 있습니다. 일반 동물을 상대로 테이밍에 성공할 확률이 상승합니다.
 [테이밍 : 복종]
 길들인 [조련수]가 친밀도를 더 빨리 얻습니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조련수]를 강제로 복종시킵니다.
 [재능 : 가학성]
 타인을 잔혹하게 다룰수록 스텟이 상승합니다. 최대 40%까지 상승합니다.
 [재능 : 피학성]
 타인에게 철저하게 당할수록 스텟이 상승합니다. 최대 40%까지 상승합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테이밍만 놓고 봐도 기존 2레벨에 추가 10레벨을 더해 12레벨이다. 드디어 테이밍 성공 확률이 소수점을 극복하고 한 자릿수를 달성했다.
 생각에도 없던 불길한 업적과 마족 진영, 목에 붙어버린 인간 목줄이 마음에 걸리지만 전체적으로 후한 느낌이다.
 재능으로 얻은 가학성과 피학성은 음··· 이름이야 어떻든 능력치만 좋으면 되지.
 어찌 되었건 피케이 당할 수 있는 페널티를 제외하면 사실상 히든 클래스급 보상이다.
 아니, 이미 히든 클래스인가? 덕분에 스킬 레벨도 많이 올랐으니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면······.
 퍽
 
 [사망하셨습니다. 마을로 귀환됩니다.]
 [10레벨 이하는 사망 페널티가 없습니다.]
 
 “흐아악!”
 소리 지르며 흉한 꼴로 몸을 감쌌을 땐 이미 마을로 귀환된 뒤였다. 광장의 시선들이 느껴진다.
 “처음 죽었나 봐 큭큭.”
 “나도 저번에 갑툭튀한 거미 때문에 저랬잖아.”
 저마다 자신의 경험담을 꺼내며 큭큭댔다.
 ‘누가 뒤에서 갑자기 찔렀다고!’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숨기며 고개를 숙인 채 광장을 벗어났다. 시스템 창 로그를 살폈다.
 
 [유저와의 피케이로 사망하셨습니다. 살해자 [소일]]
 
 “이런 양심도 없는 고인 물이··· 플레이어 소일! 정보!”
 
