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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대 부소대장은 백만장자 1권 (1)

2019.05.15 조회 2,698 추천 26


 # 프롤로그
 
 
 세상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면접관이 묻는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답하겠지.
 “예전부터 ~에 관심이 많았기에~”
 라고 말이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친구가 묻는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하, 그냥 여기밖에 자리가 없더라.”
 그렇다. 일반적인 사람들 기준으로 직장은 그저 남는 자리에 자신이 앉는 것뿐이다.
 의자 뺏기 싸움이랄까? 의자를 뺏기 위해 희망 연봉을 최대한 낮게 적어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그 결과로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일부 축복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 축복의 원천은 바로 돈! 돈만 있다면, 돈만 많다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직업을 소득에 관계없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큰 차이가 나는 직업이 있다.
 병사와 간부.
 간부 중에서도 일부는 그냥 돈 때문에 온 사람들이지만, 병사의 태반은 다르다.
 대한민국 60만 병사들은 속칭 ‘씨발’거리며 입대를 하게 마련이고, 원치 않은 곳에서 2년 동안 간부들의 일을 대신한다.
 피땀 흘려가며 국가의 노예가 아닌 간부의 노예가 되어 개같이 구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면 전역증이라는 종이 쪼가리 한 장, 면천이 되는 증서 한 장을 들고 위병소를 나선다.
 2년간의 개 같은 기억들을 ‘추억’이라 미화시키면서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간부는 다르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해서 오는 것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중에서도 더 다른 자들이 있다.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다. 나라를 지키러 온 것도 아니다. 정말 ‘그냥’ 온 사람이 존재한다.
 그게 누구냐고? 바로 우리 소대 부소대장이다.
 계룡대라는 별들의 고향에서 갈매기 하나인 하사의 힘은 정말 미약하다.
 지나가는 소령에게 경례도 안 하는 것이 바로 계룡대다.
 애초에 별들이 삼태기로 건지면 왕창 건져지는 곳이다.
 경례를 크게 하려고 하면 원스타나 투스타는 오히려 손사래를 친다.
 우리 부대 영내 간부숙소 앞에 있는 주차장을 보면 후줄근한 차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차가 한 대 존재한다.
 밴, 틀, 리.
 그 차의 주인은 다들 예상하겠지만 우리 소대 부소대장의 차다.
 김 하사, 아니 김정균 하사. 집안의 돈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도 썩어나는 그가 군대에 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손목에 차고 있는 파텍 시계를 보고 꾸지람을 준 우리 중대 전 행보관 천 상사는 대한민국 최전방 GP로 강제 배속되었다.
 그가 BOQ에 끌고 온 밴틀리를 보고 싸가지 없다며 싸대기를 후려친 우리 옆 소대 전 부소대장, 이신지 하사는 부대 앞 치킨 집에서 치킨을 튀기고 있다.
 지금부터 나는 김정균 하사의 기행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난 누구냐고?
 난 대한민국 육군 박격포 일병(3호봉)이다.
 
 
 # 신이라 불릴 부사관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간다’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전부 구라다.
 군대 안에 있으면 시간이 평상시보다 한 열 배쯤 늦게 가는 듯하다.
 싸지방에 있을 때가 한 열 배 늦게 가는 것 같고, 일과 중에는 한 삼십 배쯤, 초소근무 중에는 한 백 배쯤 늦게 가는 기분이다.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수준의 고통이랄까? 군대에서는 숨 쉬는 것도 답답하고, 밥은 차라리 자취하던 시절 내가 한 밥이 맛있을 정도로 최악이다.
 아무튼 내가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고통을 받으며, 일병으로 진급하기 직전에 김정균 하사는 우리 소대 부소대장으로 왔다.
 그렇다, 김정균 하사는 초임하사다.
 영내 BOQ에서 의무 생활을 해야 하는 6개월조차 지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임 하사인 것이다.
 군대에서 신임 하사라 함은 계급장만 꺾어진 거 하나 달고 있을 뿐이지, 이등병과 같은, 아니지, 엄밀히 말해서 괜히 피해 의식 있는 신임 하사가 온다면 그야말로 병사들에게는 재앙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정균 하사는 재앙 덩어리가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 소대원들은 김정균 하사를 더 좋아한다.
 이유가 뭐냐고?
 먹을 걸 많이 사주고 병사들의 암묵적인 룰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잡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다.
 김정균 하사가 우리 소대 부소대장이 된 기점으로 지랄 맞은 악습이 상당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등병만도 못한 신임 하사가 어떻게 악습을 없앴을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김정균 하사가 누구인가.
 싸대기 때린 사람을 치킨가게 사장으로 발령 보내고, 꾸지람 준 상사를 최전방으로 발령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바로 돈의 힘! 그것은 병사를 관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우리소대에는 불연소 쓰레기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마 김철민 병장.
 
 [크크크크, 야 좆 같냐? 꼬우면 네가 선임되든가.]
 
 우리 소대 최고의 쓰레기인 김철민 병장은 심심하면 애들을 중대 창고로 끌고 가서 두들겨 팼다.
 그가 때릴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나 때는 안 그랬다.]
 
 하지만 그 녀석을 영창 보낸 간부가 하는 말에 따르면 김철민 병장이 이등병 때는 오히려 악습이 없었으며, 심지어 김철민 병장이 소원수리 사연 애용자였단다.
 소원수리를 얼마나 맛깔나게 쓰는지 소원수리를 읽어본 연대장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하는 연대장 당번병의 카더라 통신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자신의 고참들이 하나둘 전역하기 시작하자 쓰레기 본성이 드러났고, 지금은 티 나지 않게 애들의 배나 명치, 허벅지 등을 구타하는 불연소 인간쓰레기가 되었다.
 두 달 전에 영창 갖다 오기 전에는 얼굴 같은 데를 팼는데, 지금은 걸려서 영창 다시 갈까 봐 얼굴은 못 때린다.
 근데 웃긴 것은 애들을 때릴 때마다 하는 말이 이거다.
 
 [야, 찔러, 찔러 봐. 영창 갔다 오고 너 죽여 버릴 테니까.]
 
 그렇게 물병장인 김철민 병장은 우리 소대 왕고였고, 그의 독주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도 김철민 병장이 무서워서 마음의 편지를 쓰지도 못하고 심심하면 얻어터졌다.
 하지만 하늘에서 천사를 내려 보내 주신 걸까. 김철민 병장이 중대 창고에서 애들을 패는 모습을 목격한 김정균 하사는 중대 창고로 들어와 김철민 병장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눴다.
 당시 김철민 병장한테 두들겨 맞고 있던 이상민 상병과 고민종 이병의 입을 통해서 들은 대화는 짧았다.
 
 “야, 김철민.”
 “왜, 부르십니까?”
 “너 애들 왜 때리냐?”
 “때릴 만하니까 때리지 않겠습니까. 잘못했을 때 이렇게 좀 다져둬야 애들이 말도 잘 듣습니다.”
 “그래?”
 “예, 김 하사님도 볼일 보십쇼.”
 
 이때 김정균 하사는 김철민 병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에 귓가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계속 그렇게 해봐, 전역하고 길가다가 배트로 대가리 깨지게 해줄게. 내가 못할 것 같아?”
 
 순간 얼어붙은 김철민 병장의 모습은 가관이었단다.
 김정균 하사가 돈으로 얼마든지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치킨집 발령 사건과 GP 유배 사건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김정균 하사가 그 두 사람을 좌천시킨 것을 알 수가 없지만 두 사람이 김정균 하사를 귀찮게 한 순간 그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어지간한 병사들은 내심 짐작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이후로 김철민 병장이 애들을 구타하는 일은 사라졌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두 주 정도 조용해지다가 애들을 다른 장소로 불러서 다시 펀치 머신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김정균 하사의 충실한 충복이 되어 있었던 터라 김정균 하사에게 달려가 일렀고, 김정균 하사는 나에게 일주일만 기다리라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일주일 뒤 김철민 병장은 외박 중에 불량배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서 머리가 깨지는 바람에 국군 수도병원에 입원을 했다.
 최하 6개월 동안은 입원해야 한단다.
 더군다나 목격자나 CCTV도 없어서 김 병장은 외부 병원도 못 가고 돈 때문에라도 꼬박 수도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우리 소대 병사들의 소감은 이렇다.
 
 “오오, 신이 천벌을 내리셨다!”
 “하늘에는 하느님이 있다면, 땅엔 김정균 님이 있다.”
 “신이시여, 저희는 영원히 신을 따르겠나이다.”
 
 김정균 하사가 자신이 했다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중대 창고에서의 말과 김정균 하사의 재력을 옆에서 본 우리들은 김정균 하사가 손을 쓴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우리들을 쳐다보며 ‘봤냐? 짜식들’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김정균 하사였기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하느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쉬셨다고 한다.
 김정균 하사는 6일 동안 계획을 만드시고, 마지막 날에는 김철민 병장을 수도병원에서 ‘강제로’ 쉬게 하셨다.
 아무튼 김정균 하사의 과거 중 가장 큰 사건을 꼽자면 이게 있겠다.
 이 다음부터는 김정균 하사가 만들어 갈 기행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기대해도 좋다.
 
