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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너무 잘함 1권 (1)

2019.05.14 조회 2,908 추천 15


 # 프롤로그
 
 
 2016년 EPL의 새로운 시즌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한 베테랑 선수의 방출 소식이 알려졌다.
 
 [200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에 입단하며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던 강산 선수가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18살에 K리그에 데뷔하여 4시즌 연속 득점왕 수상이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을 달성한 그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곧바로 로열 로드를 밟았다. 그러나 시즌 초반에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모두가 선수 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1년 뒤 강산은 결국 복귀를 했다. 그러나 몸 상태는 예전과 같지 않았고, 강산은 백업 멤버로서 10년간 필드를 뛰었다. 그동안 스트라이커, 미드필더, 풀백, 중앙 수비수 등등 각종 포지션을 뛰면서 로테이션 자원으로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개편을 예고하며 주급이 높은 베테랑 선수를 정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강산을 비롯한 총 4명의 선수를 정리하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선수들을 새로이 영입할 계획이다.]
 
 많은 언론 매체에서 다룬 소식이었지만, 세계 축구팬들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겨우 백업 멤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빅 사이닝을 한다는 소문이 돌자, 강산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32살의 나이면 아직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날 나이는 아니지만, 우승 경쟁이 치열한 EPL에서 8만 파운드(약 1억 1,500만 원)의 주급을 주며 그를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강산은 방출을 당했다.
 기량이 하락할 일만 남은 노쇠한 프로 선수에겐, 이제 더 이상의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내고 싶지 않아.’
 치열했던 프로 생활.
 강산은 자신의 삶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그중 감시자(監視者) 아드리안에게는 다른 신들과는 다른 독특한 취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축구였다. 업무의 특성상 매일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아드리안은, 인간 세상의 축구를 처음 접한 그날부터 축구를 챙겨보는 일을 삶의 낙으로 삼았다.
 그런 그에게, 이번 이적 시장의 행보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아니, 이 새끼들이 미쳤나. 10년 동안이나 팀을 위해서 헌신한 선수를 이렇게 헌신짝처럼 버려?”
 아드리안은 전형적인 맨유의 열성팬이었다. 구단이 창단되던 시절부터 응원했던 그는, 맨유의 역사를 통틀어 강산이라는 선수를 가장 사랑했다. 그의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강산이 맨유를 위해서 헌신한 일들을 생각하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상 당해도 결국 복귀해내는 정신력, 백업 멤버임에도 구단에 도움이 된다면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마음, 재계약 당시 자신의 주급을 삭감하면서까지 구단에 남고 싶다는 의지를 밝힐 정도로 강산은 맨유의 긍지라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래서 일부의 팬들은 강산이야말로 팀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며, 맨체스터를 수호하는 마운틴(Mountain)이란 별명을 붙였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작년에도 백업 멤버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건만, 팀의 레전드 대우는커녕 이런 부당한 방출이라니. 만약 강산의 이름이 영국 국적의 제임스였다면, 이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이런 거지 같은 결정을 내린다 이거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은혜도 모르는 검은 머리 짐승들은, 꼭 현실이 닥쳐야 자신들이 얼마나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닫는 법이니 말이야.”
 아드리안은 결단을 내렸다.
 자신에게 허락된 권한을 강산에게 사용하겠노라고.
 ‘강산의 육체 능력을 회복시키자. 코리안 몬스터라 불리며 맨체스터에 입단했었던 20대 초반의 전성기 때로.’
 수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2016년의 여름.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천상계의 폭군이 인간 세상에 내려갔다.
 
 
 # 새로운 시작
 
 
 감독의 호출을 받고 방 안에 들어갔을 때, 강산은 본능적으로 오늘이 그날임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자네에게 1년 연장 조항을 발동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네. 그 이유는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구단에서 10년간 있었으니, 현재 맨체스터가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는지 말이야.”
 방출.
 그 단어를 말함에 있어, 사무엘 감독의 표정은 덤덤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흥을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이 은퇴한 이후, 구단은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사무엘 이전의 감독이 2시즌 7위, 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며 경질을 당했고, 스페인 출신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무엘이 많은 기대를 받으며 지휘봉을 맡았다.
 그러나 상황이 바로 호전되지는 않았다. 나름 선전하나 싶었으나, 후반기에 무너져 내리며 4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전의 기록을 생각한다면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Champions League Play off) 진출권을 얻은 것은 충분히 대단한 일이지만, 우승을 밥 먹듯이 했었던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맨체스터의 팬들과 구단 수뇌부들은 그 정도의 성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우승에 걸맞은 스쿼드를 구축하겠다고 말이다.
 “암흑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성이 있어. 자네 나이도 벌써 32살이고, 입단 초반에 당했던 무릎 부상 때문에 2번의 경기 중 한 번은 휴식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야. 로테이션 멤버로서 자네의 역할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네. 부상 경력이 있는 고령의 고액 주급자보다, 뉴 페이스가 필요한 것이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강산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사실 예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자신의 전부였던 구단을 떠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전 구단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고액의 주급이 문제라면, 주급을 깎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의 말씀대로 부상이 제 발목을 잡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챔피언스 리그의 경기를 병행하려면 저와 같은 로테이션 자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1인분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10년.
 수많은 선수들이 입단과 방출을 당하는 그 세월 동안, 강산은 항상 본인의 역할을 해냈다. 무릎 부상 때문에 1군으로서 대단한 활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팀이 부상 선수로 인한 문제가 생길 때면, 강산은 피나는 노력으로 해당 포지션을 연습해서 팀을 위기의 순간에서 구했다.
 작년도 다르지 않다.
 강산은 각종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로테이션 멤버로서 결코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다.
 그렇기에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의 폼이 급격하게 하락해서 방출을 통보한다면 받아들이겠지만, 강산은 아직도 자신이 활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내년부터는 챔피언스 리그의 병행으로 경기 수가 많아질 텐데 자신과 같은 멀티 로테이션 자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만약 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떠나겠습니다.”
 “기회라. 좋지, 기회.”
 사무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이번 결정은 전적으로 그의 뜻이 반영되었다. 구단 수뇌부들은 아직 강산을 믿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다음 시즌의 성적을 위해 이적 시장의 결정권을 자기 뜻대로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문제는 그 기회 때문에 맨체스터가 몰락할 수도 있는 거야. 팬들이 하는 말들을 들었나? 그들은 현재 맨체스터의 가장 큰 문제점이 노쇠한 선수들이라 생각하고 있어. 간신히 1인분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붙잡고 있느라고,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선수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라고.”
 게다가 강산은 폭탄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무릎에 달고 경기를 뛰는 선수. 보통 명문 구단들은 30살이 넘어가면 1년 이상의 계약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는 확실히 부담됐다.
 그리고 후반기 부진에서 강산이 마냥 잘한 것도 아니다. 느린 주력은 분명한 약점을 보였고, 사무엘은 강산의 폼이 떨어지는 순간 선수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축구 지능만으로 간신히 버티던 선수가 폼까지 잃어버린다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지금 당장은 강산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강산의 방출을 개편의 본보기로 삼을 생각이었다.
 “다른 구단을 알아볼 생각이라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네. 코치 생활을 하고 싶다면, 구단 수뇌부에게 말해서 자리를 알아보도록 하지. 그러니 이만 현실을 받아들이게나. 그런 무릎 부상을 당하고도 10년간 EPL, 그것도 최고의 구단에서 버틴 거면 자네는 최선을 다한 걸세.”
 선택지는 없었다.
 선수가 아무리 발악한다 한들, 구단이 방출 통보를 한다면 선수로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 알겠습니다.”
 비참한 현실에, 강산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처음 이 땅에 발을 들일 때만 하더라도, 강산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EPL에서, 세계 최고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소속으로 세상의 모든 트로피를 따내리라. 세월이 흘러 강산의 커리어에는 우승 경력이 하나둘씩 추가되었지만, 환호하는 사람들 틈에서 강산은 자신이 염원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연의 자리에 있었다.
 ‘만약에, 만약에 부상 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강산은 만약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왠지 과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사람이, 현재에 와서 내뱉는 부질없는 후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출을 통보받은 지금, 그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18살의 어린 나이로 K리그에 데뷔했던 강산은, 그 해에 무려 30골을 때려 박으며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4시즌 연속 득점왕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발탁되었을 당시 7경기 14골이라는 괴물 같은 득점력을 선보이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코리안 몬스터(Korean Monster)라 불렸다. 2002년에 이어 4강 신화가 재현되던 순간이었고, 3위에 랭크된 한국의 기록에 돌풍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강산을 두고 관심이 폭발했다.
 그때가 강산의 전성기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뿐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등등, 세상에서 알아주는 명문 구단들이 모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산을 얼마나 원하는지 강력하게 어필하였고, 치열한 경쟁 끝에 300억이라는 K리그 역대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강산은 결국 맨체스터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 결정에는 2005년에 이미 맨체스터에 입단한 박지석의 영향이 컸다. 그를 바라보며 맨체스터의 꿈을 키웠던 강산은, 박지석과 같이 맨체스터에서 영광의 세월을 보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부상 당했지. 악의적인 백태클로 인해서 선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산은 원래 폭발적인 신체 능력이 강점인 선수였다. 아시아인답지 않게 건장한 체격은 몸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았고, 빠른 다리를 이용한 오프사이드 트랩(offside trap) 무너트리기는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단 공을 치고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빠른 수비수라고 해도 강산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신체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걸 단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스트라이커로서의 강점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천재는 한순간에 범인(凡人)이 되었다.
 그렇게 강산은 나락에 빠졌다.
 만약 축구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 않았더라면, 1년의 재활 기간을 결코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
 한숨이 나왔다.
 과거를 생각하면, 그때의 순간들이 떠올라 입맛이 쓰라렸다. 확실히 그 당시의 자신은 대단했었다. 만약 부상 당하지 않았더라면, 강산은 맨체스터의 레전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부상 당하지 않았던 입단 초창기만 하더라도, 강산의 퍼포먼스는 역대급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부 부질없는 망상일 뿐이다.
 현실은 초라하다. 방출을 당한 지금의 상황에서, 과거의 영광은 미래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비록 맨체스터에서의 삶은 끝났을지 몰라도, 축구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이렇게 버림을 받기엔 자신이 아직 활용 가치가 있는 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유치한 감정 낭비일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자신의 축구 인생을 부정당하고 싶진 않았다.
 ‘다시 시작하자. 부상 당했던 그때도 끝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이었잖아.’
 재기.
 반드시 재기하고 말리라.
 그렇게 의지를 다지고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강산은 자신의 앞길을 막아서는 한 사내를 보았다.
 ‘낯선 얼굴인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금발 머리의 사내. 난생처음 보는 사내기에 무시하고 가는 것이 맞겠지만, 그 사내의 시선이 강산에게 고정돼 있었다. 마치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잠시 망설이던 강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죠? 제가 아는 분은 아니신 것 같은데······.”
 씨익.
 사내가 환하게 웃었다.
 하얀 이빨이 훤히 드러나는 그 웃음은, 강산이 인생을 살면서 보았던 몇 안 되는 멋진 웃음이었다.
 “나? 앞으로 네 형님이 될 사람.”
 그게 강산이 기억하는 아드리안과의 첫 만남이었다.
 
