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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맨 1-1권

2019.03.14 조회 563 추천 2


 제1장. 악몽
 
 
 
 
 
 
 칙칙함만이 존재하는 곳,
 깜깜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하지도 않았다.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은 메마른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 안개는 대기 속으로 녹아들어 칙칙한 기운으로 변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칙칙함만이 존재하는 곳을 거닐고 있는 쟈니는 잔뜩 긴장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쟈니 윤,
 한국명은 윤상민이며 초등학교 6학년 때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사에 스카우트되면서 어린나이에 이역만리 타국으로 이민 온 상태였다.
 쟈니의 아버지는 가족들이 영어에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 집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켰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어린 쟈니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세월이 흐르면서 영어에 익숙해졌고 그에 따라 쟈니는 물론이고 그의 어머니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강압적인 행동이 아내와 아들을 빨리 미국사회에 녹아들게 만든 셈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쟈니의 아버지는 하루에 2시간 이상은 모국어를 사용하라는 특명(?)을 내려 가족들이 모국어에 대한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악몽,
 정신을 갉아 먹는 괴물이다.
 한번 꾸는 것만으로도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악몽은 해악 그 자체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꾸기 시작한 악몽은 쟈니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무려 10년,
 쟈니가 악몽을 꾼 시간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강산이 바뀔 동안 비슷한 형태의 악몽을 꾸고 있는 중이었다. 계속되는 악몽으로 인해 공황장애와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결국 학교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이사가 된 쟈니의 아버지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뿐인 자식 쟈니가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쟈니의 집에서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늘도 쟈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꿈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몽환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도 백호 나타날 것이 분명해.’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깨어날 수 없는 현상,
 이 이상한 현상이 지속되다 보니 쟈니도 이젠 황당하고도 황당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쟈니의 꿈에 나타나는 백호,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백호가 아니었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가죽에 실선이 그어진 백호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때로는 백호 얼굴의 크기가 쟈니가 살고 있는 집보다 더 크게 나타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받는 공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왜 나타나지 않는 거야!’
 백호가 나타나야 악몽이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인데 오늘 따라 백호는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탓에 꿈속임에도 쟈니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칙칙함으로 가득했던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
 메마른 대지는 사라지고 없고 진하디 진한 칙칙함이 녹아나 있는 초원의 모습이 주는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게 짝이 없었다.
 “꿀꺽!”
 곧 백호가 나타날 것임을 안 쟈니가 마른침을 삼켰고 그 순간 천지사방에서 온 몸의 털이라는 털은 모두 곤두서게 만드는 백호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크르르르.”
 백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쟈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백호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에 있는 것이냐.”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백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런 현상이 주는 중압감이 쟈니를 공황상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나와, 나오란 말이야!”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쟈니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계속 으르렁거리기만 했다.
 “으아아아!”
 급기야 쟈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함은 괴성으로 바뀌었다. 그때 대지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쟈니, 쟈니!”
 “으으으, 으아아아!”
 몸부림치고 있는 쟈니의 얼굴은 온통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아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어머니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으아아아.”
 “쟈니!”
 번쩍!
 도리질 치던 쟈니의 눈이 떠졌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눈동자를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쟈니의 모습이 어머니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흐윽!”
 어머니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쟈니가 고통을 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진 채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젖은 종이와도 같았다.
 “어머니.”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쟈니가 얼굴에 가득한 땀을 훔쳐낸 뒤 오열하고 있는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저 악몽을 꾸었을 뿐이에요.”
 오히려 자신을 위로해주는 쟈니의 말이 어머니를 더욱 서럽게 만들었다.
 쟈니를 고칠 수만 있다면 쟈니가 악몽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든 재산을 털어서라도 해주고 싶었다. 아니 쟈니를 낫게만 할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줄 수 있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쟈니를 고통의 수렁에서 꺼내줄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몇 시죠?”
 쟈니의 질문에 어머니가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쟈니가 그 흔한 손목시계조차 차고 있지 않은 것은 혹시라도 쟈니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간절함 때문에 쟈니는 쇠붙이는 물론이고 휴대폰조차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10시가 다 되었구나.”
 눈물을 닦아낸 어머니가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공황장애에 우울증까지 겹친 쟈니가 잠드는 시간은 항상 늦은 새벽이었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시간도 늦다보니 자연히 아버지를 대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런 세월을 장장 10년 동안이나 지속하고 있음에도 쟈니는 심성이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이 그나마도 쟈니의 부모들에게는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침대에서 내려온 쟈니가 안경을 쓴 뒤 욕실로 달려갔다. 악몽에 시달리기 이전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악몽에 시달리다 보니 시력도 떨어져 마이너스 1.5옵티마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쟈니의 무거워진 머릿속을 조금은 맑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샤워기의 물줄기와 함께 지난밤의 악몽을 털어낸 쟈니는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쟈니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부유하게 살고 있음에도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겹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함에도 이따금씩 공황장애가 발작해 의자 밑으로 숨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웬만하면 도보로 이동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중요한 만남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버스를 타게 된 것이었다.
 버스에 비해 택시는 혼자라는 불안감이 더하고 발작을 일으킬 경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쟈니로서는 부득불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님이 과연 내 병을 알아낼 수 있을까?’
 쟈니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게 된 이유는 심리학자인 캐롤 제이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우연히 스티븐슨 박사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게 되었고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다가 고충을 털어 놓았고 자연스레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차가 이렇게 밀리다니 이러다가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겠네.’
 그때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섰고 곧이어 건장한 체구를 가진 우락부락한 인상의 흑인들 3명이 버스에 탔다.
 ‘어억!’
 험악한 인상의 흑인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맛본 쟈니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쉬기 시작했고 이내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 자식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쟈니의 행동을 본 한 흑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쟈니에게로 다가섰고 그 순간 쟈니가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뭐, 뭐야?”
 자칫 강도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 크게 당황한 흑인이 쟈니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이미 그 흑인은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도로 오인 받은 뒤였다.
 “이런 젠장, 마크, 내리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자 쟈니에게로 다가섰던 흑인이 소리를 지르며 버스기사에게 차를 멈출 것을 요구했고 사고가 커지는 것을 원치 않은 버스기사가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다.
 “빨리 내려!”
 똥이라도 밟은 듯 흑인들이 후다닥 버스에서 내렸고 곧 버스가 출발했다. 그제야 쟈니가 슬그머니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그렇지 않아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쟈니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스티븐슨 박사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었더라면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렸을 터였다.
 대화를 해보면 어쩌면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스티븐슨 박사의 희망적인 말이 아니었더라면 또 다시 현실에서 도피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가운데 마침내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에 도망치듯 버스에서 내린 쟈니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건물이로군.’
 휴대폰이라도 있었으면 전화라도 하련만 쟈니의 몸에는 휴대폰은 고사하고 쇠붙이 자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전화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선 쟈니가 엘리베이터 앞에 섰고 그때 또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며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이런 젠장, 침착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 숨을 깊이 들이키면 호흡곤란이 진정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쟈니가 복식호흡으로 호흡곤란을 진정시켰다. 이어 속으로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라는 말을 되뇌이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후우.”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켠 쟈니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10층 버튼을 눌렀다. 출입문이 닫히고 ‘지잉’하는 기계음이 또 다시 불안감을 건드렸지만 쟈니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엘리베이터가 10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사방이 막힌 곳에 혼자 덩그러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쟈니에게는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지잉.
 잔뜩 긴장해 있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울린 기계음에 깜짝 놀란 쟈니가 재빨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저곳이로군.’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을 발견한 쟈니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이어 길게 심호흡한 뒤 가만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가 쟈니에게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분명히 50대 중반이라고 했는데 비서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린 쟈니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담한 사무실 한켠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있는 중년여자가 일손을 놓고 일어나 웃는 얼굴로 쟈니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혹시 만나기로 약속했던 쟈니가 아닌가요?”
 ‘이 여자가 스티븐슨 박사인 모양인데 외모와 목소리는 전혀 딴판이로군.’
 스티븐슨 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금 전 들었던 청아한 목소리가 쟈니를 어색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갈색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넉넉한 풍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외모에서 아리따운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맞습니다, 쟈니윤이라고 합니다.”
 쟈니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자리를 옮겨 앉은 스티븐슨 박사가 쟈니에게 자리를 권했다.
 “요즘 컨디션이 어떤가요?”
 쟈니가 자리에 앉자 스티븐슨 박사가 넌지시 물으며 쟈니의 표정변화를 살폈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상태로군. 그것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단지 한번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스티븐슨 박사는 쟈니가 어떤 상태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메일로 말씀드렸다시피 지금도 계속 악몽을 꾸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공황장애와 우울증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쟈니의 대답을 들은 스티븐슨 박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표정에서 읽은 것이 맞는다면 목소리가 떨리는 등 불안해해 하는 모습을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쟈니의 목소리는 정상인에 가까웠다. 그런 점이 스티븐슨 박사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으나 스티븐슨 박사는 내색하지 않고 쟈니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쟈니의 경우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계속되는 악몽으로 인해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악몽을 꾼 계기가 있나요?”
 쟈니 그 자신도 왜 악몽을 꾸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스티븐슨 박사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스티븐슨 박사가 질문의 내용을 바꾸었다.
 “초등학교 때 이민을 왔다고 했죠?”
 “네 맞습니다.”
 “이민을 올 당시 대한민국에서 어떤 사고가 나지 않았나요. 이를 테면 친구와 심하게 다투었다든지······.”
 쟈니가 기억하는 한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친구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다툰 적이 없었다.
 단지 정들었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이별의 아쉬움 때문에 교실이 울음바다가 된 일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악몽을 꾸게 된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혹시 최면요법을 받아본 적은 있나요?”
 “두어 번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습니다.”
 쟈니의 대답을 들은 스티븐슨 박사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면요법이 효과가 없었다면 쟈니를 치료한 사람의 능력이 떨어지거나 쟈니의 병이 심리적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스티븐슨 박사는 심리학자이면서도 최면요법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런 탓에 최면요법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살을 붙이며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스티븐슨 박사 그 자신이 직접 최면요법으로 쟈니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러나 쟈니가 최면요법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는 터라 쉽게 말을 꺼내질 못했다.
 “제게 최면요법을 시도했던 분들이 하는 말로는 제가 최면술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스티븐슨 박사의 눈에 이채를 번뜩이게 만들었다. 최면요법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환자의 마음가짐이 상당히 중요했다.
 환자가 시술자의 말에 따르지 않는다거나 혹은 최면요법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 최면요법은 효과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관점에도 본다면 최면치료 방법에 문제가 있을 수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쟈니, 최면요법을 받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나요?”
 스티븐슨 박사의 말을 듣고 잠시 기억을 더듬던 쟈니가 최면요법을 받던 상황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스티븐슨 박사는 쟈니의 표정변화를 유심히 살폈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달리 쟈니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오면서 표정으로 혹은 말을 통해 상대의 심리상태를 파악해 온 스티븐슨 박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암흑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박사님?”
 말을 마친 쟈니가 스티븐슨 박사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넌지시 불렀고 이에 상념에서 깨어난 스티븐슨 박사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쟈니와 대화를 나누어 보니 으음··· 뭐랄까? 조금은 더 자주 만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제 병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것입니까.”
 “악몽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확답을 주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고 있는 공황장애라든지 우울증에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사실 쟈니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공황장애에서 오는 호흡곤란과 하루 종일 무거운 머리 그리고 답답증과 불안감이었다. 그런 증상들만 완화될 수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았다.
 “일단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약과 더불어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줄게요. 그 이전에 몇 가지 테스트를 해야 해요.”
 쟈니가 겪고 있는 신체적인 고통은 정신계통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스티븐슨 박사의 말을 듣는 순간 쟈니는 산이라도 짊어진 듯 무거웠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머, 머리가 마, 맑아졌다.’
 ‘내 말이 쟈니에서 도움이 된 모양이군.’
 빙그레 미소를 지은 스티븐슨 박사가 쟈니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핸드백 등을 주섬주섬 챙겼다. 이어 쟈니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스티븐슨 박사가 쟈니를 데리고 간 곳은 정신과의료원이었다. 스티븐슨 박사가 일주일에 2번씩 진료하는 병원으로 규모에 비해 설비는 최신형으로 갖추고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님께서 어쩐 일이세요?”
 지나는 사람들마다 똑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스티븐슨 박사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 캐롤, 오늘 진료를 보는 날이 아니잖아.”
 스티븐슨 박사와 마주친 잭 우드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그는 스티븐슨 박사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토론하고 함께 연구하는 동료이면서 고충을 들어주는 남자친구였다. 남자가 그리울 때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쟈니, 인사해요. 정신과 전문의인 잭이에요.”
 스티븐슨 박사가 잭을 소개해 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쟈니라고 합니다.”
 “반갑소.”
 쟈니가 내미는 손을 맞잡은 잭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남자라는 존재는 소유욕이 강한 동물이었다. 비록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잭은 스티븐슨 박사를 자신의 여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누군가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면 그 사람은 환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점을 모를 잭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젊은 쟈니를 보는 잭의 눈초리는 곱지 않았다.
 ‘성격이 거친 남자인 것 같군.’
 “잭, 오늘 저녁 시간 어때?”
 그 한 마디가 쟈니를 쳐다보는 잭의 눈초리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오늘 약속 없어.”
 잭의 대답을 들은 스티븐슨 박사의 입가에 야릇한 분위기의 미소가 피어났다. 이어 잭에게 눈인사를 보낸 뒤 쟈니를 스트레스 측정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런 검사 여러 번 해보았죠?”
 “네.”
 쟈니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러 번이 아니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스트레스 측정기가 작동되는 동안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잉!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기계가 작동되면서 스스로 그래프를 그려나가는 동안 쟈니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머릿속에 하나의 원을 그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심리테스트까지 모두 끝나고 쟈니와 스티븐슨 박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예상은 했지만 쟈니의 몸 상태가 최악이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쟈니의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는 다시 무거워졌고 불안감이 증폭되어갔다.
 “그렇다고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쟈니가 매일 꾸는 악몽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에 치료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것이에요.”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악화되던 쟈니의 몸에 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갔다. 마치 칭얼대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스티븐슨 박사는 듣기 좋은 말만 하면서 쟈니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쟈니에게 2가지 약을 줄 거예요.”
 다른 병원에서도 2종류의 약을 주었기 때문에 스티븐슨 박사도 2종류의 약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쟈니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한 가지는 쟈니가 복용하고 있는 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아주 힘들 때 먹는 약은 좀 다를 것이에요.”
 말을 마친 스티븐슨 박사가 명함을 꺼내 쟈니에게 건네주었다.
 “언제라도 좋으니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어떤 변화가 생기면 전화해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쟈니가 지갑을 꺼내 명함을 갈무리했다. 이에 스티븐슨 박사가 처방전을 작성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약을 타러 가 볼까요.”
 의사가 직접 약까지 타서 손에 쥐어주는 법은 없었다. 그런데 스티븐슨 박사는 달랐다. 물론 진료하지 않은 날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쟈니에게 믿음감을 심어주었다.
 
