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무형마존

1화

2019.04.03 조회 2,133 추천 17


 작가서문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상상. 그런 상상을 토대로 무협소설을 써보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제가 무형마존을 쓰게 된 배경은 바로 이런, 조금은 시시한 이유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장르문학 포털사이트 문피아에서 연재하기 시작한 무형마존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출판으로 이어졌고, 이에 제게 도움을 주신 분들을 적어보려 합니다.
 
 먼저, 항상 함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창작집단 필의 리더인 건 형을 비롯하여 기태 형, 연 형과 민철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 항상 막힌 부분을 조언해주시는 금강 님, 제 글을 봐주시느라 고생하신 창작집단 사신의 나무 형과, 체술무적 로이얀의 김형석 형. 그리고 정은호 형과 곤륜산맥을 쓰신 오채지 님을 비롯하여, 열심히 원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저보다도 더 고생하신 편집자 태완 형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무형마존을 읽으실 때, 어렵지 않고 쉽게 볼 수 있는 글이, 소재는 멀리 있어도 주인공만은 여러분의 곁에서 함께 숨 쉴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글을 읽고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재욱 배상
 
 
 
 序
 
 
 
 
 
 명교(明敎)에서 혜성과도 같이 등장한 고수.
 
 그는 무림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전대미문의 무공을 펼쳤다.
 
 세외제일인이라 칭송받는 북극빙제(北極氷帝) 나일진(蘿日進)은 그와 사흘간 검을 논한 후 이렇게 말했다.
 
 “야 이 치사한 개자식아! 보이지도 않는 놈과 어떻게 싸우라는 거냐!”
 
 
 
 第一章 조우(遭遇)
 
 
 
 
 
 一
 
 운남에서도 구석에 자리한 척박한 오지.
 
 그 오지에서도 산기슭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에 흉년이 덮쳤다.
 
 가뜩이나 먹을 것이 부족할진대, 흉년이다.
 
 흉년을 이기지 못하고 북상하여 사천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나무뿌리를 캐먹는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이제 사람들이라고는 열 가구도 채 남지 않은 마을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만이 가득했다.
 
 헌데, 그 마을의 귀퉁이에서 쉴 새 없이 땅을 고르는 사람이 있었다.
 
 “쳇! 이 잎이 마지막이군.”
 
 소년은 땅을 맨손으로 고르다가 허리춤에서 길쭉한 풀잎을 꺼내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밭일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숲속 깊숙한 곳에서 발견한 난이었다.
 
 난 잎의 맛이 이렇게도 좋을 수가 없어서, 몽땅 다 따갖고 왔는데, 벌써 다 먹고 마지막 남은 잎을 입에 문 것이다.
 
 하루 종일 땡볕 아래에서 파삭하게 말라버린 흙을 고르고 있었지만, 소년은 절대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소년이 한참 밭을 고르다가 허리를 활대처럼 세워 기지개를 피고 손을 털었다.
 
 소년의 이름은 무영.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이기에 얼굴에 그림자가 지지 말라고, 항상 밝은 얼굴로 살아가라고 마을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손을 털던 무영은 손톱에 끼인 흙을 잠시 보다가 입 밖으로 삐죽이 튀어나왔던 난 잎을 모두 입 안에 집어넣고 밭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꼭대기까지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무영을 길러준 마을사람들은 무영에게 은인이었다.
 
 물론, 한두 끼 밥 정도만 챙겨 줬지만, 요즘 같은 때에 그들도 힘들 것이리라.
 
 꽤 거리가 되는 산을 단숨에 내려가 마을로 걷던 무영은, 마을의 분위기가 왠지 낯설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흉년으로 사람들이 떠나기는 했지만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잠잠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처럼.
 
 무영이 불안한 표정으로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마침 무영의 정면에 마을에서 나오는 노인이 하나 있었다.
 
 처음 보는 노인.
 
 선풍도골의 풍모가 이럴 것이다.
 
 붉은 대추 빛의 얼굴에, 곧게 내려온 하얀 수염. 그리고 인자한 눈초리까지.
 
 막 마을을 나오던 노인은 처음 무영을 보고는 곤란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쯧, 불씨를 놔두면 큰 불이 될 수도 있는 법.’
 
 노인이 천천히 무영을 살펴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무영도 노인에게 잠시 눈길을 줬다가 노인을 지나쳐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노인이 무영을 불러 세웠다.
 
 “아이야.”
 
 노인의 듣기 거북하지 않은 목소리가 무영의 발을 잡았다.
 
 “네? 절 부르셨나요?”
 
 “그렇단다. 혹시······, 저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더냐?”
 
 “네! 밥을 먹을 시간이거든요.”
 
 잠시 후에 먹을 밥을 떠올리는지 무영이 밝은 얼굴로 대답하자, 노인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마을에 들어가면 안 된다. 저 마을에는 지독한 돌림병이 퍼져서 자칫 잘못하다간 고열을 앓다가 죽고 말게야. 내가 의술에 약간의 조예가 있어 마을을 살펴보았는데······ 불행하게도 마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목숨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란다. 게다가······.”
 