 [소일] Lv 32
 흑기사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깔끔하게 포기하자.
 어느 게임에서든지 양민 학살을 즐기는 고인 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애초에 저런 녀석을 이길 자신도 없다. 이렇게 한 번 죽고 나니 중립 구역을 벗어나면 피케이 대상이 된다는 걸 제대로 확인했다.
 사망 페널티가 없어서 다행이지, 레벨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억울했을 거다.
 “와웅!”
 죽었던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그쪽에서 기다렸던 로키가 쪼르르 달려왔다. 그 고인 물도 양심은 있는지 로키는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다.
 안아달라고 방방 뛰는 로키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 상태로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을까.
 “너.”
 로키의 침 세례를 받고 있는데 마을 밖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트맨 영화에서 들은 것 같은 걸걸대는 목소리다.
 온몸을 검은 플레이트로 덮은 흑기사가 대검을 짚은 채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나를 죽인 플레이어가 분명하다.
 “어떻게 그 레벨에 마족 진영을 선택한 거야? 그 실력에 피케이 1만 킬을 달성했을 리는 없고.”
 “테이머 퀘스트를 하다가 뭘 잘못했는지 강제로 박제됐어요. 그쪽이 절 죽인 사람 맞죠?”
 “레벨 5짜리가 마을 어귀에서 빨갛게 표시돼서 고블린인 줄 알았어. 네 덕분에 살인자 상태가 돼서 마을도 못 들어가.”
 죽은 건 이쪽인데 녀석은 뻔뻔하게 남 탓을 했다.
 그나마 유저를 죽인 플레이어는 마을로 못 들어오는 페널티가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그거 쌤통이네요. 저는 님 덕분에 처음으로 피케이 당했는데.”
 흑기사는 마을 입구를 서성거리며 이쪽을 노려봤다.
 검은 투구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저 녀석도 어지간히 열 받은 모양이다.
 ‘쌤통이다.’
 “아무튼 착각해서 죽인 거라고 하니 그냥 넘어갈게요. 어차피 사망 페널티도 없고······.”
 입구를 나서자마자 눈앞으로 검은 대검이 스쳐갔다. 덕분에 엉덩이부터 마을 안으로 볼품없이 주저앉았다.
 “뭐 하는!”
 “마족 처치 퀘스트가 있어. 조금 전에 널 잡았을 때도 카운트 되더라. 다른 마족을 잡으려면 멀리 가야 하거든.”
 “이런 씨··· 반말하지 마, 짜샤!”
 물론, 큰소리만 칠 뿐 입구 밖으로 나갈 자신은 없다. 애초에 상대도 안 되잖아.
 “초보자 학살하면 좋냐? 이 나쁜 새끼!”
 “퀘스트.”
 게임마다 이런 녀석이 꼭 있다. 오래 했거나 과금한 덕분에 남들보다 강하니까 거기 몰입해서 중2병처럼 쿨하다고 생각하는 놈들. 꼭 어린 급식들이 이런다.
 이렇게 메소드 게임을 할 거면 연기를 하란 말이야 이 망할 놈들아.
 물론 주저앉아서 씨부렁대봐야 진 게 억울해서 징징대는 거로 보일 테니 입은 꾹 닫았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키는 발밑에 바짝 붙어 귀여운 표정으로 헥헥댔다.
 “게임 참 더럽게 하네.”
 마지막 자존심으로 흑기사 쪽을 한 번 더 쏘아본 뒤 반대쪽으로 향했다.
 녀석은 내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이쪽을 노려봤다.
 ‘후우. 게임이라도 기분 더러운 건 어쩔 수 없다니까.’
 동물병원에서 만난 수많은 진상들을 떠올리며 속을 삭혔다. 진상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호하다.
 골목을 돌아 반대쪽 입구로 향했다.
 일단 스킬 레벨이 많이 올랐으니 새나 다람쥐들을 테이밍해서 스킬에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 다이어 울프처럼 믿을만한 딜탱을 손에 넣으면······.
 석
 입구를 나섬과 동시에 익숙한 대검이 배 쪽을 관통했다.
 소일인가 뭔가 하는 망할 놈의 흑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뒤치기 해놓고 검을 뽑았다.
 녀석은 양손을 들어 뭐 어쩌라고? 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야 이 싸가지······!”
 
 [사망하셨습니다. 마을로 귀환됩니다.]
 [10레벨 이하는 사망 페널티가 없습니다.]
 
