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모험가 길드의 정령사

1. 길드 (1)

2019.07.03 조회 3,987 추천 33


 "괴물······."
 
 소녀가 무심코 중얼거리며 공포를 터트렸다.
 
 길이는 어느 정도일까. 적어도 15미터는 넘을 것이다.
 큰 몸집과 두꺼운 가죽, 그리고 흘러나오는 녹색 진액까지. 마치 전설상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추악하게 생긴 생물과 대치하면서 소녀는 얼굴을 왈칵 구기며 비명을 내지른다.
 
 괴물이 두 날개를 뻗는다. 그 날개는 15미터에 달하는 체구를 비행할 수 있도록 할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했다. 마치 시조새를 보는 것 같았다. 달팽이처럼 푹 튀어나온 안구와 시뻘겋게 내비치는 안광. 모든 것이 괴물 그 자체였다.
 
 흑발의 소녀를 한 입에 먹어치울 것처럼 괴물이 달려들던 그때,
 
 거짓말처럼 어느 청년이 나타나서 그 소녀를 구해주었다.
 거대한 낫을 어깨 위로 치켜들고서, 그 주변에는 네 명의 정령들이 둥둥 떠 있었다.
 
 정령계에 생성된 정령들의 수호자 격에 해당되는 4대 정령왕 그 전부를 이끄는 남성. 모든 모험가들의 정점에 선 그 남자는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괴물과 대치했다.
 
 "안심해라."
 
 청년이 웃었다.
 
 "영웅이 왔잖냐."
 
 
 1. 길드 (1)
 
 
 수많은 모험과 고난!
 복잡한 던전과 무한의 몬스터 서식지.
 
 흉악한 몬스터를 격파하고 끝내 모험담의 주인공에 오르는 유명한 모험가들.
 의기를 투합하여 파티를 결성하는 모험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험가. 그리고 몬스터와 싸우며 영웅담을 추구하는 모험가까지.
 
 곤란에 처한 이들의 의뢰를 받아 금전적 보수와 명성, 그리고 경험을 얻어 성장한다. 온갖 흉측한 괴물과 위험천만한 던전을 공략하고 이를 토벌하는 직종은 경비대를 제외하고서 민병대의 개념으로 필요했고, 그 전력이 바로 모험가들이다. 모험가들은 국가에 속하지 않고 자치 용병의 개념으로 활동하면서 인류의 천적인 몬스터를 해치우고 보수를 받았다.
 
 온갖 신비와 마경, 그리고 괴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누구도 발을 들인 적이 없는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이고 그 신비를 파헤치고 문명사회에 그 실체와 가치를 전달하는 건 모험가 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뭐, 그런 경우는 드물지. 현실은 시궁창이니까."
 
 인생은 실전이야, 라고 말하면서 하품을 늘어놓았다.
 오전 9시. 오늘도 모험가 길드의 불이 밝아진다. 모험가 길드의 개장이다.
 
 길드가 열리자마자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길드로 들어오는 모험가들은 모두 내 고객이며 손님이다.
 
 왜냐하면 나는 모험가 길드의 직원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알렉세이 펜드래건. 올해로 24세. 반오십이 슬슬 되어가는 나이를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다. 나도 이제 중년인가. 자꾸만 눈이 침침해지는 걸 보면 이제는 그럴 때도 되었지.
 
 
 어느 예쁘장한 여전사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창구로 다가왔다.
 대체 어느 멍청이가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노출도가 높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훤히 보인다. 저런 갑옷을 입고 던전에 들어가다니, 정말이지 대단하기도 하지. 지능도 낮은 몬스터를 상대로 유혹 스킬이라도 사용할 셈인가. 사이클롭스 같은 녀석들에게는 먹힌다고는 들었다만.
 
 이 여전사가 매혹 스킬을 가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안녕하세요, 펜드래건 씨."
 
 "그래 그래. 정작 나는 네 이름을 모르지만 우선 인사를 해주었으니 그에 답은 해주마."
 
 "네?"
 
 여전사는 내게 의문에 잠긴 시선을 보내면서도 이틀 전에 길드에서 받은 퀘스트를 완료했다면서 그 보수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다.
 
 마을 외곽에 새롭게 생긴 고블린 부락의 퇴치. 여전사는 동료 모험가들과 함께 용감하게도 고블린을 퇴치했고, 그 퀘스트의 완료를 알림과 동시에 보수를 받기 위해서 찾아왔다. 퀘스트는 무식하게 싸우는 것밖에 모르는 모험가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 그게 바로 돈줄이기 때문이다.
 
