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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눈High Noon 1-1권

2019.04.02 조회 2,158 추천 17


 # 1화. 프롤로그 ― 검은 마녀(Black Witch)
 
 서드 컨티넨트 서부 개척마을 포트럴.
 금광이 발견되면서 갑자기 발전한 흔하디흔한 개척마을이었다. 자본가, 광부, 운반업자 등이 자리 잡고, 장사꾼, 창녀, 무법자, 보안관 등이 따라와서 작은 도시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황금의 시절은 금방 저물었다. 금 채굴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광산업자가 파산하면서 광산개발도 잠정 중단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철부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늙은이와 불법으로 사금을 채취하는 좀도둑(Gold Prospector)무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끼리릭―
 
 ‘포트럴 바(bar)’라고 이름 지어도 혼란이 생기지 않는 포트럴 마을의 단 하나뿐인 술집. 키가 크고 깡마른 한 사람이 스윙 도어(Swing door)를 몸으로 밀며 들어왔다. 햇살을 막기 위해 텐갤런 햇(일명 카우보이 모자)을 눌러쓰고 바람막이 판초를 두르고 있었다. 바텐더가 손님을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여, 카우걸!”
 “··· 그렇게 부르지 마.”
 
 카우걸은 바텐더 앞자리에 앉아 카우보이 모자를 벗었다. 밤하늘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황야와 어울리지 않는 하얀 피부와 잘 대비되었다. 카우걸은 모자를 바 위에 올려 두고 말했다.
 
 “늘 마시던 걸로.”
 
 바텐더는 껄껄 웃으며 바 아래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고소한 냄새. 고운 빛깔. 값싸고 영양가 높지만 술집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음료였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우유야?”
 “··· 몸에 좋아.”
 
 카우걸은 우유를 홀짝이며 대꾸했다. 옆자리 손님도 피식 웃었지만 별말 하지 않았다. 카우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또 다른 손님이 스윙 도어를 박살 낼 기세로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손님‘들’이었다. 시가를 꼬나물고 잘근잘근 씹는 남자, 먼지투성이 두건을 뒤집어쓴 남자, 그리고 어깨 위에 44구경 윈체스터 라이플을 걸친 상처투성이 남자였다.
 
 “··· 얼마야?”
 “700, 800, 1200.”
 “··· 우윳값 내고도 조금 남겠네.”
 
 카우걸과 바텐더는 얼굴을 맞대고 속삭였다. 그러는 사이 거친 남자들은 술집 안을 헤집고 다녔다. 시가 남자와 두건 남자는 엄한 손님을 발로 차고 멀쩡한 테이블을 뒤집으면서 ‘나는 무서운 무법자’임을 과시했다.
 
 “이런 깡촌에도 술집이 있네?”
 “어이, 주인장! 술 가져와! 술!”
 
 그러자 상처투성이 남자가 윈체스터 라이플로 의자를 툭 쳐서 세우고 말했다.
 
 “먹고살겠다고 발버둥 치는데 살살해라.”
 
 카우걸은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고 우유를 꼴깍꼴깍 마셨다. 그러다 시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쓸 만한 여자도 있잖아?”
 “오호! 깡촌이라 촌녀만 있을 줄 알았는데.”
 
 카우걸은 빈 우유 잔을 바 위에 올려 두고 건들건들 다가오는 거친 남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 정지.”
 
 거친 남자들은 얼떨결에 멈춰 섰다. 그러나 곧 어린 여자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과장된 동작으로 난폭하게 웃어 보였다.
 
 “뭐? 정지? 정지라고? 파하하!”
 “낄낄! 완전 내 취향인데?”
 
 카우걸은 몸을 완전히 돌리고 말했다.
 
 “···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확인 작업 없이 사살할 거야. 잭, 징거, 부트. 24인 열차 강도 일당 맞지?”
 
 카우걸이 이름을 부르자 거친 남자들의 얼굴이 변했다.
 
 “너 누군데 그 이름을······.”
 “조심해! 그 녀석이다!”
 
 상처투성이 남자가 윈체스터 라이플을 견착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카우걸의 두 손은 이미 허리춤으로 내려가 있었다.
 
 타타탕―!
 
 포트럴 마을 포트럴 바 안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카우걸은 오른손으로 리볼버를 뽑아 들고, 왼손으로 공이를 세 번 튕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퀵 드로우(Quick Draw)*, 그리고 정확한 패닝샷(Panning Shot)*이다.
 
 “끄으······.”
 
 풀썩― 우다탕―!
 1초 남짓한 사이, 거친 남자들이 거친 시체로 바뀌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카우걸은 리볼버를 입술로 가져가 총구 밖으로 흘러나오는 화약 연기를 후― 불었다. 45구경 콜트SAA(Single Action Army), 피스메이커(Peacemaker)였다. 바텐더는 바 아래로 몸을 숨기고 눈치를 살피다가 상황이 종료되자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끝났나? 끝났어? 이야! 언제 봐도 카우걸의 솜씨는 끝내주는군! 저 무법자 놈들이 검은 마녀(Black Witch)라고 부르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카우걸, 또는 검은 마녀가 우유 잔을 내밀었다.
 
 “··· 한잔 더.”
 
 
 ―――
 
 퀵 드로우(Quick Draw) :
 총을 ‘빨리 뽑는’ 기술. 고전 서부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술이다.
 
 패닝 샷(Panning Shot) :
 리볼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술. 방아쇠를 당긴 채로 공이를 튕겨서 연속 발사한다. 노련한 총잡이는 1초에 6발을 모두 쏘기도 한다.
 
 # 2화. 포트럴 마을
 
 서드 컨티넨트. 신대륙이라 불리는 광활한 대지.
 약 3세기 전, 유라피아 대륙―구대륙에서 모험가, 혹은 개척자라 자칭하는 자들이 이 땅을 밟았다. 그 이후 땅을 구하는 자, 자유를 원하는 자, 명예를 추구하는 자 등이 쉼 없이 넘어왔다. 그들은 총과 대포로 원주민과 몬스터를 몰아내며 점차 영토를 넓혀 갔다. 그 길고 긴 개척의 역사가 무려 200년간 지속되었다.
 
 “··· 흐아암.”
 
 카우걸은 기지개를 피면서 하품했다. 하룻밤 5페닝 하는 싸구려 여관이지만, 아침 햇살이 잘 들어오고 포트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아서 줄곧 머물렀다.
 
 “카우걸? 카우걸!”
 “··· 하아.”
 
 카우걸은 한숨을 내쉬고 방문을 열었다. 포트럴 바 주인 겸 바텐더가 아침부터 찾아왔다.
 
 “··· 무슨 일?”
 “현상금 나왔어. 그놈들 몸값이 좀 올랐더라.”
 
 바텐더는 돈주머니를 툭 던져 주었다.
 
 “800, 1000, 1500. 도합 3,300페닝. 그중에서 세금 떼고, 정보료 떼고, 운송비 떼고, 수수료 떼고 1,500페닝이야. 불만 없지?”
 “··· 불만 많아. 하지만 참아야지.”
 
 카우걸은 1,500페닝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계산이 끝나지 않았다. 바텐더가 손을 내밀었다.
 
 “이제 줘야지.”
 “··· 뭘?”
 “밀린 외상값! 숙박비랑 식비랑 우윳값이랑······.”
 “··· 얼마야?”
 “숙박비 55페닝, 식비 60페닝, 우윳값 15페닝.”
 
 카우걸은 멍한 얼굴로 숫자를 더하고는 은화 13장을 꺼내주었다. 그리고 남은 돈을 꽁꽁 싸서 가슴속에 넣었다. 더 달라고 할까 봐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바텐더는 얼굴을 붉혔다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제를 바꿨다.
 
 “총질 한 번으로 1,000페닝이나 벌었잖아? 나도 현상금 사냥꾼이나 할 걸 그랬나?”
 “··· 넌 안 돼.”
 “내가 왜? 어째서?”
 “··· 죽어.”
 
 ***
 
 카우걸은 총기를 점검했다. 카우걸이 가지고 있는 총은 모두 세 정이었다. 오른쪽 허리 홀스터에 차고 다니는 45구경 싱글액션 콜트 ‘피스메이커’, 허리 뒤 홀스터에 차고 다니는 32구경 더블액션 콜트 ‘레인메이커’, 그리고 왼쪽 종아리에 숨겨 놓은 38구경 더블액션 S&W 모델10 이었다.
 카우걸은 리볼버를 홀스터에 차례로 꽂아 넣고 판초를 둘렀다.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를 푹 눌러쓰는 것으로 외출준비를 끝냈다.
 카우걸은 여관을 나와서 골목을 건너고 대로를 지나서 포트럴 마을광장에 도착했다. 그사이 여러 사람들을 마주쳤다. 아침 햇살을 쬐는 늙은 광부. 밤새 술 마시고 쫓겨나온 주정뱅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꼬마 등등. 황금을 잃은 마을이지만 사람은 남아 있었다.
 
 “카우걸, 좋은 아침일세.”
 “이야! 우리 이쁜이! 끄윽··· 술 한번 마시자니까.”
 “어? 누나! 퀵 드로우 샷 보여 주세요!”
 
 카우걸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광장 한구석에 위치한 철도은행으로 들어갔다. 포트럴 마을 광산업자는 파산했지만, 그 담보로 잡힌 금광과 저택 등이 처분되지 않아서 은행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은행장 겸 상담원 겸 사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소년이 카우걸을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어제 한바탕 했다면서요?”
 “··· 응.”
 “오늘 오실 줄 알았죠. 예금하실 거죠?”
 “··· 응.”
 
 카우걸은 돈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은행장 소년은 능숙한 솜씨로 돈주머니를 뒤집고 금화와 은화를 구분해서 착착 쌓았다.
 
 “1,350페닝이네요. 지금 사용하는 계좌로 입금할까요?”
 “··· 부탁해.”
 
 은행장 소년은 돈을 다시 쓸어 담고 철도은행 금고 안에다 넣었다. 그리고 예금증서를 두 장 작성해서 한 장은 카우걸에게 주고, 나머지 다른 한 장은 서류금고 안에 고이 넣었다. 서류금고 내용물은 철도은행 본사로 옮겨져서 카우걸이 돈을 되찾을 때 증명서류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모은 돈이 상당하지 않아요?”
 “··· 얼마 없을 거야.”
 “어? 다 썼어요?”
 
 카우걸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예금증서를 챙겨 나왔다. 낮 동안 찾아가야 할 곳이 많았다.
 
 카우걸은 철도은행 맞은편에 위치한 포목점 겸 가죽점 겸 잡화점을 찾아갔다. 인사도 하고 노크도 했지만 귀가 어두운 영감은 알아듣지 못했다. 카우걸은 영감의 어깨를 두드린 후 큰 소리로 수선 맡긴 신발, 판초, 그리고 더플백(Duffel Bag)*을 요구했다.
 
 “왜 소리 지르고 염병이야!”
 
 영감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쪼물딱거리던 가죽 신발을 내주었다. 구멍 나고 밑창 떨어진 신발이 마치 새것처럼 고쳐져 있었다. 카우걸이 활짝 웃자 포목점주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만 찾아와!”
 “··· 그럼 영감이 돈을 못 벌잖아.”
 “돈을 준다고?”
 “··· 미안. 외상으로 해 줘.”
 “외상을 갚는다고?
 “······.”
 
 카우걸이 끙끙거리자 영감은 껄껄 웃으며 그냥 가라고 손짓했다.
 
 “다신 오지 마!”
 “··· 또 올게.”
 
 카우걸은 신발을 갈아 신고 조금 걸어 보았다. 그리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직업 특성상 총알만큼이나 자주 소모되는 것이 신발이었다. 수배자를 추적할 때는 하루 30~40킬로씩 걸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튼튼한 소가죽 신발도 한 달이 못 가 망가졌다.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만져 보고, 발을 굴려 보고, 더플백 어깨끈을 꽉 쪼인 후 중얼거렸다.
 
