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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봉황이 포효하다 1권

2019.06.13 조회 2,349 추천 21


 조선, 봉황이 포효하다 1권
 목차
 프롤로그
 1. 전생하다
 2. 결심하다
 3. 막장이다
 4. 국방 붕괴
 5. 돈을 벌자
 6. 경회루 회동
 7. 경장론
 
 
 프롤로그
 
 
 꼬르륵.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배에서 소리가 났다. 혼자 지내는 고시원에는 먹을거리가 떨어진 지 오래였다.
 ‘이 번역만 마치면 그래도 돈이 좀 들어오니까.’
 나는 그렇게 겨우 배고픔을 억누르며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한문으로 된 옛 서적을 번역하는 알바를 하는 중이었다.
 한 장 번역하는데 5천 원.
 이 서적이 대충 100장쯤 되니 다 번역하면 5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나름 역사학 박사 학위까지 땄는데 한 달에 겨우 50만 원 벌다니······.’
 그런 자괴감도 들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역사학 같은 가난한 학문을 전공한 내 탓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번역을 하려는데,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빙글빙글.
 허공이 돌아서 도무지 번역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번 달은 돈 나갈 일이 많아서 일주일에 3~4일은 굶으며 버텼다.
 20대 초반에는 그래도 잘 버텼는데,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뭘 좀 먹어야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억지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고시원 옆방으로 향했다. 옆방에서 9급 공무원 준비를 하는 공시생에게 뭐라도 먹을 걸 달라고 할 참이었다.
 사실 몇 달 전에도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공시생은 흔쾌히 컵라면을 내주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사는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다 가난했다. 옆방 공시생도 시골의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학원비를 대고 있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폐를 안 끼치려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급했다.
 똑똑.
 나는 어지러움을 간신히 참으며 옆방 문을 두드렸다. 식은 밥 한 덩이라도 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학생이 없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내 방에 돌아가려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털썩.
 그리고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고시원 복도에 무너져 내렸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해도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리고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덜컥.
 그제야 옆방 문이 열리고 공시생이 나왔다.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다. 인강을 듣느라 문 두드리는 소리를 늦게 들은 모양이다.
 “어, 이보세요. 정신 차려요.”
 쓰러진 나를 보고 공시생이 놀란 듯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다가 다급하게 손발을 허둥대며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꿈처럼 보였다.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1. 전생하다
 
 
 “흐흐흑, 전하.”
 사방에 엎드려 있는 여러 사람들이 일제히 통곡을 하고 있었다.
 꼬르륵.
 그러나 여전히 굶주린 내 뱃속은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죽어서도 여전히 배가 고픈 건가?’
 그런 잡생각을 하는데, 머리가 아픈 것도 여전했다. 아니 아픈 정도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폭포가 쏟아지듯 엄청난 정보가 강제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기억, 지식들이 일방적으로 내 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으윽.”
 엄청난 통증 때문에 신음소리를 입 밖에 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주위의 사람들의 울음이 뚝 그쳤다.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의 한 남자가 내 곁에 가까이 왔고, 손가락을 내 코밑에 가져다 대더니 반색하며 외쳤다.
 “주상의 숨결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 이어지고 있어. 어의 영감이 와서 진맥을 해보시오.”
 그런데 머리의 통증 외에도 계속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었다. 배고픔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의 손목을 쥐며 말했다.
 “먹을 것, 먹을 것을.”
 “전하.”
 내 말을 듣자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는 감동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입가를 씰룩거리며 울먹거리더니, 그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외쳤다.
 “주상께서 수라를, 수라를 찾으신다. 나인들은 무얼 하는 게냐. 서둘러 수라를 대령해라.”
 
 * * *
 
 후르륵.
 나는 드러누운 채로 조금씩 미음을 먹었다. 분홍빛 저고리를 걸친 이쁘장한 여인 하나가 나무 수저로 미음을 떠서 내 입에 떠먹여주고 있었다.
 미음을 삼킬 때마다 조금씩 내 몸의 원기가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머리의 심각한 통증도 가라앉았다.
 아니 애초에 두통은 내가 원하지 않은 요상한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생긴 것이었는데, 그 기억들이 내 뇌리에 가지런히 정리되며 두통이 멈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훑어보던 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조선의 제12대 왕 인종이다. 무슨 전생이라도 한 것인가?’
 믿기 어려웠지만 내 머릿속에 새로이 쏟아진 기억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굶어죽은 나는, 조선의 왕 인종의 육체와 기억을 가지고 다시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조선의 왕 인종.
 “조선에 인종이라는 임금도 있었어?”
 이렇게 반문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종은 조선의 27명의 왕 중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걸로 유명한 왕이었다. 딱 8개월 재위하고 병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인 중종의 삼년상을 치르느라 식사를 제대로 안 하다가 쇠약해져서 죽은 왕인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온 인종의 기억을 보면 단순히 삼년상 때문에 식사를 못한 것은 아니야.’
 나는 드러누워 있는 상태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조선 인종이 식사를 제대로 안 하고 거의 거식증 증세를 보인 것은 단순히 삼년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눈을 굴리며 내 머리 속의 기억을 정리하는 동안, 흰 수염을 늘어뜨린 어의가 내 맥을 짚고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방금 전에는 전하의 맥이 순간 끊어지며 숨이 넘어가셔서 실로 천붕의 변이 일어났다고 소신은 생각했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다시 맥이 이어졌으니 실로 나라의 경사입니다. 비록 몇 달간 식사를 거르셔서 극도로 쇠약하시긴 하나 신이 지금 맥을 짚어보니 뛰는 것이 매우 또렷하십니다. 우선 위험한 고비를 넘기셨으니 몸을 보하고 원기를 북돋으셔야 합니다.”
 ‘사실 방금 전에 인종이 죽은 게 맞아. 다만 뭔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으로 내가 죽은 인종의 몸에 들어온 거지. 어쩌면 인종은 거식증으로 아사했고, 나는 굶어서 쓰러졌다는 공통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내가 그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곁에 엎드려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내 숨결을 살피는 등 적극적으로 간호한 사람이었다.
 “근 몇 달 만에 주상께서 미음 한 그릇을 온전히 비워내셨으니 실로 나라의 홍복입니다. 전하. 제발 앞으로는 식사를 거르시지 마옵소서.”
 인종의 기억을 흡수한 나는 그 남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형조판서 윤임.
 ‘인종, 아니 지금 나의 외숙부이기도 하지. 외척으로 내 후견인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사람. 인종이 죽기 전까지 식사를 제대로 안 해서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군. 우선 마음을 놓게 해줘야지.’
 “방금 전 숨이 넘어갈 즈음 생각해 보니 실로 내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함이 옛 조종께 불충, 불의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붕어하신 선왕에게 예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내 몸부터 챙길 요량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외숙.”
 윤임이 마음을 놓으라고 다정하게 형조판서란 관직명이 아닌 외숙이란 사사로운 칭호로 불러주었다.
 “전하.”
 내 말을 들은 윤임은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부르짖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우선은 내 몸부터 추슬러야 해. 인종이 죽기 전까지 제대로 식사를 안 해서 몸이 쇠약하기 짝이 없군. 거기에 갑자기 전생하며 인종의 방대한 기억을 흡수했더니 머리가 뒤죽박죽.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건강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야.’
 내 나름대로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수런수런.
 갑자기 내가 누워 있는 침전 밖이 어수선해졌다. 건강한 사람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소란이었다. 몸이 부대끼는 나는 그 소란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내 기색을 예민하게 알아챈 윤임이 내시 하나를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주상께서 누워 계신데 이런 소란이라니. 대체 나라의 기강이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당장 나가서 조용히 시키거라.”
 윤임의 호통을 들은 내시가 놀란 듯 고개를 숙이며 총총히 문 밖으로 나섰다.
 쿵쾅쿵쾅!
 그러나 내시가 나가고 나서도 소란은 가라앉을 생각을 안 하고 더해만 갔다. 윤임은 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리고 직접 문 밖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때 윤임의 호통을 듣고 나간 내시가 놀란 듯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말을 이었다.
 “지금 대비 마마께서 전하의 침전으로 병문안을 오신다고 합니다. 여러 중신들이 말렸으나 어미로서 어찌 자식이 죽다 살아났는데 보지 않을 수 있냐고 하시며 행차하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 궁인들이 갑자기 대비 마마의 행차를 준비하느라 부득이하게 소리를 냈다고 한데, 소인들이 어찌해야 좋을지요?”
 내시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말을 잇는데, 그 말을 들은 윤임은 덥수룩한 수염을 부들거리며 격노한 표정이었다.
 작금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 즉 인종의 아버지는 조선 11대 왕 중종이다. 왕이 된 후 장경왕후 윤씨를 왕비로 들였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얼마 안 가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를 일찍 잃긴 했지만, 인종은 정실 왕비에게서 난 아들이니만큼 순조롭게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혼자 살면 좋으련만 중종은 굳이 2번째 왕비를 들였으니, 이 사람이 저 유명한 문정왕후 윤씨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이 문정왕후도 아들 경원대군을 낳았다.
 이 상황에서 문정왕후가 할 생각은 뻔하다.
 “세자만 사라지면 내 아들 경원대군이 보위를 이을 수 있을 터인데.”
 이런 생각에서 문정왕후는 안 그래도 병약한 인종을 교묘하게 괴롭히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인종은 똑똑하긴 했으나 심성이 선량한, 요즘 말로 하면 호구처럼 착한 남자였다. 그런 만큼 새엄마인 문정왕후의 압박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거기에 왕비가 이렇게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대놓고 설치니, 조정의 신하들도 아예 두 개의 파벌로 갈려 버렸다.
 나, 인종을 지지하는 파벌: 대윤
 경원대군을 지지하는 파벌: 소윤
 나, 즉 인종을 지지하는 세력의 우두머리는 내 외숙인 윤임이었다. 이에 맞서 경원대군을 지지하는 세력의 수장은 문정왕후 윤씨, 그리고 문정왕후의 동생들인 윤원로, 윤원형.
 두 파벌의 우두머리가 모두 윤씨라서 대윤, 소윤으로 나누어 부르는 것이다. 사실 인종이 왕위에 오른 순간 이 파벌 싸움은 대윤의 승리로 끝나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선량한 인종이 소윤에게 정치 보복을 가하지 않았고, 덤으로 인종이 병약한데다 후사까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인종이 일찍 죽는다면 경원대군이 즉위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가능성을 믿고 소윤 파벌의 신하들은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실제 역사도 그렇게 된다. 인종이 일찍 죽고 경원대군이 왕위에 올라 명종이 되는 것으로.
 그러나 내가 죽은 인종의 몸으로 바로 전생하며 역사의 물줄기는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인종의 기억을 살펴보면 삼년상 치르면서 거식증에 걸린 것에는 문정왕후가 가한 스트레스도 분명히 있어.’
 제삼자의 시각에서 인종의 기억을 검토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이런 상황에서 병문안이라니, 이것이 선의일 리 없었다. 새엄마라도 어머니는 어머니.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왕이라도 번거로운 예법을 갖춰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족히 몇 시간은 걸리는 과정이었다.
 아파서 골골대는 병자에게 좋을 리가 없었다. 대비, 즉 문정왕후가 지금 타이밍에 병문안하는 것은 내가 어서 죽으라고 교묘한 압박을 가하려고 오는 것이다.
 앞뒤 정황을 보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태였다. 그러니 나를 보위하는 외숙 윤임이 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뻔뻔하긴 해도 효과적인 술책임은 틀림없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런 교묘한 책동에 병약한 인종이 못 견디고 병사하니. 좋아. 이번 한 번은 속아주지.’
 나는 차갑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대비께서 오시는데 내 어찌 이리 홑적삼 차림으로 있겠느냐? 어서 의관을 정제해서 가져오너라. 내 예법대로 대비 마마를 모시겠다.”
 “저, 전하.”
 내가 방금 죽다 살아난 것을 아는 윤임은 안타깝게 외쳤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도리가 없었다.
 ‘단순히 예법을 지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적인 문정왕후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예전의 착한 인종처럼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를 갈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미음을 한 그릇 먹어서 미미하게나마 기운이 회복되었다.
 내 포부는 당찼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죽다 살아난 몸은 여전히 골골거렸고, 나도 불과 몇 시간 전에 전생을 한 판국이었다.
 물론 죽은 인종의 기억을 흡수해 순식간에 상황파악을 하긴 했어도 뭔가 당장 상황을 반전시킬 계책을 내기는 어려웠다.
 이럴 때는 그냥 억지로 참는 수밖에.
 “대비 마마. 과인의 몸이 불미하여 마마를 근심케 했으니, 과인의 죄가 큽니다.”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곤룡포를 걸치고 익선관을 쓴 내가 입을 열었다. 문정왕후는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이었다.
 ‘하긴 오랜 세월 중종의 왕비로서 내명부를 장악하고 있었으니 궁 안의 동태는 훤하지. 인종, 즉 내가 다 죽어가고 있다고 들었다가 이리 내가 골골거리긴 해도 건재하니, 놀랐겠지.’
 그러나 문정왕후는 과연 노련했다. 순식간에 놀란 표정을 감추더니 입을 열었다.
 “사사롭게는 어미로서, 공적으로는 이 나라 종실의 어른으로 주상의 옥체가 편치 않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근심이 컸는지 모릅니다. 이리 깨어나시니 실로 조종의 은덕이 틀림없습니다.”
 고상한 문자를 구사하는 게 얼핏 보면 정말 내 건강을 염려해주는 것 같았다. 선악을 따지지 않고 평가한다면, 문정왕후는 조선 역사상 여인의 몸으로 나라를 호령한 최초의 인물이니만큼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한문을 능숙하게 쓰고 읽으며 사서오경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런 만큼 예법상으로는 완벽한 말과 행동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이 망할 년. 제발 적당히 하고 꺼지지.’
 병든 몸으로 예법을 갖추려는 내 등허리에 벌써 땀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었다. 곤룡포 아래의 내 다리도 의지와 관계없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나는 이를 사리물며 윗사람을 대하는 예법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문정왕후는 아예 나인들을 시켜 차상까지 들이게 했다.
 그러면서 나와 문정왕후는 예법대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 병문안을 핑계 삼은 고문은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정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병색을 숨길 수 없었다.
 얼굴이며 손등까지 땀이 흐르고 몸이 떨렸다. 그럼에도 모른 척하고 병문안을 빌미로 나를 괴롭히던 문정왕후였지만 그것에도 한도가 있었다.
 2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뻐팅길 명분도 얘깃거리도 떨어진 문정왕후가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이 어미가 걱정이 되어 잔사설을 너무 길게 늘어놓아 주상의 심신을 더욱 불편하게 한 것 아닌지 심려되옵니다.”
 가증스럽게도 그런 말을 늘어놓으며 문정왕후는 나를 걱정해주는 척하며 겨우 침전을 나섰다.
 휘청.
 내 시야에서 문정왕후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내 몸이 비틀거렸다.
 “전하.”
 윤임이 재빨리 곁으로 와 내 몸을 부축했다. 문정왕후가 내 체력을 소진시키는 동안 이만 갈뿐 윤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시며 나인들이 내 곁에 몰려와서 의관을 벗기고 열심히 손발을 주물렀다. 그러니 겨우 약간의 기력이 돌아왔다.
 “죽을 가져와라.”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리 힘들 때일수록 잘 먹어야 했다. 실제 역사 속의 인종은 이 압박 속에서 식사마저 거르다가 죽어 버렸으니.
 30분에 걸쳐 나인이 떠주는 죽 한 사발을 느릿느릿 먹으니, 겨우 약간의 기력이 돌아왔다. 그러니 저절로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문정왕후. 과연 여걸이야. 저러니 멀쩡히 있는 적장자인 인종을 제치고 자기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겠지.’
 약간 배가 부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문안을 빌미로 소란을 피우거나 인종의 체력을 소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치졸하긴 해도 작금의 상황에서 문정왕후가 쓸 수 있는 최선의 패였다.
 나나 윤임도 그것을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의 큰 어른인 대비의 병문안을 무슨 명분으로 막는단 말인가?
 ‘그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지. 계속 이런 병문안을 받다간 죽진 않더라도 몸을 추스르는 기간이 오래 걸리니.’
 내가 흡수한 인종의 기억. 그리고 미래의 역사학도로서 얻은 지식까지 고려해서 나는 차분히 계획을 세워나갔다.
 
 문정왕후의 말 많고 탈 많은 병문안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의를 불렀다. 내 손목을 쥐고 진맥한 어의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맥이 약하긴 하나 안정적입니다. 실로 전하께서 마음을 굳게 잡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근 몇 개월간 전하께서 살 뜻이 없는 듯이 몸을 돌보시지 않으니 어의로서 신의 근심이 컸는데 이리 회복되시니 다행입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인 인종은 사실 식사도 거르고 약도 몇 개월간 안 먹었었다. 그러기에 어의로서도 손 쓸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최소한 식사는 꼬박꼬박 하니 다행일 수밖에 없었다.
 “내 근 몇 달간 정사를 손에 놓았으니 오늘은 무리를 해서라도 국정을 병석에서라도 살펴야겠다. 어의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가 기운을 내어 여러 일을 돌볼 수 있도록 약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윤임이 먼저 외쳤다.
 “아니 되옵니다. 아직은 옥체가 미령하신데.”
 어의도 말을 이었다.
 “소신이 말을 잘못 올린 듯싶사옵니다. 몸이 약간 나아지셨으나 정사를 살필 만한 정도는 아니옵니다. 게다가 순간 기운이 나게 하는 약은 강장약을 뜻하는데, 그런 약을 먹으면 1~2일은 원기를 회복하는 듯해도 그 이후에는 반작용으로 더 몸이 가라앉습니다.”
 윤임과 어의가 그리 말했지만 나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내 병이 깊어 앞으로도 몇 달 간 정사를 돌보지 못하니 의정부로 하여금 작은 일들은 알아서 처리하라는 교지를 내리기 위해 오늘 일을 하려고 한다. 오늘 하루 일을 처리한 뒤 몇 달간 쉬겠으니, 그대들은 더 이상 내 말에 토를 달지 말라.”
 병석의 왕이 그리 강경하게 말하니 도리가 없었다. 어의가 우물쭈물하더니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뒤 약사발을 들고 왔다.
 “인삼 달인 물에 부명환을 곁들어 먹으면 순간 기운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곁의 상궁을 보며 말했다.
 “기미하거라.”
 상궁은 조심스레 환약 하나와 약사발의 인삼물을 마셨다. 조금 시간이 지나도 별 이상이 없었다. 나도 그 덕에 거리낌 없이 어의가 바친 약사발을 들이켰다.
 과연 어의의 말 대로였다. 15분쯤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온기가 돌더니 몸의 뻑적지근함이 사라졌다. 길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킨 내가 윤임에게 말했다.
 “그대는 밖에 나가 도승지를 불러 입시케 하라. 그리고 그대도 간만에 사가로 가 쉬고 관복을 갈아입도록 하라. 내 오후쯤에 조정의 대소신료들을 부를 터이니 그때 필히 참석하도록 하라.”
 내 말에 윤임이 뭐라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내 외숙인 윤임은 외척이기는 하나 국왕의 위세를 믿고 세도를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실 윤임은 무과를 거친 무장 출신으로, 중앙정계에서 음모를 꾸미거나 정치력을 발휘할 능력이 안 되었다.
 다만 무장다운 단순함으로 외조카이자 국왕인 나를 지키려는 경호실장 노릇을 충실히 하려는 위인이었다.
 즉, 내 의지가 굳으면 그냥 따르는 인물이라는 것.
 윤임은 뒷걸음질 치며 침전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는데 몸에 또 다시 피로가 몰려왔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인종은 몸 관리를 얼마나 안 했길래 잠깐 일어나 있는데도 이리 피곤해. 인삼물까지 먹었는데.’
 나는 속으로 그리 투덜댔다. 하긴, 원래 건강이 안 좋은데다가 아버지인 중종이 죽고 근 8개월간 식사를 부실하게 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인종은 여러모로 오래 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살아야지. 이왕 왕의 몸으로 전생했으니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 밖에서 내시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전하, 도승지 입시이옵니다.”
 “들라하라.”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관복을 입은 30대의 호리호리한 남자가 침전으로 들어섰다. 인종이 즉위함과 동시에 도승지로 발탁된 이명규였다.
 뭐 도승지란 왕의 바로 곁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비서실장 같은 신하였다. 왕이 신하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릴 것이 있으면 도승지를 거쳐서 명령을 내려야 했다.
 엄청난 실권을 가진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다만 인종이 즉위하자마자 삼년상을 치르면서 병상에 누워 지냈으니 도승지도 그동안은 할 일이 없었다.
 “전하, 옥체는 평안하신지요.”
 내 앞에 부복한 도승지 이명규가 힐끔힐끔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주역에 이르기를 물극필반이라. 어떤 일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거꾸로 향한다고 하였다. 내 병세도 그와 같아 어제는 상세가 극심하였으나 그 고비를 넘기자 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원래는 병세가 극에 달해 인종이 죽고 내가 대신 전생해 온 거지만 그걸 고백할 필요는 없었다.
 “나라의 홍복이옵니다.”
 도승지 이명규가 반색을 하며 그리 대답했다. 하긴 8개월 전에 중종이 승하한 상황에서 나마저 죽어버리면 1년 사이에 두 번 왕이 교체되는 셈이었다.
 정국이 당연히 불안해지고 정치판에 몸담은 관료들도 편치 않은 것이다.
 “내 병을 다스리느라 그간 정사를 살피지 못하였다. 오늘은 상세가 조금 나아졌으니 군국의 사무를 살펴 조신들에게 위임한 뒤에야 마음 편히 병을 다스릴 수 있겠다. 그대는 의정부와 육조의 당상관들이 오늘 오후 내에 모두 내 침전 앞에 모이도록 연통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승지 이명규는 그리 말했다. 그리고 내 명령이 모두 끝난 줄 알고 뒷걸음질 쳐서 밖으로 나서려 했다.
 나는 입을 열어 그런 이명규의 발걸음을 멈추어 세웠다.
 “경원대군은 사사롭게는 내 아우가 되고 공적으로는 종친이자 신하이다. 신자 된 도리로 어찌 문안을 오지 않는 것이냐? 도승지는 경원대군에게도 연통을 넣어 조신들과 함께 침전에 들어 문안인사를 올리라고 하라. 아, 그리고 내 근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아우가 올리는 식사는 먹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경원대군으로 하여금 문안을 올 때 음식도 함께 싸오라고 하라.”
 내 장황한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명규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나와 경원대군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아는 이명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도승지답게 이명규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총총히 물러났다.
 그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명규랑 잠시 만난 것뿐인데 몸이 무거웠다. 오늘도 그저 하루 종일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 일을 마무리 지어야 앞으로 몇 달간 편히 쉴 수 있는 것이다.
 “대신들이 모일 때까지 한숨 자야겠다.”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보료 위에 드러누웠다.
 
 * * *
 
 웅성웅성.
 잠에 취한 내 귀에 미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두 눈을 번쩍 떴는데 창호지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따가웠다. 벌써 늦은 오후였다.
 “중신들은 모두 모였느냐?”
 곁에 시립한 내시에게 물으니 내시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예, 전하. 한 시진 전부터 침전 밖에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히익, 한 시진이나 중신들이 기다렸다니.
 “나를 깨우지 그랬느냐?”
 내가 그리 타박하자 내시가 난감한 듯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전하께서 워낙 곤히 주무시고 계셔서.”
 하긴 미리 깨워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내 실수였다.
 “삼정승 및 육조의 판서, 그리고 경원대군은 침전에 들여라. 그리고 침전의 문을 열어놓아라. 침전 밖의 당상관들도 내 명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몸을 일으키고 의관을 정제하며 그리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러 내시들이 신속하게 움직여서 침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삼정승, 육판서, 경원대군. 그렇게 10명이 내 침전 안까지 들어왔다. 침전 밖 섬돌 위에는 여러 당상관들이 두 손을 모아 시립한 채 서 있었다.
 ‘뭐 밖에 나가면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양반들이지만 여기에서는 별게 아니니. 그러고 보면 나는 왕이군.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
 섬돌 위에 서 있는 당상관들을 보니 그것이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어쨌거나 영의정 윤인경을 비롯한 10인이 일제히 내 앞에서 절을 하며 부복했다.
 “내 잠시 잠에 취해 여러 중신들을 세워두었으니 실로 민망합니다.”
 내가 가볍게 그들을 기다리게 한 것을 사과했다. 삼정승과 육판서 대부분이 백발의 늙은이들인데 세워두었지 뭔가? 확실히 미안했다.
 “신자 된 도리로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옵니다. 주상께서는 개의치 마시옵소서.”
 백발이 성성한 영의정 윤인경이 그리 말했다.
 어쨌든 이 나라 조선은 유교국가로 정사를 볼 때도 인사치레로 해야 할 말들이 많았다. 나는 여러 대신에게 예법대로 인사를 건네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병을 다스려야 정사를 돌볼 수 있을 터인데, 내 보기에 이 병의 뿌리를 뽑으려면 몇 달간은 쉬어야 할 듯하다. 그러니 작은 일들은 그동안 의정부의 삼정승이 논의해서 정하라. 다만 인사에 관한 결정은 내 몸이 나을 때까지 미뤄두라. 또 외방의 적변이 발생할 시에는 지체 말고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라.”
 뭐 간단히 말해 인사나 군사에 관한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승, 판서들에게 위임한다는 소리였다.
 사실 내가 하나마나한 소리였다. 이제까지도 병석의 인종을 대신해 나랏일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경원대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13세 소년인 만큼 어른들이 모여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만 있으니 지루할 법도 했다.
 “허허. 경원대군은 요사이 글공부는 잘 하고 있는가?”
 내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경원대군에게 말을 걸었다. 얼핏 보면 참 이복아우를 살갑게 챙기는 선량한 남자처럼 보일 것이다. 실제로 인종은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뭐 아닌 말로 나한테는 아무 피도 안 섞인 꼬맹이였으니까.
 “소학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경원대군이 그래도 교육을 잘 받았는지 예를 갖추며 그리 대꾸했다.
 “내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아우인 경원대군이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왔으니 들지 않을 수 없다. 경원대군과 함께 식사를 하겠노라.”
 사실은 내가 언질을 줘서 경원대군이 음식을 준비한 것이지만 나는 마치 경원대군이 스스로 음식을 준비해 온 것처럼 말했다. 그러자 재빨리 경원대군은 미리 자신의 거처에서 준비해온 찬합을 바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변변치 않은 것들이지만 주상께서 맛보신다니 실로 광영이옵니다.”
 경원대군이 준비해 온 음식은 전복으로 끓인 죽과 쑥떡이었다. 뭐 어떤 음식이라도 상관없었다.
 상궁과 나인들이 경원대군으로부터 찬합을 받아들고 그것을 상 위에 차려서 내 앞에 대령했다. 경원대군 앞에도 상 하나가 놓였다.
 숟가락으로 전복죽을 떠먹은 나는 입을 열어 음식을 칭찬했다.
 “실로 맛있도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요리를 준비한 사람의 솜씨가 비범한 듯싶었다. 쑥떡도 지나치게 찰지지도 않고 퍽퍽하지도 않고, 딱 먹기 좋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와 경원대군의 화기애애한 식사를 여러 중신들은 멀뚱멀뚱 지켜만 보고 있었다. 사실 남들이 식사하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자니 뻘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일이 흐르다 보니 몸을 뺄 타이밍을 놓친 중신들은 그저 멍하니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지루한지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슬며시 하품을 하는 대신도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 기이한 소성과 함께 이 지루한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졌다.
 “우에엑.”
 신나게 죽을 먹던 내가 피를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내의 분위기는 무슨 서리가 내린 것처럼 팽팽해졌다.
 주르륵.
 분홍빛 핏물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전복죽과 뒤섞인 핏물이었다.
 ‘잇몸을 너무 세게 찔렀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이렇게 피를 토하는 것은 내 자작극이었다.
 쑥떡을 하나 손으로 집어 먹는 척하면서 넓적한 소매로 입가를 가리면서 손톱으로 야무지게 잇몸을 찔렀다. 많은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전복죽과 뒤섞이니 많아 보였다.
 내가 미쳐서 이런 자작극을 벌이냐고? 결코 아니다. 내 나름대로 신중하게 계획한 일이었다.
 만약 곁에 있는 사관이 이 일을 기록한다면 어떻게 기록할까?
 ‘모월 모일, 병중의 주상께서 중신들과 경원대군의 문안을 받으셨다. 이때 경원대군이 주상의 병을 걱정하며 전복죽과 쑥떡을 진상하였다. 상께서 흡족해하시며 식사를 하셨는데 식사 도중 갑자기 피를 토하셨다.’
 아마 미래의 음모론자들이 이 기록을 본다면 두 눈이 번쩍 빛날 것이다. 음모론자들의 상상을 매우 자극하는 대목이 아닌가?
 대윤과 소윤이 대치하고 있는 정국, 병중에 있는 왕. 그리고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인 경원대군이 바친 음식을 먹고 피를 토했다.
 ‘독살!’
 미래의 음모론자의 뇌리에 그 단어가 꽂히며 기뻐할 것이다.
 미래의 음모론자뿐만 아니라 작금의 중신들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긴 대개가 과거를 패스한 머리가 좋은 양반들인데다가, 정치판에 몇 년간 구르며 당상관이 된 사람들이다.
 지금 정국에서 이런 장면이 연출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었다.
 
