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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뽑기로 강해진 SSS급 헌터 [E](종료230807)

뽑기로 강해진 SSS급 헌터 1권 (1)

2019.05.14 조회 9,409 추천 40


 # 프롤로그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볼법한 상상들.
 ‘아 진짜 내일 시험문제지 어디서 안 떨어지나.’
 혹은 그렇게 망친 시험을 채점하고 난 뒤.
 ‘하···. 지금 기억 그대로 가지고 시험 치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와 같은 소소한 상상부터
 ‘꿈에서 조상님이 로또 번호 한번 불러주셨으면···.’
 ‘과거로 돌아가면 월드컵 독일 브라질전 7:1에 전 재산 올인이다.’
 ‘주식 대박 칠 종목 누가 제발 알려 줘.’
 부자 되는 상상도 한번 해보고
 ‘군납 비리는 내란죄로 다스려야 한다. 생계형 비리는 지랄이 생계형인가.’
 ‘친일파 후손 놈들은 털끝만 한 양심이 남아있다면 재산 독립운동가 후손분께 기부해라!’
 ‘이딴 법이 통과된다고? 하 저놈들 또 기업 돈 받아 처먹었네.’
 ‘성폭행범은 제발 물리적 거세하자.’
 ‘무고한 사람 성폭행했다고 거짓 고소하는 인간들 제발 가중 처벌 좀 해라. 무죄 추정의 법칙은 어따 팔아먹고···.’
 범죄자들의 빼도 박도 못한 증거가 내 손에 있다면!!
 정의구현 하는 상상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상상에서 그칠 뿐이다.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래를 알 수 없으며 숨겨진 진실을 꿰뚫어 볼 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이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면?
 
 이 이야기는 정보와 소통할 수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 어웨이커
 
 
 전날 너무 과음한 탓일까. 정도는 부대끼는 속을 참으며 길드에 출근했다.
 “으어. 죽겠다 진짜.”
 도대체 이놈의 영업직은 허구한 날 술이란 말인가.
 ‘자기가 좀 갑이다 싶은 것들은 술 접대 못 받으면 죽는 병이라도 걸리는 걸까?’
 정도는 투덜거리면서 문을 열어젖혔다.
 “출근했습니다. 좋은 아침입···.”
 “얀마! 진정도!”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정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정도의 눈에 거구의 사내가 보였다.
 삼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 옷 위로 봐도 근육으로 꽉꽉 채웠을 듯한 몸매. 짧게 쳐서 시원해 보이는 헤어스타일의 남자.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아···. 대표님. 무슨 일이신데요?”
 “이 짜식이, 많이 컸다? 대표님이 부르는데 한숨부터 쉬냐?”
 껄껄 웃으며 다가온 대표라 불린 사내는 다짜고짜 정도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크하핫! 수고했다 진정도! 오늘 아침 정 시커(seeker)한테 연락 왔다. 이번에 찾은 던전은 우리랑 거래하겠단다. 네 공이 컸다.”
 시커(seeker)
 대격변 이후 전문적으로 던전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워낙 달려서 길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많은 시커들과의 인맥은 필수 중의 필수다.
 “악! 알겠으니까 이것 좀 풀어줘요! 저 아직 술 덜 깨서 어지럽···웁!”
 “그래서 오늘 두 시간 늦게 출근하라고 했잖아. 오바질은···.”
 헤드락에서 풀려난 정도는 대표를 노려봤지만, 그는 그저 껄껄 웃어넘길 뿐이었다.
 “아무튼. 거래가 이루어졌다니 다행이네요. 원정 날짜는 잡혔습니까?”
 “일주일 뒤”
 “생각보다 빠르네요?”
 “다들 몸이 달은 거지. 알다시피 던전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그런데 니가 떡하니 하나 물어왔잖냐. 가뭄에 단비 같은 말로도 표현이 안 돼. 자 다들 고생한 진 팀장한테 박수라도 한번 쳐줘.”
 사무실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좋은 길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대부분 유쾌하고 사람 좋은 길드원들.
 그리고 그 길드원들을 이끌어가는 믿음직하고 리더쉽 있는 대표.
 정도 스스로 생각해봐도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영업직 나부랭이지.”
 앞서 언급했듯이 정도의 길드는 ‘대부분’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전부’가 아니라.
 훈훈한 분위기가 단숨에 식었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아 뭘 봐요? 내가 틀린 말 했나? 어차피 피 터지게 싸우는 건 우리 전투조지. 시팔”
 “야! 조학래! 말조심 안 하냐!”
 결국 대표가 제지에 나섰다. 그러나 조학래는 대표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대표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영업직 그거 술 좀 처마시면서 이빨이나 털면 되는 건데 뭘 그렇게 빨아줘요?”
 “인마. 길드가 사냥으로만 굴러가냐? 행정팀은 행정팀대로 일이 있는 거고 그게 다 유기적으로 맞아야 길드가 잘···”
 “아이고 꼰대질은 됐습니다. 그래, 제가 죽일 새끼네요. 진정도 씨 미안하게 됐수다. 내가 못 배워 처먹어서 그래. 에이 십팔.”
 조학래는 그렇게 말하고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야! 조학래! 어디 가? 좀 있다가 원정 브리핑할 건데.”
 “단련실에 단련하러 갑니다! 왜요? 아까는 할 일이 따로 있다면서요? 원정 준비는 할 일 잘하시는 행정팀이 하시고 저는 저 잘하는 쌈질이나 하러 가겠슴다.”
 쾅!
 큰소리로 문이 닫히고 사무실엔 적막감이 돌았다.
 대표가 미안한 얼굴로 정도에게 말했다.
 “하···. 저 어린놈의 새끼가 진짜. 실력만 없었더라도 바로 모가진데. 정도야. 미안하다.”
 “대표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죠. 조대장이 저러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요. 전 면역됐습니다.”
 정도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세상은 변했다.
 2022년 2월 22일. 세상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던전이 생겼고.
 마나 사용자들이 각성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던전에서 구해오는 마나석은 완벽한 대체 에너지로서 혁명을 일으켰다.
 과거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덕분에 일각에선 인간의 상상이 대격변의 원인이라는 학설도 있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강대국의 척도는 얼마나 강력한 마나 사용자를 보유했는가로 나누어졌고
 세계의 자본시장은 마나석의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였다.
 당연하게도 무수히 사람들이 자신도 마나 사용자가 되길 원했고.
 그건 정도도 마찬가지였다.
 길드 내 사무실.
 정도와 대표는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표님? 이번 거래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니 약속하셨던 인센티브 주셔야죠?”
 “아 짜식이. 둘만 있을 땐 편하게 형이라 부르라니까.”
 “돈 받을 때까지 공적인 자리입니다. 대표님.”
 정도의 너스레에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크크. 하여튼 돈 귀신 아니랄까 봐. 옜다.”
 대표가 품에서 봉투 하나를 정도에게 던졌다.
 “어이쿠 형님. 감사합니다. 보자 0이 하나, 둘···. 와 진짜로 천만 원 주셨네요?”
 “인마. 내가 언제 돈 가지고 허언하는 거 봤냐? 천만 원 준다고 했으면 주는 거지. 사내새끼가···.”
 “뭐 엄청 본 거 같지만, 오늘은 넘어가죠. 기분 끝내주니까.”
 정도가 이 길드에 들어온 지 햇수로 3년.
 그동안 수많은 시커들을 만나며 영업하고 거절당하기도 했지만, 성공적으로 거래를 이끌어낸 적도 적지 않다. 대박 건에 한해서는 천만 원 이상의 인센티브도 받아 보았다.
 그러나 정도는 지금 받은 이 1천만 원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가슴 벅찬 돈이었다.
 희희낙락하는 정도에게 대표가 물었다.
 “오늘로 딱 다 모았지? 어웨이커(awaker) 비용 3억 원.”
 “와. 형님 무슨 스토커에요? 뭔 부하직원 통장 잔고까지 꿰고 있어요?”
 “나 말고 다른 애들도 다 알걸? 서른도 더 먹은 놈이 회식 때 취해서 ‘나도 조금 있으면 마나 사용자다!’라고 동네방네 소리 지르는 그 꼬라지를 꼭 촬영해서 남겼어야 했는데.”
 “······.”
 그랬나? 정도의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지금 마나 사용자가 되는 판에 그깟 흑역사가 문젭니까. 열 번도 더 할 수 있는데.”
 “···길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니까 하지 마라.”
 어웨이커(awaker)
 일반인을 마나 사용자로 만들어줌과 동시에 그 사람의 타고난 적성. 이른바 탤런트라고 불리는 요소를 측정해 주는 마도구다.
 물론 어웨이커의 도움 없이도 마나 사용자로 각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초의 마나 사용자들은 전부 그렇게 각성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방식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된 수련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그리고 반드시 각성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렇기에 이 방식으로 각성한 마나 사용자들을 존경의 의미를 담아 ‘리얼라이즈’라고 불렀다.
 그러나 어웨이커.
 각성 성공률 100%
 사용 비용을 제외하면 사용자는 그 어떤 준비도 노력도 필요 없다.
 부작용 또한 전무.
 동양 쪽의 일부 무예인들은 어웨이커에 의한 각성은 가짜라고 비난하며 수련을 통한 각성만이 진짜라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두 각성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게 통설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장치.
 더구나 과정도 매우 간단했다.
 그냥 장치 안에 들어가면 잠시 뒤 각성이 완료되고 모니터에 각성자의 정보가 표시되는 형식이었다.
 어웨이커가 개발된 지 5년.
 지금에 와선 거의 모든 마나 사용자들이 어웨이커로 각성을 한다.
 정도 또한 어웨이커를 사용할 예정이다.
 “아무리 물가가 예전보다 올랐다지만 3억은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어쩔 수 없지요. 어웨이커가 마나석 잡아먹는 괴물이라니···뭐 거기다 세금도 엄청 포함된 금액이겠죠.”
 정도 자신도 만약 대격변 전에 모아둔 돈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꾸었으리라.
 어웨이커 자체가 워낙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보니 사용제한이 빡빡했다. 전 세계에 딱 99대 밖에 없었고, 사용료도 무시무시하다. 더구나 신용조회를 통해 100원이라도 빚이 존재하면 역시 사용할 수 없었다.
 많은 흙수저들이 인생 최후의 복권이라는 심정으로 3억을 대출이나 빚으로 만든 뒤 어웨이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원찮은 결과물에 그대로 한강 물로 뛰어드는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기 때문에 생긴 조치였다.
 “그래서 언제 갈 거야?”
 “원정 날짜 잡혔으니 당분간 일은 없겠네요. 저는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데··· 어때요?”
 한국 내에 존재하는 어웨이커는 두 대였다. 각각 서울과 부산에 있었다.
 정도의 길드는 수원에 있으므로 어웨이커까지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신입 마나 사용자의 탄생.
 길드 내의 큰 이벤트다. 당연히 대표는 물론이고 길드원 대부분도 따라나설 게 뻔했다.
 “좋아. 당장 애들 모은다. 영원히 안 올 줄 알았는데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너 때문에 서윤이가 각성 계속 미룬 거 알지? 요즘 세상에 사수보다 먼저 각성할 수 없다고 미루는 애가 어딨냐? 서윤이한테 잘해라.”
 “제가 걔랑 알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이미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해주고 있는데요, 뭘. 걔 부모님은 절 거의 가족으로 생각한다고요.”
 윤서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대격변이 일어났고, 정도와 서윤은 그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대격변 전 정도는 프로게이머였다. 리그 탑 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1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상위권 선수였고. 서윤은 정도의 팬 미팅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정도는 22세 윤서윤 12세.
 꼬맹이가 오빠오빠 하면서 쫓아오는 게 귀여워서 친절하게 대해 줬었다. 저러다 사춘기 오면 좋아하는 남자애도 생기고 팬질도 말겠지 했지만 웬걸. 그 독한 꼬맹이는 10년째 자신의 팬이었다. 대격변 이후 게임 시장이 몰락해서 은퇴를 했는데도 말이다.
 “하···. 서윤이는 대체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잘 해주는 거지?”
 “형님.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저 왕년에는 잘 나갔···.”
 “새꺄. 현역 때 mvp 한 번 못 받아 본 놈이 잘나가긴 개뿔이. 서윤이 혹시 그거 아니냐? 홍대 병인가? 인디 병인가 하는 그거.”
 “뭔 죄 없는 애를 병자로 만듭니까.”
 정도는 투덜대면서 서윤을 떠올렸다.
 게임계에서 은퇴한 정도는 조금이라도 마나 사용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길드의 영업직으로 취직했다. 서윤에게는 비밀로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자신의 길드로 취직했다. 그것도 영업직 부사수로.
 정도가 목숨 걸고 자기 PR을 해가며 겨우겨우 입사에 성공한 것에 비해, 그녀는 면접개시 1분 만에 채용이 확정되었다.
 이유?
 심플했다. 그녀는 정말 압도적인 미모의 소유자였으니까.
 당시 면접관들이 다 얼어붙고 저 우락부락한 덩치의 대표가 질문 하나 던져보지 못하고 합격을 선언한 건 이미 길드의 전설이다.
 남성 시커(seeker) 한정이었지만, 그녀의 실적은 우수한 편이다. 거기다 길드의 막내이면서 모나지 않은 성격과 이쁜 외모. 단연 길드 최고의 아이돌이었고 남성 길드원은 정도를 부러워했다.
 ‘혹은 부러움을 넘어서 증오를 받기도 하고 말이야.’
 조학래.
 그가 정도만 보면 시비를 거는 이유가 바로 서윤 때문이었다.
 ‘지가 까인 게 왜 내 탓이냐? 지가 못난 탓이지.’
 정도는 재수 없는 얼굴을 떠올리자 좋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될 것 같아 얼른 대표를 재촉해서 서울로 떠났다.
 
