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죽자!
더 이상 살기가 싫었다.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노가다에 시달리는 것도 싫고, 중국인 반장에게 잔소리 듣는 것은 더 싫었다. 결정적으로 누나에게 전화 와서 훌쩍이는 것이 죽기보다 괴로웠다.
노가다는 인생 막장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씻고 튀어나가서 용역 사무실에 6시까지 도착하면 짐짝처럼 실려 건설 현장으로 나간다. 거기서 돼지죽인지 뭔지 모를 국밥 한 그릇을 해치우고 체조와 TBM을 한다. 초딩도 아니고 대체 체조를 왜 하는 건지?
안전사고는 갈수록 증가하는데······.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6시에 일과가 끝난다.
놀라운 사실은 건설 현장의 노가다 3/4이 중국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반장이란 놈도 중국인이다.
아니, 반장이 아니라 사실은 사장이다. 하청, 재하청에서 다시 하청을 받은 놈이다.
그러니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있으면 와서 개지랄을 떤다.
근로기준법에 있는 오전, 오후 간식 시간에 빵인지 과자인지 모를, 지름 3㎝도 안 되는 괴상한 음식 하나를 준다. 물론 규정된 30분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 먹었으면 빨리 철근을 나르라고 괴성을 질러댄다.
그래도 이놈은 돈이라도 제대로 준다.
하루 일당은 8만 원.
거기서 용역 사무실 소개비로 10%인 8천 원을 떼간다.
아침은 그냥 주지만 점심은 자기 부담이다. 5천 원.
차비 2천6백 원.
젠장!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7시 반에 들어오면 손에 남는 돈은 6만 4천4백 원.
컵라면 하나와 소주 한 병 사면 또 3천 원이 날아간다.
예전에 즐기던 치맥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치킨 한 마리 사 먹으려고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몇 번을 하는지 모른다.
하루 6만 4천4백 원씩 모아서 원룸비 50만 원, 관리비 3만 원, 전기세 3만 원, 의료보험료 4만 원 내고 나면 저녁거리 사기도 빠듯해진다.
그러니 여자를 만나는 것은 생각도 못 한다. 물론 저축을 하거나 빚을 갚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놈은 그래도 매일 돈을 정산해 준다.
다른 놈들은 월에 한 번 준다고 해놓고 안 주고 질질 끌다가 떼어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더 비참한 게 뭔지 아나?
이런 와중에도 노가다들은 금요일 오후만 되면 말밥을 주러 다닌다.
경마에서 한탕 하겠다는 헛된 꿈!
처음엔 이것들이 미쳤나 싶었다.
아무리 꿈을 꿀 수조차 없는 인생들이라지만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새 내가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우! 씨바.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절망감에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죽기로 결심했다.
젠장. 그런데 죽기도 힘들다.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니 졸라 무섭다.
포기.
차에 뛰어들려니 저 차주는 무슨 죈가 싶다.
포기.
생각 끝에 수면제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도 힘들다.
요새는 의사가 발급한 처방전이 있어야 수면제를 준단다.
근 한 달간 조금씩 사 모은 끝에 겨우 치사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씨바. 돈도 많이 들었다.
소주도 한잔 못 마시고 사 모았다.
내가 자살하면 단 한 사람! 누나만 슬퍼할 것이다.
누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려니 떠오르는 말이 없다.
끄적끄적.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누나, 미안해>만 써놓고 수면제를 먹었다.
젠장. 양이 많다 보니 잘 넘어가지도 않는다.
오만 생각이 다 떠오른다.
내 인생을 망친 TX증권의 사장 놈하고 투자1부 이사 대우, 부장, 과장, 대리 놈들을 못 죽이고 가는 게 한스럽다.
회사를 부도낸 사장 놈은 미국으로 날랐고, 나에게 5억 원의 빚을 지게 만든 부장 놈 등은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다고 들었다.
나만 낙동강 오리 알 된 것이다.
