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생존왕.

1화

2019.02.27 조회 470 추천 1


 서장
 
 
 
 
 
 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사실 많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했다. 신전 내부는 발 디딜 틈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미처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렬이 신전 밖 저 멀리까지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채였다.
 
 수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에도, 신전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사뭇 엄숙한 분위기였다.
 
 어지러운 꽃향기가 주변을 물들였다.
 
 사람들이 가져온 국화꽃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조문객이었다.
 
 구석진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늙은 신관이 천천히 단상을 올랐다.
 
 “국왕 전하께서는 뭇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그가 서두를 뗐다.
 
 어머니는 소리 죽여 울고 계셨다.
 
 “나는 비록 신을 섬기는 몸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분의 뜻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군요.”
 
 조문객들의 한탄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신전은 금방이라도 울음바다가 될 것만 같았다. 낡은 오르간은 쓸쓸한 진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신관의 말이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국화꽃으로 채워진 관.
 
 그 속에 말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생생한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실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런 식의 희망을 붙들며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희망이 이루어질 일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절대로.
 
 그래, 그런 것쯤은 나도 잘 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셨던 전하께서 이리도 허무하게 세상을 뜨게 되실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니, 적어도 한 놈은 알고 있었을 거다.
 
 아버지의 독살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바로 그놈.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비릿한 액체가 입안을 적셨다.
 
 “······그럼, 돌아가신 국왕 전하를 위해 우리 모두 묵념합시다.”
 
 신관이 고개를 숙였다. 조문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눈을 찌푸렸다. 반짝이는 한 조각의 빛이 내 눈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수가 쇠뇌를 겨누고 있었다.
 
 나를 향해.
 
 내 눈을 찌른 빛살은 햇볕에 반사된 화살촉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
 
 나는 근위대장을 불렀다.
 
 아니, 부르려고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절박한 표정으로 붕어처럼 소리 없이 입을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화살촉이 순식간에 내 목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왕자 전하!”
 
 왕실 근위대장이 경악하며 달려왔다.
 
 끔찍한 고통이 엄습했다.
 
 뜨거운 피가 후두두 떨어져 바닥을 뜨겁게 적셨다.
 
 그것이 너무나도 선명한 나머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직감했다.
 
 지금 이 자리가 내 무덤이 되리라는 사실을.
 
 근위대장이 나를 흔들며 무어라 외쳤으나, 나로선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는 과정이 생생히 느껴졌다.
 
 ‘이렇게 죽을 수는······.’
 
 사신이 지하에서 내 발을 끌어당겼고, 나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착각이었을까?
 
 반지를 낀 손가락이 불에 덴 듯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1장. 회귀
 
 
 
 
 
 “······전하. 제 말 듣고 계신 거예요?”
 
 “앗!”
 
 손가락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의 무릎 위에 놓여 있던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좌르륵 흩어지는 소리가 났다.
 
 라그나는 번쩍 눈을 떴다.
 
 그의 호흡이 거칠었다. 악몽에서 막 깨어나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이다.
 
 바닥에는 글씨가 빽빽하게 적힌 서류들이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라그나는 제 검지를 바라보았다.
 
 일자로 그어진 손가락의 상처 위로 붉은 피가 새어 나오는 중이었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인 모양이었다.
 
 “전하?”
 
 곁에서 의아한 눈초리로 이쪽을 바라보는 근위대장 프레야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야는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라그나가 갑자기 숨을 몰아쉬며 혼란스러운 낯빛을 하자, 덩달아 조금 놀란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보다도 더 놀란 사람은, 당사자인 라그나 자신이었다.
 
 “전하, 손에서 피가······.”
 
 핏방울이 잔디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손수건을 꺼내 종이에 베인 그의 손가락을 감싸 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넋 나간 목소리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손가락의 상태 따위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곳은 신전이 아닌 아스타 왕궁의 정원이었다.
 
 그는 분명 죽었다.
 