 * * *
 
 강산은 살면서 수많은 미친놈을 봤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내의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이름은 아드리안. 세상을 감시하며 수많은 신들을 통제하는 신 위에 있는 신이지. 고로 이런 나를 형님으로 모시게 될 너는 엄청난 기회를 얻은 거야.”
 “······.”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일반적인 범주에 포함되는 미친놈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EPL에서 10년 동안 생활하며 정신 나간 훌리건(hooligan)들을 여럿 경험했던 강산에게 있어, 이런 막무가내식의 대화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본인을 아드리안이라 밝힌 사내는 달랐다. 강산을 바라보는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오만해 보일 정도로 당당한 태도는 정말 자신을 신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망상증 환자인가.’
 슬쩍 주변을 살펴 경비의 위치를 찾았다. 이런 정신병자들은 상대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내가 망상증 환자로 보이나? 뭐, 그럴 만도 하지. 인간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신이 나타난다면 당황스러울 테니 말이야. 그런데 경비를 아무리 찾아봐도 소용없어.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는 이 주변으로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해.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거든.”
 씨익.
 아드리안이 또다시 활짝 웃었다. 그 멋진 웃음에도, 강산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 생각을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내가 말했잖아, 신이라고.”
 ‘미친!’
 “욕은 좀 자제하지. 그래도 네 앞에 있는 존재가 신인데, 그런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아야 하겠어? 아니, 머리에 담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어찌 됐든 간에 일단 이 현실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는데.”
 사고가 정지되는 기분이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강산은 웬만해서 침착함을 잃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건 일반적인 범주 안에서나 해당하는 사항이다. 생각을 읽는 자칭 신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러한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는 없었다.
 “이 정도로는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네. 그럼 딱 하나만 말해봐. 네가 생각했던 신의 능력을 하나 요구한다면, 지금 바로 보여주도록 하지. 그럼 깔끔하게 내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
 “그게 무슨······.”
 “얼른.”
 아드리안의 재촉에 강산은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신이라면 날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지.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린다든가.’
 똑.
 “어?”
 차가운 감촉에 강산이 화들짝 놀랐다. 볼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상황도 아니니, 이건 분명히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 터. 황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쏴아아아아!
 ‘비?!’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온몸을 때려대는 빗방울에, 강산은 일단 지붕이 있는 곳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아드리안은 어느새 그곳에 먼저 자리를 잡고서 강산을 보며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옷이 흠뻑 젖었다.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된 강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마, 말도 안 돼.”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맑고 화창한 날씨였는데, 자신이 비가 내리면 믿겠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하늘이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그런데도 믿기지 않았다. 무교인 강산에게 있어, 신은 한순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우연일 수도 있어. 사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잖아. 정말 신이라면, 비가 아닌 눈이············.’
 “아.”
 감탄이 입술을 비집고 세어 나왔다.
 영국의 8월.
 한국과 마찬가지로 여름의 더운 날씨를 자랑하는 그달에 정말 말도 안 되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산은 그제야 아드리안의 말을 믿었다. 이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닌, 진짜 신이라는 사실을.
 강산이 현실을 받아들이자 아드리안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사실 난 네 열렬한 팬이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면서 수많은 선수들을 봤지만, 너만큼 구단에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선수는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이번에 너를 방출하겠다는 구단의 선택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까놓고 말해서 네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아······.”
 강산으로서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주제였다. 신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의 팬임을 밝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강산은 일단 아드리안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었다.
 “퍼거슨이 은퇴하면서 맨유는 긍지를 잃어버렸어. 그래서 말인데, 난 네가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강산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였는지를 사람들에게 증명한다면, 맨유도 자신들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되겠지. 그게 내가 맨유의 팬으로서 내리고 싶은 벌이야. 노선을 이탈한 구단이 방황하고 있는 이때, 진정한 팬으로서 따끔하게 혼내려는 거지.”
 “정말 당혹스럽네요.”
 “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 일반적으로 신이라는 녀석들은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현실은 다르거든. 나 같이 소소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신들도 많아.”
 “일단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단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산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로서도 방출 통보를 받아들이긴 싫다. 그러나 사무엘의 말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자신의 무릎은 언제 고장이 날지 모르는 폭탄인 데다가 백업 멤버라기엔 주급이 높다. 물론 그만큼 효용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구단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자원일 수도 있다.
 자신은 선수고, 사무엘은 감독이다.
 성적에 따라 그의 위치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을 방출하는 선택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저는 맨체스터를 정말 사랑합니다. 제 능력이 다할 때까지는 구단을 위해 헌신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제 욕심 때문에 부담을 안길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필요하지 않다면, 당연히 떠나는 게 맞습니다. 그건 맨유의 긍지를 운운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선택입니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잠시 상대가 신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슬픔을 애써 억눌렀다.
 “멍청한 새끼.”
 아드리안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장난기가 넘치던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단언하건대 맨유는 옳지 못한 선택을 했어. 왜냐고? 너는 무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구단에게 충성심을 보였어. 부상을 당해도 악착같이 복귀했고, 1군 멤버들이 부상 당하면 항상 그 자리를 메웠어. 백업 멤버기에 심할 때는 한 시즌에 10경기도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너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구단에게 불만을 호소하지 않았어. 그게 네게 허락된 역할이라면, 그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렇게 헌신적이었던 너를 방출해?”
 아드리안은 화가 났다.
 자신이 사랑하는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절망하는 모습에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선수는 소모품이 아니야. 네가 10년간 의리를 보였다면, 구단도 네 역할이 다할 때까지는 신뢰할 의무가 있어. 아직 네가 부진한 것도 아니잖아? 저번 시즌에 네 활약이 없었다면 4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것 같아? 천만에! 6위 이하로 떨어지고, 사무엘은 분명히 경질당했을 거야.”
 울컥.
 순간 강산의 감정이 요동쳤다. 참으려 했다. 방출이라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최대한 담담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드리안의 말을 듣자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사무엘 감독 앞에서 저 말을 하고 싶었어. 작년에 나는 존중 받아 마땅한 활약을 했었다고.’
 15-16시즌 마지막 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순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기의 상대는 바로 맨체스터 시티였다. 사람들에게는 맨체스터 더비(Manchester Derby)라 불리는 라이벌 경기였고, 상대의 주력 스트라이커 세르히오 아구에로(Sergio Aguero)는 엄청난 화력으로 당시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를 저지한 사람이 바로 강산이었다.
 중앙 수비수로서 뛰었던 강산은, 경기 내내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틀어막았다. 아픈 무릎으로 인해 민첩성은 떨어졌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전술적인 역할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맨체스터 시티를 1대0으로 잡아내 결국 4위 쟁탈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전 풀백인 루크 쇼(Luke Shaw)가 부상 당했을 때는 왼쪽 풀백을, 안토니오 발렌시아(Antonio Valencia)가 부상 당했을 때는 오른쪽 풀백을 뛰었다. 강산은 항상 소방수의 역할을 맡았고, 그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전반기의 연승 행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출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단 하나다.
 혹시라도 자신이 구단에게 해가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 불안함에 강산은 사무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드리안의 말을 듣고 나니, 구단의 선택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신은 이렇게 버림을 받을 만큼 가치가 없는 선수가 아니다.
 아드리안이 말했다.
 “맨유를 정말 사랑한다면, 보란 듯이 재기해서 보여주라고. 팀의 긍지를 잃으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알겠습니다.”
 강산의 눈빛이 변했다. 애초에 축구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력한 명분이 생겼다. 1년의 재활 훈련을 버텨냈었던 것처럼, 강산은 독기로 차올라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저를 도와준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도와주시려는 겁니까?”
 씨익.
 아드리안이 웃었다.
 강산의 서슬 퍼런 기세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저게 바로 흔들리는 맨유를 지탱하던 정신력이다. 사람들은 강산을 단순히 백업 멤버로서의 역할로만 생각하고 있지만, 팀에 열정을 불어넣던 선수를 내보냄으로써 맨유가 겪게 될 악영향은 단순히 그 정도만이 아닐 것이다.
 언성 히어로의 이탈.
 사무엘 감독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땐, 이미 맨유라는 배는 침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 형님만 믿고 따르면 돼. 오케이?”
 “알겠습니다.”
 “좋아, 그런 열정. 이래서 네 팬질을 멈출 수가 없다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선물을 주도록 하지.”
 딱!
 아드리안이 손가락을 튕기자 강산의 몸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화아악!
 그것도 바로 부상 당했던 무릎에서부터.
 