 ***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쟈니는 식은땀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늘로 가득했던 표정에 생기가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은 지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호흡곤란과 머리가 무거운 증상이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특히 아주 힘들 때 먹으라는 약은 효과가 아주 좋아 일시적이나마 정상인에 가깝게 만들어주어 스티븐슨 박사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었다.
 약을 복용하면서도 쟈니는 전화로 또는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스티븐슨 박사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아아아.”
 얼굴에 가득한 식은땀을 닦아낸 쟈니가 길게 기지개를 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똑똑똑!
 “쟈니, 일어났니?”
 “네 어머니, 금방 내려갈게요.”
 길게 심호흡한 쟈니가 안경을 쓴 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이어 거울을 보고 씨익 웃어보였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
 아직 흉통은 있었지만 오늘의 컨디션은 근래 들어 최고였다. 지금 같은 몸 상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참, 오늘 아버지가 쉬는 날이었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쟈니의 아버지에게 일요일 즉 휴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이사가 된 뒤에도 1개월에 딱 하루만 쉬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쿠쿠쿠, 내 몸 상태가 좋아진 사실을 아버지께서도 아실까?”
 그런 즐거움을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간 쟈니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혹시 잔디에 물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밖을 내다보았다.
 “어? 아버지가 어디를 가신 거지?”
 그때 인기척을 듣고 주방에서 나온 어머니의 목소리가 쟈니의 귓전을 때렸다.
 “아버지 급한 전화 받고 나가셨다.”
 “급한 전화요?”
 “잘은 모르겠지만 통화를 하는 것을 들으니 회사에 긴급 상황이 발생한 모양이구나.”
 록히드마틴사는 야심작인 F-35스텔스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터라 개발이 늦어지는 관계로 개발에 참여했던 국가들이 속속 계약을 취소하거나 물량을 줄이고 있는 터라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대한민국이 차세대전투기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하이급 전투기 60대를 구매하려고 하고 있는데 무려 8조3천억원이나 투입되는 막대한 사업이었다.
 계속되는 개발 지연으로 인해 F-35스텔스전투기에 대한 신뢰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전투기사업은 록히드마틴사의 미래가 걸린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원한 맞수인 보잉사의 F-15SE과 EADS(유렵항공방위우주산업)의 유로파이터타이푼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경쟁사에 비해 그다지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다.
 유리한 점이 있다면 대한민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전투기가 있다는 경험과 한미동맹이라는 측면 있을 뿐이지 경쟁기종에 비해 유리한 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쩝!”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쟈니가 입맛을 다셨다.
 “밥 차려 놓았으니 어서 오너라.”
 “네.”
 처진 목소리로 대답한 쟈니가 어머니를 따라 식탁이 차려진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낯익은 냄새고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와아~ 냄새 죽이네요.”
 쟈니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는 냄새의 정체는 김치찌개였다. 부전자전이 아니랄까봐 쟈니와 그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잘 익은 김치와 듬성듬성 썰은 돼지고기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김치찌개였다.
 “네 아버지는 정성들여 끓여 놓으니까 회사일 때문에 드시지도 못하고 나가셨다.”
 “저러~언!”
 컨디션이 좋으니 목소리와 행동도 유쾌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0년이라는 세월을 아들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던 어머니는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눈물을 반짝였다.
 ‘이런 지금 내가 무슨 주책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
 혹시라도 쟈니가 볼까 두려운 어머니는 재빨리 몸을 돌려 설거지를 하는 척 했다. 그런 어머니의 행동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쟈니는 게걸스럽게 음식들을 흡입하고 있었다.
 “꺼~억!”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뚝딱 비운 쟈니가 볼록해진 배를 매만지며 길게 트림했다.
 “어머니, 자~알 먹었습니다.”
 쟈니가 의자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고 그 순간 어머니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머니?”
 “아, 아니다. 오늘 김치찌개에 고춧가루가 좀 많이 들어간 모양이구나.”
 소매로 눈물을 훔쳐낸 어머니가 고개를 돌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제야 눈물의 의미를 알아차린 쟈니는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 곧 건강을 되찾을 터이니 제 걱정은 이제 그만하세요.”
 “그만 올라가려무나.”
 쟈니를 안고 등을 다독여준 어머니가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고 이에 쟈니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휴우!”
 길게 심호흡한 쟈니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 컴퓨터가 부팅이 될 때까지 책상을 정리한 뒤에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과연 어떤 소식들이 올라와 있을까.”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쟈니가 검색창을 열고 자신이 가입한 다음카페에 들어갔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지 10년이 지났건만 쟈니는 여전히 이민을 떠나기 이전에 가입했던 다음카페들을 애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응? 이건 뭐지?”
 쟈니의 눈길을 끈 것은 꿈을 지배하는 악마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황당하게 여길 수도 있는 글이었지만 10년 동안 매일 똑 같은 악몽을 꾸고 있는 쟈니의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제목이었다.
 “일단 확인은 해보자.”
 누군가 지어낸 말일 가능성이 높은 글이었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자신과 관련이 있는 글이라면 일단 확인하고 보는 것이 이젠 아예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어디보자······.”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제목의 게시글을 연 쟈니가 내용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런데 제목은 그럴싸했지만 내용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꿈을 지배하는 서큐버스라는 마족이 있는데 악몽을 꾸는 이유가 서큐버스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게시글을 열었던 쟈니가 실소를 터트리며 게시글을 닫으려 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한 문장이 쟈니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지속되는 악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지만 10년 동안이나 비슷한 형태의 악몽을 꾸게 된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쟈니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1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나간 기억들은 쟈니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악몽을 꾸게 된 계기나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악몽에 관한 정보를 샅샅이 뒤져보자.”
 지난 10년 동안 쟈니는 정보의 바다를 누비고 다니며 악몽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애를 쓴 만큼의 보람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판타지성 게시글은 아예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쟈니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악몽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는 글에 영향을 받은 터라 악몽과 관계된 게시글은 모두 열어 확인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임스 빌로우라는 신부가 기재한 게시글이 쟈니의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빌로우 신부님의 글과 아까 허무맹랑하게 여겼던 글과 공통점이 있다.”
 쟈니의 숨을 막히게 한 것이 바로 서큐버스라는 마족을 언급했던 글과 공통점이 있는 부분이었다.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어떤 영혼’이라는 단어만 달랐지 나머지 부분은 거의 똑 같았다.
 ‘드디어··· 드디어 악몽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흥분에 휩싸인 쟈니가 검색창에 제임스 빌로우 신부라는 글을 쓴 뒤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제임스 빌로우 신부의 신상명세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검색어 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어?”
 공교롭게도 제임스 빌로우 신부가 소속되어 있는 성당은 쟈니의 집에서 불과 3시간 정도의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좋았어, 밑져야 본전이니 빌로우 신부님을 한번 찾아가보자.”
 제임스 빌로우 신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 쟈니가 제임스 빌로우 신부가 속해 있는 성당의 주소를 종이에 적어 주머니에 갈무리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쟈니로서는 몸 상태가 호전되기 이전이었다 하더라도 제임스 빌로우 신부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된 상태라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임스 빌로우 신부에게서도 악몽을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정보의 바다 속에는 무궁무진한 정보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제2장. 의문의 죽음들
 
