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억울하다니까>
운명이란 놈에게 한번 호구는 영원한 호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태어나면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을 확률이 높고, 부자로 태어나면 부유하게 살다가 부유하게 죽을 확률이 높다.
한번 호구 잡히면 끝까지 호구 잡히는 거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일단 나는 아니다.
나는 쥐뿔도 없는 고아 출신에 살인자니까.
“난 안 죽였어.”
20년 동안 습관처럼 중얼거린 말이다.
옆에서 밥 먹던 호운이 힐끔거렸다.
“출소 앞두고 상태가 왜 이래?”
“기분이 좋겠냐. 20년 꼬박 채우고 나가는데.”
“그래도 나가는 게 어디에요.”
“하긴. 종신형 아닌 게 다행이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놨다.
상을 둘러싸고 식사하던 감방 식구들도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먹어라.”
며칠 전부터 입맛이 없다.
조기출소가 아니라 만기출소라 그렇다.
진범이 잡혀서 누명 벗는 것이 꿈이었는데, 현실은 죗값 다 치른 전과자라니.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도 의미가 없다.
***
20년 전.
아직도 모든 것이 생생하다.
특히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던 피자 냄새가.
당시 나는 돈이 없어 며칠 굶은 상태였다.
그에 반해 누군가는 몇만 원짜리 음식을 턱턱 사 먹는다는 현실이 비참했지.
‘미친 척하고 그냥 먹어버릴까?’
엘리베이터가 17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무심코 현관문을 잡고 열어버렸다.
“그걸 왜 열어? 보통 사람이 없으면 문을 열어보나? 벨을 누르던가, 전화를 해야지.”
나를 취조하던 형사의 질문이 여기서 시작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보는 관점에 따라 충분히 의심할 수 있어.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배가 고파서 정신이 없었다.’ 정도가 제일 설득력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거실에 깨져있는 화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흩뿌려진 흙과 옷가지, 쓰러져있는 쓰레기통, 소파 끝에 튀어나온 검은색 머리카락.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어요.”
나는 잠자듯 누워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따뜻한 정오의 햇살이 그녀의 하얀 살결 위로 쏟아졌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외모와 긴 팔다리.
하나의 화보를 보는 것 같았다.
우주에 맹세컨대, 나는 그녀가 죽은 지 몰랐다.
그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나는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죽은 지 몰랐다고? 머리가 깨져서 죽은 사람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기서 형사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머리카락에 피딱지가 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그걸 몰랐냐고.
글쎄. 그때 내 눈에는 그런 게 들어오지 않았다.
변명하자면 순수한 아름다움에 홀렸다고 할 수 있지.
“아, 연예인이었어요?”
진술하면서 처음 알았다.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여배우, 해수라는 것을.
먹고 살기 힘든데 텔레비전 볼 시간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해수를 몰라? 이 새끼 간첩이야 뭐야?”
취조실 조명 아래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처음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다가올 20년이 얼마나 좆같을지 본능적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지나갔다.
어디선가 증거들이 뚝딱뚝딱 생겨났고, 기자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트려댔으며, 내 손목에는 쇠고랑이 감겼다.
고아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던 것처럼 인생 조졌다는 것도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
나는 수십 권의 스크랩북을 훑어봤다.
지난 20년 동안 신문에 실린 모든 기사와 정보를 정리한 보물이었다.
출소까지 진범이 잡히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잡겠다며, 공부하고 또 공부한 흔적들.
덕분에 여기 있으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폼은 모조리 꿰고 있었지.
“형님. 일단 밥부터 드셔요.”
상범이 내 손에 숟가락을 쥐여줬다.
몇 달 전에 들어온 막내였는데, 서글서글하니 성격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 성격으로 사람들 등 처먹고 살았지만.
“원래 인생 꼬인 만큼 말년 복이 좋대요.”
호운은 유명한 해커였다.
한참 잘 나갈 때, 국회의원의 섹스 비디오를 터트리는 바람에 잡혀 들어왔다.
상대 당원의 사주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놈은 방긋 웃으며 대답을 안 해준다.
어쨌거나 의뢰인에게 제대로 한몫 당겼는지 우리 중에서는 제일 부자인 놈이다.
“당연하지! 우리 형님 출소하면 꽃길만 걷는 거야.”
“한국인은 밥심 아닙니까. 뭘 하든지 먹어야 해.”
“여기 밥 마시따고 다시 들어오면 안 돼. 알게찌?”
조직폭력배 생활을 청산한 달곤이.
여자 마음 빼고 다 훔칠 수 있다는 하성이.
강남에서 제일 날렸다는 호스트 잭슨까지.
감방 식구들이 거들며 내 밥 위에 반찬을 올렸다.
코끝이 찡해졌다.
혈육 없이 자란 나에게 이들은 첫 번째 가족이다.
나는 밥을 꾸역꾸역 씹어댔다.
“나가면 뭐 할 거예요?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가 순진하게 웃었다.
하고 싶은 거라, 있긴 있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것.
고아인 내가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
바로 경찰이다.
제복을 입고 정의를 수호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어릴 적부터 키워온 환상은 아직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범죄자 신분으로는 절대 불가능.
꿈은 영원히 꿈으로 남게 될 것이다.
“형님 몸도 좋으니까 헬스장 하나 차려요.”
“그, 그러게. 여기서 몸 하나는 제일 잘 쓰잖아.”
사정을 아는 감방 식구들이 애써 말을 돌렸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나머지 밥을 떠먹었다.
“2110. 밥 다 먹었어?”
