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나혼자 진짜 재벌

어머니<수정>

2019.04.01 조회 102,319 추천 1,197


 -민욱아. 싸우지 말고, 물 조심하고.
 “아, 어머니. 제가 내일 모레면 마흔입니다. 마흔.”
 
 내겐 한 사람의 영웅이 있었다.
 
 나만의 영웅.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서있었고 나만을 지켜봐주던 사람.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그 존재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공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물은 어디서건 마주칠 수 있었기에 물의 소중함을 모르듯, 나 또한 세상 가장 중요한 존재의 희생을 모르고 살았다.
 
 -춥대이. 밥은 먹고 댕기나?
 “아이고, 어무이. 제발 쫌···. 밥도 안 먹고 다니겠어요? 저 바빠요. 나중에 전화 드릴께요.”
 
 참 사람이란 존재가 간사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기에,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줄로만 알았을까?
 
 -아들. 엄마가 우리 아들 보고싶네. 언제 함 안내리오나?
 “어무이. 나중에 연락드릴께요. 요새 바빠요.”
 
 있을 때 잘했어야 했다.
 
 시간은 늘 도망가고, 언제나 그 자리였을 줄 알았던 존재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
 
 난.
 
 오늘 그녀를 구하러 갑니다.
 
 
 
 *
 
 
 
 [민욱아. 엄마가···. 엄마가 마지막으로 아들 얼굴 보고싶으시단다···.]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삶에 바빠 잊고 지내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어머니.
 
 어머니는 1950년에 태어났다.
 고향은 경상북도 군위.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꽃은 폈고 또 새생명을 싹틔웠다.
 불행중 다행으로 당시 경북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했고, 어머니와 외가 사람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엄마는 너무 어려서 하나도 기억이 안나.”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지 않고 지났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위로 오빠가 셋 있었다. 여덟 살 터울의 큰 오빠. 세 살 위의 오빠와 두 살 많은 작은 오빠.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와 아버지.
 삼남일녀의 막내.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고는 하나, 막내딸이 이뻐보이는건 당연했다.
 
 유복하진 않았지만 행복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곤.
 어머니의 큰 오빠.
 
 “야. 너네 뒤져서 나오면 진짜 죽는다. 알아서 내놔라.”
 
 시대가 흘렀어도 양아치들의 돈 뺏는 습관은 그대로였다. 아니, 이때부터 시작된건가.
 어머니의 큰 오빠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건달이었다.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며, 패악질을 일삼고 코흘리개들의 돈을 빼앗아 용돈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사랑하는 내 어머니.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의 막내동생에게 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
 
 “경숙아. 니 뭐 갖고 싶은거 없나?”
 “나는 오빠야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짜슥···.”
 
 타고난 장사였고, 어릴때부터 유도를 배워 자라면 김두한 같은 유명한 건달이 되거나, 아니면 올림픽 같은데 나가 금메달을 딸 거라고 다들 말했다. 물론 유도는 이 시기엔 아직 올림픽 종목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름 오순도순 살아갔다. 큰 오빠는 힘의 우산으로 당시의 난폭한 시대에서 나름 동생들을 챙겨주었다. ‘이동호 동생이다.’ 라는 한 마디면 어지간한 동네 건달들도 눈을 내리깔고는 했으니까. 그때가 아직 큰 오빠가 채 스물이 안 되었을 때인데도 말이다.
 
 -어무이. 저 서울 갔다오겠습니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편지 한 장을 덜렁 남겨놓고 어머니의 큰 오빠는 그렇게 떠났다.
 온 집안의 돈을 싸그리 긁어모아서. 심지어는 얼마되지 않는 집문서까지 팔아치운채 말이다.
 그 때가 1961년 1월 2일.
 새해가 되고 딱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고작 열두살. 국민학교 5학년이 아직 되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니의 큰 오빠.
 
 아니. 그 개자식 때문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어린 시절 그토록 고생하며 살게 되었던 건.
 
 -동호. 돈 다 날리뿌고 가족 볼 낯이 없다고 고마··· 자살해뿟습니다.
 
 그 개망나니를 따라갔던 친구가 반년만에 돌아와 어머니의 큰 오빠가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외갓집의 칠흑같은 어둠과 가난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내겐 둘째 외삼촌이 큰외삼촌이었고, 셋째 외삼촌이 작은 외삼촌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패악질을 일삼다가 죽었으니 일면식조차 없는 남이요, 어머니를 힘들게 만든, 천하의 망나니였다.
 
 집도 절도 없는 무일푼의 가족들.
 시골의 촌부로 태어나 한 평생을 농사나 지으며 살았던 외할아버지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나. 마을 지주의 땅에서 말이 소작농이지, 밤낮으로 노비처럼 일하고 가족들 입에 풀칠을 했고. 어머니의 배움도 국민학교 졸업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경숙아···. 미안태이······.”
 “어무이. 저는 개안심더. 오빠들이라도 챙기세요.”
 
