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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조선 해양왕: 강대국의 조건

서장(序章) : 추적자

2019.04.01 조회 58,394 추천 648


 한밤, 이정훈은 골목을 돌아 골목을 내달렸다.
 
 숨이 턱에 받쳤지만, 새로운 LNG 선박기술이 집적된 USB를 저들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이것을 개발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했던가.
 
 정훈은 급하게 종로통을 돌았고, 몇 번의 담을 넘었으며, 다리를 빠르게 지났고, 차에 치일 위험을 감수하며 소도로를 가로질렀다. 하지만 추적자는 정훈보다 더 날래고 치밀한 자였다.
 
 그는 마치 정훈이 어디로 튈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골목과 골목을 가로질러 정훈보다 먼저 다음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이곳 지리에 훤했다.
 
 곧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정훈은 벽을 등지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이대로 USB를 저들에게 빼앗긴다면 이제껏 자신이 쌓아올린 전부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냐!”
 “이정훈 씨?”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한성조선해양 미래전략팀 나민호 대리입니다.”
 “한성조선 미래전략팀?”
 
 이정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거기에 그런 팀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근무했던 회사인데 말이야.”
 
 나민호 대리가 손에 든 칼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서민들은 알 필요가 없는 팀이죠. 회장실이 있는 맨 꼭대기에 있으니까. 게다가 회사에 위협이 생길 때만 움직이는 조선시대의 비변사 같은 팀이랄까요?”
 “비변사 좋아하네, 아무리 그래도 난 거기서 과장까지 지냈던 사람이야.”
 “그래봤자 일반 양민 아니십니까? 양민들은 딱 과장까지지요.”
 “지금이 조선시대인줄 아나?”
 “그러니까 LNG 기술을 모 회사에 넘기셨어야죠.”
 
 정훈은 새로운 LNG 선박기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 한성조선에서 지속적으로 접촉을 해왔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한성조선해양이 영‧중‧일 다국적 자본에 넘어가면서 사십 줄에 접어들었다고 쫓겨나 중소기업을 차린 뒤였기에, 회사의 명운이 걸린 기술을 함부로 팔 수 없었다.
 
 한성조선해양은 즉시 정훈에게 소송을 걸었다. 이 기술은 한성의 것이며, 정훈이 그것을 빼돌리려고 사표를 썼다는 논리였다.
 
 오랜 고심 끝에 정훈은 이 선박 기술을 아예 폐기처분하려 했다.
 
 그 낌새를 눈치 챈 한성조선에서는 정훈을 헤치려했다.
 
 ‘이걸 뺏기면 내 회사도, 직원도, 그리고 가족도 다 죽는다···’
 
 정훈은 바닥에 구르던 각목을 주워들고 검도 자세를 취했다.
 
 비록 오랜 세월, LNG 기술을 연구하며 지내왔지만, 정훈은 일찍부터 검도를 수련하여 국내 대회를 석권한 적도 있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정훈이 즐겨했던 게임 때문이기도 했다. 정훈은 대련 게임 외에도 해양을 누비며 무역을 하고, 해전을 펼치는 시뮬레이션 게임도 좋아했다.
 
 결국 선박공학과에 들어가 직접 배를 만들고자 했고, 3학년 때는 역사학을 부전공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 이름에 ‘한성’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입사 시 한국사능력시험을 중시하는 바람에 각 시대별 지도 및 사건의 연대까지 외워야했다.
 
 ‘그런 놈들이 회사를 다국적 자본에 넘겨?’
 
 정훈은 각목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싸움 좀 하시나봅니다?”
 
 나민호 대리가 칼을 뻗으며 선공을 했다. 정훈이 가볍게 몸을 숙였다 펴면서 각목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 대리도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그걸 피했다.
 
 “호오? 이 정도 스피드면 선수인데요?”
 
 나민호가 씩 웃으며 다시 칼을 연거푸 휘둘렀다.
 
 정훈이 재차 칼을 피하며 막대기를 내리쳐 나 대리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나 대리가 로우킥을 날려 정훈의 무릎을 노렸다. 정훈이 각목으로 발등을 쳐내려했으나, 금세 두 동강이 나버렸다. 정훈은 쌍절곤을 휘두르듯 두 개의 나무를 뻗어 나 대리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나민호 대리는 이미 동선을 예측한 듯 자세를 더 낮추었다.
 그는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반 바퀴 돌아서 다리를 휘돌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발 공격이 날아오자, 정훈의 발목이 휘어지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나 대리가 흡족하게 웃으며 떨어진 칼을 쥐었다.
 
 ‘지금이다!’
 
 정훈은 필사적으로 튕겨 일어나서 나 대리의 등짝을 발로 내리찍었다.
 
 “억!”
 
 나 대리가 중심을 잃고 앞으로 휘청거렸다. 그와 동시에 정훈이 좁은 골목의 벽면을 딛고 뛰어올라 다시 나 대리의 뒷목을 무릎으로 내리찍었다. 급작스레 목뼈에 타격을 입은 나 대리는 그러나 바닥으로 재빨리 돌아 누우며 권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탕!
 
 가슴에 총을 맞은 정훈이 고통스런 얼굴로 아내와 자식들을 떠올렸다.
 
 ‘이런 씨바알···’
 
 아직 죽지 않았지만, 생때같은 식구들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괴로웠다. 결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스, 승혜야, 그리고 내 새끼, 주현, 세현아···’
 
 정훈의 눈꺼풀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쌍매당입니다.

매화가 활짝 핀 봄이네요.

댓글(30)

말없는장미    
잘 보고갑니다. 건필하세요.
2019.04.01 10:19
쌍매당    
첫 댓글, 감사합니다.
2019.04.03 00:06
물물방울    
연재 시작을 축하합니다.
2019.04.04 14:47
양마루    
건필
2019.04.05 08:24
야한69리키    
3성같은 넘들이네요.
2019.04.07 01:08
sa*****    
잘 봤습니다. 계속 기대합니다.^^
2019.04.08 19:56
HOLIDA    
lng기술이 목숨까지 걸정도로 중요한 기술인가요?
2019.04.24 18:10
신과악마    
lng 선박 기술이라면 충분히 목숨 걸만하죠. 가격이 한 척당 2400억 원 정도 하고, 설계에 높은 기술이 필요해서 아무 조선소나 쉽게 만들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설계 기술 가치만 따지면 몇 천억은 될 듯.
2019.04.24 19:38
도수부    
건필입니다
2019.04.26 18:40
내배까    
검도 국대는 죄다 실업팀입니다. 대학생은 한명 껴있긴 한데 무조건 성대 출신이구요.
2019.04.27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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