 노인이 진실로 안 됐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네?”
 
 무영은 지금 눈앞에 있는 노인이 하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인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어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돌림병으로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니······.
 
 무영에게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은인이자, 가족이었다.
 
 하지만 무영은 영악한 아이였다. 어린 나이에 홀로 살아남다 보니 자연스레 그리된 것이다.
 
 모두가 이미 병에 걸렸고, 마을에 들어가면 무영 자신마저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것이라 하니, 슬픔도 슬픔이지만 차마 마을 안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앞이 캄캄했다.
 
 그저 한숨만을 쉴 뿐.
 
 “어허, 너는 슬프지 않느냐? 모두가 죽었다. 네 가족도 죽었을 진데 원통하지 않느냐?”
 
 “왜 안 슬프겠어요······ 단지, 여기서는 죽음이 빈번해요. 요즘 같은 때엔 그나마 낫지만, 풀뿌리마저 말라버릴 가뭄에는 죽음이란 것이 비일비재하거든요······.”
 
 풀이 죽은 무영을 찬찬히 보던 노인이 인자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밥도 먹지 못하겠구나.”
 
 “괜찮아요. 오늘 아침도 풀뿌리로 때운걸요.”
 
 “쯧쯧, 한참 자랄 나이에는 밥을 먹어야 한단다. 혹시 갈 데가 없다면, 나의 집에 따라오겠느냐?”
 
 노인의 말에 땅을 향하던 무영의 고개가 들렸다.
 
 “할아버지 집이요?”
 
 “그래. 내 집.”
 
 노인은 등 뒤로 보이는 산 중턱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늙다 보니 귀찮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더구나. 나대신 청소나 잔심부름도 하고 가끔 재롱도 피운다면야 같이 못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헤에, 정말인가요?”
 
 “그것 뿐 일까! 내 너에게 뜨신 밥을 주도록 하마. 그리고 마음에 쏙 들면 용돈도 주겠다.”
 
 “밥! 밥이요?”
 
 무영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무영에게는 돈보다 밥이 더 반가웠다.
 
 사실 지금 밥을 먹을 시간이라 마을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밥 한 끼를 제대로 못 먹고 풀뿌리를 먹고 지낸지 벌써 사 일이라 오늘도 밥을 먹을 수 있을지는 가 봐야 안다.
 
 그런데 밥에 돈이라니! 무영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하지만 뭔가 석연찮았다.
 
 밥으로 모자라 돈이라니! 무영의 머리에 의심이 똬리를 틀었다.
 
 “근데 왜 저에게 이렇게 잘 대해 주시는 거죠?”
 
 “허허허, 나는 한때 사천에서 이름 높은 요리사였다. 그런데 늙고 나니, 너 같이 굶는 아이에게 내 요리를 맛보여 주는 것이 훨씬 보람 있더구나. 게다가 아까 말했다시피 늙다보니 느는 게 귀찮음뿐이라 너를 집에 들이려 한단다. 어떠냐? 따라올 테냐?”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하자, 무영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둘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二
 
 선풍도골의 노인.
 
 그 노인의 이름은 당랑영이었다.
 
 당랑영은 눈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들을 모두 집어삼키는 무영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곤란해졌다.
 
 이미 마을에 사는 모든 자들은 자신의 음식을 먹어보았고, 반응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이놈은 달랐다. 잘 먹는다.
 
 음식을 잘 먹는 게 무에 문제가 있겠느냐마는 그 재료가 무엇이냐를 알면 사정이 다를 것이다.
 
 “으음······.”
 
 은연중에 침음성을 뱉어버린 당랑영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던 무영이 조심스레 수저를 놓고 말한다.
 
 “할아버지······ 혹시 제가 할아버지 것까지 다 먹어 버린 건가요?”
 
 당랑영은 눈앞에 있는 괴물을 어찌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난감했다.
 
 “허허, 맛있느냐?”
 
 “네에!”
 
 위아래로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무영을 보며 당랑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맛있게, 다 먹어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수저를 드는 무영.
 
 하지만 무영이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자신이 예상하던 일은 없었다.
 
 “몸은 어떠냐?”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다. 아니야.”
 
 이상했다.
 
 자신이 기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려 오 년 동안이나 정성과 시간을 들여 만든 물건.
 
 침명단(沈明丹)!
 
 그런데 그것이 무영에게는 들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잘못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얼마 전에 실험도 했었고, 또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지 않던가!
 
 당랑영의 눈이 빛났다.
 
 ‘뭔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복수는 물 건너간다.’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하던 당랑영은 무영을 옆에 두고 무엇이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가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대업을 확실케 하기위한 방법이었다.
 
 “무영아, 너만 좋다면 이곳에서 계속 지내지 않겠느냐? 홀로 늙다보니 외로움만 느는구나.”
 
 조심스럽게 당랑영이 입을 열었다.
 
 노인의 말에 무영도 수저를 놓고 순식간에 계산을 했다.
 
 ‘음, 뭐 나는 밥만 먹는다면야······.’
 
 “좋아요! 할아버지!”
 
 무영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노인과 무영의 동거가 시작 된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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