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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왕 김제빵 1권 (1)

2019.05.07 조회 329 추천 1


 # 좌절이 아닌 축복
 
 
 퉁탕! 퉁탕!
 염리중학교에 있는 낡은 체육관에서 탁구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윙을 제대로 하란 말이야. 스윙을! 드라이브는 쫙쫙 걸어! 낚아채! 채! 채라고!”
 녹색 그물 처진 볼 박스 안에서 감독이 목이 터지라 외쳤다.
 원래 탁구부 훈련은 코치나 트레이너가 주관했다.
 이렇게 정상준 감독이 직접 훈련에 참여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훈련 방식은 간단하다.
 한쪽에선 탁구대 위로 공을 던지고 반대편에선 라켓으로 공을 쳐 낸다.
 정 감독이 선수 한 명씩 붙잡고 동작을 반복하는 기초 훈련이었다.
 “후우! 후!”
 작달막한 키에 조막만 한 손으로 라켓을 쥔 중학생 한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다른 탁구대도 마찬가지.
 서로 랠리를 주고받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탁구공을 놓치지 않았다.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다양한 생김새를 지닌 중등부 탁구 새싹들.
 신기하게도 그들은 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
 
 국가대표 탁구 선수가 되자.
 
 비록 우리나라 탁구가 세계 순위권에서 밀려난 지 오래지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나무가 있기에 한국 탁구의 장래는 절대 어둡지 않았다.
 “자, 다음!”
 정 감독이 외치자 선수가 교체되었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탁구장에 있는 이들은 정신없이 훈련하는 와중에 이제 막 볼 박스 안에 들어간 중학생을 힐끔힐끔 보았다.
 ‘드디어 쟤 차롄가.’
 ‘얼마나 잘 치기에···. 그 난리야?’
 ‘흥! 그래 봤자 중학생 수준이 거기서 거기지 뭐.’
 기대와 호기심.
 시기와 부러움.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 중학생 한 명이 탁구대 앞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하자마자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한 소년.
 얼마 전 염리중학교로 전학 온 배신우였다.
 정 감독은 훈련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쭉 폈다.
 오늘 그가 훈련에 참여한 이유도 바로 이 소년 때문이다.
 “네가 그 유명한 배신우냐?”
 감독은 괄괄한 성격을 지녔고 염리중학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신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별로 안 유명합니다.”
 “안 유명하긴 쨔샤. 탁구인들 사이에서 네 이름 모르면 간첩이지.”
 올해 중3임에도 180cm이 훌쩍 넘는 키.
 게다가 잘생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시크한 이미지 때문에 벌써 팬클럽이 생겨나면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우는 탁구를 잘 쳤다.
 타고난 감각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중등부는 물론이고, 웬만한 고등부 선수도 신우를 상대로 이기긴 어려웠다.
 그리고.
 4월 초에 열린 아시아 주니어 탁구 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선 전승으로 1위를 했으며, 이어 열린 제65회 전국 남녀 종별탁구 선수권대회 남자 중등부에서도 3관왕에 오르며 동급 최강을 확인했다.
 정 감독이 라켓으로 탁구공을 통통거렸다.
 “종별 대회에선 태형 중학교 서영준과 맞붙어 남자단식 결승을 제외하곤 단 1세트도 내주지 않았다며? 용케도 그런 큰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했구나.”
 신우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정 감독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운인지 실력인지 확인해볼까?”
 통!
 예고도 없이 공이 날아왔다.
 커트성 하회전을 먹인 탁구공이 탁구대 위를 굴렀다.
 순간 신우가 움직였다.
 사전 준비 없는 동작이었음에도 곧바로 쉐이크 채를 쥐고 자세를 취했다.
 탕!
 상회전 섞인 드라이브가 반대편 탁구대 위를 맞고 튀어 올랐다.
 “좀 더 빨리!”
 정 감독은 한 손에 공을 세 개씩 쥐더니 기계가 쏘아 올리듯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딱! 딱! 따악!
 배신우의 별명은 ‘알파고 탁구’였다.
 0.5cm의 오차도 없이 포핸드와 백핸드를 정확히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탁구공을 쳐냈다.
 “오오.”
 지켜보던 이들의 함성이 하나둘씩 터져나왔다.
 일순간 정지화면처럼 다들 훈련을 멈추고 배신우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탕! 탕! 탕!
 탁구부 중학생 선수에게 드라이브를 걸어 공을 반대편으로 넘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배신우처럼 기계로 찍어내듯 되풀이하는 동작과 양쪽 엔드라인을 완벽한 컨트롤로 맞출 수 있는지에 달려있었다.
 훈련이 한동안 이어졌을까.
 감독이 공중을 튀던 탁구공 하나를 손으로 잡았다.
 “그 정도면 됐다.”
 “후우.”
 신우는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감사합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정 감독에게 연습이 끝날 동안 한 번도 지적을 받지 않는 건 염리중학교 탁구부 역사상 배신우가 처음이었다.
 “자, 다음.”
 볼 박스 바깥으로 배신우가 나간 자리에 다른 선수가 들어왔다.
 두 소년은 스치듯 서로를 지나치며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신우는 이내 무심하게 걸어갔다.
 꾸벅.
 “안녕하세요! 감독님!”
 159cm 남짓한 키.
 어딘가 어리숙하고 앳된 인상.
 검은색 더벅머리는 쥐가 파먹었는지 한쪽 이마가 드러났다.
 이 아이가 바로 염리중학교 탁구부 만년 꼴찌 김제영이다.
 “쩝···. 제영이구나.”
 “운도 지지리 없지. 하필이면 배신우 다음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좀 달라졌으려나.”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젓거나.
 제영이 나타나자 다들 기대 따위는 어딘가에 파묻고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정 감독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제영이. 너냐.”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정 감독이 물끄러미 제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제영아. 요즘도 새벽 늦게까지 체육관에 혼자 남아서 서브 연습하냐?”
 “아.”
 제영은 라켓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네.”
 제영은 현재 열등생이었지만 불 꺼진 체육관에서 혼자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시작하자.”
 “네! 감독님.”
 척.
 제영이 호기롭게 왼손으로 라켓을 들었다.
 작은 체구 탓인지 전혀 위압감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제영의 성장판은 무심하게도 제구실하는 걸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3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손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새롭게 왼손으로 탁구를 시작했다.
 오른손잡이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왼손으로 탁구를 한다.
 마치 프로게이머가 발로 마우스를 쥐고 게임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지난번에 내가 말한 거, 꾸준히 연습했고?”
 “네! 거울 보면서 매일 연습했습니다.”
 “좋다. 어디 한번 보자.”
 휙.
 감독이 공을 라켓으로 가볍게 쳐서 네트 너머로 넘겼다.
 흰색 탁구공이 역방향으로 구르면서 천천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에잇!”
 제영이 허공에 헛스윙했다.
 부웅.
 바람 소리가 지나가면서 탁구공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라?”
 정상준 감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집중해!”
 “네? 네!”
 휙. 휙.
 정신없이 공을 날아왔다.
 제영은 이리저리 라켓을 휘둘렀다.
 앞에 배신우가 보여준 스윙 탓일까?
 제영의 타법은 확연히 비교되었다.
 어깨는 돌아가고, 팔꿈치는 들리고, 스텝을 밟을 때마다 자세는 어김없이 무너졌다.
 당연히 공을 제대로 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탁. 팅! 탁. 팅! 탁. 팅!
 라켓에 공이 맞을 때마다 맥 빠지는 소리가 났다.
 공은 반대편 코트에 안착하지 못하고 마치 팝콘 튀기듯이 사방팔방 날아갔다.
 그물이 처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탁구장은 제영이 친 공으로 순식간에 엉망이 될 게 뻔했다.
 “김제영! 하나를 치더라도 제대로 쳐! 스윙해! 자세 잡고!”
 “예! 알겠습니다!”
 제영이 숨을 들이쉬었다.
 통.
 흰색 탁구공이 서서히 떠올랐다.
 모든 게 느려지고 제영은 오직 한곳에 집중했다.
 ‘이번만큼은!’
 이를 악물고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바로 그때.
 찌릿!
 사고를 당했던 라켓을 쥐고 있지 않은 오른손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저릿했다.
 손상된 신경과 근육.
 상처는 나았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으윽!”
 휙.
 제영은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며 어김없이 헛스윙했다.
 어찌나 온몸에 힘을 줬는지 왼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제영은 그대로 넘어졌다.
 우당탕.
 쿵!
 제영의 이마가 탁구대 모서리에 찍었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면서 시큰한 느낌이 머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야야···.”
 제영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감독은 더 공을 넘기지 않았다.
 사방으로 튀던 탁구공이 마루를 떼구루루 굴렀다.
 한순간 정적이 감도는 이때.
 “푸하하!”
 “우하하!”
 진지함을 유지하던 탁구장에 폭소가 터졌다.
 다들 제영을 비웃었다.
 정 감독은 라켓을 탁구대 위에 집어 던졌다.
 쾅!
 “다들 조용히 안 해!”
 뚝.
 카리스마 있는 정 감독의 발언에 모두 고개를 돌리고 다시 연습에 매진했다.
 통. 탕. 통. 탕.
 탁구장은 금세 익숙한 소리로 메워졌다.
 “후우.”
 정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영아. 네가 초등학생 때 탁구부 유망주로 잠깐 이름을 날린 거. 나도 잘 알고 있다.”
 “···.”
 제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난 영광은 과거일 뿐.
 운동선수는 지금이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넌 여전히 왼손으로 드라이브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해.”
 “가, 감독님. 그게 아니라!”
 변명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제영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영야.”
 감독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
 “네?”
 “여기까지만 하자.”
 “그게 무슨···.”
 “김제영. 선수 생활은 이만 접어. 탁구는 그냥 취미로만 쳐.”
 쿵.
 제영의 귓가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제가 탁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알지. 누구보다 잘 알지. 넌 3살 때부터 라켓을 손에 쥐었다며. 경력으로 따지면 이미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야.”
 감독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왼손으로 탁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 한 사람도 바로 나야. 안 그래?”
 “그렇습니다.”
 “알고 있어. 김제영 네가 성실한 거. 하지만···.”
 감독은 검지를 들어 볼 박스 너머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은 배신우가 있는 곳이었다.
 신우는 의자에 앉은 채로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설령 김제영 네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더라도 고작 3년 전에 라켓을 잡은 배신우를 따라잡진 못할 거다. 아니, 앞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쟤처럼은 못 칠 거야. 운동은 성실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재능도 그 무엇보다 중요해.”
 “··· 감독님.”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은 원래 잔인한 거다. 김제영 네가 진심으로 국가대표 탁구 선수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그만 포기해. 넌 재능이 없어. 프로는 좋아한다고만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제영은 혼미해진 정신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포기해.
 - 넌 재능이 없어.
 
 “어? 제영 너···!”
 감독이 뭐라고 큰소리쳤지만, 귓가가 멍해진 제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 피! 나잖아, 인마!”
 주륵.
 제영의 이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진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조금 전 탁구대에 부딪힌 이마가 찢어져 상처가 벌어졌다.
 “어, 어······.”
 붉은 피.
 그보다 더 충격적인 감독의 말.
 연속 2연타 카운터펀치를 제대로 맞은 제영이 휘청거렸다.
 쿵.
 제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야! 다들 이리와! 119 불러!”
 