 * * *
 
 “흡.”
 강산이 순간 신음을 삼켰다. 무릎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아드리안을 보았다.
 “그렇게 당황할 필요 없어. 방금 부상 당한 네 무릎에 자연의 기운을 심어 넣었거든. 아마 당분간은 핫팩을 대고 있는 것처럼 열기가 가라앉지 않을 거야. 네가 내 말을 듣고 열심히 훈련을 따른다면, 적어도 2년 안에 전성기의 몸 상태를 회복할 수 있어.”
 “저,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구라라도 치겠냐? 명색이 신인데? 사실 나도 짠하고 무릎을 바로 회복해주고 싶은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간 이 세상을 창조한 주신이란 녀석에게 잣되는 수가 있거든. 그래서 일종의 편법을 사용한 거야. 자연의 기운이 네가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최대한으로 높여서, 무릎의 상태를 싱싱했던 그때처럼 회복시켜주는 거지.”
 아드리안은 감시자다.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주신이 정한 규율을 위반하는 신들을 심판한다. 그래서 본인을 신 위에 있는 신이라 표현했지만, 그라고 해도 인간 세상의 규율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신보다도 규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주신이 정한 틀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가 감시자인 이상 세상에 그를 심판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애초에 그러한 상황을 염려했기 때문에 감시자가 있는 것인데, 그런 감시자가 편법을 저지르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신법(神法) 1조 3항, 신은 인간 세상에 직접적인 개입을 엄격히 금지한다. 만약 내가 강산의 무릎을 바로 회복시킨다면 이 항목을 위반하게 되지만, 자연의 기운은 세상에 퍼져있는 신비로운 힘. 나의 능력이 아닌, 그 힘을 불어넣음으로써 나는 신법을 어기지 않았어.’
 이 정도의 위법은 주신으로서도 알 방법이 없다. 아드리안만이 가능한, 그야말로 완벽한 범죄였다.
 ‘어쩌면 직접 회복시키는 것보다 이 방법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비록 회복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자연의 기운이 강산의 육체를 끊임없이 발전시킬 거야. 단순히 부상을 회복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허락된 최상의 육체를 얻게 되는 거지. 아마 육체 능력으로는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괴물이 되겠지.’
 씰룩.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올라갔다. 강산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들뜬 마음이 들었다.
 “내게 고마워해라. 네가 그 힘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죽을 때까지 잔병치레는 없을 거다. 어쩌면 기네스에 최장수 할아버지로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걸?”
 아드리안은 일부러 힘의 효과를 전부 설명하지 않았다. 이미 부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은 순간부터, 강산은 격정적인 감정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성기 그 이상의 발전은 강산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테니 지금은 일단 강산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강산의 음성이 파르르 떨렸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꾹꾹 억눌렀다. 아드리안의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기뻐하고 싶진 않았다.
 최대한 담담해지자.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지만 희망으로 변하는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아쉬움 속에 살았어. 부상 당하지 않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지. 그러니까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자. 미래의 내가 조금의 후회도 하지 않도록.’
 꽉.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그를 연습 벌레라 부를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앞으로의 강산은 사람들이 질려 할 정도로 이를 악물고 축구에 매달릴 것이다.
 그게 강산의 방식이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
 그런 정신력이 있었기에 강산은 부상 당했음에도 EPL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인간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위법이라면, 이미 아드리안은 실수 하나를 저질렀다.
 “제게 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날씨를 조종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위법 행위가 아닌 겁니까?”
 씨익.
 아드리안이 웃었다.
 정말 웃음이 많은 사내, 아니 신이었다.
 “내가 누구라고 했지?”
 “신?”
 “아니, 그거 말고.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표현하는 수식어.”
 “신 위에 있는 신이요?”
 “그래, 한마디로 레알 쩌는 신이란 말이지. 내 한 마디면 이 세상에서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지금으로부터 10분 전.
 아드리안은 천상(天上)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신들이 있다.
 그중 날씨를 다스리는 신 멜피스는, 산하에 있는 작은 신들에게 일정 구역의 날씨를 관리할 것을 명했다. 자신에게 부여된 많은 양의 업무를 처리하려는 방법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영국의 날씨를 담당하는 신은 멜피스가 아니었다.
 “아니, 어떤 새끼야!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날씨를 바꾼 것도 모자라서 8월에 눈을 내리게 해?”
 작은 신 사이딘이 분노를 토해냈다.
 맨체스터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그에게 알려졌다. 그 변화로 인해 인명 피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8월에 눈이 내린 것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만약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멜피스에게 작살날 터. 발등이 불이 떨어진 그는 당장 모든 업무를 중단했다.
 “오냐, 날 만만하게 봤다 이거지? 아주 잡히기만 해봐. 줘 터져봐야 신생(神生)의 쓴맛을 알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미 능력이 발현된 장소는 확인한 상태. 그는 천상의 길을 통해 해당 장소로 곧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대가리 박아.”
 “예.”
 쿵!
 사이딘이 재빠르게 원산폭격(元山爆擊) 자세를 취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얼굴을 붉히던 야수는 없었다. 상대를 확인한 순간, 사이딘은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신생 최대의 고비임을 알았다.
 ‘이런 식빵, 하필이면 아드리안이라니·········.’
 아드리안.
 그 이름은 천상계에서는 폭군(暴君)이라고 불린다. 주신 외에는 그 어떤 신들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 자신이 아닌 멜피스가 와도 대가리를 박아야 하는 상황에,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야, 우리 사이딘 많이 컸네. 내가 날씨 좀 바꿨다고 아주 죽일 기세로 달려드네?”
 “죄송합니다. 아드리안 님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 그러니깐 이번 일은 쌤쌤으로 하고 넘어가는 거다?”
 “아, 안 됩니다.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이건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만약 주신님이 이번 일을 알게 된다면, 저도 같이 엄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멜피스 님에게 말해서 사건을 원만히······.”
 “야.”
 아드리안이 말을 뚝 끊었다.
 현재 그의 육체는 지상에서 강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의식만 천상계로 올라와 사이딘을 만난 상황. 잔뜩 겁을 먹어서 파르르 떨리는 사이딘의 목소리에, 아드리안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얼마 전에 런던에 폭우가 내렸었어. 원래 예정된 사항이 아니었는데, 네가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힘을 남용했었지 아마. 그 정도의 장난질이야 너희들끼리는 그냥 넘어가는 것 같지만, 이것도 엄연히 위법 행위지. 그런데 말이야, 넌 내가 뭐하는 신이라고 생각 하냐?”
 “그, 그게······.”
 “왜 말을 더듬고 그래. 난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녀석들을 처벌하는 신이야. 그런데 내가 몰라서 너희를 처벌하지 않은 것 같아? 천만에! 깊은 아량으로 넘어가 줬으면 내게도 돌아오는 게 있어야지. 원래 신생은 기브 앤 테이크인 거 몰라? 안면 몰수 하다가 너 잣 되는 수가 있다.”
 “······.”
 사이딘의 말문이 막혔다.
 아드리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저지른 위법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 이래서 아드리안이 천상계의 폭군이라 불린다. 사람들은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신들을 감시하고 약점을 틀어쥐고 있는 아드리안은 그런 신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이딘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다, 당연히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알아서 보고할 생각이었습니다. 설마 제가 아드리안 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겠습니까? 영국의 날씨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바꾸셔도 됩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선이라면, 절대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잘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아드리안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바로 10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크큭.”
 아드리안이 홀로 웃음을 터트렸다. 당황하던 사이딘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데······.’
 강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드리안이 자신의 은인은 맞지만, 통상적으로 알려진 신의 범주를 벗어난 것은 확실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강산으로서는, 혼자 대화를 하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아드리안의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산은 신인데,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그때 정신을 차린 아드리안이 말했다.
 “각설하고, 선물을 하나 더 주도록 하지. 사실 널 지켜보면서 항상 이 능력을 부여하고 싶었거든. 너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인간 세상의 규율도 어기지 않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그 말에 강산은 생각을 정정했다.
 비록 정신은 이상할지언정, 아드리안은 정말 좋은 신이라고 말이다.
 