 
 
 
 
 
 어머니에게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한 쟈니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렸을 적부터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던 탓에 운전을 배우지 못한 터라 도보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승용차를 이용할 수는 있었다.
 집이 부자이기 때문에 집에 놀고 있는 고급 승용차가 3대나 되었다. 친구에게 부탁하거나 아버지에게 운전기사를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만 쟈니는 혼자의 힘으로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쟈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쟈니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중학교 동창인 캐롤라인이었는데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기도 했다.
 아담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얼굴도 귀엽게 생겨 쟈니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성을 사귀어 보지 못한 쟈니는 캐롤라인에게 데이트 신청은커녕 말조차 제대로 꺼내질 못하고 있었다.
 “좋아 보이는데? 이젠 악몽에서 벗어난 거야?”
 어렸을 때부터 줄곧 쟈니의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터라 캐롤라인도 쟈니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아직······.”
 캐롤라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쟈니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구나. 그런데 어디 가는 중?”
 “그, 그냥.”
 제임스 빌로우 신부를 만나러 간다고 대답해도 되련만 쟈니는 얼버무리는 말로 대답했다. 그때 버스가 도착했고 쟈니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캐롤라인이 버스에 탔다.
 부우웅!
 캐롤라인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쟈니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녀석!’
 캐롤라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순간이 너무나도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사라져 버린 뒤라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또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기회가 되면 그때는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한 순간 쟈니가 기다리고 있는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캐롤라인의 일은 나중 일이고 지금은 빌로우 신부님을 만나는 일에 집중하자.”
 길게 심호흡한 쟈니가 버스에 올라탔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탄 사람은 쟈니를 포함해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쟈니를 제외하고는 버스에 탄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다. 공교롭게도 버스기사까지도 여자였는데 그런 탓인지 쟈니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좋게 생각하자.’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기 이전이었더라면 여자들이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온갖 잡생각을 다 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색한 마음만 있을 뿐 불안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우웅!
 쟈니를 태운 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제임스 빌로우 신부가 속해 있는 성당에 도착하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릴 터이기에 쟈니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단전까지 숨을 코로 천천히 들이켰다가 입을 통해 가늘게 내뿜는 복식호흡은 시작하고 처음 5분 정도는 상당히 힘들지만 이내 인체가 복식호흡에 익숙해지는 순간부터는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쟈니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잡념도 사라졌다. 그러면서 호흡도 길어져 분당 3~4번 정도만 호흡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쟈니는 선뜻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성당에서 낯익은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제임스 빌로우 신부님이다.”
 낯익은 얼굴,
 사진으로 본 것이지만 그 얼굴은 분명 인터넷에서 보았던 제임스 빌로우 신부의 사진과 똑 같았다.
 ‘올해 56살이라고 했는데 실물은 훨씬 젊네.’
 누가 보더라도 빌로우 신부는 40 중반으로 보일만큼 젊어 보였다.
 “신부님!”
 누군가를 기다리던 빌로우 신부가 쟈니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제임스 빌로우 신부님이 맞으시죠?”
 “그렇습니다만······.”
 “카페에서 신부님께서 올리신 게시글을 보았습니다.”
 물론 누군가 빌로우 신부가 올린 게시글을 번역해 올린 것이었다. 그런 탓에 카페에 올린 게시글이라는 말에 제임스 빌로우 신부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카페를 말씀하시는지······.”
 ‘이런 바보 같은······.’
 뒤늦게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쟈니가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제야 쟈니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게 된 빌로우 신부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게시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어쩌지요? 내가 지금 볼 일이 있어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군요.”
 빌로우 신부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스티븐슨 박사의 경우처럼 이메일 등으로 먼저 의견을 주고받으며 약속을 잡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였다.
 빌로우 신부의 게시글을 보고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상대의 스케줄을 파악하지 않고 달려온 것 자체가 쟈니의 실수였다.
 “그럼 언제쯤 신부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글쎄요. 요즘 바쁜 일이 있어서 언제 시간이 날지 확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웃는 얼굴로 하는 대답 속에서 귀찮다는 듯한 느낌이 역력했다. 빌로우 신부가 아니더라도 생면부지인 사람이 불쑥 찾아와 대화를 요청하는 이 상황을 흔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만······.”
 가볍게 묵례한 빌로우 신부가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쟈니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신부님께서 올리신 게시글과 관련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
 발걸음을 떼려던 빌로우 신부가 의아한 표정으로 쟈니를 쳐다보았다.
 “제가 매일 비슷한 형태의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10년 동안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말입니다.”
 “잠시만··· 잠시만······.”
 손을 들어 쟈니를 제지한 빌로우 신부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어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가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통화를 끝냈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겠군.”
 독백을 하듯 중얼거린 빌로우 신부가 쟈니에게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한 뒤 발걸음을 떼었다. 이에 길게 심호흡한 쟈니가 잰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빌로우 신부를 뒤쫓았다.
 잠시 후,
 쟈니와 빌로우 신부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무작정 빌로우 신부를 찾아온 쟈니도 엉뚱하지만 언젠가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보고 찾아온 생면부지의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빌로우 신부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쟈니라고 했나? 자네가 말한 꿈에 대해 말해보게.”
 사람이 악몽을 자주 꾸는 것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빌로우 신부도 똑 같은 꿈을 매일 꾼다는 말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생면부지의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제가 중학생이 된 뒤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서두를 연 쟈니는 매일 꾸는 악몽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그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빌로우 신부의 표정은 쉼 없는 변화를 보였다.
 ‘실제로 어떤 영혼의 간섭을 겪는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빌로우 신부는 쟈니가 겪고 있는 현상을 어떤 영혼의 간섭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실제로 그는 종교인이 아닌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도의 입장으로도 영혼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신부님의 게시글을 보는 순간 저는 신부님이라면 제가 겪고 있는······.”
 쟈니가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에 상념에 빠져 있는 빌로우 신부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아 실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신부님?”
 빌로우 신부의 반응을 기다리던 쟈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고 그제야 상념에서 깨어난 빌로우 신부가 멋쩍은 얼굴로 사과했다.
 “미안하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자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만······.”
 빌로우 신부는 쟈니가 겪고 있는 현상이 어쩌면 어떤 영혼과의 간섭을 넘어 악령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를 설명해줄 수 없는 터라 빌로우 신부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좋지 않은 상황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호흡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빌로우 신부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삼킨 쟈니가 복식호흡으로 심신을 달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로군. 아마도 악몽 때문에 얻은 병일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쟈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빌로우 신부는 딱한 마음이 들었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딱히 도울 방법이 없는 터라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어떤 말을 들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쟈니의 일생이 걸린 일이다. 따라서 나 개인적인 확신만 가지고 대답할 성질이 아니다.’
 쟈니의 몸 상태를 나쁘다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쟈니가 받을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기에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탓에 빌로우 신부는 대답 대신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교수님, 제 일생이 걸린 일입니다.”
 “나도 그것을 알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네.”
 “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입니까.”
 쟈니가 간신히 진정시켰던 호흡이 또 다시 거칠어지는 것을 꾹 눌러 참으며 물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해결책도 있을 것일세. 그러니 일단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게.”
 해결책이 있다는 말을 듣자 거칠어진 호흡이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 짧은 순간에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인체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기 짝이 없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게. 그때 자네의 말을 듣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말해주겠네.”
 결국 빌로우 신부는 대답을 일주일 이후로 미루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쟈니로서도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지난 일주일 동안 빌로우 신부는 쟈니가 겪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빌로우 신부가 얻은 것은 교황청에 문의를 해보라는 조언만 들었을 뿐이었다.
 ‘정말로 교황청에 문의하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인터넷을 검색하던 빌로우 신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해답을 찾으려 노력을 기울여 보았지만 쟈니가 겪고 있는 현상이 워낙 특이하기 때문에 해답은커녕 머리만 더 지끈거렸다.
 “휴우!”
 해답을 찾지 못한 빌로우 신부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교황청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교황청에 문의하기 전에 대주교님과 상의를 해야 하는데······.’
 쟈니가 겪고 있는 현상은 악령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빌로우 신부 그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성당의 대주교와 상의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교황청에 문의했다가 자칫 쟈니가 악마의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기 때문에 빌로우 신부로서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쟈니의 상태로 보아 교황청에 문의하는 것이 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교황청에 문의를 하는 것을 차선책으로 돌린 빌로우 신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두툼한 성경책을 가지고 되돌아와 앉았다.
 “어쩌면 이 성경 안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
 내일이 쟈니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그런 탓에 두툼한 성경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기억과 감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기도문을 외운 빌로우 신부가 길게 심호흡한 뒤 성경책을 열었다. 이어 악마 혹은 그와 관계가 있는 부분을 찾아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한편,
 악몽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몸 상태가 나날이 호전되어가고 있는 쟈니는 특유의 유쾌한 성격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어.’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기 이전이었더라면 지금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했을 터였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도 쟈니는 심적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난 뒤부터 몸 상태가 호전된 터라 언제부터인가 쟈니는 스티븐슨 박사가 자그마치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악몽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
