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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정령 1-1권

2019.04.25 조회 2,923 추천 9


 프롤로그(1)
 
 
 
 시원하리만큼 푸른 하늘에 하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날아가는 미사일 6발.
 절대 훈련용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라고 해도 진짜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을 본다면 간담이 철렁할 것이다.
 그런데 어딘가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는 6발의 미사일들은 일반 미사일도 아니었다.
 6발 모두 핵미사일이었다.
 현재 6발의 핵미사일들이 정말로 발사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핵미사일이 터지면 해당지역만 초토화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가 큰 만큼 확실한 보복조치가 발생할 것이다.
 그것은 곧 3차 세계대전을 의미했다.
 핵미사일로 인한 3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사실상 지구 전체가 전쟁의 포화에 놓이게 된다는 거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핵미사일이 터질 것으로 유추되는 지역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핵미사일로부터 당장은 안전한,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세계인들이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반대로 좋아죽겠다는 얼굴로 박장대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크크크크. 이 얼마나 훌륭한 세상인가. 버튼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세상을 파멸시킬 수 있다니. 사사건건 내 일을 방해하는 신도 없고. 용사도 없는, 이 세상이야 말로! 내가 꿈꾸던 세상이다!”
 6발의 핵미사일이 불러올 대참사를 기쁜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는 사내의 이름은 루스펠 타산.
 미국 대통령이다.
 
 
 프롤로그(2)
 
 
 
 소름끼치는 흉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마왕이 그 이름에 걸맞은 사악한 미소를 그렸다.
 “크크크크, 용사여! 이제 마지막이다. 더러운 신의 안배는 여기서 모두 끝난다. 중간계는 이제 나의 것이다! 용사여! 너의 투쟁도 여기서 끝이다!”
 마왕이 칠흑보다 더 시커먼 마검을 휘둘렀다.
 마검에서 발사 된 시커먼 기운이 용사 아벨에게 쏘아졌다.
 “으윽!”
 용사 아벨은 마왕의 공격을 뻔히 보고도 피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마왕과 싸우느라, 체력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다. 비단 아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아벨과 함께 마왕과 싸워온 아벨의 동료들 역시 몹시 지친 상태였다. 그들 역시 아벨처럼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안타깝지만 아벨의 죽음은 기정사실이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안 돼!”
 고함을 지르며 아벨의 앞으로 튀어나온 것은 2쌍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며 날고 있는 작은 정령이었다.
 작은 정령이 아벨을 지키겠다는 듯, 아벨 앞에서 앙증맞은 두 팔을 벌리고 섰다.
 그 모습을 본 아벨이 소리쳤다.
 “필그림! 안 돼! 비켜!”
 필그림이라고 불린 작은 정령이 아벨을 향해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벨,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이제 알았어. 그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내가, 무엇 때문에 너와 함께하게 되었는지. 아벨, 부디 중간계를 마왕의 손으로부터···.”
 콰아아앙!
 필그림은 끝내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마왕의 공격이 아벨 앞에 서 있던 필그림의 작은 몸을 덮쳤기 때문이다.
 마왕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필그림의 작은 몸을 집어삼켰다. 마왕의 공격은 필그림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아벨에게도 그 마수를 뻗쳤다.
 아니 뻗치려고 하는 그 순간, 마왕의 공격에 집어삼켜졌다고 생각했던 필그림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빛은 작은 요정의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 강렬한 푸른빛이 아벨과 그 동료들을 집어삼키려고 하던 마왕의 사악한 어둠에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생각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힘겹게 밀어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탄력을 받은 것처럼 수월하게 밀어내기 시작했다.
 필그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단순히 마왕의 어둠만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 지쳐있던 아벨과 그 일행들에게 새로운 힘을 전해주었다.
 “으아아아악!!”
 필그림의 희생으로 기사회생한 아벨이 분노에 찬 괴성을 질렀다.
 아벨의 순수한 분노에, 아벨의 몸에 잠들어 있던 새로운 힘이 깨어났다.
 아벨의 몸에서 순백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벨의 순백의 빛과 필그림의 푸른빛이 만나자, 엄청난 힘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그 힘의 소용돌이는 아벨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왕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안 돼! 이럴 순 없다고! 빌어먹을 신! 비열하게 이런 함정을 꾸미다니!”
 “마왕이여! 죄의 대가를 받아라!”
 쏴아아아-.
 아벨이 빛의 검 샤이아크로 마왕의 몸을 베었다.
 “끄아아악! 이게 끝이 아니다! 언제고, 언제고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때는, 그때는 기필코···. 크아아악!”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하던 마왕의 몸이 픽셀로 분해되며 사라졌다.
 “필그림!”
 이제 마왕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아벨이 죽어가고 있는 필그림에게 달려갔다.
 “필그림! 정신 차려!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필그림 정신 차려!!”
 
 
 전생체험
 
 
 
 “안 돼!!”
 그 순간 나는 발작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
 나도 모르게 나의 오른손이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윽!”
 아팠다.
 너무 아팠다.
 뾰족한 포크 같은 것으로 심장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이 생생한 아픔과 함께 전해지는 불쾌감.
 “젠장! 또 야?!”
 이 빌어먹을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을 꾼 지도 벌써 열흘째다.
 용사와 마왕의 싸움.
 어린 시절에도 자주 꾸던 꿈이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꿈이 생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꿈은, 그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희미하게 이런 꿈을 꿨다라고 기억될 뿐이다.
 간혹 자세하게 기억나는 꿈도 있지만 지금 꾸고 있는 꿈에 비하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없었다.
 그것도 열흘 연속으로 계속해서 똑같은 꿈을 꾸는 경우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에잇! 이게다 그놈의 전생체험인지 뭔지 때문이야!”
 열흘 전의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학교를 마치자마자, 절친인 민재와 진욱이와 함께 학원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지루하면서도 평화로운 평범한 일상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 누님들에게 혹하지만 않았어도···.
 어떤 누님들이었냐고?
 그 왜 있잖아.
 가게 오픈하거나 무슨 행사할 때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 누님들.
 한창 피가 뜨거울 나이인 나와 친구들은 신명나는 노래와 누님들의 방어력이 높은 의상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친구들이 누님들의 방어력 높은 의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 능글맞게 생긴 아저씨가 다가와 전단지를 나눠졌다.
 처음에는 그냥 버리려고 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님들의 방어력 높은 의상이지, 이따위 종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전단지를 버리려고 하다가 우연히 그 내용을 보게 되었다.
 “어라? 전생체험?”
 학원근처에 최면술을 통해서 전생을 경험시켜주는 전생체험관이라는 곳이 생겼다. 전투력을 상승시켜주는 누님들의 춤과 전단지는 그곳의 오픈을 알리는 것이었다.
 민재가 말했다.
 “나 이거 TV에서 봤어.”
 진욱이가 말했다.
 “아, 슈퍼걸즈 멤버들이 최면술로 자신들의 전생이 뭔지 말하는 거 말이지? 나도 그거 봤어.”
 나 역시 그 방송을 보았다.
 최면술을 통해서 전생을 체험하다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리고 꼭 전생체험은 아니더라도 최면술에 걸리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민재가 말했다.
 “야, 이거 구경 한번 가볼까?”
 진욱이가 말했다.
 “학원은 어쩌고?”
 “아직 시간 좀 있잖아.”
 내가 전단지 하단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오픈 기념행사로 반값으로 해준데.”
 전단지 하단부분을 보니, 원래 5만원인데, 오픈 행사기간 동안만 특별히 반값인 2만 5천원에 해준다고 써 있었다.
 고등학생에게는 2만 5천원도 큰돈이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묘했다. 반값이라고 하니 그리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호기심 충족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와 진욱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한번 가보자.”
 “그래, 반값이라고 하잖아? PC방 몇 번 덜 간다고 생각하지 뭐.”
 “그래. 가자.”
 그렇게 나와 민재 그리고 진욱이는 전생체험관이라는 곳을 찾았다.
 다들 우리와 같은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반값 행사 때문인지, 제법 사람이 많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이상으로 길었다. 이러다가 학원에 늦겠다고 생각될 때 쯤 우리 차례가 되었다.
 학원을 갈 것이냐, 지각을 할 것이냐.
 갈등의 기로에 서 있었던 우리는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전생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최면술이나 전생체험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뭐, 민재나 진욱이는 나름 재미있었다고 하는데 난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민재는 최면술을 통해서 자신의 전생이 강감찬 장군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진욱이는 최면술을 통해서 자신의 전생이 을지문덕 장군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어떻게 됐냐고?
 나의 전생은 아무것도 없었다.
 간혹 최면술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최면술에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민재나 진욱이처럼 최면술에 걸렸다. 다만 앞서 언급한대로, 최면술에 걸리고도 전생에 대해서 떠올리지 못했다.
 마치 나에게만 전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전생체험관의 말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요금 2만 5천원을 받지 않았다. 나만 돈을 받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전생체험관을 찾아왔다가 최면술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나처럼 요금을 받지 않았다.
 금전적인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민재나 진욱이가 경험한 전생체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전생을 체험한 민재와 진욱이가 나만 경험하지 못했다며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빠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번 일이 단순히 기분 나쁜 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각설하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학교 숙제를 끝낸 후 수면을 취했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용사와 마왕이 싸우는 이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이.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기분 나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이 이틀을 지나 사흘 연속으로 꾸게 되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용사와 마왕이 싸우는 이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을 꾸고 난 후부터, 두통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두통만이 아니었다.
 악몽을 꾸고 난 후부터 이상하게 머리가 멍해지면서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중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면서 학교나 학원의 수업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을 자도 잠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어느 광고처럼 정말로 피곤이 내 등에 올라타서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 잡았다.
 5일째 되던 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 전생체험관의 일이 원인이라고 생각한 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전생체험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불같이 따졌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전생체험관 측은 최면술과 악몽은 절대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상은 물론이고 이 악몽을 치료해 줄 수도 없다고 못 박았다.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나는 무조건 고쳐내라고 짜증을 부렸다.
 전생체험관 측에서는 그만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부르려면 부르라고 강짜를 부렸다. 민재와 진욱이가 그런 나를 데리고 강제로 그곳을 나오게 했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서 최면술과 악몽에 대한 상관관계를 조사해보았지만 전생체험관의 말처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 이윽고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을 꾼 지 열흘째가 된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평생 이 악몽 같지 않은 악몽을 꾸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열흘 동안 꾼 것만 해도 기네스북에 오를 일인데, 평생을? 절대 아냐.”
 그래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진짜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며칠만 더 같은 꿈을 꾸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아직까지 이 악몽에 대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오늘 당장에라도 악몽이 끝날 수도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부모님께 섣불리 말씀드리는 것은 괜한 걱정만 끼쳐드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할망정···. 그래, 며칠 더 지켜본 다음에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말씀드리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책상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30분이었다.
 “그나저나 시간은 또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춘데?”
 내 일상을 엉망으로 만든, 마왕과 용사가 싸우는 똑같은 꿈을 열흘 연속으로 꾸는 것이 신기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꿈으로 인해서 깨어나는 시간이 언제나 새벽 4시 30분이라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꿈은 꿈일 뿐이야.”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악몽 때문에 식은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몸이 너무 찝찝했다.
 나는 샤워를 한 뒤에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잠옷 겸 실내복으로 쓰는 옷을 입었다.
 거실 벽에 부착된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띠리릭 띡-.
 디지털 도어락의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오셨어요.”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진수, 벌써 일어났구나?”
 “우리 진수 부지런도 하지.”
 아, 내 이름은 김진수다.
 악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게 되었지만 그걸 굳이 부모님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었다.
 “아이고, 그 무거운 걸. 저 주세요.”
 나는 재빨리 어머니가 들고 있는 무거운 물통을 빼앗듯이 건네받았다.
 어머니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어쩜, 우리 진수는 이렇게 착할까.”
 부모님은 포장마차를 하고 계신다.
 남들 퇴근하는 시간에 일을 시작하시는 부모님은 지금처럼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청풍 아파트 뒷산에 위치한 약수터에서 약수를 떠오신다.
 부모님은 이렇게 떠온 약수를 포장마차 음식에 사용하신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 역시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거기에 정말로 약수가 효험이 좋아서인지 포장마차는 제법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약수가 가득한 물통들을 베란다 한쪽에 내려놓으신 아버지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아버지가 샤워를 하시자, 어머니가 내가 먹을 아침을 준비해주셨다.
 “진수야. 급하다고 그냥 가면 안 돼. 아침 꼭 먹고 가. 그리고 국도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고.”
 “예.”
 그렇게 대답한 나는 최대한 조용히 나의 방으로 향했다.
 힘들게 일하고 오신 부모님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편히 잠드실 수 있게 최대한 조용히 있는 것이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좀 있으면 기말 고산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고등학교 시절이고.
 그 고등학교 시절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지금의 2학년시기이다.
 타고난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요령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나름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성적은 늘 중상위 수준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지긋지긋한 악몽 때문에 도통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수업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힘들게 일하시고 아침이 거의 다 되어서야 돌아오시는 부모님을 뵐 때마다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왕 새벽에 일어난 거, 학교 가기 전에 예습이라도 하고 가자. 하는 생각에 책을 펴도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기말고사를 망칠 것만 같다. 아니 분명 망친다.
 “하아~ 이번 시험은 진짜 포기해야 하나?”
 결국 오늘도 예습은커녕 한숨만 푹푹 쉬다가 힘없이 집을 나서야만 했다.
 
