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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 인턴은 백만장자 1권 (1)

2019.01.31 조회 7,447 추천 22


 # 프롤로그 : 태어났다 내 아들
 
 
 세월이란 막을 수 없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침대에서, 때로는 거실에서, 때로는 주방에서 수많은 역사의 밤을 거쳐 간 결과 어느새 아름이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의 취미는 아름이의 배를 문질거리는 거다. 문지를 때 이따금씩 배를 통통 차는 내 자식의 움직임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어느덧 임신 6개월에 다다른 아름이의 배는 슬슬 임산부라는 것을 주변에 알리듯 꽤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직도 내 애가 태어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한손으로는 아름이의 배를 문지르고, 한쪽 귀는 가까이 갖다 대었다. 그러자 아름이의 체온과 아이의 자그마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렇게 좋아?”
 아름이가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본다. 그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뭔가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래도 착각이겠지?
 “당연히 좋지.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 잘해줄 거야.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게 해줄 거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먹게 해줄 거야.”
 “정말?”
 아름이의 초롱초롱한 눈초리가 묘하게 바뀌었다. 저런 눈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겠다.
 “당연하지. 내가 거짓말 한 적 있어?”
 “당연히 없지. 누구 남편인데.”
 어깨가 으쓱으쓱 해진다. 확실히 아름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법을 안다. 예전 엘리스로 살았을 때도 타인을 배려하는 신녀의 삶을 살더니, 역시 사람의 성정은 변하지 않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가가 수박 먹고 싶대.”
 “으응?”
 순간 귀를 의심했다.
 수박이라고? 에스키모인도 울고 갈 사상 최악의 한파인 이 겨울에 수박을 먹고 싶다고 말한 건가?
 “여보, 지금 수박이라고 했어?”
 “응, 수박.”
 “······.”
 분명 뉴스에서는 비닐하우스마저 얼어버리는 강추위라고 했는데, 수박이라니. 아니, 분명 아까 전 같이 9시 뉴스를 봤는데 수박이라니!
 “왜, 싫어? 자기는 우리 아가가 먹고 싶다는 것도 못 사주는 구나.”
 “아, 아니. 그럴 리가. 다, 당연히 구해와야지. 하.하.하.”
 “맛있는 걸로 구해 와야 해? 우리 아가가 별로 안 단건 싫대.”
 “으, 응. 기다리고 있어. 반드시 구해올 테니까.”
 확실히 임신을 하더니 성격이 좀 장난스럽게 변했다.
 평상시 아름이라면 이런 부탁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임신한 아내를 위해 이 정도 쯤이야···라고 하고 싶지만, 한국 어디에서도 지금 달콤한 수박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휴대폰을 꺼내 브라이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회장님. 지금 급하게 호주에 가려고 하는데, 초음속 전투기 하나만 준비해주세요.”
 단가로 치면 수십 억짜리 수박이겠군. 아가야, 기다려라. 이 아빠가 수박 사러 갔다 올게!
 
 <새벽 3시, 뱃속의 아들 덕택에 호주 공군이 난리가 났던 날.>
 
 * * *
 
 자서전 같은 것을 보다보면 항상 이런 제목이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100명의 사람들.]
 비록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는 다르지만, 그러한 사람들 전부가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베일 사의 총수를 담당하고 있는 브라이언, 그런 브라이언의 아내이자 대표 이사인 바이올렛, 심심하다는 이유로 세계 각국의 테러리스트들을 척살하며 여행을 다니는 미호 자매, 게다가 스페셜 게스트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말 지구의 VVIP라고 부를 수 있을 인물들이 내 아들의 돌잔치에 왔다.
 물론 이들에 비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어느덧 중견 쓰리스타가 된 백소장과 그의 딸인 미연이.
 속도위반으로 조만간 결혼하기로 결정된 애처가 란타넘.
 형기가 끝나 사설 형무소에서 석방된 미희 누나와 최 소위 등 나와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네가 어느새 아들을 얻고, 그 아들이 돌잔치까지 되다니 세월이 정말 빠른 것 같아. 그때는 정말 평범한 녀석인줄로만 알았는데 말이야.”
 백 중장이 감회가 새롭다는 눈을 하며 이쪽에 손을 내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 현재라는 게 어느새 과거가 되더군요.”
 “그렇지. 세월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지. 그나저나 김 중사···, 아니 김 회장님에 대한 소식은 있는가?”
 “잘 계신다는 것 이상은 딱히 말씀드릴 게 없네요.”
 “음, 그런가.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못 봐서 그런지 조금 섭섭하구만.”
 “하하, 언젠가 볼 기회가 있겠지요.”
 이 말을 끝으로 백 중장은 자리로 가 착석했고, 이번에는 란타넘이 다가왔다.
 “젠장, 네 녀석이 나보다 먼저 아이를 갖다니. 이건 문제가 있다.”
 “왜, 임마. 안 만든건 네 녀석이지 왜 나를 탓해.”
 “나도 노력했다. 하루 24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크헉!”
 란타넘의 여자 친구가 란타넘의 허리를 팔꿈치로 강타했다.
 “호호호, 격포 씨 아들 돌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자기야, 우리 빨리 자리 앉자. 응?”
 란타넘은 여자 친구에게 이끌려 마찬가지로 착석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돌 잔치가 진행되었다. 아마 기자들이 이 돌 잔치에 참여했다면 카메라 셔터가 정말 끊임없이 터졌을 거다.
 당장 미국 대통령이 한국 돌잔치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역대급 기삿거리일테니.
 “자, 드디어 기다리던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 유전이는 과연 어떤 것을 잡을까요?”
 사회자인 해리스 락이 너스레를 떤다.
 나도 사실 궁금하다.
 과연 어떤 것을 잡을까?
 내가 잡았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만큼, 내 아들이 잡는 것이 무엇인지 그 순간을 똑똑히 보고 싶다. 아름이의 소망은 어떨까?
 “당신은 어떤 걸 잡았으면 좋겠어?”
 “음~, 세 개, 다?”
 “아이를 키우더니 욕심이 많아졌어.”
 “헤에, 각방 쓰고 싶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호호호.”
 어느덧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아들래미 유전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람들을 쳐다보자 저마다 본인들의 소망인양 외치기 시작했다.
 “유전아 연필이야, 연필!”
 “유전아 실이야, 실!”
 “유전아 사람은 자고로 돈이 제일 중요한 법이야!”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유전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 아무거나 잡아도 좋다.
 그 어떤 것을 잡더라도, 너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마.
 천천히 유전이의 손이 움직인다. 그리고···.
 툭 데구르르 톡톡
 어디선가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구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호박색 구슬 하나가 유전이의 앞에 굴러왔다.
 슥
 반사적으로 유전이는 구슬을 잡았고,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앗, 내 여우옥!”
 ““““““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당황하는 듯한 소리를 했다.
 그러자 미호 씨가 앞으로 나와 혀를 살짝 내밀며 자신의 머리를 콩 하고 쳤다.
 “미안, 내가 실수로 떨어뜨렸어.”
 “아앗, 유전이의 상태가···!”
 여우옥은 빠르게 유전이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헉! 미, 미호 씨, 괜찮은거겠죠?”
 딴에는 되게 걱정하면서 물은 건데, 미호 씨는 어째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응, 문제없어. 오히려 나중에 도움이 될 걸?”
 “도움이요?”
 “응. 여우옥이잖아.”
 “어떤 도움을 주는 데요?”
 “응, 그러니까 여우옥이 도움을 줄 거야.”
 “······.”
 보다못한 호미은 하사, 아니 은미호 씨가 끼어들었다.
 “간단해. 구미호 중에 못 생긴 구미호 봤어?”
 “음···, 적어도 제가 본 구미호 중에는 없군요.”
 “그럼 네 아들은 어떻게 될 거 같아?”
 “아···!”
 세상에. 아주 길고 긴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운을 잡아 본 적이 없었는데, 내 아들이라지만 스타트 라인이 너무나도 좋다. 묘하게 질투감이 생길 정도인데?
 “하하하, 유전 군의 미래가 상당히 기대되는 군요. 이러다가 장래에 헐리우드 대스타가 되는 거 아닐까요?”
 해리스 락의 유려한 진행에 사람들은 방금 전의 불안함을 잊고 다시금 돌잔치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돌잔치는 끝났다.
 
 
 밤이 되어, 사람들은 돌아갔고, 나와 아름이는 축의금을 하나씩 확인했다.
 뭐, 김 중사 밑에 있으면서 벌었던 돈을 비롯해서 이미 어지간한 부자 찜쪄먹는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돈 욕심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떤 걸 받았는지 확인해 볼 뿐이다.
 “어머.”
 옆에서 들리는 탄성 소리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왜?”
 “브라이언 씨가 베일 사의 순매출의 1퍼센트를 매년 우리 애기에게 주겠대.”
 “잠깐, 정말?”
 종이를 넘겨 받아 펼쳐보자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잠깐, 지금 베일 사의 순 매출액이 어디보자···.
 ‘0’을 아무리 세도 끊임이 없다. 이걸 유전이는 매년 받게 된다고? 이거, 은수저도, 금수저도, 티타늄수저도 아득히 뛰어넘는, 그야말로 은하수저가 따로없다.
 “이 녀석, 완전히 나와는 대척점에서 시작하는 구만? 아이구 부러운 녀석.”
 약간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지만, 유전이는 그저 요람에서 새근새근 잠자고 있었다.
 “자, 그러면 다른 것도 확인해볼까?”
 