 “전화를 해볼까?”
 지금 쟈니의 주머니 속에는 휴대폰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오랫동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터라 휴대폰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몸 상태가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선뜻 휴대폰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스티븐슨 박사님 사무실에 도착한 뒤에 전화를 하자.”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꺼낸 쟈니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복식호흡에 들어갔다. 이제는 숙련이 된 터라 버스가 덜컹거림에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X퉁수는 불어도 시간은 가는 법,
 유수처럼 흐르는 시간은 어느새 쟈니를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부우웅!
 쟈니를 토해낸 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이에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며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쟈니가 결국 휴대폰을 꺼내지 못하고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휴대폰 사용은 스티븐슨 박사와 상의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 서두르지 말자.’
 쟈니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어 서자 ‘지잉’하는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출입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몸 상태가 호전되기 이전이었더라면 괜한 불안감에 시달렸을 쟈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스티븐슨 박사님께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가 되는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쟈니는 부푼 마음을 안고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 앞에 선 쟈니가 크게 심호흡한 뒤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문 안쪽에서부터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기분에 좋게 만드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덜컹!
 쟈니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신문을 읽고 있던 스티븐슨 박사가 환하게 웃으며 쟈니를 맞아주었다. 이어 소파로 옮겨 앉은 뒤 쟈니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난 뒤 몸 상태가 호전된 터라 쟈니는 스티븐슨 박사와 마주하고 있으면 더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좋아 보이는데?”
 치료하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이메일을 통해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터라 두 사람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 친구처럼 가까워진 사이였다. 그런 탓에 스티븐슨 박사의 하대에도 쟈니는 듣기 거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쟈니가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대답했다. 이어 그는 장족의 발전을 한 복식호흡에 대해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이제 복식호흡도 경지에 도달한 듯 해요.”
 “오호, 그래?”
 “네 분당 2번 정도 하거든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쟈니는 45~50초마다 호흡을 1번씩 하고 있었다. 복식호흡을 시작할 당시 분당 4번 정도 호흡을 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쟈니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일반인들 대부분은 분당 4번 정도 호흡을 하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데 수십 분 간 지속적으로 분당 4번씩 호흡을 하는 것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쟈니가 45~50초마다 1번씩 호흡을 하기까지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그렇게 힘들고 답답할 때마다 복식호흡으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는 점을 떠올리면서 참고 또 참았기 때문에 지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악몽은 여전하지?”
 스티븐슨 박사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어쩐지 박사님께서 치료해주실 것 같습니다.”
 “호호호, 호호호호!”
 쟈니의 말에 스티븐슨 박사가 교소를 터트렸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뭐랄까? 쟈니가 겪고 있는 악몽에 대한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티븐슨 박사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러나 스티븐슨 박사가 지금 당장 악몽을 치료해줄 것이라 여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쟈니는 도리어 스티븐슨 박사를 위로해주었다.
 “박사님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저에게는 행운이었어요. 덕분에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몸 상태가 좋아졌잖아요.”
 “쟈니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 같네. 그건 그렇고 오늘 스트레스지수를 체크하는 날이지?”
 “다음 주인데요?”
 쟈니의 대답을 들은 스티븐슨 박사가 스마트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이어 중지로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며 ‘바보 같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아직 치매가 걸릴 나이는 아닌데 요즘 왜 그런지 모르겠네.”
 스티븐슨 박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스갯소리와 곧바로 이어진 넉넉한 미소가 쟈니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하하하, 박사님도 참!”
 “그럼 우리 오늘 왜 만나기로 한 거지?”
 스티븐슨 박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어 스마트폰을 켜고 일정을 다시 확인하려할 때 쟈니가 먼저 대답했다.
 “악몽은 아니지만 비슷한 형태의 꿈을 꾼 사례가 있다고 했잖아요.”
 “아 맞다! 정말로 치매가 오나?”
 이번에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쿡 찌른 스티븐슨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놓인 누렇게 바랜 신문을 들고 되돌아와 앉았다.
 “어렵사리 구한 신문인데 한 번 읽어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스티븐슨 박사의 말을 듣고 신문의 발행일을 확인한 쟈니가 고개를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한한 것은 그 신문의 발행 연도가 쟈니가 악몽을 꾸기 시작했던 시기와 비슷해.”
 “어?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러네요.”
 다시 한 번 신문의 발행일을 확인한 쟈니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기사의 내용을 확인했다. 의당 이런 상황이라면 공황상태가 올 뻔도 한데 스티븐슨 박사와 함께 있어서 그런지 몸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천사가 되는 꿈이라······.’
 신문의 내용인 즉,
 기사에 난 주인공은 자신이 천사가 되거나 이미 천사가 된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주는 꿈을 1백 번을 넘게 꾸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쟈니가 겪고 있는 악몽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쟈니처럼 비슷한 형태의 꿈을 지속적으로 꾸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희한하네요.”
 “그렇지?”
 되묻는 스티븐슨 박사의 표정이 아주 묘했다.
 뭐랄까?
 딱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스티븐슨 박사의 표정에는 많은 의미가 녹아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했던 스티븐슨 박사도 쟈니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쟈니를 돕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의외로 쟈니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스티븐슨 박사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7대 불가사의니 뭐니 하면서 경탄하지만 그런 구조물들은 얼마든지 재현해 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쟈니가 겪고 있는 것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은 절대로 구현해 낼 수 없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진정한 불가사의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며칠 후에 그 기사의 주인공과 만나기로 했어. 그 말을 하려고 쟈니를 보자고 했던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쟈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가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 시기에 쟈니처럼 비슷한 꿈을 꾼 경험이 있는 사례자와 연락이 닿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깨내고야 말겠다는 과학자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도 이렇게 설레는데 쟈니는 오죽하겠어? 그래서 귀띔이라도 해주려고 오라고 한 거야.”
 “그래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사례는 내 학술에도 도움이 될 터이니 감사할 사람은 오히려 내가 아닌가?”
 스티븐슨 박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 넉넉한 미소의 주인공은 쟈니의 마음속 한켠에 구세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티븐슨 박사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지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극심한 우울증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스티븐슨 박사는 쟈니에게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따르릉, 따르르릉!
 갑자기 울린 전화벨 소리가 쟈니의 상념을 깨웠다.
 “여보세요. 캐롤 J 스티븐슨입니다.”
 수화기를 든 스티븐슨 박사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가는 것을 본 쟈니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맛보았다.
 “알았어요. 금방 갈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스티븐슨 박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쟈니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우드의 어머님이 글쎄······.”
 스티븐슨 박사가 말끝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설마 우드 박사님의 어머니께서······.”
 차마 죽음을 입에 담기가 어려웠던 쟈니가 말끝을 흐렸고 이에 스티븐슨 박사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의자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가운을 벗었다.
 스티븐슨 박사의 동료이자 애인인 잭 우드 박사의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숨을 거두고 만 것이었다.
 “내일이나 모래 쯤 다시 연락할게.”
 “네 박사님.”
 자신의 일인 양 쟈니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쟈니?”
 뒤늦게야 스티븐슨 박사가 외투를 걸치고 있지 않은 것을 본 쟈니가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이어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건넨 뒤 사무실을 나섰다.
 “휴우!”
 계단을 내려가던 쟈니가 걸음을 멈추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잭 우드 박사도 스티븐슨 박사와 마찬가지로 쟈니에게 남다른 관심으로 치료를 해주었던 터라 쟈니로썬 안타까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빌로우 신부님께 가볼까?”
 빌로우 신부를 떠올렸던 쟈니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때문에 빌로우 신부님께서도 많이 바쁘실 거야. 그러니 그냥 바람이나 쏘이다가 집에 가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쟈니가 부지런히 계단을 내려갔다. 스티븐슨 박사를 만나기 이전이었더라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휴우!”
 건물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한 쟈니가 길게 심호흡했다. 이어 습관처럼 몸을 가볍게 푼 뒤 복식호흡에 들어갔다.
 복식호흡에 익숙한 쟈니도 복식호흡을 시작할 때는 답답했다. 그 과정을 넘겨야 비로소 제대로 된 복식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가운데 답답함은 금세 사라지고 심신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서 쟈니가 기다리던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원래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에 오려면 버스를 갈아탔어야 했다.
 얼마 전 새로운 노선이 개통되었는데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로 곧바로 올 수 있는 버스였다. 단지 단점이라면 운행간격이 1시간이나 된다는 것이었다.
 쟈니에게는 대중교통으로써의 편안함과 동시에 지루함도 주는 버스인 셈이었다. 그러나 복식호흡에 열중하고 있는 쟈니는 지루함을 전혀 느끼질 못했다.
 부우웅, 끼익!
 버스가 멈추어 서고 출입문이 열렸다. 노선이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운행간격이 긴 탓인지 버스에 탄 사람은 10명도 채 되질 않았다.
 “쟈니!”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캐롤라인이었다. 보조개를 만들어내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쟈니의 숨을 가쁘게 만들었다.
 물론 몸 상태가 악화되어 가빠진 숨이 아니었다.
 캐롤라인을 향한,
 마음속 천사를 향한 감정이 만들어낸 현상일 뿐이었다.
 “이리와.”
 캐롤라인의 손짓에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그녀에게 다가간 쟈니가 캐롤라인 옆자리에 앉았다.
 “이젠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모양이네.”
 “으응, 뭐 그런 셈이지.”
 ‘이런 바보 같이······.’
 캐롤라인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배고프지 않느냐는 등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쟈니의 입에서는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런 분위기 탓에 캐롤라인도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보인 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캐롤라인을 힐끔거리며 갈등하던 쟈니가 용기를 내서 입을 열려는 순간 캐롤라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쟈니, 나 내려야 해. 나중에 또 봐.”
 “으응, 그, 그래.”
 마음과는 달리 쟈니의 입에서는 또 다시 관심이 없다는 투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길!”
 캐롤라인을 내려놓은 버스가 출발하자 쟈니의 입에서 욕설에 가까운 투덜거림이 흘러나왔다.
 지금이라도 용기를 내서 캐롤라인에게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렇게 허무함을 가슴에 묻은 쟈니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복식호흡에 들어갔다.
 