 
 2. 결심하다
 
 
 “저, 저언하.”
 연로한 영의정 윤인경마저도 혼비백산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 이 상황이 잘못하면 엄청난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경원대군만이 대체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에 중신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고, 경원대군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나이가 어리긴 해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내 병중에서 오랫동안 식사를 못하다 갑자기 음식을 들다 혀를 깨물었다. 그러니 여러 제신들은 놀랄 필요 없다.”
 내가 그렇게 입을 열며 사태를 수습했다. 혀 대신 잇몸에 상처를 낸 것을 제외하면 진실이었다. 원래도 적당히 의혹거리만 만들어놓고 이쯤해서 수습할 요량이었다.
 달랑 쇼 한 번으로 경원대군을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서야 여러 신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신들과 경원대군을 데리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했더니 나는 매우 지쳤다. 그리고 어의의 말 대로 약으로 잠시 기운을 냈더니 그 후유증이 장난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은 꼼짝도 않고 누워서 미음만 받아먹어야 했다. 그래도 요 며칠간 내 주위는 차분하고 평온했다.
 ‘문정왕후는 똑똑한 여편네니까 내 뜻을 잘 파악할 줄 알았어. 과연 조용히 있는구만.’
 내가 괜히 경원대군을 데리고 그 쇼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도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보내는 신호였다.
 더 이상 심상치 않게 움직이면 경원대군을 치겠다는 경고. 내가 벌인 자해 쇼도 그 일환이었다. 내 자작극으로 경원대군에게 위협 공격은 가한 셈이었다.
 ‘아무리 여걸이라지만 자기 자식은 소중하겠지.’
 경원대군을 건드리자 문정왕후는 그야말로 급소를 찔린 듯 잠잠해졌다. 병문안을 한다고 소란도 안 피우고 쥐죽은 듯 있었다.
 중신들 앞에서 그 쇼를 벌였으니, 무마됐다고는 해도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독살 소문이 도는 와중에 문정왕후가 병문안을 구실로 날 괴롭히면 그야말로 사람들의 의혹이 더욱 거세질게 뻔했다.
 ‘거기에 어쨌거나 피를 보여줬으니 내 병세가 아직도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병으로 그대로 쓰러질 것을 기대하고 잠시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다.’
 문정왕후나 소윤에게도 어느 정도 희망을 보여줘야 잠잠히 있지. 꾸준히 내가 회복된다는 것을 알면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몰랐다.
 ‘우선은 빨리 빨리 몸을 회복시켜야지.’
 몸의 회복에는 역시나 꿀잠이 최고다. 나는 잡생각을 중단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먹고, 자고, 약 먹고. 먹고 자고 약 먹고.
 이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열흘이 지나자 내 기운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식사를 거르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동안 내 외숙 형조판서 윤임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면서 식사나 약이 들어올 때마다 직접 기미를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입을 열었다.
 “경원대군이 바친 떡을 먹고 피를 보신 일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사옵니다. 이리 넘기실 일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다시 조사해봄이 어떻겠습니까?”
 윤임이 수염을 부들거리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윤임은 진짜 경원대군이 독살 비스무레한 것을 시도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사실 윤임이 이리 의심을 하는 것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인종이 세자이던 시절에 식사에 식중독을 일으키는 상한 생선이 올라온 적이 2번이나 있었다.
 어설픈 독보다 효과적인 것이 상한 음식을 먹여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당시 중전으로 내명부를 장악하고 있던 문정왕후에게 의심이 쏠렸으나 흐지부지 무마되고 말았다.
 ‘흐음.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전례가 있다고 해도 이번 일이 내 자작극인 걸 눈치 못 채고 문정왕후 쪽 짓이라 의심하는 건 정치 센스가 너무 없는 건데. 윤임, 이 아저씨는 참 단순하구만.’
 물론 문정왕후는 기회만 된다면 날 독살하고도 남을 여편네다. 하지만 그것은 은밀히 이루어져야지, 중신들이 다 보는 앞에서는 결코 아니다.
 중신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내가 경원대군의 음식을 먹고 쓰러지면, 그 역풍을 맞는 것이 문정왕후였다. 그랬다가는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윤임, 이 아저씨는 게다가 내가 그날 일부러 대신과 경원대군을 불러들인 걸 봐놓고도 자작극인지 눈치를 못 채다니. 믿을 만하고 우직하긴 해도 정치력은 꽝이야.’
 난 아예 그렇게 윤임에 대한 평가까지 끝내 버렸다.
 어쨌거나 한동안 몸을 회복하기 위해 뒹굴뒹굴 누워만 있다 보니 심심하긴 하다. 잡생각도 자주 난다.
 ‘서기로 따지면 올해가 1545년인가?’
 간지로 따지면 갑진년. 나름 역사학 박사 학위도 딴 만큼 간지로 갑진년이란 것을 듣고 계산해서 1545년이란 것을 알아냈다.
 ‘1592년에 터지는 임진왜란으로부터 딱 47년 전이로군. 게다가 왕의 몸으로 전생을 했으니.’
 솔직히 역사학도로서 흥분되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책을 읽다 보면 숨 막히고 갑갑한 부분이 너무 많다.
 특히 조선.
 세종대왕 이후 역사서를 보자면 울화병이 걸릴 지경이다. 읽다가 그냥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이 무럭무럭 솟구친다. 그만큼 외세에 억눌리고 안으로도 제 나라 백성들 탄압하는데 열중하는 답 없는 나라 조선.
 특히 임진왜란 이후의 역사를 보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다. 일본의 침공에 형편없이 무너지는 조선군. 그리고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나는 왕과 귀족들.
 또 전쟁이 끝나자 벌이는 일이 전쟁영웅들을 탄압하는 짓이다. 거기에 더 나쁜 것은 이미 능력도 없고 도덕성도 없는 이 조선이란 나라가 교체되지도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더욱더 강력하게 진행되는 노답화.
 ‘하지만 그나마 조선에 가능성이란 게 있는 임진왜란 47년 전에 왕의 몸으로 내가 전생했다는 건 뭔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라는 의지 아닐까?’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감돈다.
 조선이라는 약하지만 악한 국가가 지속되며 생긴 비극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죽어가고 끌려간 보통 사람들.
 또 엄청난 재능을 타고나서도 폐쇄적인 조선의 체제 아래서 그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죽어간 인재들도 떠오른다.
 삼군의 군량을 댈 재주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평생 시골 노인으로 책만 쓰다 죽은 유형원, 상업 진흥이 조선이 나아갈 길이라 믿었지만 끝내 그 일을 이루지 못한 박제가, 대학자이자 관료였지만 19년간 유배당해 책만 써야 했던 정약용 등등.
 아니 이런 학자들은 양반이고 그나마 책을 열심히 써서 기록으로나마 남아 있지, 평민이나 천민으로 태어나 훌륭한 재능을 썩힌 채 스러져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게 닫혀버린 가능성들.
 ‘다시 주어진 삶은 이 나라에 수백 년간 벌어질 그런 비극들을 막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
 가만히 누워 있는 내 머릿속에 그런 굳은 결의가 스쳐지나간다.
 
 ***
 
 홀짝 홀짝.
 드러누운 채로 나는 나인이 수저로 떠주는 약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우선 이 나라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긴 세웠다.
 그런데 현실이 시궁창이었다.
 당장 정치적 상황만 해도 왕인 나는 건강이 안 좋아 골골 대고, 대왕대비는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고 호시탐탐 음모를 꾸미는 중.
 거기에 조정은 왕당파인 대윤과 문정왕후파인 소윤으로 두 토막 나있다.
 ‘우선 권력을 잡는 게 급선무긴 해.’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건강이 안 좋긴 해도 왕은 왕이었다. 그만큼 어떤 트집이라도 잡아서 문정왕후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은 했다.
 솔직히 정치판에서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황당한 트집은 다음과 같다.
 현대의 북한에서 어느 정치가는 책 한 권 때문에 숙청을 당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고전에 능통해서인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매우 감명 깊게 읽은 모양이다.
 “이 목민심서가 참 훌륭한 책이니 당의 중하위 간부들도 다 읽으라고 하라우.”
 그러나 이 지시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이 정치가는 정적이 많았는데, 정적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오오, 이 종간나 새끼가. 봉건 지주 부르조아인 정약용이의 책을 당 간부들에게 돌리다니, 무슨 속셈이야? 당 내에 봉건의 잔재인 유교주의를 퍼뜨리는 저의가 뭐야.”
 이 맹공격으로 그 정치가는 그대로 숙청당했다.
 나름 현대에도 이 정도니, 조선 시대에야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털면 먼지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적을 제거하면 후폭풍이 거세다. 그리고 문정왕후는 새엄마라도 어쨌든 내 어머니, 그리고 경원대군은 내 동생.’
 유교적 명분을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서 아무리 아니꼬워도 어머니와 동생을 제거하는 건 부담이 큰 일이었다.
 조선시대에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왕으로는 광해군이 있었다. 이 광해군은 과감하게 걸리적거리는 새엄마를 가두고 이복동생을 죽여 버렸다. 그리고 화끈하게 역풍을 맞아서 반란군에 의해 폐위되셨다.
 일명 ‘폐모살제.’ 어머니를 가두고 동생을 죽인 패륜아로 낙인찍혀 거센 반발에 시달리다가 폐위.
 ‘아무리 문정왕후 하는 짓이 빡쳐도 사소한 트집을 잡아 날려 버릴 수는 없지.’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아는 이런저런 역사적 사례를 고찰해보며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근데 문제는 그 패거리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다는 말이야. 어떻게든 때려잡아야 하는 것은 확실해.’
 즉 확고한 대의명분을 쥐고 정정당당하게 제거를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참 어려운 과제였다.
 
 * * *
 
 먹고 자고 약 먹고. 먹고 자고 약 먹고. 그리고 멍 때리며 어떻게 문정왕후 일파를 깔끔하게 토벌할지 고민했다.
 맨 마지막 일은 상당히 난제이긴 했다. 그래도 내 건강이 회복되는 데 악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인종의 건강이 악화된 것은 이 양반이 너무 효성이 지극해 에프엠대로 삼년상을 치러서였다. 에프엠대로 하면 잠자리도 불편하게 하고, 식사도 나물만 조금씩 먹거나 굶어야 했다. 이 짓을 8개월 넘게 하다가 인종이 죽은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서 온 나에게 삼년상은 불합리하고 황당한 제도일 뿐이었다.
 나는 식사도 제대로 하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이제 가끔은 나와서 산책을 하시지요. 계속 누워만 계셔도 좋지 않습니다.”
 어의는 나에게 그렇게 권했다. 그래서 나는 내시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끔은 나와서 잠깐 정원을 거닐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고는 해도 역시나 거의 죽다 살아난 몸이라 그런지 조금 걷자 숨이 가빠왔다.
 “헉, 헉······.”
 나는 숨을 몰아쉬며 적당한 정원석 하나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산책을 할 때도 날 졸졸 따라다니던 윤임이 재빨리 내 곁에 시립했다.
 ‘충성심 하나는 일품인 양반이라니까.’
 나는 그 모습에 절로 감탄했다. 사사로이 외숙부가 되기도 하지만 윤임의 정성은 놀라웠다. 하루 종일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거기에 아예 지밀상궁 노릇까지 했다. 나에게 올리는 식사나 약도 마치 상궁이나 나인처럼 기미를 해주었다.
 ‘하긴 내가 죽으면 윤임도 끝장이니.’
 실제 역사에서도 인종이 죽자마자 윤임도 문정왕후 일파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지고 사사 당한다.
 뭐 정치 센스가 부족해도 이 정도로 지극정성이면 쓸 때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한가롭게 산책을 하는 도중이었다.
 타타닥.
 웬 내시 하나가 후다닥 나와 윤임이 서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그러더니 내 앞에 부복하더니 우물쭈물하였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
 내가 그리 묻자 내시는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전하,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전하의 의관을 관리하는 나인들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차시는 옥대를 분실했다고 하옵니다. 분명 어제 저녁 때까지는 있었는데, 밤사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내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임이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그리고 나도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 조선의 왕이 어마어마한 전제권력을 지닌 존재는 아니었다.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많았다.
 그래도 왕은 왕이었다. 왕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물품에는 나름 몇 겹의 촘촘한 관리시스템이 있었다. 거기에 궁 안의 경호도 실로 엄중하다 할 수 있었다. 또 내시며 나인까지 보는 눈이 많았다.
 그러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흔히 겪는 이런 도난 사건도 왕에게 터지면 심각한 것이었다. 빈틈없이 작동해야 할 궁 안의 시스템이 교란되고 있다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이런 짓을 벌일 만한 사람은 역시나 선대왕인 중종의 중전으로 오랜 세월 내명부를 장악한 문정왕후뿐이겠지.’
 그 외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 턱이 없었다. 괜히 병문안을 오는 등의 속보이는 짓이 아닌, 훨씬 음습한 방식으로 공격을 가해오는 것이다.
 윤임도 나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윤임이 말했다.
 “실로 좌시해서는 안 되는 사태입니다. 제가 형조의 수장으로서 관원들을 동원해서 이 일의 배후를 샅샅이 밝혀내겠습니다.”
 무인 출신답게 윤임은 이번 사건에 대해 매우 분노한 표정이었다. 어쨌든 형조판서인 만큼 휘하에 이런 수사를 할 만한 인력은 충분했다.
 그 사법권을 이용해서 내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나도 하마터면 그렇게 하라고 할 뻔했다. 과거 그대로의 나였다면 별 의심 없이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3. 막장이다
 
 
 내 몸의 원래 주인.
 조선국 12대 국왕, 죽은 뒤 묘호 인종, 본명은 이호. 어렸을 때 썼던 이름은 이억명.
 이 사람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였던 인물이었다. 3살 때부터 글을 터득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된 책. 거기에 5~6세가 되자 사서오경에 입문을 시작했다.
 당시 조정의 중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이자 과거에 급제한 수재였던 남곤조차 놀랄 정도였다.
 “이런 진도는 내 평생 보지 못한 속도다.”
 그 정도로 천재인데다가 성품도 착했다. 그래서 여러 조정 중신들의 기대를 많이 받았다. 물론 너무 착해서 삼년상과 문정왕후의 압박으로 일찍 죽어 버렸지만.
 어쨌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몸의 원래 주인이 천재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천재적인 두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인종의 두뇌에 원래 내가 알고 있던 미래의 역사 지식, 이 두 가지가 결합되자 그 시너지 효과는 상당했다. 뭐랄까, 나 스스로 내가 굉장히 똑똑해 졌다는 것을 체감할 정도였다. 기존에 아는 미래의 지식을 분석, 재조합하는 능력이 늘었다.
 어쨌거나 곧바로 내 측근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는 윤임의 말을 듣는 순간 뇌리에 위험신호가 왔다. 그리고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볍게 손을 들며 윤임에게 말했다.
 “아니, 그냥 그대로 묻어두게.”
 그 말을 듣자 윤임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전하, 전하의 하해와 같은 관대함은 익히 알고 있으나 때로는 위엄을 보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신이 보건데 이는 필히 소윤의 무리들이 저지른 짓입니다. 전하 곁에 소윤의 간자가 있을 수 있으니 필히 조사를 해야 합니다.”
 윤임은 여전히 내가 착한 성품 때문에 조사를 안 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윤임에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과인과 형판이 조사를 하는 것이 소윤의 계략에 빠지는 것이오.”
 그 말에 윤임이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온지······.”
 “옥대는 눈에 잘 띄는 물건이요. 저잣거리에 내다팔 수도 없는 물건이니 내시나 나인들이 물욕 때문에 그것을 훔친 것은 아닐 것이오. 저잣거리에 들고 나간 순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소문만 날 테니. 소윤의 무리가 저질렀다는 형판의 추측은 타당하지. 그런데 다시 묻겠소. 그들이 옥대를 훔쳐서 얻는 게 무엇이요?”
 내 질문에 윤임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얻는 것이야 뭐······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힌다고 해야 할지. 흐흠.”
 윤임이 우물쭈물했다. 윤임의 생각에도 별 뾰족하게 옥대 도난으로 상대가 얻을 것이 없어 보였다.
 “형판이 과인 바로 곁에서 숙위하고 있으니 당연히 저들은 옥대 도난과 같은 눈에 띄는 짓을 벌이면 바로 조사에 들어간다고 여길 테지. 내 주변에 대한 형조의 조사 자체가 저들이 노리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나는 소매로 가볍게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저들이 왜 형조의 조사를 노리는 건지 모르겠사옵니다.”
 그렇게까지 힌트를 줘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윤임이 우물거렸다.
 충성심-A, 정치력-C라고 생각했던 내 첫 판단이 맞는 모양이다.
 “형조의 조사가 들어가면 내 주위의 내시며 나인들 여럿이 끌러가 매질도 당하고 옥중에서 고초를 겪을 터. 그러면 과인에게 한이 맺히지 않겠는가? 혹은 그동안 저질러온 사소한 죄들이 들어나 내 주위의 내시, 나인들이 물갈이 되겠지. 그러면 새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그중에 소윤의 입김이 닿은 사람들이 올지 어찌 알겠는가?”
 “아하!”
 내가 거기까지 떠먹여주자 윤임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사실 이 시대의 조사란 곧 고문이었다. 그냥 용의자들 불러다가 옥에 가두고 엄하게 문초를 하거나 때로는 고문까지 가했다. 그나마 양반도 아닌 내시나 나인들은 더욱 심한 고초를 당할 것이다. 또 그 와중에 사소한 비리들도 적발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내 주위가 어수선해지면 소윤 측이 교묘하게 자기의 사람을 심을 여지가 생긴다. 그러면 나는 더욱 위험해지는 것이다.
 “저들이 이리 나오는 것을 보니 옥대를 훔쳐갈 수는 있어도 과인의 몸에 위해를 가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과인 주변의 내시, 나인들은 세자 시절부터 과인을 따랐는데 믿을 만한 것이지. 오히려 오늘 이후로 더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허허허.”
 짐짓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일어섰다. 윤임도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에 시립하며 물었다.
 “그러면 도난 사건은 묻어두고, 옥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올리도록 아래에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손을 저었다.
 “옥대는 제왕의 물건.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매고 다닐 수도 없고 나라 안에서 함부로 팔 수도 없다. 이 나라 지존인 과인에게만 쓸모가 있는 것이다. 곧 스스로 돌아올 것이니, 헛되이 사람들의 힘을 소모할 필요 없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윤임에게 이야기를 해주면서 너무 산책을 길게 했다. 무표정한 석상 같은 표정을 지으며 멀찍이 시립해 있던 내시들과 나인들도 내 뒤를 졸졸 따르기 시작했다.
 ‘내시와 나인들도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시늉을 하고는 있지만 분명 나와 윤임의 대화를 다 들었겠지. 그러라고 일부러 침전 안이 아니라 밖에서 이야기 했으니. 분명 궁내 내시들과 나인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겠지. 이는 내 덕망과 지혜를 과시할만한 이야기. 이 소문이 퍼지면 문정왕후에게 포섭된 내명부의 무리들도 동요하기 시작할 것은 필연이다. 그러면 문정왕후가 지닌 내명부의 영향력을 깎아낼 수 있어.’
 거기까지 계산하고 윤임과 일부러 밖에서 얘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찬바람을 너무 오래 맞은 모양이었다.
 “에취.”
 오한이라도 들었는지 재채기가 났다.
 
 * * *
 
 내 정양은 계속되었다. 2달쯤 지나자 몸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쉬고 있었다.
 ‘제대로 왕 노릇 하려면 그야말로 매일 매일 격무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빈틈없이 건강을 회복해야 해.’
 어설프게 조금 회복이 됐다고 정무를 보다가 다시 건강 악화로 휴식을 하면 사태는 더욱 안 좋아진다.
 그러니 아예 쉴 때 길게 쉬는 것이 좋은 것이다.
 ‘또 정무를 보기 위해선 내 나름의 준비가 필요해.’
 물론 나는 지금 현재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인종의 뇌 속에 저장한 기억을 모두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을 적절히 사용하려면 나름 다시 기억을 회상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나는 하루 종일 드러누워서 몇 개월 정무를 본 인종의 머릿속에 저장된 조선의 상황을 훑었다. 과연 천재라 그런지 세세한 수치 정보까지 다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런 정보를 검토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심각했다.
 “조선의 상황은 지금 막장이다.”
 1592년에 터진 임진왜란은 조선이 얼마나 쓰레기 국가인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일본의 대군은 10일 만에 경상도를 확보하고, 20일 만에 수도 한양을 떨어뜨렸다.
 이때 국왕인 선조는 그야말로 무능하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물론 나도 선조란 인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선조만 비난하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선조 이전 왕들의 무능과 나태로 사실 조선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서 선조 대에는 뭘 해보려고 해도 할 국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선조 나름대로는 전쟁 대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 47년 전인 1545년인 지금. 조선의 상황은 수리를 안 해서 무너져 가는 집과 같았다.
 “호조에 1년 세금으로 들어오는 곡식이 25만석이라.”
 호조의 수입에 대한 정보를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의 호조는 오늘날로 따지면 재무부였다. 한 나라의 세수가 고작 25만석이라는 것은 심각한 일이었다.
 “엥, 25만석이면 그래도 꽤 많은 양 아닌가?”
 이 수치에 대해 감이 안 와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조선 정부가 1년 동안 한양의 관료들에게 지급하는 녹봉 액수만 14만석이었다.
 조선시대 녹봉량은 상당히 짜서 하급 관료들은 녹봉으로만 먹고 살 수 없었다. 거기에 나라 사정이 안 좋다고 가끔은 녹봉 지급을 안 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도 지출이 14만석.
 “나랏일을 하는 관료들의 녹봉을 미룰 수는 없다. 다 지급하라.”
 내가 이런 지시를 내려면 호조는 그야말로 관리들 녹봉만 지급하고는 숨만 쉬고 있어야 할 형편이었다.
 어쨌든 이러면 호조에 남은 재정이 11만석인데, 이것도 명나라나 일본 사신 접대비나 또 흉년이 터질 때 백성 구제한다고 지출하면 남는 게 없었다.
 매년 그냥 현상유지만 해도 적자가 터졌다.
 “이렇게 재정이 빈약한 상태에서는 군사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리 생각했다.
 혹자는 조선이 성리학을 숭상해서 군사력이 약하다고 하지만 그건 다 뻥이었다. 그것보다는 조선 정부의 너무나 빈약한 재정이 문제였다.
 군사양성이라는 게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 필요한 일이었다.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재상이었던 유성룡은 군사양성과 관련된 세밀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조선군사 1만 명이 그냥 먹는 군량만 1년에 4만 4천석이다.”
 호조에서 25만석의 식량을 그냥 군량으로만 다 써도 겨우 6만 명의 병사를 1년 먹일 수 있다.
 물론 관리들 녹봉도 안 주고, 할 걸 안 하면 나라 기능이 마비될 테니 그럴 수도 없겠지만.
 “나라꼴이 개판이구만.”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의 원래 주인인 인종이 스트레스로 죽은 것도 이해가 갔다. 머리가 좋은 만큼 나라가 막장 상황이란 걸 깨닫고 있었으리라. 어쩌면 이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것을 기뻐하며 죽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선조 때가 되면 이 재정이 더 악화되지. 선조가 일본에 대패하고 도망간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아, 히데요시 그 새끼가 47년 뒤에 20만 대군 동원해 몰려오는 거 어떻게 막지?”
 아무리 47년의 여유가 있어도 지금의 상황으로는 반전의 기미가 안 보였다. 뭔가 획기적인 대개혁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가 나라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사소한 낭보가 들어왔다.
 “전하, 전하의 예견대로이옵니다. 옥대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나인 하나가 궁궐 마당을 청소하는 중 담장 한 귀퉁이에서 보자기에 싸인 옥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이를 꽤 먹은 내관 하나가 내 곁에서 그리 말했다.
 뭐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궁중에서 일하는 문정왕후 파의 한 사람이 옥대를 훔쳤을 것은 뻔했다.
 문제는 내가 문정왕후 쪽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사를 한답시고 일을 크게 벌이지 않으니 궁 안이 고요했다. 그러니 훔친 쪽도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소란이 없으니 이 옥대를 궁 밖으로 빼낼 수도 없고, 또 옥대란 물건이 태우거나 아예 부수어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속 쥐고 있다가 조금의 실수라도 있어서 발각나면 그 즉시 죽음 목숨.
 아마 그냥 내 손에 다시 돌아와 조사가 안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은 뻔했다.
 “허허, 내 말하지 않았느냐? 제왕의 물건은 제왕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사소하지만 내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만족한 나는 흡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이렇게 옥대가 돌아오고 거기에 내 몸은 서서히 다 나아가고 있었다. 다시 정사를 돌보기 시작해도 될 정도였다. 다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불편해졌다.
 ‘그냥 소윤만 때려잡아 왕권만 강화시키고 그냥 왕으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루트를 택할까? 조선을 강국으로 만드는 건 너무 미션 임파서블이야.’
 47년 뒤에 뭔 일이 나든 나는 그전에 죽을 확률이 높으니, 그냥 놀다가 나몰라라 하고 죽을까 하는 약한 마음도 들었다.
 왕이니 하고 싶은 건 그럭저럭 다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건 잠깐의 유혹에 불과했다. 나중에 이 나라에 어떤 일이 닥칠지 다 아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되든 안 되든 그래도 이 나라가 최소한의 방어력은 갖출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지.’
 그런 마음을 먹고 나는 윤임을 시켜 도승지를 부르도록 했다.
 “신 도승지 이명규 입시입니다.”
 그 앞에서 나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3일 뒤부터 다시 정무를 볼 것이다. 그러니 여러 아문의 대신들은 내가 병을 다스리는 동안 밀린 업무 중 긴요한 것부터 먼저 추려서 정리해 올리도록 하라. 그를 위해 3일의 여유를 둔 것이다.”
 도승지 이명규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대로 물러섰다.
 3일 뒤부터 드디어 친정 시작!
 
