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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 메이커 1

2019.02.25 조회 580 추천 1


 아티팩트 메이커 (1)
 
 
 
 “배고프다······.”
 근도는 배를 쓰다듬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텅 빈 집안에는 먹을 것은커녕 먹을 것을 만들 도구도 없었다. 식탁도, 싱크대도, 냉장고나 핫플레이트도 없는 집.
 식당이 있었을 자리에는 거실이 그냥 연장돼 있을 뿐이었다.
 근도는 제 배를 문지르다가 할 수 없나, 하며 일어섰다.
 근도는 패드를 들고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자기가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를 찾았다.
 일단은 가까울 것.
 그리고 솔로 레이드일 것.
 근도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1등급 던전을 골랐다.
 홈페이지에 던전과 헌터 코드를 입력하고 레이드 예정 시간을 30분 후로 지정하자 곧 해당 던전의 이름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배고파.”
 근도는 배를 다시 한번 쓰다듬고는 레이드를 준비했다. 배고프다는 생각에 일단 사로잡히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
 근도는 빠진 게 없는지 살피고는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는 몬스터가 도사리는 던전의 입구지만, 근도가 도착한 게이트의 주변은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5등급 게이트라면 모를까 지금 근도가 가는 곳처럼,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제 오픈까지 수개월이나 남아있는 1등급 게이트 주변은 통제할 이유가 없었다.
 근도가 게이트에 다가가자 게이트 위로 표식이 드러났다. 게이트의 색은 지상에 나타나는 게이트 색 중 가장 연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게이트의 색으로 사람들은 던전의 등급을 알 수 있었다. 던전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게이트의 색이 어두워졌고, 5등급 던전의 게이트는 진한 보라색을 띄었다. 게이트의 색은 그 안에 살고 있는 몬스터가 얼마나 센지 알게 해 주는 척도였다.
 게이트를 관리하는 헌터 협회에서 미리 생성해 놓은 마법진 때문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인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헌터인 근도에게는 이곳이 직장인 셈이었다.
 근도는 오른손등을 들어, 게이트에 자신의 헌터 코드가 닿게 했다. 마법 등급 1서클 헌터의 바코드가 찍힌다. 평소에 헌터 코드에 드러나지 않는 각종 능력 수치들도 순간적으로 근도의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근도가 주의를 기울여서 본 것은 한 가지였다.
 저항력.
 그러나 저항력은 그사이에도 전혀 오르지 않았다.
 근도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한숨을 쉬었다.
 근도가 게이트에 손등을 대고 있는 동안 마법진은 헌터 코드로 근도의 정보를 인식했다. 그리고 솔로 레이드를 신청한 헌터가 맞는 것을 확인하고 경계를 해제했다.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에 들어가는 근도의 모습은 여느 헌터들과는 차림이 달랐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어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손에 아티팩트나 무기를 들지도 않았다. 보호장구도 전혀 없었다.
 이것이 근도가 솔로 레이드를 선호하는 이유였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레이드를 하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의구심을 해소해 주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그런 장비들을 갖추어야 했지만, 혼자서 움직일 때는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이 그저 던전의 몬스터를 죽이기만 하면 되었다.
 근도가 던전에 들어가자 던전의 주인은 제 앞에 닥칠 운명도 알지 못한 채 느리게 눈을 떴다.
 눈은 뜬 붉은 눈의 토끼는 근도를 노려보았다. 8미터에 이르는 덩치에 맷집이 좋아서 초보 헌터들이라면 꽤 애를 먹는 하급 몬스터였다. 그러나 근도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진짜 배고프다······.”
 근도는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붉은 눈의 토끼가 그런 근도를 보고 먼저 달려들었다.
 이런 일이야 흔하다.
 1등급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들은 선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평소에 선공을 하지 않는 몬스터들도 근도를 보면 선공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게이트가 강제 오픈된 후에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근도를 쫓아오는 일도 허다했다.
 사람들은 몬스터가 왜 그쪽으로 움직이는지 알지 못했지만 당사자인 근도는 알 수 있었다. 몬스터가 자신을 찾아오는 거라는 사실을.
 근도는 자기가 왜 몬스터들의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된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랬다.
 근도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붉은 눈의 토끼를 바라보다가, 적절한 아티팩트를 떠올리고 한순간 눈을 감았다.
 “아이언 네일!”
 근도의 외침에, 아무것도 없던 손가락에 날카로운 예기를 뿜는 무기가 장착되었다. 얼핏 보면 너클과도 비슷하지만 끝이 더 길고 날카롭게 튀어나와 있는 무기였다.
 아이언 네일을 장착한 근도는 손톱이 비정상적으로 길게 자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강도는 손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1서클 아티팩트 ‘아이언 네일’.
 몇 번 사용하면 소멸되는 아이템과 달리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는 아티팩트는 그 가치가 높았다.
 근도의 손에서 갑자기 아티팩트가 만들어지자 주춤했던 붉은 눈의 토끼는, 그대로 근도를 향해 돌진했다.
 근도는 하급 몬스터를 향해 똑같이 달렸다. 그가 노리는 곳은 단 한 곳이었다. 몬스터의 심장, ‘몬스터 하트’가 있는 곳.
 “흐음. 여기군.”
 근도는 곧 자신의 허기를 채워줄 몬스터 하트를 찾아 몸을 날렸고, 아이언 네일이 은빛의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포물선이 지나간 곳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크아아아아앙!”
 붉은 눈의 토끼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근도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근도는 아이언 네일로 살아있는 몬스터의 살가죽을 찢고, 그 안에 있는 녹색 심장을 찾아냈다.
 몬스터 하트.
 그 자체만으로 마법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근도는 마법력이나 아티팩트의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이것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근도는 아이언 네일로 침착하게 그것을 도려냈다. 순도 높은 에메랄드처럼 생긴 몬스터 하트가 적출되자 몬스터는 그대로 쓰러졌다.
 높은 강도의 몬스터 하트가 손 위에서 연한 고깃덩어리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했고, 근도는 허겁지겁 몬스터 하트를 먹어치웠다.
 식도를 넘어가는 몬스터 하트는 절대로 근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불덩이 같기도 했고 수천 개의 칼날을 지닌 무기 같기도 했다.
 식도가 불에 타는 것 같고 위장을 칼로 후비는 것 같았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용암이 흐르는 것 같은, 칼날이 난도질하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을 다 참아낸 후에야 그것은 비로소 근도의 것이 되었다.
 빌어먹을 허기를 잊기 위해 한 번씩 이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할 때마다 근도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몸을 떨어야 했다.
 하지만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흡수한 붉은 눈 토끼의 몬스터 하트는 근도가 레이드에 필요한 아티팩트를 만들 때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이것이 근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능력, 몬스터 하트나 아티팩트를 흡수해 또 다른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는, ‘아티팩트 메이커’의 능력이었다.
 
 근도는 아공간에서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붉은 눈의 토끼의 몸에 상처를 내고 돌아다녔다.
 몬스터 사체 수거팀이 왔을 때, 심장만 도려낸 이 사체에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도록.
 “먹고 사는 게 뭐가 이렇게 힘드냐······.”
 근도는 무기를 아공간에 넣으며 말했다.
 근도는 붉은 눈의 토끼가 죽으면서 떨군 아티팩트를 주워들었다.
 
 「아이언 링
 등급 : 1서클
 효과 : 공격력 20% 증가
 지속시간 : 10분」
 
 게이트에서 능력 수치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것처럼 아티팩트의 효과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팔면 5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서클만 넘어가도 공격 증폭률이 2000퍼센트가 넘고 지속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아티팩트가 꽤 많기에, 이런 아티팩트를 사는 사람은 이제 갓 헌터가 돼서 돈이 거의 없는 사람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치 없는 아티팩트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근도는 낙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허기가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
 
 띠리리링.
 간만에 잠을 잘 자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한동안 같이 일했던 팀장이었다.
 3서클 헌터인 김민호.
 크게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공정한 점이 좋아서 근도는 민호와 함께 레이드를 오래 해 왔었다.
 [야, 인마. 너는 어떻게 된 게 내가 전화하기 전에는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근도가 전화를 받자마자 민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요. 소식 없는 것 보면 잘 지내고 계신 거겠죠. 잘 지내셨잖아요. 맞죠?”
 [하여간, 말은.]
 “죄송해요.”
 근도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민호에게는 한 번쯤 연락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는 자신이 사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유일한 사람인데.
 [됐고. 내일 시간 되지? 나와. 2등급 게이트인데 같이하자.]
 “2등급요? 다른 사람들은 몇 명이나 오는데요?”
 [너까지 1서클 여섯 명에 2서클 세 명, 그리고 나.]
 1등급 게이트와 2등급 게이트에는 공략을 위해서 열 명까지 입장이 가능하지만 그 수를 다 채워서 입장하는 팀은 거의 없었다.
 헌터들이 레이드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한 건데 헌터 숫자가 너무 많으면 돈을 분배했을 때 떨어지는 게 너무 적어서다.
 하지만 가끔가다 경험치를 얻으려고 자기가 받을 몫을 포기하고 참가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2등급 게이트에 열 명을 다 욱여넣은 걸 보니 이번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상관은 없었다.
 근도가 레이드를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함도, 경험치를 얻기 위함도 아니니까.
 근도가 원하는 건 언제나 오직 하나였다.
 몬스터 하트.
 “몬스터는 뭔데요?”
 근도가 물었다.
 궁금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걸 묻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묻는 것뿐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몬스터가 뭔지 궁금해하니까 말이다.
 [그냥. 아무르야.]
 2등급 게이트의 단골손님인 아무르는 공격 방법이 특이해서 초보 헌터들에게는 꽤 까다로운 상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르를 공략한 경험이 많은 김민호와 함께 들어간다면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르는 다섯 개의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헌터들을 포획했다. 그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서 가끔은 아무르에게 붙잡히는 헌터들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르에게 붙잡히면 아무르는 팔 아래에 붙어있는 관족으로 상대를 압박해서 효소를 몸에 밀어넣는데, 제대로 당하면 헌터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린다.
 그런 아무르이기에, 초보 헌터들로는 레이드가 힘들었다.
 [너는 여전히 레이드 대가로 몬스터 하트만 고집하냐?]
 김민호가 말했다.
 “하여간. 잘도 알아. 누가 보면 내 마누란 줄 알겠어요.”
 [웃기고 있네, 이 새끼!]
 김민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2등급 게이트의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몬스터 하트는 매물이 많아서, 200만 원 수준에 거래된다.
 레이드에서 활약하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가격은 아닌데, 근도는 유독 몬스터 하트로 하는 유혹에 약했다. 몬스터 하트를 주겠다고 하면 근도는 대부분 거절을 하지 않고 레이드에 참가한 것이다.
 근도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김민호는 근도를 꼬시기 위한 가장 큰 한 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르를 사냥해서 사체를 넘기면 대략 2000만 원 정도를 받게 될 텐데, 그것은 레이드에 같이 참가한 헌터들의 등급에 따라 분배가 된다.
 근도는 비록 1서클이지만 전투 센스가 남달라 레이드에서의 활약이 뛰어났다. 그렇기에 더 높은 등급의 헌터들도 근도에게 몬스터 하트를 양보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사실 기여도가 아닌 등급에 따라서 돈을 분배하는 현행 방식에는 문제가 많았다. 기여도로 했다면 근도는 매번 절반 이상을 혼자 받아가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1서클의 헌터 중 누구도 자기가 영원히 1서클에 머무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등급에 따라 분배받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기가 못나서 그 정도 대우밖에 못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2서클이 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잊지 말고 나와.]
 김민호는 게이트의 위치와 레이드 시간을 알려주었고 근도는 패드에 일정을 입력했다.
 “아무르? 아무르 심장은 별론데. 먹고 나서 하루도 못 가서 배가 고팠던 것 같은데.”
 근도는 아무르 심장을 먹었던 때를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하나 정도는 미리 채워놔야 걱정이 덜 되니까 그냥 하자. 급할 때는 그런 거라도 필요하니까.”
 세상에 걱정거리라고는 없는 것 같은 근도지만 배고픔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거야말로 운명의 장난 같다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김민호에게서 톡이 들어왔다.
 레이드 시간을 잘못 알려줬다면서 정정을 해 주더니 한마디 잔소리를 덧붙였다.
 