 “후우. 후우. 후우.”
 깊은 빡침을 느꼈다.
 내가 그 녀석한테 복수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열 받는다.
 피케이 상태가 돼서 마을로 못 들어온다더니 아예 나만 죽이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저런 녀석들은 게임 데이터를 토대로 인성을 검사해서 현실에서 불이익을 줘야 한단 말이야.
 “왕왕!”
 저 멀리서 로키가 달려왔다.
 처음 죽었을 땐 인식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더니 이젠 대충 알게 된 모양이다.
 로키의 부드러운 배에 얼굴을 파묻고 비볐다. 녀석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잠시 동안 놓지 않았다.
 “후우 이 귀염둥이.”
 로키를 내려놓고 먼발치서 마을 입구 쪽을 살폈다. 흑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숨어있는 거겠지.’
 녀석이 계속 버티고 있으면 이쪽은 방법이 없다.
 포기하고 떠날 때까지 마을 퀘스트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마침 은검 형님이 말했던 사냥꾼 길드가 떠올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쪽에서 테이밍 관련 스킬과 팁을 얻기로 했다.
 로키와 사슴 육포를 나눠먹으며 사냥꾼 길드로 향했다.
 조금 걷지 않아 마을 구석에서 동물 가죽과 활, 창 등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딱 봐도 사냥꾼 길드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화살을 다듬고 있던 노인을 발견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 깊다. 옆에 누워있던 커다란 사냥개가 몸을 일으키자 로키는 겁에 질렸는지 내 발밑에 찰싹 붙었다.
 “여기가 사냥꾼 길드 맞나요?”
 “어서 오게 젊은이. 사냥꾼 길드에 온 걸 환영하네. 뭘 도와줄까?”
 어두운 첫인상과 달리 노인은 표정을 풀었다.
 위아래로 훑던 시선이 발밑에 떠는 로키로 향했다. 그의 표정은 더 밝아졌다.
 “사냥꾼 지망이로군! 벌써 다이어 울프 새끼를 길들였다니 싹수가 좋은 친구야! 그래, 어떤 기술을 배우고 싶은가? 올무 설치? 동물 해체? 뭐든 말해보게!”
 멋대로 사냥꾼 지망이라 착각했는지 노인은 올무와 화살 등 사냥 도구를 차례로 꺼내놓았다.
 “아뇨, 테이밍 기술을 배우려면 이쪽으로 가라 해서요.”
 “테이밍만? 사냥 기술을 배우다 보면 조련 기술은 알아서 늘어. 결국엔 포획이 먼저 아니겠나?”
 “동물을 해치는 건 적성이 아니라서······.”
 노인은 순식간에 뚱한 표정으로 변했다. 꺼냈던 사냥 도구들을 주섬주섬 뒤로 밀어냈다.
 “조련술이라면 건물 뒤에 견습생이 하나 있어. 그 녀석한테 배워.”
 말을 마친 노인은 퉁명스럽게 뒤돌아 화살을 다듬었다. 대화하기 싫다는 게 팍팍 느껴진다. 보아하니 사냥꾼 길드에 더부살이하는 테이머 유저들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 상상된다.
 사냥개의 눈치를 보느라 바짝 굳어버린 로키를 들어 올려 자리를 떴다.
 