 “··· 준비됐어.”
 
 카우걸은 포트럴 마을광장을 지나 외진 곳에 위치한 보안관 사무소를 찾아갔다. 포트럴 마을에는 유일무이한 보안관이 한 명 있지만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지난 남북전쟁 당시 악명을 떨친 1사단 11연대 소속 유격대원이었다고 자랑하는데 목살이 두툼하고 아랫배가 볼록 나와 마을이나 제대로 돌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카우걸은 경첩이 하나 떨어진 보안관 사무소를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 나 왔어.”
 “오오! 포트럴의 영웅! 포트럴의 자랑! 포트럴의 희망! 이제 왔는감?”
 “··· 하지 마.”
 
 카우걸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과 오물을 피해 책상으로 다가갔다. 보안관은 독한 럼을 나발로 불며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자네 덕분에 꺼억― 오늘 술값을 벌었구먼!”
 “··· 저러다 갑자기 죽지.”
 
 보안관은 껄껄 웃으며 서랍에서 총알 상자를 꺼내 주었다.
 
 “45구경 롱 콜트 카트리지. 30발. 맞지?”
 
 카우걸은 총알 상태와 숫자를 꼼꼼하게 확인한 후 돈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보안관은 껄껄 웃으며 은화를 세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잠깐. 3페닝 모자라.”
 “··· 망할.”
 
 카우걸은 총알 6발을 도로 빼서 책상 위에 던져 놓았다. 보안관은 서랍 안에 쓸어 넣고 다시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으하핫! 역시 깔끔해서 좋다니까!”
 
 카우걸은 그러거나 말거나 책상 위에 쌓인 종이뭉치들을 뒤적였다. 수개월 전 광고지부터 오늘 자 현상 수배지까지 다양했다.
 
 “자네 대리인이 벌써 확인하고 갔어.”
 “··· 내 대리인 아니야.”
 
 카우걸은 현상 수배자를 훑어보았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 무장강도, 말도둑, 좀도둑, 성범죄자 등등 온갖 군상이 다 있었다. 그중 눈에 잘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 24인 열차 강도?”
 “오! 요즘 가장 핫한 놈들이지. 현장에서 7명이 사살되었고 17명 도망쳤는데, 자네가 어제 잡은 3놈 포함해서 9명만 확인됐어.”
 “··· 체포된 곳이 전부 웨이던 지방이야?”
 “눈썰미가 좋구먼. 뭣 때문인지 꾸역꾸역 서쪽으로 오고 있어.”
 
 카우걸은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보안관은 ‘그거 공무 방해야. 응? 아니야?’ 등을 중얼거렸지만 말리지 않았다. 카우걸은 곧 연방정부 법무부에서 보낸 요청서를 찾아냈다.
 
 “··· 24인 열차 강도 두목 처질 폰 체포요청······.”
 
 카우걸은 몇 장 더 넘겨보았다. 외모, 무장, 도주 방향 등이 현상 수배지보다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보안관은 거창하게 트림하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놈은 그냥 둬. 연방보안관*을 두 명이나 죽인 미친놈이야. 소문에는······.”
 “··· 가져갈게.”
 
 카우걸은 현상 수배지와 연방정부 요청서를 챙겨서 나갔다. 보안관은 ‘어? 어어?’ 하면서 손을 휘저었지만 카우걸을 붙잡기에는 너무 둔하고 많이 취했다.
 
 ***
 
 카우걸은 여관방으로 돌아와 연방정부 표시가 새겨진 서류를 다시 검토했다. 잭, 징거, 부트 3인조 일당과 마찬가지로 처질 폰이란 작자도 서부 횡단 열차를 따라 웨이던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대체 왜?’
 
 카우걸은 서드 컨티넨트 서부지도를 꺼냈다.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남부와 북부지방을 제외하고 철도를 중심으로 상세하게 지형이 나와 있었다. 서드 컨티넨트를 십(十)자로 나누는 서부 횡단 열차와 남부 종단 열차를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각 지방 철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카우걸은 목탄으로 뉴 린딘에서 포트럴 마을까지 철로를 연결하고, 24인 열차 강도가 목격된 지방을 하나씩 표시했다. 그러자 쉽게 결론이 나왔다.
 
 ‘사흘 이내에 지나간다.’
 
 카우걸은 현상 수배지를 다시 보았다.
 
 ― 처질 폰. 살인 및 강도. 생사 불문 5,500페닝.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카우걸은 더플백을 열고 육포, 수통, 침낭, 신발, 성냥, 가죽끈 등을 대충 쑤셔 넣고 어깨에 메었다. 마지막으로 리볼버과 나이프를 점검하고 방을 나갔다. 여관주인이 파이프 담배를 버금버금 피우다가 알은체했다.
 
 “헤이! 카우걸! 어디가?”
 “··· 역에.”
 
 포트럴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 역까지 도보로 반나절 거리였다. 카우걸의 가장 유명한 별명인 ‘블랙 위치’도 위치 역의 영향이 컸다. 카우걸이 체포 혹은 사살한 범죄자가 전부 위치 역에서 이송되기 때문이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귀신같은 사격 솜씨를 가진 젊은 여자가 ‘위치’에서 수배자를 보내오니 연방정부 관리가 보고서를 받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쉽게 상상이 갔다.
 
 “그럼 저녁은?”
 “··· 안 먹어.”
 “그럼 우유도?”
 “··· 지금 줘.”
 
 카우걸은 기름이 둥둥 뜬 우유를 벌컥벌컥 마신 후 여관을 나섰다.
 
 
 ―――
 
 더플백(Duffel Bag) :
 성긴 모직물인 더플(Duffel)로 만든 가방(Bag)이다. 더플은 코트와 모포에도 많이 사용된다. 군필자에게는 ‘의류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국군 의류대는 더플이 아니라 화학섬유로 만들어져서 엄밀히 말하면 더플백이 아니다.
 
 보안관(sheriff) & 연방보안관(Marshall) :
 보안관(sheriff)은 시장이 임명하거나, 시민이 선거로 선출하는 자경대장이라 할 수 있다. 지역 내 치안을 관리하고 범죄를 수사하는 등의 사법권한을 가진다. 경찰과 유사하지만, 경찰과 별개로 운영되는 지역자치조직이다.
 연방보안관(Marshall)은 연방정부 소속의 국가공무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안관’이지 하는 일은 수사관 내지 해결사에 가깝다. 서부개척시대 연방보안관은 악명 높은 인간 사냥꾼이기도 했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인 출신으로 임명되며, 악질 범죄자를 추격, 체포, 혹은 사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 3화. 현상금 사냥꾼
 
 카우걸은 한때 말을 키울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말값, 먹이값, 그리고 마구간 관리비가 부담되어서 포기해야 했다. 그 이후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한나절 동안 터벅터벅 걸어 다녔다.
 위치 역을 가는 길은 황량하고 삭막하다. 마른 땅. 마른 풀. 그리고 뿌연 먼지.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맑은 강이 흐르는 푸른 초원지대가 있지만 원주민과 몬스터와 접점이 많아 보수적인 유라인(=구대륙인)은 잘 나가지 않았다.
 
 “··· 다 왔다.”
 
 카우걸은 위치 마을 입구에서 한숨을 쉬었다. 포트럴 마을보다 3~4배 더 큰 마을이었다. 밤이 깊어 옴에도 불을 밝히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카우걸은 불빛을 따라서 걸었다. 역 주변 지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역마차 정류장을 지나고, 구두 가게를 지나면, 총알과 맥주잔이 그려진 ‘원샷’이란 여관 겸 술집이 나타난다. 카우걸이 자주 찾는 위치 마을 단골 가게였다. 여관주인 겸 주방장이 카우걸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어? 총잡이 아가씨잖아? 언제 왔어?”
 “··· 방금.”
 
 카우걸은 더플백을 내려놓고 힘없이 앉았다. 나이 든 웨이트리스가 먼지 좀 털고 들어오라고 투덜거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이 시간에 드문 일이네. 뭐 좀 줄까?”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서 해가 저물었다. 하지만 여관주인은 단골손님을 위해 특별히 야식을 준비했다. 혹은 단골손님이 허리에 찬 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카우걸은 파스타와 미트볼을 대충대충 주워 먹으며 말했다.
 
 “··· 열차 언제 와?”
 “이틀 전에 한 대 지나갔으니까, 내일쯤 들어오겠네. 어디 멀리 가?”
 “··· 아니.”
 
 카우걸은 끼니를 때우고 ‘··· 외상’이라고 웅얼거렸다. 여관주인은 ‘허! 허허!’ 웃으면서 알았다고 했지만, 나이 든 웨이트리스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노려보았다. 그냥 웨이트리스가 아니고 나이 차 나는 동생 내지 조카인 모양이다. 카우걸은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리고 방도 하나.”
 
 ***
 
 카우걸은 눈을 뜨자마자 베개 밑에 넣어 둔 M10 리볼버를 잡았다. 그리고 가상의 표적을 두 번 정도 위협한 후 자신이 왜 그랬는지 고찰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빠아아아아― 아앙―!
 
 위치 역으로 열차가 들어왔다. 역 앞에는 승객과 장사꾼이 뒤섞여서 북적북적 소란을 피웠다. 카우걸은 눈을 깜박이다가 벌떡 일어났다. 번개 같은 동작으로 신발을 신고, 건 벨트를 차고, 모자와 판초를 손에 들고 뛰쳐나갔다. 승객도 몇 명 없는 변변치 않은 시골 역이라 열차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길어야 30분이었다.
 
 “총잡이 아가씨? 조금 전에 열차 들어왔는데?”
 “··· 응! 늦잠 잤어!”
 
 카우걸은 허둥지둥 달려갔다. 증기기관 열차가 탄수차(炭水車)를 채우는 사이, 승객들은 땅을 밟고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행상인과 마을 아이들은 뭐라도 하나 팔려고 목청 높여 승객들을 불렀다.
 그러나 서부행 열차라서 승객도 많지 않고 장사도 잘되지 않았다. 웨이던 지방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동부에 위치한 뉴 린딘 시였고, 자연히 동쪽으로 가는 손님이 돈도 많았다.
 카우걸은 걸리적거리는 행상인 무리를 뚫고 열차 앞에 도착했다. 열차장과 부르주아 계급 승객이 담소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당장 출발할 것 같지는 않았다. 카우걸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열차 칸을 훑어보았다.
 첫 번째 칸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상류층 사람이 우아하게 탑승했고, 그 뒤로는 서부철로 공사장으로 가는 인부, 말단군인, 심부름꾼, 잡상인 등 옹기종기 모여 탑승했다. 그중 처질 폰으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 너무 쉽게 생각했나?’
 
 처질 폰이 열차를 이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연방보안관이 눈에 불을 켜고 쫓고 있을 텐데 대놓고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카우걸은 조금 난감해졌다. 5,500페닝에 혹해서 무작정 달려온 것이 조금 후회스러웠다.
 
 “이봐! 승객이 아니면 내리··· 십시오.”
 
 열차 승무원이 짜증을 내며 다가오다 건 벨트를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총 앞에서는 신분과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는 예의가 필요했다.
 
 “··· 미안.”
 
 카우걸은 힘없이 내려서 열차 뒤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열차가 오려면 3일이 더 걸린다. 그때까지 ‘원샷’에서 신세질 수도 없고, 설령 사람 좋은 여관주인이 외상으로 숙식을 허락해도 3일 후 처칠 폰이 나타난다는 보장이 없다. 일단 포트럴 마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것이 좋을 듯했다.
 
 ‘··· 응?’
 
 카우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열차 주위를 돌다가 이상한 사람을 하나 발견했다. 주먹보다 조금 큰 나무통을 한가득 짊어진 사람이었다. 남의 눈에 띌까 무척 조심했는데, 그 덕분에 카우걸 눈에 잘 띄었다.
 
 ‘··· 증기 연료(Steam Fuel)*인데?’
 
