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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마검 1-1

2019.05.09 조회 700 추천 4


 #序
 
 
 “미안하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다오.”
 남궁연우(南宮延優)는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남궁천(南宮天)을 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무릎을 굽힌 적 없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릎을 굽히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남궁연우는 차마 보기 힘들었다.
 자식에게 무릎을 꿇은 아버지의 모습에선 그 어떤 중후함과 여유로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강호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남궁세가의 가주인 아버지였지만, 지금 모습을 보고도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라 할 수 있을까?
 중원(中原)의 사대신검(四代神劍)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창천신검(蒼天神劍)이라 할 수 있을까?
 남궁연우는 넓은 연무장에 아버지와 자신 두 사람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아버지의 명성을 먹칠하는 불효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궁천에게 말했다.
 “아버님, 이렇게 슬퍼하시면 차마 발걸음을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네 형을 보내고 싶어도 몸이 성치 않으니 집안에서 갈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사실 남궁연우에게는 열 살 많은 친형이 있었다.
 바로 불세출 고수, 남궁세가의 자랑, 창천룡(蒼天龍), 남궁기(南宮技)였다.
 남궁기는 불과 스무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화경(化境)에 오른 천재로 세가 어른들을 비롯해 정파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인 남궁천도 어렸을 적에 신동이라 불렸지만, 화경에 오른 나이는 이립(30세)이었다.
 서른에 화경에 오른 자는 무림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였으나 스무 살에 화경에 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친동생인 그에게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형이었다.
 사년 전, 정마대전(正魔大戰)이 터지면서 강호가 피로 물들이기 전까진 말이다.
 남궁기는 불과 스물네 살에 남궁세가 무력의 상징, 창천대주(蒼天岱主)가 되어 무림맹(武林盟) 고수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곧 마교(魔敎)의 삼 장로(三長老) 혈마검(血魔劍) 진신(陳愼)이 이끄는 선봉대와 충돌했다.
 혈마검 진신은 마교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마인(魔人)이었지만 남궁기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화경의 벽을 스무 살에 뚫은 남궁기였기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교주와 사대신검을 제외하면 강호에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인들이 그를 말렸지만, 남궁기는 끌어 오르는 호승심을 참지 못하고 혈마검 진신에게 비무를 청했다.
 혈마검 진신은 무표정한 얼굴을 지은 채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두 사람은 시작과 동시에 검을 부딪쳤다.
 창천대주였던 남궁기는 혈마검 진신이 현경(玄境)의 고수였음에도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지 않았다.
 현경을 코앞에 둔 그였기에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운 무학은 중원 최고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자만심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남궁기를 빠르게 제압하고 무림맹의 선봉을 꺾으려던 혈마검 진신은 그의 무력과 현묘한 검술에 고전했다.
 내공과 경지의 차이가 아니었더라면 이번 비무에서 패하는 쪽은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남궁기를 적수로 인정하고 전력을 다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남궁기를 상대하면서 먼저 지치도록 만들었다.
 살이 베이고 피가 튀었지만, 그는 하나만 바라보았다.
 바로 승리였다.
 혈마검 진신의 예상대로 전투가 길어지자 남궁기의 지친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절정 고수에 오른 15세에 강호에 출두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승리를 놓친 적이 없던 그였다.
 협행(俠行)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악인들이 그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
 많은 정파인이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강호에 남궁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명성을 포기할 수 없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처음과 달리 완벽에 가까웠던 그의 검술이 상당히 거칠어지자 진신은 기다려왔던 승기가 자신에게 왔다는 걸 느꼈다.
 결국, 이백 초라는 혈투 끝에 남궁기를 패배시킨 혈마검 진신은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잡고 겨우 대지 위에 서 있는 그의 왼팔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비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신의 마지막 오의를 최선을 다해 받아냈던 터라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남궁기의 몸에서 떨어진 피 묻은 왼팔을 잡으며 감탄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비무는 즐거웠다. 정파(正派)에 이런 인재가 있을 줄은 몰랐군. 오늘 그대의 희생으로 우리는 패배를 얻어 가지만, 미래의 정파는 큰 화를 입었구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혈마검 진신은 그 말만을 남기고 병력을 뒤로 물렸다.
 총 대주인 남궁기가 그를 막는 동안 창전대원들을 비롯한 정파인들이 마인들을 빠르게 베어 나갔던 터라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무림맹은 첫날 승리를 얻어 갔지만, 그의 말대로 남궁기라는 천재를 잃게 되었다.
 
 무림맹이 첫 승리를 거둔 후로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전쟁 초창기 무림맹은 마교의 힘을 억제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곤륜파(崑崙派)와 개방(丐幇)으로부터 마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올라왔던 터라 꾸준히 대비하고 있었다.
 무림맹 수뇌부 사이에서는 이대로 줄다리기가 이어진다면 전쟁은 싱겁게 끝날 수 있다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생각보다 마교의 힘이 압도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던 때, 정마대전에서 어중간한 입장을 표하던 사파(邪派) 세력, 사도천(邪道天)이 마교와 손을 잡고 무림맹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무림맹이 있는 힘을 끌어모아 맞섰지만, 두 세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패전을 거듭한 끝에 한 달 동안 이어진 사천(四天)전투에서 크게 패배해 병력 대부분을 손실했다.
 그 전투를 끝으로 세 세력은 약속이라도 한 듯 더는 전투를 이어 나가지 않았다.
 세 세력 모두 막대한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으로 무림맹 내에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영향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소림사는 전면으로 나서다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화산, 무당 등 쟁쟁한 문파들도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남궁세가도 타 문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남궁기를 비롯한 오장로 등 세가의 핵심 인사가 죽거나 불구가 되었고 무력의 상징, 창천대는 괴멸하였다.
 가주, 남궁천과 속가제자들로 이뤄진 창궁대, 당시 나이가 어린 세가 아이들만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천신검 남궁천도 상태가 좋지 못했다.
 마교 교주, 일월신마(日月神魔) 장린(張遴)과 생사를 건 혈투에서 단전(丹田)에 미세한 손상을 입었다.
 세간에는 무승부로 알려졌지만, 남궁천은 비무에서 자신이 일월신마 장린보다 한 수 아래, 아니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월신마는 능숙하게 검을 받아 내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즐기듯 그를 농락했다.
 남궁천은 견고한 그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패배였다.
 
 뒤늦게 대전에 참여한 사도천은 엄청난 응집력을 보여 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사천 전투에서 너무 급하게 진격한 나머지 창천신검 남궁천이 이끄는 오대세가의 병력에 일격을 맞아 대부분 전사했다.
 사실상 사도천주를 비롯한 몇몇 잔당들을 제외하면 사도천의 무력은 없는 수준이었다.
 
 마교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천 전투에서 다섯 명의 장로 중 세 명의 장로가 전사하는 큰 손실을 보며 힘이 크게 떨어졌다.
 그래도 위의 두 세력보다는 병력의 손실이 적었다.
 마교는 지능적으로 사도천을 이용해 무림맹의 세력을 갉아먹으며 힘을 비축했기 때문이다.
 새외의 힘을 막던 마교의 세력이 급격히 줄어들자 새외 무림 세력들이 강호를 눈독 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의 세력을 무시하지 못한 마교는 강호를 완벽하게 통치하는 방향에서 약간 틀어 무림맹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사도천은 괴멸 수준의 피해를 보아 조약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애초에 마교는 그들을 협력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용하고 버리는 패였다.
 일전에서 살아남은 사도천주(邪道天主) 마대춘(馬大春)은 마교의 배신에 치를 떨면서도 화를 삭여야 했다.
 그들의 힘으로는 마교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교가 제안한 일방적인 평화조약은 무림맹에게 유리한 조건이 없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전쟁을 한다 할지라도 이길 가능성은 일 할이 채 되지 않았다.
 멸문 직전의 문파와 가문으로 이뤄진 무림맹은 전쟁할 힘도 없었으니까.
 
 마교의 제안은 평화조약은 크게 여섯 가지였다.
 
 첫째, 마교 지부를 정파 세력 내에 설치한다.
 둘째, 강호와 마정(魔正)의 평화를 위해 다 함께 힘을 모아 강호의 악, 사도천을 완벽하게 박멸한다.
 셋째, 무림맹을 해체하고 새로운 단체 백도림(白道㣩)을 만든다. 백도림의 도주(道主)는 본 교에서 정한다.
 넷째, 이번 전쟁의 주동자, 구파일방 소림(少林), 무당(武當), 아미(峨嵋), 화산(華山), 점창(點蒼), 청성(靑城), 곤륜(崑崙), 공동(崆峒), 종남(終南), 개방(丐幇)과 오대세가 남궁세가(南宮世家), 하북팽가(河北彭家), 사천당가(四川唐家), 제갈세가(諸葛世家), 산동악가(山東岳家)는 오십 년간 봉문(封門)한다. 봉문을 어길 시 이유 불문하고 본 교주의 명에 의해 멸문하게 될 것이다. 대신 이권 활동은 손보지 않겠다.
 다섯, 백도림은 매년 문파 유지비로 본 교에 한 해 수입의 절반을 바친다. 이를 어길 시 주동자를 찾아내 극형에 처할 것이다.
 마지막 여섯, 구파일방 소속 직계 제자와 오대세가의 자제들, 정파를 표방한 세력의 자제들은 본 교의 축제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도록 한다.
 
 남궁연우가 봉문당한 세가를 떠나는 이유는 여섯 번째 조약에 따른 마교의 축제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마교인들 사이에서는 성스러운 축제라 불리지만, 무림맹, 아니 백도림이 보기에는 끔찍한 축제였다.
 정파 자제들을 한곳에 몰아넣고 세 달간 생존하게 한다.
 그들은 한정된 식량, 한정된 물품, 한정된 무기를 무작위로 놓고 정파 자제들을 극한의 상태까지 몰아넣었다.
 총 오십여 명의 자제는 각자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서로 합심하여 살아남기도 하고 배반하여 살아남기도 한다.
 마교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활동 반경을 줄여 나가며 반경 밖에 있을 시 기문진식(奇門陣式)에 의해 살과 뼈가 분리되어 극한의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주검조차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축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숫자는 단 네 명.
 많다면 많다고 볼 수 있고 적다면 적다고 볼 수 있는 숫자였다.
 지난 삼년간 백오십여 명의 정파 자제 중 살아 돌아온 자는 열두 명뿐이었다.
 남궁세가는 단 한 번도 생존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살아서 돌아오겠다던 친척 형들은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아니면 시체조차 돌아오지 못하거나.
 “연우야, 몸조심하거라. 혹여 절대 나서려 하지 말거라.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
 남궁연우는 아버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에 그는 최대한 씩씩한 표정으로 이별 준비를 마쳤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의 성격을 보여 주듯 깔끔하게 정돈된 방과 단출한 가구, 책장에는 많은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무가 자식임에도 틈틈이 공부도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도움이 된다는 어머님의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다.
 사실 친형인 남궁기의 경지가 워낙 높아 무에서는 따라잡지 못한다는 심정으로 공부한 이유도 있었다.
 “형의 검술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검을 놓고 싶었다. 형을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어 과거 시험에 합격해 보자고 마음먹었던 때도 있었지.”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남궁기는 검술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를 섭렵한 천재였다.
 너무나 뛰어난 재능에 남궁연우는 형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접어 버렸다.
 천재는 역시 천재였다.
 답보 상태에 놓였던 가문의 검법(劍法)인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초식(招式)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남궁기가 재창안한 창궁무애검법은 신창궁무애검법으로 불렸고 이는 남궁세가를 구파일방의 명성과 나란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의(奧義)인 제왕검형(帝王劍形)도 파괴력을 끌어올렸고 내공심법인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은 기의 소모를 줄여 전투 지속력을 높여 주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모든 것을 불과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해낸 형이었다.
 하지만 천재였던 형은 폐인(廢人)이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맑고 청명했던 눈동자는 흐릿하게 변한 지 오래였다.
 “이제는 바라지 말자. 형은 자신의 몫만큼 해 냈어.”
 어렸을 적부터 무거운 짐을 떠맡은 형에게 다시 무거운 짐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마교에서는 폐인이 된 형을 보내라고 재촉했지만, 절대 보낼 수 없었다.
 목숨을 잃을 게 뻔했다.
 최후의 보루인 형을 지키려면 자신이 나서야 했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서 내 손으로 가문을 다시 부흥시켜야 해.”
 우선 합비(合肥)에 설치된 마교 지부로 가야 했다.
 남궁연우는 간단히 짐을 챙겨 방을 나섰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단 한 번도 방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친형, 남궁기가 서 있었다.
 