 
 # 골프 치는 하사
 
 
 김정균 하사의 아침은 사무실에서의 루왁 커피로 시작된다.
 김 하사가 사비로 들여놓은 시모넬라 뮤지카 원두 기계가 당당하게 행정실에 비치되어 있었기에 김 하사는 매일 출근하면 나를 시켜 루왁 커피를 마신다.
 나 또한 김 하사 덕에 매일 아침 한 잔에 5만 원을 호가한다는 귀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우리의 광경을 보급소대장과 보급부소대장, 그리고 보급소대 행정계원이 부러운 듯이 쳐다본다.
 일단 우리 중대는 두 개의 소대로 나뉘어 있다.
 보급소대와 취사소대. 160명의 인원 중 보급소대가 60명, 취사소대가 100명으로 이루어진 약간 기이한 중대라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국직부대이기 때문에 육/해/공이 내무실은 다르지만 어찌 되었건 한 건물 내에서 옹기종기 살고 있다.
 취사소대장은 현재 공석. 김 하사의 기행 때문인지 후임자가 오질 않고 있어서 사실상 김 하사가 두 직책을 모두 담당하는 상황이다.
 즉, 중대 행정실에는 보급소대장인 상사 한 명, 보급/취사 부소대장인 하사 두 명, 취사소대 행정계원인 나와 보급소대 행정계원인 현진식 상병(해)이 있다.
 일반적인 커피라면 보급소대에도 커피를 한 잔 주겠지만, 커피 자체가 한 잔에 5만 원이 넘는 루왁이다 보니 함부로 줄 수도 없다.
 가끔 김 하사가 한 잔씩 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끔’이기 때문에 보급소대는 전 국민의 기호품 믹스커피를 애용한다. 애용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그래도 보급소대장인 김철영 상사가 싸구려 원두를 사와서 그들도 나름 원두커피 마신다고 자위는 하고 있지만 솔직히 느끼는 감정은 다를 거다.
 그래도 김 하사가 원두 기계를 못 쓰게 하는 것은 아니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것이리라.
 여하튼, 가볍게 루왁 커피를 한 잔 마신 김 하사는 스스로 일을 시작한다.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일일 계획서도 본인이 직접 뽑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직접 체크한다.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서류 작업이나 기본적인 확인만 작업할 뿐, 실질적인 확인은 김 하사가 전부 하기 때문에 일에 대해서 부담감이 전혀 없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 현진식 상병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반면, 현진식 상병의 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애써 김 하사식 일처리를 외면하며 어지간한 일들은 전부 현진식 상병에게 짬시켜 버렸다.
 심지어 나하고 김 하사가 자리를 비우거나 하면 그때다 싶어서 현진식 상병이 실수한 것들을 쏘아대니 오죽하면 현진식 상병이 나한테 가급적 행정반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겠는가?
 우리 소대 병사들은 취사병이라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점호 한 시간 전에 돌아온다.
 그런 탓에 사실 보급중대와는 같은 중대라는 느낌이 크진 않다.
 그래도 현진식 상병은 하루 중 꽤 긴 시간을 붙어 있기 때문에 나하고는 꽤 친한 편이다.
 창고병에서 무릎 문제로 행정병으로 차출되었을 때 현진식 상병은 ‘드디어 밥 안 한다!’라고 좋아했다.
 그러나 막상 행정병이 돼서 경리, 정작, 인사, 군수에 더해 간부 일까지 다 하다 보니 요새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헤이, 박격포, 오늘 메뉴 뭐야?”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김 하사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메뉴를 물었다. 김 하사가 돈이 많기 때문에 짬밥은 안 먹고, 항상 고급스러운 것만 먹을 거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식성은 잡식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고급스러운 것‘도’ 먹는다.
 “오늘 무나물에 감자양파찌개에 김치에 맛김입니다.”
 “하, 짬밥 쓰레기네. 야, 일단 밥 먹으러 나가자. 선배님들 저희 밥 먹고 오겠습니다.”
 “어, 그, 그래.”
 보급부소대장 장민구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현진식 상병은 나를 꽤나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점심시간이 되면 칼같이 나가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사무실로 돌아오는 우리 취사소대와는 달리 보급소대는 밥을 최대한 빨리 먹고 전화대기까지 해야 한다.
 같은 근무지에 천국과 지옥이 양존하는 우리 중대 행정실이다.
 “짬 드실 겁니까?”
 “야, 그냥 간부식당 가자.”
 계룡대 본청에는 간부식당이 존재하는데, 병사식당으로 가기 힘든 본청 근무 병사들은 간부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나는 본청 출입증이 없어서 간부식당에서 밥을 먹을 순 없다.
 하지만 김 하사 덕분에 종종 병사식당 밥이 답이 없으면 간부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다.
 “오늘 양식 챱스테이크 나옵니다.”
 “그래? 콜!”
 김 하사는 나에게 어깨를 걸더니 룰루랄라 하면서 본청으로 나를 이끌었다.
 잠깐 김 하사에 관해 설명하고 가자.
 김 하사의 키는 190센티다.
 군인이라 머리를 기를 수 없기 때문에 빡빡 민 머리, 쌍꺼풀이 진 눈이 특징이다. 성격 자체가 굉장히 대범하고, 불의를 참지 못할 수 있는 금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꽤 많은 간부들이 그를 껄끄럽게 여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친한 간부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
 본청 간부식당 관리관인 이창모 중사는 김 하사와 굉장히 친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 김 하사는 술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
 이창모 중사 역시 술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오죽하면 당직 설 때 보온병에 술을 담아 와서 새벽에 몰래 한잔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여, 정균이 왔어?”
 간부식당에 가자 이창모 중사가 김 하사를 반가이 맞아준다.
 김 하사와 친하다 보니 이창모 중사도 나에게 꽤나 친절한 편이다.
 “선배님, 병사식당 짬이 너무해서 왔어요. 밥 좀 먹고 가도 되죠?”
 “당연하지! 사무실 내 책상에 식권 있으니까 그거 들고 가서 내고 먹어. 안 내고 먹으면 주변에서 지랄할 테니까, 그냥 그거 내면 돼.”
 “감사합니다!”
 나랑 김 하사는 간부식당 사무실에 들어가서 식권을 들고 사천 원을 두고 나왔다.
 공짜로 먹지는 않는 게 김 하사다.
 나오는 길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이창모 중사와는 사이가 아주 좋지만 일부 취사군무원들은 김 하사를 굉장히 싫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취사군무원들 중 일부는 퇴근할 때마다 자동차의 차체가 무거워진다.
 왜냐고?
 취사군무원들이 퇴근할 때마다 식용유, 고추장, 된장, 맛스타, 다시다 등 군내에서 쓸 식자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경우가 흔했다.
 장군식당 쪽은 워낙 들어가는 식자재가 적어서 거의 불가능하지만, 간부식당이나 병사식당, 특히 병사식당 쪽은 군무원들이 손을 대는 게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김 하사는 그 사실을 알고 눈이 돌아갔고, 해당 군무원들에게 찾아가 ‘군법무관 한 번 보실라우?’를 시전했다.
 그날 이후, 군무원들은 깨갱하며 ‘병사 것은 내 것’을 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공짜로 먹던 것들을 자기 집에서 사먹어야 하게 되었으니 군무원이 부들부들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특히 병사식당 군무원에게 꽤 많은 양을 상납받던 간부식당 행정군무원 오석훈은 김 하사를 보면 아주 이를 간다.
 하지만 어쩌랴. 오석훈이 가진 최고 인맥이 원스타인데, 그 정도로는 김 하사의 털 하나 건드릴 수 없다.
 사실 오석훈이 인맥을 동원해서 김 하사를 엿 먹이려고 한 사실이 있는데, 최근 김 하사가 말해줘서 나도 알았다.
 결과는 역 엿이었지만 말이다.
 “보면 군대도 식자재가 그리 나쁜 게 들어오는 건 아니라니까?”
 김 하사는 맛있게 챱스테이크를 씹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보면 나하고 별다를 게 없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잘 와 닿지 않는다.
 “병사식당에서도 들어보면 꽤 괜찮은 품질이라고 합니다. 근데 여기서 가져가고 저기서 가져가고 하는 게 문제였다고 하더라구요.”
 “개새끼들이지. 지들이 월급받은 걸로 사 처먹으면 되지, 병사 애들한테 나온 부식을 빼돌려? 박 군무원 알지? 저번에 보니까 맛스타에 건빵에 아주 박스채로 가져가려고 하더라고?”
 “어라? 그 군무원 또 그랬습니까?”
 “그렇다니까. 그거 가져가서 무슨 집안에 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 조만간 퇴직서 낼 거야.”
 “역시 우리 하사님!”
 “나 진짜 깜짝 놀랐다? 자기 자식을 데려와서 밥 해 먹이는 거 보고 진짜 이해 안 갔어. 그만큼 병사 몫도 사라지는 거 아냐.”
 “그러니까 말입니다. 밥 안 먹는 애들 덕분에 부식이나 그런 거 꽤나 남을 텐데 항상 없는 게 이상했습니다.”
 “그거 남는 거는 먹어도 취사병 애들이 먹는 거야. 떡 장사가 떡 하나 더 먹는다고 문제 되냐? 그런데 적지 않은 돈 받고 있는 군무원들이 그거 빼돌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관리관들도 어느 정도 빼돌릴 겁니다.”
 “관리관들은 빼돌리는 것보다 관리관 선배들이 내놓으라고 하니까 별수 없는 거겠지. 그것도 손을 댈까 하다가 이해할 만한 수준이라 그냥 냅뒀어.”
 “흐흐흐, 인정입니까?”
 “아니, 너무 세세한 곳까지 들어가는 것도 꽤 귀찮은 일이거든. 모르지, 또. 내 성격 자체가 좀 변화무쌍 아니냐?”
 “맞습니다. 흐흐흐”
 밥 먹고 본청에 있는 카페에서 생과일주스 한 잔씩 마시고 행정실로 돌아가니 어느새 12시 50분이다.
 이 닦고 세수 한 번 하고 근무 시작하면 된다.
 소대장이랑 부소대장은 자리에 없고, 현진식 상병은 병사들 휴가증이랑 외박증에 관인이랑 도장 찍느라 정신이 없다.
 “진식아, 이거 먹어라.”
 현진식 상병용으로 사온 키위주스다. 현진식 상병은 감동한 표정으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연신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
 “하, 진짜 김정균 하사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소대장이랑 부소대장이 자리에 없으니 하소연이 나오나 보다.
 “내가 특이한 거니까 너무 부러워하지는 마. 이번 주말에 한가하냐?”
 “이번 주말은 따로 행정실 안 나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격포 데리고 사우나 갔다가 맥주 한잔 때리자. 그러니까 기운 내, 임마.”
 “감사합니다!”
 
 * * *
 
 부대 특성상 주말에 간부나 군무원의 차를 타고 외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김 하사는 간부들이 껄끄럽게 생각은 하고 있지만, 김 하사가 일을 워낙 잘하고, 또 적당히 당근을 뿌리기 때문에 김 하사가 하는 일 자체에 태클을 거는 일은 극히 없다.
 물론 김 하사에 대해 잘 모를 때 태클을 건 사람들은 존재한다.
 아무튼, 김 하사가 하는 일 중에 재밌는 것이 바로 ‘은행업’이다.
 김 하사는 부대 간부나 군무원들에게 계약서만 쓴다면 은행 보통예금 통장 이자율로 돈을 빌려준다.
 심지어 억 단위의 돈도 담보만 맡기면 빌려주니 이것은 꿈만 같은 일이다.
 중대장도 이번에 차 뽑을 때 김 하사한테 3천만 원을 빌렸다.
 이 외에도 아내 몰래 쓰는 유흥비로 김 하사한테 돈을 빌린 간부나 군무원도 많다.
 “김 하사님을 욕하는 데도 돈을 빌려줍니까?”
 “적군이 나의 뒤통수를 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법이야. 뭐, 그 돈 다 떼인다고 해도 기분 나쁠 것도 없고 말이야.”
 돈이 많으니 대범해진다고 느꼈던 대화였다.
 
