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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4 조회 2,364 추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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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0원입니다.”
 
 쪼르르.
 진우는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편의점을 나와, 야외의 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가 아니었기에, 거리는 더없이 한적하고도 고요했다.
 1분. 2분.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리고 진우는 그 시간 동안 허공만을 응시했다.
 
 “후.”
 
 그렇게 한참 멍하던 진우는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정신을 차린 것처럼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아 참. 라면.......”
 
 다 익다 못해 불어터진 라면.
 하지만 진우에게 그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우는 불어터진 라면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도 아쉬움도 없었다.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며, 그저 기계적으로 젓가락을 뜯을 뿐.
 문제는 그 타이밍에 진우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딴다다다딴-
 
 화제의 게임, R.T.W(Rule the world.)의 대표 로고송.
 그 순간 진우의 손에는 미세하게 강한 힘이 들어갔고, 그 덕에 나무젓가락은 한 쪽으로 쏠려 뜯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진우의 얼굴 역시 구겨졌다.
 
 “젠장. 이제 하다하다.”
 
 진우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그 잘못 뜯어진 젓가락을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초라하게 던져져 가을바람에 따라 어디론가 굴러가기 시작하는 젓가락.
 이제는 하다하다 라면도 젓가락도 비웃는 느낌이랄까.
 진우는 라면 대신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후.”
 
 진우는 습관적으로 이를 갈았다.
 또 다시 그 이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으드득- 한시우. 이 개만도 못한 새끼.......”
 
 그 원인은 편의점의 광고판에 있었다.
 익숙한 R.T.W의 풍경들이 치장되어있는 스튜디오.
 
 -화제의 달인 이수진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TV의 방송으로, 이번 주 화제의 인물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꽤 예쁘장한 진행자가 마침 그 인물을 소개하는 그런 화면이었다.
 
 -블루스타 길드에서 이번에 엄청난 아이템을 얻었다는 소문에, 어렵게 수소문해서 모셔왔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블루스타의 길드마스터, 가웨인. 한시우씨입니다!
 -안녕하세요. ‘가웨인’ 아이디를 쓰고 있는 한시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새로운 전설 아이템을 얻으셨다고!
 
 이수진은 귀여운 얼굴로 호기심이 가득한 듯 말했고, 한시우는 그런 이수진에게 능글맞은 웃음으로 답했다.
 
 -네. 어쩌다보니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얻은 지는 좀 됐지만요. 하하.
 -세상에 나온 두 개의 전설 아이템 이후, 새로운 전설 아이템이라 저도 매우 흥미가......,
 
 재수 없는 새끼!
 진우는 그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가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시우가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저 황금색 갑옷의 정체가, 원래는 여기 처량하게 앉아 있는 진우의 것이었으니까.
 
 “에이. 퉤.”
 
 진우는 더 이상 방송의 소리가 듣기 싫어 아예 자리를 떴다.
 
 ★ ★ ★
 
 한편 진우가 떠난 편의점의 광고판 화면에서는 여전히 생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이번 2부에서는 또 다른 매우 모시기 어려운 분을 모셨거든요. 정 팀장님?”
 “예. R.T.W. 홍보 겸 모니터링 팀장을 맡고 있는 정기석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얼마 전에 유저가 5억을 돌파했다면서요?”
 
 정 팀장은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대본에 있는 그대로를 읽는 것이지만, 그 쑥스러운 웃음만은 진짜라고 할 수 있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이 게임 공식 채널에 하트도 이제 곧 10억 문턱이고요.”
 
 대단치 않은 듯 간단하게 말했지만 실로 엄청난 수치.
 그 말은 즉, 지나가는 사람을 열 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두 명은 이 게임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던 이수진은 실제로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R.T.W란 로고를 바라봤다.
 
 “역시....... 대단합니다. 게임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르는 것은, 아무래도 높은 자유도와 수많은 직업 때문이겠죠?”
 
 정 팀장은 코를 손으로 슥 만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뭐. NPC 하나하나의 개성과 유저가 세상을 꾸릴 수 있다는 점 역시도 인기 유지에 크게 한 몫을 하지 않을까요? 핵이나 버그도 없고요.”
 
 단 하나의 메인 인공지능 컴퓨터로 이루어진 서버는, 그 누구도 수정하지 못할 천재만의 코드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덕분에 외부에서 게임에 영향이 가는 그 어떤 짓도 할 수 없었다.
 
 완전무결.
 자잘한 버그 같은 부분마저도 인공지능 컴퓨터가 바로바로 수정해버리는 바람에, R.T.W는 단 한 번의 서버점검도 없이 서비스되고 있는, 이재현이라는 천재가 만든 그대로의 ver1.00의 상태가 처음이자 끝인 그런 게임.
 