 가난은 청춘을 일찍 철들게 한다.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우며 한두해를 보내고는 대구의 염색공장으로 취업을 해서 고향을 떠났다.
 한사람의 입이라도 줄여야 했고, 이제 장남이 된 둘째나마 공부를 시켜야 했으며.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는 또 돈을 벌어야 했다.
 어머니가 아직 이팔청춘이 되지 않았을때인데도 말이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사랑놀음을 했을 나이에 어머니는 염색공장에서 밤낮으로 일을 하셨다.
 
 그때가 아마 마지막이었을거다.
 
 우리 어머니의 손이 고왔을 시절이.
 어머니는 그 흔한 매니큐어보다도 봉숭아 물을 들이는걸 너무나도 좋아했다.
 
 “아들. 엄마 이쁘나?”
 “그거는 색도 제대로 안나오는구만. 내가 매니큐어 하나 사드릴까요?”
 “엄마는 매니큐어보다도 이기 그래 좋더라.”
 
 아마도 봉숭아 물을 들일때만큼은 어릴 적 깨끗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 그때만큼은 아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쳐다보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붓고, 굵어지고, 거칠어지는걸 그때의 난 몰랐다.
 
 그래도 어머니가 가장 잘했다고 뿌듯해 하시는 일이 하나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결정했다며, 나를 무릎맡에 뉘이고는 귀를 파주실때마다 자랑하셨다.
 
 “겨···겨···경. 경숙씨. 사···사, 사, 사랑,합,합니다.”
 “저도 좋아예.”
 
 바로 나의 아버지와의 만남.
 당시로는 드물게도 어머니는 불타는 사랑으로 연애결혼을 하셨다. 연애결혼이 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부모님의 반대에도 강행을 하는 일은 드물었으니.
 
 “이 결혼 안된다!”
 “와예!”
 “집에 쌀 한톨도 없는 집구석에 시집가믄 니가 고생한다 안캤나!”
 “제가 좋다했자나예 아부지!”
 “아무튼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
 “제가 사랑합니다. 아부지예···. 이때까지 제가 뭐 하고싶다칸적 한번도 없잖아예···흑···.”
 
 어머니는 사랑을 쟁취하셨다.
 어차피 없는 집안끼리의 만남.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결혼은 이루어졌다.
 그래도 결혼식은 남들 하는거 다 했고, 결혼사진도 남겼다. 외할아버지는 사진 속에서도 인상을 펴지 못하고 계셨지만.
 외할아버지도 우리 아버지가 미워서 반대하신건 아니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막내딸이 조금이라도 행복하시길 바라셨을거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무일푼이었으니까.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행복에서 멀어지는건 확실했다. 그건 그때건 지금이건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응애
 
 결혼식이 끝나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누나가 세상에 태어났다.
 단칸방에서의 결혼생활. 행복했다고 했다.
 어차피 어머니는 자기방 하나없이 오빠들 등살에 치여 살다가, 공장에선 4인1실로 감옥같은 더러운 곳에서 한참이나 사셨고.
 아버지 또한, 가난한 집의 둘째로 태어나 맏이인 형만을 공부시키는 집안에서 열 살때부터 등에 나뭇짐을 지는게 일상인 삶을 살았었으니. 사실 실제 아버지의 아버지. 즉, 내 진짜 할아버지는 전쟁통에 전사하셨고 할아버지의 큰 형에게 아버지는 입적되어 사실상 학대당하고 사셨다.
 아버지가 한쪽 다리를 저셨던 것도 나뭇짐을 지다가 굴러떨어지셨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명절이면 늘 큰집을 찾아가 인사를 하곤 했다.
 아무튼 그랬던 두 사람에게 행복이란 멀리 있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2년 후.
 드디어 내가 세상에 태어났다.
 
 평범했다.
 
 그저 평범한 대한민국의 4인가족 중의 하나가 되었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믿는 적당히 가난한 집안이었다.
 한 여자밖에 모르는 사랑꾼 남자와 순하디 순한 청순가련 여자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자랑이자 결실인 딸과 아들.
 
 어머니는 그제야 행복을 찾으셨다.
 
 “아이고······민욱이 아부지예···. 흑, 이래 내 놔두고 혼자 떠나면 내는 우짭니까···.”
 
 행복은 늘 꿈결같이 다가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
 우리 집의 든든한 기둥.
 우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그때가 내가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하셨는데, 술 취한 상대방 운전자가 중앙선을 침범해 그대로 아버지의 택시를 덮쳤다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을 행복은 끝이 났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자식 둘을 키우는게 그리 쉬운 일이랴.
 차라리 어머니 어릴 적처럼, 적당히 거들면 나았을 것을. 거드는 정도가 아니라 이젠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두 자식을 먹여살리고 입히고, 공부도 시켜야 했다.
 
