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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소환술사 1권 (1)

2019.05.27 조회 7,133 추천 49


 회귀한 소환술사 1권 목차
 회귀
 소환술사
 초보자
 거울의 숲
 버려진 늪지대
 광물
 새로운 소환수
 
 
 
 회귀
 
 모두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회귀했을 때.
 이상현만은 다른 목적으로 회귀했다.
 
 그 목적이란.
 후회였다.
 
 
 
 소환술사
 
 [이면세계에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칭호 ‘첫 번째 이방인’을 획득했습니다.]
 [대한민국-아라바스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칭호 ‘아라바스의 첫 번째 이방인’을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돌아왔군.’
 
 이상현은 현재로서는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칭호들을 무시하고 곧장 소환술사의 탑으로 향했다.
 거리는 한적했다.
 이유는 모든 이방인들이 튜토리얼을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물론 튜토리얼을 생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면세계 오픈 첫날부터 그러기란 힘들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플레이해본 적이 없는 진짜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조용해서 좋네.”
 
 이상현은 소소한 기쁨을 느끼며 아라바스에 있는 소환술사의 탑으로 향했다.
 
 소곤소곤.
 
 “저 사람 누구야?”
 “이방인인가?”
 “맞아. 이방인 같아.”
 “조금 이상하게 생긴 것 같은데.”
 “못생겼어!”
 “아니야. 자유분방한 거야.”
 “차라리 욕을 해.”
 “······.”
 
 이면세계의 주민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았지만 이상현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이야 낯선 이방인이라면 누구든 관심의 대상이니까. 그러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여기군.”
 
 이상현은 소환술사의 탑에 도착했다. 입구를 지나 곧장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로 소환술사의 탑을 방문했습니다.]
 [칭호 ‘첫 번째로 소환술사의 탑에 방문한 이방인’을 획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장은 상징적인 의미만 있다.
 
 ‘저기 있군.’
 
 이상현은 소환술사의 탑에서 반드시 만나야 되는 이면세계의 주민을 찾아냈다.
 
 “자네는 누군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소환술사로 전직하고 싶은 이방인 이상현이라고 합니다.”
 
 이상현은 자신의 이름과 소환술사의 탑에 방문한 목적을 정확히 말했다.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이면세계의 주민은 기꺼이 반겨주었다. 그의 표정에는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오! 소환술사로 전직하려는 이방인이로군! 탁월한 선택이네. 세상에서 소환술사 만큼이나 뛰어난 직업도 없으니까 말이야. 날 따라오게나.”
 “예. 알겠습니다.”
 “아참!”
 
 탑으로 올라가기에 앞서 그가 손을 내밀었다. 이상현은 그 손을 기꺼이 붙잡았다.
 
 “내 이름은 오코넬 랄프일세. 편하게 랄프라고 부르게. 자네가 소환술사로 전직하게 된다면 먼 선배쯤 되겠군.”
 “예, 랄프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후후후. 따라오게.”
 
 랄프는 이상현을 데리고 탑을 올라갔다. 꼭대기로 이어진 계단은 나선형이었다. 빙글빙글 어지럽지만 고풍스러운 구석이 엿보였다.
 대화의 시작은 랄프였다. 이방인에 대한 랄프의 관심이 대단히 뜨거웠기 때문이다.
 
 “오호! 그렇다면 자네가 최초의 이방인인 셈이로군! 이거 참! 최초의 이방인이 소환술사에 관심을 가지다니! 허허허! 아주 마음에 들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랄프는 이상현을 통해서 이방인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이상현은 자신이 말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다 대답해주었다.
 
 “그쪽 세상은 어떤가? 살만한가?”
 “사람 사는 곳이야 다 똑같죠. 다를 게 있겠습니까? 돈 많고 속 편한 게 최고죠.”
 “하하하!”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대화가 끝났다. 랄프는 이상현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갑자기 손을 뻗쳐온 눈부신 빛에 이상현은 얼굴을 찌푸렸다. 불빛을 등진 랄프가 말했다.
 
 “자, 이곳이 바로 소환술사의 방일세. 내가 신의 부르심을 받은 곳이기도 하지.”
 “······.”
 
 탑 꼭대기에 마련된 ‘소환술사의 방’은 소환술사라면 반드시 거처야 되는 곳이다.
 푸른 마법진과 세 개의 거대한 수정, 그리고 운명이 이끈 소환수들.
 소환술사는 이곳에서 선택해야 한다.
 두근두근.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운명의 소환수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F~C등급의 소환수를 직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환수를 직접 선택하려고 포기하는 건 아니다. 아바타를 삭제한 다음, 다시 선택하려고 포기한다.
 왜냐하면 수정에 나타나는 운명의 소환수들의 등급이 랜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랜덤이다. 확률이 대단히 낮지만 사기적인 소환수를 뽑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방인(유저)들의 입장에서는 게임 밸런스가 우려스럽겠지만, 현실에서도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뉘는 마당에 게임이라고 다르겠는가?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최상급 소환수를 가지려고 이른바 ‘뽑기’를 했다.
 C등급보다 높은 B등급이나 A등급, 혹은 전설의 S등급을 뽑으려고 몇 날 며칠을 돌렸다.
 물론 확률이 극악이라서 B등급으로 타협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몇 달을 돌리고 돌려서 기어이 A등급을 받아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S등급을 받아낸 놀라운 사람들도 있었다.
 
 “······.”
 
 멍하니 서 있는 이상현에게 랄프가 말했다.
 
 “자! 수정 앞에 서게. 그러면 자네와 함께하게 될 운명의 소환수들이 나타날 걸세.”
 “예, 알겠습니다.”
 
 이상현은 랄프의 말에 따라 수정 앞에 섰다. 표정은 차분하면서도 슬퍼 보였다.
 왜냐하면 이미 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를 알고 있다.
 결과를···.
 
 “꼭 명심하게. 운명의 소환수는 딱 한 번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예, 알겠습니다.”
 
 이상현은 세 개의 수정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수면처럼 잠잠했다.
 
 “시작하겠네.”
 
 랄프가 마법진을 발동시키자, 세 개의 수정에 푸른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천천히 그 기세를 불려가더니, 이윽고 수정 전체로 퍼져나가 환한 빛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
 
 이상현은 그 모습을 아련히 바라보았다.
 세 개의 형상이 나타났다.
 
 두근두근!
 
 ‘나는···.’
 
 결과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마음이 필요했을 뿐이다.
 선택을 부정하는 마음이.
 
 ‘선택했어.’
 
 [이면세계에서 당신과 함께하게 될 운명의 소환수들과 마주했습니다. 강력한 운명의 이끌림을 느꼈습니다! 선택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두 개의 눈과 하나의 마음으로 운명을 선택하십시오!]
 [칭호 ‘운명의 소환수’를 획득했습니다.]
 [소환수들의 정보가 나열됩니다.]
 
 [소환수]
 -이름: 카타리나
 -레벨: 1
 -분류: 공주기사
 -등급: S(특수한)
 -근력: 267 / 체력: 266 / 순발력: 399
 -지력: 399 / 마력: 344 / 용기: 400
 -생명/마나: 26,600(26,600) / 39,900(39,900)
 -충성심: 12% / 신뢰: 12%
 -특성: 굳건한 의지, 흔들리지 않는 마음, 용기
 -스킬: 한계돌파(A)
 -필요 특성 스탯: 700
 
 [소환수]
 -이름: 아르란
 -레벨: 1
 -분류: 지룡
 -등급: A(특수한)
 -근력: 378 / 체력: 375 / 순발력: 306
 -지력: 150 / 마력: 150
 -생명/마나: 75,000(75,000) / 15,000(15,000)
 -충성심: 1% / 신뢰: 1%
 -특성: 땅, 숨결, 용, 굳건함, 강인함
 -스킬: 대지의 숨결(C)
 -필요 특성 스탯: 350
 
 [소환수]
 -이름: 월슨
 -레벨: 1
 -분류: 액체
 -등급: D(특수한)
 -근력: 131 / 체력: 205 / 순발력: 113
 -지력: 157 / 마력: 157
 -생명/마나: 20,500(20,500) / 15,700(15,700)
 -충성심: 99% / 신뢰: 99%
 -특성: 무생물, 산도, 점성, 수분 조절, 액체, 탄력성
 -스킬: -
 -필요 특성 스탯: 40
 
 소환수들을 본 랄프가 큰 소리로 떠들었다.
 
 “오오오! 이럴 수가! S등급이라니?!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게다가 A등급까지? 하하하! 자네는 정말 행운아군, 행운아야!”
 
 랄프의 호들갑은 당연했다. 왜냐하면 S등급의 소환수가 나타났으니까.
 무려 전설의 S등급이다! 그 누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A등급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용족까지도 있다. 말 그대로 대박이다, 초대박.
 
 “······.”
 
 [첫 번째로 A등급 소환수와 마주했습니다.]
 [칭호 ‘오, 당신은 행운아!’를 획득했습니다.]
 [첫 번째로 S등급 소환수와 마주했습니다.]
 [칭호 ‘전설의 S등급!’을 획득했습니다.]
 
 랄프는 진심으로 웃었다.
 
 “하하하!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최초로 탑을 방문한 이방인의 소환수가 전설의 S등급이라니! 게다가 A등급 용족까지? 정말 대단해!”
 
 A등급과 전설의 S등급 소환수를 앞두고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상 로또 1등 당첨이다. A등급과 S등급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이상현이 조용했다. 딱딱하다고 표현해야 될까? 너무 차분해서 곁에 있던 랄프가 의아해할 지경이었다.
 엄청난 행운에 동네방네 뛰어다녀도 모자랄 판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니? 어째서?
 
 “······?”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런 랄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현은 소환수들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복잡한 마음이 담긴 시선이었다. 소환수들도 이상현을 보았다.
 
 “흥!”
 “나약한 인간이군.”
 “퐁···. 퐁···.”
 
 각자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첫 마디였다. S등급 소환수인 카타리나는 그야말로 도도한 공주였고, A등급인 아르란은 용답게 오만했다.
 반면 D등급에 불과한 월슨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격지심이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A등급과 S등급일세. 왜 그렇게 신통치 않은 표정인가? 혹시 SS등급을 노렸던 것인가?”
 
 랄프는 들떴던 표정과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상현에게 물어보았다.
 이상현의 태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뭐, 그냥 원래 이런 놈이라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상현은 대답을 얼버무리려다가 그냥 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소환수들을 쳐다보았다. 소환수들도 이상현을 바라보았다.
 
 “선택하시죠.”
 “건방진 시선이군.”
 “포옹···.”
 