 「너도 등급 좀 올려, 인마. 언제까지 2등급 게이트만 다닐 거야?」
 「주어진 대로 사는 게 가장 좋은 거예요, 형. 내일 뵐게요.」
 
 근도의 무심한 말에 민호도 결국 할 말을 잃었다.
 김민호는 근도의 레이드 실력이 그의 마법 등급에 비해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근도가 남들처럼 등급을 올리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자기한테 만약 근도 정도의 재능과 잠재력이 있었다면 쉬지 않고 레이드를 하고 마법 등급을 올려 세계적인 수준의 헌터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의 선망이 대상이 될 수도, 존경과 부를 같이 손에 쥘 수도 있고 권력도 덤으로 얻게 될 텐데.
 그러나 근도에게는 그런 의지가 전혀 없었다. 위험한 게이트를 미리 공략하면 게이트가 나타난 곳 주위의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해도 근도는 심드렁했다.
 “그래서 뭐요? 영웅이 되고 싶으세요? 그럼 되세요. 저는 관심 없어요.”
 근도는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가족들이 게이트에서 출몰한 몬스터에게 학살당하는 동안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근도의 마음이 굳게 닫힌 거라는 것을 김민호는 알지 못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의 냉정함을 알아버린 근도는 사람을 잘 사귀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런 얘기들을 근도가 직접 하지 않는데 김민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근도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자기 얘기를 한다고 해서 딱히 바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근도의 아버지는 한국에 존재했던 가장 높은 등급의 헌터였다.
 전설의 8서클 헌터 최시우가 근도의 아버지였다. 8서클 헌터는 근도의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에는 나온 적이 없었다.
 7서클도 없었다.
 그런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근도를 지키려다가 죽었다.
 
 ***
 
 아무리 8서클 헌터라고 하더라도 5등급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를 혼자서 해치울 수는 없었다. 5등급 게이트가 강제 오픈되고 몬스터가 출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병력이 동원됐지만 사상자만 속출했을 뿐 몬스터를 죽일 수 없었다. 같이 싸우던 헌터들도 패색이 짙어지자 도망쳤다.
 도시는 빌딩만 한 몬스터에게 유린당했고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마지막까지 몬스터를 죽이려고 애쓰던 아버지도 결국에는 공격을 포기하고 근도를 데리고 도망쳤다.
 몬스터에게 어머니를 잃은 근도에게, 아버지는 유일한 혈육이었다. 근도는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런 아버지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근도에게 부탁을 하면 그것을 꼭 들어달라는 거였다.
 근도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들어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약속했다.
 그러다가 5등급 게이트에서 출몰한 몬스터가 공격을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근도에게 말했다.
 “근도야. 나는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거다. 하지만 내 죽음을 헛되게 할 생각은 없어. 나는 최대한 저 몬스터의 체력을 깎은 뒤, 내 모든 마법력을 너에게 봉인할 거다. 다만······.”
 잠시 뜸을 들인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내 마법력이 네 몸에 봉인되고 나면 너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게 될 거다. 몬스터의 심장을 먹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허기지. 하지만 너는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강해질 거다. 너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동안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제 내가 그것을 완성시킬 거다.”
 근도는 그럴 수 없다고 소리쳤다.
 아버지를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근도는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다. 왜 포기해 버리는 거냐고, 왜 계속 싸우지 않는 거냐고 하면서 근도는 울었다.
 근도도 아버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몬스터에게 공격당해 짓이겨진 상처에서 피가 쿨럭쿨럭 솟았고 깊게 파인 상처에서 드러난 뼈가 피에 젖어 붉어져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었다는 것을, 어린 근도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두려웠다.
 몬스터에게서 도망치기는 했지만 벌어놓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몬스터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들키면 두 사람 모두 죽을 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근도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서 사람들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살려달라고.
 우리를 구해달라고.
 그러나 모두들 자기들의 살길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목에 피가 터지도록 소리쳤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린 근도에게 단 한 사람도 눈길을 주지 않았고, 다리를 잡으려는 근도를 걷어차 길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아버지는 그런 근도에게 다가왔다.
 상처가 심해 두 발로 걸을 수 없어 한 팔로 자기 몸을 끌면서 왔다. 그리고 근도의 머리를 자기 가슴에 한 번 꼭 안았다가 놔 주었다.
 황량한 거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근도야.”
 “아버지······.”
 근도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달았다.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죽음이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근도야. 네 아버지라서 행복했다. 나는 늘 네가 자랑스러웠어.”
 근도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4서클 아티팩트, ‘훔친 생명’을 꺼냈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몇 분간, 자신의 의지를 그대로 이어가며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아티팩트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모았던 아티팩트 중에 이것만 사용할 거다. 그리고 다른 아티팩트는 내 심장과 마법력과 함께 너에게 봉인할 거야.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근도야. 그리고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근도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는 네가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알게 될 거야. 이제 눈을 꼭 감으렴.”
 아버지는 눈을 감은 근도의 머리를 다시 한번 안아준 뒤, 근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칼로 자신의 가슴을 베었다.
 근도가 눈을 떴을 때 아버지의 가슴은 날카로운 칼날에 길게 벌어져 있었다.
 과도한 출혈로 이미 산 사람이 아닌 아버지가 자신의 심장을 떼어냈다.
 근도의 등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은 아버지는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의식이 진행되자, 근도는 몸 안의 피와 뼈와 내장이 모두 요동치고 뒤집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등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참았다.
 생명을 다한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새겨 넣는 것이기에, 근도는 통증이 계속되길 바랐다.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것 같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니까. 무엇보다 이 통증이 계속되는 동안은 아버지가 살아있다 생각할 수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근도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근도의 어깨를 짚어주고 그대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근도에게 미소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
 근도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몬스터가 근도의 등 뒤까지 나타났다.
 근도는 피가 튄 얼굴을 닦지도 않은 채 몬스터를 향해 일어섰다.
 근도의 아버지를 상대하느라 몬스터 역시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근도가 몬스터를 바라보자 몬스터의 급소가 보였다.
 “파공수!”
 근도의 비어있던 손에는 어느 순간 날이 시퍼렇게 선 긴 검이 들려 있었고, 근도는 허공에 계단이 있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공중을 딛고 올라가며 몬스터의 급소 부분을 향해 대기를 갈랐다. 같은 행위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근도가 바닥으로 내려오는 순간, 찢어진 대기에서 피 흘리는 손들이 나와 몬스터의 몸을 찢어 발겼다.
 근도는 몬스터의 몸이 찢겨나가는 것을 보며 그것의 최후를 기다렸다. 그리고 몬스터가 죽은 자리에서 심장을 캐냈다.
 빛나는 몬스터 하트를 근도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먹어치웠다.
 