 카우걸은 나무통을 유심히 관찰했다. 고급열차, 기관차, 그 이외 소형기계 동력원으로 규격화된 연료통이었다.
 
 ‘··· 왜 화물칸으로 가져가지?’
 
 싸구려 석탄 열차에서 사용할 물건도 아니거니와, 화물칸에 보관할 물건도 아니었다. 저 중 하나라도 폭발하면 대형 참사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카우걸은 허리에 찬 콜트 피스메이커를 쓱 만지고 이상한 남자를 따라갔다. 화물칸 가까이 붙어서 귀를 기울이자 푸닥거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이 병X아! 이걸 다 보이게 들고 오면 어떡해! 아주 강도단 두목이 탔다고 광고하지 그러냐? 엉?”
 “그, 그놈이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저도 시간이 없어서······.”
 “니 바지라도 벗어서 싸매고 왔어야지! 이런 멍청한 놈만 있으니 일이 꼬이지! 야! 너 한 대 더 맞아라.”
 
 잠시 뒤 돼지 잡는 소리와 포대 자루가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워낙 시끄러워서 처질 폰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 화물칸에 탄 일당이 정상은 아니겠지?”
 
 바아암―! 바아암―!
 열차 출발 시간이 되었다. 기관장이 기적 소리를 내며 사람들을 물렸다. 승객들은 서둘러 열차에 오르고, 창문 아래에서 군것질거리를 팔던 어린아이들은 후다닥 물러났다. 카우걸은 그 혼란을 틈타 화물칸에 숨어들었다.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곤욕을 치르겠지만, 운이 좋아 처질 폰을 체포하면 무마할 수도 있다.
 덜컹― 덜컹―
 빠아아아아―앙―!
 서부행 증기기관 열차가 검은 증기를 뿜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카우걸은 크고 작고 둥글고 네모난 화물 사이로 화물칸 일당을 관찰했다. 총 세 명이었고, 리볼버와 군용대검으로 무장했다. 카우걸은 화물칸 일당이 승객실로 이동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드러냈다. 운행 중에도 화물칸에 숨어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니니까.
 
 “··· 흐음. 흠.”
 
 카우걸이 인기척을 내자 화물칸 일당이 즉시 반응했다. 기대한 대로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다짜고짜 총과 대검을 꺼내 든 것이다.
 
 “누구냐!”
 
 카우걸은 화물짐에 기대어서 오른쪽 몸만 드러냈다. 반격과 엄폐가 자유로운 포지션이다. 그 행동이 화물칸 일당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카우걸이 쐐기를 박았다.
 
 “··· 처질 폰이 누구지?”
 “현상금 사냥꾼이다!”
 
 타타탕! 탕!
 화물칸 일당은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봤는지 즉시 사격했다. 카우걸은 화물짐에 몸을 바짝 붙이고 오른손으로 응사했다. 한 명당 한 발씩. 이 거리에서는 정조준조차 필요 없었다. 정확히 손목과 하박을 뚫었다. 45구경 롱 콜트 총탄은 아주 간단히 근육을 찢고 뼈를 부수었다.
 
 “컥!”
 “으헉!”
 
 화물칸 일당은 각기 각색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카우걸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 아닌가?”
 
 카우걸은 너무 쉽게 제압이 되어 미심쩍었다. 인간병기라 불리는 연방보안관을 두 명이나 살해한 5,500페닝짜리 악당으로 보이지 않았다. 카우걸은 바닥에 쓰러져서 남이 듣기 좋지 못한 소리를 내는 화물칸 일당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총기와 무기들을 발로 차서 멀찍이 치우고 심문했다.
 
 “··· 처질 폰이 누구야?”
 “이 계집년이······!”
 
 탕!
 카우걸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주저 없이 머리를 날려 버렸다. 협박도, 경고도 없었다. 심지어 표정조차 무덤덤했다. 지루함과 귀찮음을 더한 다음 반으로 나눈 듯한 표정이었다.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 공이를 당기고 두 번째 남자에게 물었다.
 
 “··· 처질 폰이 누구야?”
 
 두 번째 남자는 카우걸의 시원시원한 태도에 감명을 받았는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우, 우리는 아니야! 두목은 저 뒤에······.”
 
 펑!
 그러나 협조한다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카우걸과 화물칸 일당의 머리 위로 크고 무거운 화물짐이 와르륵― 무너져 내렸다. 카우걸은 잽싸게 몸을 굴려서 먼지만 조금 마셨지만, 몸이 바짝 굳어 있던 화물칸 일당은 꼼짝없이 깔렸다. 살려 달라고 소리치고 엉엉 우는 것을 보아 죽지는 않은 듯했다.
 
 “··· 너가 처질 폰이··· 에헤?”
 
 카우걸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부서진 화물과 자욱한 먼지 사이로 금속제 팔이 튀어나왔다. 손가락, 손등, 손목, 하박, 팔꿈치까지 철판으로 이루어졌다. 옛 기사시대 판금 갑옷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갑옷보다 크고 복잡하며 요란했다.
 부우웅―
 머리, 몸, 팔, 다리가 평균적인 성인 남자보다 3배 이상 두꺼웠다. 신체 각 관절 부분에는 호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그리고 그 호스는 등 뒤에 백팩처럼 달린 거대한 증기기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카우걸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현상금 사냥꾼 인생에서도 딱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물건이었다.
 
 “파워아머(Power Armor)*?”
 
 부우웅― 부웅―
 파워아머가 긍정하듯 증기를 내뿜었다.
 
 ***
 
 카우걸은 죽어라 달려서 화물칸 앞으로 이동했다. 총성을 듣고 찾아오던 승무원들이 먼지투성이가 된 카우걸을 발견하고 화를 냈다.
 
 “당신 뭐야!”
 
 카우걸은 긴말하지 않고 엄지로 뒤를 가리켰다. 발에 치이는 화물짐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며 돌진해 오는 강철 거인이 있었다. 승무원은 즉시 몸을 돌려서 도주했다.
 
 “저건 또 뭐야!”
 “파워아머? 파워아마잖아!”
 
 카우걸은 몸을 돌려 총을 쏘았다. 머리와 심장을 정확히 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깡― 깡― 하는 소리가 두 번 났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 망할.”
 
 그때 승무원 한 명이 결사적인 표정으로 소리쳤다.
 
 “더 이상은 안 되오! 이 앞은 객실이오!”
 
 카우걸은 반사적으로 멈춰 섰다. 이 와중에도 승객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직업정신에 감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승무원은 카우걸만 남겨 놓고 냉큼 객실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좋게 해석하면 승객을 대피시킬 테니 시간을 벌라는 뜻이고, 솔직하게 해석하면 엄한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 죽든가 죽이든가 남으라는 뜻이었다. 카우걸이 멈추자 처질 폰으로 추정되는 파워아머도 멈췄다. 씩씩― 하는 숨소리와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뒤섞였다.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의 로딩 게이트(Loading Gate)*를 열고 레버(Lever)를 눌러 가며 총알을 장전했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아무 말이나 마구 던졌다.
 
 “··· 처질 폰. 24인 열차 강도 두목. 5,500페닝. 맞아?”
 “그래! 큭! 내가 바로 처질 폰이다!”
 
 
 ―――
 
 증기연료(Steam Fuel) :
 작중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연료장치. 연금술과 증기기관 장치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건전지’이다.
 
 파워아머(Power Armor) :
 작중 세계관에서 등장하는 기계 갑옷. 물소도 때려잡을 힘과 총탄을 튕겨 내는 방호력을 제공한다. 등 뒤에 부착된 증기기관 장치로 움직인다.
 
 로딩 게이트(Loading Gate) :
 총기와 실린더(원형 탄창)가 일체화된 초기 리볼버에서 볼 수 있는 장전 장치. 실린더 뒤쪽의 작은 공간을 열고 총알을 한 발씩 장전한다. 탄피를 하나씩 빼내고, 총알을 하나씩 넣어야 해서 장전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으나, 그만큼 총이 견고해서 대구경 총탄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후 총열과 실린더를 앞으로 분리하는 탑―브레이크 리볼버, 실린더만 옆으로 빼내는 스윙아웃 리볼버로 발전한다.
 
 # 4화. 파워아머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장전하고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처질 폰은 권총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전신을 보호하는 파워아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듯했다. 하긴, 가장 싼 파워아머조차 개틀링 건으로 난사하거나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지 않는 이상 꿈쩍하지 않을 방호력을 지녔다.
 
 “··· 그거 어디서 얻었어?”
 “네깟 년이 알아서 뭐 하게!”
 
 처질 폰은 주먹을 말아 쥐고 달려와서 냅다 휘둘렀다. 쇳덩이로 된 육중한 몸이 상상 이상으로 날렵했다. 증기기관 장치가 근력과 순발력을 끌어올려 주고 있었다. 카우걸은 몸을 옆으로 날려 주먹을 피했다. 쿵! 열차 외벽이 딱 파워아머 주먹 크기로 구멍 났다.
 
 “··· 흠!”
 
 카우걸은 몸을 일으키자마자 콜트 피스메이커로 6연발 패닝 샷을 구사했다. 깡! 깡깡! 팅― 틱틱―! 45구경 롱 콜트 총탄이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그런 장난감이 통할 것 같으냐!”
 
 처질 폰은 한껏 비웃으며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화물짐이 박살 나고 콩알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카우걸은 다시 바닥을 구르며 허리춤에서 32구경 콜트 레인메이커를 뽑아 두 발 쏘았다. 그리고 처질 폰의 발길질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뛰면서 남은 네 발을 쏘았다. 탕! 타타탕!
 
 “쥐새끼처럼 굴러다니긴!”
 “··· 쥐는 구르지 못해.”
 
 카우걸은 왼쪽 종아리에서 38구경 S&W M―10 리볼버를 뽑아 침착하게 한 발 쏘았다. 처질 폰은 손바닥보다 작은 리볼버를 보고 껄껄 웃었다.
 
 “그걸로 뭘 어쩌려고?”
 “··· 글쎄? 간지럽혀 줄까?”
 
 탕!
 카우걸은 심드렁하게 한 발 더 쏘았다. 탕―! 처질 폰은 버럭! 화내며 한 발 내디뎠다. 그리고 그대로 멈춰 섰다.
 
 “어?”
 
 카우걸은 회피 동작도 하지 않고 두 발을 연속으로 쏘았다. 탕― 타앙―! 그 순간, 처질 폰은 카우걸이 어디를 쏘고 있는지 깨달았다.
 
 “너··· 너··· 설마··· 이걸 노리고······?”
 “··· 그 갑옷도 무적은 아니야.”
 
 카우걸은 남은 세 발을 차례로 쏘았다. 탕! 탕! 타앙―! 그러자 처질 폰이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마, 말도 안 돼···! 관절구만 쏘았다고······?”
 
 카우걸은 S&W M―10 리볼버 총구를 후―! 불고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각 관절 부위로 파워아머 동력을 전달하는 호스를 끊었다. 철과 납으로 보강한 단단한 호스지만 계속되는 총격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졌다. 왼손과 왼발의 동력공급이 중단됐다.
 파워아머는 그 덩치만큼이나 무게가 엄청나다. 증기기관의 도움이 없이는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처질 폰은 왼발을 옮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사이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 로딩 게이트를 열고 탄피를 제거했다.
 
 “사, 살려 줘! 돈! 돈을 줄게! 너, 너 현상금 사냥꾼이지? 내 현상금보다 더 많이 줄 수 있어! 그, 그래! 파워아머! 파워아머도 줄 테니까!”
 “··· 나와.”
 “나, 나가면 살려 주는 거냐?”
 “··· 나와.”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 공이를 뒤로 당겼다. 기분 탓인지 짜증스러워 보였다. 처질 폰은 심각하게 갈등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파워아머의 방호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에서 버티면 어쩌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카우걸을 너무 쉽게 보았다.
 카우걸은 파워아머 뒤로 돌아가서 백팩처럼 생긴 증기기관 장치를 열었다. 덮개를 열자 푸쉬―! 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카우걸은 왼손을 휘저으며 한발 물러났다. 화물칸이 증기로 가득 찼다.
 카우걸은 증기가 흩어지길 기다렸다가 동력장치를 확인했다. 피스톤 막대와 어지러운 동륜 사이로 증기 연료가 세 개나 꽂혀 있었다.
 