 강렬한 두 개의 시선과 자신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시선 하나.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너무 당연하다.
 이상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희들을 선택하기 전에 너희들에게 반드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그 말에 카타리나는 팔짱을 낀 채로 찌릿! 노려보았다. 아르란은 겁을 주려는 듯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반대로 월슨은 살짝 앞으로 다가왔다.
 이상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겠나?”
 “······?!”
 
 그 말에 오히려 랄프가 기겁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화를 낸다거나 참견하지는 않았다. 다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끼어들 자격이 없는 랄프를 대신해 소환수들이 격렬하게 대변해주었다.
 
 “정말 무례하시군요.”
 
 카타리나가 말했다.
 
 “나약한 주제에 입만 살았군.”
 
 아르란이 말했다.
 
 “퐁. 포옹.”
 
 둘과는 반대로 월슨은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대답했다. 다만, 조금 소극적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D등급에 불과한 소환수니까.
 
 “포옹.”
 
 바로 옆에 A등급과 S등급이 있는데, D등급인 자신을 선택해 달라니···.
 지나가는 똥개가 웃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섰던 것은 자신도 선택받고 싶다는 얄팍한 마음 때문이었다.
 아무리 D등급이라도 선택받고 싶으니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어서 월슨은 용기를 냈던 것이다.
 
 “······.”
 
 이상현은 눈을 깜빡였다. 코는 차가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시금 결정을 내린 이상현은 랄프를 보았다. 그러자 시뻘건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토마토였다.
 이상현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그런가? 아무튼 신중한 결정을 하길 바라네. 한번 결정을 내리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되는 것일세.”
 
 조금 전의 무례한 언사에 대한 꾸지람이었다. 소환술사라면 마땅히 받아들여야 되는 지적이었기에 이상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안다면 다행이군. 자, 어떤 소환수를 선택하겠는가? S등급? 아니면 A등급?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인가?”
 
 랄프에게 D등급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등급과 전설의 S등급이 있는데, D등급 따위가 비빌 재간이나 있겠는가?
 그래서 랄프는 월슨을 무시했다.
 이상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랄프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도 그랬으니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D등급?
 뭐? 그런 게 있었어?
 월슨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아마, 보자마자 1초 만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마음을 선택했다. 등급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더 중요했다.
 
 “저는···.”
 
 회귀했으니까.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겠다.
 후회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
 
 “월슨과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그래, 내 그럴 줄 알았··· 어?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그랬나?”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랄프는 눈을 깜빡였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고, 귀는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 나머지 똑똑히 들었음에도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느냐며 멱살을 잡았다.
 
 “······?!”
 “뭐?”
 “포옹?”
 
 소환수들도 귀를 의심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목받은 월슨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현은 한 번 더 말했다.
 
 “저는 월슨과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그렇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제대로 들은 거였다. 이상현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게 무슨···.”
 “지금 장난하나?”
 “퐁? 포옹?”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랄프의 얼굴은 굉장히 무서웠다. 성난 파도 같아서 그대로 덮칠 것만 같았다.
 
 “지금 무슨 말인가?”
 
 이상현은 그 감정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저는 월슨과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D등급인 월슨과요.”
 
 이상현의 대답에 랄프가 진심으로 화를 냈다. 그의 눈은 미친놈을 보는 듯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이것을 지나친 간섭이라고 해야 될까? 아니면 훌륭한 참견이라고 해야 될까?
 이상현이 생각하기에는 훌륭한 참견이었다. 현재 이 상황만 놓고 본다면 랄프의 반응은 옳으니까.
 S등급도 하다못해 A등급도 아닌 D등급이라니.
 미친 짓이 분명하다. 로또 1등보다 4등이 더 좋다 하는 것만큼이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랄프님의 반응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화를 내겠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나?”
 
 랄프는 선배로서 충고했다. 어리석은 짓을 바로잡겠다는 행동이었다. 이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유가 뭔가?”
 
 랄프는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무슨 생각으로 그딴 결정을 내렸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상현은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을 생각해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계없는 타인임에도 무시하지 않고 진심으로 화를 내다니. 좋은 사람이다.
 이상현은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대답했다.
 
 “저는 지금까지 타인을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어처구니없지만 정말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
 
 랄프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표정은 차분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해서. 제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굳게 다물어진 랄프의 입이 눈동자에 비쳤다.
 이상현은 진심을 말했다.
 
 “월슨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숨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그런 관계가 불편합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더는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때문에 저에게는 부하가 필요하지 친구가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더 이상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요.”
 
 이상현은 세 개의 수정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때와 똑같은 소환수들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그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소환수들이.
 
 “당신은···.”
 “미친놈이었군.”
 “퐁퐁.”
 
 이상현은 고개를 돌려 랄프를 보았다.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했다.
 
 “단지 그뿐입니다.”
 
 더 이상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 지금껏 평생을 휘둘려 왔다. 그러니 더 이상은 휘둘리지 않겠다.
 아무리 상대가 A등급과 전설의 S등급이라지만 온갖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을 깎아내려야 할까? 그딴 짓은 과거만으로도 충분하다.
 더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
 
 이상현의 대답은 그것으로 끝났다. 랄프는 그 바보 같은 생각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랄프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다.
 랄프가 말했다.
 
 “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자네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겠어.”
 “실망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나에게 미안할 게 뭐가 있겠나. 늙은이의 쓴소리였던 것을.”
 
 랄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솔직히 말해줬는데, 여기서 타박하면 내가 뭐가 되겠나?”
 
 랄프의 표정 어딘가에는, 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솔직히 허튼짓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싶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응원하고 싶군. 왜냐하면 나는 자네처럼 용감하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은퇴했지만 아직도 얽매인다고 랄프는 말했다. 표정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현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랄프도 차분히 콧숨을 들이쉬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의 선택은 무엇인가? S등급의 카타리나? 아니면 A등급의 아르란? 아니면 둘 다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D등급의 월슨인가?”
 
 선택 앞에선 이상현이 대답했다.
 
 “제 선택은 월슨입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지만.
 대답은 달랐다.
 이상현은 카타리나도 아르란도 아닌 월슨을 선택했다. D등급인 월슨을.
 
 포옹! 포오옹! 퐁!
 
 월슨은 기쁨으로 힘껏 뛰어올랐다.
 비록 진실한 친구가 아니라 편리한 부하라지만, D등급인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만큼은 너무너무 행복한 기쁨이었던 것이다.
 
 “푸! 푸우! 푸우우!”
 
 찬란한 푸른빛이 월슨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운명의 계약이 맺어졌다.
 
 [최초의 소환수로 월슨(D)을 선택했습니다. 특성 스탯 40을 소모하셨습니다.]
 [소환술사로 전직했습니다.]
 [칭호 ‘첫 번째 소환술사’를 획득했습니다.]
 
 “······.”
 
 소환술사로 전직을 완료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다 끝난 것일까?
 모든 것이.
 허무할 정도로 싱겁게?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환술사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만한 일을 저지르셨습니다!]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특별한 칭호 ‘끊어진 붉은 실’을 획득했습니다.]
 
 “······?”
 
 특별한 칭호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에 이상현은 눈을 깜빡였다. 물론 그것도 잠시. 특별한 칭호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특별한 칭호: 끊어진 붉은 실]
 -설명: 이럴 수가! 당신은 미친 걸까요? 아니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그 나오기 힘들다는 A등급과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S등급의 소환수를 놔두고 D등급을 선택하다니?!
 당신은 미친 게 분명합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기행을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위대한 신께서 축복을 내립니다. 기행에 대한 대가입니다.
 -능력: 모든 D등급 소환수의 일반 능력치가 20% 증가한다. 충성심과 신뢰에 10%가 더해진다. 20%의 경험치를 더 획득한다.
 
 “하하···.”
 
 특별한 칭호의 정보를 확인한 이상현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기쁜 것인지 아니면 슬픈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웃음이었다.
 
 “왜 그러는가? 혹시 후회하는 것인가?”
 
 랄프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다. 전직하자마자 헛웃음을 흘리고 있으니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께서 저에게 축복을 내렸다는 목소리가 들려서 그만.”
 
 이상현은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는 칭호였다.
 충성심이나 신뢰처럼 %로 표기되는 것도 아닌데 일반 능력치를 무려 20%나 증가시켜주다니? S등급 스킬에 버금가는 능력이 아닌가!
 아무리 D등급이라지만 사기라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경험치를 20% 더 획득한다고 한다.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신께서? 오, 이런! 뜻밖의 행운이로군! 자네의 기행을 신께서 마음에 들어 하신 모양이야! 다행이군, 다행이야! 정말 좋은 일이야!”
 
 랄프가 호쾌하게 웃었다.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던 이상현은 피부를 통해서 뜨거운 열기를 밖으로 분출했다.
 잠시 뒤, 랄프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했다.
 
 “소환술사의 탑에 방문한 이방인이여, 운명의 소환수를 선택한 소환술사여!”
 
 이상현의 눈동자에는 파릇파릇한 빛이 가득했다. 더는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그대의 앞길에 소환술사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두근두근!
 
 이상현은 다시 태어났다.
 그녀···. 카타리나와 아르란은 사라졌다.
 아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안녕···.’
 
 헤어짐은.
 달콤하지 않았다.
 무척 씁쓸했다.
 
  * * *
 
 이상현은 칭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D등급 소환수 두 마리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남은 특성 스탯으로 스킬을 하나 배웠다.
 
 [이방인]
 -이름: 이상현
 -레벨: 1(0%)
 -지역: 아라바스(대한민국)
 -소속: -
 -성향: 혼돈(중립)
 -직업: 소환술사
 -칭호: 끊어진 붉은 실(1) / 전설의 S등급!(2)
 -근력: 100 / 체력: 100 / 순발력: 100
 -지력: 100 / 마력: 100
 -행운: 30
 -생명/마나: 10,000(10,000) / 10,000(10,000)
 -스킬: 분투(D)
 일반 스탯: 0 / 특성 스탯: 0
 
 [소환수]
 -이름: 월슨
 -레벨: 1(0%)
 -분류: 액체
 -등급: D(특수한)
 -근력: 157 / 체력: 246 / 순발력: 136
 -지력: 188 / 마력: 188
 -생명/마나: 24,600(24,600) / 18,800(18,800)
 -충성심: 100% / 신뢰: 100%
 -특성: 무생물, 산도, 점성, 수분 조절, 액체, 탄력성
 -스킬: -
 
 [소환수]
 -이름: 집거미
 -레벨: 1(0%)
 -분류: 거미
 -등급: D
 -근력: 130 / 체력: 194 / 순발력: 287
 -지력: 124 / 마력: 130
 -생명/마나: 19,400(19,400) / 12,400(12,400)
 -충성심: 100% / 신뢰: 100%
 -특성: 거미줄, 집짓기, 실 내뿜기
 -스킬: -
 
 [소환수]
 -이름: 골렘 / 레벨: 1(0%)
 -분류: 광물 / 등급: D
 -근력: 252 / 체력: 300 / 순발력: 72
 -지력: 120 / 마력: 120
 -생명/마나: 60,000(60,000) / 12,000(12,000)
 -충성심: 100% / 신뢰: 100%
 -특성: 무생물, 광물
 -스킬: -
 
 [분투]
 -등급: D
 -설명: 소환수들을 위한 전용스킬입니다.
 -능력: 5,000의 마나를 사용하여 30분 동안 모든 소환수들의 근력과 체력, 순발력을 +70 상승시킨다. / 재사용 시간: 50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데? D등급이라도 실질적인 전투능력은 C등급이니까.”
 