 그 후로 15년.
 근도는 헌터가 되었지만 사람들을 위해 싸우지도, 마법 등급을 올리는 데도 관심 없이 그저 자신의 하루하루의 허기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다.
 차게 식은 근도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 것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
 
 게이트 앞에는 헌터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천천히 걸어오는 근도를 보고 모두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을 뿐 시비를 걸지는 못했다.
 근도는 이렇게 항상, 마음에 확 들게 행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적을 당하지는 않을 만큼 적당하게 움직였다.
 느그적거리는 게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렇다고 지각을 한 건 아니라서 괜히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미리 와서 모여 있던 무리에게 다가간 근도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면서 인사를 했다.
 그런 근도를 보고 다들 웃어버렸다.
 처음에는 근도를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태도가 좋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나 헌터들은, 태도가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근도의 눈빛은 다른 누구보다 예리하게 빛났고, 움직임은 다른 누구보다 빨랐다.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보다 세 배에서 다섯 배는 빠르게, 많이 움직였다.
 근도하고 같이 팀을 이뤄서 레이드를 하다가 다른 팀과 레이드를 하면, 근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여실히 깨닫고는 했다.
 “안 죽고 살아 있었네?”
 “제가 왜 죽습니까?”
 2서클 헌터 이한경의 말에 근도가 씩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래. 장하다. 그렇게 오래 살아남아서 7서클, 8서클 찍어야지.”
 “그런 걸 왜 찍습니까? 저는 그냥 적당히 대충 1서클 헌터로 살 겁니다. 위험한 던전에는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지금 생활에 아무런 부족함도 못 느낍니다.”
 “그래도. 위험한 레이드를 같이하면서 동료들을 도와주는 것도 의미 있잖아.”
 “그건, 그런 데서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 같이하면 될 일이고요.”
 근도의 철벽 방어에 한경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매사에 의욕이 없을까, 하고 한경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다른 1서클 헌터들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1서클 헌터라는 사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다행히 좋은 팀을 만나서 상급 헌터들의 무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헌터들의 사회는 계급 사회이자 능력제 사회다.
 등급이 낮으면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에도, 만날 수 있는 몬스터에도 한계가 있고 얻을 수 있는 경험치에도 한계가 있다.
 레이드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큰물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해 제압하고 죽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였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도 안 하는 근도는 그들에게 이해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사실 근도의 능력치 중에 마법력과 근력은 모두 이미 5서클 마법 등급을 넘어서는 능력치를 찍은 상태였다. 그러나 마법 등급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저항력이 1서클에 머물고 있었다.
 그냥 1서클에 머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헌터로 각성하며 부여되는 5에서 조금도 늘어나지 않은 수치였다.
 모든 요소가 일정치 이상을 넘어야 마법 등급이 오르는 것인데 근도의 저항력은 도무지 올라가지 않고 있었다.
 근도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저항력은 몬스터로부터 받은 공격에 비례해 오르는 것으로, 다른 헌터들에게는 가장 올리기 쉬운 능력이었다. 몬스터에게 맞고서 죽지만 않으면 헌터의 저항력은 알아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도는 몬스터에게 맞는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지금껏 저항력이 낮아서 마법 등급을 올리지 못한 헌터는 없었고 그 때문에 저항력의 수련 방법에 대해서 특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한다면, 근도는 앞으로도 마법 등급이 오르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김민호가 도착해 브리핑을 했지만, 겨우 아무르를 상대하러 들어가는데 그 브리핑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민호는 불안감을 느꼈다. 때때로 헌터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들이 모두 알고 있다고 자신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자, 김민호도 더 이상 브리핑을 진행하지 못하고 헌터들을 인솔해 게이트에 입장했다.
 근도는 이렇게 팀을 이뤄 레이드를 할 때면, 평소에 입지 않는 보호장구를 억지로 착용해야 해서 움직임이 영 불편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숨기기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했다.
 사실 근도는 솔로 레이드를 하는 게 편한데 1서클 마법 등급으로 솔로 레이드를 하러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이게 근도의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다.
 팀을 이뤄서 레이드를 하러 들어가면 번거롭고 귀찮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저항력을 높일 방법을 찾아내 마법 등급을 확 올려 높은 등급의 던전에서 솔로 레이드를 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헌터 협회나 길드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귀찮은 일이 발생할 소지가 컸다.
 근도의 전투 기술이 좋다는 게 드러나면 강제 오픈이 예정된 게이트의 공략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집이 될 수도 있었다. 최근 4등급 게이트가 강제 오픈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기에 더욱 그렇다.
 다행히도 아직 5등급 게이트가 강제 오픈된 적은 없었지만 그게 언제까지 잠잠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제 오픈된 게이트에 강제 소집이라니. 근도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김민호의 팀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르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서서히 헌터들에게 다가왔다.
 초반 움직임은 느려 보였지만 일단 공격을 시작하고 나면 달라졌다. 만만하게 보았다가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팀을 이루는 레이드에서는 위급한 상황에 다른 동료들이 구해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르에게 목숨을 뺏기는 헌터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민호의 팀에서도 1서클 헌터 한 사람이 초반부터 아무르의 팔에 붙잡혔다.
 아무르의 외피는 다른 2등급 몬스터들보다도 훨씬 더 단단해서 웬만한 공격으로는 데미지를 입힐 수가 없었다. 정확한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1서클 헌터들 몇이 급한 마음에 동료를 구하겠다고 달려가 검을 휘둘렀지만 검은 번번이 튕기기만 했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김민호였다. 김민호는 아무르의 팔을 향해 달려갔다.
 아무르는 김민호의 기척을 느끼고 팔에서 힘을 빼는 대신 1서클 헌터를 붙잡은 팔을 뒤로 돌렸다.
 관족은 헌터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붙잡힌 헌터의 안색이 검붉게 변해갔다. 그러는 와중에 아무르는 집요하게 팔 끝으로 헌터의 입을 노렸다. 이제 곧 헌터의 입에 아무르의 소화 효소가 강제로 주입될 것 같았다.
 아무르가 생각보다 강한 것을 보면서 2서클 헌터들도 조금씩 당황했다.
 근도 자신조차도 잘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이것은 일종의 ‘근도 효과’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근도가 던전에 나타나면 그곳에 있던 몬스터들은 1.5배까지 강해졌다.
 하지만 근도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강하면 강한 대로 죽이면 그만인 것이다.
 근도는 아무르를 향해 달려나갔고, 헌터의 입을 벌리고 효소를 주입하려던 아무르의 팔을 잘라냈다. 불가사리 모양의 아무르는 순식간에 하나의 팔을 잃고 기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팔이 잘려나가자 헌터를 조이며 압박하던 힘도 풀렸다.
 아무르에게 붙잡혀 있던 헌터는 덜덜 떨리는 움직임으로 간신히 도망쳤다.
 근도는 아무르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중심부로 달려갔다.
 그 자세는 아무르에게 익숙한 자세가 아니었다. 팔을 길게 뻗어서 헌터들을 붙잡는 것에 익숙했던 아무르는 근도가 너무 가까이 붙자, 남은 네 개의 팔을 허우적거렸다.
 민호는 헌터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들은 민호의 명령을 듣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각각 아무르에게 유효한 공격을 퍼부었다.
 민호는 그 팀에 애초에 근도가 없었던 것처럼, 근도에게는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근도는 명령을 한다고 해서 민호의 말을 들어먹을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중적으로 공격이 퍼부어지자 아무르가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려 했다.
 그때였다.
 근도의 검이 아무르의 급소를 정확히 뚫고 들어갔다.
 아무르의 중심부에는, 공격을 받았을 때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봉쇄되는 급소가 있었다. 그러나 급소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급소의 면적이 워낙 좁아 공격하기 매우 어려운 곳인데 근도가 그것을 성공시킨 것이다.
 아무르가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된 헌터들은 마법 공격을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무르에게 불꽃이 날아들었다.
 다 같은 불꽃 마법처럼 보여도 헌터들의 마법 등급에 따라 그 강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민호의 불꽃은 아무르의 몸에 붙어 쉽게 꺼지지 않은 채 아무르를 태웠다. 그저 화상을 입히는 정도에 불과한 1서클 헌터들의 마법과는 달랐다.
 곧이어 2서클 헌터 이한경이 아무르를 향해 활을 쏘았다.
 2서클 아티팩트 ‘현궁’.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는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아무르를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아티팩트였다.
 헌터들은 마나를 소진하며 마법 공격을 계속했고 결국 아무르의 숨이 완전히 멎었다.
 
 레이드가 끝나자 헌터들은 근도에게 다가와 치하했다.
 “아무리 봐도 1서클 헌터 능력은 아닌데. 이 시스템에는 진짜 문제가 있어. 능력치 좀 잘 올려 봐. 억울하지도 않아? 내가 2서클이지만 근도 씨가 나보다 기여도가 훨씬 높은데, 받는 보상은 내가 더 많잖아.”
 2서클 헌터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근도는 그저 고개를 으쓱해 보이기만 했다.
 “진짜 안 아까워? 안 억울해?”
 한경까지 그렇게 말하자 근도가 한경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한테 더 주시던가요. 주시면 사양은 안 해요.”
 “에에에에이. 알 만한 사람이 그러네. 그건 또 그런 게 아니지.”
 한경은 괜히 입을 잘못 나불거렸다가 돈을 까먹게 생기자 입을 다물고 슬슬 내뺐다. 다른 2서클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도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악의 없이 웃었다.
 민호가 다가와 근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잠깐 남아서 자기를 보고 가라는 신호였다.
 잠시 후, 근도가 민호에게로 가자 민호는 아무르의 몬스터 하트를 내밀었다.
 “근데 몬스터 하트로 뭐하는데 이렇게 집착해? 아무르 몬스터 하트는 별로 쓰이는 곳도 없는데. 차라리 돈으로 받는 게 낫지 않아?”
 “예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근도를 보고, 이 자식이 사실대로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민호는 근도와 인사를 나눴다.
 “며칠 있다가 2등급 한 번 더 뛰자. 연락할게.”
 “형. 쉬엄쉬엄 해요. 인생도 적당히 즐겨가면서 살아야지 맨날 레이드만 해요?”
 “그래서 너는 인생 즐기며 사냐?”
 “뭐. 대충요.”
 “여자는 안 만나? 아직 관심 없냐? 내가 소개해 줘?”
 “형도 없잖아요. 우선 형 일에 신경 쓰세요.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할게요.”
 “저 자식. 하여간 말본새는.”
 민호는 못 당하겠다는 듯이 웃어버렸다. 열정도 없고, 고분고분한 맛도 없는 녀석인데 왠지 밉지가 않았다.
 “나중에 연락하면 튀어나오기나 해. 간다. 수고했어.”
 차 밖으로 손을 흔들며 민호가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근도도 펄럭펄럭 손을 흔들었다.
 주머니에 꽂혀 있던 다른 손으로는 아무르의 몬스터 하트를 녹이는 중이었다.
 단단한 돌과 같던 그것이 녹아내리자 근도는 재빨리 아공간에 넣었다.
 “아껴놨다가 나중에 배고플 때 먹어야지.”
 당분간은 먹을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근도는 기분이 좋아졌다.
 