 * * *
 
 전성기 시절 강산의 장점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본인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해내는 축구 센스였다.
 그렇기에 몸 상태가 건재할 때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불렸지만, 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어느 포지션에서든 1인분을 해내는 멀티 백업 멤버가 되었다. 사실 강산의 기술적인 부분이 남들을 압도할 만큼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 EPL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A급의 기술들을 연마했다면, 사람들이 월드 클래스라 부르는 선수들은 S급의 기술로 차원이 다른 세계를 선보였다.
 그래서 아드리안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전성기의 강산이 기술마저도 뛰어났다면,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축구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비교할 적수가 없을 정도로 축구판을 독식했겠지. 사실 부상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강산의 신체 능력과 축구 센스면 A급의 기술로 S급 이상의 포스를 자랑했을 거야. 난 그 만약의 상황을 보고 싶어.’
 이미 무릎 부상을 회복시키면서 인간사에 개입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 주신에게 발각된다면 처벌이야 피할 수 없을 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아드리안은 자신의 스타를 제대로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야 처벌을 받더라도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주신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앞으로 3개월의 간격으로 네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야.”
 “선택권이요?”
 “그래. 본인이 생각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기술, 혹은 꼭 발전시키고 싶은 기술을 말해봐. 그럼 내가 그 기술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았던 선수의 경기를 직접 체험하도록 해주지. 타고난 너의 축구 센스라면, 기술의 발전을 막아서던 벽을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을 거야.”
 직접적인 기술의 향상은 불가능하다. 무릎을 곧바로 회복시켜주지 못했던 것처럼 그것 또한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아드리안은 편법을 사용했다. 단순히 한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 그 정도의 행위는 주신의 감시를 피할 수 있다.
 “아.”
 강산은 아드리안이 말하는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S급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직접 경험시켜준다는 거구나.’
 기술의 발전은 보통 타고난 재능과 반복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강산은 후자를 통해 A급의 기술을 터득했지만, 전자가 모자라 S급이 되지 못한 기술들이 많다. 호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의 UFO 킥이나, 리오넬 메시(Lionel Messi)의 드리블 능력과 같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기술들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기술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런 기술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이점을 얻게 되는 일이다.
 ‘내가 왜 S급의 기술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겠지.’
 예를 들자면, 자동차 운전으로 비유할 수 있다.
 수동 운전을 해야 하는 자동차는 클러치(clutch)의 사용이 가장 중요하다. 클러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언덕을 올라가다가 시동이 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전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반 클러치라고 해서 클러치에 올린 발을 약간만 떼라고 말하는데, 막상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약간이라는 기준이 생소할 뿐만 아니라, 원래 감각의 영역은 귀를 따갑게 만들 정도의 설명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체감하지 않는 한 터득이 어렵다.
 그런데 아드리안의 설명대로라면, 반 클러치의 감각을 강사의 입장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엄청난 이점이다. 물론 감각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S급의 기술을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술을 발전시킴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강산은 곧바로 고민에 빠졌다. 어떤 기술을 경험해볼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아마 느린 주력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중앙 수비수에서 뛰게 될 거야. 그렇다면 내 단점은 명확해.’
 고민은 금방 끝났다.
 주력이야 무릎이 회복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테니, 강산은 당장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을 말했다.
 “알레산드로 네스타(Alessandro Nesta)의 태클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새끼, 역시 머리가 좋다니까. 딱 필요한 걸 말하네.”
 아드리안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딱!
 강산의 의식이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강산은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을 때, 수비 위치 선정을 집중적으로 단련했다. 아무래도 주력이 많이 떨어지는 강산으로서는, 공이 오는 길목을 먼저 선점하는 것만이 약점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내 완벽할 수는 없었다. 달리기가 빠른 공격수들은 강산을 상대로 항상 스피드 경쟁을 시도했고, 만약 처음에 공을 커트하지 못한다면 강산은 허허벌판으로 뚫리는 뒷공간을 바라봐야만 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뛰어도, 재빠른 공격수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연습했던 것이 태클이었다.
 자신이 뚫렸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강산은 곧바로 백태클을 시도해서 공격수의 전진을 막았다.
 하지만 그건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정확히 공만 건드린다면 성공적인 수비가 되겠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공격수를 완전히 놓칠 수도 있다. 그리고 무리한 백태클은 카드를 부른다. 보통은 매너 있는 플레이로 카드를 받지 않는 강산이지만, 수비 때는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만약 태클 능력이 향상된다면, 내 수비는 더 단단해질 수 있어.’
 그렇기에 강산은 네스타의 태클을 경험하길 원했다.
 세리에 A의 명문 AC 밀란(AC Milan)의 스타 수비수였던 그는, 네스타 태클 스페셜 영상이 있을 정도로 태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약을 보였다. 정확히 공만을 따내는 그의 태클에 상대 공격수가 항의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강산도 포지션 변경을 준비할 당시, 네스타를 비롯한 유명 수비수들의 플레이를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그의 이름이 바로 떠올랐다.
 빡!
 “큭.”
 강산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어느새 주변의 풍경이 변했고, 황소 같은 공격수가 몸을 부딪쳤다.
 경기의 한순간.
 지금 강산은 맨체스터가 아닌, 경기장에 네스타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어딜!”
 강산, 아니 네스타는 공격수의 전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시도하며 공격수를 괴롭혔고, 덕분에 공격수는 번번이 공을 탈취당했다. 그렇게 따낸 볼을 앞으로 배급하자 팀에 활력이 돌았다. 수비수의 든든한 활약에, 네스타의 팀원들은 마음껏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비 라인이 높게 형성했다. 아무리 일방적인 경기라 하더라도 한 번은 틈이 생기는 법. 상대 팀의 다이렉트 패스가 공격수에게 연결되자 네스타의 눈빛이 변했다.
 ‘이거다.’
 촤아아아악!
 네스타의 몸이 잔디를 갈랐다. 뒤에서 공격수를 덮쳤음에도 불구하고, 네스타의 발은 정확히 공만을 건드렸다. 정말 깔끔한 수비. 너무도 완벽한 태클에, 옆에 있던 동료가 손뼉을 쳐줄 정도였다.
 그리고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에도 네스타는 멋진 수비를 보여주었고, 그 경험은 곧바로 강산에게 전달되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네스타인 것은 분명한데, 몸을 직접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자동으로 반응하는 몸의 감각들이 머릿속에 강제로 각인되었다.
 정확히 한 경기.
 총 90분의 시간이 흐르자, 강산의 세계가 다시 변했다. 비를 피하려고 왔었던 바로 그 장소로 말이다.
 “후우.”
 숨을 깊게 내뱉었다. 아직도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비록 단 한 번의 경험일 뿐이지만, 강산의 머릿속에는 네스타의 태클 타이밍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이 경험을 잊기 전에 얼른 훈련을 통해 네스타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 경험을 계기로 태클 능력을 더욱 발전시킬 자신은 있었다.
 “역시.”
 아드리안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확실히 그의 예상이 맞았다. 사실 아드리안은 강산의 신체 능력보다 축구 센스를 더 높이 평가한다. 말이 모든 포지션을 뛰는 멀티 포지션이라지만, 그건 보통의 센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 포지션에 평생을 바쳐도 EPL 진입이 힘든 경우가 대다수인데, 강산은 항상 자신에게 부여된 전술적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않았던가.
 다른 의미로 괴물이었다. 그렇기에 ‘경험’의 기회만 주어도, 강산이 엄청나게 발전할 것임을 알았다.
 ‘스펀지처럼 경험들을 무섭게 빨아들이겠지. S급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의 세계를 몰랐기에 터득하지 못한 것이지,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강산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선수야.’
 잔뜩 격양된 강산의 표정이 그를 증명했다.
 당장에라도 보내달라는 얼굴에, 아드리안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너와 나의 역할은 명확해. 네가 오로지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안, 난 축구 외적인 부분들을 담당하도록 하지. 예를 들자면, 현재 공석인 네 에이전트의 업무라든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강산은 흔쾌히 승낙했다. 당장 자리를 옮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이젠 아드리안에 대한 신뢰도 생겼다. 이미 그는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강산으로서도 그 기대에 부응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아드리안의 말대로 강산은 에이전트가 없다. 맨유와 자질구레한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강산의 의지였지만, 자유 계약 시장에 나온 지금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출중한 능력을 지닌 에이전트를 대동하지 않고서는, 능구렁이 같은 구단들에게 이용만 당할 수도 있다.
 아드리안은 강산의 열정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한 번 찾아봐야지. 이 괴물을 받아들일 최적의 구단이 어디인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반년 후.
 2016년 여름 이적 시장 최고의 영입으로 기억될 강산이, 그렇게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 일주일간의 변화
 
 
 2016-2017시즌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을 무렵, 많은 언론사들이 일제히 강산의 방출 소식을 알렸다.
 
 [한국의 스타, 강산. 자유 계약으로 올드 트래포드를 떠나다.]
 [10년간의 활약. 그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선수였으나, 새로운 영광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사무엘 감독, 드디어 칼을 빼들다.]
 [강산의 방출을 시작으로 맨체스터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긍정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강산이 멀티 백업 멤버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엘 감독의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사람들은 맨체스터의 결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Q. 강산 선수를 방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현재 맨유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상당히 높습니다. 퍼거슨 감독 체재 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나,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EPL에서 30살이 넘어가는 나이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저희도 우승 경쟁을 위해서, 앞으로 젊고 퀄리티 있는 선수들을 새로이 영입할 생각입니다.]
 
 [Q. 그 말인즉, 앞으로도 고령의 베테랑들을 더 방출할 생각이신 건가요?]
 [A. 예.]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퍼거슨 감독의 은퇴 이후, 맨체스터는 암흑기를 겪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면서 다시 4위로 반등할 수 있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클럽은 그 정도의 성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맡겨주십시오.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EPL의 주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사실을 다시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증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의 인터뷰는 구단을 떠나는 선수들에게 비수와도 같았다. 마치 암흑기의 원인이 늙은 선수들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는 모양새였고, 이때다 싶은 기자들은 ‘구단의 노장들이 부진의 원인’과 같은 자극적인 기사를 작성했다. 맨체스터 측에서는 뒤늦게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 아니다는 태도를 밝혔지만, 이미 강산의 방출은 아름다운 이별이 아닌 버림을 받은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맨유의 팬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무엘의 언행이 무례하긴 했지만,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어. 사실 언제까지고 늙은 선수들을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잖아. 강산이 백업 멤버로서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데리고 있을 바에는 사무엘의 말대로 젊고 퀄리티 있는 선수를 데려오는 게 맞아.]
 [이건 옳은 선택이지. 솔직히 이따위 스쿼드로는 절대 우승 경쟁을 할 수 없어.]
 [이제는 그들을 떠나 보내주자.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는 바람에, 우리가 암흑기를 겪고 있는 거잖아.]
 [사무엘 멋있다! 감독이 그 정도의 패기는 있어야지.]
 
 사무엘의 포부는 팬들을 매료시켰다. 강산이 구단에 헌신한 사실은 인정하는 바이나, 그를 대신해서 퀄리티 있는 젊은 선수를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그 발언에 대부분의 팬들은 강산을 외면했다. 결국, 결과가 필요한 프로 세계에서 사무엘의 선택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현실이다.
 백 년이 넘어가는 구단의 역사 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영입되고 방출을 당했다. 구단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구단의 이익에 따라 방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강산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지만, 구단의 사정상 강산의 방출을 대부분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모든 팬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맨유의 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 기자는 강산의 방출을 크나큰 실수라고 비난했고, 일부의 골수팬들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언성 히어로는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국 하나의 팀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적어도 강산만큼은 데리고 가자는 팬들이 많았으나, 이미 결정된 사항은 되돌릴 수 없었다.
 처음에만 해도 이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甲論乙駁)이 펼쳐졌다.
 하지만 며칠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콜롬비아산 괴물 센터백 후안 파블로(Juan Pablo)와의 계약을 성공시켰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인 그는, 센터백뿐만 아니라 양쪽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다. 구단 소식통에 의하면 그의 이적료는 약 800억 정도이며, 이로 인해 사무엘 감독은 본격적인 영입의 시작을 알렸다.]
 