 ***
 
 빌로우 교수와 만나기로 약속된 날이 되었다. 여느 때라면 일찍 연락을 취해 왔을 터인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전혀 연락이 없었다.
 빌로우 신부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갈등하던 쟈니는 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나머지 쟈니는 끝내 빌로우 신부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해. 그러니 점심때까지는 기다려 보자.”
 휴대폰 사용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쟈니는 결국 빌로우 신부가 바쁠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기다림을 선택했다.
 “쟈니~ 쟈니 방에 있니?”
 “네 방에 있어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쟈니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2층으로 뛰어 올라오던 어머니와 마주쳤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하마터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한 것을 쟈니가 붙잡는 바람에 위기를 넘겼다.
 쟈니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쟈니의 재빠른 반응으로 위기를 넘긴 쟈니의 어머니가 숨을 몰아 내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무슨 사고라도 생겼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쟈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쟈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쟈니를 불렀다.
 “목소리가 왜 그러세요?”
 “혹시··· 혹시 말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머니는 머뭇거리기만 할뿐 본론을 꺼내지 못했다. 이에 답답해진 쟈니가 재촉하려는 찰나 어머니의 입에서 빌로우 신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빌로우 신부, 네가 전에 말했던 사람이 빌로우 신부가 맞지?”
 “네 맞아요. 그런데 빌로우 신부님이 왜요?”
 쟈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이에 근심어린 표정으로 쟈니의 눈치를 보던 어머니의 입에서 쟈니를 황당하게 만드는 말이 흘러나왔다.
 “빌로우 신부가 사망했다더구나.”
 “맙소사!”
 단말마의 비명을 터트린 쟈니가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컴퓨터가 부팅이 되는 시간이 왜 이리도 긴 것인지······.
 컴퓨터가 부팅이 되기를 기다리는 쟈니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는 가운데 호흡도 가빠졌다. 당장이라도 복식호흡을 해서 진정시켜야 함에도 쟈니는 컴퓨터가 빨리 부팅되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컴퓨터 부팅이 완료되자 인터넷을 열었다. 그 순간 ‘빌로우 신부 사망’이라는 단어가 쟈니의 눈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이이······.”
 넋을 잃은 채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던 쟈니가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이어 빌로우 신부에 관한 기사를 열었다.
 “과로사라고?”
 1보로 전해진 기사에는 빌로우 신부가 과로사로 사망했다는 짧은 기사만 실려 있었다.
 ‘빌로우 신부는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1보로 다루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포털사이트의 대문에 버젓이 걸려 있어 쟈니의 머릿속을 혼란케 만들었다.
 “분명 뭔가가 있어.”
 그때 어머니의 손이 쟈니의 어깨를 잡았다.
 “쟈니, 일단 진정하렴. 진정하고 나서 천천히 빌로우 신부가 사망한 이유를 찾아도 되잖니.”
 쟈니의 몸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걱정한 어머니는 쟈니를 진정시켰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진 탓인지 이글거리는 눈으로 기사를 노려보던 쟈니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복식호흡에 들어갔다.
 ‘휴우! 다행이다.’
 쟈니가 복식호흡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어머니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쟈니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뻔히 알면서도 빌로우 신부의 사망소식을 전한 것은 밖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탓에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와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휴우!”
 무려 20여 분 동안이나 복식호흡을 하던 쟈니가 폐부 깊숙이 빨아들였던 숨을 토해냈다.
 정말이지 쟈니의 정신상태가 붕괴되기 직적의 절묘한 타이밍에 끼어든 어머니 때문에 진정이 된 쟈니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는 어머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괜찮아요.”
 “정말이니?”
 쟈니의 표정이 안정이 되었음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근심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이에 의자에서 일어난 쟈니가 어머니를 안고 등을 다독여 주었다.
 “이젠 예전의 무기력한 쟈니가 아니에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한 뒤 어머니를 품안에서 떼어 놓은 쟈니는 어머니의 눈에서 반짝이는 물기를 보고 가슴이 물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반드시··· 저는 반드시 이겨 내고야 말 것이에요. 반드시······.’
 어머니의 눈물이 자신의 병 때문에 비롯된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쟈니는 병을 이겨내고 말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이에 어머니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조금 놀라서 그런지 갈증이 나네요.”
 “그, 그러니?”
 쟈니의 말에 어머니가 눈에 맺힌 물기를 찍어내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렌지주스로 부탁해요.”
 “오냐. 잠시 기다리거라.”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쟈니의 엉덩이를 두어 차례 두드려준 어머니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렌지주스를 담은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되돌아왔다.
 “고마워요.”
 주스 잔을 든 쟈니가 윙크를 보내며 말했다. 이에 피식 웃음을 터트린 어머니가 밖으로 나갔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손에 든 주스를 원샷으로 비운 쟈니가 다시 한 번 복식호흡으로 아직 남아 있는 두근거림을 나려 보냈다. 이어 정보의 바다 속을 누비고 다녔으나 그 어디에도 빌로우 신부가 사망한데 대해 자세히 언급한 기사는 없었다.
 ‘하긴 유명인사가 아니니 기자들이 자세히 기사를 다룰 리가 없겠지.’
 악몽에 대한 게시글로 잠시 동안 키보드워리어들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빌로우 신부는 종교계에서도 인지도가 별로 없는 인물이었다.
 빌로우 신부가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과로사라는 기사 맞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휴우!”
 쟈니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로우 신부는 여전히 진행형인 악몽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줄 한 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쟈니로썬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스티븐슨 박사께 이 사실을 알리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쟈니가 스티븐슨 박사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전화 대신 이메일을 선택한 그는 빌로우 신부와의 관계에 대해 간략하게 적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오후,
 스티븐슨 박사로부터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도착했다. 위로의 말을 전한다는 말로 시작된 장문의 답장인데 고맙게도 그녀는 말미에 비로우 신부가 사망한 것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똑똑똑!
 “쟈니, 안에 있니?”
 스티븐슨 박사에게 편지를 쓰려던 쟈니가 아버지의 목소리에 컴퓨터를 끈 뒤 방문을 열어주었다.
 부리부리한 눈매의 소유자 윤현석!
 쟈니에게는 호랑이 같은 존재이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 아버지였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마침 지나는 길에 잠시 들렀다. 네가 충격을 받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던데 괜찮은 것이냐.”
 무뚝뚝한 목소리였지만 쟈니는 그 안에 녹아나 있는 걱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네 괜찮아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예전의 제가 아니잖아요.”
 쟈니의 대답을 들은 아버지가 품속에서 명함집을 꺼내 그 안에 든 명함 중 하나를 꺼내 쟈니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나도 나름대로 네가 겪고 있는 악몽에 대해 알아보았다. 네게 도움이 될 사람 같아서 명함을 받아왔으니 한번 만나 보려무나.”
 “그······.”
 대답도 듣지 않고 휑하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쟈니를 뻘쭘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확신을 가질 정도라면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록히드마틴은 미국을 대표하는 방산업체다. 전투기를 비롯해 미군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들을 생산하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정치권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록히드마틴 같은 대기업의 이사인 윤현석은 엔지니어로써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재테크에도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천문학적인 연봉 중 절반은 무조건 재테크에 투자를 하는데 가장 대박을 일궈낸 투자는 3천만 달러를 투자했던 골프존이었다.
 골프존이 상장하자 지분을 모두 처분한 윤현석은 그 많은 돈을 고스란히 대한민국에 투자했다. 이미 투자했던 동탄 제2신도시는 개발이 한창이었고 골프존에 투자해 벌어들인 돈을 몽땅 쓸어 넣은 마곡지구는 황금알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듯,
 천문학적으로 벌어들인 돈을 대한민국에 재투자 하면서 한때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윤현석은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맥들도 많아졌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확신할 정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으잉? 목사님이네.”
 명함을 확인한 쟈니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벤자민 해밀턴,
 쟈니로썬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다.
 무려 10년 동안이나 인터넷을 뒤졌던 쟈니였다. 따라서 웬만큼 유명한 사람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니는 아버지의 선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버지가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직은 벤자민 해밀턴 목사를 만날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쟈니는 아버지에게서 건네받은 명함을 지갑 속에 갈무리했다.
 “스티븐슨 박사님께 답장이나 마저 보내자.”
 다시 컴퓨터 책상에 앉은 쟈니가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잠시 후,
 컴퓨터가 부팅되자 인터넷을 연 쟈니는 스티븐슨 박사로부터 온 이메일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벌써 빌로우 신부님 사망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연 쟈니는 이메일을 확인하는 즉시 사무실로 오라는 짧은 글을 보고 또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분초를 다투는 일이라면 아마도 전화를 했을 터였다. 이메일을 보낸 것을 보면 그리 다급한 일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스티븐슨 박사님이 전화를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모양인데 어쩔 수 없지······.”
 컴퓨터를 끄고 옷을 갈아입은 쟈니가 방을 나섰다. 그가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는 집에서 나가고 없었다.
 