 "흠. 보상은 10만 브리드··· 우선 모험가 패찰 좀 보자."
 
 "예."
 
 내 말에 여전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험가 패찰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여전사의 세부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다. 모험가 패찰은 그것의 주인인 자의 영혼과 동화되어 그 정보를 하나의 문자로 기록한다.
 
 모험가의 능력치와 익힌 스킬, 그리고 과거에 토벌한 몬스터의 종족과 그 수 등의 항목이 표시된다. 그 항목을 보고서 우리 길드 직원은 모험가가 진짜로 몬스터를 토벌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험가 패찰에는 정확히 '퀘스트 완료'라는 사항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위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험가 길드도 바보는 아니다. 위조가 가능한 패찰을 만들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길드의 마스터는 꽤나 짠돌이 같은 성격인 놈이라 허투루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확인했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창구에서 자리를 뜨면서 금고에서 10만 브리드를 꺼내어 여전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여전사가 고블린 부락의 퇴치 퀘스트에 완료하였음을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돈의 지출 내역까지도 모두 꼼꼼하게 적었다.
 
 돈을 오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친 모험가를 상대해야 하는 모험가 길드의 직원이라면 더욱 중요하게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그 기록이 틀리거나 미비하게 이루어지면 덤탱이를 쓰는 것은 길드원이다. 모험가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족속들이니 돈을 다시 돌려줄 리가 없다. 양심 있는 모험가라면 다시 돌려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매번 감사합니다, 펜드래건 씨~"
 
 "그래. 다시는 오지 마."
 
 귀찮으니까.
 마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뛰는 알바생 같은 생각이라고 할까. 쓸데없이 손님이 북적거리는 날이면 신경질이 치솟는다. 손님이 없으면 빠르게 퇴근할 수 있는 데도, 눈치도 없게 끝까지 영업 종료 시간까지 음식을 먹는 손님이랄까.
 
 그런 사람이 가장 싫지.
 알바생으로서는 정해진 시각까지 일하는 게 맞지만 조금 더 빨리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게다가 빨리 퇴근을 하는 데도 정해진 월급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여전사를 보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험가 길드는 제법 규모가 큰 편이다. 내가 일하는 모험가 길드의 변경 지부 또한 그 규모가 상당하다. 수십 개가 넘는 창구가 운영되고 있으며, 그 창구에는 유능한 길드원들이 모험가들을 상대로 퀘스트 수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몬스터의 상세한 정보 수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몬스터는 인류의 적이다.
 그렇기에 몬스터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것을 퇴치하는 데 게을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나는 게으르지만.
 언제나 시계를 보면서 퇴근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과 같은 월급을 받기를 바라지.
 
 "오크 15마리 퇴치했어요."
 
 "저는 불량배들을 소탕하고 왔는데요."
 
 "근처 농가에서 일손을 도와주고 왔습니다."
 
 여전사를 보낸 뒤로도 수많은 모험가들을 상대하면서 퀘스트를 내어주거나 그것의 완료를 보고받았다.
 
 그때마다 퀘스트를 완료한 모험가들에게 보수를 내어주었고, 퀘스트의 기한이 지나거나 완료에 실패한 모험가에 대해서는 '모험가 점수'를 깎는 방식으로 페널티를 먹였다. 때로는 벌금을 받기도 한다.
 
 모험가 점수는 모험가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점수는 바로 길드와의 신용을 의미한다. 신용도가 떨어지면 모험가 자격이 박탈당할뿐더러 제대로 된 퀘스트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심지어 똥통 청소 같은 더럽고 불결한 퀘스트를 맡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 놈들은 많이 보았다. 모험가라는 놈들은 신용도 낮고 믿음직스러운 놈들도 아니니까.
 
 아아, 많이 보았지.
 나도 왕년에는 모험가였으니까.
 
 매번 게으름을 피우느라 퀘스트 기한을 놓쳐버렸고, 가축들의 변소 청소를 했던 적도 있다. 멍청하고 바보 같았던 동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던 광경이 떠올랐다.
 
 
 "알렉세이."
 
 "아. 너 왔냐?"
 
 턱을 괴고서 옛적 생각에 잠겨있던 나에게 어느 소녀가 찾아왔다.
 윤기 있는 흑발을 허리까지 기른 소녀였다. 긴 머리카락이 방해되지 않도록 포니테일로 묶은 10대 후반의 소녀는 초롱초롱한 흑안을 빛내면서 내 앞에 서 있었다. 보아하니 일부러 내가 있는 창구로 온 것이리라.
 