 * * *
 
 정도와 길드원들은 서울에 위치한 ‘한국사용자협회’ 본사에 도착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1년도 더 넘은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한 대표를 필두로 길드원이 전원 안으로 들어갔다.
 본사 건물 안은 굉장히 넓었고 단출했다.
 거대한 기계장치와 그 기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큰 모니터. 그 모니터에 사용자의 정보가 나타난다. 정도와 길드원들은 등록 절차를 밟고 건물 내부를 구경했다.
 “오 저것 봐, 지금 막 한 명 끝났나 보다.”
 한 길드원의 말에 전원의 시선이 모니터에 꽂혔다.
 
 <띠링!>
 
 이름 : 최재원
 보유 마나 : 11
 탤런트 수 : 4
 대표 탤런트 : <경계>
 
 “탤런트 4개라···너무 적은데.”
 “<경계>는 단독으로 써먹기 힘든 탤런트인데. 나머지 3개 중에 보조할만한 것이 있으려나.”
 “보유 마나도 적어.”
 “전투조로 써먹기 힘들겠는걸.”
 “꽝이야 꽝.”
 잔혹한 평가가 이어졌다.
 마나 사용자로 각성한다고 해서 모두 던전에서 활약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웨이커가 복권에 비유되는 게 이런 이유였다. 탤런트의 수가 많고 전투에 활용 가능하면 당첨, 아니면 꽝이다. 꽝을 뽑은 마나 사용자들은 그저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뿐이라 전투조로 활동하기가 보통은 무리다.
 “다음 윤서윤 씨 들어오세요.”
 진행자가 서윤을 불렀다.
 “오빠 저 먼저 할게요. 같이 받으려고 기다려줬으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거죠?”
 허리까지 길게 기른 생머리의 여성이 예쁘게 웃으며 정도에게 말을 건넸다.
 “야. 길드에선 팀장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뭐 어때요. 지금 길드도 아니고 밖인데.”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다 있잖···.”
 그때였다.
 “서윤 씨!”
 갑작스레 조학래가 정도의 말을 잘라먹었다.
 “서윤 씨는 무조건 초대박 터질 겁니다. 그런 느낌이 딱 와요. 아시다시피 제가 최전선에서 칼밥 먹던 놈이라 그런 아우라 같은 걸 느낀단 말이죠. 틀림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윤은 무표정으로 쌀쌀맞게 대답했지만 학래는 굴하지 않았다.
 절대 정도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떠들어대는 통에 결국 서윤은 정도에게 눈인사만 하고 어웨이커로 들어갔다.
 “와 씨. 미치겠다 진짜 떨려.”
 “니가 판정받냐? 왜 이렇게 오바질이야.”
 “야 정 없는 새끼야. 지금 우리 서윤이가 들어갔는데 안 떨리게 생겼냐.”
 길드원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결과를 지켜봤다. 결과는 잠시 뒤 바로 모니터에 등장했다.
 
 <띠링!>
 
 이름 : 윤서윤
 보유 마나 : 27
 탤런트 수 : 11
 대표 탤런트 : <성녀>
 
 “······.”
 장내가 침묵에 휩싸였다. 허나 그것은 폭풍 전의 고요함이었고 이내 폭발적인 반응이 터졌다.
 “미친! 저게 뭐야!”
 “탤런트 11개?! 한국 최고기록이 13갠데!”
 “와 시작 마나는 또 27이네. 3년 차 베테랑도 30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런 반응은 비단 정도의 길드 사람만의 반응이 아니었다. 협회에 항시 대기하고 있던 스카우트의 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대표님. 특급 루키 떴습니다!”
 “탤런트 개수도 개수지만, 대표 탤런트가 <성녀>에요! 프랑스의 ‘메시아’ 그녀와 똑같은 탤런트입니다!”
 “근 1년, 아니 3년 내로 최고 유망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거 무조건 우리 길드로 영입해야 합니다!”
 “이미 길드에 소속되어 있긴 한데···지금 매너 비매너 따질 그럴 급이 아니라고요! 무조건 데려와야 해요! 차기 아크 프리스트 라니까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치이이이잉
 어웨이커가 열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고 정도와 길드원들은 그 사람들을 막는데 젖 먹던 힘까지 쏟았다.
 “에헤이. 저희 길드 소속입니다. 상도덕 없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 바닥에 이러는 거 소문나면 타격 커요. 알만한 분들이 왜들 이러실까.”
 대표가 직접 나서서 바닥까지 들먹이자,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저스티스 길드의 최철윤 대표네.”
 “끙··· 신생 길드는 아니었군.”
 건물 내 사람들이 아쉬운 눈길로 서윤을 계속 쳐다봤지만, 감히 접근하지는 못했다.
 정도가 서윤에게 말을 건넸다.
 “축하한다. 완전 잭 팟 터졌네.”
 “흐아아···.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진짜 역대급으로 터졌어. 너 앞으로 엄청 주목받을 테니 얼른 적응해야···”
 “서윤 씨!”
 정도의 말을 잘라먹고 들어오는 사내.
 이번에도 역시나 조학래였다.
 “거 봐. 내 말대로 초대박 터진다니까. 우리 서윤 씨는 얼굴도 이쁜데 능력도 출중하니 장차 누가 데려갈지···.”
 ‘한 대 칠까?’
 대 놓고 두 번이나 말을 잘라먹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정도는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자기가 때려봤자 기스 하나 안 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조학래가 성격은 개차반이었지만, 전투력은 자타공인 길드내 최강이었다.
 “짜식들아. 좀 진정해. 아직 우리 길드 한 명 더 남았잖아. 축하는 그 뒤에 해도 돼”
 최철윤이 주의를 환기하고 나서야 길드원들의 관심이 정도에게로 쏠렸고 진행자가 정도를 불렀다.
 “진정도 씨 들어오세요.”
 오빠. 오빠는 저보다 더 좋게 뜨실 거예요. 느낌이 와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비꼬는 말로 들렸겠지만, 서윤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요. 그래. 진 팀장도 아주 자알 뜰 겁니다. 아무렴. 자기 일 잘 하시는 분인데.”
 ‘조학래 이 새끼는 비꼬는 게 확실하고 말이야.’
 정도는 짜증을 삼키며 어웨이커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후우···.”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분기점이라 확신했다.
 정도는 요동치는 심장 소리를 느끼면서 어워에커 안으로 들어갔다.
 
 * * *
 
 치이이이이잉
 어웨이커의 문이 열리고.
 정도는 마른 침을 삼키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웨이커의 안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룬 문자나 마법진 같은 게 빼곡하게 새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벽 한쪽에 커다란 모니터가 걸려 있다는 것만 빼고는 평범한 방이었다.
 ‘아니 특이한 게 하나 더 있긴 하네.’
 방의 정중앙.
 테이블 위에 커다란 수정구가 놓여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건가?’
 오딘의 눈.
 마나 사용자들의 각성 경험담에 꼭 언급되는 녀석이었다.
 혹자는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말하고.
 혹자는 세상에 다시없을 황홀함을 느꼈다 했고.
 혹자는 너무 불쾌해서 구토했다는 물건.
 정도가 호기심에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수정구로 걸음을 옮겼을 때
 <어웨이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도 님.>
 안내인의 깨끗한 목소리가 어웨이커 안에 울려 퍼졌다.
 <각성에 소요되는 시간은 약 10분입니다. 이용자의 건강 상태나 보유 탤런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해주세요.>
 꿀꺽.
 드디어 10분 뒤면 마나 사용자가 된다.
 <그럼 몸에 힘을 빼시고 눈앞의 수정구에 양 손바닥을 밀착시켜주세요.>
 <스캔을 시작합니다. 눈을 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용자에 따라 각성 후 어지럼증,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좋은 결과가 있으시길.>
 안내멘트 종료와 동시에 정도는 수정구에서 어떠한 ‘기운’이 양 손바닥을 통해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과연···. 이게 마나구나.’
 경험담에 수정구에서 마나가 방출되어 몸을 탐색한다고 했다.
 마나가 움직이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만약, 몸속의 피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손바닥에서 팔을 통해 뇌로,
 뇌에서 척수를 타고 심장으로,
 마나는 마치 자신의 집인 것 마냥 정도의 몸을 휘돌아다녔다. 그러나 전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원함과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다.’
 대부분의 경험담에서 마나의 침투과정 묘사는 비슷비슷하다. 황홀하다느니 토할 것 같다느니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건 마나가 몸에서 빠져나간 직후였다.
 마침 몸 안에 돌아다니던 마나는 단전을 마지막으로 다시 양팔을 통해서 수정구로 돌아갔다.
 ‘온다!’
 정도는 긴장하며 자신을 덮칠 감각에 대비했다.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변하는 건 없었다.
 ‘뭐야?’
 정도가 의문을 느끼고 감았던 눈을 뜰 찰나.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진정도 사용자님.>
 ‘벌써?’
 체감상 5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어느새 안내인이 부르는 호칭은 이용자에서 사용자로 바뀌어 있었다.
 <스캔 내용을 모니터에 표시하겠습니다. 외부 모니터에는 사용자 정보 보호법에 의거하여 마나량과 대표 탤런트 1개, 그리고 탤런트의 수만 표시됩니다.>
 그 말에 정도는 얼른 고개를 들어 벽 쪽의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름 : 진정도
 보유 마나 : 7
 근력 : 15 체력 : 17 반사 신경 : 27 마나 감응도 : 13
 탤런트 : <소통>, <게임>, <인내>
 
 “······.”
 믿고 싶지 않은 결과였다.
 세부 스탯은 둘째 치더라도 보유 마나량 7과 총 탤런트 수가 3이란 건 절망적인 수치였다.
 그야말로 꽝 중의 꽝.
 “말도 안 돼···.”
 정도가 절망하든 말든 안내인은 계속해서 방송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사용자님의 정보와 탤런트를 기반으로 하여 시뮬레이션한 추천 전투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수정구를 봐주세요.>
 어웨이커가 제공하는 또 하나의 특별한 서비스. 마치 대전게임 캐릭터의 콤보영상처럼 사용자의 추천 전투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다.
 정보를 알려주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해준다.
 그렇기에 오딘의 눈이라 불렸다.
 그러나,
 정도가 눈이 뚫어져라 수정구를 쳐다봐도 영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안내원님?”
 <네 진정도 사용자님. 말씀해 주세요.>
 “수정구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요?”
 <아···.>
 안내원의 말 중 처음으로 목소리에 감정이 깃들었다. 물론 전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동정의 기색을 띠고 있었으니까.
 <간혹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수정구에 추천 전투 영상이 보이지 않으시는 분들은···>
 정도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었으나.
 <어웨이커가 도저히 추천해 줄 전투 방법이 없는 사용자들입니다. 아마 전투조로 활동하시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희망의 끝은 참담하기만 할 뿐이었다.
 
 * * *
 
 어릴 적 정도의 집은 만화방을 운영했다.
 또래 친구들이 어울려서 놀 때 정도는 만화에 파묻혀 살았다. 친구들과 노는 거보다도 만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더 정도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축구 만화를 읽은 날엔
 축구공을 들고 나가 회오리 슛을 하루 종일 연습하고.
 배틀 만화를 읽은 날엔
 기를 모으겠다고 양반다리로 앉아 눈을 감고 버티다 쥐가 나보기도 하고.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게 어린 정도의 꿈이었다.
 어린이의 중2병은 세월이 치료해주기 마련이지만 정도의 경우는 조금 오래갔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친구도 없이 만화책,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별명은 오타쿠 확정. 대놓고 왕따까진 아니더라도 정도는 반에서 겉돌았다.
 그때 처음으로 접한 게 게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정도는 게임에 무시무시한 재능이 있었다.
 다른 애들이 쩔쩔매는 무빙이 정도의 손에서는 쉽게 펼쳐졌고.
 당시 유행하는 게임에서 최고 티어를 찍었다.
 존재감 없이 책만 읽던 정도는 그 날부터 반의 영웅이 되었다. 게임 좀 가르쳐 달라는 친구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웃긴 이야기였지만 게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오타쿠가 영웅이 된 것이다.
 ‘게임이라면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정도는 미친 듯이 게임에 빠져들었다. 정도의 재능은 고등학교 따위가 아니라 전국에서도 충분히 통했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프로에 데뷔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프로 1군 무대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최고는 될 수 없었다. 1년, 2년이 지날 때마다 기량은 하락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간 최고가 되길 꿈꾸면서.
 그때
 세상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현실이 게임보다 더 게임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게임 영상 따위보다 던전 공략 영상이 비교도 못 할 정도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게임 시장이 몰락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정도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꺼웠다.
 던전과 몬스터. 검술과 마법. 마나와 마나 사용자.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보다 마나 사용자가 더 주목받는 시대.
 그야말로 만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정도는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그 꿈이 박살 났다.
 