 “··· 이걸 부수면 되나?”
 “자, 잠깐! 안 돼! 하지 마!”
 
 카우걸이 파워아머의 약점을 건드렸다. 증기 연료가 폭발하면 화염이 호스를 통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그야말로 산 채로 화형당하는 꼴이 된다.
 처질 폰은 간신히 움직이는 오른손으로 파워아머 흉갑 아래쪽에 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투구와 흉갑이 위로 올라가고, 복부에서 정강이까지 갑옷이 아래로 내려갔다. 관 뚜껑이 위아래로 열리는 듯했다.
 
 “··· 신기하네?”
 
 처질 폰은 관 속에서 나오듯 파위아머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카우걸을 사신(死神) 보듯이 올려다보았다.
 
 “이, 이제 어쩔 거지?”
 
 카우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 생사 불문.”
 “뭐?”
 
 타앙―!
 
 ***
 
 위치 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한나절을 꼬박 달려서 다음 역인 뉴 말라 역에 정차했다. 카우걸은 열차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처질 폰 일당과 그 소지품을 수습했다. 그리고 긴 하루, 아니, 긴 사흘이 흘러갔다.
 
 “워워! 워!”
 
 사흘 뒤, 포트럴 마을주민은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한 팔두마차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누가 대포를 주문했어?”
 “··· 비슷해.”
 
 팔두마차 안에서 카우걸이 나오자 겨우 열린 말문이 또다시 막혔다.
 
 “··· 나 왔어.”
 
 ***
 
 카우걸은 처질 폰 일당의 현상금을 받아 마차와 인부를 고용했다. 그리고 처질 폰이 가진 물품을 몽땅 실어서 카우걸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포트럴 마을 여관으로 옮겨 왔다. 파워아머의 경우 방으로 옮길 수 없어서 여관 1층 창고 안에 넣어 두었다. 은행장 소년과 보안관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군부 물건 아니에요?”
 “군용 파워아머하고 양식이 달라. 그리고 이거 3기통이잖아? 군용 파워아머는 2, 4, 6기통으로 제작하고 있어.”
 “시골 보안관이 뭘 그리 잘 알아요?”
 “이 어린놈아! 나 111부대 출신이라고!”
 
 여관주인은 ‘내 창고에 이상한 물건 두지 마라’ 화를 냈지만, 그 이상한 물건을 보려고 마을주민들이 꾸역꾸역 찾아오자 태세를 전환하고 술과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구경꾼 중에는 포목점 영감도 있었다.
 
 “··· 고칠 수 있어?”
 “뭐? 나 준다고?”
 “··· 고쳐 줘!”
 “에끼! 내가 기계공학자도 아니고!”
 
 포목점 영감은 투덜거리면서 파워아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력장치와 연결된 호스가 끊어진 것뿐이라 어렵지 않게 수리할 수 있었다.
 카우걸은 포목점 영감에게 파워아머를 맡기고 나머지 물건을 확인했다. 도망자가 가진 물건들은 자질구레한 것들이다. 모퉁이가 해진 서부지도, 찌그러진 수통, 돈주머니, 나이프 한 자루, 총알 두 발, 낡은 메달, 열차 티켓, 신문 한 묶음······.
 
 “··· 메달?”
 
 카우걸은 ‘도망자가 가지고 다닐 법한 물건’ 범주에서 벗어난 것들을 추려냈다. 그중 가장 특이한 것은 메달이었다. 아니, 메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처질 폰이 목에 걸기 좋게 끈을 달아 두어 메달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 재질을 알 수 없는 금속, 그리고 무척 낡았다. 글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카우걸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 돈 좀 되려나?”
 
 카우걸은 햇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낡은 메달이었다. 카우걸은 흥미를 잃고 방구석으로 치웠다.
 처질 폰의 현상금은 엄청났다. 그중 일부를 열차 수리비, 마차 대여료, 인부임금으로 사용했는데, 그럼에도 4,000페닝 이상이 남았다. 그 금액도 파워아머와 비교하면 헐값이었다. 주인이 찾아오면 보상을 두둑이 받아내고, 주인이 없으면 뉴 린딘이나 뉴 말라에서 장물로 내다 팔 생각이었다. 어느 쪽이든 아주 크게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보안관이 만류했다.
 
 “지금 생활 접고 은퇴할 거면 팔아도 좋은데, 지금 일 계속할 거면 가지고 있어.”
 “··· 왜?”
 “저만한 밥벌이 도구도 없어.”
 “··· 난 이게 있어.”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두드렸다. 그러자 보안관이 웃으며 말했다.
 
 “괭이의 달인이라도 쟁기 끌 소 한 마리 있으면 좋잖아?”
 “······.”
 
 ***
 
 카우걸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돈주머니가 무거워지자 여유가 생겨났다.
 최근 며칠 동안 연속으로 현상 수배자를 잡아들였지만, 보통은 서너 달에 한 번 수입이 있을까 말까 한 것이 현상금 사냥꾼이다. 현상금이 걸리는 범죄자가 그리 많지도 않거니와, 카우걸이 활동하는 웨이던 지방으로 국한하면 사흘 거리에서 한 명 찾기도 어려웠다. 그런 시장(?) 사정을 생각하면 요즘은 호경기라 할 수 있었다.
 
 “24인 열차 강도 덕분이지?”
 
 24인 열차 강도. 뉴 린딘 시로 운행하던 파우스트 사(社) 화물열차를 습격한 일당이다. 총 24명으로 구성되어 24인 열차 강도라 불리고 있다. 그 덕분에 웨이던 지방 사냥꾼들이 돈 좀 만지고 있었다.
 
 “우리 카우걸이 가장 많이 벌었지! 두목까지 붙잡았으니까 얼마를 번 거야?”
 
 포트럴 마을 주당들이 한턱 쏘라고 달라붙었다. 카우걸은 홀스터를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간단히 쫓아냈다. 바텐더가 맥주잔에 우유를 따라주며 물었다.
 
 “그 돈 벌어서 어디다 쓰는 거야?”
 “··· 저금.”
 “은행장 꼬마가 아니라던데?”
 “··· 쓸 데 쓰고 있어.”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장래를 생각해서 좀 모아두는 게 어때? 너도 언젠가 정착해야 하잖아? 크흠. 결혼도 해야 하고 말이야.”
 
 카우걸은 우유를 홀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뻔히 보였다. 바텐더가 ‘내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인데···’로 본격적인 잔소리를 시작할 때, 포목점 영감이 스윙 도어를 박차고 들어왔다.
 
 “다 고쳤다!”
 
 손님 몇 명이 깜짝 놀라 욕지거리를 퍼부었지만 귀가 어두운 영감은 듣지 못했다. 혹 들었어도 못 들은 척할 것이 분명했다.
 
 “··· 파워아머?”
 “아니! 돈 내놔!”
 “··· 내가 보고.”
 “금화 말고! 은화로 내놔!”
 
 ***
 
 초창기 황무지로 나온 개척민이 대부분 그러하듯, 포목점 영감은 다재다능한 만능 일꾼이었다. 농사일, 목공일, 무두장이일, 대장장이일까지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전문기술자는 아니지만 외장수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냈다.
 
 “··· 깔끔하네.”
 “뭐? 트집 잡지 마!”
 “··· 노망난 영감.”
 “너! 지금 내 욕했지!”
 “··· 욕은 알아듣네.”
 
 카우걸은 노발대발하는 포목점 영감을 내버려 두고 파워아머로 다가갔다. 오른발, 왼발 순서대로 집어넣고, 오른손, 왼손을 바짝 붙인 다음 레버를 당겼다. 해치가 닫히고 공기주머니가 부풀면서 몸이 꽉 쪼여 들었다. 옷장 속에 들어간 것처럼 어두컴컴했다. 그러나 투구가 고정되자 손가락 하나 굵기 되는 틈새로 시야가 확보되었다.
 
 “어때? 어떠냐?”
 
 카우걸은 손발을 움직여 보았다. 부우웅―! 등 뒤에서 자욱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강철 몸이 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둔하고 갑갑하지만, 무겁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어떠냐고! 말을 해야지!”
 
 카우걸은 가볍게 잽(Jab)을 날려 보고, 스텝을 밟아서 스트레이트(Straight)를 뻗어 보았다. 벽을 부수고 기둥을 허물 수 있을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 아주 좋아.”
 
 # 5화. 낡은 메달
 
 카우걸은 파워아머가 마음에 쏙 들었지만, 아쉽게도 첫날 이후 사용하지 못했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부담스러운 크기였고, 그다음으로 증기 연료가 너무 비쌌다.
 
 “그야 파우스트 사(社)에서 독점하고 있으니까.”
 
 은행장 소년이 설명하자 바텐더가 깜짝 놀랐다.
 
 “걔네 철도회사 아니었어? 그런 것도 만들어?”
 “서드 컨티넨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잖아요. 금융, 건설, 해운, 광산 등등 안 하는 것이 없어요. 우리 철도은행의 가장 큰 고객이죠.”
 “이야! 대단하군!”
 
 카우걸은 무관심하다가 은행장 소년이 우유 잔에 손을 대자 도끼눈을 떴다.
 
 “난 성장기라고요! 좀 나눠 줘요!”
 
 카우걸은 머뭇머뭇하다가 딱 한 모금 덜어 주었다. 은행장 소년이 어이없어하자 바텐더가 껄껄 웃었다.
 
 “그것도 많이 준 거야. 난 우유 뺏으려다 손목 날아간 놈들도 많이 봤다.”
 “에이, 설마?”
 
 포트럴 마을주민 중에는 ‘감히’ 카우걸에게 손댈 이가 없지만, 가끔 외지에서 온 사람이 멋도 모르고 수작을 부리다가 곤욕을 치르곤 했다. 수배자일 경우는 죽거나 불구가 되고, 여행자일 경우 뼈마디가 몇 개 부러졌다. 은행장 소년은 외지인으로 화제를 바꿨다.
 
 “아, 맞다. 말 나온 김에요. 24인 열차 강도 중에 아직 안 잡힌 사람이 많아요?”
 “한 8명쯤 남았나?”
 “혹시 누나한테 복수한다고 찾아오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그놈들은 의리도 없고, 실력도 없고, 용기도 없는 놈들이야.”
 “그래도 두목이 죽었는데요? 그냥 있을까요?”
 “두목이 죽었으니까 그냥 있어야지.”
 
 카우걸이 우유 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바텐더가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다.
 
 “왜 그래?”
 “··· 소리.”
 
 카우걸이 허리춤으로 손을 내리자 바텐더와 은행장 소년은 반사적으로 몸을 던졌다. 총잡이 싸움에 끼어들어서 좋은 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쾅!
 탕! 탕!
 타탕! 탕! 탕!
 건장한 남자 두 명이 포트럴 바 스윙 도어를 박차고 들어와 윈체스터 라이플을 난사했다. 그러나 레버를 두 번 당기지 못했다. 카우걸은 첫 총성이 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이를 네 번 튕겼다. 먼저 들어온 남자는 이마와 심장이 관통당해 절명했고, 뒤따라 들어온 남자는 오른쪽 어깨와 왼쪽 팔꿈치에 총상을 입고 자지러졌다.
 
 “크어억! 끄억!”
 “와··· 진짜 빠르다.”
 
 은행장 소년은 살인현장보다 카우걸의 기막힌 사격 솜씨에 더 관심을 보였다. 역시 서부 개척마을 주민다웠다.
 
 “아파! 아프다고!”
 “··· 아픈 부위니까.”
 