 * * *
 
 제영은 이마를 7바늘이나 꿰맸다.
 “치료 끝났습니다. 물에 닿으면 안 되니 당분간 격한 운동은 자제하세요.”
 의사는 할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제영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꼴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나가자.”
 정 감독이 병실 문을 나섰다.
 “··· 네.”
 제영은 힘없이 뒤를 따랐다.
 병원 밖을 나오자 햇살이 쨍쨍했다.
 제영은 손으로 태양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라켓을 하도 꽉 쥐어서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굳은살이 잔뜩 자리 잡고 있었다.
 ‘날씨 좋네.’
 정 감독이 제영의 이마를 툭 쳤다.
 “아야.”
 “집까지 데려다주마.”
 제영에게 냉혹한 현실을 알려준 정 감독이었지만 탁구장 밖에서 그는 한결 인상이 부드러웠다.
 “아닙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그 꼴을 해서 무슨.”
 “정말 괜찮아요. 감독님. 저 어린애 아니에요.”
 감독은 제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네. 그럼 내일 뵙겠······.”
 제영은 아차 싶었다.
 체육관에서 장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일 아닌,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그를 볼 일은 없었다.
 감독은 제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당분간 푹 쉬어.”
 “들어가세요. 감독님.”
 제영은 멀어져 가는 감독의 등을 바라보다 화단 난간에 주저앉았다.
 “후.”
 폭풍우 속에서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배.
 딱 제영의 상태가 그랬다.
 어릴 적부터 중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제영의 인생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탁구.
 그리고 또 탁구.
 오직 프로 탁구 선수를 꿈꾸며 한 곳만을 보고 달려온 제영에게 감독의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제 어쩐다.”
 제영은 누구보다 꾸준히 노력했다.
 사고를 당한 후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브 연습을 했다.
 그러나.
 제영은 재능이 없었다.
 아니, 한때 재능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 재능은 막상 패를 뒤집어 보니 실제론 평범한 것이었다.
 오늘 날, 제영의 탁구 실력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른손 후유증 탓인지 심리적 영향인지.
 동체 시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매번 탁구공을 놓치기 일쑤였고 몸이 반응은 항상 한 박자 느렸다.
 왼손으로 새롭게 라켓을 쥔 이후로 볼을 컨트롤하는 감각은 다른 선수와 비교해 한없이 부족했다.
 “후우.”
 땅이 꺼지라 한숨이 폭발했다.
 감독 말은 옳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중학교 3학년 소년에겐 너무도 일찍 찾아온 시련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을 타일렀다.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한없이 밝은 소년.
 그게 제영의 가장 큰 장점이었으니까.
 “괜찮아. 이런 적 한두 번 아니잖아. 괜찮아. 김제영. 괜찮아···.”
 웃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괜찮아. 괜찮···. 흐윽.”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젖을수록 제영은 더욱 흐느꼈다.
 “흑. 흐윽. 젠장! 포기하기 싫어. 포기하기 싫다고. 난 탁구가 좋단 말이야.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말 거란 말이야. 끄윽!”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그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쓱.
 제영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정장을 입고 선 우월한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에서 위로 스캔하니 흰색 페도라가 인상적이었다.
 “네?”
 피부가 유독 하얀 그가 눈처럼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가 내리는 축복을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 축복의 구슬
 
 
 제영이 어벙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예?”
 손등으로 눈물을 급히 훔쳐냈다.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남자는 제영을 내려다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뇨. 잘 찾아온 게 맞습니다. 김제영 님 맞으시죠?”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계절이었지만 그의 입에선 어쩐지 서릿발이 맺힐 만큼 차가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왠지 현실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렇긴 한데···. 저를 아세요?”
 “잘 알죠.”
 남자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사모트라케라고 합니다.”
 “에? 트리케라톱스요? 공룡?”
 “아뇨. 사모트라케요. 사모라고 불러요.”
 “아, 네. 그런데 사모. 님. 사모님? 어감이 좀 이상한데.”
 제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사모 아저씨. 제게 무슨 볼일이 있나요?”
 남자가 한 손을 들더니 손가락을 퉁겼다.
 딱!
 쉬익! 하는 한기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손에서 라켓이 튀어나왔다.
 손때가 묻은 낡은 쉐이크 채.
 손잡이에는 마커로 쓴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K. J. Y.
 
 익숙한 물건이다.
 “앗. 그건 내 라켓이잖아요.”
 “후훗. 맞습니다.”
 “아저씨 마술사예요?”
 “훗.”
 남자는 쉐이크 채를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중학생인 제영이 보기에도 그의 손길이 어쩐지 선정적으로 보였다.
 “당신은 이걸 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탁구를 치셨죠?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요.”
 제영은 지난날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우웨엑!!”
 유독 체력이 약한 제영은 극한으로 밀어붙인 체력 훈련할 때 구토를 하곤 했다.
 “흑! 흐윽! 왜 하필 나야.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고.”
 사고 이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오른손을 재활 치료하다 눈물을 흘린 날은 셀 수 없었다.
 왼손으로 뒤늦게 탁구를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남들한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텅 빈 불 꺼진 체육관에서 남들이 달콤한 잠에 빠져있을 땐 홀로 서브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는 탁구부 방출이라는 쓰디쓴 열매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병원 앞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청승맞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맞아요. 6살 때 본격적으로 라켓을 쥐고 그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탁구 하나만 보고 달려왔죠.”
 제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요.”
 제영은 남자가 건넨 라켓을 받았다.
 남자가 그윽한 눈빛으로 제영을 바라보았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행하는 자. 연이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버텨내는 자. 언젠가 신의 축복을 받으리.”
 “예?”
 제영은 그저 눈만 끔뻑거렸다.
 사모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저를 소개하죠. 저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후손, 사모트라케입니다. 제영 씨. 축복을 받으시겠습니까?”
 딱.
 사모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손에서 검은색 유리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슬은 한 손에 가득 찰만한 크기였다.
 제영은 영롱한 빛을 내뿜는 구슬을 넋을 잃고 주시했다.
 구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저기, 사모 아저씨.”
 “말씀하시죠.”
 “죄송하지만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건지 통 아까부터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간단히 설명해주실 순 없나요?”
 “김제영 님.”
 “네?”
 사모는 한 손에 든 구슬을 내밀었다.
 “다시 탁구를 하고 싶으시죠. 탁구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으시죠?”
 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충분합니다. 축복을 받아들이세요.”
 
 - 다시 탁구를 칠 수 있다.
 - 탁구로 세계를 제패한다.
 
 사모가 말하는 축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이룰 수 있다면 제영은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충분했다.
 쓱.
 제영은 손을 뻗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구슬 표면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화악!
 순간 구슬에서 눈 부신 빛이 피어올랐다.
 “와.”
 제영은 감탄을 터트렸다.
 직접 경험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속임수나 마술이 아니다.
 어쩜 사모의 말처럼 구슬 안에는 정말 신의 축복이 깃든 건지도 모른다.
 쏴아아.
 제영의 손에 들린 구슬에서 빛이 점점 사그라졌다.
 구슬은 까만색으로 돌아왔다.
 “김제영 당신은 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모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딱!
 신기하게도 이번엔 엄지와 중지에서 화르르 불꽃이 일었다.
 갑자기 바닥에서 둥근 마법진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환한 빛이 올라왔다.
 휘이잉!
 주변에 있던 나뭇잎이 휘날릴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제영은 주위를 살폈다.
 “어맛!”
 응급실 앞을 거니는 행인이 몸을 움츠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영 님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저를 볼 수 없으니까요.”
 거친 바람에 사모의 흰색 페도라가 바닥에 떨어졌다.
 순간, 제영의 눈이 커졌다.
 포마드로 넘긴 백발 머리카락 사이로 선명하게 떠 있는 타원형의 고리가 보였다.
 사모가 중얼거렸다.
 “··· 위대한 승리의 여신 니케의 명을 받아 이 땅에 내려온 사모트라케가 명하노니···. 모습을 드러내라 서큐파로스 칸나여!”
 화악!
 선명한 빛 사이로 서서히 여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파닥파닥.
 그녀는 공중에 떠올라 여왕벌처럼 마법진 위를 날아다녔다.
 키가 10cm 정도 되려나?
 피규어처럼 작은 물체가 바닥에 착륙했다.
 “부르셨습니까. 사모트라케 님.”
 칸나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였다.
 윤기를 허리까지 내려가며 찰랑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
 피부는 새하얗고 눈이 유독 크고 코는 오뚝했다.
 입술은 머리에 자라난 붉은 뿔처럼 장밋빛이다.
 칸나는 민소매로 된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등 쪽 날개 뼈엔 박쥐처럼 앙증맞은 검은색 날개가 파닥거렸다.
 허벅지 위로 넓게 퍼진 치마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사이로 솟아난 검은 색 꼬리 끝은 하트 모양이었다.
 꼬리는 그녀가 몸을 흔들 때마다 살랑살랑 움직였다.
 전형적인 여성 악마의 모습이지만 워낙 몸집이 작아 그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오랜만이군요. 칸나.”
 “또다시. 제게 속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네.”
 사모는 손가락으로 칸나의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손길이 아까 제영의 라켓을 만질 때처럼 야릇하게 느껴졌다.
 “미모는 여전하네요. 서큐버스······. 그녀가 떠오릅니다. 칸나 당신은 엄마를 쏙 빼닮았어요.”
 “감사합니다. 사모 님은 한결 더 섹시해지셨어요.”
 모델처럼 키가 큰 천사와 인형처럼 작은 악마.
 둘 사이에 에로틱한 감정이 오갔다.
 “에?”
 그 옆에서 제영은 어른들의 세계에 끼지 못한 채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제영의 시선을 느낀 사모가 헛기침했다.
 “어흠. 그럼 소개하죠. 옆에 있는 이 소년가 바로 제영 님입니다. 칸나 씨가 이번엔 한국에서 활약을 해줘야겠어요. 자, 인사하세요. 칸나 당신의 새로운 주인님입니다.”
 “네?”
 칸나가 제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애송이가요?”
 “어허. 새로운 주인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입니까.”
 “···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모 님도 아시잖아요. 저는 성인 남자와 케미가 더 잘 맞는 거.”
 “흠.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전 부탁하려고 당신을 소환한 게 아닙니다. 원치 않으면 이대로 악마의 감옥으로 돌아가···.”
 “아닙니다! 좋아요! 좋다고요! 사실 전 어른 애를 전 무지 좋아한답니다.”
 파닥파닥.
 칸나가 하늘 위로 날아올라 제영의 어깨 위에 착 내려앉아 무릎을 꿇었다.
 “응?”
 제영은 고개를 돌려 칸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고양이 같이 까만 칸나의 동공이 눈에 들어왔다.
 제영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포켓몬?”
 “뭐? 인마? 이 꼬맹이 자식이···.”
 순간 칸나의 표정이 뒤틀렸지만, 사모가 앞에 있었기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제영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꼬맹아. ··· 너 이따 보자.”
 사모가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비로소 축복의 구슬이 그대에게 온전히 전해졌습니다.”
 제영은 손에 쥔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이걸로 뭘 하면 되는 건가요?”
 “사용법은 옆에 있는 칸나 씨가 차차 알려줄 겁니다.”
 사모가 바닥에 떨어진 흰색 페도라를 주워 머리에 눌러썼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모자 밑으로 뿜어져 나오는 눈빛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전 그럼 이만.”
 칸나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사모 님! 전 평소대로 축복자를 <<스포츠 절대 만능>> 7단계까지 이끌면 되는 거죠?”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잘 할 수 있겠죠?”
 “물론이죠!”
 사모가 명랑하게 외치는 칸나 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제영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사모는 칸나를 내려다보다 이내 말을 끊었다.
 “네?”
 칸나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음. 아닙니다. 잘하시리라 믿어요.”
 “에이. 당연하죠. 저만 믿으세요.”
 칸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외쳤다.
 사모가 휙 돌아서며 말했다.
 “제영 님. 그럼 행운을 빕니다. 아디오스!”
 쉭.
 사모는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유령처럼 사라졌다.
 비로소 병원 앞에는 제영과 칸나만이 남았다.
 칸나가 제영의 어깨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무릎이야. 매번 이 짓도 나이가 들수록 힘드네. 앞으로 대체 얼마나 더 해야 형량이 줄어드는 거지?”
 사모가 사라지나 칸나는 왠지 태도가 바뀌었다.
 제영은 멀뚱멀뚱 칸나를 바라보았다.
 칸나가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이봐. 꼬맹아. 이름부터 말하거라. 아니다 됐다. 우선 내 소개부터 하지. 난 위대한 색정의 여신 서큐버스의 셋째 딸이자 승리의 여신 니케를 저지하려다 전쟁에서 패배하여 인생 폭망한···. 아니다. 내가 무슨 소릴. 쩝. 어쨌든 이 땅에 내려온 니케의 후손 사모트라케 님의 수행 악마 서큐파로스 칸나 님이시······.”
 “정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가.”
 제영은 갑자기 손에 쥔 구슬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검은 구슬은 겉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였다.
 이때.
 쓱.
 구슬은 점점 붉은색으로 변했다.
 칸나가 발끈했다.
 “야!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칸나는 색정의 여신 서큐버스의 셋째 딸답게 본래 모습으로 있을 때면 남자들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비록 지금 몸이 작아져 쉽게 와닿진 않지만.
 제영은 칸나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소년의 관심은 오직 하나.
 과연 이걸로 탁구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까?
 제영이 눈길조차 주지 않자 칸나는 그 자리에서 방방 날뛰었다.
 “너! 김제영이라고 했냐? 감히 이 칸나 님을 무시해? 너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지?”
 칸나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웨인 그레츠키, 타이거 우즈, 세레나 윌리엄스, 무하마드 알리, 베이비 루스에서 마이클 조던, 비외른 보리 등등! 그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선수에게 승리의 능력을 부여해 위대한 인물로 키운 사람이라고!”
 제영은 여전히 구슬을 바라보았다.
 ‘좋아. 아직 포기하긴 일러. 언제나 그랬듯. 난 다시 일어설 거야.’
 칸나는 그치지 않고 주절주절 떠들었다.
 “휴. 너 같은 생초짜가 뭘 알겠냐. 우선 구슬의 사용법부터 알려주지. 구슬은 총 7단계로 나뉘어. 1단계부터 주어진 미션을 차례로 완수할 때마다 구슬의 색이 변해. 시작은 보다시피 붉은색으로···.”
 “저기. 칸나.”
 제영이 고개를 들었다.
 “왜 자꾸 말 끊어. 엥? 너 지금 나보고 칸나라고 했냐! 내가 감히 누군지 몰라? 칸나 님이라고 말하지 못할까? 이 꼬맹이 자식이.”
 “정말 다시 시작 할 수 있을까?”
 조금 전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을 상대방에게 되묻는 건 제영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비록 재능은 없지만 성실함과 추진력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제영이 앞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전에 행하는 의식과 같았다.
 칸나는 제영을 올려다보았다.
 키가 작은 더벅머리의 소년.
 그러나 소년의 눈빛은 사모가 일으킨 불꽃보다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흥. 좋은 눈빛이군. 어쩌면 제대로 주인을 찾아온 걸지도 모르겠어.’
 칸나는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거야 네가 하기에 달렸지.”
 지잉. 지잉.
 구슬이 제영의 손 안에서 진동했다.
 “어? 이거 갑자기 왜 이래? 전화라도 온 거야?”
 “축복의 구슬이 무슨 휴대폰인 줄 알아? 잘 봐.”
 똑. 또독.
 타이핑 소리와 함께 구슬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 축복의 구슬 획득 기념!
 : 사용자가 최근 신체에 입은 손상을 치료합니다.
 