 * * *
 
 산전수전 끝에 별을 달고 본부에 발령받은 박대만 준장은 요새 들어서 살판이 났다.
 출근해서 커피 좀 마시고, 근무 시간 동안 ‘운빨 마블’이나 좀 하다가 밑에 병사들이 일정표를 뽑아주면 회의나 좀 참석하면 된다.
 할 일은 밑의 병사나 비서인 신 소령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말 그대로 회의에 얼굴 좀 비추고, 훈련 때 각 잡은 군복만 입어 주면 된다.
 아주 가∼끔, 밑의 병사들에게 ‘요새 힘들지?’라고 하면서 포상휴가 한 장 던져주면 병사들은 제갈량을 얻은 유비의 표정을 지으며 감격해한다.
 신 소령에게도 열심히 하면 장기 확정 지어줄 테니 잘하라고 하니, 알아서 일을 잘 해결한다.
 이후, 퇴근하면 본청 영관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한다.
 비록 준장이지만, 연이은 진급 실패로 인해 짬이 말년에 다다른 준장이다.
 야전 대대장 시절 때 부대 앞 군장점 사장한테 접대 좀 받고, 부대 내 군장병 없애 버렸다가 사단 마음의 소리에 찔려서 평가점수가 확 잘린 게 좀 컸다.
 그래도 미친 듯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사단장 올 때마다 열심히 혓바닥에 기름칠한 결과, 천신만고 끝에 별을 달 수 있었다.
 오죽하면 병사들 사이에서 박대만의 별명이 불꽃꼽장 박대만이었을까?
 진급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마치 모 만화의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생긴 별명이었다. 이제는 전역할 때까지 진급 욕심을 버리고 편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
 퇴근하고, 혹은 주말에 골프장으로 가면 투스타나 쓰리스타들도 자신에게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대하는 것이 요새는 아주 즐겁다.
 그리고 자신이 골프를 치기만 하면 짜릿한 한 홀 승을 하니 요즘 들어서는 군인이 된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특히 골프장 관리병 중에 프로 골퍼 출신이 한 명 있는데, 어찌나 아부를 잘하고 잘 가르쳐 주는지 요새 그 녀석을 끼고 골프를 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골프를 치러 간 박대만 준장은 골프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야, 저거 뭐냐?”
 그가 가리킨 것은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김정균 하사와 그 옆에서 보조를 하고 있는 박격포 일병이었다.
 보면서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기에 옆에 있는 캐디한테 물은 것이다.
 “골프 치는 하사와 일병······인 것 같습니다.”
 캐디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자,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군 골프장은 명목상으로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평일에는 민간인도 이용할 수 있으며, 군인들도 계급에 상관없이 골프를 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계룡대가 어디인가? 본청에 모인 별 개수만 따져도 백 개를 가볍게 넘는 곳이며, 그런 곳인 만큼 골프장은 별들의 사교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좀 더 쉽게 비유해 보자.
 병사들 간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곳이라면 체력단련실은 상병 이상인 곳이 많다.
 주로 그런 이유는 고참들의 이유 없는 가스다. 사실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운동하고자 하는 인원은 많은 데 체력단련실의 기구는 정말이지 적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악습을 만들어 인원을 제한하는 것이다.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계룡대에 있는 간부 숫자는 몇 명일까?
 그들이 골프에 관심이 많다면, 자연히 골프장에 있는 별들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또한 이러한 행위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면 자연스럽게 암묵적인 출입 가능 계급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령쯤 되어야 조심스럽게 발을 붙일 수가 있는 법이고, 별을 달아야 자연스럽게 출입이 가능해진다.
 중령 이하로는 윗사람이 ‘우리 골프나 치러 가지?’라고 하면 ‘아이구,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가는 것이 바로 골프장인 것이다.
 거의 별들만 출입하다 보니 골프장 관리병은 전군 보직 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꿀보직이다.
 실제로 골프장 관리병들은 프로 골퍼, 세미프로, 투어 출신 등으로 이루어져 간부 및 간부 사모들의 골프 교육에 힘쓰고 있다.
 당연히 힘을 쓰는 사람들 옆에서 힘을 보태다 보니 해당 병사들은 이따금씩 양주, 치킨 등을 몰래 얻어 마시기도 한다.
 그들끼리만 본다면 윈―윈이다.
 하지만, 전방에서 승진에 목맨 징계기록 있는 중대장 밑에서 미친 듯이 진흙탕을 구르는 보병들 입장에서 한 번 보자.
 이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차별인 셈이다.
 아무튼 박대만 준장은 김 하사와 박격포 일병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윽고 그 의심은 예수님에게 물어보니 ‘의심하지 말라, 진실은 널 속이지 않을지어다’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크흠!”
 이내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박대만 준장은 캐디에게 말했다.
 “캐디야, 저 하사한테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한번 물어보고 와라. 설마 혼자 오진 않았겠지.”
 혹시나 자신보다 몇 안 되는 짬 높은 선배가 데리고 왔을 수도 있으니 박대만 준장은 캐디를 먼저 보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대대장 때 군장점 사건이 발각된 이후로 해당 속담을 각골하며 살고 있는 박대만 준장이었기에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때로는 돌다리를 두드린 것 때문에 건너다가 무너지는 법이다.
 
 * * *
 
 “김 하사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계룡대의 성지요, 주말만 되면 1등성 열 개는 우습게 모이고, 6등성까지 포함하면 수십 개는 가볍게 모인다는 별들의 성지요, 은하수인 골프장을 가자고 김 하사가 말한 것이다.
 “뭘 놀래? 내가 가면 안 되는 곳 가자고 했냐? 어차피 다같이 이용할 수 있는 게 골프장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전 간부가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까지 하달되었는데 뭐가 문제야? 너야 골프 치는 게 아니라 옆에서 보조하는 거니까 전혀 문제가 없을 테고 말이야.”
 아주 자연스럽게,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김 하사의 눈은 마치 ‘우웅? 암묵적인 출입 계급? 그건 먹는 건가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김 하사의 충복을 자처하고 있지만, 별들이 시즈모드 하고 있는 골프장에 일개 병사 하나가 어떻게 간다는 말인가.
 마치 사막 한복판, 사방에서 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마적 떼를 꼬챙이 하나 들고 홀로 상대해야만 하는, 삼국지에서 엄백호로 손책, 여포, 조조, 유요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대대장 싸대기를 때리고 도망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정도의 미션이다.
 “야, 걱정하지 마. 지들이 내린 지시 그대로 행해 주겠다는 데 뭐가 문제야?”
 “으으······. 알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김 하사를 따랐다.
 따르지 않자니 평상시 나에게 그 누구보다 잘해주는 김 하사였기에 도저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범법을 행하자는 것도 아니고 규정 내에 있는 일을 행하자고 하는 것이니 더욱더 말이다.
 사실 김 하사가 나한테 팬티를 벗으라고 해도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김 하사가 나한테 워낙 잘해주다 보니 이미 중대 내에서는 나와 김 하사를 상대로 커플 기믹을 넣기도 하다.
 저번에는 화장실에서 나와 김 하사를 대상으로 쓴 BL소설까지 벽에 써 있던 걸 내가 빡빡 문질러서 겨우 지웠다.
 뭐, 실제로 벗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로 김 하사가 나에게 그만큼 잘해준다는 거다.
 우리 중대 막사 내무실 중에 LED 최신 TV가 있는 것은 우리 내무실밖에 없으며, 기증형식으로 최신형 게임기들 역시 내무실에 반입되어 있다.
 오죽하면 보급소대 행정병 현진식 상병이 자기도 행정병이니까 우리 내무실에서 생활하면 안 되겠냐고 허구한 날 보급소대장한테 이야기할까.
 물론 보급소대장이 자존심 때문에 허락을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김 하사가 살고 있는 BEQ의 주차장으로 간 뒤, 우리는 김 하사의 삐까번쩍한 밴틀리에 올랐다.
 사실 김 하사의 차는 밴틀리 말고도 몇 대 더 있지만 대대장이 김 하사에게 명령(을 빙자한 애원)으로 BEQ 주차장 공간을 너무 차지한다 하여 밴틀리만 들고 온 것이다.
 나도 김 하사의 본가에 가본 적은 없지만 김 하사가 말하길 자신은 주차 공간이 아니라 아예 주차장을 만들어서 쓰고 있고, 전문적인 차량 관리원까지 다섯 명이나 고용하고 있다고 하니 김 하사의 재력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물론 주말에 외출 나갈 때마다 타기는 하지만 탈 때마다 느낌이 새롭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지만 밴틀리가 여러 대 있는 것은 아니겠지?
 밴틀리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프장에 도착했다.
 안내병이 나왔는데, 안내병은 생전 처음 보는 듯 밴틀리를 보자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김 하사를 보자 그 입이 벌린 만큼 더 벌어졌다가 광속으로 닫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골프 치러 왔지, 무슨 일로 왔겠냐. 자리 있지?”
 김 하사의 당당한 말에 안내병은 잠깐(0.1초?) 생각하다가 김 하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다음에 안내센터로 들어갔다.
 밖에서 바라보니 유리창으로 간부 하나가 우리를 보더니 약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삼 분 정도 기다리자 안내병은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야, 담배 피우냐?”
 “예? 예, 피웁니다.”
 “그래? 잠깐 기다려라.”
 김 하사는 트렁크에 넣어뒀던 고급 시가 한 상자를 안내병에게 건넸다.
 고급스러운 가죽 케이스에 다섯 개가 들어 있는 시가다.
 김 하사가 흡연하는 병사나 간부들을 처음 만날 때 선물용으로 종종 쓰는 물건이다.
 말이 선물용이지, 나도 처음 가격을 들었을 때 놀랐다.
 서민 흡연자가 쓰기에는 생일에나 한 번 피울 만한 물건이다.
 아니, 생일조차도 그 가격만큼 담배를 사주는 것을 좋아할 것 같다.
 “속담배 피우지 말고, 입담배 펴라. 시가는 속담배 피우는 거 아니다.”
 케이스를 열어본 안내병은 이내 감격하여 마치 쓰리스타에게 경례하듯이 김 하사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김 하사가 들어가고, 내가 힐끗 돌아보자 안내병은 희희낙락하며 케이스를 연신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나는 흡연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느낌은 알 수 없겠지만, 게이머로 비유한다면 구하기 힘든 한정판 게임을 선물받은 것과 비슷하려나?
 김 하사는 프로 골퍼는 아니지만 골프를 매우 잘 친다.
 당연한 이야기다. 김 하사가 마음만 먹으면 프로 골퍼를 순서대로 초청해서 24시간 밀착 강습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프로에 비해서는 ‘상당히’ 손색이야 있겠지만 적어도 어지간한 일반인들은 가볍게 누를 테고, 개인적인 예상이지만 아마추어와는 좀 비슷하지 않을까?
 최상급 골프채 상표 업체에서 한 질만 만들어 낸다는 골프용품을 들고 있는 김 하사의 모습은 여타 간부들과는 차이가 난다.
 아까 전 차 안에서 김 하사가 말해 주길 글리프스에서 비밀리에 한 세트씩만 만드는 한정 골프용품이라는데 그 가격이 무려 60억을 넘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 김 하사는 60억을 몸에 두르고 있다는 거다.
 국방부에서 매긴 가격을 생각해도, 군화를 집어넣고 생각해도 십만 원이 넘지 않는 나와 비교하면 무려 6만 배나 차이가 나는 옷을 김 하사는 두르고 있다.
 이쯤 되면 놀랍지도 않다. 뭐, 내가 무언가를 부러워하는 경향이 적은 성격인 탓도 있겠지만, 상식을 초월하는 존재를 옆에서 끼고 있다 보면 놀라지 않을 때도 존재 한다.
 솔직히, 놀라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일 테니까.
 하여튼 김 하사는 힘차게 첫 타를 날렸고, 골프공은 매끄럽게 날아갔다.
 “김 하사님, 나이스 샷!”
 어디서 본 느낌은 있어서 나는 김 하사에게 박수를 쳤고, 김 하사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야 골프의 골 자도 모르지만 적어도 김 하사와 함께 있는 시간을 즐겁게 여길 줄 안다.
 김 하사 역시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자신의 태블릿 피시를 나에게 건네고는 가지고 놀라고 했다.
 어지간한 유료게임은 전부 깔려 있고, 하고 싶은 과금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라고 허락까지 해준 터라 김 하사의 태블릿 피시는 나에게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맞먹는 물건이다.
 아마, 내가 5000만 원 과금을 해도 김 하사는 ‘어, 그래?’ 하고 넘기겠지.
 그렇게 즐겁게 한 십오 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캐디 하나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무언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이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 * *
 