 
 #남궁기의 안배
 
 
 남궁연우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남궁기에게 말했다.
 “형님! 정신이 돌아오신 겁니까!”
 하지만 초점 없는 눈동자가 남궁연우를 응시하고 있을 뿐.
 그의 외침에도 남궁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폐인이 된 모습이었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어 간신히 서 있는 남궁기를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
 툭.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남궁기의 손이 그를 밀어냈다.
 남궁연우는 태산과 같은 힘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가 남궁기보다 큰 체격과 골격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에는 위를 올려다봐야만 했다.
 마치 그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주변을 숨 막히게 만드는 전성기 남궁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남궁기를 바라보았다.
 남궁연우를 밀어낸 남궁기는 말없이 비틀거리며 복도를 거닐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걸었다. 남궁연우는 그런 형을 보며 조용히 남궁기의 뒤를 따라나섰다.
 “형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남궁기는 아무 말 하지 말고 따라오라는 듯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를 지나 문턱을 넘고 남궁 일족이 지내는 집을 뒤로하며 도착한 곳은 조그마한 연무장이었다.
 남궁기는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 올라가 섰다.
 “형님, 이곳은 소 연무장이 아닙니까?”
 남궁연우와 남궁기가 어린 시절, 아버지인 창천신검 남궁천에게 검술 지도를 받던 연무장이었다. 때로는 남궁기가 남궁연우에게 검술을 지도 해 주기도 했던 추억이 깃든 장소.
 오로지 남궁세가의 직계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남궁기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조심히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꺼내 겨누었다.
 바로 동생인 남궁연우를 향해서.
 남궁연우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형님!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이게 대체.”
 어느새 흐릿했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예전의 청명했던 눈동자가 그를 매섭게 응시하고 있었다.
 “검을 들어라.”
 낡고 갈라진 목소리였지만, 이 목소리는 분명 자랑스러운 형, 남궁기의 음성이었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남궁연우는 차마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 냈다.
 사 년 만이었다.
 지난 사 년 동안 세가의 보살핌만 받으며 살아온 남궁기가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궁연우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알려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검을 들어라! 어서!”
 남궁기의 노한 음성이 그의 폐부에 박히자 남궁연우는 숨이 막힐 듯한 고통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비록 현경의 경지에 오르진 못 했지만, 현경의 고수와의 정면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은 남궁기의 힘은 유약한 남궁연우가 버텨 내기 힘든 것이었다.
 남궁연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궁기는 기운을 갈무리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후, 시간이 없구나. 검을 들어라.”
 “형님, 이게 대체······.”
 남궁연우가 정신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남궁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매섭게 뜨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남궁기의 애검, 창천검이 그의 목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자 남궁연우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검을 들어 간신히 막아 냈다.
 아니, 막아 냈다는 표현보다는 힘에 밀려 연무장 밖으로 나뒹굴었다는 말이 옳았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남궁연우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콜록! 콜록!”
 “형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한심하구나. 내공을 싣지 않은 검을 받아 내지 못해서야 어찌 남궁가의 기둥이 되겠느냐.”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한 일이 자신을 내팽개치는 일이라니, 남궁연우는 매우 억울했다.
 “하지만 형님은 화경의 고수이신데 어찌 제가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 가혹하십니다.”
 그러자 남궁기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면 나는 어찌하여 현경의 고수와 대등한 비무를 펼칠 수 있었겠느냐. 정녕 모르겠다는 말이더냐?”
 “그건.”
 남궁연우가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남궁기는 굳은 표정을 지우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바로 마음가짐이다. 나 자신을 믿고 적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길 것이고 나를 믿지 못하고 겁을 먹는다면 반드시 질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만해서도 안 될 것이다. 너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남궁연우는 궤변이라 생각했다.
 무에 뜻을 둔 이후 단 한 번도 무공의 차이를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절정의 고수는 초절정 고수를 이기지 못하며 초절정 고수는 화경의 고수를 이기지 못한다.
 남궁기가 그랬듯 화경의 고수는 현경의 고수를 이기지 못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남궁연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지만, 남궁기는 전과 같은 매서운 기운을 내뿜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그에게 차분한 말투로 설명했다.
 “물론 무공의 차이는 존재한다. 하나 그것만이 비무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올바른 마음가짐은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그 외의 것들은 네가 직접 경험해 보면 알 것이다. 그러면 내 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남궁기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남궁기는 웃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연우야, 혈마검과의 승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니, 질문을 바꾸겠다. 어떤 점을 느꼈느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제 모습에 실망했고 너무나도 분해서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형님을 그렇게 만든 혈마검에게 복수해 원수를 갚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킨 마교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복수하고 싶습니다.”
 남궁연우가 살벌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남궁기는 고개를 내저으며 연무장을 거닐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고 어두운 구름이 밤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무림맹의 상황을 알려 주는 듯 달은 구름에 가려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남궁기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입과 목구멍을 타고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남궁연우는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남궁기는 하늘에 둔 시선을 거두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우야, 복수심은 버려라. 너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형님! 그들은 우리 정파인들을 핍박하고 축제를 명목으로 서로를 죽이게 하여 이간질하려 합니다! 그런 놈들에게 복수하지 말라뇨, 전 못합니다! 설마 다시 돌아오신 이유가 이 아둔한 아우를 말리려고 검을 들이미신 겁니까? 그런 것입니까?”
 “아니다. 복수심만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너에게 복수심을 버리라 말한 것이다. 다시 혈마검의 전투로 돌아오자꾸나. 현경의 고수라 해서 몸에 칼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없듯이, 나는 그의 몸에 많은 생채기를 냈고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내가 혈마검에게 패배한 요인은 무공의 차이가 아닌 자만심으로 가득한 마음 때문에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니, 자만심이 아니었다 해도 그를 이기기에는 부족했지······. 조급한 마음에 검이 흐트러졌으니까.”
 “하지만 형님은!”
 남궁기는 그의 외침에도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연우야, 복수심을 버리라는 말은 이와 같은 이치다. 무인은 검으로 말을 하는 법. 사사로운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나는 정파인들을 죽인 마교에 대한 복수심, 내 명성을 드높이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오만, 자만심, 조급함 때문에 혈마검에게 패배했다. 알겠느냐? 결코, 무공의 차이 때문에 그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남궁연우는 아직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감정들이 진짜 무공의 차이를 메꿀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하는 것인지.
 중구난방으로 말하는 남궁기의 모습은 예전과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향해 오만하고 자만심이 가득하다는 말을 내뱉은 남궁기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가 알던 남궁기는 누구보다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정파인의 표본이었다. 늘 그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남궁기는 그의 환상을 깨 버리려는 듯 자신을 향해 부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충격적이었다.
 가볍게 숨을 내쉰 남궁연우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형님이 혈마검과 비무에서 그런 감정을 품으셨다니······. 도대체 제가 알던 형님의 모습은 무엇이었습니까? 다 거짓이었습니까?”
 남궁기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치부를 모두 알려 주겠다는 듯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 나도 다른 정파인과 같은 겉과 속이 다른 녀석이었다. 겉으로는 협을 외쳤지만, 속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협행을 계속해 왔지. 마인들을 죽인 건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함이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남궁기 본인이 인정한 것이니 믿을 수밖에.
 남궁연우는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한 목소리로 남궁기에게 물었다.
 “일어나시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길을 걷지 말라는 뜻이다.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네 길을 개척하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연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을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우둔한 아우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복수심, 오만 등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감정에 사로잡힌다면 너는 결코 남궁세가를 일으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지금 네게 남아 있는 일말의 감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비워야 한다.”
 “모두 말입니까?”
 “그렇다. 그래야만 마교에 맞설 힘을 가지게 된다. 지난 전쟁을 보아라. 무림맹은 제 세력 불리기에 급급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 마교의 움직임을 알았음에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 때문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또한, 제멋대로 자신들을 선이라 규정하고 마교를 악이라 규정해 이분법적인 이념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마교가 악독한 자들의 소굴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을 두둔해서는 안 됩니다.”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배워 온 위선적인 것들은 모두 버려라! 마교에 복수하고 싶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후······. 연우야, 아직은 내 말을 깨닫지 못한 듯하구나.”
 남궁기는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제 뜻을 알게 된다면 분명 원망하게 될 테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괜찮다.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아이다. 네 안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믿고 나아가라. 그러면 쿨럭! 쿨럭!”
 남궁기가 창백한 안색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지려 하자 남궁연우는 빠르게 발을 놀려 그를 붙잡았다.
 “형님!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잠시 어지러웠던 것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연우야, 검을 잡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남궁기는 창백해진 안색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검을 들어라. 네 실력을 보고 싶구나.”
 남궁연우는 조용히 자신의 검을 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형제가 마지막으로 검으로 대화를 나눴던 때가 벌써 십 년 전이었다.
 남궁기가 열여덟 살, 남궁연우가 여덟 살이었던 때.
 패기가 넘쳤던 어린 남궁연우는 남궁기에게 비무를 신청했다.
 남궁기는 웃으며 흔쾌히 수락했고 그에게 비무를 빙자한 검술 지도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었다.
 지금도 똑같았다.
 비무를 제안한 사람이 뒤바뀌었을 뿐이지 어린 남궁연우와 어른 남궁연우의 기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안색이 좋지 못한 남궁기는 남궁연우의 잘 다듬어진 자세에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훌륭하구나. 안 본 사이에 더 좋아졌어. 그럼, 내실은 어떤지 보자꾸나. 내가 창안한 신창궁무애검법부터 보고 싶구나.”
 남궁연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궁기가 창안한 신창궁무애검법을 구사했다.
 기존의 창궁무애검법은 검의 속도를 중시하여 쾌에만 중점을 두었다면 남궁기는 속도를 줄이고 무거움을 더해 파괴력을 끌어올려 가벼움을 없앴다.
 남궁세가의 기본 검술인 신창궁무애검법이 높이 평가받게 된 이유는 균형 잡힌 검술로 기존의 약점을 줄이고 기존의 강점은 더 높혔기 때문이다.
 ‘형님은 집착하리만큼 무의 균형을 중시하셨지.’
 남궁기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었다.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면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며 한없이 무겁다면 가벼움을 이기지 못한다. 또한, 빠르기만 하다고 해서 변화가 많다고 하여 최고의 검술로 칭송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내가 가고자 하는 무학의 길은 이 모든 방향을 하나로 묶는 데에 있으니 신창궁무애검법은 내 무학의 길로 인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그의 검 아래 많은 마인이 쓰러져 갔다.
 남궁연우의 검이 빠르게 남궁기의 가슴으로 찔러 들어왔다.
 남궁기는 피식 웃으며 검을 가볍게 틀어 오른쪽으로 그의 검을 튕겨 냈다.
 “제오식 창궁섬뢰(蒼穹閃雷)는 일격필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빨라 상대가 반응하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닌 초식이다. 나는 이 초식으로 혈마검 진신의 옆구리를 갈랐지. 그자의 놀란 눈빛이 아직도 선하구나. 빠르기는 좋다만, 변화가 약하구나.”
 회심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남궁연우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다음 초식으로 넘어갔다.
 남궁연우는 비무를 하면서 형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두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말리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형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불세출 천재였던 남궁기라는 태산을 넘을 수 없으나 후에 살아남게 된다면 반드시 뛰어넘어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위선을 폭로했다 해도 자랑스러운 형이기에 그에게 무공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그 기회는 영영 없을 거야!’
 “제일식 천뢰무한(天雷無限)은 창궁섬뢰와 비슷하지만, 무거움을 집어넣어 그 파괴력을 높이 끌어올렸지. 좋은 검로(劍路)구나. 하지만 아직 무거움이 약하다.”
 이번에도 너무나도 가볍게 공격을 막아 낸 남궁기는 검에 날을 세우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남궁연우는 당황하지 않고 검을 살짝 비틀어 가로로 반월을 그렸다.
 
