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무황학사.

1화

2019.06.14 조회 3,008 추천 18


 검왕궁(劍王宮).
 
 바로 그곳의 주인 제구대 검왕(儉王) 담대광은 현재 풀리지 않는 신풍백운검(神風白雲劍)의 아홉 번째 구결을 읽고 있었다.
 
 신풍백운검(神風白雲劍)!
 
 그것이 무엇이던가?
 
 신의 바람과 하얀 구름!
 
 모든 이들이 으뜸으로 칭하는 절대의 반열에 이른 그 이름을 어느 절학과 비교할 수 있으며, 그 누가 비하할 수 있으랴!
 
 검왕과 검왕의 직계에게만 내려지는 절대의 무공.
 
 그것이 바로 신풍백운검이었다.
 
 현 무림에서 삼환부(三環芙)와 만마궁(萬魔宮)의 절학이 이름 높다 하지만, 무림의 인사들에게 최고를 꼽으라면 당연 신풍백운검을 가리켰다.
 
 “흐음······.”
 
 하나, 당대 신풍백운검의 주인 담대광은 이 순간 깊은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최상승의 무공.
 
 시전거리에도 나도는 일개 삼류가 아닌 이상, 무공서란 난해하기 그지없다.
 
 심득이란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설혹 그 깨달음을 간단하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수행자가 깊은 고행을 겪지 않는다면 그 본연의 위력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상승의 무공으로 갈수록, 그리고 배움의 벽이 높을수록 무공서는 그 깊이를 더해 간다.
 
 심지어 구절만 놓고 보았을 경우엔 종교의 경전이라 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검왕 담대광이 구 단공에서 막힌 이유 또한 그러했다.
 
 하품, 또는 중품의 무공서는 초식, 형상 등이 그에 따른 형식으로 집필되어 있다.
 
 글[書]에는 주석이 붙으며, 그림[畵]으로 검초를 묘사한다.
 
 하나 상승의 무공은 다르다.
 
 상품의 무공일수록 형은 무의미하고 그 정수만이 남아서 전해지게 마련이다.
 
 당연 큰 틀은 하품과 동일하다 하나, 내포하는 의미는 삼라만상을 아우른다.
 
 하물며 당대 최강의 무공이라는 신풍백운검의 진전이라면 그 깊이를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을 터.
 
 구절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한, 그저 글자의 나열일 따름이었다.
 
 처음 신풍백운을 익혀 나갈 무렵의 담대광은 자신했었다.
 
 그는 검왕궁에서 나고, 자라 평생 동안 기재라는 소리를 들어 왔으며, 영약을 밥 먹듯 먹고 숫한 깨달음을 얻어 왔다.
 
 그리고 지금 구대 검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나, 신풍백운의 극의는 과연 대단했다.
 
 여덟 번째 구절에 이름에도 수차례 실패를 겪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임은 당연했지만, 아홉 번째 구절은 지금까지와 그 궤를 달리했다.
 
 천하의 담대광조차 짙은 안개 속에 갇힐 만큼.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떤 계기로 그 전까지의 생각을 뒤집어[心機一轉] 문일지십(聞一知十)하리라 생각했다.
 
 담대광은 천재였다.
 
 역대로 일대와 삼대 검왕을 제외하고 풀어내지 못한 여덟 번째 구절을 풀어낸 것을 보아도 그의 재능이 비범함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도달한 구 단공.
 
 흔히 천재는 총 세 부류로 나뉘곤 한다.
 
 첫째는 타고난 천재.
 
 타고난 천재는 손쉽게 높은 자리에 도달하지만 벽을 만나면 그 벽을 넘은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쉽게 포기한다.
 
 둘째는 노력하는 천재.
 
 노력하는 천재는 벽을 만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려 벽을 넘어선다.
 
 셋째는 즐기는 천재.
 
 즐기는 천재는 말 그대로 벽을 만났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기쁨으로 즐긴다.
 
 타고난 천재는 노력하는 천재에게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천재는 즐기는 천재에게 이길 수 없다.
 
 담대광은 스스로가 노력하는 천재와 즐기는 천재의 사이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자신이 검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는 노력 또한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무공을 익히기를 매우 즐거워했다.
 
 노력과 즐거움이 함께하니 그의 경지는 나날이 상승했고, 그 과정이 험난했다지만 종내에는 깨달음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평생을 바쳐도 넘기 힘든 벽들을, 그는 마침내 뛰어넘었던 것이다.
 
 하기에 담대광은 자신했다.
 
 머지않아 구 단공의 벽 또한 뛰어넘으리라.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 그 자신감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거만함을 꾸짖듯 구 단공의 벽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리고 어느덧 경지가 정체한 지 십 년.
 
 담대광은 현재까지도 아홉 번째 구절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삼 년 전 폐관에 들었다.
 
 칠 년간, 끊임없이 절차탁마하였지만 깨달음의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여 경지의 상승을 위해 궁의 대소사를 총관에게 일임한 뒤 폐관행을 감행했다.
 
 ‘그러했음에도 구 단공의 깨달음은 그저 요원할 따름이니······.’
 
 스윽.
 
 담대광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가슴이 작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바람의 고요함이 귓가를 지나며 귀밑머리를 스쳤다.
 