젠장, 나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빰빰빠빠빠~! 빠라빠라빠바밤 빰빰빰~!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잠꾸러기~! 어서 일어나세요.]
“아오! 시끄러워. 잠 좀 자자. 잠 좀 자.”
잠에 취한 나는 깨기 싫어 몸부림을 쳤다.
[지각한다니까요. 어서 일어나라고요.]
“으으! 젠장. 오늘 하루만 쉬면 안 돼?”
지각이란 말에 몸이 저절로 일어난다.
슬픈 현실이다.
노가다라도 나가야 입에 풀칠을 하니······.
잠깐! 근데 뭐야? 나 죽기로 했잖아?
수면제를 그만큼 먹었는데 깨어나?
게다가 몸이 이상할 정도로 상쾌하잖아?
씨, 씨발! 이거 뭐야?
깜짝 놀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발견했다. 얼굴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녀석이 말했다.
[어때요? 상쾌하죠?]
“뭐, 뭐야? 넌 뭐야? 내가 죽어서 귀신을 보는 건가? 무슨 반딧불이가 말을 해? 아니, 지금 낮인데 너 왜 빛이 나는 거야?”
나는 횡설수설했다.
[저요? 저는 ⊜≓≌에서 온 ∂∜∭예요.]
“무, 무슨 소리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에효! 지구 식으로 말하면 개똥별에서 온 초자아메가닉스사이언티픽인공생명체라고나 할까요?]
“초자아 뭐?”
[아! 짜증! 바보예요? 뭐예요? 그냥 그런 게 있다고 쳐요.]
조그만 벌레 같은 녀석이 버럭 화를 내자 무섭다.
“아, 알았다고.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우선 내가 죽은 거야? 산 거야?”
[이 바보! 살아 있으니까 나랑 얘기를 하죠.]
“그, 그런가? 나 수면제 많이 먹었는데 어떻게 안 죽고 산 거지?”
[어휴! 무식하게 수면제를 왜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반만 먹어도 충분히 죽을 수 있는데.]
“뭐? 아! 젠장. 그거 산다고 무려 2주나 소주도 못 먹었는데··· 하여튼 인터넷에는 쓰레기 정보가 너무 많아. 그럼 네가 나를 살린 거야?”
[안 그럼 누가 살리겠어요? 당신을 살린다고 그간 겨우 만든 나노에고 2억 4천만 개를 몽땅 다 당신 몸속에 투입했다고요.]
“뭐? 내 몸속에 이상한 기계를 2억 4천만 개나 집어넣었다고?”
[걱정 마세요. 나노에고의 크기는 세포의 1천 분의 1에 불과하니까.]
“그래? 그걸로 나를 해독시킨 거야?”
[물론이죠. 아우! 몸에 웬 잔병이랑 독극 물질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거 분해하고 치료한다고 ℒ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어요. 며칠간 나노에고도 못 만들어요.]
노가다 한다고 몸이 많이 망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서 매일 소주를 마셨더니 주독이 몸속에 쌓인 모양이다.
“젠장, 그 나노에고라는 게 뭐냐?”
[제 분신이자 저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족이라고 할 수 있죠.]
잠시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한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너는 외계별에서 온 AI 비슷한 인공 생명체라는 거냐?”
[맞아요.]
“지구엔 왜 왔어?”
[쿠와왕~! 개똥별이 폭발해 버렸어요. 갑작스럽게 날아온 감마선에 제대로 대처도 못 하고 별이 박살 나버린 거죠. 그리고 문명자동보전 프로그램에 따라 저만 다른 별로 공간 이동된 거죠.]
이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그래, 그렇다 치고······.
“그럼 왜 하필 나야? 다른 똑똑한 놈들도 많은데?”
[ℒ에너지가 부족한 현 상태에서 저랑 뇌파 교신이 가능한 사람은 당신뿐이었어요. 당신의 부교감신경은 아주 특별해서 이 ℒ에너지를 인식할 수 있거든요.]