 * * *
 
 나는 왕이 정사를 보는 편전에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왕이 앉는 옥좌에 앉으니 좌우로 도열한 대신들이 보였다.
 확실히 높게 설계된 옥좌에 앉아 대신들을 바라보니 다 작고 허접스러워 보였다.
 ‘머리통들을 한 방씩 때려주고 싶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 앞에서 먼저 절을 하는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예를 마치고 일어서는 대신들 중 몇몇은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당연히 경원대군을 밀었던 소윤파 대신들이었다. 내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를 바라고 경원대군을 민 것인데, 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이에 반해 대윤파의 대신들은 의기양양해 했다.
 뭐 나중에 어떻게든 소윤들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친정을 한 지 하루 만에 피바람을 일으키면 민심이 따르지를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저들의 세가 만만치는 않으니.’
 문정왕후의 유명한 두 남동생, 윤원형, 윤원로. 거기에 지중추부사 정순붕, 병조판서 이기, 공조판서 허자, 호조판서 임백령 등이 소윤의 주류였다.
 문정왕후가 뒤에서 후원을 해줄 뿐만 아니라 차지하고 있는 관직들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군을 관장하는 병조, 재정을 관장하는 호조의 판서 직은 파워가 꽤 있었다.
 ‘이게 다 선대왕인 중종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한탄을 했다. 이럴 때는 중종이 대윤, 소윤 중 하나를 딱 택해 힘을 몰아주고 다른 편은 자기가 칼자루 쥐고 제거해야 했다. 죽기 전에 이 작업을 해놓는 게 순리였다. 그래야 뒤에 오는 후계자가 편했다.
 그런데 우유부단한 중종은 자기 아들인 인종과 젊은 새 아내 문정왕후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다.
 세자를 바꾸지도 않으면서도 또 문정왕후가 세력을 확장하는 것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작금의 정국이었다.
 이조, 예조, 형조는 대윤이 차지.
 호조, 병조, 공조는 소윤이 차지.
 3 대 3. 아주 팽팽한 균형이었다.
 ‘거기에 내가 아파서 한동안 정무를 돌보지 못했는데, 이제 갑자기 판서를 바꾸면 업무 처리에 혼선이 빚어진다.’
 이런 안팎의 이유 때문에 나는 소윤을 한동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내가 빨리 처리해야 하는 급박한 일이 많았다.
 “신 의정부 좌찬성 판의금부사 이언적 아뢰옵니다.”
 늙수그레한 중늙은이 하나가 나서며 말했다.
 ‘이언적이라니, 처음부터 상당히 유명인인걸?’
 회재 이언적. 아는 사람은 익히 아는 사람이다. 정치가보다는 성리학자로 미래에 더욱 유명했다. 조선 성리학 수준을 상당히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아마 나중에 그 업적으로 문묘에 올라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명종 즉위 이후 문정왕후 일파가 대윤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을사사화에 휘말려 귀양을 간 인물.
 ‘을사사화 피해자인 것을 보면 중립적인 면도 있지만, 거의 내 편이라 할 만한 인물이지.’
 나는 내심 그런 계산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말하시오.”
 “선왕이신 중종 대왕께서 붕어하셨다는 소식이 왜에까지 퍼진 모양입니다. 대마도주가 이 소식을 듣고 조문을 위한 사절을 보냈습니다. 신들은 선왕에 대한 조문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왜인들이 조문을 마치고 지난날 삼포왜란이 끝난 직후 끊었던 교역을 다시 이어달라 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조문을 한다는 것은 핑계인 것 같고 교역을 청하는 것이 본심인 것 같사온데, 왜인들의 청을 어찌 처결할지 전하의 결단을 기다릴 뿐입니다.”
 히익.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과제가 생겨 버렸다.
 하긴, 내가 긴요한 것부터 빨리 올리라고 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내 전임자인 중종 때 무역을 하러 들어온 일본인들 수천 명이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방의 무관들이 살해당하고 경상도 인근이 뒤숭숭했다. 다행히 경상도 군의 힘만으로 진압을 하긴 했다.
 이것이 삼포왜란인데, 이 사건 이후 조선과 일본의 국교는 단절된 것이 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내정보다는 외교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일본과의 외교라······.
 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지만 짐짓 이언적에게 공을 넘겨 았다.
 “좌찬성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러나 이언적은 하얗게 센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비록 지난날 저들이 난리를 일으키긴 하였으나 근래 하는 것을 보면 저들의 행동에 성의가 있습니다. 삼포의 왜란 이후에는 왜구의 난동이 없었을 뿐더러, 대마도주가 직접 노략질을 시도하려는 왜인을 잡아 목을 베어 바치기도 했습니다. 또 훌륭한 군주는 덕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감화시키고 대한다 합니다. 그러니 저들이 갸륵하게 선왕의 조문을 온 정성을 보아 교역을 열어주시옵소서.”
 오잉? 상당히 의외였다. 이언적이 성리학자인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그가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당히 온건하고 유연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에 내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아니 되옵니다.”
 순간 난 놀라서 나자빠질 뻔했다. 어전에 있는 수십 명이 일제히 입을 맞춰 외치니 당연했다. 혹시 미리 타이밍을 짜고 하는 건가?
 병조판서 이기가 앞으로 나서더니 말했다.
 “좌찬성은 문약한 선비라 저런 말을 하는 것이옵니다. 이미 선왕께서 간악한 왜적들과의 통교를 끊었는데 우리들이 다시 그것을 이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거기에 대마도의 무리들이 우리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진심이 아닙니다. 대마도는 본디 농토가 협소해 식량이 안 나 대마도의 무리들은 교역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굽실거리는 것일 뿐, 그들의 짐승 같은 본성은 그대로이니 결코 믿지 마옵소서.”
 병판 이기가 말을 끝내자마자 호응하는 말이 이어졌다.
 “간교한 왜적과의 문호를 끊는 것이 나라에 유익합니다.”
 “교역을 하지 말아서 대마도의 왜인들이 모조리 굶어죽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군사를 보내 저들을 토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 강경발언이 줄지어 이어졌다.
 이건 진짜 정파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였다. 소윤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는 대윤의 대신들도 하나같이 강경한 표정이었다.
 온건한 의견을 낸 이언적이 어깨를 움츠렸다. 대충 헤아려보니 대신의 8~9할이 강경파였고, 온건한 1~2할의 사람들은 눈치만 보며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이것 참 난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본과의 교역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나도 일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수십 년 뒤에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뻔히 아는 만큼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더 교역을 해야만 하지.’
 싫고 위험해 보이는 외부 세력을 막는다고 아예 문호를 끊는 것은 내 생각엔 상당히 위험했다. 교역을 하면서 얻는 상대국에 대한 정보도 엄청나게 많은데, 그 정보가 다 끊기기 때문이었다.
 그건 실제 역사에서 조선이 외부세력에게 털릴 때의 패턴을 보면 확인되는 사실이었다. 원래 상업을 싫어하고 조선이라 마음에 안 드는 외국과는 아예 쉽게 교역을 단절했다.
 그렇게 아무 정보도 못 얻고, 들어오는 정보도 무시하다가 상대방이 대군을 휘몰아 진격해오면 순식간에 털리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그나마 하고 있던 일본과의 교역마저 끊으면 안 되지.’
 나는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어전의 대신 대다수가 강경론을 외치니 좀 난감하긴 했다. 뭔가 다른 말을 할 여지가 없었다.
 이언적더러 한 번 자기 의견을 내세워 보라고 슬며시 눈짓을 했다. 이언적이 총대를 메고 나서면 내가 그를 후원하는 식으로 교역재개를 주장해볼 참이었다. 그러나 이언적은 주변의 분위기에 질렸는지 내 시선을 회피했다.
 ‘아놔, 내가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하나? 내가 왕인데?’
 내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중신들이 도열한 줄의 끄트머리에서 웬 관원 하나가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끄트머리에 있으니 그다지 지위가 높지 않은 관원이었다. 그래도 목소리가 조곤조곤하고 차분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면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오랑캐를 짐승이라고 부릅니다. 오랑캐가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의도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관원이 그렇게 서두를 떼었다.
 지끈지끈.
 나는 두통이 이는 것을 느꼈다. 말의 앞부분만 들어도 뒤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훤히 짐작이 갔다. 또 이제까지 계속 반복된 강경론의 재탕이겠지.
 주변의 강경파들도 나와 마찬가지 생각인지 조용해졌다. 자신들과 같은 의견일 것 같으니 잠자코 들을 요량이었다.
 그 관원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우리는 짐승에게는 그 자신의 본성대로 살 것을 허락하고 굳이 예의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오랑캐도 이와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일일이 그들에게 우리의 예의도덕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저들과 우리는 다른데 우리의 명분을 저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신이 생각해 보건데 대마도의 무리들은 우리와 교역이 끊기면 먹고 살 길이 없어 필히 칼을 들고 변방을 노략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의 변방의 경계가 강해 저들을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게 유도를 해놓고 우리가 막는다 해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방비를 철저히 하면서도 저들에게도 살 길을 터주어, 적변 자체를 없이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전하, 왜인들과 통교를 허락하시옵소서.”
 웅성웅성.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전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도 대단히 감탄했다.
 ‘이거 낚시질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서두만 보면 강경론 같았는데, 논리의 장난을 거쳐서 화의론으로 말을 이었어.’
 그래서 나는 재빨리 그 관원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뭔가?”
 그러자 그 관원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홍문관 전한, 이황이라 하옵니다.”
 “이황의 말은 사리에 어둡고 세상물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영의정 윤인경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교묘하게 논리의 곡예를 펼쳐서 자신의 소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펼치니 기분이 안 좋은 것이 당연했다.
 물론 나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이황이라니. 내가 아는 그 이황인 건가? 아니면 동명이인? 시대는 대충 맞는 것 같은데.’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어쨌든 이황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왜인들과 문호를 여는 것에 대해 조정의 의견이 이리 갈리니 지금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 예조는 대마도주에게 서신을 보내서 그로 하여금 한양까지 입조를 하게 하라. 과인이 직접 대마도주를 만나보고 그 태도나 기색을 살핀 뒤에 결단을 내리겠다.”
 내가 아예 그리 결단을 내려버리니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 조정의 의견이 갈리긴 개뿔.
 대신들의 십중팔구는 강경론으로, 조정의 공론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이황이 조정의 대세를 거스르면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자마자 내가 조정의 의견이 갈린다고 규정해버리니 대신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뭔가 의견을 개진할 타이밍을 놓친 것을 후회하며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뭐 대마도주가 이 소식을 듣고 한양까지 오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린다. 그 틈에 왜인과의 교역을 여는 것으로 조정 여론을 조작해 두면 돼.’
 나는 그렇게 일본과의 교역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그 다음으로 나에게 올라온 사안도 역시 외교문제였다. 명나라에 조공사절을 보내는 건으로, 이것은 별 이견이 없었다.
 원래 조선은 명나라에 일년삼공이라 해서 매년 3차례나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했다. 그러면서 사신의 행차를 따라간 상인들이 명에서 사무역도 전개했다. 교류가 상당히 있다 할 수 있었다.
 조선이야 명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섬기니 이에 대해 이견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 문제는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이 정도가 굵직한 문제였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의논해야 할 자잘한 외교적 문제가 있었다. 내가 병 때문에 누워 있는 동안 밀린 업무는 역시 외교가 중요하다가 신하들이 생각해서 친정 첫날 모두 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적당히 중신들 의견을 들으며 대강의 지침을 내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어갔다.
 아, 밀린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니 이리 힘들구나.
 “오늘은 이쯤하고 정무를 마치겠다. 다른 일은 내일 처결하자.”
 나는 소매를 휘저으며 그리 말했다.
 여러 중신들도 하루 종일 정무를 보느라, 거기에 나는 앉아 있었지만 신하들은 서 있어야 했다. 상당히 피로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란 표정으로 중신들이 하나 둘씩 물러났다. 그리고 중신들이 떠난 어전에서 나는 홀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를 수행하는 내관들이며 무사들은 조용히 어전 밖에 시립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이 큰 어전에 혼자 앉아 있으니 고독감이 느껴졌다.
 거기에 문틈으로 저무는 햇살이 새어 들어오니 더 청승맞았다. 그래도 오늘이 친정에 나선 첫날인 만큼 약간의 소득은 있었다.
 먼저 내가 지닌 인종의 기억으로 그럭저럭 평상시의 정무를 능숙하게 볼 수 있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대윤이니 소윤이니 하는 당파를 초월해 꽤 쓸 만한 인재들이 몇몇 있다는 것이었다.
 ‘이언적, 이황.’
 아무래도 여러 가지를 따져보았을 때 지금의 홍문과 전한 이황은 내가 아는 그 이황이 맞는 것 같았다.
 조선 전기 최대의 성리학자라는 퇴계 이황.
 이황의 사상은 퇴계학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에도 중국, 일본 등지에서 연구되는 학문이었다.
 ‘역시나 학문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만큼 기본적인 두뇌의 클라스가 남다른 건가? 이런 정무 분야에도 참신한 의견을 제시했어.’
 또 강경파들이 자신의 의견을 경청하도록 만드는 화술도 인상적이었다.
 작금의 정국은 국왕파라 할 수 있는 대윤, 경원대군 파라 할 수 있는 소윤으로 나누어 있는 형국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내가 대윤을 도와 소윤을 치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오늘 일본과의 교역 문제를 보면 대윤의 대신들도 상당히 고집이 셌어. 즉 지금은 나를 옹위하더라도 나중엔 내가 계속 추진해 나가려는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
 나는 조선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주 근본적인 수준의 대개혁을 감행할 작정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결국 기본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는 대윤의 대신들에게 무작정 힘을 실어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대윤과 소윤이 대치하는 이 과도적인 상황을 유지하면서 그 틈에 개혁을 위한 신세력을 육성해야 한다.’
 나는 어좌에 혼자 않은 채로 그런 구상을 했다.
 하긴 뭐 말은 항상 쉬었다. 뭐 그럴 듯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기는 했지만 이걸 내가 실천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4. 국방 붕괴
 
 
 피로한 하루도 끝나고 그냥 침전에 가서 잠이나 자면 좋을 텐데. 조선이 유교국가인 것이 정말 문제였다.
 국왕이라 해도 매일 왕실 어른들에 대한 문안인사를 거를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번거롭기는 해도 좋은 일이긴 했다. 꼴 보기 싫은 사람 하나만 안 끼어 있으면 말이다.
 내가 문안을 올리려 하는 대상에는 선왕의 중전, 대왕대비 문정왕후도 끼어 있으니 문제였다.
 ‘그다지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여자지만, 또 여기에서 내 마음대로 하면 졸지에 내가 불효자가 되지.’
 정말 왕이 되었다고 해도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문정왕후가 거처하는 대왕대비전에 가서 문안을 올렸다.
 “어머님, 그동안 소자의 몸이 불미해 심려를 끼쳐드렸사오니 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향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어머님’이라니? 크, 내가 들어도 정말 가식적인 호칭이다. 나와 문정왕후 사이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모두 기겁을 했을 것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문정왕후는 많이 수척해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인종이 죽자마자 자기 아들인 경원대군을 조선 13대 왕 명종으로 올리고, 그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게 이 여편네다.
 그런데 그 꿈이 거의 이루어질 것처럼 보이기 직전에, 내가 인종의 몸으로 전생하며 다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일국의 왕좌가 눈앞에서 날아갔으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 내 건강이 회복되고, 또 지난번의 옥대 사건으로 문정왕후가 자랑하던 내명부 내의 영향력도 많이 감소한 상황이었다.
 뭐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다. 애초에 내 건강이 위태위태해 보이니까 차기 왕위를 계승할 경원대군의 어미인 문정왕후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건강을 회복한 이상 문정왕후의 세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 늙은 과부와 어린 고아의 생명줄은 모두 주상의 손아귀에 달렸습니다. 이 늙은 과부는 그저 주상만 믿을 뿐입니다.”
 문정왕후가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흠, 과연 상당한 정치력을 보유한 여자다. 지금은 사세가 안 좋으니 납작 엎드리겠다는 건가? 또 사실상 내 손에 모든 걸 맡기겠다는 것 자체가 은근한 공격이기도 했다.
 문정왕후의 이 말이 궁 밖에 새어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우리가 구중궁궐 안 사정은 잘 모르지만, 대왕대비 마마가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 흉한 일이 있었던 거 아닐까? 주상께서 무슨 일을 하셨길래.”
 이런 식으로 나만 나쁜 놈으로 만들기 쉬웠다. 이 판국에 내가 소윤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면 세간의 사람들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뻔히 보이긴 해도 효과적인 수였다. 기분은 나빴지만 이럴 때는 예의를 갖추는 게 정답이었다.
 “허허,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쓸데없는 걱정은 모두 내려놓으시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문정왕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전에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인종 같은 경우에는 이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흔들렸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대범하게 받아넘기며 웃어버렸다. 궁 안에는 단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도, 그것을 듣는 눈과 귀가 항상 있었다.
 ‘즉 내가 이렇게 나오면 문정왕후가 속 좁고 신경질 많은 여편네처럼 보인다는 말이지.’
 그 소문이 퍼지면 문정왕후를 따르던 나인들이며 내시들은 다시 한 번 동요할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한 포인트씩 우세를 보이면 어느 순간 문정왕후를 쓸어낼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을 느꼈는지 문정왕후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난리를 피우면 자기만 손해인 것은 아는지 다시금 얼굴을 관리했다.
 ‘어쨌거나 보통은 아닌 여자야.’
 그것을 보며 나는 또 나름 감탄했다.
 
 * * *
 
 ‘요 며칠은 정말 쉴 여유가 없군.’
 어전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하러 어전에 나와서는 진짜 만만치 않은 업무를 봐야 했다. 인종의 기억에, 미래의 기억이 있어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궁 안에 가면 문정왕후와의 숨 막히는 신경전까지. 이 신경전은 그야말로 인사말, 손짓, 표정 등으로 하는 그야말로 추잡한 싸움이었다.
 여러모로 피곤했다. 오죽하면 아직까지 인종의 아내, 즉 중전과 같이 누워도 그야말로 잠만 잔다.
 어쨌거나 이제 외교 관련 사안은 모두 끝나고, 조선의 내정을 살필 차례였다. 근데 이게 더 만만치 않았다.
 “전하, 근 수년간 나라 안에 여러 재변이 많아서 농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황해도 일대는 도내의 고을마다 흉년이 이어져 백성들의 피폐함이 극심합니다.”
 영의정 윤인경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아뢰었다.
 내 표정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조선 자체가 농업을 장려하는 국가였다. 거기에 시대 자체가 농업이 기간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 때.
 이런 판국에 수년째 연이은 흉년이라니 심각한 문제였다.
 “경들은 자유롭게 여러 의견을 말해보라.”
 난 나 자신이 피곤하기도 해서 대신들에게 자유토론을 시켰다.
 그러자 여러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호조판서 임백령에게로 쏠렸다. 돈 주머니, 아니 조선은 화폐를 아직 안 쓰니 쌀 주머니를 쥐고 있는 게 호조판서이니 대책을 세워보란 의미였다.
 그러자 호판 임백령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소신은 호판으로 3가지 세금인 조세, 공물, 역 중 오직 조세만 관장합니다. 그런데 요 근래 흉년으로 작황이 안 좋아 몇몇 고을의 조세를 면제해서 호조로 들어오는 세입이 더욱 줄어 21만석. 관리들 녹봉이며 각 아문의 운영비, 또 이번 명나라로 가는 조공사절에게 줄 경비를 대면 적자입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했다. 조선왕조는 태종, 세종 시절 몇 십 년을 빼고는 항상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수백 년간 조선시대를 거친 수많은 호조판서들도 이 구조적 적자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허, 농사가 안 되어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그게 한 나라의 재화를 관장하는 대신으로 할 말이요?”
 좌의정 유관이 정승으로서 판서들 군기를 잡을 겸 그리 꾸짖었다. 그러자 호판 임백령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죽어다 깨어나도 호조의 창고에는 백성들을 도와줄 곡물이 없으니 방도는 한 가지뿐입니다.”
 “그게 뭐요?”
 여러 사람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러자 호판 임백령이 말했다.
 “지방 각 병영이며 수영에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둔 군자곡이 있습니다. 제가 장부를 보니 120만 석이나 됩니다. 그 군자곡을 빼서 백성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러자 병조판서 이기가 펄쩍 뛰며 말했다. 왜냐하면 군자곡은 국방상의 목적으로 전쟁 시에 대비해서 축적한 곡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방을 담당하는 병조의 장관이 날뛸 수밖에 없었다.
 “안 돼. 120만석이 많이 쌓인 게 아니오. 진짜 큰 난리가 일어나면 그깟 120만석도 부족하오. 세종 연간처럼 400만 석 이상 쌓아둬야 나라에 어떤 큰일이 일어나도 그럭저럭 대처하는 거지. 군사 일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데.”
 음, 호조판서 임백령과 병조판서 이기는 같은 소윤인데도 부처의 이해관계가 갈리니 싸우는군.
 어쨌거나 나는 피로한 얼굴로 어전에서의 논쟁을 바라보았다.
 ‘험험, 우리 모두는 지금 조선의 국방력이란 게 산산이 박살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씁쓸하게 자조하면서.
 사실 47년 뒤 임진왜란 때 조선군이 일본에게 형편없이 털리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무렵에는 그야말로 흉년이며 재해가 연이어 일어났다. 그 와중에 조선 조정은 도리 없이 수십 년간 국방 목적의 군자곡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했다. 명색이 나라의 국시가 유교인데 사람들이 굶어죽는 걸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까먹은 결과 선조 때에는 조선 조정의 비축미가 달랑 50만 석 남는다.
 이미 나는 1만 명의 군사들이 1년에 먹는 식비만 계산해도 4만 4천 석이라 말한 적이 있다. 10만 병사를 모은다 치면 1년 식비만 44만 석. 사실상 선조 때 정부 비축미가 거의 바닥난다.
 이 상황에서는 20만 대군으로 밀고 들어오는 일본군을 감당 못할 수밖에 없다.
 근데 문제는 그런 미래의 역사를 훤히 아는 나로서도 이 딜레마를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군자곡을 풀지 않으면 당장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어 죽는데, 어쩌지?’
 그렇게 고뇌하는데 호조판서 임백령이 악마의 유혹을 던졌다.
 “어차피 그런 비축미는 다 개색을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개색도 할 겸 묵은 쌀은 푸는 게.”
 쌀은 몇 년 내버려둬도 안 썩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5년쯤 묵으면 맛이 없어지고, 7년쯤 되면 아예 썩는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5~7년 사이마다 묵은 쌀을 교체하는데, 그걸 개색이라고 부른다.
 “흉년이라 새로 창고에 넣을 쌀도 없는데 무슨 개색.”
 병판 이기가 그리 반박했다.
 “당연히 우선은 장부에만 적어놨다가 풍년이 들어 곡물 비축에 여유가 있으면 채우는 것이 정도지요.”
 호판 임백령이 그리 말했다.
 ‘이 양반아. 소빙기 때문에 이 무렵에는 풍년은 진짜 아주 가끔 온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 한숨을 쉬었다. 험험, 역사학도로 설명하자면 소빙기(小氷期)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였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정도 떨어지는 현상이 수백 년간 지속되는데, 지금이 딱 그 초기 때였다. 그만큼 다른 시대와 비교해 재해가 잦았다.
 당연히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이 무렵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재해 기록이 굉장히 잦았다. 물론 흉년이라고는 해도 조선팔도 전체의 농사가 망한 것은 아니었다. 흉년에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대에는 약한 정도의 흉년이 이어졌다. 지리적 특성에 따라서는 농사가 잘되는 지방도 분명 있었다. 그러니 흉년임에도 꾸역꾸역 나라를 운영하고 조선백성이 먹고 사는 것이었다.
 잡소리를 덧붙이자면 진짜 대흉년은 조선 후기 경술년과 신해년에 있었다. 이때는 진짜 조선 팔도 전역의 농사가 다 망했다. 그래서 백성들뿐만 아니라 왕족이나 대신들도 픽픽 쓰러져 죽는, 진짜 헬게이트가 열렸다. 이것이 일명 경신대기근이다.
 ‘대기근이 아니라 감당할만한 흉년이라고 해도 흉년은 흉년이니.’
 마음이 너무 우울하다. 그런 ×같은 환경 아래서 조선을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다니. 너무도 막막한 목표였다.
 어쨌든 나로서는 당장 방법이 없었다.
 “황해도의 백성을 구휼하지 않을 수 없다. 호판의 말대로 군자곡 창고를 열어 황해도의 기민들을 구제하라.”
 그 말을 듣자 중신들도 일제히 찬성했다. 그들로서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병조판서 이기도 납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탕!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지 않고 옥좌의 손잡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대신들이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이리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흉년 때마다 나라의 위급한 때를 대비한 군자곡을 허는 것이 어찌 좋은 계책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앞으로 얼마나 흉년이 이어질지 어찌 알겠는가? 여러 조정의 중신들은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면, 이에 대응할 방책을 한 번 고심해 나에게 올리라. 여러 대신들의 정리된 의견을 듣고 싶은 만큼 내일과 내일 모레 이틀간은 어전 회의를 열지 않겠노라. 대신들은 쉬면서 깊이 생각해서 대책을 한 번 마련해 보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전회의를 끝냈다. 대신들로 하여금 깊게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이 좀 쉬기 위해서였다.
 아직도 내 건강은 현 정치 상황에서 중요한 변수였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너무 갑갑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거기에 쉬면서 나 나름대로의 방안도 생각해 볼 작정이었다.
 
