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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신세계 : 1화

2019.04.17 조회 272 추천 1


 무림 신세계 : 1화
 
 
 
 
 
 
 
 
 
 
 
 
 
 
 1화 - 序. 역병이 창궐하다
 
 역병이 발생했다.
 발생한 시점이 언제인지, 자연적인 발현인지 누가 인위적으로 살포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전파 속도가 너무 빨라 첫 희생자가 나타난 이래 석 달 만에 전 중원으로 퍼져 나갔다. 신의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던 의원들이 나섰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역병의 특징은 이러했다.
 첫째, 내공을 가진 자는 무조건 전염된다.
 둘째, 일반인이나 외공만 익힌 자는 전염되지 않는다.
 셋째, 전염되면 내공을 사용할 때마다 기혈이 뒤틀리며 내공을 모두 소진할 시 사망한다.
 넷째, 개인차가 있으나 잠복기를 거쳐 대략 20세 전후로 증상이 나타난다.
 
 역병이 알려진 뒤 당시 천하제일인이었던 무적검 초무량은 코웃음을 쳤다.
 “이깟 병마 따위 뭐 그리 무섭다고!”
 당시 그의 내공은 인간의 한계라 일컫는 오갑자에 육박했다. 환골탈태를 이룬 육신은 예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탄탄한 근육질로 뒤덮였으며 손에든 검에서는 강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사마외도와의 일전에서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들의 머리가 잘 익은 밤송이 마냥 후두두 떨어지곤 했었다.
 무적검의 출현에 수많은 군중들이 모였다.
 군중들 앞에서 그는 자신 있게 외쳤다.
 “내공으로 억제할 수 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단전에 자리 잡은 오갑자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바람도 없는데 무적검 주변의 흙과 풀들이 춤을 추며 하늘로 비상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안개와도 같은 희뿌연 김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군중들의 눈동자가 퉁방울마냥 커졌다. 그들은 앞을 다투어 외쳐댔다.
 “역시 무적검!”
 “역병을 물리칠 방법을 찾은 것인가?”
 “과연 천하제일인이오!”
 “날 가져요!”
 “······.”
 마지막 외침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군중들이 시선을 돌렸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 무적검의 얼굴에서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번갈아 가며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군중들은 다시 환호했다. 그것이 마치 고절한 내공의 힘으로 신기막측한 이능을 펼칠 때에나 일어나는 현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무적검의 이마가 찌푸려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각이 지났을 때 무적검의 전신은 학질이 발작한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반 시진 뒤에는 전신 모공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다시 일각이 흐르자, 감고 있던 무적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커헉!”
 수많은 군중들이 모였으나 장내는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놀란 군중들은 그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무적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내 무적검의 몸이 벌목당한 나무처럼 쿵 하고 뒤로 넘어갔다.
 “무, 무적검이 죽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군중들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때, 계인을 찍은 중머리에 가사를 걸친 이가 사람들을 비집고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렸다.
 “현각대사······.”
 현각은 소림의 장문인으로 현 강호에서 무적검 다음으로 무위가 높다고 평가받는 이였다. 한 장소에 천하를 다투는 이 둘이 모두 나타난 것이다.
 현각이 무적검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전신에서 새어나온 피로 인해 무적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현각은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보게, 무량이.”
 그러자 갑자기 무적검이 손바닥을 펼친 채 팔을 들어올렸다.
 “아이구, 깜짝이야!”
 그가 죽은 줄 알았던 현각은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찍었다. 고수의 체통이 있는지라 얼굴을 붉히는데 무적검이 입을 열었다.
 “아, 아··· 아깝······.”
 입을 열 때마다 고인 핏물이 보글보글 끓어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에도 현각은 찰떡같이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곤 되물었다.
 “무엇이 아깝단 건가? 성공할 뻔했단 건가?”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일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은 무적검처럼 내공을 이용해 병마를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생각일 뿐, 직접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죽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 시도한 무적검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무적검은 이후로 계속해서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현각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무적검의 가슴에 장심을 얹고 약간의 진기를 불어 넣었다. 정심한 내공을 소유한 현각 또한 역병을 피할 순 없었다. 그러니 아주 극소량일 뿐인데도 진기를 일으키자 이내 전신의 기혈이 뒤틀리는 고통이 몰려왔다.
 ‘으으음······.’
 현각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치고는 다시 물었다.
 “이보게 뭐가 아깝단 건가?”
 무적검이 한결 편안해진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시, 시··· 발.”
 “음···?”
 “이, 이제 겨, 겨우··· 천하······.”
 현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때마침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쳤다.
 “아, 자네 심정은 이해하네. 이제 겨우 천하를 넘보게 됐는데 이리 되었단 것이지. 빈승도 안타깝기 그지없네. 그 억울한 마음 다 이해하니 이제 말해보게. 성공할 가능성은 있던가?”
 “아, 아깝······.”
 “그렇지. 다시 말하지만 나도 안타깝네.”
 “미, 미, 미··· 녀······.”
 “응? 미녀?”
 “아, 아, 아깝······.”
 현각은 답답함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평소 불경을 외며 인내심을 기르지 않았다면 당장 입 밖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꾹 눌러 삼켰다. 그리고는 또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 아깝단 말인가?”
 “시, 시발··· 초, 초··· 총각··· 컥!”
 단말마를 끝으로 무적검 초무량은 끝내 숨을 거뒀다.
 “음···!”
 다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현각이 무적검이 남긴 마지막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무적검은 지금 총각으로 죽게 된 것이 아깝다고 한 것이다. 종합해 보건데, 이제 겨우 천하를 넘볼 힘을 얻었고 앞으로 천하의 미녀들이 그의 앞에 줄을 설 텐데 결국 총각으로 죽게 되었으니 그것이 아깝단 거였다.
 ‘미친 새끼. 그것도 유언이라고!’
 현각은 짜증이 솟구쳐 올랐지만 보는 눈이 많은 까닭에 마음을 다스리며 염주를 굴렸다.
 숨죽여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군중들은 김이 빠져버렸다. 일부는 총각으로 죽은 무적검의 처지가 불쌍했는지 혀를 차기도 했다.
 무적검에게서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현각은 침음을 삼키며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욕 대신 나직이 불호를 외었다.
 “나무아미타불.”
 