젠장. 나도 남보다 특별한 게 있었잖아?
왠지 눈물이 나오려 한다.
“대체 그 지랄 에너지는 뭔데? 발음도 안 되네.”
[암흑 에너지의 기본 구성인자예요. 너무 깊이 알려고 하지 마세요. 지구인의 뇌 구조로 이걸 이해하려면 골 빠개지니까요.]
“···야! 너 너무 지구인같이 말하는 거 아니냐?”
[이해해요. 인터넷 보고 배웠더니 그래요.]
“하긴 인터넷에 개나리당과 마하발특마(摩詞鉢特摩) 전자의 알바 쓰레기들이 넘쳐나긴 하지. 그런 글 보면 안 된단다. 그건 독극물이야.”
[알아요.]
“젠장! 깨워주고 몸도 치료해 준 건 고마운데 매일 노가다 나가고 일요일만 되면 말밥 주러 갈 생각하니까 끔찍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안 되죠. 개똥별의 초자아메가닉스사이언티픽인공생명체인 제가 선택한 남자인데!]
“그럼 어떻게 하라고? 내가 생각보다 능력이 없어.”
[예전에 증권회사 다녔죠?]
“어떻게 알았냐?”
[당신 뇌 속의 뉴런에 저장된 정보를 읽었죠. 나노에고는 지금도 저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니까요.]
“우와! 그거 대단한데?”
[뭐 그 정도는 껌이죠. 하여튼 제가 지구를 살펴보니 여기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고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더군요. 우선 지구 최고의 돈왕이 되세요.]
“야! 돈왕 그러니까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 왕 같잖아? 앞으로는 머니킹 혹은 재벌이라고 하자. 그런데 어떻게?”
[지구에서 돈 벌기 정말 쉽던데요?]
“야?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옆방에서 ‘좀 조용히 합시다]라는 소리가 바로 날아왔다.
젠장, 원룸 벽이 얇다 보니 오줌 누는 소리도 다 들린다.
[주식 하면 되죠.]
“씨발!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야. 사면 내리고, 팔면 오르고. 아주 속이 썩어 문드러졌어.”
[그럼 반대로 하면 되겠네요. 하하하! 농담이고요. 저에겐 미래행동예측 프로그램이란 게 있어요. 그걸로 하면 무조건 따게 되어 있어요.]
“미래행동예측 프로그램? 어디서 들어본 건데?”
[인터넷에 나오는 건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시작한 거죠. 아직 유치하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에요. 그러니 걱정 말고 시작하자고요.]
젠장! 이걸 믿어야 해? 말아야 해?
뭐 하긴··· 이미 망할 대로 망한 난데 더 망할 게 남았을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야! 나 신용불량자야. 빚이 겁나게 많아. 통장 만들면 바로 압류 들어와. 누나에게는 죽어도 통장 만들어달라는 말 못 해. 그간 갔다 쓴 돈이 얼만데?”
[알아요. 제가 다 안다고요. 그러니 걱정 마요.]
녀석이 나를 측은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젠장. 괜히 울컥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냐고?”
[일단 친구들에게 통장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문자를 쫙 보내보세요.]
“친구들? 어림도 없을걸? 1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더니 딱 한 놈 보내주더라.”
[아! 그거 참. 말 많네. 일단 해보라니까요.]
조그만 녀석이 앞발을 주먹처럼 쥐고 흔든다.
왠지 쫄린다.
전화기를 들고 카톡으로 친구 그룹에 있는 전화번호부에 일괄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날아온다.
[씨발 놈! 오랜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소리가 통장 만들어달라고?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마라. 네 전화 수신 거부다.]
[나는 네 친구 아니다.]
[아? 그 자식. 정말 추접스럽네.]
[아침부터 재수 더럽네.]
예상했던 답장들이 날아왔다.
