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십자성-전왕의 검

서장. 호수의 전설

2019.01.30 조회 6,923 추천 46


 제1권_이골마족
 
 
 
 -놈이 내게 온 날.
 
 결국 피는 속일 수 없는 걸까?
 어떻게 제 아비랑 이렇게 똑같을까. 고집불통에 난폭해 보이고, 거기에 거만하기까지 한······.
 정말··· 빌어먹을 부자(夫子)다.
 그 아비와 다른 점은 날 찾아온 방법뿐이다.
 그의 아비는 말이라기보다는 괴물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거대한 흑마를 타고 왔고, 그의 아들은 구멍 뚫린 배를 타고 이 맑은 호수를 건너왔다.
 바가지로 연신 물을 퍼내면서.
 왜 방법이 서로 다르냐고?
 당연한 일이다.
 그 아비가 날 찾아왔을 때는 이 호수가 없었으니까.
 지금부터 내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때, 이 호수가 생겨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길지는 않은 이야기지. 인생처럼!
 아니··· 조금 긴가?
 
 ***
 
 -이십오 년 전.
 
 벌써 이십오 년이나 지난 일이다.
 내 나이가 올해로 백서넛쯤 되었으니, 팔십 줄 바라보던 팔팔하던 때의 일이다.
 난 그와 삼 년 정도 함께 지냈다.
 아!
 생각해 보면 참 멋진 시간이었어. 세상에는 공포의 시간이었지만······.
 난 태어나면서부터 문지기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보통 문지기는 아니었다. 아주 드물지만 몇몇은 날 수호자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
 수호자(守護者)!
 이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통 문지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쨌든 그날 그는 그 거대한 흑마를 타고 날 찾아왔다.
 그는 놈을 흑저라고 불렀지만, 사실 몸집이 클 뿐 돼지처럼 비대하거나 느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광풍 같은 속도와 신룡 같은 힘을 지닌 놈이었지. 전설의 오추마가 그랬을까?
 아무튼, 그를 보는 순간 난 직감했다. 이자는 다른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는 등에 커다란 검과 도를 비껴 메고 있었고, 팔목에는 철갑을 차고 있었다.
 그뿐인가?
 말허리에는 창날에 용을 새겨 넣은 신창이 걸려 있었고, 다른 쪽 허리에는 철궁(鐵弓)이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방패까지는 들고 있지 않았으니.
 만약 방패까지 있었다면 정말··· 흐흠··· 그랬다면, 그랬다면 파마시에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에게 방패가 없었던 것은 내겐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문을 열어줘야겠어!”
 그가 날 만나자마자 한 말이다.
 제길, 문지기에게 문을 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난 거부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문(門)도 내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명월문의 선조들이 들으면 경을 칠 일이지만 이후 우린 삼 년을 함께했다. 그 삼 년을 무림은 검은 사자들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포로 기억한다.
 왜 삼 년이나 무림을 떠돌았냐고?
 당연한 일이다. 그 문은 보통 문이 아니었고, 문을 열려면 제법 많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세상이야 어떻든 내겐 참 멋진 시간이었다.
 비록 파국이 결정되어진 시간이라고 해도.
 
 ***
 
 -그 삼 년··· 검은 사자들의 시간.
 
 세상은 그를 오해했다.
 그가 원한 것은 무림천하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가길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세상의 오해는 세상 탓이 아니다.
 명백하게 그의 실수다.
 말했지만 그는 오만한 자였다. 물론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이었지만.
 세상에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일곱 개의 비밀스런 보물(密寶)이 있다. 그 비밀스런 물건들은 일곱 개의 가문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었다.
 웃기는 건, 그 가문들의 주인들조차도 그 밀보들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래전 그들 가문에 밀보들을 맡긴 자들이 밀보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여담이지만··· 그 밀보를 맡긴 자들 중 한 명이 나의 선조다.
 말했듯이 난 보통 문지기가 아니다.
 아무튼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면 그 일곱 개의 밀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와 그의 수하인 검은 사자들은 삼 년 동안 그것들을 찾기 위해 무림을 휩쓸었다.
 물론 그동안 난 그들의 충실한 길잡이 노릇을 했다. 밀보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조용히 그 보물들을 훔쳐 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오만한 그와 그의 동료들은 오직 힘으로 그 보물들을 차지하려 했다.
 그 결과 그들은 무림의 공적(公敵)이 되었다.
 세상 모두가 그들을 쫓았다.
 정사가 따로 없고, 관과 무림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 잡힐 사람들인가?
 세상은 지금도 모른다. 사실 그들이 마음을 달리 먹었다면 지금쯤 세상의 지배자는 달라졌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수천 명의 추격자를 꼬리에 달고 그와 검은 사자들은 다시 이곳, 나의 오두막이 있던 북방의 아름다운 산, 월하선봉으로 돌아왔다.
 
 ***
 
 -그날.
 