 * * *
 
 이틀 뒤, 어전회의.
 나는 나름 기대를 품고 어전에 들어섰다.
 ‘그래도 조선시대 대신들은 다 그 어려운 과거를 패스한 인재들이니, 어떤 방법으로든 이 난국을 헤쳐 나가겠지.’
 어전에 들어서는 대신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도승지가 내 앞에 문서를 하나 올리며 말했다.
 “여러 대신들이 중구난방으로 각자 상소를 올리면 주상께서 보기도 번잡스럽고 의론을 정하기도 힘들다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대신들이 밖에서 의논해 가장 필요한 대책을 조목별로 나누어 문서 하나에 정리해 올리옵니다.”
 꽤 깔끔한 일처리 방식이었다. 나는 나름 괜찮다고 여기며 상소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문서 첫 부분에 적힌 방책을 읽어 내렸다.
 “으헉.”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었다. 그리고 갑자기 가슴팍에서 흉통이 밀려왔다.
 『근래 재변이 잇따르는 것은 나라의 위아래 풍속이 어지럽고 음란해져서입니다. 우선 전하께서 모범을 보이시어 궁 안의 무리들을 엄히 다스리시고 예교를 세우시옵소서. 또한 한양 도성 내에 사치하고 음란한 풍조를 없애야 합니다. 특별히 교지를 내리시어 이런 것들을 쓸어버리시옵소서. 나라의 녹을 먹는 대신들도 스스로 몸을 닦고 반성해 재변을 경계하도록 하시옵소서.』
 흉년 대책 첫 조목에 이 내용이 나온 것은 정말 의외의 일격이었다.
 ‘내 몸 안 어디선가 암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이 기습에 나는 넉다운 되었으나 곧 회복되었다. 음음, 그래 시대상을 고려해야지. 우선 명분과 예의를 중시하는 시대니 우선 글 첫머리에 이런 걸 넣어야지.
 저들도 진심으로 그리 믿는 건 아닐 거야.
 그러면서 나는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과연 2번째부터는 꽤 실질적인 대응책이 나왔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들이 1달치 녹봉을 헌납해 호조의 재정에 보탤 것.』
 ‘하급관리들은 그럼 어떻게 먹고 살지? 걔들도 관직만 있고 사실상 서민 아니야?’
 『지방의 수령방백들이 새로 오거나 떠날 때 환송식 등에 민력이 많이 들어가니 지방의 인사이동을 하지 말 것.』
 ‘애초에 환송식을 백성들 허리 휘도록 하는 게 문제 아닌가?’
 『백성들이 공물을 특히 부담으로 여기니 황해도의 공물을 반으로 감면해 줄 것. 각 아문 및 궁중에서 필요한 공물량을 최대한 절감해 볼 것.』
 ‘이건 하긴 해야 하는데, 근본적 대책이라 볼 수 있을지.’
 한 조목씩 읽어 내려갈 때마다 논평을 가하며 나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현직 당상관들 중 공신전이 있는 자는 그 공신전에서 세금을 낼 것.』
 ‘이건 꽤 노블리스 오블리제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대책이 되는군.’
 나는 그 부분에서는 눈을 번쩍 떴다.
 공신전이란 말 그대로 나라에서 공신들에게 나누어준 땅이었다. 공신들에게 나눠준 만큼 세습도 되고 세금을 안 내도 되었다.
 사실 조선의 재정이 빈약해진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세금을 안 내는 공신전의 면적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 7대왕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 집권하며 자기를 따르던 수많은 양아치들에게 공신전을 상당히 퍼주는 바람에 나라의 세입이 줄었다. 별 정통성이 없는 세조로서는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측근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했다.
 거기에 내 전임자인 조선 11대왕 중종이 누군가? 최초의 반정인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쫓아내고 즉위했다. 당연히 권력 안정을 위해 반정에 가담한 대신 104명을 공신으로 삼아 토지를 나눠줬다.
 그만큼 세금을 못 거두는 땅이 늘어난 것이다.
 “험험. 공신전 문제 말인데, 굳이 현직 당상관들만 세금을 낼 필요가 있겠는가? 이 나라의 위기를 맞이해 전직 관료든 벼슬을 못한 공신의 후손이든 공신전을 가진 자는 다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흠흠. 영원히는 아니고 요 몇 년 만이라도.”
 내가 얼굴을 활짝 펴고 그리 말하는데, 여러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메아리가 치는 것 같았다. 대윤이고 소윤이고 가릴 것이 없었다.
 “아니 되옵니다. 소인들은 현직에 있기에 충분히 집안을 꾸려나갈 수 있으나 전직 관료며 공신들의 과부며 고아들에게 어찌 세를 거둘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나라가 봉건하여 공신을 우대한다는 대의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 일치단결한 대신들의 말에 나는 마음이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나 위기 상황이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인다 해도 핵심적인 일은 할 마음이 없어.’
 그리고 새삼 나는 조선 왕으로서의 한계도 느꼈다. 지금 나에게는 이 일치단결한 대신들의 반대를 뚫을 힘이 없었다. 이미 중종반정을 통해 한 번 연산군이라는 왕을 쫓아내본 역사적 경험이 생긴 신하들이다.
 그들의 기득권인 공신전을 건드리는 순간 나 역시도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이건 나중의 조선왕들 그 누구도 해결 못한 문제였다. 나는 억지로 불쾌감을 숨기며 말했다.
 “나라의 위기를 맞이해 그대들이 보여준 갸륵함에 놀라 과인이 너무 나간 듯싶다. 여러 신료들은 신경 쓰지 말라. 그대들이 올린 안대로 하겠다.”
 결국 나는 공신전 문제는 우선 그렇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말이다. 내 힘이 신하들을 누를 정도로 강해진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어쨌거나 상당히 근본적인 대책은 공신전에 세금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머지 대책을 보면 결국 한 가지였다.
 ‘그냥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나가는 비용을 줄여보자.’
 하긴, 농사가 제대로 안 지어져 생산되는 쌀 양이 줄었으니 소비를 줄이자는 게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대책이긴 했다.
 물론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것은 장내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험험.”
 “흠흠.”
 어전 안에 민망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들이 민망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낭랑한 한 목소리가 장내의 답답한 침묵을 깨뜨렸다.
 “전하, 신 홍문관 전한 이황 이번 흉년에 관해 한 마디 올리겠사옵니다.”
 이황이 다시 용감하게 나섰다.
 “허어. 여러 신료들이 이미 모든 의견을 수렴해서 전하께 올린 것인데, 그대만 따로 나서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돋보이고 싶은 것인가?”
 영의정 윤인경이 이황을 꾸짖었다.
 “소신이 이미 여러 대신께 제 의견을 올렸으나 제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렇게 다시 전하께 말씀을 올리려 하는 것입니다.”
 이황이 그리 말했다.
 “대신들이 그대 의견을 듣고 적합지 않다 여겨 전하께 올리지 않은 것인데, 이리 홀로 나서는 것은 무슨 심산인가?”
 노대신들이 그렇게 면박을 주는데, 내가 소매를 저어 상황을 정리했다.
 “이 전한이 간곡히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서 나선 것 같으니 여러 중신들은 탓하지 말라. 내 이 전한의 말을 경청해보겠다.”
 나는 슬쩍 이황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에 이황이 나서더니 입을 열었다.
 “흉년 때마다 여러 백성들은 스스로 장시를 열어 생계를 해결해왔습니다. 그때마다 관아에서는 장시를 단속하고 조정에서도 장시를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흉년이니 그 방책을 고집할 수 없습니다. 흉년에 한에서 각지에 장시를 크게 열게 하고, 관아에서도 단속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웅성웅성.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떼가 우는 듯한 소음이 편전에 가득 찼다. 그러더니 너도 나도 입을 열어서 성토하기 시작했다.
 “말업인 상업을 지금 진흥시키자는 말인가?”
 “장시를 허용하면 백성들이 너도나도 고된 농사일은 안 하고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려 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어허, 실로 사리에 어두운 서생의 의견이로다.”
 “아니, 지금 흉년이라 곡물이 많이 나지 않아서 문제인데, 대체 장시를 허용하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곡물을 교환하는 게 어찌 계책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는데, 그들 중 이황의 편은 한 명도 없었다.
 이언적마저도 회의적인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요사이 장시가 많이 열려 물건을 파는 백성들을 습격하는 화적떼가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관아에서 단속을 안 하면 장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인데, 그에 따라 화적떼가 더 날뛸 것이 뻔합니다. 민심이 흉흉해지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편전의 중신 전체가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조선의 국시 자체가 농본억상이었다. 상업을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 조선 지배층의 관념이었다. 거기에 사농공상이란 말에서 보듯 여러 직업 중에서도 상인을 매우 멸시하고 천대했다.
 그런 와중에 흉년 대책으로 장시 활성화를 내놓은 이황의 발언은 폭탄을 투하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상당한 탁견이다. 현대의 경제학 지식이 조금만 있어도 상업, 공업의 부흥이 국부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걸 알지만. 지금은 애초에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으니.’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이 흉년이라고 해도 조선 팔도가 모두 농사가 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농사가 꽤 되는 곳이 있다. 거기에 많은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은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비축한 곡식이 있었다. 즉 민간에서 저장하고 있는 곡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안 풀리고 있었다.
 애초에 정부 차원에서 시장을 탄압하니, 약간이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썩어갈 묵은 쌀을 풀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장시를 허용하게 되면 부자들이 조금씩이나마 묵은 쌀을 풀면서 굶는 사람들에게 숨통이 트이게 된다.’
 아니 애초에 정부에서 시장을 탄압하는 나라에서 흉년 때마다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장시를 여는 것 자체가 이것이 효과가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때 이황이 여러 사람들의 반발에도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맹자께서도 일이 급할 때는 권도를 택하는 법이라 했습니다. 비록 상업이 말업이라 해도 당장의 이 위기를 넘기려면 잠시 권도를 택해야 합니다.”
 흐음, 참 절묘하다. 맹자가 했던 말을 인용하며 반격하니 중신들도 잠시 움찔한다. 그리고 나는 이 장시와 관련된 사안은 대신 전부가 반대하더라도 밀어붙여야 한다고 결단을 내렸다.
 ‘이건 공신전 문제와는 달라. 공신전 문제는 기득권 세력의 핵심 기득권이기에 잘못 건드리면 엄청난 역풍을 맞는다. 그러나 장시 문제는 저들이 이해관계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동안 그들이 받은 교육 때문에 감정적으로 반대하는 것 뿐. 내가 밀어붙여 강행한다 해도 내가 감당할 정도의 역풍이 있을 뿐이다.’
 그런 계산을 마친 내가 마침내 논쟁에 끼어들었다.
 “험험. 지금 해마다 재변이 이어지고 백성들을 구휼할 길이 막막하니, 이 전한의 말이 옳지 않은가? 과인의 생각에 이 전한의 말대로 흉년에 한해서 장시를 널리 열게 하는 것이 옳은 계책 같다. 그야말로 권도 아닌가?”
 물론 말만 그리 한 거지 풍년이 되어도 이미 생긴 장시를 없앨 마음은 없다. 흐흐, 당연히 상공업을 진흥시키는 것이 나라에는 유익하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결단을 내리자 대신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감정적으로 싫기는 해도 본인들의 기득권을 해치는 사안은 아니었다. 그러니 왕인 내가 결단을 내린 이상 그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신들이 아닌 삼사의 관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조선에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세 부서는 일명 삼사라고 불렀다.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언관이라고도 부르는 직책이었다.
 이 삼사의 언관들은 대개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상당히 과격했다. 이들은 내 결정에 격하게 반발했다.
 “당장의 곤궁함을 벗어나고자 사특한 상업을 이용하는 것은 나라의 대계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통촉하여주시옵소서.”
 “근래의 재변은 모두 여러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수행하지 않아 발생한 일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시고 한갓 장시 같은 것으로 위기를 넘기려 하니 소신 살이 떨립니다. 전하, 전하 스스로 소인이 되려 하십니까?”
 우와, 나는 기가 차는 걸 느꼈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저들 얘기만 들으면 내가 무슨 엄청난 일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았다. 그냥 장시를 여는 것을 허가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결국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장시를 열면 화적떼들이 설칠 것이라는 우려는 타당하다. 지방의 수령방백들에게 백성들이 자주 오가는 고개며 외진 길에 자주 포졸들로 하여금 순찰하도록 지시하라.”
 내가 그렇게 지방에 연락을 보내도록 지시를 내렸다.
 “전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삼사의 언관들이 내가 장시 설치를 강행하자 그리 울부짖었다.
 그냥 귀를 닫자.
 
 
 5. 돈을 벌자
 
 
 귀를 닫은 결과 조정은 마비되었다. 삼사의 언관들은 일제히 파업이 들어가며 성균관 유생들까지 선동했다.
 장시를 허가하며 치안을 위해 지방의 포졸들까지 동원한 것이 아마 상업진흥책처럼 보인 모양이다. 반발이 꽤 격렬했다.
 “아니, 그럼 이 흉년에 그대들은 다른 대안이 있는가?”
 왕으로서 그냥 무시만 할 수 없어서 설득도 할 겸 그런 요지의 서신을 보냈다. 그에 대한 답으로 올라온 상소는 가관이었다.
 『오직 여러 사람이 함께 몸을 닦고 성현을 말씀을 따르면 하늘과 감응하니 이것이 일명 천인감응입니다. 조정의 소인들을 물리치시고 군자들로 조정을 채운다면 절로 풀릴 문제입니다.』
 음, 종이와 먹이 상당히 비싼 건데. 낭비만 했다.
 어쨌거나 잠시 조정이 마비된 사이에 내가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할 방안을 구상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해. 지금의 빈약한 재정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미래의 침략에서 버틸 만한 강국으로 만들려면 재정 확보가 필수였다. 장시 설치 같은 건 그저 흉년으로 굶어죽을 판인 백성들에게 산소호흡기를 붙여준 민생안정책에 불과했다.
 “재정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려면 세금제도를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무언가 개혁을 하는 와중에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기존에 해온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흉년에, 민심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섣불리 개혁을 시도했다가는 실패할 가능성이 컸다.
 “돈이 없어서 개혁을 하려고 하는데 그 개혁에도 만만치 않은 돈이 필요하니, 참 딜레마야.”
 그래서 어쨌든 나는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자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뭘 해볼 참이었다.
 사실 호조나 국가의 재정은 항상 적자였지만 조선의 왕은 또 다른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조선은 재정을 운영할 때 국가의 재정과 왕실의 재정을 분리해서 운용했다.
 국가의 재정은 전체 세수를 걷어 국방 예산, 관료의 녹봉, 각 관아의 운영비 등등을 충당했다.
 그와 달리 왕실의 재정은 왕과 왕족들이 개인적으로 가진 토지에서 나온 수익으로 그 비용을 부담했다.
 
 물론 재정학 상으로는 이렇게 국가 재정과 왕실 재정을 나누는 게 안 좋긴 하다. 사실 세종대왕 때만 해도 국가 재정과 왕실 재정 모두 호조에서 관리했다. 즉 왕도 호조로부터 돈을 타서 썼다.
 그런데 이 제도는 조선 7대왕 세조 때 바뀐다.
 “내가 왕인데 신하인 호조판서한테 필요한 비용을 타서 쓰는 게 말이 되냐? 왕실 재정 분리시켜. 그리고 내수사란 관아에서 왕실 재정을 관리토록 해.”
 세조의 결단으로 이렇게 되었다.
 즉, 내수사 소속의 토지에서 나오는 세금이나 어부들이 내는 세금, 염전에서 거두는 세금, 전국의 갈대밭 이용료 등은 다 내수사로 들어왔다.
 사실 이 내수사의 재정은 상당히 든든하긴 했다. 험험, 그건 내 전임자인 중종의 솜씨였다. 내수사 창고에 쌓인 쌀로 가난한 백성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해서 부를 늘렸다. 이자율은 연 50%.
 왕이 백성을 상대로 할 짓은 아니었지만, 중종은 꿋꿋이 했다. 어쨌거나 이 내수사 덕에 왕이며 왕족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내가 왕이 되면서 고리대금업은 즉시 중지시켰다. 어쨌거나 내수사가 있는 덕에 나는 종잣돈으로 쓸 상당한 재물을 확보했다.
 “내수사 재정을 백성들에게 풀면 한두 번은 그들을 구할 수 있겠지만 결국 한계가 와 고갈될 것이다. 이 종잣돈을 바탕으로 돈을 늘려서 아예 국가 재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
 어쨌거나 이 내수사의 재물이 마음에 드는 점은 신하들의 의견을 물을 필요 없이 왕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결론은 뻔했다.
 “이 종잣돈을 바탕으로 대외교역을 해야지.”
 조선 안에서 재물을 굴려봤자 결국 조선 백성의 고혈을 빠는 격이었다. 거기에 애초에 조선은 자원이 풍족하게 나지 않는 나라였다.
 단군이 터를 잘못 잡아서인지 농업 생산량이며 자원이 애매해서, 한반도 사람들이 먹고 살 만큼은 되지만 축적할 여력은 별로 없었다.
 즉 활발한 대외교역 없이는 한반도 국가는 가난할 수밖에 없다. 이건 거의 역사의 법칙이었다. 현대의 남북한을 보면 여실히 드러나는 점이다. 조선이 가난한 국가가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무작정 교역을 하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지.”
 건국 후 백여 년간 상공업을 탄압한 덕에 조선에서 외국에 자랑할 만한 제품은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당장 돈을 꽤 벌 방법을 알고 있다.
 일명, 중계무역이라고 불리는 것.
 사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였다. 이런 나라가 그래도 꾸역꾸역 버티더니 영조, 정조 때 이르러서는 약간이나마 번영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무역이 그 정답이었다.
 중국은 조선에 대해서는 1년에 3번 조공을 할 권리를 주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매우 싫어해서 3년에 1번만 조공하도록 했다. 그 외의 사무역은 일체 금지.
 그 사이에 낀 조선은 그 덕에 재미를 본다. 중국산 제품을 사다가 일본에 비싸게 팔고, 일본산 제품을 또 중국에 비싸게 파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업 발달에 조금의 노력도 안 하면서 조선은 중계무역으로 상당한 돈을 번다. 조선 영조 때 조정의 은 보유량은 100만 냥에 이르렀다. 상당한 비축량이었다.
 그러나 이 좋은 시절은 몇 십 년 안 가 끝나고 만다. 중국의 청 왕조가 일본과의 교역을 다시 재개했기 때문이다.
 좋은 시절에 아무런 대비도 안 하고 있던 조선은 그 때문에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영조 때 100만 냥의 은 보유량이 정조 때는 43만 냥으로 급감한다.
 그리고 다시 재정이 흔들리며 조선은 쇠락기를 맞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의 명나라 시대긴 하지만 기본적인 조건은 똑같다. 명나라는 일본에게 3년 1공만을 허락하고 해금정책으로 사무역을 막고 있어. 거기에 일본은 지금 내전 중이라 제대로 조공을 할 형편도 아니고. 이 기회를 노린다.”
 나는 미래에서 와서 역사의 흐름을 안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조선 후기에 이 중계무역이 통용되었다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마침 명나라로 조공사절이 출발할 예정이다. 그들에게 적절한 명나라 제품을 사오게 할 작정이다.
 나는 도승지가 아닌 내관을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어서 이번 사행을 떠나는 역관들을 궁으로 부르도록 하라. 내 그들에게 지시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와야 할 것이야.”
 내관은 내 말을 듣고 긴장한 기색으로 궁 밖을 나섰다. 내 표정이 그만큼 진지한 것이다. 그리고 궁궐의 북문인 신무문으로 역관들이 하나 둘씩 입궁해오기 시작했다.
 역관들은 신분이 낮기 때문에 정문이 아닌 신무문으로 들어와야 했다. 물론 그 덕에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리고 어느 덧 내 앞에는 30여 명의 역관이 도열해 있었다.
 이번에 장사를 하면서 나는 양반관료들이 아닌 역관들의 힘과 재능을 믿어볼 참이었다. 상업 자체를 천시하는 양반들에게 이 중대사를 맡길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아마 생전 처음 입궁을 해봤을 역관들은 내 앞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흐음, 너희들이 과인을 위해 한 가지 심부름을 해줘야겠다.”
 내 말이 끝나자, 내관들이 쪼르르 봇짐 하나씩을 역관들에게 건넸다. 역관들은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숨소리도 못 낸 채 봇짐을 받아들었다.
 “열어 보도록 하라.”
 내 말이 떨어지자 역관들은 하나 둘씩 봇짐을 풀었다.
 “흐읍.”
 그리고 역관들은 하나같이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억눌렀다. 봇짐 속에서 휘황찬란한 빛이 새어나왔다.
 금, 은, 옥, 보석류 등의 귀금속들이었다.
 크으, 내수사에 내가 쓸 수 있는 여유 자금을 총동원해 마련한 것이다. 조선이 아무리 가난해도 일국의 왕이 자기 사재를 털어 마련한 것이니 양이 꽤 많았다. 역관 30여 명에게 꽤 묵직한 봇짐 하나씩을 다 건네줄 정도로.
 “과인이 명나라산 생사가 긴히 필요해 그러니 너희 역관들은 이번 사행에서 북경에 도착하면 이 귀금속을 처분해 생사를 사 모으도록 해라. 이번 심부름을 잘 해내면 내 너희들에게 섭섭지 않은 재물을 떼어주마.”
 생사란 비단을 짤 때 쓰는 실, 즉 비단실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중국만이 제조 가능한 제품이었다. 조선도 일본도 이 당시에는 생사 제조기술이 없었다. 특히 조선이 중계무역을 할 때 제일 재미를 본 상품이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는 중국과 일본이 직접 교역을 시작하고 일본에서 생사 제조기술을 고안해내며 조선이 패망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 그러려면 수백 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예, 전하.”
 왜 이리 많은 생사가 필요한지 묻고 싶겠지만 역관들은 왕 앞에서 감히 질문을 던질 엄두도 못 냈다.
 참 이래서 왕이 편하다.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으니.
 “중간에 도망을 치거나 귀금속 일부를 횡령하면 네놈들의 삼족이 무사치 못할 것이다.”
 그 앞에서 나는 역관들을 을러대었다. 좀 유치하긴 하지만 진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또 왕이었다. 역관들은 명에 가더라도 그 가족들은 모두 조선에 남아 있으니.
 역관들을 부르기 전에 내관들을 시켜 역관들의 주소를 일일이 다 알아냈다. 좋은 인질이 되어 줄 것이다.
 “저, 전하.”
 삼족 운운하니 역관들은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헤헤, 내가 의도한 대로였다. 허튼수작 안 부리게 겁을 준 채로 내보내는 게 맞았다.
 나는 소매를 저어 역관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 그날 은밀히 내수사 공노비 중 똘똘한 한 명을 불렀다. 중인인 역관들도 내 앞에서 쩔쩔맸는데 노비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내 앞에서 엎드려 고개도 들지 못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갑복이라 하옵니다.”
 벌벌 떠는 노비에게 내가 말했다.
 “네가 이번에 과인의 심부름을 좀 해야겠다. 요번에 명나라로 가는 사행에 시중드는 노비로 참가하거라. 과인이 힘을 써줄 터이니.”
 “네, 네.”
 갑복이는 덜덜 떨며 ‘네’만 연이어 외쳤다.
 “사행에 찾아가서 역관들이 귀금속을 얼마에 처분하는지, 생사는 얼마에 사는지 살펴서 귀국 후 나에게 알리거라. 네가 노비 주제에 글도 알고 창고의 회계를 맡았다고 해 특별히 기용하는 것이다.”
 “네, 네.”
 갑복이는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하긴 노비들은 살아오면서 평생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으니 이런 반응도 어쩌면 당연했다. 이럴 때는 당근도 줘야지.
 “이번 일만 잘 끝내면 네 녀석을 면천시켜 줄 요량이다. 허허, 부쳐 먹고 살 땅도 좀 떼어주고.”
 그렇게 갑복이를 격려해주고 나는 내보냈다.
 북경에 간 역관들 30여 명이 입을 맞춰 나를 속이면, 나는 속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견제하려고 공노비를 통해 얻은 정보와 비교해 볼 요량이다.
 며칠 뒤 역관들과 갑복이가 포함된 조공사절 일행은 북경을 향해 떠났다.
 
 ***
 
 내 웅장한 구상인 중계무역은 어쨌거나 단시간에 성과가 나는 사업은 아니었다. 북경에 오고 가는 것에만 대략 몇 개월이 소요되었다.
 거기에 중계무역의 다른 한 축인 일본까지 가는 것도 상당시간이 소요된다. 아니 아직 일본과는 교역을 재개한 것도 아니었다.
 “입조하라는 대마도주는 언제쯤 도착하겠는가?”
 나는 담당 부서인 예조에 사람을 보내 물었다.
 “대마도주에게 전하의 교지가 전달되는 데에만 20일은 넘게 걸리고, 또 대마도주도 전하께 바칠 예물을 준비하고 일행을 꾸미는데 오랜 시일이 필요하니, 3개월은 걸릴 것입니다.”
 초조해 죽겠는데 시간이 엄청 걸린다. 빨리 빨리 무역을 활성화하고 재정을 확보해야 무슨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준비가 갖춰지지 않았으니 도리가 없었다. 우선 조정에서는 현상 유지를 위한 정무를 계속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에는 삼사 관원들의 파업도 끝나 있었다.
 ‘애초에 장시 설치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파업까지 한 게 실수였어. 명분이 약하잖아. 대안도 제시 못하고.’
 나는 내심 생각했다. 그러기에 노련한 대신들은 언관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은 것이다. 또 실질적으로 장시가 수확할 것이 없는 흉년에는 백성들이 살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황, 참 쓸 만한 인물이야.’
 실제 역사에서 이황은 자신이 제시한 여러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또 특히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은거한다. 그리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 명성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인종의 몸에 전생해왔으니 을사사화는 터지지 않을 것이고, 역사의 물줄기는 확실히 바뀌는 것이다.
 ‘다만 유능하다고 해서 너무 갑자기 승진시키는 것은 너무 위험해. 스스로 올라오길 기다리자.’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빠른 승진은 동료와 상사의 견제를 부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하루하루 평온한 나날들이 지나갔다.
 
 * * *
 
 왕 노릇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왕 노릇에 익숙해진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삐걱삐걱.
 궁 안에서 왕이 지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내시들이 자동문 열리듯 재빨리 문을 열어야 한다. 근데 웬 얼빵한 내시 하나가 문을 매끄럽게 열지 못하고 낑낑 대었다.
 ‘안 그래도 더워죽겠는데.’
 몇 초 정도 지체되었는데도 짜증이 몰려왔다.
 왕 노릇을 몇 달 하면서 주변에서 뭐든지 해주다 보니 성격이 더러워진 것 같다. 예전 소시민일 적에는 신경도 안 쓰일 일이었다.
 그러나 궁 안에서 내 이미지는 관대하면서도 지혜로운 왕이었다. 일 좀 못한다고 내시를 구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자비로운 웃음을 지으면서 짜증을 숨기며 계속 걸어 나갔다.
 편전에 들어서자 안은 후텁지근했다. 여러 신료들은 관복을 입고 쪄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이제 여름이었다.
 ‘이럴 때는 에어컨이 있어야 하는데.’
 옥좌에 올라가는 나도 심한 더위를 느꼈다. 날도 덥고 어쨌거나 이 무렵에는 내가 병상에 누워 있느라 밀린 일도 얼추 다 처리되었다.
 그리고 요 근래에는 시급히 처리할 사안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라가 태평성대인 것은 아니었다.
 그냥 비축된 군자곡을 통해 문제를 일시 봉합하여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래도 당장의 문제는 없어 보였기에 대신들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전주에서 웬 아낙네가 삼쌍둥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전주부윤이 포상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상소를 올렸는데,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좌의정 유관이 그런 보고를 올렸다.
 여름이라 덥고 지친 대신들은 이 시답잖은 소리에 반색했다.
 “허허, 삼쌍둥이라니. 참 드문 일입니다. 무명 5필을 하사하면 좋겠습니다.”
 이조판서 유인숙은 그런 의견을 내었다.
 “오오, 삼쌍둥이라니! 소신은 과문해서 그런지 처음 듣습니다.”
 “길조입니다.”
 농업국가에서는 노동력이 중요했다. 그래서 쌍둥이를 낳는 등의 다산은 국가적 차원의 경사였다. 그래서 소소하나마 포상을 내린다는 등의 이야기가 도는 것이다.
 나는 힐끗 한쪽 구석에 앉아서 붓을 놀리는 사관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노가리 까는 것도 저놈이 다 적어 넣겠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신들이 어전에서 쉴 겸 노가리를 까는 것도 다 적혀 있다.
 ‘너무 자세하게 다 적어 놔서 조선이 미래 후손들에게 지나치게 까이는 걸 수도.’
 나도 더위에 지쳐서 그런 잡생각만 했다.
 어쨌거나 오늘은 느슨한 상태에서 정무가 이루어졌다. 조선왕이라는 게 경제나 군사 같은 굵직한 일만 돌보는 것이 아니었다.
 삼쌍둥이를 낳은 아줌마 관련한 일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각 분야의 일은 거의 다 다루었다.
 어쨌거나 대체로 시시한 사안이라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논의를 했다.
 그런데 다음 안건이 올라온 순간 편전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전 병조참판 박지조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으음, 살인이라.”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원래 조선은 전근대 국가치고는 살인 같은 강력범죄 건수가 적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해자가 상당한 거물이었다.
 참판이면 현대로 따지면 한 부서의 차관급이었다. 그런 사람이 살해당했다니 세간에 소문이 크게 돌 것이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형조에서는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자세히 살펴 범인을 잡아내야 할 것이다. 또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 그 앞뒤 정황을 자세히 보고하도록 하라.”
 나는 내 외숙이자 형조판서인 윤임에게 그리 지시를 내렸다. 이런 일반 형사사건은 형조의 담당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걸로 이 사안을 어전에서 다시 다룰 필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 * *
 
 “요 근래 도성 안의 민심이 심히 흉흉합니다. 전 병조참판 박지조의 일과 관련해 온갖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습니다.”
 지중추부사 정순붕이 어전에서 박지조의 살인사건을 화제로 올렸다. 도열한 중신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태가 약간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순붕은 소윤으로 분류되는 대신이었다. 이 소윤파 대신들은 내가 친정을 개시한 이후에는 트집이 잡힐까봐 먼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묻는 사안에만 대답만 하던 무리들인데 먼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도성 안 분위기가 어떤가?”
 내가 좌우를 둘러보며 그리 물었다. 나야 왕이라 해도 궁 안에만 있으니 시정의 동향에 어두웠다.
 “박지조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많고 요사스럽기까지 한데, 그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도성 내의 많은 자들이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좌찬성 이언적이 그렇게 말했다. 이언적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사태가 상당히 심각하다는 이야기였다.
 “일을 담당한 형조에서는 대체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이리 민심이 흉흉해지는데 범인을 못 잡다니요?”
 병조판서 이기가 나서서 그렇게 타박했다.
 “그것이······.”
 윤임이 우물쭈물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주무부처의 장관으로서 소문이 이리 번질 때까지 사건을 해결을 못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소윤들은 뭔가 확고한 명분이 생겼다고 여겼는지 윤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윤임은 어쨌거나 내 외척이자 대윤의 주요 대신. 그런 윤임이 사법수사권을 가진 형조의 장관인 것에 불만을 품고 있던 소윤이 명분을 잡고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근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형조판서 자리에 앉힌 거라, 능력이 없는 건 사실이니 할 말이 없네.’
 나도 윤임이 충성심에 비해 별 재능은 없다고 인정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전 참판 박지조가 죽었다는 사실은 과인도 들었으나 요사스럽고 유언비어가 돈다니, 대체 그 연유가 무엇인가? 박지조가 어쩌다가 죽었는지 형판은 자세히 말해보라.”
 내가 슬쩍 화제를 전환하며 윤임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었다.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옵니다. 박지조는 평소 자신이 쓰는 방에서 죽었사온데 그 흉기가 화살이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말하기 민망하오나, 그 화살에는 무당들이 쓰는 요사한 부적들이 묶여 있었습니다. 또 박지조가 죽은 방 한쪽에 나뭇가지에 꿰인 제웅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듣자 나는 왜 이 사건이 도성의 화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부적이며 제웅.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잠시 헛기침을 해서 목소리를 가다듬은 윤임이 말을 이었다.
 “그런 요사한 물건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사건이 일어난 방이 문제입니다. 문이며 창문이며 모두 닫혀서 안으로부터 잠겨 있었습니다. 밀실에서 난 사건인데, 경험 많은 형조의 추관이나 포도청의 관리들도 우선 어떻게 살인이 가능했는지 감을 못 잡고 있습니다.”
 “밀실의 사건이라. 일찍이 실로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변고로다. 이 사건을 해결 못하는 것이 꼭 형판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대신들은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윤임을 감쌀 겸 좌우의 대신들을 둘러보며 의견을 물었다.
 사실 여기 모인 대신들의 전부는 아니라도, 다수가 나름 그 어렵다는 과거를 뚫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내가 그런 수수께끼를 던지자 너도나도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조판서 임백령이 똑똑한 척 나섰다.
 “그것은 실로 간단한 이치입니다. 우리나라는 풍속상 문이며 창문에 모두 종이를 발라 바람을 막습니다. 실로 밀실이라 하나 간단히 뚫을 수 있지요. 범인은 문풍지에 구멍하나를 뚫어놓고 문 밖에서 화살을 쏘아 박지조를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살같이 실내에서 쓰기엔 번거로운 병기를 사용한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종이에 풀을 발라 그 구멍을 메우면 감쪽같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윤임이 대꾸했다.
 “포도청의 관리들이 가장 먼저 제기한 방법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풍지의 종이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근래 떼거나 붙인 흔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문풍지 자체가 누렇게 변색되어 있어서 함부로 구멍을 뚫고 메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 문답이 끝나자 머쓱해진 임백령이 물러났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너도 나도 자기 생각을 꺼내들었다.
 문이나 벽에 보이지 않은 구멍이 있을 거다.
 지붕에 뭔가 틈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땅굴이 있을 수 있으니 구들장을 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형조와 포도청의 관리들은 모두 한 번씩은 해본 생각이며, 지금도 관리들이 박지조가 죽은 방을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사방의 벽과 문, 창문, 바닥, 지붕 어디에 구멍이나 혹은 비밀장치가 없나 하고요. 그러나 아직까지 누구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편전에서 대신들이 한 생각은 형조의 관리들도 대부분 해봤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반박 당하자 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 틈에 나는 윤임을 두둔하고 나섰다.
 “그대들 역시 뾰족한 수를 못 내놓지 않소? 이는 형판이 일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사안이 그만큼 괴이하기 때문이요. 형판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오.”
 내가 이리 나서자 소윤의 무리들도 감히 윤임을 더는 공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본인들도 다 헛다리를 짚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나도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전 참판 박지조는 어떻게 죽은 거야?’
 