 * * *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웨이커에서 걸어 나왔다.
 서윤 때랑은 다르게 정도에게 다가오는 인원은 같은 길드원뿐이었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정도가 오늘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기에 다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도는 웃었다.
 “에이, 다들 왜 이렇게 표정이 우울해요? 누가 보면 초상 치른 줄 알겠네요.”
 “진 팀장···.”
 “전 괜찮습니다. 뭐 각성 꽝 같은 거야 흔한 일이잖아요? 전투조로 활약 못 한다고 인생 망한 것도 아니고요.”
 길드원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 느껴졌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라 정도는 생각했다.
 물론,
 “이야. 우리 진 팀장. 보통 영업 사원이 아니셨네? 내가 사용자 5년 차지만 소통이라는 탤런트는 또 처음 보네. 누가 영업직 아니랄까 봐.”
 아닌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조학래는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번에 영업직 나부랭이라고 한 말, 백배사죄 드리겠습니다. 무려 소통 탤런트를 가진 영업왕이신데 제가 몰라보고···큭큭”
 “조학래! 입조심 안 하냐?”
 “아 대표님. 또 그러신다. 또 나만 개새끼 만드시네.”
 “······.”
 영업직으로 구르면서 수많은 진상을 만났고 갑질도 많이 당했다. 도저히 맞춰줄 수 없는 억지 요구에도 웃었다.
 참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자신의 탤런트에도 <인내>가 있지 않았던가?
 오늘 짓는 억지 미소가 미래의 꿈을 이루어줄 거라 믿었기에.
 그러니까 웃었다.
 그러나, 박살 난 꿈이 비웃음당하는데도 웃어야 하는가?
 잘 참는다 하였지만, 정도도 인간이다.
 남들이 울상 짓는 상황에서 딱 한 번 정도 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조금 잘 참는 인간.
 기껏해야 딱 그 정도.
 결국 정도는 터졌다.
 “야··· 이 개새···.”
 정도가 참지 못하고 조학래에게 달려들던 그때.
 “실례합니다. 진정도 님 윤서윤 님 계십니까?”
 협회의 안내인이 찾아왔다.
 “오늘 각성하신 두 분께 마나 사용자 라이센스 발급과 몇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제반 사항에 대한 교육 안내를 시행하고자···제가 방해되었나요?”
 말을 하던 안내인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물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당연히 교육받아야지요. 야, 정도야 서윤아 얼른 가봐라.”
 “그래요 오빠. 대표님 말씀대로 우리 얼른 가요.”
 노골적으로 정도를 말리려고 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 정도의 머리가 빠르게 식었다.
 ‘큰일 날 뻔했군’
 만약 그대로 주먹이라도 날렸다면 정당방위로 자신은 반병신이 됐으리라.
 ‘아마 그걸 노리고 도발한 거겠지.’
 그간 무던하게 웃어넘겼는데 오늘 터지고 말았다.
 “오빠 잘 참으셨어요.”
 안내인 뒤를 따라가면서 서윤이 정도에게 속삭였다.
 “···그래 말려줘서 고맙다.”
 10살이나 어린 여자에게 이런 소릴 듣다니.
 정도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 * *
 
 정도와 서윤은 안내인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럼 마나 라이센스를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안내인은 두 사람에게 시계 같은 물건을 건네주었다.
 “마나 워치 입니다. 아시다시피 사용자의 정보가 담겨 있으며 신분을 증명해주는 수단입니다.”
 길드에서 늘상 보던 것이다. 사용자는 필히 착용해야 하니까.
 "그리고 원래라면 협회에서 한 달 동안 기초교육을 이수하신 뒤 던전출입증을 발급해 드립니다만, 두 분 다 저스티스 길드 소속이시군요. 이 경우 소속 길드에서 대체 교육을 받으시면 됩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정도와 서윤이 길드에서 먹은 짬밥이 얼마인가. 이런 건 전부 꿰고 있었다.
 "길드 소속이신 두 분께는 괜한 질문이긴 하겠군요. 그럼 안내를 마치겠습니다."
 
 정도와 서윤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길드원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두 사람을 배려해 준 것이다.
 정도는 서윤에게 말했다.
 "길드 사람들은 다 갔나 보네. 우리도 이제 퇴근할까? 집에 데려다줘?"
 "···아니요. 괜찮아요.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고 했어요."
 "어? 형님이 여기로 오신데? 그럼 오랜만에 인사라도 드려···"
 "아니요 오빠."
 서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오빠는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요."
 "······."
 괜히 10년을 따라다닌 팬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도가 지금 억지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 배려해줘서 고맙다. 가볼게."
 정도는 서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띠리리링
 그때, 정도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야, 내일 출근 안 해도 되니까 하루 푹 쉬어라. -대표님>
 정도는 피식 웃었다.
 “하여간, 다들 사람만 좋아가지고···.”
 정도는 자신이 탤런트 복은 없어도 사람 복은 있다고 생각하면서 털레털레 걸어갔다.
 어느새 정도는 방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아···일단 자자. 자고 나서 생각하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정도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문을 열자
 “어서 오세요. 진정도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안녕하···엥?”
 분명 빈방이어야 할 그 공간에.
 새하얀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메이드 복의 여성이
 정도를 맞이해 주었다.
 
 
 # 스킬
 
 
 “실례했습니다. 제가 방을 착각 했···을 리가 없잖아. 뭔데요 당신?!”
 정도는 열쇠로 직접 열고 들어왔다. 방을 잘못 들어왔을 리가 없었다.
 ‘도둑?’
 정도는 다시 한번 불법 주거 침입자를 살펴보았다.
 ‘도둑은 절대 아니야.’
 사회가 아무리 팍팍해도 이런 초월적인 외모의 여성이 도둑질로 먹고살아야 할 정도로 세상이 맛이 가진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어떤 미친 인간이 메이드 복을 입고 도둑질을 해?’
 정도가 혼란스러워할 때, 여성이 입을 열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부디 진정해 주세요.”
 “혹시 협회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오늘 각성이 잘못되었다던가?”
 정도가 생각하기엔 가장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각성 때문에 온 것은 맞지만 협회에서 온 것은 아니에요.”
 “그럼 어디서 오셨는데요?”
 메이드 복 여성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저는···‘진짜 우주’에서 왔습니다.”
 여성의 대답은 오히려 정도의 혼란을 가중할 뿐이었다.
 “그러니까···그쪽 분이 제 각성 때문에 ‘진짜 우주’란 곳에서 오셨다?”
 “정확합니다. 역시 <소통 lv.3> 보유자다우신 통찰력이군요.”
 아니, 통찰력이고 뭐고 그냥 말을 정리한 것뿐인데···
 정도는 확신했다. 이 여자 외모와는 다르게 많이 이상하다고. 물론 외모도 정반대 의미로 이상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진짜 우주’는 뭐 하는 곳입니까? 정부의 비밀단체 같은 겁니까?”
 정도도 이 업계에서 제법 굴러먹었지만,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설명이 꽤 길어질 것 같군요. 혹시 홀로그램 우주설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아뇨. 금시초문인데요.”
 “쉽게 설명하면 현재 정도님께서 살고 계신 이 우주는 진짜 우주의 무수한 복사판 중 한 곳입니다. 마치 원본을 투사해서 보여주는 홀로그램처럼 말이죠.”
 과연, 정도는 감탄했다.
 물론 여성의 말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외모에 감탄했다.
 ‘우중충한 아저씨가 이런 헛소릴 진지하게 꺼냈다면 고민 없이 신고부터 했을 텐데···.’
 절세미녀란 단어도 아까울 여성이 하는 헛소리는 그래도 조금만 더 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이었던 것이다.
 “진짜 우주로부터 복사판 우주가 투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억 년입니다. 지금 이곳에 있었던 모든 과거의 일 뿐만 아니라, 1억 년 후 미래의 일까지 진짜 우주에 기록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오케이. 여기까지. 신고하자. 이런 터무니없는 장난에 맞장구쳐줄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정도가 핸드폰을 꺼내 들려는 찰나.
 “중학교 2학년.”
 “응?”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스쾃 100회, 10km 달리기 후 삭발한 경험 있음.”
 툭.
 정도는 핸드폰을 놓치고 입을 딱 벌렸다.
 “중학교 3학년. 우연히 스친 여자아이의 손이 차갑다는 이유만으로 진지하게 ‘너 혹시 뱀파이어니?’라고 말한 적 있음. 으음···이건 아무리 저라고 해도 확 깨는군요.”
 “자···잠깐!”
 “역시 중학교 3학년. 외눈 안대를 하고 손을 붕대로 감은 적 있···”
 “그만!! 믿어! 믿으니까 그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던 흑역사가 생생하게 중계되자 정도는 버티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 * *
 
 “···그래서 진짜 우주에서 저한테 무슨 일로?”
 “태초의 기적을 체현(體現)하신 분께 경의를 담아 선물을 드리러 왔습니다.”
 “그런 거 체현한 기억 없는데요. 뭔가 착각하신 거 아닙니까?”
 오늘 인생 최고의 좌절을 체현하긴 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니요.”
 그러나 여성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정도에게 정중하면서도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진짜 우주의 대행자. 윈리 마키나 라고 합니다.”
 윈리라 소개한 여성은 존경이 담긴 시선으로 정도를 바라보았다.
 “우주의 탄생 이래 두 번째로 <소통-lv.3>를 각성하신 분께 진짜 우주가 무한한 경의를 담아 선물을 드리니 부디 거두어주시길.”
 정도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예? 소통이 그렇게 고평가받을 이유가 있나요?”
 기껏해야 대화를 좀 더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보조적인 기능이 아닌 건가?
 정도의 말에 윈리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으나 이내 표정을 바로 하고 말했다.
 “···태초에 생명이 태어났을 때, 생명체들은 단순했습니다. 기껏해야 자극에 대해 반응을 하거나, 조금 고등한 생물들은 본능대로 움직이곤 했지요. 홀로 생각하며 홀로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다른 곳에 전달한다. 그리고 전달받는다. 함께 행동한다.”
 윈리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정도에게 말했다.
 “최초의 생명체들이 최초로 나눈 소통. 군집이란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충분히 기적이라 할 만합니다.”
 “······.”
 솔직히 말해서 정도는 실감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진짜 우주란 것도 긴가민가하는 판에, 생명의 기원이니 소통의 기원이니 하는 스케일의 이야기를 들이대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나한테 손해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짜로 선물을 준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조건 받아야지.
 “음···네. 이야기는 알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물을 주실 건가요?”
 “스킬을 드리겠습니다.”
 “뭣?!"”
 이번엔 정말로 놀라고 말았다.
 스킬(skill)
 스킬이란 건 정말 획득하기 힘들다. 현재까지 밝혀진 확실한 스킬 획득 조건은 단 두 개.
 하나는 최초의 레벨 업 시.
 나머지 하나는 던전에서 매우 드문 확률로 발견되는 스킬 스톤(skill stone).
 그 외 획득경로는 아직 세계 협회에서도 연구 중이었다.
 스킬 스톤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희소성 있는 몇몇 스킬은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런 걸 그냥 준다고 하니 정도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스킬 스톤을 주시는 건가요?”
 “아니요. 직접 스킬을 주입해 드리겠습니다. 탤런트 개수에 맞게 3개. 그리고 모든 탤런트의 특성을 하나로 합친 통합스킬까지. 총 4개의 스킬을 드리겠습니다.”
 “직접 주입이라니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를···”
 그렇게 말한 윈리는 정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탤런트 <소통-lv.3>, <게임-lv.2>, <인내-lv.1> 확인되었습니다. 탤런트에 적합한 스킬 판정 중···”
 “잠깐만요. 탤런트 레벨은 또 뭡니까?”
 정도가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윈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스킬 <관찰>, <상태창>, <내성> 부여 완료했습니다. 통합 스킬 <정보 뽑기> 부여 완료.”
 그 말을 끝으로 윈리는 지친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후우···전 공정 완료했습니다. 스킬 <상태창>을 발현하시면, 대부분의 정보를 유추하실 거예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태초의 기적을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잠깐만요! 아직 물어볼게 산더미 같은데.”
 정도의 다급한 말에 윈리가 정도를 돌아보았지만.
 “피곤해서요. 죄송.”
 그 말을 끝으로 윈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방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귀신에게 홀린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정도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확인에 들어갔다.
 “···상태창.”
 띠링!
 효과음과 함께 정도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이름 : 진정도
 레벨 : 1
 보유 마나 : 7
 근력 : 15 체력 : 17 반사 신경 : 27 마나 감응도 : 15
 탤런트 : <소통-lv.3>, <게임-lv.2>, <인내-lv.1>
 보유 스킬 : <정보 뽑기>, <관찰>, <상태창>, <내성>
 
 “허. 진짜 되네.”
 정말 놀랍게도 그 허황된 말들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상태창에는 마나 워치로도 열람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나타났다. 탤런트 레벨이 표시되는 사소한 차이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마나 워치랑 똑같았다.
 그러나 정도는 실망하지 않았다.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거···실시간으로 반영된다!’
 어웨이커로 측정했던 수치보다 마나 감응도가 2 상승했다는 게 명백한 증거.
 마나 워치에 표시되는 사용자 정보는 던전을 돌 때마다 주기적으로 어웨이커에서 갱신해야 한다. 갱신 전에는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던전 공략 중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새로운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는 것.
 어마어마한 메리트임이 분명했다.
 정도는 재차 다른 스킬을 확인했다.
 “관찰과 내성이라···뻔하네.”
 요즘은 뜸하지만 학창시절 정도는 만화, 소설을 달고 살았다. 관찰, 내성 같은 건 안 봐도 비디오.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 건.
 “정보 뽑기···.”
 세 가지 탤런트의 특징을 모두 가진 통합 스킬. 정도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고,
 
 <하루에 한 번 최초의 정보 뽑기는 마나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이거 설마.”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다. 정확히는 비슷한 문구를 많이 봤다.
 “뽑기 잣망겜?”
 <게임> 탤런트가 영향을 준 게 확실했다.
 정도의 눈앞에 황금색의 동그란 캡슐이 나타났고 캡슐이 깨지는 이펙트와 함께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레어 정보 획득!>
 <2031년 4월 두 번째 주. 로또 당첨 번호는 1, 11, 17, 26, 37, 39 보너스 번호 23 입니다.>
 
 “···. 어?”
 정도는 다급히 핸드폰의 날짜를 확인했다.
 2030년 4월 13일.
 “이런 미친···.”
 미쳤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미래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윈리가 말한 ‘진짜 우주’에 기록된 정보들. 정도에게 그 정보들과 소통하는 스킬이 생겨난 것이었다.
 정도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근데 이게 <인내>랑 무슨 상관이지?’
 <소통>과 <게임>과 관련 있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인내>는?
 “뭐 일단. 뽑기나 더 해보자.”
 그런 사소한 일보다 눈앞의 뽑기가 더 급했다. 정도는 곧장 마나를 투입했다.
 그렇게 총 6번의 뽑기 후.
 정도는 왜 <인내>가 포함되어 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 * *
 
 “하 망겜 수준.”
 6번의 뽑기의 결과는 기가 막혔다.
 
