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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개정판] 신의 파편

신의 파편

2019.06.13 조회 983 추천 4


  신의 파편
 
 
 
 
 1화
 
 
 
 
 
 
 
 
 
 ‘요즘처럼 어려웠던 적이 없다.’
 
 저 말을 처음 들은 게 아마 2009년쯤이었을 거다. 웃기는 건 2020년 중반인 지금까지도 매년 같은 소리를 듣는다는 거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열심히 살았다. 하라는 공부 다 하고, 스펙도 착실히 쌓았다. 하지만 희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는다.
 
 행복 같은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다. 지금보다 더 힘들고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
 
 “크으~”
 
 쓰디쓴 알코올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콱 죽어버려?”
 
 더 살아 뭐 하지? 점점 더 힘겨워질 게 뻔한 비참한 인생인데.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반쯤은 포기했으니까.
 
 술잔에 쪼르륵 액체가 담기고, 그 액체는 입속으로 사라졌다. 술은 사라졌지만, 근심은 그대로였다.
 
 
 
 * * *
 
 
 
 “쒸팔. 내가아 왜애 불합격이냐고오오. 어엉?”
 
 준석은 골목길을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이미 술이 떡이 된 상태.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왜? 왜 나는 안 되는 거냐고오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아무리 노력하고 스펙을 만들어도 탈락. 탈락. 탈락. 성실하게 노력해도 현실은 시궁창.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면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까? 돈, 사랑 같은 거 정말 가질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그래서 동네 편의점 앞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안주도 없이 급하게 마셔서인지 금방 취했다.
 
 “니미. 내가아 뭐어 어디가아 어때서어어. 쒸부럴.”
 
 만취한 터라 걷고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준석의 앞쪽에서 갑자기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제법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그런 걸 알아차리기에 준석은 너무 많이 취했다. 그는 여전히 비틀거리며 집을 향해 걸었다.
 
 일그러진 공간은 꿀렁거리며 마구 요동쳤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 그런데 갑자기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 안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커헉!”
 
 남자는 바로 앞에 있던 준석과 부딪치며 뒤엉켜 넘어졌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남자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생기더니 그 빛이 준석에게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 거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남자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을 죽이려는 킬러를 피해 포탈을 열고 도망친 거였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문이 열리는 장소가 아닌 이상한 곳으로 오게 되었다.
 
 “끄으으으~”
 
 자신의 힘을 이 청년이 흡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단지 괴로움에 작은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준석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와 부딪친 남자의 얼굴은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던 그의 얼굴은 이내 주름이 가득해졌다. 그리고 검은색이던 머리는 어느새 대부분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 쒸버얼. 뭐야아아.”
 
 갑자기 넘어져 버둥거리던 준석은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 바람에 남자는 준석과 떨어질 수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30대로 보이던 그 남자의 외모는 70대로 변해 있었다. 순식간에 늙어버린 남자는 벽을 잡고 힘겹게 일어났다. 준석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앞을 보오고 다녀야지이. 눈은 어따 가아 두고오 어헉.”
 
 준석이 말을 할 때 포탈 안에서 다른 남자가 튀어나왔다. 건장한 남자는 바로 앞에 있는 준석과 부딪쳤고, 뒤엉켜 넘어졌다.
 
 킬러가 포탈에서 나오자 남자는 사색이 돼서 도망을 쳤다. 남자는 도망치느라 보지 못했지만, 킬러도 그 남자와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다.
 
 킬러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나더니 그 빛이 준석에게로 옮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급격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아 놔 씨아앙.”
 
 두 번이나 넘어진 준석은 짜증이 확 솟구쳤다. 그는 자신을 덮친 남자를 밀쳐 내려 했지만, 워낙 덩치가 커서 쉽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실랑이를 하던 준석은 간신히 그를 떼어낼 수 있었다. 킬러는 눈을 부릅뜨고 손으로 준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몸이 회색으로 변하더니, 손끝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버렸다. 그 자리에는 그가 입던 옷가지만이 남아 있었다.
 