 빅 사이닝.
 모두가 탐내했던 선수를 영입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불만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강산의 이탈로 걱정했던 것은 멀티 백업 멤버의 부재였는데, 후안 파블로라면 그를 대체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강산을 떠나보냈다.
 구단에서 무려 10년간 헌신했으나, 팀의 에이스가 아닌 언성 히어로의 끝은 씁쓸하기만 했다.
 강산은 SNS를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퍼거슨 감독의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명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판단하기에 SNS는 선수 생활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SNS를 통한 소통은 분명히 많은 장점이 있지만, 원래 인간이란 동물은 언제고 실수를 한 번쯤은 저지르게 된다.
 그때, SNS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그렇기에 강산은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보다도, 괜한 말실수로 인해 구단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길 바랐다. 주변에서는 그런 강산을 보며 팬들과의 소통이 불편하지 않냐는 물음을 던졌지만, 강산은 SNS보다 편지라는 고전적이고 심플한 방법이 훨씬 좋았다.
 그래서인지, 강산의 팬들은 편지를 적극적으로 애용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립니다. 그만큼 강산 선수의 방출 소식은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레드 데블스(Red Devils/맨유의 별칭)가 된지 벌써 15년이 됐지만, 이토록 구단이 싫었던 적은 없습니다. 이건 정말 잘못된 결정이고, 강산 선수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
 팬의 진심이 담긴 편지에 강산은 한숨이 나왔다.
 옆을 확인하니 이와 비슷한 내용의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강산의 팬들이 보낸 편지였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사람들 대부분이 강산의 방출이 옳은 판단이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강산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출 소식이 알려진 이후부터 하루가 멀다고 도착하는 수백 통의 편지들이, 강산이 얼마나 좋은 선수였는지를 보여주었다.
 “괜찮아?”
 “아.”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음성의 주인은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을 맡은 마이클 케인(Michael Caine)이었다.
 “안 괜찮습니다. 맨체스터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이분들에게 감정적으로 받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언제고 이별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별하려니 입맛이 씁쓸하네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방출하다니. 난 이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방출 결정 당시, 마이클 케인은 곧바로 사무엘을 찾아갔다. 강산의 방출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항의했지만, 이미 결단을 내린 사무엘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 이후로 마이클 케인은 항상 저기압이었다. 힘을 내고 싶어도, 강산의 방출을 생각하면 의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만약 내가 영국 국적이 아니었다면, 방출을 당할 사람은 강산이 아니라 나였겠지.’
 마이클 케인의 나이는 올해 35살이다.
 사무엘의 선언대로라면 방출 통보를 받아야 마땅할 나이지만, 홈 그로운(Home Grown) 자격을 충족하는 자원이다 보니 개편의 바람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사실 전술적인 가치만 따지자면 강산이 마이클 케인보다 우위에 있다. 육체적인 기량이 하락한 마이클 케인은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만 로테이션을 뛸 수 있지만, 강산은 그보다 많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래서 사무엘에게 항의했었던 것이다.
 강산을 존경하는 마이클 케인으로서는, 강산이 떠나는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미 결정은 났어요.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선, 다른 곳에서라도 열심히 해야죠.”
 “그래, 그래야지. 맨체스터의 레전드인 강산이 이렇게 무너져서야 하겠어? 반드시 성공해야 해. 보란 듯이 자리를 잡아서, 강산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지 사람들에게 증명하라고.”
 “알겠어요.”
 열성적으로 말하는 마이클 케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원래는 조용한 성격인데, 최근에 강산만 관련되어 있으면 저렇게 변했다. 그 따뜻한 마음에,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가, 마이클 케인은 코치의 호출로 경기장에 나갔다. 언론에는 강산의 방출을 발표했지만, 거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아직 맨체스터의 소속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다른 구단을 구할 때까지 훈련장을 제공하기 위한 구단의 배려였는데, 막상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마이클 케인과는 다른 입장이라고 생각하자 괜히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같이 할 수 없구나.’
 잔류와 방출.
 그 기로에서 강산은 방출을 당했다. 같은 훈련장에 있더라도, 이젠 맨체스터의 소속이 아니다.
 짝! 짝!
 “힘내자, 힘.”
 강산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 퇴물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엎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서 자신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편지를 정리하고 이만 훈련에 나서려는데, 마이클 케인을 불렀던 코치가 다시 찾아왔다.
 “산아. 혹시 한 경기 뛸 수 있어? 지금 1군 상대 팀 애가 갑자기 햄스트링(hamstring)이 올라왔네.”
 “연습 경기요?”
 “응, 딱 한 경기만.”
 마이클 케인에게 듣기로는 오늘 1군 멤버와 2군 멤버+유소년 연합 팀의 연습 경기가 있다고 했다. 시즌을 앞두고 1군의 전력을 확인하려는 것인데 강산에게는 그다지 낯선 상황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산은 원래 2군으로 분류되는 전력이었고, 항상 연합 팀에서 경기를 뛰었다.
 사실 방출이 예정된 선수에게 이렇게 제안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나, 딱히 서로에게 손해가 가는 것이 없었다. 맨체스터의 입장에서는 1군을 상대할 선수가, 강산의 입장에서는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무엘을 제외한 구단의 사람들은 강산에게 호의적인 입장이다 보니, 코치로서도 강산이 한 경기 정도는 연습 경기를 뛰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는 훈련이니 말이다.
 ‘맨체스터에서의 마지막 경기라. 나쁘지 않네.’
 “할게요.”
 “그래, 그럼 준비하고 경기장으로 나와.”
 “예.”
 복합적인 생각이 담긴 결정이었다. 마지막 경기라는 의미도 있었고, 변화된 맨체스터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아드리안을 만난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맨유는 후안 파블로와 같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전력 강화에 성공했지만, 그러한 변화는 그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내게도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
 지난 일주일.
 그 기억을 되새기던 강산은 이윽고 경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복장을 갖추고 경기장에 나가자, 코치가 강산이 맡을 역할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4-4-2 포메이션에서 오른쪽 풀백으로 뛰면 돼. 오버래핑(overlapping)은 뒷공간이 뚫릴 위험이 있으니까 최대한 자제하고, 볼을 따내면 곧바로 전방으로 연결해. 뭐,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겠지. 전술적인 이해도만큼은 이 맨체스터에서 널 따라잡을 사람은 없으니까.”
 “충분히 이해했어요.”
 코치의 농담에 강산이 피식 웃었다.
 사실 현재 강산의 폼으로는 중앙 수비수가 더 적합하다. 아무리 라인을 내려앉았다고 한들 사이드는 스피드 경쟁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강산의 무릎으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일 테지만, 이번 경기는 실전이 아니라 훈련뿐이다. 2군에서 중앙 수비수 유망주라 불리는 선수들의 실력도 확인해야 하다 보니 단발성 출전인 강산에게 최적의 포지션을 부여할 수는 없었다.
 ‘연합 팀에서도 백업이구나.’
 대체의 역할.
 코치가 바라는 것은 딱 그 정도였다.
 “다들 위치로 이동해.”
 “예.”
 간단히 준비 운동을 끝내자, 본격적인 경기를 위해 선수들이 자리로 이동했다. 오른쪽 사이드에 도착한 강산은 1군 멤버들의 면면을 살폈다. 맨체스터의 소속으로 10년이나 있었던 만큼 다들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이번에 대대적인 개편을 하면서 처음 보는 선수들도 몇몇 보였다.
 ‘화려하네.’
 확실히 이번 시즌의 맨유는 독기를 품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스트라이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자유 계약으로 데려오더니, 수많은 구단들이 군침을 흘리던 유벤투스의 미드필더 폴 포그바를 1,300억이라는 미친 이적료에 영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헨리크 미키타리안, 에릭 바이, 후안 파블로도 영입하면서 이번 이적 시장에만 무려 3,000억 이상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맨유의 의지와 자금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강산의 방출을 반대했던 팬들도, 속속들이 영입되는 선수들의 네임밸류를 확인하더니 사무엘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특히 수비진이 어마어마하네. 루크 쇼, 에릭 바이, 후안 파블로, 안토니오 발렌시아로 이어지는 포백은 EPL 내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어. 그리고 뒤에는 다비드 데 헤아가 지키고 있잖아.’
 자신의 빈자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구단에 잔류했다면, 선발 출장의 기회는 10경기도 부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그런 기회들도 1군들의 체력 안배를 위한 컵 대회 출전이었을 테고, 우승 경쟁에 필요한 리그 경기는 부상 선수가 없는 이상 출전할 확률이 희박하다.
 그게 강산의 현주소다.
 후안 파블로의 건장한 체격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감독이었어도 본인을 기용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재밌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사무엘은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기 위해서 맨유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사용한 이적료만큼이나 주변의 기대치가 대단한 상황이라, 팬들은 4위 이하의 성적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강산의 기대치는 바닥이다. 이대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다가 은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만약 아드리안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미래에 대해 불안함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뭐라고 떠들든 간에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저런 스쿼드를 보유하고도 날 그리워한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야.’
 마음을 조급하게 가지지 않았다.
 1년.
 그 시간 동안 발전에 집중한다면, 이번 시즌이 끝나고 세간의 평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금은 비록 방출을 당하는 신세라지만, 나중에도 이와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삐익-!
 마침내 시작된 경기.
 강산은 잡생각을 털어버리고, 이만 경기에 집중했다.
 경기의 내용은 상당히 일방적이었다. 연합 팀은 전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4-4-2 포메이션으로 수비에 집중하며 초반에는 경기를 잘 풀어나가는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1군 선수들의 현란한 개인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런.”
 “막아!”
 앞에서 압박을 가하던 선수가 그대로 뚫려버렸다. 간결한 플레이로 탈압박에 성공한 포그바는, 곧바로 오른쪽 측면에 있는 미키타리안에게 공을 연결했다. 연합 팀의 선수들은 황급히 미키타리안의 공간을 막아서려고 했지만, 이미 앞으로 뛰어나간 그는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탁!
 “크윽.”
 연합 팀의 중앙 수비수 유망주 악셀 튀앙제브(Axel Tuanzebe)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나름대로 몸싸움과 제공권 싸움에 자신 있는 그였지만, 지금 그가 상대하는 공격수가 너무도 강했다. 무려 195cm의 장신을 자랑하는 스트라이커 즐라탄. 그가 하늘을 날아오르자, 튀앙제브에겐 공간이 없었다.
 빡!
 공이 그대로 즐라탄의 머리에 맞았다. 다행히도 영점은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옆에 있던 다른 수비수가 황급히 공을 걷어냈다. 하지만 멀리 날아간 공은 다시 1군 멤버들에게 전달되었다. 버스 수비에 대항하기 위해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온 1군 멤버들은 현재 수비를 하프라인(half line)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롱패스 한 방에 뚫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수비 대형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기를 믿고 더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신 차려!”
 “마크해, 마크!”
 정신없는 경기가 계속 진행되었다.
 1군 멤버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보였다. 3선에 위치한 마이클 케인이 안전하게 볼을 연결하면, 포그바는 특유의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의 활로를 열었다. 미키타리안이 위치한 오른쪽 측면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박살이 났고, 웨인 루니와 즐라탄은 끊임없이 골대를 노렸다. 전반에만 벌써 3골이나 기록한 상황에, 이미 경기의 승패는 정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유일하게 왼쪽 측면은 침묵을 지켰다.
 공격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계속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공격이 막히고 말았다.
 툭!
 “젠장!”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맨체스터 최고의 유망주로 뽑혔던 마커스 래쉬포드(Marcus Rashford)에게 공이 연결되는 순간, 어느새 나타난 강산이 공을 스틸했다. 이미 3번이나 겪은 상황에 래쉬포드는 분통을 터트렸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모두 읽고 있는 것처럼, 강산의 수비는 정확히 허점을 노렸다.
 ‘또 뺏겼어.’
 자신을 지나치는 강산의 모습에,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4번의 경쟁에서 4번 모두 패배했다. 이는 공격수에게 있어 엄청난 치욕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보니, 자신만 괜히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활약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문제는 상대가 만만치 않아. 비록 주력은 느리지만, 수비 위치 선정이 그 단점을 메우고도 남아.’
 강산.
 그는 겨우 백업 멤버지만, 적어도 맨유의 선수들 중에서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같이 경기를 해보면 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언성 히어로는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는다. 확실히 강산은 명확한 장점이 있는 수비수였지만, 래쉬포드는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래쉬포드의 눈빛이 변했다.
 다음 시즌에 우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강산이 뛰어난 수비수임에는 분명하나, 그렇다고 리그 탑 클래스는 아니다. 결국, 저 정도는 뚫어야 한다. 만약 강산을 상대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그로서는 주전 경쟁에 적신호가 들어온다.
 그렇지 않아도 같은 포지션에 앤서니 마샬(Anthony Martial)이라는 뛰어난 선수가 있다. 래쉬포드가 조금이라도 좋지 못한 폼을 보인다면,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던 그가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강산은 무릎 부상 때문에 결국 페이스가 떨어질 터. 후반이 되면, 스피드 경쟁으로 승부를 본다.’
 강산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명확하다. 좋지 못한 무릎은 단순히 주력의 하락만 가져오지 않는다. 다른 선수들보다 페이스가 빨리 떨어지는 편이었고, 그렇다 보니 후반전에는 불안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그래서 자리를 지키는 중앙 수비수의 역할을 주로 맡았던 것인데, 연습 경기의 특성상 풀백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목표하는 바가 생기자, 래쉬포드는 차분한 마음으로 기회를 기다렸다. 어차피 스피드 승부로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상대가 강산인 것도 있지만, 그의 장점이 애초에 폭발적인 스피드였다. 딱 한 번만 뚫어낸다면, 그때부터는 왼쪽 측면을 완전히 박살낼 자신이 있었다.
 전반을 마치고, 곧바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경기 양상이 달라졌다. 강산의 스피드가 점점 느려지자, 1군 멤버들이 의도적으로 래쉬포드에게 공격을 연결했다. 이미 하프 타임(half time)에 입을 맞춘 상황. 그들도 시즌 전에 래쉬포드의 폼이 올라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집요하게 왼쪽 측면을 노렸다.
 “받아!”
 탁.
 빠르게 연결된 패스가 그대로 래쉬포드의 발에 걸렸다. 순간적으로 강산과 1대1 상황이 연출되었다. 연합 팀의 다른 선수들이 지원을 오지 못하는 상황에, 래쉬포드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지금이다.’
 절호의 기회.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래쉬포드가 행동에 옮겼다. 살짝 열려있는 가랑이 사이로 공을 길게 차더니, 곧바로 오른쪽으로 지나쳐 들어가면서 스피드 경쟁을 시도했다. 순간 전방의 시야가 활짝 열렸다. 전반 내내 볼 수 없었던 상황에, 래쉬포드는 이번만큼은 공격이 먹혔다고 확신했다.
 ‘끝났다.’
 이제 강산이 자신을 막을 방법은 없다. 결국, 이 지루한 싸움의 승자는 자신이었다. 강산이 전반전에는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원래 공격수라는 포지션은 단 한 번의 승리만으로 영웅이 된다.
 1골.
 골이 들어가는 순간, 그 골을 막아내지 못한 수비수는 패배자로 전락한다.
 그런데.
 탁!
 “?!”
 둔탁한 소리에 래쉬포드의 눈이 커졌다. 황급히 발밑을 확인하자, 강산의 태클이 정확히 공을 건드리고 있었다.
 