 “우와. 이거 혹시 드래곤 볼?”
 칸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소리 말고 얼른 이거나 풀어봐.”
 파닥파닥.
 칸나가 하늘로 날아올라 손가락으로 제영의 이마를 콕 짚었다.
 “붕대?”
 “응.”
 제영은 시키는 대로 붕대를 휙휙 풀었다.
 흰 붕대에는 아직 찢긴 이마에서 새어 나온 피가 묻어있었다.
 쉬쉬쉭.
 구슬이 붉은빛으로 빛나더니 그 기운이 이마 쪽으로 마치 자석처럼 빨려 들어갔다.
 제영은 7바늘이나 꿰맨 상처 부근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쉬쉬쉭.
 불빛이 사라지자 제영은 상처 부근을 매만졌다.
 상처가 있어야 할 부분이 매끈매끈한 피부가 재생되어 있었다.
 “··· 우아.”
 칸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바로 축복의 구슬의 힘이야. 어때? 신기하지.”
 제영은 말없이 시선을 떨궜다.
 이마 상처가 아문 것치고,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왜 그래?”
 “있잖아. 칸나.”
 “말해.”
 “이걸로 몸을 바꿀 수도 있어?”
 “당연하지.”
 “예를 들면?”
 “그야 뭐. 얼굴이 잘생겨진다거나, 키를 크게 한다거나, 몸짱이 된다던가 그런 거 말이야. 그리고 거기도 물론 크게 해줄 수가 있지 후훗 ···.”
 칸나가 가장 기다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음란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까부터 왜 그래? 어딜 바꾸고 싶은 거야?”
 “바꾸기보단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 최근이 아니라 예전에 다친 곳을. 가능해?”
 칸나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음. 가능하지. 미션만 제대로 수행한다면···. 왜? 어디 치료하고 싶은 곳이 있어?”
 제영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있어.”
 
 
 # 첫 번째 미션
 
 
 “거기가 어딘데?”
 제영이 오른손을 칸나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3년 전에 여길 좀 다쳤어.”
 “어쩌다가?”
 제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가.”
 소년의 눈빛은 어딘가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아까 이게 드래곤 볼이냐고 물어본 거야. 줄곧 내 소원은 예전처럼 오른손을 원래대로 쓰는 거였거든.”
 칸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시시한 소원이군.”
 “역시 힘들까?”
 “아니. 이뤄질 수 있어.”
 “정말? 어떻게?”
 “그거야 네가 하기에 달렸지.”
 파닥파닥.
 칸나가 제영의 손 위에 있는 구슬 위에 내려앉았다.
 “앞으로 축복의 구슬은 네게 미션을 줄 거야.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방금처럼 신의 가호가 깃든 축복이 내릴 거고···.”
 “그럼 머지않아 내 손도 나을 수 있겠구나!”
 제영은 왼손을 꼭 쥐었다.
 “좋았어!”
 칸나는 제영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나중에 어른이 되면 거길 크게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걸.”
 제영은 칸나의 음란한 농담을 가뿐히 무시하고 고개를 들었다.
 푸른 하늘은 복잡한 심경과 대척점을 이루듯 무심할 정도로 화창했다.
 “아, 탁구 치고 싶다.”
 무의식중에 중얼거린 한마디가 제영의 간절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럼 치러 가면 되잖아. 돌아가서 훈련부터 시작해. 넌 애송이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내가 옆에서 도와주지.”
 “그럴까? 좋아! 그럼 시작하자!”
 제영이 발길을 돌리다 우뚝 멈췄다.
 “아차.”
 “왜 그래?”
 탁구를 하기 위해선 염리중학교의 탁구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제영은 오늘 탁구부에서 쫓겨나다시피 이곳으로 왔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 죽어라 해왔기에 교실로 돌아가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제영이 돌아갈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가자.”
 “어딜?”
 제영이 앞장섰다.
 “우리 집으로.”
 
 * * *
 
 “나 왔어!”
 제영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릭.
 불쾌하게 열리는 녹슨 문은 을씨년스런 소리로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다.
 산언덕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달동네.
 그 중에도 낡고 낡은 슬레이트집이 제영이 사는 곳이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똥강아지 왔는가?”
 할머니가 방에서 맨발로 뛰쳐나오면서 양팔을 펼쳤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한 할머니는 세월을 자랑하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제영을 보자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제영은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녀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그 향기가 제영의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다.
 줄곧 기숙사에서만 지나다 집에 돌아온 건 두 달 만이었다.
 “오구. 오구. 우리 똥강아지.”
 할머니가 제영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제영의 등 뒤로 칸나가 검은 날개와 기다란 꼬리를 흔들거리며 공중에 둥둥 뜬 채로 따라왔다.
 “뭐야? 이런 더러운 곳에서 사는 거야? 어휴. 궁상맞긴.”
 제영은 칸나를 가리켰다.
 “아 참. 할머니. 인사해. 이쪽은···.”
 칸나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어차피 그녀 눈에 내가 보이지 않으니까.”
 사모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이곳 사람은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할머니.”
 “그나저나 우리 똥강아지 갑자기 말도 없이 어쩐 일이야?”
 “아, 그게.”
 탁구부에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죽어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제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서 왔지.”
 “어이구. 그래? 내 새끼 배고프구나.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
 “알겠어.”
 제영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6평 남짓한 공간.
 뒤가 길쭉하게 튀어나온 구형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이때 북한은 핵 실험장을 폐기하면서 비핵화의 첫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잇따라 지난 6일 스웨덴 할름스타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성된 남북 여자 탁구 단일팀이 3위에 올랐습니다···.
 
 칠이 벗겨진 옷걸이엔 겨울옷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자개로 된 구식 장롱 아래로 구겨진 이불이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좁은 방안에 놓인 살림살이는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엔 종이 뭉치가 잔뜩 쌓여있었다.
 칸나가 발로 툭 종이를 건드렸다.
 “이게 다 뭐야?”
 제영은 이 모든 게 익숙한지 종이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이그 할머니. 또 쇼핑백 접고 있었어?”
 주방 쪽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손 놀려서 뭐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우리 똥강아지 맛있는 거 해 먹여야지.”
 칸나는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이 주방이지 다 무너져 가는 베란다를 개조해 만든 곳이다.
 주방엔 구형 가스레인지와 냉장고가 전부였다.
 그 옆으론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폐지가 잔뜩 쌓여있었다.
 칸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알만하군.”
 제영은 그 자리에 앉아 능숙하게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쇼핑백 1개 단가는 40원.
 단순 작업이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한 개 접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1시간에 접을 수 있는 쇼핑백은 약 20개.
 할머니는 손이 느렸기에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양은 2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10시간을 꼬박 투자해서 버는 돈은 고작 8,000원에 불과했다.
 제영이 쇼핑백을 접고 있으니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할매. 이게 뭐야?”
 “뭐긴 뭐야. 우리 똥강아지 좋아하는 거지.”
 안에 200mL짜리 초코우유와 크림빵이 들어있었다.
 초코우유와 크림빵.
 산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것으로 제영이 예전에 즐겨 먹던 조합이었다.
 파닥. 파닥.
 칸나가 그걸 들여다보더니 질색했다.
 “윽! 이거 곰팡이 핀 거 봐! 유통기한 지났잖아!”
 그러나 제영은 짐짓 모른 척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응. 할매! 잘 먹을게!”
 “그려. 밥 해줄 테니까 그거 먹으면서 기다려.”
 눈이 침침한 할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갔다.
 제영은 할머니가 나가자 비닐봉지를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어차피 못 먹는 거, 그녀 앞에서 버리긴 싫었다.
 파닥. 파닥.
 “어이고. 효자 났네. 효자 났어.”
 칸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영은 다시 쇼핑백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근데 칸나. 축복의 구슬은 항상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거야?”
 구슬 성인 남성 손에 가득 찰 만큼 커다랗게 생겼다.
 이를 매번 들고 다니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었다.
 “축복의 구슬은 실체가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사용자의 편의에 맞게 고안한 것일 뿐. 실제론 무형의 물체야.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에겐 보이지도 않아.”
 칸나가 쇼핑백 하나를 집어 제영이 하는 것처럼 접어 보려다 이내 귀찮은 듯 바닥에 던졌다.
 “축복의 구슬엔 내가 깃들어 있어. 그러니까 꼬맹이 네가 임의로 주문을 정해. 그럼 내가 필요할 때 구슬과 함께 나타날게.”
 “그럼 인, 아웃으로 할래.”
 “인? 아웃?”
 “응.”
 제영은 탁구공이 탁구대 안으로 들어가고 나갈 때를 지칭하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마음대로 해.”
 제영이 구슬에 대고 외쳤다.
 “아웃!”
 쉬쉭!
 구슬은 한기를 내뿜으며 사라졌다.
 동시에 칸나도 구슬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인!”
 쉬쉭!
 칸나와 구슬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외에 또 궁금한 건 없어? 축복의 구슬이 색이 변할수록 얻게 되는 능력이라든지···.”
 “잠깐만. 우선 이것 좀 접고.”
 제영이 끙끙거리면서 쇼핑백을 열심히 접었다.
 착. 차악. 착.
 고사리 같은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후. 오랜만에 하려니깐 속도가 나질 않네.”
 특히 제영은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놀릴 수 없었기에 더욱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기껏 축복의 구슬을 손에 넣었으면서 하는 일이 종이접기라니. 쯧쯔. 한심하구만.”
 칸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티브이 선반 위에 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액자에 들어있는 사진 속에는 제영.
 그리고 제영의 엄마 아빠가 함께 담겨 있었다.
 칸나의 눈이 사진을 꿰뚫었다.
 슈슈슝.
 순간, 과거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가 부슬부슬 오던 늦은 밤.
 제영의 가족은 차 안에 라디오를 들으며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말했다.
 “아우. 피곤해. 놀이기구 하나 타려고 대체 몇 시간을 기다린 거야?”
 “투덜거리긴. 당신이 제일 들떠서 소리를 마구 지르더니만.”
 옆에 있던 엄마가 핀잔을 주었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제영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김제영. 이제 그거 그만해. 눈 나빠져.”
 “엄마. 나 조금만 더 할게. 기숙사 들어가면 맨날 코치님이 휴대폰부터 빼앗아간단 말이야.”
 당시 중학교 1학년인 제영은 순 응석받이였다.
 철이 들고 애 어린이 된 건 그 이후의 일이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었다.
 아빠가 하품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바로 그때.
 콰앙!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 기사가 제영이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박았다.
 소형차는 순식간에 캔 찌그러지듯 앞부분이 박살 났다.
 아빠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엄마는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뒷자리에 앉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제영은 트럭 밑으로 오른손이 깔렸다.
 바닥에 쓰러진 제영의 시야로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손을 뻗는 엄마가 보였다.
 “···제, 제영아.”
 “···엄마.”
 제영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다.
 고래고래 뭔가를 외쳤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쏴아아.
 비는 하염없이 내렸다.
 구조대는 엄마가 숨을 거둔 이후에야 도착했다.
 