 만취한 준석은 일어나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뭐야아. 미안하다는 마알은 하고오 가야 지이. 매너느은 국을 끓여어 먹었나아.”
 
 준석은 뒤돌아 비틀거리며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 * *
 
 
 
 잠에서 깬 준석은 몸이 뒤지게 아프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 몸이 왜 이러지?”
 
 일어나던 준석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준석은 숙취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의 고통은 숙취 같은 게 아니었다.
 
 고통의 종류는 다양하다. 맞으면 욱신거리고, 열이 나면 몸이 으스스하다. 상처가 생겼을 때, 부러졌을 때 모두 다르게 아프다.
 
 준석 역시 아픈 적이 있어서 어떤 때 어떻게 아픈지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고통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냥 모든 고통이 뒤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몸 전체가 아프다 보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준석은 엉금엉금 기어 약통에서 진통제를 찾아 물과 함께 먹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통증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준석은 고통이 좀 가시자 무언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석은 머리를 긁으면서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식사 준비를 했다.
 
 냄비에 물을 끊이다가 라면을 막 집어넣으려는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준석은 핸드폰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구.”
 
 핸드폰에서 여성의 음성이 들렸다.
 
 - 현재 통화대기 중인 사람은 어마마마입니다.
 
 준석은 수프를 넣으며 소리를 질렀다.
 
 “통화 연결.”
 
 딸각 소리와 함께 스피커폰으로 연결되었다.
 
 “엄마 왜요?”
 
 - 아들. 면접 함 봐라.
 
 다짜고짜 면접을 보라는 어머니의 말에 준석은 한숨부터 나왔다. 요즈음 몇 차례 면접 보라고 전화가 왔었는데, 모두 거절했다. 하나같이 조건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좀 더 좋은 직장에서 첫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이번엔 또 어딘데요.”
 
 - 내 친구 남편이 하는 회산데, 그 뭐냐. 반도체 회사라더라.
 
 “반도체 회사요?”
 
 준석은 순간적으로 귀가 솔깃했다. 반도체 회사라고 하면 대기업이다. 그런 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 아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취직할 수만 있으면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친구 중에 대기업 사장 사모님이 있었던가?’
 
 준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한 어머니에게 그런 친구 분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준석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거 정숙이 아줌마네 맞지?”
 
 - 응?
 
 어머니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어색해졌다. 틀림없이 어머니의 친구인 정숙이 아줌마네 남편이 하는 회사였다. 반도체 회사? 대단히 넓은 의미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파리도 조류로 볼 수 있다면.
 
 이름도 모르는 그 회사는 기초 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런 원료를 중소기업이 구매해서 화학 약품을 만든다. 그런 일반적인 약품을 사서 특수한 공정을 거치면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 약품이 된다.
 
 그런 약품을 만들 정도가 되면 대부분 코스닥 등록업체쯤 된다. 그리고 그런 특수한 약품을 대기업에서 사들여서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에 사용한다.
 
 그러니 어머니가 말한 회사는 중소기업 중에서도 소기업에 납품하는 영세기업인 셈이다. 대기업이 바다라면 그 회사는 동네 실개천 정도 된다. 실개천의 물도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하지만 누구도 실개천을 바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연구직이나 기술직이면 경험을 쌓은 뒤 이직할 확률이라도 있지만, 자신 같은 경영학과 출신은 한 번 발 들이면 그 레벨이 평생을 간다.
 
 “엄마.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거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요.”
 
 - 이 녀석아. 일 년 반씩이나 놀았으면 뭐라도 해야지. 계속 그럴 그러고 있을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핑계로 여러 번 써먹어서 그런지 [준비하는 게 있다. =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정도로 생각하시는 듯했다. 지금 준석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토익이 전부였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엄마. 지금 나가봐야 해요. 조만간 집에 내려가니까 그때 얘기해요. 통화 끝.”
 