 듬성듬성 자란 흰머리가 흔들리며 그의 외모를 한층 더 늙수레하게 만들었다.
 
 “후우······.”
 
 담대광은 몸속에서 휘돌린 깊은 숨을 살며시 내뱉었다. 그리고 서서히 가부좌를 틀었다.
 
 다시금 자신의 심상을 관조하기 위한 명상에 들기 위함이었다.
 
 가부좌는 두 다리를 틀어 올리고 두 손을 둥글게 모아 단전 부근에 위치하는 자세로, 흔히 내공심법을 운기할 때 취하는 동작이었다.
 
 하나, 담대광 정도의 고수에게는 그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가 명상에 빠져들면 기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가부좌만 취해도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것이다.
 
 “후우······.”
 
 그윽한 정적이 맴도는 가운데, 그는 다시 한 번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떠한 단초도 잡을 수 없다.
 
 구절은 애매하기 그지없어, 아침 물안개에 둘러싸인 호수마냥 사위가 흐릿하다.
 
 “후우······.”
 
 메마른 정적이 계속된 끝에 담대광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 버린 건지, 어느덧 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마치 휘장이 처진 듯 내린 어둠은 시커멓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빛이라곤 드문드문 새어 드는 달무리뿐.
 
 “허허허허, 이 담대광도 무지몽매하여 삶을 허송세월했구나.”
 
 그는 문득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그의 세수 육십.
 
 고강한 무공으로 인해 그 외양이 마흔 중반으로 보인다 하나 환갑의 세수에 이르렀다.
 
 신풍백운의 팔 단공에 올랐으나, 구 단공만큼은 십 년의 세월을 고련해도 오르지 못하였으니 깨달음에 관한 그 바람이 오죽할까.
 
 “정년 구 단공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인가?”
 
 단초를 잡지 못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구절을 해석할 수조차 없다.
 
 “학문을 닦아도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으면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學而不思則罔] 했으나, 학문이란 아득하게 멀고 넓어서 끝이 없으니[一望無際], 나는 깨달음이 부족하여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려 하는 게 아닌가[緣木求魚].”
 
 담대광은 구 단공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무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가 소홀했던 학문에 있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배움을 탓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급의 무공을 연마하는 무인들은 학문에 대한 공부도 함께한다.
 
 무공 구절을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함이다.
 
 하나 전문적으로 학문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비해 그 깊이가 낮을 수밖에 없고, 무공에 비해 그 정도가 소홀한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내 배움이 부족한 탓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담대광은 지금 초유의 결단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간 어떤 벽이 찾아와도 포기를 모르던 그였거늘, 구 단공의 벽은 그에게 절망을 종용했다.
 
 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심중을 관통했다.
 
 ‘잠깐, 그렇다면 배움이 깊은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면 어떨까?’
 
 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구절의 해석만을 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해도 되지 않을까?
 
 그것은 담대광이 생각하기에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발상이었다.
 
 하나 신풍백운검은 궁내의 검왕일맥(劍王一脈)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 당연 그 구절을 함부로 유출시켜서는 안 된다.
 
 담대광은 고개를 숙이고 찬찬히 생각을 거듭했다.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을 문제.
 
 답을 찾아냈으나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일말이라도 무공을 아는 이에게 맡길 경우, 신풍백운이 유출될 위험도 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무림과 연관된 기인이사에게 맡기기는 어려운 노릇.
 
 순수하게 학문만 익혀 신풍백운이 가지는 무의 속성은 깨달을 수 없는, 무림과 무관한 이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한다.
 
 ‘앞뒤 구절을 주지 않고 구 단공의 구절만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까?’
 
 앞뒤 구절을 주지 않고 부분적인 구절만을 보여 준다면 신풍백운검이 유출될 염려는 전혀 없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담대광의 걱정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상대가 구절을 해석할 수 있을까?
 
 “일단······ 한번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훗날 무림은 주목해야 할 것이었다.
 
 담대광의 결심, 이 일로 인해 궁으로 오게 된 한 서생의 운명을 말이다.
 
 “이제, 폐관에서 나가야겠구나.”
 
 검왕 담대광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一章. 학사와 검왕
 
 
 
 
 
 유현상이 창을 열고 궁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 아래로 거대한 검왕궁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높게 솟은 담은 검왕궁의 위용이요, 정문을 지키는 수호신의 석상은 검왕궁이 지닌 힘의 상징이었다.
 
 하늘로 솟구치는 듯한 정문은 묵직하기 그지없었고, 넓디넓은 궁의 땅은 검왕궁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증명하듯 웅엄했다.
 
 곳곳에서 검왕궁을 이루는 문파들의 깃발이 휘날린다.
 
 수십 개가 넘어가는 깃발들, 바람에 펄럭이며 하늘로 솟구치는 깃발들은 검왕궁의 위세를 보여 주는 일면이었다.
 
 웅장하기 그지없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본래 검왕궁을 구성하는 문파는 단일 문파가 아니었다.
 
 검왕일맥을 중심으로 한 검왕궁의 창설을 도왔던 삼대검가, 그리고 그 이후에 들어온 총 쉰 개가 넘어가는 중대소 문파들까지.
 
 과연 무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단체라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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