 * * *
 
 맨유의 선수들은 강산이야말로 팀 내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한 선수라고 말한다. 단순히 훈련에 열심히 임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강산이 시즌을 준비하는 모습을 곁에서 단 한 번이라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지독함과 열정에 강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루크 쇼의 폼은 많이 떨어진 상태야. 그렇다면 짧게 이어지는 패스 플레이보다는, 오른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갑자기 방향 전환을 하려고 하겠지. 내가 패스의 길목을 미리 차단한다면, 래쉬포드를 왼쪽에 고립시킬 수 있어.’
 감에 의한 판단이 아니다.
 강산은 부상 당한 몸으로 EPL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개인 정보팀을 창설했다. 그들의 인원은 총 5명이며, 강산의 경기 일정에 따라 상대 팀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파악해서 강산에게 제공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강산은 항상 경기 전에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 몇몇 선수들도 따라 하려고 했으나, 이게 하루 이틀이지 경기마다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 다들 혀를 내두르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보통 상대 선수들의 개인사도 파악하고 경기에 나설 정도다 보니, 팀 동료들의 성향 정도는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해서 래쉬포드에 대한 대응책을 생각했다.
 그 결과, 래쉬포드는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왼쪽 풀백의 도움을 받지 못하다 보니, 래쉬포드 혼자만의 힘으로는 상황을 해결하기 힘들었다.
 ‘최대한 1 대 1 상황이 없도록 만들어야 해.’
 강산도 본인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풀백으로 뛰기엔 스피드가 많이 느리기에, 애초에 래쉬포드와 스피드 경쟁을 붙지 않으려고 했다.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강산은 패스의 길목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전반전을 보냈다. 래쉬포드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수비 위치 선정이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감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완벽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플레이였다.
 그리고 후반전.
 무릎이 드디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드리안의 도움으로 무릎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이스가 떨어지는 시기가 평소보다 늦게 찾아왔다. 보통은 후반 70분 전후로 급격히 떨어지는데, 적어도 그 정도로 악화되진 않았다.
 ‘아직은 충분히 뛸 수 있어. 내 몸 상태가 허락하는 한, 최대한 뚫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자.’
 일주일.
 이 기간에 강산은 네스타의 경험을 통해 태클 위주로 연습했다. 그러나 일부러 태클을 사용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작위적인 상황은 실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뚫렸을 경우에 태클을 성공시켜야만, 지난 노력들이 효과가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강산은 후반전에도 래쉬포드의 패스를 미리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반전과는 다르게 1군 선수들이 볼을 계속 래쉬포드에게 연결했고, 1 대 1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처음 몇 번은 래쉬포드의 패턴을 읽고 드리블을 막았지만, 강산으로서도 항상 수비에 성공할 수는 없었다.
 툭!
 ‘가랑이?!’
 다리 사이로 빠지는 공이 보였다. 순간 옆으로 돌아가는 래쉬포드의 모습에, 강산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이미 앞서 나가있는 래쉬포드의 뒷모습. 그러나 네스타의 경험은 태클의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할 수 있다.’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빠르게 따라붙더니, 그대로 잔디에 몸을 날렸다.
 촤아아악.
 탁!
 발등에 볼이 닿았다. 다리와는 전혀 접촉이 없었고, 강산은 공을 회수하더니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분노에 찬 래쉬포드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강산의 시선은 이미 전방을 빠르게 훑었다. 442 전술에서 수비수들의 역할은 단순히 수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습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되는 다이렉트 패스는, 라인을 올린 상대 팀에게 위협적으로 먹힌다.
 ‘연합 팀의 공격수 제임스 윌슨은 주력이 상당히 빨라. 그렇다면·········.’
 터엉-!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을 강하게 때렸다. 그러자 멀리 날아간 공이 정확히 제임스 윌슨에게로 연결되었다. 연합 팀의 다른 수비수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패스 능력이었다. 수비수이기 전에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던 강산은 퀄리티가 다른 패스를 구사했다.
 그러나 공격은 실패하고 말았다. 맨유의 수호신(守護神) 데 헤아가 엄청난 선방 능력을 보이며, 회심의 역습을 막아낸 것이다.
 “나이스 패스.”
 “역시 베테랑은 달라.”
 팀의 소속 가릴 거 없이 선수들이 강산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정도로 강산의 태클과 다이렉트 패스는 대단했다. 강산은 경기 중에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편이나, 지금은 그들의 칭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단 한 번의 태클 성공이었지만, 그건 강산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먹힌다.’
 예전 같았으면 강산은 래쉬포드에게 뚫렸을 것이다. 그런 실수들이 있었기에, 사무엘의 방출 결정을 사람들이 납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조금이나마 회복되고 있는 무릎은 더 빨리 달릴 힘을 주었고, 태클은 본인이 보기에도 정말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갔다.
 “칫.”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래쉬포드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보통 태클을 당한 선수는 반칙이 아니냐고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기 마련인데, 그가 보기에도 이번 태클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드리안의 예상대로였다.
 단순히 경험의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었지만, 강산의 축구 센스는 그것을 무섭도록 완벽하게 발휘했다.
 ‘겨우 일주일이지만 나는 발전했어.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내 축구 인생은 이대로 끝나지 않아.’
 아무래도 오늘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남들은 기억하지 못할 비공식 연습 경기에서, 그렇게 강산은 부활의 신호탄을 터트렸다.
 경기는 끝났다.
 스코어는 5대0, 1군 팀의 대승. 당연한 결과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래쉬포드만 웃을 수 없었다.
 후반전은 그야말로 강산과 래쉬포드의 불꽃 튀는 대결이었다. 1군 멤버들이 작심을 하고 래쉬포드의 기를 살려주려고 했으나, 강산에 의해 완벽하게 박살나고 말았다. 그래도 1 대 1 돌파를 시도하지 않았을 때는 자신감이라도 있었지만, 막상 태클에 막히고부터는 답이 없었다.
 처참한 패배.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맨체스터의 천재는, 그렇게 시즌 시작 전에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다.
 “흠······.”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강산의 모습에, 맨유의 수석 코치 루이 파리아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상해. 저번 시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어.’
 강산의 약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전반전이 끝났을 때 일부러 강산의 방향을 공략하라고 지시했다. 래쉬포드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력이라면 당연히 점수를 획득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현실은 루이 파리아가 당황할 정도로 완벽하게 막혔다. 만약 이게 실제 경기였다면 래쉬포드는 진즉에 교체를 당했을 것이고, 평점도 5점 이상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태클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 저 정도의 태클 능력을 유지한다면, 강산은 EPL에서 충분히 먹혀.’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정말 좋았다. 강산이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솔직히 EPL만이 아니라 전 세계 리그를 통틀어도 이렇게 매력적인 백업 멤버는 없다.
 사실 그도 마이클 케인과 마찬가지로 강산의 방출을 반대했던 입장이다. 아무리 후안 파블로라는 강력한 카드가 생겼다고는 하나, 강산은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활용도가 높다. 어제만 하더라도 감독의 선택을 납득하려 했으나, 오늘 강산의 경기력을 확인하니 아쉬움이 컸다.
 ‘문제는 감독의 의견이 너무 확고해.’
 사무엘은 강산의 방출을 개편의 상징적인 의미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이, 애매한 자원들을 처리하지 못한 지난 감독들의 잘못이라고 여론을 몰았다. 그리고 대대적인 개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스쿼드를 구축한다면, 충분히 우승 경쟁이 있다고 말한 상황이다. 그의 선택이 틀렸다고 해도, 지금에 와서 결정을 무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 이미 강산의 방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니 말이야.’
 은퇴했던 폴 스콜스(Paul Scholes)를 다시 복귀시켰던 일을 떠올리면 축구판에서 불가능한 일이란 없지만, 이번 경우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 은퇴는 명예로운 퇴장이나, 방출은 선수에게 있어 좋지 않은 기억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말하는 것은 강산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코치로서의 본능이 강산을 보내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했지만, 감독이 아닌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다른 구단에서라도 잘 되길 기원하는 수밖에······.’
 결국, 강산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강산의 이탈은 아쉬운 일이나, 그렇다고 맨체스터가 몰락하진 않을 것이다. 화려한 네임드를 가진 선수들을 영입하며 탄탄한 스쿼드를 구축한 상황. 구단 내부에서는 이번 시즌의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 시각.
 다른 장소에서는 강산의 이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 이적 협상
 