 “저기요. 악마 씨.”
 제영의 목소리에 칸나가 화들짝 놀랐다.
 팟.
 현실로 돌아온 칸나는 제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해? 왜 멍 때리고 있어.”
 칸나가 가족사진에서 시선을 뗐다.
 모든 게 3년 전에 벌어졌던 일이다.
 “뭐가. 나 신경 쓰지 말고 그거나 마저 접어.”
 칸나가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방 쪽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내 새끼. 밥 다됐어. 어여 와서 먹어.”
 “응. 할머니.”
 제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안 먹어?”
 “악마가 밥 먹는 거 봤냐?”
 “그럼 난 밥 좀 먹고 올게. 피를 많이 흘렸더니 허기가 지네.”
 제영은 이마를 쥐며 비척비척 주방으로 걸어갔다.
 칸나는 두둥실 떠서 제영을 따라갔다.
 “와아! 맛있겠다.”
 제영이 바닥에 놓인 간이 식탁 앞에 앉았다.
 반찬은 달동네 집만큼이나 볼품없었다.
 언제 담근 지 모를 쉰 김치.
 계란 프라이와 김.
 그게 전부였다.
 “내 새끼. 뭐 더 먹고 싶은 거 있어? 고기라도 구워 줘? 아님. 국이라도 끓여줄까?”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해.”
 제영은 잘 알고 있었다.
 이 집엔 고기도.
 국을 끓일 재료도 없었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으며 겨우 연명하는 할머니.
 그리고 제영은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겨우겨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안 먹어?”
 “어여 먹어. 난 아까 먹어서 배불러.”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가까스로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덥석.
 제영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등은 나무껍질처럼 까끌까끌하고 생기가 없었다.
 “할머니.”
 “응?”
 제영이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조금. 아주 조금만 기다려. 내가 탁구로 반드시 성공해서 할머니 꼭 호강시켜 줄 테니까.”
 할머니는 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우리 똥강아지가 곁에 있어서 지금도 충분히 호강하고 있어.”
 칸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짠내 나서 더 못 봐주겠네.”
 칸나는 방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는 여전히 너저분하게 쇼핑백이 흩어져 있었다.
 “······.”
 칸나는 손을 들었다.
 원래 소환당한 악마가 현실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그녀는 고심 끝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
 스슥.
 종이뭉치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방 안에 놓인 쇼핑백 전부가 완성되었다.
 “아, 배부르다.”
 식사를 마친 제영이 방으로 돌아왔다.
 “어라? 이거 칸나 네가 다 접은 거야?”
 “됐고.”
 칸나가 제영의 말을 잘랐다.
 어쩐지 그녀의 눈빛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구슬부터 꺼내.”
 “응?”
 “얼른.”
 “알겠어.”
 제영이 한 손을 들었다.
 “인!”
 구슬이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징. 지잉.
 “어라?”
 구슬은 나타나자마자 제영의 손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 이거 갑자기 왜 이래? 또 전화라도 온 거야?”
 “헛소리 말고. 잘 봐.”
 똑. 또독.
 타이핑 소리와 함께 구슬에서 글자가 떠올랐다.
 
 << 축복의 구슬 미션 >>
 : 탁구채로 탁구공을 천 번 튕겨라.
 단, 공중으로 뜬 높이가 1m이상 되어야 한다.
 
 칸나가 구슬을 가리켰다.
 “이거 보이지? 이게 바로 미션이야. 임무를 완수하면 보상으로 넌 또 다른 축복을 받을 수 있어.”
 밖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제영아. 할미는 동네나 한 바퀴 돌고 오련다.”
 할머니가 동네를 돈다는 건 곧 폐지를 수거한다는 의미였다.
 꽉.
 제영은 구슬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소년의 눈빛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당장 시작하자.”
 
 
 # 아기와 악마
 
 
 “후.”
 제영은 마당에서 서서 숨을 가다듬었다.
 왼손엔 쉐이크 라켓이, 오른손엔 탁구공을 쥐고 있었다.
 “천 번이라.”
 제영이 미션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칸나. 내가 직접 세야 해?”
 파닥. 파닥.
 칸나가 제영 주변을 날아다녔다.
 “아니. 이렇게 하면 되지.”
 딱.
 손가락을 튕기자 제영의 앞쪽에 반투명한 흰색 숫자와 글씨가 떴다.
 
 - 0.
 : Challenge.
 
 “호오. 신기하네.”
 “성공할 수 있겠어?”
 제영이 탁구채를 들었다.
 “이거 왜 이래? 이래 봬도 나 중등부 탁구 선수야. 단번에 통과해주지.”
 휙.
 공이 하늘 위로 솟았다.
 통. 통. 통.
 제영은 능숙하게 탁구채로 탁구공을 튕겼다.
 라켓으로 탁구공을 튕긴다.
 이는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난이도였다.
 숫자는 올라갔다.
 
 - 7. 8. 9 ···.
 : Challenge.
 
 “생각보다 쉬운데? 이대로 금방 성공···.”
 
 삐익-!
 
 경고음과 함께 글씨가 붉은색으로 변했다.
 
 - Fail!
 
 툭.
 탁구공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숫자는 빠르게 0으로 돌아갔다.
 “어? 이거 왜 이래.”
 칸나가 파닥파닥 날아다니며 붉은색으로 된 Fail 글자를 온몸으로 통과했다.
 “바보. 구슬을 꺼내봐.”
 “인!”
 제영의 손안에서 구슬이 튀어나왔다.
 구슬 안에 새겨진 미션이 보였다.
 
 << 축복의 구슬 미션 >>
 : 탁구채로 탁구공을 천 번 튕겨라.
 단, 공중으로 뜬 높이가 1m 이상 되어야 한다.
 
 “아. 높이.”
 “맞아. 공이 1m 이상 올라가야만 성공으로 간주해.”
 제영이 쓴맛을 다셨다.
 “쩝. 그렇군.”
 제영은 탁구공을 주웠다.
 “다시!”
 통. 통.
 
 - 21. 22. 23 ···.
 : Challenge.
 
 점점 동작이 몸에 익고 자세가 안정되었다.
 횟수는 금세 100회가 넘어갔다.
 
 - 114. 115. 116 ···.
 : Challenge.
 
 “좋아. 이대로 가면!”
 제영이 라켓을 쥐고 있지 않은 손을 불끈 쥐었다.
 방심한 탓일까.
 틱.
 탁구공이 탁구채 가장자리에 맞고 옆으로 튕겼다.
 “안 돼! 위험. 위험!”
 뒤늦게 탁구채를 재빨리 올려 공을 살렸지만 소용없었다.
 
 삐익-!
 
 어김없이 경고음과 함께 붉은 글씨가 떴다.
 
 - Fail!
 
 파닥. 파닥.
 “꺄하하. 멍청이. 마지막에 1m 높이가 안 됐잖아.”
 제영은 숨을 내쉬었다.
 “후. 덥다.”
 여름이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7월.
 습하고 더운 온도 때문에 서 있기만 해도 금방 숨이 차올랐다.
 파닥. 파닥.
 칸나가 제영의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꼬맹아.”
 “응?”
 “내가 봤을 때 이번 미션은 쉬워 보여도 난이도가 헬급이야. 이만 포기하고 다음 미션으로 서둘러 넘어가자. 이것만 붙잡고 있는 건 괜한 시간 낭비야.”
 달콤한 그녀의 음성이 제영에게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너처럼 어렸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면 개인 시간이 거의 없잖아.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 일단 방안에 편히 누워서 TV나 보면서 다음 미션을 기다리자. 어때?”
 쓱.
 제영은 허리를 굽혀 탁구공을 주웠다.
 “다시.”
 통. 통. 통.
 계속된 실패에 짜증을 날 만하건만, 제영은 자꾸 도전했다.
 
 - 314. 315. 316 ···.
 : Challenge.
 
 “오. 웬일? 처음으로 300번을 넘겼네.”
 칸나가 감탄하자마자 어김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삐익-!
 힘 조절을 잘못해서 공을 그만 낮게 튕기고 말았다.
 “하아.”
 제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다시.”
 연이어 도전한다고 해서 숫자가 무조건 늘어나는 건 아니었다.
 자칫 정신을 팔면 가벼운 탁구공은 이상한 곳으로 튀어 올랐다.
 이번엔 고작 4번째에서 실패했다.
 탁구공을 튕긴 횟수가 자꾸 들쭉날쭉했다.
 그럴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 삐익! Fail!
 - 삐익! Fail!
 - 삐익! Fail!
 - 삐익! Fail!
 
 실패라는 붉은색 글자가 제영의 눈앞에 두둥실 떠있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갔다.
 칸나가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할 거야? 지겨워 죽겠네.”
 제영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바닥으로 훔쳤다.
 “될 때까지.”
 저 멀리서 작은 손수레를 끌고 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제영은 잠시 라켓을 내려놓았다.
 “할머니.”
 “오구. 우리 손주. 더운데 밖에서 뭐 하고 있어.”
 “할머니 기다리고 있었지.”
 제영은 손수레를 내려다보았다.
 안은 텅 비어있다.
 요즘엔 폐지를 줍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서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꾹.
 라켓을 쥔 제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 똥강아지. 배고프지? 얼른 들어가서 밥 먹자.”
 “아냐. 할머니 먼저 들어가. 나 오늘 꼭 할 일이 있어.”
 “할 일?”
 “응. 먼저 들어가서 자. 난 있다가 들어갈게.”
 “에이. 할미랑 같이 먹어.”
 “괜찮아. 나 배 안 고파. 졸리면 먼저 자고.”
 제영이 할머니의 등을 떠밀었다.
 홀로 남은 제영은 탁구공을 쥐었다.
 “다시.”
 통. 통. 통.
 어둑어둑한 달동네에 탁구공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 245. 246. 247 ···.
 : Challenge.
 
 - 삐익! Fail!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제영은 흔들림 없이 탁구공을 줍고 또 주웠다.
 칸나는 졸린 눈으로 길게 하품을 했다.
 “하암. 미련하긴. 이대론 평생 해도 성공 못 해. 그만 포기하고 다른 미션에 도전하자고.”
 통. 통. 통.
 
 - 3. 4. 5 ···.
 : Challenge.
 
 제영은 말없이 탁구공을 튕겼다.
 “···.”
 칸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조언을 듣지 않는 제영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흥! 맘대로 해! 난 들어간다.”
 펑.
 칸나가 구슬 안으로 사라졌다.
 통. 통. 통.
 달빛 아래서 탁구채를 쥔 소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 * *
 
 짹짹짹.
 푸른 새벽이 물러가고 아침이 밝아오자 참새 떼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펑.
 “하암.”
 칸나가 기지개를 켜며 나타났다.
 통. 통. 통.
 “응?”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설마.”
 칸나는 고개를 돌렸다.
 뚝. 뚝.
 제영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탁구채 위로 떨어졌다.
 통. 통. 통.
 탁구채를 쥔 팔은 심하게 흔들리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모든 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불안했지만 단 하나만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바로 소년의 눈빛.
 제영의 동공이 활활 불타올랐다.
 ‘맙소사. 대체 얼마 동안 저러고 있었던 거야?’
 오후 3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제영은 꼬박 16시간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오직 공치는 데만 집중했다.
 통. 통. 통.
 “으윽.”
 제영은 이를 악물었다.
 시선은 줄곧 눈앞에 있는 숫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 987. 988. 989 ···.
 : Challenge.
 
 꿀꺽.
 칸나는 침을 한 움큼 삼켰다.
 어떤 야유와 비난도.
 장난스러운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끝없는 실패와 좌절.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통. 통. 통.
 
 - 990. 991. 992 ···.
 : Challenge.
 
 통. 통. 통.
 제영은 떨리는 팔로 죽을힘을 다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나 점점 한계가 오고 있었다.
 “크윽!”
 팅.
 순간 공이 탁구채의 가장자리에 맞았다.
 칸나가 외쳤다.
 “힘내!”
 팍.
 제영은 손목을 들어 올렸다.
 탁구공은 가까스로 1m 이상 높이로 튀어 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어느새 칸나는 마음을 다해 제영을 응원했다.
 
 - 997. 998. 999 ···.
 : Challenge.
 
 마침내 숫자가 1000을 찍으며 번쩍 빛났다.
 
 - 1000.
 : Success!!!
 
 “해냈다.”
 띠로링!
 삐익! 거렸던 경고음과 다르게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알람이 울렸다.
 
 << 미션 성공! >>
 : 보상으로 사용자에게 축복이 내립니다.
 