 암살자의 화살에 의해.
 
 바닥에 낭자한 피, 눈물범벅인 얼굴로 목의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프레야의 얼굴. 유유히 사라지던 암살자의 뒷모습까지.
 
 모두 기억이 났다.
 
 그런데 느닷없이 왕궁 정원 벤치에 앉아 서류를 점검하고 있다.
 
 몽유병 환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의식을 잃은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 마치 백지처럼 하얗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가 벌떡 일어났다.
 
 “가만, 나 죽지 않은 건가?”
 
 프레야의 입장에서는 엉뚱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몇 번인가 눈동자를 껌뻑거리며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프레야.”
 
 “네, 전하.”
 
 “누가 날 치료한 거지? 아니, 그것보다 암살자는? 그놈은 잡았어?”
 
 라그나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조금 전까지 그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던 고통 역시 온데간데없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달 수밖에.
 
 좀 전까지만 해도, 목에 화살에 박혀 죽어가고 있던 신세였다.
 
 틀림없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정확히 급소를 맞았고, 치료를 바라기엔 이미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려 버린 뒤였다.
 
 게다가 의식이 흐려져 가는 걸 분명히 느꼈고, 그것이 단순히 정신을 잃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난생처음 겪는 느낌이었으나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것이 죽어가는 과정이구나, 라고.
 
 그 느낌에 대해서는 무어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무리다.
 
 그러니 정 알고 싶다면 직접 겪어 보라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겠다.
 
 아무튼, 그만큼 라그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확신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듯 멀쩡하게 살아남다니.
 
 궁중 의사들의 실력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빚진 의사들에게 두둑한 포상을 내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프레야는 그의 궁금증을 전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녀의 대답은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 암살자? 치료······ 라고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프레야, 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야.”
 
 라그나의 정색에, 프레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난칠 기분이 아니라고?
 
 ‘그건 오히려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요.’
 
 프레야는 울상을 지으며 생각했다.
 
 라그나의 반응에 난감해하던 그녀는 이윽고 용기를 내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
 
 프레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의 체온과 라그나의 것을 비교하는 중이었다.
 
 “이상하네요.”
 
 “뭐가?”
 
 “열이 없어서요.”
 
 “······.”
 
 라그나는 괴이쩍은 기분이 들었다.
 
 “난데없이 열은 왜 재는 건데?”
 
 “전 지금 전하께서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저 눈빛.
 
 도리어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너야말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던 도중 암살자에게 공격을 받았잖아.”
 
 라그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레야는 이런 시답잖은 장난을 칠 위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 일을 잊어버렸을 리가 없지. 게다가 화살에 목이 뚫린 날 붙들고 있던 사람은 프레야, 너였잖아?”
 
 그는 프레야를 다그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좀 전까지도 울상이었던 그녀가 돌연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전하! 어찌 그런 끔찍한 말을 입에 담으세요? 암살자의 화살에 목이 뚫리셨다니요! 농담이 지나치세요!”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라그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일이 그렇게 되자, 반대로 궁지에 몰린 건 그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라그나의 기세 역시 절로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공격받은 적이 없다고? 내가 지금껏 꿈을 꾼 건가?’
 
 하지만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선명했다.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화살이 목에 박혔을 때의 그 끔찍함이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경험이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숱한 꿈을 꿔왔지만, 이렇듯 고통마저 생생한 꿈은 생전 처음이었다.
 
 ‘아냐, 그게 꿈일 리가 없어.’
 
 화살을 맞은 목 언저리에서는 어떠한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농담이라니, 분명······.”
 
 무심코 목에 손을 가져다 댄 그는 속으로 기겁을 했다.
 
 ‘흉터가 없다?’
 
 목 전체를 더듬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흉터는커녕 긁힌 자국조차 없었다.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만이 손끝에 느껴질 뿐이었다.
 
 “······전하, 아무래도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프레야가 조심스레 소견을 꺼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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