 
 강산의 방출 소식이 알려진 이후, 지난 며칠간 많은 구단들이 관심을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이러한 상황이 강산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관심의 전제는 강산이 자유 계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입함에 있어 이적료가 단 한 푼도 발생하지 않는 데다가 방출을 당한 상황이다 보니 주급의 삭감이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EPL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선수를 저렴하게 영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상위 구단이라 불리는 클럽들은 일단 강산의 의중이라도 알아보려고 했다.
 훌륭한 백업 멤버.
 상위 구단들이 원하는 강산의 역할은 맨유 때와 다르지 않았다. 시즌에 10경기밖에 치르지 못하더라도 벤치에서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선수. 혹시 주전의 부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포지션이든 대체할 수 있는 만능의 능력. 백업 멤버로서 강산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사실 하위 구단들에게도 빅 클럽 출신인 강산이 매력적인 자원이기는 하나, 오히려 그들은 영입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강산의 주급이 8만 파운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주급을 깎는다 하더라도 4만 파운드(5,800만 원) 선에서 결정될 확률이 높다. 그 정도의 주급은 하위 구단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만약 붙박이 1군 멤버로서의 활약이 가능하다면 대대적인 투자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강산의 무릎이 많은 경기를 치를 만큼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강산은 백업에 최적화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상위 구단들이야 백업 멤버에 4만 파운드 이상의 자금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지만, 1군을 원하는 구단들은 강산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상위 구단 중 협상 테이블에 앉을 자격을 부여받은 구단은 바로 맨체스터 시티(Manchester City)였다. 이번 영입의 전권을 맡은 영입 담당 마루엘 모레노는 음료로 목을 축이며 상대를 기다렸다.
 “강산 선수가 이번 제안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하십니까?”
 같이 따라온 직원의 질문이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모레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맨유의 출신을 시티로 데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제프 과르디올라(Josep Guardiola)가 그를 원해. 맨유에서 버림받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기회치고는 상당히 호사스럽지 않아? 이건 그쪽이 우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야.”
 “하긴, 그렇겠네요.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셀로나에서 역사를 이루어낸 명감독이잖아요.”
 맨체스터 시티는 이번에 세계적인 명장 과르디올라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중동의 부호 만수르로 유명한 클럽이니만큼, 그들은 과르디올라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1군 선수들의 영입은 모두 마친 상황이나, 강산이 FA 시장에 나오자 과르디올라는 보드진에게 강산의 영입을 요구했다. 다른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백업의 역할이겠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강산의 전술적인 이해도를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만들어졌다. 맨체스터 시티는 완벽한 스쿼드 구축을 위해 강산의 영입을 바랐다.
 “그런데 강산의 에이전트가 누구지?”
 “제 기억에는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한 5년 전만 해도 있었으나, 맨유와 계약을 연장하면서 불필요한 줄다리기가 싫다고 계약을 해지했을 겁니다. 만약 새로 에이전트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본인이 직접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래?”
 모레노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에이전트는 쉽게 말해 장사꾼이다. 선수를 대신해 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인데, 에이전트가 없다면 이번 협상 테이블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노 라이올라(Mino Raiola) 같은 에이전트가 붙어 있었다면, 협상 경험이 많은 모레노조차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이다.
 ‘원래는 6만 파운드에 계약하려고 했지만,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잘하면 4만 파운드에 합의를 볼 수 있겠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부터는 계약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 시간이 되자 한 사내가 장소에 도착했다. 금발을 뒤로 넘긴 20대 후반의 미남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멋진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강산 선수의 에이전트인 아드리안이라고 합니다.”
 아드리안.
 사람들에게 생소한 그 이름이 에이전트 업계에 족적을 찍는 순간이었다.
 아드리안을 확인한 모레노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애송이를 에이전트로 고용하다니. 차라리 모델이 더 어울려 보이는데?’
 확실히 아드리안의 외형은 에이전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는 상당히 선명했고 몸매에 딱 달라붙는 정장은 그야말로 예술적이었다. 만약 모레노가 연예계 쪽에 종사하는 인물이었다면 아드리안을 보자마자 군침을 흘리며 영입을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아드리안은 에이전트 업계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름.
 개인적인 친분으로 고용한 것 같다는 생각에, 모레노는 일말의 경계심마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단도직입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님은 강산 선수의 전술적인 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술의 천재라 불리는 과르디올라 감독님의 능력이라면, 그 어떠한 감독들보다 강산 선수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계약 조건의 경우에는······.”
 대화는 일방적으로 모레노가 주도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제안이 일생일대의 기회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 새끼가 약을 파네.’
 아드리안은 전혀 현혹되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 에이전트의 경험은 없으나, 축구에 관심을 가진지 무려 백 년이 넘어간다. 모레노가 아무리 많은 협상을 진행한들, 아드리안이 보고 들은 것은 그에 몇 배가 된다. 그렇기에 모레노가 떠들어대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 조건은 일단 이렇습니다.”
 길게 이어진 모레노의 말이 끝났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1년 계약에 1년 연장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급은 4만 파운드. 어차피 백업 멤버로 사용할 거면서, 10경기 출장마다 보너스 지급이라는 얄팍한 수작으로 계약을 뻥튀기시켰다.
  ‘양심이 아주 출타를 했어. 라이벌 구단에서 오퍼를 넣어 놓고 4만 파운드에 강산을 낚아채려 하다니. 그리고 말이 연장 조항이 포함된 계약이지, 1년씩 간을 보다가 폼이 떨어지면 버린다는 거잖아.’
  속이 훤히 보였다.
  사실 아드리안은 이번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맨체스터 시티의 상황을 슬쩍 살폈다. 그들이 아무리 철통 보안을 한다고 한들 신이 확인하겠다는데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 결과, 생각보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강산을 강하게 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들이 선심을 쓰는 양 말하는 모레노의 모양새에 아드리안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내가 있는 한 이따위 계약은 씨알도 안 먹히지.’
 “다른 건 다 필요 없습니다. 최소 20경기 출전을 보장해준다면 이번 계약을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모레노의 눈이 커졌다.
 최소 경기 보장 조항이라니. 그건 강산을 원하는 이유와 상충하는 부분이다. 강산은 백업 멤버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강제로 1군으로 기용할 만큼은 아니다. 이미 거액을 들여 1군 라인업을 완성한 상황이 아니던가. 예상치 못한 조건에 모레노는 당황한 감정을 감추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강산 선수를 백업의 역할로서 원합니다. 그렇기에······.”
 “그럼 이번 협상은 이만 끝내겠습니다.”
 “예??”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드리안의 모습에 모레노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도 당황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사실 경기 출전 보장은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한 사실을 아드리안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걸 거절한다고 협상을 결렬하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출전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신 주급과 같은 다른 부분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이 맞다.
 “아니, 이런 식으로 계약을 결렬시키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4만 파운드를 그럴듯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1년 계약이면, 단물만 쪽쪽 빨아먹다가 언제든지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까?”
 아드리안이 비아냥거렸다.
 강산의 열렬한 팬으로서, 자신의 스타를 이용해 먹으려는 모레노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맨시티와 계약할 생각도 없었어.’
 사실 이번 협상 테이블은 보여주기식의 액션이었다. 뼛속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인 아드리안은 아무리 복수를 위한다고 한들 강산을 맨시티로 보내고 싶진 않았다. 만약 맨시티가 타당한 계약을 제시했다면 마음이 흔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강산을 만만히 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아드리안은 이미 강산이 입단할 만한 구단을 정한 상태다. 그럼에도 맨시티와의 협상을 진행했던 이유는 언론 플레이를 진행할 만한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강산이 맨시티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정도의 스토리가 있다면 강산이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
 한마디로 맨시티를 이용해 먹은 것이다.
 예상대로 맨시티와의 협상은 결렬되었고, 아드리안은 이제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진행할 것이다.
 이름하야 강산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만약 지금 맨시티와 같은 구단에 입단한다면, 우승한다 하더라도 결국 들러리로 보일 뿐이다. 그러한 상황은 맨유 때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아드리안은 최대한 평가가 박한 구단에 강산을 입단시킬 생각이었다. 충분히 저력이 있으면서 강산이 활약하면 주목받을 수 있는 클럽. 구단의 영웅이 될 강산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벌써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개멋있겠다.’
 그야말로 열성 팬의 자세였다. 인간 세상에 개입한 이상, 그는 강산을 위해 뭐든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협상은 결렬되었다. 너무도 황당한 상황에 모레노는 몰래카메라인 줄 알고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지만, 아드리안은 그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아드리안이 에이전트 업계에서 무명일지라도, 강산만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의 정보력은 그 어떤 에이전트보다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아드리안은 ‘강산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구단과 만남을 가졌다.
 