 ***
 
 뜨르르륵-.
 문을 열고 교실로 입장했다.
 짙은 다크 서클을 턱밑까지 늘어뜨린 채, 힘없이 자리에 앉는 나를 보며, 민재와 진욱이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또냐?”
 “너 이러다가 진짜 병나는 거 아냐?”
 부모님께는 악몽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민재와 진욱이에게는 이야기 해주었다.
 “진짜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병원가보는 게 어때?”
 “아, 몰라.”
 만사가 다 귀찮고 짜증만 났다. 민재와 진욱이의 말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띵! 동! 땡! 동!
 잠시 후 학교종이 울렸다.
 담임선생님께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조금 전까지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장난을 치며 잡담을 나누던 반 아이들이 허겁지겁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담임선생님께서 출석을 확인한 후, 뭐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 역시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침조회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학교 수업이 시작되었다.
 진욱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뭐하냐?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지.”
 “어? 어.”
 벌써 3교시 체육시간이다. 1교시 국어와 2교시 수학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주섬주섬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띵! 동! 땡! 동!
 3교시 수업을 알리는 학교종이 울렸다.
 그제야 탈의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우리 반 여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참고로 내가 다니고 있는 청풍고등학교는 남녀합반으로 운용된다. 다만 짝꿍은 남남녀녀이다.
 현재 나의 짝꿍은 민재이고 진욱이는 바로 우리 뒷자리이다.
 체육 선생님께서 말하셨다.
 “기말고사가 코앞이라서 자율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근데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뇌에 산소공급이 더 원활하게 되면서 공부 효율도 올라가는 거다. 그러니까 이 시간만큼은 공부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아라. 여학생들은 조를 짜서 피구를 하고, 남학생들은 축구를 한다.”
 체육 선생님이 준비해둔 피구공과 축구공을 나누어주셨다.
 “야, 괜찮겠냐? 지금이라도 체육 선생님한테 말해서 체육 수업만이라도 빠지는 게 어때?”
 “너 이러다가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
 나를 걱정해주는 민재와 진욱이의 말에 살짝 갈등이 일었다.
 “그럴··· 아니다. 그냥 할래.”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해서 쉬게 해줄 체육선생님이 아니다. 그리고 차라리 몸을 혹사시키면 피곤해서라도 꿈을 꾸지 않고 푹 자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민재와 진욱이의 걱정을 뒤로 하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로 했다.
 “야! 패스해!”
 “이쪽! 이쪽! 아씨! 이쪽이라고! 귓구멍이 막혔냐?!”
 “아! 저 개발! 저 새끼 분명 전생에 똥개였을거야! 그러니까 맨날 저러지!”
 “축구에 축 자도 모르는 놈이 볼 욕심은 왜 저렇게 많은 거야?!”
 다들 공을 향해서 달려가며 소리치기 바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포지션도 정하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나름의 작전도 세웠다.
 하지만 축구가 시작되고 10분이 지나자 그런 것은 금방 다 잊어버리게 되었다.
 다들 포지션이고 작전이고 다 잊고 오로지 공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하악- 하악-.”
 겨우 15분밖에 뛰지 않았는데,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열흘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체력 역시 평소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였다.
 금방이라도 폐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헥헥 거리자, 민재가 걱정이 되었는지 내게 다가왔다.
 “야, 괜찮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러다가 진짜 쓰러지겠다.”
 “괜찮아. 일부러 그러는 거야.”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이야? 하는 표정을 짓던 민재가 이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 꿈 안 꾸고 푹 자려고?”
 “어.”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마.”
 민재와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뒤쪽에 있던 진욱이가 소리쳤다.
 “야! 조심해! 공 간다!”
 진욱이의 말에 나와 민재가 정면을 쳐다보았다.
 “뭐? 어디?”
 “공이 어디 날아온다는 거야?”
 순간 진욱이의 거짓말에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민재가 ‘네가 감히 우릴 속여!’ 하는 표정으로 진욱이를 노려보았다.
 콩-.
 그런데 정말로 공이 날아와서 내 머리를 맞췄다. 다만 공의 방향이 틀렸다. 정면이 아니었다. 옆이었다. 그리고 축구공도 아니었다. 여학생들이 사용하던 피구공이었다.
 진욱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거봐. 공 간다니까. 큭큭.”
 “아, 저게!”
 민재가 짐짓 성이 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진욱이를 향해서 달려갔다. 진욱이 역시 겁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피식-.
 진욱이와 민재의 장난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저, 저기 미안.”
 “어?”
 나긋나긋한 여학생의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유, 윤서야!”
 그곳에는 우리 반 아니 우리 청풍고등학교의 퀸카인 임윤서가 두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며 자리하고 있었다.
 윤서는 흔히 하는 말로 연예인 뺨을 열두 번은 더 때릴 만큼 예쁘다. 그런데 예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머리도 엄청 좋아서 전교 1~2등을 다투고 있었다. 심지어 성격도 좋았다.
 완벽.
 이 말은 마치 윤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프기는. 하나도 안 아팠어. 아, 그리고 이거.”
 얼른 피구공을 윤서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피구공을 건네받은 윤서가 활짝 웃어주었다. 아침 햇살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윤서의 미소를 보니 그동안의 짜증과 피로가 확 날아가는 것 같았다.
 ‘헤~’
 내가 그렇게 헤벌쭉 하고 있을 때, 민재와 장난을 치고 있던 진욱이가 소리쳤다.
 “야! 진수야! 공!”
 ‘아 놔. 내가 같은 수에 또 당할 줄 알고!’
 나는 진욱이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해바라기처럼 윤서만 쳐다보았다.
 “난 이만 갈게.”
 윤서가 손을 흔들어 다른 여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민재가 소리쳤다.
 “진수야! 이번엔 진짜야! 얼른 피해!”
 “뭐?”
 민재의 소리에 반사적으로 민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민재 너까지?’
 이제는 민재까지 합심해서 나에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두 번 연속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장난이라고 생각한 나는 앞서 피구공이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고개를 획 하고 돌렸다.
 “어라?”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보이는 거라고는 사뿐사뿐 걸어가는 윤서 밖에 없었다.
 ‘설마 또 당한건가?’
 내가 두 번 연속으로 당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그걸 역으로 이용해서 장난을 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엄청난 위협이 바짝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하여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위화감 같은 것이 등줄기로 전해졌다.
 본능적으로 그 위화감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헉!”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야말로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축구공이, 그것도 대포알처럼 맹렬한 위력을 보이는 축구공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진짜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가까이에 날아와 있었다는 말이다.
 축구공은 팔만 뻗으면 닿을 정도의 위치에 날아와 있었다.
 날아오는 속도도 너무 빠르고 거리도 너무 가깝다보니, 운동신경이 탁월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양팔로 받기도 어려워보였다.
 하물며 운동신경이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은 꼼짝없이 축구공을 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축구공이 진짜 대포알이 아닌 이상 맞는다고 진짜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것으로 봐서는 제법 아플 것 같았다.
 영락없이 맞는다고 생각하니, 축구공을 아직 맞지도 않았는데, 벌써 맞은 것처럼 온몸에 통증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으으~”
 나도 모르게 짧은 신음을 토해낼 때,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축구공이 갑자기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렇게 느린 축구공이라면 충분히 양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라? 뭐지?”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이제는 헛것이 보이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기묘한 현상은 말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런 머리와 달리 몸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양 팔이, 머리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축구공을 향해서 뻗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터억-.
 나는 가볍게 축구공을 양팔로 받았다.
 “오오!”
 “우와!”
 짝짝짝짝짝-.
 “진수, 최고!”
 “진수 너, 짱이다!”
 민재와 진욱이를 비롯한 반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탄성을 자아냈다.
 ‘뭐야? 어떻게 내가?’
 평소의 나라면 대포알처럼 날아오던 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받았다. 그 말은 공이 정말로 느려졌거나 나의 운동신경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수배 아니 수십 배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난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 그럼, 이게 다 어떻게 된 걸까?
 친구들의 박수소리가 들렸지만 기쁘거나 우쭐거리지 않았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때 민재와 진욱이가 달려왔다.
 민재와 진욱이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야,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진수 너, 운동신경 짱이다!”
 “그러게. 진수 운동신경이 이렇게 좋았었나?”
 “그나저나 형택이 저 자식.”
 민재가 저 앞에 있는 형택이를 쳐다보았다. 나를 향해서 축구공을 찬 사람이 바로 형택이 였다.
 형택이는 얼마 전에 전학을 왔는데, 오자마자 우리 반 일진에게 시비를 걸더니, 어느새 그 일진과 사이좋게 어울려 다니고 있었다.
 진욱이가 재빨리 민재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야, 그만 쳐다봐.”
 나나 민재나 진욱이나 싸움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싸움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진들과 어울려 다니는 형택이가 무서웠다.
 별것(?)도 아닌 일로 형택이를 비롯한 일진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민재가 고개를 돌렸다.
 “저 자식 저거, 분명히 일부러 찬 걸 거야.”
 “야야, 됐어. 진수가 안 다쳤으면 된 거지. 괜히 형택이랑 얽혀서 좋을 게 뭐냐. 그냥 모른 척 해.”
 나 역시도 날 향해 축구공을 차놓고 괜찮냐? 혹은 미안하다. 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형택이의 행동이 기분 나빴지만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진욱이 말대로 일진과 어울리는 형택이와 얽혀서 좋을 것이 없었다.
 그보다 생각할 것이 있었다.
 ‘어라? 머리가···괜찮네?’
 앞서 언급한대로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한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수업내용이 들리기는 들리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기에 두통까지 생겨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그런데 형택이의, 엄청나게 빠르게 날아오다가 갑자기 하품이 날 정도로 느려진 기묘한 축구공을 잡고 나서부터는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두통만이 아니었다.
 멍하면서 무겁게 느껴지던 머리가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상쾌하게 느껴졌다.
 ‘뭐지?’
 