 “제이식 천뢰화벽(天雷化璧)은 상대의 공격을 옥과 같이 흘려보내면서 동시에 빠르게 찌른다. 아름다운 초식이지. 하지만 허술하구나.”
 완벽하게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남궁연우는 어째서 남궁기의 검이 자신의 호신강기를 뚫고 복부를 타격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검에는 아무런 내공이 담겨 있지 않았다.
 순수한 남궁기의 근력을 담은 힘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흡!”
 엄청난 충격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은 검을 놓지 않았다.
 남궁가에서는 비무에서 검을 놓는 순간 더는 그 사람을 세가의 사람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던 터라 남궁연우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절대 검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남궁기는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 호신강기는 제법이었다.”
 “하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고통이 가시자 남궁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꿈을 꾼 듯했다.
 옆으로 흘려보낸 남궁기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갑자기 복부로 찔러 들어오자 재빠르게 호신강기로 보호했지만 막지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남궁기는 재촉했다.
 “계속해서 들어오너라. 일각이 채 남지 않았다.”
 초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또래에서 수준급이라 생각했던 남궁연우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남궁세가의 자랑, 남궁기였다.
 어쩌면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현경에 도달했을지도 모를 천재였다.
 옷깃 하나 스칠 수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형님의 강함을 인정하자. 나의 모든 실력을 형님께 보여 주자.’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가겠습니다.”
 마교로 떠나기 전, 형과 마지막 비무를 이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남궁기를 몰아붙였다.
 형이 폐인이 된 이후, 매일 수련에 매진했던 그였다.
 형을 대신해 남궁세가를 일으키기 위해.
 마교에 복수하기 위해 검을 갈아 왔다.
 어떡해서든 검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생각이 많으면 검이 어지러운 법이다. 생각을 줄여라. 아니, 완전히 비워라. 비우면 새로이 채워질 것이다.”
 남궁기는 피를 토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동생에게 모든 걸 전수해 주고 싶었다.
 자신을 대신해 무거운 짐을 짊어진 동생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그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창궁무한보(蒼穹無限步)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을 담아야 한다. 너의 걸음은 너무 가벼워서 상대가 무거움으로 맞선다면 검술이 아닌 하체에서부터 밀리게 될 것이다. 무거움을 담아라. 담아서 균형을 맞춰라.”
 “창궁대연신공의 진정한 위력은 운기 속도에 있다. 빠르게 움직여 넓게 퍼뜨려라. 네 검에 기를 내보내는 데에만 치중하지 말고 머리, 발, 가슴, 배로. 네 몸에 푸른 기운을 담아라. 그러면 비로소 제왕무형신공(帝王無形神功)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쿨럭! 쿨럭!”
 푸른 검기를 쏘아 보내려던 남궁연우는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는 남궁기를 보며 소리쳤다.
 “형님! 형님!”
 “아직, 아직, 때가 아니다.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쿨럭! 쿨럭!”
 하지만 남궁기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선천지기(先天至氣)를 끌어다 쓴 대가의 끝이 무엇인지······.
 시간이 없었다.
 남궁연우가 그에게 달려와 부축하려 하자 남궁기는 거칠게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힘이 약해진 남궁기는 더는 남궁연우를 밀어내지 못했다.
 남궁연우는 죽어 가는 형의 모습에도 애써 눈물을 참았다.
 형의 마지막 모습에 눈물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형님···.”
 “연우야, 슬퍼하지 말거라.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 갈 때가 된 것이다. 다행히 내가 예상한 대로 네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구나. 연우야.”
 “예, 형님.”
 “너에게 내 무학의 정수가 담긴 검술을 전하고 싶구나. 이름은 천뢰심마검법(天雷深魔劍法)이다. 여섯 개의 초식과 두 가지 오의가 있는 내 마지막 검법이다. 나 창천룡 남궁기가 남긴 마지막 검법이지.”
 “천뢰심마검법. 그런데 ‘마(魔)’자가 붙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희는 정파인입니다!”
 남궁기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흰 봉투 두 개를 그에게 건네며 다시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혈마검 진신과 비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창안한 무공이다. 그자의 파괴적인 검술이 나의 균형과 만나 창안된 검술이지. 그의 파괴적인 무학이 때로는 나의 무학을 깨뜨릴 수 있다는 걸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만, 이 검술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이제 더는 쿨럭! 쿨럭!”
 “형님! 더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아니, 아버님을.”
 “이미 아버님도 알고 계신다. 그러니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다오. 천뢰심마검법의 세 번째 구결까지 익히고 나서 내 편지를 마교에 있는 혈마검 진신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하는구나.”
 남궁연우는 편지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다.
 동생을 통해 자신이 만든 검법을 평가해 달라는 의미.
 어쩌면 남궁기가 선천지기를 써 가며 깨어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대결할 수 없는 몸이니 무학으로써 승부를 겨루고 싶어 하는 무인의 호승심.
 무공에 미쳤다 알려진 혈마검 진신은 남궁기가 보낸 편지라면 반드시 읽어 줄 것이다.
 “전해 줄 수 있겠느냐?”
 간절한 눈빛으로 부탁하는 파리한 안색의 형을 보고 있자니 남궁연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고맙구나. 그럼, 아버님, 형수, 조카 마지막으로 가문을 부탁한다. 너에게 이런 짐을 짊어지게 하여 미안하구나. 나를 원망해도 좋으니······. 부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궁기는 남궁연우의 품에서 고개를 떨궜다. 큰 별이 떨어진 날이었다.
 
  * * *
 
 달그락달그락.
 오늘따라 유난히도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남궁연우는 무거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친형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가문을 떠나야 했던 그의 마음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가야 해.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려야 할 때, 남궁연우는 조용히 화를 삭이며 남궁기가 마지막으로 남긴 천뢰심마검법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모든 구결을 외웠기에 그는 검법이 담긴 편지를 삼매진화(三昧眞火) 수법으로 태워 버렸다.
 그가 다 외우자마자 태워 버린 이유는 정파인로서 마교의 힘이 깃든 검법이 꺼림칙해 혹여 형과 가문에 피해가 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남궁기는 언제까지나 무림맹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무인으로 남아야 했다.
 다른 이들에게 비난을 받게 할 수 없었다.
 또한, 남궁기가 남긴 마지막 검법이라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이 검법을 익힌 마지막 무인이어야 했다.
 그 누구에게도 이 검법을 전수해 주고 싶지 않았다.
 혈마검 진신에게도 말이다.
 “어려운 검법이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아.”
 모든 구결을 외웠지만, 모두 이해한 건 아니었다.
 남궁기는 초식 하나하나에 자세한 설명을 넣지 않았다.
 기본적인 형태를 알려 주었을 뿐이었다.
 찌르고 돌리고 벤다.
 이것이 끝이었다.
 너무나 간단한 설명에 남궁연우는 허탈감만 느꼈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남궁기의 무학이 담긴 검법이 쉽게 풀렸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거다.
 그는 끊임없이 신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을 머릿속에 그리며 천뢰심마검법의 오묘함을 이해하려 했다.
 아무리 남궁기가 천재라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을 테니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
 
 -천뢰심마검법은 유지승강(柔之勝剛)을 역으로 생각한 검법으로 부드러움은 절대 강함을 이길 수 없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검법이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유지승강은 노자가 한 말로 달이 차면 지듯이, 만물은 성(盛)하면 반드시 쇠(衰)하기 마련이다.
 즉, 물극필반(物極必反)하고 세강필약(勢强必弱)하는 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라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하는 정파의 무공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무당파의 태극권이라 할 수 있었고 도교를 표방하는 문파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여기에 따랐다.
 그런데 천뢰심마검법은 처음부터 정파 무학의 정수를 부정하면서 출발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파 무공만 익히고 습득해 온 남궁연우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말은 더 기가 막혔다.
 
 -천뢰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은 능히 대지의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신선들이라 해도 천뢰라는 단어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처음 구결은 이해할 수 있었지. 마(魔)가 들어가면서 힘을 추구할 것이란 예상은 했으니. 하지만 이 말은 너무 광오(狂傲)하지 않는가. 어떻게 형님은 천뢰라는 뜻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을까.”
 답답할 노릇이었다.
 단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검법을 창안한 남궁기는 혈마검 진신을 찾아가라는 말만 남긴 채 죽었다.
 하지만 남궁연우는 절대 그를 만날 생각이 없었다.
 형이 이 검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혈마검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가문은 물론이고 형의 명예가 실추될 테니까.
 “어렵구나. 정말 어렵구나.”
 그가 한참 두 번째 구결과 씨름하고 있을 때, 마부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공자님, 마교 합비 지부에 도착했습니다.”
 
 
 #마교 합비 지부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마교 지부.
 지부장 마령검(魔靈劍) 기현(基賢) 마교 서열 삼십일 위.
 그런 자가 직접 마중 나와 남궁연우의 안내인을 자처했다.
 남궁연우는 생각지도 못한 기현의 융숭한 대접에 그가 흑심을 품은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기현은 진심으로 그를 대접하며 지부를 안내해 주었다. 마치 그의 상전으로 모시듯 말이다.
 정파인으로서 마인의 대접을 받으니 남궁연우의 심정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기현은 활짝 미소를 띠며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남궁 공자, 제가 왜 남궁 공자를 극진히 모시는지 이유가 궁금하십니까?”
 “별로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가 매몰차게 대답했지만, 기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따뜻한 차를 권했다.
 하지만 남궁연우는 마시지 않았다.
 마인이 내주는 차는 꺼림칙했다.
 독극물이 들어 있거나 그를 고통스럽게 하는 약재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기현은 그에게 내준 차를 다시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다.
 그런 후, 마치 독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란 듯이 그의 잔을 들어 마셨다.
 남궁연우는 말끔히 비워진 자신의 잔을 보고는 다시 그에게 시선을 두었다.
 기현은 흔들리지 않는 남궁연우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남궁 공자는 이번 본 교 축제 내에서 가장 관심도가 높은 참가자이지요. 교주님과 대등한 실력을 뽐낸 창천신검 남궁천의 아들이자 본 교 서열 삼위 혈마검 진신님과 혈투를 벌인 창천룡 남궁기의 친동생.”
 “그래서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위 두 사람의 신위는 대단하지요. 물론, 공자께서 두 분의 신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저희 마교인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천신검과 창천룡은 천외천의 경지에 오른 자들이니까요. 교주님께서 정파 세력들에게 봉문을 내렸으니 우리로서는 정보 수집이 참으로 어려워졌지요. 그러니 더욱 궁금한 것입니다.”
 마인에게 추앙받는 아버지와 형이라니,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을 떠보려는 수작일 테니까.
 “공자께서 마음이 불편하신 건 압니다. 그러니······.”
 “불편한 걸 알았으니 이만 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남궁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기현은 웃음을 지웠다.
 그러고는 품에서 붓을 꺼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떨어지는군. 삼 장로께서는 저자의 무엇을 보고 높은 점수를 주신 건지 모르겠군.”
 기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남궁연우의 옆에 제 생각을 적었다.
 