 “제영. 구슬을 소환해. 어서!”
 “응? 어···.”
 제영이 반쯤 풀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 정신이 혼미했기에 성공의 기쁨을 채 누리지도 못했다.
 “인!”
 쉬쉭.
 제영의 손에서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잉. 지이잉.
 구슬은 꽉 쥐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질 정도로 심하게 진동했다.
 화악!
 구슬에서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붉은빛은 마치 살아 숨 쉬듯 제영의 오른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가락과 팔꿈치까지.
 뭔가 뜨겁고 끈적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으아. 이게 뭐야.”
 파닥. 파닥.
 칸나가 제영의 주변으로 날아왔다.
 “그대로 기다려.”
 슈슈슉.
 붉은빛은 완전히 제영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구슬의 진동도 멈췄다.
 “아.”
 제영은 손을 쥐었다 폈다.
 사고 후, 악력이 약해져 제대로 주먹을 쥘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먹을 쥐자 손아귀에서 우드득 뼈 소리가 났다.
 모든 걸 으스러트릴 만큼 손에서 힘이 넘쳤다.
 오른손은 사고 이전으로 회복을 넘어 훨씬 더 강해졌다.
 “와···.”
 제영의 눈이 커졌다.
 3년 동안 재활치료로도 극복하지 못했던 부상이 단 한 순간에 완치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와. 우와···!”
 제영이 오른손을 들고 외쳤다.
 당장 펄쩍펄쩍 뛰고 싶었지만, 제영의 눈꺼풀은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다.
 칸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 축복의 구슬. 짱이지?”
 16시간에 걸쳐 이룬 도전의 결과가 마치 자기 일처럼 기쁘게 느껴졌다.
 “으응. 정말 짱···.”
 쿵.
 제영은 그대로 쓰러졌다.
 “헉! 야! 괜찮아?”
 드르렁.
 제영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어 코를 골았다.
 “휴.”
 칸나는 제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사모님. 자꾸 능력을 써서 죄송하지만,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대천사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칸나는 힘을 절제하고 인간세계에서 항상 작은 모습을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칸나는 본래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에 악마의 별이 그려진 마법진이 새겨졌다.
 슈화악!
 눈 부신 빛과 함께 칸나가 커졌다.
 슈슈슉.
 빛이 사그라지자 칸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펄럭. 펄럭.
 10cm 크기의 몸으로 앙증맞은 박쥐 같은 날개를 파닥이던 칸나가 165cm의 평범한 여성으로 돌아왔다.
 검은색 날개는 집채만큼 거대했다.
 그저 귀엽던 인상도 어딘가 모르게 변했다.
 눈빛엔 색기가 돌고 가슴은 풍만해졌으며 탐스러운 허벅지 위로 치마가 짧게 올라왔다.
 샤르륵.
 칸나가 바닥에 착륙해 제영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으차.”
 칸나는 제영의 머리를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렸다.
 쌔근쌔근.
 “이거야 원. 탁구 선수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네. 위대하신 서큐파로스 칸나님 꼴이 말이 아니잖아.”
 “음냐.”
 제영은 잠꼬대했다.
 “하나. 둘 ···.”
 소년은 꿈속에서도 공을 튕기고 있었다.
 “어휴. 독한 놈.”
 파락.
 툴툴거리는 말투와 달리 칸나는 날개 한쪽을 들어 제영의 얼굴에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었다.
 
 
 # 초심으로
 
 
 “음냐.”
 제영은 슬며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갑자기 주변이 낯설게 여겨졌다.
 원래라면 탁구부 기숙사 풍경이 펼쳐져야 한다.
 주위는 6평 남짓한 초라한 공간이었다.
 ‘아. 집에 왔었지.’
 밥상 위에 쌀밥과 쉰 김치, 그리고 김이 놓여있었다.
 그 위엔 신문지가 덮여있고 곁에는 할머니가 두고 간 쪽지가 보였다.
 
 - 우리 똥 강아쥐. 밥 쳉겨머겅.
 
 비뚤비뚤한 글씨체, 맞춤법은 엉망이었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제영은 몸을 일으켰다.
 “으윽.”
 16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탁구공을 튕긴 탓일까.
 온몸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탁구팀 추방, 축복의 구슬, 칸나, 미션 ···.
 갑자기 간밤에 일어난 일이 꿈처럼 여겨졌다.
 제영은 오른손을 들었다.
 꾸욱.
 팔에서 핏줄이 튀어나오고 힘이 넘쳤다.
 “꿈이 아냐.”
 이번엔 왼손을 들고 외쳤다.
 “인!”
 쉬쉭.
 한기가 깃든 연기와 함께 구슬이 나타났다.
 펑.
 함께 칸나도 모습을 드러냈다.
 파닥. 파닥.
 “안녕. 꼬맹아. 잘 잤냐.”
 칸나는 기존의 10cm가량 피규어처럼 생긴 귀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칸나. 어젠 어떻게 된 거야? 기억이 전혀 안 나.”
 “어떻게 되긴. 내가 널 여기까지 업고 오느라 개고생했지. 감히 위대하신 서큐파로스 칸나 님 등에 눕다니.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
 제영은 고개를 흔들고 잠기운을 떨쳤다.
 “지금 몇 시지?”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헉! 학교!”
 미션을 완수한 후 곯아떨어져 버려 등교하는 걸 깜빡했다.
 제영은 서둘러 책가방을 찾았다.
 그러나 어제 응급실로 간 후에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았기에 딱히 챙길게 없었다.
 그때, 바닥에 놓인 탁구채가 보였다.
 손때가 묻은 낡은 쉐이크 라켓.
 파닥. 파닥.
 칸나가 제영의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학교? 너 탁구부에서 쫓겨났잖아. 어쩌려고?”
 제영은 탁구채를 집으며 싱긋 웃었다.
 “돌아가야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 * *
 
 통. 탕. 통. 탕.
 염리중학교 탁구부의 체육관.
 그곳은 여느 때랑 다름없이 오후 훈련 열기로 가득했다.
 “대충대충 감으로 치지 마! 하나를 치더라도 제대로 자세를 잡고 치란 말이야!”
 덩치가 큰 코치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정 감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본래 탁구팀 총괄을 맡은 감독은 체육관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직접 지휘하는 역할은 코치들의 몫이었다.
 중학생 중 한명이 상대방과 랠리를 하면서 말했다.
 “뭐야? 배신우 이 자식은 왜 안 보여?”
 소년의 이름은 편도현.
 중학교 3학년으로 염리중 탁구부 주장을 맡고 있었다.
 편도현은 본래 염리중학교 탁구부 에이스였으나 얼마 전 전학 온 배신우에게 밀려 하루아침에 2인자가 되고 말았다.
 퉁. 탕!
 맞은편에서 랠리를 이어받는 중학생이 말했다.
 “배신우 걔 지금 웨이트 훈련 중일걸.”
 “엥? 오늘은 웨이트 하는 날 아니잖아.”
 “몰랐어?”
 “뭐가.”
 “감독님 특별 지시사항 떨어졌어. 오늘부터 신우는 담당 코치 한 명이랑 따로 다녀.”
 편도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새벽에 트랙 뛰는 것부터 야간 자율 훈련까지. 신우는 우리랑 전혀 다른 훈련일정으로 움직여.”
 “끄으.”
 편도현은 이를 으드득 갈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배신우가 받는 혜택과 특별대우.
 ‘그건 원래 내 것이어야 하잖아!’
 한국은 흔히 학교 다닐 때 운동선수라 하면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공부를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잘해봤자 평생 직업도 못 구하는.
 주로 문제아들이 선택하는 길.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운동해온 이들은 알 수 있다.
 그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결과에 따라 가차 없이 등수가 매겨지고.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한순간에 도태되고.
 위에는 이미 쟁쟁한 선수들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고.
 밑에선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는 재능 있는 샛별들은 끊임없이 치고 올라온다.
 운동선수는 공부하는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다른 평범한 학생을 ‘일반인’이라 부른다.
 끼익.
 체육관 문이 열리고 제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닥파닥.
 제영의 머리 위론 칸나가 날아다녔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동 제영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코치가 탁구공을 던지다 동작을 멈췄다.
 “김제영? 감독님이 너 오늘부터 안 나올 거라고 하시던데?”
 “하핫. 아닙니다. 다시 열심히 해야죠! 감독님도 허락하실 거예요.”
 제영이 라켓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난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코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음성이 들렸다.
 “야.”
 아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염리 중 탁구부 주장 편도현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뻔뻔하게 기어들어 와. 너 어제 감독님한테 쫓겨난 거 맞잖아.”
 “아, 도현아. 안녕.”
 제영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편도현은 입꼬리조차 올리지 않았다.
 “넌 이제 일반인이야. 그러니까 교실로 가서 공부나 해.”
 “아냐. 도현아. 나 다시 시작할 거야. 감독님도 기회를 주실 거고.”
 “이게.”
 편도현이 걸어가 제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너 같은 새끼들이 제일 짜증 나. 열정도, 재능도 없는 주제에 운동한다고 깝죽대다가 결국엔 하핫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하지. 너 같은 놈 때문에 우리같이 열심히 사는 운동선수들이 욕먹는 거라고!”
 “도현아. 이것 좀 놓고···.”
 칸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이 못생긴 놈은. 꼬맹아. 당장 이놈 손목을 잘라줄까? 바닥에 피가 철철 흘러넘치게 할 수 있는데.”
 “그, 그건 안 돼. 칸나.”
 도현이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당장 안 꺼져?”
 쾅!
 그대 제영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뭣들 하는 거야!”
 염리중 탁구부의 호랑이, 정 감독이 나타났다.
 그의 곁엔 염리중 탁구부의 새로운 에이스 배신우가 있었다.
 신우는 막 트레이닝을 끝내고 왔는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이것들이 하라는 훈련은 안 하고 어디 신성한 탁구장에서 쌈박질이야!”
 일순간 조용해지며 다들 시선을 내리깔았다.
 편도현이 나섰다.
 “그게 아니라 감독님. 김제영 이놈이···.”
 “조용히 안 해!”
 “쳇.”
 편도현은 어쩔 수 없이 잡았던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뚜벅. 뚜벅.
 감독이 제영 앞으로 걸어왔다.
 “김제영.”
 “네. 감독님.”
 “너 내가 어제 한 말 못 들었냐?”
 “들었습니다.”
 “그럼 뭐야?”
 “네?”
 “여길 다시 찾아온 건 내 말을 이해하고도 무시한 거냐. 아니면 내 말이 우스워서냐.”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제영이 헤벌쭉한 표정을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시 밑바닥부터요.”
 감독은 제영을 내려다보았다.
 어벙해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소년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반면, 감독의 등 뒤에 서 있는 배신우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직 그에겐 김제영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감독이 말했다.
 “오케이. 알겠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드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단, 조건이 있다.”
 “네?”
 “입단 시험을 거쳐라.”
 “에?”
 “초심으로 돌아간다며.”
 정 감독이 제영에게 이런 제안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편도현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분명 노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재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제영이 열정만 가지고 탁구를 계속 치려 한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았다.
 그러나 감독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제영은 긍정의 아이콘 그 자체였다.
 “네! 좋습니다! 감독님! 처음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그래야죠!”
 ‘···. 도저히 기가 죽지 않는 아이로군. 마치 잡초 같아.’
 정 감독이 제영의 더벅머리를 보며 풀밭을 떠올렸다.
 잠자코 듣고 있던 편도현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제게 기회를 주세요.”
 “무슨 기회?”
 “제가 김제영을 테스트할게요.”
 편도현은 고개를 돌려 제영을 바라보았다.
 제영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감독은 편도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묵직한 감각.
 편도현은 어깨 위 무게를 느끼며 배신우에게만 향해있는 감독의 시선이 어쩌면 자신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김제영. 네가 5판 3승 경기에서 도현이에게 단 한 세트라도 따낸다면 내가 널 다시 받아주마.”
 제영은 염리부 탁구장의 만년 열등생, 순위로 치면 줄곧 꼴찌를 꿰차고 있었다.
 반면, 편도현은 배신우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중학생 탁구부지만 두 사람의 실력 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감독은 애초에 제영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다.
 편도현이 콧방귀를 꼈다.
 “피. 감독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아시잖아요. 제영이랑 100판을 해도 100판 다 제가 이겨요. 6점 정도 핸디라도 주고 하시죠.”
 감독은 도현의 말을 무시했다.
 “단, 김제영 네가 한판도 따내지 못한다면 당장 나가서 다시는 여길 오지 마라. 앞으로 영원히.”
 제영은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파닥. 파닥.
 칸나가 날아다니다 제영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저 영감탱이 감독이나. 여기 있는 놈들 전부 맘에 들지 않네. 야. 꼬맹아.”
 제영은 말없이 고민을 이었다.
 “뭘 망설이는 거야? 그 정도로 저놈이 강한 거야? 가서 본때를 보여줘 버렷!”
 제영은 고개를 들었다.
 “감독님.”
 “그래. 할 테냐.”
 “네. 하지만 5판 3선승에서 도현이에게 단 한 세트를 따는 조건은 불공평 합니다.”
 “뭐? 불공평하다?”
 감독은 턱을 쓰다듬었다.
 꼴찌와 한때 일등의 대결.
 분명 출발선이 다른 불공평한 시합이긴 했다.
 “오케이. 그러면 도현이 말대로 핸디를···.”
 “아뇨.”
 제영이 감독의 말을 끊었다.
 “5판 3선승에서 제가 3세트를 따내겠습니다.”
 “뭐?”
 편도현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 세트도 따기도 힘든 경기에서 자신을 꺾고 이기겠다고?
 감독은 제영의 대답을 곰곰이 되씹었다.
 어린아이의 허세인가.
 자기 주제를 모르는 만용인가.
 “만약 제가 진다면.”
 감독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제영이 말을 이었다.
 “그땐 제 발로 나가겠습니다.”
 한바탕 침묵이 흘러갔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오케이. 다들 모여! 지금부터 김제영 대 편도현. 5판 3선승. 게임을 시작한다.”
 와아! 함성이 터졌다.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오후 10시에 잠들기 전까지.
 중학생 탁구 선수의 일과는 지루한 훈련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에게 작은 이벤트가 열렸다.
 분명 편도현이 이길 게 뻔한 경기였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재미난 볼거리가 생긴 셈이니까.
 “다들 테이블 돌려. 공간 널찍하게 쓴다.”
 “네!”
 감독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편도현은 제영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발로 나간다는 그 말. 평생 후회하게 해줄게. 멍청아!”
 제영은 해맑게 웃었다.
 “잘해 보자. 도현아.”
 