 <옆집 고양이가 임신했습니다.>
 <102년 30일 22시간 17초 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폭우가 시작됩니다.>
 <또 다른 차원의 윈리는 메이드 입니다.>
 <금호 아파트 318호의 여성은 현재 불륜 중입니다.>
 <17일 뒤. 집 앞 편의점 라면 코너에 100원이 떨어져 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은···>
 
 쓸모없는 정보가 쏟아졌다.
 “후···”
 ‘뽑기 잣망겜일 때 예상했어야 했는데.’
 이래서 <인내>가 필요했단 말인가.
 정도가 정보를 뽑으면서 알아낸 것은 두 가지였다.
 뽑기 한 번에 마나가 1 소모 된다는 점.
 정보 수준에 따라서 캡슐 모양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황금 캡슐 뒤 6번의 뽑기는 전부 평범한 캡슐이었다.
 마나는 24시간에 걸쳐서 딱 자기가 가진 총 마나량 만큼 회복된다.
 총 마나량이 10인 사람은 24시간 동안 10이 회복. 100인 사람은 24시간 동안 100이 회복된다.
 사용자의 총 마나량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오냐···그래 내 마나 다 처먹어라.”
 이제 정도에게 남은 마나는 딱 1.
 정도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나를 투입했고
 띠링!
 
 <슈퍼 레어 정보 획득!>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영롱한 캡슐.
 정도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 보물 던전
 
 
 정도는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다이아 캡슐을 노려봤다.
 
 <슈퍼 레어 정보 획득!>
 <2030년 4월 14일. 05시 07분. 관악산 부근에 던전이 생성됩니다. 던전 명칭 : 보물 두더지 소굴. 정확한 위치 좌표는 (639,251)>
 
 게임을 할 때나 드물게 느껴보던 감정.
 최상위 레어 획득의 쾌감!
 0과 1로 이루어진 그래픽 쪼가리를 뽑고도 소리를 지르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진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의외로 정도는 덤덤하게 핸드폰으로 날짜를 또 한 번 확인할 뿐이었다.
 2030년 4월 13일.
 “내일이네···.”
 현재 시간 오후 7시. 대략 10시간이 남았다.
 정도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조금 뒤. 다시 한번 날짜를 확인했다. 그리고 또 한 번. 또 한 번 더.
 전혀 덤덤하지 못했다!
 ‘역대 던전 거래 최저가는 10억.’
 아주 수준 낮은 던전이거나 반대로 너무 수준이 높아서 공략할 엄두가 나지 않는 던전은 거래가가 낮았다.
 그래도 10억.
 적당한 난이도와 적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던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수백억에 거래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보물 두더지의 소굴’이 어떤 난이도의 던전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정도는 최소 10억이 보장되는 복권을 손에 쥔 것이다.
 “오늘 잠은 다 잤네.”
 던전 시커(seeker)들이 찾아내기 전에 먼저 선점해야 한다.
 등산 장비와, 발견한 던전을 은닉하기 위한 각종 엄폐물들 그리고 비상시를 위한 용품과 식량까지 준비해야 했다. 10시간은 절대 길지 않았다.
 ‘근데 보물 두더지의 소굴이라···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정도는 몇 분간 생각에 잠겼지만 떠오를 듯 말 듯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일단 준비부터.”
 지친 몸을 채 쉬지도 못한 채 근처 대형마트로 걸음을 옮겼다.
 
 * * *
 
 새벽 2시.
 정도는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후우···. 무겁네.”
 정도는 등에서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간략하게 챙긴다고 챙겼지만 부피가 상당했다.
 “여기까지 온 건 좋은데···.”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가야 하지?
 정도는 일단 상태창을 불러서 획득한 정보를 로드(load) 했다.
 
 <정보함(8/999)>
 
 정보함은 정도가 정보 뽑기를 사용하고 난 뒤 상태창에 새롭게 나타난 카테고리였다.
 마치 컴퓨터의 문서 프로그램처럼 뽑기로 획득한 정보를 저장하고 삭제하거나 불러올 수 있었다.
 
 <·····정확한 위치 좌표는 (639,251)>
 
 ‘그러니까 그 좌표를 어떻게 읽냐고요···.’
 군대에서 배운 독도법 따위 전혀 쓸모없었다.
 639, 251
 적어도 현대에서 이런 식으로 위치를 나타내진 않으니까.
 “암호인가?”
 639걸음 간 뒤에 다시 251걸음?
 아니다. 사람의 보폭이란 건 일정하지 않다. 거기다 어디를 기준점으로 걷는다 말인가.
 “아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좌표는 무슨 좌표···어?”
 게임?
 그렇다. 자신의 스킬들은 탤런트 <게임>의 영향을 받았다. <상태창>도 <정보 뽑기>도.
 그렇다면 이 좌표도 게임적으로 접근해보면?
 결론은 금방 나왔다.
 ‘게임 맵 좌표처럼 나타낸 거구나!’
 오픈 월드 rpg 온라인 게임들이 맵 위치를 표시할 때 많이 쓰는 방법이었다.
 물론 그 게임형식 좌표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았지만, 정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좌표만으로 길 찾기는 어렵다.
 당연히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게임회사 측은 답을 내놓았다. 아주 간단하게.
 정도는 주저 없이 정보창의 좌표를 터치했다.
 띠링!
 
 <네비게이션 안내. 시작합니다.>
 
 네비게이션 창은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화살표가 주욱 늘어져서 목적지를 알려줬다.
 “<게임> 만세!”
 정도는 묵직한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화살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여기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공간이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주 깊은 곳. 유이한 광원(光源)은 하늘의 달빛과 정도 손에 쥐어진 손전등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부터 네비게이션은 등산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지형은 점점 험난해졌고 좁은 시야와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경로를 우회하다 보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현재 시각 04 : 57분
 “딱 10분 남았나.”
 그래도 시간보다는 먼저 도착했다. 정도는 배낭에서 에너지 바를 꺼내 한입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만약 던전이 적정한 수준이면 우리 길드에 우선적으로 팔아야겠지.’
 혼자서 던전을 독식하는 선택지는 선택할 수 없었다. 정확히는 하고 싶어도 못했다.
 ‘지금 내 수준으로 던전 들어가는 건 그냥 자살이다.’
 능력치는 그냥 잘 단련된 일반인 수준. 마나량은 하급. 탤런트도 스킬도 전투에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다.
 적정가에 길드에 넘기고 길드원들에게 쩔이나 받으면서 성장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이리라. 길드도 거래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해할 테고.
 “왔다.”
 시간이 되었다.
 지-지직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정도의 눈앞 허공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던전의 생성.
 업계에서 제법 구른 정도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던전이 생성되고 난 직후부터 던전은 마나를 뿜어낸다.
 던전 시커란 탤런트나 스킬을 통해서 이 마나를 다른 사용자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말했다.
 처음에는 미약하게 새어 나오던 마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많이 새어 나오게 되고.
 생성된 지 제법 시간이 흐른 던전은 일반 사용자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뿜어낸다.
 마치 사용자들을 유혹하는 듯한 이 현상을 사람들은 ‘던전 페로몬’이라 불렀다.
 정도는 생성된 던전 앞에 섰다. 물론 던전 시커가 아니었기 때문에 새어 나오는 마나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대신 정도의 손에는 하나의 기계 장치가 들려있었다.
 던전 애널라이즈(Dungeon analyse).
 던전의 정보를 간략하게나마 분석해 주는 마도구다.
 앞서 던전이 마나를 뿜어내 사용자들을 유혹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던전이 마나를 뿜어내는 건 사용자들을 유혹하기 위함이 아니라.
 던전이 터진다는 신호였다.
 던전 브레이크 현상.
 던전이 생성되고 30일까지 공략되지 않고 방치된 던전은 터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터진 던전에서는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류와 몬스터 그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던전에서 새어 나오는 마나는 바로 그 몬스터들의 마나다.
 던전 애널라이즈는 이 마나를 분석해서 던전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당연히 던전으로 영업을 하는 정도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자 그래서 넌 얼마짜리 던전이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억짜리면 소원이 없겠다.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애널라이즈 화면을 쳐다봤다.
 “···엥?”
 
 인원 제한 : Unknown
 난이도 : Unknown
 던전 유형 : Unknown
 
 “이게 뭐야···.”
 단연코 이런 결과는 처음이었다. 무엇하나도 알 수 없는 던전이라니?
 ‘아니, 이거 어디서···아!’
 모든 정보가 알 수 없음으로 나타나는 던전.
 그리고 ‘보물 두더지 소굴’이라는 명칭.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맨 처음 던전 이름을 들었을 때의 기묘한 기시감.
 정도는 자신이 떠올린 추측에 경악했다.
 ‘보물 던전이다!’
 대격변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보물 던전은 단 2개.
 영국의 ‘보물 용의 둥지’
 중국의 ‘보물 판다의 죽림(竹林)’
 일반적으로 던전에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공략하면 곧바로 사라지는 게 던전이니까. 이름을 붙여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사라진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남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첫째, 던전 브레이크로 인류사에 기록될 어마어마한 재앙을 남겼을 때.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전설 아이템이 발견된 던전일 경우!’
 영국의 엑스칼리버(Excalibur).
 중국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사용자들의 무기였다.
 정도는 마른침을 삼켰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지. 골드 캡슐이 로또였는데.’
 로또 당첨도 충분히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노릴 수 있다. 그런데 다이아 캡슐에서 나온 정보가 골드 캡슐에서 나온 정보의 가치와 같다? 말이 되지 않았다.
 ‘확실하다. 보물 던전이야.’
 정도는 던전을 팔겠다는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내가 먹는다!’
 일반 던전이라면 꿈도 못 꿨겠지만 보물 던전이라면 정도도 가망이 있었다.
 보물의 주인들이 밝힌 던전은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두 가지 있었다.
 던전 내에 몬스터가 없다.
 던전의 시험을 통과하면 전설의 무구를 얻을 수 있다.
 ‘몬스터만 없다면 나도 가능하다.’
 아니, 어떤 시련이 있을지는 몰라도 <관찰> 스킬을 보유한 자신이 오히려 더 유리하지 않을까?
 정도는 던전의 앞에 섰다.
 “후우···.”
 던전에 들어가기 직전, 아주 잠시 망설임이 들었다.
 ‘만에 하나 보물 던전이 아니라 일반 던전이라면···.’
 그대로 저승행 확정.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그러나 정도는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A 포카드 손에 쥐고 로티플 무섭다고 죽는 병신이 어디 있어?’
 올인(all-in)이다.
 정도는 던전 입구에 마나를 넣었고.
 관악산에서 더는 정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 * *
 
 정도는 자신이 던전에 들어왔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사방을 경계했다.
 ‘일단은···위험해 보이는 건 없군.’
 던전이란 곳을 처음 와 본 인간이 판단하는 것도 웃기지만, 적어도 정도가 보기엔 그랬다.
 “후우···”
 던전 안은 높이가 낮은 석굴이었다. 180cm에 살짝 모자라는 정도였지만 토굴의 천장에 머리카락이 스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폭은 좁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다행인 점은 던전이 외길 구조라는 것이었다.
 정도의 눈앞에는 쭉 뻗은 단 하나의 길.
 길의 양쪽 벽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횃불이 걸려 있어서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이쪽 길로 어서 오라는 듯.
 아주 노골적인 모양새였다.
 “······.”
 정도의 던전 탐색 지식은 기초적인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다 탐색 스킬도 전무한 상황. 오히려 이렇게 나와 주는 쪽이 훨씬 좋았다.
 ‘함정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설령 함정이라 하더라도 정도는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던전에 들어온 이상 뒤는 없어.’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단은 통상적으로 던전의 클리어 외엔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흥.”
 정도는 마음을 다잡고 길을 따라 걸어갔다.
 
 * * *
 
 얼마나 걸었을까?
 정도는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9시 30분.
 표시되는 ‘통화권 이탈’ 신호가 자신이 던전 안에 들어왔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 줬다.
 ‘5시 10분쯤 들어왔으니 네 시간보다 좀 더 걸었군.’
 그럼에도 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그거지?’
 사실 한 시간 전쯤 시간을 확인했을 때도 혹시나? 하면서도 계속 걸었다.
 그리고 한 시간 지난 지금.
 정도는 확신했다.
 “환영(幻影).”
 또는 인식 저해 마법이 가미된 미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에서 어떻게 이런 술수를 부리는지 감도 안 잡혔지만, 던전이란 게 원래 그랬다.
 현대의 상식이나 물리 법칙 따위 던전에서 얼마든지 깨지기 마련이다.
 정도는 지금부터 환영을 가정하고 행동 지침을 세웠다.
 “일단 표식부터.”
 정도는 배낭에서 유성 매직을 꺼내 들고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의미 없는 낙서를 하나 커다랗게 그렸다.
 “이 정도면 오케이.”
 표식 남기기.
 미로형 던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방침이다.
 정도는 유성 매직을 집어넣은 뒤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빙고.”
 정도는 벽으로 천천히 다가가 낙서를 확인했다. 분명, 자신이 벽에다 그린 낙서가 확실했다.
 ‘직선 길에서 같은 곳을 계속 돌고 있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정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가 사용자가 되기 위해 쌓아온 지식은 튼튼한 뿌리가 되어 정도를 정답으로 인도했다.
 ‘직선 길이 아니라 원형 길이다!’
 앞서 추측했듯이 인식 저해 마법 같은 수단으로 직선으로 보이고 느끼게 했을 터.
 판단을 마친 정도의 행동은 재빨랐다. 배낭에서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삼단봉을 꺼내 천장과 벽을 두드리면서 던전을 나아갔다.
 ‘어딘가 숨겨진 통로가 있을 거다.’
 그리고 20분쯤 뒤
 탁! 탁! 탱!
 다른 곳을 두드릴 때랑 명확하게 다른 소리가 던전에 울러퍼졌다. 돌이 아니라 속이 비어있는 얇은 철을 때렸을 때 나는 소리.
 “찾았다.”
 자신의 생각이 멋지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정도는 소리가 난 벽으로 다가가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잠시 뒤
 “···모르겠네.”
 아직 실전 감각이 부족한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장치 같은 건 없는 것인지.
 천장부터 바닥까지 싹 훑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다른 곳과 똑같은 벽으로만 보였다.
 ‘원래라면 여기선 강제로라도 뚫어야겠지만···.’
 정도에게는 그런 무력이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봐야 돌벽에 금이나 갈까?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무력보다 더 쓸 만한 스킬이 있었으니까.
 <관찰>
 탤런트 <소통>에서 파생된 스킬. 대상의 정보를 파악하고 숨겨진 요소를 밝혀주는 스킬이다.
 사실 삼단봉으로 벽이나 천장을 두드리는 것도 불필요한 행위였다. <관찰> 스킬이 숨겨진 통로의 위치도 알려 줬을 테니까.
 그러나 <관찰>은 <상태창>과 다르게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이다. 마나 1이 뽑기 코인 1인 정도에겐 마나는 아낄 수 있으면 최대한 아껴야 했다.
 ‘뭐 그래도 쓸 때는 써야지.’
 정도는 소리가 달랐던 돌벽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던전 내의 석벽입니다.>
 <숨겨진 정보 발견! 얼티밋 일루전(Ultimate illusion)마법이 부여된 석벽입니다. 간파합니다.>
 