 무적검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죽는 바람에 수많은 고수들이 똑같은 실험을 시도하다 비명횡사했다. 결국 천하의 무림 문파와 방파들은 역병이 해결될 때까지 자파 무인들의 내공 사용을 금하였다. 그리고는 역병의 해결에 골몰했다. 진귀하다는 영약을 구해 먹고 용하다는 의원을 데려와 진료를 시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썼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3년쯤 지나자 무림의 판도가 바뀌었다.
 외공을 기반으로 한 무공을 익힌 방파가 크게 세를 떨친 것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내공 위주의 무공에 밀려 기를 펴지 못하였으나 단번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 중 철심문, 용두방, 태호방, 진가방 등이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 일문삼방은 기존의 무림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승천맹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다시 3년이 지났을 때 구파일방은 모두 봉문하였다. 나머지 중소 문파들은 대부분 멸문하거나 승천맹에 충성을 맹세하고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즈음, 승천맹이 구파일방 중 하나인 종남파를 찔러보았으나 종남파 고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내공을 사용하는 바람에 크게 혼쭐이 났다. 과연 구파일방에 속한 종남의 저력은 아직까진 건드려 볼 만한 것이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승천맹의 무사들을 이끌던 곽표가 발길을 돌리며 남긴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다시 3년이 지났다.
 승천맹은 더욱 세력을 불렸다. 구파일방은 여전히 봉문한 가운데 자파의 무공체계를 외공 위주로 바꾸는데 주력하는 한편, 자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내공을 사용할 호법단을 꾸렸다. 이들 호법단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고수를 위주로 편성되었다. 말이 호법단이지 사실은 자살단이나 다름없었다.
 이즈음 승천맹은 찔끔찔끔, 하지만 지속적으로 구파일방을 공격했다. 겉으로는 구파일방에서 이들의 공격을 수월히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내공을 모두 소진한 고수들이 한 둘은 반드시 죽어나간 것이다. 구파일방은 그 수가 누적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직은 외공을 익힌 제자들의 성취가 미흡했다.
 결국 구파일방은 시간을 벌고자 연합을 도모하였다. 무림맹을 결성한 것이다. 초대 맹주로는 소림의 현각이 추대되었다. 무림맹은 소속 문파의 제자들이 빠르게 외공의 고수가 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호법단의 규모를 더욱 크게 키웠다.
 덩치를 불린 승천맹에도 위기가 닥쳤다.
 맹 내에서 권력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맹주의 자리를 놓고 철심문과 태호방이 맞붙었다. 결국 철심문의 승리로 매듭이 지어졌지만 덕분에 무림맹은 원하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한편, 새로운 세력도 등장했다.
 구성원의 나이가 전원 20세 이하로만 이루어진 요로문이라는 문파였다. 이들 요로문은 내공의 사용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 권장했다.
 요로(要路).
 길을 구한다는 뜻을 가진 문파명에 맞게 이들은 삶의 길을 다음과 같이 명명하였다.
 인생은 즐겁게! 짧고 굵고 짜릿한 삶!
 이를 기치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무림에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어차피 역병의 증상은 보통 20세 이후에나 나타나므로 이들은 내공을 사용함에 있어 거침이 없었다. 사람들은 요로문의 무인들을 요로족이라고 부르며 상대하길 꺼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로문의 기치를 받아들이는 소년, 청년의 숫자는 갈수록 늘었다. 점차 요로문은 무림의 골칫거리로 성장했다.
 그리고 다시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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