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성 진경 시 어느 구석에 있는 마을, 연가구(?家溝).
씨족 마을이 의례 그렇듯 연가구는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좋거나 그렇지 못한 터는 나뉘는 법이었다.
궁벽한 연가구에서도 가장 햇볕이 들지 않는 후미진 곳.
누구나 한눈에 가장 쪼들리는 집임을 짐작할 연갑(?甲)의 집.
‘으···!’
허름한 방에서 연갑의 독자 연일(?一)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가득한 상념과 번뇌는 그를 계속해서 뒤흔들었다.
벌써, 마추(麻秋)의 딸 마연지(麻硏地)와의 혼례가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가능하다면···!’
연일은 뒤에 이었어야 할 ‘예뻤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마음속으로도 차마 잇지 못하고 삼켰다. 그도 궁핍한 집에 시집와야 할 부인에게 발휘할 일말의 양심은 있었다.
-마가의 딸은 연가의 아들과, 연가의 딸은 마가의 아들과 혼례를 치른다.
연대도 알 수 없는 고루한 마을의 전통은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때문에, 연일은 아버지 연갑, 할아버지 연두기가 그랬듯이, 신부의 얼굴도 모르는 채 치를 혼례를 기다리게 되었다.
두 마을에 이러한 전통을 만든 옛 도사가 남긴 말은 해석하기 나름이었을 것이다.
“대장부는 혼례 전에 부인 될 여인의 용모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모호한 한마디에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연기, 마구는 감동했다.
격정적인 감정은 후대가 태어나면 사돈을 맺기로 한 약속에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우습게도, 두 마을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만든 혼례 풍습은 ‘용모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사실상 교류를 단절했다.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전통은 이전에 그래왔다는 이유만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게 되어 현재까지 지속하였다.
‘으아아···!’
그 한가운데에서 연일은 방안에 회오리가 칠만큼 크게 몸부림쳤다. 긴장되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에잇!”
연일은 잠들기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가난한 집에 방이 여러 칸일 리 없으니 자연스레 마당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는 털썩 소리가 날 정도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하나뿐인 볼품없는 나무 의자는 끼익하며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하아···.”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밝다!’
매일같이 보느라 어느새 보지 않게 된 밤하늘의 별들이 오늘은 달라 보였다.
새삼스레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별빛은 금방 의식 밖으로 사라지고 머릿속은 내일 보게 될 신부 외모에 대한 기대로 채워졌다.
“···.”
별이 쏟아지는 작은 마을 연가구에서 열다섯 가난뱅이 소년 연일은 삭아 빠진 의자에 앉아 즐거운 마음으로 조용히 잠이 들었다.
예고 따위 없이 머리 안에서 빡 하는 박 깨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악···!’
잠들어 있어도 더 깊은 잠으로 빠져들 것 같은 아찔한 고통이었다.
극심한 통증에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잠드는 찰나의 순간, 연일은 자신의 앞에 선 세 명의 괴한을 보았다.
‘누···? 누구?’
그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죽음의 공포에 영혼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으악···!’
연일은 철썩하고 귓불에서 울린 세찬 소리를 듣는 동시에 다시금 기절할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의식을 잃었던 조금 전과 달리, 이번의 통증은 완벽하게 그를 잠에서 깨웠다.
“야.”
어쩐지 가벼운 느낌의 저음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
연일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없었다. 그저 바보처럼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볼 뿐이었다.
멍한 정신으로 바라본 곳에는 몹시 평범한 용모의 세 남자가 있었다.
그중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가장 나이가 많이 보이는 한 사람이 그에게 재차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누구인 줄 알겠느냐?”
“···.”
연일은 대답하지 못했다. 알 리가 없었다.
그 이전에···, 현 상황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연일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난 분명···. 집에서···. 여기는 대체···?’
그때, 연일은 눈앞에서 번쩍이는 별을 보았다. 몸은 통증을 따라잡지 못해서 마비되어 버렸다.
‘어···?’
그는 쏜살같이 오른쪽으로 돌아간 고개를 바로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재차 귀싸대기를 갈긴 남자는 애초부터 그리할 생각이었음이 분명 했다. 본인의 입이 미처 닫히기도 전에 손이 올라온 것이 증거였다.
그의 손은 용모와 마찬가지로 평범해 보였으나 소년의 뺨에 가볍게 가져다 대는 동작엔 천근의 힘이 실려 있었다.
연일은 입안이 완전히 터져 나가는 과정을 생생히 느꼈다. 온몸을 전율시키는 폭력에 얼빠진 표정으로 가해자를 쳐다보았다.
“이놈아! 나는 참을성이 없다. 그것이 내 이름이 황구(黃狗)인 이유다!”
사천삼흉의 첫째 대흉(大凶) 황구(黃狗)는 거짓말을 했다.
그의 이름이 황구인 것과 참을성이 없는 건 전혀 관련이 없었다.
황구는 단지 일을 순탄하게 진행하는 방법으로서 겁주는 게 최고라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일이 없었다. 살인조차도 악행이기보다는 힘든 일, 이유 없이 다소 찝찝한 일로 여겼다.
황구는 수고의 대가로 소년이 몸서리칠 만큼 겁에 질리기를 바랐다.
황구의 바람 때문인지, 연일의 다리는 육안으로도 보일 만큼 격렬하게 떨렸다.
그는 평생 무서웠던 일을 모두 더 해도 지금 느끼는 두려움의 십 분의 일도 안 될 것으로 생각했다.
공포가 끌어올린 집중력은 그의 안력을 황구의 입술 주름마저 셀 수준으로 만들었다.
