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 클래스는 처음 보네요.”
그가 각성에 성공한 날, 헌터관리센터 서울 지부는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접수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보세요. 지금까지 확인된 클래스만 약 30종에 달해요. 그런데 일꾼은 보질 못했어요.”
20세의 청년 유지하는 서류의 내용을 훑었다.
검사, 마술사, 정령사, 도적 등 인지도 높은 클래스가 나열되어 있었지만 일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제가 처음으로 각성한 거죠? 일꾼 클래스로?”
“각성은 각성인데 스킬이나 특성이 중요하죠. 어떤 걸 얻으셨어요?”
접수원의 안경알이 번뜩였지만 지하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스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 접수서류에 뭔가를 쓰려던 접수원이 손을 멈췄다.
“아무 스킬도 못 얻으셨어요? 특성도요?”
“예.”
“진짜 희한하네요. 보통 각성하면 전투스킬 한두 개는 얻기 마련인데···던전 안에 들어가서 싸울 수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게요.”
접수원은 지하가 유일한 예외라고 알려주었다.
결국 서류엔 신상명세와 클래스 등 가장 기본적인 것만이 적혔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하가 묻자 펜대가 멈췄고 접수원은 어정쩡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제가 하는 일 아시죠? 각성한 헌터들 등록하고 관리하는 일이에요. 민원도 접수하고요. 적절한 기업이나 길드를 소개해드릴 수도 있지만 아무런 스킬도 없는 지하씨는 좀 어려워요.”
“그렇습니까.”
뜻밖에도 지하의 표정은 덤덤했다.
너무 충격을 받았나보다 생각한 접수원이 황급히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과장님 면담 잡아놓을까요?”
관리센터의 과장급 공무원에게 면담을 받아보라고 추천하는 그녀.
하지만 스킬을 가지지 못한 헌터는 던전 안의 전장에서 소용이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닙니다. 그럼 저는 세금을 낼 필요는 없는 거죠? 소득이 없으니까요.”
“일단은 그렇죠. 헌터세란 것도 소득이 있어야 발생되는 거니까···”
“그럼 됐습니다.”
지하는 최초로 스킬 없는 헌터가 되었다.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헌터의 탄생에 관리센터의 모두가 떨떠름했다.
“박수 쳐야 되지 않아요? 눈을 보면 일단 각성은 했는데.”
“스킬도 없는 헌터인데 무슨 박수를 칩니까. 던전에도 못 들어가는데···”
“근데 별로 아쉬워하는 기색은 아니네요.”
“얼굴은 저래도 속은 타들어가겠지···차라리 각성 못한 게 낫잖아. 저 나이에 뒤늦게 각성해봐야 던전에 못 들어가면···”
“그래도 후발대로 들어갈 수는 있지 않아요?”
“헌터가 되어서 후발대에 들어가려면 자존심 좀 상할 텐데.”
“안됐네, 안됐어. 최하위 확정이네.”
센터의 직원들이 지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대한민국 헌터 최하위가 탄생했다.
.
.
.
그 날이 왔다.
던전이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날 말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각성에 성공해 헌터라 불리게 된 것도 거의 동시였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했다.
던전 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자원은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지치고 패퇴한 인류에게 한줄기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몬스터를 사냥한 후 나오는 에테르 스톤은 차세대 연료로 각광받게 되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헌터와 헌터가 아닌 자로 계급이 나뉠 것이다.”
실제로 그리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들에게 많은 특권이 부여된 것이 사실이었다.
인류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었기에.
최초의 던전이 열린지 10년 지난 어느 날.
헌터 두 명이 서울시 7구역의 잡화점에 들어왔다.
안경을 낀 25세의 청년 유지하가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 포션 파는 곳 맞죠?”
“그 사람 맞네, 일꾼 클래스 각성한 사람.”두 명의 헌터가 가게에 들어서며 지하의 황금색 눈동자에 시선을 잠깐 두었다.
지하는 신참으로 보이는 헌터 둘에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잡화점입니다. 보시다시피 포션하고 이것저것 팝니다.”
“체력 포션···여기 있네.”
벽면에 가득 찬 진열대엔 각양각색의 포션병과 항아리에 든 스크롤, 지도 등이 질서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남성 헌터가 붉은 액체가 찰랑찰랑하는 포션병을 집어 들자 여성 헌터가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근데 이거 효과 괜찮을까? 헌팅 그라운드에 물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서 사는 게 낫지 않아?”
“언제 물건이 올 줄 알고 기다려? 그리고 여기 인테리어는 좀 그래도 포션 효과는 괜찮다고 그랬어.”