 “저, 죄송합니다만 혼자 오셨습니까?”
 캐디병의 물음이었다.
 “아니, 왜?”
 김 하사는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랑 오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얘랑 왔잖아.”
 김 하사는 나를 가리켰고, 캐디는 약간 표정이 구겨졌다.
 그걸 김 하사가 놓칠 리가 없다. 평범한 인간과는 궤를 달리하는 김 하사가 내가 보는 것을 못 볼 리가.
 “왜, 뭐 문제 있어?”
 “아, 아닙니다. 수고하십시오.”
 캐디병은 그냥 뒤돌아섰다.
 자, 여기서 이상한 점을 생각해 보자.
 이유가 어쨌든 하사도 간부다.
 계룡대라는 부대의 특성상 그냥 지나다닐 때에는 경례를 안 한다고 해도, 한 간부를 지목해서 왔을 때는 응당 경례를 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하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야, 거기 서.”
 김 하사는 병사를 멈춰 세웠다.
 그러자 캐디병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예?”
 “너, 경례도 안 하고 가냐?”
 “아, 예······. 충성.”
 캐디병은 자신 손을 올렸다가 김 하사의 답례도 받지 않고 그냥 내린 뒤 다시 갈 길을 가려고 했다.
 “야.”
 “자꾸, 왜 그러십니까?”
 “자, 꾸, 왜, 그, 러, 십, 니, 까?”
 김 하사는 상당히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캐디병은 여유 만만한 표정이었다. ‘감히 하사 따위가 날 귀찮게 해?’라는 표정이랄까?
 “지금 네가 장군들 뒤치다꺼리해서 귀여움 좀 받는다고 해서 네가 지금 장군이라도 된 거라고 생각하냐?”
 “······.”
 캐디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하사 따위가 골프장에 왔다고 무언가 심기가 불편한 모양인데, 지금 전군에 전간부의 골프장 이용을 권장하는 지시 하달된 거 몰라? 골프장을 관리하는 병사라면 응당 누가 오든지 간에 친절함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지금 간부 계급에 따라서 차별하는 거냐?”
 딴엔 사실이었다.
 관리병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방금과 같은 지시가 하달된 게 짜증나겠지.
 애초에 관리병들 자체가 일반 병사가 아니라 골퍼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그들은 장군들과 붙어먹고 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면 재미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육/해/공 병사 총 세 명이 포즈를 잡고 서 있는 사진을 찍었는데, 거기에 소총수 출신이 보면 기가 찰 내용이 하나 쓰여 있다.
 ‘장군들 사모님들이 자기 남편들 잘 부탁한다고 양주도 주고, 치킨과 피자도 사주곤 했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게 힘들었다’라는 내용이다.
 생각해 보라.
 소총수들, 특히 눈 덮인 산에서 힘들게 근무하는 소총수들은 만약 눈이 심하게 오게 되면 PX물품마저 동이 나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특히 식사 추진까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눈을 파든가, 파지 못하면 조미료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무국이나 먹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힘들다니?
 지금 나도 현역 군인이지만 친구들의 아버지와 형, 그리고 선배들에게서 군대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인터넷에서 밀리터리 게시판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군대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안다.
 나 역시 김 하사를 만났기에 엄청나게 편한 군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서 결코 다른 병사들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김 하사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낼 뿐이다.
 각설하자면, 골프장 관리병들은 자신들에게 떡고물도 제대로 줄 수 없는 초중급 간부들이 골프장에 오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맘씨 좋은(?) 장군 한 명만 잘 낚으면 먹을 것부터 시작해서 포상휴가까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병사들은 장군 사모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를 몰래 하기도 한다는 풍문은 있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본 것은 없다.
 “제가 뭐 딱히 차별한 것이 있습니까?”
 “당연하지, 아까 네가 나에게 한 질문 자체가 초급 간부가 여기에 왜 왔냐는 식의 질문이지. 그게 차별 아닌가? 그리고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골프장 이용 액수는 전적으로 골프장에 재투자되고, 남는 액수는 군 복지에 쓰여. 뭐, 간부 99퍼센트에 병사 1퍼센트로 투자되는 말도 안 되는 군 복지이긴 하지만 적어도 넌 간부 쪽에 붙어먹는 녀석이니 골프장 이용객이 늘면 나쁠 건 없잖아? 그런데 넌 네가 하고 있는 일에 긍지도 없고, 심지어 의식조차도 없어. 이게 문제가 아니면 뭘까?”
 조목조목 설명하는 김 하사의 말에 캐디병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마 김 하사가 간부가 아니었다면 캐디병이 큰소리 한 번 쳤을 거다. 그렇게 김 하사가 말을 끝낸 순간 저 멀리서 간부 하나가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스타다.
 “충! 성!”
 “충성.”
 보면 알겠지만 전자는 내 목소리, 후자는 김 하사의 목소리다.
 다가온 원스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캐디병에게 골프장 관리병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김 하사가 대신 대답했다.
 “난 너에게 물은 게 아니야.”
 원스타가 왜 나에게 물었을까?
 그건 아주 간단하다.
 김 하사는 어찌 됐든 하사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인 나에게 압박을 줘서 하사라는 직책의 한계를 느끼게 하려는 고도의 치졸한 수작이다.
 하지만 난 겁먹지 않았다. 이런 일 한두 번 겪었겠는가?
 우리 중대 간부들에게 이골이 나도록 겪은 일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억지로 설명할 생각 없다.
 “지금 장난하나?”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순간 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름을 보니 박대만이구만.
 내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을 제대로 못해야 화살을 증폭시켜 김 하사에게 날릴 텐데, 내가 그 수에 당하지 않자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결국 박대만 준장의 화법은 아주 치졸한, 우리나라 전통 수법으로 변했다.
 “자네 말투가 그게 뭔가?”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버릇없게 간부에게 대답하라고 배웠나?”
 “어떻게 버릇없는지 알려주시면 고치겠습니다.”
 “뭐, 뭐?”
 “어떻게 버릇 없는 것인지 알려주시면 고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박대만 준장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하긴, 이런 경우를 겪어 본 적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난 김 하사와 생활하면서 이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배웠다.
 적어도 간부에게서 병사가 폭언을 들을 이유는 없다.
 만약 간부가 꼬투리를 잡는다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너 지금 나에게 말대꾸하는 거냐?”
 결국 말투가 바뀌었다.
 “대답을 원하시기에 대답했을 뿐입니다. 대답을 원치 않으시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면 그 순간 박대만 준장은 꼬투리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난 당하지 않는다. 난 김 하사를 신뢰한다. 김 하사가 내 옆에 있는 순간만큼은 내가 하는 정당한 발언은 그 힘을 얻는다.
 “자네, 병사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겐가?”
 결국 박 준장의 화살은 김 하사에게로 날아갔다.
 옆에서 희희낙락하던 캐디병은 나의 반응에 뜨악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실소(失笑)를 머금고 바라보았다.
 김 하사가 ‘털리는’ 장면을 감상하기 위해서이리라.
 “어떤 교육 말씀이십니까?”
 “밑의 병사가 간부에게 말대답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겐가?”
 “말대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부 박대만 준장님이 물어보신 것 아닙니까?”
 “뭐, 뭐야?”
 “병사가 정당한 명령에 부당한 대답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말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말대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면 애당초 질문을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김 하사는 꼬박꼬박 존칭을 썼다.
 기본적으로 계급 사회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김 하사도 인지하기 때문에 그 틀을 깨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네 지금 항명하는 겐가?”
 “항명이란 군에 관련된 정당한 명령을 듣지 않을 때에 쓰이는 말입니다. 지금은 일과가 지난 시간이고, 훈련과 관련된 특수한 상태도 아니며, 군에 관련된 명령을 내리신 것도 아닙니다.”
 “······.”
 박대만 준장은 순간 정신이 멍해졌는지 말이 없어졌다.
 대신 관자놀이에 힘줄이 불끈 튀어나오며 다시 말을 이어냈다.
 “자네는 상관을 보고서도 경례 태도가 그게 뭔가?”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허, 참! 상관을 보고서도, 그것도 까마득한 계, 급, 차, 이가 있는 상관을 보고서도 고작 낸다는 게 그런 목소리인가?”
 “평상시에도 큰 목소리로 경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어라 하시는 편이십니까?”
 “뭐?”
 “육규 그 어떠한 곳에도 경례를 큰 목소리로 하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경례하는 자세는 나와 있을지언정 경례할 때 목소리를 몇 데시벨 이상을 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말입니다. 군사 최강국 미군조차도 경례할 때 구령은 없습니다. 만약 박대만 준장님께서 대한민국 군인들에 대한 경례 태도를 문제 삼고 계신 거라면 저에게 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본부에 건의하셔야 할 내용입니다.”
 “자네, 지금 나를 기만하고 있는 건가?”
 “아닙니다. 기만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를 속일 때 쓰는 말입니다. 제가 하는 말들은 모두 진실이며 거짓이 섞여 있지 않습니다.”
 “지금 경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거 아닌가!”
 “경례 태도가 문제라면 지금 캐디병부터 바로잡으셔야 하겠습니다. 캐디병은 간부인 저를 보고서도 올 때도 갈 때도 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 이런 개새끼가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결국 박대만 준장은 분통을 터뜨리고 폭언을 내뱉었다.
 김 하사와 나같이 대답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겠는가?
 사실 나와 김 하사가 잘못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신기한 곳이다.
 간부가 병사에게 반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다들 느낀다.
 그런데 결국 병사는 간부들의 월급의 근원인 세금을 낸다. 또한 병사들은 의무병이되 길어도 2년 안에 전역한다.
 2년이 하루 남은 말년병장에게 폭언은 해도, 2년하고 하루가 지난 예비군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게 간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간부가 병사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관행일까?
 적어도 규정에 간부가 병사에게 반말 쓰라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간부들 중 상당수가 병사들에게 자연스레 반말과 폭언을 쓴다.
 나조차도 김 하사를 믿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김 하사에게는 정의를 바로잡을 금력이 있으니까 말이다.
 “어이, 박 준장, 무슨 일이야?”
 멀리서 머리가 하얀 쓰리스타가 다가왔다.
 “충! 성!” [나]
 “충ㅅ······.” [캐디]
 “충성.” [김 하사]
 만약 박대만 준장의 말대로라면 지금 캐디병은 능지처참을 해도 모자란다.
 하지만 박대만 준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쓰리스타에게 대답했다.
 “아, 선배님. 지금 버릇없는 하사 버릇 좀 고쳐주려던 참이었습니다.”
 “뭐?”
 박대만 준장이 공손하게 전지문 중장에게 이야기했다.
 박대만 준장의 태도로 보아 임관 순서도 전지문 중장이 앞서는 듯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김 하사를 말없이 바라보는 전지문 중장의 모습에 다소 위화감이 드는 것은 착각일까?
 전지문 중장은 김 하사를 보다가 박 준장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골프장 자주 오는 장성들끼리 술 한잔 하기로 했는데 자네도 가지? 지금 다같이 가려던 참에 자네가 보여서 온 거야. 어차피 초급 간부야 나중에 다시 찾으면 될 일이니까 가자구.”
 “그, 그렇지만······.”
 “만약 안 오면 오 소장이 자네 가만 안 둘 걸? 그렇지 않아도 자네 준장 달고 거드름 피운다고 벼르고 있는 거 알잖아.”
 “아, 알겠습니다.”
 순간 으드득 하는 소리가 박 준장에게서 들려왔다.
 아마 조만간 어느 분야에서든지 간에 꼬장이 오겠지. 저 간부는 어떤 꼬장을 부릴지 기대가 된다.
 “야, 뭐 해. 넌 안 가냐?”
 김 하사의 말에 캐디는 우물쭈물했다. 그러다가 입을 떼었다.
 “그, 혹시 그 골프채 글리프스 맞습니까?”
 “어, 왜.”
 김 하사의 대답에 캐디는 약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무언가 확인하고 싶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모델 중에는 그런 모양이 없는 데 혹시 모델명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모델명이 없지. 개인 한정품이니까.”
 “예, 예?”
 캐디병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까 김 하사의 태블릿 피시로 검색해 본 결과 글리프스 고급 모델은 일억 원을 넘어간다. 그런데 개인 한정품이라니? 심지어 김 하사의 것은 비밀 한정품이다.
 “궁금증 풀렸으면 가라.”
 우물쭈물하던 캐디병은 아쉽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만약 캐디병이 조금이라도 태도가 좋았다면 김 하사가 스윙을 칠 기회를 줬을 거다.
 하지만 김 하사는 기회주의자와 약자 멸시를 하는 자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김 하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할 때는 반드시 나도 나보다 더 강한 사람에게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해. 그렇지 않고 힘을 휘두르고, 강자에게 자신이 당하는 것을 부당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인간이라 할 수 없어.”
 
 나 역시 공감한다. 나도 김 하사처럼 살 수 있을까?
 