 칭호가 적용된 소환수들의 능력치를 확인한 이상현은 초보자를 위한 소환술사 장비를 착용했다.
 
 “자, 그러면···.”
 
 이상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방인(유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현은 어디로 가야 될지를 고민했다. 예전이었다면 시간이 아깝다며 얼른 사냥터로 뛰어갔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사냥 욕구가 솟구쳤다.
 마침 적당한 구실도 있었다.
 
 “그래. 일단은 도서관 비용부터 마련하자. 스킬을 구입한다고 돈을 다 써버렸으니까. 게다가 소환수들의 먹이도 필요하고 말이야.”
 
 이상현은 적당한 이유를 들먹이며 초보자 사냥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참에 아라바스의 칭호를 만들까?”
 
 상징적인 의미만 존재하는 칭호들을 모아서 만드는 특별한 칭호가 있다.
 물론 이쪽으로 회귀한 이상현만이 아는 정보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알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린다. 도시 전체를 돌아야 하니까.
 이상현에게는 일주일이면 충분하다. 일주일이면 특별한 칭호를 만들 수 있다.
 
 “아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회귀했는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될까?
 
 “생각해보니까 귀찮네.”
 
 이상현은 고개를 저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러고는 주변을 구경했다.
 
 “옛날 생각나네. 별로 그립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쟁으로 부서지기 전이라 색다른 느낌이군.”
 
 주변을 바라보는 이상현의 시선은 그리움보다는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그나저나 사냥은···.’
 
 이상현은 사냥 계획을 짰다. 아무리 경험이 있더라도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니까.
 물론 큰 걱정은 없었다. A등급과 S등급의 소환수가 아니라 D등급의 소환수니까.
 콧대가 높은 놈들하고는 다르다. 순종적이다. 언제 책상이 빠질지 모르는 비정규직처럼 말이다.
 
 ‘D등급은 어떨까.’
 
 과거에는 모든 소환술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현도 녀석들을 선택했었다.
 그 결과 초보 시절이 무척이나 고달팠었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만큼 다루기가 무척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소환수들에게 질질 끌려다녔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오죽하면 때려치우고 싶었겠는가?
 랭커가 될 수 있는 A등급과 S등급만 아니었어도 진작 때려치웠을 것이다.
 그래. 세계 랭킹 1위가 되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망만 아니었어도 그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수도 모르고 설쳤던 나날들.
 물론 A등급과 S등급 소환수를 얻었던 만큼 랭커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불행했었다. 빛바랜 추억보다는 괴로움이 훨씬 더 많았었다.
 
 ‘그 당시를 견뎌낸 게 진짜 용하네. 도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내가 마조히스트였나?’
 
 이상현은 상념이 깃든 콧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A등급과 S등급의 소환수가 아니다. D등급이다. 그러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막말로 언제든지 버리고 다시 키울 수 있는 레벨이다. 아쉬운 건 녀석들이다. 왜냐하면 고작해야 D등급이니까.
 이상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복잡한 감정이 솟구치는 과거를 던져버렸다.
 
 “우와! 여기가 정말 가상현실이야? 말도 안 돼! 진짜와 완전히 똑같잖아?”
 “대, 대단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왓! 흙이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튜토리얼을 끝낸 이방인(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과거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상현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초보자 사냥터.
 
 “······.”
 
 초보자 사냥터는 50레벨 전까지 머무르는 곳으로 정식 명칭은 ‘거울의 숲’이다.
 1~50레벨에 이르는 다양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곳으로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튜토리얼을 거친 사람이라면 고작해야 4~5번 죽는 게 평균일 정도로 쉽다. 아주 간단하다.
 걸어가던 이상현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아···!”
 
 두근두근!
 
 아주 오랜만에 아라바스의 성문을 본 탓일까? 감정에 미세한 빈틈이 생겼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모험의 시작은 영원히 기억되는 법이다. 이상현도 그렇다.
 아라바스의 거대한 성문은 대한민국 이방인(유저)이라면 반드시 거치는 ‘문’이다.
 당연히 특별하다.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두근두근!
 
 아라바스의 웅장한 성문은 올려다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느끼게 만드는 위대한 건축물이다.
 
 “가자.”
 
 이상현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성문을 지나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이상현의 힘찬 발걸음에 깃들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첫 번째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칭호 ‘햇병아리 모험가’를 획득했습니다.]
 [첫 번째로 거울의 숲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칭호 ‘초심자를 위한 행운’을 획득했습니다.]
 [이면세계에서의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초보자
 
 이상현은 3개까지만 적용 가능한 칭호에 [초심자를 위한 행운]을 적용했다.
 [오, 당신은 행운아!]가 행운을 더 늘려주지만 거울의 숲에서는 초심자의 행운이 더 좋기 때문이다.
 
 “저기 있네.”
 
 초심자의 행운 덕분인지 운이 좋게도 첫 번째 사냥감이 눈앞에 보였다.
 녀석의 이름은 사슴! 물론 평범한 사슴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친다. 보기와는 다르게 세다.
 녀석의 별명은 ‘미친 사슴’과 ‘신고식’이다. 이상현도 소환수의 도움 없이 덤볐다가 저 뿔에 박살 난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야. 옛날 생각나네.”
 
 사슴에게 당한 치욕들 중에서는 뿔뿐만이 아니라 발굽과 이빨, 심지어 침까지 있었다.
 물론 다 옛날 일이다. 복수심이라고 해봐야 몸서리쳐지는 얄팍한 추억이 전부였다. 때문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이상현은 소환수들을 소환했다.
 
 “월슨, 집거미, 골렘 소환.”
 
 저까짓 사슴을 상대로 조금 과하지만 기념비적인 첫 사냥이 아닌가?
 다 함께 싸울 필요가 있다.
 소환에 따라 땅바닥에 푸른빛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위로 소환수들이 나타났다.
 
 “퐁! 퐁!”
 “샤악!”
 “골!”
 
 이상현은 콧숨을 내쉬었다. 비록 녀석들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은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그래도 제법 쓸 만해 보였다.
 가령, 골렘의 경우에는 체격이 2.5m에 달해서 제법 믿음직했다. 그 이외에도···. 그 이외에도···.
 
 “······.”
 
 애써 무시하고 있던 D등급의 한계가 이상현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월슨은 지름이 70㎝에 불과한 액체고, 집거미는 고작해야 170㎝에 불과하며, 골렘은 상체에 비해 하체가 대단히 부실했다.
 ‘왜 D등급이겠어요?’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허접하네. 왜 사람들이 D등급 이하를 버리는지 알겠군.’
 
 다소 무례한 생각은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겉모습에 실망했을 뿐이지, 소환수들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최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몰다가 국산 준중형차를 몰게 되면 그 누구라도 실망하는 법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이상현이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희들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이상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모두 알겠나?”
 “퐁! 포옹!”
 “샤악!”
 “고오올!”
 
 충성심을 요구하는 말에 소환수들은 우렁차고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이상현은 강렬한 울림을 느꼈다. 녀석들을 데리고 있을 적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쾌감이었다.
 그래, 이것이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존경받는다는 느낌이! 자신이 주도한다는 느낌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예감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정말 완벽했다.
 
 “너희들이 나에게 바치는 충성만큼, 나 또한 그 이상으로 너희들을 신뢰하겠다! 나를 믿어라!”
 
 사이비 교주가 된 이상현은 소환수들에게 무한한 충성심을 요구했다. 소환수들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광신도들처럼 열성적인 반응을 보였다.
 
 “포오옹!”
 “샤악!”
 “고오올!”
 
 ‘그래. 이게 정상이지! 소환술사라면 마땅히 이래야지. 뭐가 아쉽다고 소환수들에게 끌려다녀? 소환술사가 갑이지 소환수가 갑이면 안 되지!’
 
 이상현은 명확한 상하관계에 만족했다.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했다.
 
 “좋아! 그렇다면 지금부터 너희들의 역할을 나누겠다. 월슨! 너는 달라붙어서 녹여버리는 역할이다.”
 “포옹!”
 
 이상현은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복잡한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딱 이 마인드였다.
 
 “집거미! 너의 역할은 거미줄을 이용한 방어와 견제다. 필요에 따라 공격도 할 것이다.”
 “샤악!”
 “마지막으로 골렘! 너의 역할은 공격과 방어다. 그 육중한 몸으로 아군을 지키면서 적군을 깔아뭉개는 것이다. 든든한 너에게 어울리는 역할이지.”
 “골!”
 
 역할을 나눈 이상현은 사슴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한가롭게 풀이나 뜯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연약한 사슴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녀석은 ‘신고식’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소악마.
 게다가 10m 이내로 접근하면 먼저 공격을 가하는 선공 몬스터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저 사슴을 사냥한다.”
 
 이상현이 명령을 내렸다.
 
 “우선, 집거미가 거미줄을 쏘아서 목표물의 다리를 묶는다. 다음으로 월슨이 목표물의 머리를 덮쳐서 시야를 가린다. 마지막으로 골렘이 주먹을 힘껏 내리쳐서 목표물의 숨통을 끊는다. 모두 이해했나?”
 
 소환수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현은 D등급이라서 살짝 불안했지만 참았다.
 명령을 못 알아들었으면 다시 시도하면 되니까. 그래서 대충 넘어갔다.
 
 “모두 전투준비.”
 
 죽도록 해본 사슴 사냥이지만 새로운 시작은 이상현에게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두근두근!
 
 월슨과 집거미, 골렘은 저마다의 각오를 품고 이상현의 명령을 기다렸다.
 사슴과의 거리는 불과 15m.
 
 “거미줄!”
 
 이상현의 명령에 따라 빠른 기동성을 가진 집거미가 샤샤샥! 움직였다.
 집거미는 네 쌍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런 다음, 방적돌기에서 거미줄을 뿜어내 사슴의 다리를 잽싸게 묶었다.
 순식간이었다.
 