 -그동안 참가했던 남궁세가의 자제들보다 못한 수준으로 이번에도 성과는 거두지 못할 듯. 주의할 필요 없음. 중하품(中下品)-
 
  * * *
 
 합비 마교 지부에 도착하고 다음 날, 남궁연우는 마교에서 내준 휘황찬란한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합비 지부에 올 때는 홀로 마차를 탔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마령검 기현이 고고한 선비처럼 앉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남궁연우는 마인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싫었고 기현은 생각보다 무공이 낮은 남궁연우에게 실망하여 관심도이 줄었기 때문이다.
 신강(新疆)에 자리 잡은 마교 총본산(總本山)에 도착하려면 한참 남은 여정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이 분위기는 다음 목적지까지 이어졌다.
 열흘 후, 호북성(湖北省) 마교 무한(武漢) 지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마차에서 내렸다.
 마교의 성스러운 축제에 참가해야 하는 또 다른 정파인들이 이곳에 기다리고 있었다.
 ‘호북성이라면 무당파에서 보낸 자가 있겠군.’
 남궁연우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무림맹 시절, 구파일방에 소속된 문파와 오대세가에 소속된 세가들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만약 마교와 사도천이라는 공동의 적이 없었다면 두 세력은 정파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을 것이라는 세간의 평이었다.
 무림맹에서 백도림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두 세력의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년 마교 축제에 보내야 할 제자와 세가의 아이들의 숫자를 정할 때, 두 세력의 갈등이 가장 깊게 나타났다.
 마교는 이런 두 세력의 첨예한 갈등을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며 방관했다.
 정파 세력이 서로 뭉치지 않고 이처럼 분열된다면 마교로서는 손쉽게 정파 세력을 제멋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평화조약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오십년간 봉문하도록 만들었지만, 그들의 저력을 생각한다면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축제라는 명목하에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불러 서로를 죽이게 만들어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들이 서로 헐뜯을 동안 마교는 천천히 힘을 키워 새외 무림 세력들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세력을 만들고 때가 다가오면 전쟁을 일으켜 완벽한 무림 통치를 손에 거머쥐려 했다.
 이것이 축제를 만든 진정한 목적이었다.
 많은 정파인이 마교의 진정한 목적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보내지 않으면 그 즉시 멸문이었으니까.
 ‘무당파와 악연은 없지만, 가까이할 필요도 없지.’
 무당에서 온 도사도 남궁세가에서 온 자신을 멀리할 터니 별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검을 겨누는 때도 여럿 있었지만, 지금 세대는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서로를 여겼다.
 남궁연우는 기현의 뒤를 따라 1층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무한 지부는 합비 지부와 비슷한 내부 구조였다.
 그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이미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말을 들었다.
 그래도 내부 구조는 나름 재미있었다.
 마교 지부 내부는 대부분 1층에 식당을 만들고 2층부터 5층까지는 손님이 묵을 객실을 만들었다.
 6층과 7층은 지부를 운영하는 자들이 거주했다.
 마치 루(樓)와 같은 구조였다.
 두 사람은 구석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기현을 알아본 젊은 마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려 하자 기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조용히 식사를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학우선(鶴羽扇)을 펼쳐 위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마치 자신을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 여기는 듯한 모습에 남궁연우는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기현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남궁 공자, 같이 점심을 드시지요.”
 “긴 여정에 속이 좋지 못하니 나중에 먹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은 같이 드시지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피곤하니 먼저 방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오랜만에 나눈 대화였지만, 남궁연우는 길게 이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중앙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일었다.
 꼬질꼬질한 흰 옷을 입은 단순한 취객으로 보였던 자였다.
 무심결에 지나갔던 터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흰옷은 무당파 도사들이 입는 옷이었다.
 몇 달간 빨지 않아서 못 알아본 거였다.
 쨍그랑!
 하지만 다 마신 술병을 검지 하나로 가볍게 밀어내며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신위에 남궁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순간적으로 피어오른 깊은 내공의 힘에 위협을 느꼈다.
 끝을 알 수 없는 힘, 적어도 자신보다는 훨씬 위의 경지에 오른 자였다.
 ‘무당파에서 온 자인가? 정말 대단한 신위를 지닌 자다.’
 그렇다면 저 도사는 자신의 경쟁자였다.
 생존을 두고 검을 겨눠야 하는 경쟁자.
 온몸에서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교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적이 아니었다.
 날카로워진 신경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그는 다시 젊은 도사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지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정적을 깨는 소리가 젊은 도사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꺼억! 역시 마교 지부에서 마시는 술은 최고란 말이지! 한 잔 더 마셔 볼까? 어라? 술이 없잖아? 점소이(店小二) 어디에 있어! 뭐야? 거기서 뭐 해? 빨리 술 더 가져와!”
 흰 도복을 입은 젊은 도사가 술에 취한 듯한 얼굴로 구석에서 덜덜 떠는 점소이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남궁연우는 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요즘 무당파 도사들은 술도 마시나 보군요. 참으로 보기 드문 광경을 봤습니다.”
 뒤에서 차를 홀짝이던 기현의 차분하게 읊조리는 말에 젊은 도사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마교 새끼들도 술 마시는데 내가 못 마실 것 같냐? 엉? 너 내가 아니꼬워 보이지? 그렇지?”
 “그건 아닙니다. 도사들도 술을 마실 수 있지요.”
 “푸하하하! 그 말 마음에 든다. 너 이름이 뭐야?”
 “합비 지부장을 맡은 마령검 기현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도사님의 존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가 저자세로 나오자 마음에 들었는지 젊은 도사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넌 약해서 안 돼. 돌아가.”
 그러자 기현의 고운 아미가 살짝 일그러졌다.
 마교 지부장이라면 한 문파의 장문인이라 해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었다.
 그의 말이 곧 법이고 교주의 뜻이었으니 심기를 거스른다면 그날 이후로 문파는 지도상에서 지워질 테니까.
 그런데 한낱 무당파의 어린 도사가 무시하는 발언으로 그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몇 번을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기현은 이미 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줄은 몰랐다.
 분명 자신이 지부장이라는 사실은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을 터였다.
 지부에 들어오자마자 거친 살기를 받았으니까.
 그때는 그저 어린 도사의 오판으로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계산된 행동이었다.
 “재미있군요.”
 “넌 재밌냐? 그런데 어쩌냐? 난 재미없는데? 나보다 약한 녀석과 계속 말을 섞어서 기분이 좋지 못하거든.”
 기현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학우선을 더욱 강하게 손에 쥐며 마음을 다스렸다.
 지금 이자를 죽였다가는 본 교의 처벌을 면치 못할 터.
 참아야 했다.
 “마령검이라 해서 검을 사용할 줄 알았더니 계집애들처럼 부채질이나 하고 말이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무한 지부장이랑 더 놀아 줄걸.”
 젊은 도사는 구석에 쓰러져 있는 중년인을 가리켰다.
 그의 모습을 본 기현은 노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지금 뭐라 했습니까?”
 “뭐가? 계집애? 아니면 무한 지부장?”
 젊은 도사가 정말 모른다는 듯이 묻자 기현은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마교의 위엄을 보여 줘야 했다.
 후기지수를 죽이지 않고 고통스럽게 해 준 후, 치료만 잘 해 주면 본교에서도 처벌을 내리지 않으니 그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졌다.
 기현이 마음을 굳히자 젊은 무당파 도사는 재미있다는 듯 점소이가 가져온 술을 입에 가져간 후 말했다.
 “본좌가 십 초 양보해 줄 터이니 먼저 오너라.”
 “하, 정말 죽고 싶은 겁니까?”
 “아, 십 초가 부족했어? 그럼, 이십 초로 해 줄게. 그리고 나는 검을 들지 않을게. 이거, 검지 하나만 쓸게. 사실 검지 하나도 아깝지만 말이야.”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이는지 몰라도 저 도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기현은 고개를 흔들며 처음 생각했던 방법을 바꿔 녀석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능욕한 녀석이라 해도 술에 취한 무인을 상대로 무공을 꺼내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학우선으로 맥을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면.
 “너 그거 알아? 어중간하게 부채 쓰다가는 죽는다?”
 젊은 도사는 검지로 술병을 빙빙 돌렸다.
 