 * * *
 
 “히익, 자네 참판 영감 댁에서 난 사건 이야기 들었는가?”
 “아, 그 살인 말이지. 그게 웬 무당이 신통력을 부려 살을 쏜 거라는데. 그 살은 벽이며 문을 뚫어도 흔적이 안 남는다는 말이여. 그래서 그 화살이 참판 영감을······.”
 저잣거리를 지나는 두 사내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시정의 사람들은 이미 상상력을 발휘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박지조의 방안에서 나온 부적과 제웅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신과 유언비어를 혐오하는 조선 조정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이 영영 미궁으로 빠진다면 결국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 대상은 주무부처인 형조판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이 사건을 풀어야 해.’
 형판이 갈리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기에 나는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몰래 미복 차림으로 궁 밖을 나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이 격언은 이런 형사사건에도 통하는 법이었다. 직접 현장을 봐야 해결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마침내 궁 밖으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과인이 궁 밖에 나서면 진사 이억명이란 가명을 쓸 터이니, 너희들은 그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하라.”
 궁을 나서기 전, 나는 나를 호위하기 위해 뽑은 10명의 금군에게 그리 지시했다. 호위를 위해 특별히 가려 뽑은 금군이었다.
 물론 10명의 거한들이 일제히 몰려다니면 눈에 띄는 법이었다. 그래서 변복을 한 금군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뒤따르기로 했다.
 내 옆에 바로 붙어 지근거리에서 경호할 사람은 이 금군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별감 강요금 한 명이었다.
 그는 키가 진짜 큰 사람이었다. 현대 기준으로도 컸다. 185cm는 넘어 보였다. 조선시대는 사람들의 평균 신장은 작았지만 역시나 특출나게 큰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적성을 살려 무관이 되기 마련이었다.
 이 강요금은 키뿐만 아니라 용력도 특출났다. 궁 안에서 내시 5~6명이 겨우 들어 올리던 청동 향로를 홀로 들어 올리는 걸 본 적도 있었다.
 ‘이 양반 하나 정도면 웬만한 장정 10명은 거뜬히 당해낼 거야.’
 그런 생각에 나는 특별히 그를 뽑아 잠행에 나선 것이다. 왕을 곁에서 모시게 된 강요금은 황공하다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그를 거느리고 나는 사건 현장으로 나아갔다. 전 참판 박지조의 집 말이다.
 박지조의 집은 실로 가관이었다. 수많은 군사들이 집 외곽에 서 있었다. 거기에 박지조가 죽은 방에는 수많은 포도청의 관리들이 샅샅이 조사를 하고 있었다.
 벽이며 지붕 바닥을 핥듯이 꼼꼼하게 바라보며 무슨 비밀 장치나 구멍이 없나 살피고 있었다.
 ‘저렇게 조사했는데도 아직도 안 나온 거면, 비밀구멍 같은 건 없는 거겠군.’
 그들의 꼼꼼한 조사를 보며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범인은 뭔가 다른 트릭을 통해 살인을 저지른 게 틀림없었다.
 현장에는 형조판서인 윤임 본인이 직접 나와서 부하들을 닦달하고 있었다. 이미 이 사건이 정치쟁점화 되어서 까딱 잘못하며 자기 자리가 날아갈 판이니, 이리 나서는 게 당연했다.
 “험험.”
 내가 그 뒤까지 가서 헛기침을 하자 윤임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는 즉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가 갈 거라고 미리 언질을 주긴 했었다. 그래도 자기가 맡은 사건을 제대로 처리 못해 왕까지 나서게 했으니, 당황할 만은 하다.
 “당숙, 이 사건 때문에 고초가 크시다 들어 소질이 위문 차 들렀습니다. 사건 진행은 어찌 되어 가는지요.”
 이미 나는 밖에서는 윤임의 당질로 행세하기로 했기에 윤임을 당숙이라 불렀다. 원래는 내 외숙이지만 당숙이라 불러도 상관은 없으니.
 “흉기가 활이므로 만약 범인이 이 집 내에 있을 경우에는 활을 쏠 수 있는 4명의 사람이 용의자가 되네. 박지조가 전 병조참판인 만큼 여러 무관들을 식객으로 삼아 자기 집에 머물게 허락했지. 그게 네 사람인데, 무관인 만큼 하나같이 활솜씨가 좋은 편이지.”
 윤임이 나에게 매우 어색하게 하오체를 썼다. 흠흠, 내가 왕인 걸 숨겨야 하니 도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윤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본 것 같았다.
 ‘용의자가 4명이면 알리바이라든가 소거법으로 범인을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에 물었다.
 “그 4인 중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사람이 없습니까?”
 그러나 윤임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내 부하들이 소거법으로 용의자를 특정해 보려고 조사를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네. 4명 다 박지조가 내준 독방에 거처하고 있었고, 모두 좋은 활을 가지고 있지. 게다가 박지조가 노비를 관대히 다루어 굳이 밤에 경비를 설 필요가 없다며 잠이나 자라고 했으니. 그래서 낮 동안 고되게 일한 노비들은 하나같이 다 잠들고, 가족들도 다 깊이 잠들어 있었다네. 즉 4명 모두 마음만 먹으면 몰래 박지조를 죽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 헌데 아직 무슨 재간으로 닫힌 방 안에서 박지조가 화살에 맞은 건지를 모르니······.”
 윤임도 이야기를 하면서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하긴 내가 간단히 떠올릴 아이디어는 전문적으로 범죄를 조사하는 포도청 관리들이 다 시도해봤겠지.
 “사건 현장을 맨 처음 목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박지조의 장남 박정교라네. 아침에 아무리 박지조를 불러도 기척이 없자 당황한 노비들이 박정교를 불렀다는군. 문을 두드려고 대답이 없자 마침내 박정교가 도끼를 가져오라 해서 문고리 부분을 깨고 방에 들어서자 박지조가 죽어 있었다는군.”
 “형판 영감. 그 박정교의 말을 다시 한 번 들어보시지요.”
 겉으로 보기에는 당질이 건네는 충고 같았지만 사실상 어명이었다. 그 즉시 박정교는 나와 윤임 앞으로 호출되어 증언을 하게 되었다.
 박정교는 훌쩍 마른 체구에 약간은 소심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이미 포도청에서 여러 번 진술해서 진술서도 있지만 형판 영감의 분부시니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에 아무리 아버님을 깨워도 안 일어나신다기에 소생이 방에 가보았지요. 이미 온 집안의 노비며 식객들이 방문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소생이 방 안의 동태를 살펴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문을 깨기로 했지요. 그래서 노비에게 도끼를 하나 가져오라 시켰습니다. 다만 문을 통째로 부수면 별일 아닐 시에 문 수리비용이 나올까봐, 문고리 부분만 살짝 짜개고 들어갔습니다.”
 상복 차림의 박정교는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진지하게 조사에 응했다. 하긴 형조판서가 직접 와서 한 말이니 도리가 없을 것이다.
 “들어가서는 어찌되었나?”
 윤임이 추임새를 넣고 물었다.
 “부적이 둘둘 말린 화살이 아버님 가슴팍에 박혀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 소생은 엉덩방아까지 찧었습니다. 그 바람에 아침에 세수를 위해 놓은 물이 담긴 대야를 엎어서 바지가 다 젖었죠. 차가운 물에 젖어 경황이 없는데, 노비들이며 식객들도 줄줄이 방 안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방 한구석에서 제웅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죠.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 겹쳐서 소생은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사람들 도움을 받아 일어나 포도청에 달려갔습니다.”
 박정교는 그렇게 진술을 끝냈다.
 “가 봐도 좋네.”
 윤임이 그리 말하자 박정교는 꾸벅 예를 갖추더니 떠나갔다. 그러자 내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혹여 박정교가 활은 못 쏘지만 범인과 공범이지 않았을까요? 닫힌 문을 부순다는 핑계로 문을 부수면서 몰래 화살을 쏘아 넣으려고 만든 구멍이 있는 부분을 쪼갠다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윤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부하 중에 그 생각을 하고 문을 부술 때 떨어져나간 나뭇조각을 다시 맞춰본 자가 있었습니다. 나뭇조각들이 딱 맞아 떨어지고 구멍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허어.”
 나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본 전문 관료들이 유능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박지조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그런 만큼 이번에는 박지조 집안의 노비들을 모아서 심문했다. 남녀 합쳐 모두 10명.
 “무슨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해보라.”
 윤임이 노비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노비들이 쭈뼛거리면서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방은 원래 겨울에는 추워서 주인어른이 싫어하셨는데, 여름에는 그나마 시원한 편이라고 거기서 주무셨습니다.”
 “더위를 많이 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시원하게 밤을 보낼 수 있겠다고.”
 “이상한 점을 말하라 하시니 별것 아닌 것도 다 아뢰겠습니다. 분명 전날 밤에 제가 주인 나리 방 앞마루를 깨끗이 닦았는데, 변이 터진 날 보니 검은 먼지 같은 것이 그득했습니다. 재인지 숯인지.”
 “근래 들어 걱정이 많아 보이셨습니다. 은퇴하시고 나서는 그저 집에서 소일하셨는데, 요 근래는 이리저리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시고 한밤중까지 무슨 서류를 쓰셨지요.”
 노비들이 최대한 애를 써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미묘하다, 미묘해. 뭔가 있을 듯 의미심장하기도 하지만 결국 생각해봐도 결정적인 증언 같은 것은 없었다.
 “수고했다. 물러나라.”
 윤임이 소매를 저으며 그리 말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봤다. 뭔가 생각나는 게 없냐는 표정이었다.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종의 두뇌를 얻어서 스스로 똑똑해졌다 자부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본 윤임의 얼굴에도 체념의 빛이 맴돌았다.
 
 * * *
 
 다음 날 어전회의에서 나는 짜증에 가득 잠겨 있었다.
 왕의 몸으로 무리를 해가며 잠행까지 해서 사건현장도 보고 증언도 들었지만, 사건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윤임을 포기하고 다른 중립적 인사에게 형조를 맡겨야지.’
 이미 세간의 엄청난 이목을 집중시킨 이 밀실살인사건은 영영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조정에서는 이미 형조판서에 대한 책임여론이 일고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라고 하나 이렇게 도성에 유언비어까지 퍼진 사건을 해결 못한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옵니다.”
 병조판서 이기가 신이 난 듯한 표정을 감추고 근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완벽한 대의명분을 갖춘 여론을 나로서는 막기가 어려웠다. 소윤파 대신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윤임은 한 몇 달 간은 집에서 근신하고 있어야겠지.’
 어쩔 수 없이 그리 머리를 굴리며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밀려오는 짜증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참 짜증이 늘은 것 같다. 왕이 된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 이 비슷한 생각을 예전에 하지 않았나?’
 문득 데자뷰를 느끼며 나는 요 근래 일들을 다시 회상했다. 아아, 얼빵한 내시 한 놈이 내가 지나가는데 문을 바로 못 열어서 짜증이 났지.
 번쩍.
 그 순간 내 뇌리에서 뭔가가 이어졌다. 그동안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이 마치 구슬이 실에 꿰이듯 엮였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용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전하.”
 내 돌발행동에 주위의 신하들이 놀라서 외쳤다. 그러나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야 어찌된 영문인 줄 알겠다. 전 참판 박지조 살인사건 말이다.”
 순간적으로 깨달은 사건의 진상은 이것이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풍속상 집을 나무와 흙으로 짓는다.
 우리는 집을 지어 놓으면 그 안의 공간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나무나 흙은 숨을 쉬는 재료인 만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습기가 많은 여름에 나무는 그 습기를 머금어 부풀어 오르고, 건조한 겨울에는 쪼그라든다. 과인이 지나갈 때 내시 하나가 매양 문을 바로 못 열고 잠시 삐걱거렸다. 이는 지금이 여름이라 습기를 먹은 나무문이 부풀어 올라서다. 문틀과 아귀가 안 맞는 것이지. 그래서 민가에서는 겨울에는 문풍지를 문보다 크게 잘라 붙여 바람을 막는다.”
 나는 용상에서 찬찬히 내가 깨달은 바를 신하들에게 풀어 설명해나갔다.
 “전 참판 박지조가 죽은 방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들었다. 아마 목수가 여름에 지은 모양이다. 여름에 습기를 머금은 나무로 문을 만들어서 여름에는 문이 문틀에 딱 맞겠지. 하지만 건조한 겨울에는 나무문이 쪼그라들며 문틀과 틈이 생겨 바람이 많이 새어 들어와 추웠을 것이다. 즉 번거롭게 구멍을 뚫거나 비밀장치를 만들 필요 없이 습기만 조절하면 이 틈으로 화살을 쏠 수 있는 것이다.”
 “아아.”
 주변에서 감탄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지조의 아들 박정교가 가장 먼저 방 안에 들어왔다가 살해된 제 아비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대야를 엎었다. 그런데 박정교는 그 물에 젖어 차갑다고 했지. 그것이 이상한 것이다. 이 여름 날 전날 떠놓은 물이 아침까지 차갑다니, 말이 되는가? 대야에 담긴 것은 물이 아닌 얼음이었던 것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박지조가 얼음을 대야에 담아둔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박지조는 오늘은 시원하게 자겠다고 노비들에게 말한 것이다. 얼음이 있어 습기를 빨아들이고 방 안의 기온을 낮춘 거지.”
 “아 차가운 물이.”
 박정교의 증언을 함께 들었던 윤임은 손뼉을 쳤다.
 “물론 방 안의 얼음만으로는 제습 효과가 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용한 것이 숯이다. 박지조의 노비 하나가 한 번 청소를 했는데도 재나 숯가루 비슷한 검댕이를 봤다고 했지. 범인은 문 앞에 숯까지 놓아둔 것이다. 그러면서 습기가 빨려나가 생긴 문틈으로 화살을 쏘아 박지조를 죽이고 숯을 챙겨 돌아온 거다. 얼음은 그냥 내버려둬도 녹으니 문제가 없고.”
 내 말을 들은 윤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제웅은 어떻게 들인 것인지?”
 “아침에 막 박지조의 시신을 발견하고 소란스러운 틈에 범인은 옷자락 속에 숨긴 제웅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만약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면 굳이 둘 생각은 없었겠지. 형판은 얼음의 유통경로를 파악해서 범인을 잡아보라. 이 여름에 얼음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드무니, 그쪽으로 파면 필히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윤임이 죽다 살아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건을 풀지 못했다면 오늘쯤에는 사임을 했어야 할 것이다.
 
 * * *
 
 내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독특한 트릭을 썼고 이 트릭에 쓰인 도구, 얼음이 요즈음에 쉬이 구할 수 없는 물건인 만큼 그 행방을 추적하자 대번 범인의 꼬리가 밟혔다.
 범인은 박지조의 식객 중 하나인 무관 한세윤이었다.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포도청 포졸들에게 체포당했을 때도, 그는 당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형조의 관리가 얼음을 왜 샀는지 추궁하며 범행수법을 낱낱이 말해주자 기가 꺾였다고 한다. 게다가 이 한세윤이란 자는 사람들이 절대 모를 줄 알았는지 범행에 쓴 숯도 방에 숨겨두고 있었다. 나중에 팔 생각이었다고 한다.
 “범행을 저지르던 저녁에 참판 어른께 얼음을 바쳤습니다. 더위를 많이 타시는 어른이라 반가워하며 받으시더군요. 저녁을 먹고 홀로 방에 있을 시간에 얼음을 바쳤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에게 나눠주시지 않을 게 확실했습니다.”
 한세윤은 그렇게 얼음을 박지조에게 전달한 방법까지 자백했다.
 “부적이며 제웅 같은 요사한 물건들을 사용한 이유는 뭐냐?”
 “밀실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물건까지 함께 있으면 사람들이 필히 요괴나 주술의 힘으로 죽은 것이라 믿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사를 하는 관리들도 그 생각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거라 여기고.”
 한세윤은 범죄과 관련된 모든 세부사항을 실토했다.
 물론 여기에는 주리틀기며 매질 같은 고문도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심문이 이어지면서 터졌다.
 “대체 네놈이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이유가 뭐냐?”
 형조의 추관은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며 물었다. 어떤 면에서 살인방법보다 더 중요한 게 동기였다.
 “소생을 그냥 편히 죽여주시옵소서. 소생은 그저 사주를 받았을 뿐입니다. 참판 어른께서 여러 사람이 다칠 사안을 파헤치고 계셔서.”
 하도 주리를 틀어서 양 다리뼈가 으스러진 한세윤은 그렇게 말했다. 다리뼈가 박살나면 치료할 길도 없었다. 이제 한세윤은 그저 죽는 게 소원일 뿐이었다.
 여러 사람이 다칠만한 사안이란 것은 바로 군자곡의 횡령 문제였다. 이미 흉년이 계속된 지 여러 해.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은 대신들이라면 몰라도, 하급관료들의 기강은 엉망이었다. 하급관료들의 녹봉 자체가 먹고 살만한 양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군자곡을 담당하는 병조의 하급관료며 아전들이 생계를 위해 쌀을 빼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병조의 꽤 높은 관리들도 그런 아랫사람들과 결탁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어전회의에서 군자곡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와중에 자신들의 횡령이 들통날까봐 걱정한 병조의 위아래가 짜고 장부를 조작했다.
 그런데 이때 하필 전 참판 박지조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홀로 사건을 파헤친 것이다.
 “근래 여기저기 돌아다니시고 근심이 많아 보이셨습니다.”
 박지조의 노비가 그렇게 증언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자 병조의 여러 관리들은 박지조가 이 건을 터뜨리기 전에 짜고 한세윤을 하수인으로 삼아 박지조를 암살한 것이다.
 
 “의금부를 출동시켜라.”
 무슨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사건이 커지자, 나는 어전에서 그런 결단을 내렸다. 이미 일반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형조에서 커버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거센 역풍이 휘몰아쳤다.
 “병조의 대신으로 아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를 못 챘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소신에게 죄를 주소서.”
 이 건으로 신나게 형판 윤임을 공박하던 병판 이기가 어전에서 머리를 박으며 그리 외쳤다.
 “병판 이기를 파직하라. 그리고 관련된 병조의 관리와 아전들도 대명률에 의거 처분하라.”
 나는 그렇게 문제를 처리했다. 정치적으로는 나에게 꽤 이득이긴 했다. 병조라는 상당히 중요한 부서를 차지하고 있던 소윤의 간부 이기를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정치보복이라는 수군거림도 피하고.
 하지만 나도 정치적 이득을 얻었다고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도 멘탈이 깨지는 것을 느꼈다.
 ‘이놈의 나라. 이러면 장부상 수치도 믿기 어렵다는 건데.’
 나는 우울했다. 하긴 어쩌면 이것도 미리 예견했어야 하긴 했다.
 임진왜란 때의 일화를 생각하면 말이다. 원래 병조의 서류에 따르면 한양에는 7천 명의 병력이 있어야 했다. 왜군이 북상하자, 놀란 재상 유성룡은 뭐든 해보려고 서류에 적힌 군사들을 부른다.
 그러자 서류상에 등록된 학생, 어린이, 노인들이 몰려와서 울면서 우리들은 못 싸운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유성룡의 멘탈도 깨져 버린다. 장부상의 7천 군사 중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군자곡도 장부상 120만 석이 있다고 하지만 또 실제로는 얼마나 있는 건지.’
 “우선은 다시 전국의 병영, 수영의 군자곡 액수를 전수조사 하도록 하라. 그리고 장부상의 수치와 실제 창고의 수치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우선은 담당 아전의 처벌은 없다. 그러니 우선은 무조건 사실을 보고해 올리도록 하라.”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또 장부상 수치와 안 맞을 시 처벌한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훤히 보였다. 어떻게든 당장 처벌을 피하려고 옆의 고을 쌀가마니를 빌려와 채워놓고, 감찰관이 떠나면 돌려주든지 할 것이다. 아니면 백성들의 쌀을 강탈해서 부족분을 채우든지.
 우선은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고육지책으로 나는 그런 결단을 내린 것이다.
 
 * * *
 
 여러모로 갑갑한 와중에 나름 기다리던 소식이 당도했다.
 “대마도주가 이미 경기도 영내에 들어섰다는 경기도 관찰사의 장계가 도달했습니다.”
 예조에서 이 보고가 들어왔다. 대마도 쪽으로서도 조선과의 교역에 사활이 걸려 있는 만큼 도주가 직접 입조한 것이다. 이때의 대마도주의 이름은 소 하루야스. 우리나라 식대로 읽으면 종청강이었다.
 “맞이하는데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나는 그렇게 비답을 내렸다. 이미 일본과의 중계무역으로 재정 확충을 결심한 나였다. 이번 대마도주와의 회견은 중대한 일이었다.
 “왜인들에게 우리의 위엄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므로 한양의 갑사들을 동원해서 그들이 오는 길에 도열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갖추면서 대국으로서 위세를 보이는 길이라 사료되옵니다.”
 예조판서가 그렇게 나름의 아이디어를 냈다.
 “좋은 계책이다. 그대로 실행하라. 여러 갑사들로 하여금 미리 연습을 시켜 실수가 없게 하라. 또 대마도주가 도착하기 전, 과인이 직접 괜찮은지 사열을 해보겠노라.”
 조선이 이리저리 내장이 썩어 들어가고 있기는 했어도 대마도보다 몇 백 배는 크고, 상국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위엄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사실 조선과 대마도의 관계는 그만큼 복잡 미묘했다. 그냥 대마도를 일본의 앞잡이로 보고 적으로 취급하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선과 일본 본토 사이에 끼어 있는 대마도의 특성상 상황에 따라 태도가 계속 바뀌었다.
 가령 수수께끼를 하나 내보자. 역사상 최초로 조선에 조총, 즉 화승총을 전해준 인물은 누구였을까?
 바로 당시의 대마도주다. 이때는 그야말로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직전이었다.
 이때 이 끔찍한 전쟁을 막기 위해 가장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이 바로 조선인들도 아닌 대마도인이었다. 조선과의 교역으로 먹고사는 대마도인들은 전쟁이 터지면 밥줄이 끊겼다. 거기에 전쟁의 전진기지로써 대마도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을 할 게 뻔했다.
 그러기에 아예 당시의 최신 군사 무기인 조총을 조선 조정에 상납하며 일본을 경계하라고 말해준 것이다. 조선이 경계를 철저히 하면 일본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일본 입장에서 보면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실상 배신행위였다.
 물론 정신 나간 조선 조정은 엄청난 용기를 낸 그 대마도주의 경고를 무시해 버린다.
 “얌마. 조총 쏜다고 다 맞냐?”
 그리고는 조총도 한 170자루 복제해 놓고 그냥 창고에 처박아 놨다.
 몇 년 뒤 조선은 조총의 앞세운 일본 대군에게 처참하게 털린다. 이때 대마도도 엄청난 시련을 겪는다. 그동안의 배신행위가 발각되어 일본의 히데요시는 대마도주에게 임진왜란에 군사 5천 명을 동원하지 않으면 대마도를 몰살시키겠다고 경고한다.
 인구가 2만 명이 안 되는 대마도가 5천 병사를 모으느라 대마도의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총동원되어 전장에 나서야 했다. 물론 그동안 대마도의 경제는 붕괴돼 버렸다.
 어쨌거나 결론은 대마도주를 상대할 때는 이런 복잡한 역학을 다 고려하고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무시하고 그저 적으로 대하면 곤란했다.
 
 * * *
 
 한양을 방문하는 일본 사신들을 위해 만든 숙소인 동평관 앞.
 둥둥둥--!
 동평관의 누각 위에 설치된 북이 울렸다.
 뿌우우~~
 소라고둥 소리가 북소리에 호응하듯이 울렸다. 그리고 창을 들고 갑옷을 걸친 갑사 200명이 동평관 정문 앞 좌우에 도열했다. 나름 신경을 써서 그런지 갑옷과 창날이 빛나고 걸음걸이가 질서정연했다.
 그리고 나와 대신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종의 리허설 관람이랄까?
 “전하께서 이리 친림하시니 장졸들도 크게 감읍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조선 군사들의 위용을. 대마도의 무리들도 내심 기가 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허허허.”
 이기가 파직되며 새로이 병조판서로 임명된 권벌이 흥분된 듯 그리 말했다. 뭐 이 양반은 어느 계파에 속해 있다기보다는 대세에 따르는 성향의 인물이었다.
 여러 가지 사건으로 뒤숭숭한 병조를 수습하고 현상유지는 할 무난한 인물이라 선정했다.
 “실로 군사들의 위용이 장합니다. 술과 고기를 내려 위무하시옵소서.”
 곁에서 다른 대신들도 일제히 그리 말했다. 하나같이 만족스러운 표정들이었다.
 ‘흐음, 나 혼자만 이 분위기에 못 끼고 있군.’
 나는 약간은 심각한 어조로 권벌에게 물었다.
 “병판, 그대는 군사들이 사열하는 광경을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못 느끼는가?”
 내가 그렇게 묻자, 권벌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제 눈에는 대열이 곧고 훈련을 잘 한 듯 보입니다.”
 그러자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군사들이 쥔 창의 자루가 몹시 짧지 않은가? 저런 창을 실전에서 쓸 수 있겠는가?”
 “글쎄요.”
 내 지적에 권벌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창 자루 길이로 트집을 잡느냐는 얼굴이었다.
 마치 내가 별것도 아닌 걸로 시비를 거는 상사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군.
 “휴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사람의 키보다 약간 긴 2m가 채 될까 말까한 길이의 창을 쥔 조선 군사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 시대의 일본이나 유럽의 보병들은 최소 4m 이상의 장창을 들고 전장을 활보하고 있는데.’
 미래의 지식이 있는 나로서는 그것과 비교했을 때 조선군의 모습이 너무 한심했다. 어떻게 된 나라이기에 어쩜 창 한 자루도 내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다.
 실제 유성룡이 쓴 징비록에는 창의 길이와 관련된 일화도 나온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에 조선에 방문한 일본의 사신은 조선군의 창 길이를 보고 기가 막혀 한다.
 “너희들의 창 자루는 몹시 짧구나.”
 그러면서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즉, 실전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압도적인 길이의 장창을 쥐고 집단전술을 훈련해야 보병들이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법이었다. 조선군이 현재 쓰는 창은 실제 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일본은 전국시대로 내전 중이고, 대마도주도 나름 싸움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조선군의 창을 보면 오히려 우리의 약함을 꿰뚫어보게 되어 있어.’
 미래의 지식 덕에 그것을 느낀 나는 병판에게 지시를 내렸다.
 “군사들로 하여금 창은 내려놓게 하고, 그저 환도만 차고 서서 대마도주 일행을 맞이하라 하시오.”
 “그러면 너무 허전하고 우리의 위세를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병판 권벌이 뭣도 모르면서 그리 우겨대었다. 사실 군사들이 환도만 덜렁 차고 대마도주를 맞이하면 뭔가 없어 보이긴 했다.
 ‘뭔가 우리 위엄을 보여줄 쌈박한 게 없나?’
 그리 궁리하던 내 뇌리에 뭔가가 번뜩였다.
 “총통! 총통을 다룰 수 아는 병사들을 약간이라도 모아 배치하시오. 그리고 대마도주가 오면 예포를 쏘도록 하면 좋겠소.”
 일본은 이 시절 장창이나 조총 같은 병기들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의외로 총통 같은 대형 화포류는 발전이 지지부진했다.
 이 분야는 오히려 조선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내 말에 병판 권벌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우리나라에 총통위라고 해서 총통을 전담하는 부대가 있었습니다만······.”
 “그래요. 그 총통위 군사들을 사열에 참가시키시오.”
 내가 그리 신나게 지시하자 권벌이 말했다.
 “험험, 그 총통위가 세조 대왕 때 해체되어 버려서 말입니다. 거기에 총통을 다룰 줄 아는 군사들은 북방의 경계나 남쪽 바닷가에나 있지, 한양의 경군 중에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파르르.
 그 말을 들은 내 눈 밑이 떨렸다.
 ‘또 세조, 아니 수양대군이······.’
 따지고 보면 내가 조선에 와서 뭘 해보려 할 때 제일 큰 장애물이 수양대군이 저지르고 간 짓이었다. 지난번에 왕실 재정 분리도 그렇고, 공신전을 잔뜩 만들어놓고 간 것도 그렇다. 그는 조선을 약화시킬 온갖 똥을 다 싸놓고 간 것이다.
 이는 수양대군이 뭔가 일을 처리할 때 길게 내다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총통위 해체만 해도 그랬다.
 사실 세종이 만든 총통위는 이름은 거창했지만 실전에서의 효용은 떨어졌다. 당시 화포의 성능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세종이 총통위를 만들고 기술 개량을 해서 화포의 사거리가 300보에서 1000보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사거리가 1천 보로 늘어나도 실전에서의 효용은 제한적이었다. 사실 화약무기가 위력을 떨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수많은 기술자들의 노고로 현대의 위력을 갖춘 것이지, 초창기의 위력은 고만고만했다. 게다가 이 당시에는 화약제조 비용이 비싸서 총통위 유지에 돈도 많이 들었다.
 “총통위는 비용만 많이 잡아먹고 당장 쓸모는 적잖아? 에잇 없애버려.”
 수양대군은 매우 손쉽게 그리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의기양양해 했다. 실제 수양대군이 즉위한 이래 일어난 이시애의 반란에 관군 중 총통을 쓰는 군사들도 출전했다. 그러나 이 당시 화포의 위력은 약해서 실전에서 별 영향력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 총통은 쏘는 법이 복잡했는데, 화살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군사들이 겁먹어서 총통을 제대로 못 쐈다.
 “저거 봐봐. 내가 총통위 없앤 게 잘한 거지. 하등 쓸모없는데 화약비며 훈련비용까지 재정만 낭비하는 게 총통위였어.”
 수양대군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자부하며 의기양양해 하다가 사망했다.
 한 10년~20년의 기간만 놓고 보면 이 총통위의 해체는 좋은 선택이었다.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어떨까?
 가성비가 안 맞더라도 어쨌거나 총통위가 있었다면 조선의 화포술은 조금씩이나마 개량되고 나아졌을 것이다. 어쨌든 계속 도구를 쓰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화약무기가 전장을 지배한다는 것을 봤을 때, 이것이 역사의 흐름에 적합한 길이었다. 그러나 당장의 비용을 아까워해 총통위를 해체함으로써 이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
 어쨌거나 많은 게 이미 죽은 지 오래인 수양대군 탓이었지만 나는 이 울화를 눈앞의 병판 권벌에게 풀기로 했다.
 “관복을 새로 맞추셨소?”
 나는 권벌이 입은 멋진 흉배가 수놓아진 관복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전하. 이번에 판서에 제수되며 새로 하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가 말했다.
 “그 관복 벗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든 대마도주가 오기 전에 총통을 제대로 쏠 군사 20명을 찾아내시오. 기필코 그들이 대마도주 앞에서 예포를 쏠 수 있도록.”
 나는 그냥 무대포로 그리 지시를 내려 버렸다. 어떻게든 해내겠지.
 이게 왕의 좋은 점 아니겠어?
 