 “푸루룩?!”
 “얼굴!”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월슨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잽싸게 뛰쳐나갔다. 물수제비처럼 통통 튀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그러나 그 정체는 점성과 산성이 높은 액체 덩어리! 가벼이 여겨질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포오!”
 
 단숨에 거리를 좁힌 월슨이 폴짝 뛰어올라 사슴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아쉽게도 머리를 완전히 뒤덮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쪽 눈을 덮어버려서 나름의 성과를 냈다.
 
 “푸룩! 푸루룩!”
 
 그 성과에 사슴은 더더욱 미쳐 날뛰며 머리를 따갑게 만드는 월슨을 떨쳐내려고 했다.
 
 “주먹 내려찍기!”
 
 이상현의 명령에 드디어 골렘이 움직였다. 900㎏에 달하는 돌덩어리는 큰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쿵! 쿠웅! 쿵!
 
 네발 동물과 달리 두 발인 골렘의 발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겁에 질리도록 만들었다.
 끈적끈적한 거미줄과 산성 액체에 눈이 가려진 사슴에게는 미지의 공포였다.
 
 “푸루룩! 푸루루룩!”
 
 골렘의 두 팔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월슨을 떼어낸 사슴의 둥그런 눈동자에 그 모습이 비쳤다. 부르르. 사슴의 뿔이 애처롭게 떨렸다.
 
 “고오올!”
 
 내리침은 강력했다. 만약 골렘이 숨을 쉬는 생명체였다면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골렘은 무생물이자 광물 덩어리였다. 팔을 이루고 있는 것은 피와 살이 아닌 광물이었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광물 말이다.
 퍼어억! 사슴은 발악조차 하지 못하고 한방에 쓰러졌다. 거대한 팔에 박살 난 것이다.
 
 [첫 번째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사슴(Lv1)을 쓰러뜨렸습니다.]
 [칭호 ‘성공적인 첫 사냥!’을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사슴의 뿔(1)과 살코기(1)를 획득했습니다.]
 [사슴들이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고오올!”
 “샤악!”
 “퐁! 포옹!”
 
 소환수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이상현의 마음도 만족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주인으로서의 엄격함과 근엄함, 진지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입술은 실룩실룩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물론 고작해야 사슴일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주도한 사냥이었기에 이상현은 진심으로 기뻤다.
 결국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 잘했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만 해다오. 내가 너희들을 믿을 수 있도록, 너희들도 나를 믿고 잘 따라와 주길 바란다.”
 “퐁! 포옹! 퐁!”
 “샤악!”
 “고오올!”
 
 두근두근! 심장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정말로 달라진 것이다.
 
 ‘카타리나.’
 
 이상현은 그녀를 생각했다. 아르란은 생각하지 않았다. 걔는 짜증 나니까.
 
 “거미줄! 얼굴! 내려찍기!”
 
 처음 호흡을 맞춰본 이후, 이상현은 동일한 패턴으로 사슴을 사냥했다. 목적은 소환수들의 조직력과 협동력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사슴 12마리를 잡았을 쯤에는 소환수들의 손발이 제법 맞아서 사냥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15번째 사냥이 끝났다.
 
 “퐁! 포퐁!”
 
 [사슴(Lv2)을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사슴의 뿔(1)과 가죽(1)을 획득했습니다.]
 [사슴들이 공포심을 가집니다.]
 
 ‘15분도 안 됐는데 벌써 15마리라. 생각 이상의 속도야. 물론 근처에 다른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빨라.’
 
 튜토리얼이 끝났음에도 아직까지 거울의 숲에 사람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직업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사, 궁수, 마법사, 소환술사, 암살자, 모험가, 대장장이 등등 다양한 직업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되니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칭호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모으고 보자는 심리는 강하다.
 하물며 대한민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퐁! 포옹!”
 
 이상현이 생각하는 동안 명령을 수행한 소환수들이 돌아왔다.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칭찬이 쏟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참으로 알기 쉬운 녀석들이었다.
 
 “이번에도 제법 잘했다. 점점 더 발전하고 있어서 대단히 마음에 든다.”
 
 앞서 했던 칭찬과 비슷했지만 소환수들은 기뻐했다. 특히 월슨이 탱탱볼처럼 튀어 올랐다.
 
 “······.”
 
 이상현은 잔여 경험치를 확인했다. 2레벨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경험치는 130.
 사슴 1마리만 더 잡으면 되는 경험치였다.
 
 ‘레벨 업을 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겠군.’
 
 이상현은 사냥감을 찾아냈다.
 이번에도 사슴이었다.
 
 ‘저기 있네.’
 
 녀석은 여유롭게 소변을 보고 있었다. 노란색의 굵은 물줄기는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100점 만점에 100점인 노상 방뇨였다. 뭐, 동물이라서 노상 방뇨는 아니겠지만.
 
 “가자.”
 “퐁!”
 
 월슨의 대답이 제일 활기찼다. 이상현은 우렁찬 대답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은밀히 사슴에게 접근했다.
 
 “저놈을 잡아!”
 “죽여 버려!”
 
 근처에 다른 이방인(유저)들이 보였다. 다들 사슴을 힘겹게 상대하는 중이었다.
 
 “쿠어억?!”
 
 어떤 마법사 이방인은 날카로운 뿔에 박혀 죽었다. 사슴이라고 우습게 보다가 당한 것이다.
 
 ‘마법사라. 못해도 열 번은 더 죽겠네. 뭐, 파티를 하면 조금 낫겠지만 초보자한테는 그것도 어렵지.’
 
 동정심은 한 스푼이었다. 왜냐하면 신고식의 참맛을 느껴봐야지만 초보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
 
 이상현은 목소리와 함께 정지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소환수들이 멈춰 섰다.
 
 “공격 순서는 지금까지와 동일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거미에게만 신호를 주겠다. 나머지는 내 명령을 기다릴 필요 없이 기회가 오면 바로 움직여라.”
 
 아이상현은 레벨 업을 앞둔 지금. 일부러 조금 복잡한 명령을 주문했다. 그 이유는 소환수들의 팀워크와 기억력을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포옹!”
 
 소환수들은 낮지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사실 이상현의 요구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다만, 자율적으로 해내야 된다는 점에서 부담감을 느낄 법도 한데.
 단순한 애들이라서 그런지 부담감은커녕 사소한 긴장감조차도 없었다.
 명령에 대한 의문조차도 품지 않았다.
 
 ‘훗.’
 
 그 모습을 본 이상현은 녀석들이 액체와 거미와 돌덩어리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
 
 ‘단순해서 좋네.’
 
 어떤 명령을 내리든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수행하는 모습은, 소환술사를 우습게 알고 오만하게 구는 녀석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거미줄.”
 
 이상현이 집거미에게 명령을 내렸다.
 집거미는 명령을 받자마자 재빨리 사슴에게로 접근했다. 들키기 쉬운 정면이 아닌 후면으로 접근하여 방적돌기에서 거미줄을 뽑아냈다.
 끈끈한 거미줄은 사슴의 다리에 달라붙었고, 그제야 사슴이 울음을 터트리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푸루룩!”
 
 월슨은 다리에 달라붙은 끈끈한 거미줄을 떼어내려고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사슴을 향해 통통 뛰어갔다. 탄력성을 높였기에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불과 몇 초 만에 월슨이 사슴의 머리에 정확히 들러붙었다. 약한 산성이 사슴의 얼굴을 녹였다. 사슴은 거친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푸루우우우우우욱?!”
 
 대기하고 있던 골렘이 움직였다.
 
 쿵! 쿵!
 
 큰 발소리가 땅 위를 기어갔다.
 당황한 사슴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월슨이 눈과 귀를 녹여댔기 때문이다.
 사슴은 냉정하게 대처하기는커녕 미쳐 날뛰며 어떻게든 월슨을 떼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발을 묶고 있는 거미줄 때문에 움직이는 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다. 얼굴에 들러붙은 산성 액체는 땅바닥에 비벼도 떨어지지 않았다.
 
 “푸루루루···!”
 
 사슴은 골렘이 다가왔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골렘은 거대한 두 팔을 들어 올려 발버둥 치는 사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퍼억!
 
 사슴이 한 방에 쓰러졌다.
 
 [사슴(Lv2)을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소환수들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칭호 ‘내가 제일 빨라!’를 획득했습니다.]
 [사슴의 가죽(1)과 싱싱한 고기(1)를 획득했습니다.]
 [사슴들이 두려워합니다.]
 
 “······.”
 
 이상현은 그 모든 것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만족스러움은 콧숨으로 나왔다.
 
 “퐁! 포옹!”
 “샤아악!”
 “고올!”
 
 소환수들은 야단법석을 떤다고 표현해야 될 만큼 대단히 기뻐했다.
 솔직히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그러나 주어진 명령을 완벽히 수행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낀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상현은 소환수의 등급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등급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며, 낮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고 말이다.
 
 “모두 정말 잘했다.”
 
 이상현은 기분 좋게 웃었다.
 진심이었다.
 
  * * *
 
 이상현은 레벨 업으로 얻은 일반 스탯(5)을 근력, 체력, 순발력, 지력, 마력에 각각 1씩 분배되도록 설정했다. 그런 다음, 짝짓기를 하는 불온한 사슴들을 처단했다.
 
 “분투.”
 
 이상현은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 스킬을 사용했다. 멧돼지와 늑대, 아나콘다 등이 나타나는 지점이었다.
 
 [분투(D)를 사용했습니다.]
 [30분 동안 소환수들의 근력과 체력과 순발력이 +70 상승합니다.]
 
 분투는 C등급 이하 소환수들을 위한 스킬로 지속시간이 길면서도 재사용 시간이 짧다. 때문에 초반에는 이보다 좋은 스킬은 존재하지 않는다.
 
 “퐁! 포옹!”
 “샤악!”
 “고오올!”
 
 소환수들은 자신이 세졌다는 걸 느꼈는지 강함을 마음껏 뽐냈다. 소환수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가자.”
 
 이상현과 소환수들은 당당히 숲을 가로질렀다. 강인함이 함께 걸어갔다. 이따금 뒤쪽에서 사슴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흔해빠진 일이었다.
 
 “······.”
 
 이상현은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몬스터를 찾았다. 거울의 숲이라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제법 많았다. 다만, 한판 붙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물론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상현은 튼실한 멧돼지를 목표로 삼았다.
 
 ‘당분간은 같은 전술로 가자. 손발을 조금 더 맞출 필요가 있으니까.’
 