 “그럼 이번에는.......”
 
 이후에도 정 팀장과 이수진은 게임에 대한 토크를 더 나눴지만, 결론은 단 하나로 요약할 수 있었다.
 R.T.W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 대단한 게임인 만큼, 이미 게임 초창기부터 게임방송 관련 인물부터 시작해서, 게임으로 단돈 10원이라도 버는 사람이라면 모조리 이 게임으로 넘어왔다.
 장진우 역시 그렇게 초창기에 넘어온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 ★ ★
 
 장진우. 그러니까 에드워드는, 사람의 키보다도 커다란 망치의 뒷부분을 괜히 손으로 톡톡 건드렸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뭐야. 이 상황은.”
 
 하지만 가웨인은 여유롭게 에드워드를 쳐다보고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능글맞은 자식.’
 
 장난이라면 이번엔 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마치 길드의 범죄자를 취급할 때나 하는 행동 아닌가.
 
 “전설갑옷을 만들었다는 대업을 칭찬하기 위해 모인 것치고는, 꼭 날강도 같은 모양새 아니냐?”
 
 에드워드는 피식거리며 말했지만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만큼 우스개라도 불쾌하다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웨인은 미동이 없었다. 순간 굳어진 에드워드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진심이냐.”
 
 블루스타 길드는 대외적으로 꽤나 신사적이고 정다운 길드의 표본이었지만, 단 한 부분만큼은 지독하다고 표현될 정도로 날카로운 부분이 있었다.
 보복.
 블루스타 길드는 배신자들에 대한 보복이 꽤 철저한 편이었던 것이다.
 주로 배신자를 PK, 흔히 말하는 렙따(레벨다운)를 시켜 다시는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했다.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게.
 그렇기에 더더욱 에드워드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지 않았다.
 
 “사람이 물으면 말을 좀 해!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이러는 이유가 뭐야!”
 “맞아. 잘못한 거 없어. 음....... 이유라. 이유가 중요해? 그럼, 원하는 이유가 혹시 있으면 그걸로 해 줄게.”
 
 가웨인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쯤 되면 말문이 막히는 쪽은 오히려 에드워드.
 
 ‘아예 작정을 했다 이건가? 얼마 전에는 나 빼고 어디서 이상한 검은 리본으로 문신까지 하더니. 아예 대놓고 이럴 줄이야.’
 
 묘한 위화감이 들긴 했었지만, 설마 이럴 줄은 몰랐던 에드워드였다.
 그리고 가웨인 그런 에드워드를 보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전설 갑옷을 만드는 히든 퀘스트도 혼자서는 깨지도 못할 거였잖아? 길드 덕을 봤으면, 이제 은혜도 좀 갚고 해야지?”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함께한 길드원 하나를 매장시키겠다고? 고작 전설 갑옷 하나에?”
 
 하지만 가웨인은 그런 에드워드에게 다시금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측은하다는 감정도 담겨 있는 것 같은 그런 웃음.
 
 “그러게. 나도 참 아쉽긴 해.”
 
 가웨인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들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자신들의 무기를 겨누는 상태.
 그런 주위의 상황과 가웨인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순간 에드워드는 머리에 있는 무언가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드워드의 망치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 ★ ★
 
 에드워드와 블루스타의 길드마스터 가웨인의 싸움.
 결과는 당연히 진우의 패배였다.
 물론 죽더라도 방법은 있다고 생각하고 덤빈 싸움이었다.
 
 ‘재수가 없고 너무 없고 또 없어서 전설 갑옷만 넘어가지 않으면.’
 
 그렇기만 한다면 갑옷을 빌미로 다른 길드와 싸움을 붙여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PK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타인의 아이템은 무조건 랜덤드랍이었으니까.
 
 ‘죽고 나서 로그인만 하지 않는다면 지속해서 PK를 당할 일도 없었고, 정말 재수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가망성은 있다.’
 
 적어도 한시우에게만큼은 괘씸해서라도 그냥 갑옷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신은 진우를 버렸다.
 
 “아니, 진짜 씨발.......! 하.”
 
 육성으로 터져 나오는 욕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설마하니 기도마저 드렸건만, 인벤토리에 보물처럼 모셔뒀던 그 황금색 갑옷 하나만이 유일하게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진우가 가지고 있던 템은 총 21개.
 그 중에서 21분의 1 확률을 뚫고 정말 재수 없게도 갑옷이 상대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대로는 못 넘어가.”
 