 집을 나선 쟈니가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2시간가량이 지난 뒤였다.
 재수 없게도 쟈니가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 버스가 출발했던 바람에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렸던 것이 늦게 도착한 원인이었다.
 “너무 늦은 것 아닌지 모르겠군.”
 오늘 따라 엘리베이터도 모두 꼭대기 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쟈니가 버튼을 누른 엘리베이터는 중간에서 5번이나 멈추었다.
 “빌어먹을!”
 엘리베이터에 올라 탄 쟈니가 거칠게 투덜거렸다.
 지잉!
 위층으로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또 멈추어 섰다. 짜증이 확 밀려 왔지만 엘리베이터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2층에서 탄 사람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인데 얼마나 골초인지 그녀의 몸에서 찌든 담배냄새가 풍겼다. 그런 탓에 그러지 않아도 찌푸려져 있던 쟈니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흥! 별꼴이야.”
 3층에서 내린 여자가 쟈니를 향해 냉소를 날리며 내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비한다면 캐롤라인이야말로 천사 중에 천사였다.
 ‘고작 한 개 층인데 걸어 올라가도 될 것을······.’
 쟈니가 입맛을 다시고 있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가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는 층에 멈추어 섰다.
 “히유!”
 우여곡절 긑에 간신히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에 도착한 쟈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스티븐슨 박사의 사무실 출입문을 가만히 두드렸다.
 똑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목소리를 들으니 별일은 없는 모양이로군.’
 스티븐슨 박사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한 쟈니가 출입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좀 늦었지요?”
 “알면 다행이네. 그리 앉아.”
 쟈니에게 자리를 권한 스티븐슨 박사가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빌로우 신부의 일은 참으로 유감이야.”
 “설마 저 때문에 과로한 것은 아니겠지요?”
 에둘러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쟈니는 빌로우 신부가 과로사로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엉뚱한 생각은 건강에 도움이 안 됩니다요.”
 스티븐슨 박사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화답했다. 이어 자세를 고쳐 앉고는 쟈니를 사무실로 오라고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전에 신문에서 본 사람 기억하지?”
 “비슷한 꿈을 계속 꾸었다는 분 말이지요?”
 되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스티븐슨 박사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30분 정도면 도착하겠군.”
 “오늘 만나기로 했단 말입니까?”
 쟈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당사자인 쟈니가 직접 듣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라고 한 거야.”
 바로 그때!
 따르릉,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스티븐슨 박사가 벨소리를 크게 해놓은 것인지 오늘 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 캐롤 J 스티븐슨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스티븐슨 박사의 표정이 보기 흉할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네네,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스티븐슨 박사가 굳은 표정으로 쟈니를 쳐다보았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무슨 일입니까?”
 쟈니가 넌지시 물었고 이에 크게 숨을 들이켠 스티븐슨 박사의 입에서 쟈니를 경악케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사고를 당했나봐.”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갱들이 총격전을 벌였는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유탄에 맞아······.”
 차마 죽음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던 스티븐슨 박사가 말끝을 흐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으, 으으으으.”
 갑자기 쟈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전신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죽은 두 사람 모두 직간접적으로 쟈니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쟈니가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제3장. 악마의 자식 (1)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쟈니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쟈니가 의식을 잃은 이유는 안정제를 맞았기 때문인데 의사가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은 스티븐슨 박사가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들었기 때문이다.
 “···으음.”
 신음을 흘리며 도리질 치던 쟈니의 눈이 떠졌다. 이어 멀뚱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정신이 들었구나.”
 밤새도록 쟈니의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어머니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 스티븐슨 박사였다.
 스티븐슨 박사가 쟈니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검사를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탓에 쟈니의 부모들은 쟈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병원!”
 짤막하게 대답한 스티븐슨 박사가 침상으로 다가와 쟈니의 눈동자 상태를 살폈다.
 “좋아 보이는데?”
 “제가 왜 병원에 있는 것입니까.”
 재차 이어진 질문에도 스티븐슨 박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쟈니의 체온과 맥박을 확인하는 등 쟈니의 몸 상태를 살피는데 열중했다.
 “다행이 다 정상이네.”
 쟈니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은 스티븐슨 박사가 의자에 앉은 뒤 쟈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수차례나 우연히 발생한 사고였음을 강조했다.
 “그래도······.”
 “괜한 잡념은 건강에 전혀 도움이 안 돼.”
 스티븐슨 박사가 쟈니의 입을 막았다. 이어 자신이 퇴원수속을 밟을 터이니 옷을 갈아 입으로가 말한 뒤 병실을 나갔다.
 ‘스티븐슨 박사님의 말대로 그저 우연일 뿐이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린 쟈니가 침상에서 내려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이어 원무과로 달려가 퇴원수속을 밟는 스티븐슨 박사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병원 인근의 커피숍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은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나는 어제 총격전에서 사망한 사람 때문에 경찰서에 가 봐야할 것 같아.”
 “박사님이 왜요?”
 커피잔을 내려놓은 쟈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사람 전화에 내 전화번호가 찍혀 있잖아. 그래서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된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스티븐슨 박사가 한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커피숍 출입문이 열리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잭 우드가 들어섰다.
 “캐롤, 어떻게 된 거야?”
 성이 난 듯한 잭 우드의 분위기에 쟈니는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어제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갱들이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을 지나다가 유탄을 맞아 사망했어.”
 “그럼 그렇다고 말하지. 무턱대고 경찰서에 가야한다고만 말하면 어떻게 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잭 우드가 뒤늦게야 쟈니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 사건 때문에 쟈니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어.”
 “그랬었겠군. 지금은 괜찮은 것인가?”
 “네 스티븐슨 박사님 덕분에······.”
 쟈니가 스티븐슨 박사를 언급하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쟈니, 그만 일어날까?”
 “네 박사님.”
 쟈니의 대답을 들은 스티븐슨 박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쟈니와 잭 우드도 거의 동시에 일어나 스티븐슨 박사의 뒤를 쫓았다.
 
 스티븐슨 박사 일행과 헤어진 쟈니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 공원을 터벅터벅 걸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려고 애를 썼지만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한 상황이라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좀 쉬었다가 가는 것이 좋겠군.”
 벤치에 앉은 쟈니의 눈에 다정하게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도 캐롤라인과 저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악몽 때문에 이성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쟈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정한 연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자연히 캐롤라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캐롤라인의 모습이 잠시나마 복잡한 머릿속을 맑게 해주었다.
 “휴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쟈니의 뇌리에 불현듯 스치는 것이 있었다.
 “벤자민 해밀턴 목사님이라고 했던가?”
 지갑 속에 갈무리 해두었던 해밀턴 목사의 명함을 꺼낸 쟈니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아직은 아니다.”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하는 사람이 남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쟈니가 아예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옳은 선택이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이 아닌 남과 통화를 하더라도 그 대상은 스티븐슨 박사여야 한다는 것이 쟈니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같은 시각,
 쟈니의 아버지 윤현석(미국명 허버트 윤)은 벤자민 해밀턴 목사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짬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가 3차 F-X사업을 유찰시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3차 F-X사업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후보기종에서 탈락했던 F-35스텔스전투기는 기사회생한 상태였다.
 기사회생한 록히드마틴과는 달리 F-15SE전투기로 승부수를 던져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상황까지 갔던 보잉사는 법적대응을 외치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개발금액을 투입한 미국 정부는 무조건 F-35스텔스전투기를 판매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 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었던 탓에 록히드마틴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음에도 배짱을 부렸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F-X사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던 윤현석도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꼭 그것을 해야 합니까.”
 윤현석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흐음!”
 해밀턴 목사의 말이 윤현석의 입에서 가는 신음이 흘러나오게 만들었다.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쟈니에게 그런 수모를 겪게 할 수는 없다.’
 “날짜를 잡으시겠습니까.”
 해밀턴 목사가 얼굴을 들이밀며 은근한 투로 물었다.
 “결정권자는 쟈니입니다.”
 윤현석이 우회적으로 해밀턴 목사의 제안을 뜻을 밝혔다. 이에 해밀턴 목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좌우간 쟈니가 연락을 하면 그때 도움을 주십시오.”
 ···라고 말한 윤현석이 품속에서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내 해밀턴 목사에게 내밀었다.
 “성금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묵례한 윤현석이 총총히 자리를 떠났다. 이에 홀로 남은 해밀턴 목사가 봉투를 집어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최소한 1만 달러는 되겠군.”
 편지봉투가 두툼한 이유는 1백 달러짜리 지폐 때문이었다. 정확히 1만 달러였는데 돈을 많이 접했던 해밀턴 목사는 액수를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나에게 주는 돈이 아니라 교회에 헌납하는 성금이니 받아도 되겠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해밀턴 목사가 주위를 쓰윽 둘러본 뒤 돈 봉투를 품속에 갈무리했다.
 