 <돌잔치 축의금이 때로는 아이의 미래를 보조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날>
 
 * * *
 
 위이이잉-
 미용실의 전동 바리깡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밀어댔다.
 바닥에 후둑후둑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의자에 앉은 남자가 곧 군대에 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제 군대는 모병제인데, 왜 굳이 지원해서 가는 거니?”
 미용실 아주머니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똑한 코, 써클렌즈를 낀 여자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큰 눈, 잘생긴 외모에 큰 키까지. 군대에 가는 게 인력 낭비라고 생각될 정도의 남자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를 한 번 다녀와야죠.”
 “미친놈.”
 미용실 구석 소파에 앉아 있던, 격포가 개풀 뜯어 먹는 소리라도 들은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름이는 바로 격포의 등짝에 스매시를 날렸다.
 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우리가 군인이었을 때는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정상이었다구. 여보야도 나랑 같이 군생활 해봤으니 알 거 아냐. 평생 이 말 한 마디 해보고 싶었는데 오늘 소원 풀었네. 하하핫”
 “정말···.”
 아름이가 눈을 흘기자 격포는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미용실 아주머니의 입가에 훈훈만 미소가 떠올랐다.
 “누나랑 형이니?”
 “아뇨, 부모님이신데요?”
 “응?”
 “부모님이세요.”
 “에이, 장난두.”
 아줌마는 농담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격포와 아름이는 씨익 웃었다.
 아직도 두 사람의 외모는 20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전자 덕분인지, 마찬가지로 유전은 딱 20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짠~!”
 격포가 장난스럽게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꺼내들었다.
 그곳에는 격포의 생년월일이 당당히 적혀있었다.
 “헐.”
 미용실 아줌마는 자신이 뭘 하는지도 잊고, 입을 떡 벌렸다.
 “저희 부모님이 좀 동안이세요.”
 “좀이 아닌 거 같은데···, 비법이 뭐에요?”
 아줌마는 좋은 대화거리를 찾았다는 듯 다시금 유쾌하게 미용을 시작했다.
 그렇게 유전이 머리를 다 밀자, 격포는 아름이와 유전이를 차에 태우고는 논산으로 향했다.
 수십 년 전, 자신이 입대했을 때와 달리 아들은 가족이라는 존재와 입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참 많이 변했네.”
 여러가지로 회상에 잠긴듯한 말을 하며 운전하는 격포를, 아름이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유전아.”
 “네, 아버지.”
 “우리 때보다는 너는 확실히 할 만할 거다. 이건 우리 때 어른들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거야. 나는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니까.”
 “란타넘 삼촌에게 많이 들었어요. 대단하셨다던데요?”
 “하하하, 그 녀석이 아는 게 뭐가 있다고. 아무튼, 군대 잘 다녀와라. 나는 오히려 네가 군대 다녀와서의 일이 기대되는구나.”
 “예, 아버지!”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는 유전.
 마침내 논산 훈련소 정문에 도착해서 유전은 정문으로 들어가다가 뒤를 돌아 외쳤다.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 전설의 시작
 
 
 세상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리비아의 엘 아지지아.
 이곳은 가장 더울 때 온도가 거의 60도에 근접할 정도로 최악의 더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렇게 극악한 도시라 할지라도 주요 교역 거점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베일 사가 전 세계 군수산업의 독점과 관련하여 적당히 손을 떼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군수기업들이 경쟁을 시작했다.
 그로 인해 과거부터 교역 도시 중 하나였던 엘 아지지아는 이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극악한 환경 조건으로 인해 불어난 유동인구를 감당할 사람들이 없었고, 그 결과 엘 아지지아는 각 나라에게 일종의 용병대를 부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입찰에 성공했고, 이제 대한민국은 엘 아지지아의 치안을 일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에서 대한민국 군인들은 아주 열심히 근무를 서고 있었다.
 “야, 저기 미군 애들 근무하는 거 봐라. 불쌍하지 않냐?”
 선임인 정윤형 상병이 다소 지루하다는 듯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후임인 이일광 이병을 바라보았다.
 “예, 그렇지 말입니다.”
 “우리 봐라. 이렇게 냉방기 밑에서 근무하니까 쾌적하지만, 쟤네들은 땀 뻘뻘 흘리며 근무하잖냐. 이럴 때 보면 정말 파견오길 정말 잘했다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특혜도 박유전 병장님 전역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뭐···, 나도 그게 걱정되긴 하는데, 상말 때까지 개꿀 빨았으면 만족해야지 뭐. 그래도 군 기간 동안 돈이라도 많이 모아서 다행이다.”
 “으, 저도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 1년 더 빨리 오는 건데 말입니다. 이 더운 곳에서 1년 더 버티려니 괜히 군대 지원했지 말입니다.”
 “어쭈, 그러면 네가 내 선임되겠다 이거냐?”
 “어라, 그런 이점도 있었습니까?”
 “낄낄낄, 야, 차 들어온다 준비해.”
 이들이 경계를 서는 섹터는 오로지 관계자들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항상 확인이 철저해야했다.
 우우웅- 끼익-
 자동적으로 올라온 방탄 차단막으로 인해 차는 무조건 서야만했고, 그와 동시에 차의 창문이 내려갔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야, 나 누군지 몰라?”
 이번에 새로 파견 온 정작과장인 한민철 대위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모르지 말입니다.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사실 정윤형 상병은 물론이고 이일광 이병까지도 한민철 대위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부대에서는 그 누구든지 간에, 심지어 대대장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멈추어 서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한민철 대위는 아직 이 부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얌마, 빨리 길 열지 못해? 지금 장난하는 거야? 뻔히 알면서 안 여는 거는 기만이야, 기만. 간부 기만하는 거냐?”
 한민철 대위의 협박에 정윤형 상병의 목소리가 한껏 늘어졌다. 그야말로 비꼬기에 최적화된 목소리 톤이 성대에서 노랫가락 흐르듯이 발현되었다.
 “으응? 군규도 모르는 찐따의 목소리는 안 들리는 걸?”
 명백한 하극상이지만, 정윤형 상병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첫째는 이미 간부가 군규를 무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곳의 CCTV는 소리가 녹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도 있었다.
 “뭐? 이 새끼가!”
 한민철 대위는 단박에 차문을 열고, 일어섰다. 그러자 순식간에 묘한 기류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모병제로 전환된 이상 간부들은 더 이상 병사들에게 모난 행동을 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파견지의 경우에는 병사들이 본국과 연락할 방법이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간부들이 병사들을 압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윤형아, 무슨 일 있어?”
 정윤형 상병은 익숙한 목소리에 화색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유전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서있었다. 이런 작열하는 태양의 아래에서도 매끈하면서도 하얀 피부를 유지하는 정말 미스테리한 말년병장이다.
 이곳 파견지에서 간부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병사. 정윤형 상병은 지금 누구보다도 큰 원군을 얻었다고 확신했다.
 “예, 지금 신분증을 내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교육 좀 시키고 있었습니다.”
 “뭐? 교육? 이 새끼가 진짜!”
 한민철 대위는 주먹을 뻗어 정윤형 상병에게 날렸다.
 턱
 “어쭈, 막···어?”
 당연히 정윤형 상병이 막을거라 생각했던 한민철 대위는 윽박지르려다가 자신의 손을 잡은 게 박유전 병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러나 그런 상화에 전혀 개의치 않고, 유전은 단박에 휴대폰으로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대장님, 지금 신분증 제시하지 않는 사람이 게이트에서 난동 피우고 있습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굉장히 당황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뭐? 어떤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 또 인사행정관이야?]
 정윤형 상병을 비롯해서 한민철 대위까지 들을 수 있는 소리라서 한민철 대위는 찔끔했다.
 그리고 30초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 지난 후에, 대대장이 게이트에 차를 몰고 나타났다.
 “어떤 새끼야! 너야?”
 퍽!
 온몸이 구릿빛 피부인데다가 근육까지 굉장한 대대장은 나타나자마자 한민철 대위의 죽빵을 날렸다.
 “꾸엑!”
 한민철 대위는 예상치 못한 대대장의 행동이 반응조차도 못하고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가 부대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너 오늘 잘 걸렸다. 네 새끼 하나 조져서 부대가 안정되면 그게 더 이득이지. 오늘 한 번 죽어봐라.”
 대대장은 한민철 대위를 군홧발로 아주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온화한 얼굴로 바꾸며 유전을 바라보았다.
 마치, 칭찬을 갈구하는 애완견의 모습이다.
 “그래, 유전아. 여긴 아무 걱정마라. 내가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아주 본 때를 보여줄테니.”
 “예, 감사합니다.”
 어느새 유전은 사라졌다. 게이트 앞에는 푸닥거리는 대대장과 한민철 대위, 그리고 병사 두 명만 남았다.
 “봤냐?”
 마치 자신이 큰 일을 한 것마냥 한껏 으스대는 모습의 정윤형 상병이었지만, 이일광 이병은 유전이 사라진 방향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멋지다···.”
 이후 한민철 대위는 병사들에게 아주 공손한 간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 * *
 
 유전이 소속된 대대의 대대장이 유전에게 절절 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이라는 게 결국에는 부조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격포가 부조리를 없애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산 쪽에서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것이지, 인적 활용에 대해서는 격포 전역 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자 차츰차츰 부조리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게이트에서 신원을 무조건 확인해야 하는 것도 병사가 간부의 얼굴을 기억해야만 하게끔 되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부대 같은 경우 격오지 정도가 되어야 이게 가능하지만, 파견, 그것도 오지 파견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조리는 점점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조리를 타파한 것이 바로 유전이다.
 유전의 게이트 첫 근무 때, 이곳 수비연대의 연대장이 출근을 했다.
 당연히 다른 병사는 문을 열어주려고 했는데 유전은 ‘메뉴얼에는 신분증을 확인하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며 연대장의 차를 세우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당연히 대대장은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감히 자신을 막은 병사에게 짜증을 부렸고, 유전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연대장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것도 한 통이 아니라 수십 통이.
 그리고 연대장은 엄청난 속도로 보직 해임됨과 동시에 직권남용으로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당시 발령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대대장은 유전의 뒷배경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유전을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
 매뉴얼대로 일을 하고, 따로 꼼수를 부리지 않는 병사였기에 오히려 환영할만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유전은 특별 대우를 해줘야하는 병사였다. 자신의 돈으로 매달 2억 상당의 시설을 기부하는 병사를 어찌 처벌할 수 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이곳 엘 아지지아의 시설은 좋은 편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30억에 달하는 돈을 기부 받아 설치한 시설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오죽하면 주변 간부들이 이곳으로 보직 이동을 애원할까.
 그러나 그것도 이번 달이 마지막이다.
 유전을 앞에 둔 대대장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많았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너 덕분에 우리들이 정말 쾌적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별 말씀을요.”
 유전은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다.
 “그래, 전역하고 할 일은 있고? 개인적으로는 네가 장기복무를 했으면 한다만···.”
 “음, 장기복무는 사양하겠습니다. 군대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목표는 이루었거든요. 전역하면 바로 취직을 해볼 요량입니다.”
 “취직? 하긴, 모병제가 되고 나서 군 가산점이 상당히 늘었지. 오죽하면 여성사관이나 부사관이 늘고 있으니까 말이야.”
 “딱히 가산점 때문에 온 것은 아니긴 합니다.”
 “그럼?”
 “하하, 그냥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유전은 아버지 앞에서는 부끄러워 말하지 못했던 사실.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군대를 직접 체험하고 싶었다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래, 넌 어디를 가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역하고 나서도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모병제의 의무 복무기간 18개월.
 유전은 수송기에 탄 채로 엘 아지지아의 상공을 가로지르며 전역했다.
 