 
 # 봉인 해제
 
 
 체육관 중앙에 탁구대 하나가 놓였다.
 각 끝쪽엔 제영과 편도현이 서로 마주 보고 섰다.
 탁구대 중심으로 탁구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트레이너 한 명은 심판대 위에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대박. 김제영이 주장한테 도전했다고?”
 “지면 자기 발로 탁구장을 나간다고 했대.”
 “참나. 뭘 믿고 저렇게 설치나 몰라.”
 “모르지. 또 믿는 구석이 있을지.”
 오늘의 빅 이벤트.
 
 -김제영 vs 편도현.
 
 염리부 탁구부 만년 꼴찌와 이인자의 대결이었다.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중엔 배신우도 있었다.
 “······.”
 신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틱. 틱.
 신우의 시선은 제영도, 도현에게도 향해 있지 않았다.
 그저 모든 상황이 따분하다는 듯, 탁구대 어딘가를 멍하게 바라볼 뿐이다.
 뚜벅. 뚜벅.
 감독이 중앙으로 걸어갔다.
 “5판 3선승제. 먼저 세 판을 챙긴 사람이 승자다.”
 감독은 제영과 편도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영이 이기면 제영은 이곳에 남는다. 그러나 편도현이 이기면 약속했던 것처럼 제영 넌 이곳을 떠나라. 알겠나?”
 제영은 준비운동을 위해 양쪽 어깨를 돌렸다.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편도현은 준비운동을 하지도 않고 턱을 치켜들었다.
 “흥. 몸풀기 상대도 안 되겠군.”
 파닥파닥.
 칸나가 탁구대 위에 내려앉았다.
 “꼬맹아.”
 “응.”
 “구슬을 소환해봐.”
 “인!”
 쉬쉭.
 제영의 손에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이들 눈에는 구슬이 보이지 않았다.
 칸나가 구슬을 가리켰다.
 “그걸 통해서 상대를 들여다 봐.”
 “이걸로?”
 제영은 시키는 대로 구슬을 들어 한쪽 눈을 감고 투명한 붉은 빛 너머로 편도현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오각형 선이 떠오르며 상대방 특기와 능력치가 표시되었다.
 
 [ 편도현(16) ] Red
 < 셰이크 라켓 >
 : 전진 공수형.
 • 신체 45
 • 스피드 70
 • 감각 63
 • 지능 59
 • 특수기 27
 
 “우와. 이게 뭐야.”
 칸나가 탁구대 위에 앉아 하트 모양으로 된 꼬리를 살랑거렸다.
 “상대편 전력을 보여주는 거야. 신체는 체력과 근력을 포함한 그 외 모든 몸의 능력을.
 스피드는 말 그대로 속도.
 감각은 공을 얼마나 섬세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지를.
 지능은 게임을 풀어가는 전략.
 특수기는 위기 상황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필살기랄까.”
 제영이 구슬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신기해. 마치 게임 같아.”
 “상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니 앞으로 경기 전에 구슬을 꺼내면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제영은 구슬을 들여다보며 편도현의 정보를 탐색했다.
 ‘맞아. 도현이는 전진 공수형이었지.’
 전진 공수형.
 근력과 완력에는 자신이 없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
 특히 요령이 좋은 선수가 주로 활용하는 플레이 기법이다.
 “꼬맹아. 구슬을 네 가슴 중앙으로 끌어당겨 봐.”
 “이렇게?”
 제영이 시키는 대로 했다.
 구슬에서 글자와 함께 오각형이 떠올랐다.
 
 [ 제영(16) ] Red.
 < 셰이크 라켓 >
 : 커트 주전형.
 • 신체 39
 • 스피드 66
 • 감각 41
 • 지능 87
 • 특수기 3
 
 칸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커트 주전형? 그건 뭐야.”
 “아아, 그건 말이지.”
 “잠깐.”
 제영이 설명을 해주기도 전에 칸나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펑 하는 연기와 함께 칸나의 손안에서 두꺼운 사전이 튀어나왔다.
 
 『1권으로 끝내는 인간 스포츠』
 저자 : 승리의 여신 니케(Nike).
 
 팔랑. 팔랑.
 칸나가 탁구대에 앉아 품 안에서 꺼낸 동그란 안경을 쓰고 책장을 넘겼다.
 “흐음.”
 그녀는 다리를 꼬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몸이 10cm 정도밖에 안 된 탓에 모든 게 아기자기해 보였다.
 칸나가 책을 읽었다.
 “커트 주전형. 중진과 후진에서 커트 기술로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전술 플레이어.
 흔히 커트맨이라 불린다.
 구질을 빨리 파악하고 끈질기게 방어 중심으로 임하는 게 중요하다. 어라? 맙소사.”
 칸나가 입을 크게 벌렸다.
 “제영 너 망했네!”
 “망하다니. 뭐가?”
 칸나가 책을 마저 읽었다.
 “커트맨은 상대방 공격을 확실히 끊으면서 전후좌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면 실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칸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공의 크기 변화와 러버 기술의 혁신에 따라 커트맨은 서서히 탁구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칸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책에 적힌 대로.
 세계 탁구 랭킹에서 수비수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으음. 그렇긴 하지.”
 제영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커트맨이 얼마나 멋진데. 한국의 주새혁 선수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멋지긴 개뿔! 그저 죽을 둥 살 둥 수비하기에 바쁘다는 이 말이잖아. 안 그래?”
 “아니 꼭 그런 건···.”
 칸나가 심각한 얼굴로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문제는 전술뿐만이 아냐.’
 제영의 능력치는 편도현보다 현저히 낮았다.
 “이봐. 꼬맹아.”
 “응?”
 “이대로 시합하면 반드시 져.”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너 자꾸 그렇게 천하태평 할래? 지면 여기서 쫓겨난다고!”
 “···그, 그런가? 으응?”
 순간, 제영은 관객석 무리에 섞여 있는 배신우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학 오자마자 염리중 탁구부 1위를 먹어버린 천재.
 중3임에도 이미 고등학생 선수까지 이길 실력을 지닌 괴물.
 ‘과연 쟤의 능력치는 어느 정도 될까?’
 쓱.
 제영은 구슬을 배신우 쪽으로 돌렸다.
 그때, 감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제영! 뭘 허공에 허우적대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거야! 시합 안 할 거야!”
 “아, 죄송합니다.”
 편도현은 혀를 차며 비아냥거렸다.
 “쯧쯔. 덜떨어진 놈. 사고를 당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이거 어쩌냐. 넌 운동을 그만둬도 공부도 못하겠다. 아이큐가 낮아서.”
 제영은 구슬을 들여다보며 풋. 하고 웃었다.
 아이큐 운운하는 것치곤 편도현의 지능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상호 간에 경례해. 주심에게도 인사하고.”
 “네!”
 제영은 ‘아웃’을 외치며 구슬을 사라지게 했다.
 감독이 양손을 올렸다.
 “상호 간의 인사. 주심에게 인사.”
 제영과 편도현은 고개를 두 번 숙였다.
 감독이 탁구공을 제영 쪽으로 던졌다.
 “쓰리 마 이후 시작.”
 게임 시작 전에 연습 공을 치는 걸 가리켜 모어(more)라고 하는데, 이를 흔히 탁구용어로 ‘마’라고 부른다.
 공이 아웃 되기 전에 한번 랠리를 하는 걸 ‘원 마’, 두 번이면 ‘투 마’.
 세 번이면 ‘쓰리 마’라고 하는 식이다.
 휙.
 편도현이 탁구공을 던지고 경쾌한 리듬으로 라켓으로 휘둘렀다.
 퉁! 탕! 퉁! 탕!
 제영과 편도현은 가볍게 랠리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었다.
 퉁!
 스윙의 기본인 포핸드 스트로크.
 기초 타구법이지만 모든 기술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탕!
 어깨에 힘을 빼되, 라켓 든 손이 테이블 아래로 쳐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공이 바운드된 후 정점에 달했을 때, 손목과 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타구한다.
 앞을 향해 사선으로 자연스럽게 라켓을 보내며, 허리를 왼쪽으로 살짝 틀어준다.
 퉁!
 폴로 스루는 짧고 간결하게.
 중심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라켓 끝이 왼쪽 눈 방향까지 오도록 진행하되 팔꿈치는 절대 들지 않는다.
 곧바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한다.
 팡!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탁구를 쳐왔기에 포핸드 스트로크는 흠잡을 곳 없었다.
 감독의 시선이 제영에게 향했다.
 ‘자세는 나쁘지 않아.’
 제영은 기본 스윙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엄청 뛰어나진 않지만, 군더더기도 없어.’
 포핸드 스트로크는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렵기도 하다.
 이제 갓 탁구를 시작한 미숙자도 잘만 배우면 한 달 안에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칠 수 있다.
 반면, 10년이 지나도 포핸드 스트로크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하는 고수가 있다.
 그래서 탁구는 애초에 때 묻지 않은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더 유리하다.
 어설프게 배웠다간 안 좋은 습관이 들기 딱 좋다.
 탕!
 심판을 맡은 트레이너가 손을 들었다.
 “쓰리 마 끝. 경기 시작.”
 제영과 편도현이 선공을 정하기 위해 각자 손을 들었다.
 “가위바위보!”
 국제 경기에선 동전으로 선을 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약식으로 경기를 할 땐 보통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제영은 바위.
 편도현은 가위.
 제영의 서브였다.
 통. 통. 통.
 도현이 탁구공을 제영 쪽으로 던지며 으르렁거렸다.
 “빨리빨리 서브 넣어. 10분 안에 끝내주지.”
 제영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로 대답했다.
 “응!”
 척.
 서브 자세를 취한 제영의 눈빛이 달라졌다.
 휙.
 손에 들린 탁구공이 공중을 날았다.
 지름 40mm.
 무게 2.7g의 흰색 원형 물체가 천천히 떠올랐다.
 콱.
 제영이 라켓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며 탁구공에 회전을 걸었다.
 탕. 탕!
 탁구공은 두 번 바운드 되면서 편도현 쪽으로 날아왔다.
 ‘훗. 뻔한 하회전이군.’
 편도현은 재빨리 셰이크 채를 앞으로 쭉 뻗었다.
 언더스핀 서비스라 불리는 하회전은 커트로 리시브를 받아야만 공이 뜨지 않는다.
 틱.
 ‘어?’
 순간 편도현의 눈이 커졌다.
 라켓에 공에 닿자 예상과 달리 탁구공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탁구는 일부러 공을 높이 띄우는 ‘로빙’을 제외하곤 공을 절대로 높이 띄워서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리시브하면···.
 
 따악!!!
 
 제영이 사정없이 공을 내리쳤다.
 파바박.
 탁구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테이블에 맞고 편도현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차아!”
 제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뭐, 뭐야···.”
 “헐. 대박.”
 “와. 서브 미쳤다.”
 지켜보던 중학생들이 저마다 감탄을 터트렸다.
 “방금 봤냐? 완벽한 3구야.”
 “저건 아무리 주장이래도 못 막지.”
 “아니 근데 제영이 저렇게 잘 쳤나?”
 서브를 넣고, 상대가 리시브하면 세 번째 공을 때린다.
 이른바 3구 공격.
 탁구의 기초적인 전법이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우선, 제영처럼 커트인 것처럼 위장해서 실제론 무회전 서브를 넣는 기술이 필요하고.
 상대가 편도현처럼 공을 띄우고 리시브하는 실수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황하지 않고 안정된 공격에 성공해야 비로소 진정한 3구가 완성된다.
 스스슥.
 제영은 원반을 던지듯 팔을 쭉 편 팔을 다시 접으며 원위치로 돌아왔다.
 모든 걸 지켜보던 감독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저건···.”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뒤늦게 이변을 눈치챘다.
 한 명이 제영을 가리키며 외쳤다.
 “김제영 쟤 라켓 쥔 손을 봐! 왼손이 아니야!”
 편도현의 시선이 천천히 제영 쪽으로 움직였다.
 “뭐야 너···.”
 놀란 건 칸나도 마찬가지.
 ‘아. 그렇구나!’
 제영의 능력이 편도현에 비해 유독 낮았던 건 아까 전 제영이 습관처럼 왼손으로 탁구채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영은 라켓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시원하다. 드디어 이 손으로 맘껏 쳐보는구나.”
 사고로 인해 3년 동안 잠자고 있던 제영의 오른손.
 드디어 그 봉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 의외의 인물
 
 
 딱! 따악!
 “차아!”
 제영은 신나게 스매싱을 갈겼다.
 탕! 타앙!
 “차!”
 탁구공은 정확히 반대편 너머를 맞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크윽!
 편도현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제영이 연달아 밀어붙이는 압도적인 게임이었다.
 파닥. 파닥.
 탁구대 위를 날아다니는 칸나가 제영을 내려다보았다.
 “하악. 학.”
 제영은 구슬땀을 흘리며 잔발 스텝을 밟았다.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대를 깔보는 여유가 아니다.
 제영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다시 치니까 아주 그냥 훨훨 날아다니네.”
 구슬을 소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라켓을 잡은 제영의 능력치는 분명 편도현을 넘어설 게 분명하다.
 