 ***
 
 던전은 아주 오래전부터 생겨났고, 사람들은 이제 그것을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였다. 던전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증을 갖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은 그에 익숙해져 있었다.
 던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겨났다. 던전의 등급에 따라 던전의 문에 해당하는 게이트는 연한 보라색부터 진한 보라색까지 다양한 색을 띠었는데, 그런 각각의 게이트 색이 갑자기 하얗게 바뀌는 때가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게이트가 강제 오픈될 거라는 의미였다.
 색이 하얗게 바뀐 후 30일이 지나면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던 몬스터가 던전을 벗어나 외부에 출몰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5등급 게이트가 하얗게 변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5등급 게이트는, 헌터들이 공략을 위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몬스터가 밖으로 나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공략하기 쉬운 3등급 던전까지는 강제 오픈되기 전에 대부분 공략되었지만 공략하기 어려운 4등급 던전부터는 사정이 달랐다.
 일단 게이트가 강제 오픈되고 몬스터가 외부에 출몰하면 인명과 재산상 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4등급 던전의 게이트가 흰색으로 변하면 상급 헌터들을 소집해 게이트 오픈 전에 던전을 무조건 공략하도록 지침을 정해 놓았다.
 하지만 헌터들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4등급 던전 공략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4등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버는 돈이 조금 적더라도 안전한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자기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헌터들은 정부에 의해서 강제로 소집되었을 경우에나 어쩔 수 없이 4등급 던전을 공략할 뿐이었다.
 그러나 4등급 던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5등급 던전에 자발적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 모여드는 이유는 단순했다.
 5등급 던전에는 그곳에서 죽은 헌터들이 남긴 값비싼 아티팩트가 잔뜩 있기 때문이었다.
 
 ***
 
 근도는 간만에 집에서 여유를 부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아티팩트의 무덤’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아티팩트의 무덤은 헌터들이 공략에 실패한 5등급 게이트를 말했다.
 공략에 실패한 헌터들은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던전 속 몬스터에게 죽었고, 헌터들이 가지고 들어간 아티팩트 역시 함께 잠들었다.
 그래서 공략되지 못한 5등급 게이트는 통칭해 ‘아티팩트의 무덤’이라고 불렸다.
 여러 개의 아티팩트 무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헌터 협회에서는 각 무덤에 이름을 붙였는데, 지금 TV에 나오고 있는 것은 그중 ‘혈루’라고 불리는 무덤이었다.
 근도는 좋은 아티팩트가 잔뜩 들어 있는 던전 이야기에, 입맛을 다시면서 TV를 시청했다.
 하지만 아티팩트의 무덤에 대한 내용은 한계가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나온 헌터가 없기에, 게이트 너머 던전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만 살아서 나온 사람은 없었다. 자기 몸 하나만 이끌고 도망쳐 나오는 것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아티팩트의 무덤들은 자신의 비밀을 견고하게 지켜냈다.
 TV프로그램은 그저, 전에 그 던전을 공략하러 들어갔던 길드와 해당 길드 헌터들이 가지고 들어갔던 아티팩트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근도는 TV를 보며, 언젠가는 저기에 들어가서 아티팩트들을 싹 긁어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티팩트에는 두 종류가 있다. 헌터가 몬스터 하트와 같은 몬스터 부산물에 자신의 마나를 불어넣어 만든 헌터 아티팩트와 몬스터가 죽으면서 떨군 몬스터 아티팩트.
 어느 것의 효과가 더 좋다고 단순히 비교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좋은 재료로 만든 헌터 아티팩트는 같은 등급의 몬스터 아티팩트보다 그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헌터 아티팩트에는 그 아티팩트를 만든 장인의 혼이 담겨 있다는 것은 과장된 얘기가 아니었다. 실제 장인들마다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팩트의 양이라고 해 봐야 일생을 통해 열 개가 채 되지 않았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동안 장인들의 마나는 아티팩트에 저절로 흡수되었기에, 아티팩트를 만들고 나면 장인들은 급격히 노쇠했다. 그러다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마나의 흐름이 막혀 역행했고,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면서 머리가 터진 채 죽곤 했다.
 이런 이유로 아티팩트를 만드는 장인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티팩는 항상 극소수에 불과했다. 때문에 헌터 아티팩트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또한 몬스터 아티팩트 역시, 등급이 높을수록 엄청나게 희귀하기에 그 가치는 매우 높았다.
 5서클 아티팩트 정도 되면 단순히 돈이 많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고, 주로 국가나 단체에서 소유했다. 가치를 굳이 책정하자면 조 단위가 넘어간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몸값에도 불구하고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가 있으면 레이드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졌기에, 헌터들은 언제나 강력한 아티팩트를 가지고자 했다.
 이 때문에 ‘아티팩트의 무덤’은 헌터들에게 있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한 번쯤은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다.
 
 근도 역시 그동안 아티팩트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던전에 대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곳에 직접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부는 헌터라는 귀중한 인적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각각의 헌터들이 수준에 맞는 레이드를 하게 규제를 해왔다. 실력도 안 되면서 과욕을 부려 개죽음을 당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헌터는 헌터 개인의 몸이기도 했지만 국가의 재산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3등급 게이트까지는 등급과 상관없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4등급 게이트와 5등급 게이트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4서클 이상의 마법 등급이 필요하도록 정부에서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1서클인 근도는 아티팩트의 무덤에 아무리 흥미로운 게 묻혀 있어도 어차피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근도의 생각을 바꿀만한 장면이 TV에서 나왔다.
 국내의 유명한 길드 하나가 아티팩트의 무덤을 공략하려 하고 있었고 그 길드원들이 가지고 들어갈 아티팩트들이 하나하나 소개되었다.
 근도는 소파에 앉아 턱을 쓰다듬으며 그들의 아티팩트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다가 4서클 아티팩트 ‘화룡의 숨’이 나왔을 때, 근도의 눈이 빛나며 눈가에는 웃음이 떠올랐다.
 화룡의 숨은 4서클 아티팩트였지만 사용하는 사람의 마나 운용 능력에 따라 그 효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근도는 그것이 강력한 몬스터 하트가 들어간 헌터 아티팩트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화룡의 숨이라면 몬스터 하트를 여러 개 먹은 것과 같은 포만감을 줄 것이었다.
 그것을 본 근도의 입에서는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강렬한 식욕이 돋았다.
 “맛있겠다.”
 화룡의 숨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동안 근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TV에 나온 길드는 혈루 공략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였고, 화룡의 숨 역시 아티팩트의 무덤에 묻힐 가능성이 많았다.
 근도는 점점 화룡의 숨에 매료되었고, 지독한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우선은 급한 대로 아공간에서 아무르의 아티팩트를 꺼내 허기를 달랬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화룡의 숨······ 먹고 싶다······.’
 근도의 머릿속에서는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저곳에 가고 싶었다.
 혈루에 들어가기로 한 길드가 레이드에 성공하지 못할 것은 뻔했기에, 화룡의 숨은 혈루에 묻힐 운명이었다.
 혈루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화룡의 숨은 제 것이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법 등급의 제한이 근도를 가로막았다.
 “마법 등급을 올려야 하나? 그런데······ 어떻게?”
 미간을 잔뜩 찌푸린 근도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
 
 민호는 갑자기 근도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 이상한 녀석에게 드디어 문제가 생긴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왜? 왜? 왜? 무슨 일 있어?”
 민호는 근도의 전화를 받자마자 걱정이 돼서 물었다.
 [형. 저항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근도가 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묻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민호는 우선 대답을 해 주었다. 몬스터와 레이드를 하다 보면 저절로 오르게 돼 있다고.
 [그런데 저는 왜 안 오르죠?]
 근도가 물었다.
 “네가? 저항력이? 안 올라? 네 저항력이 얼만데?”
 [5요.]
 “5?”
 민호는 잠시 어리둥절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저항력이 낮다는 게 좋은 의미인가? 이 녀석 정도로 레이드를 했으면서 저항력이 이렇게 낮을 수가 있는 건가?
 이게 가능한 일인 건가?
 민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가 아니라면 알 수 없었을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저항력이 어떻게 오르는지를 생각하던 민호는 그동안 던전에서 근도가 어떤 식으로 싸워왔는지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근도가 단 한 번도 몬스터에게 맞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헉!”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대단한 거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시스템이었다. 마법 등급을 올릴 모든 능력 수치가 고르게 채워지지 않는 한 마법 등급은 올라가지 않게 돼 있었다.
 대부분의 헌터는 던전에서 싸우다 보면 자동적으로 능력 수치와 함께 등급이 올랐다.
 “몬스터랑 싸우면서 맞아야 돼. 그건 그래야 올라.”
 헌터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웃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게 가장 정확한 대답이었다.
 지금까지 민호에게 이런 질문을 해 온 사람은 없었다. 저항력은 레이드를 많이 하면 저절로 오르는 수치인데, 몬스터의 공격을 모두 피해버려서 저항력이 바닥이라니······.
 잠시 황당해하던 민호는 근도에게 물었다.
 “왜? 등급 올리게? 그동안은 관심 없었잖아.”
 [네. 그랬는데요. 하고 싶은 게 생겨서요.]
 근도가 말했다. 민호에게서 들은 얘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짧게 대답을 하고는 보충 설명 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 잘됐네. 무슨 일인지는 물어도 말 안 해 줄 거지?”
 [형은 저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됐고. 내일 2등급 게이트 한 번 더 뛰자. 내일은 꼭 와야 돼. 4등급 게이트 하나가 강제 오픈 예정이라 상급 헌터들이 거기로 몰렸거든. 그래서 사람이 모자라.”
 [사람이 모자라긴 뭘 모자라요. 어차피 우리 같은 하급 헌터들은 4등급 게이트 레이드와는 상관없는데.]
 ‘이 자식은 맹한 것 같아도 빈틈이 별로 없어. 별생각 없는 놈 같아서 그냥 대충 말하면 알았다고 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민호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아무튼 와. 알았어?”
 [알았어요. 그리고 이제 그런 거 있으면 우선적으로 불러주세요, 형.]
 “진짜 등급 올리려고 하나 보네?”
 [그렇다니까요?]
 민호는 도대체 이 녀석의 꿍꿍이가 뭘까 했다.
 “마나 회복 아이템은 다섯 개 정도 준비해 와.”
 그러면서 공략하려는 던전의 몬스터에 대해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근도가 벌써 치고 들어왔다.
 [형. 2등급 게이트 레이드 해서 1서클 헌터가 얼마나 번다고 아이템까지 준비해 오래요?]
 “이번에도 몬스터 하트 너 주면 되잖아.”
 [알았어요. 열 개 가져갈게요.]
 민호는 전화를 끊고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저항력이 5라는 것도 그렇고 갑자기 마법 등급을 올리겠다고 설치는 것도 그렇고.
 그러나저러나 민호로서는 큰 짐을 던 셈이었다. 근도가 앞으로 자주 나와 준다면 레이드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기에.
 