 * * *
 
 대전에 존재하는 대저택. 김 중사가 숙소이자 사무실로 사용하던 이곳은 격포와 아름이가 생활하는 집이 되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매우 부러워하는 이 집은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으로 매우 유명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왔다 갔다 하지만, 정작 누가 살고 있는지는 미스테리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집에는 출입하는 방법이 따로 있고, 유전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을 통해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나~, 우리 아들!”
 모습은 20대 중반이지만, 어느새 완숙한 어머니의 정신을 지닌 아름이는 아들이 몸 건강히 제대하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와락 안았다.
 자신이 복무하던 군대와는 상당히 다른, 그래도 인권적으로 모난 구석이 없는 군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식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대한민국 부모 공통이었다.
 “그동안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고생은 무슨! 누구보다도 당당한 우리아들인데. 그래, 그동안 별 일 없었고?”
 “그럼요. 누구 아들인데요.”
 아름이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과거, 격포를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김 중사의 모습도 조금은 겹치는 듯한···.
 “그래,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따끈한 밥 차려줄 게.”
 지구적인 조만장자가 되었음에도 아름이는 변하지 않았다.
 처음 격포에게 밥을 차려줬을 때처럼 그녀는 언제나 아름이였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등 어찌보면 소박한 밥상이 차려졌다.
 밥 한 술과 찌개 한 숟가락. 평범하기 그지없는 반찬이었지만, 임금님 수랏상 부럽지 않은 정성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언제 오시나요?”
 “글쎄. 요새 되게 바쁘다고 하더라. 브라이언 회장님도 요새 일선에서 물러났잖니. 왜, 급한 일 있니?”
 “아뇨. 그냥 전역했다고 말씀드리려구요.”
 “그래? 그러면 이따가 화상전화로 연락해보렴.”
 “그럴게요.”
 따뜻한 식사가 끝나고 유전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바로 격포에게 통화를 걸었다. 생각외로 바로 연결이 되었다.
 “어? 네가 지금 웬 일이냐?”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 왜 그러시는지 의아해했지만, 잠시 뒤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저 전역했어요.”
 유전은 자부심을 가지며 가슴을 쫙 폈다. 아버지가 거쳐 왔던 길을 자신도 걸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응? 너 벌써 전역했냐?”
 
 
 # 이상한 면접관
 
 
 “아버지···”
 “하하하, 농담이다. 나 때는 다른 사람의 전역은 빠르고, 자기 전역은 느리다는 농담이 있었거든. 내가 요즘 바쁘다보니 아들 전역하는 날도 잊고 있었구나. 조만간 한국 돌아가면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
 “예, 아버지.”
 “잠시 후에 회의가 있어서 이만 끊으마. 무슨 일 있으면 또 연락하고. 그리고···.”
 격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씨익 웃었다.
 “아버지는 네가 자랑스럽다.”
 삑-
 통화는 끝났다. 어두컴컴한 화면만이 얼굴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누구보다도 환했다.
 
 * * *
 
 아버지라는 존재는 세상에 수없이 많고, 당연히 다양한 모습들을 보인다.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 자영업을 하는 아버지, 프리랜서를 하는 아버지, 때로는 무직인 아버지 등등.
 아이가 자라면서 보아오는 아버지의 모습에 따라 자식은 무의식 중에 아버지의 길을 같이 걷게 된다. 혹은 스스로 걷고자 하거나.
 유전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당당하고 미소를 잃지 않고, 또 가족에게 한없이 사랑을 쏟아주는 그런 아버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직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연일 승승장구하는 그런 아버지였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하셨던 아버지의 직업은 베일 사의 회장.
 표면적으로는 아예 아버지와 연관관계는 없다.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격포라는 사람과 유전이라는 사람은 아예 남남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조건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장래에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싶다.’
 아버지가 어떠한 길을 겪었는지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 군대까지 자원해서 다녀왔다.
 군대에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풍문으로는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아버지가 경험했던 군대가 어땠는지 믿기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격포란 사람이 얼마나 입지전적인 인물인지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로 취직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이 세상에 기업은 너무나도 많다.
 일단 아버지의 회사는 패스.
 아버지의 회사인 만큼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특혜를 받게 될 테니 자연스럽게 일을 배우는 데에 애로사항이 생길 것이 틀림없다.
 침대에 누운 채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잊은 사실을 깨닫고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맞다. 전역했는데 친구들한테 연락도 안 했네.”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모병제로 전환이 된 상태기 때문에 이제 대한민국 남자들도 여자들과 같이 24살에 대학교를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26살에 졸업하는 여자가 생길 정도다.
 현재 유전의 나이는 22살. 다른 친구들은 아직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지만, 유전은 이미 군대에서 대학교 과정을 끝냈다.
 국방부와 대학교 간의 협약으로 인해, 이제는 교수들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시험은 국가에서 파견한 감독원의 동석 하에 답지를 작성하고,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군대에서 대학을, 그것도 남들보다 2배에 가까운 속도로 졸업했기 때문에 바로 취업활동에 전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기 때문에 대학을 얼마 안 다니고 군대에 갔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일단 원석이한테 연락할까?”
 전화를 하려던 찰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라, 원석아.”
 [얌마! 넌 전역했는데 연락도 안 하냐? 2년 안 봤다고 이제 남남이라 이거지?]
 “아냐, 임마. 지금 전화하려고 했어.”
 [구라치네. 오늘 시간 있냐?]
 “물론.”
 [그러면 저녁에 홍대로 와라. 애들은 내가 부를 게.]
 “콜.”
 전화를 끊자마자 외출을 준비했다. 일단 옷들을 모아놓은 피팅룸으로 가야한다.
 “도련님, 전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외출하시게요?”
 자택에서 코디를 위해 고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15년 전부터 일해왔기 때문에 유전의 어린 시절부터 코디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나이가 다소 많은 노파지만, 과거에 이태리에서 패션 디자이너일을 했던 경력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었던 사람인데, 불미스러운 사고에 휘말려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격포와 인연이 있던 지인의 추천으로 다행스럽게도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꽤 정성스레 유전의 코디를 봐주곤 했다.
 “네. 친구들 만나러 갈건데, 코디 좀 부탁드려요.”
 “친구들 만나러 가실 거면 화려하지 않은 게 좋겠네요. 그냥 캐쥬얼만 입고 가셔도 되겠어요. 친구들하고 놀러가실거면 아마 클럽 같은 데를 가실 테니까, 상의는 흰색 계통으로, 바지는 블랙 계통으로 입으시는 게 좋겠네요. 악세사리는 차실 건가요?”
 “시계정도만 찰까 생각 중이에요.”
 “예, 그러면 잠시만 기다리세요.”
 코디는 넓디넓은 피팅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옷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약간 흐르고 정확하게 필요한 옷들만을 골라온 코디는 유전에게 옷을 건넸다.
 “이렇게 입으시면 될 거에요. 잘 다녀오세요.”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인사를 한 유전은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으로는 헤어룸으로 향했다.
 “어머, 도련님. 전역하셨다면서요? 오늘 친구들 만나러 가시나요?”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호호, 제 나이가 몇인데요. 아직 젊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다 안답니다.”
 “그럼, 믿고 맡길게요.”
 “물론이죠. 오늘 전역하셔서 머리가 짧으시니까, 차라리 스포츠인 걸 좀 강요하는 게 좋겠어요. 가발도 나쁘진 않지만, 굳이 지푸라기로 옥을 가릴 필요는 없잖아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 헤어 디자이너는 유전의 머리를 섬세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약 30분 정도 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헤어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머리를 감지 않아 떡진 기름이 흐르는 머리와는 전혀 다른 깔금한 스타일이었다.
 “좋아, 준비 끝!”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주차장으로 향하자, 이번에는 운전수들이 인사를 해왔다.
 “도련님, 외출하시나요? 차에 타시죠.”
 “무슨 소리야. 도련님은 내 차를 타야지. 도련님 제 차를 타시죠.”
 “도련님, 제가 빠르고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세 명의 운전수가 서로 유전을 태우기 위해 아옹다옹했지만, 유전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들은 쉬셔요.”
 “에이, 도련님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하하, 오랜만에 운전하고 싶어서 그래요.”
 “옙. 조심히 다녀오십쇼!”
 운전수들의 극진한 환송을 받으며, 유전은 40억짜리 스포츠카에 탔다.
 예전에 김 중사가 타던 스포츠카의 신기종이다.
 언제나 프리미엄 생산을 하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눈알 튀어나오게 비싼 것은 똑같다.
 부다다다다다다-!
 우렁찬 엔진음과 함께 스포츠카는 대저택에서 사라졌다.
 
 * * *
 
 젊은이란 정말로 좋은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음이 모이게 되면 그 주변 자체를 젊게 만든다.
 홍대는 오늘도 주변에 대학교들이 밀집한 거리답게 각종 젊음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끔은 좀 과한 열기를 뿜어내기도 하지만, 늙어서 못 치는 사고, 젊어서 좀 쳐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오늘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홍대에 모여 쾌감, 혹은 일탈을 꿈꾸었다.
 저 마다 그룹을 지어 술집에 앉아, 이성 그룹이 보이면 은근히 눈길을 던지거나 혹은 직접 다가가 합석을 제의한다.
 그러면 상대들 역시 못 이기는 척, 혹은 기쁨에 겨워 합석에 응한다.
 이러한 난장의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 침묵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유전의 등장이었다.
 수십억에 달하는 스포츠카인 만큼 당연히 외관이 화려했고, 모두들 그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구일지 시선을 집중했다.
 끼익-
 문이 열리자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
 남자와 여자 둘다 반응은 같았지만 느낌이 달랐다.
 남자들은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생각에 유전을 흘겨보았다.
 반면 여자들은 화려한 스포츠카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유전이 나타나자 오늘 꼭 낚아야 하는 물고기라도 본 듯 도전의식에 불타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꽤나 아름다운 여자가 유전의 앞을 가로막았다.
 다리에 쫙 달라붙는 블루진에 백화점에서 한 장에 십만 원 정도는 할법한 민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가슴에 붙어 있는 탄력있는 무언가가 오히려 돋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슥
 유전은 여자를 살짝 흘리듯이 지나갔다.
 그러자 여자는 당황스럽다는 듯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금 유전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저기요?”
 “예?”
 유전이 왜 길을 막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여자는 상당히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했다.
 “저 지금 한가해요.”
 원래대로라면 이렇게까지 대놓고 간접적인 말을 던지지는 않는다.
 이것보다도 좀 더 고차원적인 신체언어까지 써가면서 상대를 유혹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상황을 겪은 여자는 감성보다는 오히려 이성이 더 앞서게 되어버렸다.
 “좋으시겠네요. 그럼, 전 이만.”
 다시 여자의 옆을 지나쳐 가려 하자, 여자는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자가 어떻게 그리 눈치가 없어요?”
 “무슨 말씀이시죠?”
 “여자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네. 친구랑 약속이 있거든요.”
 “하, 친구요? 친구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잖아요.”
 여자는 자신이 고작 친구라는 것에 우선순위가 밀렸다는 사실이 짜증이 났다.
 “여자도 마찬가지죠.”
 유전은 씨익 웃으며 여자를 아예 옆으로 밀고는 목적지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유전을 향해 시선을 던졌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약속한 가게로 들어갔다.
 “여어, 이제 왔냐?”
 이러한 유전의 모습에도 친구들은 전혀 호들갑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이했다.
 “뭐야, 지각은 밥 먹듯이 하던 녀석들이 왜 이럴 때는 일찍 오는 건데.”
 “야, 이럴 때니까 일찍 오는 거야. 그것도 모르냐?”
 “어이구, 그러셨어요?”
 유전은 굉장히 마음이 편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하기가 참 편했다.
 대학교 친구들은 만난 기간이 너무 짧았다.
 6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인연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신적 교감을 나눌만한 시기가 없었다.
 군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수직적인 역학 관계가 있는데다가, 부대에 주기적으로 기부를 한 것 때문에 경외의 대상이 되었지, 교류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르다.
 사람 그 자체를 봐주는, 진짜 친구들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정말 편하다.
 “자, 일단 늦었으니, 한 잔 쭈욱 마셔라.”
 친구가 소주가 가득 담긴 맥주잔을 건네왔다.
 꿀꺽 꿀꺽
 한 방에 잔을 비워버린 뒤 소매로 입을 슥 닦았다. 그러자 원석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그런 옷으로 입가를 닦는 녀석은 대한민국에 너 밖에 없을 거다.”
 “너도 한 번 닦아 볼래?”
 “아니, 난 그랬다간 오늘 잠 못 잘 거 같아.”
 갑자기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뻥치시네. 살색 영상 보느라 못 자는 거겠지.”
 “뒤질래?”
 “야야, 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소주는 이쯤에서 끝내자고.”
 유전은 이렇게 말하며 주문벨을 눌렀다.
 “예~”
 약간 통통하지만, 귀여운 외모의 여자 알바가 다가왔다.
 “여기에서 가장 비싼 술로 갖다주세요.”
 “넵.”
 총총 걸음으로 돌아간 알바는 발렌타인 21년산을 가져왔다.
 “30년산은 없나요?”
 “있긴 한데 비싸서···.”
 “선결제 할테니 갖다 주세요.”
 유전이 카드를 건네자 알바는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30년산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양주를 친구들 잔에 채워주었고, 양주만으로 몇 순배가 돌아갔다.
 약간 취기가 오르자, 저마다 요즘 고민이라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야, 너희들은 취직할 곳 있냐?”
 세상이 발전해도 젊은 사람들의 고민은 변할 수가 없다.
 아무리 멋진 직장이 있다고 해도 모두가 평등하면 직업의 분화가 사라지게 되고,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는 순간,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직업을 가지려고 방법을 찾게 된다.
 물론 예전에 헬조선이라 불리는 시절만큼 과열이 있진 않지만, 그래도 직업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글쎄···. 가고 싶은 곳은 많은데 나를 받아주느냐가 문제지.”
 “하긴,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어느 회사가 널 고용하겠냐.”
 “그래도 너보단 낫네. 너는 면접관이 너에게 총을 쏠테니.”
 서로를 디스하며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들을 바라보던 유전이 입을 열었다.
 “요즘 괜찮은 기업 있어? 베일 사 말고.”
 