 
 각성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좋아질 수가 있지?
 의문에 의문이 더해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 그것과 별도로 머리가 상쾌했다. 머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10톤은 될 것 같은 피곤이 짓누르는 것 같던 몸 역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라? 그러고 보니 몸도 왠지···.’
 10톤은 될 것 같은 피곤이 짓누르는 것 같던 몸 역시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온몸에 자신감이 가득 차 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힘도 불끈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다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
 “또 온다!”
 내가 새로워진 나의 몸을 만끽하고 있을 때, 민재와 진욱이가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정면을 쳐다보니, 또 다시 강력한 위력의 축구공이 나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무섭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저 강력한 슛을 몸으로 막으면 엄청 아플 것 같았다. 민재와 진욱이가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진수야!”
 “야! 뭐해!”
 민재와 진욱이가 나보고 피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무시했다. 지금이라면 저 축구공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축구공의 속도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려졌다.
 터엉-.
 이번에도 좀 전과 마찬가지로 가볍게 축구공을 잡았다.
 “오오!”
 “대단한데!”
 민재와 진욱이가 다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민재가 말했다.
 “진수 너,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근데, 왜 잡은 거냐?”
 “뭐?”
 “얌마, 우린 지금 피구가 아니라 축구를 하고 있다고. 골키퍼도 아닌 네가 축구공을 손으로 잡으면 어떡해!”
 “아!”
 갑자기 달라진 몸에 놀라워하느라, 순간적으로 지금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저 쪽에 있던 우리 팀 아이들이 말했다.
 “야! 김진수! 너 자꾸 그럴래!”
 “차라리 골키퍼를 해라!”
 “그래, 넌 그냥 골키퍼나 해라.”
 “아, 알았어.”
 나는 우리 편에게 축구공을 패스해주고, 민재와 진욱이와 함께 우리 편 골대로 향했다.
 민재가 말했다.
 “그나저나 그게 사실인가보네.”
 “응? 뭐가?”
 “얼마 전에 교무실 갔다가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는 걸 우연히 들었거든. 형택이 저 자식 말이야. 원래 잘나가는 축구선수였데.”
 “그래? 아니 그런데 왜 우리학교로 전학 왔데?”
 인문계열의 다른 고등학교들 중에서는 축구부를 비롯한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우린 청풍고등학교는 축구부는 물론이고 그 어떤 운동부도 없었다.
 “그게 사고도 보통 사고를 친 게 아닌가봐. 워낙 큰 사고를 쳐서 다른 학교 축구부로는 갈수도 없었데.”
 “정말?”
 “그나저나 진수 너, 형택이한테 밉보인 거 있냐?”
 “아니.”
 “근데 왜 자꾸 너한테 그러냐?”
 “글쎄?”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다. 처음 나를 향해서 축구공이 날아올 때만 해도 우연 혹은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처음 것도 그렇고 지금 것도 그렇고 결코 실수나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이것은 의도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형택이와 얽힐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형택이 같은 놈들이 언제는 정당한 이유로 행패를 부렸던가.
 그저 자기 기분 좋지 않으면 주변의 힘없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일상사인 놈인데.
 이전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괜히 불안하고 초조해졌을 것이다.
 형택이에게 찍혔다는 것은 일진들에게 찍혔다는 말과 동일했으니까.
 조금 전의 나였다면 형택이를 비롯한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와들와들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형택이나 일진들이 전혀 겁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저 무서운 형택이나 일진들이 하나도 무섭게 여겨지지 않다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영부영 체육시간이 끝이 났다. 나와 민재 그리고 진욱이가 교실로 향할 때, 형택이와 일진 패거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툭툭-.
 일진 패거리들이 일부러 나와 민재 그리고 진욱이의 어깨를 건드리며 지나갔다.
 툭-.
 다른 일진들과 달리 형택이가 내 어깨를 세게 밀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끼가 감히! 좀 있다가 보자.”
 옆에 있던 민재와 진욱이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형택이와 일진들에게 찍히고 만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형택이에게 찍힌 것이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다시 생각해봐도 내가 형택이한테 밉보인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나 성격 나쁜 형택이가 이유 없이 날 찍은 것이 분명했다.
 “어, 어쩌지”
 “담임한테 말할까?”
 민재와 진욱이는 불안에 떨었지만 난 전혀 겁나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히려 형택이나 다른 일진들과 한번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생길 정도였다.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정말 나, 어떻게 된 거지?’
 4교시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리는 더 이상 멍하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맑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의 말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 내 등이 따갑도록 노려보는 형택이와 일진들의 날카로운 시선 때문도 아니었다.
 갑자기 달라진 내 머리와 몸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변화의 원인과 이유에 대한 생각으로 선생님의 말씀은 물론이고 형택이와 일진의 따가운 시선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급식을 빠르게 먹어치웠지만 걱정이 한가득인 민재와 진욱이는 급식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였다.
 나와 민재 그리고 진욱이가 소화도 시킬 켬, 운동장으로 향할 때 형택이와 4명의 일진들이 다가왔다.
 4명의 일진들이 민재와 진욱이의 몸을 툭툭 치며, 민재와 진욱이를 나에게서 떨어뜨렸다.
 형택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쭈, 눈 안 깔아!”
 이전의 나였다면 형택이가 그런 말을 하기도 전에 눈을 깔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형택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 이 자식이 진짜.”
 형택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나의 정강이를 향해서 발길질을 해됐다.
 나는 재빨리 발을 뒤로 빼며 형택이의 발을 피했다.
 헛발질을 한 형택이가 더욱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쭈. 피해? 이게 진짜 죽으려고.”
 형택이가 또 다시 내 정강이를 향해서 발길질을 했다.
 나는 이번에도 발을 움직여 형택이의 발길질을 피했다.
 “이 새끼가 진짜!”
 거듭되는 나의 회피동작에 화가 난 형택이가 기어코 나의 얼굴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부웅-.
 ‘오! 보인다.’
 형택이의 사나운 주먹이 똑똑히 보였다. 그것도 체육시간에 경험했던 축구공처럼 아주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이정도면 피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몸을 뒤틀어 형택이의 사나운 주먹을 피해냈다.
 “어라?”
 내가 너무 쉽게 피해내자, 형택이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비리비리해 보이더니, 주먹 좀 쓰나봐? 그럼, 이것도 한번 피해봐라!”
 부웅!
 형택이가 또 다시 주먹을 날렸다. 조금 전의 주먹도 제법 빨랐는데, 지금 날린 주먹은 그 보다 더 빨랐다.
 아마도 내가 쉽게 주먹을 피하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날린 것 같다.
 하지만 그래봤자였다.
 이번에도 역시 앞서 날린 주먹처럼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보였다.
 이렇게 느린 주먹은 굳이 피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형택이의 주먹을 살짝 쳐냈다.
 “야, 그만하자. 난 싸우기 싫다.”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온 쪽은 형택이였지만 굳이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러다가 지나가는 선생님께 들키기라도 하면 형택이는 물론이고 아무 죄 없는 나까지 덤터기를 쓸 수도 있었다.
 “어쭈! 이게 내 주먹을 쳐내?! 그리고 뭐? 싸우기 싫다? 그럼 넌, 싸우지 말고 쳐 맞기만 해. 패는 건 내가 할 거니까!”
 눈에 붉은 핏발이 선명하게 선 형택이가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아마 이제껏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자신의 주먹을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쳐내기까지 하자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부웅-.
 형택이가 잔뜩 흥분한 탓에 주먹이 조금 전보다 더 사나워졌다. 대신 흥분한 만큼 동작도 켜져서 피하는 것은 더 쉬워졌다.
 마구잡이식으로 휘두르는 형택이의 주먹을 몸을 살짝 살짝 움직이며 모두 피해냈다.