 이상현이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저 멧돼지가 우리의 사냥감이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강하니까.”
 “포옹!”
 
 월슨의 대답이 가장 활기찼다. 이상현은 그런 월슨을 보고 있노라면 말을 잘 듣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서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지는 마라. 전투에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모두 알겠나?”
 “포옹!”
 “샥!”
 “고오올!”
 
 우렁찬 대답만큼은 그 녀석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이상현은 만족감을 느끼며 멧돼지를 보았다.
 녀석은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고 단단한 코로 땅을 헤집는 중이었다.
 
 “거미줄.”
 
 이상현이 명령을 내리자 뒤에서 대기하던 집거미가 잽싸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350이 넘는 순발력에서 나오는 집거미의 움직임은 대단히 빨랐다.
 집거미는 순식간에 접근하여 방적돌기에서 거미줄을 쏘았다. 촤아악! 빠른 속도로 날아간 거미줄이 멧돼지의 옆구리와 다리, 그리고 땅바닥에 들러붙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멧돼지가 “꿰에엑!”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날뛰었다.
 
 “얼굴.”
 
 자신의 차례가 온 월슨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멧돼지의 머리에 몸을 부딪쳤다.
 철퍼덕! 물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나며 주황색의 덩어리가 멧돼지의 머리에 정확히 달라붙었다.
 
 “꾸에에엑!”
 
 자신의 머리에 달라붙은 불쾌하고 따가운 액체에 멧돼지가 미쳐 날뛰었다. 그러다 끈끈한 거미줄에 엉킨 나머지 그만 옆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내려찍기.”
 
 이상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묵묵히 대기하고 있던 골렘이 움직였다.
 
 쿵! 쿠웅! 쿵!
 
 근력, 체력, 순발력이 각각 70씩 상승한 골렘의 발걸음은 사슴을 잡을 때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본다면 순발력의 경우 무려 두 배나 늘어났다.
 골렘은 질주했다.
 
 “고오올!”
 
 빨라진 몸을 지탱해줄 만큼 근력과 체력도 증가한 상태여서 매우 안정적이었다.
 두 팔을 들어 올린 골렘이 힘껏 내리쳤다.
 
 퍼어억!
 
 일격이었다.
 
 털썩.
 
 [멧돼지(Lv7)를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멧돼지의 가죽(1)과 어금니(1)를 획득했습니다.]
 [멧돼지들이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음!”
 
 거울의 숲에서 가장 성가신 몬스터들 중 하나인 멧돼지를 일격에 쓰러뜨렸다.
 이상현은 그 뜻밖의 결과에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미친 돼지새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끈질기며, 피통이 크다고 소문이 난 멧돼지가 꼼짝도 못 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이상현의 계산으로는 골렘이 멧돼지를 마구 두들겨야 된다고 봤다. 그런데 한 방에 죽다니!
 
 ‘뭐, 스탯만 놓고 본다면 C등급이랑 동급이니까. 게다가 분투를 사용했으니···.’
 
 저 두꺼운 멧돼지가 즉사한 이유는 간단했다. 골렘이었기 때문이다. 딱 보면 알겠지만 무식할 정도로 공격력이 높은 게 바로 골렘이다.
 물론 그만큼 느려서 단점이 장점을 상쇄하지만 이상현의 골렘은 일반적인 골렘이 아니다.
 D등급 골렘의 근력이 고작해야 210이라면, 이상현의 골렘은 324에 이른다.
 강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단순히 근력만 놓고 보면 A등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퐁! 퐁!”
 “샥!”
 “고올!”
 
 명령을 완벽히 수행하고 돌아온 소환수들이 이상현의 곁에 모여들었다.
 소환수들은 칭찬을 기다렸다.
 
 “모두들 굉장히 잘했다. 솔직히 멧돼지를 이렇게 손쉽게 처치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걸 해냈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희들이 잘해줘서 아주 자랑스럽다.”
 
 이상현은 진심을 털어놓았다. 옛날이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쁨은 진심이었다.
 그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소환수들은 매우 기뻐했다. 덕분에 이상현의 입가에 쑥스러움이 머물렀다.
 
 “자, 이동한다.”
 
 이상현은 다음 단계를 향해서 빠르게 전진했다.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쉬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다음 목표를 찾아냈다.
 멧돼지(Lv15).
 레벨만 놓고 본다면 감히 상대가 안 될 정도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설령 죽는다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2레벨이라서 죽어봤자 큰 페널티도 없을뿐더러 첫 번째 죽음의 경우에는 생명과 마나를 가득 채워주기 때문에 일부러 죽는 것도 괜찮다.
 물론 일부러 죽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여하튼 죽음은 문제가 아니다.
 이상현이 소환수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저 녀석을 사냥한다.”
 “포오옹!”
 
 소환수들의 활기찬 대답은 몇 번을 들어도 좋았다.
 
 사삭. 사사삭.
 
 이상현은 소환수들을 데리고 멧돼지에게 접근했다. 전직 랭커답게 아주 가뿐히 거리를 좁혔다. 멧돼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꾸룩. 꾸루룩. 꾹꾹.”
 
 멧돼지는 땅속에 숨은 벌레를 잡아먹었다.
 이상현은 녀석의 뒤꽁무니를 잡았다. 남은 거리는 17m 남짓했다.
 정지 명령에 소환수들이 멈춰 섰다.
 
 “······.”
 
 이상현은 기회를 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멧돼지가 다시 머리를 처박고 땅속의 벌레를 찾기 시작했다.
 
 “거미줄.”
 
 집거미가 쏜살같이 기어갔다. 네 쌍의 다리는 탁월한 발기술을 보유한 사냥꾼이었다.
 가까이 접근한 집거미의 방적돌기에서 끈끈한 거미줄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도 한 가닥이 아닌 수십 가닥이 쏘아져 멧돼지의 뒷다리를 꽁꽁 감아버렸다.
 
 “꾸루룩?!”
 
 깜짝 놀란 멧돼지가 울음소리를 터트리기도 전에 이상현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토옹!
 
 월슨은 몸부림치는 멧돼지의 머리에 정확히 부딪혔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철퍼덕! 하는 소리가 났다.
 
 “꾸에엑!”
 “내려찍기.”
 
 몸을 웅크리고 있던 골렘이 움직였다. 쿵! 쿵! 힘찬 발걸음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꾸에에엑!”
 
 그 소리를 들은 멧돼지가 미친 듯이 발광하자 거미줄이 팽팽해졌다. 그러나 거미줄은 조금도 끊어지지 않았다. 월슨도 떨어지지 않았다.
 
 “골!”
 
 위로 솟구친 골렘의 두 팔이 수직 하강하며 멧돼지를 세게 내리찍었다.
 퍼억! 아쉽게도 머리가 아닌 등뼈여서 즉사시키지는 못했다. 골렘은 다시 팔을 들어 올렸다.
 
 “꾸에에에엑!”
 
 공격당한 멧돼지가 분노로 몸부림치며 골렘에게 힘껏 달려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서 그런지 본능적인 흉포함은 눈이 보일 때 이상이었다.
 
 퍽! 퍽!
 
 멧돼지는 툭 튀어나온 어금니와 단단한 코로 세게 들이박았다. 집거미의 거미줄로는 성난 멧돼지를 완전히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고 있던 이상현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골렘! 몸으로 멧돼지를 덮쳐!”
 
 골렘은 이상현의 명령대로 무작정 성난 멧돼지를 몸으로 찍어 눌렀다.
 멧돼지(Lv15)의 힘은 강력했다. 그러나 900㎏에 달하는 골렘의 무게를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월슨! 몸을 늘려 코와 입을 완전히 막아! 거미! 고환을 물어뜯어!”
 
 이상현이 다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월슨이 몸을 부풀려 멧돼지의 코와 입을 덮어버렸다.
 멧돼지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골렘과 월슨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때, 집거미가 결정타를 날렸다.
 골렘과 월슨으로 인해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고환을 날카로운 독니로 콱! 내리찍은 것이다.
 
 “······?!”
 
 성난 멧돼지의 울음소리는 퍼져나가지 못했다. 그저, 공기 방울만이 보글보글 솟아오를 뿐이었다.
 이윽고 성난 멧돼지가 쓰러졌다.
 처절한 죽음이었다.
 
 [멧돼지(Lv15)를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소환수들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멧돼지의 어금니(1)와 오줌보(1)를 획득했습니다.]
 [멧돼지들이 공포에 떱니다.]
 
 멧돼지(Lv15)를 이렇게 쉽게 처치할 줄이야!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잘했다. 약간의 위기도 있었지만 다들 침착하게 명령을 잘 따라주었다. 나는 그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정말 잘해줬다.”
 
 이상현은 소환수들에게 다가가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에는 날개가 돋친 듯했다. 설마, 이 정도까지 잘해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퐁! 포오옹!”
 “샤악!”
 “고오올!”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에 월슨과 집거미와 골렘은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기에 더더욱 기쁜 소환수들이었다.
 
 ‘단순해서 좋네.’
 
 소환수라는 게 이토록 다루기 쉬운 생물이었다니! 그동안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하위 등급을 키우는 소환술사가 의외로 많았던 것일까?
 뭐, 그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확실히 하위 등급이 부려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
 
 월슨과 집거미와 골렘의 모습이 눈동자에 비쳤다. 이상현은 숨을 내쉬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잠시 뒤, 이상현이 말했다.
 
 “자, 얼른 가자. 스킬 지속시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레벨을 올려야 되니까.”
 “포옹!”
 
 이상현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회귀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이 묻어나왔다.
 
 “이번에는 저놈이다!”
 
  * * *
 
 “뭐야, 전사가 되고 싶다고? 그럼 숲에서 사슴 10마리를 잡아 와!”
 
 검투사 교관은 그렇게 말했다. 거들먹거리는 표정은 명백히 얕잡아 보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물론 그는 개의치 않는 모양인지 가뿐히 대답했다.
 
 “사슴 10마리요? 뭐,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다녀올 테니까요.”
 “후후후. 행운을 빌지!”
 
 검투사 교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는 검투사 훈련소를 빠져나왔다. 발걸음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사슴 10마리라. 엄청 쉽군.”
 
  * * *
 
 거울의 숲에 도착한 그는 미소를 지었다. 시작에 대한 설렘이었다.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거울의 숲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칭호 ‘초심자를 위한 행운’을 획득했습니다.]
 [이면세계에서의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신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행운을 올려주다니. 좋은데?”
 
 그는 칭호를 적용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은 파릇파릇했다.
 
 “어디 보자···.”
 