 
 # 박대만 준장의 가스
 
 
 박대만 준장은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감히 하사 나부랭이가 자신에게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말을 한단 말인가?
 어제는 전지문 중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오늘 박대만 준장은 출근하자마자 신 소령을 시켜 김정균 하사가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라고 했다.
 아침부터 얼굴을 씩씩거리며 출근하는, 평소와 다른 모습에 신 소령과 당번병은 찔끔거리며 박 준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박대만 준장님, 지원대대 지원중대 취사부소대장이라고 하더군요. 육군 소속이 아니라 국방부 직할부대 출신이랍니다.”
 “뭐? 국직부대라고? 거기 조직도 좀 가져다주겠나?”
 “알겠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신 소령은 조직도를 프린트해서 박 준장에게 가져다주었다.
 조직도를 본 박 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지원대대장이 육군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같은 육사 출신인데다가, 안면이 꽤 있는 구종석 중령이다.
 박 준장이 행하고자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그리고 아주 효과적이고, 아주 치졸한 방법이다.
 떠오르지 않는가?
 높은 계급이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부대를 뒤집어 놓는 방법.
 군필자라면 누구나 통감할 일이다.
 
 부. 대. 순. 시.
 
 다음 중 가장 나쁜 간부를 골라보아라.
 1. 심심하면 말년병장을 데리고 작업 나가는 행보관
 2. 주말에 오침 안 시켜 주는 당직사관
 3. 병장들에게 가장 밥을 늦게 먹으라고 하는 식당 관리관
 4. 매주 병사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부대에 놀러오는 사단장
 
 다 나쁜 간부이지만 가장 나쁜 간부는 단연코 4번이다.
 그리고 이 4번은 정말 병사들이 좋아서 행하는 간부가 있는 반면에, 자신들이 소∼대대장 시절에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행하는 장성들도 존재했다.
 일설엔 이런 말이 존재한다.
 대대장이 방문하면 산의 낙엽들이 사라지고, 연대장이 방문하면 낙엽이 깔리고, 사단장이 방문하면 산이 사라진다는 말.
 이것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오래 전, 조선시대 때에 이순신 장군님께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말을 한 것처럼 현대 우리나라 군대에는 행보관의 ‘신에게는 아직 열두 명의 병사가 있사옵니다’가 존재하는 법이다.
 사단장이 방문한다고 하면, 우스갯소리로 병사들은 삽 한 자루를 들고 1인당 133마지기의 흙을 갈아엎어야 할 거다.
 그렇게 박대만 준장은 구종석 중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어, 구 중령, 잘 지냈어?”
 ―엇?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본부에 오셨다고 해서 찾아뵈려고 했는데 먼저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하하, 누가 먼저 연락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자네와 같이 밥 한 끼 할까 하는데 시간 있나?”
 ―선배님 말씀이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신도안면에 이번에 새로 생긴 음식점이 괜찮습니다.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야, 뭐 하러 거기까지 나가. 자네가 지원대대장이라고 들었는데 병사들이 무얼 먹나 궁금하기도 하니 육군 병사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어떤가?”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따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그래, 그러자구.”
 박 준장은 잠시 뒤에 있을 복수의 시작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하하!”
 박 준장의 너털웃음에 밖에 있던 신 소령과 당번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상관의 기분에 따라 부하들은 그날 기분이 갈리는 법이다.
 점심시간이 되기 20분 전이 되자 구종석 중령이 찾아왔고, 구종석 중령과 함께 관용 차량을 타고 육군 병사식당으로 향했다.
 
 원래 소규모 부대라면 박 준장이 방문한다고 했을 때 메뉴를 갈아엎었겠지만 이곳은 계룡대다.
 병사식당 하나당 식수 인원이 최대 1,000명까지도 가기 때문에 준장이 순시한다고 해서 메뉴를 절대 바꿀 수 없다.
 다만 병사들은 평소보다 배식을 더 제대로 해야 했고, 관리관의 엄명에 따라 평소라면 준비만 하고 배식 때 열외해야 할 병장 계급들도 시발시발거리면서 안 하던 일까지 하게 되었다.
 “충! 성!”
 식당 관리관의 경례와 함께 박 준장은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메뉴가 당연히 맛있을 리가 없다. 전 군인들이 질색하는 카레, 김치, 계란국 콤보가 나왔고, 지원대대장인 구 중령은 하필이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자기 부대 병사식당의 밥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익히 아는 것이니까 말이다.
 “왜, 그러나? 어서들 들지.”
 박 준장은 수저를 들어 카레를 한술 떴다.
 속으로는 젠장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미소도 떠올랐다.
 이제 밑밥만 깔면 되는 것이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그래, 간은 괜찮아. 그런데 말이야······.”
 박 준장이 말꼬리를 흐리자 구 중령, 식당 관리관, 식당 행정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카레란 게 한입에 먹기 좋아야 하는데 감자나 당근이 너무 큰 거 같아. 좀 더 작게 썰면 좋을 텐데 말이야.”
 “예, 다음부터는 작게 썰도록 하겠습니다.”
 식당 행정병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와락 구겨지는 것을 본 박 준장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의 표정이 구겨진다는 것은 병사들의 불만이 쌓인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종래에 씹어 먹을 김 하사에게로 화살이 향할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벽이 너무 밋밋해. 병사들이 식사하면서 뭔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야. 병사들이 식사를 너무 심심하게 할 것 같아.”
 “예, 예.”
 구 중령은 앵무새처럼 그저 예라는 말을 반복하기만 했고, 식당 행정병은 난데없이 떨어진 날벼락에 아연실색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친 박 준장은 돌아가는 길에 구 중령에게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자네가 관리하는 식당들을 한 번 돌아보고 싶은 데 어떤가? 장군식당은 내가 가봤지만 간부식당이나 병사식당은 못 본 거 같아. 자네가 얼마나 열심히 생활하는지 눈으로 보고 싶어서 그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앞으로 끼니마다 한 군데씩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역시 자네는 내 기분을 잘 맞춰주는구만.”
 “선배님이야말로 저를 언제나 아껴주시니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하하하하”
 두 사람의 웃음이 관용 차량에 울려 퍼졌다.
 
 취사병들이 지옥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점심 해군 병사식당은 난데없는 철퇴를 맞았다.
 원래 해군 병사식당은 세 개의 병사식당 중 가장 맛이 없기로 유명했다.
 그 이유인 즉 해군 병사식당의 관리관의 짬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높아서 누가 클레임을 걸어도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대장이 손님을 모시고 왔기 때문에 박 준장용 식판은 깨끗하게 닦아서 내놓았지만 일반 병사들의 식판은 그야말로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기름에 찌들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노란색 식판도 보일 정도로 해군 병사식당의 식판은 상식을 벗어날 수준이었다.
 육개장에는 기름을 건져내지 않아 휘휘 저어서 뜨지 않으면 국물 반 기름 반일 수준이었고, 밥은 그야말로 떡밥이었다.
 박 준장의 식판에는 그야말로 고르고 골라 펐다고는 하지만 상황은 처참했다.
 주변 병사들의 식판은 노랗지, 병사들이 제대로 먹지도 않고 버려대는 통에 짬통에는 짬이 끊임없이 쌓여갔다.
 그야말로 표적 순시를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관리관에게 화살이 쏘아질 만한 수준이었다.
 “허······.”
 박 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표적 순시를 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표적 순시를 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구 중령은 그런 박 준장의 모습을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지나가는 말로 관리관에게 관리를 요청했지만, 그야말로 관리관이 자신의 말을 똥으로 들은 것이다.
 더불어 순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신이나 대대 주임원사에게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크흠, 갑자기 속이 별로 좋지 않구만, 이만 일어나지.”
 박 준장이 한 술도 뜨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구 중령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따라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흠, 아닐세. 오늘은 먼저 가겠네.”
 박 준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일부러 연기를 했다. 자신이 이 정도 모습만 보여줘도 나비 효과가 대단할 것이다.
 
 다음 날이 되자 박 준장은 공군 병사식당으로 향했다.
 어제의 일이 나비효과가 컸는지 병사식당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질 정도였다.
 비록 자신이 육군이지만 적어도 대대장이 육군인 이상 자신이 아닌 구 중령, 즉 직속상관인 구 중령에게는 관리관도 병사들도 대하는 태도가 육군에 준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공군 병사식당은 딱히 흠잡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흠은 만들면 된다.
 “여기에서는 병사 몇 명이나 일하나? 아주 맛이 좋구만.”
 메뉴가 치킨이었는데 공군 병사식당의 치킨은 아주 유명해서, 치킨이 나오는 날은 공군 병사식당으로 일부러 찾아오는 병사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원래 타부대에서는 병사가 취사하는 식당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계룡대는 어물쩍 가능하다.
 세 개의 병사식당에서 따로 식수인원이 잡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자신의 식수를 무시하고 원하는 병사식당으로 가면 되는 거다.
 그나마 식당별로 거리가 꽤 되는 편이라 맛을 위해 많이 걷는 병사가 많은 편은 아니다.
 당연히 박 준장도 치킨을 아주 맛있게 먹었고, 일부러 서두를 칭찬으로 넣으며 대답을 끌어냈다.
 고스톱을 쳐서 준장을 단 게 아니다.
 피나는 인맥 관리와 병사들을 갈아서 단 것이 바로 준장이다.
 “예, 현재 열두 명이 있습니다.”
 “오, 자네 휘하 병사들 숫자도 알고 있나?”
 “제가 관리하는 병사들인지라 잘 알고 있어야지요.”
 “허허, 그렇구만. 식당 안을 한번 보고 싶은데 괜찮나?”
 “당연하지요. 들어가시죠.”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 병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배식으로 세 명이 나가 있기 때문에 식당 안에는 아홉 명의 병사가 보여야 한다.
 그런데 한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응? 열한 명밖에 안 보이는 거 같은데?”
 박 준장의 말에 구 중령 역시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관리관, 한 명은 어디 있나?”
 “아, 예······. 그 녀석이 관심병사라서 일부러 일을 안 시키고 식당 내부 내무실에 대기시켜 놨습니다.”
 “관심병사라고? 어디 몸이 안 좋은가?”
 “그건 아닙니다만······.”
 관리관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 와중에 박 준장은 식당 내부에 있는 병사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예 매트리스까지 깔고 퍼질러 자고 있는 병사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박 준장은 의아함과 동시에 쾌재를 불렀다.
 취사병이 일과시간 사이사이에 자는 것은 규정에는 없더라도 보장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트집을 잡을 수 없다.
 하지만 관심병사라는 녀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과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충분히 병력 관리 소홀로 트집을 잡을 수 있는 분야다.
 “관심병사라서 업무에서 잠시 열외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 이 상황은 뭔가?”
 박 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관리관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 그냥 건수만 잡히면 힘들다고 퍼져 버립니다. 이번에는 외박 나가서 여자친구랑 싸웠다고 이 모양이군요.”
 “뭐? 그런 이유로 그냥 퍼질러 잠을 자?”
 주변이 부산스러워지자 잠을 자던 이등병이 쌍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아씨······.”
 