 
 # 꼼수와 운으로
 
 
 길드를 나와 뒤로 향했다.
 이내 잘 관리된 마구간과 닭을 풀어놓은 축사가 눈에 들어왔다. 축사 한구석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강아지들 사이로 노인이 말했던 수습생이 보인다.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헛!”
 수습생은 화들짝 놀라 흙을 털며 일어났다.
 펑퍼짐한 멜빵바지와 검은 장화가 잘 어울리는 귀여운 여성이다. 수습생은 밀짚모자를 고쳐 쓰더니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보통 NPC들은 인사만 해도 용무를 술술 묻는데 이쪽은 좀 어리바리하다.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로 가면 테이밍 스킬을 알려줄 거라고 하던데, 맞나요?”
 “네 맞아요! 잘 오셨어요! 드디어 나한테도 일을 주는구나··· 근데 혹시?”
 “네?”
 “맞네! 행복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 맞으시죠?”
 첫인상과 달리 여자는 NPC가 아니었다.
 심지어 날 알고 있다? 건강미 넘치는 탱탱한 피부와 도톰한 입술, 그리고 긴 속눈썹.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한 달 동안 손님이라곤 열댓 명밖에 없었으니 손님이라면 기억나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이렇게 예쁜 사람이라면 분명히 기억에 남았을 거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혹시··· 손님으로 오셨었나요?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죄송해요.”
 “에이 농담도! 어제도 봤잖아요. 저예요! 선생님 병원 앞에 있는 멍앤냥 동물병원! 거기 카운터요!”
 “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앞 건물에서 시종일관 더러운 표정으로 카운터를 보던 여자가 기억났다.
 기억 안 날 리가 있나. 손님 다 빼앗아가는 거대한 동물병원을 서럽게 쳐다볼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인데!
 매일 문을 여닫을 때마다 눈에 들어와 기억한다.
 사무적으로 묶은 머리와 두꺼운 뿔테 안경. 오가면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눈 몇 번 마주쳐 본 게 전부다. 인상이 확 달라져서 같은 사람인 줄 몰랐다.
 ‘일할 때는 그쪽 표정이 워낙 더러워서 몰랐어요.’
 “아아 반가워요! 이런 데서 만날 줄 몰랐어요! 저 같은 개원의도 기억해 주시는구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병원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만나니까 인상이 확 달라져서 긴가민가했네. 평소에도 그렇게 웃고 다니시지 좀!”
 평소엔 말 한마디도 안 나누다가 게임이라고 친한 척하니 부담스럽다.
 여자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 여자의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이쪽이야말로 평소에 이렇게 웃고 다녔으면 더 좋았을걸.
 수습생은 강아지 털과 지푸라기로 더러워진 옷을 털고 구석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를 가리켰다.
 “이쪽에 앉아 계실래요? 아가들 좀 울타리에 넣고요.”
 “아, 도와드릴게요.”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강아지들을 주워 울타리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로키는 자기보다 작은 강아지들이 신기한지 울타리 주변을 맴돌았다.
 “반년 동안 이웃이었는데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건 처음이죠? 서미영이에요! 게임이니까 ‘아이리스’라고 불러주세요. 헤헤. 이웃끼리 인사 한번 합시다!”
 “저는 시드라고 불러주세요.”
 서미영. 그러니까 사냥꾼 길드 수습생 아이리스는 털털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솔직히 불편한 이웃이지만 이쪽은 그냥 월급쟁이에 불과하니 불편한 내색을 할 필요는 없겠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 카운터에서는 왜 그리 사나운 표정이었는지 의문이다.
 로키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로키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리스는 내 허락을 구하고 녀석을 들어 올렸다.
 “이 아이가 조련수인가 봐요? 초보자들은 토끼나 병아리가 한계인데 강아지라니! 으구 귀여워!”
 “다이어 울프에요.”
 “딸꾹!”
 아이리스는 딸꾹질을 숨기다 헛기침을 했다.
 이렇게 보니 역시 귀여운 여자다.
 병원에서도 이렇게 웃었으면 손님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말하려다 주제 넘는 이야기 같아 관뒀다.
 “내 정신 좀 봐! 스킬 배우러 오셨다고 했죠? 잠시 정보 창 좀 볼게요!”
 “네 여기요.”
 스킬 열람 요청을 승인했다.
 로키는 내 품으로 온 뒤에도 강아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발버둥 쳤다.