 멋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형택이와 내가 사전에 합을 맞추고 연기를 하고 있다고 여길 정도였다.
 ‘역시 말로는 안 되는 건가?’
 태어나서 이제껏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다. 아니 몇 번의 다툼은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건 진짜 싸움으로 보기 힘든, 그야말로 친구들 간의 사소한 다툼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과 같은 싸움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마음 한편에서는 한번 제대로 싸워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말로 조용히 해결하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가급적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되도록 말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형택이를 보고 있자니, 때로는 말이 아닌 폭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윽고 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씩씩- 거리며 주먹을 날리고 있는 형택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빈틈이 너무 많이 보였다.
 저 많은 빈틈 중에 아무 곳이나 주먹을 찔러 넣으면 형택이가 푹- 하고 고꾸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주먹을 날리려고 하니, 이상하게 주먹이 나가지가 않았다.
 ‘어라? 왜 이러지?’
 기분이 이상했다.
 머리로는 벌써 몇 번이고 형택이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실제로는 주먹이 나가지가 않았다.
 형택이의 빈틈이 다 보이는데도 말이다.
 막상 주먹을 날리려고 하니,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일순간 몸 가득 차오르던 힘이 쭈욱-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르륵-.
 갑자기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분명 시비를 걸고 주먹을 먼저 날린 쪽은 형택이다.
 난 그저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순간적으로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지?’
 조금 전까지 충만했던 자신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자신감이 사라지자,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이던 형택이의 주먹이 더 이상 느리게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형택이의 주먹을 피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아니나 다를까, 형택이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윽.”
 형택이의 주먹을 맞은 얼굴 한쪽이 욱신거렸다.
 “그래, 바로 이거야! 우하하하! 알겠냐! 이게 내 진짜 실력이다!”
 형택이가 쾌재를 부르며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부웅-.
 ‘으으-’
 주먹을 한번 맞고 나니, 형택이와 형택이의 주먹이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어느새 불끈 쥐었던 주먹도 풀어져 있었다.
 더 이상 형택이에게 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두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제발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저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온몸이 주눅들어갈 때, 심장이 다시 쿵쾅쿵쾅 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어떤 울림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봐! 넌 할 수 있어! 조금 전까지 가볍게 다 피해냈잖아. 용기를 내! 넌 할 수 있어! 마왕과도 싸웠던 너야! 겨우 저런 애송이 따위에게 겁먹지 마!’
 ‘아, 아벨?’
 머릿속의 울림은 분명 악몽 속에서 들었던 용사 아벨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벨이 어떻게? 그건 그냥 꿈 아니었나?’
 이제껏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럴 리가. 그건 그냥 꿈이야.’
 이내 나는 나의 그런 생각을 부정했다.
 퍼억-.
 또 다시 형택이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가격했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얼굴을 타고 몸 전체에 전해졌다.
 고통이 계속될수록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또 다시 아벨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울림이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정말 이대로 맞고만 있을 거야? 날 위해 마왕의 공격 앞에 당당하게 맞섰던 그때의 용기는 어디로 간 거야? 필그림! 정신 차려!’
 용사 아벨이 필그림이라고 부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때마침 형택이의 주먹이 또 날아오고 있었다.
 “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퍼억-.
 나의 주먹이 형택이의 얼굴을 가격했다.
 “윽!”
 형택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 새끼가 감히 날 쳐?!”
 형택이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또 다시 내게 주먹을 날렸다.
 보였다.
 형택이의 주먹이 느릿느릿하게 날아오는 것이.
 난 가볍게 형택이의 주먹을 피하며, 형택이의 턱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나의 주먹과 형택이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엇갈렸다.
 퍼억-.
 나의 주먹이 형택이의 턱에 정통으로 꽂혔다. 형택이의 주먹은 내 얼굴에 닿지 않고 허공만 가로질렀다.
 “억!”
 형택이가 또 다시 보기 흉하게 쓰러졌다.
 “이, 이 새끼가···.”
 형택이가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내 주먹을 턱에 정통으로 맞으면서 그 충격이 고스란히 뇌로 전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형택이는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형택아!”
 민재와 진욱이를 견제하며 형택이와 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일진들이 황급히 형택이에게 달려갔다.
 일진들이 형택이를 부축하며 형택이를 일으켜 세웠다.
 형택이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나를 노려보았다. 일진들 역시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았다.
 “감히 네가! 절대 용서···.”
 “야! 거기 뭐야?!”
 때마침 지나가던 학생주임 선생님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는 호통을 치시며 달려오셨다.
 “젠장! 너 학교 끝나고 보자.”
 형택이와 일진들이 나를 무섭게 노려본 후, 급히 자리를 떠났다.
 “지, 진수야. 괜찮냐?”
 “진수야. 많이 아프지?”
 그동안 일진들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며 나와 형택이의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던 민재와 진욱이가 내게 다가왔다.
 “난, 괜찮···아악!”
 형택이의 주먹에 몇 대 맞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갑자기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말은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민재와 진욱이가 급히 나를 부축했다.
 “진수야!”
 “진수야, 왜 그래?”
 어느새 학생주임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거기 너희들 무슨 일이야?!”
 “형태···.”
 민재가 형택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려고 하자 진욱이가 재빨리 말했다.
 “그게, 진수가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그래? 저쪽에서 보니까. 싸움을···.”
 “예? 싸움이라뇨. 진수가 갑자기 아프다고 해서 양호실로 데려가던 중이었어요.”
 진욱이가 민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쳤다. 그러자 민재가 뒤늦게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예. 맞아요. 저흰 그냥 양호실로 가던 중이었어요.”
 “아아악!”
 머리가 너무 아파서 고개를 들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니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비명을 지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고통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에, 학생주임 선생님은 형택이에게 맞은 나의 부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럼, 어서 양호실로 가봐라.”
 “예. 선생님.”
 진욱이가 재빨리 인사를 하고 나를 양호실 방향으로 데려갔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보이지 않자, 진욱이가 말했다.
 “야, 진수 너 연기 끝내준다.”
 “그러게. 난 진짜 진수가 아픈 줄 알았잖아.”
 “진수야. 이제 학주도 안보이니까 그만 아픈 척 해도 돼.”
 민재와 진욱이는, 내가 형택이와 싸운 것이 학생주임 선생님께 발각이 되면 문제가 될까 싶어서 일부러 아픈 척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결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아아아악!”
 학생주임 선생님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내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자, 민재와 진욱이는 그제야 내가 정말로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수야. 안 그래도··· 서, 설마 진짜 아픈 거였어?”
 “뭐? 진수가 진짜로 아프다고? 그럼, 아까 형택이와 싸우다가 어딘 잘못 맞은 거 아냐?”
 “그런가 보다. 일단 양호실로 데리고 가자.”
 