 준석의 말에 자동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계속 잡고 있으면 한 시간도 넘게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다. 준석은 한숨을 쉬며 냄비를 상에 옮겼다. 젓가락에 딸려 올라온 라면은 이미 퉁퉁 불어 있었다. 준석은 왠지 서글펐다.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서 한 끼를 때워야 하는 사실이 서글펐고,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 어렵게 면접 자리를 마련한 어머니의 전화를 도망치듯 끊어야 하는 처지도 서글펐고, 이미 불은 라면을 하수구에 버리고 나가서 뭐라도 사 먹지 못하는 현실도 서글펐다.
 
 “너구리라고 생각하지 뭐.”
 
 준석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불은 라면을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준석은 순간적으로 코끝이 찡했지만, 라면이 매워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라면을 다 먹고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던 준석은 또다시 통증을 느꼈다. 진통제를 먹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준석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 * *
 
 
 
 병원에 간 준석은 의사에게 증상을 말했다.
 
 “온몸이 아픈데요.”
 
 의사는 별 말없이 체온을 재고, 청진기로 준석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컴퓨터에 무언가를 적고서는 말을 했다.
 
 “감기인 것 같습니다. 열이 좀 있네요.”
 
 준석은 몸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의사에게 항변했다.
 
 “그게, 감기하고는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온몸이 너무 아픈데······.”
 
 의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감기가 그럽니다. 약 드시고 푹 쉬시면 나을 겁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시구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푹 쉬고 스트레스 받지 않게? 저 말을 지껄이고 있는 의사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다.
 
 준석은 투덜거리며 병원을 나왔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는 도서관에 갈 생각이었지만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준석이 집 근처까지 왔을 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이보게.”
 
 뒤를 돌아보니 웬 노인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준석은 몸이 너무 안 좋아 빨리 자기 방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발걸음이 멈추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무슨 일이시죠?”
 
 노인은 준석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물었다.
 
 “자네. 몸이 좀 이상하지 않나?”
 
 준석은 살짝 놀랐다. 하지만 자신의 표정이나 상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다 싶었다.
 
 “좀 아프긴 한데.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런 사람이 있다. 오지랖 넓어서 이거저거 참견하는 사람. 준석은 노인이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고 빨리 방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은 전혀 의외였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했다.
 
 “이런 말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신일세.”
 
 준석은 맥이 탁 풀렸다. 도를 믿느냐는 거에서 이제는 자기를 신이라고 하는 방법까지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예. 제가 좀 바빠서요.”
 
 준석은 망설임 없이 뒤돌아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자네. 이제 곧 몸이 붕괴할 걸세.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이 올 거야.”
 
 준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예. 예. 그래서 할아버지를 따라가야 하고, 무슨 치성을 드려야겠죠? 당연히 비쌀 테구요.”
 
 노인은 준석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대답을 했다.
 
 “반만 맞았네. 나는 낫게 할 수는 없네.”
 
 준석은 예상외의 대답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런 케이스는 무조건 낫게 할 수 있다고 해야 정상이 아닌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생겼고, 뒤돌아 노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노인의 다음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네가 나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네.”
 
 화가 치밀었다. 자신을 호구로 보고 아주 오래오래 벗겨 먹겠다는 말로 들렸다. 준석은 몸을 휙 돌렸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더니 몸이 휘청거렸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더니 준석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았다. 노인은 한여름인데도 장갑을 끼고 있었다.
 
 “자네 정말 위험해. 빨리 내 집으로 가세.”
 
 준석은 당장 손을 뿌리치고 욕설을 한 무더기 방출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라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할아버지. 저 지금 감기 걸려서 힘들거든요. 제발 다른 사람한테 가보세요.”
 
 준석의 푸념에 노인은 손을 놓고 그를 노려보았다.
 
 “자네 정말 감기라고 생각하나? 요즘 감기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나 보지?”
 
 노인의 말에 준석은 깜짝 놀라 손으로 코와 입 주변을 만졌다.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감기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무슨······.”
 
 
 
 
 
 - 2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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