 카우걸은 절명한 남자의 윈체스터 라이플을 주워 레버 손잡이를 당겼다. 팅―! 탄피가 땅바닥에 떨어지며 묘한 금속음을 내었다. 카우걸은 새 총알을 장전한 후 피를 뿌리며 낑낑거리는 두 번째 남자에게 다가갔다.
 
 “··· 누구?”
 “미, 미친년! 소문대로 완전 미친년이군!”
 “··· 나를 찾아왔어?”
 
 카우걸은 윈체스터 라이플 총구를 두 번째 남자 오른쪽 무릎에 붙였다.
 
 “··· 이유는?”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아니면 겁을 잔뜩 집어먹어서인지 두 번째 남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검은 마녀의 악명이 반의반만 사실이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잘근잘근 씹어 먹을 것이다.
 
 “두, 두, 두목의 복수를 하러 왔다!”
 “··· 24인 열차 강도?”
 “그, 그렇다! 난 두목의 복수······.”
 
 카우걸은 바텐더를 돌아보았다. ‘의리도··· 용기도··· 뭐라고···?’ 그러나 바텐더는 갑작스런 총격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카우걸은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 거짓말.”
 “뭐?”
 
 타앙―!
 카우걸은 대뜸 방아쇠를 당겼다. 큼직한 7.62mm 총탄이 오른쪽 무릎을 박살 냈다. 치료를 잘 받아도 평생 뜀박질은 어려울 것이다.
 
 “크아아! 끄윽! 으허어헝!”
 
 카우걸은 레버를 당겨 총알을 장전하고 왼쪽 무릎에 총구를 붙였다.
 
 “··· 말해.”
 “쏘, 쏘지 마! 쏘지 말라고! 으아악!”
 
 타앙―!
 
 ***
 
 바텐더는 구시렁구시렁하면서 시체를 끄집어냈다. 마을 공동묘지가 있긴 하지만 돈 한 푼 안 되는 시체를 묻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수레에 싣고 동구 밖 멀찍이 버려두면 까마귀와 들개가 잘 처리해 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맞네. 맞아. 24인 열차 강도 일당이야. 이놈들은 왜 죄다 여기 와서 죽는 거지?”
 “··· 얼마야?”
 “말단이라 얼마 안 돼. 500페닝, 550페닝. 생포했으면 좀 더 받았을 텐데. 아쉽군.”
 
 뉴 린딘에서 법무부 사람이 찾아와서 시체를 확인하고 보안관과 주민들의 증언을 확인한 후 현상금을 지급할 것이다. 그때까지 짐승이 먹지 못하게 관리해야 한다.
 
 “··· 그거면 돼.”
 
 카우걸은 현상금이 아니라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군인과 보안관으로 반평생 지내 온 보안관은 간단히 눈치챘다.
 
 “시체 하나가 손상된 부위가 특이하던데? 어깨, 팔꿈치, 무릎이라··· 양쪽 무릎을 라이플 탄으로 박살 냈지?”
 “··· 왜?”
 “심문한 거 아니야? 아니, 고문인가? 그래서 무슨 말을 들은 거야?”
 
 하루 종일 술에 취해서 다니는 배불뚝이 보안관이지만, 그래도 카우걸보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았다. 카우걸은 주저하다가 결국 말했다.
 
 “··· 복수하러 왔대.”
 “으하핫! 수배자가 사냥꾼한테? 걸작이군!”
 “··· 응. 거짓말이었어.”
 
 카우걸은 주머니에서 낡은 메달을 꺼내 보였다. 보안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오?”
 “··· 뭔지 알아?”
 “술값도 안 나오겠는데? 원주민 장난감인가?”
 “··· 이걸 찾으러 온 거야.”
 
 보안관은 낡은 메달을 앞뒤로 돌려 보고 햇빛에 비춰 보았다. 그러나 보안관 눈에도 오래된 쇳덩어리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마모된 정도를 봐서 아주 오래된 물건인데······.”
 
 보안관은 낡은 메달을 돌려주고 말했다.
 
 “그래도 뭔가 냄새가 나는군. 저 머리 나쁜 놈들이 덤빌 만큼 중요한 물건일 거야. 뉴 린딘에서 사람이 올 테니 물어봐.”
 
 ***
 
 카우걸은 낡은 메달을 목에 걸고 다녔다. 바텐더는 강도 두목의 물건이라 찝찝해했지만 카우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돈이 모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현상 수배자가 현상금 사냥꾼을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일이 흔하지 않긴 했다. 그 덕분에 카우걸은 풍요롭고 풍족한 삶을 좀 더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에 쌓인 외상도 갚고, 아침저녁으로 우유를 두 잔이나 마셨다.
 
 “고작?”
 
 바텐더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정말 티끌만 한 탐욕도 없이 카우걸의 돈주머니를 훔쳐보았는데, 은화 두 개와 동전 여섯 개가 전부였다.
 
 “아! 대체 돈을 어디다 다 쓰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카우걸은 돈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우유도 배불리 마실 수 있어서 행복했다.
 포트럴 마을주민은 대부분 가난하고 한가했다. 광부나 인부로 끌려온 사람들은 사금을 채취하는 것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 수익이 없었다. 낡은 바를 운영하는 바텐더와 소 열두 마리 키우는 ‘진짜 카우보이’가 가장 부자일 정도였다.
 
 “카우걸! 우유 가져왔다!”
 
 흰 머리 비중이 더 많은 진짜 카우보이가 꽉 찬 우유 통을 내려놓고 빈 우유 통을 조랑말 위에 올렸다.
 
 “··· 카우걸 아니라니까.”
 “그럼 카우보이라고 불러 줄까? 나보다 더 카우보이 같은데? 으하핫!”
 
 흰머리 카우보이는 껄껄 웃으며 바텐더와 우윳값을 협상했다. 은행장 소년은 노란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우유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졌다.
 
 “근데 아저씨도 누나만큼 총을 잘 쏴요?”
 “인마. 내가 소 키우는 사람이지 총 쏘는 사람이냐?”
 
 흰머리 카우보이는 은행장 소년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린 후 우유를 한 잔 따라주었다. 은행장 소년은 화색이 되었고, 바텐더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 우유잖습니까!”
 “아직 계산 안 했잖아?”
 “··· 저 꼬마가 마신 우유만큼 빼고 셈할 겁니다.”
 
 흰머리 카우보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 잔 더 따라서 카우걸에게 주었다. 카우걸의 표정도 환하게 피어났다. 카우걸과 은행장 소년은 바 앞에 나란히 앉아 사이좋은 오누이처럼 우유를 홀짝였고, 흰머리 카우보이는 배부른 미소를 지었다. 바텐더는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는 표정으로 은화를 꺼내 주었다.
 
 “한 잔 더 마셔도 돼요?”
 “··· 나도.”
 “안 돼! 이제 내 거야! 돈 주고 사 먹어!”
 
 ***
 
 그리고 사흘이 지났다. 뉴 린딘에서 법무부 사람이 도착했다. 구대륙에서 제작된 최고급 정장을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박차 달린 구두를 신고, 은으로 장식된 외눈 안경을 썼다. 누가 봐도 ‘공무원’이라 납득할 법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죄지은 것이 많은 마을주민들은 슬금슬금 피했다.
 카우걸과 보안관은 수배자 시체를 보여 주었다. 사흘 동안 부패가 진행되어서 악취가 나고 구더기가 생겼다. 법무부 공무원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감싸고 발로 머리통을 굴려 보았다.
 
 “맞는 거 같군. 소지품은?”
 “여기 있소.”
 
 여행자가 가지고 다닐 법한 자질구레한 짐이었다. 그나마 볼 만한 것은 군용 윈체스터 라이플 두 정이었다. 법무부 공무원은 짐을 샅샅이 뒤진 후 다시 물었다.
 
 “이게 전부인가?”
 “전부요.”
 
 외모만으로 신원파악이 안 될 때는 소지품을 확인하지만, 이번에는 얼굴이 잘 알려진 24인 열차 강도 일당이라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법무부 공무원은 짐을 꼼꼼하게 조사한 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열차 강도라는 것을 확인한 상황에서 난감해한다면, 따로 찾는 물건이 있다는 뜻이다.
 
 “처질 폰을 잡은 것도 당신이지?”
 “··· 응.”
 “그자가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어찌 처분했나?”
 
 카우걸과 보안관의 시선이 엇갈렸다. 한순간이지만 수십 마디 대화가 오고 갔다. 카우걸은 판초를 바짝 올리고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로 거짓말했다.
 
 “··· 팔았어.”
 
 ***
 
 법무부 공무원은 포트럴 바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위치 역으로 떠났다. 카우걸과 보안관은 동쪽으로 떠나가는 말꽁무니를 내다보며 대화했다.
 
 “저놈 연방보안관이야.”
 “··· 배지가 없는데?”
 “어디 숨겼겠지. 군바리 냄새는 숨기지 못했지만. 아무튼 이상해.”
 
 카우걸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뭐가 이상한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보안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명했다.
 
 “강도 놈들이 되찾으려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저 살인 기계가 관심 갖는 것도 이상하고.”
 “··· 어쩌지?”
 
 보안관은 까슬까슬한 수염을 긁적이다가 하품하고 돌아섰다.
 
 “에이! 몰라! 네 일이지 내 일이냐? 돈 벌었으니 한턱 쏴!”
 “··· 알았어.”
 “어? 정말? 네가 쏜다고?”
 “··· 그 대신 말해 줘.”
 
 카우걸이 빤히 쳐다보자 보안관은 히쭉― 웃었다. 두꺼운 볼살이 보기 좋게 올라갔다.
 
 “24인 열차 강도가 습격한 곳이 어디지?”
 
 카우걸은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얼마 전 바텐더와 은행장 소년의 대화가 떠올랐다.
 
 “··· 파우스트 사(社)?”
 
 # 6화. 스코필드 총잡이
 
 카우걸은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을 보고 심란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
 
 “··· 너무 많잖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잘 먹을게!”
 “잘 마시마!”
 “고마워요!”
 “Thank You, Cowgirl!”
 
 카우걸이 한턱 쏜다는 소문이 돌자 포트럴 마을주민 중 절반이 모여들었다. 바텐더는 이번 기회에 창고를 정리하기로 작정했는지 술통을 모조리 꺼내왔다. 지하 깊은 곳에서 술통이 굴러 나올 때마다 카우걸의 시름이 깊어갔다.
 
 “너무 걱정 마. 싸게 해 줄게.”
 “··· 얼마?”
 “흐음? 이 정도?”
 
 바텐더가 손가락 일곱 개를 보여 주었다. 카우걸은 공포와 좌절 속에서도 마지막 희망을 담아 물었다.
 
 “··· 70페닝?”
 “뭐? 하핫! 농담도! 700페닝이지.”
 “··· 안 돼······.”
 
 카우걸이 테이블에 풀썩 쓰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포트럴 마을은 때아닌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잘 키운 현상금 사냥꾼 한 명이 광부 열 명 부럽지 않다’는 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댔다.
 에일, 와인, 럼, 브랜디, 위스키 등등 술이란 술은 죄다 등장했지만, 정작 술을 산 카우걸은 우유만 한 잔 마셨다.
 
 “··· 파우스트 사.”
 “쉿! 말조심해. 자본가는 도적보다 무서우니까.”
 
 포트럴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술꾼들은 다 뻗었는데, 보안관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취해 있으니까. 보안관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설마 파우스트 본사 찾아가서 ‘이 메달 아세요?’하고 물어볼 생각은 아니지?”
 “··· 그럼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연방보안관 태도 못 봤어? 그냥 기념품 찾는 거면 ‘요래요래 생긴 물건 못 봤나?’ 하고 물어봤겠지. 꽁꽁 숨기고 몰래 찾는 것이 수상하잖아?”
 “··· 그런가?”
 “재수 없으면 말이야 ‘그 메달을 본 사람이 누가 있지? 포트럴 마을주민? 선물을 보내야겠군.’ 이러고 완전무장한 기병대가 들이닥칠지도 몰라.”
 “이야! 보안관님? 요즘 소설 씁니까?”
 