 눈짓으로 안에 내려놔도 되겠느냐 묻자 아이리스는 배우 박보양을 연상시키는 귀여운 눈웃음으로 답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간 로키는 다른 강아지들의 냄새를 맡으며 킁킁대더니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이것도 겁나 귀엽다. 스크린 샷 찍어야지.
 “저··· 선생님?”
 “네?”
 “테이밍 스킬도 저보다 높고 복종 스킬은 이미 배우셨는데요? 마물 길들이기는 저도 못 배운 상위 스킬이고······.”
 아이리스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이머 선배로써 잔뜩 알려주며 자랑하려 했는지 실망스러운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겉으로만 테이머였지 알맹이는 마족 조련사다. 상위 클래스를 달성했다느니, 추가 레벨이 있다고 설명하려다 복잡해질 거 같아 관뒀다.
 대충 둘러대고 화제를 돌렸다.
 “그럼 다른 팁이나 정보는 없나요?”
 “팁! 당연히 있죠!”
 아이리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잘 들으세요, 이건 비밀인데 테이밍 시스템에는 유저들이 잘 모르는 허점이 있어요. 두구두구두!”
 마침 축사에 가득한 새끼 동물들을 보니 그녀가 말할 팁이 무엇일지 상상됐다.
 “혹시 동물이 태어나는 순간 받아내면 자동으로 테이밍 되는 거 말인가요?”
 들떠있던 아이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새초롬하게 입술을 삐쭉 내밀며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는 모습이 귀엽다.
 “알고 계셨네요.”
 “로키도 그렇게 얻은 걸요 하하.”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매일같이 창문 너머로 보이던 더러운 표정이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축사를 살피며 이야기를 이었다.
 닭과 병아리들이 돌아다니는 마당과 길드에서 쓰는 것 같은 두 마리의 말, 그리고 한쪽 구석에 쳐진 울타리 안에서 꽁냥 대는 강아지들.
 모두 합쳐 서른 마리쯤 돼 보인다.
 “이 축사 엄청 크네요. 혼자 관리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죠! 일 끝나고 들어와서 3시간 정도만 관리해주면 되는데 의외로 일이 많지 않아요. 사람들하고 말싸움하는 것보다 아가들 관리하는 게 더 쉽잖아요.”
 “이렇게 하면 레벨 올릴 시간이 없지 않아요? 일 끝나고 또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레벨이요? 아직 눈치 못 채셨어요? 테이밍만 해도 경험치 일부를 얻어요! 저처럼 이렇게 한 달만 해도 다음 마을로 갈걸요?”
 정보 창을 보니 말 그대로다. 아이리스의 레벨은 11. 나보다 6이나 높다.
 장비만 봐도 길드에서 나눠준 물품들일 뿐 개인적인 물건도 하나 없다. 누가 한국사람 아니랄까 봐 게임에서조차 워커홀릭이라니!
 “레벨 올릴 시간은 한정돼있고, 테이밍은 하고 싶고. 그러다보니 사냥꾼 길드에서 수습생으로 일하면서 돈까지 모으는 게 좋겠더라고요.”
 “괜찮은 생각이네요. 그래도 게임인데 사냥을 아예 안 하시면······.”
 “헤헤. 몬스터 사냥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그냥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돌아다녀도 재밌잖아요. 여기선 아무리 먹어도 살도 안 찌고! 잠시만요.”
 아이리스는 한쪽 구석에 쌓인 건초더미를 퍼 올려 마구간 구유 안에 넣었다.
 일이 끝나고 게임으로 들어와 또 일만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살짝 호감이 생겼다.
 이전에 이곳에서 낚시 같은 취미 생활을 하는 여성이나 노인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아이리스도 그런 쪽인 모양이다.
 “선생님도 동물 키우는 거 때문에 시작하셨나 봐요?”
 “네? 알다시피 우리 병원에서는 동물 만질 기회가 없잖아요.”
 손님을 빼앗아간다는 말로 들릴까 봐 아차 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동지네! 저도 만질 기회가 없어요.”
 마구간 정리가 끝난 아이리스는 갈퀴를 기둥에 기대놓고 옆으로 앉았다.
 “멍앤냥 동물병원에 들어간 것도 미용 자격으로 지원한 건데 원장이 얼굴만 보고 카운터로 세우더라고요. 동물들을 만지고 싶어서 들어갔더니만 시끄러운 사람들이나 상대하고··· 심지어 다른 선생들은 심심하면 치근덕대요! 으!”
 일하는 내내 표정이 더러운 이유를 대충 알 거 같다.
 “맞아! 도움 될지 모르지만, 돈 많은 플레이어 중에는 땅을 사서 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목장에서 새끼가 태어날 때마다 레벨이랑 스킬도 올리고, 그렇게 새끼가 태어나면 다른 유저들한테 팔기도 하죠. 현실이랑 다를 게 없죠?”
 “그럼 미영씨도 목장을 만드는 게 꿈이세요?”
 “아뇨! 제 꿈은 더 소박해요. 조련수나 길들인 마수들을 관리해주는 동물 미용사가 되는 거예요! 이 게임에 동물 미용사는 아무도 없으니까!”
 아이리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도 나처럼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꿈을 응원했다.
 ‘맞아. 목장?’
 목장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성공만 한다면 스킬 레벨 뻥튀기는 물론 조련수의 숫자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날지 모른다.
 