 * * *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눈을 부비며 쌍 소리를 내뱉은 이등병은 눈앞에 별 달린 모자를 쓴 간부가 있는 데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심지어 경례할 생각도 안 한 채 눈만 꿈뻑꿈뻑거리고 있었다.
 “경례 안 하냐!!”
 보다보다 못한 관리관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앞에 대대장과 별이 있는데도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다.
 “충ㅅ······.”
 그나마도 뒷 목소리는 흐리는 이등병의 경례는 박 준장을 다른 이유로도 충분히 화나게 했다.
 하지만 박 준장은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화를 삭이고, 타깃을 조정했다.
 “이 병사 중대장이 누군가?”
 “예, 한상수 소령입니다.”
 “그게 누구지?”
 “예, 삼사 출신 사람이라 잘 모르실 겁니다.”
 “하, 삼사 출신이라 그런가. 정말 병력 관리를 이따위로 하는 건가······. 아무튼 난 가겠어. 점심 잘 먹었네.”
 박 준장은 속으로 쾌재를 지으며 식당을 나섰다.
 등을 돌리고 몇 초 뒤 취사장 안에서는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론 취사장의 열기와 소음으로 바깥에 새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나비효과만 기다리면 된다. 구종석 소령이 중대장에게 화를 낼 테고, 중대장은 당연히 그 빌어먹을 김 하사를 혼낼 것이다.
 그리고 점차 병사들의 불만이 누적되길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점에 헌병대장에게 전화해서 헌병대 주관 마음의 편지를 쓰게 하면 될 것이었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박 준장, 자신의 등장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칫하다가 마음의 편지의 화살이 자신에게 올 수가 있다. 자신은 적당히 빠지고, 내부에 있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서 취사소대를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은근한 불평등을 유도해야 한다.
 군대란 이런 곳이다.
 간부들의 알력 싸움에 병사들이 끼이고, 간부들의 알력 싸움을 대행하다 불쌍한 병사들이 영창을 가거나 기껏 모은 포상휴가를 제한 당한다.
 전역을 하면 민간인이 되는 병사들에게 이따금씩 ‘우리 그래도 2년간 한솥밥 먹었잖아’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행해온 온갖 악습과 비리대행을 눈감아 달라고 하는 간부는 산에 있는 낙엽처럼 많다.
 그리고 예비군이 된 병사들은 모든 것이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혹시라도 자신이 신고한 후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고민해서 신고하기를 주저한다.
 예비군이 각성하지 않는 이상 이 나라의 군대가 개혁되기는 쉽지 않을 거다.
 
 * * *
 
 어느덧 불금이 되었다.
 ‘대한민국 병사들에게 불금이 무슨 소리냐’라고 말할 각성하지 못한 국민이 엄청나게 많을 거다.
 하지만 불금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군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병사들의 주말을 보장하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김 하사의 관사로 가서 신나게 놀다가 점호 직전에 복귀한다.
 김 하사에게 섭섭지 않은 물품들을 제공받은 간부들이 당직을 설 때에는 아예 관사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나의 금요일과 토요일은 군대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다.
 물론 매주 그러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바쁜 일이 없을 때에만 그렇다.
 내무실 선후임들 역시 내가 김 하사와 친하게 지낼수록 내무실로 쏟아지는 김 하사의 은총이 하해와 같기에 오히려 더 종용하기도 한다.
 특히 우리 내무실은 말년병장이 전역할 때 김 하사가 로얄 샬루트 한 병과 소주와 맥주, 보쌈을 공수해 와서 전역 파티를 거하게 시켜주기에 김 하사에 대한 지지도는 140퍼센트에 달한다.
 그렇게 오늘도 김 하사의 관사에서 김 하사가 잠시 외출할 때 컴퓨터에 있는 영상들로 화려한 불꽃축제를 벌일 생각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생각하는 대로만 흘러가겠는가?
 보급소대장과 부소대장은 자체적으로 퇴근해서 이미 바깥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신나게 테니스를 치고 있고, 나와 김 하사는 인트라넷에 올라온 소설들을 보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마침, 중대장님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라? 중대장님, 집에 안 내려가셨습니까?”
 중대장의 본가는 이곳 관사가 아니라 경남 쪽에 있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에 전세객차를 타고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올라온다.
 그런데 그런 중대장이 전세객차를 타러 출발해야 할 시간에 사무실에 들어온 것이다.
 “후, 격포야 커피 한 잔 타봐라. 아니 세 잔.”
 중대장은 사무실 중앙에 있는 손님 접대용 소파의 상석에 앉았고, 김 하사 역시 앉았다.
 나는 머신으로 루왁 세 잔을 뽑아서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았다. 우리 대대에서 김 하사가 루왁 자유이용권을 선사한 것은 나와 중대장 둘뿐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후, 정균아,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말 편하게 하자.”
 “예, 형님. 무슨 일이에요?”
 중대장님이랑 김 하사는 이미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이창모 중사도 김 하사랑 친하기는 하지만 중대장님은 약간 다른 이유로 친하다.
 초창기 김 하사가 전입을 와서 부대의 온갖 비리를 들쑤시고 다닐 때 부대 간부와 군무원 사이에서는 김 하사를 칼로 쑤셔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김 하사가 전입 오기 이전 중대장님은 중대 내의 비리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워낙 군무원들이 가진 빽들이 좋았던지라 어떻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특히 중대장님은 삼사관 학교 출신인 데다가, 나이가 좀 든 상태에서 입교했기 때문에 중령으로 진급을 못 하면 절대로 20년 연금을 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해결하려다가 군무원이 인참부에 있는 빽을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인생이 망해 버리기 때문에 부들부들 떨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김 하사가 왔다.
 김 하사는 자대에 오는 순간 적어도 눈에 뜨이는 비리들을 전부 척결했고, 중대장님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오 상사도 전출시켜 버렸다.
 김 하사의 그러한 행동에 은근한 지지를 보내고, 또 사석에서 자리를 같이하던 중대장님이었기 때문에 김 하사는 중대장님을 좋게 평가했다.
 여러 번의 만남 후에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기로 했고, 덕분에 나 역시 중대장님과 한층 친해지고, 이렇게 셋만 있을 때에는 격식이 거의 없게 있을 수 있었다.
 “아니, 뭔 병신 같은 별 하나가 자기 직할도 아닌데 참견인지 모르겠다.”
 “예?”
 “본부에 박대만이라는 원스타가 있는데, 대대장님 직속 선배인가 봐. 그런데 이번 주 내내 우리 중대 소속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라고.”
 “직속 부대도 아닌데 순찰을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식당 안에 들어가서 관심병사까지 참견을 하는데 아까 전에 대대장실 불려가서 미친 듯이 깨지고 왔다. 하, 육사 놈들끼리 완전 똘똘 뭉쳐서 나 하나 병신 만들 기세야.”
 김 하사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그리고 나도 박대만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시작.
 
 박대만 준장이 그렇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김 하사는 내색하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김 하사가 ‘아, 그 사람이 왜 화를 내냐면요······’라고 말해 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럴 때에는 중대장님을 잘 구슬려서 더욱더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김 하사에게는 정의를 구현할 금력이 있다.
 “그래서 대대장님이 뭐라는데요?”
 “아, 짜증나. 당장 각 식당 전부 환경미화 실시하고, 관심병사들 관리랑 보고 철저히 하고, 병사 관리 제대로 안 한 부소대장 쪼인트 까래.”
 “흠, 원래 취사병들의 관리는 관리관들이 칠십 퍼센트고 저는 자잘한 업무만 하는 건데 저한테 화살이 돌아오는군요. 뭐,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사실상 표적이지 뭐, 넌 하사니까 다른 관리관들보다는 까기 쉽잖아. 그리고 나야 삼사 출신이니까 사정 봐줄 생각 없다는 거고.”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는데요? 어차피 해군식당 쪽이야 예전부터 타 부대에서 원성 많이 들려왔으니까요. 오죽하면 저랑 격포도 육군식당으로 식수 잡아서 먹겠어요. 식판은 누렇게 찌들었지, 국은 기름이 위에 아예 마지노선을 지어놨지.”
 “누군들 하기 싫겠냐. 거기 관리관이 해군인 데다가 짬이 워낙 높아서 말을 쳐들어야 내가 뭘 시키든가 하지.”
 “그냥 이럴 때는 정석대로 하세요. 이성훈 원사한테 환경미화 작업시켰는데 제대로 안 하면 바로 대대에 보고해 버리세요. 만약 대대장님이 형님의 지휘 능력을 문제로 삼으면 쿨하게 인정해 버리세요. 지금 대대장님이 하는 거 보면 형님이 일처리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인사고과를 우선으로 주지는 않을 걸요?”
 “하, 그건 그렇지. 그건 그런데······.”
 중대장님이 말꼬리를 흐렸다.
 장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전역을 해서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죠?”
 “끄응······.”
 “적어도 형님이 바른 일을 행하는데 그 일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되시면 제가 모든 것을 책임져 드릴게요. 형님이 하시고 싶은 대로 일을 처리하세요. 막 나가라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형님이 입대할 때 가졌던 신념대로의 행동이라면 제가 모든 것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한마디로 군인다운 행동을 하다가 장기를 못 가는 불상사가 생기면 미래를 책임져 주겠다는 말이다.
 김 하사는 이런 일에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님을 난 잘 알고 있다.
 “그래, 그래도 일단은 환경미화 작업 실시하고 병사 애들 인성검사 다시 한 번 해보자. 격포야.”
 “예, 중대장님.”
 “어차피 지금 표적된 거 취사소대거든? 네가 그래도 이등병 때부터 해군이랑 공군 애들한테 경례하면서 선후임 관계 맺었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애들 좀 구슬려 봐. 그리고 인성 검사 할 때 애들 문제 있으면 다시 시키지 말고 그냥 그 내용 나한테 다 가져와. 그리고 인성 검사 제외하고서도 병사들 사이에서 고문관으로 찍힌 애 있으면 걔 신상명세서랑 네가 판단하기에 걔가 어떤 인물인지 좀 적어서 가져오고. 이참에 애들 관리 처음부터 한다고 생각해야겠다.”
 “그냥 형님이 하시기보다는 제가 기본적으로 취합하는 게 낫지 않나요? 어차피 취사소대가 표적이면 제가 일선에서 처리하고 알려드리는 게 나을 듯하네요.”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해. 포상휴가 필요하면 내 이름으로 가능한 만큼 발행하고, 내가 사전에 알아야 할 일 있으면 알려주기만 해.”
 중대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대장실로 갔다.
 단순히 중대장님이 김 하사와의 친분만으로 이러한 전권을 주지는 않는다.
 김 하사가 취사소대 부소대장을 맡고 나서 소대 내의 말썽이 현저하게 급감한 데다가 어지간한 검열에서 단 한 차례도 지적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기에 중대장님은 취사소대장이 공석인데도 김철영 상사가 아니라 김 하사에게 소대장 대리를 겸직시키는 것이다.
 “격포야.”
 중대장님이 중대장실로 사라지자 둘밖에 없는 사무실에서 김 하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예.”
 나의 대답에 김 하사가 씨익 웃었다.
 “전쟁이다.”
 