 ***
 
 펑! 펑! 펑!
 총통이 쏘아지는 굉음이 울렸다. 우리의 병조판서가 끝내 해낸 것이다. 물론 나는 예포소리만 들었지 직접 동평관에 나가지는 않았다. 왕인 내가 일개 대마도주를 만나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대신 동평관에서 대마도주를 맞이했던 예조의 관리가 편전에 와서 내게 아뢰었다.
 “과연 우리나라의 총통이 불을 뿜자 저 왜인들도 깜짝 놀라서 당혹스러워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여러 중신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어쨌거나 오랑캐에게 본때를 보여줬다는 생각에서였다.
 “대마도주가 이번에 입조하며 바친 예물의 목록입니다.”
 예조의 관리는 그렇게 말하며 예물 목록을 단조로운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은 40근, 유황 40근, 염초 30근, 호초 30근, 구리 50근, 흑각 100개, 단목······.
 ‘대마도주가 상당히 성의를 보여 왔군.’
 대마도주도 조선과의 교역이 중단된 동안 힘들었는지, 예물에서부터 성의가 엿보였다.
 은이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금속이고, 유황과 염초는 모두 화약 제조의 원료로써 전략물자였다. 호초야 약재 겸 조미료로 그냥 사치품이라 쳐도, 흑각 같은 경우는 물소뿔로 각궁의 재료였다.
 나름 쓸모 있는 물품을 진상품으로 많이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자 강경하던 여러 신하들도 많이 누그러졌다.
 다만 여러 중신들의 반응은 아직도 미지근했다.
 “대마도와 교역을 재개하면 우리가 곡식으로 저들의 물품 비용을 지불해야 할 터인데, 과연 이 흉년에 그것이 우리에게 이득이겠습니까?”
 역대 대마도와의 거래 사례를 보면, 한 번 거래할 때마다 곡식 1만 5천석에서 2만석을 지불했다. 빡빡한 조선의 재정에서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다.
 사실 대마도와의 교류에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논리가 이것이었다. 생활필수품인 곡식을 사치품이나 군사물자와 바꾸는 게 조선의 경제력에서는 꽤 부담이었다.
 “과인도 작금의 상황에서 곡식을 지불하는 것이 아쉬우나 우선 다시 교역을 재개하는 첫 거래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장차 교역을 활성화하며 곡식이 아닌 다른 물품으로 대마도와의 교역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나는 그리 말하며 교역 재개를 밀어붙였다. 사실 이미 곡식이 아닌 생사로 대마도와의 교역을 하기 위해서 명에 간 역관들에게 심부름을 시킨 참이었다. 아직 그들이 도착하지 않은 게 문제였지만.
 이때는 이미 정치적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박지조 살인사건의 해결을 계기로 이기를 갈아치우며 내 위상이 높아져 있었다.
 또 박지조 살인사건의 해결을 내가 했다는 것이 한양 저자에도 퍼져 민중들 사이에 내가 지혜롭다는 이미지가 널리 확산되었다.
 거기에 흉년을 위한 긴급대책으로 시행한 장시 활성화도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민간에서 비축하고 있던 쌀들이 시장에 유통되며, 백성들이 어느 정도 숨은 돌리고 있었다.
 이처럼 내가 결단을 내린 정책이 효과를 본 것이다. 이 경우에는 여러 신하들도 우선 내 말에는 한두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나를 따르는 대윤 세력 같은 경우엔 내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다.
 내가 사임하기 직전에 구해준 형판 윤임은 더욱 그랬다.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다만 대마도에 곡식을 보내기 위해 경상도 각 연안 군현의 전세는 한양으로 보내지 말고 대마도와의 거래에 쓰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왕 내 말을 따르기로 하자, 경험 많은 대신들이 그런 보충 방안을 제시했다.
 “그대로 시행하라. 그리고 대마도주는 내 특별히 3일 뒤 친견하겠다. 대마도주로 하여금 잘 준비하도록 이르라.”
 
 
 6. 경회루 회동
 
 
 경회루.
 경복궁에 있는 연못 위에 지어진 멋진 누각이었다. 조선 국왕이 해외 사절이나 신하들을 데리고 연회를 열거나 할 때 사용하는 누각.
 사실 현대에 존재하는 경회루는 흥선대원군이 재건한 것이었고, 조선 전기의 것이 아니었다. 조선 전기의 경회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어쨌든 지금은 임진왜란 전이기에 조선 초에 지은 경회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렁일렁.
 출렁이는 연못물에 경회루의 돌기둥에 새겨진 용의 모습이 비쳐서 진짜 용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멋진 광경이었다.
 그런 누각 위에 나는 좌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마도주 종청강이 누각의 낮은 단 위에 엎드려 부복해 있었다.
 “어리석은 무리들이 상국의 위엄을 거슬러서 끊어진 교역을 다시 이어주셨으니, 대왕의 은덕을 어찌 잊겠습니까? 대마도의 여러 살아 있는 초목 하나라도 그 은혜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내 옆에 시립한 역관이 납작 엎드린 대마도주가 일본어로 하는 말을 바로바로 번역해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 낮춤이었다. 물론 저런 입에 발린 말에 현혹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동안 왜구의 난리가 없도록 애쓴 도주의 노력에 감사드리오.”
 나는 적당히 예의를 갖춘 말을 건넸다.
 띠잉 띵~
 그리고 누각 곁의 악사들이 풍악을 울렸다. 연회니만큼 나와 대마도주. 그리고 참석한 여러 대신들 사이에서 술이 돌았다.
 대마도주는 술 한 잔 마실 때마다 조심스레 행동했다. 이번 교역 재개에 대마도의 운명이 달려 있는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 외로 많이 늙었군.’
 나는 대마도주 종청강의 외모를 살피며 그리 생각했다. 하얗게 센 머리칼과 함께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러나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는 일본 전국의 난세에서 자신의 영지를 지키는 인물인 만큼 강인한 것이 당연했다.
 나는 적당히 때가 되었다고 느끼자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풍악 소리가 멈추며 악공과 대신들이 물러났다.
 이제 긴밀한 밀담을 나눌 시기가 된 것이다. 대마도주 종청강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다.
 “내 듣기로는 일본에서는 여러 영주들의 재력을 모두 쌀로 환산해서 가늠한다 들었네. 그것을 석고, 고쿠다카라고 부른다 하던데, 그대의 석고는 얼마나 되는가?”
 내가 역관을 통해 그리 묻자, 종청강의 얼굴에 놀란 기색과 함께 경계의 빛을 띠었다. 내가 의외로 일본 내의 정세를 잘 아는 듯하자 그런 것이다.
 그러나 내 질문에는 성의껏 대꾸했다.
 “본래 대마도의 석고가 1만 석, 또 따로 가지고 있는 규슈 땅의 석고가 1만 석, 하여 2만 석입니다.”
 종청강이 그리 말했다. 사실 대마도는 농토가 좁고 물산이 척박해 영지의 경제력을 쌀로 환산해도 1만 석이 안 되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1만 석 이상의 영지가 있어야 영주, 즉 다이묘로 인정받았다. 대마도가 조선과의 교역을 담당한다는 특수 지위를 반영해 대마도 석고를 1만 석으로 쳐주고 다이묘로 불러준 것이다.
 이걸 감안하면 종청강의 석고는 2만 석 미만이었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사정은 당연히 얘기 안 하는 종청강이었다.
 “일본 내의 다른 영주들은 더 강성하다고 들었네만. 자네도 언제까지 그리 작은 석고로 만족하고 있을 터인가?”
 나는 휙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종청강은 몸을 휙 움츠리더니 말했다.
 “소신은 그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지키는 데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그는 뭔가 야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듯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세상에 야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게 내 견해다.
 “지금 같은 교역을 지속하면 기실 우리 조선으로서는 손해가 꽤 있네. 필수품인 쌀이며 면포를 그대들에게 내주면서 얻는 물자들. 그것들은 기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니.”
 내가 그리 말하자 종청강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대마도의 신민들은 그저 전하만 믿을 뿐입니다.”
 조선과의 교역이 없으면 대마도 주민들은 필수품을 구하기 어려운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허허, 그래도 계속 손해를 보는 교역을 할 수는 없지. 다만 우리 조선과 그대의 대마도가 함께 덕을 볼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닐세.”
 내가 그리 말하자 종청강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아예 큰 판을 짜서 교역을 늘리는 것이네. 대마도에서 구해오는 물자들을 교역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일본 본토에서 큰 손들이 우리 조선과 거래하는 것은 어떤가? 그러면 우리 조선도 쌀과 같은 필수품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도 거래할 수 있지. 그러면 대마도도 조선과 일본의 상인들이 들락날락하는 중계지로 더욱 번성할 것일세. 식량도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에서 사와서 조달할 가능성이 있고 말이야.”
 “흐음.”
 종청강은 침음성을 흘렸다. 하긴 내가 한 말은 보통 말이 아니었다. 그건 조선 조정이 이제까지 지켜온 농본억상의 기조를 포기한다는 소리였다.
 “가령 명나라산 생사와 같은 품목을 조선에서 구해서 그대들 나라에 수출해 볼 생각이네. 이 생사의 인기가 일본에서 상당하다고 들었네. 물론 이런 품목을 대마도주 그대만의 역량으로 홀로 소화하기는 어렵겠지. 그러니 일본 본토의 사카이 상인들에게 운을 떼보는 게 어떤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종청강의 표정이 기이하게 바뀌었다. 내가 사카이까지 거론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사카이는 현 일본 제일의 항구도시였다. 그만큼 대외교역도 활발하고 상인들의 세가 강했다. 그리하여 이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용병을 고용하고 성벽을 지어 사카이를 자치도시로 만들었다.
 일본 전국시대의 웬만한 다이묘들도 이 사카이를 침공할 엄두를 못 낼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 사카이 상인들의 자본력과 유통망이라면 내가 들여오는 명나라산 생사를 소화할 여력이 충분했다.
 종청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하의 말이 옳습니다. 명나라는 우리 일본과는 제대로 무역을 하지 않아 생사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없어서 구하지 못할 정도이니 생사를 충분히 공급해주신다면, 사카이 상인들이 얼마든지 값을 치를 것입니다.”
 내가 의외로 일본 사정에 정통하자 종청강은 감히 나를 속일 생각을 못했다. 내가 어디까지 아는 줄 모르니 거짓말을 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로선 그저 순순히 내 뜻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다는 치트키를 쓴 것일 뿐이지만 말이다.
 “조만간 내 명나라 생사를 왜관에 보내 거래하게 할 터이니, 대마도주도 돌아가 사카이 상인들에게 연락하든지 해서 준비하도록 하라.”
 나는 그렇게 말했다. 종청강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내 앞에서 절을 하고 물러섰다.
 그 얼굴에는 기이한 흥분도 서려 있었다. 만약 내 구상대로 조일 무역이 거대화 된다면, 그것은 대마도에도 기회였다.
 중간 기항지로 대마도에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면 재화도 쏠리게 마련이었다. 이러면 대마도주로서도 석고 2만 석의 영주 수준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힘을 모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로선 흥분되는 것도 당연했다.
 대마도주마저 물러나자 내 곁에는 통역을 맡은 역관 하나만 서 있었다. 역관은 나와 대마도주 사이의 거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흥분된 기색이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내가 그리 묻자 역관이 황급히 대답했다.
 “왜어 역관 김복홍이라 하옵니다.”
 “그래 복홍아. 너는 과인과 대마도주 사이의 이야기를 다 들었지. 어떠냐? 돈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으냐?”
 내 물음에 김복홍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양에 앉아서도 왜인들이 명나라산 생사를 좋아한다는 것을 꿰뚫어보신 혜안이 놀랍습니다. 이 거래만 성사되면 우리 조선은 흉년에 귀한 쌀을 내주지 않고도 교역으로 이득을 볼 것이며, 대마도주는 자신의 본토에서도 식량을 구할 것이고, 왜인들은 원하는 생사를 얻을 것입니다. 실로 모두가 좋은 길입니다.”
 흐음, 역시 역관들이 돈 냄새도 잘 맡고 상재도 있었다.
 “흐음, 생사가 한양에 도착하면 왜인들에게 그것을 팔 사람이 필요한데, 어떠냐? 왜어를 익힌 너희 역관들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내가 운을 떼자마자 역관 김복홍이 부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맡겨만 주신다면 분골쇄신하여 성심을 다하겠나이다.”
 돈 냄새를 맡은 김복홍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결사적으로 나섰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사회에서 역관들은 품계를 높이기도 어려웠고, 정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런 만큼 돈이나 재산을 모으는 길이 역관들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명나라산 생사가 한양에 도달하면 과인이 왜어 역관 중 총명한 자를 가려 뽑아 왜관에 보내 거래토록 할 것이다. 너는 동료들에게 알려 미리 이에 준비토록 하라.”
 나는 그런 지시를 내렸다. 경회루에서의 밀담이 있고 며칠 후, 대마도주가 떠났다.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명나라 조공사절 일행도 얼마 후 귀국했다. 동행한 역관들은 말에 생사 보따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
 내가 딸려 보낸 공노비 갑복이의 보고와 비교해 보니 나를 속인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 정직하군. 이제 이 생사를 왜관에 가서 일본에 팔면 되는 거야.’
 그에 따라 왜어 역관들이 또 행장을 차리고 생사를 싣고, 또 그것을 경호하는 군사를 뽑는데 시간이 소요되었다.
 ‘돈 벌기 참 힘들군.’
 중계무역을 구상한 지 몇 달은 되는데, 아직도 실질적으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이 생사를 일본에 팔려면 또 한 세월이 걸릴 것이다.
 뭐 역관들을 이용한 이런 중계무역 시스템은 한 번 구축되고 나면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스스로 순환하며 돈을 벌 테지만. 지금은 한 번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할 때라 내가 일일이 다 나서야했다.
 그 와중에 나는 작지만 의미 있는 개혁에도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전회의 날, 조회를 시작하자마자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나라를 지키는 무비는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근래 과인이 살피니 저 북방이며 남해의 경계가 충분하다 할 수 없다.”
 내가 국방력 강화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꺼내자, 장내의 대신들은 모두 뜨악한 표정이었다. 그 심정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국방력 강화. 물론 듣기는 좋은 소리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연이은 흉년으로 그나마 있는 군자곡을 빼서 버티는 상황.
 “물론 옳은 말씀이오나 지금 상황이······.”
 대신들의 합창이 이어질 기미가 보이자 나는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했다.
 “과인 역시 지금 상황을 알고 있소. 그러나 지금 상황이 다급하다 해서 무비를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과인은 우선 혁파된 총통위를 다시 만들어 보려고 하오.”
 “히익, 총통위!”
 좌중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총통위는 화약과 화포를 필수적으로 갖춰야 했기 때문에 그 유지비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병과였다.
 “우선 이름만 총통위로 하고, 총명한 자원자 10명을 뽑아 총통 연구를 맡길 생각이오.”
 그러자 사방에서 일제히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달랑 10명 정도 뽑는 거야 아무리 재정난이 심각해도 별 부담은 아닌 것이다.
 나도 사실 조선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은 어떻게든 재정상황을 안정시키고 국방력 재건에 나설 참이었다.
 그러나 총통위 같은 경우에는 지금이라도 여러 총통과 관련된 실험을 하며 데이터를 쌓고 노하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 소수로나마 총통위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또한 실전에서 총통을 쓰는 북방 사군육진의 장졸들에게도 정보를 모을 참이었다.
 “당장 큰 부담도 안 되고, 또 길게 보면 장구한 계책도 되니 실로 현명한 방도입니다.”
 이 사안은 대신들의 무난한 찬성과 함께 넘어갔다.
 “그리고 과인이 보니 우리 군사들이 쓰는 창의 길이가 너무 짧소. 하나 그 창으로는 만약의 일이 생겨 전장에 나간다면 결코 쓸 수 없을 것이오. 군기시에 일러 우선은 창의 생산을 중단하라고 이르시오. 또 바다 건너 왜인들은 이미 긴 창을 쓰는데 익숙한 것 같소. 총명한 무관 하나를 보내 왜인들이 쓰는 창의 제도를 알아와 연구해서 새로운 창을 만드려고 하는데, 이 일을 감당할 만한 총명한 무관이 있는지 모르겠소? 그대들이 한 명씩 추천해 보시오.”
 나는 최소한 당장 조선군이 쓰는 창이라도 개량해볼 참이었다. 근데 따지고 보면 이 창 한 자루를 바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전군의 창의 길이가 바뀌면 그에 따라 창술, 훈련법, 진법, 집단전술도 바꿔야 했다.
 이 모든 걸 아예 창조해낼 수는 없으니, 일본의 전술을 좀 참고해볼 작정이었다. 창술이야 일반 농민들을 징집해서 가르치는 거니 아예 못 빼낼 기밀도 아니었다.
 그때 예조 참판 홍섬이 장내에 나서며 말했다.
 “신이 감히 한 사람을 천거해 올리고자 합니다. 신이 보건데 실로 정직하고 문무를 겸비한 무관입니다.”
 “누구인가?”
 “유극량이라 하옵니다.”
 웅성웅성.
 홍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소란이 일었다. 이거이거 상당한 유명인인 거 같다. 나도 어렴풋하게 귀에 익은 이름인데.
 그런데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유극량, 그자는 사실상 그대 집안의 노비 출신 아니오?”
 “주상께서 일을 하시는데 감히 노비를 천거한다는 말인가?”
 그러자 예조참판 홍섬이 발끈해서 외쳤다.
 “유극량은 노비가 아니외다. 법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처리되었소.”
 “그러나 그 근본이 노비인 건 사실이 아니오?”
 어전 앞인데도 무슨 말싸움이라도 벌일 듯이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유극량이 누구인지 기억이 났다.
 ‘아아, 그 임진왜란 때까지 산 노장.’
 유극량이라면 오래 살아서 40여 년 뒤 임진왜란에도 참전한 장수였다. 임진강 전투에서 일본군이 후퇴하자 여러 조선 장수들은 그것을 추격하려 한다. 다만 유극량만이 노련하게 그것이 함정인 것을 간파하고 추격을 말린다.
 그러나 유극량의 지위가 낮았기에 결국 추격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고, 우르르 몰려간 조선군은 매복계에 걸려 섬멸 당한다. 유극량도 이때 전사한다.
 ‘이 일화를 보면 나름 군재는 있는 장수인데. 대신들 노가리 까는 거 들어보면 노비랑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 같아. 재미있군.’
 거기에 예조참판 홍섬은 내가 그동안 일처리 하는 걸 볼 때 나름 재간이 있었다. 사람을 허투루 추천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 그만! 홍 참판의 말대로 그 유극량이란 자는 과인이 한 번 만나보고 결정을 내리지. 그러니 가타부타 말을 더 하지 말라. 홍 참판. 그대가 그 유극량이란 자와 나중에 입궐하라. 내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예, 전하.”
 
 * * *
 
 원래 조선의 왕은 차대, 윤대라고 해서 어전회의 외에도 따로 일정 지위 이상의 문무관들을 만나서 면담을 해야만 했다.
 나는 그런 차대, 윤대에 사용되는 전각으로 홍섬과 유극량을 불렀다.
 “극량의 어미는 본디 저희 집안의 노비였으나, 어느 날 청소를 하다가 집안의 귀중품을 부수고 벌 받을 것이 두려워 달아났습니다. 이후 극량은 어미 아래서 장성해 무과에 급제한 뒤 출생의 비밀을 알고 소신의 집안에 찾아왔습니다. 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신에게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신은 그 기개가 장해 극량과 극량의 어미를 모두 면천시켰습니다. 또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니 실로 당세의 인재라 할만 해 특별히 전하께 천거하는 것입니다.”
 예조참판 홍섬이 내 앞에서 유극량의 집안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았다. 사실 이 시대에는 사람을 쓰려면 집안, 가문을 보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기에 집안사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유극량은 곁에 부복한 채 묵묵히 있었다. 체격은 탄탄했지만 외모는 무장답지 않게 온건했다.
 “과인이 독대하겠다.”
 내가 그리 말하자 홍섬은 즉시 고개를 숙이더니 물러났다. 그리고 나는 유극량에게 물었다.
 “과인이 이번에 창과 관련된 제도를 왜에서 들여와 연구해보려 한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기탄없이 말해보라.”
 그러자 유극량은 고개를 살짝 들더니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초부터 기병을 중시해 기병을 위주로 전술을 짜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라에 목장의 수가 줄어 예전만큼 말들의 수가 없어 기병을 양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대체할 전술이 없는 채로 시일만 허비해 나라 안의 군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라도 새로이 보병의 기술인 창의 제도를 연구하고자 하니, 이는 나라의 홍복입니다. 소신을 보내주시면 왜에서 그 제도를 소상히 알아오겠나이다.”
 상당한 식견과 준비가 엿보이는 대답이었다.
 조선 초 조선군은 기병을 주력으로 삼았다. 여진 정벌과 같은 여러 전투에서 대규모 기병을 동원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부터가 기병 지휘관이었다. 보병들은 대개 숫자를 채우며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 초에는 이런 만큼 전국의 국영목장에서 말들을 7만 필이나 키웠다. 그런데 오래 평화가 계속되자 말을 키우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말을 키우는 비용 자체도 크고, 무엇보다 목장을 만들려면 넓은 땅이 필요했다.
 그런데 안 그래도 땅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인구가 늘어나니 그만큼 농경지가 많이 필요했다. 결국 목장을 폐쇄하며 그것을 농토로 개간해 버렸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전국에서 키우는 말의 수가 2만 필이 될까 말까였다. 거기에 전마로 쓸 만한 말은 더욱 적었다.
 그만큼 기병의 수가 줄어든 것이 조선의 상황.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기병을 대체할 병종의 훈련이 안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극량은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군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나는 유극량이 나름 혜안을 가진 인재라고 느꼈다.
 나야 미래의 역사지식이 있기 때문에 꿰뚫어보는 조선군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유극량도 이미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뭐랄까? 과감한 용장이라기보다는 온건한 지장 타입의 장수야.’
 차분하게 말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평가를 내렸다. 다만 왕 앞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을 의식해서 그런지 박력이 없었다.
 그는 내 눈치를 살펴 약간이라도 나의 의견과 어긋난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즉시 수정했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관철하지 못하는 타입이군. 따지고 보면 실제 역사에서 죽을 때도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지 못해서 죽었고 말이야.’
 아무래도 앞으로 유극량을 대할 때는 내 의견을 제시하지 말고 우선 유극량의 말을 들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섰다.
 거기에 신분적 한계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유극량에겐 미안하지만 이렇게 가문이 한미한 사람들은 출세하려면 왕의 믿음 외에는 의지할 게 없다. 그런 만큼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거기에 기득권이 없기에 어떤 개혁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나름 염두에 둘만한 인물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이렇게 유극량과 만나게 된 인연이 기분 좋았다.
 “과인이 보기에 네 재주가 쓸 만한 것 같다. 조만간 과인이 왜어 역관들을 교역을 위해 왜관으로 보낼 참이다. 너도 그 일행에 끼어 함께 가거라. 그리고 시일이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창과 관련된 제도를 세세하게 살펴 돌아오라. 일을 잘만 하면 과인이 너를 중용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유극량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임무 자체가 까다롭고 다른 장수들처럼 적을 베어 전공을 세우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한미한 신분의 유극량에게는 왕의 눈에 들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나는 유극량의 표정을 보고 안심하고 임무를 맡길 수 있었다.
 ‘재정이든 군사든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천천히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지.’
 생사를 팔러 떠난 왜어 역관들이 돌아오면 어느 정도 재정 여력이란 게 생길 것이고, 유극량이 알아올 창과 관련된 정보도 기대되었다.
 나름의 성과가 보이는 것 같아 나는 흐뭇했다. 한동안은 이런 소소한 정책적 성공으로 국력을 다지는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 나는 믿었다.
 이후에 닥칠 거대한 폭풍을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 * *
 
 충청도 사림의 종주라고 불리는 이약빈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형조정랑이니, 수원부사니 하는 관직을 역임하다 은퇴한 뒤 고향인 충주에 살고 있었다.
 상당한 관직을 역임한 사람인만큼 인근의 선비들이 글을 배울 겸 몰려들었다. 그래서 충청도 사림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았다.
 거기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현직 형판인 윤임의 인척이라는 점이다. 윤임이 나의 외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와도 멀리나마 인연이 있었다.
 이 점이 더욱 용기를 줬을지도 모른다. 이약빈이 보낸 상소문은 다음과 같았다.
 『신이 비록 외진 고을에 있지만 주상께서 계시는 경사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작년 즈음 주상의 병환이 깊어지셔서 위독하다는 풍문에 신 역시 가슴을 졸이기가 한량없었습니다.
 다만 풍설로 신은 주상께서 병중에서 ‘기묘년에 죽은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신원시키는 것이 과인의 평소 생각이었으나 부왕께서 하신 일을 뒤집는 격이라 차마 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과인의 숨이 경각에 달했으니 그 일을 미루고 싶지 않다. 과인의 숨이 끊어지면 그대들이 대신 행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주상께서는 병을 이겨내시고 일어나셨습니다. 신은 멀리서 조광조의 일이 어찌 되려나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주상께서 깨어나시고 시일이 지나도 그 일이 거론되지 않음에 신은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들은 주상의 말씀이 한갓 헛소문인가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주상께서 설사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더라도 진실로 기묘년에 죽은 조광조와 사림들은 신원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소신의 동생이 젊어서 조광조를 따랐기에 신도 조광조를 잘 아옵니다. 조광조는 오직 나라를 위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을 뿐이옵니다. 기묘년에 조광조 등이 화를 당한 것은 간사한 무리들의 모함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현명하신 전하께서 즉위하셨는데 무고하게 쓰러진 기묘년의 사림들을 어찌 돌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충주의 이 촌로는 그저 전하께서 성단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리며 청하옵니다. 기묘년에 화를 당한 사림들을 신원시켜 주시옵소서.』
 너무 기니까 이약빈의 상소를 두 줄로 요약해보자.
 왕, 네가 얼마 전에 아파 다 죽어갈 때 죽은 뒤에는 조광조를 신원시켜 달라고 했다는 소문을 들음.
 그 말을 한 게 사실이든 아니든 조광조는 억울하게 죽었으니 신원시켜 주셈.
 요지는 딱 이거였다.
 주르륵.
 이 상소를 다 읽은 나는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광조!
 조선 역사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다. 내 전임자인 조선 11대 왕인 중종 시절에 활약한 개혁적 정치가.
 중종의 신임을 받아 고속으로 출세하고 나름 소소한 개혁들을 해나갔다. 그리고 왕의 신임을 너무 믿었는지 막판에는 대단히 위험한 개혁을 시도한다.
 일명, 위훈삭제.
 “연산군을 축출할 때 공신을 104명이나 임명했는데 그들 중에 사실 공을 안 세운 사람도 많으며 또 그들이 받은 토지가 광대해 국가재정도 어렵다. 재심사 해서 공신위를 박탈할 사람은 박탈해야 한다.”
 조광조와 동료들은 강력하게 주장하고 이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위훈삭제가 있은 지 1주일도 안 되어 역풍을 맞아 숙청을 당한다.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과 또 이들이 너무 설친다고 생각한 중종이 조광조를 버린 것이다. 조광조를 비롯한 동료들은 귀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사약을 마시고 많이 죽었다.
 이것이 일명 기묘사화라 불리는 사건이다.
 ‘기묘년이면 151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대강 30년 전쯤의 일이군.’
 나는 그렇게 연도를 계산했다.
 어쨌거나 이약빈의 말은 옳았다. 분명히 내가 전생해 오기 전 이 몸의 실제 주인이던 인종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조광조 신원’을 대신들에게 유지로 남겼다.
 그 이후 내가 인종의 몸에 전생해 오고 다시 일어나 친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나 대신들이나 그 누구도 ‘조광조 신원’에 대한 사항을 거론하지 않았다. 뻔히 다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갔다. 조광조에 대한 사안은 그만큼 폭발력이 강한 사안이었다.
 이 몸의 실제 주인인 인종은 조광조를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죽어가면서 그를 신원하라고 유언을 남겼지.
 나는 어떨까?
 나는 조광조를 ‘조선의 돈키호테’라고 본다. 그를 비웃으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용기와 꿈을 인정하는 면에서 내리는 평가다.
 공신 세력들이 받은 광대한 공신전과 농장이 조선의 국력약화와 민생파탄의 주범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 공신 세력의 기득권 해체를 위해 닥돌한 사람은 조선 역사에서 조광조가 유일했다. 물론 풍차를 향해 돌격한 돈키호테처럼 그건 무모한 시도였다.
 아무런 정치적 사전 준비나 제도적 뒷받침 없이 강행한 개혁이니 엄청난 역풍이 불 수밖에 없었다. 또 조광조도 살펴보면 뻘짓을 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뭐 위훈삭제와 같은 행동을 보면 개혁에 대한 진정성은 있었고, 방향은 대개 옳은 편이었다.
 또 막판에 기묘사화로 인해 죽을 때는 정말 억울하게 몰려 죽은 게 맞았다. 죽은 죄목도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 그러면 나도 조광조를 나름 인정하고 있으니 신원시켜 주면 되지 않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근데 그게 그리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니지.’
 