 * * *
 
 “괜찮은 기업? 어디보자···.”
 원석이 소주잔을 막 들려던 자세로 멈춘 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세계 굴지의 기업은 베일 사다.
 단지 베일 사의 문제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입사 방식이 아니라 모든 사원이 헤드헌팅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나라의, 굉장히 작은 회사라 할지라도,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능력만 있다면 어느새 베일 사의 스카우터가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전 세계의 기업들은 알게 모르게 경영 효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베일 사야 네가 방금 말했고, 그거 제외하면 좀 애매한데? 20년 전에 대기업들 한 번 싹 물갈이 됐잖아. 그래서 지금은 옛날 같이 독보적인 기업이 없잖아. 삼국지로 치면 유비, 조조, 손권이 싸우던 시대가 아니라 여포, 원소, 유장, 유표, 손견, 공손찬 까지 같이 싸우는 그런 상황? 외국계 기업을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기업 중에서는 이제 ‘여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해’그런 건 없는 거 같다.”
 “아니야, 하나 있잖아.”
 다른 친구가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김신영. 현재 9급 공무원을 하고 있는, 고시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기업 정보에 밝은 녀석이다.
 “그, 어디더라? 아, 맞다. 파라솔 코포레이션. 거기가 요새 치고 올라오고 있잖아. 비록 지사인데도 현지경영을 채택하고는 있지만 페이도 괜찮고, 경력도 꽤 알아준다고 들었어. 문제는 그만큼 들어가기 어렵다는 거지만.”
 “아, 거기. 나도 들어본 적 있어. 5년 전만해도 작은 기업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되게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고 있었다며? 이번에 신형 전투기인 S-28의 소프트웨어랑 하드웨어 일부를 거기서 담당했다는 소문이 있더라.”
 “그런데 우리 중에서 들어갈 수 있는 녀석 있냐?”
 “야, 그래도 난 가능하지 않겠냐? 이래뵈도 서울대라고. 입사지원서 정도는 넣어도 되지 않겠냐?”
 원석이가 가슴을 쫙 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야, 넌 교수한테 쌍권총을 맞는 게 일상이면서 무슨 헛소리야. 이번에도 1학년 과목 줄줄이 재수강하는 걸로 아는데.”
 “쓰~, 계속 아픈데 찌를래?”
 왁자지껄한 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유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파라솔 코포레이션이라···.’
 
 * * *
 
 전 세계에 핵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위기에서 2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또 세계 곳곳에서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이지만, 과학 기술은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던 방향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지금 유전이 마우스를 이용해서 데스크탑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한창 VR이 유행하고, 또 업무와 관련해서도 VR이 도입되려고 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결국에는 발생해 버렸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인지능력에 큰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VR로 저장된 문서를 읽고, 사진을 읽고 하다보니 사람들은 VR을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물을 보게 되버린 것이다.
 실존하는 물건을 인지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물건을 실존하는 것처럼 인지하는 것은 매우 차이가 크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은 아무데도 없고, 그저 ‘베일 사는 가능하겠지’라는 사람들의 추측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의 침대 구석에는 [Vail]마크가 찍힌 VR 기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유전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데스크탑을 쓰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파라솔 코포레이션’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인터넷 창 떠있었다.
 ‘본사는 서울에 있고, 회장은 없고, 사장은 본사에서 임명한 한국인. 주요 상품은 대형마트 운영, 군수산업, 보험, 화장품 등 상당히 많은 분야에 진출해 있네. 현재 한국에서는 대형마트 쪽에 힘을 쏟고 있고, 수평적 인사이동이 잦은 편다라···.’
 그냥 어찌보면 평범한 회사였다.
 오래 전에 사라진 기업 중에서는 일반적인 회사 같았으면서도 군수산업에 손대는 경우도 충분히 있었으니까.
 한 마디로 기업은 돈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라솔 코포레이션이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대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자 아쉬우면서도 허탈한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끄려고 했는데 가장 아래쪽에 눈길을 끄는 뉴스기사 하나가 있었다.
 
 <파라솔 코포레이션, 떠오르는 베일 사의 대항마?>
 
 “호오.”
 관심을 가지고 클릭을 했더니 꽤 괜찮은 내용의 전문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파라솔 코포레이션. 회장이 누구인지는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던 베일 사와 달리, 여러 명의 사장이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많은 경제계 사람들이 실제로 숨겨진 회장이 존재할 것으로 추측한다.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시가총액은 현재 베일 사의···]
 
 이 기사를 보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마침 인턴 모집기간이기도 했다.
 ‘그래, 이곳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거야.’
 일단 입사지원서를 넣고 보는 거다. 그리고 이곳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맞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맞춰주면 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시간은 많다.
 학력이 부족하다면 높여주면 되고, 자격증을 원한다면 취득해주면 된다.
 위이이잉-
 어느새 프린터에서는 입사지원서가 인쇄되고 있었다.
 
 * * *
 
 파라솔 코포레이션이 다른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서류전형에서 면접으로 뽑는 인원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입사지원서에 판타지 소설을 쓰거나, 성의 없이 작성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일단 면접에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입사지원서에 사진도 붙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면접은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주에 걸쳐서 진행이 되는 데, 이 기간 동안 근처의 상권들이 활성화 될 정도이다.
 5일차에 배정 받은 유전은 면접장에 도착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택시는 부족했고, 버스는 사람들이 꽉꽉 찼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은 꽤 떨어진 곳에서부터 아예 뛰어서 면접장에 도착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렸지만, 몸에서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고, 숨 또한 평상시처럼 매우 고르게 쉬었다.
 확실히 격포의 아들이라는 것을 유전자가 인증했다.
 ‘워···, 살벌하네.’
 면접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 위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남녀 할 것 없이 서로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누가 자신의 경쟁자가 될지 생각하는 눈치였다.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대기업이다 보니 혹여나 자기가 지원할 때 경쟁이 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인턴이라고는 하지만, 인턴 중에서 10퍼센트 이상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조건이다.
 현재 떠오르는 기업이니 당연히 다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착
 모든 대기 의자에는 면접 번호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자리를 찾아서 앉은 유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어차피 면접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괜히 긴장을 할 필요는 없었다.
 수백 명 중에 가장 마음이 편한 사람, 그것이 바로 유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속마음이 편한 유전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이 유전을 바라보는 생각은 전혀 달랐다.
 “쯔쯔···, 올림픽 정신으로 왔나보네.”
 “면접이 장난인 줄 아나.”
 “금수저인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유전을 향한 눈초리가 다른 곳으로 완벽히 이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자, 정규야 들어가자마자 면접관님들한테 공손히 인사드리는 거 잊지 말고.”
 50대 초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양복을 입은 아들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닦아주고, 양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고, 양복의 핏을 잡아주는 등 아주 극성이었다.
 “응, 엄마!”
 마치 7살 난 어린 애가 유치원 선생님께 인사드리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대답하는 30대 초반의 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반응, 혹은 웃기다는 반응을 지었다.
 회사 경비원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낄낄 거리며 웃다가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색하는 것이 확실히 프로다웠다.
 다행스럽게도 아줌마는 경비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활짝 웃으며 경비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이 회사 경비이신가 봐요?”
 “네? 하하, 네, 그렇죠. 뭐.”
 “대기업 경비라 그러신지 아주 신수가 훤하시네~, 얼굴도 잘 생기시고, 아주 앞날이 창창하시겠어.”
 “어···,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정규야, 뭐해. 인사 안 드리고.”
 “안녕하십니까!”
 “네? 아···, 반갑습니다.”
 경비원은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정규라는 사람과 악수를 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정규와 그의 어머니는 유전의 조금 앞 쪽에 있는 대기 의자에 앉았다.
 경비원은 그런 모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그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저 사람 다음이 나겠군.’
 정규를 바라보며 유전은 저 사람이 면접 때 실수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생각은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정규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 어머니가 같이 면접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생떼를 부렸다.
 덕분에 또 다른 경비는 그것을 제지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아, 글쎄. 우리 아들에 대해서는 제가 제일 잘 안 다니까요.”
 “안 됩니다. 면접장은 면접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괜찮다니까요. 엄마랑 자식이랑 원래 한 몸이었는데, 저는 우리 아들이랑 차이가 없어요.”
 “아, 글쎄 안 된다지 않습니까. 이것은 규정입니다.”
 경비가 계속해서 막자 이내 정규의 어머니는 얼굴이 아수라처럼 변하더니 소리를 빼액 질렀다.
 “우리 아들 면접 떨어지면 책임 질 거야? 면접관이 우리 아들에 대해서 잘 알려면 내가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당신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어떻게 할 거야? 오호라~, 융통성이 없어서 경비 따위나 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 남편이 누군지 알아? 어? 우리 남편이 어? 어? 5급 공무원, 어?”
 ‘주어와 수식어만 있지 동사가 없는 걸 보니 남편이 진짜 5급 공무원은 아닌 거 같네.’
 유전의 추측은 정확했다.
 남편의 친구가 5급 공무원이었지만, 여자는 어떻게든 경비를 짓 누르기 위해 악을 쓴 것 뿐이었다.
 진짜라 하더라도 5급 공무원이 가지는 힘이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3급이라면 모를까.
 “야! 이거 안 놔? 야!”
 결국 여자는 경비 다섯에게 붙들려서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놀랍게도 정규는 면접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지만, 어찌보면 부모의 잘못과 자식의 잘못은 별개로 생각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면접은 다시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당연한 말이지만, 정규라는 사내는 어둡고 멍한 표정으로 면접실에서 나왔다.
 이후 모자가 다시 한 번 면접실로 진입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경찰까지 동원되어서 끌려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단아한 차림의 안내원이 면접실에서 나왔다.
 “다음 순번 들어오세요.”
 