 근도는 민호와 통화를 끝내고 몬스터 코인을 찾았다.
 몬스터 코인은 헌터들에게 필요한 각종 무기와 보호장구, 아이템과 아티팩트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는 헌터들을 위한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근도는 마나 회복 아이템을 사서 아공간에 집어넣고 내려오다가 아티팩트를 파는 층에 들렀다.
 쭉 둘러보았지만 근도의 흥미를 끄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별것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돌아서려고 하는데 코너 쪽에 3서클 아티팩트 ‘화염의 창’이 보였다.
 “어?!”
 근도는 화염의 창을 구경하며, 직원에게 저것을 직접 만져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직원은 진열장 안에 있던 화염의 창을 꺼내 보여주며, 만져 봐도 된다고 대답했다. 가지고 도망치려고 해 봐야 그 층을 다 벗어나지도 못하고 보안요원들에게 붙잡힐 테고, 아티팩트 절취를 시도하는 것은 중죄로 다스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근도는 그것을 훔칠 생각 같은 것은 애당초 갖고 있지 않았다.
 “좋은 겁니다. 이번에 캐니언 길드에서도 이런 걸 여럿 가지고 들어가죠.”
 “그게 언제죠?”
 “내일입니다. 내일 오후요. 아직 레이드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는지 오전에도 저희 매장에 다녀갔어요. 아티팩트를 거의 쓸어갔죠. 캐니언 길드라면 알아주는 곳이니까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직원은 심심했는지, 묻지 않아도 여러 말을 했다.
 근도는 그냥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티팩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왼손 위에 올려둔 아티팩트를 오른손 검지로 만지며 중얼거렸다.
 ‘도해.’
 그러자 아티팩트의 구성이 느껴졌다. 근도는 아티팩트를 손에 쥔 짧은 시간을 통해 도해를 마쳤다.
 근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티팩트를 직원에게 돌려주고 돌아왔다.
 3서클 아티팩트 ‘화염의 창’을 어떻게 만들면 될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중에는 몇 가지 재료가 부족했다.
 그 재료들만 채워진다면 이것과 똑같은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재료를 미리 모아두기 위해서라도 레이드는 열심히 해야 되겠어. 그리고 이제는 몬스터가 때리면 피하지 말고 맞아야겠고. 아······ 아픈 건 지긋지긋한데.’
 근도는 몬스터 하트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극심한 통증을 떠올렸다.
 죽을 것 같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죽을 것 같은 통증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근도에게 가장 큰 딜레마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버지가 근도에게 바랐던 단 한 가지의 소망이었으니 말이다.
 