 #무당파에서 온 도사
 
 남궁연우는 유심히 젊은 도사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한 표정을 보니 격장지계(激獎之計)로 마령검 기현을 제압하겠다는 의미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검지 하나로 기현을 이기겠다는 듯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오만했다.
 물론 방금 보여 준 젊은 도사의 신위(神威)는 대단했다.
 하지만 상대를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마교 서열 삼십일 위, 마령검 기현은 선비와 같은 모습과 달리 손 속이 잔인한 자였다.
 정마대전에서 전투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승리를 이끌었고 그의 세검에 많은 정파인들이 죽어 갔다.
 아직도 그의 별호를 말하면 이를 가는 자들이 많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본좌가 양보해 줬으면 재깍재깍 와야 할 거 아냐.”
 “좋다! 가 주지.”
 기현은 살벌한 음성으로 대답하자마자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세검(細劍)을 들어 도사의 검지를 향해 출수했다.
 그를 죽이지 않고 검지 하나만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이었다면 혀를 뽑아다 토막 내고 살려 달라 빌 때까지 살갗 하나하나를 회 뜨듯이 벗겨 냈을 테니까.
 당연히 검지 하나를 가져가리라 생각했던 기현은 생각지도 못한 단단함에 깜짝 놀랐다.
 “뭐야? 이게 바로 마령 뭐시기가 자랑하는 극세사검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더니 다 거짓이었잖아? 에잇! 김샜다. 김샜어.”
 “너! 어떻게, 그걸.”
 기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눈에 보이지 않은 세검을 검지와 중지로 잡은 젊은 도사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화경의 고수라 해도 눈에 전혀 보이지 않거늘.
 저번 정마대전에서 그의 세검에 목이 잘려나간 화경의 고수만 해도 세 명이었다.
 그런데 고작 초절정으로 보이는 도사가 자신의 검을 막아 내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봤냐고? 그냥 말하면 섭섭하지. 술 한 잔 사면 알려 줄게. 어이! 거기 남궁세가 놈, 거기서 계집애처럼 숨어서 보지 말고 같이 술 한잔하지? 여기 술 맛있거든.”
 갑자기 술타령하는 젊은 도사.
 기현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마령검이란 별호(別號)가 붙은 이유를 이 잡종 도사에게 보여 줘야 했다.
 마침 도사는 잡기 불편하다는 듯 세검을 튕겨 냈다.
 “죽어라! 마령무희(魔靈舞姬).”
 기현의 검이 구렁이처럼 그의 몸을 감싸려 들자 도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로 그의 몸을 감싸려 드는 세검과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스듬히 검을 들어 제압하는 도사였다.
 채앵! 채앵! 채앵!
 그들의 검이 부딪힐 때마다 탁자며 의자며 지부에 있는 물건들이 사정없이 잘려 나갔다.
 이미 손님들은 1층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밖으로 피신하거나 방으로 도망갔다.
 점소이들만 구석에서 몸을 숙인 채 사태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남궁연우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푸른 검기를 보고 검에 기를 불어넣어 신창궁무애검법 제이식 천뢰화벽을 이용해 옆으로 흘렸다.
 하지만 옆으로 흘렸음에도 손목이 지끈거렸다.
 두 사람의 무위는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채앵! 채앵! 지지지지징!
 “무희는 무슨 얼어 죽을. 어떤 계집이 이렇게 춤을 춰? 살벌해서 무대에 오르겠나? 호잇! 위험했네.”
 발목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위로 살짝 뛰어올라 피했다.
 변칙적으로 세검이 그의 목, 팔, 손목, 가슴, 배 등 여러 군데로 들어왔지만, 도사는 가뿐하게 막아 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적이 죽을 때까지 무한으로 공격하는 마령무희가 통하지 않자 기현은 아예 자신의 힘을 모두 끌어다 세검에 불어넣어 힘으로 도사를 압박했다.
 하지만 무당파 도사는 한 손으로 검을 들어 막고 한 손으로는 술을 마시며 그의 공격을 가뿐히 막아 냈다.
 “아 참! 시끄러워! 네 더러운 목소리 때문에 머리가 울리잖아.”
 “네놈이 죽으면 끝날 일이다!”
 “그런가? 어라? 근데 왜 내가 검을 들고 있는 거야? 분명 검지로 싸우겠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알아?”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기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검을 들고 막은 주제에 갑자기 자신이 왜 검을 들었냐고 묻는 도사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아, 그런 표정 짓지 마. 내 마음이 속상하잖아.”
 저 망할 도사가 재미로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기현은 손 속을 남겨 두려던 마음을 접었다.
 “반드시 죽이겠다! 마령무혈원진(魔靈無血圓陣)! 넌 뼛조각도 안 남게 될 것이다!”
 갑자기 기현의 기도(氣度)가 살벌하게 변하자 젊은 도사의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소나무처럼 푸른빛으로 변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궁연우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기운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느낌은 분명 형님과 비무를 할 때의 느낌이다.’
 순수 공력으로만 보면 남궁기가 위일지 몰라도 저 도사의 내력도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검술은 논외(論外)로 치더라도 그가 지닌 내공은 상당했다.
 ‘강호에는 천재들이 많구나.’
 하지만 남궁연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남궁기가 마지막으로 남긴 검법이 있었다.
 이 검법을 익히고 살아서 돌아온다면 저 도사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기현도 도사의 심상치 않은 기도를 느꼈지만, 이제 와서 검을 뒤로 무르기에는 늦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 비무였다.
 도사는 태산(太山)을 움직이는 듯 천천히, 정명한 기운을 검에 담아 자신을 감싼 기현의 세검에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흰 도복을 입은 중년인이 그들 사이에 파고들어 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검을 밀쳐 내고 검면(劍面)으로 젊은 도사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퍽!
 “끄억! 누구야! 헉! 사부!”
 “네 이놈! 진윤(秦胤)! 도사란 놈이 술과 고기라니! 조사(祖師)님의 낯을 어찌 보려고 이러는 게냐!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으악! 사부, 아프다고! 그만 좀 때려! 제발!”
 하지만 진윤의 사부는 그럴 맘이 없다는 듯 그를 복날에 개 패듯이 검 면으로 때렸다.
 진윤의 비무자인 기현은 신속히 정신을 가다듬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세검을 거둬들였다.
 진윤의 사부라면 분명 그자일 터였다.
 무당파 당내호법(黨內護法) 청명의검(靑明意劍) 현진진인(玄塵眞人).
 당파의 규율을 담당하는 호법이었던 터라 정마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호에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였다.
 그런데 그자가 마교 무한 지부에 나타나 제자를 죽일 듯이 패고 있었다.
 기현은 피를 튀기며 맞고 있는 진윤이 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사가 술과 고기를 가까이 한 죄를 묻는 건 당연했지만, 자신보다 손 속이 잔인할 줄은 몰랐다.
 “이제, 그 정도만 하시지요. 청명의검 현진진인.”
 마교도인 그가 말리는 상황이라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진윤을 살리고 봐야 했다.
 현진진인을 말리지 않으면 정말 제자를 죽일 기세였다.
 기현이 말리자 현진진인은 바로 검을 거둬들였다.
 그는 포권지례(抱券之禮)로 답했다.
 “못난 제자가 그대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여 미안하오. 마령검, 부디 노후(老朽)의 얼굴을 봐서라도 제자를 용서해 주시겠소?”
 “사부가 왜 마교 새끼한테 고개를 숙······ 컥!”
 “넌 가만히 있거라!”
 현진진인이 진윤의 복부를 가격하자 기현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바닥에 피를 토해 내는 진윤의 모습을 보니 절로 용서할 마음이 들었다.
 그도 포권지례로 화답했다.
 “용서라고 할 것까진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당내호법이라 바쁘시지 않습니까?”
 “허허허, 제자 놈이 출타하자마자 술과 고기를 먹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훈계를 내리려 찾아왔습니다. 이놈! 잠든 척하지 말고 일어나라!”
 그러자 거의 시체처럼 바닥에 나뒹굴던 진윤이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적였다.
 “아오! 아직도 수련이 멀었네. 근데 사부, 이번에는 조금 아팠다? 금강불괴(金剛不壞) 수면신공(睡眠神功)이 아니었으면 난 죽음이었다구.”
 멀쩡한 모습의 진윤이었다.
 흰 도복에 먼지만 조금 묻었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기현은 순간 참았던 인내심이 폭발하려 했지만, 현진진인의 앞에서 화낼 수는 없는 법.
 그는 학우선을 들어 자신의 일그러진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이거 놀라운 신공이로군요. 한 수 배웠습니다.”
 “잡기에 가까운 신공이지요. 진윤아.”
 “응, 사부. 말해.”
 그가 다시 술을 마시려 손을 뻗자 현진진인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손을 가볍게 타박하며 말했다.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돌아오너라. 네놈이 날뛴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조사님을 앞에서 네 잘못을 천 년 동안 빌게 하겠다. 알겠느냐?”
 “알았으니까 제발 무당산으로 돌아가요. 쪽팔리게······.”
 그가 전혀 정신 차릴 생각이 없어 보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현진진인은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남궁연우를 천천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궁세가에서 귀한 분이 오셨구려.”
 이에 남궁연우는 재빠르게 포권지례로 답하며 말했다.
 “진인의 위명(威名)은 익히 들었습니다. 후배 남궁연우, 진인께 인사 올립니다.”
 “허허허, 못난 제자와 달리 남궁 후배님은 예의가 바르구려. 진윤아, 보고 배우거라.”
 “나보다 약한 놈에게 배울 건 없어.”
 진윤의 말에 순간 남궁연우의 이마가 찡그려졌지만, 재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했다.
 “진윤아! 말을 할 때는!”
 “머릿속을 한 번 거치고 말하라고 사부가 말했지. 한 번 거치고 말한 거야.”
 현진진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그의 뒤통수를 냅다 갈겼다.
 퍽!
 “아오! 아프다고! 금강불괴 수면신공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맞으면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알고 있으니 타격한 것이니라. 남궁 후배, 미안하네. 노후의 제자가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으니 옆에서 잘 챙겨 주길 바라네.”
 남궁연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진진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사람으로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컥!”
 다시 한번 현진진인의 매서운 손바닥이 움직이자 진윤은 끔찍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마령검에게도 부탁하오. 이 녀석이 날뛰려 하거든 두 사람이 합심하여 제압해 주길 바라오.”
 그의 말에 기현과 남궁연우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마교인과 정파인이 합심하여 도사를 제압하라니 웃기는 제안이었지만, 처음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았다.
 진윤, 이 망할 도사를 마교까지 안전하게 데려가려면 통제가 필요했다.
 “그럼, 부탁하오. 노후는 본 당의 업무가 밀려 서둘러 가 봐야겠소. 진윤아, 돌아와서 보자꾸나.”
 “빨리 가! 짜증 나니까.”
 현진진인이 다시 한번 진윤의 뒤통수를 때리고 그 자리에서 몸을 틀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의 수법.
 금잉어가 파도를 넘는 모습을 보고 잉어의 몸놀림을 본따 만든 신법으로 몸을 틀어 그 탄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이동하는 전설적인 경신법이었다.
 눈앞에서 현진진인의 경지를 본 남궁연우와 기현은 대단한 신위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적어도 현경의 고수다.’
 그런 자가 정마대전에 나서지 않은 점이 이상했다.
 남궁연우는 현진진인의 제자라는 진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시선을 느낀 진윤이 키득거리고는 술병을 쥐며 말했다.
 “술 좀 마시냐?”
 진윤의 갑작스러운 술 제안에 흉흉했던 무한 지부는 평화로움을 맞이했다.
 남궁연우와 기현은 얼떨결에 자리에 합석해 진윤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뭐 해? 술 앞에 두고 제사 지내냐?”
 진윤은 닭다리를 맨손으로 뜯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 댔다.
 이내 그는 손을 입에 넣어 뼈만 쭉 빼냈다.
 그 모습을 본 남궁연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도사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지랄! 남궁 놈아, 넌 그 말을 믿냐?”
 “딱히 믿는 건 아닙니다.”
 “야, 잘 들어. 그건 땡중 놈들만 하는 짓거리고, 우리 도사들은 술과 고기를 먹어야 기운도 솟고 무공 수련도 잘되고 그런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술잔을 든 진윤은 술을 입에 털어 넣고는 좋다는 말을 연신 남발했다.
 남궁연우는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옆에서 부채를 흔들며 방관하는 기현도 마찬가지였다.
 방금까지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비무를 치렀던 상대와 음주라니······. 저 도사는 정신이 어떻게 된 듯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진윤은 혀를 차며 말했다.
 “에이, 기분 잡쳤네. 둘 다 꺼져, 혼자 마실 테니까.”
 그러자 남궁연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 참! 남궁 놈아, 네 이름이 뭐냐?”
 “······남궁연우입니다.”
 그의 이름을 들은 진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손뼉을 한 번 치며 놀랍다는 말투로 말했다.
 “아! 창천신검 남궁천의 아들이자 창천룡 남궁기의 친동생! 이야, 이거 놀라운걸?”
 “뭐가 놀랍다는 겁니까.”
 진윤은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고는 차분히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약해서. 겨우 절정의 고수라니. 사부의 생각이 틀려먹은 걸까? 됐다, 가서 쉬어.”
 남궁연우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섣불리 검을 뽑지 않았다.
 진윤이 보여 준 무위는 자신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다.
 천뢰심마검법의 구결을 완벽하게 깨친다면 모를까.
 아직은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남궁연우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자 진윤은 재미없다는 듯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이봐, 마령검. 어쩌자고 왜? 저런 친구를 데려왔어? 마교 놈들의 축제에서 살아남지도 못할 놈인데.”
 “남궁세가의 후기지수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남궁연우밖에 없었으니까.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되었지. 본 교에서는 남궁기를 원했지만, 그는 죽었지. 안타까운 일이야.”
 그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 주는 기현이었다.
 진윤은 코웃음 치며 남궁연우에 관한 관심을 꺼 버렸다.
 경쟁자라 생각했던 남궁기가 죽은 이상 이번 축제에 자신보다 무위가 높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기대를 걸었던 남궁연우는 체격만 좋을 뿐, 어느 부분 하나 뛰어난 점이 없었다.
 “시시해. 그냥 다 죽여야겠어.”
 “도사가 살벌한 말을 다 하는군. 혹시 본 교로 입교할 생각 없나? 좋은 자리 알아봐 주지.”
 기현이 키득거리며 말하자 진윤은 말없이 빈 잔에 술을 따르며 남은 닭다리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리 씹어도 개운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무한 지부에 다른 중소문파에서 온 자제들이 찾아와 일행에 합류했다.
 아홉 명의 정파 자제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부를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진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서로 죽이고 죽여야 할 사이인데 웃으면서 인사하다니. 이봐 남궁 아우, 쟤들이 왜 저러는지 알아?”
 갑자기 아우라 칭하며 친근하게 말을 붙이는 진윤, 그가 자신보다 나이가 두 살 많다는 건 어젯밤에 알았다.
 방에서 천뢰심마검법의 구결을 이해하던 중 진윤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찾아와 나이를 물었다.
 알려 주지 않으면 계속 캐물을 것 같아 자신의 나이를 알려 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씩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남궁 아우라 부를게. 알겠지?
 