 진우는 억울한 마음에 패널티가 풀리자마자, 바로 다시 게임에 로그인 하여 블루스타 길드를 습격했다.
 
 “한시우 나오라 그래!”
 
 망치를 휘두르며 울분에 차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에드워드.
 그리고 그중에서도 생산, 보조 계열을 상당히 무시하는 한 유저가, 한껏 비웃으며 공을 쌓기 위해 뛰쳐나왔다.
 
 “왜 미쳐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상대는 대장장이야. 무서워 할 것 없...... 으아악!”
 
 콰직-!
 
 하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산이었다.
 에드워드가 대장장이임에도 국내 상위권 유저였음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첫 주에는 길드의 간부들이 없으면 수습이 되지 않을 정도.
 
 “빨리 가웨인님과 친위대를 불러와! 우리 힘만으론 역부족이야. 뭔 대장장이가 저렇게 세?”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 달 정도는 하루에 한 명이라도 데리고 죽을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싸움으로 진우의 캐릭터는 렙따의 렙따를 거듭했고, 단 한 명도 데려가기 힘들어진 레벨까지 도달하는 것은 순식간.
 
 레벨 210.
 
 약 1달 반 동안 참담하게 싸워온 결과였다.
 210이 낮은 레벨은 아니었지만, 진우가 있던 상위권의 시선에서 본다면 그저 그런 중위권 유저에 불과했다.
 대장장이임에도 꽤 상위권이었던 진우의 게임 캐릭터가, 블루스타 길드와의 고독한 전쟁 끝에, 이제는 중수로 취급받는 레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복수도 한계인가.’
 
 ★ ★ ★
 
 진우는 스스로 한계를 느낀 시점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장이 장인으로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진우에게 손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하지만 블루스타 길드의 눈 밖에 나기는 싫어.
 
 공통된 대답이었고, 그 대답은 진우에게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감마저 들게 했다.
 결국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자, 진우는 R.T.W 캡슐마저 팔고는 스스로 폐인이 되길 자처했다.
 
 “에이 씨발. 담배 떨어졌네. 아까 사올 걸.”
 
 유일한 진정제는 소주와 담배.
 몸이 상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것들보다 지금 진우를 위로해주는 것은 없었다.
 매일 아침이 힘겨워지고 숨이 턱에 찼지만,
 
 ‘그 느낌마저 없으면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아.’
 
 진우는 담배를 사러가기 위해 흐느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한 다음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잉-
 
 “어우. 추워. 뭔 바람이 이렇게 불어?”
 
 이제 곧 겨울이라는 것을 직접 알려주기라도 하듯, 밖은 태풍과 비견해도 될 만큼의 바람이 세차게 낙엽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R.T.W에 관련된 전단지나 캡슐방, 그리고 유리너머로 보이는 TV속 R.T.W의 풍경들.
 
 ‘허망하긴 하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R.T.W는 진우의 직장이자, 삶의 활로 같은 곳이었으니까.
 그곳을 이렇게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이 아프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R.T.W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거리의 풍경을 보자, 또다시 복잡한 생각들과 후회들이 진우의 머릿속을 지나다녔다.
 지금의 R.T.W는 4년 째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게임.
 그 제작자가 죽은 까닭에 그만한 천재가 다시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이 게임을 뛰어넘을 게임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차라리......’
 
 그 게임 안에서 최고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대장장이가 아니라 랭킹 1위의 직업인 마검사였다면?
 그럼 애초에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
 쓸모없는 후회들이 또 다시 밀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항상 이런 식이었다.
 
 툭-
 
 그리고 마침 발에 걸리는 버려진 캔 하나.
 진우는 그 우울한 기분을 떨치고 싶은 마음에, 괜히 그 깡통을 발로 힘껏 후려 찼다.
 
 텅---- 팅- 야아아옹-!
 
 “이런.”
 
 짜증에 후려 찬 깡통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에 맞춰, 앙칼지게 울어대는 고양이의 울음소리.
 
 ‘혹시 맞았나? 둔탁한 소리가 난 것 같기도.’
 
 진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과 괜히 미안한 마음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 전봇대 뒤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툭- 투두둑! 투콰과쾅-!
 
 진우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위를 쳐다봤다.

댓글(3)

초심가    
재미있네요~ 추천과 선작했습니다~
2019.06.28 21:03
[탈퇴계정]    
너는 이미 회귀 했다!!
2019.07.02 21:12
n3*************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데 마땅한 이유조차 없는 개연성 말아먹은 소설이라면 별로 보고싶지 않은데 어떤가요?
2019.09.01 23:2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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