 - 세트 스코어 1 : 0
 
 두 번째 세트로 이어진 게임 스코어는 10 : 4로 접어들었다.
 제영이 마지막 한 점만 따면 이기는 상황.
 서브권은 상대에게 돌아갔다.
 “제길.”
 편도현은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제영이 탁구 유망주로 잠깐 주목받았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러나 그건 이미 3년도 지난 일.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보통 초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쯤에 탁구를 시작한다.
 간혹 초등학교 5학년 혹은 6학년 쯤에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는 거의 드문 경우였다.
 제영은 사고를 당한 후에 중학교 1학년 때 왼손으로 새롭게 탁구를 시작했다.
 왼손으로 뒤늦게 따라오려고 했지만, 제영의 실력은 기존 탁구부 아이들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안 져. 저런 놈한테 절대 안 져.”
 척.
 편도현은 서브 자세를 취했다.
 왼손 손바닥 중앙에 탁구공을 올려놓았다.
 그 상태로 공을 16cm 이상 위로 던져 올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서브 규칙이다.
 휙.
 편도현은 탁구공을 띄운 프리핸드를 일부러 한 타이밍 늦게 빼냈다.
 팔은 탁구대 모서리에 살짝 걸쳤다.
 이렇게 하면 미묘하게 공을 가릴 수 있다.
 탕!
 “앗.”
 제영은 백 스트레이트로 오는 서브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퉁.
 탁구공은 탁구대 위를 맞고 허무하게 밖으로 나갔다.
 
 - 게임 스코어 10 : 5
 
 “그렇지!”
 편도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부러 과도하게 파이팅을 외쳤다.
 “좋아! 파이팅! 별거 아니네!”
 봐 줄까? 슬슬 가지고 놀까?
 별거 아니네.
 시합 중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행은 삼가야 마땅하다.
 이는 편도현이 제영 쪽으로 기운 기세를 어떻게든 역전 시켜보려는 허세 섞인 움직임이었다.
 파닥. 파닥.
 칸나가 책장을 뒤지며 성질을 부렸다.
 “뭐야? 방금 저거 서브 반칙 아냐?”
 제영은 뒤돌아서서 바닥에 떨어진 공을 가지러 갔다.
 “반칙 맞아. 하지만 심판이 제재를 걸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어.”
 지금은 정식 시합이 아니다.
 평소보다 심판의 제재가 까다롭지 않았다.
 편도현은 반칙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면서 실은 반칙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시합에 참여 하는 김제영과 편도현 정도뿐이다.
 “프리핸드나 몸을 이용해 고의로 공을 가리는 행위. 가장 악질적인 반칙 서비스지.”
 제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으으. 저 못생긴 놈이.”
 칸나가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 편도현을 노려보았다.
 칸나의 시선을 느낄 리 없는 편도현이 느물거렸다.
 “아아. 이제 좀 몸이 풀리네. 어이 김제빵이. 빨리빨리 공 주워와. 지금부터 제대로 쳐 줄 테니까.”
 칸나가 빽 소리를 질렀다.
 “뭐라는 거야! 지금까지 죽어라 쳤던 주제에!”
 탁.
 제영은 탁구공을 주워 반대편에 라켓을 이용해 튕겼다.
 “그래. 도현아. 나도 끝까지 열심히 할게.”
 “······.”
 편도현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겨우 한판 이겼다고 들뜨긴.”
 휙.
 탁구공이 공중을 날았다.
 도현은 이번에도 슬쩍 몸을 비틀었다.
 아까와 같은 애매한 반칙 서브였다.
 통!
 탁구공이 한 번 튕기면서 제영 쪽으로 날아왔다.
 이번에도 기습적으로 백스트레이트로 오는 공이었다.
 바로 전 서브가 무회전이었다면 이번엔 하회전이 섞인 공이였다.
 커트 서브는 커트로 넘기는 게 가장 무난한 대응법이다.
 만약 상대가 네트보다 높게 떠서 서브를 넣는다면 강하게 앞으로 때려서 스매시로 커트를 상쇄시키는 효과적인 방법도 있다.
 그리고.
 커트 볼에 대응하는 최고의 고급기술이 있다.
 그건 바로.
 척.
 제영은 전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공이 두 번 튕기기 전에 이미 라켓을 오른쪽 무릎 높이까지 내려 백스윙 자세를 취했다.
 통!
 공이 튀어 오르는 순간.
 파악!
 제영이 몸을 사선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낮췄던 자세는 무릎 반동과 허리를 이용해 위로 솟구쳐 올렸다.
 오른쪽으로 쏠린 무게 중심도 왼쪽으로 이동했다.
 틱.
 라켓의 중심부에 탁구공이 맞았다.
 얼핏 들으면 빗맞은 거 같지만, 아니다.
 일부러 빗맞힌 것이다.
 “와우!”
 “배짱 좋은데?”
 “나이스 판단!”
 탁구부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제영이 커트 볼에 대응하기로 한 방법.
 탁구의 꽃.
 드라이브였다.
 팅!
 제영은 탁구공에 걸린 강한 하회전을 손쉽게 상회전으로 변화시켰다.
 짝짝.
 짧은 찰나에 칸나가 손뼉을 쳤다.
 “오우. 애송이! 멋진데?”
 제영은 일반 드라이브보다 난도가 높은 커트 드라이브를 구사했다.
 커트공은 정점을 지난 직후부터 후퇴회전이 걸리기 시작해 점차 강해진다.
 그러므로 가급적 타점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타구 해야 수월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또한, 공에 걸린 후퇴회전의 강도에 따라 쳐야 하는 부분도 달라진다.
 후퇴회전이 약한 경우는 공의 옆이나, 옆과 윗부분 사이를.
 후퇴회전이 강할 경우 공의 옆과 밑 부분 사이를 정확하게 타구 해야 회전이 걸린다.
 그 모든 걸 짧은 순간에 결정해야만 제대로 커트 드라이브가 걸렸다.
 커트 드라이브는 꽤 까다로운 기술이기에 프로 선수들도 2구째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걸 제영이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다.
 탕!
 회전을 먹은 공이 편도현의 탁구대 위로 떨어졌다.
 드라이브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중 매우 좋은 건 선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탁구공은 빠르게 편도현의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크흑!”
 반칙 서브를 통해 당연히 한 점 더 획득할 줄 알았던 편도현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공을 보고는 몸이 굳어 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정 감독이 중얼거렸다.
 “끝났군.”
 다들 제영의 승리를 점친 가운데 편도현이 외쳤다.
 “젠장! 우쭐대지 마!”
 탁.
 편도현은 온몸을 날렸다.
 오른팔을 힘껏 뻗어 라켓 끝으로 탁구공을 때렸다.
 탕!
 탁구공은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날아갔다.
 모두가 숨죽이고 이를 지켜보았다.
 촤르륵.
 그러나 편도현이 불안정한 자세로 친 공은 네트에 걸리고 말았다.
 콰당!
 편도현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두 바퀴를 굴렀다.
 
 - 게임 스코어 11 : 5.
 
 두 번째 세트도 제영의 승리였다.
 “와. 대박.”
 “방금 커트 드라이브 죽였다. 그치?”
 “그러고 보니 제영이 오른손으로 탁구 치는 걸 처음 보네. 완전 프로 선수 같아.”
 아이들 시선은 온통 제영에게 향해있었다.
 그 누구도 바닥에 고꾸라진 편도현을 바라보지 않았다.
 “시발. 시발. 시발···! 저딴 좆밥 새끼한테 또 지다니!”
 두 판을 연달아 진 편도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탁. 탁.
 제영은 서둘러 편도현에게 다가갔다.
 세트를 따낸 승리의 기쁨보다 혹여 친구가 다쳤을까 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도현아. 괜찮아?”
 제영이 도현을 일으켰다.
 “이거 놔! 새꺄! 어디서 친한 척이야?”
 도현은 스스로 땅을 짚고 일어섰다.
 그러나 이내 힘없이 주저앉았다.
 “으윽!”
 착지할 때 발목이 돌아가 접질린 것이다.
 서둘러 정 감독이 달려왔다.
 “어디 봐.”
 “괜찮습니다. 감독님.”
 “가만있어.”
 정 감독이 도현의 신발을 벗겨내고 양말을 내렸다.
 발목은 시뻘겋게 퉁퉁 부어있었다.
 칸나가 혀를 찼다.
 “아이고 고소해라. 인과응보다 새꺄.”
 통쾌해하는 칸나와 달리 제영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
 탁구 선수에게 발목은 생명과 같다.
 제영처럼 한 손을 다치면 다른 손으로 탁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목은 한쪽이라도 다치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당분간 탁구는 포기해야 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앞으로 편도현은 훈련에 참여하지 못한다.
 치이익.
 정 감독이 파스를 뿌리고 응급처치로 붕대를 감았다.
 그러고는 지시를 내렸다.
 “너희 둘. 도현이 데리고 양호실로 가봐. 처방에 따라서 부상이 심하면 병원으로 데려가고. 엑스레이 찍어봐야 하니까.”
 편도현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습니다. 감독님. 저 멀쩡합니다!”
 누가 봐도 멀쩡하지 않지만 편도현이 오기를 부리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얼마 뒤에 열리는 대회 때문이었다.
 탁구대회 중에 주요 대회로 손꼽히는 전국체전.
 전국에서 각 시도 대표가 나오고.
 제주도에서도 선수가 출전한다.
 전국체전에서 고등학생, 실업팀, 대학팀이 오직 탁구로 자웅을 가린다.
 토너먼트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국체전에서 우승한다면 그건 바로 한국에서 인정하는 탁구 선수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전국체전은 중학생이 출전할 수 없다.
 초등학생 역시 마찬가지.
 초등부는 ‘소년체전’이라는 다른 대회가 있다.
 그렇다면 중등부는?
 고등부와 성인부에 전국체전이 있다면.
 중학생은 ‘대통령기 탁구대회’가 있다.
 전국체전에 나갈 수 없는 중학생들에게 대통령기 탁구대회는 그 어떤 대회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감독님. 시합 속행하겠습니다. 계속하게 해주세요. 이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편도현이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고집을 부렸다.
 만약 이대로 나가게 된다면 도현은 대통령기 대회 후보에서 제외될 확률이 높았다.
 “시합은 됐어. 경기는 이걸로 끝낸다.”
 “감독님!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김제영한테 저 이길 수 있···!”
 “야. 편도현.”
 정 감독이 도현의 말을 잘랐다.
 “선수 생활 그만하고 싶냐? 평생 발목 때문에 고생하기 싫으면 얼른 가서 치료에 집중해.”
 “···.”
 도현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
 제영은 절뚝거리는 발로 양쪽으로 부축을 받고 걸어가는 도현을 바라보았다.
 우뚝.
 도현이 고개를 돌려 제영을 바라보았다.
 이를 악물고 있는 그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이 엿보였다.
 억울함, 분노, 복수심···.
 “망할! 두고 보자. 김제영.”
 편도현은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파닥. 파닥.
 하늘에서 날고 있던 칸나가 주먹 감자를 날렸다.
 “캬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제영 아주 잘했어! 좀 더 드라이브를 확 꺾어 쳐서 저 좀 발목을 아주 그냥 박살 내버리지 그랬어.”
 “휴.”
 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겼지만 씁쓸한 승리였다.
 애초에 편도현에게 딱히 악감정은 없었다.
 그저 3년 동안 고장 나 쓰지 못했던 오른손으로 마음껏 탁구를 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정 감독이 제영을 내려다보았다.
 “제영.”
 “네. 감독님.”
 “상대 부상으로 인한 기권으로 네 승리다.”
 “아, 감사합니다.”
 “···.”
 정 감독은 말을 이었다.
 “약속대로 네가 이겼으니 넌 여기에 남아라. 내일부터 다시 훈련에···.”
 “잠깐만요.”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 감독은 인상을 팍 구겼다.
 누구든 자신 말을 끊는 건 달갑지 않았다.
 아이들 무리 중의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갑자기 정 감독은 화나기보단 의아함이 들었다.
 “배신우? 뭐야? 할 말이라도 있냐?”
 “네.”
 탁. 탁.
 배신우가 손에든 탁구채로 허벅지를 두 번 때렸다.
 “제가 이어서 경기할게요. 주장 대신.”
 