 어머니는 때로 주방의 아줌마가 되었고, 때로는 공장의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에도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무거운 무릎을 일으켰다.
 
 “엄마. 용돈 좀.”
 “얼마나 필요한데?”
 “한 5만원은 필요하다.”
 
 꼬깃꼬깃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천원짜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 시절이 후회가 된다.
 왜 난 그리도 이기적이었을까.
 
 무릎.
 어깨.
 손목.
 심장.
 혈관.
 허리.
 
 어머니의 몸은 서서히 하나씩 고장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 피와 땀을 영양분삼아 무럭무럭 자랐다.
 
 나이 스물이 되었을 때,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했다.
 그리 좋지도 않은 대학을.
 어머니 곁에 있으며 대학을 다녔어도 충분했을 텐데도.
 그렇게 난 어머니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어머니의 과거는 어머니와 외삼촌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오히려 나와 함께 살아온 세월의 나머지 절반에 대해 난 알지 못했다.
 
 버스는 다음역을 향해 출발하는게 자연스러운 이치요, 이정표는 늘 그 자리에 서서 버스가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
 돌아오라 재촉하지도, 멈추라고 화내지도 않는다.
 
 천하의 불효자···.
 그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 다 가는 대학을 졸업해, 그래도 취업은 이름을 말하면 열에 아홉은 아는 그런 회사에 들어갔다.
 내 나이가 올해로 마흔이 넘었으니, 나름의 풍파를 겪고도 제법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다.
 
 우리의 삶이 늘 그렇듯, 약간의 돈을 벌었다곤 하나 세상이 그리 만만할까.
 
 세상은 늘 더 열심히 달리거라, 멈추면 쓰러진다, 뒤돌아보면 무너진다며 재촉했다.
 
 떠나간 버스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린 죄가 1할이요,
 제가 잘나 달리는 줄 안 죄가 나머지 9할이었다.
 
 출발전엔 누군가가 닦고 조이고, 연료까지 넣어가며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었을 것이 당연한데.
 달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곧잘 잊고는 한다.
 
 - 엄마, 이번 명절엔 못 내려갑니다.
 -어머니. 갈려고 했는데 회사에 일이 생겨서······.
 
 처음 얼마는 설이며 명절이며 고향집을 찾다가 언젠가부터인지 한 해의 두 번의 큰 명절을 하나를 건너뛰었고, 또 어느새부턴가는 두 번을 모두 건너뛰는 일이 잦아졌다.
 당연히 틈틈이 고향을 찾아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절에도 귀찮아 내려가지 않는 자식이 시간된다고 부모를 찾아갔을까···. 그저 제 잘났다며 해외여행이나 갔고, 어설프게 배운 골프 실력이나 친구들과 뽐내며 살아갈 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두 자식들이 부모를 꽃가마에 태울 정도로 성공하지도 못했거니와, 자식에게 손벌릴 수 없다는 어머니의 뜻을 나는 존중이란 이름으로 방치해버렸다.
 
 그렇게.
 
 어머니는 고장난 몸으로 여전히 달려야만 했다.
 열두살의 1월, 그 이후로 5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단 한번의 쉼없이···.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 중간에 대사나 어색한 부분 살짝 수정했습니다.(내용상 관계없는 부분이라 다시보시지 않으셔도 되는 내용입니다.)

* 중간에 아버지 묘사에서 일부분 추가했습니다. 추후에 필요한 부분이라 판단되어 늦기 전에 추가합니다.


댓글(88)

강건한    
흑... 어무이...
2019.04.01 13:48
댄킴    
댓글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릴땐 몰랐는데 이름만으로도 먹먹한 느낌이죠.
2019.04.02 14:50
borislee    
다시 돌아 왔네여... 잘 보고 가며, 소원 성취하시길....
2019.04.02 18:28
댄킴    
boris님 안녕하세요.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이번엔 꼭 기어서라도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2019.04.02 19:05
그냥냅둼마    
아 가슴이 울적해지는데... 나중에는 좀 유쾌해지면 좋겠네요 주인공 가족에게 행복이오길
2019.04.06 22:17
댄킴    
네. 꼭 그래야죠^^
2019.04.07 22:43
내일은    
제목에 오빠 들어가면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능
2019.04.07 07:58
댄킴    
감사합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04.07 22:43
음악.생존    
와......첫 화부터 미치겠네요..... 이런 먹먹한 감동....오랜만입니다.....
2019.04.11 03:29
댄킴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019.04.12 09:02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