 ***
 
 오늘도 쟈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바다를 누비고 다녔다.
 어쩌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악몽에서 해방시켜 줄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비명횡사하는 바람에 앞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쟈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인터넷 때문에 빌로우 신부도 만날 수 있었고 스티븐슨 박사도 만날 수 있었다.’
 쟈니는 세상 어딘가에 악몽에서 해방시켜줄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딩동댕~ 딩동댕~
 쟈니의 휴대폰에서 조금은 유별난 수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에 휴대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한 쟈니가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전화는 받을 필요가 없다.’
 며칠 전 쟈니는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휴대폰을 사용했다. 그 대상은 어머니였는데 전화로 한 첫 마디가 배고프다는 말이었다.
 10여 년 만에 아들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쟈니의 방으로 올라와 쟈니를 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후후후후.”
 10여 년 만에 처음 통화했을 당시의 광경을 떠올린 쟈니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나저나 내가 원하는 정보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의자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푼 쟈니가 또 다시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 있는 가운데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들려왔다.
 “스티븐슨 박사님인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쟈니가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메일을 보낸 사람은 스티븐슨 박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해밀턴 목사님이 어떻게 내 이메일 주소를 안 것이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해밀턴 목사였다. 아직 만난 적도 없는 것은 물론이고 통화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해밀턴 목사는 쟈니의 이메일 주소를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아버지가?”
 아버지가 해밀턴 목사에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쟈니가 이메일을 열었다.
 “이것은······.”
 이메일의 내용은 짧고 간단했다.
 내용인 즉,
 악몽을 해결하려면 당장이라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얼마나 학수고대 했던 일인가?
 악몽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돈을 달라면 돈을 줄 것이요 고행의 길을 걸으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고행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이렇듯 사안이 워낙 중대한 터라 쟈니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던 의구심이라는 단어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다.”
 해밀턴 목사에게 답장을 보낸 쟈니가 휴대폰 전원을 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밀턴 목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목사님.”
 해밀턴 목사를 만나기로 결심한 터라 쟈니는 전화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지금 자네 집 근처에 있네.”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쟈니의 목소리가 잔 떨림을 보였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겠네.”
 딸칵!
 해밀턴 목사가 쟈니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장을 열었던 쟈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목사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줄 은인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 탓에 쟈니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방을 뛰쳐나갔다.
 “쟈니,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는 거니?”
 “다녀와서 말씀드릴게요.”
 쟈니가 횅하니 집을 나가 버리자 그의 어머니 박미희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잠시 후,
 버스정류장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쟈니는 상체를 허벅지에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허리를 펴는 순간 검은색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와 쟈니 앞에 멈추어 섰다.
 “해밀턴 목사님인가?”
 그때 승용차의 창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턱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쟈니군인가?”
 “네 맞습니다. 해밀턴 목사님이시죠?”
 “타게.”
 그 말과 함께 뒷좌석 문이 열렸고 쟈니는 망설임 없이 승용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게.”
 부우웅!
 쟈니를 태운 승용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그런데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캐롤라인이었다.
 “쟈니 아버지가 보낸 차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린 캐롤라인이 쟈니를 태운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이내 집으로 향했다.
 