 * * *
 
 사람들은 저마다 잔뜩 긴장을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반면 마지막에 들어간 유전은 편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다섯 명의 면접관이 있었다.
 6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 라틴계 여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흑인 남자. 마찬가지로 40대 정도의 한국인 남자, 그리고 5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 남자.
 ‘저 사람의 얼굴은 왜 이렇게 머리에 안 들어오지?’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남자는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딱히 얼굴이 인식되지 않았다.
 분명 사람인 것은 확실한데 인식이 안 된다니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다.
 좀 더 상념을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면접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은 여기서 중단해야만 했다.
 “그래 이번 6명들은 하나 같이 다 선남선녀들이로구만.”
 한국인 면접관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말을 했다.
 그러자 면접자들은 저마다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소 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래, 자네들의 단점은 무엇인가?”
 슬쩍 눈짓으로 가장 오른쪽의 면접자를 바라보자, 척추를 곧게 편 면접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예, 저는 너무 철두철미한 게 단점입니다.”
 “음, 그래. 너무 철두철미한 게 단점이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어떻게 철두철미한가?”
 “예?”
 의외의 질문에 면접자는 당황했다.
 하지만 한국인 면접관은 매서운 눈으로 다시 질문했다.
 “어떻게 철두철미한가 물었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완벽을 추구하다보니···”
 틀렸다. 끝말을 저렇게 웅얼거리는 걸 보니 그냥 입사학원 같은 곳에서 자신의 장점을 단점처럼 꾸미라는 정석을 배운 거겠지.
 “일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만약 자네가 회계 부서에 보직을 받았는데, 0하나가 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가? 완벽을 추구하는 게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네는 직장이라는 곳에 있을 필요가 없네.”
 “그, 그게···.”
 “됐네. 그래, 자네는 단점이 뭔가?”
 이미 면접관의 흥미는 사라진 후였다.
 떠나간 기차요 배이기에 면접자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변했다.
 “어···, 저의 단점은··· 단점은···”
 방금 전 면접자가 어떻게 박살났는지 보았기 때문에 이번 면접자는 차마 자신이 입사지원서에 써놓은 개소리를 읊을 자신이 없었다.
 “입사지원서에 써놓은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됐네. 다음.”
 벌써 2킬. 면접관은 3킬을 향해 달렸다.
 “그래, 자네는 질문을 바꿔보지. 자네는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나?”
 질문이 바뀌자 면접자는 화색이 돌며 자신감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예. 저는 어려서부터 파라솔 코포레이션과 관련이 깊습니다. 저희 삼촌께서 제가 어렸을 때 저를 계곡에 데려가주셨는데, 계곡에서 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류로 떠내려가서 실종 위기에 처했는데 삼촌의 파라솔 코포레이션이 만든 휴대폰이 산속인데도 신호가 터졌습니다. 덕분에 119에 신고하여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기업의 발명품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저의 목숨을 살려준 파라솔 코포레이션에 취직하기 위해 이번에 지원했습니다.”
 유전을 제외한 모든 면접자들이 이 면접자를 쳐다보았다.
 그 눈에는 하나같이 ‘개소리하네’라는 심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면접관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오, 우리 휴대폰이 자네의 목숨을 살렸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면접자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면접관은 옆에 앉은 다른 면접관들과 각각의 외국어로 대화를 하더니 시크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하나 묻지. 그때가 몇 년 전인가?”
 “어···, 22년 전입니다.”
 “그래, 파라솔 코포레이션이 언제 한국에 진출했는지 아는 가?”
 “어···, 음···.”
 면접자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 준비를 못했겠지.
 “15년전일세. 그렇다는 말은 한국에는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휴대폰이 없었다는 거지.”
 “윽!”
 면접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면접관은 의외로 동앗줄을 던져주었다.
 “혹시 모르지. 삼촌이 외국에서 우리 회사의 휴대폰을 사서 한국에 들어왔을지도. 안 그런가?”
 “마, 맞습니다. 분명히 그런 겁니다.”
 화색을 돋우며 말하는 면접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그 말이 맏다고 보증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우리 회사의 휴대폰은 지역락이 걸려있는 데. 외국으로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지역을 이동하면 락이 걸리고,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해당 국가용 휴대폰을 대여해준다네. 자네 삼촌의 이름이 무엇인가? 지금 이름을 말하면 바로 기록을 검색을 해보겠네. 만약 검색해서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네의 말은 거짓말이 된다는 것이야. 자, 삼촌의 이름이 뭔가? 말하지 않으면 면접은 탈락이네.”
 “어··· 으···, 으으으···.”
 면접자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이 면접자로 3킬, 이후 4킬과 5킬도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마치 염라대왕과도 같은 한국인 면접관은 면접자들을 사정없이 도륙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전을 바라본 면접관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 이쯤 되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지. 자네의 단점이 뭔가?”
 “저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이죠.”
 “경험?”
 면접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원했던 대답 중 하나를 선택했다는 것이겠지.
 “예. 지금 면접은 인턴 면접입니다. 따라서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을 하는 것이죠. 저는 군대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조직사회의 맛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경험은 없죠. 그래서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에 지원했습니다.”
 “호오, 그런데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경력직을 뽑아야 하지 않나?”
 “신입사원 뽑는다고 해놓고 경력직만 뽑으면 신입사원들은 경력을 쌓을 수 없을 것 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 중 하나는 인재의 양성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왜 그래야 하는가?”
 “그것이 궁극적으로 기업 입장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기업이 사원들을 적당히 쓰다 버리는 용도로 고용을 한다면 당연히 양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꾸준히 사원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한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기업 내부의 인재풀을 높여주는 결과가 됩니다.”
 “다른 기업이 해당 인재를 스카우트 해간다면?”
 “인재의 단물만 빼먹는 기업이 한 명의 인재를 장기간 쓸 리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해당기업으로 가지 않을 테고, 간다고 해도 얼마 안가 돌아오려고 할 겁니다. 그때는 상대 기업의 정보를 매우 많이 가진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죠.”
 “음, 그렇군. 그럼 면접은 이쯤에서 마치···”
 “잠깐,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될까?”
 얼굴 인상이 매우 흐릿한 면접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다른 면접관들 전부가 자세를 제대로 고치며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저 사람이 최종보스인가?’
 중앙에 있는 한국인 면접관도 이미 어지간한 면접자들을 올킬할 수준인데, 저런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야. 자네는 진상손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과감하게 쳐내겠습니다.”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것은 이미 군대 파견지인 엘 아지지아에서 눈으로 학습한 내용이다.
 “어째서 그렇지?”
 “저는 교역 도시 엘 아지지아에서 파견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곳은 교역 도시이다 보니 상인들이 많았고, 그만큼 진상손님들이 많더군요. 처음에는 진상손님들을 달래고 거래한 상인들이 부를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상손님들을 달랜 상인의 가게에는 진상손님들만 늘어나더군요. 그리고 일반 손님들도 점점 진상손님들로 변해갔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진상을 부리면 이득을 보는 데 안 부리는 사람이 없겠죠. 기업도 마찬가지 입니다. 진상손님 하나를 달래면 당시에는 이득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업을 이용하는 고객 중에는 일반 손님은 없게 되고, 결국 기업 내부의 고객 대응 매뉴얼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추후 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진상손님 하나를 만족시키기 보다는 과감히 99명의 일반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맞습니다.”
 “군대는 어째서 갔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저도 한 번 걸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군대에서 꽤 유명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아버지라···, 그렇군. 그랬어. 대답은 다 끝났나?”
 “한 마디만 더 해도 되겠습니까?”
 “해보게.”
 “사원은 가족이고, 고객은 친구입니다. 만약 제가 영업 쪽으로 빠지게 된다면 전 이 마인드를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짝 짝 짝 짝 짝
 인상이 흐릿한 면접관의 박수가 이어지자, 다른 면접관들 역시 박수를 쳤다. 다른 면접자들은 유전이 부러워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 * *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회의실.
 이곳에는 오늘 면접을 담당했던 면접관들이 오늘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오늘 면접자들 중에서 눈에 뜨이는 사람들이 있으셨나요?”
 아까까지 면접자들을 학살하던 한국인 면접관이 다른 면접관들을 한 번 쭈욱 둘러보았다.
 “저는 한 명 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도 딱히 적합한 것 같지 않군요.”
 흑인 면접관이 안경테를 올리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 사람은 ‘지금’ 우리 회사에는 필요한 거 같지 않습니다.”
 백인 면접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던가요?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신선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라틴 면접관은 앞의 두 사람을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벌이 문제로군요. 대학교를 일반 대학이 아니라 군대에서 이수를 했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 지사에서 근로하는 사람들의 평균 학벌이 상당히 높다보니 이는 직장 내에서 불화를 가져올 여지가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한국인 면접관이었다.
 결국 유전에 대한 합불 여부는 2:2로 갈리게 되었고, 이들은 전부 구석의 안락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있던 인상이 흐릿한 면접관을 바라보았다.
 “합격.”
 이렇게 지옥 같은 경쟁률을 뚫고 유전의 인턴 합격이 결정되었다.
 
 * * *
 
 SNS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
 이번 면접의 난이도가 어떤 의미로는 헬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어 면접도 없었고,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압박면접도 없었다.
 그저 입사지원서에 썼던 내용을 면접관이 하나하나 반박했기 때문에 가식적으로 입사지원서를 쓴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면접장에서 나와야 했던 것이 이유였다.
 SNS에서는 한국인 면접관에 대해서 ‘면접관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전설의 면접관’, ‘오우, 제대로 한 번 탈락시켜보자’ 등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그 기사들을 읽던 유민은 인터넷 창 하나를 보았고, 얼굴에는 서서히 미소가 번져갔다.
 