 * * *
 
 “그러네요. 하는 꼬라지 보니까 우리를 직접 공격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피해 주면서 우리가 피해를 입게 하겠다는 거네요.”
 “뭐, 상관없어.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규정대로 해줘야지. 그 준장 규정 엄청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규정대로 해줄 거야.”
 “규정대로요?”
 정확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규정대로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간단하게 기본만 알려줄게. 규정 중에 상급 부대에 건의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시에 차상급 부대로 건의할 수 있는 거 알지?”
 “가능한 건 압니다만, 그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지금부터 식당에서 그 준장이랑 다른 간부들이 요청하는 것들 가능한 만큼 전부 들어줄 거야. 그리고 어려운 것들은 우리 애들한테 마음의 편지 받고 바로 대대에 ‘이런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라고 날리는 거지. 그러면 대대에서는 당연히 대대장이 박 준장이랑 붙어먹고 있으니까 ‘까!’라고 할 거 아냐. 그러면 연대에 보고하고, 만약 연대에서도 튕기면 사단에 보고하고, 사단에서도 튕기면 우리 애들한테 헌병단 직통 마음의 편지를 쓰게 하는 거지.”
 “아하!”
 “알겠냐?”
 “흐흐흐, 되게 재밌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도 김 하사님이라서 가능한 방법 아닙니까? 일반적인 간부가 그런 방식 쓰면 바로 인사고과 최하점에 유배형이잖습니까.”
 “그래서 쓰는 거지. 사실 이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도 많은데, 내가 너무 일을 쉽게 처리해 버리면 나중에 내가 없을 때 100퍼센트 원상복구가 될 거야. 그러니까 최소한 다른 애들의 입김이 어느 정도 들어가게끔 일처리를 하는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 사실 김철민 병장이 저 꼴 난 것을 신나 하는 애들도 많긴 한데 ‘아, 쓰바, 전역 날에 허리 부러뜨리는 건데’라고 하는 선임들도 꽤 있습니다.”
 “뭐, 일단 전역 전날에 수도병원에서 퇴원하고 소대에서 하루 자긴 해야 할 텐데, 뭐 그 정도면 될 거다. 저번에 한 번 찾아갔는데, 자기가 애들한테 쌓은 업보 때문에 벌받은 거라고 울더라고. 정신 못 차릴 줄 알았는데 한 사십 퍼센트는 차린 거 같더라.”
 “사십 퍼센트 말입니까? 어째 애매합니다?”
 “크크크, 사람이란 게 그리 쉽게 바뀔 거 같냐? 사십 퍼센트도 많이 바뀐 거야. 실제로 살면서 굴곡이 생겼을 때 백 퍼센트 바뀐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지만, 그런 사람이 다시 부와 권력을 되찾으면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사람도 꽤 되거든.”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냥 둘이 있을 때는 말 편히 하라니까? 규정상에 다나까 쓰라는 것도 없는데 군대 참 이상해.”
 “으으, 이게 참 어려워요. 선임들한테 ‘요’ 자 쓰면 혼나니까요.”
 “킁, 그냥 월권행위 써서 다나까 자체를 없애고 싶은데 아직까지 내가 이 소대에서 먹은 짬밥이 부족해서 좀 더 시간이 있다가 하련다. 급작스럽게 애들이 가지던 권한을 없애면 그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보상해 줄 수 없으니까.”
 “맞습니다. 아무런 대안 없이 지금껏 고생하다가 겨우 누릴 만한 사람들한테서 ‘너네 이제부터 그러지 마!’라고 하는 것은 정말 악독한 일이죠. 심지어 간부들도 그런 것을 못 참는데, TV를 보든 다른 부대를 보든 병사들한테는 그런 것을 전부 무시하고 시키는 것을 보면 좀 답답합니다.”
 “뭐, 그렇긴 한데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되게 귀찮네. 그냥 내 밑에 애들이나 최대한 잘해줄란다. 여건이 되면 다른 부대도 도와주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거든.”
 “뭐, 그건 그러네요. 있지도 않은 일 지어내거나 꾀병 부리는 애들 많잖아요. 당장 공군 병사식당에 있는 막내 녀석도 매주 여자친구 면회 오고, 면회 끝나면 월요일은 여자친구랑 싸웠다고 자체 근무 오프하고, 외박 갔다 오면 싸웠다고 한 3일은 오프하고 말이에요.”
 내가 말하는 것은 공군 병사식당에서 현재 막내인 손기호 이병이다.
 나이는 스물네 살이라 다른 병사들보다 많은데 하는 행동이 정말이지, 심각하게 노답이라서 보급소대에까지 소문이 났다.
 우리 소대는 건물 복도에 공중전화가 있는데 공중전화할 때 러닝에 사각 팬티만 입고 통화를 하고 다른 선임들도 모두 각 잡고 전화하는데 짝다리 짚고, 공중전화랑 어깨동무하면서 통화를 한다. 심지어 샤워실에 갈 때 속옷을 안 들고 가서 알몸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도 봤다.
 애초에 나는 육군인지라 그 녀석을 관리할 이유가 없다. 천만다행이다. 내가 만약 공군이었으면 저 녀석을 관리해야 하는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단 내에 있는 연대장의 조카라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김 하사도 일부러인지는 모르겠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김 하사가 다른 식당 병사들에 대해서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식당 관리관들은 ‘내가 알아서 해!’라고 하면서 김 하사에게 자신 밑의 병사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병사식당 병사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관리관에게 돌리고 있다는 게 정답이다.
 장군식당은 우리 내무실에 있기 때문에 친하고, 간부식당은 이창모 중사랑 친하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다.
 하지만 병사식당 쪽은 관리관 세 명이랑 사이가 나쁜 편이라 병사들도 김 하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식당 병사들처럼 김 하사 신앙이 풍부하지는 않다.
 물론 김철민 병장 건으로 인해서 공략 플래그가 꽂혀 있는 상태이기는 하다.
 “뭐, 그 녀석은 식당 관리관의 권한 밖에 있는 거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리지 않겠어? 아무튼 그 녀석은 신경 쓸 거 없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겠지?”
 “그러죠. 그런데 지금부터 할 겁니까?”
 “미쳤어? 오늘 창모 형한테 얘기해서 간부식당 비번인 애들 회식시켜 주기로 했거든? 간부식당 내무실로 가자. 아까 돼지고기 사다 줬으니까 그걸로 이것저것 만들어 놨을 거야.”
 “흐흐흐, 이번에도 술 주신 겁니까?”
 “이제는 술 안 줘도 될 거 같긴 한데 나중에 내 방에서 스카치 21년산 하나 까기로 했어. 저번에 로얄 샬루트 한 번 주니까 아주 좋아하던데. 너무 비싼 거 얻어먹는다고 등급 좀 낮추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하더라구.”
 “그 말 안 했으면 돔 페리뇽 깐 거 아닙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근데 그건 좀 큰 부탁 있을 때 까려구. 아무런 대가 없이 너무 큰 걸 줘도 안 좋아.”
 “하긴, 그렇죠. 사실 로얄 샬루트나 돔 페리뇽이나 가격은 큰 차이는 없기는 한데, 이상하게 돔 페리뇽이 좀 더 인지도가 높은 느낌이더라구요.”
 “뭐, 내 입장에서는 소주만 아니면 다 좋기는 한데, 뭐, 다른 애들 다 먹을 때 나 혼자만 다른 거 깔 수도 없잖냐.”
 어느새 일과 종료 시간이 되었고, 나는 김 하사와 함께 본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좀 안면이 있는 수송대 운전병을 부르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오늘은 술도 먹을 거고 해서 일부러 걸어가기로 했다.
 본청으로 들어가자 근무하는 헌병 중 왕고가 김 하사를 향해 씨익 웃으며 경례했다.
 “충성∼ 김 하사님 오늘 ‘그날’입니까?”
 “야, 내가 생리하냐? 그날이게? 아무튼 뭐, 맞아. 이따가 너네 근무 끝나면 와서 좀 먹고 가라. 헌병대장 형한테도 언질되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대신에 근무 서면서 우리 대대장이나 당직사령 같은 거 오면 바로 알려줘야 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새 들어서 금요일이랑 토요일 본청 근무 엄청 인기 많은 거 아십니까? 저도 김 하사님 들어오는 거 보고 지금 군침이 흐릅니다.”
 “너네도 참 고생이 많다야, 아무튼 고생하고, 이따가 와.”
 “예∼ 살펴 가십쇼∼”
 붙임성 좋은 헌병 왕고와 잡담을 끝낸 김 하사를 따라 간부식당에 도착했다.
 이미 간부식당의 저녁 배식과 정리까지 다 끝난 상태라 홀은 어두워졌고, 본청 내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부 크루 근무를 해야 하는 부서를 제외하고서는 있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히 크게 떠들어도 들킬 일이 절대 없다.
 “얘들아, 형 왔어.”
 이미 간부식당에 언질을 하고 온 터라 간부식당의 문은 열려 있었고, 간부식당 내부 휴게실로 가자 이미 온갖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야, 아주 제대로 차렸는데?”
 제육볶음부터 시작해서, 돼지고기 꼬치 튀김, 수육, 탕수육 등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샐러드랑 김치 등 입가심할 것들도 많았다.
 “고기가 정말 이렇게 먹는 게 아까울 정돕니다. 구워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그냥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야, 이것도 맛있겠다야, 구워 먹는 건 솔직히 지겨워. 간부회식 내가 거의 안 가는 이유가 뭐겠냐.”
 “뭐, 케바케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먹자! 술 모자라면 더 사올 테니까 먹고 개만 되지 마라. 알지?”
 “장사 하루이틀 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로 술판이 벌어졌다. 간부식당 병사들 중 절반은 내일 있을 취사를 위해 오늘 참여하지 못했지만, 다음 주에는 그 병사들에게 회식이 있을 거다.
 간부식당 병사들 중에 술에 유난히 약한 병사들은 김 하사가 비치해 준 플레이스테이션2를 만지며 게임 삼매경에 빠졌고,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컵에 소주를 따르거나 음료랑 섞거나 소맥을 마시면서 술을 즐겼다.
 이렇게 병사들끼리 회식할 때, 가장 좋은 안주는 무엇일까? 바로 전역한 선임의 뒷담화다.
 김 하사는 전역한 선임에 한해서는 뒷담화를 묵인한다.
 다만 김 하사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게 있다면, 현재 부대에 있는 병사에 대한 뒷담화다.
 뒷담화를 할 거라면 해당 병사 본인이나 관리관에게 건의하라고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있다. 때문에 병사들은 아무리 술에 취해서도 김 하사가 있는 자리에서는 중대 병사 뒷담화를 까지 않는다.
 김 하사라고 해서 모든 병사들에게 대자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대 내에 같이 밥 먹는 병사가 다른 병사들에게 뒷담화를 당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나중에는 구타나 따돌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서 해당 건에 관해서는 강력히 제재하는 것이다.
 김 하사의 이런 지론 때문에 중대 내에서는 현재 어지간해서는 전우간의 뒷담화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몇 병사에 관해서는 뒷담화가 있는 편이다.
 모르는 척해 주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 하사도 해당 병사들에 대해서는 뚜렷한 말이 없다.
 일곱 시쯤 시작된 회식이 어느새 아홉 시가 되었고, 교대한 헌병들이 찾아와서 소주 몇 잔에 안주 좀 걸치고 수다 좀 떨다가 돌아갔다.
 원래부터도 일부 헌병과 간부식당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김 하사가 온 이후로 헌병들과 더욱 사이가 좋아진 간부식당 병사들이었다.
 헌병들 역시 근무 끝나고 기분 좋게 소주 서너 잔 걸치고, 평상시 먹기 힘든 음식들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이 간부식당 회식 날을 굉장히 반겼다. 덕분에 헌병들은 당직사령이나 대대 소속 간부들이 순찰을 나오면 직통으로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간부식당 병사들은 아주 즐거운(?) 군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어엇, 호미은 하사님 왔다!”
 