 ‘얼티밋 일루전?!’
 매혹계 최상위 마법이다. 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최고위 마법. 고작 ‘간파합니다.’ 다섯 글자로 때우고 넘어갈 만한 마법이 절대 아니었다.
 “<정보 뽑기>만 사기인 게 아니었네.”
 어느새 정도의 눈앞에 있던 석벽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철문이 하나 나타나 있었다.
 “후우···”
 지금부터가 진짜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정도는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철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환영한다. 인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석굴에 울려 퍼졌다.
 “뭐···뭐야?”
 깜짝 놀란 정도가 주위를 살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할 순 없었다.
 “어딜 보는 게야? 아래다!”
 ‘아래?’
 얼른 목소리에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도의 허리보다 조금 더 밑에 한 남자가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몸.
 얼굴의 반을 뒤덮은 수염.
 결정적으로 매우 작은 키까지.
 정도는 자신의 뇌리에 떠오르는 단어를 그대로 말했다.
 “드워프?”
 “오. 과연 얼티밋 일루전을 꿰뚫어 본 눈썰미구먼!”
 ‘···그냥 누가 봐도 드워프잖아.’
 판타지 게임이나 영화를 한 번이라도 접했다면 누구나 다 떠올릴법한 드워프 그 자체였다. 눈썰미 같은 건 눈곱만큼도 관계없었지만 정도는 굳이 생각을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것을 축하하지. 똑똑한 친구. 그럼 날 따라와라.”
 드워프는 자기 할 말만 해 버리고 곧바로 뒤 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
 무작정 따라가도 괜찮은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도는 결국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다른 대안도 없었으니까.
 ‘두더지란 건 드워프를 의미하는 거였나?’
 그렇다면 영국의 용이나 중국의 판다도 다른 이종족을 상징하는 것인가?
 던전에서 엘프, 드워프, 묘족 등의 이종족을 봤다는 소문이 아주 가끔 들려오긴 했지만 도시 전설로 치부했거늘.
 “자. 다 왔다.”
 어느새 정도와 드워프는 멋들어진 문양이 새겨진 작은 문에 도착했다. 물론 드워프 기준으로 봤을 때는 제법 큰 문이겠지만.
 정도를 안내한 드워프는 다짜고짜 문을 열어버리고 외쳤다.
 “데려왔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호응들.
 “어. 왔냐?”
 “그래. 보자. 이번 도전자는···뭐야? 더럽게 약한데?”
 “그래도 일루전 뚫고 온 거 보면 한 수 재간은 있겠지.”
 문 안에는 총 6명의 드워프가 있었다. 정도를 데려온 드워프까지 도합 7명.
 ‘무슨 동화책도 아니고···.’
 정도는 자신을 데려온 드워프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반갑군, 인간. 우리의 보금자리에 온 걸 환영하지. 난 지스라고 한다. 나머지 놈들은···에잉 어차피 시험 뒤에는 더 볼 것도 아닌데 이름 같은 거 알아서 뭐해? 대충 불러.”
 지금까지 정도를 안내해준 드워프가 그렇게 말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지스. 진정도라고 합니다. 근데 시험이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정도는 다 알고 있었지만 확인 차 물어보았다.
 “말 그대로 시험이지. 우리가 너에게 과제를 주고 넌 그걸 클리어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보상을 줄 거고. 어때 쉽지?”
 ‘일단 알려진 정보대로긴 한데···.’
 그러나 이렇게 시험을 받고 통과하면 보상을 준다는 달콤한 얘기가 있을 수 있을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정도로 정도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뭐야? 너 보상 받기 싫으냐?”
 “그런 게 아니라 단순한 궁금증입니다.”
 지스는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정도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대답해 주었다.
 “우리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냐. 그놈의 기아스(geas) 한 번 잘못 맺었다가 코 꿰서···에이 시펄.”
 ‘기아스? 신화에 나오는 그 기아스?’
 막강한 힘을 주는 대신 그 사람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맹약을 말한다. 어길 시에는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강력한 저주.
 “무슨 맹약을 맺었는데요?”
 “말 하고 싶어도 못해. 그것까지 포함해서 기아스니까. 아무튼 넌 시험을 치르면 되는 거야. 싫으면 나가면 된다.”
 “···시험에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 일도 없어. 그냥 보내 줄 거야. 그리고 다른 곳에서 던전을 열겠지.”
 “네? 그게 가능해요?”
 던전에 한 번 들어가면 사용자가 죽던가, 혹은 던전이 클리어되던가.
 무조건 둘 중 하나라고 알던 상식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뭘 그렇게 놀래? 너 이전에 시험치고 실패해서 내보낸 녀석만 네 명인데. 너네 세계에서 아직 우리 소문 안 났어?”
 “···적어도 전 들어본 적 없군요.”
 정도의 말에 지스가 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그쪽 세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팍팍한 곳이구먼. 욕심쟁이들 같으니라고.”
 “······.”
 정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실패하고 쫓겨나더라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을 테니까.
 정보는 곧 힘이고 돈이 되는 시대. 팍팍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의 내용은 뭡니까?”
 “나랑 승부해서 이기면 된다. 간단하지?”
 “승부? 대련 말입니까?”
 정도의 대답에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워프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프흐흐흐! 이 애송이가 지금 뭐라는 거냐? 대련? 너랑, 지스가? 아서라. 1000년은 멀었다.”
 “이세계인은 미개하구먼. 때가 어느 땐데 주먹으로 겨루나?”
 “그러고 보니 전에 들어왔던 놈은 다짜고짜 칼부터 뽑길래 몇 대 만져주니 얌전해졌지. 인사 대신 칼침부터 날리는 게 이세계의 상식인가? 미개하구먼 미개해.”
 “뭐 그 녀석은 원하는 대로 대련으로 승부를 해줬는데 한 합도 못 버티더만. 너무 재미없어서 다음부터는 우리식으로 승부하기로 했지. 너한테도 그게 나을 거다. 미개한 이세계인아.”
 울컥.
 ‘이것들은 거울도 안 보나? 미개 그 자체인 면상들이.’
 정도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몇 대 만져지고 얌전해지기 싫었으니까.
 “그럼 어떤 식으로 승부를 겨룹니까?”
 “승부를 위한 특별한 장치가 있지.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지스는 옆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정도와 나머지 드워프들도 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 들어가는 순간
 “이게 무슨?!”
 정도는 방안의 풍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크흐흐. 놀랐나? 이게 바로 우리 7인의 그랜드 마이스터가 머리를 맞대 발명한 회심의 역작!”
 그 물건은 정말로 이런 곳에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TV.
 그 TV 밑으로 빠져나온 두 개의 전선.
 두 개의 전선과 연결되어 있는 테이블 위의 상자.
 그리고 그 상자랑 다시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조이스틱.
 정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곧 로딩될 테니 잠시 기다려라. 어떠냐? 첨단 문물을 본 소감이?”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진심으로.”
 게임기를 만지작거리는 드워프라니?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꿈에 나올까 봐 두려웠다.
 “좋아. 다 됐군. 어이! 여기 와서 앉아라. 기본적인 조작 방법을 알려줄 테니.”
 지스가 자기 옆의 빈자리를 손으로 팡팡 치며 말했다.
 ‘아무리 내가 전직 프로게이머라곤 해도 처음 해보는 게임으로 이길 확률이 얼마나 될까?’
 드워프들은 게임에 충분히 익숙할 터.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정도는 불평하지 않았다.
 한국인.
 그리고 프로게이머.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게임으로 한 판 붙자고 하는데 빼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저 선민사상에 찌든 난쟁이 놈들을 박살 내고 말리라!
 마음을 다잡고 게임의 타이틀 화면을 쳐다봤을 때, 정도는 다시 한번 경악을 터뜨렸다.
 “헐?”
 “응. 뭐냐.”
 “아닙니다. 어디서 본 것 같아서···.”
 “흥. 그럴 리가 있나. 이 정도 수준의 기술은 전 차원을 뒤져도 몇 개 안 될 텐데.”
 안타깝게도 드워프들은 그 몇 개 안 되는 차원이 정도가 사는 곳이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지스가 조작설명을 시작하자 정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가 이내 묘하게 바뀌었다.
 마치 어이가 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허탈해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
 확실한 건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라는 것.
 “···일단 여기까지 설명인데. 뭐, 몇 판 연습 삼아 해볼 테냐?”
 “아뇨. 괜찮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응? 뭐야? 벌써 포기한 게야?”
 드워프들이 뭐라고 떠들든 정도는 개의치 않았다.
 게임 첫 시작 타이틀 화면. 그리고 이어지는 지스의 설명.
 현대적인 캐릭터들이 판타지화 했다던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거의 똑같았다.
 정도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그 게임.
 레전드 오브 레전드. 통칭 LOL.
 바로 그 게임이었다.
 “뭐, 우리야 기아스를 이행한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네 멋대로 해라.”
 “흥. 이세계인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시작도 전에 포기라니.”
 ‘멋대로 떠들라지.’
 너희가 허접한지 내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드워프들이 어마어마한 고수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자신도 어마어마한 고수. 꿀릴 이유는 없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자 이거 받아.”
 정도가 지스가 던져주는 조이스틱을 받아 쥐었을 때,
 띠링!
 
 <게임을 시작합니다. 탤런트 <게임> 활성화.>
 <게임을 하는 동안 전 능력치가 100% 상승합니다!>
 
 정도는 확신했다.
 지금부터는
 미개한 드워프들을 참교육할 시간이라고.
 
 * * *
 
 게임 닉네임 RightWay
 별명 승부사
 1군 무대 시절 통상승률 61%
 시즌 우승 0회 준우승 2회 시즌 MVP 0회
 프로게이머 시절 정도의 프로필이다.
 타고난 감각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
 게임에 대한 이해도 낮은 편. 캐릭터 간의 상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감과 피지컬로 1군 승률 61%를 달성한 건 대단한 업적이었다.
 ‘뭐 그래도 그게 한계였지만···.’
 LOL은 1 : 1 대전 액션 게임이다.
 일반적인 대전 게임과는 급이 다른 스케일로 유명했다. 캐릭터 수만 200개가 넘어갔으니 자연스럽게 캐릭터 간 상성이란 게 존재했고. 캐릭터 풀이 좁은 정도는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한계를 체감한 정도는 어떻게든 캐릭터 풀을 늘리려고 했지만···
 ‘안 됐지.’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고는 정도의 감이 발휘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역상성을 맞고도 기존 주 캐릭으로 플레이하는 게 승률이 훨씬 높았다.
 한마디로 정도는 전적으로 감에 의존하는 게이머라는 것.
 그리고 게임을 손에 놓은 지 10년에 가까운 세월.
 지스와의 대전에서 감을 되찾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 방.
 정도가 어느 정도 감을 잡는 데까지 지스에게 허용한 타격 횟수였다.
 그 이후는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처음은 정도의 주 캐릭으로.
 두 번째는 지스가 고른 캐릭의 역상성으로.
 세 번째는 정도의 감이 발휘되지 않는 캐릭으로.
 퍼펙트게임의 연속!
 정도는 무자비하게 지스를 두들겨 팼다.
 던전 내 드워프들의 게임방.
 소파에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양팔을 소파 위로 얹은 인간이 1명.
 그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드워프가 1명.
 그 주위에서 입을 닥치게 된 드워프가 6명.
 정도가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결과였다.
 “뭐. 이쯤 하면 된 거 같은데. 계산할거나 하시죠? 드워프들의 보물이라니 기대되네요.”
 “자···잠깐. 한 판만 더! 아니 세 판만!”
 “아시지 않습니까? 더 해봐야 의미 없다는 걸요.”
 정도의 말에 지스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절대적인 실력 차가 있음을 그도 느낀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지스는 느꼈지만, 다른 드워프들은 아니었다.
 “잠깐! 인간. 다음은 우리다.”
 “지스 녀석을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긴!”
 “그 녀석은 우리 7천왕 중 최약체지.”
 구경하던 드워프들이 정도를 몰아세웠지만 정도는 시큰둥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분명 처음 말할 때 시험은 지스를 이기면 된다고 했는데?”
 “그건 그렇지만···”
 “딱히 저한테 메리트도 없는데 이 이상 시간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보물 주시고 보내주세요.”
 정도의 강경한 태도에 드워프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으음···확실히 시험은 지스만 이겨도···.”
 “그러나 이대로 보내기엔 우리의 자존심이···.”
 “지스 때문에 이게 뭐냐.”
 “니들이 붙었어도 똑같아. 새끼들아!”
 드워프들은 곧 결론을 내고 정도에게 말했다.
 “좋다. 인간. 만약 우리에게도 이긴다면 기존에 주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걸 주도록 하지.”
 “예? 보물이 한 개가 아닌 겁니까?”
 “흥. 도마뱀 놈들이나 곰 새끼들도 창고에 짱박혀 있던 거 대충 던져줬다 해서 우리도 그러려고 했지.”
 ‘도마뱀? 곰?’
 정황상 영국의 용과 중국의 판다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종족 간은 던전이 달라도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건가?’
 정도가 의문을 품든 말든 드워프들이 다시 말했다.
 “우리마저 이긴다면 우리들이 직접 너에게 어울리는 걸 만들어 주겠다. 7인의 그랜드 마이스터가 너 한 명을 위해 망치를 들어주지. 어떠냐? 이건 정말 우주 역사를 통틀어 없는···”시큰둥하다 띄어쓰기
 정도는 드워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게임기 앞으로 돌아가서 자기 옆자리를 툭툭 쳤다.
 “뭐 합니까? 안 앉아요?”
 “······.”
 