 ***
 
 다음 날 아침, 근도는 민호가 말한 게이트에 시간 맞춰 나갔다.
 하지만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어 모두 지각인 건가? 하고 생각한 순간, 멀리 세워진 차에서 한 여자가 내려 천천히 다가왔다. 이전의 레이드에서는 본 적이 없던 단발의 여자였다.
 여자는 내성적인 성격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자기소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근도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김민호 팀장님한테 소환돼서 왔어요.”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자기를 3서클의 유채림이라고 소개했다.
 3서클이 여기에는 웬일이실까, 하고 바라보자 여자가 대답했다.
 “계속 2서클이었다가 3서클이 된 지 얼마 안 됐어요. 마법 등급이 올랐다고 갑자기 던전 등급을 올리는 게 솔직히 겁이 나네요.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는 2등급 던전을 돌며 실력을 쌓고, 그 이후에 3등급 던전에 도전을 해 보고 싶어서 왔어요.”
 뜻밖의 진솔한 모습에 근도는 호감이 갔다.
 3서클 헌터라면 마법 능력과 근력, 저항력이 모두 일정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였다.
 재빠르게 겉모습을 스캔한 결과, 근력이 뛰어난 것 같지는 않고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주로 어떤 마법을 쓰세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극히 드문 근도였지만, 채림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이것저것 많이 배웠어요.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할 줄 아는 건 많아요.”
 ‘오호?’
 근도는 곧바로 호기심이 동했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는 건 아무래도 겸손해 보이기 위한 말인 것 같았다. 저런 성격에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고 말할 정도면, 유채림에게서 배울 게 꽤 있을 것 같았다.
 근도는 이미 15년 전에 파공수를 스스로 펼칠 수 있었던 사람이기는 했지만, 위기가 닥쳐 직관적으로 펼치는 마법 외에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마법을 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진눈깨비를 일으키는 것으로 충분한 일에, 얼음 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쯤 자신의 능력을 체계적인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절감했던 것이다.
 유채림은 근도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긴장했다.
 뭔가 빼먹을 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눈빛이 순식간에 집요해진 것이다.
 그러나 유채림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삼촌인 김민호가 3등급 던전에서 레이드를 잘 하고 있는 자신을 불러 할 말까지 친히 알려주고, 상대방에게 레이드 시간까지 사기 쳐 가면서 둘을 따로 만나게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촌은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자기가 한 말은 책임을 지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신체 결함 때문에 근력을 일정치 이상으로 올리는 것이 불가능해 3서클 헌터일 뿐, 삼촌의 레이드 능력은 결코 범상치 않았다.
 삼촌은 자신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엄청난 수련을 했고, 그 결과 그의 신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채림은 삼촌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듣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삼촌이 한 사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얘기를 했다.
 지금은 1서클 헌터지만 한 번 한계를 극복하고 나면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사람이라고 했다.
 채림은 삼촌에게서 그 얘기를 들으며 마법 천재라고 불리는 자신의 능력에 편승하려는 사람이 또 나타나서 삼촌을 설득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촌이 하는 말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들었다. 자신의 옆에 있으면 최근도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하지만 그런 채림에게 삼촌은 뜻밖의 말을 했다.
 그 녀석은 블리자드라고. 그러니 채림이 너는 홀씨가 돼서 그 녀석 옆에 있기만 하라고. 그러면 같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될 거라고.
 홀씨라니.
 홀씨라니!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굴욕적인 말은 처음 들었다.
 그러나 삼촌이 단순히 자신을 도발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채림은 깨달았다.
 삼촌이 거창하게 밑밥을 깔아놓은 덕분에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는데, 게이트 앞에 나타난 최근도의 모습이 생각보다 평범해 보여 조금은 맥이 빠졌다.
 삼촌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평소에 착용하는 무기와 보호장구, 아티팩트만 해도 화려하고 번쩍번쩍할 거라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채림은 최근도와 얘기를 하면서 자기가 끼고 있던 아티팩트 ‘포어사이트 아이’를 사용했다.
 상대방의 능력치와 마법 등급을 알려주는 아티팩트였다.
 헌터의 손등에 있는 헌터 코드를 보면 헌터의 마법 등급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능력치를 세세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포어사이트 아이는 바로 그런 정보를 착용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이번만큼은 포어사이트 아이가 채림에게 아무 정보도 전해주지 않았다.
 채림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아티팩트에 문제가 생긴 건가 했다.
 ‘몬스터 코인에 들러서 수리를 맡겨야 하나?’
 채림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때, 근도는 채림의 아티팩트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도 모르고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들을 묻느라고 바빴다.
 “공격할 때는 주로 어떤 걸 쓰세요? 불이나 얼음 마법을 쓰나요?”
 “그런 것도 쓰지만 저는 바람이나 구름을 이용한 마법이랑 전격 마법을 주로 써요.”
 채림이 말했다.
 “가장 편한 건 뭐예요?”
 “싱크요.”
 “싱크요?”
 싱크는 몬스터 아래에 깊은 물웅덩이를 순식간에 만들어, 몬스터를 가라앉히는 마법이었다.
 몬스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의 싱크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유채림의 마법 능력이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미였다.
 마법 능력만 가지고 본다면 더 높은 등급의 헌터 못지않을 것 같았다.
 이래저래 능력 수치에 발목 잡혀서 인생이 꼬인 사람들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근도는 유채림을 바라보았다.
 ‘저항력은 충분히 높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근력이 문제인가?’
 근도는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다.
 “3서클 석화 아티팩트를 샀는데, 요즘엔 그걸 이용한 공격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싱크 마법에 대한 근도의 반응이 별로인 것 같다고 느낀 채림이 덧붙였다. 자기가 한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자괴감을 느끼며 한 말이었다.
 근도와 자기를 각각 블리자드와 홀씨에 비유한 삼촌의 얘기가 깊이 각인되어서, 근도에게 자신의 능력을 더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근도는 곧 채림의 실력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잔뜩 고취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근도는 왜 다른 사람들이 늦게 오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정확히 한 시간을 먼저 와서 기다린 거였는데도 말이다.
 이윽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을 하며, 근도에게 뭘 이렇게 일찍 왔냐고 타박을 했다.
 채림은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고, 뒤이어 도착한 민호는 사소한 실수였다며 넘어갔다.
 근도도 채림의 실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그런 걸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도 않았다.
 민호는 게이트 입성을 앞두고 던전에 대해 브리핑했다.
 이번 던전의 주인은 얼음늑대로, 얼음늑대는 체력이 압도적으로 높고 민첩성 또한 매우 높은 편이라 2등급 던전 몬스터 중에는 상당히 꺼려지는 존재라고 말했다.
 얼음늑대를 처음 상대하는 헌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민호는 몇 가지 주의 사항만 알려주었다.
 “수시로 마나 회복 아이템을 사용해서 마나를 회복시켜 놓지 않으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개체니까 마나 관리는 스스로들 알아서 잘해 주세요.”
 민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근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채림은 삼촌이 이 남자를 진심으로 아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헌터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6미터가 조금 넘는 크기의 얼음늑대가 헌터들을 향해 느리게 다가왔다.
 그 정도의 크기라면 그다지 큰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큰 몬스터는 얼마든지 있었다.
 민호는 헌터들에게 위치를 정해주었고 헌터들은 민호의 지시에 따라 공격을 시작했다.
 채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림은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 마나의 소모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강한 화염 마법을 선보였다.
 “파이어 피스트!”
 채림의 필살기였다.
 채림이 사용한 아티팩트는 3서클의 파이어 피스트였다.
 얼음늑대의 옆구리를 노리고 빠르게 들어간 파이어 피스트를 얼음늑대는 피할 새도 없이 맞았다.
 ‘제대로 들어갔다!’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체력이 워낙 높은 얼음늑대라서 후속 공격이 바로 이어지기는 하겠지만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확실히 기선제압은 되었을 거라 생각하면서 모두들 기분 좋게 레이드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얼음늑대는 비척거리는 기색조차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헌터들의 머릿속에 일시에 들었다.
 채림은 민호를 바라보았다.
 제대로 들어간 공격에 몬스터가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호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자기가 놀랐다는 것을 알려서 헌터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었다.
 “계속합니다. 수시로 마나를 회복하는 걸 잊지 마세요.”
 민호는 그렇게 말하고 얼음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도끼를 휘둘러 얼음늑대에게 유효한 공격을 몇 번 명중시켰다.
 그러면서 민호 역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정확하게 맞았는데 튕겨버리는 것 같은 느낌. 실체에게는 전혀 공격이 닿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근도 효과 때문이라는 것을, 그곳에 있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던전의 주인인 얼음늑대는 평소보다 강해져 있었다. 던전에 근도가 들어온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얼음늑대 조차도 자기가 갑자기 강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민호는 다시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려 전열을 가다듬게 했다. 그러나 얼음늑대가 그동안 만나왔던 개체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은 헌터들은 쉽게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
 얼음늑대의 털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선 것은 그때였다.
 헌터들이 채 방어를 하지도 못한 사이, 얼음늑대의 털들이 창처럼 날아들었다.
 근도는 몸을 날려, 채림을 안고 나뒹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사람이 얼음늑대의 털을 피하지 못하고 허벅지와 팔, 심지어 가슴에까지 맞았다. 곧바로 게이트를 빠져나가 아이템으로 치료를 한다면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이 상당하겠지만, 하나뿐인 목숨과 바꾸는 것이기에 아깝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도는 민호를 바라보았다. 민호 역시 그들을 먼저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호는 부상자들에게 후퇴를 지시했다.
 부상자들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려고 하자 얼음늑대가 그것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얼음늑대는 자기가 착지하려고 생각했던 곳에 발을 대지도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근도가 어깨로 얼음늑대를 밀쳐낸 것이었다. 민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음늑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채림은 2서클 아티팩트 그래비티를 사용해 얼음늑대를 바닥에서 쉽게 도약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얼음늑대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했던 헌터들이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상황은 한치 앞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얼음늑대는 이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얼음늑대 역시 힘을 많이 쓴 상태였고 근도와 부딪친 뒤 바닥에 나뒹굴면서 체력이 꽤 많이 깎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남아있는 헌터들 중에 약체가 누군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린 뒤, 그들이 마나를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몸을 날리며 공격했다.
 근도는 그런 얼음늑대를 다시 한번 쳐냈다. 하지만 근도에게 당한 게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얼음늑대가 미리 주의하고 있었다.
 얼음늑대는 근도의 공격에 밀려난 뒤, 재빠르게 균형을 잡고 다시금 날아들었다.
 이대로라면 근도가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민호와 채림이 동시에 에어 쉴드 마법을 펼치려 했지만 얼음늑대의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두 사람이 근도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바로 그때, 근도를 공격하던 얼음늑대가 뭔가에 튕기듯 움찔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달려갔다가 그 앞에 있던 유리창에 부딪혀 버린 것처럼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민호는 그동안 근도의 저항력이 바닥이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근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력한 쉴드 마법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얼음늑대가 근도의 사각지대에서 공격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 펼쳐졌다.
 그러자 얼음늑대는 근도를 두려워하면서도, 근도를 완전히 끝내지 않는 한 자기가 던전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것을 눈치채고 집중적인 공격을 가했다.
 아무리 근도라고 하더라도 공격이 몰리자 지치고 흔들렸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지키느라고 마나를 상당히 잃은 근도의 얼굴에서는 땀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민호와 채림이 그의 옆에서 계속 어그로를 끌었지만 얼음늑대는 던전에 자기와 근도만 있는 것처럼 근도에게 집중했다.
 점점 힘겨워하는 근도를 보고, 민호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 후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2등급 게이트에 왜 저런 괴물이 나타난다는 것인가 생각하면서, 민호는 결단을 내렸다.
 “모두 후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얼음늑대가 날린 회심의 일격이 근도를 향했다.
 후퇴를 외친 민호는 근도를 구하러 달려갔고 얼음늑대의 이빨이 아슬아슬하게 근도의 옷에 닿은 그 순간, 근도의 몸은 민호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헌터들은 민호가 근도를 구한 것을 보고 먼저 게이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가자. 우리로는 안 돼. 변종인 것 같아.”
 근도를 일으키며 말하던 민호는 근도의 찢어진 옷자락 아래에서, 등에 새겨진 붉은 문신을 보았다.
 아니.
 처음에는 문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민호는 곧 그것이 봉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보통의 헌터가 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봉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5서클 이상의 헌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근도의 등에 걸쳐 커다란 눈동자 문양의 봉인이 있었고 그것에서 황금빛 기류가 일렁였다.
 민호는 그 모습에 놀랐지만 우선은 근도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가는 게 급했다.
 “가자. 서둘러!”
 민호가 말하자 근도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나가세요. 그리고 5분 안에 제가 안 나오면 그때는 저를 구하러 오세요.”
 “뭘 어쩌려고 그래, 이 미친 자식아!”
 민호가 말했지만 근도는 민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근도의 눈을 보면서 민호는 왠지 그의 말에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근도의 눈빛을 보면서 민호는 압도당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렸다.
 감히 자기가 그 말을 어기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좀 전에 근도의 등에서 보았던 눈동자 문양과 겹쳐지며 그 효과는 더욱 강력해졌다.
 민호는 뒷걸음질을 치다시피 하며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먼저 나온 채림은 근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게이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삼촌만 나온 거야? 그 사람은? 근도 씨는?”
 “우선 기다려 봐.”
 민호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으로 대답이 충분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민호가 나가자 던전에는 근도와 얼음늑대 둘 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 끝내면 되는 건가?”
 천천히 얼음늑대를 향해 일어선 근도가 말했다.
 아티팩트 메이커로서의 능력을 숨길 필요가 없어진 근도의 손에, 어느새 눈을 뜨고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을 것 같은 강렬한 화염이 일어났다.
 “태양의 흑염이다. 이걸 줄 테니 너는 네 심장을 주면 돼.”
 근도의 손에서 거세게 일어나던 불꽃은 끝을 모르는 채 계속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 열기로 주위의 지형지물이 녹아내리고 형태를 잃었다.
 근도를 노려보던 얼음늑대도 그 열기에 겁을 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근도의 손에서 만들어진 아티팩트의 열기로 근도의 머리카락이 흩날렸지만 근도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불길은, 자신의 주인인 근도만큼은 해치지 못하고 있었다.
 근도는 잠시 얼음늑대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달려들었고, 얼음늑대는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불덩이에 휩싸였다.
 타는 과정도 없이, 얼음늑대는 손바닥만 하게 녹아버리더니 자신의 심장과 아티팩트 하나만을 덩그러니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근도는 몬스터 하트를 집어 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몬스터 하트가 손바닥에 들러붙으면서 화상을 입었지만 상처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등에 있는 봉인이 일렁였지만 근도에게는 그것이 보일 리 없었다.
 근도는 얼음늑대가 남긴 아티팩트를 주웠다. 근도의 눈에 아티팩트의 효과가 나타났다.
 
 「디스오어더
 등급 : 1서클
 효과 : 서클과 무관하게 5등급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음.
 지속 : 1회 한정」
 
 처음 보는 이상한 아티팩트였다. 근도는 그저 난감했다.
 힘은 지지리 들었는데 헌터들 사이에, 인기가 무척 없을 것 같은 아티팩트가 나와 버렸고 얼음늑대의 사체는 다 녹아버렸다.
 사체를 팔아야 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아이템과 아티팩트만 잔뜩 쓰고 돈은 받지도 못하게 생긴 것이다.
 자기는 약속대로 몬스터 하트를 챙기겠지만 함께 레이드를 한 다른 사람들은 억울하겠다고 생각했다.
 아티팩트라도 좀 값나가는 것이 나왔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아티팩트를 도대체 어디에 써······?’
 그렇게 중얼거리던 근도의 눈이 빛났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티팩트의 무덤, 혈루로 향한 캐니언 길드를 놓치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지금 나한테 꼭 필요한 아티팩트다!’
 이 아티팩트야 말로 저항력이 오르지 않아 5등급 게이트에 못 들어갔던 근도에게 꼭 필요한 아티팩트였다.
 