 바텐더가 한숨 돌리며 야유했다. 멀쩡한 술꾼보다 졸도한 술꾼이 많아지자 여유가 생겼다. 보안관은 바텐더가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농담 아니야. 그 강도 놈도 팔다리 부술 때까지 불지 않았다면서?”
 “··· 응.”
 “너 조심해야 돼. 분명 뭔가 있어.”
 “··· 그럼 어떡해?”
 
 보안관은 남은 술이 있는지 술병을 하나하나 들어 보았다. 한 모금 남은 술병을 찾아내고 행복해했다.
 
 “기다려.”
 “··· 기다려?”
 “그래. 기다려. 열차 강도든, 연방보안관이든, 파우스트 사 똘마니든 곧 반응이 있을 거다.”
 
 ***
 
 보안관의 장담과 달리, 포트럴 마을은 유례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보안관은 보안관 신분을 잊고 사건 사고가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평소 신앙이 모자랐던 탓인지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카우걸은 보안관을 볼 때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줄 수 있었다.
 
 “크험! 큼! 왜 자꾸 노려봐?”
 “··· 에휴.”
 
 카우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24인 열차 강도 일당의 윈체스터 라이플을 팔고 소모된 리볼버 총알을 샀다. 총알 가격이 그리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익이 없을 때는 은근히 부담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가난한 현상금 사냥꾼은 탄피를 모아서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나! 신문 왔어요!”
 
 마을광장을 기웃거리자 은행장 소년이 ‘웨이던 신문’을 흔들었다. 뉴 린딘에서 발행하는 일간지였다. 거리가 거리라서 위치 마을과 포트럴 마을로는 주 단위로 전달되었다.
 카우걸은 은행 앞 드럼통에 앉아 카우보이 모자를 살짝 올리고 가장 최근 신문부터 훑어보았다. 뉴 린딘 시장의 시답지 않은 행사 소식, 서부 철로 공사 진행 소식, 구대륙 최신유행, 광고, 광고······.
 
 ― 24인 열차 강도 두목 처질 폰 사살
 
 그중에는 카우걸의 소식도 실려 있었다. 그러나 현장을 본 사람이 없는지 신문기자의 상상력이 대부분이었다. 카우걸을 키 190cm에 몸무게 120kg 나가는 근육질 거인으로 묘사하고, 24인 열차 강도 두목을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 끝에 제압한 것처럼 소개했다.
 
 ‘··· 아.’
 
 카우걸은 본인 이야기라는 것도 잊고 집중해서 신문을 보았다. 기자가 누군지 몰라도 아주 뛰어난 상상력을 가졌다.
 그 외에도 서부철도 공사현장에서 서드 컨티넨트 원주민과 군사적 마찰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리고 문명을 모르는 미개한 야만족이라 성토하는 사설이 2페이지 동안 이어졌다.
 
 ‘······.’
 
 카우걸은 사설을 쭉 읽어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카우걸의 처지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닷새 전 소식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 도망자?’
 
 헤럴드 마을에서 보안관과 마을주민 세 명을 살해하고 체포된 악질 총잡이 버몬트 홀리가 뉴 린딘으로 이송 중 도망쳤다는 소식이다. 현상금 3,000페닝으로 수배되었다.
 
 “··· 버몬트 홀리······.”
 
 카우걸도 익히 들어 본 이름이었다. 악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총 솜씨가 대단하다고 했다. 결투 대리자로 6번인가 7번인가 승리하기도 했다.
 카우걸은 버몬트 홀리라는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현상금 사냥꾼의 본분이기도 하고, 총잡이의 본능이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 마주칠 것 같았다.
 
 ***
 
 카우걸은 은행장 소년과 잡담을 나누고, 흰머리 카우보이와 산책도 하고, 여관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파워아머도 손질하고, 녹슬지 말라고 연습기동도 했다.
 
 부우웅―!
 
 파워아머 백팩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열두어 살 된 동네 꼬마들이 겁도 없이 좋다고 달려들었다. 카우걸은 꼬마들을 때리거나 밟을까 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카우걸은 자꾸 달라붙는 꼬마들을 내버려 두고 불만을 토로했다.
 
 “··· 총을 못 쏘잖아.”
 “그거 입고 리볼버를 쏘게? 폼 안 나잖아. 파워아머 입었으면 개틀링 건 정도는 들어 줘야지.”
 “··· 그런 게 어디 있어?”
 “가만있자.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쓸래?”
 
 보안관은 창고 구석에서 8kg짜리 대형 망치를 가져왔다. 카우걸은 얼결에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 이게 뭐야?”
 
 보안관은 술병을 흔들며 낄낄 웃었다.
 
 “큽! 크흡! 잘 어울리는데? 왠지 수염 난 애꾸눈 노인이 생각나지만······.”
 “··· 그게 누군데?”
 
 카우걸은 꼬마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여서 망치를 내려놓았다. 보안관은 파워아머 전용무기를 구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카우걸은 그게 다 돈이라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보안관은 ‘그래도 돈보다 목숨이 소중하잖아?’ 등으로 설득했지만, 카우걸은 ‘목숨은 하나 있는데 돈은 하나도 없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은행장 소년이 창고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와서 소리쳤다.
 
 “카우걸 누나! 보안관 아저씨! 큰일 났어요! 위기! 위기상황!”
 “야, 이놈아! 내 심장이 먼저 큰일 난다!”
 “··· 무슨 일?”
 
 은행장 소년은 우람한 파워아머를 멍하니 구경하다가 번뜩 정신 차리고 말했다.
 
 “총잡이가 들어왔어요! 악질 총잡이!”
 
 보안관은 술병을 기울이며 ‘서드 컨티넨트에 악질 총잡이가 한둘이냐?’ 타박했지만, 카우걸은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이름이 있었다.
 
 “··· 버몬트 홀리?”
 
 ***
 
 포트럴 마을광장이 한산했다. 술병을 끌어안고 뒹구는 취객도, 돈을 줘도 가져가지 않을 잡동사니만 파는 잡상인도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그 모두가 우울한 표정을 짓는 총잡이 때문이었다.
 카우걸은 직감대로 버몬트 홀리와 만나자 내심 놀랬다. 상상 이상으로 빠른 만남이었다. 그러나 상대의 놀람이 더욱 컸다.
 
 “파, 파워아머?”
 
 주 방위군 사령부 정도는 찾아가야 볼 수 있는 장비가 시골 개척마을에 돌아다니니 놀랄 법도 하다. 머리와 어깨에 꼬마들을 하나씩 달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카우걸, 보안관, 그리고 현상 수배자의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카우걸은 파워아머 투구 틈새로 버몬트 홀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 근래 고생이 많았는지 얼굴도 수척하고 수염도 까슬까슬하지만 본래라면 누구나 호감을 주었을 잘생긴 신사였다. 허리춤에는 길이 잘 든 44구경 싱글액션 ‘스코필드(Schofield)’를 차고 있었다.
 
 “소란 피울 생각 없소. 먹을 것과 마실 것 좀 사고 싶소.”
 “허. 허허··· 이거 안 보이나?”
 
 보안관은 가슴에 달린 별 모양 배지를 가리켰다. 버몬트 홀리는 친절하게 구경하는 시늉을 하고 말했다.
 
 “잘 보이오.”
 “그런데도 겁이 없구먼?”
 
 보안관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자 버몬트 홀리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 마시오.”
 “왜?”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 싫소.”
 
 카우걸은 두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하나는 111부대 출신임을 자랑하는 보안관이 총을 뺄 거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버몬트 홀리의 총이 더 빠를 거란 것이다. 그러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보안관을 잡아당기며 몸을 내밀었다.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타― 탕―!
 아주 미묘하지만, 버몬트 홀리의 총알이 더 빨랐다. 보안관이 쏜 총탄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갔고, 버몬트 홀리가 쏜 총탄은 파워아머 흉갑에 튕겨 나갔다.
 
 “이봐! 카우걸!”
 
 카우걸을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 고마움은 나중에.”
 “누가 고마운데? 너 때문에 빗나갔다!”
 
 보안관은 자존심 때문에 버럭 화를 냈지만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카우걸이 막아 주지 않았으면 십중팔구 죽었다. 버몬트 홀리의 퀵 드로우 샷은 미친 듯이 빨랐다.
 
 “으아앙!”
 “엄마! 엄마앗!”
 
 카우걸의 파워아머에 매달려 있던 꼬마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카우걸은 버몬트 홀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무릎을 구부려 꼬마들을 내려 주었다. 집 안에 숨어 있던 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꼬마들을 데려갔다.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아하니 한동안 동네 꼬마들한테 시달릴 일은 없을 듯했다.
 카우걸은 버몬트 홀리에게 말했다.
 
 “··· 가.”
 “뭐? 그냥 보내려고? 3,000페닝짜리인데?”
 
 카우걸은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투구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버몬트 홀리는 S&W 스코필드를 홀스터에 꽂아 넣으며 말했다.
 
 “이 일대에 솜씨 좋은 총잡이가 있다던데, 당신인가?”
 “··· 안 가면 싸워야 돼.”
 
 버몬트 홀리는 어깨를 으쓱이고 뒷걸음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파워아머를 입은 현상금 사냥꾼과 싸우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보안관이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왜 그냥 보내냐고!”
 “··· 나 총 없어.”
 “아하?”
 
 파워아머 자체가 무기니까 싸우자면 싸울 수 있지만, 그때까지 증기 연료가 버텨 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보안관이 속사정을 알고 투덜거렸다
 
 “젠장! 내가 술만 안 마셨으면······.”
 “··· 그래.”
 “진짜라고! 내가 왕년에는 말이지······.”
 “··· 그래.”
 
 카우걸은 건성으로 맞장구치며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 버몬트 홀리를 관찰했다. 죽을 뻔했다는 위기감도, 추격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술과 음식을 구하지 못한 아쉬움 정도만 얼핏 보였다.
 
 “··· 이상한 사람.”
 “네 녀석이 제일 이상해!”
 
 # 7화. 하이눈(High Noon)
 
 현상금 사냥꾼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전투능력이 아니라 정보수집능력이었다. 누가 현상범인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어디 숨어 있는지 등을 알아야 체포하든 사살하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포트럴 마을 보안관과 은행장 소년은 카우걸의 좋은 친구였다.
 카우걸은 보안관 사무소에서 현상수배명단과 공문을 확인하고, 철도은행으로 들어오는 신문을 구독했다.
 
 “··· 맛있겠다.”
 
 물론, 범죄 관련 뉴스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카우걸은 뉴 린딘 사거리에서 포비아 왕국 정통 요리점이 생겼다는 광고 아닌 광고를 읽으면서 입맛을 다졌다. 은행장 소년이 동조했다.
 
 “오늘 아침도 삶은 콩에 딱딱한 보리빵이었죠?”
 “··· 맞아.”
 “부자들은 좋겠어요. 맨날 고기 먹고, 과자 먹고.”
 “··· 맞아.”
 
 카우걸과 은행장 소년은 부르주아 욕을 한참 한 후, 결론적으로 ‘부르주아가 되고 싶다’로 마무리했다.
 
 “카우걸! 카우걸? 여기 있지?”
 “··· 응.”
 “으하핫! 드디어 왔다! 왔다고!”
 “쳇! 뭐가 와요? 당뇨? 고혈압? 죽을 날?”
 “이 꼬마는 왜 아침부터 시비냐?”
 “지금 점심이거든요? 맨날 술 처먹고 졸기나 하고. 완전 월급도둑이잖아?”
 
 보안관은 어른스럽게 껄껄 웃으며 은행장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팔뚝에 힘줄이 솟아난 것과 볼살이 부르르 떨리는 것은 썩 어른스럽지 못했다. 카우걸은 나라도 점잖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 무슨 일?”
 “아, 그래! 사장이 떴다!”
 “··· 사장?”
 “그 파우스트 사장 말이다. 뉴 린딘으로 오고 있다는군.”
 