 <파라솔 코포레이션 인턴에 합격하셨습니다.>
 
 
 # 인턴 연수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뛰어갔다.
 벌컥
 “어머니!”
 “응? 무슨 일이니?”
 한창 운동을 하고 있던 아름이였다.
 저택 한 쪽을 아예 헬스장을 꾸며놓았는데, 확실히 격포 마누라 아니랄까봐 벤치 프레스 100킬로그램을 하면서도 고개만 돌려서 유전을 바라보았다.
 쿵
 봉을 벤치에 올려놓은 뒤 일어난 아름이를 향해 유전이 외쳤다.
 “어머니, 저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인턴에 합격했어요!”
 “뭐어어어?”
 아름이는 굉장히 놀랍다는 듯이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아이, 장해라 우리아들.”
 유전을 껴안은 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름이였다. 그리고 잠시 뒤 몸을 떼며 한 마디를 했다.
 “그런데 취직하겠다는 말은 안하지 않았니?”
 선 칭찬, 후 질문이라는 아주 노련한 대처를 선보인 아름이는 역시 괜히 오랜 기간 살아온 게 아니었다.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번에 안 되면 노력해서 다시 해보려고 했는데, 한 번에 붙었네요.”
 “호호, 역시 내가 아들 하나는 잘 낳았어. 그럼 언제부터 출근이니?”
 “2주 후 부터 출근하래요. 다음 주에 연수가요.”
 “연수? 인턴도 연수가 있니? 아버지 회사나 외국 회사는 그런 거 없다고 하던데.”
 “여긴 한국이잖아요.”
 “하긴, 그렇지.”
 아름이는 단번에 수긍했다.
 헬적화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외국계 기업이라 할지라도 헬적화가 되는 순간 오히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더 대단한 기업문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아버지한테는 말씀 드렸니?”
 “지금부터 말씀 드리려구요.”
 “그래, 기뻐하실 거란다.”
 이 말을 끝으로 아름이는 다시 운동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이제 어머니에게 말했으니 아버지에게 말할 차례다.
 컴퓨터에 전원을 넣어 화상통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기까지의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유년기 이후로는 아버지가 상당히 바빠져서 입대할 때 빼고는 그다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보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같이 지내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할 수가 있었다.
 “오, 아들~!”
 “예, 아버지. 요즘 잘 지내세요?”
 “나야 항상 잘 지내지. 가끔 테러리스트들 때려잡으면서 스트레스 풀기도 하고, 아프리카 오지의 군벌들 때려잡는 것도 꽤나 즐겁지. 너도 한 번 아프리카 수자원 확보 작업에나 지원해볼래? 전역도 했으니 일 해보는 것도 좋잖아.”
 격포가 넌지 던진 제의에 아들인 유전은 씨익 웃으며 오늘의 용건을 꺼냈다.
 “아버지, 저 인턴에 합격했어요.”
 “응? 인턴이라고? 우리 회사에는 지원하는 인턴제도가 없는데? 나도 모르게 생겼나? 아니, 그럴 리도 없고···.”
 격포는 다소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를 더 놀래켜드릴 수 있으니까.
 “당연히 아버지 회사가 아닌 곳으로 인턴 합격을 했죠. 그것도 그냥 회사가 아니에요. 아주 이름있는 회사라구요. 아버지도 들으면 놀라실 걸요?”
 “인턴이라니, 정말 대단한데? 나는 네 나이 때 공장에서 일하거나 입대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너는 벌써 기업 인턴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데 한국에서 인턴 생활하기에는 좀 불편하지 않겠냐? 내가 한 번 갈아 엎었을 때는 좀 정신차리긴 했지만, 요새는 슬슬 헬반도 기질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만.”
 “하하, 걱정 마세요. 어떤 회사냐면요···”
 우르릉 꾸과광!
 찌직 찌지직
 순간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의 천둥 소리가 들리며 신호가 굉장히 안 좋아졌다.
 전용라인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화상채팅의 라인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천둥의 전파 방해에 화질도 소리도 굉장히 안 좋아졌다.
 “응? 뭐라고 했니? 안 들려.”
 “파라솔 코포레이션이요!”
 “어? 뭐라고?”
 “파!라!솔! 코포레이션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안들린다. 거기 천둥소리까지는 들었는데, 다음에 다시 연락하는 게 좋겠다. 곧 회의니까 다음에 보자꾸나.”
 그렇게 화상채팅은 끝났다.
 뜬금없는 자연의 방해에 유전은 허탈하게 피식 웃었다.
 “에이, 젠장.”
 
 * * *
 
 연수(硏修) [명사]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음.
 
 위와 같이 연수라는 것은 원래 능력을 갈고 닦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200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연수는 신입사원들에게 똥 군기를 잡는 거대한 악습의 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 시작은 장기자랑을 시키는 정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전국 종주부터 시작해서 겨울 산 등반 등 위험을 내포하는 일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이 생기는 원인은, 주로 자기들은 안 겪어본 이사급의 인원들이 자신의 업무성과를 포장하기 위해 도입하거나 혹은 사원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겉으로 포장하기에는 사원 간의 단합과 결속과 향후 업무를 위한 마음가짐을 닦기 위해서라고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신입사원들에게 해당이 되는데 일부 정신 나간 곳은 인턴들에게도 시행하기도 한다.
 예전 어떤 금융기업은 인턴 300명 중 단 한 명의 정직원도 뽑지않은 전례가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인턴이란 단어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의미는 대단하다.
 그러나 지금 연수원에 와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정직원으로 뽑을까요?”
 “글쎄요. 저번 기수는 30퍼센트는 정직원으로 돌리고, 20퍼센트는 계약직으로 일단 돌려서 정직원 중에 나가는 사람 있으면 성적순으로 정직원으로 돌린 것으로 아는데, 우리도 그 정도만 되어도 좋겠어요. 그리고 여기 인턴 점수만 괜찮게 받으면 다른 외국계 기업 취직할 때 이득 보잖아요.”
  방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의 대화였지만, 모두가 그 대화를 듣고 끄덕이고 있었다.
 공시 상으로는 10퍼센트라고 되어있지만,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인턴의 정직원 전환비율은 거의 모든 기업을 따져 봐도 높은 편이다.
 거기다가 인턴 종료 후에 얻는 것도 다른 기업에 비해 확실히 존재하다 보니 이들은 이미 신입사원이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었다.
 유전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에 빠져있었다.
 ‘파라솔 코포레이션은 헬적화가 되어있을까, 아니면 정도를 지키는 기업일까.’
 아직까지 겪어보지 못한 상태인지라 그저 막연한 추측만 가능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인지, 방문이 열리며 이번 연수원을 지휘하는 선배기수이자 정직원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방안에 있던 인원이 우렁차게 인사를 하자 3년차 선배인 양우열 주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래, 반갑다. 앞으로 2박 3일 동안 너희를 인솔할 사람들 중 하나인 양우열 이라고 한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양우열은 말을 이어 나갔다.
 “크게 할 건 없고 오늘은 장기자랑을 하고 내일은 운동회를 할 거야. 마지막 날은 그냥 밥 먹고 바로 출발이니까, 별 거 없어. 좋지? 장기자랑 할 사람들은 한 시간 있다가 다시 올테니까 명단 제출하면 돼. 알았지? 아, 그리고 너무 깊게 생각 하지마. 장기자랑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가지지마.”
 이 말을 끝으로 양우열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방안의 분위기는 애매하게 바뀌었다.
 
 <장기자랑>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부담을 주는 네 글자의 마법의 단어다.
 말이 장기자랑이지, 우리나라에서 장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기업에 취업할 정도의 인재풀이 되려면 초/중/고등학교의 기간 동안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이들이 할 줄 아는 게 그리 많을리가 없다.
 끽해야 노래 정도인데, 노래도 프로급으로 잘 부르지 않으면 장기자랑의 분위기가 매우 싸해진다.
 지금 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 부담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총대를 메기 마련이다. 당연히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손해다.
 “장기자랑 하실 분 있나요?”
 한 쪽에서 목소리가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유전이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두를 둘러보고 있었다.
 다들 들뜬 마음에 주변 사람을 둘러보지 않아 모르고 있었지만, 유전이라는 훤칠한 미남이 말을 꺼내자 갑자기 급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물론 장기자랑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단 장기자랑을 하길 원하는 것 같은데 누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들은 남자 하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남한테 시키기 전에 자신부터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그러자 여자 하나가 끼어들며 호응했다.
 “어머~, 보니까 장기자랑 잘하실 거 같은데, 장기자랑 하시면 될 거 같아요.”
 순식간에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유전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저 혼자하면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을까요? 못해도 몇 팀은 되어야 할 거 같아서요.”
 살짝 뒤로 빼는 것처럼 들렸는지, 처음 말을 꺼낸 남자가 씩씩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 분이 하시면 저도 할 게요.”
 “아, 그래요? 그럼 저랑 그쪽 분이랑 해서 두 팀 확정. 다른 분들은요?”
 “에?”
 남자에게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유전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어···, 아니···, 그게···”
 “어머~, 저렇게 나서주시니까 너무 멋져요. 저런 남자가 진짜 멋진 남자에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맞다, 맞아’ 하면서 박수를 쳤다.
 그렇게 졸지에 두 사람의 장기자랑이 확정되었고, 뒤늦게 춤이라도 해보겠다고 손을 든 몇 명의 여자들까지 해서 세 팀이 탄생되었다.
 
 * * *
 
 선배 기수들은 각 방에서 다시 걷어온 장기자랑 신청서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양우열 주임을 비롯해서 이혜나 주임, 박기룡 주임 등등 열 명의 사람들이 각 방들의 장기자랑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론 수다가 9할 이상을 차지하는 정리였지만.
 “그나저나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참여가 저조해? 이거 군기 좀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방들을 돌아다닐 때만해도 사람 좋은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양우열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 했다.
 “맞아. 이거 이번 신입들은 영 못 쓰겠는 걸? 나중에 푸닥거리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냐?”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이혜나 역시 동의했다.
 “맞아요. 밑에 애들을 확실히 잡아야 우리가 편하죠. 어차피 인턴 애들도 우리 회사 꼭 오고 싶어 하니까 미리 ‘군기’ 잡아두면 우리도 편하고 좋잖아요. 역시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야해. 이렇게 말이 통한다니까.”
 “하하하, 이혜나 씨도 명예 여군은 되겠어?”
 “호호호, 그거 듣기 좋은데요?”
 세 사람은 깔깔 거리며 신입 인턴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심지어 다른 인원들 중 일부는 그들에게 심정적으로 동의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듣다 못한 박기룡 주임이 말했다.
 “거, 한 명은 공익이고, 한 명은 제 2보충역이고, 또 한 명은 군대 안 다녀온 여자면서 무슨 군기 타령이야. 우리 때는 이거보다 참여율이 적었는데 다들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렸어? 쓸데없이 똥군기 만들 생각하지 말고 일이나 잘해. 세 사람 다 내년에도 대리할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사고 없이 인턴애들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나 해. 사람이 어째 남을 괴롭힐 궁리만 하고 있어.”
 너무도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논리적인 말인지라 양우열을 비롯한 두 명은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야, 너는 뭐 그리 잘났다고 그러냐? 맨날 들어오는 컴플레인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 우리 승진을 들먹여? 너야 말로 해고나 걱정하시지?”
 “야야, 다들 그만해. 우리 지금 싸우러 온거야? 빨리 정리해야 애들 재롱보지.”
 가장 고참에 속하는 유기열 대리의 말에 다른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 속에 순서를 정리해서 기재하고 있던 양우열 대리는 묘한 장기자랑 신청서를 보았다.
 