 ***
 
 드르르륵-.
 민재가 양호실로 들어가자마자 소리쳤다.
 “선생님! 진수가! 진수가 많이 아파요!”
 “뭐?”
 양호선생님이 나의 이마에 손을 댔다.
 “머리가 불덩이네. 얘, 언제부터 이랬니?”
 “조금 전에요. 갑자기···이래요.”
 “응? 얼굴이···. 설마, 싸웠니?”
 “······.”
 “······.”
 민재와 진욱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그 어떤 문제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형택이가 먼저 시비를 걸었고 난 정당방위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라고 해도, 학교 입장에서는 싸움을 한 형택이나 나나 학교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똑같은 문제아로 밖에 보지 않는다.
 물론 싸움에 대한 처벌은 나보다 형택이에게 더 엄중하게 내려질 것이다. 나에게는 가벼운 경고성 처벌정도 밖에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억울하지만 이것이 바로 학교의 방식이다. 학생인 나로써는 그런 학교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민재와 진욱이 역시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양호선생님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형택이와의 일이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형택이와 일진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 형택이가 일방적으로 싸움을 걸어, 이렇게 된 것이라고 말해버리면 형택이와 일진들이 더욱 앙심을 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힘들어질 학교생활이 더 힘들어 질수도 있었다.
 “아, 됐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여기 눕혀라.”
 민재와 진욱이가 나를 양호실 침대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일단 열부터 내려야 하니까, 이것부터 먹이자.”
 민재와 진욱이가 내 등을 받치고, 양호선생님이 내 입으로 해열제를 넣어주셨다.
 민재와 진욱이 그리고 양호선생님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쳐다볼 때, 나는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뭐지? 여기 어디지?”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백색의 공간 밖에 없었다.
 《나의 아이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따뜻하고 친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 누구야? 어디 있는 거야?”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순백의 공간밖에 없었다.
 《운명을 예정한 것은 나였지만, 그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너의 의지였다. 너는 너 스스로를 희생시킴으로 해서 너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나의 아이야! 나의 자랑스러운 아이야!》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와! 나오라고! 숨어서 이상한 소리나 하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
 《너의 숭고한 희생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구나. 마왕에 의해서 오염된 너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단다. 나의 아이야. 너의 숭고한 희생에 이렇게 밖에 보상하지 못하는 못난 나를 용서해다오.》
 “도대체 무슨···. 윽! 아아악!”
 또 다시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왔다.
 갑자기 순백의 공간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배경화면이 바뀌어버렸다.
 “여, 여긴?”
 바뀐 배경은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매일 밤 꿈에서 보았던, 최하급 정령 필그림이 용사 아벨을 대신해, 마왕의 공격을 받고 죽어가던 마지막 그 순간이었다.
 아벨이 차갑게 식어가는 필그림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필그림! 정신 차려! 이대로 죽으면 안 돼!”
 “아벨, 잠시 비켜봐.”
 아벨의 동료이자 성녀인 일루이나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필그림의 몸에 손을 얹었다.
 “일루이나. 제발, 제발 필그림을 살려줘.”
 일루이나는 아벨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필그림의 치료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위이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일루이나의 손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신 빛이 차갑게 식어가는 필그림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차갑게 식어가는 필그림의 몸은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일루이나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늦었어요. 더 이상은 나의 힘으로도···.”
 “안 돼! 다시 한 번 더! 제발 다시 한 번만 더 해줘! 필그림은 절대 이렇게 죽어선 안 돼! 절대 죽으면 안 된다고!”
 아벨이 애원하듯 울부짖었지만 끝내 필그림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죽은 필그림의 몸에서 필그림의 영혼이 튀어나왔다.
 차갑게 변해버린 자신의 육체와 그 육체를 안고 울부짖고 있는 아벨을 본 필그림의 영혼은 곧바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지. 난 죽었지. 근데,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영혼이 된 필그림의 물음에 대답하듯 허공에서 갑자기 빛으로 이루어진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필그림의 영혼은 본능적으로 저 빛의 게이트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필그림의 영혼이 빛의 게이트에 팔을 뻗자, 갑자기 또 배경이 바뀌었다.
 그곳은 진수가 조금 전에 보았던 순백의 공간이었다.
 《나의 아이야》
 진수가 들었던, 처음 듣지만 너무나도 낯익은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필그림의 영혼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필그림의 영혼이 무릎을 꿇었다.
 《신이시여. 당신의 미천한 자식이 여기 있습니다.》
 《운명을 결정지은 나의 아이야. 고맙다. 너의 숭고한 희생으로 이 세상은 구원받게 되었다. 이 세상과 나는 너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전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다. 운명을 예정한 것은 나였지만 그 운명을 결정한 것은 너의 의지였다. 내가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너의 자유의지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너의 그 용기와 숭고한 희생에 다시 한 번 찬사를 보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신이 찬사를 보낸다는 말에 필그림의 영혼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큰 감격을 받았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미안하게 됐구나.》
 《예?》
 《원래라면 너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멸되었어야 한다.》
 원래 필그림 같은 정령은 한계 이상의 공격을 당하면 정령계로 역소환 된다.
 마왕같이 강력한 존재의 공격을 받으면 정령계로 역소환되지 않고 곧바로 소멸되는 경우도 있었다.
 원래라면 필그림 역시 정령계로 역소환되든, 소멸이 되든 시체를 남기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아벨은 분명 필그림의 시체를 앉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너의 영혼은 이렇게 소멸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정령계나 중간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말씀은 다시는 아벨을 만날 수 없다는 겁니까?》
 《단순히 아벨만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영혼은 마왕에 의해서 오염되었다. 이대로라면 너는 잠시 후 역소환된 마왕이 있는 마계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헉! 어떻게 그런···. 신이시여,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라면 너의 오염된 영혼은 마왕의 손에 넘어가, 영원토록 마왕의 노예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가! 신이시여!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저는 이대로 그 흉악한 마왕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의 아이야. 마지막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 그게 뭡니까?》
 《그것은 너의 영혼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는 몰랐겠지만 이 세상은 신계와 정령계 그리고 중간계와 마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완전히 다른 세상도 존재하고 있다.》
 《오오! 그런 곳이! 그럼, 제가 그곳으로 가게 되면 마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 내가 말한 그곳은 마왕은 물론이고 나의 힘도 미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환생하게 되면 나 역시도 더 이상 너를 도와줄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다.》
 《다시는 말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차원 이동이 백퍼센트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자칫하면 너의 영혼이 소멸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하겠느냐?》
 《···하겠습니다. 마왕의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영혼이 소멸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마왕의 손이 미치지 않는···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래, 그것이 너의 의지이며 결정이라면 그렇게 될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신과 필그림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신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필그림의 영혼 역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바로 그 필그림의 환생체라는 것을.
 “내가, 내가 꿈에 나왔던 최하급 정령 필그림의 환생체였을 줄이야.”
 악몽이라고 해도 꿈의 주체는 바로 나였다. 그래서 마왕을 무찌른 용사 아벨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없던 최하급 정령 필그림이었다니.
 솔직히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그나저나 지금 본 것들은 뭐지? 설마, 이계의 신이 내 영혼 속에 남겨놓은 메시지 같은 건가? 하지만 왜?”
 이계의 신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남겨서 뭘 어쩌란 말인가?
 이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내가 그렇게 의아해 하고 있을 때, 또 다시 이계의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나의 아이야. 이것은 너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나의 작은 선물이다. 앞으로 네가 살아가야할 그곳은 더 이상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더 많이 해줄 수가 없구나. 그저 너의 영혼 속에, 원래 너의 것을 몰래 넣어둘 뿐이다. 네가 또 다시 진정한 용기를 선보일 때, 너는 너의 것을 다시 되찾게 될 것이다. 부디 그곳에서는 행복하기를···.》
 이계의 신의 마지막 말씀과 함께 순백의 공간에서 너무나도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찌나 그 빛이 강렬하던지 도저히 바라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행여나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헉!”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빛에 의해서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양호실 침대였다.
 “설마, 그게 다 꿈?”
 아니 꿈이 아니었다.
 느껴진다.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다.
 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최하급 정령 필그림이었던 시절 가지고 있던 정령의 힘이 내 몸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내가 원래 가져야 할 것이란 필그림 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령의 힘이었어!’
 나는 곧바로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손바닥 위에 녹색의 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정령력을 인지하는 순간 그것이 녹색의 구로 변환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정령력을 얻은 것이 너무나도 기뻤던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어디에 있다는 것도 잊고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앗싸! 이게 바로! 역시! 꿈이 아니었어!”
 스르르륵-.
 양호실 한쪽에 쳐져있던 커튼이 젖혀지며 양호선생님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꿈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야?”
 “아! 깜짝이야!”
 “아, 미안. 많이 놀랐니?”
 ‘아뿔싸!’
 불현듯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외계인 생체해부장면이 떠올랐다.
 정말로 내가 어딘가로 끌려가 그렇게 생체해부 되는 일은 없겠지만(설마, 정말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령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황급히 녹색의 구를 띄우고 있는 나의 손을 침대보 속으로 숨겼다.
 “응? 왜 그러니?”
 내가 갑자기 손을 숨기자, 양호선생님이 그걸 이상하게 여기셨다.
 “뭔데 그렇게 숨기는 거야?”
 별것 아닌 것도 계속해서 숨기려고 하면 괜히 더 궁금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양호선생님은 사람의 그런 기본적인 심리를 너무나도 잘 따르고 있었다.
 “뭔데? 보여줘.”
 결국 양호선생님이 내 손을 숨긴 침대보를 들추어냈다.