 워낙 막무가내라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남궁연우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봅니까. 직접 가서 물으시죠.”
 “아우도 모른다는 거지? 야 마교 놈, 넌 아냐?”
 “알아서 뭐 하겠나. 어차피 어중이떠중이들이라 죽을 게 뻔한 자들인데.”
 “음, 역시 마령검은 참마교인이야. 이런 점은 본받을 만해.”
 “칭찬 고맙군.”
 기현이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하자 진윤은 김샜다는 표정으로 다시 마차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중소문파 자제들은 저마다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다졌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가진 힘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문파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합심하여 이번 축제에서 함께 살아남자는 다짐을 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지랄도 풍년이네. 오십 명 중에서 네 명만 살아남는데 아홉 명이 함께 살아남자고? 하! 위선이 가득한 말들뿐이네. 안 그래, 남궁 아우?”
 남궁연우는 그의 장단에 어울려 주고 싶지 않았다.
 구파일방 소속 무당파의 제자와 오대세가의 자제인 자신이 한 마차에 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마교의 힘에 짓눌려 서로를 견제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뒤에서는 상대의 세력을 깎아 먹으려 애썼다.
 언젠가는 마교의 지배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마교에 상대의 정보까지 팔아먹는 일까지 있다.
 어디가 비밀리에 병력을 키우고 있다든지 술자리에서 마교를 흉 본 사람이 누군지 등 상대의 세력이 줄어드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다행히 남궁세가는 복구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약해져 구파일방의 견제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마대전에서 보여 준 남궁세가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하며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물론 말뿐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무당파도 남궁세가와 비슷한 상황.
 장문인이 죽고 새로운 장문인이 올랐지만, 전 장문인에 비해 무위가 약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과거 찬란했던 무당파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문인과 장로 둘, 호법 하나와 일대제자 셋, 이대제자 열 명만 남은 상황이었다.
 속가제자들은 정마대전에서 모두 죽었다.
 그나마 무당의 호법이자 진윤의 스승인 현진진인이 무당파의 자존심이라 불렸다.
 그가 무당파에 존재하는 한 마교의 교주일지라도 쉽게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확실히 어제 본 무위는 대단했지.’
 현진진인이 지닌 내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풍모(風貌)에서 흘러나오는 선기(仙氣)는 절로 무릎을 꿇고 싶을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버지인 남궁천이라면 현진진인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요양 중이라 운신(運身)이 어려웠다.
 남궁천과 나란히 하는 현진진인의 제자인 진윤.
 스승과 제자로는 뭔가 어울리지 않았다.
 “마령검아, 사천까지는 얼마나 걸리냐?”
 “열흘 정도 걸린다. 그런데 아가야, 이제 반말은 삼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목숨은 하나인데 그렇게 말을 놀려야 쓰겠느냐?”
 “이거 놀라운데? 마교 놈이 내 목숨을 걱정해 주는 거야? 재미있는 경험이네.”
 “착각하지 말거라. 너를 무사히 본 교에 보내는 일이 내 임무라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아 줬으면 하는구나.”
 진윤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며 말했다.
 “남궁 아우의 생각은 어때? 내가 틀린 말을 했어?”
 “먼저 자겠습니다.”
 “에잉, 싱거운 녀석. 뭐야? 벌써 술이 다 떨어졌잖아? 분명 내가 마차에 실었는데?”
 그러자 기현은 부채를 살랑 흔들며 말했다.
 “이제부터 술은 없을 것이다. 본 교의 신성한 축제에 참가할 자들이 술을 마시다니 안 될 말이지.”
 “젠장! 술 없이 어떻게 살란 거야!”
 진윤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냈지만, 기현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그의 약점이 술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래서 몰래 그가 짐칸에 실은 술병들을 모조리 치웠다.
 물론 사천 지부까지의 일정을 생각해 몇 병은 남겨 두었다.
 “진윤,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본 교까지 간다면 하루에 한 병씩 내어주지.”
 “야! 신성한 축제라며!”
 “마교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정파인이라니,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러자 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흐음, 맞는 말이지.”
 “얌전히 있으면 꼬박꼬박 내어 주마. 이건 지켜 주지.”
 “크윽! 굴복하겠다. 그러니 술 내놔.”
 기현은 그의 품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진윤에게 던졌다.
 진윤은 좋다며 실실 웃고는 그 자리에서 마개를 빼내 술병을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본 기현은 혀를 차며 조용히 붓을 들었다.
 
 -무당파 호법 현진진인의 유일한 제자, 진윤의 무공은 상상품에 속하나 행동거지는 사파인과 다르지 않음. 이번 축제에서 기대되는 건 사실이나 협동심이 부족한 자라 초반에 죽을 것임.-
 
 잠시 붓을 놓고 고민하던 기현은 이내 붓을 들었다.
 
 -만약 초절정 끝에 도달해 있는 진윤이 화경의 경지에 들어선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음.-
 
  * * *
 
 사천까지 가는 동안 마차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을을 거치지 않고 지름길로 가는지라 노숙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파 자제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마교에서 온 무사만 해도 쉰여 명.
 이들 모두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아무런 불평 없이 바닥에서 먹고 잤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이 있으면······.
 “남궁 아우, 이거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남궁연우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마른 장작을 불길에 넣었다.
 “또 무엇이 불만입니까?”
 “일일 일술이 안 지켜지잖아. 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꼭지가 돌아 버린다고.”
 “오늘은 좀 참으십시오. 마령검이 가져 온 술은 다 떨어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일 사천에 도착하면 술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차분하게 말하자 진윤은 그의 옆에 털썩 앉으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객점으로 달려가서 술 달라고 할까?”
 “마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흥! 나보다 약한 녀석들이라 상관없어. 설마, 내가 저 녀석들 포위망을 뚫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남궁연우는 마른 육포를 가죽 주머니에서 꺼내며 대답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육포나 드십시오. 전 할 일이 많아 마차로 들어가겠습니다.”
 “쳇! 재미없는 녀석. 남궁 놈들은 다 너처럼 재미없냐?”
 진윤의 빈정거림에도 남궁연우는 더는 상대하지 않고 마차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바깥과 달리 마차 안은 조용했다.
 의외로 무공 수련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남궁연우는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천뢰심마검법은 유지승강(柔之勝剛)을 역으로 생각한 검법으로 부드러움은 절대 강함을 이길 수 없다는 전제하에 이뤄진 검법이다.-
 
 이제 이 부분은 이해가 되었다.
 검술이 무겁다면 가벼움을 더하고 가볍다면 무거움을 더했던 남궁기가 혈마검과의 비무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분은 역(逆)이었다.
 강함이 부드러움을 짓누를 수 있다는 생각은 혈마검의 검법인 진혈수라마검(眞血修羅魔劍)의 파괴력에서 나왔다.
 그의 파괴력에 고전했던 남궁기였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무학의 길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혈마검 진신의 검법에서 묘리만을 가져와 남궁가의 검법에 맞게 바꿨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구결이었다.
 
 -천뢰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은 능히 대지의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는 신선들이라 해도 천뢰라는 단어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분명 두 번째 구결 안에 남궁기가 남긴 뜻과 검법의 초식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실마리라도 알려면 좋으련만, 남궁연우는 이번 여정에서 그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마차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흐응, 너 참 재미있는 짓을 벌이는구나? 정파인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다니 말이야.”
 바로, 진윤이었다.
 
 #천뢰심마검법
 
 진윤의 입에서 마기라는 단어가 흘러나오자 남궁연우는 놀란 가슴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다행히 그에게 들키지 않은 듯했다.
 확신에 찬 표정이 아니었으니까.
 남궁연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다니, 그게 무슨 억지입니까.”
 “남궁 아우,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허튼소리할 거면 그만 나가 보십시오.”
 그가 완강하게 부정하자 진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긴 그렇겠지. 정파인이 마기라니, 내가 잘못 느낀 게 맞겠지. 내가 숨겨 둔 육포가 어디에 있더라.”
 그 말을 남긴 진윤은 자신의 짐에서 말린 육포를 꺼내 입에 물고 마차를 나섰다.
 그의 기척이 사라지자 남궁연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너무나 안일했다.
 천뢰심마검법 구결을 이해하고자 집중한 나머지 미처 주변을 신경 쓰지 못했다.
 진윤이 기척을 숨긴 채 접근했다 해도 마차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건 실책이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어.”
 다시 천뢰심마검법의 두 번째 구결을 읽으려 할 때, 문득 진윤이 꺼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정파인이라면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정파인의 몸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다니 말이야.
 
 단순히 구결만 중얼거렸는데도 마기가 흘러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구결을 올바른 방향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혈마검 진신의 검법을 참고했으니까.
 물론 걱정이 앞섰다.
 구결만 외워도 마기가 진동하는데 완벽하게 이해하고 검법을 구현하면 진윤이 느낀 마기가 더욱 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남궁연우는 남궁세가의 명성에 먹칠하는 자가 되기 싫었다.
 중원의 사대신검이라 칭송받는 아버지와 마교의 장로에 당당히 맞선 형이 만든 남궁세가를 더 발전시키지 못할망정 망쳐 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래도 그는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천뢰는 남궁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쾌에 속하는 단어였다. 첫 번째 구결이라면 모를까, 두 번째 구결 안에는 심마의 뜻은 없었어.”
 현재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없었다.
 다섯 살 때부터 창궁대연신공을 익혀 온 그의 몸은 맑고 정순했다.
 사악한 기운은 단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무당파 도사인 진윤이 잘못 본 것일까?
 남궁연우는 그럴 일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말코 도사라 해도 진윤은 무당파의 호법 현진진인의 제자였다.
 그가 잘못 봤을 리는 없었다.
 “경계해야겠어. 창궁대연신공을 끌어올리면서 구결을 해석해 나가면 괜찮을 거야.”
 그는 조심스레 창궁대연신공을 몸 전체로 돌리며 천뢰심마검법의 구결을 읽어 나갔다.
 그의 생각대로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정순한 기운을 가진 힘이 몸을 돌아다니며 그의 몸을 가볍게 두드렸다.
 툭. 툭. 툭.
 어느 정도 안정에 들어서자 그는 조금씩 빠르게 돌렸다.
 쾅! 쾅! 쾅!
 약간의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제야 남궁연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천뢰심마검법의 창안자, 남궁기는 동생인 그가 창궁대연신공을 사용하면서 구결을 해석할 것임을 예상했다는 듯 조금씩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창궁대연신공 안에는 정순함뿐만 아니라 천(天), 즉 드넓은 하늘의 힘이 담겨 있었다.
 하늘은 모든 것을 포용할 힘을 지닌다는 걸 남궁연우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렇구나. 천뢰는 단순히 파괴력만 상징하는 단어가 아니다. 바로 심마를 다스리는 힘을 지녔다. 서로 다른 두 힘이 함께 공존하며 무한한 힘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형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천뢰심마검법의 요체!’
 남궁연우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적어도 몇 년은 연구해야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다.
 십팔 년 동안 정파의 무공만 갈고 닦은 그였기에 마공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닿을 수 없는 무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궁기는 뼛속부터 정파인이었다.
 결코 마공은 정파의 무공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듯 가전 무공의 요체를 중심으로 심마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검법을 창안하였다.
 즉, 천뢰 안에 심마를 두고 서로 상생하도록 만들어 낸 것이다.
 단순히 베고 찌르고 회전하고 호선을 그리던 천뢰심마검법의 초식이 그의 눈에는 다르게 들어왔다.
 초식 하나하나에 파괴적이고 광오한 힘이 담겨 있었고 그 힘을 포용하는 건 남궁세가의 무학이었다.
 아직 오의를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구결을 해석하니 여섯 가지 초식 중 두 가지 초식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었다.
 “창궁무애검법과 신창궁무애검법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검법이다. 진혈수라검법이 무서움이 신창궁무애검법의 힘에 담기니 부드러움을 바탕으로 하는 검법들은 모두 허례허식(虛禮虛飾)으로만 보이는구나.”
 천뢰심마검법이 아니었다면 보이지 않던 길이었다.
 진정한 패도(覇道)의 길.
 하지만 기존의 패도와는 달랐다.
 남궁기가 새롭게 추구하고자 했던 패도의 길은 정(正)의 힘으로 마(魔)를 제압하는 길이었다.
 그 길을 가고자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든 혈마검 진신의 검법, 진혈수라마검의 힘을 받아들인 것이다.
 새로운 길에 눈을 뜬 남궁연우는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봤다.
 오랫동안 절정에 머물고 있던 그였지만, 천뢰심마검법의 구결을 해석하자 초절정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무당파의 기재인 진윤과 같은 경지였다.
 남궁연우의 입가가 미소로 번졌다.
 “몸속에서 마기가 느껴지지만, 한없이 깨끗한 기운이 마기를 제어하고 감싸는 기분이 든다. 정이 마를 다스리면서 생긴 효과인가.”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마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천뢰심마검법은 절대 검법의 반열에 올려 둔다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항상 경계는 해야 한다.”
 남궁연우는 다짐 또 다짐했다.
 마기는 위험했다.
 언제 날뛰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세 번째 구결에 담긴 천뢰심마검법의 마지막 초식까지 구현해서 남궁기도 해결하지 못한 마를 완벽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연구할 생각이었다.
 완벽한 정파 검법으로 거듭난다면 남궁세가의 검법으로 이름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면 남궁기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시기상조지. 더 부지런히 연마해야 한다.”
 남궁연우는 머릿속으로 천뢰심마검법의 초식을 빠르게 구현해 나갔다.
 