 카우걸은 신문을 앞뒤로 돌려 보고 미심쩍게 물었다.
 
 “··· 그런 내용은 없는데?”
 “그런 거물이 소문내면서 다닐 거 같아? 당연히 몰래 오지! 뉴 린딘 보안관 사무소에서 확인한 거야!”
 “··· 그럼?”
 “사업차 방문이라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그 메달하고 관련이 있을 거다. 내가 뭐라 그랬냐? 어디 두고 보자고 했지?”
 
 카우걸은 낡은 메달을 꺼내서 앞뒤로 살펴보았다. 바텐더는 불길하다고 투덜거리고 보안관은 돈 냄새가 난다고 난리지만, 카우걸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감이 없었다.
 
 ‘··· 정말 가치가 있을까?’
 
 사장이 도착하려면 일주일 이상 남았다. 서드 컨트넨트가 넓긴 넓었다. 보안관은 사장이 뉴 린딘에 도착해도 각종 행사와 서부철도 공사현장시찰 등을 다녀야 하니 한 달은 바쁠 것이라 말했다. 카우걸이 생각할 때는 2~3일이면 될 거 같았지만, 보안관이 ‘높으신 분’은 다르다고 설명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 한 달은 너무 긴데······.’
 
 카우걸은 한 달 동안 삶은 콩과 보리빵을 먹기보다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몬트 홀리를 추격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행선지가 명확하지 않고, 또 너무 위험했다.
 카우걸은 보안관 사무소에서 가져온 현상수배명단을 한참 뒤적이다가 괜찮은 사냥감을 찾아냈다.
 
 ‘··· 리처드 고드. 마약 밀수단 두목. 1,700페닝.’
 
 카우걸은 한두 달 전 스크랩한 신문에서 리처드 고드라는 이름을 찾아냈다. 뉴 말라에서 마약 밀수단을 체포했다는 뉴스였다. 그 날짜를 확인한 후 보안관 사무소 공문을 열람했다. 뉴 말라 보안관 사무소에서 보내온 리처드 고드의 상세한 정보가 올라와 있었다.
 
 ‘··· 빙고.’
 
 리처드 고드는 뉴 말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가족은 없지만 친구와 부하들이 모두 뉴 말라에 있었다. 수배자가 되었으니 옛날 집에 그대로 살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멀리 떠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가족이나 후원자 도움이 없이 연고가 없는 타지로 이주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얼굴이 알려지고 돈이 없는 수배자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 가서 조사하면 답이 나오겠지.’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고 일어났다. 뉴 말라까지 다녀오려면 이틀이 족히 걸린다. 기왕 갈 거면 서둘러야 했다.
 
 ***
 
 카우걸은 더플백 하나를 짊어지고 위치 역에서 뉴 말라 행 열차 티켓을 끊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운행해서 그렇지, 시간으로 보나 비용으로 보나 마차보다 좋았다. 카우걸은 운이 좋아서 역 앞 ‘원샷’에서 우유 한잔을 마시고 당일 점심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가장 비싼 일등칸은 넓은 공간, 안락한 침대, 다양한 식사, 심지어 티타임에는 악사가 연주도 해 준다. 그러나 가장 싼 삼등칸은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좁은 공간, 침대는 고사하고 테이블도 없으며, 식사는 자체해결이었다. 카우걸은 더플백을 끌어안고 구석 자리로 도망쳤다. 화물칸에서 도망 나온 닭 한 마리 시끄럽게 울며 날아다녔다.
 
 “거 내 자리요! 저리 비키쇼!”
 “내가 왜? 내가 먼저 왔어!”
 “승무원! 닭 안 치우면 모가지 확! 비틀어 버린다!”
 “내 티켓 안 보이소?”
 “나도 티켓 있어!”
 “승무원! 승무원 어디 갔어! 저 망할 닭 잡으라고!”
 
 삼등칸 손님은 광부와 공사장 인부가 많았다. 말과 행동이 거칠어서 툭 하면 싸움을 벌였다.
 카우걸 옆자리에서도 싸움이 벌어졌는데, 대충 보니 글을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O 좌석과 Q 좌석 주인이 자기 자리라고 멱살잡이를 벌였다. 카우걸은 참다 참다 못 참고 두 광부의 열차 티켓을 빼앗아서 상황을 정리했다.
 
 “··· 이 티켓이 이쪽. 이 티켓이 저쪽.”
 “야! 너 뭐야? 어디서 발랑 까진 것이······.”
 
 카우걸은 눈을 치켜뜨고 콜트 피스메이커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자 두 광부는 질서와 평화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덤으로 열차 승무원이 빗자루로 닭을 쫓아내자 한결 조용해졌다. 그러나 멀지 않아 젖먹이가 울음을 터트리고 새끼돼지가 탈출을 시도하면서 다시 시끄러워졌다. 카우걸은 더플백에 머리를 박고 괴로워했다.
 
 “··· 으아··· 살려 줘······.”
 
 ***
 
 뉴 말라 마을.
 카우걸이 활동하는 웨이던 지방에서는 뉴 린딘 다음으로 큰 마을이었다. 서부철로 공사현장을 지휘하는 본부이기도 하고, 원주민과 몬스터와 싸우는 군사거점이기도 했다.
 
 “··· 살았다.”
 
 카우걸은 하룻밤 사이 너덜너덜해졌다. 쉬지 않고 떠드는 승객과 익숙해질 만하면 더해지는 악취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번에는 최소한 이등칸에 탑승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마 스무 번째 결심일 것이다. 막상 티켓을 끊을 때면 돈이 아까워서 제일 싼 걸 고르니까.
 카우걸은 더플백을 어깨에 메고 리볼버와 나이프를 쓸어 만진 후 역 앞으로 나갔다. 포트럴 마을과 위치 마을만큼은 아니지만, 뉴 말라에도 나름대로 인맥이 있었다.
 
 “결투! 결투가 시작됩니다!”
 
 역 앞 광장이 무척 소란스러웠다. 카우걸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기웃거리다가 생각보다 빨리 ‘인맥’을 발견했다.
 
 “··· 중위?”
 “아! 뭔가! 지금 바쁜 거 안··· 카우걸?”
 
 뉴 말라 주 방위군 소속 장교였다. 깃이 바짝 선 제복과 근엄한 카이저수염이 멋진 신사이기도 했다.
 
 “··· 무슨 일이야?”
 “자네야말로 무슨 일인가? 이런! 결투가 시작됐군! 떠들 시간이 없네! 이쪽으로 오게.”
 
 중위는 설명할 시간도 아까운 듯 카우걸을 잡아끌며 역 앞 광장으로 이동했다. 구경꾼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지만 육군 중위가 호통치자 조금씩 비켜섰다. 그 덕분에 카우걸도 역 앞 광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결투······.”
 
 역 앞 광장 동쪽과 서쪽에 두 신사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정오(High Noon)가 되었다. 해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시간. 누구 한쪽이 유리하거나 불리한 것이 없는 결투의 시간이다. 양측 입회인이 이 결투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중위는 아직 안 늦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카우걸을 위해 설명했다.
 
 “전역장교 노덕 대위와 저널리스트 로이 기자네.”
 “··· 군인하고 기자가 결투?”
 “총 맞을 일이 가장 많은 직업 아닌가.”
 “··· 왜 싸우는데?”
 “저 기자가 노덕 대위를 가리켜서 ‘약쟁이’라고 기사를 썼네. 아아, 자넨 잘 모르겠군. 한 달 전 마약 밀수단이 체포되었다네. 그때 거래장부가 유출되었지.”
 “··· 약을 산 건 죄가 아니잖아.”
 “웨이던 주(州) 법률로는 그렇지만, 연방법으로는 또 다르다네. 그리고 장교쯤 되면 위신문제가 있네.”
 “··· 명예?”
 “서드 컨티넨트 사망원인 1위지.”
 
 카우걸과 중위가 대화하는 사이 결투절차가 끝났다. 노덕 대위와 로이 기자가 10보 떨어진 곳에서 리볼버를 준비했다. 신사의 결투라서 각각 3발씩 쏘게 된다.
 
 “··· 죽을까?”
 “노덕 대위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네. 오늘 아침 사과받았다면 공중에다 쏘고 끝내겠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군.”
 
 노덕 대위라는 중년 신사는 턱수염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반면 로이 기자라는 청년은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이 용할 만큼 겁에 질려 있었다.
 
 “··· 바보 같아.”
 “자네도 총잡이 아닌가?”
 “··· 난 결투 안 해.”
 “나도 좋아하진 않는다네.”
 
 가장 나이 많은 입회인이 리볼버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결투가 시작됐다. 구대륙에서는 한 발씩 번갈아 쏘기도 하는데, 서드 컨티넨트에서는 양보 없이 동시에 쏘는 편이었다. 그 때문에 ‘운’이나 ‘매너’보다 철저하게 ‘사격 실력’으로 판가름이 났다. 탕― 타앙―!
 
 “크으윽······!”
 
 첫 발로 승부가 났다. 로이 기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전역장교 로덕 대위의 승리였다. 로이 기자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상처를 싸매고 울부짖었다.
 
 “흥! 꼴좋다!”
 “팔이나 다리를 맞출 수도 있었잖아?”
 “그게 어디 쉽냐.”
 “군인하고 결투라니. 멍청한 놈.”
 
 너무 쉽게 승부가 나자 흥미를 잃은 구경꾼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흩어졌다.
 
 “기자들은 어딜 가나 평판이 안 좋지··· 아, 정신이 없다 보니 인사도 제대로 못 했군. 뉴 말라에는 무슨 일인가?”
 
 중위는 뒤늦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했다. 카우걸은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았다.
 
 “··· 그 마약 때문에 왔어.”
 
 ***
 
 카우걸은 중위의 집으로 초대되었다.
 중위의 본가(本家)는 연방수도 스톡홀드 시티에 있으며, 본인은 형님을 따라 웨이던 지방으로 이주한 후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였다. 카우걸과는 3년 전 탈영병 출신 현상 수배자를 쫓다가 친해졌다.
 
 “좀 비좁지만 편하게 지내게.”
 
 카우걸 기준에서 정원 딸린 2층 저택을 좁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기가 죽어서 눈치를 봐야 했다. 그나마 지금은 적응이 되어서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었다.
 
 “분명 현상금 사냥꾼 일이겠지? 리처드 고드란 작자인가?”
 
 카우걸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안을 구경했다. 기병대 장교답게 각종 권총과 도검이 진열되어 있었다.
 
 “보안관이 쫓고 있지만 쉽게 잡히지 않는 모양인데. 이미 뉴 말라를 떠났을 수도 있네.”
 “··· 확인해야지.”
 “뭐, 범죄자가 잡히면 좋은 일이지. 내가 도울 일이 있나?”
 “··· 노덕 대위 소개해 줘.”
 
 # 8화. 실버 블렛
 
 마약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중독성’을 빼놓을 수 없다. 기자의 주장대로 노덕 대위가 마약을 했다면 아직까지 끊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어렵지 않네만··· 어쩐지 불안하군.”
 “··· 걱정 마. 나 생각이 있어.”
 
 중위는 고등교육을 받은 점잖은 신사였기 때문에 포트럴 마을주민처럼 ‘차라리 날개가 있다고 우겨라’, ‘우리 집 누렁이도 생각은 하더라’ 등으로 핀잔을 주지 않았다. 콧수염을 만지다가 마지못해 일어났다.
 
 “정 그러면 소개해 주겠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말게. 노덕 대위는 전형적인 사관학교 출신 공병장교*일세. 무슨 뜻인지 아는가?”
 “··· 알아.”
 
 중위는 미심쩍어서 재차 확인했지만 카우걸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추궁할 방법이 없었다.
 