 
 # 플레이
 
 
 “에?”
 배신우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지켜보던 아이들이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갑자기?”
 “배신우가?”
 “쟤가 왜 나서?”
 배신우는 현재 염리중 탁구부 랭킹 1위.
 아니, 어쩌면 전국 중등부 탁구에서도 탑을 찍을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매스컴에서도 이미 배신우를 주목했다.
 고등학교뿐 아니라 이미 대학교.
 그리고 실업팀에서 벌써 배신우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아마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저곳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내가 그렇게 한게임만 해달라고 부탁해도 절대 안 들어주더니. 웬일이래?”
 “얌마. 네가 배신우한테 비빌 짬이 되냐?”
 “그건 그렇긴 하지만···. 하필 김제빵이냐! 내가 제빵이보다 못하다는 소리잖아.”
 “제영이 방금 주장 이긴 거 안 봤어?”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조용!”
 감독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주변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정작 사건을 일으킨 배신우는 한 마디를 꺼낸 이후 줄곧 입을 다물었다.
 제영은 배신우를 바라보았다.
 ‘나와 시합하겠다고?’
 탁구부 주장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의리 때문에 나선 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영이 짧은 시간 동안 바라본 배신우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말 수 없고.
 딱히 누구랑 친하게 지내기 위해 먼저 다가가지도 않는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신우는 유독 탁구, 오직 탁구밖에 몰랐다.
 ‘마치 나처럼.’
 제영은 신우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정말 나랑 시합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제영 역시 이곳에 있는 아이들과 같은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좀처럼 예상할 수 없었다.
 뚜벅.
 감독이 신우에게 다가갔다.
 “배신우.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신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로봇처럼 말했다.
 “제가 주장을 대신해 다음 시합 이어서 뛰겠다고 했습니다.”
 “······.”
 감독은 침묵했다.
 그 역시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캐묻지 않았다.
 신우가 말을 이었다.
 “하게 해주십시오. 감독님. 부탁드립니다.”
 부탁.
 배신우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튀어나올 줄 꿈에도 몰랐다.
 아무리 엄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염리중 탁구부의 감독이라도 이 정도 되면 수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배신우 아닌가.
 지금은 비록 중학생 탁구 선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이 아이는 한국 탁구를 대표할 거목이 될지도 모른다.
 “좋다. 정 그러면 내일 친선으로 하도록 해.”
 “아니요.”
 배신우가 여전히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뭐?”
 감독은 자꾸만 자기 말에 반박하는 배신우 때문에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뭐가 아니란 거냐.”
 “시합을 이어서 하니, 당장 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제영이 움찔했다.
 꾹.
 제영은 라켓을 꼭 쥐었다.
 아직 시합이 결정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벌써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배신우는 편도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강력했다.
 파닥. 파닥.
 칸나가 날아와 제영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호오. 쟤 뭐야? 중학생 주제에 꽤 반반하게 생겼네? 아이돌 닮았다.”
 감독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김제영이랑 시합하고 싶다. 이 말이냐?”
 “예.”
 탁. 탁.
 배신우가 라켓으로 허벅지를 두 번 때렸다.
 “혹시라도 제가 진다면 제가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순간 감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영이 내건 말도 안 되는 내기까지도 그대로 이어받겠다니.
 염리중학교에서 배신우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교장 선생님은 특별지시까지 내리면서 배신우를 따로 관리하라고 말했다.
 그런 아이가 제 발로 나가겠다니?
 그것도 겨우 평범한 탁구부원 한 명 때문에?
 “그렇겐 안 된다.”
 “하게 해주십시오.”
 “배신우.”
 “예.”
 “네 어깨에 달린 책임감을 깨달아. 좋든 싫든, 네가 이곳에 온 이상 넌 이제 염리중 탁구부의 간판이다.”
 “그래서 더더욱 하겠다는 겁니다. 감독님.”
 쓱.
 배신우는 감독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염리중 탁구부 대표인데 설마 지기야 하겠습니까?”
 확신에 찬 배신우의 눈빛.
 감독은 혹여나 품었던 의문이 씻은 듯 사라졌다.
 “좋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냥 친선으로 하도록 해. 너희들 치기 어린 유치한 싸움에 놀아줄 생각은 없다.”
 배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통. 통. 통.
 “잠깐 몸 좀 풀고 시작하겠습니다. 1분이면 됩니다.”
 배신우는 탁구대 위에 탁구공과 라켓을 올려놓고 어깨를 돌렸다.
 감독이 말했다.
 “그래.”
 배신우가 워밍업할 동안 제영은 한쪽 손을 슬며시 들었다.
 “인.”
 쉬쉭.
 왼손 위에 붉은색 구슬이 나타났다.
 그걸 가슴 중앙에 가져다 댔다.
 
 [ 김제영(16) ] Red.
 < 셰이크 라켓 >
 : 커트 주전형.
 • 신체 54
 • 스피드 76
 • 감각 88
 • 지능 87
 • 특수기 45
 
 파닥. 파닥.
 칸나는 제영의 능력치가 표시된 오각형을 들여다보았다.
 ‘음. 역시.’
 오른손으로 라켓을 쥔 제영은 전과 거의 비슷했지만 감각과 특기 면에서 능력치가 상승돼 있었다.
 “···.”
 제영은 자신의 능력치에 관심이 없었다.
 구슬을 소환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쓱.
 제영은 구슬을 너머로 배신우를 바라보았다.
 상대 능력치가 표시된 오각형 안의 선이 움직였다.
 
 [ 배신우(16) ] Yellow.
 < 셰이크 라켓 >
 : 드라이브 주전형.
 • 신체 91
 • 스피드 98
 • 감각 94
 • 지능 99
 • 특수기 87
 
 ‘하하. ··· 이런.’
 제영은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능력 최대치가 100이라 가정했을 때 배신우는 거의 모든 면에서 만렙에 가까웠다.
 뿐만이 아니다.
 “어?”
 제영은 구슬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뭔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구슬 색이 달라져 있었다.
 “노란색?”
 구슬은 달걀 반숙처럼 샛노란 색을 띠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구슬은 분명 붉은색이었다.
 “칸나. 구슬 색이 변했어. 이거 왜 그런 거야?”
 파닥. 파닥.
 칸나가 구슬 주변을 날아다녔다.
 “호오. 배신우. 쟤 정말 장난 아니네.”
 “뭐가?”
 “구슬의 색은 상대의 레벨을 나타내 주는 거야. 붉은색은 Level 1. 주황색은 Level 2. 노란색은···.”
 “부수로구나.”
 “응? 부수? 그게 뭐야.”
 “부수라는 건···.”
 “아, 잠깐. 직접 찾아볼래.”
 펑.
 칸나는 동그란 안경을 꺼내 쓰고 『1권으로 끝내는 인간 스포츠』 책을 읽었다.
 “부수. 바둑에도 급수가 있듯이 생활체육 탁구에도 급수가 있다.
 처음 입문하는 사람을 희망부.
 어느 정도 랠리가 가능하게 되면 9부.
 본격적으로 서브를 넣고 게임에 능숙하기 시작하면 9부에서 8부로 올라간다.
 드라이브 성공률이 높고 게임을 전체적으로 넓게 본다면 7부, 6부 정도로 볼 수 있다.
 세세하고 다양한 고급기술을 쓸 수 있다면 5부와 4부.
 그 위로는 3부, 2부 ···.
 이렇게 실력이 뛰어날수록 부수는 낮아진다.
 선수에 가까운 프로의 실력이거나 혹은 선수 출신은 1부라 칭한다.
 마지막으로, 1부 위에는 선수급이 있다.”
 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지만 실제로 부수의 세계는 더 광범위하고 복잡해.”
 “흠.”
 칸나는 심각한 얼굴로 글을 마저 읽었다.
 “탁구장마다 부수의 기준이 다르다.
 지역 부수와 전국 부수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역에서 3부 정도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전국으로 치면 5부 정도밖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오픈 부수라고 칭한다.”
 제영은 샛노랗게 빛나는 구슬을 바라보았다.
 축복의 구슬은 무지개 색깔을 거쳐 총 7단계로 변한다.
 쓱.
 제영은 구슬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노란색이던 구슬은 다시 붉게 빛났다.
 쓱.
 구슬을 다시 배신우 쪽으로 돌리자 노란색으로 변했다.
 제영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나와 신우는 이미 두 단계나 부수가 차이 난단 말이구나.”
 같은 운동선수라고 해도 어딜 가나 기량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같은 중학생 선수가 이 정도로 실력 차가 나기란 절대 쉽지 않다.
 펑.
 칸나가 책을 집어넣었다.
 “모든 능력치가 100이 되면 구슬의 색은 또다시 변해. 숫자는 다시 0으로 리셋 되고.”
 “또 변한다라.”
 제영은 배신우의 능력치 오각형을 바라보았다.
 모두 100에 가까운 수치다.
 신우는 이제 곧 노란색을 뛰어넘어 초록색으로 Level 4가 된다.
 감독이 말했다.
 “배신우. 준비됐나?”
 어깨를 돌리던 배신우가 동작을 멈췄다.
 “예. 감독님.”
 탁.
 배신우가 라켓을 집어 들었다.
 “김제영. 랠리 없이 바로 시작해도 괜찮지?”
 배신우가 전학 온 이후 제영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두근두근.
 제영은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탁구를 쳐본 사람은 알 수 있다.
 테이블 너머에 강자가 서 있을 때의 기분을.
 긴장과 흥분.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어쩌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제영은 라켓을 얼굴 앞에 들어 올리고 자세를 낮췄다.
 “응. 신우야. 잘 부탁한다.”
 척.
 배신우가 서브 자세를 취했다.
 다리를 굽히고 왼손 손바닥 위에 탁구공을 올린다.
 시선은 탁구공을 응시한다.
 일류 무사는 발검 전에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한다.
 꿀꺽.
 제영은 침을 삼켰다.
 그러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힐끗.
 배신우는 탁구공을 위로 던지기 전에 제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네트 사이로 마주쳤다.
 “응?”
 제영은 혼자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들어···.’
 배신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탁구가 즐거워죽겠다는 너의 그 표정···. 마음에 안 들어.’
 휙.
 탁구공이 위로 떠올랐다.
 신우는 라켓을 쥔 손을 위로 뻗었다.
 촤르륵.
 서브를 넣는 일련의 동작이 유려했다.
 ‘와. 멋지다.’
 제영은 시합 중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신우의 서브를 바라보았다.
 탕!
 찰진 고무 재질의 러버에 탁구공에 닿았다.
 티잉!
 서브는 인간의 지문과 같다.
 탁구를 배울 때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배우지만, 막상 시합에 들어가면 각양각색으로 서브를 넣는다.
 흉내를 낼 순 있어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똑같은 서브를 구사할 순 없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서브에서 중요한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회전량.
 핑그르르!
 배신우의 라켓을 맞은 탁구공이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면서 제영의 테이블로 넘어왔다.
 제영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 회전? 횡 회전? 상 회전? 아냐.’
 팅.
 망설이는 찰나 공은 튀어 올랐다.
 이제 리시브를 해야 할 타이밍이다.
 ‘하 회전에 횡이 섞인 서브다!’
 탁.
 제영이 라켓을 뻗었다.
 팅~!
 탁구공은 라켓을 맞고 탁구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핑그르르!
 구석 마루까지 뻗어 나간 탁구공은 팽이처럼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미쳤다. 저거 봐.”
 “회전량 장난 아니네.”
 “나 배신우가 제대로 서브 넣는 거 처음 봐.”
 “와. 저걸 어떻게 받냐.”
 중학생 아이들은 이미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키 크고 잘생긴 소년은 자신들과 이미 수준이 다르다는 걸.
 척.
 심판을 보는 코치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팔랑.
 스코어판이 한 장 넘어갔다.
 
 - 게임 스코어 1 : 0
 
 “하···.”
 제영은 라켓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분명 회전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했다.
 그러나 배신우의 서브는 알고도 못 받는.
 그런 서브였다.
 배신우는 자신 쪽에서 더 가깝게 떨어진 공을 직접 주워왔다.
 척.
 그다음 서브 자세를 취한 채로 말했다.
 “플레이.”
 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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