 <매화실 장기자랑 신청서>
 
 1번 팀(4인): 이인혜 외 3인 - 댄스
 2번 팀(1인): 김신중 – 노래
 3번 팀(1인): 박유전 - 격파
 
 * * *
 
 “장기자랑 신청서에 격파가 있는데?”
 양우열의 말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격파? 이 주변에 격파할 거 있나? 기왓장 같은 거 있어?”
 “아니, 연수원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냥 개인이 놀려고 조립식 기왓장 가져온 건가?”
 “가서 잘못쓴 거 아닌가 물어봐야 하나?”
 “에이, 됐어. 그냥 무대 올라와서 지가 알아서 하겠지.”
 양우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세기의 장기자랑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다음은 매화실의 1번 이인혜 씨 외 3명의 댄스입니다!”
 우렁찬 양우열의 함성과 함께 모두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높으신 분들도 이 장기자랑에 참석하고 있었던지라, 장기자랑 참여자들의 분위기는 전쟁터에 참전하는 군인을 방불케 했다.
 이인헤를 비롯한 여성 인턴들은 어디서 복장을 구해왔는지 미니스커트 위주의 블랙 패션을 구사한 4인조 여성 인턴은 메이크업까지 완벽하게 마친 채로 남성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19금을 저리가라 하는 아이돌의 춤을 따라하자 순식간에 무대를 비롯해서 관중들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머리를 촥 하고 뒤로 젖힌다든가, 다리를 쫙 펴서 90도로 만든다든가 하는 모습이 모두의 뇌리에 똑똑히 박혔다.
 “아주 짜릿한 댄스의 실황이었습니다. 자~, 다음은 매화실의 2번, 김신중 씨의 노래, [겨울]입니다~!”
 “겨~울! 겨~울! 겨~울! 겨~울! 오오! 겨~울~이~다~!”
 거울을 깨뜨리는 것 같은 김신중의 노래에 모두가 귀를 막았다. 성량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마치 스피커가 터질 것만 같았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자신들의 고막을 보호하기 바빴고, 결국 귀마개를 쓴 선배들에 의해 김신중은 강제로 무대 밖으로 내려져야만 했다.
 “하하···, 참으로 기백 있는 신입 인턴의 무대였습니다. 다음은 3번 박유전 씨의 격파입니다. 어떤 격파를 보여줄지 모두 함께 기대하시죠!”
 이 말을 하면서 양우열의 표정에는 한껏 비웃음이 가득했다.
 격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도 가지 않을 뿐더러, 프로 격투기 선수도 아닌데 어지간한 격파는 할 수도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격파’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을 때, 시각보다 청각으로 모두에게 격파의 준비단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느새 유전은 상당히 큰 돌과 패지 않은 장작을 꽤 들고 무대를 올라오고 있었다.
 딱 봐도 100킬로는 훌쩍 넘을 물건들을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대에 올라오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들이 없다.
 쿵- 쿵-
 모두의 심장소리와 유전의 발소리가 일치했다. 그렇게 모두가 무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유전이 외쳤다.
 “그럼 맛보기로 장작 하나를 먼저 격파해보겠습니다.”
 두근 두근 두근
 아까까지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 나왔다. 본래 이렇게 반강제로 하는 장기자랑은 참여자들의 가슴이 두근거려야하는데, 실로 오랜만에 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꽝! 꽈지직!
 장작에 정확히 주먹이 내려꽂히고 그와 동시에 장작은 결대로 갈라져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우아악!”
 무대 앞에 서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 정도로 유전의 격파는 위력적이었다.
 “한 개는 심심하죠? 자 이번엔 두 개 갑니다.”
 장작 두 개를 연속해서 쌓은 뒤 그대로 두 번째 격파를 시행했다.
 꽝! 꽈지직! 꽈지직!
 두 번의 격파. 그러자 양우열이 굉장히 당황해서 다가왔다.
 “잠깐, 잠깐만요. 이거 혹시 속임수 아닙니까?”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어떻게 사람이 장작을 가로도 아니고 세로로, 그것도 ‘격파’를 한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히 속이 빈 장작이 틀림없어.’
 몸을 숙여 부서진 장작을 집어 들자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미리 쪼개놓은 걸거야.’
 장작을 확인해보자 쪼개놓기는 커녕 속이 아주 꽉찬 밀도 높은 장작이었다.
 “말도 안 돼!”
 마이크를 잡고 있는 상태라는 것도 잊고 속내를 그만 말해버렸다.
 심지어 어조 자체가 불신감이 넘쳤기 때문에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건 사기가 아닙니다. 지금 만지신 장작을 한 번 격파해볼까요?”
 유전은 전혀 부담없이 방금 전에 우열이 확인한 장작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꽝! 꽈지직!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장작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파편 일부가 우열에게 튀었는데 생각보다 큰 고통에 우열은 한손과 양쪽 허벅지로 은밀한 그곳을 어루만져야만 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파편 튀는 것까지는 제가 신경을 못 써서요. 자, 이번엔 하이라이트로 이 돌을 격파해보겠습니다.”
 보디빌더의 허벅지 크기는 될만한 돌, 아니 바위에 가까운 것을 격파하겠다고 하자, 장내에는 침을 삼키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에이 설마, 저건 못 깨겠지’하는 생각을 했지만, 방금 전까지 장작을 무 격파하듯이 격파하는 것을 보았기에 모두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앗!”
 쾅! 우두두두두두둑!
 벼락치는 듯한 소리, 그리고 바위가 사정없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씨익
 만족스러운 결과에 유전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웃었다.
 향후 유전과 친해진 상급자 중 한명은 그 웃음을 이렇게 해석했다고 따로 말해주었다.
 ‘날 건드리면 너희를 이 바위처럼 만들어버릴 거야.’
 
 * * *
 
 날이 밝고 운동회가 시작이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전이 속한 팀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줄다리기는 상대팀이 항의해서 남자 다섯 명을 빼고 했는데도 그냥 슥 당기니 상대가 다 넘어져버렸다.
 공 던지기 역시 공 하나를 던지자 바로 박이 터졌다.
 기마전 역시 사람을 위에 업고 있다고는 생각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도저히 모자를 뺏을 수 없었다.
 달리기 역시 100미터를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고 10초 만에 주파해버리는 주력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중에는 아예 유전을 빼놓고 시합이 이루어졌는데, 패널티를 그대로 안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초반 점수 차는 끝끝내 극복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의 승리.
 이런 상황을 겪으며 유전의 팀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상대팀들은 ‘운빨 X망 운동회’, ‘하, 나빼고 다 병X이다’, ‘아니, 우리 팀 뭐함?’등의 반응을 보이며 툴툴 거렸다.
 운동회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신입 인턴들은 귀찮아하거나, 혹은 결과에 불평만을 늘어놓고 있었다면, 이번 연수에 참여한 고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느 놈이 쓸만할까?>
 
 직장일이라는 게 결국에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쳇바퀴 도는 삶이다.
 더군다나 신입사원 보다 더 힘들다는 인턴 때는 느끼는 지루함이 상상 이상이다.
 이러한 지루함을 극복하려면 기본적으로 평소에 얼마나 참여도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다른 일도 아니고, 반강제적으로 참여한 일에 대해 얼마나 참여도를 가지는가.
 그것만을 중점적으로 보는 고참들이 꽤 있었다.
 비록 자신들이 직접적인 인사권이 없다하더라도 자신의 부서장에게 말해서 전도유망한 신입을 데려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전은 현재 수많은 고참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중이었다.
 “박 부장님, 저 녀석 꽤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까?”
 맥주 한 캔씩을 들고, 한 손에는 핫바를 들고 있는, 마치 야구장 관객 같은 두 사람이 있었다.
 “확실히 돋보이기는 하네. 이 차장은 관심이 좀 있나봐?”
 “어차피 데려오려면 똘망똘망한 녀석 데려오는 게 낫지 않습니까. 괜히 이리저리 빼는 녀석보다는 차라리 모든 일에 열심인 녀석을 데려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말이야.”
 박 부장은 유전을 영 애매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예전에 파라솔 슈즈 본사 홍보부에 있었던 일 기억 안나?”
 “아···.”
 좀 된 이야기지만, 이전 파라솔 슈즈 본사는 은퇴한 축구선수를 스카우트 형식으로 고용한 적이 있었다.
 평상시에 팬들을 상대로 온화하고, 항상 예의가 바르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고,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모든 일에 열심이고, 훈련 등에도 항상 참여한다는 등 언론에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스포츠 슈즈와 관련해서 일을 맡기기 위해 교섭을 시도 했고, 고용을 했건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은퇴를 하고, 회사에 입사를 하자마자 해당 선수는 나태의 끝을 보여주었다.
  일단 체중이 20킬로그램이 넘게 불었다.
 그리고 툭하면 지각을 했고, 근무시간 중에도 시도때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체형이 180도 뒤바뀐 덕분에 축구화 모델로 쓰려던 예정도 취소되었고, 심지어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서 홍보 관련해서 정말 도움이 되지 않았었다.
 때문에 6개월 만에 해당 선수는 해고되었지만, 그 선수가 SNS에 파라솔 코포레이션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방을 하는 바람에 한동안 홍보부는 이사들에게 융단 폭격을 맞아야만 했다.
 “오히려 저런 녀석이 인턴으로 들어올 때를 주의해야해. 평범한 녀석들은 정직원 데려고 기를 쓰지만, 저런 녀석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턴 끝나면 그만두는 경우도 있으니까. 일단 다른 부서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지켜보자고. 어차피 타부서 인원 보직 이동 요청 관련해서는 우리가 우선권 가지고 있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하긴 그게 더 낫겠네요.”
 잠시 후 맥주 캔이 쓰레기통에 던져지는 소리만이 짤그랑 울려 퍼졌다.
 
 * * *
 
 500명의 인턴들이 체육관에 모여서 보직 발령을 받은 것이 불과 어제의 일이다.
 처음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면접 때처럼 마음을 졸이고 있는 모습을 유전은 확실히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군대에서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경쟁률이 낮은 자유지원병에 지원해서 헌병이나 취사 등으로 분류될까봐 마음 졸이던 동기들을 본 적이 있다.
 아마 이것도 비슷하겠지. 간부들 중에서 인사나 보안 관련한 부서에 있는 사람들이 발언권이 센 것을 기억해 볼 때 회사 또한 다를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호명 후에 인사 쪽으로 발령 받은 동기들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영업 쪽이나 마케팅으로 발령을 받은 동기들은 상대적으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 콜센터 같은 곳으로 발령 받은 동기들은 의무 기간이 지나자마자 사표를 쓰겠다고 할정도 였다.
 일희일비가 갈리던 상황에서 마침내 유전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유전을 응시했다.
 신입 차력사.
 원펀인턴.
 괴력미남.
 이것들이 전부 유전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당연히 어디에 배속될지 모두가 궁금해 했고, 결과는 굳이 따지자면 불운에 속했다.
 [파라솔 마트, 서울 청량리 지점 리스 매니저.]
 