 ***
 
 노덕 대위의 집은 뉴 말라 외곽에 위치했다. 일단 장교라면 중산층(Middle Class) 이상의 신분인 만큼 화려하진 않아도 잘 관리된 집을 가졌다. 중위는 복장을 다듬은 후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어서 몇 번 더 두드려야 했다. 한참 뒤, 눈 밑이 퀭한 노덕 대위가 손수 문을 열고 나왔다.
 
 “무슨 일인가?”
 
 계급으로 보나 임관연도로 보나 노덕 대위가 상급자지만, 유산계급 중에서도 전도유망한 엘리트 기병장교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노덕 대위님. 승리를 축하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고맙네.”
 
 노덕 대위는 말을 짧게 끊었다. 집안으로 초대하지 않는 것은 그만 돌아가라는 점잖은 축객령이었다. 여느 때라면 곧장 물러갔겠지만, 오늘은 뒤통수 따갑게 노려보는 카우걸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그 결투와 관련해서 누구 좀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전문가인 만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저 여자 말인가?”
 “웨이던 지방에서 알아주는 총잡이입니다. 대위님도 한 번쯤 들어 본 적 있을 겁니다. 현상금 사냥꾼 검은 마녀라고······.”
 
 카우걸의 날카로운 눈은 노덕 대위의 일그러지는 주름을 감지했다.
 
 “그럼 하류층(Lower Class) 아닌가? 자네 나를 뭐로 보고 저 천한 것을······.”
 
 노덕 대위는 중위를 쫓아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화를 내었지만, ‘진짜 신사’인 중위의 성격을 알지 못해 역효과가 나왔다.
 
 “부디 입조심하십시오. 제가 존중하는 친구입니다.”
 
 중위가 정색하자 노덕 대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카우걸이 한 걸음 나섰다.
 
 “··· 들어가자.”
 “잠깐! 우선 대위님께 허락을······!”
 
 그러나 카우걸은 노덕 대위를 밀치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중위는 몹시 당황했지만 친구를 혼자 보낼 수 없었기에 허둥지둥 따라갔다.
 
 “이 무슨 무례인가!”
 
 노덕 대위가 고성을 지르며 질타했으나 듣지 않았다. 카우걸은 메인 홀 티 테이블 위에 하얀 가루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아도 밀가루나 소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 아편?”
 “크윽!”
 
 노덕 대위가 얼굴을 붉히고 홀스터로 손을 가져갔다. 카우걸이 사용하는 민수용이 아닌 진짜 콜트SAA(Single Action Army) 피스메이커였다. 물론 군용이나 민간용이나 성능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사용자의 실력 차이는 명확했다.
 타탕―!
 노덕 대위가 리볼버를 채 뽑기도 전에 카우걸의 콜트 피스메이커가 불을 토했다. 손목과 팔뚝에 각각 한 발씩 맞춰 완벽하게 공격을 차단했다. 눈으로도 쫓기가 힘든 속사였다. 노덕 대위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중위가 카우걸을 존중하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알아주는 총잡이라고.”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한 바퀴 돌리고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반은 폼이고, 반은 잔류한 화약 연기를 털어내는 동작이었다. 그사이 중위는 티 테이블 위의 하얀 가루를 만져 보고 냄새도 맡아 본 후 중얼거렸다.
 
 “실버 블렛(Silver Bullet)이군.”
 “··· 은탄환?”
 “이 마약 이름일세. 최근 서드 컨티넨트 전역에서 유행하는 상품이지.”
 
 중위는 실버 블렛이 혐오스럽다는 손을 닦아냈다. 마약이 합법인 주(州)에서도 고등교육 받은 신사라면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약을 혐오한다. 군 장교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
 
 “그나저나 대위님도 큰일이군요. 무고를 주장하며 신문기자까지 살해했는데 진실이 드러났으니······.”
 “사, 살려 주게! 우리 같은 자, 장교 아닌가!”
 “전 일개 중위일 뿐입니다. 대위님의 처분은 군사 위원회에서 내릴 겁니다.”
 
 노덕 대위는 피가 철철 흐르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장교 직위를 박탈당하고, 유가족과 신문사에게 소송당할 수도 있다. 명예를 잃은 신사를 변호해 줄 변호사는 찾기 힘들 것이다. 카우걸은 그러거나 말거나 목적한 바를 추궁했다.
 
 “··· 이 마약 누가 팔았어?”
 “저리 꺼져라.”
 “··· 리처드 고드가 잡히면 유리하지 않을까?”
 
 노덕 대위 표정에 잠깐이지만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카우걸은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유혹했다.
 
 “··· 협조했다고 증언할게. 명예롭게.”
 
 ***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재장전해서 홀스터에 꽂아 넣었다. 중위는 실버 블렛과 증거를 수집하며 혀를 찼다.
 
 “자네 정말 무섭군.”
 “··· 뭐가?”
 “총 솜씨도 그렇고, 사람을 다루는 것도 그렇고.”
 “··· 그런 거 없어.”
 
 카우걸은 노덕 대위가 그려준 약도를 확인했다. 뉴 말라에서 1시간 거리 떨어진 호박농장이었다. 농장주가 뉴 린딘 지방 판사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동명이인을 이용한 속임수였다. 보안관과 주 방위군은 이름만 확인하고 조사하지 않았다. 가짜 지방 판사의 농장은 리처드 고드가 운영하는 실버 블렛 저장창고였다.
 
 “내 도움이 필요 없겠나?”
 “··· 응.”
 “고드 패거리가 다수 체포됐지만, 아직 부하들이 남아 있을 걸세.”
 “··· 내 일이야.”
 
 카우걸은 걱정 가득한 중위의 시선을 뒤로하고 마약상인 농장을 향해 털레털레 걸어갔다.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할 것 같은 장면이지만, 현실은 좀 지루하고 차가웠다.
 
 ***
 
 카우걸은 어깨가 축 처져서 오래된 농장에 도착했다. 호박 넝쿨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토양이 안 좋아서인지 관리가 안 되어서인지 별 볼 일 없었다. 그나마 열매가 열린 것도 벌레가 파먹은 채 썩어 가고 있었다.
 
 ‘··· 농장이 아니니까.’
 
 카우걸은 나지막한 언덕 위 통나무집으로 올라갔다. 중턱쯤 이르자 인기척이 느껴졌다. 농부처럼 꾸몄지만, 농부로 보이지 않는 두 남자가 막아섰다.
 
 “너 뭐야?”
 “여긴 사유지다. 돌아가.”
 
 밀짚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낫을 들었지만, 피부가 전혀 그을리지 않고 낫이 새것처럼 번쩍였다. 카우걸은 확인 차 말했다.
 
 “··· 리처드 고드?”
 “이런 샹! 사냥ㄲ······!”
 
 탕탕―!
 두 남자는 어설픈 변장의 대가로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카우걸은 손가락을 두 번 튕기는 것으로 요단강 관광 편도티켓을 발부했다. 그리고 잽싸게 뛰어서 문짝 옆에 몸을 붙였다.
 
 “총성이다!”
 “존! 데드! 나가 봐!”
 
 통나무집 문이 벌컥 열리고, 더블배럴 샷건(Double―Barrel Shotgun)을 앞세운 중년 남자가 뛰쳐나왔다.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 공이를 당긴 후 엉뚱한 곳을 겨냥하는 중년 남자의 관자놀이를 날려 주었다. 그리고 쓰러지지 전에 목덜미를 잡아 세워 바디벙커로 삼았다.
 
 “존!”
 “죽여! 죽여 버렷!”
 
 타타탕! 탕탕! 탕! 탕!
 통나무집 안에서 십여 발의 총성이 터져 나왔다. 카우걸은 깨지고 터져서 너덜너덜하게 변해가는 중년 남자 시체 뒤에서 침착하게 숫자를 헤아렸다.
 
 ‘··· 둘··· 셋··· 셋이네.’
 
 목소리와 총성을 보아 총 세 명이었다. 카우걸은 외형이 많이 망가진 중년 남자의 더블배럴 샷건으로 응사했다. 쾅―! 콰앙―! 흐악! 처음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대충 쏘았는데 얻어걸렸다. 엄폐하지도 않고 무작정 총질하는 것을 보아 아마추어였다.
 
 “저놈 뭐야!”
 
 남은 두 명은 뒤늦게 테이블과 소파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카우걸은 시체와 더블배럴 샷건을 좌우로 팽개치고 성큼성큼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아악! 죽엇!”
 
 테이블 뒤에 숨은 젊은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S&W 리볼버 방아쇠를 당겼다. 틱― 틱틱― 공이 튀는 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 6발.”
 “머, 뭐?”
 “··· 다 쐈잖아.”
 
 카우걸은 더 볼 것 없다는 듯 콜트 피스메이커를 올렸다. 탕―! 45구경 총탄이 깔끔하게 이마를 뚫었다. 이제 한 명 남았다.
 카우걸은 소파 뒤로 다가갔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로딩 게이트를 열고 총알을 장전하고 있었다.
 
 “··· 리처드 고드?”
 
 리처드 고드는 장전이 덜 된 리볼버를 허둥지둥 들어 올렸다. 그러나 카우걸이 먼저 콜트 피스메이커의 남은 두 발을 박아 주었다. 탕―! 타앙―!
 카우걸은 콜트 피스메이커를 홀스터에 꽂아 넣고 주섬주섬 현상 수배지를 펼쳤다. 얼굴에 구멍이 9개가 된 시체와 꾸깃꾸깃한 현상 수배지를 번갈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맞네.”
 
 ***
 
 카우걸은 리처드 고드의 시체를 넘기고 현상금을 수령했다. 뉴 말라 시장이 내건 현상금을 뉴 말라에서 직접 수령했기에 세금과 수수료가 일절 없었다. 그래서 카우걸은 기분이 좋았다. 중위와 노덕 대위에게 선물을 보내고도 1,600페닝이 고스란히 주머니에 들어왔다.
 
 ― 마약 밀수단 잔당 소탕. 뉴 말라 시티 ‘마약과 전쟁’ 종결선언.
 
 이틀 뒤. 카우걸은 뉴 말라에서 온 신문을 꼼꼼하게 읽었다. 사건 규모에 비해서 신문내용은 길지 않았다. 심지어 카우걸에 관해서는 딱 한 줄 나왔다.
 
 ― ··· 두목 리처드 고드는 현상금 사냥꾼 ‘검은 마녀’에게 사살되었다.
 
 카우걸에게 개나 고양이 같은 큰 귀가 있다면 축 처지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처질 폰을 잡았을 때와 반응이 달라서 내심 실망했다. 포트럴 마을 보안관이 걸쭉하게 트림하고 말했다.
 
 “뉴 말라 보안관 사무소 자존심 문제니까.”
 “··· 자존심?”
 “쫄다구(Deputy: 부보안관)까지 10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 꿰차고 있는데 앞마당에 숨어 있는 범죄자를 못 잡았잖아. 그런데 타지에서 온 현상금 사냥꾼 나부랭이가 하루 만에 해결했으니 자존심이 팍 상하지.”
 “그렇다고 묻어 버려요?”
 “걔네도 밥줄이 걸린 일이잖아. 그런데 무슨 상관이야? 우린 현상금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야?”
 
 카우걸은 한숨을 푹 내쉬고 긍정했다.
 
 “··· ‘우리’ 아니야. ‘나’야.”
 “어허? 그러지 말고 오늘도 한턱 쏘지그래?”
 
 카우걸은 고민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
 
 “··· 싫어!”
 
 
 ―――
 
 장교(Commissioned Officer) :
 유럽 사회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장교직위를 돈 주고 살 수 있었다. 귀족과 유산계급의 경우 장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글을 읽고 말을 타는)을 갖췄다고 보았기 때문에 장교직 거래가 쉽게 용인되었다. 이들은 주로 보병장교와 기병장교로 임관하였다.
 사관학교가 존재하기는 했으나, 전문지식이 필요한 공병장교, 포병장교 위주로 육성하였으며, 그들은 상류층이 차지한 보병장교, 기병장교보다 진급이 느리고 대우 또한 좋지 않았다.
 
 <『하이눈High Noon』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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