  * * *
 
 “흐음, 흐음, 흐음.”
 진윤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남궁연우의 몸을 바라보았다.
 남궁연우는 짐짓 모른 척 고개를 돌려 창 밖에 시선을 두었다.
 두 사람의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 기현은 학우선으로 입가를 가리며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는 남궁연우의 달라진 기도에 살짝 놀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진윤이 폭발했다.
 “남궁 아우! 어젯밤에 뭔 일 있었어?”
 “없었습니다.”
 “하!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거지? 연우 아우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남궁연우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아우라는 호칭은 듣기 거북합니다. 또한, 천박한 말투도 자제해 주시지요. 대무당파의 일대제자가 사용하는 말투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가 강하게 나오자 기현은 재미있다는 듯 슬쩍 진윤을 바라보았다.
 진윤은 황당한 표정으로 남궁연우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봤던 자신감이 부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남궁세가의 대공자로서 우뚝 선 남궁연우의 모습만 보였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자신감 넘치는 기도에 진윤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물었다.
 “너 뭐 잘못 먹었냐?”
 “진윤 도사님과 같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의 칼 같은 대답에 진윤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젠장! 안 되겠다. 야, 남궁 놈! 사천에 도착하는 즉시 나랑 한판 붙자! 고작 알량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나를 넘었다고 생각하진 마라.”
 그러자 남궁연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오호라!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좋아, 남궁세가의 무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본좌가 직접 평가해 주겠다.”
 “그 말 그대로 돌려 드리도록 하지요.”
 두 사람이 물러섬 없이 맞서자 지켜보던 기현은 학우선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두 분 진정하시지요. 아직 마차 안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 앉았다.
 마교까지 함께 가야 할 마차가 부서지는 건 사양이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자리 잡았지만 기현은 오히려 흥미로운 눈빛으로 남궁연우와 진윤을 바라보았다.
 특히 남궁연우의 기도가 거칠게 변한 점에 주목했다.
 ‘본래 남궁세가 무공의 중심은 쾌에 속했지. 하지만 남궁기가 새롭게 정립한 남궁세가의 무공은 균형이었다. 혁명과도 같았지. 그런데 남궁연우는 두 무학의 길과 다른 듯하군. 마치 정도를 벗어난 느낌마저 들어.’
 왠지 모를 친근한 느낌이 들었지만 기현은 고개를 저었다.
 ‘대남궁세가의 자식이 마도의 길을 걷는다라······.’
 피식.
 다른 마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알았다면 자신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두 사람이 비무를 나눈다면 남궁연우에게 느껴지는 친근감의 정체가 밝혀질 테니까.
 ‘기대되는군. 과연 진윤을 누르고 중품에서 상품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점심이 돼서야 마교 사천(四川) 지부에 도착했다.
 사천은 과거 정마대전에서 두 세력이 가장 치열하게 다퉜던 지역이었다.
 두 세력 모두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이곳 사천에는 많은 정파 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아미파, 점창파, 청성파가 자리 잡고 있었고 오대세가 중 하나인 사천당가가 이곳에 있었다.
 그 외 중소문파가 있었지만, 그들은 저번 정마대전에서 멸문하다시피 해 사실상 없는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남궁연우 일행은 마교 사천 지부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각자 방에서 짐을 풀고 나온 남궁연우와 진윤은 1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이 짐을 풀 동안 마령검 기현이 1층에 비무장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1층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치워지고 거대한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터 가운데에 남궁연우와 진윤이 자리 잡았고 비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정파 자제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무당파의 호법, 현진진인의 제자, 진윤과 창천신검 남궁천의 아들이자 불세출 고수, 남궁기의 친동생 남궁연우의 비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이들의 비무를 지켜보는 자들은 정파 자제들만이 아니었다.
 마교인들 역시 두 사람의 비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평화로운 시기라 초절정 고수의 비무를 보기 힘들었다.
 치고받는 싸움을 좋아하는 마교인들에게는 이런 평화로운 시기가 지옥과도 같았다.
 마교 내에서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들이 많았다.
 교주인 일월신마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축제를 열어 정파 자제들이 서로 치고받도록 만들었다.
 피를 토하며 죽어 가는 그들을 보며 마교인들은 대리 만족을 느꼈고 지금까지는 그들의 불만을 억제할 수 있었다.
 기현은 학우선을 들고 그들의 사이에 섰다.
 두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장소가 협소하니 내공 사용은 금지하겠습니다.”
 기현의 차분한 말에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만들어 놓은 원 밖으로 나간다면 패배로 간주하겠습니다. 또한, 비무가 너무 격해질 경우 제가 개입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빨리 시작하자고.”
 두 사람이 검을 들자 기현은 뒤로 슬쩍 물러섰다.
 “시작하겠습니다.”
 쾅!
 기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궁연우의 검과 진윤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남궁의 검과 무당의 검
 