 밖에서 숨을 졸이면서 기다리고 있던 민호와 헌터들은 근도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근도는 급히 가 볼 데가 있다면서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던전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비큐 통구이를 한 흔적을 제외하고는, 눈을 씻고 봐도 정말로 완벽하게 아무것도 없었다.
 민호는 아티팩트를 이용해 그 흔적에서 얼음늑대의 마나를 읽어냈다. 몇 분 전, 그곳에 있었던 생명체의 마나를 감지해 낼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민호는 그곳에 분명히 얼음늑대가 있었다는 것과 그것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근도한테는 빚을 진 게 아니겠군. 몬스터 하트는 근도가 챙겨간 것 같으니까.’
 민호는 눈두덩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왜 이런 변종이 나타난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
 
 캐니언 길드의 헌터들은 모두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긴 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슬그머니 웃음이 깃들었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곳에 들어올 때 다른 헌터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기들을 바라보았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우리가 가진 아티팩트들도 이곳에 유물처럼 남겨질 거라고 생각했겠지.’
 캐니언 길드의 길드 마스터 강성호는 비뚜름한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마나의 소모는 이제 거의 한계치에 다다랐다.
 팀원들은 돌아가면서 아이템을 사용해 마나를 회복시키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이 준비해온 아이템도 곧 동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승산은 있었다.
 남은 녀석은 세 마리.
 이제 무덤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녀석들도 끝을 보이고 있었다.
 캐니언 길드 모든 헌터가 가진 마나가 거의 고갈된 후였고, 상당수의 아이템과 아티팩트가 소진되거나 파괴되었지만 괜찮았다.
 그래도, 승리는 모든 것을 덮는다.
 이기면 되는 것이다.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강성호는 완벽한 승리라고 생각했다. 팀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집중하자고!”
 강성호의 말에 모두들 기분 좋게 대답했다.
 사실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남은 사냥은 힘이 들기는 했지만 시간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겨우 이 정도에 그렇게 많은 헌터들이 죽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고, 아티팩트가 훌륭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결론 내렸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로 레이드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거라고 자부할 만했다.
 레이드를 마무리 짓기 위해 헌터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을 때였다.
 쾅!!!!
 캐니언 길드의 헌터들은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기 시작한 벼락같은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그 소리에 놀라 눈앞의 몬스터들의 공격을 놓쳐 팀원 하나가 위험할 뻔한 순간이었다.
 헌터를 공격하던 몬스터의 몸이 허공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든 헌터의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드러났다.
 몬스터를 공격한 것은 헌터의 동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온몸에서 점액질을 흘리며 눈과 포악한 이빨만을 가진 채 몬스터를 뜯어 먹는 또 다른 몬스터였다.
 바로 5등급 게이트의 진정한 주인, 5등급 몬스터인 ‘어둠의 리커’였다.
 길드원들은 그제야 자기들이 지금까지 허상을 상대로 싸움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의 리커가 지나간 곳에는 녀석이 흘린 점액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 물질은 주변의 모든 것을 빠르게 부식시키기 시작했다. 모든 지형지물이 그것의 재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둠의 리커를 본 헌터들은 다리가 그곳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턱이 심하게 떨려, 이가 부서져 나갈 것 같았다.
 움직여야 한다,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머릿속에서 꿈틀대다가 사라졌다. 그나마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강성호였다.
 “후퇴해, 모두! 빠져나갈 수 있으면 빠져나가라!”
 강성호가 일갈하며 검을 휘둘렀다.
 4서클 아티팩트.
 파혈의 검.
 강성호는 일순간 마나를 불어넣고 검을 휘둘렀지만 어둠의 리커는 그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파혈의 검은 어둠의 리커를 갈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둠의 리커는 어떤 타격도 입지 않은 채 봉합되었고 4서클 아티팩트는 완전히 부식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붉은 녹의 형태만 남은 그것이 4서클 아티팩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는 헌터들뿐이었다.
 파혈의 검이 그대로 부식되는 모습은 헌터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일격만으로 4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를 죽이던 검이었다.
 그 검이, 손 쓸 겨를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헌터들은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본 것처럼 두려워했고, 남아있는 모든 힘을 도망치는 데 쓰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이트까지 가야 했지만, 그들이 몸을 돌리기를 기다렸다는 듯 어둠의 리커가 몸을 날렸다.
 어둠의 리커의 커다란 몸이 허공을 나는 동안, 녀석의 몸에서 예의 점액질이 떨어졌다.
 헌터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앙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쳤지만 몇 명은 몸뚱아리에 그것을 정통으로 맞았다.
 몸이 녹아 부서지기까지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졌다.
 어둠의 리커는 자신의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을 지금껏 단 한 사람도 살려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아티팩트의 무덤이라 불리는 그 던전이 지금까지 비밀에 묻혀있던 이유이기도 했고, 던전의 주인에 대해 헌터들이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게이트에 들어온 캐니언 길드의 헌터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다섯도 되지 않았다.
 강성호는 고개를 돌려 살아남은 동료들의 수를 헤아리려고 했다. 그러자 관심을 뺏기는 것이 싫다는 듯 어둠의 리커가 강성호를 향해 느리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강성호는, 조금 전에 자신의 눈에 들어왔던 비밀스런 한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눈앞의 몬스터 때문에 고개를 돌려 다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강성호의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온갖 보호장구로 몸을 무장한 사람들과 달리 최소한의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남자였다. 조금 전까지 길거리를 거닐다 온 것 같은 차림이었다.
 ‘말도 안 돼.’
 강성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헛된 망령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었다.
 강성호는 4서클 아티팩트 화룡의 숨을 꺼내 들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헌터들도 강성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화룡의 숨!”
 강성호가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순간, 그의 앞으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거대한 형체를 만들었다. 불로 이루어진 괴물 같은 그것은, 커다란 걸음을 어둠의 리커를 향해 천천히 옮겼다. 강성호는 제발 공격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둠의 리커는 불길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끔찍한 점액질을 흘리며 불을 가로질러 걸어 나왔다.
 어둠의 리커가 마지막 공격을 위해 도약하기 위해 바닥에 웅크린 순간, 헌터들은 자신들의 삶이 끝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크아아앙!”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헌터들은 몬스터가 갑작스럽게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비명과 함께 어둠의 리커는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허둥대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리고 강성호는, 자기가 보았던 사람이 환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성호 외의 다른 헌터들도 하나둘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남자가 입고 있던 검고 긴 코트 자락이 펄럭였다.
 그의 주위로 거대한 바람이 일어났다. 강력한 결계였다.
 ‘대단한 마법이다!’
 강성호는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못했다.
 어둠의 리커는 무슨 일인지 전혀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었고, 배를 걷어차인 짐승처럼 자꾸만 웅크리며 바닥에 붙으려 했다.
 저 남자가 지금 어둠의 리커를 공격하고 있는 것인가? 강성호는 설마 하면서도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어둠의 리커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면한 것 같은 얼굴을 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강성호가 알기로 그것은 마법 등급 5서클에 이른 사람 중에서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궁극의 마법, ‘죽음의 얼굴’이었다.
 설마 저 남자가 마법 등급 5서클에 이른 사람일 거라고는 믿기 힘들었지만 모든 상황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남자는 제 주위로 강한 결계를 드리운 채 거의 1분 정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헌터들이 강성호를 바라보았다.
 어둠의 리커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때가 자기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다 같이 공격을 하면 어둠의 리커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팀원 중 한 사람이 말하자 강성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남아있던 아티팩트를 꺼내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바닥에 웅크리고 괴로워하던 어둠의 리커의 몸에서 불쑥 커다란 주먹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손에 눈이 달려있기라도 한 것처럼 헌터들을 움켜쥐려고 했다.
 모두들 혼비백산해서 달아난 그 순간. 남자의 주위에서 결계가 사라졌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던 남자의 손에 아티팩트처럼 보이는 ‘넷건’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어둠의 리커에게 다가갔다.
 어둠의 리커는, 할 수만 있다면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헌터들을 공격하던 기세는 사라졌고 이제는 그저 달아날 곳만 찾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어둠의 리커에게 다가갈 때까지 어둠의 리커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남자가 넷건을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누르자 거대한 그물이 튀어나가 어둠의 리커를 덮쳤다.
 그물은 어둠의 리커를 조여 들어가며 몬스터의 몸에 있던 수분을 순식간에 흡수하는 듯했다.
 강성호와 헌터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숨도 쉬지 못했다.
 그물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물은 숨을 쉬는 것처럼, 탐욕스럽게 어둠의 리커를 휘감았다. 몬스터의 몸에서 수분이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둠의 리커는 곧 말라비틀어진 흙처럼 스르르 부서졌다. 어둠의 리커가 사라진 그곳에는 몬스터 하트와 아티팩트만 남았다.
 캐니언 길드의 헌터들은 자기들이 죽을 뻔한 목숨이었다는 것을 어느새 전부 잊은 채, 어둠의 리커가 남긴 아티팩트에 눈을 번득였다.
 “저, 저건 우리 겁니다. 마스터님!”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강성호에게 길드의 헌터들이 속삭였다.
 “우리의 희생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거의 다 한 거잖습니까. 저 사람이 모든 걸 가져가게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강성호는 남자가 몬스터 하트를 주워드는 것을 보았다.
 강성호도, 그리고 강성호를 부추기는 헌터들도 모르지는 않았다. 자기들은 그 남자의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진 것이고 자기들에게는 몬스터 하트나 아티팩트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아티팩트에 대한 갈망, 이 던전에 잠들고 있을 엄청난 수의 아티팩트들에 대한 갈망이 쉬이 꺼지질 않았다.
 어둠에 리커가 남긴 아티팩트와 지금까지 이 던전에 묻힌 아티팩트들이 가지는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것들을 가지고 나가기만 한다면 이까짓 레이드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었다.
 만약 레이드를 계속하고 싶다면 아티팩트가 주는 힘으로 더욱 강해져서 싸울 수도 있었다.
 한 번 상상하기 시작하자 상상의 전제가 되었던 조건을 물릴 수가 없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엄청난 이익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강성호의 가까이에 있던 헌터가 강성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녀석이 방심할 때 뒤치기를 하죠.”
 강성호는 그를 바라보았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아티팩트를 차지하느라 방심한 남자를 몰래 죽이자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시신과 유해 속에 한 사람의 시신이 더해진다고 해서 문제 삼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이곳에 있는 이들이 전부일 것이었다.
 이 안에 있는 아티팩트를 전부 수거해 가서 판다면 백 조, 아니, 천 조의 수익이 우스울 터였다.
 강성호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하나하나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강성호의 허락을 기다리며 그들은 검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윽고.
 강성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캐니언 길드의 헌터들은 몬스터의 사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서서히 포위했다.
 남자는 그들의 움직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긴장감을 보이지 않았다.
 남자를 완벽히 포위한 뒤, 강성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이런 일은 후환을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 게 낫지.”
 남자는 비스듬히 웃더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류의 인간들은 도대체 단 한 번도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군. 이번에도 나는 같은 실수를 저질렀군. 너희를 구해봐야 이렇게 갚을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됐다. 너희들을 탓해서 뭘 하겠어. 약해빠진 내 심성을 탓해야지.”
 남자가 아티팩트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미궁의 여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성호와 헌터들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그들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흐릿한 안개 너머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그들의 시선은 끝없이 먼 곳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제야 남자는 제 얼굴을 덮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보호장구와 무기는 없었지만 조금 전 민호와 함께 팀을 이루어 레이드를 했던 근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근도는 부식된 아티팩트 화룡의 숨을 보고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정말 먹고 싶었는데······. 아티팩트의 능력을 완전히 이끌어 내지도 못하는 녀석의 손에 들어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아쉽군.”
 미련을 버린 그가 고개를 돌려 어둠의 리커가 남긴 몬스터 하트를 바라봤다. 그것을 집어 들고 손 위에 올리자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인식되지 않았던 허기가 갑자기 근도를 사로잡았다.
 근도는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숨을 헐떡거렸고 배를 움켜쥐었다.
 ‘못 참겠다······.’
 근도는 그 자리에서 몬스터 하트를 먹어치웠다.
 단단한 보석 같던 몬스터 하트는 흐물흐물해지며 부드러운 고깃덩어리처럼 변했다. 그것을 입에 넣자 근도가 예상했던 대로 참기 힘든 고통이 뒤따랐다.
 온몸의 피부와 뼈가 전부 다 분열해서 다시 구성되는 것처럼, 살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뒤틀리다 부러지는 고통에 근도는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의 눈에서 피와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몸의 땀구멍에서도 피가 조금씩 솟아올랐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참는 것이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근도는 자기가 몬스터 하트의 흡수를 멈추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음에 이를 듯한 허기.
 그것을 막아주는 것이 오직 몬스터 하트를 섭취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근도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이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형벌 같은 허기를 잊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고통 정도야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이 마침내 멈췄다.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근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도가 먹은 몬스터 하트는 근도가 새로운 아티팩트를 만들 때 재료가 되어줄 것이었다.
 근도는 어둠의 리커가 남긴 아티팩트를 아공간에 넣은 뒤,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헌터들이 남긴 아티팩트를 찾아 모두 챙겼다.
 수확은 좋았다.
 헌터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게이트다웠다.
 헌터 아티팩트도 꽤 있었다. 그것들은 나중에 먹을 수도 있었다.
 근도는 아티팩트 회수를 끝내고 미궁의 여행 마법에 걸린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스스로의 탐욕으로 이른 결과에 애도를 해 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더라도 이들은 영원히 영혼의 방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게이트의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캐니언 길드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속마음이야 어찌 됐건 표면적으로는 모두가 캐니언 길드를 응원하고 있었다.
 근도는 모습을 감춘 채, 빠르게 던전을 빠져나갔다.
 아공간이 아티팩트로 꽤 풍성해졌지만 근도는 이게 마냥 기뻐할 일인가 싶었다. 아티팩트의 무덤을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일단 그곳을 봐 버리고 나니 너무 큰 바람이 생겨버렸다.
 거기는 뷔페였다.
 배고프지 않아도 먹어버리고 싶은 아티팩트들이 가득했다. 모두 한 번에 먹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은 자기가 얼마나 대견한지.
 근도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티팩트의 무덤은 우리나라에만 해도 아직 두 개가 더 있다.
 ‘바람의 산’과 ‘안개 나무’.
 우리나라에 있는 5등급 게이트는 모두 세 개였는데 그중 하나가 조금 전 근도에 의해서 공략된 것이다.
 자기가 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건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 아티팩트들을 전부 쓸어 담아와 버렸으니까 그것으로 충분했다.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가치를 가진 것들이고, 사실 돈으로 환산할 필요도 없다.
 다른 나라에 있는 아티팩트의 무덤에는 얼마나 많은 아티팩트가 묻혀 있을지 상상만 해도 심장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아티팩트 중에는 분명히, 몬스터 하트로 만들어진 헌터 아티팩트도 꽤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5등급 게이트에 입장한 것은 얼음늑대가 준 사기 아티팩트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건 단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마법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능력이 충분해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저항력을 높여야 돼.’
 