“누가?”
“성호형이.”
“아.”
성호라는 이름이 나오자 여성 헌터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이제 아카데미를 졸업해 신참 헌터가 된 그녀에게 랭킹 100위권 헌터의 말은 천금과도 같았다.
남성 헌터가 그녀에게 속닥속닥했다.
“여기가, 좀 후줄근하게 보여도 물건이 괜찮아. 전반적으로.”
“근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아, 근처에 거기가 있구나.”
거기란 헌터 전용 용품점인 헌팅 그라운드를 의미한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넓은 매장과 질 좋은 서비스를 확보하여 전국에 체인점을 내고 있었다.
그런 대형 체인이 근처에 있으니 이런 작은 잡화점에 관심을 줄 헌터가 많을 리 만무하다.
두 헌터는 대화를 나누곤 몇 가지 포션을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여성 헌터의 호기심어린 시선이 책을 덮고 일어선 지하를 훑는다.
헌터 아닌 헌터.
이 잡화점의 주인은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각성에 성공했으나 특성과 스킬은 없다고 한다.
일꾼 클래스가 뭘 뜻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헌터 랭킹은 자그마치 12782위로 한국에 등록된 헌터의 숫자를 알려면 유지하가 몇 등인지 보면 된다고.
“저기요, 진짜 스킬이 하나도 없어요?”
“특성도 없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스킬 없이 지내셨어요? 사냥은 어떻게 하시고요?”
“전 사냥 못합니다. 후발대로 들어가서 자원만 캐오죠.”
“아하. 그렇게 지내셨구나.”
대충 짐작이 간다.
던전 안에서 나오는 여러 자원으로 먹고 사는 부류인 모양이다.
궁금한 걸 더 물으려는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쿠르르릉―
갖가지 중화기를 장착한 장륜형 장갑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했고 경찰차와 구급차 등이 뒤를 따랐다.
“카테고리 3급 던전이 열렸나 봐.”
“그러게. 구급차 오랜만에 보네. 하···나도 언제 한번 저런 데 들어가 보고 싶다···”
“우리 실력으론 아직 꿈도 못 꾸잖아.”
“아 참, 저기요, 이거 계산해 주세요.”
남성 헌터가 지하에게 바구니와 카드를 내밀었다.
헌터에게만 발급되는 블랙카드는 소상공인인 지하에겐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계산을 끝내자 두 헌터가 가게를 나갔다.
지하는 가게 문턱에 서서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카테고리 3급 던전이라면 이런저런 자원이 많이 나오겠지만 그에게 연락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헌터 취급도 못 받는 사람보다는 제대로 된 연금술사나 약제사 등에게 연락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는 쓴웃음을 짓고는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어느새 저녁이 깊어지고 있었다.
.
.
.
지하가 각성한지 5년이 흘렀다.
일꾼이라는 기상천외한 클래스를 얻었지만 스킬과 특성이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다른 헌터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대신 그는 후발대로서의 일에 충실했다.
기업이나 길드에서 훑고 간 던전 안에서 자투리 자원을 긁어모아 잡화점에서 파는 일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입에 풀칠하고 가끔 취미생활인 고서적을 구입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지하는 여느 때처럼 가게 문을 닫은 뒤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도매센터에서 사온 고서적을 펼쳤다.
던전 안의 폐허에서 나온 진본이었다.
때가 묻어 꼬질꼬질하고 낡았지만 그만큼 넘기는 맛이 있었다.
조심조심 페이지를 넘기는 그의 눈에 정체불명의 단어가 보였다.
분명 이 삽화의 주인공···나무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대륙 공용어가 아니라 해석할 수가 없었다.
“이걸 뭐라고 읽는 거지?”
뚫어져라 쳐다봐도 발음이 나올 리 없다.
지하는 계속 내용을 읽었다.
던전 안의 세계에서 거대한 나무는 마치 신과 같은 위용을 자랑했던 모양이었다.
거대한 나무에 얽힌 각 종족의 신화를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그는 침식도 잊은 채 책에 빠져들었다.
사방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의식이 흐려졌다.
‘잠이나 잘까···’
달콤한 유혹에 거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책을 보다가 잠드는 것은 그의 일상이기도 했으니.
안경도 벗지 않고 눈을 스르륵 감았다.
책에 써진 거대한 나무를 가리키는 단어가 밝게 빛났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기 때문.
곧이어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그는 눈을 떴다.
“헉!”
정신을 차려보니 숲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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