 쟈니를 태운 승용차가 멈춘 곳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낡은 교회였다. 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건물은 스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내리게.”
 해밀턴 목사가 먼저 승용차에서 내렸다. 건물에서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왕지사 내친걸음인지라 쟈니는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렸다.
 부우웅!
 해밀턴 목사와 쟈니를 토해낸 승용차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바라보던 쟈니가 해밀턴 목사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교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네. 꽤 오랫동안······.”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가? 그럼 들어가세.”
 해밀턴 교수가 싱긋 미소를 지어보인 뒤 교회를 향해 걸어갔다.
 ‘기분이 묘하군.’
 해밀턴 목사의 뒤를 쫓고 있는 쟈니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교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끼이이!
 교회 출입문이 열리면서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가 만들어졌고 이에 쟈니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흐릿한 어둠,
 그리고 잔잔하게 흐르는 고요함!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옅은 햇빛이 교회 안의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탓에 커다란 십자가에 걸려 있는 예수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예수님의 모습이 두렵게 느껴지다니······.’
 그때 해밀턴 목사가 쟈니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분위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터라 쟈니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리 놀라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쟈니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이에 빙그레 미소를 지은 해밀턴 목사가 십자가가 걸려 있는 우측 출입구를 가리켰다.
 “저곳이 지하실로 통하는 길일세.”
 “지하실이라고요?”
 쟈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문했다.
 흉가에 가까운 교회에 데리고 온 것도 모자라 지하실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도대체 악몽에서 해방시켜주는 것과 흉가에 가까운 교회의 지하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비록 해밀턴 목사가 아버지가 추천해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자네를 돕기 위해 제단을 마련했네. 보다시피 건물이 좀 엉망이 아닌가? 제단을 설치할 정도로 깨끗한 곳은 지하실뿐이라 어쩔 수가 없었네.”
 ‘그랬었군.’
 해밀턴 목사의 차분한 대답을 듣고서야 쟈니는 품었던 의구심을 날려 버렸다. 일반인이라면 여전히 의구심을 품었을 터이지만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한 터라 쟈니는 더 이상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가세.”
 쟈니의 어깨를 두드려준 해밀턴 목사가 발걸음을 떼었고 이에 크게 숨을 들이켠 쟈니가 해밀턴 목사를 뒤따랐다.
 얽히고설킨 미로처럼 이어진 복도 벽에 꽂혀 있는 촛대에서 타고 있는 양초가 어둠을 밀어내고는 있지만 어둠을 완전히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기가 없었던 과거에는 교회도 삭막한 분위기였겠군.’
 사물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만 밝혀주고 있는 촛불이 낡은 벽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함과 어우러진 탓에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철그렁!
 지하실로 이어진 출입문은 나무로 만든 문이 아니라 철제문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철제문이 만들어낸 삭막함은 쟈니의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메아리처럼 울리는 발자국소리가 마치 누군가 따라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분위기 한번 더럽네.’
 “이곳일세.”
 걸음을 멈춘 해밀턴 목사가 낡은 철문을 가리켰다. 이어 철문을 열었는데 출입문과 마찬가지로 이가 갈리는 소음이 만들어졌다.
 “들어가세.”
 어깨를 으쓱여 보인 뒤 먼저 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해밀턴 목사를 쳐다보던 쟈니가 길게 심호흡한 뒤 해밀턴 목사를 뒤따랐다.
 ‘이곳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방에는 중세풍의 그림과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쟈니, 인사하게. 오늘 의식을 주도할 크리스티안 신부일세.”
 해밀턴 목사가 사제복을 입은 사람을 소개했다. 그런데 매서운 인상 때문인지 쟈니는 신부라기보다는 악마를 숭배하는 교단의 교도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받았다.
 “쟈니입니다.”
 속내와는 달리 쟈니는 정중하게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신부는 눈빛을 번뜩이며 쟈니의 전신을 훑어보기만 했다.
 “시작합시다.”
 해밀턴 목사의 말에 성호를 그어 보인 크리스티안 신부가 쟈니에게 제단 위에 누우라고 말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불길한 예감을 떨쳐낸 쟈니가 제단 위에 누웠다. 천장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앗 차가워!”
 무언가 차가운 것이 끼얹어지자 쟈니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성수일세.”
 ‘성수를 내 몸에 왜 뿌리는 거지?’
 해밀턴 목사의 대답을 들은 쟈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성호를 그리며 쟈니에게 다가선 크리스티안 신부가 성경을 펼치고 낭랑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외웠다.
 ‘설마 엑소시즘?’
 쟈니도 엑소시즘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엑소시즘을 시작하는 단계는 지금 자신에게 행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한테 엑소시즘 의식을 하는 이유가 뭐지?’
 그런 의구심이 휘몰아쳤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결심한 쟈니는 가빠지는 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복식호흡을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크리스티안 신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고조됨에 따라 쟈니의 호흡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는 거지?’
 복식호흡을 하고 있음에도 거칠어지기 시작한 호흡이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카랑카랑한 크리스티안 신부의 목소리가 쇠를 긁는 듯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그런 현상들이 쟈니의 정신을 공황상태로 몰아갔다.
 “으으으, 으으으으.”
 급기야 쟈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귓속으로 스산함이 녹아나 있는 해밀턴 목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역시 악령이 깃들어 있었군.”
 ‘아, 악령이라고? 내 몸에 악령이 깃들어 있다고?’
 충격을 받은 탓일까?
 쟈니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뿐만이 아니라 눈동자의 동공이 확대되었다가 수축되기를 반복했다.
 “크르르르.”
 신음을 흘리던 쟈니의 입에서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던 눈동자가 고양이과 동물의 그것처럼 변해갔다.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악한 악령이여! 그 몸에서 나오너라!”
 크리스티안 신부의 입에서 강한 일갈이 터져 나왔고 그 순간 쟈니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크르르르.”
 크리스티안 신부에게 홱 고개를 돌린 쟈니의 얼굴,
 호랑이의 그것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오 맙소사!”
 쟈니의 얼굴을 본 해밀턴 목사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령이여! 그 몸에서 나와 너의 세계로 돌아가라!”
 크리스티안 신부의 입에서 다시 한 번 강한 톤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쟈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류가 크리스티안 신부를 휘감았다.
 “어억!”
 무형의 기류에 휩싸인 크리스티안 신부가 비명을 흘리며 비틀거리는 가운데 쟈니의 표정이 한층 더 표독하게 변했다.
 ‘크리스티안 신부가 위험하다.’
 해밀턴 목사는 본능적으로 크리스티안 신부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크리스티안 신부를 돕고 싶어도 도울 방법도 없거니와 자칫 자신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번쩍!
 맹수의 눈동자로 변한 쟈니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고 그 순간 크리스티안 신부의 입에서 게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크르륵, 커억, 커억!”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해밀턴 목사는 괴로워하는 크리스티안 신부를 뒤로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이 상황을 교단 나아가 교황청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해밀턴 목사로썬 크리스티안 신부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아아악!”
 해밀턴 목사가 교회를 나서기 직전 크리스티안 신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크리스티안 신부여, 편히 잠드소서.”
 몸을 돌린 해밀턴 목사가 예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어 부들거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자동차 키를 찾았다.
 “어디에 둔 것이지?”
 주머니를 뒤지던 해밀턴 목사가 전류에 감정이라도 된 듯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지하실에······.”
 끔찍한 일이 발생한 지하실에 자동차 키를 두고 나왔을 수도 있었다.
 경황 중이라 자동차 안에 보조키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해밀턴 목사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이내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한편,
 크리스티안 신부를 비명횡사케 만든 쟈니는 교회를 나섰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여전히 고양이과 맹수의 그것처럼 사납게 변해 있었다.
 굶주린 맹수처럼,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교회 주변을 배회하던 쟈니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어 버렸다.
 부우웅, 끼익!
 쟈니가 쓰러진 곳을 스쳐 지나가던 트럭이 멈추어 서더니 이내 쟈니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후진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텁석부리 남자가 내렸다.
 “아빠, 혹시 죽은 건가요?”
 텁석부리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의 소녀가 트럭에서 내리며 물었다.
 “괜찮은 것 같구나.”
 “그럼 술이 취해 쓰러진 것인가요?”
 재차 묻는 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어 보인 텁석부리 남자가 쟈니의 몸 곳곳을 만지며 몸 상태를 살핀 뒤 쟈니를 트럭 뒤에 실었다.
 “아빠가 근무하는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요?”
 딸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여 보인 텁석부리 남자가 운전대에 올랐다.
 “동양인 같은데 잘생겼네요.”
 “레이첼, 아빠는 동양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텁석부리 남자,
 칼 빅토리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조그만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였다.
 유색인종 특히 동양인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그런 선입견을 가지게 된 것은 일본인 때문이었다.
 일본경제가 활황일 당시 일본인들은 자본력을 앞세워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상징성이 큰 건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였다.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무시를 많이 당했던 경험이 빅토리노로 하여금 동양인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갖게 만든 것이었다.
 “아빠의 그런 발언은 자칫 인종차별로 들릴 수도 있어요.”
 “후훗, 어련 하려고!”
 부우웅!
 레이첼의 말에 실소를 터트리는 것으로 화답한 빅토리노가 가속페달을 밟았다.
 “어머!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요?”
 빅토리노가 차의 방향을 바꾸지 않자 레이첼이 토끼눈을 뜨며 물었다.
 “왜 의식을 잃었는지 모르겠지만 맥박도 정상이고 외상도 없다. 아마도 한숨 푹 자고 나면 깨어날 거야.”
 상대가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었더라면 병원으로 직행했을 터였다. 그러자면 오랜만에 만난 딸과의 재회를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빅토리노는 3년 전 아내와 불화로 이혼한 상태였다. 방귀를 뀐 놈이 화를 낸다는 말처럼 이혼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은 아내였다.
 외지의 작은 병원의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대화를 가질 시간이 거의 없었던 아내는 결국 딴 놈과 눈이 맞아 이혼을 요구한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도 되는지 모르겠네.”
 레이첼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집에 데리고 간다고 말한 적 없다.”
 “에엥?”
 빅토리노의 말에 레이첼이 또 다시 토끼눈을 뜨며 아빠를 바라보았다.
 “아빠만의 비밀장소가 있지.”
 “아빠만의 비밀장소라면 설마······.”
 그때였다.
 쿵쿵쿵, 쿵쿵쿵쿵!
 어느 틈에 의식을 되찾은 쟈니가 트럭 지붕을 두드렸다.
 “아빠, 그가 깨어났어요.”
 레이첼의 말이 아니더라도 빅토리노는 트럭을 멈추어 세우고 있었다.
 끼익!
 트럭이 멈추자 쟈니가 뛰어내렸다.
 “자네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죠?”
 쟈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때 트럭에서 내린 레이첼이 쟈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예쁘다.’
 흔히 볼 수 없는 레이첼의 미모를 본 쟈니는 넋이 빠져 버렸다.
 “난 칼 빅토리노라고 하네.”
 “아 네네, 전 쟈니 윤입니다.”
 “쟈니 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방송인 쟈니 윤은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 빅토리노 나이 쯤 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터였다.
 쟈니도 학창시절에 방송인 쟈니 윤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던 터라 빅토리노의 말에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난 레이첼이야. 반가워!”
 레이첼이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으응, 그, 그래 나도 반가워.”
 레이첼이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든 쟈니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다행히 재패니스는 아니로군.”
 빅토리노의 말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한 쟈니가 레이첼과 빅토리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일단 차에 타게.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겠네.”
 “아 네네, 감사합니다.”
 빅토리노와 레이첼이 먼저 타고 쟈니가 문 쪽에 앉았다. 소형트럭이다 보니 자리가 비좁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레이첼의 허벅지와 쟈니의 허벅지가 착 달라붙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입은 채로 허벅지끼리 닿았을 뿐인데 이런 기분이라니······.’
 이성을 접해보지 못한 쟈니로썬 지금의 상황이 황홀하기도 했고 또한 부끄럽기까지 했다.
 “쟈니라고 했지? 의사로써 단언컨대 자네의 신체에 이상은 없었네. 그런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이유가 뭔가.”
 “······.”
 오히려 쟈니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흉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낡은 교회 지하실에서 엑소시즘 의식을 시작한 것 이외에는 기억이 전혀 없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로군.”
 “아! 네. 그런 셈이죠. 죄송합니다.”
 “그런데 몇 살?”
 불쑥 대화에 끼어든 레이첼이 쟈니의 나이를 물었다.
 “스물넷이야.”
 레이첼에게로 시선을 돌린 쟈니가 손가락 4개를 펴 보이며 대답했다.
 “어? 그럼 오빠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할 것이라고 여겼던 레이첼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나이게 적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특이하게도 쟈니는 실제나이보다 적게 보였다.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면 폭삭 늙는 것에 비한다면 이 또한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레이첼은 몇 살인데?”
 “열아홉!”
 ‘싱싱한 나이네.’
 “실망했어?”
 쟈니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레이첼이 쟈니의 허벅지를 툭 치며 물었다.
 움찔!
 레이첼의 손이 닿는 순간 짜르르한 전류가 허벅지를 통해 전해지자 쟈니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호호호, 왜 놀라는 거야?”
 쟈니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레이첼이 교소를 터트렸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 쟈니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끼익!
 “다 왔네.”
 빅토리노의 말에 쟈니가 화들짝 놀랐다.
 “저기가 버스정류장이야.”
 “아 네네.”
 솔직한 심정으로 쟈니는 좀 더 레이첼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빅토리노가 재촉하는 바람에 차에서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쟈니 오빠, 나중에 또 봐.”
 레이첼의 손이 또 다시 쟈니의 허벅지를 툭 쳤다. 조금 전과 같은 전류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아저씨, 여러 모로 고마웠습니다.”
 감사의 말을 전한 쟈니가 트럭에서 내렸다.
 부우웅!
 쟈니가 내리기가 무섭게 트럭이 출발했고 뒤늦게야 연락처를 교환하지 못한 것을 깨달은 쟈니가 트럭을 향해 달려갔으나 트럭은 이미 까마득히 멀어진 상태였다.
 ‘바보 같은 녀석!’
 경솔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를 힐책했다. 이렇듯 쟈니는 악몽으로 인해 소침해진 성격 때문에 이성을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그 낡은 교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린 쟈니가 휴대폰을 꺼내 해밀턴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휴대폰이 왜 꺼져 있지?”
 혹시 배터리를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멘트만 흘러나왔다.
 “그 낡은 교회가 어느 쪽이었지?”
 낯선 곳이고 빅토리노의 트럭을 타고 한참이나 이동했던 터라 낡은 교회를 찾아갈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해밀턴 목사님과 통화가 되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린 쟈니가 버스노선을 확인했다.
 ‘이런 2번이나 갈아타야하네.’
 해밀턴 목사와 꽤 오랫동안 이동했으니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다 싶었지만 설마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탈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에혀!”
 석양 무렵이나 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따발총 같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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