 흑발 흑안의 소녀를 보며 주변 모험가들이 수군거리며 경외에 섞인 눈빛을 보냈다.
 
 "모험가 랭킹 4위 베아트리체잖아······."
 
 "저런 거물이 왜 이런 촌구석에 온 거야?"
 
 "마스터로 등록된 모험가는 겨우 10명도 안 된다는데."
 
 
 저리 소란스럽게도 떠드는 것도 이해는 된다.
 마스터 등급에 오른 모험가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과거 현재를 추려내도 30여 명은 되려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마스터는 총 10명. 이번 세대가 이상한 거다. 모험가 길드 마스터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마스터 급의 모험가는 1세기에 한 명 출현할까 말까인데 이번 세대에는 놀랍게도 총 10명이 존재했다.
 
 마스터는 말 그대로 최강의 모험가. 모험가 계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해당된다.
 국가를 위협할 정도의 막강한 전력을 가진 SSS급 몬스터조차 상대할 수 있는 것이 마스터였다. 마스터는 국가 원수의 대접을 받으며, 치외법권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국가들에서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베아트리체가 지금 당장 나를 죽여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다. 국가가 나서기 힘들 정도로 그녀는 강하니까. 강함은 모든 것이다. 강함이야말로 정의다. 그런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강해서 그것을 구속할 수가 없다.
 
 "어이. 너가 오면 소란스러워지니까 오지 말라고 했잖냐."
 
 "싫어."
 
 "단호박이네. 여기 있는 모험가들은 네 피부에 돋아있는 솜털과 싸워도 질 거다."
 
 "무슨 소리야?"
 
 "네가 너무 강하다는 거다."
 
 "고마워."
 
 칭찬 아니었는데.
 순수하게도 내 말을 칭찬으로 들은 흑발 흑안의 소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전히 농담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이 녀석과는 언제 처음으로 만났더라. 내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던 시절인가. 지금이야 큰 부상을 입고 모험가 생활을 청산하고 길드로 들어와서 정사원이 되었다만.
 
 지금의 생활은 만족한다.
 나중에 은퇴를 하면 연금도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무원처럼 철밥통이었고, 위험한 일도 없다. 특별한 경우가 없으면 서류 업무를 주로 처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무슨 볼일이냐?"
 
 "퀘스트."
 
 "너한테 맞는 난이도의 퀘스트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각종 의뢰를 받은 퀘스트 서류를 뒤적거렸다.
 모두 허접한 몬스터를 토벌하거나 퇴치하는 퀘스트밖에 없다. 그나마 강해 보이는 몬스터가 홉 고블린이나 데블 오크, 실버 팽, 그람 베어 정도였다. A급은커녕 C급에 간신히 도달할 녀석들이다. 마스터 계급의 모험가인 베아트리체라면 하품만으로도 쓰러트릴 수 있겠구먼.
 
 그녀에게 어울릴 퀘스트라면 드래곤이나 만티코어, 전설상에 등장하는 복합 괴물··· 정도가 있겠지만 이런 시골에 그런 거물급이 존재할 리가 없다.
 
 퀘스트 용지 중에서 하나를 뽑아서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자, 가축우리를 청소하는 역할. 무려 사례금이 시급으로 6백 브리드라고?"
 
 "알았어."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만 베아트리체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두 손을 뻗으며 그 종이를 내어가려고 하자, 오히려 내가 그것을 만류했다.
 
 "농담이다."
 
 "······?"
 
 "드래곤도 때려잡는 네가 가축우리나 청소하면 모험가 길드는 물론이고, 내가 모가지야."
 
 물론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미소녀에게 가축우리의 청소를 맡길 수는 없어! 라는 성향을 가진 건 아니다. 미소녀라고 해서 가축우리 청소를 못 시킬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가축우리를 청소하는 것은 불결하고 더러운 일이지만 천박하지는 않다. 오히려 가축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축산업에 매진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내 말뜻은 마스터 계급의 모험가에게 그것을 시킬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에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펜드래건 이 새끼, 넌 해고다."라는 말이나 듣게 되겠지. 활발한 성격을 가진 길드 마스터가 내 마빡에 해고! 라는 도장을 찍어버리겠지.
 
 "흠. 너한테 줄 수 있는 마땅한 퀘스트가 없다."
 
 "응······."
 
 있을 리가 없잖아.
 이런 촌구석에서.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