 사슴(Lv9). 초심자의 행운 덕분일까? 그는 10마리 중 한 마리가 될 사슴을 바로 발견했다.
 그는 초보자 검을 세게 쥐고 사슴에게로 다가갔다. 저벅저벅. 발소리는 커다랬다.
 망설임이 없었다.
 
 “사슴쯤이야, 단칼에 썰어주마.”
 
 호기로운 목소리는 용맹스러웠다. 그는 성큼성큼 아무런 긴장감 없이 사슴과의 간격을 좁혔다. 사슴은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사슴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커다란 발소리를 들었다.
 머리를 숙이고 있던 사슴이 뿔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는 검을 꼬나 들며 그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죽었다.
 
 콰직!
 
 [사슴(Lv9)에게 사망했습니다.]
 [칭호 ‘신고식을 치른 자’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낮기에 페널티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부활 장소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응?”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에 당했다는 것만을 시스템 덕분에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는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죽다니?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죽은 거지? 설마, 사슴 따위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면세계에서 부활했습니다.]
 [칭호 ‘나, 죽은 거야?’를 획득했습니다.]
 [장난꾸러기 요정들이 ‘깔깔깔!’ 웃습니다. 일시적으로 행운이 상승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그는 분노하며 거울의 숲으로 달려갔다. 당당하던 발걸음은 사라져 있었다.
 
 ‘그래, 내가 실수했다. 레벨이 9였잖아? 게임에서는 레벨이 깡패니까. 아무리 사슴이라도 레벨이 높으면 강하겠지. 후우. 정신 차리자.’
 
 그는 마음을 다잡고 다른 사슴을 찾아냈다. 이번에는 사슴(Lv9)이 아닌 사슴(Lv1)이었다.
 
 “이번엔 실수 따윈 안 한다. 단숨에 모가지를 쳐서 반드시 죽여주마.”
 
 결의로 빗어진 눈은 매서웠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달리 조용히 접근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그렇게 5m까지 접근하자 갑자기 사슴이 뒤돌아서더니 뿔을 앞세우고 돌진해왔다.
 
 “이런 미친?!”
 
 그는 욕을 내뱉으며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뿔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가까스로 사슴의 공격을 피해낸 것이다.
 
 “꾸우욱!”
 
 사슴과의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사슴을 맞상대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사슴(Lv1)은 강했다.
 
 “미친! 사슴이 위빙을 해?!”
 “구오오오!”
 
 콱! 캥! 콱콱!
 
 멋을 부린다고 방패를 들지 않은 탓에 긴 뿔을 가진 사슴이 유리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자존심이 패배를 허락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사슴 따위에게 두 번이나 죽을 수는 없는 일! 그 얄팍한 자존심이 힘을 주어, 처절한 사투 끝에 사슴을 간신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칭호 ‘사냥에 성공한 이방인’을 획득했습니다.]
 [사슴(Lv1)을 쓰러뜨렸습니다.]
 [칭호 ‘성공적인 첫 사냥!’을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사슴의 머리(1)를 획득했습니다.]
 [사슴들이 적대하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5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휴식을 취하시는 게 좋습니다.]
 
 “이, 이건 아니야···.”
 
 그는 황금빛으로 바스러져 가는 사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으아악?!”
 
  * * *
 
 [팀을 맺었습니다.]
 [칭호 ‘사냥은 역시 머릿수지!’를 획득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있겠네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무슨 사슴 따위가 그렇게 센 건지. 정말이지 어휴!”
 “그래도 이제는 팀을 맺었으니까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파이팅!”
 
 그는 비슷한 처치의 두 사람과 팀을 맺었다. 덕분에 마음이 든든했다. 더 이상은 사슴이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파티를 맺은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그들은 사슴(Lv3)을 발견했다.
 
 “3레벨이지만 저희들이 3명이니까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팀을 맺어서 그런가? 별로 무섭지는 않네요.”
 “쉽게 잡을 겁니다.”
 
 수적 우위를 앞세운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3:1의 싸움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허무할 정도였다.
 
 “아자!”
 “죽어랏!”
 “가죽이다!”
 
 사냥에 탄력이 붙은 그들은 계속해서 사슴을 잡았다. 적대도가 꽉 차든 말든 개의치 않고 사슴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여덟 마리를 잡았을 때, 그들은 주변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음을 느꼈다.
 
 “우리들처럼 팀을 맺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네요.”
 “이러다간 사슴이 부족하겠습니다. 토끼는 잡아봤자 시간만 아까운데.”
 
 동료들이 작은 불만을 토로할 때, 그는 사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아, 저기!”
 
 그의 외침에,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바로 뛰었다. 다른 팀에게 빼앗기기 전에 선공을 날리기 위함이었다.
 
 “죽어라!”
 
 먼저 도착한 그가 선공을 날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슴에게는 날카로운 뿔이 없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신경조차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뿔이 있든 말든 일단은 공격하고 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뭐 중요한 거라고 신경을 쓰겠는가?
 일단 치고 봐야지!
 
 “꾸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런데 그 사슴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울음소리는 숲 전체로 울려 퍼졌다.
 
 푸욱!
 
 “발악하지 말고 얌전히 죽어···?”
 
 울음소리가 돌아왔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사슴들의 성난 울음소리가!
 
 [암사슴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우두머리 수사슴이 들었습니다.]
 [우두머리 수사슴(Lv15)이 나타납니다.]
 [사슴들이 미쳐 날뜁니다. 광분(F)의 힘이 성난 사슴들에게 깃듭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어, 어어? 앗! 사, 사슴이···?!”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사슴들에 의해 그들은 처참하게 짓밟혔다. 놈들은 군단이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으악! 살려줘!”
 “도망쳐!”
 
 그들뿐만 아니라 사슴을 사냥하던 모든 이방인(유저)이 성난 사슴들의 공격을 받았다.
 
 “구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우두머리 수사슴은 무리를 이끌고 종횡무진 내달렸다. 멈출 줄 모르는 기관차였다. 수많은 이방인(유저)들이 사슴의 뿔에 무참히 박살 났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윽고 우두머리 수사슴이 그의 등을 짓밟았다.
 
 “미, 미친 사슴···.”
 
 콰직!
 
 [우두머리 수컷 사슴(Lv15)에게 사망하셨습니다.]
 
 미친 사슴의 전설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구오오옷!”
 
  * * *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을 무시하고 이상현은 사냥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30분이 지났음을 알아차렸다.
 
 [분투가 사라집니다.]
 [소환수들에게 부여되었던 힘이 빠져나갑니다. 소환수들이 일시적으로 무력감을 느낍니다.]
 
 “······.”
 
 이상현은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 이유는 스킬이 지속되는 동안 10레벨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멧돼지 한두 마리만 더 잡으면 되는데.
 살짝 입맛이 썼다.
 
 “푸웅! 푸우우!”
 
 이상현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월슨은 단순한 성격답게 갑자기 사라진 힘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나타내며 퐁퐁 뛰어올랐다.
 집거미는 앞다리를 확 들었다가 내렸다.
 골렘은 골렘답게 서 있었다.
 
 ‘신경 쓰지 말자. 옛날처럼 무식하게 레벨 경쟁을 할 것도 아니고 랭커가 될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 더 이상은 조급해하지 말자.’
 
 이상현은 숨을 내쉬었다. 뿌옇게 떠올랐던 과거의 잔재는 코를 통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사냥을 멈추고 잠시 쉴 것이다. 모두 수고했다. 지금까지 정말 잘해줬다.”
 “포옹!”
 “샥!”
 “고오올!”
 
 다독이는 말에 소환수들은 절대적인 충성심을 드러내며 무조건 따르겠다는 몸짓을 했다.
 그 모습에 이상현은 녀석들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등급이 뭐가 중요하겠어?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지 등급 따위가 아니지.’
 
 이상현은 진작 이랬어야 했다며 애써 씁쓸함을 입안에 감췄다.
 
 “저기로 가자.”
 
 때마침 적당한 쉼터가 근처에 있었다. 이상현은 소환수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쉼터는 평평한 바위와 잔잔한 풀이 솟아난 곳으로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없었다. 나무의 그늘은 햇빛을 가려주었으며, 잔잔한 바람이 머무는 듯했다.
 
 “······.”
 
 이상현은 그 앞에 멈춰 섰다.
 콧숨을 내쉬었다.
 
 ‘조용하네.’
 
 이상현은 바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과거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거울의 숲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뜻밖의 일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
 
 이상현은 새삼 깨달았다. 이면세계가 또 하나의 세상이라는 것을, 머나먼 과거로 돌아왔음을.
 
 “······.”
 
 이상현은 숨을 내쉬었다. 그늘진 표정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상현의 눈동자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그 후회가 심장을 강하게 옥죄어왔다.
 
 ‘이제 와 후회해본들 그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그래도 후회하게 되네.’
 
 인생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후회라고 한다. 왜냐하면 뒤늦게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후회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
 
 이상현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른거리는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눈이 부셨지만 따갑지는 않았다. 포근했다.
 
 ‘지금부터라도 잘 살아보자.’
 
 이상현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환수들을 바라보았다. 월슨과 집거미와 골렘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단순한 월슨은 풀이나 땅속을 들여다보며 ‘퐁! 퐁!’ 곤충을 관찰하고 있었다.
 집거미는 앞발로 독니를 깨끗이 청소했다.
 골렘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소환수들 덕분에 이상현의 생각은 단순해졌다. 모든 게 명확해진 것이다.
 
 “······.”
 
 이상현은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 덕분에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였다.
 
 ‘날씨 좋네.’
 
 이상현은 느긋하게 시간을 즐겼다. 그러자 여유로움과 낭만이 찾아와 고개를 내밀었다.
 모험에 대한 생각이 싹텄다. 이참에 이면세계를 여행해보는 건 어떨까?
 이상현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모험이라.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
 
 ‘굉장히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이 기분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그것이 회귀한 이상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신은 그런 이상현의 마음을 높게 평가해주었다.
 
 [마음을 구원하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특별한 칭호 ‘영혼의 휴식’을 획득했습니다.]
 [행복으로 가득한 행운이 당신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
 
 너무나 뜻밖이어서 이상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월슨은 작디작은 벌레를 찾아냈다.
 
 “퐁! 포옹?!”
 “샤악.”
 
 집거미는 그것을 잽싸게 낚아챘다.
 
 꿀꺽!
 
 “포오오오옹!”
 “샥.”
 
 이상현은 눈을 깜빡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행운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특별한 칭호라니.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단 말인가?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
 
 [특별한 칭호: 영혼의 휴식]
 -설명: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본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칭호입니다.
 -능력: 편안한 휴식을 취할 때, 생명과 마나의 회복이 세 배로 빨라진다. 행운이 +100 상승한다. 이따금 특별한 행운이 찾아온다.
 