 ‘젠장.’
 나는 황급히 정령력을 실체화시킨 녹색의 구를 없애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정령력을 다루는 것이 환생한 이후 처음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결국 정령력을 실체화시킨 녹색의 구를 양호선생님께 들키고 말았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왜 그렇게 숨기려고 한 거야?”
 “예?”
 ‘뭐지? 설마 이게 안 보이는 건가?’
 정령력을 실체화시킨 녹색의 구는 여전히 내 손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호선생님은 그게 보이지 않는 다는 듯 말하고 계셨다.
 ‘아!’
 그때서야 떠올랐다.
 전생의 중간계에서도 정령사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만이 실체화시킨 녹색의 구를 볼 수가 있었다.
 즉, 평범한 일반인의 눈에는 실체화시킨 정령력이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휴~ 괜히 쫄았잖아.’
 위기 아닌 위기를 그렇게 손쉽게 넘기고 나니, 긴장감이 탁! 하고 풀리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괜찮니?”
 “예? 아, 예.”
 쓰윽-.
 양호선생님이 갑자기 내 머리에 손을 얹으셨다.
 “흠- 열도 다 내렸네. 어라? 얼굴에 붓기도 벌써 다 빠졌네?”
 양호선생님의 말씀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과연 형택이에게 맞아 부어있던 얼굴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 이것도 정령력 덕분인가?’
 “뭐, 이제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쉬는 게 어떻겠니? 어차피 5교시 수업 시작했으니까. 중간에 들어가면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하고. 혹시 모르니까, 그냥 푹 쉬고 6교시 시작하면 가렴.”
 “예.”
 나는 양호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아닌 말로 이렇게 확실하게 땡땡이 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수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지금은 조용히 생각할 것이 있었다.
 나는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의 손바닥 위에 있던 작은 녹색의 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왕 쏘시는 거, 팍팍 좀 쏘시지. 이게 뭐야.’
 원래 정령은 정해진 고유의 속성이 있다.
 물의 속성을 타고난 정령은 오직 물 계열의 정령술 밖에 쓸 수 없고 대지의 속성을 타고난 정령은 대지 계열의 정령술 밖에 못쓴다.
 그런데 필그림이었던 나는 특이하게도 모든 속성의 정령술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대신 다른 정령에 비해서 성장 속도가 무척이나 더디었다.
 아니 성장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벨이 신의 계시를 받고 마왕과 싸우기 위해서 모험을 떠날 때, 제일처음 소환한 정령이 바로 나였다.
 정령은 계약자와 함께 성장한다. 즉 계약자의 힘이 커지면 정령의 힘 역시 덩달아 커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벨의 힘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강해져갔는데, 나의 힘은 언제나 그 자리였다.
 아벨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정령들과도 계약을 맺었다.
 다른 정령들은 나보다 한참 뒤에 계약을 맺었는데도, 나보다 더 빨리 성장했다.
 마왕과 싸울 때는 다들 정령왕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나만 최초의 계약 상태인 최하급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벨과 그의 동료들 그리고 다른 정령들이 마왕과 피를 튀기며 싸우고 있을 때, 한참 떨어진 곳에서 무기력하게 그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를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각설하고 신께서는 최하급 수준이었던 그때의 정령력을 내게 주셨다.
 최하급 정령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뭐, 아예 없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낫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띵! 동! 땡! 동!
 5교시의 끝을 알리는 학교종이 울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혹시 또 아프면 바로바로 찾아와.”
 “예.”
 그렇게 양호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 민재와 진욱이가 달려왔다.
 “야, 괜찮냐?”
 “양호실에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아, 괜찮아. 요즘 내가 잠을 잘 못 잤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너무 신경 쓰지 마.”
 ‘미안하다.’
 아무리 민재와 진욱이가 나의 절친이라고 해도, 나에게 정령력이 생겼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다.
 괜히 말을 했다가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비단 민재와 진욱이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께도 비밀로 할 생각이다.
 “그래?”
 “휴~ 다행이다. 네가 갑자기 그렇게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걱정해줘서 고맙다.”
 “야, 그런데 어떡하냐?”
 “뭘?”
 “형택이 말이야.”
 “형택이?”
 ‘아, 그렇지. 형택이가 있었지.’
 그제야 아직 형택이와의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돌려 형택이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형택이 찾냐?”
 “안 들어왔어. 일진들도 없는 걸로 봐서는 간 것 같아.”
 “하긴 걔네들이 언제 끝까지 남아있었던 적이 있었냐.”
 “그나저나 이제 정말 어쩌냐? 그 자식들 분명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텐데.”
 내 걱정이 한가득인 민재와 진욱이의 어깨들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사자나 호랑이보다 몇 배는 더 무서운 몬스터와 마족 그리고 마왕과도 싸운 나다.
 뭐, 엄밀히 말하면 아벨과 그 동료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만 한 거지만.
 어쨌든 그런 무시무시한 존재들에 비하면 형택이나 일진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내게는 정령력이 있지 않는가.
 비록 최하급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정도 정령력이면 평범한 인간인 형택이와 일진들을 상대하기에는 넘칠 만큼 충분했다.
 “야, 너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정말··· 괜찮겠냐? 지금이라도 담임한테 말하는 게 좋지 않냐?”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민재와 진욱이는 여전히 불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런 민재와 진욱이를 보며 걱정 말라는 뜻으로 씨익! 하고 웃어보였다.
 그런 나의 모습에 조금은 진정이 되었는지, 민재와 진욱이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 진수야.”
 뒤늦게 날 발견한 윤서가 내게 다가왔다.
 “많이 아팠다며? 괜찮아?”
 “어? 어. 괜찮아. 요즘 좀 무리를 했더니.”
 “그래? 공부도 좋지만 몸 생각도 해야지.”
 “그래.”
 “근데 민재와 진욱이 표정이 왜 저래? 너희들 무슨 걱정 있니?”
 “아, 내가 아프니까 걱정이 돼서 저래.”
 “그래? 진수는 좋겠다. 저렇게 걱정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그래? 내가 그런 친구가 되어 줄까?”
 “정말? 나랑 친구해줄 거야?”
 “당연하지!”
 “그럼, 약속.”
 윤서가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헉! 이게 꿈이냐, 생시냐. 윤서와 친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윤서 손가락까지 잡게 되다니.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청풍고등학교의 퀸카인 윤서와 내가 이렇게 친구가 되는데 신이 직접 도와준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신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졌다.
 “나도, 나도 친구할래.”
 옆에서 나와 윤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민재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끼어들었다.
 ‘짜식! 너도 남자구나. 어라? 근데 진욱이는···.’
 민재가 저러는 것처럼 진욱이 역시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윤서에게 친구하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진욱이는 나의 예상과 달리 불안한 표정으로 윤서의 얼굴만 흘깃흘깃 쳐다보기만 했다.
 ‘어라? 왜 저러지?’
 “자, 약속.”
 윤서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 새끼손가락에 걸어주었다.
 “나도, 나도!”
 “응.”
 윤서가 이내 민재와도 새끼손가락을 걸어주었다.
 “진욱아···.”
 윤서가 진욱이의 이름을 부르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띵! 동! 땡! 동!
 때마침, 6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학교종이 울렸다. 진욱이가 다소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수업 종 쳤다.”
 그러면서 자기 자리로 후다닥 달려갔다.
 “어라? 진욱이 저 자식 왜 저래?”
 “그러게?”
 나와 민재는 진욱이의 행동을 당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나도 이만 수업 준비해야겠다.”
 무안해진 윤서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온 나와 민재가 진욱이에게 물었다.
 “야, 너 왜 그래?”
 “얌마, 윤서야! 윤서! 윤서가 친구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그걸···.”
 불안한 표정의 진욱이가 말했다.
 “그건 니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야.”
 “뭐?”
 “니들 윤서가 은따인 거 모르지?”
 “엥? 은따면 은근히 따돌림 시키는 거?”
 “야, 그게 말이 되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서가 은따라니.”
 나는 진욱이의 말을 당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아이돌로 데뷔해도 아이돌계를 평정할 것 같은 외모의 윤서가 은따라니.
 게다가 윤서는 머리도 좋아서, 언제나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였다. 게다가 성격도 좋았다.
 그렇게 완벽한 윤서가 은따라고?
 “예뻐도 너무 예쁘고, 머리가 좋아도 너무 좋은 게 문제야.”
 “아니 그게 왜 문제가 돼?”
 “비교 되잖아.”
 “아.”
 바로 납득이 되었다.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엄마친구 아들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다.
 일명 엄친아 라고 하는 정말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의심이 되는 엄마 친구의 아들과 비교당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생각해보니, 윤서는 그 엄친아의 실사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욱이의 말에 따르면 윤서가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친구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시험을 치르고 윤서가 전교 1등을 하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윤서 친구의 부모님들이 윤서는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계속 비교를 하자 그에 대한 반발로 윤서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학생들은 원래 서로 간에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
 윤서은 앞서 언급한대로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머리까지 좋았다.
 자연히 남학생들로부터 인기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윤서와 함께 있으면 다른 여학생은 오징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윤서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여학생들이 윤서를 은따하는 것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다.
 남학생들이라고 해서 여학생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남학생들 사이에는 윤서의 팬클럽이 있을 정도였지만 그 누구도 윤서에게 직접 다가가 말을 걸지는 못했다.
 아니 윤서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소위 말하는 대쉬를 하는 남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윤서 근처에 얼씬하는 남학생들이 없어졌다.
 그저 이전의 나처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뿐, 누구도 감히 윤서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이전의 나는 용기가 없어서 감히 윤서에게 직접 말을 걸 수가 없었지만 다른 남학생들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윤서에게 말을 걸 용기가 있어도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3학년 일진 때문이다.
 당시 2학년이었던 일진선배가 1학년이었던 윤서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만 것이다.
 자신 말고도 윤서에게 반한 남학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일진선배는 윤서에게 접근하는 남학생이 있으면 그게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불러내어 혼쭐을 내줬다고 한다.
 당시 2학년이던 그 일진선배에게 당한 사람 중에는 3학년 선배도 제법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그 일진선배는 싸움을 잘했다.
 ‘근데 난 이 이야기 처음 듣는데?’
 무엇보다 진욱이가 이런 이야기를 상세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진욱이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냐?”
 “응? ···선생님 오셨다.”
 “진욱이 너 설마?!”
 그제야 알아차렸다. 진욱이 역시 윤서에게 접근했다가 그 일진선배에게 호되게 당했다는 것을.
 순간 진욱이가 달리 보였다.
 이전의 나는 용기가 없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진욱이는···.
 진욱아!
 네가 이렇게 용감한 놈일 줄 몰랐다.
 진욱아!
 네가 진짜 용사다!
 