황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황구는 전문가적 견지에서 연일의 상태를 알아보았다. 거사의 시작이 순탄했기에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하하! 이놈이 말귀를 잘 알아먹는 머리가 좋은 놈이구나.”
“에···, 예!”
연일의 입과 입술은 가뭄 난 논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목이 찢어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대답을 밀어냈다.
“그래···! 집중력이 훌륭하다.”
황구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조금 전 뺨을 날린 데 사용한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발맞추어 황구의 옆에 말없이 서 있던 광구(狂狗)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왜도를 뽑아 황구에게 건네었다.
황구는 자연스럽게 칼날을 연일의 목에 갖다 댔다. 다년간의 연습 덕인지 조금의 위화감 없는 일련의 진행이었다.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해야 목이 안 잘린다는 것도 알겠지?”
황구는 다시 거짓말을 했다.
그는 살인은 수도 없이 했지만, 사람의 목을 자른 적은 없었다.
그러나 황구가 한 말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연일의 이빨은 계속해서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다리는 살짝 구부러진 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진동했다.
황구는 소년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한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은 총명한 것이 살 수 있겠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여···, 닐입니다.”
“여···, 어···? 닐입니까?”
“여어어···, 언···, 이이이···, 일입니다.”
황구는 머리에 손을 대고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 벙글거리며 말했다.
“그놈 참, 이름도 더럽게 어렵구나. 나는 그냥 너를 연일이라 부르겠다.”
연일은 끊어질 듯 어색하게 고개를 들어 황구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내색할 순 없으나 상대가 이름을 물어봤다는 이유 하나로 긴장이 미세하게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황구의 의도대로였다.
황구는 다년간의 실험을 통해 계속해서 긴장감만을 주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점을 알았다.
극도의 공포에 허덕일 때, 누군가가 보여주는 약간의 다정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심지어 방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자에게 애정까지 생긴다는 것을 어릴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잘 알았다.
황구는 다정하게 말했다.
“연일아, 네가 할 일은 어렵지 않단다. 딱 한 가지 일만 해주고 넌 집에 가면 되는 거야. 해줄 수 있겠지?”
황구는 돌처럼 거친 손으로 연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촌각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듯했다.
“예, 어르신!”
긴장이 미세하게 풀어지는 데서 오는 약간의 안도감, 눈앞의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를 상기함으로써 다시 솟구치는 극한의 공포, 그러면서도 절대적 강자에게 기대고 싶다는 심리가 뒤섞이면서 연일은 한 가지를 결심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상대가 무엇을 시키든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맞이한 연일은 자신의 결정이 자발적이라는 착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하하, 당연히 믿지.”
다부져 보이기까지 하는 촌놈의 눈을 보며 황구는 감동했다.
물론 상대방이 아닌, 이러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병풍처럼 멀뚱히 서 있던 온화한 인상의 둘째 지흉(地凶) 광구, 팔다리가 긴 장신에 말상의 얼굴을 가진 막내 천흉(天凶) 귀구(鬼狗) 또한 흡족함이 묻어나는 미소를 옅게 지었다.
미소에는 훌륭한 형을 두었다는 자부심과 가족애가 담겨 있었다.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할까!”
“이게 무슨 짓이오. 시주!”
“완전히, 미친놈이구나···!”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은근한 욕이 섞인 고성과 어쩐지 크게 괴롭지 않아 보이는 비명을 들으며 연일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꽉 다문 입은 꼼짝하지 않고 초점 없는 멍한 눈은 허공을 향했다.
연일은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상태였다.
자기가 남 같은 기분은 비참했지만, 왠지 모르게 편했다.
적어도, 수시로 목숨을 위협받던 지난 며칠간보다는 훨씬 나았다.
돌이켜 볼수록···. 삼 일 전부터 지금 상황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비참했다.
‘연일아.’
이름만큼은 언제나 다정하게 부르던, 자신을 사천삼흉의 대형, 대흉 황구라고 소개한 남자는 완전히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황구는 혼이 쏙 빠질 만큼 겁을 주다가도 갑자기 태도를 바꿔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을 계속 반복했다.
협박을 당하는 사람 스스로 긴장이 풀어지는 것은 경계하게 만드는, 마음이 풀어지는 시점에 반드시 위협이 따라온다는 것을 세뇌하는 황구만의 비결이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그들 삼 형제가 연일의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황구의 기대대로 연일은 ‘나체로 비구니만 있는 절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있는’ 정신 나간 임무를 흔들림 없이 수행하고 있었다.
머리 한편으로 문득 삼 형제는 완전히 떠나고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연일은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
스스로 인생을 결정한 경험이 거의 없는 만큼 그는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놈···! 당장 그만두어라!”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비구니들에게 둘러싸여서 나체로 앉아 욕먹고 있는 것.
자신을 두려움에 빠트린 삼 형제는 떠났지만, 심지어 그도 그것을 거의 확신하면서도 황구가 시킨 미친 짓을 멈추지 못하는 것.
연일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는 상황을 해결해줄 힘 있는 사람이 나타나 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가 누구이건 상관없었다. 단지, 그가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한마디 명령을 내려 주길 기다렸다.
그리고 강한 힘으로 자신을 구해주길, 높은 지혜로 그의 행동을 이해해주길,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해주길 원했다.
연일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흐···! 흐흐흑···!”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는 자신이 울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언제부터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연일은 무거운 정적 사이로 자신이 흐느껴 우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흐흐···. 크흐흑···!”
그는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목 놓아 울었다.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비애가 눈물에 모두 담겨 쏟아져 나왔다.
“아아아아···! 으아아···!!”
연일을 둘러싼 비구니들은 눈앞의 벌거벗은 소년을 보며, 미친놈이 분명 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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