 진윤은 남궁연우의 기세를 꺾을 요량으로 처음부터 자신의 본신절기인 현허유운검법(玄虛柔雲劍法)을 구사했다.
 스승인 현진진인이 무당파의 대표적인 검법, 태극검(太極劍)의 부드러움과 변초 중심의 유운제검(柔雲濟劍)의 장점만을 섞어 창안한 무공이 바로 현허유운검법이었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 냄과 동시에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상대를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검법으로 현진진인의 무학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검을 살짝 비틀어 진윤의 검을 막았다 생각한 남궁연우는 갑자기 구름처럼 부드럽게 통과하는 검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스으윽!
 진윤의 검이 그의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윤은 남궁연우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창궁무애검법이 쾌(快)에 중점을 두었다면 진윤의 검법은 유(柔)와 변(變)에 중점을 두었다.
 남궁기가 창안한 신창궁무애검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진윤은 무당의 검이 꺾이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현허유운검법 제이식 현허만리(玄虛萬理)!”
 순간적으로 진윤의 검이 하나에서 수십 개로 변화하며 남궁연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현묘한 검술을 본 마교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내공을 주입하지 않고도 그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기도가 남궁연우를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으니까.
 남궁연우는 숨이 막힐 듯한 매서운 기세에 침을 꿀꺽 삼켰다.
 ‘피하면 죽는다. 쳐 내거나 막아야 해.’
 남궁연우는 호흡을 바로 잡고 검을 바로 세웠다.
 진윤의 현허유운검법에 맞설 검술은 단 하나.
 남궁기의 천뢰심마검법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수백 번 수천 번 구사한 검술이었지만 실전은 처음이라 위력은 가늠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문에 명예를 실추시키기는 것보다는 여기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야 했다.
 ‘천뢰심마검법 제일식.’
 스으윽.
 남궁연우의 검이 사선으로 한 번 그어졌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진윤은 순간적으로 서늘한 무언가가 온몸을 지배하는 감각을 맛보았다.
 단순히 남궁연우의 눈을 바라봤을 뿐인데 머릿속은 경고로 가득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베인다.’
 진윤은 자신이 느낀 감각을 믿었다.
 평소 행동거지는 천박하다는 말을 들어도 비무에서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전투 감각을 지닌 그였다.
 진윤의 판단은 옳았다.
 남궁연우가 그의 검술에 맞서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천뢰제신(天雷制神)!”
 천뢰제신은 하늘의 신선을 뇌로 다스린다는 초식으로 단순한 찌르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남궁세가의 쾌와 진혈수라마검의 파괴력이 가미되어 있었다.
 진윤이 피하고자 마음먹은 건 진혈수라마검의 묘리를 느꼈던 까닭이었다.
 무식하게 힘 대 힘으로 간다면 분명 패하는 것은 자신.
 그는 정면 승부를 피해 옆으로 돌아 남궁연우의 등을 노려 왔다.
 남궁연우는 빠르게 몸을 틀어 신창궁무애검법 제이식 천뢰화벽을 펼쳤다.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동시에 빠르게 찌르는 검술.
 남궁기와 비무에서는 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무거움이 무엇인지 알겠다.’
 남궁연우가 진윤의 검을 쉽게 막아 내자 마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오랜만에 신명 나는 비무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진윤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마지막에 자신의 옆구리로 찔러 들어오는 남궁연우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면 자신을 벌써 바닥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핏줄은 핏줄이라는 건가. 역시 싸워 보길 잘했어.’
 그는 씩 웃으며 빠르게 발을 놀렸다.
 남궁연우의 품으로 파고든 진윤은 그에게 검술을 펼칠 공간을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남궁연우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윤의 착각이었다.
 남궁연우는 이미 머릿속으로 수백 번 수천 번 남궁기와 끊임없이 비무를 해 왔다.
 지금과 같은 상황도 많이 펼쳐졌다.
 그때마다 남궁기의 검에 속절없이 패했지만, 지금은 전혀 질 것 같지 않았다.
 ‘천뢰심마검법과 신창궁무애검법은 서로를 보완하는 검술. 근접 검술은 오히려 내가 바라던 바야.’
 이런 전투에 특화된 천뢰심마검법의 초식을 이용해 진윤의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 냈다.
 남궁연우는 침착하게 그의 목을 향해 호선을 그리며 베었다. 진윤은 가까스로 검을 올려 막아 냈지만, 힘에서 크게 밀렸다.
 “크윽!”
 진윤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한 번 주도권을 내주니 남궁연우의 빠르고 강한 검술에 자신의 검을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했다.
 ‘무식한 힘이야. 흠, 너무 뒤로 물러나면 녀석의 검에 집어 먹힐 텐데.’
 조금 전에 느낀 남궁연우의 단순한 찌르기는 마치 창이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대로 들이박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우선 남궁연우의 검술을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했다.
 사파가 추구하는 패도적인 느낌도 섞여 있었으니까.
 진윤의 검이 다시 움직이자 남궁연우의 검도 움직였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검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챙! 챙! 챙!
 엄청난 속도로 공방을 주고받자 마교인들을 비롯한 정파 제자들은 손에 땀을 쥐며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았다.
 무림인이 내공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순수 검술로 비무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볼 생각은 접어야 했다.
 일정 수준의 거리에 다가서면 그들의 검에 담겨 있는 힘이 바닥을 짓눌렀다.
 콰아아앙!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에도 검풍(劍風)이 몰아쳤다.
 진윤은 막상막하의 검술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현허유운검법의 초식만으로 남궁연우를 제압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현허유운검법의 오의를 구사하면 모를까.
 마인들이 보는 앞에서 오의를 보여 주기는 싫었다.
 ‘기현 저 인간이 비무를 참관해 준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진윤은 슬쩍 기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비밀에 싸인 현허유운검법의 모든 것을 파헤치겠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로 진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당파에서도 태극혜검과 태극무상검법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현허유운검법이었지만, 세상에 드러난 무공은 아니었다.
 창시자인 현진진인이 강호의 일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마교에서는 현허유운검법의 위력을 궁금했을 터.
 진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렇다고 이 비무를 시시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남궁연우의 검술은 특별했다.
 스승이 말해 준 남궁세가의 검법 그 이상이었다.
 거대한 힘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가고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진윤은 남궁연우에게 말했다.
 “보기보다 제법인데?”
 “진 도사도 마찬가지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아직도 손목이 지끈거렸다.
 좀 전의 마지막 초식, 천뢰심마검법의 제이식을 진윤이 막아 낼 줄은 몰랐던 그였다.
 제삼식 이후로는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했던 터라 지금 그가 구현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초식이었다.
 점점 그와의 벽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검술만으로 초절정 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내공을 운용하면 이길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숨기고 있는 것만큼 진윤도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현허유운검법의 오의나 최후의 초식일 터였다.
 남궁연우는 고민했다.
 그도 싱겁게 비무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봐 남궁 놈, 너도 켕기는 게 있지?
 진윤이 전음(傳音)이었다.
 갑작스러운 전음에도 남궁연우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에게 돌려주었다.
 -마교인들 앞에서 사용하기 싫은 것뿐입니다.
 -모처럼 마음이 통했네. 그럼 이번 공격에 모든 힘을 쏟아붓자. 일검에 승부를 보는 거지.
 -좋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두 사람은 제 자리에 서서 검을 바로 세웠다.
 치열했던 공방전과 달리 서로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자 기현은 달라진 분위기를 바로 눈치챘다.
 ‘이런! 끝이군.’
 무척 아쉬웠지만, 그들이 다친 채 본교에 입성하는 건 사양이었다. 참가자들이 다치면 호위 책임자인 자신이 져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언제든지 나설 준비를 마쳤다.
 기현의 말대로 두 사람은 검에 집중했다.
 남궁연우는 천뢰심마검법 제삼식을 펼치기로 했다.
 강(剛)으로 이뤄진 초식으로 정파 무공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지만, 지금 진윤의 검을 꺾기에는 충분했다.
 문제는 깨달음이 부족해 제삼식이 가진 힘을 제대로 끌어 낼 수 있을지 하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천뢰심마검법 제삼식 천뢰일공(天雷一空)로 승부한다.’
 진윤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연우의 기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현허유운검법 마지막 초식으로 맞서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오의는 절대 안 돼. 하지만 녀석의 파괴적인 검술을 제압하려면 극강의 부드러움이 필요해. 그렇다면 현허유운검법 제팔 식 일천운룡(一天雲龍)이다.’
 내공을 싣지 않았는데도 두 사람의 기도가 지부 내부를 뒤흔들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지부를 감싸자 기현을 비롯한 마교인들과 정파 제자들은 두 사람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마지막 일검을 기다렸다.
 먼저 움직인 자는 남궁연우였다.
 천뢰일허는 말 그대로 하늘의 벼락이 공(空)을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천뢰심마검법에서 가장 포악한 힘을 지닌 초식이었다.
 그는 가문 비전 보법인 천풍무한보(天風無限步)를 밟아나가며 진윤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냈다.
 진윤은 남궁연우의 패도적인 검에 익숙해졌다.
 부드러운 묘리의 극치, 무당파의 무학을 그에게 선사해 주고 싶었다.
 유지승강(柔之勝剛)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그는 하늘을 노니는 한 마리의 용과 같은 기도로 남궁연우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검압(劍壓)과 검풍이 지부를 뒤덮자 지켜보던 자들은 재빨리 호신강기로 몸을 감쌌다.
 그들은 내공을 싣지 않고도 이런 파괴력을 낸 두 사람의 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내공을 실었다면?
 이 자리에 있던 자들 대부분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스으윽.
 검압과 검풍이 사라지자 뿌연 먼지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
 기현은 재빠르게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이 정도 파괴력이라면 두 사람 모두 성치 못할 테니까.
 끼이잉!
 기현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크게 다쳤다고 생각했건만 두 사람의 모습은 멀쩡했다.
 이상하게도 옷고름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두 개의 검이 상대를 베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남궁연우와 진윤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서로 검을 거두었다.
 거두자마자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진윤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붉은 피를 토해 냈다.
 “쿨럭! 쿨럭! 야 남궁 놈, 그 검법 이름이 뭐냐? 쿨럭!”
 남궁연우도 마찬가지로 피를 토해 냈다.
 “쿨럭! 비밀입니다. 역시 무당의 검은······. 쿨럭!”
 “늙은이같이 존댓말은 하지 말고 쿨럭! 열여덟 살이면 열여덟 살답게 굴어. 쿨럭!”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기현은 두 사람의 대화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의원을 불렀다. 아무래도 심각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 * *
 
 달그락달그락.
 남궁연우는 거친 마차 바퀴 소리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마차 천장이 먼저 보였고 옆으로 시선을 두니 진윤이 코를 골며 누워 있었다.
 ‘승부를 내지 못했어.’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다시 검을 겨루는 날은 또 찾아올 것이기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쓴 약초 냄새가 마차 곳곳에 진동하는 걸 보니 사천 지부에서 마교로 이동 중인 듯했다.
 그런데 뒤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기현인가.’
 남궁연우는 자신을 치료해 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여인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을 받은 그녀의 미모는 폐월수화(閉月羞花), 침어낙안(沈魚落雁)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미모에 홀린 듯이 아름다움을 찬탄하던 남궁연우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강호에서는 노인, 어린이 그리고 여인을 조심하라 했다.
 그렇다면 모르는 여인은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대는 누구요! 왜 여기에 있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붓을 들어 빠르게 종이에 적어 나갔다.
 그러고는 남궁연우에게 보여 주었다.
 
 -당가의 당소예(唐玿汭)-
 
 #사천당가의 여인
 
 정마대전의 마지막 전투, 사천 전투는 사천 지역에 자리 잡은 무림맹 문파들의 기반을 초토화시켰다.
 그중 사천당가의 집성촌은 전투 지역과 매우 가까워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정마대전에서 당가의 방계 혈족은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직계 혈족도 얼마 남지 않았다.
 봉문 이후, 지금은 어느 정도 복구하여 기반은 갖췄지만 예전의 성세를 보여 주진 못 했다.
 ‘당가라면 우리 가문 사람들과 친분이 두터웠지. 그런데 당가에 이런 여인이 있다는 사실은 듣지 못했는데.’
 떠오른 사람은 총 세 사람뿐이었다.
 나머지 직계 혈족은 정마대전에서 죽었다.
 슥슥슥.
 
 -부담스럽게 바라보지 마. 짜증 나니까.-
 
 그녀가 내민 종이에 약간 당혹스러웠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거두었다.
 글과는 다르게 당소예의 자세는 기품이 넘쳐 흘렀다.
 뭔가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었지만, 그는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자제답게 정중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남궁세가의 남궁연우라 합니다.”
 슥슥슥.
 
 -만나서 반가워. 남궁연우.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남궁연우는 당소예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로 하면 편할 것을 왜 굳이 종이에 적어 번거로움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의 눈빛을 읽어 낸 당소예는 종이에 글자를 적었다.
 
 -내 목소리를 듣지 않는 편이 몸에 이로워.-
 
 “목소리에 이상이 있는 겁니까?”
 남궁연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당소예는 아리송한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보여 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목소리에 음공이 담겨 있었거든.-
 
 “선천적이라니, 이 무슨? 아! 당 소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더는 내 목소리에 관심 가지지 마. 불쾌해.-
 
 당소예가 건넨 종이를 본 남궁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적은 글자가 왠지 모르게 차갑게만 느껴졌다.
 안타까우나 자신이 도울 만한 무공의 분야는 아니었다.
 “코오오오옹! 카아아아아아악! 코오오오옹! 음냐. 음냐.”
 진윤이 시끄럽게 코를 골며 손으로 배를 긁적이자 남궁연우는 조심히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자 코골이가 잠시 잠잠해졌다.
 남궁연우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 소저, 사천에서 언제 출발한 겁니까?”
 
 -대략 사흘 전에. 너희들을 치료할 사람이 필요해서 마령검 대신에 내가 여기에 탔어.-
 
 “아! 당 소저, 정말 고맙습니다.”
 그가 고마운 눈빛을 표하자 당소예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종이에 적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용은 행동과 전혀 반대였다.
 
 -딱히, 너희가 좋아서 치료한 건 아니야. 실험 재료가 필요해서 마차에 탔을 뿐이지.-
 
 “실험 재료라니······. 설마 당가의 독을 썼단 겁니까?”
 
 -몰랐어? 독과 약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걸. 잘 쓰면 약이 되고 못 쓰면 독이 되는 거지. 상태를 보아하니 약이 되었네. 임상 시험은 통과.-
 
 그녀는 뿌듯한 표정으로 책을 꺼내 실험 결과를 적었다.
 남궁연우는 그녀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팔 좀 줘 봐.-
 
 그래도 남궁연우는 그녀가 악의적으로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인간관계를 어려워한다는 점을 눈치챘다.
 그는 조심히 팔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당소예는 팔을 잡고 가느다란 손으로 진맥을 짚었다.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내기를 운용하는 데 차질이 없을 거야. 하지만 강한 기운과 부딪치는 일은 자제해. 아직 완벽하게 나은 건 아니니까.-
 
 “고맙습니다.”
 
 -천만에.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코오오오옹! 카아아아아아악! 코오오오옹! 음냐. 음냐.”
 또다시 이불을 차 내며 크게 코를 고는 진윤을 본 남궁연우는 피식 웃으며 이불을 덮어 주었다.
 목숨을 걸 정도로 혈투를 벌였던 그였지만, 왠지 밉지가 않았다.
 가슴 속에 맺힌 단단한 응어리가 풀린 것처럼 후련했다.
 우울함만 가득했던 가문에서 그는 죽은 남궁기를 대신해 큰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기대감과 책임감.
 마교를 향한 복수심까지.
 지난 사 년간 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 왔지만, 무공의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진윤과의 비무는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천뢰심마검법의 잠재된 힘을 느낄 수 있었지. 마교에 도착하기 전에 그와 검을 나눠 참으로 다행이야.’
 머릿속으로 검술을 구현하는 것과 실전에서 구현하는 검술은 천지 차이였다.
 물론 이번 비무로 자신과 진윤을 견제하려는 자들이 늘어났을 거다.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검압과 검풍(劍風)만으로 지부 내부를 박살을 내다시피 했으니까.
 남궁연우가 진윤을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옆에 있던 당소예가 쓱 종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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