 칭호의 정보를 확인한 이상현은 초심자의 행운을 빼고 특별한 칭호를 넣었다.
 
 [이방인]
 -이름: 이상현
 -레벨: 9(84.5%)
 -지역: 아라바스(대한민국)
 -소속: -
 -성향: 혼돈(중립)
 -직업: 소환술사
 -칭호: 끊어진 붉은 실(1) / 전설의 S등급!(2) / 영혼의 휴식(3)
 -근력: 108 / 체력: 108 / 순발력: 108
 -지력: 108 / 마력: 108
 -행운: 130
 -생명/마나: 10,800(10,800) / 5,730(10,800)
 -스킬: 분투(D)
 -일반 스탯: 0 / 특성 스탯: 32
 
 “하하···.”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엄청난 행운인 것은 맞지만 너무 뜬금없어서 기뻐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 탓에 이상현은 감정을 들뜨게 해야 할지 아니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퐁! 퐁! 포옹!”
 
 그때 이상현의 눈에 개미를 발견해서 기뻐하는 월슨의 모습이 비쳤다.
 집거미는 그것을 노렸다.
 
 “푸우우!”
 
 천진난만한 웃음과 동작은 단순 명쾌했다.
 그제야 이상현은 눈을 깜빡였다.
 이럴 수가! 단순하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월슨을 보고 깨닫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나도 참.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걸 가지고 고민을 하냐? 고민할 게 따로 있지. 바보도 아니고.’
 
 조용히 숨을 내쉬자 부풀어 올랐던 복잡한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물러갔다.
 이상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퐁?”
 
 소환수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았다. 별일 아닌 듯하자 본래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갔다.
 월슨은 곤충을 관찰했고, 집거미는 그 벌레를 사냥했으며, 골렘은 멍하니 서 있었다.
 
 “······.”
 
 이상현은 조용히 걸었다. 마치 산책을 하듯이, 뜻밖의 행운을 즐기기 위해 느긋이 거닐었다.
 마음은 무척이나 단순했다. 오로지 기쁨만이 가득했다. 그게 전부였다.
 
 ‘행운을 무려 100이나 올려주다니. 좋네.’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눈꼬리도 실실 웃음을 흘리며 기뻐했다.
 그 중앙에 선 코는 중재자처럼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돌아왔다.
 즐거움을 꿀꺽! 집어삼킨 표정은 밝았다.
 
 “자, 그만 일어나자.”
 “퐁! 퐁!”
 “샤악!”
 “골!”
 
 이상현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앞장섰다. 그 뒤를 월슨이 퐁퐁! 따라갔다. 집거미는 사사삭 은밀하게, 골렘은 쿵쿵! 발소리를 내며 따라갔다.
 길고도 짧았던 휴식시간은 그 자리에 서서 이상현을 보내주었다.
 잠시 뒤, 이상현은 멧돼지(Lv9)를 찾아냈다. 녀석은 나무에 몸을 비비는 중이었다.
 
 “거미줄.”
 
 이상현의 명령에 집거미가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다. 이상현은 월슨과 골렘을 데리고 앞으로 갔다. 다음 명령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멧돼지가 비명을 질렀다.
 
 “꿰에엑!”
 “얼굴!”
 
 기다리고 있던 월슨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난다는 표현을 써도 될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그것을 본 멧돼지가 도망치려 했지만 뒷다리에 달라붙은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이상현은 골렘과 함께 조금 더 앞으로 갔다.
 
 “포오옹!”
 
 철썩! 힘차게 뛰어오른 월슨이 멧돼지의 머리에 정확히 달라붙었다.
 멧돼지는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그러나 비명 소리는 울려 퍼지지 못하고 월슨에게 잡아먹혔다.
 
 “내려찍기.”
 
 마지막으로 골렘이 움직였다. 2.5m의 체격은 대단한 위압감을 뽐내며 멧돼지에게로 달려갔다.
 
 쿵! 쿠웅!
 
 도착한 골렘이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힘껏 쳐든 두 팔에 엄청난 힘과 무게가 깃들어 있었다.
 
 “······?!”
 
 골렘은 그 힘을 단숨에 내리쳤다. 콰직! 멧돼지의 머리가 가루로 변했다.
 두 방은 필요하지 않았다. 한 방이면 충분했다.
 
 [멧돼지(Lv9)를 쓰러뜨렸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특별한 행운으로 인하여 멧돼지가 집어삼킨 반지(미확인)를 획득했습니다.]
 
 특별한 행운이라!
 
 “오호.”
 
 이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방금 얻은 미확인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멧돼지가 집어삼킨 반지(미확인)]
 -등급: ?
 -설명: 흙 속에 파묻혀 있던 반지를 우연히 멧돼지가 집어삼켰습니다. 반지가 벌레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벌레가 아니었고, 위액으로도 소화할 수 없는 금속이었습니다. 그 탓에 쭉 배 속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특별한 행운 덕분에 찾아냈습니다.
 -능력: ?
 
 “미확인이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미확인 아이템이지만 이상현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기껏해야 매직 등급이거나 레어 등급이기 때문이다.
 물론 에픽 등급의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멧돼지(Lv9)에게 기대하는 건 조금 무리가 아닐까?
 
 “최소 매직 등급일 테니 첫 미확인치고는 괜찮네. 반지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
 
 그래도 이상현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구하기 힘든 귀금속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자, 가자.”
 “포옹!”
 
 이제 레벨 업에 필요한 몬스터는 단 한 마리. 이상현과 소환수들은 멧돼지를 찾아냈다.
 그들의 사냥 수법은 조금 전과 동일했다.
 
 “꾸에엑!”
 
 가볍게 멧돼지를 쓰러트림으로써 10레벨을 달성했다. 그것으로 사냥이 끝났다.
 이상현은 사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렸다.
 
 “이제 돌아가자.”
 
 자신과의 약속대로 이상현은 소환수들과 함께 도시로 돌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 * *
 
 “첫 번째 감정이라서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은화 10개를 지불해주셔야 합니다. 현물로도 값을 치르실 수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현은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 반지를 넘겨주었다. 반지를 받아든 감정사는 그것을 물이 담긴 넓적한 접시 위에 내려놓고 두 손을 그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 접시에 파문을 만들었다. 반지에는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이잉!
 
 잠시 뒤, 아이템 감정이 끝났다. 이상현은 그 모든 것을 담담히 지켜보았다.
 
 “아이템 감정이 끝났습니다.”
 
 감정사의 말에 이상현은 잽싸게 반지를 주워들어 정보를 확인했다.
 
 [원망의 반지(유일한)]
 -등급: 레어
 -제한: 소환술사
 -설명: 언제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남을 시기했던 소환술사의 원한이 깃든 반지입니다. 사악한 마음이 사용자에게 저주를 불러일으킵니다.
 -능력: C등급 이상의 소환수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근력, 체력, 순발력, 지력, 마력을 20씩 감소시킨다. 반대로 D등급 이하의 소환수들에게는 근력, 체력, 순발력, 지력, 마력을 +20씩 증가시킨다.
 
 [첫 번째로 레어 등급의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오, 레어!’를 획득했습니다.]
 
 “허허···.”
 
 이상현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매직 등급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레어 등급에다가 자신에게 꼭 맞춘 D등급 전용 아이템이라니!
 이제야 운명이 자신을 밀어주는 것일까? 이상현은 운명이라는 놈을 진하게 느꼈다.
 
 “오늘은 뭘 해도 되는 날인가?”
 
 되는 날!
 무엇을 해도 좋은 날!
 
 “진짜 끝내주는데?”
 
 D등급 이하의 소환수들의 근력, 체력, 순발력, 지력, 마력을 +20 증가시켜주는 반지라니.
 이상현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말이 레어 등급이지, 실제 능력만 놓고 보면 에픽 등급 이상이잖아.”
 
 만약 반지의 능력이 반대였다면 레어가 아니라 에픽 등급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원망의 반지는 대단했다. 사실상 에픽이나 다름없었다.
 
 “······?”
 
 문득, 어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니 감정사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
 
 아뿔싸! 이상현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남에게 못 볼 꼴을 보이다니!
 이런 망신이 있나!
 
 “좋은 아이템이 나오신 모양이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음에도 저희 가게를 꼭 방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수, 수고하세요!”
 
 이상현은 민망함에 황급히 인사하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덜 익은 토마토처럼 차분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망할! 그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나마 이면세계의 주민이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군. 상대가 이방인이었다면 잠도 못 잤을 거야.’
 
 이상현은 잔여 부끄러움을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장에 도작하니 호객행위가 제일 처음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없는 게 없는 아라바스의 시장이랍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요!”
 “······.”
 
 이상현은 적당한 가게를 골라잡아 잡템을 팔아치웠다. 흥정은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청동화 몇 개를 더 받자고 감정을 소모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인도 아니라서 구태여 흥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평균 가격만을 받고 잡템들을 몽땅 팔아넘겼다. 당연히 큰돈은 못 되었다. 기껏해야 사슴과 멧돼지의 부산물이었으니까.
 
 ‘은화 2개와 청동화 57개라.’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소환수들의 먹이와 도서관 입장료 정도는 되었다.
 
 ‘얼마 못 벌었네.’
 
 만약 흥정을 했다면 은화 3개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상현은 도서관 입장료를 놔두고, 소환수들의 먹이와 본인의 식량을 구매했다. 이방인(유저)도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때문이다.
 
 “예,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부지런한 입에는 음식물이 가득했다.
 
 우물우물!
 
 군것질거리를 꿀꺽! 다 먹어치우자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 내부에서 시끄럽게 떠드시거나 소란스럽게 하시면 쫓겨나실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상현은 주의사항을 듣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에 입장하셨습니다.]
 [칭호 ‘지식을 쌓으려는 자’를 획득했습니다.]
 
 ‘이곳은 처음이었나?’
 
 아라바스의 도서관은 중세시대 때 우후죽순 지어진 성당들과 비슷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높은 천장, 그리고 어두운 분위기까지. 흔히 알고 있는 고딕인지 뭔지 하는 것과 닮았다.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내가 책하고는 담을 쌓았으니.’
 
 거뭇거뭇한 색깔의 책장과 낡은 먼지가 내려앉은 고서들은 도서관의 나이를 말해주었다.
 이상현은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조용히 걸었다. 닥. 닥. 닥. 발자국 소리가 은근히 울려 퍼지며 잠자고 있던 고서들을 깨웠다.
 
 ‘그보다 이곳에 있다고 했었지.’
 