 ***
 
 근도가 저항력을 올리기 위해 서두르는 동안 남모르게 심쿵주의보에 빠진 이가 있었다.
 “삼촌. 삼촌도 봤지? 최근도 씨가 나 구하려고 몸 날리는 거 봤지? 내가 맞을까 봐 그때마다 달려와서 나를 막아서는 거 봤지? 어떡해. 삼촌. 나 이제 드디어 러브라인 생기나 봐. 어떡하지? 이런 거 처음이야. 아니, 나 좋다는 사람은 그동안 많았는데 내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건 처음이야.”
 채림의 수선스러운 말에 민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그 녀석이 저항력 올리려고 그런 거야, 라는 진실을 도저히 말해 줄 수 없었다.
 그 녀석은 지금껏 몬스터에게서 맞은 적이 없어서 저항력을 올릴 기회가 없었고, 그것 때문에 마법 등급이 1서클에 꽁꽁 묶여 있었는데 갑자기 마법 등급을 올리겠다고 설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몬스터한테 맞을 기회를 노리느라고 그런 것 같다고 말을 하면 채림이 마음이 찢어지겠지?
 민호는 사실대로 말해서 일찌감치 꿈에서 깨게 하는 게 좋은 건지 어쩐 건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민호는 채림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근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근도가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근도의 몸에서 튀어나와 근도의 몸을 보호하던 방어 마법의 실체에 대해서.
 그게 뭐였을지, 레이드가 끝난 후부터 계속 생각을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근도의 등에 새겨진 눈동자 문양의 정체에 대해서도 민호는 호기심을 느꼈다. 알고 지낸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근도는 사적으로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레이드하고 연관 없는 사적인 만남을 가진 적도 없었다.
 다른 헌터들하고는 일부러라도 자리를 만들어 가끔 만나왔는데 근도는 매번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민호는 채림을 힐끔 바라보았다.
 레이드가 끝나고부터 근도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녀석 정도 되면 어디 가서 외모로 빠지는 편은 아니니까 정식으로 소개를 시켜줄까? 둘이 만나는 자리에 같이 껴서 나도 근도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
 머릿속에 갑자기 든 생각이었는데 한번 떠올리고 보니까 기차게 좋은 생각인 것 같은 느낌이 마구 들었다. 민호는 당장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막 근도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던 그 순간, 근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고, 깜짝이야!”
 민호는 너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받았다.
 근도는 민호가 자기한테 왜 그러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더 급한 일이 있기에 소리를 지른 이유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형. 우리 좀 만날 수 있어요?]
 디짜고짜 근도가 말했다.
 “어? 만날 수는 있는데 왜?”
 자기도 근도에게 지금 만나자고 전화를 걸려던 중이었지만 근도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제안을 하니 이상하게 걱정이 됐다.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건지.
 혹시라도 근도 이 녀석이 얼음늑대를 상대하면서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레이드 실력이 월등하다는 걸 깨닫고 다른 팀을 찾아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저항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 컨설팅을 받고 마법 등급을 올릴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 건가?
 결국, 드디어, 마침내, 우리 팀을 버리려고 하는 걸까?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미리 챙겨줬어야 하는 거였어.
 “누구야? 최근도 씨? 만나자고 해? 삼촌. 나도 나도 나도.”
 채림이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미인계를 써? 얘를 데려가는 게 정말 미인계가 맞을까?
 민호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근도를 만나기로 했다.
 
 근도를 만난 곳은 놀이터였다.
 근도는 채림이 따라온 것을 보고 ‘저분은 여기에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 ‘미안, 나도 떼 놓을 수가 없었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둘의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채림은 근도에게 인사를 했다.
 “아까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몇 번이나 저 대신 막아주시고······.”
 “네?”
 괜찮습니다, 정도의 말을 예상했지, 내가 그랬나? 하는 표정으로 근도가 자신을 바라볼 줄은 몰랐지만, 채림은 모른 척하며 둘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근도는 민호하고 단둘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듯 민호에게 자꾸 눈치를 주었다.
 결국 가운데서 애매해진 민호가 잘 아는 헌터에게 연락을 해서 채림이 좀 불러내 달라고 톡을 보낸 후에야 근도와 민호는 둘만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얼음늑대는 어떻게 된 거고?”
 민호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말하셨어요?”
 “입단속은 시켜놨어.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하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2등급 게이트에 들어가서 제대로 공략을 못 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소문이 나면 그 사람들도 좋을 게 없으니까 아마 비밀 지킬 거야.”
 “네에······.”
 근도는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온 몬스터가 변종이라서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도 했어. 그건 맞는 말이잖아. 물론, 몬스터 사체가 없는 건 너무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거에 대해서는, 몬스터 몸에서 스스로 불이 붙어서 그렇게 된 걸 수도 있다고 했어. 가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고 했고.”
 “정말로 그래요?”
 근도가 놀라며 물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민호가 무책임하게 말했다.
 좀 더 그럴듯한 말을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때 둘러댈 만한 말은 그런 것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믿어요?”
 “믿을 수밖에 없잖아. 그럼 뭐라고 생각하는 게 쉽겠냐? 1서클인 네가 얼음늑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다른 사람들도 쩔쩔매고 후퇴했는데?”
 민호가 말하자 근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저항력이 전혀 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저 보셨죠? 저 맞았잖아요. 아니에요? 맞은 것 같은데 그래요.”
 근도가 억울해하면서 말했다.
 맞았는데 저항력이 늘지 않아서 억울하다는 투였다.
 “쉴드 마법은 네가 쓴 게 아니야?”
 민호가 묻자 근도가 민호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민호는 역시 근도가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레이드 도중에 봤던 것을 알려주었다.
 몬스터가 공격을 하려고 할 때마다 저절로 쉴드 마법이 펼쳐지면서 근도의 몸에 몬스터의 공격이 직접 닿지 않더라는 얘기를.
 근도는 민호가 하는 말을 듣고 눈이 동그래졌다.
 “네 등에 있는 거. 너도 모르는 거야? 모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민호가 묻자 근도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등에 아버지가 남긴 봉인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스스로 쉴드 마법을 펼친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다.
 근도는 아버지의 봉인이 자기에게 ‘아티팩트 메이커’라는 능력을 주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쉴드 마법이라니?
 근도는 셔츠를 올린 뒤 거울에 등을 비춰 보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눈동자 모양의 봉인.
 거기에 아버지의 모든 것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근도가 헌터 최시우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역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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