 * * *
 
 방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이 분위기 어디서 느껴본 거 같···아!’
 정도는 10년도 더 된 기억을 떠올렸다.
 정도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던 시절. 국가 대표로 발탁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팀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 LOL 대회에 참가했다.
 결승 무대에서 만난 한국과 중국.
 당시 중국은 홈그라운드에서 한국을 이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 5 : 0 중국
 한국의 스윕승.
 수만 명을 꽉 채운 경기 홀이 침묵에 빠졌고 한국 선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트로피 수여를 겪었다.
 일명 베이징 도서관 사건.
 “지금 분위기가 딱 그때랑 똑같네.”
 그렇게 말한 정도의 옆에는 드워프 무리가 망연자실해하고 있었다.
 “한 대도 못 때렸다···.”
 “어떻게 그 각도에서 벽콤 연계가···.”
 “이건 거짓말이야···.”
 드워프들이 단체로 패닉을 일으켰지만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겼다는 거고 그에 따른 상품을 수령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제가 미개해서 그만 상대 수준을 생각도 않고 막 해버렸네요. 게임은 원래 같이 즐거워야 하는 건데···어떻게 이번엔 제가 손가락 두 개씩만 쓰고 다시 한번···”
 “그만해. 이 나쁜 새끼야!”
 정도는 드워프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원래 주제로 넘어갔다.
 “끙···좋다. 만들어 주지. 일단 분석부터 해야 하니까 거기 가만히 앉아 있어라.”
 그렇게 말한 지스는 어디선가 고글을 구해 와서 착용한 뒤 정도를 바라보았다.
 "하···능력치 봐라. 무슨 깡다구로 혼자 던전에 들어온 거야? 보유 마나 7? 게다가 탤런트 개수는 또 왜 이리 적···"
 순간 지스의 말이 뚝 하고 끊겼다.
 “지스? 뭔가 잘못됐습니까?”
 “조용히 해봐. 생각 좀 하게.”
 짧은 시간이 지났다. 지스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누군가를 불렀다.
 “어이 미하일! 이리로 와봐. 나 혼자서는 각이 안 잡히는군.”
 게임기를 붙잡고 있던 드워프가 그에 대답했다.
 “왜 그래? 나 지금 특훈해야 하니까. 견적 정도는 그냥 네가 알아서 잡아!”
 “그 견적이 안 잡히니까 그러는 거 아냐. 네가 와서 봐.”
 그 말에 미하일이라 불린 드워프가 구시렁대면서 지스 곁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랜드 마이스터라는 놈이 그거 하나 혼자 못해서···.”
 “시끄럽고. 이거 쓰고 저 녀석 탤런트 한 번 봐.”
 미하일은 지스로부터 고글을 건네받고 착용한 뒤 정도를 쳐다봤다.
 “어디 보자···어? 이 자식 이거 <게임-lv.2>네. 와 이 새끼 핵 썼네. 핵으로 쳐바르니 기분 좋더냐 이 새끼야.”
 “아오 이 멍청한 드워프 놈아. 지 탤런트 지가 쓴다는데 핵은 무슨···그리고 그거 말고 옆에 탤런트 보라고.”
 “옆?”
 지스의 말에 미하일은 다시 정도를 쳐다보았고 곧 지스와 같이 얼굴이 굳었다.
 “<소통>······레벨 3?”
 미하일의 한 마디에 방 안이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뭐? 레벨 3 이라고? 진짜?”
 “드디어 저 고물 고글이 맛탱이가 갔구먼!”
 “근데 <소통>은 또 뭐냐? 누구 아는 놈 있어?”
 ‘뭐지? 이 반응은.’
 정도는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지스에게 물었다.
 “레벨 3이 특별한 겁니까?”
 정도의 물음에 지스는 ‘이게 무슨 개소리냐?’라는 듯한 얼굴로 정도를 쳐다보았다.
 “이건 또 뭔···너네 세계에선 탤런트 레벨 개념이 안 잡혀 있냐?”
 “전 탤런트에 레벨이 있다는 것도 어제 알았습니다.”
 “진짜 미개한 세계가 맞고만.”
 지스는 투덜거리면서 정도에게 물었다.
 “너희 세계에선 탤런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지?”
 “그냥 타고난 재능?”
 “틀린 말은 아니지. ‘아 저 녀석 소질이 있구나.’ ‘역대급 재능이다.’ 이런 건 레벨 2까지로 다 설명이 가능하니까. 그러나 레벨 3부터는 다르다.”
 지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그건 일종의 근원(根源)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예를 들어 <검술-lv.3>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모든 검술의 뿌리라는 이야기다. 전 우주에 퍼져 있는 모든 검술의 근원. ‘진짜 우주’에서 탄생한 오리지널. 한 마디로.”
 지스는 정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레벨 3은 ‘개념을 창조할 수 있는 재능’이다. 만나서 영광이군.”
 “······.”
 “원래라면 너의 그 저질 능력치를 대폭 보정할 만한 걸 만들어 줬겠지만 lv.3는 너무 큰 변수라서 마히일을 부른 거다.”
 “그러고 보니 저분은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정도가 가르킨 곳에서 미하일이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었다.
 “응? 아 저거. 별 건 아니고 그냥 너의 미래를 보고 있는 거다.”
 “···네?”
 뭘 본다고?
 정도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지만 지스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네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그걸 알아야 어울리는 장비를 만들 수 있으니까. 미래는 우리 중에 미하일만 볼 수 있거든. 뭔가 애매할 땐 저 녀석이 최고지.”
 ‘아! 오딘의 눈.’
 지스의 설명에 정도는 어웨이커 안을 떠올렸다.
 자신의 추천 전투법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 구슬.
 “저기. 지스? 우리 쪽 세계에도 비슷한 게 있는데 그걸로는 제 전투법을 예측 못 했거든요?”
 정도의 걱정 서린 말에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너희 세계에 그건 누가 만든 건데? 신이 직접 만들었냐?”
 “네? 아뇨. 그냥 인간이 만들었는데···.”
 “그럼 걱정할 필요 없다. 너네 세계 기술자 다 합쳐도 미하일 한 명이 나을 테니까.”
 ‘무슨 자신감인지···.’
 미개 미개 노래를 부르다 정도에게 역으로 당한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벌써 잊은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미하일이 눈을 떴다.
 “크하. 간만에 봤더니 피곤해 죽겠군. 인간. 정말 재밌게 싸우던데? 오랜만에 창작 의욕이 불타오르는구먼. 다들 멀뚱히 보지 말고 공방으로 들어와!”
 미하일은 그 말을 한 뒤 곧장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도도 따라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지스가 정도의 다리를 붙잡았다.
 "넌 여기서 기다려라. 지금 네 수준으로 저기 들어가면 1초도 못 버티고 녹는다."
 정도는 순식간에 문에서 물러났다.
 “어차피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니 잠시만 기다려면 돼.”
 지스는 정도를 지나쳐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다시 나왔다.
 지스 뿐만 아니라 7명의 드워프 전부가 나왔다.
 “엥?”
 “자. 다 만들었다. 받아라.”
 정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물건을 반사적으로 잡아챘다.
 묵빛의 암릿(armlet)
 장식이나 문양하나 없이 밋밋한 모습의 암릿이었다.
 “이게···무슨?”
 “응? 장식이 불만이냐? 지금 네 무력으로는 보물은 오히려 화를 불러올 뿐이다. 차라리 그렇게 눈에 안 띄는 쪽이 훨씬 안전···”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 들어가자마자 나오셨잖아요.”
 설마 만들어 준다더니 창고에 굴러다니던 걸 주워왔단 말인가?
 정도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지스가 웃으며 말했다.
 “끌끌.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는군. 기아스 때문에 만들어 준다고 한 이상 만들어 줘야 하니 쓸데없는 생각 접어둬라. 빨리 나온 건 빤하지 않느냐? 미래를 보는 놈도 있는데 시간을 다루는 놈이 없을까 봐.”
 “······.”
 무섭도록 먼치킨인 드워프 집단이었다.
 “무슨 효과가 있나요? 그냥 착용하면 되나?”
 정도는 암릿을 자신의 오른 팔뚝에 끼워 넣었다. 그러나 딱히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씁. 아까 보니까 스킬 중에 <관찰> 있더만. 힘들어 죽겠는데 뭘 그런 걸 일일이 쳐 물어? 네가 그냥 봐 임마.”
 드워프들의 얼굴에는 지독한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스킬 쓸 마나가 아까워서 설명해달라고 하면 그대로 맞아 죽을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이것도 받아라.”
 이번엔 미하일이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이건?”
 “흥. 레벨 3을 직접 봤는데 구경 값은 내야지.”
 가죽 주머니를 열어보자 그곳에는 마나석이 들어 있었다.
 “질 좋은 놈으로 몇 개 넣었다. 팔아먹든 직접 쓰든 알아서 해라.”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었다. 어웨이커 비용으로 전 재산을 날린 정도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흥. 피곤하니까 얼른 꺼져.”
 “어? 그런데 어떻게 나가면 됩니까?”
 보통 던전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되는데 보물 던전은 어떻게 나가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내보내 주지. 일단 바닥에 앉아봐라.”
 정도는 시키는 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스가 정도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정도가 앉으니 눈높이가 얼추 맞았다.
 “수천 년 만에 정말로 재밌었다. 진정도.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지스가 정도에게 꿀밤을 먹였다.
 딱!
 “악!”
 눈물이 핑 돌만큼의 고통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
 주위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정도가 던전에 들어오기 직전 봤던 관악산의 풍경.
 “허···.”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꿈이라도 꾸었나?
 ‘아니, 꿈일 리가 있나.’
 화끈한 이마. 그리고 왼손에 쥐어져 있는 가죽 주머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도는 팔뚝에 끼워져 있는 암릿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최소 수천 년을 살아온 드워프들이 힘을 합쳐 만든 작품.
 미래를 보고 시간을 조절하는 먼치킨들의 기술 집약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왔다.
 “그럼···.”
 그랜드 마이스터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도록 할까.
 정도는 암릿을 보며 조용하게 읊조렸다.
 “관찰.”
 
 
 # 첫 실전
 
 
 “관찰.”
 띠링!
 
 <만병지왕(萬兵之王)>
 등급 : Unknown
 <만병지왕이라 하면 검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무릇 모든 병기의 왕이라 함은 모든 병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효과 1 : 마나를 주입해서 자신이 상상하는 형태의 무기로 변환할 수 있다.>
 <효과 2 : 전 능력치 +10>
 <효과 3 : 절대 손상되지 않음.>
 
 “···엉?”
 이게 끝?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끝내주는 물건이다. 특히 전 능력치를 10이나 상승시켜 주는 건 전 세계 부스트(boost)류 장비를 뒤져봐도 찾기 힘들 정도의 옵션.
 그러나
 “그랜드 마이스터라는 거창한 칭호에 비하면 좀···.”
 듣기로 엑스칼리버나 청룡언월도는 일격에 고위 몬스터도 두 쪽을 내버린다고 한다.
 고작(?) 창고에 박혀 있던 무기들이 그 정도라면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인 맞춤 무기는 더 좋아야 할 터인데.
 ‘지금 봐서는 그런 위용을 보여줄 것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원하는 병기로 변환할 수 있다는 것도 애매하다.
 이런 옵션은 여럿 무기에 능통한 사람에게나 어울리지 자신처럼 전투 탤런트 하나 없는 인간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애초에 정도가 알고 있는 무기술은 검술이 전부.
 마나 사용자를 목표로 했기에 신체 단련은 피를 토할 정도로 해 왔지만, 무기술은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
 어웨이커에서 알려주는 탤런트에 따라 그 무기술을 익힐 생각이었으니까. 그게 합리적이었다.
 그래서 정도가 익힌 무기술은 검도 도장에서 익힌 기본기가 전부였다.
 “아니, 미하일 그 영감은 도대체 내 미래에서 뭘 봤길래···.”
 보물을 얻었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정작 미래의 자신에 관해 묻는 걸 잊었다.
 ‘혹시 미래에 새로운 탤런트를 얻게 되나?’
 정도는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을 이내 지워버렸다. 말이 되지 않았다. 탤런트가 ‘타고난 재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후천적으로 습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지도 못할 미래에 고민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지.’
 오늘 하루 많은 일이 있어서 까먹을 뻔했지만 정도에게는 아직 아주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신이시여 제발···.”
 어제 밤 날짜가 바뀌는 12시. 정도는 상태창을 열어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나가 전부 회복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마나는 24시간 동안 점차적으로 전부 회복한다.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정도는 날짜가 바뀌는 12시 그 순간. 한 번에 전부 회복됐다.
 마치 게임처럼.
 즉 오늘의 정도는 던전 들어가기 전부터 마나가 가득 차 있었다는 것.
 그리고 던전에서 벽에다 관찰 한 번, 지금 암릿에 한번 총 2의 마나를 소모하고 5의 마나가 남아있는 상태.
 하루 한 번 무료 뽑기까지 총 여섯 번의 뽑기가 가능했다.
 “뽑기의 신이시여···.”
 정도는 긴장된 마음으로 뽑기를 돌렸고
 이내 뽑기의 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전부 꽝이었다.
 