 책장을 가득 채운 고서들을 바라보는 이상현의 시선에는 열의가 가득했다.
 그것은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열망과 의지라고 할 수 있는 호기심이었다.
 이상현은 회귀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것을 원했다.
 
 ‘비밀의 책이.’
 
 그것은 바로.
 이면세계의 비밀의 책이었다.
 비밀의 책은 히든피스다. 신의 책이라고도 불리는데, 정확한 정보는 그 누구도 모른다.
 누군가는 예언서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안내서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공략집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야설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스킬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마도서라고 했다.
 말이 제각기 달랐다.
 뭐,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비밀의 책의 존재 자체는 인정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 나라에 한 권씩 숨겨져 있다고 했다.
 진실공방이 오랫동안 벌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비밀의 책의 존재 여부만큼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진짜 있을까?’
 
 이상현이 그런 뜬소문 같은 비밀의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간단했다.
 ‘예언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이 작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예언서’ 말이다. 때문에 궁금증과 함께 도서관으로 온 것이다.
 이상현은 책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무지하게 많네.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보냐? 보다가 지치겠다.’
 
 이상현은 시간 아깝게 도서관의 책들을 전부 다 읽을 생각이 없었다.
 편법으로 책장에서 책을 꺼낸 다음 첫 장, 그러니까 책의 제목과 목차만 확인할 생각이었다.
 모양새가 어찌 되었든 책을 ‘보는’ 거니까. 이상현은 그 방법이 안 통하면 깔끔하게 포기할 생각이었다.
 
 “······.”
 
 이상현은 책장 앞에 멈춰 섰다. 가슴과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자, 시작해볼까?’
 
 그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 * *
 
 [아드리아의 비밀과 그의 행적, 그리고 불륜]
 [한 권의 책을 보았습니다.]
 
 “······.”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들 중 하나를 빼내어 책 제목과 목차를 읽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반복 작업인 것치고는 의외의 재미가 쏠쏠했다. 제본 상태가 훌륭한 것만 보면 역사책이 분명한데, 막상 그 속을 까뒤집어보면 생각 이상으로 막장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상현은 노동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면서도 짭짤한 재미를 챙길 수 있었다. 동시에 겉만으로는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불륜이라. 뭔가 막장 드라마 같네. 게다가 시리즈고. 한번 읽어 볼까?’
 
 아드리아의 비밀과 그의 행적, 그리고 불륜은 흥미롭게도 시리즈물이었다.
 그것도 불륜, 도피, 결투, 이별, 결혼, 무덤으로 이어지는 대서사시 아니, 막장 로맨스 소설이었다.
 워낙 흥미로워서 작업을 멈추고 한 번 읽어 보았다.
 물론 그것도 잠시.
 
 “이럴 때가 아니지. 집중하자, 집중.”
 
 이상현은 정신을 차리고 아드리아의 비밀 시리즈를 책장에 도로 꽂아 넣었다.
 
 “집중.”
 
 흥미가 사라진 책장 앞에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꺼내는 소리와 표지를 펼치는 소리, 다시 책장에 집어넣는 소리만이 울렸다.
 그 소리들 말고는 조용했다. 오래된 책을 읽는 이방인(유저)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며칠간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 탓에 지독한 지루함이 몰려왔고, 지루함은 불안감을 낳았다.
 
 ‘헛짓거리를 하는 게 아닐까?’
 
 이상현은 현실적인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물론 지루함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회귀했다고 해서 전부 성인이 되는 건 아니니까.
 
  * * *
 
 이상현은 10일 동안 도서관과 거울의 숲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레벨은 37이 되었고, 돈은 은화 41개와 청동화 98개를 벌어들였다.
 큰 성과는 아니었다. 다른 이방인(유저)들이 50레벨을 넘겨서 거울의 숲을 벗어나고 있을 때, 여전히 도서관과 거울의 숲을 배회하고 있으니까.
 
 “······.”
 
 이상현은 조용히 콧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한 권의 책만이 남았다.
 단 한 권의 책만이!
 
 두근두근!
 
 그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독서를 한 게 아니라 책의 제목과 목차만 봤을 뿐인데도 10일이 걸렸다. 얼마나 많은 서적들과 씨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현의 심장은 요동쳤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드디어 끝을 맞이했으니까. 그래, 다 끝났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나 참. 뜬소문 하나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사실, 이틀이 지났을 때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차마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한번 시작한 일을 끝내지 않으면 두고두고 생각이 날 테니까.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작업에 매달렸고, 결국 오늘에 이르렀다.
 회의감을 느낀 것을 떠나서 이상현이라는 인간이 성숙해진 것은 분명했다. 끝을 맺었으니까.
 
 “자, 확인하자.”
 
 이상현은 손을 뻗었다. 히든피스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스윽.
 
 손가락이 책머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고는 쑥 뒤로 잡아당겨 책을 빼냈다.
 기다리고 있던 왼손이 책등을 받쳤다. 오른손이 머뭇거림을 삼키며 책표지를 넘겼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책의 제목이 드러났다.
 
 [루쿠루쿠의 생태계]
 [한 권의 책을 보았습니다.]
 
 “······.”
 
 그것은 비밀의 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현의 표정은 담담했다.
 마음도 차분했다. 사실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실망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시간을 낭비한 것은 뼈아프지만 그래도 확인해서 다행이었다.
 
 ‘돌아가자.’
 
 그렇게 책을 집어넣고 돌아서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잠자던 책들이 입을 엽니다. 책들이 노래하는 길을 따라가십시오.]
 
 이상현은 눈을 깜빡였다. 그것도 잠시. 곧바로 정신을 차려서 책들이 노래하는 길을 찾아보았다.
 
 ‘저기군.’
 
 책들이 노래하는 길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이상현은 유일하게 빛나는 책을 따라갔다.
 책의 빛은 이상현이 지나칠 때마다 꺼졌다. 반대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어딘가로 이어졌다. 그렇게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았을까?
 이상현은 어느 책장 앞에 섰다.
 
 “여긴···.”
 
 겉보기에는 다른 책장과 똑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빛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상현은 조심스럽게 그 책을 빼내 들었다.
 
 [아라바스 도서관의 마지막 빛이자, 신이 숨겨놓은 비밀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칭호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비밀의 책(?)을 획득했습니다.]
 
 “비, 비밀의 책!”
 
 찾아냈다.
 찾아내고야 말았다!
 비밀의 책을!
 
 “오오!”
 
 이상현은 감동에 찬 나머지 정숙을 깨트리고 웃음소리를 도서관에 마구 흩뿌렸다.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히든피스인 비밀의 책을 손에 넣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예언서···!”
 
 이상현의 마음은 달아올랐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무슨?!”
 
 드득! 드드득!
 
 이번에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식을 탐독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독서가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음흉한 장난입니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사람은 이 책을 열람하실 수가 없습니다. 야설입니다. 성인인증을 받으셔야 합니다.]
 
 야설···? 야설이라고? 내가 찾은 게 야설이라고? 예언서가 아니라 야설?!
 그리고 뭐? 성인인증? 성인인증?!
 
 “이런 씹···!”
 
 이상현은 진심으로 욕했다. 돌아오고 나서 성숙해진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쌍욕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뱉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영혼을 담아서 진심으로, 순결한 진심으로 욕을 퍼부었다. 자신을 문명인이라고 자칭하는 야후들의 논리적인 비판을 보는 듯했다.
 이상현은 분노는 그 정도였다. 이성을 잃어버려서 분노조절 장애에 빠져버렸다.
 도서관에 사람들이 없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퇴실 정도로 끝나지 않았으리라.
 이상현의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것일까? 시스템이 목소리를 냈다.
 
 [정상적인 접근 경로가 아니지만 신이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하여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
 
 뜻밖의 말에 분노조절 장애가 조절된 이상현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나타났다.
 
 [신의 자비]
 -설명: 우연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당신은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을 장난일까요? 당신에게는 이 책을 탐독할 권리가 없습니다(성인인증 실패). 그러나 신께서는 10일이 넘도록 엉뚱한 짓을 해온 당신을 불쌍히 여겨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1번: 체력 +10 상승.
 -2번: 비밀의 책 탐독.
 
 “······.”
 
 이상현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해야 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딱히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회귀한 덕분에 약간의 결심만 있으면 충분했다.
 
 “내 선택은 2번이다.”
 
 이상현의 선택은 1번이 아닌 2번이었다.
 
 [선택하신 뒤에는 바꾸실 수가 없습니다. 2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래. 2번이다.”
 
 이상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야설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여하튼 비밀의 책이 더 궁금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이상현은 자신의 궁금증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회귀했으니까.
 궁금증이 우선이다.
 그러자.
 시스템이 외쳤다.
 
 [위대한 신께서 당신의 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예언서도 아닌 야설을 읽기 위해 체력 +10을 포기하는 당신에게 신의 은총을 내립니다.]
 [특별한 칭호 ‘비밀의 책’을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소환수들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소환수들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소환수들의···.]
 [음흉함의 상징(?)을 획득했습니다.]
 [비밀의 책을 탐독하실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쏟아지는 보상의 홍수!
 신의 은총은 정말이지 화끈했다.
 
 “오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비밀의 책(야설)을 찾고서 기뻐하는 남자가 이곳에 있었다.
 
 “왜 야설일까.”
 
 이상현은 애써 찝찝함을 집어삼켰다. 도대체 왜 예언서가 아닐까?
 혹시 야설에 숨겨진 비밀이···?
 
 “확인해 봐야겠군.”

댓글(5)

Shristi    
2권까지 봤음.. 회귀,게임 물인데.. 어떻게 회귀한지도 모르겠고, 현실 이야기도 없음.. 주인공이 소환수에게 말하는 말투가 교장선생님 훈시하는 말투라 엄청 거슬림.. 그리고 스킬 등급에 개연성없음.. 주인공이 미친척 S급대신 B급 스킬 선택하는데.. B급 스킬이 S급 스킬보다 좋음.. 이딴걸 전체대여하다니.. ㅜㅜ
2019.06.09 12:09
[탈퇴계정]    
좋은말로도 추천은 못해드리겠네요...첫작이신거 같은데 파이팅하세요
2019.06.10 14:49
Shristi    
2권도 끝까지 못보고 하차합니다.. 전체대여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보려했는데.. 그냥 별다방 커피한잔 마셨다 생각하고 포기..
2019.06.10 21:11
윗층삼촌    
스토리도없고 그냥 사냥하는 이야기네요. 회귀요소 한개빼고는 별거없습니다. 보다보니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하는 현타가 오네요.
2020.10.20 17:58
운명조각    
스트레스 안받고 하고픈대로하고 살자가 메인인데.... 그냥 갈피못잡는 인간이구만.... 망...
2022.03.1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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