 그날 이 호수가 생겼다.
 녀석이 돛단배를 타고 건너온 바로 이 호수가.
 이 호수는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그중 하나가 전마별호다.
 전마가 떠난 호수란 뜻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전마란 별호에 대해 말하지 않았군.
 녀석의 아비, 검은 사자들의 우두머리였던 그를 사람들은 전마라 불렀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싸움의 신과 같았으니까.
 만약 그가 정도(正道)의 길을 걸었다면 전마가 아니라 전신이나 뭐 전황 정도로 불렸을 것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그가 세상과 작별했기에 사람들은 이 호수를 전마별호라고 부른다.
 그날 정사양도에서 가려 뽑은 고수 삼백이 그와 그의 동료들을 공격했다.
 어땠냐고?
 그들은 그날 진정한 공포를 자신의 뼛속에 새겼다.
 흑저가 일으키는 광풍 같은 모래바람, 온몸의 병기를 모두 꺼내 쓰는 전율적인 전마의 무공. 산허리가 잘리고 비탈은 평지가 됐다.
 죽은 자의 숫자가 일백이 넘었을 때 정사양도의 고수들은 감히 전마를 감당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그렇게 단신으로 적을 물리친 그는 유유히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방해할 사람도 없으니 문을 여시오.”
 난··· 결국 문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 평생 그렇게 무서운 자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때 내 기분은 아주··· 벌래 같았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문을 열자 그의 동료들이 먼저 문 안으로 들어갔다. 환희에 찬 표정으로.
 그는 가장 나중에 움직였어.
 왜냐하면 들어가기 전에 내게 아주 은밀한 부탁을··· 사실은 마지막 명령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부탁이라고 했지만······.
 그는 내게 한 자루 검과 한 여인의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말했다.
 “이 여인을 찾아주시오. 아이를 낳았을 거요. 아이에게 신혈(神血)의 기운이 보이면 내 이름과 검을 전해주시오.”
 “드러나지 않으면 어찌하오?”
 내가 물었다.
 “그럼··· 그냥··· 사람으로······.”
 제길 자긴 사람 아닌가?
 욕설이 터져 나오려 했지만 난 그냥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사실 난 그때 아주 중요한 일을 생각하고 있어서 그의 말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승낙하자 그는 처음으로 내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내가 그를 불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를 그의 이름으로 불렀다.
 “적황!”
 처음 말하나?
 전마의 본래 이름이 적황이었다.
 내가 부르자 그가 날 돌아봤다.
 그도 이상했을 것이다. 난 항상 그를 전마라 불렀으니까. 아마 그때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른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안 돌아볼 수 없었으리라.
 그가 날 보는 순간 난 내 모든 심력과 힘을 모아 파마시를 날렸다. 파마시는 정확하게 그의 심장에 꽂혔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눈으로 자신의 심장에 꽂힌 파마시와 날 번갈아 보더니, 또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문 안쪽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
 난 재빨리 기관을 작동시켰다. 오직 문지기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기관을!
 그러자 산이 무너지고 사방에서 물줄기가 솟구쳤다. 마치 물의 화산이 터진 것 같았다.
 물의 광란은 장장 보름 동안 계속됐다.
 그 후 이 호수가 만들어졌다.
 아마 지금도 호수 밑바닥 어딘가에서는 여러 갈래의 수맥을 통해 끊임없이 물이 솟구치고 있을 것이다.
 
 천하는 날 의인이라고 부른다.
 검은 사자들의 왕을 죽인 기인, 삼 년의 굴욕을 참으며 그의 최후를 준비한 희생자, 그리고 결국에는 무림을 지켜낸 불굴의 대협사!
 의천노공이자 밀교의 일맥을 이은 월문(月門) 제이십칠대 법황, 우서한!
 그게 바로 나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난 그를 좋아했다. 절대 그에게 파마시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따라 그 천기자와 밀교의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어.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래서 태어나면서 짊어진 숙명을 좀체 벗어버리지 못한다.
 난 최후의 순간에 문지기로서의 업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 아픔을 누군가는 이해할까?
 마음으로 따르던 자의 심장에 파마시를 꽂아 넣은 심정을.
 세상을 구한 영웅, 의천노공?
 훗, 개에게나 던져 주고 싶은 말들이다.
 그날 이후 난 호수를 떠났다.
 세상이 날 찾지 못하게. 그래서 그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그저 전설로 남을 만큼의 시간 동안.
 그리고 그가 부탁한 일도 해야 했다.
 그녀를 찾았고, 그녀에게 그의 말도 전했다.
 그녀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자신을 떠나주길 원했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그녀와 자신의 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론 나야 바라던 바였다. 사실 나도 귀찮은 건 질색이었으니까. 내가 죽인 자의 아들을 키우는 것도 썩······.
 다행히 그때까지 그녀의 아들에게선 신혈의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녀를 떠나면서 당부해 뒀다. 신혈의 흔적이 보이면 아이를 내게 보내라고.
 그러나 그녀는 거절했다. 설혹 그런 일이 있어도 결코 내게 아이를 보내지 않겠다고.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단 신혈의 기운이 일어나면 아이가 결코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댓글(3)

하무린    
잘 보고 갑니다. 설 잘 보네세요^^
2019.02.02 18:07
g3*************    
작가님 무협소설을 배낀겁니까? 황당하네 요즘 올라오는글 대다수 무협지 내용 배낀거네
2019.02.03 18:07
화천애    
감사히 읽겠습니다. 건필하세요.
2019.02.06 15:09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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