 * * *
 
 아드리안의 프로젝트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1. 강산을 대우할 수 있을 만큼의 자금력
 2. 전술적인 능력이 있으며, 강산을 신뢰하는 감독
 3. 강산이 구단의 주인공으로서 두드러질 수 있으면서도 리그 내에서 경쟁력이 있는 팀의 구성
 4. 마지막으로 우승을 간절하게 원하는 구단의 상황
 
 사실상 1부 리그에서는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구단이 없다. 그나마 수비 라인에서 약점을 보이는 리버풀이 가장 이상적이나, 그들은 노스웨스트 더비(North West Derby)라 불리는 맨유의 라이벌이다. 시티로의 이적만큼이나 탐탁지 않은 데에다가, 아무리 수비 자원이 필요한 리버풀이라 할지라도 1군 멤버를 원하지 언제 부상으로 이탈할지 모르는 폭탄은 부담이 매우 크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한 구단을 정했다.
 아드리안이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정보력에 따르면, 이들만큼이나 강산에게 적합한 구단은 없었다.
 “강산 선수를 왜 원하는지, 앞으로의 비전은 어떠한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이번 협상 테이블에는 감독이 직접 나왔다. 잉글랜드 챔피언쉽 레딩(Reading)의 감독이며, 전설적인 수비수로 유명한 야프 스탐(Jaap Stam)이 열정에 타오르는 눈빛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2008년부터 3년간 맨유에서 스카우터 생활을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선수들을 경험했지만, 제가 진심으로 인정한 선수는 단 한 명뿐입니다. 강산, 그는 정말 차원이 다른 선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산 선수를 단순히 백업 멤버라고 평가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가 바로 맨유의 핵심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는 현역 때의 저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일명 말네스카.
 전설적인 포백 라인으로 불리는 라인업에서 야프 스탐은 ‘스’에 해당되는 선수였다. 강산이 태클 능력을 배웠었던 네스타도 이 라인업에 포함되는데, 그만큼 야프 스탐은 현역 당시 최고의 수비수라고 불렸다.
 최근에 레딩은 지분의 51%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의 억만장자 안톤 징가레비치(Anton Zingarevich)가 대대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그 시작으로 야프 스탐을 감독으로 선임했고, 야프 스탐이 원하는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강산이 FA 시장에 나오자 야프 스탐은 안달이 났다. 자신이 진심으로 인정하는 선수이니만큼, 어떻게든 강산을 영입하고자 이번 자리를 만들었다.
 “1부 리그, 그것도 맨유에서 뛰던 선수가 2부 리그를 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레딩을 선택하신다면, 저는 강산 선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무릎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경기를 내보낼 것이며, 주급 또한 맞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딩은 지금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심에 강산 선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야프 스탐의 음성에는 간절함이 보였다. 아드리안이 확인한 결과, 그 속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짜식, 귀엽긴.’
 대머리에 인상이 험악한 야프 스탐은 귀여움과 다소 거리가 멀지만, 강산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에 야프 스탐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열성 팬들끼리의 유대감이랄까. 사실 레딩을 택하는 데는 야스 스탐의 비중도 컸다.
 ‘나는 제2의 레스터 시티(Leicester City)를 만들고 싶어. 레딩은 그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해.’
 지난 시즌 레스터 시티는 언더독의 반란을 보이며 당당하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당시, 레스터 시티의 이야기는 동화 같았다. 공장에서 일하며 축구를 했었던 하부 리그 출신 공격수 제이미 바디, 프랑스 2부 리그 출신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미드필더 은골로 캉테와 이적료가 한화로 약 9억밖에 되지 않았던 리야드 마레즈. 그리고 B급 명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Claudio Ranieri)까지 그야말로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반란은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그때의 모습이 아드리안에겐 인상 깊게 남았다.
 ‘강산은 현재 무릎을 회복하는 기간이야. EPL에서 무리하게 1군으로 기용된다면, 분명 부진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2부 리그에서 회복의 기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선택이야. 다만, 2부 리그에서의 인생 역전이 극적으로 표현된다면 정말 멋있겠지.’
 노쇠한 베테랑 선수.
 구단에서 버림을 받은 그가 레딩을 승격시키고 EPL 정상을 차지한다면, 그 스토리는 레스터 이상으로 화제가 될 것이다. 당연히 스포트라이트는 강산에게 집중돼야만 한다. 우승을 위해서는 다른 멤버들의 보강도 필요하겠지만, 레스터 우승 당시에도 결국 주인공은 제이미 바디이지 않았는가.
 스토리를 가진 선수.
 그가 팀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펼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레딩이라는 구단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강산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러시아 구단주의 지원으로 자금력을 갖추었고, 아드리안이 판단하기에 전술적인 능력도 있으며 강산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감독의 존재와 강산이 주인공으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마지막으로 레딩은 1871년에 창단된 오랜 역사와는 달리 단 한 번도 우승한 경험이 없다. 2006년에 기록한 EPL 8위의 성적이 최고였을 정도로, 레딩은 극단적으로 빈곤한 역사를 지닌 클럽이다.
 그런데 그들이 파란을 일으킨다면, 레딩의 팬들은 아주 난리가 날 것이다.
 기적을 일으킨 강산을 찬양할 것이며, 그런 강산의 행보에 맨유의 팬들은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처음에만 해도 2부 리그행을 강산의 몰락이라고 표현하겠지만, 레딩이 승승장구한다면 여론은 금방 바뀔 것이다.
 ‘아아,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네.’
 이와 관해서는 이미 강산과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1년간 2부 리그에서 폼을 회복하고, 내년에 1부 리그를 점령하자고 말이다. 그 이상의 계획은 말하지 않았다. 왜 레딩을 택했으며, 강산을 어떻게 영웅으로 만들지에 대한 세부 계획은 강산은 모르고 있는 아드리안의 망상이었다.
 그야말로 빠순이 못지않은 팬심이었다.
 초조하게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야프 스탐의 모습에 아드리안은 활짝 웃었다.
 “합시다, 계약.”
 며칠 뒤, 강산의 이적 소식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베테랑 강산(32)이 레딩과의 이적에 합의했다. EPL의 상위 구단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특히 맨체스터 시티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으나 강산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레딩을 선택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지 팬들은 강산이 구단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EPL 구단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편······.]
 
 강산의 2부 리그행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결정이었다. EPL의 상위 구단들이 모두 영입 전쟁에 가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EPL 내의 이적을 예상했었다. 그런데 과거의 영광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레딩을 택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에 사람들은 비난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퇴물이네. EPL 하위 구단도 아니고 2부 리그라니.]
 [쪽팔리다, 쪽팔려.]
 [어떻게 그 많은 구단들 중에서 레딩을 택할 수가 있지? EPL 상위 구단들이 강산을 원한다는 기사는 다 언론 플레이였나. 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2부 리그로 자진해서 가겠어?]
 [한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던 선수가 어쩌다 이렇게 됐냐.]
 [내가 예상하건데, 강산 2부 리그에서도 쩔쩔매다가 내년에 은퇴한다. 그 무릎으로 뭘 하겠어.]
 
 사람들의 반응은 신랄했다. 다들 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강산의 선수 생활이 이제 끝났다고 단정 지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강산의 이적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맨체스터의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일부의 팬들은 비난의 여론 속에서도 강산을 응원했다.
 
 [맨유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내린 결정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굳이 라이벌 구단으로 이적하면서까지 EPL 생활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지.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주제프 과르디올라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진짜 이 정도의 충성심이면 박지석에 이어 맨유 엠버서더(ambassador)로 임명하자.]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금방 묻혔다. 실제로 강산은 구단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맨시티를 택하지 않았지만, 악플러들에게 중요한 것은 레딩으로 이적했다는 사실뿐이었다. 강산과 관련된 기사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으로 가득했고,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실패한 이적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 반응 보니까 어때? 모두 네가 실패할 거라고 말하는 이 상황에서, 다시 재기할 자신 있어?”
 아드리안이었다.
 핸드폰으로 여론을 확인하는 강산의 모습에, 아드리안은 걱정되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물었다.
 보통의 선수라면 멘탈이 부서질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강산을 믿었다. 강산이 얼마나 단단하고 의지가 강한 선수인지를 알기에, 괜히 상황이 불안하다고 해서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다. 만약 강산을 믿지 못할 것이었다면, 이런 계획은 구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 자신 있습니다.”
 강산의 반응은 덤덤했다.
 2부 리그로 가자는 의견을 받아들였을 때, 애초에 이런 신랄한 비난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원래 프로의 세계란 그렇다. 선수가 어떤 노력을 했던 간에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내 현실이기도 하지.’
 강산은 연습 경기에서 자신의 장단점을 확인했다. 확실히 아직 1부 리그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의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딱 1년.
 1년만 지나면, 사람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이 프리미어 리그에.”
 강산이 활짝 웃었다.
 그렇게 ‘2부 리그의 황소개구리’라고 불리게 될 강산의 레딩행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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