 * * *
 
 “아무튼,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해요.”
 빈말이 아니다.
 아이리스와 대화하는 동안 떠오른 게 있다. 방금 말한 대로 성공만 한다면 스킬 숙련도와 레벨 업은 물론, 많은 숫자의 동물을 길들일 수 있을 거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에이 뭘요.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퇴근 시간 맞춰서 밥이라도 한 끼 사주시던지. 헤헤.”
 “그럼 퇴근하고 시간 날 때 우리 병원에 들르세요!”
 강아지들과 함께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던 로키를 들어 올렸다. 로키는 잠에서 깨어나 발버둥 치며 끙끙 소리를 냈다. 강아지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모양이다.
 “걱정 마, 녀석아. 금방 친구들을 잔뜩 만들어 줄 테니까.”
 예상에도 없던 만남을 뒤로하고 밤 숲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인지 흑기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숲으로 들어섰다.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테이밍 할까.’
 막상 숲에 도착하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초보자용 몽둥이로 다람쥐나 여우를 사냥 중인 유저들 사이에서 멀뚱하게 숲을 바라봤다.
 인간 조련사 보상으로 올라간 테이밍 레벨은 10을 더해 12.
 테이밍 성공 확률은 1%를 조금 넘는다. 기존의 소수점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
 “왕!”
 “로키야 어디 가. 이리 와!”
 무언가 발견한 로키는 귀여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풀숲으로 사라졌다. 이래서 애견인들에게 목줄과 입마개는 필수라는 거다.
 혹시라도 자기보다 센 동물이나 사람을 물까 재빨리 쫓아갔다.
 공중으로 날고 있는 까마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동물 시체라도 있는 모양이다. 로키도 그 냄새를 맡은 거겠지.
 길게 자란 풀들을 헤치고 들어가자 까마귀 세 마리가 무언가 물었다 놨다 하며 장난치고 있었다.
 로키는 고민하지 않고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까마귀들은 갑작스러운 로키의 등장에 물고 있던 것을 놓고 후다닥 나무 위로 올라갔다.
 로키가 위협하는 사이 까마귀들이 가지고 놀던 것으로 향했다. 주먹만 한 다람쥐다. 뜻밖의 행운에 감사하며 다람쥐를 주워들었다.
 레벨 1의 약한 개체. 원래라면 까마귀들의 한 끼 식사가 될 처지였겠지만 지금은 내 계획의 일부입니다.
 까마귀들의 공격에 꼬리를 잃었는지 녀석의 엉덩이는 햄스터 꼬리마냥 뭉뚝해져있다.
 그래도 상처가 깊은 편은 아니라 조금만 관리해주면 금세 회복할 거다. 인벤토리에서 초심자용 상처약을 꺼내 바르고, 깨끗한 헝겊으로 잘 감쌌다.
 ‘가만. 지금이 테이밍 기회잖아?’
 “테이밍.”
 
 [의식이 없는 대상에게는 테이밍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한 빈집털이는 칼같이 실패했다. 아무래도 강제로 기절시켜 테이밍하는 걸 막기 위한 모양이다. 잠깐, 이 시스템 이거 완전히 주머니 몬스터랑 비슷하잖아? 표절이네!
 아무튼, 다람쥐를 가방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로키야 가자!”
 나무 위로 달아나버린 까마귀들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던 로키가 쪼르르 달려왔다. 녀석 덕분에 괜찮은 스타트를 끊었다.
 나의 계획은 무모하면서 간단하다.
 밤 숲을 나만의 목장으로 만든다.
 
 * * *
 
 “됐다! 네 이름은··· 하나둘 셋. 그래 ‘까마구’로 하자.”
 “까악!”
 