 * * *
 
 간부식당 쓰리고인 마동탁 상병이 환호성을 쳤다.
 그러자 그 순간 간부식당 병사 전원의 얼굴이 마치 참참참을 한 것처럼 한곳으로 향했다.
 호미은 하사.
 본청, 아니 전군 최고의 미인으로 꼽히는 여자 하사다.
 별명이 육군 김태희라고 불릴 정도의 빼어난 외모를 지닌 호미은 하사는 본청에 근무하는 남자 간부들의 가슴을 항상 쿵쿵 뛰게 했다.
 특히 호미은 하사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데도, 특히 아이라인이나 인조 속눈썹을 쓰지 않는 데도 정갈한 눈썹과 풍성한 속눈썹이 그야말로 천연미인의 귀감이기에 남자 간부들이 더욱 환장했다.
 초창기 호미은 하사가 왔을 때 많은 간부들이 화장발이 섞였을 거라 했었는데, 호미은 하사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물기 있는 얼굴로 본청을 돌아다니는 것이 목격된 이후로 남 간부들의 구애는 더더욱 열렬해졌다.
 호미은 하사는 홍보부에서 근무한다.
 이것은 호미은 하사와 같이 근무하는 병사들이 끊임없이 떡고물을 받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미은 하사와 같이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호미은 하사에게 전해줘’라고 하면서 간부들이 꽃다발에 러브레터에 심하면 반지까지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는 실정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호미은 하사는 그 모든 선물을 단호하게 반송했고, 지금은 그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본청의 흑장미가 되었다.
 그런 호미은 하사가 왜 간부식당에 찾아왔을지 상상이 가는가?
 의외겠지만 절대로 김 하사 때문은 아니다.
 호미은 하사는 이상할 정도로 김 하사를 싫어한다.
 김 하사를 아는 체를 일부러 안 하는 건지 김 하사를 그냥 투명인간 취급한다.
 라이트 노벨을 자주 읽는 사람은 츤데레의 츤이라고 하겠지만, 호미은 하사는 김 하사에게 아예 츤데레가 아니라 공기 취급을 하기 때문에 츤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김 하사 역시 호미은 하사에게 반응을 일절 보이지 않았다.
 호미은 하사가 간부식당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미은 하사는 식탐이 굉장히 많다. 홍보부 병사의 말에 따르면 호미은 하사의 책상 위와 서랍에는 각종 군것질거리가 가득하고, 밥도 자신이 도시락을 싸오는데 일반적인 도시락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즉, 식탐이 많은 호미은 하사가 우연히 간부식당 병사들의 회식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때부터 호미은 하사는 간부식당 회식 때마다 찾아와서 참여하곤 한다.
 “호미은 하사님, 이렇게 남자들만 가득한 곳에 오는 거 부담스럽지 않으십니까?”
 나의 물음에 호미은 하사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흥, 그런 녀석 있으면 불알을 터뜨려 버릴 거야.”
 그 말에 간부식당 병사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하다.
 호미은 하사는 일단 술을 말로 먹여도 절대 취하지 않는 데다가, 이전 부대 앞마을에서 질 나쁜 고등학생 일곱 명과 맞짱을 떠서 일곱 명 전원을 병원 신세를 지게 했다.
 무기를 쓰지도 않고 순수하게 주먹만으로 일곱 명을 시라소니처럼 개 패듯 패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찍힌 것이다.
 그 덕분에 감히 호미은 하사에게 이상한 연정을 품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거 왜 바깥 식당에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돼지고기 꼬치 튀김을 와사비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며 칭찬을 했다.
 “튀기는 기술이 생각보다 어려워. 대충 튀김기에 넣는다고 해서 완성되는 게 아니거든. 너무 오래 튀기면 튀김옷이 타버리고, 너무 조금 튀기면 돼지고기가 안 익고, 누린내가 나.”
 “아, 그런 겁니까? 마동탁 상병님 전역하시면 이거 못 먹는 게 정말 아쉽습니다.”
 “야, 넌 내가 꼬치 굽는 거 빼면 필요 없다는 거냐.”
 마동탁 상병의 말에 간부식당 왕고인 고민관 병장이 답했다.
 “뭔 소리야, 야구 게임 할 때도 필요하지. 특히 공 던질 때.”
 “아, 왜 이러십니까. 저도 이제 짬 좀 먹었는데 이름 가지고 놀리는 거 그만하십쇼.”
 “왜, 너도 예전에 선임들이 시켰다고는 해도 나 고문관이라고 놀렸었잖아.”
 “크윽!”
 이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은 초중고대학, 그리고 군대까지 이어지는 법이다.
 술자리가 세 시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취한 병사들은 휴게실 내부에 있는 침상에서 잠이 들었고, 나와 김 하사, 호미은 하사, 마동탁 상병, 그리고 두 명의 병사만 남았다.
 “술에 취한 사람은 안타깝지만 말이야∼”
 김 하사가 갑자기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김 하사에게 집중되었다.
 “짠!”
 김 하사가 언제 가져왔는지 양주병 하나를 홀로 나가더니 가져왔다.
 
 발렌타인 30년산.
 
 “헉!”
 좌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신음을 터뜨렸다. 특히 호미은 하사의 눈은 지금까지 먹은 술이 무색하게 매우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김 하사는 싫어도 술은 좋다.
 김 하사는 싫어도 김 하사의 술은 사랑한다.
 “나랑 술 마실 때 빨리 취하면 안 되는 거야. 일부러 조절하면서 먹어도 안 되지만 말이야.”
 “맞습니다!”
 마동탁 상병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동탁아, 얼음 얼려 놓은 거 있지? 가져와. 그리고 내가 저번에 사둔 치즈랑 크래커도 가져오고.”
 “예! 봉선아, 들었지? 빨리 가져와라.”
 마동탁 상병의 아들 군번인 간부식당 막내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들 군번이라고 여포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여포처럼 근육도 탄탄하고 키도 크다.
 다만 여포랑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 군번인 마동탁 상병을 매우 잘 따른다는 거?
 특히 요즘 전입 오는 이등병들은 김 하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늘을 찔렀다.
 심심하면 술 사주지, 먹을 거 사주지, 부모님한테 직접 전화해서 안심시키지, 자기 휴대폰으로 여자친구랑 화상 통화시켜 주지.
 그야말로 최고의 이등병 케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예외가 딱 한 명 존재하는데 공군 병사식당 막내다.
 김 하사가 왜 걔를 차별하는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어렴풋이는 알 거 같다.
 “자, 이거 마시고 깔끔하게 끝내자!”
 여섯 명이 양주잔에 따라서 마시는데, 여봉선은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는지 양주를 원샷 때리고 천천히 뒤로 넘어갔고, 여봉선의 맏후임도 뒤로 넘어갔다.
 마동탁 상병은 두 번째 잔에서 화장실 갔다 오더니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김 하사와 흰 당나귀······가 아니라 호미은 하사다.
 뭐, 다들 눈치챘겠지만 나도 말술이다.
 “격포야 더 마실 수 있겠냐?”
 “제가 술 가리는 거 봤습니까?”
 “호미은 하사는 더 먹을 거야?”
 “있으면 먹죠.”
 “그래?”
 김 하사는 홀로 나가서 발렌타인 두 병을 더 가져왔다.
 그렇게 두 병까지 마무리 지은 우리는 술자리를 파했다.
 호미은 하사를 보낸 우리는 뒷정리를 적당히 해놓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서 간부식당을 나섰다.
 “얘들아, 이거 먹어라.”
 음식을 받아든 헌병들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김 하사에게 경례를 날렸다.
 나와 김 하사는 본청을 나와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너도 술이 참 세긴 세.”
 “김 하사님 닮았나 봅니다.”
 “뭐, 그건 잘 모르겠지만.”
 “호미은 하사도 술 되게 세지 않습니까? 저보다도 셀 거 같습니다.”
 “뭐, 술 세도 주정만 안 부리면 괜찮은 거 아니겠어? 술 먹기 싫다는 사람한테 안 권하고, 술 달라는 사람에게 주는 게 내 신조야.”
 “신조가 많은 게 신조 아닙니까? 크크크.”
 “맞다, 맞아. 크하하하”
 새벽에 병사 혼자서 돌아다니다가는 난리가 나기 때문에 김 하사는 나를 생활관까지 바래다주었고, 그 시각이 새벽 두 시였다. 조용히 생활관에 들어선 나는 정신없이 잠에 들었다.
 
 * * *
 
 토요일은 현진식 상병과 함께 부대 밖으로 나가 지냈다.
 일요일은 적당히 생활관에서 낮잠을 자거나 하면서 지내고 나니 어느새 월요일이 되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루왁을 두 잔 타서 한 잔은 김 하사에게, 나머지 한 잔은 내가 마시면서 둘은 향후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식당 환경미화 작업은 식당별로 순위를 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역시 그렇지?”
 “예, 괜히 잘한 식당한테 포상휴가를 주면, 나중에 다른 일을 시킬 때 문제가 있을 겁니다. 차라리 일과 끝나고 환경미화 작업에 참여할 병사 뽑아서 식당별로 전문적으로 환경미화 작업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역시, 격포야. 사람 쓰는 법을 아는구나.”
 “대신에 이건 식당 관리관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고, 휴일이 없는 병사식당 병사들에게서 불만이 조금 나올 수가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휴일에 병사식당 병사들 대신에 근무할 간부식당이나 장군식당 애들도 뽑으면 되겠지?”
 “흠, 차선책은 될 거 같습니다.”
 “인성검사 쪽도 굳이 인성검사 할 필요 없지 않아? 어차피 인성검사라고 해봤자 애들 장난 수준이고, 차라리 소대 마음의 편지 한 번 쓰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게 나을 겁니다. 근데 마음의 편지도 지금 쓰는 것보다 환경미화 작업 끝나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꼭 집어서 말은 못 하겠는데 그때 하는 거랑 지금 하는 거랑 내용이 좀 달라질 거 같습니다.”
 “하긴 그렇네. 그러면 일단 2주 정도는 식당 환경미화 작업하고, 그다음에 마음의 편지를 하자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렇게 환경미화 작업이 실시되었다.
 무작정 병사들을 투입했으면 엄청난 원성을 들었겠지만, 지원자에 한해 상점을 주기로 했다.
 또, 지원자가 많아서 뽑기를 돌렸기 때문에 병사들의 불만은 거의 없게 되었다.
 다만, 병사식당들은 관리관들이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라고 통보를 보내왔기에 김 하사는 간부식당만 환경미화를 하기로 했다.
 사실, 박대만 준장이 표적으로 삼은 것은 세 군데의 병사식당인데 정작 환경미화를 하는 것은 간부식당이라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장군식당 쪽은 애초에 박대만 준장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지라 환경미화를 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것을 보면 군대라는 것은 참 갑갑하다.
 같은 소대 내에서도 간부끼리 파벌이 갈리고, 이런 파벌 때문에 문제가 생긴 곳은 처리하지 못하고, 애꿎은 잘 돌아가는 곳만 일이 생긴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방해했던 사람들은 쏙 빠지고 힘을 쓰지 못하는, 명목상 총책임자가 책임을 지게 된다.
 물론 김 하사가 호락호락하게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김 하사는 병사식당 관리관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쿨하게 받아넘기고 간부식당의 환경미화 작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자, 그러면 상상해 보도록 하자. 김 하사는 간부식당의 환경미화를 어떻게 꾸몄을까?
 아주아주 간단하다.
 김 하사는 그 뚫기 힘들다는 군대의 반입체계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승인받았다.
 그 결과 바깥에서 내로라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세 명을 초빙했고, 그들을 통해서 간부식당의 공사를 시작했다.
 돈은 당연히 김 하사의 사비를 투자했다.
 명목상으로 중대 지원금이 있었지만 그 지원금은 병사들 회식에나 겨우 쓸 만큼 하품이 나오는 수준이었고, 김 하사는 식당에 있는 유리부터 시작해서 배식구까지 공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두 개의 식당 중 한 군데는 교대로 문을 닫아야 했지만, 식당 인테리어라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병사들은 공사에서 나오는 폐자재들을 운반하는 등의 허드렛일에 쓰였고, 그 결과 식당 자체가 한층 더 화사하게 변했다.
 공사 기간이 짧았던 만큼 분식집이 3성급 요리집이 되거나 하는 식의 변동은 아니다.
 다만, 그날 메뉴를 알리는 메뉴판이 LED조명판으로 교체되었고, 짬통도 이동할 때 다른 식사하는 간부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게 최신식 압축 짬통으로 교체되었다.
 배식구 역시 식당 내부가 잘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또한 배식하는 사람이나 배식받는 사람이나 불필요하게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도록 높이가 조정되었다.
 들어간 액수는 김 하사만이 알고 있고, 나에게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군데의 공사가 끝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주였다.
 병사식당과 함께하는 거라면 밸런스에 맞춰 2주로 끝냈겠지만, 이왕 집중하는 거 확실히 투자하겠다는 김 중사의 생각이었다.
 5주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은 이유는 간부식당의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박대만 준장의 공격이 병사식당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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