 * * *
 
 던전에서 복귀한 정도는 휴가의 나머지 시간을 전부 휴식으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 정도 왔냐?”
 오늘도 정도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는 건 최철윤 대표였다.
 정도는 길드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오늘 어째 사람들이 적네요? 서윤이 얘도 안 보이네.”
 “서윤이는 어제 출근했고 오늘 휴가. 각성은 똑같이 했는데 한 명만 쉬면 불공평하지.”
 “아. 하긴. 동시에 쉬긴 그렇죠.”
 길드 내 영업 팀 인원이라곤 정도와 서윤 단 두 명이다.
 원정 계획이 잡히면 영업일이 뜸해진다고는 하나 자잘한 업무가 있는 이상 한 명은 있어야 했다.
 “서윤이 뿐만 아니라 전투조 인원도 안 보이네요? 다들 어디 갔습니까?”
 정도의 물음에 최철윤은 살짝 움찔했다.
 “···전투조도 오늘 휴가. 원정 가기 전에 만전의 충전이 필요한 법이니까.”
 “네? 아직 원정까지 6일이나 남았는데요? 지금까지 이 시기에 휴가를 주신 적 없···아.”
 정도는 깨달았다.
 지금 최철윤 대표는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었다.
 틀림없이 비아냥거릴 게 뻔한 조학래를 때어놓기 위해서 휴가를 준 것이다.
 정도는 씨익 웃으며 최철윤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것보다 할 말이 있으니 대표실로 따라오도록.”
 철윤은 도망치듯 대표실로 들어갔고 정도도 곧바로 따라 들어갔다.
 길드 내 대표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표정이 괜찮은데? 축 처져서 출근할 줄 알았더니.”
 “하루 푹 쉬니 마음이 좀 진정되더라고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사실은 푹 쉬어서 그런 게 아니라 기연을 연속으로 주워서 괜찮아진 것이지만 대표에게 그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아니, 대표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다. 설령 서윤이나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래. 괜찮아졌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본론인데···.”
 철윤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참여할 거지? 이번 원정. 탤런트가 좀 모자라더라도 첫 스킬은 까봐야 하지 않겠냐?”
 스킬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스킬 스톤을 제외한 나머지 한 가지.
 최초의 레벨 업으로 인한 스킬 획득.
 지금 최철윤 대표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최후의 찬스.
 각성으로 꽝 탤런트를 판정받았더라도 아주 좋은 스킬이 생성되면 전투조로 활약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게 있었다.
 물론 스킬의 생성이 보유 탤런트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보통은 탤런트가 저질이면 생성되는 스킬도 저질이기 마련이다.
 그 사실을 정도는 물론이고 최철윤도 잘 알고 있었다.
 길드들은 보통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자들을 보유한다.
 완성된 사용자들을 영입하거나, 아니면 일반인을 마나 사용자로 직접 육성하거나.
 완성된 마나 사용자는 적다.
 어웨이커 비용이 무지막지한 것이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지만 각성을 한다고 다 전투조가 될 만한 탤런트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 때문에 그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그래서 생긴 게 육성 시스템.
 사용자 지망생들은 길드에 가입해서 각성 후 최초의 레벨 업과 교육을 보장받는다. 그 대신 길드는 각성한 지망생들의 우선협상권을 얻는다.
 그 지망생들이 각성으로 꽝 탤런트를 판정받는 순간 버려지는 게 보통이지만.
 철윤은 정도를 끝가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정도는 먹먹해지는 기분을 숨기며 말했다.
 “당연히 참가해야죠. 제가 최저시급 받으면서 길드에 붙어있는 이유가 그건데요.”
 “짜식이. 그래도 나만큼 칼같이 챙겨주는 대표가 있는 줄 아나.”
 그 후로 정도와 대표는 소소한 얘기를 나눴다.
 “그래. 첫 실전이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 원정 전까지 철저하게 복습해라. 단련도 게을리 하지 말고.”
 “네. 최선을 다해서 임하겠습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 * *
 
 원정 당일 아침이 밝았다.
 던전 위치는 가까웠다.
 북한산 등산로 입구의 편의점 앞. 그곳에 커다란 균열이 발견되어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최철윤을 필두로 한 저스티스 길드원이 모여서 최종 브리핑을 진행했다.
 “진 팀장. 정 시커(seeker)에게 건네받은 정보가 일치하는지 최종 확인 해봐.”
 “네. 대표님.”
 철윤의 말에 정도는 애널라이즈를 들고 던전 앞에 섰다.
 삐!삐!삐!
 
 인원 제한 : 10인 이하
 난이도 : D
 던전 유형 : 섬멸형
 
 “네. 확인했습니다. 10인 이하. D급. 섬멸형. 확실하게 일치합니다.”
 “좋아. 이제 돌입하면 되겠군···. 한 놈만 오면 말이야.”
 으드득.
 이를 가는 대표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때, 요란한 배기음의 스포츠카가 편의점 앞에 섰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젯밤 과음했더니 아침에 급 똥 소식이 와서···.”
 “···조학래. 넌 똥을 한 시간 넘게 처 싸냐? 그리고 원정 전날 과음? 이 새끼야! 넌 프로 정신이란 게 없어?!”
 대표의 호통에도 조학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아 대표님. 어차피 오늘 겨우 D급 던전 아닙니까? 그 정도는 전날 과음이 아니라 만취 상태에서도 문제없다니까요? 늦은 건 잘못했으니 한 번만 봐주십쇼.”
 대표는 1년 전 자신을 저주했다. A급 사용자가 헐값에 계약한다고 했을 때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개차반일 줄 생각도 못 했다.
 “후우··· 이제 진짜 다 모였으니 브리핑을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번 던전은 D급이다. 주목적은 마나석의 수거. 전투조의 레벨링이 목적이 아니므로 막타 경험치는 신입 두 명에게 모두 먹인다. 여기까지 질문 있나?”
 대표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질문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사전에 다 얘기되어있던 부분이었다.
 “돌입하는 전투조 명단은 조학래, 김태식, 이진수, 정유나 4명과 진정도, 윤서윤 2명 총 6명.”
 
 조학래 A급.
 김태식 B급.
 이진수 C급.
 정유나 C급.
 
 고작 D급 던전에 돌입하는 것 치고 굉장히 오버 스펙의 라인업이었다.
 “오버 스펙이 분명하지만··· 다들 잊지 않았겠지? 지난번 원정도 충분히 오버 스펙으로 투입했지만 사망자가 2명 발생했다는 걸?”
 당시 던전은 C급 던전이었다. 조학래를 비롯한 B급 두 명과 C급 두 명을 투입했지만 조학래와 C급 두 명만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대표는 조학래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심은 절대로 금물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되··· 대장의 명령에는 절대 복종하도록.”
 던전 안은 비상식의 세계다.
 언제 무엇이 터질지 알 수 없는 혼돈의 공간.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비해서 지휘 체계의 확립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럼 지금부터 원정을 시작한다. 나를 비롯한 사후처리 팀은 현 위치에 대기한다. 무사히 돌아오도록.”
 철윤의 말을 끝으로 전투조 6명이 균열에 마나를 주입했고 곧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던전 안으로 들어온 정도는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비릿한 물 냄새.
 축축하고 무른 바닥.
 눅눅한 습기와 후덥지근한 공기.
 여러모로 보물 던전과 달랐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던전 자체가 침입자에 대해 살의를 내뿜는다는 것이었다.
 공기가 따끔하다.
 정도는 심장이 한껏 옥죄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이게 진짜 던전이지.”
 “응? 진 팀장은 이번 던전이 처음 아냐?”
 옆에서 김태식이 정도의 말에 반응했다. 정도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 어제 던전 영상 몇 개 찾아봤는데, 특이한 걸 봐서요.”
 “흐. 뭐 던전이란 곳이 워낙 제 맘대로 인 곳이니까 특이한 곳이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지. 하지만 보통은 이런 식이야. 진 팀장도 느껴지지? 던전이 우리를 잡아먹겠다고 벼르고 있는 거. 긴장 놓지 마.”
 “네 조언 감사합니다.”
 정도는 흘끗 서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히려 정도보다도 더 침착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정도를 향해 살짝 웃어 주었다.
 “하여간 간땡이는 부어가지고.”
 정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 저 오늘 다른 일 있으니까. 빠르게 갑시다. 보자, 포메이션은··· 에이 뭐 대충하고 그냥 가요. 어차피 D급 던전인데.”
 조학래가 그렇게 말하면 선두에 나섰다. 당연히 김태식이 이의를 제기했다.
 “잠깐만요 조 대장. 아무리 D급이라고 하나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갖춰야 합니다. 게다가 신입에 대한 교육도···.”
 “이봐요. 김태식 씨.”
 조학래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김태식을 쳐다봤다.
 “김태식 씨가 대장이에요? 포메이션? A급이 D급 던전에 들어온 이상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정 불만이면 끝나고 밖에 나가서 정식으로 클레임 거시던가. 그리고 교육?”
 조학래는 정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스킬 까봤자 꽝이 빤한데 교육은 무슨···.”
 조학래는 다른 사람들의 의사는 신경 쓰지도 않고 혼자서 앞으로 가버렸다.
 나머지 조원들은 불쾌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에이 시팔. 이래서 저 새끼랑 같이 오기 싫었는데.”
 “어쩌겠어요. 사용자는 등급이 깡팬데.”
 “실력만 좋으면 뭘 해. 저딴 리더십으로 무슨 애들을 통솔한다고.”
 가열되는 분위기를 정도가 진정시켰다.
 “자자. 다들 진정들 좀 하세요. 던전 안에서 반목해버리면 생존율 떨어지는 거 다들 아시잖아요. 불만은 잠시 참았다가 조 대장 말대로 끝나고 정식으로 이의 제기하죠.”
 정도는 조학래가 들어가 버린 통로를 가리켰다.
 “더 지체하면 합류도 어려울 수 있잖아요. 서두르죠.”
 그렇게 전투조원들은 조학래랑 합류했고 곧 첫 적과 조우했다.
 2미터에 달하는 덩치.
 비늘로 덮인 전신.
 성인 남성의 다리보다 더 굵은 꼬리.
 그리고 파충류의 머리.
 리자드맨(Lizardman)
 던전의 정체는 리자드맨의 소굴이었다.
 이진수는 얼굴을 구겼다.
 “이런, 리자드맨이라니···.”
 C급 사용자 이진수.
 그는 <은신>을 이용해서 기습으로 적을 처치하는 딜러 포지션의 사용자였다.
 파충류 몬스터는 시각이 아니라 열로써 적을 감지한다. 은신을 전혀 활용할 수 없으니 얼굴을 구길 만 했다.
 "하이고. 이거 짐 덩어리가 두 명에서 세 명이 됐네. 아, 실수. 서윤 씨는 당연히 짐이 아닙니다."
 까마득하게 어린 조학래의 이죽거림에 이진수의 얼굴이 시뻘게졌지만, 그는 끝까지 화를 눌러 참았다.
 물론 조학래는 그런 진수의 기분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리자드맨에게 달려들었다.
 슉
 솔직히 말해서 정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조학래가 달려 나가고 눈 한번 깜빡인 순간.
 그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다시 한번 깜빡인 순간.
 리자드맨이 쓰러져 있었다.
 다른 조원들의 얼굴에도 감탄의 빛이 떠올랐다. 심지어 바로 직전 창피를 당한 이진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A급···.’
 소름 돋는 실력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해낸 당사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서윤을 불렀다.
 “자. 숨만 붙여놓았으니 막타는 서윤 씨가 먼저 치세요.”
 서윤은 학래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리자드맨을 처리했다.
 조학래가 서윤을 칭찬했다.
 “잘하셨습니다. 곧 리자드맨의 시체가 사라지면 마나석이 남을 텐데. 그래. 진정도씨가 책임지고 수거하세요. 오늘 사냥에 나오는 거 전부다.”
 “그런 일이라면 막내인 제가···”
 나서는 서윤의 말을 학래가 잘랐다.
 “던전에 들어온 순간부터 두 사람 다 동등한 전투조원입니다. 밖의 직급은 상관없어요.”
 서윤이 재차 반박하려 했지만 정도가 끼어들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수거하겠습니다.”
 “큭큭큭. 영업왕답게 눈치 빨라서 좋네요.”
 학래의 비웃음에 정도가 시종일관 미소로 대응하자 학래는 재미없다는 듯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갑니다. 뒤처지지 마세요.”
 진행은 손쉬웠다.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리자드맨을 처리했고 역시 막타는 서윤이 차지했다.
 그리고 세 번째 리자드맨을 제압한 뒤
 다시 서윤에게 막타를 치라는 학래의 지시에 서윤이 반발했다.
 “조 대장님. 첫 번째, 두 번째 막타 전부 제가 먹었습니다. 이번과 다음은 진 팀장님이 차지하는 게 공평합니다.”
 서윤의 말에 학래는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이고 서윤 씨.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전혀 공평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요.”
 “네? 그게 무슨···”
 “보유 마나 27과 7. 보유 탤런트 수 11과 3. 한 쪽은 나라에서 손꼽히는 유망주. 나머지 한 쪽은 폐급.”
 학래는 정도를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길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느 쪽을 밀어줘야 하는지는 뻔하지 않나?”
 “그런···대표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리가···!”
 “아 물론 대표님은 그러시지 않겠죠. 이건 순전히 제 판단입니다. 근데요 서윤 씨.”
 학래는 지금 상황이 무척 재밌다는 듯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 원정 대장이 누구죠?”
 서윤은 분을 참지못해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조···대···장님···입니다.”
 “잘 아시네요. 치세요. 막타.”
 서윤은 입을 꽉 다문 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리자드맨의 숨통을 끊었다.
 “잘하셨습니다. 이대로 계속 갑니다.”
 학래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 * *
 