 [조련수가 등록되었습니다. 조련수를 잘 보살펴 주세요!]
 [까마구] Lv 3
 밤 숲 큰까마귀
 -주인 : 시드 (친밀도 23%)
 
 새로 가족이 된 까마구는 흰 목줄이 어색한지 주변을 총총 뛰었다.
 숲에서 테이밍 노가다를 시작한 지 사흘째.
 이걸로 펜리르 로키와 까마귀 아홉 마리, 다람쥐 열한 마리, 부엉이 한 마리를 길들였다.
 처음엔 예쁜 카나리아나 참새를 찾아다녔지만 그나마 명령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전력은 까마귀라는 게 결론이었다.
 “너는 오늘부터 ‘로키 패밀리’의 일원이야. 여태까지 살아왔던 대로 자유롭게 살면 돼. 하지만 너처럼 흰 줄을 맨 패밀리들은 공격하면 안 된다?”
 “까악!”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찾아오고, 비슷한 처지의 패밀리를 발견하면 나한테 데려다줘. 마지막으로 새끼를 낳거나 무리를 만들면 나한테 데려오면 돼. 알았지?”
 “끄윽? 깍!”
 “그리고 숲 안쪽에 다른 까마귀 친구들이 더 있으니까 찾아가.”
 까마구는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총총 뛰었다. 대충 알아들었다는 뜻이겠지. 녀석을 숲으로 날려 보내고 깃털을 가지고 놀던 로키를 불렀다.
 “가자 로키야. 이걸로 로키 패밀리도 스무 마리가 넘었네.”
 “왕!”
 아이리스와 만난 이후로 숲에 처박혀 테이밍만 했다.
 흑기사 사건 이후로 피케이를 노리는 다른 유저들을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물을 길들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병원은 일주일 휴가를 냈다. 어차피 내 병원인걸!
 물론 동물병원이 휴업하려면 관련 구청에 신고해야한다. 그래도 30일을 넘지 않으면 상관없으니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쉬기로 했다.
 로키 덕분에 다람쥐 한 마리를 꽁으로 얻은 이후로 보이는 동물마다 테이밍을 시도했다. 처음엔 반나절 동안 다른 다람쥐 하나 길들이기 어려웠다.
 이후 수십 번 시도한 끝에 다치거나 겁에 질려 무기력해진 동물이 길들이기 더 쉽다는 걸 깨달았다. 이 또한 주머니 몬스터 표절이다. 인 게임 커뮤니티와 그린 위키에도 적혀있는 내용이었는데 몰랐던 내 잘못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쌩쌩함과 의식 불명 사이의 오묘한 틈. 물론 멀쩡한 동물들도 로키와 한 시간 정도 놀고 나면 기진맥진해져서 길들이기 쉽다. 당하는 녀석들 눈에서는 놀이가 아니겠지만······.
 아무튼, 밤 숲에 나만의 농장을 만든다는 일명 ‘로키 패밀리’ 작전은 성공적이다.
 내 레벨은 9로 올랐고 테이밍 스킬 역시 보너스 레벨을 제외하고도 4로 올랐다. 특히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로키의 성장이다.
 
 [로키] Lv 5
 펜리르
 -주인 : 시드 (친밀도 98%)
 
 사흘 새 몸집이 얼마나 커졌는지 이젠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레벨만 보면 늑대만큼이나 강하지만 이런 쪼꼬미가 늑대들과 싸운다는 건 역시 상상하기 힘들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오늘은 그만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전처럼 흰 거미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사양이다.
 푸드덕
 하늘 위에서 그림자 하나가 내려와 어깨 위에 앉았다.
 둘째 날 숲에서 발견한 큰 부엉이다. 올무에 묶인 걸 구해준 게 인연이 돼서 패밀리가 됐다.
 정공법으로는 길들이기 힘들었을 레벨이 꽤 높은 녀석이다. 이런 감동적인 기회를 마련해준 이름 모를 사냥꾼에게는 미안하다.
 “안녕 야부엉? 일어날 시간이었구나?”
 “우웅.”
 