 * * *
 
 이약빈의 상소를 볼 때부터 예감한 것이지만, 이 상소는 일종의 방아쇠를 당긴 격이 되었다.
 『이약빈의 상소가 옳습니다. 신들도 전하께서 병중에 있으실 때 조광조에 대해 그리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뜻하신 바를 실천하소서.』
 삼사의 대간들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서 그리 청했다. 심심하면 트집을 잡는 삼사의 관원이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각오가 달라 보이는 상소였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성균관의 유생들도 일제히 궐기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동맹휴학을 한 셈이다.
 “전하, 조광조와 기묘년의 사림들을 신원하소서. 그것이 옳은 길이옵니다.”
 성균관 유생들이 아예 성균관 마당에 나와 엎드려서 그리 외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한양 도성 전체가 조광조의 이름을 다시 거론하며 들썩거렸다. 죽은 지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조광조였다.
 ‘흐음. 하긴 조광조는 사람들이 나중에도 동경할만한 요소가 많지. 젊어서 정치개혁을 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극적으로 죽은 정치가라······.’
 하긴 현대에도 조광조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으니. 어쨌든 난 실로 난감한 처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진짜 인종이 죽기 전에 남긴 유지지만. 결국 내가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여러 대신들이 다 조광조 신원에 대한 말을 들었지. 그러니 그냥 그런 적이 없었다고 얼버무릴 수도 없고.’
 혹자는 내가 왜 이리 고민하는지 이해를 못할 것이다.
 “그까짓 거 뭐. 억울하게 죽은 거면 신원시켜 주면 되지 뭐가 문제? 거기에 조광조 신원을 바라는 유생들도 많으니 뭐 시켜주면 인기도 올라가고 좋지.”
 내 고민에 대해 알면 이리 말할 매우매우 나이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조광조 신원이란 무엇인가? 결국 조광조가 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이다.
 근데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조광조가 원래 죄가 없는데 죄가 있게 만든 사람들의 책임도 물어야 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내 전임자인 선왕 중종, 그리고 구공신 세력들이다. 중종은 이미 죽었다고 쳐도 다른 관련자들 중에는 살아 있는 사람도 있고, 죽었더라도 그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
 ‘조광조를 좋아하는 유생들은 쪽수도 많고 목소리도 크지. 대신 조광조를 싫어하는 구공신 그룹들은 조용한 대신 막대한 토지와 세력으로 힘이 있다. 여기서 덜컥 조광조를 신원한다고 했다가는 힘이 있는 구공신들이 불안해 해.’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다.
 어전회의에서도 이제 조광조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다른 사안들은 다 미뤄졌다.
 “전하, 신들도 전하께서 분명 광조를 신원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삼사의 관원들이 내 면전에서 그리 말하며 압박을 가했다.
 “과인이 당시에 병중이라 지극히 정신이 산란하고 혼몽하여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형판, 형판은 계속 과인의 곁을 지켰으니 잘 기억하고 있을 텐데, 어떤가?”
 난 일부러 형판 윤임에게 묻는 척했다.
 “신 또한 그 당시 몇 날 며칠을 밤을 새며 시위를 하고 있었던 터라 피로해서. 주상께서 과연 그 말을 하셨는지 안 하셨는지 모르겠사옵니다.”
 이미 내가 이 사안을 그냥 뭉개고 지나가고 싶어 한다는 신호를 받은 윤임이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나이 많은 대신들도 모두 그런 내 의중을 눈치챘는지 맞장구를 쳤다.
 “소신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지 귀가 어두워 과연 그런 말이 있었는지 긴가 민가 하옵니다.”
 영의정 윤인경이 그리 말했다.
 “당시 전하의 옥체가 어찌 될지 몰라서 궁 안이 워낙 소란스러웠습니다. 신 또한 잘 생각이 나지 않사옵니다. 허허, 그렇다고 사관이 쓴 사초를 뒤져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로 불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중대한 일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이 일은 덮어놓고 차후에 논하셔야 합니다.”
 이조판서 유인숙도 그리 말하며 거들었다.
 하나같이 대윤 성향의 신하들이었다. 나를 위해서도 이 건은 우선은 뭉개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물론 꼬장꼬장한 삼사의 언관들은 그 즉시 들고 일어났다.
 “전하, 필부라도 내뱉은 말은 지켜야 신의가 서는 법입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지존께서 하신 말씀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크으. 평소 탐탁지 않아하던 언관들의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론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도 기억이 안 난다고 우기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대로 이 사안을 끌면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었다.
 ‘뭔가 이 조광조 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떼어놓을 사건 같은 게 안 터지나? 전문용어로 소위 물타기라고도 하는데.’
 나는 작금의 상황에서 출구전략은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물타기를 해법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근래 나는 실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두고 젊은 유생들과 한창 대치국면을 유지하는 형세였다. 그 와중에 장계 하나가 또 날아들었다.
 “전하, 충청도 관찰사가 보내온 급보이옵니다.”
 충청도에서 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애초에 조광조 신원 사안의 방아쇠를 당긴 전 관료 이약빈의 상소도 충청도 충주에서 올라왔다.
 게다가 급보라니. 나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장계를 열었다.
 『신 충청도 관찰사 윤청이 아뢰옵니다. 충주에서 역모의 고변이 들어와 다급히 전하께 보고 드립니다. 충주 유생 이약빈의 아들 이홍운은 평소 어울리는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계를 꾸려 모이는 매 모임 때마다 모이는 도 내의 유생이 100여 명은 됩니다.
 지난 9일도 모임이 있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홍운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부친께서 정암 조광조 선생을 신원하라는 상소를 보냈는데 그로 인해 온 나라의 유생들이 일어났다. 지금 주상 전하게서는 어진 분이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이실 게 뻔한데, 일이 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은 조정에 간신들이 많아서다. 우리가 함께 상경해 전하를 도와 간신배들을 쓸어버리고 정암 선생을 신원하자.’
 이런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동석한 유생 하나가 충청감영으로 고변해 왔습니다. 신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발언이라 여겨서 즉시 군졸을 풀어 이홍운을 잡아 문초했습니다. 이홍운은 술김에 한 말이라 실토했습니다. 실로 망극한 일이라 어찌 조치를 취할지 몰라 바로 장계를 올립니다.』
 눈앞이 그야말로 아찔했다. 그냥 장계의 글만 보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훤히 보였다.
 평소에는 조용히 글만 읽던 아버지 이약빈이 보낸 상소가 전국적인 반향을 일으키자, 젊은 아들인 이홍운은 으쓱했을 것이다. 그래서 평소 함께 책도 읽고 놀기도 하는 친구들끼리 만든 계모임에서, 젊은 혈기도 있고 술김에 과격한 말 몇 마디를 했을 것이다.
 솔직히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약빈이 한양에 올린 상소가 그야말로 전국적인 광역 어그로를 끈 상황이었다.
 ‘이 애송이는 몰랐겠지만 전국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았을 텐데, 몸을 엎드리고 있었어야지.’
 이약빈 일가를 지켜보는 눈 중에는 이약빈의 상소를 불쾌하게 여기는 구공신들의 끄나풀도 있었던 게 뻔했다. 그리고 그들이 트집거리가 잡히자 바로 고변을 한 것이다.
 이홍운의 말은 흔한 술주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
 이홍운의 계모임-무력봉기를 위한 조직.
 상경-한양으로 쳐들어가자!
 주상 전하 곁의 간신들을 쓸어 버리자.
 이 시대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내건 명분은 다 이것이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얼마든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작금의 상황을 불편해 하는 구공신 세력들로서는 이런 해석을 원할 것이다. 그래서 이약빈과 이홍운 부자를 필두로 피바람을 일으키고, 그 공포로 조광조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다.
 아주 명쾌한 책략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타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겠다는 생각은 나도 했지만, 핏물로 물타기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쨌든 정국은 급반전했다. 이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은 ‘조광조의 신원’이 아니라 ‘이홍운의 역모 사건’이 되었다.
 결연하게 조광조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던 삼사의 관원들도 몸을 움츠렸다. 상상 외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거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맨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선 이약빈의 아들 이홍운이 역모에 걸려들자, 삼사의 관원들도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들이 봐도 이것은 고의였지 우연이 아니었다.
 “이약빈, 이홍운 부자는 충주 인근에 그 세력이 자못 큽니다. 이런 자들이 이런 일을 꾸몄다는 것은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주살하시옵소서.”
 부제학 정언각이 그런 강경한 발언을 내뱉었다. 그는 소윤의 일파로 분류되는 대신이었다.
 계모임이나 하던 지방 선비가 뜬금포로 세력가로 둔갑했다.
 “충주라는 고을 자체를 믿을 수 없습니다. 충주를 강등시키고 충청도라는 이름도 갈아야 합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공조참판 윤원형도 입을 열었다. 이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남동생으로, 그야말로 소윤의 핵심이었다. 그런 만큼 내가 즉위한 후에는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이홍운의 역모사건이 터지자 물 만난 고기처럼 설쳐대었다.
 이홍운 사건을 강력하게 처리하자고 주장함으로써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구공신 세력들의 호감을 사려는 것이었다.
 “홍운이 비록 술김에 그리 참담한 말을 내뱉었으나 역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매나 치고 귀양을 보내 반성토록 하십시오.”
 좌찬성 이언적이 그렇게 소윤들의 강경론을 견제했다. 그는 원래 성리학자로서 성향상 사림들에게 동정적이고 사람됨이 온건했다. 이홍운이 역적이 되는 순간 그 계모임에 이름을 올린 충주 선비들이 싸그리 함께 몰살당할 판이었다.
 그만큼 이언적은 용감하게 이홍운을 감쌌으나 소용없었다.
 “역도를 감싸는 것을 보니 좌찬성 이언적 역시 수상합니다.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윤원형이 강경론을 펼치며 이언적을 공격했다.
 “이홍운이 무도하게 주상 곁의 간신들을 운운하며 쓸어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자를 용서해준다면 지금 조정의 신료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겠습니까? 전하, 종사를 위해 결단을 내리소서.”
 부제학 정언각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어쭈, 이 자식이 나한테 협박을 가하네.’
 정언각의 말을 들은 나는 심하게 불쾌해졌다. 그러나 나로서도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다.
 “좀 신중하게 의론을 정하고 결단을 내리겠다.”
 나는 그렇게 말을 뭉개며 시간을 끌었다.
 내 속마음도 사실 이언적과 똑같았다. 이약빈-이홍운 부자를 봐주고 싶었다.
 사실 지방의 이런 유생들과 사림들이야말로 잠재적인 내지지 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원래 이 몸의 실제 주인인 인종은 사림들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천재라서 유교경전을 달달 외울 정도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했다. 이약빈이 비록 조광조 신원에 관한 상소를 올려서 날 곤란하게 만들긴 했어도, 그것은 나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근데 지금 내가 충주의 사림들을 죽게 내버려둔다면 사림들의 지지를 상당히 잃는 셈이다.’
 나로서는 그러기에 용서 쪽으로 마음이 갔지만 그 명분이 문제였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라고 해도 함부로 사면을 내릴 수 없는 죄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역모죄였다.
 지금 정언각이 우기는 것처럼 ‘종사를 위해 결단하라’고 설치면 왕인 나도 골치가 아팠다.
 ‘이홍운 이 양반은 충청감영에 붙들려가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발뺌하며 버텼으면 될 것을. 어리버리하게 불어버렸어.’
 이홍운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발뺌했으면 나도 손쉽게 이 사건을 묻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근데 이홍운 이 친구가 충청감영에 끌려가서 쫄았는지 다 불어버린 게 문제였다.
 궁 안의 한 전각.
 내가 지난날 유극량을 만난 그 전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어전회의와 별개로 조선의 왕은 신하들과 따로 만나 독대를 하는 자리도 가져야 했다.
 그것을 핑계로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신하들을 불러모아 다급히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소? 과인이 이홍운은 몰라도 억울하게 이번 사건에 엮어 들어간 충주 사림은 구해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없겠소?”
 내 앞에는 좌찬성 이언적, 형조판서 윤임, 홍문관 전한 이황이 앉아 있었다. 내가 나름 내 총신으로 만들려는 신하들이었다.
 “흐음, 신들도 당장 이 난국을 타개할 방편이 없사옵니다. 설사 이홍운을 감싸고 싶어 하는 다른 신하들도 모두 공격당할까 무서워 몸을 움츠리고 있습니다.”
 좌찬성 이언적이 침통한 표정으로 조정의 상황을 말했다. 내가 기대를 갖고 있는 이황도 이 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절레절레.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러자 내가 믿을 것은 윤임뿐이었다.
 “형판, 형조에는 법률에 밝은 추관들과 서리들이 많소. 그러니 그대가 힘써 이 난국을 뚫을 방안을 강구해보시오.”
 나는 윤임에게 그렇게 말했다. 괜히 탐정놀이까지 해가며 윤임을 형조판서로 남겨둔 게 아니었다. 이런 국내의 정치투쟁에서는 사법 권력을 장악한 게 가장 중요했다.
 형조의 관리들을 동원해서 방법을 찾는 게 내 마지막 시도였다.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윤임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 * *
 
 요 근래 나는 밤마다 자주 미행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금군의 별감 강요금이 지근거리에서 나를 경호했다.
 요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국 속에서 놀러 다니느라 미행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밤에 그냥 잠만 자고 있을 수 없어서 신하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그런 것이다.
 나는 형조판서이자 내 외숙인 윤임의 집 쪽문으로 들어갔다. 요 근래는 매일 윤임의 집에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내 특명을 받은 윤임이 매일 밤 형조의 관리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도 진사 이억명으로 회합에 끼어들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윤임의 사랑방으로 들어서자 형조의 관리들이 윤임과 열심히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 관리들은 슬며시 눈인사를 했다. 그들은 나를 윤임의 당질 이억명으로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홍운이란 친구는 억울하게 엮인 것이지만 이 친구를 빼내는 것이 실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가 음모를 꾸민지 몰라도 아예 못 빠져나가게 딱딱 고변을 해놔서. 실로 오래 법을 다뤄본 전문가의 솜씨입니다. 판서 영감, 이 이홍운이란 친구는 도리가 없습니다.”
 형조의 하급아전 하나가 약간의 감탄을 섞어 말했다. 조선시대에 고위 대신들은 자주 부서를 바꿔서 사실 전문성이 없었다.
 그래서 한 관청에 오래 붙박이로 있는 하위직들이 오히려 해당 분야에는 빠삭했다. 이 형조의 아전이 감탄할 정도로 이홍운은 억울한 올가미에 단단히 묶인 것이다.
 “정녕 방도가 없는 것인가?”
 윤임이 난감한 기색으로 슬며시 내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험험, 제 견해에 따르면 단 한 가지 빈틈이 있는데, 계모임을 난을 일으키기 위한 조직으로 엮은 것입니다. 아무리 조직을 만들었다고 해도 무기를 만들거나 했다는 증좌가 없다면, 변을 일으키려는 조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웃전에서 봐주려고 한다면 이 부분을 파고드는 수밖에 없습니다요. 홍운이는 난언을 한 죄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고, 아비인 이약빈도 연좌에 걸리겠지만, 다른 충주 선비들은 빠져나가겠지요.”
 형조의 아전이 신중히 관련 서류들을 살피더니 그런 해법을 제시했다.
 ‘과연 이게 최선 같군.’
 인종의 뇌를 차지한 덕분에 똑똑해진 머리로 통박을 굴리니 감이 딱 왔다. 역시나 법률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형조다웠다.
 또 나는 새삼 조선의 과거제의 모순을 느꼈다.
 ‘실무에서 필요한 법이나 기술은 잡과로 취급해 아전들이나 익히게 하고, 온 나라의 수재들이 경전만 파다니.’
 어전에서 못 얻은 답을 윤임의 사랑방에서 얻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따지고 보면 온 나라의 수재들이 쓸데없이 경전만 파다가 입는 손해도 막심한 것이다.
 그때였다.
 쿠쾅쾅! 쿠쾅!
 내 귀에 굉음이 들려왔다. 누군가가 윤임의 집 대문을 무지막지하게 두들기고 있는 것이다.
 “형판 대감, 형판 대감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리 무례를 범합니다.”
 그러더니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누군지 몰라도 목청 하나는 정말 큰 사람이었다.
 “아니, 어떤 미친놈의 새끼가 감히 형판 대감 댁의 문을 이리 두드려.”
 “순라군은 대체 뭐하는 거야?”
 사랑방에 앉아 있던 형조의 관리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직속상관인 윤임에게 잘 보일겸 한밤에 대문을 두드리는 미친놈에 대한 욕을 쏟아내었다.
 나는 약간 가슴이 뜨끔했다. 윤임의 집을 편히 오가려고 순라군이 이 근방을 못 돌도록 손을 쓴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윤임과 나를 포함해 형조의 관리들은 분분히 사랑방을 나서서 대문으로 향했다.
 “어이쿠야. 야밤에 이리 문을 두드리면 안 됩니다요.”
 윤임 집안의 노비가 당황한 듯 대문을 열고 그리 말하는데, 웬 남자가 성큼성큼 노비를 밀치고 윤임의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의 행색은 그냥 보통 선비의 모습이었다. 챙이 넓은 검은 갓을 쓰고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다만 도포가 허름하고 군데군데 기운 자국이 있는 것이, 사정이 넉넉해 보이진 않았다.
 “대체 무슨 일로 남의 집에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게요.”
 자신의 집 대청마루에 서서 윤임이 그렇게 호통을 쳤다. 무장 출신인 만큼 목소리가 우렁찼다. 윤임의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진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내가 눈앞에 있으니 왕의 눈치를 보느라 우선은 말로 꾸짖었지, 그렇지 않으면 말보다 몽둥이가 먼저 나갔을 것이다.
 실제로 윤임의 노비 몇몇은 몽둥이를 들고 그 불청객을 에워싸고 있었다. 윤임의 명만 떨어지면 매타작을 할 기세였다.
 “허허허, 실로 형판 대감의 집을 이리 밀고 들어왔으니 소생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다급한 일이 있어 이리 결례를 범했습니다. 이 무례에 멍석말이를 당한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지요.”
 불청객은 그 흉흉한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할 말을 다 내뱉었다. 그러더니 습관인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쓰고 있던 갓 테두리를 살짝 튕겼다.
 텅.
 갓을 튕겼는데 마치 쇳소리가 났다. 그것을 보고 내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그 전에 윤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윤임은 무장 출신인 만큼 대담한 사내를 좋아했다. 그래서 이 대담한 불청객에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배포가 좋군. 그대 말을 들어보고 멍석말이를 할지, 말지를 정하도록 하지. 자네 이름은 뭔가?”
 “소생은 충청도 보령 사람 이지함이라고 하옵니다.”
 윤임의 집에 뛰어난 남자는 그렇게 대답했다.
 