 그것만 빼고는 원정은 무척이나 순조로웠다.
 그리고 원정이 진행됨에 따라 정도도 막타를 몇 번 차지하긴 했다.
 다만 서윤과의 막타 비율은 10 : 1 정도.
 대놓고 편애를 했지만 전투조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이번 원정이 끝나면 대표에게 제대로 클레임을 걸겠다고 분을 삭일 뿐.
 그러나 전투조원 중 유일하게 정도만이 학래에게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상하군.’
 명백하게 이상하다.
 아무리 조학래가 안하무인인 성격이지만 이렇게까지 뒤를 생각 못할 정도로 멍청했나?
 던전에서 나가면 자신의 행실이 그대로 대표에게 알려질 게 뻔했는데.
 ‘아니지. 오히려 조학래는 똑똑한 편이지.’
 개차반이지만 지금까지 길드에서 쫓겨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선을 넘은 정도가 아니다. 선이 아예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꺼림칙한데.’
 “자. 이제 거의 다 잡은 거 같으니 던전 보스 쪽으로 진행합니다.”
 어느새 던전 속 리자드맨의 씨가 말라 있었다. 목적을 완수했으니 던전을 클리어해야 했다.
 던전을 헤집어 놓으면서 보스 룸은 진작 파악이 끝나 있었다.
 일행은 곧바로 보스 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른 리자드맨 보다 월등한 덩치.
 한 손에는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나머지 손에는 자신의 몸의 절반을 가릴 듯한 라운드 실드를 든.
 3미터에 가까운 리자드맨 전사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보스 리자드맨의 포스는 과연 남달랐다.
 지금까지 리자드맨은 귀여워 보일 정도로 흉흉한 기세였다.
 그러나 조학래는 리자드맨 보스조차 전혀 다르지 않다는 듯 그대로 보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결과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래도 보스라고 한 5초 정도는 버텼다는 것이었지만 의미는 없었다.
 조학래가 보스를 제압한 걸 본 일행은 긴장을 풀었다.
 “휴우··· 그래도 무사히 끝났군. 사고라도 터질 줄 알았는데.”
 “난 서윤이가 대들 줄 알고 조마조마하더라.”
 “자자. 지금까지 서윤이가 경험치 다 먹었으니 마지막 보스는 진 팀장 주고 얼른 여기서 나가죠.”
 화기애애한 일행의 분위기에 학래가 찬물을 부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이번에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 김태식이 조학래에게 따지고 들었다.
 “아니, 조 대장.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서윤이만 잔뜩 먹었는데 보스 경험치는 진 팀장이 먹어도···!”
 “착각 하지 마. 막타 따위가 곤란한 게 아니라 여기서 얼른 나가는 게 곤란하단 거니까.”
 무슨?
 전투조원들은 학래의 말에 갈피를 못 잡았다.
 “그게 무슨···? 아까 들어오자마자 다른 일이 있다고 빠르게 가자고 했잖습니까?”
 “아. 확실히 그렇게 말했지. 근데 내가 그 다른 일이 던전 밖에서의 일이라고 한 기억은 없는데?”
 이변을 가장 처음 눈치 챈 건 정도였다.
 “피해요!”
 정도가 재빨리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푹.
 “커···커헉.”
 학래의 검이 김태식의 가슴을 꿰뚫었다.
 “후···참느라 혼났네.”
 학래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검을 뽑았고 김태식은 땅바닥에 쓰러졌다.
 김태식은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꺄아아아아악!!!”
 “조학래 이 미친 새끼!”
 경악한 정유나와 이진수가 비명을 질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조학래가 이어 휘두른 두 번의 칼질에 그들의 목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학래가 검에 묻은 피를 털며 나머지 두 명에게 말했다.
 “어우. 요새 신입들은 다들 이렇게 심장이 좋나? 어떻게 비명 한번 안 질러?”
 “···미친놈. 이게 무슨 짓이야?”
 정도가 서윤을 뒤로 숨기며 낮게 중얼거렸다.
 “무슨 짓? 빤하지 않나?”
 학래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서윤을 쳐다보며 말했다.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지.”
 “짐승 새끼···욕구를 못 이겨서 사람을 죽여?”
 학래의 말에 서윤은 반사적으로 양팔로 몸을 가렸다.
 그 여성스러운 반응에 학래는 돌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장난이야 장난. 내가 아무리 여자를 밝혀도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일 정도로 몰상식해 보이나?”
 “···그 어떤 이유든 간에 사람을 죽인 게 상식이 될 순 없다. 빌어먹을 새끼야.”
 그때였다.
 학래가 죽인 세 명의 몸에서 푸른빛이 솟아나 조학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하아아. 바로 이거야. 여자는 끊어도 이 강해지는 쾌감을 끊을 수가 없는 거거든. 안 그래? 응?”
 “설마···.”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정도는 재빨리 관찰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이름 : 조학래
 레벨 : 58
 보유 마나 : 69
 근력 : 75 체력 : 67 반사 신경 : 77 마나 감응도 : 54
 탤런트 : <검술-lv.1>, <배우-lv.1>, <조숙-lv.1>, <소시오패스-lv.1>, <색마(色魔)-lv.1>, <눈썰미-lv.1>
 보유 스킬 : <시체 약탈>, <매그넘 배쉬>, <핀포인트 쓰러스트>
 
 A급 사용자답게 높은 스테이터스였다.
 그러나 지금 정도의 눈에는 다른 건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하나.
 ‘시체 약탈!’
 정확한 효과는 알 수 없지만 학래에게 흡수되고 있는 푸른빛의 정체는 저 스킬 때문인 건 확실했다.
 정도는 이를 갈며 말했다.
 “너···머더러 빌런(Murderer Villain)이였군. 지난번 원정 때 사망한 두 명도 네 놈 짓이지?”
 머더러 빌런.
 ‘범죄자가 된 사용자(Villain)’ 중에서도 최악의 부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용자를 사냥하는 자들을 말한다.
 “크으. 역시 눈치가 좋다니까. 근데 좀 늦게 알아챘네? 곧 죽을 테니까.”
 학래는 두 명에게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급하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거든? 근데 지난 각성 때 봐버린 거야. 최고의 만찬을.”
 학래는 탐욕이 어린 시선으로 서윤을 쳐다봤다.
 “말도 안 되는 재능. 저년이 각성한 이후로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었지. 너무 맛있는 냄새에 돌아버려서 즉시 죽여 버릴 것 같았으니까.”
 학래의 얼굴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저년을 잡아먹으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참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지. 정말··· 정말로 힘들었어.”
 학래가 가까이 오는 만큼 뒤로 물러났지만 어느새 등 뒤에는 던전의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오 그래. 하나 더 고백하자면 사실 진 팀장에게 악감정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어. 그냥 망나니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랬던 거지. 그래야 던전에서 내가 개별 행동을 해도 저 새끼는 원래 그런 새끼다 생각할 거 아냐? 덕분에 사냥은 쉬웠지.”
 길드 전체가 학래에 놀아난 꼴이었다.
 “사과의 뜻으로 일격에 고통 없이 보내주지.”
 학래가 정도를 향해 검을 날렸다.
 두 사람의 스펙 차이를 고려한다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머리가 쪼개져야 하지만.
 정도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을 보고 반응할 수 있었다.
 정도가 위기의 상황에서 각성을 한 게 아니다. 이유는 명백.
 ‘이 자식. 가지고 놀려고!’
 한 번에 보내준다는 말과 달리 철저하게 정도를 괴롭히다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정도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을 어제 검 형태로 변환시켜놨던 만병지왕으로 막아냈다.
 캉!
 “음? 막아?”
 학래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가지고 놀려곤 했지만 적어도 검을 부숴버리고 팔 한 짝 정도는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깔끔하게 막힌 것이다.
 “그 검. 평범한 게 아니군.”
 A급 헌터인 탓인지, 아니면 탤런트 탓인지 몰라도 학래는 만병지왕이 범상치 않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뭐 그래도 유흥시간이 잠시 늘어난 거밖에 안 돼.”
 그때,
 “하압!”
 학래의 뒤에서 서윤이 기습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마나가 가득 실린 공격. 일반인이 맞는다면 뼈가 부러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
 그러나
 휘익
 조학래는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서윤의 복부에 발차기를 차 넣어 날려 버렸다.
 “커헉!”
 “얌전히 차례 기다리고 있어. 이 자식 사지를 뜯은 뒤에 그 앞에서 널 범해줄 테니까.”
 학래가 날려버린 서윤이 정도의 근처로 떨어졌다. 그녀는 내장이 상했는지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정도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쩌지?’
 도저히 이길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실력 차이가 커도 너무나 컸다.
 ‘최소한 서윤이 만이라도!’
 10년 넘게 자신을 아껴준 고마운 아이를 이렇게 죽게 할 순 없다.
 정도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던전 안에 존재하는 건 학래와 정도, 서윤. 그리고 곧 시체가 되기 직전의 리자드맨 전사.
 정도는 힘겹게 일어서는 서윤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미쳤고 망설임 없이 서윤에게 관찰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이름 : 윤서윤
 레벨 : 2
 
 ‘레벨 2다!’
 어느새 서윤은 최초의 레벨 업을 한 상태였다. 그만큼 많은 경험치를 몰아서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정도의 시선이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보유 스킬 : <앱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좋아!’
 정도는 서윤에게 급히 말했다.
 “서윤아. 실드 마법을 사용한다는 느낌으로 마나를 운용해봐!”
 “네···? 오빠. 그게 갑자기 무슨?”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 어서!”
 서윤은 정도의 말에 의문을 느꼈지만 그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
 찬란한 황금빛과 함께 반투명한 막이 정도와 서윤 그리고 리자드맨을 감쌌다.
 “···이건 또 무슨 개수작이야.”
 학래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내리쳤다.
 “시팔. 앱솔루트 실드? 첫 원정 나온 병아리 새끼가 이걸 쓴다고?”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어웨이커에서 정보 갱신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의 스킬을 알고 사용했다는 점이다.
 조학래는 정도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년에게 스킬을 쓰라고 한 게 네 놈이었지. 아무래도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겠는데.”
 놀이는 끝이었다.
 조학래는 전력을 다해서 실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꺄··꺄악!”
 그에 대한 반동으로 서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서윤아! 조금만 참아!”
 정도가 만병지왕을 쥐고 다급하게 달려들었다.
 조학래가 아닌 리자드맨 전사에게로.
 “이런 씨팔!”
 학래는 리자드맨 전사에게로 뛰어가는 정도를 보며 실드를 더욱 빠르게 두들겼다.
 정도가 노리는 바는 명확했다.
 보스 몬스터가 퇴치되면 던전은 클리어 된다.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학래는 마나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려서 실드에 스킬을 난사했다.
 비록 앱솔루트 실드가 방어계 고위 마법이라고는 하나, A급 사용자의 무차별 공격을 무한정 막을 수는 없었다. 하물며 시전자가 갓 레벨2인 초보임에야 말할 것도 없었다.
 쨍그랑!
 “꺅!”
 실드가 깨지면서 그 반동으로 서윤이 튕겨 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실드가 깨진 여파와 미숙한 마력 운용 때문이었다.
 푹!
 그와 동시에 정도가 리자드맨 전사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 놓았다.
 그러나
 변하는 건 없었다.
 학래는 킥킥 웃으며 정도에게 다가왔다.
 “아. 이번 건 나도 좀 철렁했어. 보스 몬스터를 잡아서 탈출하려고 할 줄이야. 하지만 쪼오금 모자랐네?”
 정도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넋이라도 나간 표정이었다.
 “던전 보스를 잡는다고 바로 던전에서 나가지는 게 아니거든. 보통 10분에서 30분 정도 걸리지. 우리 똑똑한 진 팀장도 이건 몰랐나 보지?”
 “······었어.”
 “응? 정신이 나가서 미쳤나? 똑바로 말해.”
 정도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다.
 “헛짚었다고 새끼야.”
 정도가 리자드맨 전사를 처치한 건 던전의 탈출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정도가 사용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 세월이 얼마인가. 당연히 보스를 잡는다고 바로 던전에서 탈출하는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정도가 노리는 바는 단 하나.
 레벨 업(level up)!
 정도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은.
 거기에 많은 상태창이 떠 있었기 때문!
 
 <레벨 업! 축하합니다. 레벨 2가 되셨습니다!>
 <스킬 <인연 뽑기>를 습득하셨습니다.>
 <<인연 뽑기>는 '진짜 우주'에 기록된 수 많은 인물들 중 한 명을 뽑아 그 인물의 능력을 사용자의 신체에 그대로 로드(load) 합니다. 소모 마나 10.>
 <최초의 인연 뽑기는 마나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지금 뽑으시겠습니까?>
 
 정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뽑기를 실행했다.
 파아아아앗!!
 정도의 눈앞에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종잇조각이 떠올랐다.
 가로 9센치 세로 5센치의 작은 종잇조각들.
 명함(名銜).
 ‘진짜 우주’에 기록된 인물들의 명함이었다.
 정도의 머리 위에서 회전하는 수억 장의 명함 중 한 장이 정도의 머리 위로 쏘아져 내려왔다.
 정도는 그 명함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네가 사냥감이 될 차례다. 머더러.”
 떨어져 내리는 명함은 명백하게 다이아처럼 빛나고 있었다.

댓글(9)

borislee    
선발대 님의 감상 코멘트를 부탁 드려요!!
2021.02.01 11:39
기리니다    
4권까지 선발대 그냥 킬링타임용 몰입도를 원하신다면 뒤로가기 볼만한 소설 다봤고 정 볼게없다면 읽히기는 합니다.
2021.02.01 15:17
염장사과    
미완
2021.06.08 19:00
gi****    
대여할인용
2021.07.14 03:27
진격운    
킬링타임 으론 ㅇㅋ
2021.08.05 19:53
벼르명    
22년2월22일 입니다
2022.02.22 17:59
못난리자    
어 보라는 뜻인가..오늘이 그 날이네 ㅋ
2022.02.22 22:23
오늘은맑음    
끝까지 쭉쭉 읽을만 합니다
2022.03.01 08:53
borislee    
선발진들이 킬링 타임용으로 괜찮다하여 들어 왔다가 몹시 후회하는 중입니다. 현재 8권을 보고 있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 나가서 어거지로 넘기고 있어요. 할인이라 일괄 구매하여 들어 온 지가 1달이 지났는데 아직 8권에 머무르면서 후회 하고 있어요.!!!
2022.03.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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