 ***
 
 띵! 동! 땡! 동!
 드디어 모든 수업이 끝났다.
 민재와 진욱이 그리고 나는 학교 정문을 나섰다.
 필그림 시절의 모든 기억과 정령력을 회복한 나는 보무당당하게 정문을 나섰지만 민재와 진욱이는 그렇지 않았다.
 민재와 진욱이는 불안에 떨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형택이와 일진들이 신경 쓰이나 보다.
 “야, 걱정하지 말라니까.”
 “너, 진짜 진수 맞냐?”
 “그래, 우리가 알던 진수가 아닌 것 같아. 형택이랑 일진들이 벼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냐?”
 “뭐, 믿는 거라도 있냐?”
 “그래. 있으면 우리한테도 말해줘.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한 거냐?”
 “믿는 거? 당연히 있지.”
 나의 말에 민재와 진욱이가 기대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뭔데? 어서 말해줘.
 “그래, 도대체 네가 믿고 있는 게 뭔데?”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나.”
 민재와 진욱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자더니 머리가 이상하게 된 거 아냐?”
 그렇게 우리가 잡담을 나누며 걸어가고 있을 때, 민재와 진욱이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어이, 거기! 너희들!”
 형택이와 함께 다니던 일진 2명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민재와 진욱이는 기어코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몸을 덜덜덜 떨었다.
 일진이 우리를 향해서 손짓하며 말했다.
 “좋게 말로 할 때, 얌전히 따라와라.”
 “어, 어쩌지?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그래, 도망가자. 그리고 선생님이랑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거야.”
 “너희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진수야. 너 정말 왜 이래?”
 “진수야. 너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
 “어허, 걱정 말래도. 이 형님만 믿어.”
 나는 불안에 떨고 있는 민재와 진욱이를 데리고 일진들이 이끄는 곳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일진들은 인적이 거의 없는 으슥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일진들의 뒤를 따라갈 때만 해도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나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흠- 이건 좀 문제가 되겠는데?”
 나는 기껏해야 형택이를 포함한 일진 4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착한 그곳에는 얼핏 보아도 십여 명은 될 것 같은 제법 많은 수의 일진들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2학년 일진들은 여기다 모인 것 같았다.
 “히익!”
 “히끅!”
 인상 더러운 다수의 일진들을 본 민재와 진욱이가 더욱 겁에 질려갔다.
 그런 민재와 진욱이와 달리 겁날 것이 없었던 나는 형택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당당하게 말했다.
 “민재와 진욱이는 보내줘. 네가 원하는 건 나 하나잖아.”
 형택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 이 새끼. 여기까지 와서도 허세를 떠네. 저놈들 보내고 안보내고는 다 내 맘이야! 내 맘! 알겠어! 야, 저 새끼들 도망 못 치게 잘 막아.”
 형택이의 말에, 우리를 이곳까지 인도한 일진 2명이 퇴로를 막았다.
 “흠-.”
 예상보다 일진들의 수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상대할 만 했다.
 일진이라고 해봤자, 평범한 일반인이다. 몬스터나 마족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민재와 진욱이였다.
 자칫하다가 민재와 진욱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게 걱정이었다.
 ‘역시 민재와 진욱이는 이쯤에서 돌려보내야겠지?’
 민재와 진욱이가 싸움을 좀 해서 일진들을 조금이라도 막아준다면 모르겠지만 민재나 진욱이는 이전의 나처럼 싸움과는 거리가 영 멀었다.
 민재와 진욱이가 있으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민재와 진욱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내가 신호하면 우리가 왔던 길로 무조건 달려.”
 “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달리라고.”
 “진수 넌, 어떻게 하려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뒤에서 길을 막고 있던 일진이 말했다.
 “지금 셋이서 뭐라고 속닥거리고 있는 거야?”
 내가 소리쳤다.
 “지금!”
 나의 외침에도 민재와 진욱이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뭐해? 어서 가!”
 “하지만.”
 “진수야.”
 그 순간 나는 볼 수가 있었다. 민재와 진욱이의 얼굴에 어린, 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그래, 너희들이야 말로 나의 진정한 친구다. 하지만 그 마음만 받을게. 지금은 너희가 없는게 날 도와주는 거야.’
 “그러니까···달려!”
 나는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퇴로를 막고 있던 일진에게 주먹을 날렸다.
 “이 새끼, 지금 뭐하는···.”
 퍼억-.
 “윽!”
 나의 주먹이 일진의 얼굴에 꽂혔다. 나의 갑작스럽고도 빠른 공격에 일진은 이렇다 할 방어도 하지 못했다.
 “이 새끼가 진짜!”
 퇴로를 막고 있던 또 다른 일진이 나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 일진보다 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나는 곧바로 그 일진에게 돌려차기를 날렸다.
 퍼억-.
 “억!”
 길을 막고 있던 2명의 일진이 쓰러졌다.
 “어서 가!”
 나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민재와 진욱이를 밀쳐냈다.
 “가라고. 오히려 너희가 있으면 방해만 돼. 그러니까 제발 좀 가!”
 “지, 진수야.”
 “미안하다.”
 이윽고 민재와 진욱이가 우리가 왔던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택이가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새끼 이거, 영화를 너무 많이 봤는데? 어디서 똥 폼을 잡고 지랄이야! 야! 뭐해?! 도망간 새끼들 잡아와.”
 형택이의 말에 일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일진들의 앞을 막았다.
 “어디 올 테면 와봐라. 나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자.”
 형택이가 여전히 같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 저 새끼가 진짜. 야! 뭐해? 저 허접새끼 얼른 치우고 도망간 놈들 잡아와! 그 새끼들이 선생이나 짭새한테 꼰지르면 얼마나 골치 아파지는지 몰라?! 얼른 잡아와.”
 제법 날렵해 보이는 일진이 내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이, 한 대라도 덜 맞고 싶으면 얼른 비켜라.”
 “훗.”
 나는 그 일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어서 덤비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이 새끼가 진짜!”
 부웅-.
 일진이 주먹을 날렸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필그림 시절 힘이 너무 약해 마왕이나 마족들과 직접 싸우지는 못했다.
 대신 아벨과 그 동료들이 싸우는 것을 지겹도록 지켜봐왔다.
 피가 튀는 치열한 전투를 수도 없이 지켜보다 보니, 웬만한 공격은 다 간파하는 수준이 되었다.
 일진이라고 해봤자,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형택이를 비롯한 일진들이 날 보며 같잖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같잖은 것은 형택이와 일진들이었다.
 일진의 공격을 막는데 굳이 정령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터억-.
 나는 가볍게 일진의 주먹을 잡았다.
 “이, 이 새끼가, 감히 내 주먹을 잡아?”
 “아까부터 듣자 듣자하니까. 내가 왜 네 새끼야!”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일진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주었다.
 퍼억-.
 “윽.”
 일진이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겨우 그걸로 엄살은.”
 나는 형택이를 비롯한 일진들의 얼굴을 쓰윽 훑어본 후 다시 덤비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뭐하냐? 형님, 기다리고 계시잖냐. 얼른, 얼른 덤벼라.”
 “저 새끼가 진짜!”
 보다 못한 형택이가 직접 움직였다. 형택이는 그냥 움직이지 않았다. 뒤쪽에서 무언가를 꺼낸 후 움직였다.
 “어라? 그거 반칙 아냐?”
 형택이 놈은 비겁하게 미리 준비해둔 각목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새끼야! 싸움에 반칙이 어딨어! 싸움은 이기는 놈이 장땡이야!”
 후웅-.
 형택이의 각목이 살벌한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갈랐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싸움은 이기는 놈이 장땡이지.”
 가급적이면 정령술은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일진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지만 지금처럼 일 대 일 형식으로만 싸운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쪽수도 많은 놈들이 비겁하게 각목까지 준비한 것이다.
 맨몸으로 각목을 맞았다가는 어디하나 부러질 수가 있었다.
 ‘그래, 학원도 가야하잖아. 후딱 해치우고 학원가자.’
 “대지의 정령술, 스톤 스킨.”
 겉보기에 내 몸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의 몸은 바위처럼 단단해진 상태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의 수준이 최하급이라서 스톤 스킨을 사용하면 움직임이 거북이처럼 느려진다는 것이다.
 파악!
 형택이가 휘두른 각목이 나의 왼팔을 가격했다.
 각목이 바위처럼 단단한 나의 왼팔에 부딪히자 반으로 뚝! 하고 부러졌다.
 “어이쿠, 이걸 어쩌나? 못해도 전치 4주는 나오겠는데?”
 내가 정령술을 썼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형택이는 내가 큰 부상을 입었을 거라고 오해했다.
 형택이가 들고 있던 반쪽의 각목을 땅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그러게 알아서 길 것이지. 왜 그렇게 벋댔냐? 뭐가 그렇게 잘랐다고!”
 부웅-.
 각목으로 왼팔을 친 것만으로 만족을 못 느낀 형택이가 나의 턱을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아마도 점심때 턱을 맞은 것에 대한 보복인듯 싶다.
 퍼억-.
 형택이의 주먹이 정확하게 나의 턱에 꽂혔다.
 “아악!”
 형택이가 자신의 주먹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토했다.
 주먹을 맞기는 내가 맞았는데, 내가 아니라 형택이가 비명을 지르자, 일진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혀, 형택아. 왜 그래?”
 일진 한명이 형택이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속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일진을 비웃어주었다.
 ‘왜 그러긴. 너도 네 주먹으로 단단한 바위를 한번 쳐봐라. 그럼, 형택이 놈이 왜 저러는지 금방 알게 될 거다.’
 “헉! 형택아, 네, 네 손이.”
 형택이의 손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퉁퉁 부어있었다.
 “너 이 새끼, 형택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니? 니들도 봤잖아? 오히려 맞은 사람은 나라고. 형택이 저놈 뼈가 저렇게 약한 걸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나저나 다 끝난 거냐? 나 이제 가도 되냐?”
 “가긴 어딜 가!”
 일진이 나를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스톤 스킨을 사용하며 움직임이 느려진 나는 가만히 서서 일진의 주먹을 맞아주었다.
 퍼억-.
 “악!”
 그 일진 역시 형택이처럼 퉁퉁 부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토해냈다.
 “하- 이제 보니 이것들 순 약해빠졌잖아? 아, 그랬구나. 그동안 자기들 약한 거 들킬까봐. 그래서 그렇게 끼리끼리 뭉쳐서 다녔던 거구만.”
 “뭐?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너 정말 죽고 싶어?!”
 나의 말에 일진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죽어!”
 갑자기 나의 뒤통수에 주먹이 꽂혔다. 제일처음 나에게 당하고 바닥을 뒹굴던 일진 3명이 어느새 일어나 나를 공격한 것이다.
 퍼억- 퍽- 퍽-.
 “으윽!”
 “커억!”
 “아악!”
 나의 뒤통수를 공격했던 일진 3명이 퉁퉁 부어오른 자신들의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토해냈다.
 “그러고 보니 형택이도 그렇고 다들 왜 저렇게 된 거야?”
 “저 새끼 저거, 무슨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거 아냐?”
 그제야 남아있던 십여 명의 일진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낼 일진들이 아니었다.
 “넌 이제 뒈졌어!”
 십여 명의 일진들이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미리 준비해둔 각목을 챙기기 시작했다.
 “야, 한꺼번에 조져!”
 “우와아아!”
 십여 명의 일진들이 나를 향해 한꺼번에 각목을 휘둘렀다.
 부우웅-.
 십여 개의 각목이 살 떨리는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갈랐다.
 퍼버벅- 퍽퍽-.
 십여 개의 각목이 사정없이 내 몸을 가격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십여 개의 각목만 부러질 뿐 내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래도 조금 쑤시기는 하네.’
 정령력이 최하급 수준이라서 그런지, 십여 개의 각목을 한꺼번에 맞았더니 조금 아프기는 했다.
 그렇다고 통증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딱밤을 조금 쎄게 맞은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두두둑- 두두둑-.
 나는 십여 개의 각목을 맞고도 멀쩡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목을 좌우로 꺾으며 몸을 푸는 시늉을 해보였다.
 “저, 저 새끼 뭐냐?”
 “어떻게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지?”
 “저거 사람 맞아?”
 역시나 나의 생각대로 일진들은 십여 개의 각목을 맞고도 멀쩡한 나를 보며 겁에 질렸다.
 “그럼,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손을 써 볼까? 해제.”
 은밀히 스톤 스킨을 해제한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의 일진들을 향해서 돌진했다.
 퍼억-.
 “윽!”
 제일 앞에 있는 일진의 명치에 주먹을 날린 후, 조금 뒤에 있던 일진의 턱에 돌려차기를 먹여주었다.
 빠악-.
 “아악!”
 나는 그야말로 양떼 속의 한 마리 늑대였다.
 각목에 대한 충격이 컸는지 일진들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뭐, 일진들이 정신을 차리고 평소처럼 움직였다고 해도 나의 상대는 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일진들이 다소 얼이 빠져있던 덕분에 보다 쉽게 일진들을 처리할 수가 있었다.
 동료 일진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것을 본 다른 일진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형택이 새끼, 도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
 