 
 7. 경장론
 
 
 토정 이지함.
 높은 관직을 역임한 바는 없지만 그 특유의 기행과 언행으로 오늘날에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다. 나도 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자네 머리가 안 무겁나?”
 사랑방으로 이지함을 들인 윤임이 신기하다는 듯 이지함을 보며 물었다. 이지함이 머리에 쓴 갓은 보통 갓처럼 말총으로 엮은 것이 아니라 철로 만든 것이었다.
 “아주 편합니다. 말총 갓처럼 해지지도 않고 길에서 노숙할 때 밥을 지어먹는 솥 대신 쓸 수도 있지요. 허허허.”
 어쨌거나 이지함의 범상치 않은 언동에 놀란 윤임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어쨌거나 야밤에 한 나라 형판의 집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입해온 이유는 뭔가?”
 그러자 이지함은 길게 엎드려 절을 하더니 말했다.
 “요즘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홍운의 역모 사건 때문입니다. 아니 그것은 역모가 아닌데도 무고하게 모함을 당한 사건이지요. 거기에 제 장인 어른도 연루되어 계십니다. 제 장인께서 평소 이약빈과 친해서 계모임에 함께했는데, 그 때문에 이번 사건에 함께 연루되었습니다. 이에 구명을 청하려고 이리 형판 대감에게 찾아왔습니다.”
 “자네 장인의 성명이 무엇인가?”
 “모산수 이정랑 어른이십니다.”
 그러자 주변의 형조 관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지함이 한밤에 다급히 달려온 건지 깨달은 것이다.
 모산수란 관직 이름이고 이정랑은 이름이었다. 이때 ‘모산’은 지명이고 ‘수’는 종친에게 내려지는 관직명이다. 즉 이정랑이란 사람은 종친인 것이다.
 조선시대에 역모 사건과 조금이라도 연루된 종친은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었다. 역모를 하려면 당연히 당대의 왕을 대신할 왕족을 내세워야 하는 법이다. 이지함의 장인인 모산수도 지금 일이 잘못 풀리면 죽을 판이었다.
 “그 일이라면······.”
 윤임이 막 입을 열려는데, 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형판 대감께서는 충주의 사림들이 다칠 것을 염려하여 이홍운의 사건을 무마하려고 고심했으나 방법을 못 찾았습니다. 이제 그대가 이리 당신 장인의 구명을 청하러 왔는데, 그냥 구명만 청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슨 방도를 마련해 왔습니까?”
 내가 그리 말하자 주변에서 듣던 윤임이나 형조의 관리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방금 전에 충주 사림들을 구할 방법에 대해 함께 들어놓고 이리 말하니 황당하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괜히 이리 나선 것이 아니었다.
 ‘과연 이지함이 후대에 떨친 명성만큼 뛰어난 인재인지 한 번 시험을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에 내가 질문을 던져본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이지함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그득했다.
 ‘역시 그저 윤임에게 구명을 청하러 왔을 뿐, 이 난국을 타개할 계책은 마련 못한 것인가?’
 내가 그리 생각하는데 이지함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판께서 충주 사림을 구할 마음이 계셨다면 휘하에 거느린 형조의 관리들을 부려 계책을 마련 못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소생의 계산으로는 이미 방편을 마련하셨을 텐데요? 짐짓 그대가 나에게 방편을 묻는 것은 나를 시험해 보고 싶으신 겁니까?”
 이지함은 순간적으로 내가 시험하려고 한다는 것을 간파한 듯 그리 되물었다. 내가 놀라서 움찔하는데, 이지함이 행낭에서 웬 책자 여럿을 꺼내며 말했다.
 “이번 고변에서 빈틈은 다름 아니라 계모임을 반란을 위한 조직으로 몰았다는 점입니다. 그 점을 파고 들면 이약빈 이홍운 부자는 몰라도 억울하게 엮일 충주 사림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장부가 근 몇 년간 그 계모임이 모일 때 지출했던 비용이며, 모임 장소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충주 고을의 백성들에게 무릎맞춤을 시켜서 물어도 증언을 해줄 것입니다.”
 이지함이 꺼내든 장부를 본 주변 형조 관리들의 눈이 빛났다. 비록 관리들이 계모임의 조직적 문제를 파고든다는 대강의 방향은 정했지만, 충주 사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물증이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 충주로 사람을 보낼 작정이었는데, 마침 이지함이 장부를 들고 온 것이다. 그 장부를 살핀 형조의 아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 계모임 때마다의 지출과 어디에서 모였는지, 그리고 모임을 가진 후에 지은 시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이 정도로 상세한 기록이 있다면 능히 다른 충주 사림들은 무고함을 입증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형조의 아전들이 그리 말했다. 윤임은 그 소리를 듣고 호탕한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인물을 만났군. 허허, 그래도 한 밤중에 내 집에 난입해 들어온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네. 껄껄껄. 며칠 내 집에 머무르며 말벗이나 되어주게.”
 그러더니 밖을 향해 외쳤다.
 “여봐라. 상을 하나 봐오너라.”
 윤임은 요 며칠 골머리를 앓던 문제가 해결의 기미가 보이자 흡족해 보였다. 거기에 방금 만난 이지함이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에 식사를 대접하려는 것이다.
 원래 평시 같았다면 술상을 대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선왕인 중종이 죽은 지 1년 여 남짓. 아직 삼년상 기간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술을 대접하기는 어려웠다.
 나야 윤임이 정치력이 부족하다고 평했지만, 그래도 한 시대의 권신으로 나름의 보스 기질은 있는 윤임이었다. 그러니 이처럼 비범한 손님을 화통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 역시 환영이었다.
 ‘방금 전에 내가 짐짓 던진 시험을 통과해낸 것도 그렇고, 확실히 명불허전의 인물이긴 하지.’
 아직은 초저녁이었고 시간이 충분했다. 좀 더 이지함이란 인물에 대해 관찰해볼 참이었다.
 사실 요 근래 나는 인재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어전회의에 많은 신하들이 도열해 있어도, 사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드물었다.
 거기에 하나같이 성향도 비슷했다. 과거를 통해 능력에 따라 거른다고 해도, 애초에 과거에 응시하는 집안이 한정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상이나 능력이나 하나같이 판에 박은 듯한 인물이 많았다.
 이 와중에 이지함 같은 개성적인 인물을 만나자 호기심이 크게 동했다.
 ‘이야기를 나눠보고 쓸 만하면 유일로 등용해야겠어.’
 나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유일이란 굳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재야에 있는 선비를 일종의 천거로 등용하는 제도였다.
 저녁 식사가 들어오자 윤임과 나, 형조의 관리들과 이지함은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형조의 관리들은 윤임에게 일제히 인사를 했다.
 “소관들은 내일도 아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 이만 물러가 자려고 합니다.”
 “그래, 고생했네. 순라군들이 돌 시간이니, 내 방을 내줄테니 묵고 가게.”
 그 말과 함께 형조의 관리들은 윤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이제 사랑방 안에 남은 사람은 나, 윤임, 이지함 세 사람뿐이었다.
 그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생은 형판 대감의 당질인 진사 이억명이라 합니다. 방금 전에 이 공을 제가 짐짓 시험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워낙 이 공의 신태가 비범해서 그 재주가 어떨까 궁금해서 그러했습니다.”
 내가 가명을 밝히며 사과하는 시늉을 하자, 이지함은 소매를 휘저으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진사께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소생은 그저 장인어른의 일이 무사히 풀린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 그런 일에는 신경이 안 쓰이는군요. 허허.”
 이지함이 웃는데, 나는 표정을 진지하게 하고 말했다.
 “당장 눈앞의 고비는 넘겼지만 이 사건은 실로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닙니다. 기실 이홍운의 아비인 이약빈이 조광조 신원의 상소만 안 올렸다면 이홍운의 역모 사건은 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광조와 나라를 바꿀 경장을 싫어하는 무리들이 조광조의 이름이 다시 나오는 것을 싫어해 트집을 잡는 것이지요. 비록 충주의 사림들을 구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백성들은 곤궁하고 나라의 재용은 궁핍합니다. 이 공께서는 이런 나라를 구할 계책이 혹시 있으신지요?”
 내 질문을 들은 윤임이 문득 헛기침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험험. 나 같은 관리가 젊은이들이 시국을 논하는데 있으면 부담이 될 테지. 이 공, 내 당질과 기탄없이 이야기를 나눠보시오.”
 그러더니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방을 나섰다. 내가 진지하게 이지함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러난 것이다.
 “이 진사께서는 대뜸 나 같은 떠돌이 선비에게 나라를 구할 계책을 물어보니, 내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이지함은 짐짓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뭔가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낡은 집이 허물어지는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무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조선이 몹시 낡은 집과 같다는 형세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낡은 집을 수리하자고 맨 처음 부르짖은 것이 조광조 선생이고, 그 때문에 아직 세인의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집이 무너지면 모두가 다칠 판인데, 어찌 신분의 귀천을 따져 의견을 묻겠습니까?”
 조선을 낡은 집으로 비유하는 방식은 나중에 이름을 날리는 대학자 율곡 이이의 비유법이었다. 내는 겨기에서 차용을 한 것이다. 이 집의 비유는 확실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절묘한 비유였고, 게다가 진실이기도 했다. 그냥 어찌어찌 나라가 현상유지를 하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문제가 터지리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근심하고 있었다.
 내 말에 이지함도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열 기분이 된 모양이다. 철갓을 쓴 채로도 목을 바로 세우며 이지함이 입을 열었다.
 “이 진사의 말이 맞습니다. 많은 사림들이 조광조 선생을 추모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런 추모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광조 선생이 했던 대로 경장을 하려고 한다면 나라가 무너질 것입니다.”
 이지함의 어조는 차분했지만 내용은 실로 과격했다.
 사실 구공신 세력이나 기득권층은 조광조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그 외의 사림들에게는 엄청난 우러름을 받고 있었다.
 “이 말이 혹여 새어나간다면 세상이 소란스러워질 것입니다.”
 내가 그리 경고하는데도 이지함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무릇 경장을 하려면 시무지학을 깊이 연구한 연후에야 가능한 법입니다. 세인들이 이사를 가서 새 집에 들어가도 며칠은 낯설어 살기에 불편함과 혼란을 느낍니다. 하물며 군국의 큰 제도를 바꾸는 일은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지난 기묘년에 조광조와 사림들은 하루아침에 대비도 없이 위훈삭제를 감행했기에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저 사람이 옛 일을 배우는 까닭은 그 장점은 취하고 단점을 버리려는 것입니다. 오늘날 경장을 하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무지학이란 정말 나라의 제도나 운영에 관련된 학문이란 의미였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따지면 행정학, 행정법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렇다면 이 공께서는 어떤 연구를 해 오셨는지요?”
 나는 기대되는 심정으로 그리 물었다. 솔직히 말하는 것만 봐도 이지함이 나라의 경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온 티가 났다.
 아무리 내가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또 사실 조선의 사정에 대해 세밀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만큼 당대의 인재들의 견해를 듣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소생은 평생 바다를 좋아하고 섬에 가기를 즐겼소. 제주도에도 3번이나 들어가 봤지요. 나는 내가 좋아하고 직접 본 바에 따라 이 나라의 경장을 생각해왔습니다. 내 생각에는 바닷길을 통해 나라의 세금을 거두는 조운만 개선해도 얻는 이득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조운을 개선한다니요?”
 “충청도 태안군 앞 바다의 400여 리 물길이 험해서 조운선이 자주 난파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실로 옛 고려 때부터 그런 일이 잦았지요. 그래서 나라에서는 하다못해 태안에 운하를 파서 험한 바닷길을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태안군은 화강암이 깔린 지역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운하를 파지 못하지요.”
 “운하도 파지 못하고 바닷길이 험하니 도리가 없지요.”
 나도 태안반도의 바닷길이 험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미래에서 온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진사는 직접 배를 타본 적이 없으셔서 하는 말이외다. 비록 험한 바닷길이라고는 하나 그곳도 능수능란하게 빠져나오는 뱃사람이 있지요. 이 이지함이 평생 본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인재지요. 실로 육지에 집이 없고 온 가족과 배 위에서 평생 사니 배 다루는 솜씨가 뛰어날 수밖에요. 어쨌거나 그런 뱃사람들은 태안의 물길이 험하다 해도 결코 실수를 하는 법이 없소. 그런 이들에게 넉넉히 대가를 주고 조운선을 운행한다면, 가라앉는 조운선이 결코 없을 것이외다.”
 사실 이 조운과 관련된 일은 나도 어렴풋한 지식만 있었지 상세한 지식은 없었다.
 “왜 나라에서 그런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나라는 조운선도 부역으로 취급해 해안가 고을의 주민들을 군대 징집하듯 강제로 불러 조운선을 운행하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어느 정도 배를 몰긴 몰아도 아주 숙련되었다고 보기 힘들기에 사고를 낼 수밖에요. 우리나라는 한 해 얼마 되지 않은 세금을 한양까지 운송하는 데에만 5만 석을 허비합니다. 그 수치에는 운송 도중 침몰해서 버리게 된 쌀도 포함이 되지요. 만약 나라에서 강제로 부역으로 조운을 하지 않고 능숙한 뱃사람들을 고용하고 양성한다면 나라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또 길게 보면 그렇게 허비되는 운송비를 줄이는 방책입니다.”
 이지함이 도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나는 이지함의 웅장한 구상에 담긴 단점을 지적했다.
 “그런 유능한 뱃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대우하려면 많은 비용이 필요할 텐데, 지금 조정에는 그럴 만한 재원이 없습니다. 이미 호조에서 한 해 거두어들이는 곡식이 20~25만 석에 불과하니. 아니 나라에 소용되는 여러 일들에 쓰다 보면 매해 적자지요.”
 “내 그래서 시무지학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물론 호조의 재정으로 그것을 감당하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내 생각해 보건데 조정에는 아직도 여력이 있습니다. 왕실에서는 어염세, 즉 어부들과 염전에서 거두는 세금은 내가 나름 계산해 보니 미곡 2만 석은 됩니다. 이 비용을 왕실에서는 종친들의 품위유지비에 모두 사용하고 있지요. 실로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어염선세 중 반을 떼어 1만 석을 노련한 뱃사람들을 모으는데 쓴다면, 족히 조운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지함은 나름 깊이 생각을 해왔는지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까지 마련해서 왔다.
 “흐음.”
 나는 감탄성을 내었다. 민간에서 홀로 연구를 해서 저 정도까지 생각해낸 이지함의 노력에 놀라서였다.
 ‘하지만 당장 시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지함의 세밀한 계획을 듣고도 그것을 당장 따를 수는 없었다. 왕 노릇을 1년여 간 해오며 많이 아는 만큼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내가 그저 감탄성만 내고 있지 이지함이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이 진사는 내 계책이 어떻다고 여기시오? 어찌 아무 말이 없으신 겁니까?”
 “이 공의 계책은 재원을 조달할 방법까지 제시했으므로 조정에서 마음만 먹으면 실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하는 데는 큰 장애가 있습니다. 첫째, 수입이 줄어든 종친들이 조정을 흔들 것인데, 정치적으로 그것을 감당키 어렵습니다. 둘째, 조운을 맡은 뱃사공들에게 넉넉한 대가를 준다는 것은 옳으나, 기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중요한 나랏일을 하고도 아무 녹봉도 못 받는 무관들과 아전들이 많습니다. 하니 조운을 하는 뱃사람에게만 대가를 준다면 반발이 많을 것입니다.”
 사실 조선 조정은 한양에 사는 문관을 제외하고 다른 관리들에게는 월급을 지불 못하고 있었다. 무장들도 고위 장군이 아니면 녹봉이 없었다. 또 각 관아의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들도 월급 한 푼 안 받고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조선의 무신들과 아전들은 그야말로 먹고 살려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았다.
 비록 조운이 중하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조운을 맡은 뱃사람에게만 녹봉을 준다면 이들의 원망이 심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는 정론을 취하려니 재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허허허, 과연 경장이란 쉽지 않은 일이외다. 내 나름 깊이 생각한 방안이지만 여기에서 막히는구려.”
 이지함도 내 반박에 고개를 끄덕이며 처연하게 웃었다. 뱃사람들을 고용하는 재원이야 어염선세 1만 석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전국의 무신들과 아전들에게까지 인건비를 지급하려면 수십만 석의 재원이 필요했고, 이지함도 그 재원을 조달하는 계책은 창졸간에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기에 경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정을 튼실하게 한 뒤 총체적으로 전국의 각 분야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공의 말처럼 조운 한 분야만 따로 경장하는 식으로 일을 해나갈 수는 없지요.”
 이지함에게 나는 그렇게 내 마음 속의 계획을 밝혔다. 내가 괜히 돈, 돈 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전국의 관원에게 녹봉도 지급이 가능하고, 진정한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다.
 “이 진사의 말이 옳습니다. 허허, 이 진사는 실로 나라의 일을 보는 눈이 넓습니다. 과연 경장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 분야의 일을 한꺼번에 진행해야겠구려. 어느 한 분야만 개혁한다 해도 그것이 다른 분야에 영향을 끼치니, 그 분야도 시세에 맞게 변혁시켜야겠지요. 허허.”
 이지함은 한순간에 내 말의 요지를 파악하고 그렇게 호응했다.
 ‘실로 당세의 기재다. 거기에 사람됨이 보통 선비들과 다르게 트여 있어.’
 비록 이지함의 제안을 당장은 실행할 수 없다고 물리친 나지만 나는 이지함을 그리 평했다. 이지함은 자신이 관심 있는 몇몇 분야에 대해서는 놀랄 정도로 해박했으며, 구체적 개혁이 가능할 정도의 정책도 생각하고 있었다.
 ‘윤임에게 이지함을 유일로 천거토록 해서 등용해야겠다. 당장 개혁을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우선 개혁을 위한 제도 연구가 시급하니. 이지함에게 우선은 시간 여유가 많은 관직을 주어 연구를 할 만한 자료를 주고, 몇 년 뒤 준비가 갖춰지면 크게 쓰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결심을 하고 이지함과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이지함은 여러 섬이며 해안가를 많이 떠돌아다녀서 견문이 풍부했다.
 한참을 이야기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아놔, 내일도 궁에서 일을 봐야 하는데. 벌써 한밤중이라니. 오늘은 윤임의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몰래 궁으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그런 계산을 하고 이지함에게 말했다.
 “이 공, 소생은 본래 몸이 강건하지 못해 밤이 되니 피로합니다. 이 공과는 한숨 자고 내일 시간을 내어 다시 시국을 논하고자 합니다만.”
 아닌 게 아니라 이 몸의 원래 주인인 인종이 원체 허약한 체질이라 그런지 이 몸으로는 쉽게 지쳤다.
 “이 몸도 실로 이 진사와 같은 분은 처음 보오. 군국의 여러 일에 대해서 막히는 바가 없구려. 오늘은 늦었으니 잠이나 듭시다.”
 이지함도 그리 말했다.
 새로운 인재를 만나서 신나게 떠들어서 그런지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불을 펴고 눕자마자 나는 바로 잠들었다.
 약간의 한기와 함께 새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리고 내 경호원인 강요금이 옆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이제는 일어나셔서 궁에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그러지 않으면 늦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방안이 왠지 휑했다.
 ‘어제는 윤임의 사랑방에서 이지함과 함께 자지 않았는가? 이지함은 어디에.’
 별감 강요금은 내가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했다.
 “어젯밤에 이야기를 나눴던 선비를 찾는 거라면, 그 선비는 어제 한밤중에 훌쩍 일어나 길을 나섰습니다. 여러 사람이 말려도 끝내 듣지 않고 떠났습니다.”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아차 싶었다. 약간은 낭패였다. 그리고 방 한 귀퉁이에 웬 흰 종이봉투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정황상 이지함이 남겨놓은 봉투가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봉투를 열어 보았다.
 『이 미거한 서생이 전하와 하룻밤 나랏일에 대해 논한 것은 실로 일생의 광영이었습니다. 전하를 알아뵙고도 사정상 예를 갖추지 못한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기실 처음부터 형판 대감이 당질이라면서 전하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있어서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치국의 도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전하께서 미복을 걸치시고 잠행을 나오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실로 어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전하께서는 전국의 세수며 재원, 아문의 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계셨습니다. 실로 당대 우리나라에서 젊은 나이에 그런 식견을 가진 자가 전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설사 전하만큼 총명한 기재가 있다 하더라도 세수며 아문의 운영은 군국의 기밀사무이기 때문에 범인은 알기 어렵습니다. 또한 형판 대감은 사사롭게는 전하의 외숙이 되기에 그 집에 있는다 해도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대화 도중 전하임을 알았으면서 예를 갖추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용서룰 구합니다.
 그러나 어제의 대화는 실로 소신의 일생의 영광이었사옵니다. 소생은 세상을 비웃는 괴벽이 있어 내 가슴에 큰 뜻이 있는데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함을 누차 원망해왔습니다. 그러나 어제 전하의 가르침을 받고 비로소 소신의 공부가 부족해서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소신 그런 만큼 다시금 조선의 산과 바다를 떠돌며 나라를 살릴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소신 스스로 만족할 만큼 공부를 마치며 다시 돌아와 나라를 위해 쓰이고자 합니다. 그 때까지 소신을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제 장인인 모산수 어른과 충주 사림들의 목숨은 전하의 아량에 기댈 뿐입니다. 전하께서 꼭 구해주려 하신다는 것을 믿고 떠납니다.』
 “껄껄껄.”
 나는 이 편지를 읽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지함이 어쨌거나 비상하고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좋군, 좋아. 기다리지. 다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길.’
 
 ***
 
 ‘졸리구만.’
 윤임의 집에서 새벽에 부랴부랴 궁까지 뛰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오전부터 매우 졸렸다. 그러나 왕으로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억지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어쨌거나 오늘은 이홍운의 역모 고변 사건을 적절히 수습해야 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이홍운은 함부로 망령된 말을 했으니 결코 용서할 수는 없다. 난언율로 다스려 장 100대에 3천리 밖으로 유배시킨다. 이약빈도 홍운의 아비로서 자식을 제대로 못 다스렸으니 죄를 받아야 한다. 태 50대를 치고 500리 밖으로 유배를 처한다. 이에 연루된 다른 충주 선비들은 굳이 조사할 필요 없다.”
 나는 대뜸 그리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홍운에게는 안 된 일이긴 했다. 술자리에서 한 말실수로 장 100대라니. 거의 반죽음을 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일이 이렇게 번진 이상 도리가 없었다.
 “전하, 난언율을 적용하다니요? 이는 역모입니다.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중추부사 정순붕이 다시 그리 나섰다. 소윤의 대신들도 일제히 강경론을 부르짖었다. 참 피를 보기 좋아하는 양반들이다.
 나는 굳이 내가 그들과 대거리하고 싶지 않아 윤임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윤임이 나서서 말했다.
 “험험, 이홍운이 역모를 꾸민다는 증좌로 계모임을 이용해 조직을 꾸렸다는 소문이 도는데, 그것이 낭설임이 형조의 조사로 밝혀졌습니다. 형조의 관원들이 충주 선비들의 계모임의 장부를 입수했는데, 실로 그 내역이 상세히 적혀 있어 위조라 볼 수 없습니다. 충주 선비들은 그저 모여서 소풍이나 다니고 시나 지었을 뿐 역모를 위한 조직이란 것은 어불성설이외다.”
 윤임이 미리 준비해둔 대사를 술술 내뱉었다. 그건 무장 출신인 윤임의 생각은 아니었다. 형조의 관리들이 미리 준비해준 이야기였다.
 대명률에 따라 이렇고 저렇고 법적인 이야기를 윤임이 준비한대로 늘어놓자, 소윤의 대신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선의 고위 대신들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법에 대해 문외한이거든.’
 나는 당황한 소윤 대신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시대의 법 전문가들은 형조나 각 관아의 아전들이었다. 그들이 여러 소송이나 대명률 같은 법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윤임이 법을 들이대며 이홍운을 방어하자, 다른 대윤의 신하들이 일제히 호응했다.
 “법으로 그리 정해졌다면 아무리 괘씸해도 벌을 더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충주의 무리들도 전하께서 법으로 자비롭게 처결하시면 감화되는 바가 클 것입니다. 본래 성왕의 정치는 덕으로 하는 법입니다.”
 특히 온건하고 피를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좌찬성 이언적은 이번 사건을 축소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뭔가 법적으로 명분을 삼을만한 꼬투리가 생기자 앞장서서 소윤의 강경론을 논박했다.
 거기에 내가 슬며시 이언적 등을 밀어주자 소윤으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그들 소윤으로서는 자신들의 부족한 세를 절감하며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간 내 속을 끓게 만들었던 이홍운의 역모 사건이 잘 마무리 되는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이 일이 마무리 되자 나는 다음 사안을 꺼냈다.
 “과인이 생각하기에 나라의 여러 일을 처결하는데 있어 신중히 고금의 사례를 살피고 연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연구 없이 대책을 내놓아봤자 그것은 주먹구구일 뿐이다. 그런 만큼 나라에서 비용을 들이더라도 그런 연구를 위한 기관을 만들고자 한다. 실로 세종 대의 유서 깊은 이름을 따서 집현전이라 이름 짓고 선비들을 모으려고 하는데, 여러 중신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조선으로 전생해 와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뭔가 정책을 수립할 때 도움을 주는 연구기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신들에게 마련하라고 한 흉년대책도 그러기에 뭔가 깊이가 없었고 피상적이었다. 그리고 또 내가 어제 이지함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바도 컸다.
 이지함은 바닷길이나 조운과 관련해서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재도 자신의 관심분야가 아닌 곳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 나라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이지함과 같이 해당 관심분야에 해박한 선비가 여럿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평상시에 업무 대신 연구에만 열중할 신하들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집현전을 폐지시킨 것도 세조, 즉 수양대군이지. 이 양반은 대체 안 끼는 데가 없어.’
 내가 그렇게 세조가 싼 똥에 대해 속으로 구시렁거릴 때, 호조판서 임백령이 나서서 말했다.
 “전하의 고결한 뜻은 알겠사오나 그런 기관을 만들려면 소속된 관원에게 줄 녹봉이며 연구를 위한 서적구입비를 마련해야 하옵니다. 요 근래에는 흉년이라 새로이 일을 벌이기가 어려운 법이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호조판서는 각 아문의 운영비를 대는 역할도 있는 만큼 새로운 기관을 늘리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나는 호조판서 임백령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 양반은 소윤이라 정치적으로 파벌이 다를뿐더러 정말 마음에 드는 게 없군. 무슨 로봇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임백령은 내가 무슨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로봇처럼 돈이 없다는 똑같은 논리로 태클을 걸었다.
 물론 직책이 호조판서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매번 무슨 문제점만 지적하고 돈 나올 구멍을 못 만들어내는걸 보면, 확실히 마음에 안 들어.’
 자주 부딪치는 임백령의 얼굴을 보자 그런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올랐지만 나는 내색을 하지 않고 말했다.
 “이 새로이 만들어질 집현전의 경비는 내가 내수사를 통해 마련해서 호조로 보내겠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말라.”
 왕인 내가 돈까지 마련해 오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임백령도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물론 나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리 호언장담을 한 것이다.
 ‘왜관에 명나라 산 생사를 팔러간 역관들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 어차피 구조적으로 반드시 이득을 낼 수밖에 없는 교역이니 그들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 이득이면 능히 집현전 운영비는 뽑아낸다. 그리고 그 중계무역이 몇 차례 순환하면 나도 나름 무언가를 시도해 볼 수 있겠지.’
 무슨 일을 벌이든 중요한 것은 재원의 조달이었다. 그렇게 내가 돈 나올 구멍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다면 집현전 학사로 우선 부를 관원은 누구인지요? 전하께서 심중에 두신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소신들이 추천해 올려야 할지 궁금하옵니다.”
 영의정 윤인경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주변의 대신들이 모두 반색하는 기색이었다. 어쨌거나 집현전과 같이 궁 안에 설치되는 연구기관은 왕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그만큼 출세의 루트가 될 수도 있었다.
 ‘추천하라고 하면 대부분 대신들과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된 위인들이 명단에 오르겠지.’
 거의 염증이 날 정도로 뻔한 패턴이었다.
 “과인이 염두에 둔 사람이 하나 있다. 집현전을 처음부터 큰 규모로 열 수는 없으니 우선 학사 1명과 그를 보좌하는 몇 사람을 두어 제도를 정비하고자 한다. 홍문관 전한 이황은 명을 받들라.”
 나는 여러 신하들 중 한 사람을 콕 집었다. 다름 아닌 이황을 집현전 학사로 임명할 작정이었다.
 
 * * *
 
 그날 어전 회의가 끝나고 나는 이황을 따로 호출했다. 한 번 독대를 나눌 참이었다.
 궁 안 전각의 한 방 안.
 상궁 나인들이 나와 이황의 앞에 다과상을 놓았다.
 눈앞에 놓인 상 위의 차를 한 모금 마신 내가 먼저 말머리를 떼었다.
 “그대가 정사를 돌보는 요직에 나아가 품계를 올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과인이 집현전으로 불러 그대가 서운할까봐 염려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집현전 같은 연구 쪽으로 한 번 진로를 틀면 동기들보다 출세가 늦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황은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무슨 망극한 말씀이옵니까? 신은 평생 책 읽고 깊이 사색하기를 즐겨왔습니다. 기실 요 근래에는 번다한 일이 많아서 신이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리 집현전을 새로 여시며 신을 불러주시니, 그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뭐 솔직히 왕이 집현전 학사로 임명했는데 ‘사실 학사 자리는 싫고 소신은 출세를 원하옵니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이황의 표정은 진정으로 흡족해 보였다.
 ‘하긴, 실제 역사에서 이황의 행적을 고려해서 직위를 옮긴 거니 확실히 만족하겠지.’
 실제 역사를 보면 이황의 관직 생활은 매우 짧았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문정왕후가 권력을 잡으며 대규모 숙청을 감행해서 이황이 정치에 염증을 느낀 것이었지만. 사실 이황의 성향 자체가 권력의지가 없는 것에 가까웠다.
 사실 나중에 훈구파들을 몰아내고 사림이 집권하면서 사림들의 종주인 이황은 높은 관직에 나가려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이황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며 평생 학문 연구에만 종사했다.
 ‘아무래도 권력의지가 약한 이황을 정계에 붙들어 놓으려면, 책을 읽고 연구를 할 수 있는 보직을 줘야겠지.’
 그런 내 생각이 들어맞은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새로이 만들어질 집현전의 제도며 조직은 그대가 이조의 관리들과 의논해 마련하도록 하라. 그에 경비가 많이 소요된다 해도 개의치 말라.”
 나는 미래에 대한 투자란 생각에 과감히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러면 우선 집현전이 열리게 되면 맨 처음 어느 분야의 연구를 맡길 작정이신지요. 신이 미리 그것을 알아야 그에 맞추어 일을 꾸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황이 예리하게 본론으로 들어왔다. 집현전은 그냥 책만 읽는 곳이 아닌 정책 연구를 위한 기관이었다. 그런 만큼 연구 대상에 맞추어 서적이며 사람을 우선 모아야 했다.
 나는 다과상 위의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지금 이 나라의 근본적 문제는 재정의 곤궁함이다. 또 재정이 너무나 곤궁한 까닭은 흉년 탓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세금을 걷는 방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세금 중에서도 공물의 폐단이 극심하니 그것을 개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그대가 집현전을 새로이 열면 우선 나라의 공물 제도와 관련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하라.”
 공물과 관련된 자료조사를 하라고 말만 하는데도 목이 타는 것을 느낀 나는 차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공물의 폐해라······. 실로 커다란 일입니다.”
 공물이라는 말을 듣자 이황의 얼굴도 진지하게 변했다. 명석한 만큼 내가 변혁시키고자 하는 공물제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조선 사람들이 살면서 국가에 내는 세금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조세, 공물, 역.
 조세는 토지를 가진 사람이 보유 토지 면적에 따라 내는 세금이었다. 이 조세는 별 문제가 없었다. 토지소유자란 건 농경사회인 조선에서 나름 부자란 뜻이었다. 게다가 근래에 이르러 이 조세는 매우 가벼워졌다.
 세종대왕이 만든 공법에 따르면 풍년인지 흉년인지에 따라 토지 1결당 많게는 20두, 적으면 4두씩 조세를 거두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행정력이 미비한 조선시대에 토지소유자들이 풍년이라고 20두씩 세금을 낼 리가 있을까?
 다 풍흉년을 판단하는 아전들에게 뇌물을 주든 식사 대접을 하든지 해서 서류를 조작해 매해 흉년 때 내야 하는 액수인 4두를 바쳤다.
 조선 정부는 아전들에게는 월급을 안 주기 때문에 여기에 홀랑 넘어가 버렸다. 그래서 조선 전국의 토지세는 결당 4두~6두 정도만 걷히는 형편이었다.
 공물이란 쌀이 아닌 각 지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왕에게 바치는 세금이었다. 사과가 유명한 고을은 사과를 바치고, 사슴이 유명한 고장은 사슴을 사냥해 바쳤다.
 그런데 토지를 기준으로 삼는 조세에 비해 공물은 딱히 어떻게 거두라는 기준이 없었다.
 “안동군에서는 고등어를 100상자 보내고, 영주군은 사과를 200상자 보내도록 하라.”
 대충 이런 식이었다. 각 고을의 지방관이 고을 사람들에게 알아서 공물을 얼마씩 내라고 지정했는데, 여기에 당연히 부정이 개입되었다.
 “내가 말이야. 이 고을 유지인데, 내가 부담이 많이 되는 공물을 마련해야겠어? 그건 그냥 힘없는 일반 농민들이 대야지. 허허. 안 그러면 이 고을에서 사또 노릇 하기 힘들 거요.”
 각 고을의 유지들은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하든 뇌물을 먹이든지 해서 다 빠져나갔다. 그래서 힘없는 농민들만 공물을 바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다.
 이 고통에 더 타격을 가하는 것이 방납의 폐단이었다. 힘들게 바치라는 사슴 잡아 바쳐도, 담당 관아에서 시비를 거는 것이다.
 “이 사슴은 덩치도 작고 털 색깔도 이상해. 못 쓰는 사슴이야. 딴 걸 가져와.”
 이래놓고 농민들이 다른 사슴을 잡아 바쳐도 받아들이는 걸 거부했다. 그리고 삥을 뜯기 시작했다.
 “그냥 사슴을 직접 가져다 바치지 말고 쌀이나 면포를 우리한테 주면 우리가 사슴을 구해줄게. 허허. 대신 우리가 수고해 주는 거니, 원래 사슴 가격의 20배만큼 쌀은 줘야겠어.”
 실로 날강도 같은 짓이었지만 이런 일이 아예 관행이 되어버렸다. 결국 관아에서는 사슴 가격의 19배에 이르는 쌀을 횡령했다.
 이 쌀은 각 관아의 아전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한양의 권력가들이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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