 [야부엉] Lv 7
 너도밤나무 큰부엉이
 -주인 : 시드 (친밀도 87%)
 
 어제 발견했을 때는 레벨이 6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레벨이 1이나 올랐다.
 역시나 숲에서 자유롭게 방목시키는 게 답이었다. 현재로서는 이 녀석이 로키 패밀리 중에서 제일 강하다.
 야부엉은 볼을 툭툭 치며 숲 안쪽을 가리켰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야부엉은 어깨를 떠나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마치 따라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거미가 걱정됐지만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이래 봬도 레벨 5와 7, 9가 뭉쳐있는 3인 파티다.
 ‘벌써 새끼를 낳았나?’
 나뭇가지 사이로 유유히 날갯짓하는 야부엉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사이로 흰 줄을 맨 익숙한 까마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회색 가슴 털을 풍성하게 부풀린 까마귀가 눈에 띈다.
 커다란 강아지만 한 저 녀석은 첫째 날 길들였던 ‘까마원’이다.
 멍청하게 구는 로키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하루 종일 쫓아다니며 괴롭히더니, 결국 로키에게 붙잡혀서 호되게 당했다. 녀석은 로키를 보자 더 높은 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로키는 나무 아래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무래도 서열 정리는 확실하게 됐나 보다.
 “까마원 정보.”
 
 [까마원] Lv 6
 밤 숲 큰까마귀 [알파]
 -주인 : 시드 (친밀도 84%)
 
 “알파!”
 까마귀를 더 길들일 때마다 이 녀석을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 사이에 리더가 된 모양이다.
 이틀 사이 덩치가 몇 배로 커진 걸 보면 이 게임 동물들은 원래 이렇게 빨리 크나싶다. 아니면 알파 보정으로 뭔가 있거나.
 까마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로키를 내려다봤다.
 언제쯤 어린 티를 벗고 제 역할을 할까 걱정이다.
 “로키야. 다른 친구들 성장이 너보다 더 빠른데 어떻게 하냐.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런 거 아닐까?”
 “와웅?”
 로키는 고개를 좌우로 기울였다.
 하루하루 커져가지만 여전히 귀엽다. 이것도 스크린 샷.
 야부엉은 까마귀들 사이로 날개를 펴고 빙 돌며 유영했다. 이내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쌓인 풀 무더기로 내려앉자 다른 까마귀들도 그 아래로 내려왔다.
 로키는 나뭇가지 사이로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꼬리를 흔들며 흥분했다.
 “안 돼. 죽은 동물 아니면 먹을 거 아니야.”
 로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새들이 앉은 풀 무더기로 향했다.
 녀석들의 반응을 보면 패밀리 중 누가 다쳐서 이를 숨겨둔 모양이다. 천천히 나뭇가지를 걷어내고 풀 무더기를 벌렸다.
 예상과 달리 그 안에 있는 건 피투성이로 웅크려있는 거대한 독수리였다.

댓글(6)

alittlegod    
재밌어요!
2019.03.09 17:07
g2332애다    
글이 진짜 난잡하네 ㅋㅋ
2019.10.04 15:38
비니바    
난잡하다 느껴질정돈 아닌데?
2019.10.04 22:09
나무늘보.    
능력도 안되는것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거보면. 그리고 변명은 왜그리많은지
2019.10.08 00:30
뱜바리    
파워인플래가 이미 1권 말에 절정에 달해서 강해지는 재미는 2권부터 전무함. 전개도 주인공 대단해 원툴이라 빠르게 물리는 글. 설정이 섬세하지 못 하고 단편적인 설정들로 였어 이야기 전개가 조잡한 느낌이 강함.
2020.07.22 02:00
미려한    
와... 1편 마지막 장면... 고구마 주인공일 것같다.
2020.07.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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