 투다다다닥-.
 한참을 정신없이 달려가던 진욱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지, 진욱아 왜 그래?”
 “민재야, 너 먼저 가라.”
 “뭐? 너 설마? 안 돼. 지금가면 너도 진수처럼 될 거야.”
 “알아. 그래도 진수를 혼자 두고는 못가겠다.”
 “진욱이 너···.”
 진욱이가 땅바닥에 있던 짱돌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민재가 진욱이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진욱아, 가지마. 우리가 가봤자 진수한테 아무런 도움도 안 돼. 차라리 선생님, 아니 경찰아저씨를 불러오는 게···.”
 “그러니까 넌 가서, 선생님이든 경찰이든 불러와.”
 진욱이는 그 말을 끝으로 진수가 있는, 일진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곳을 향해서 되돌아갔다.
 “젠장! 같이 가!”
 잠시 갈등하던 민재 역시 바닥을 뒹굴고 있던 짱돌을 집어 들고 진욱이의 뒤를 쫓았다.
 “진수야! 내가 왔···. 어라?”
 나름의 각오를 다지고 일진들이 포진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온 진욱이는 눈앞에 펼쳐진 뜻밖의 상황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아아악!”
 뒤따라오던 민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야! 다 덤벼!”
 민재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마구잡이식으로 들고 있던 짱돌을 휘둘렀다.
 툭툭-.
 진욱이가 그런 민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야, 진정해.”
 “응?”
 민재가 살며시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진수는··· 헉! 저, 저게 어떻게 된 거야?”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본 민재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민재는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가 하고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도 눈앞의 광경은 여전했다.
 “이, 이게 어떻게?”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민재와 진욱이를 향해서 해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 왔냐?”
 진욱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되긴. 지금 보는 그대로지.”
 진욱이가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일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정말로 네가 여기 있는 일진들을 다 무릎 꿇렸다고?”
 “그래. 알고 보니까. 이것들 다 허당이야. 허당. 엄청 약해.”
 나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일진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어쭈? 니들이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타악- 탁- 탁-.
 나는 목탁 두들기듯, 일진들의 머리를 한 대씩 두들겨 주었다.
 “헉! 진수야, 너 지금···.”
 “야! 야! 너 지금 뭐하는···.”
 나의 그런 행동에 민재와 진욱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잠깐이었다.
 일진들이 감히 덤빌 생각은 못하고 내가 때리는 대로 가만히 있자, 그제야 내 말을 믿기 시작했다.
 “정말로 진수 너 혼자···.”
 “진수 너, 정말 대단하다.”
 “에헴, 그걸 이제 알아봤냐? 이 형님이 이렇게 대단한 분이시라고. 그러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모셔라.”
 나의 장난에 민재와 진욱이가 맞대꾸를 해주었다.
 “예이~”
 “알아서 모시겠나이다.”
 “어흠, 그래야지.”
 신기하다는 듯 무릎을 꿇고 있는 일진들을 쳐다보던 민재가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 학원갈 시간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이크, 이러다가 지각하겠다.”
 일전에 전생체험관을 갔다 온다고 지각을 했었다. 어떻게 된 게, 학교보다 학원이 지각이나 결석에 더 민감하고 엄격하게 반응했다.
 그때 학원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한번만 더 지각을 하면 부모님께 알리겠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일진들과 싸우느라 학원을 지각한 것을 아시게 되면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실 것이다.
 일진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설마 어디 가서 오늘 일 말하지는 않겠지?”
 “······.”
 일진들이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됐는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 쪽팔려서라도 말 못하겠지. 그럼, 난 그렇게 알고 간다. 아!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다시는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 괴롭히지 마라. 만약, 한번만 더 그 변변치 않은 실력으로 다른 학생들 괴롭히다 내게 걸리면 그때는 정말! 길게 말 안 해도 잘 알거야? 그치?”
 그렇게 일진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날리고 학원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의 민재와 진욱이가 내 뒤를 따라왔다.
 내 뒤를 따라오던 민재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뒤쪽의 일진들을 힐끗 힐끗 쳐다보며 내게 물었다.
 “야, 진수야. 정말로 너 혼자, 저 많은 일진들을 쓰러뜨린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서 말해줘.”
 “에헴, 내가 그동안 가만히 있어서 그렇지. 원래 내가 이정도야.”
 민재와 진욱이가 우리가 아는 진수가 이럴 리가 없는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야, 그러지 말고. 진짜 어떻게 된 건지 말해달리니까.”
 “아무리 네가 실력이 좋다고 해도, 어떻게 너 혼자서 저 많은···. 누가 도와줬냐? 지나가던 스파이더맨이라도 나타났었냐?”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민재와 진욱이는 계속해서 정말 어떻게 된 거냐며 묻고 또 물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내가 전생에 마왕과 싸운 정령이고 지금은 정령력까지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기에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렇게 진수와 민재 그리고 진욱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퉁퉁 부어오른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고 있던 형택이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힘겹게 꺼내었다.
 으드득!
 “김진수!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내가 누군 줄 알고! 넌 이제 뒈졌어!”
 
 
 정령술의 재발견 (1)
 
 
 
 “아!”
 뭐든 습관이 되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고?
 양호실에서 전생을 완전히 각성한 이후 더 이상 마왕과 용사 아벨이 싸우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지난 열흘 동안 그 꿈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다보니 이제는 그 꿈을 꾸지 않는데도 그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두 눈이 떠졌다.
 당연히 악몽을 꿀 때 느꼈던 그 생생하던 아픔이나 두통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꿀보다 더 달콤하다는 아침잠을 자지 못했는데도 짜증이 나거나,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상쾌함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아마도 정령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띠리릭 띡-.
 잠시 후 디지털 도어락이 열리면서 부모님께서 들어오셨다.
 “우리 진수 오늘도 일찍 일어났구나.”
 “이리주세요.”
 나는 얼른 어머니가 들고 있던 물통을 빼앗다시피 건네받았다.
 ‘아!’
 물통을 건네받으며 본 어머님의 손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손만이 아니었다.
 얼굴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나무에는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남는다고 했던가?
 이제 보니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손과 얼굴에 힘들었던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왜 그동안 이걸 못 봤지?’
 매일 맞잡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이다.
 매일 쳐다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과 얼굴에 주름이 저렇게 많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단 한번도.
 새삼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께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날 위해서 밖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시고 계셨는데, 난 언제나 그걸 당연하게 받아드렸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이 내 일에 신경을 쓰시면 그걸 쓸데없는 간섭으로 받아드렸다.
 종종 짜증을 내기도 했다.
 ‘죄송해요. 이렇게 고생하시고 계시는 것도 모르고, 투정만 부려서.’
 “진수야, 반찬 차려 줄 테니까 시간되면 국이랑 같이 먹어. 바쁘다고 그냥 가지 말고. 국은 따뜻하게 데워서 꼭 먹고 가라.”
 “예. 꼭 챙겨먹을게요. 엄마, 잠깐만요.”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평소에는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방으로 들어가던 내가, 평소답지 않게 행동하니 혹시라도 사고를 친 것은 아닌지 걱정하시는 눈치였다.
 “그게 아니라. 여기 좀 앉아보세요.”
 “얘가 갑자기 왜 이래? 너 혹시 용돈 필요하니?”
 “아니에요.”
 나는 앉아있는 어머니의 어깨를 꾹꾹 눌러드렸다.
 “어이구, 어이구 시원하다.”
 거듭 말하지만 필그림 시절의 나는 언제나 최하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마왕과의 결전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적의 수준 역시 점점 더 높아져갔다.
 최하급 정령이었던 나는 일행들의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될 뿐이었다.
 어떻게든 일행들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적과의 전투에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던 나는 다른 방법으로라도 아벨과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전투외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가령 일행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거나 설거지 혹은 세탁 등의 잡일 같은 것 말이다.
 그 정도는 최하급 정령인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난 그저 잡일만 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과의 전투가 치열하고 격렬해졌다. 아벨을 비롯한 일행들의 피로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벨과 동료들이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였다.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졌다.
 어떤 날은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적도 누적된 피로도 때문에 힘겹게 처리해야만 했다.
 그걸 본 나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일행들의 피로를 풀어주겠다고.

댓글(1)

ma******    
고등학교2학년들이 하는짓을보면 유딩이냐 초딩이냐? 그리고 고2학년에 같은 학급인데 학교의 퀸카가 은따라고? 그리고 그걸 또 첨 알았다는듯한 리액션은 뭐지? 초반 설정부터 초딩스럽게 잡아놨네ᆢ
2020.05.2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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