 
 # 관리과의 문을 열다
 
 
 리스 매니저에 대해 생소한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직역하면 임대차 관리자. 실질적으로 하는 일을 말하자면 대형 마트 혹은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점포들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빈 점포에 새로운 점포를 입점시키는 데에 영업을 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다기능 직책, 나쁘게 말하면 잡무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정작 유전은 직첩을 나눠준 이사에게 공손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별 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었다.
 “쯧쯧,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나 같으면 바로 사표 낸다.”
 “하필이면 청량리 지점이야?”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군대도 다녀왔는데 뭐.’
 남자는 군대에 다녀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이 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파견까지 갔다 오고 거기서 여러 일을 겪은 유전에게는 통용되는 말이다.
 면접도 끝났고, 합격 되었고, 연수도 끝났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그저 열심히 일을 하면 될 뿐이다.
 뭐든지 첫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유전은 내일의 출근을 위해 피팅룸으로 향했다.
 “아주머니, 내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는데, 어떤 옷을 입는 게 좋을까요?”
 “호호, 어느새 도련님이 그럴 때가 다 되셨군요. 어느 쪽에 취직이 되셨다고 했죠? 주인마님께 듣긴했는데 요새 나이가 먹어서 가물가물하네요.”
 피팅룸의 총괄자인 이미화는 마치 손자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옷에서 만큼은 업어 키워왔기 때문에, 유전의 성장일기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그녀의 큰 즐거움이었다.
 “파라솔 마트 청량리 지점이에요. 직책은 리스 매니저구요.”
 “리스 매니저라···, 그러면 일반적인 양복을 입어야하겠군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사 출근이고, 또 신입사원이니 복장에 주의를 해야겠네요. 다른 사람들은 도련님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뇨, 전혀 모를 거예요.”
 “그렇다면 너무 비싼 양복은 쓰지 않는 게 좋겠군요. 혹시 몰라 일반적인 기성품도 사놔서 다행이군요.”
 잠시 자리를 비운 이미화의 손에는 어느새 양복 한 벌과 구두 한 켤레가 들려있었다.
 “이걸 입고 가시면 될 겁니다. 아마 평범한 20대 초반의 직장인처럼 보이실 수 있을 겁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뭘요···. 첫 출근 잘 하시길.”
 다소 늦은 밤이라 이미화는 피팅룸의 불을 끄고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옷을 받아든 유전은 방으로 돌아와 미리 갈아입어 보았다.
 평소에 입던 옷들보다는 재질도 다소 거칠고, 마감도 좀 흐트러져 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추구하고, 생각했던 이상적인 신입사원의 모습이었다.
 
 * * *
 
 아침이 되자 평소보다 더 빠른 시간에 눈이 자동적으로 떠졌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가기 전 날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유년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도련님, 오늘 첫 출근이시라면서요?”
 “예, 그래서 회사에서는 좀 떨어진 곳에서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눈에 잘 안 뜨이려면 다소 수수한차를 타시는 게 좋겠군요.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대전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리다보니 출근길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이러한 출근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차량들이 같이 달리고 있었다.
 ‘마치, 같이 출근하는 것 같네.’
 서울 도심지로 접근하자, 등교를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 출근시간이 빠른 회사인지 헐레벌떡 뛰어가는 양복 입은 남자, 급한 마음에 하이힐을 신고 뛰다가 하수구에 힐이 끼어버린 여자 등 출근길의 모습은 다양했다.
 “이쯤에서 세워주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너무 가까이가면 좋지 않을 거 같네요.”
 “그럼, 화이팅입니다. 도련님!”
 기사를 향해 한 번 미소를 지어준 뒤,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뛰어 파라솔 마트에 도착했다.
 크기가 굉장히 컸다. 어지간한 역사에 있는 대형마트들이 1층 내지 2층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면 파라솔 마트는 영업하는 장소만 해도 지상3층, 지하 1층을 가지고 있었다.
 지상 4층부터 5층까지는 주차장, 지하 2층부터 3층까지도 주차장을 완비해놓았으니 새삼 파라솔 코포레이션의 위용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목적지는 파라솔 마트의 영업부.
 처음 가보는 곳이기 때문에 안내센터로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직원은 유전의 얼굴을 보고서는 한껏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외모라는 게 선입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법이다.
 “하하, 고객은 아니고, 이번에 새로 입사한 박유전이라고 합니다. 영업부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머, 새로 오셨나보네요. 사무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셔서 뒤쪽으로 가시면 거기에 다 모여 있어요.”
 “감사합니다.”
 여직원은 아쉬운 마음에 뭔가 말을 더 걸고 싶었지만, 건덕지가 없어서 그냥 입맛을 다셨고, 그것을 모르는 유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영업부에 도착했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려 했지만,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다가왔다.
 깔끔한 양복에, 와이셔츠의 둘레가 칼 같이 다림질이 된 것을 보니 꼼꼼한 성격으로 보였다.
 약간 선한 눈매에 살짝 웃고 있는 입이 시원시원한 성격을 더욱 호감형으로 만들어주었다.
 “오, 보아하니 이번에 새로 온 신입사원이겠군요. 반가워요. 난 영업부 차장 한민수라고 해요.”
 자신감 넘치게 나온 손을 본 유전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관리과에 배속된 박유전이라고 합니다. 말씀 놓으십시오.”
 “하하, 그럴까? 여기 이 녀석도 이번에 새로 온 녀석. 홍보과에 배속된 이진수라던가?”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박유전이라고 합니다.”
 “그래, 일단은 부장님한테 가자고. 첫 날인데 쭈뼛쭈뼛하게 사무실 들어와서 ‘실례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별로 잖아? 애초에 우리가 마트에서 직접 직원을 고용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본사에서 전부 뽑아서 파견식으로 보내다보니 숫기 없는 신입들은 첫 출근이 좀 부담스럽지. 나이 많은 사람의 오지랖이니까 관대하게 좀 넘어가달라구. 하핫”
 말, 행동, 인상 어느 하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유전도 좋은 말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오지랖이라니요. 사실 사무실 들어가서 우렁차게 인사해야 하나, 인상 좋은 분하나 찾아서 조용히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큰 걱정 하나 덜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영업부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6명의 사람이 있었다. 아직 어떤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부장님.”
 “뭐야?”
 부장은 한껏 짜증이 난 목소리를 냈다. 반쯤 벗겨진 머리, 후줄근한 와이셔츠에 목 쪽에는 때가 타있다. 와이셔츠 앞단에 김칫국물 얼룩이 좀 묻어 있는 게 털털한 건지, 아니면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는 건지 둘 중 하나였다.
 “이번에 새로 온 신입들입니다.”
 “인턴? 아니면 사원?”
 “인턴입니다. 어차피 인턴이나 사원이나 그게 그거 아니겠습니까. 요새 들어서 신입사원을 뽑느니 인턴을 더 뽑아서 정규 전환율을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턴이랑 사원이랑 어떻게 같아? 괜히 사원들 기죽이는 말 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배속된 대로 보내.”
 “예, 이쪽은 박유전 인턴이고, 이쪽은 이진수 인턴입니다. 신상명세서는 이따가 전자결재로 보고 올리겠습니다.”
 부장은 대답하기도 귀찮은지 손을 휘휘 저었다.
 ‘원래 성격이 저런가, 아니면 성격이 저런 이유가 있나?’
 전자면 고쳐지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후자면 그래도 고쳐질 가능성이 있다.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성격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자, 다들 나가자구. 커피나 한 잔 하지.”
 휴게실에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손수 캔커피를 뽑아준 한민수 차장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저러신 분이 아닌데, 13년 전부터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하시고 부터는 성격이 점점 변하시더라구. 말을 걸었을 때 툴툴 거리시기는 하지만 트집잡거나 하지는 않으시니까 너무 선입견 가지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싸가지 없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쉴드쳐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는 것은 부장은 후자라는 이야기였다.
 “그래, 아무튼 첫 날이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야.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찾아오고, 일 열심히 하라구. 자, 따라와 사무실까지 데려다줄테니까.”
 이런 일은 대리나 선임급 주임이 하면 될 일인데 차장인 한민수가 직접 했기 때문에 영업부라는 직장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호감도를 가지게 되었다.
 “여~, 홍보과장. 신입 받아라!”
 “이야, 신입입니까? 얘들아, 조만간 법인 카드로 한우 파티다!”
 “야, 야, 야! 좀 자제 해. 저번에 경리과에서 얼마나 곡소리를 냈는지 알아?”
 “에이, 가끔 한 번 이러는 건데 뭐 어떻습니까. 대신 그만큼 홍보 잘하겠습니다.”
 “좋아, 이번 분기 기대해보겠어.”
 홍보과의 문을 닫고 이번에는 관리과로 향했다.
 홍보과, 관리과, 경리과로 나뉘어져 있고, 영업과는 영업부와 공존하는 형식이다.
 홍보과의 맞은편에 있는 영업과의 문을 열기 전에 한민수 차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으음, 방금 전에 본 홍보과 분위기가 좋은 것은 보았지?”
 “예, 아주 좋더군요. 마치 가족같던데요?”
 “그래 가족같은 분위기 아주 좋지. 모든 과가 홍보과 같은 분위기라면 좋을텐데 말이야···.”
 어째 가족같은 분위기로도 들리고, 가 족같은 분위기로도 들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음···, 일단 힘내라구! 하하하! 여기는 내가 굳이 인사를 시켜주지 않아도 분위기를 한 번에 알 수 있게 될 거야.”
 약간 과하게 등을 팡팡 친 한민수 차장은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면서 격려를 해주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치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것에서 도망치려는 듯 했다.
 ‘관리과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네. 어느 쪽이지? 재정? 아니, 재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굳이 한민수 차장님이 문도 안 열고 가실리는 없지. 그렇다면 기물? 아니 그것도 재정과 관련이 있는 거니 패스. 그렇다면 사람인데. 아까 전 부장님도 저렇게 받아 넘기는 차장님이 기피할 정도의 사람이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라는 거야?’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을 느끼며 관리과의 문을 열었다.

댓글(4)

ji******    
뭐냐 이미친소설은... 문피아 일안하냐?? 왜소설이 10권 2편으로 끝나는데 ... 내용 적다말앗냐?
2020.02.02 23:03
수묵담채화    
10권 2편으로 끝나는걸 몰랐네...
2020.02.03 14:18
    
입사 면접 저게 뭐임. 주인공 띄울려고 주변인 저능아로 만들어놨네. 대학교 면접이 저기 나온 면접들보다 수준 높음.
2020.02.09 23:38
장씨    
가정부가 노예임 무슨 주인마님이야
2020.07.0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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