김 소장이 창틀 사이로 나타났다.
아직 식사 시간인데?
내가 당황하며 고개를 젓자 소장이 손을 쑥 내밀었다.
“어어. 천천히 먹어. 이거 좀 전해달라고 해서.”
그의 손에는 하얀 편지 봉투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우편 배송 자체가 없는 날이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받자 김 소장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받아. 나도 전해 받은 거야.”
개인적으로 전달을 부탁했다는 것은 돈까지 찔러 넣었다는 뜻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나에게 그럴만한 사람이 있었나?
감방 식구들도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 궁금했는지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편지를 살펴봤다.
보낸 사람 없이 내 이름만 적혀있었다.
“빨리 뜯어 봐요. 형님 혹시 애인 있었어?”
“내가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누구람. 20년 동안 편지 받은 걸 본 적이 없는데.”
“아녀. 해수 팬들한테 많이 받았잖아. 저주 편지.”
“조용히 해.”
나는 눈을 흘기며 편지 끝부분을 뜯었다.
정성 들여 전달한 편지치고 내용물은 별거 없었다.
단 두 문장.
‘해수 사건에 대해 말할 것이 있습니다. 출소 날,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뭐야? 출소하는 날 기다린다고?”
“형님 좋겠네. 두부 먹을 수 있어서.”
“바보들아, 두부가 문제냐? 사건에 대해 말할 게 있다는데.”
식구들의 투덕거리는 소리가 아득해지면서 몸이 떨려왔다.
누구일까?
누구인데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일까?
“진범을 알고 있을 수도.”
호운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뭔가 깊이 생각할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다.
진범의 정체를 알거나, 비상식적으로 돌아간 수사에 대해 고백하거나.
“내가 그랬죠? 형님 인생 끝은 해피엔딩이라니까.”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고마웠다.”
“무슨 섭섭한 소리를 하셔.”
“안 그래도 좁은 방, 책 쌓아두게 해줘서 고마워.”
“저 종이 쪼가리들 안 봐서 속은 시원하오.”
나는 식구들과 얼싸안으며 환하게 웃었다.
출소 이틀 전, 나는 짐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편지를 소중하게 챙겼다.
지난 20년 보다 의문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며칠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
새벽 다섯 시.
아직 하늘은 어둡다.
바로 그날,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날이다.
교도관이 짐 검사를 마치자 그를 따라 출소자 대기실로 향했다.
만기복을 벗은 후 곱게 접어 수납장에 올려놨다.
손이 떨린다.
교도소 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것은 피자 브랜드 로고가 박힌 점퍼.
갑자기 구속당하는 바람에 이걸 입고 들어왔었지.
기사 사진에도 찍혀서 화제가 됐던 걸로 기억한다. 주가가 급락했다나 뭐라나.
나는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청년에서 중년이 되었지만,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다 갈아입으셨습니까? 신분 확인하겠습니다.”
“네. 잠시만요.”
나는 가방을 들쳐 맸다.
20년이란 세월이 작은 가방에 모두 담겼다.
“수감번호 2110 맞습니까?”
“네.”
“이름과 생년월일, 확인해주십시오.”
“맞습니다.”
“그간 고생하셨습니다. 배민수 씨, 20XX년 4월 1일 자로 출소하셨습니다.”
나는 같이 출소하는 사람들과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새벽 공기의 효과인지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
밤을 꼴딱 새웠는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신분 확인 후, 문이 열렸다.
“다신 보지 맙시다.”
교도관이 장난을 담아 인사를 건넸다.
나는 웃으며 세상을 눈에 담았다.
주위로 출소자들을 반기는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두부 냄새가 정겹다.
그나저나 편지 보낸 사람은 어디 있지?
“아.”
저 멀리 나를 보고 있는 한 남자.
어두운 데다 모자까지 쓰고 있어 얼굴이 안 보인다.
나는 갓길을 따라 그에게로 걸어갔다.
남자는 검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설마 두부인가?
그때 갑자기 남자가 내 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봉투까지 내팽개치고.
“조심해요!”
빠앙-빠앙-
대체 뭘 조심하라는 거야?
등 뒤로 불빛이 아른거렸다.
뒤를 도는 순간 보이는 것은 집채만 한 덤프트럭.
터엉-!
“으아아악-!”
내 몸이 붕 뜨고, 갓길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척추가 모두 터져버리는 것 같다.
차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리더니 의문의 남자까지 덮쳐버렸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 그의 몸이 고꾸라지는 것이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이람.
개 같은 인생 더 꼬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운이가 내 말년 좋다고 그랬는데.
하늘에 내가 그간 모았던 신문 조각들이 흩날렸다.
새벽하늘 저편에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구급차! 구급차 불러요!”
“괜찮으세요?”
누군가 내 볼을 툭툭 건드린다.
손바닥에 그려진 호랑이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저 사람···웃고 있잖아?
그놈이구나.
그놈이 날 죽이는구나.
정신이 흐려진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저 문신을 따라가다 보면 진실이 있을 거라고.
“고지훈씨···지훈···”
근데 누가 자꾸 엉뚱한 이름을 부르네.
나는 지훈이가 아니라 배민수예요.
아, 어지러워. 이제 진짜 죽음이 다가오는 것 같다.
개새끼.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너는 내가 죽어서라도 알아낸다.
알아내서 평생 따라다닐 거야.
그리고 혹시 신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제발 평범하게 살게 해주세요.
운명에게 호구 안 잡히게 해 달라 이 말이에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고지훈 씨.”
고지훈?
···저요? 저한테 하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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