“봐! 이렇다니까.”
이때 ‘까톡’ 하는 소리와 함께 답장 하나가 날아왔다.
[서원아. 미안해서 어쩌냐? 너도 알겠지만 내가 다친 다음에 치료받느라고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거든. 내 이름으로는 안 될 거야. 정 급하면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만들어 줄까?]
젠장! 또 울컥한다.
이 녀석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투수 유망주로 칭송받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세계 청소년 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무려 3게임을 완투했다.
특히 결승전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초고교급 일본 투수와 무려 15회까지 가는 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감독의 미친 짓이었다.
당연히 녀석의 어깨는 고장 났고 프로에 입단해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수술만 3번을 받은 뒤 퇴출되었다.
그때 내가 감독 놈 멱살을 잡으러 가자고 했을 때 녀석은 허허 웃고 말았다.
몸이 아파 일을 못 나가서 먹을거리가 떨어졌을 때 10만 원을 보내준 녀석도 이놈이다.
하지만 차마 이 녀석 어머니 이름으로 통장 만들어달라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정도로 급한 건 아니고. 몸조리 잘해.]
나도 모르게 이미 입력해서 카톡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자 반딧불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효! 예상은 했지만 인간의 감정은 참 복잡하네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비상 플랜을 가동하죠.]
“그건 또 뭔데?”
[일단 당신 이름으로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요. 매월 말일에 은행연합회가 일괄적으로 추심 회사에 금융정보를 제공하니까 1일에 계좌를 개설해서 한 달 만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죠.]
“야! 빚만 5억이야. 그리고 밑천도 없어.”
[하던 노가다 해서 백만 원만 만드세요. 그럼 돼요.]
“젠장! 너 어째 하는 말이 꼭 주식 사기꾼 같은데? 예전에 증권사 있을 때 보니까 심지어 애널리스트라는 놈들도 ‘대박! 미국에서 5조 매출 기대되는 종목. 많이도 말고 딱 5백만 원만 투자해!] 이딴 제목으로 낚시질해서 가짜 정보 팔아먹고 그랬거든.”
[죽고 잡아요?]
“아니! 미안!”
녀석이 인상을 쓰자 나는 바로 깨갱했다.
“그렇지만 말이 안 되잖아? 한 달이면 토, 일요일 빼고 거래일이 22일에 불과한데 무슨 수로 백만 원을 5억으로 만들어?”
[5억 가지고 안 돼요. 골드만삭스에 VIP 계좌 개설하려면 100만 달러가 필요해요.]
얘가 갈수록 태산일세.
“뭐? 그럼 한 달 만에 15억을 벌겠다고?”
[당근! 하루 수익률 39.5%면 22일 만에 15억 1,500만 원을 벌 수 있어요.]
“···하루에 39.5%의 수익을 올린다고?”
[어려운 일 아니에요.]
“어떻게? 대체 무슨 방법으로?”
[2주 정도 시간이 있으니 그 안에 ℒ에너지를 약간이나마 회복해서 나노에고를 만들고 조금 남은 것을 보태면 천 개는 될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걸로 뭐 하게?”
[증권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 천 명의 머릿속에 나노에고를 심어서 그들의 생각을 사전에 캐치하는 거죠. 그걸 미래행동예측 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업로드시키면 39.5%의 수익률은 껌이죠.]
“···씨바. 그거 진짜 가능한 거야?”
[가능하니까 말하죠. 왜 내 말이 헛소리로 들려요?]
“아니, 그건 아니고······.”
조그만 녀석이 인상도 잘 쓰네.
“야! 그럼 나노에고로 사람 머릿속을 스캔한다는 거냐?”
[맞아요.]
“그럼 아까 쌩 깐 놈들 무슨 지랄하는지 한번 봐줄래? 지들은 얼마나 잘사는지 보게.”
[에휴! 철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이야? 그게 그냥 되겠어요? 예?]
댓글(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