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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에 눈을 뜨다! 1

2019.06.26 조회 6,684 추천 50


 타격에 눈을 뜨다! 1
 
 1. 덩치만 4번 타자 강필타
 
 
 “아우씨, 야, 필타야. 이거 다시 좀 복사 좀 해와라.”
 “예~.”
 “필타 씨? 내일 PT때 쓸 자료 다 준비됐어요?”
 “예~, 다 물론 해놨지요.”
 “여봐라, 막내야! 커피 좀 끓여 오너라.”
 “예~ 지금 갑니다요~.”
 넓은 사무실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강필타(姜必打)!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사무실에 막 들어선 흰 반팔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강필타를 잠자코 관찰하다가 옆에 있던 동기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 부장님 같은 분은 누구신데 저렇게 열심히 일하고 계시냐?”
 “아아, 너 해외출장이 길어서 못 봤구나. 통관팀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거든?”
 “경력직으로 들어오신 것 같은데 왜 저런 신삥 같은···.”
 남자는 강필타의 외견을 보고 최소 30대 중반은 되리라 생각했다.
 곰처럼 커다란 체격에 입고 있는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통나무 같은 팔뚝이 갈색으로 그을려 있었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불그스름한 편이고, 코밑과 턱밑에는 새파랗게 수염자국이 남아있었다.
 커다란 체격에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불뚝 나온 똥배. 와이셔츠의 단추를 찢어버릴 기세의 뱃살은, 식사량이 많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유추하게 해준다.
 어딜 봐도 30대 중반 이상의 아저씨잖아. 그런데 잘도 저렇게 자존심 굽히고 막내노릇 할 수 있네?
 “야, 말도 마. 우리도 처음엔 깜짝 놀랐거든? 근데 말야, 놀라운 거 가르쳐줄까?”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동기가 속삭이는 말에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저 얼굴로 올해 나이가 스물일곱이란다. 스물일곱! 올해 초에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돼서 입사한 거야. 저 녀석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생이었다고.”
 “말도 안 돼!”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열심히 일하고 있던 사원들이 힐끔 시선을 보내왔다.
 “으흠, 일하러 갈란다. 좀 있으면 바이어가 입국하거든.”
 “어, 그래. 수고해라.”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할 일을 하기 위해 흩어지는 두 남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강필타는 선배 밑에서 열심히 잡일을 하며 일을 배우고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째 되는 강필타는 외견과 달리 우수한 자원이었다.
 대학도 지방에서 알아주는 국립대 출신이고, 토익 900점대에 제 2외국어로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약간의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 국제무역사, 무역영어등의 무역 관련 자격증도 다수 갖추고 있어 스펙이 좋은 편이다.
 덩치에 맞지 않게 싹싹한 편이고 눈치도 보통 정도는 된다. 아직 입사 한 달째지만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외견. 입사 2, 3년 차의 선배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안에 190cm를 상회하는 큰 키에 일반인 두 명을 붙여놓은 것 같은 우람한 덩치. 그리고 수박만큼 나온 배.
 위압감이 대단한 하드웨어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 봤을 때 위압당하곤 했다.
 면접을 보았던 인사부 부장도 처음에는 남들과는 눈에 띄게 다른 외모가 거슬리고, 남산만큼 배가 나온 것 때문에 자기관리가 부족하다고 느껴 채용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30분 남짓한 면접 동안 내내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고, 쾌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는 것에 좋은 평가를 주었다고 한다.
 그가 입사면접 때 했던 말이 있다.
 [귀사에는 야구동호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리틀 야구를 했었고요. 대학생 때도 야구동아리에 들어 야구를 해왔습니다. 제가 귀사에 지원한 동기가 바로 야구동호회의 존재입니다. 저는 귀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주말에는 동료들과 야구를 하며 친목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이렇다시피 그는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의 우월한 체격을 본 사람들은 그가 무엇인가 스포츠를 했을 거라고 예상해왔다.
 그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비록 대학 동아리 수준의 야구였지만 그는 만족하고 주에 2회 정도 연습을 하며, 주말에는 동아리연합리그에 참여하는 엄연한 야구선수였다.
 그리고 입사 한 달 째인 어느 토요일, 그는 마침내 회사 야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어이, 막내야. 여기 와서 스윙 좀 해봐라.”
 “예~.”
 새로운 유니폼을 입은 뿌듯한 마음에 강필타는 감독을 맡고 있는 영업부 부장의 손짓에 쪼르르 달려갔다.
 슈웅-!!
 슈웅-!!
 여전히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급의 체격의 강필타가 배트를 한 번 휘두르자, 기분 좋은 공기를 찢는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같은 팀원, 상대팀원 가릴 것 없이 시선이 모였다. 시선이 모이자 쑥스러운 것인지 강필타의 붉은 얼굴이 잘 익은 대추마냥 더욱 붉어졌다.
 “저 스윙은 말야~ 맞으면 말야. 넘어가는 스윙이야.”
 “담장은 고사하고 장외로 넘어가겠다.”
 “안 되는데~ 그럼. 너 차 새로 뽑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박살나겠는데?”
 “···잠깐만 나 주차 좀 다른 데 하고 올게.”
 팀원들의 농담 따먹기를 뒤로 한 채 감독은 진중한 얼굴로 강필타에게 물었다.
 “자네 초등학교 때까지 리틀 야구했다고 했었나?”
 “옛!”
 우렁찬 대답소리에 감독은 고개를 떨군 채 오더표에 뭐라 끄적이더니 강필타의 어깨를 두드리고 그대로 스쳐 지나가 기록원 알바를 하고 있는 여학생에게 가버렸다.
 시합 전 미팅.
 “1번 센터 정민우.”
 “옛.”
 “2번 세컨드 홍만이.”
 “네엣.”
 “3번 서드 혁이.”
 “옙!”
 “4번, 퍼스트 강필타.”
 “예엣?!”
 의외의 오더에 강필타가 의문형으로 큰 목소리를 낸다. 원을 그리며 모여 있던 팀원들은 각자 박수를 치며 오오, 환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실력 보여주라고! 신입!”
 “딱 너는 4번 같이 생겼지 않냐, 빠하하!”
 사무실 내에서도 무섭기로 소문한 부장인 감독은 안경을 고쳐 쓰며 필타에게 물었다.
 “내가 짠 라인업이 마음에 안 드나?”
 “아,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4번 타자여도, 괜찮겠습니까···?”
 “감독님이 4번 치라면 4번 칠 것이지 말이 많노?”
 경상도 출신의 정민우가 강필타의 등을 때리며 말하자 강필타는 차렷 자세로 고함을 질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오, 보기 좋다.”
 그리고 시합 개시. 상대팀은 작년 3부에서 올해 2부로 승격한 팀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부 리그에서 놀던 팀이다. 상대로서 부족한 점은 없었다.
 상대팀 투수는 우완 사이드스로의 투수였다. 사이드지만 어려울 것 없다. 제구는 형편없고 구속은 80-90km 언저리. 변화구도 커브랍시고 던지시는 느린공일 뿐이었다.
 제구가 안 좋은 사이드 투수는 치지 않으면 자멸한다.
 1회 초 공격부터 볼넷으로 시작하여 2번 타자에는 등에 맞추는 데드볼. 3번 타자도 볼넷이었다.
 무사 만루에서 돌아오는 타자는 4번 강필타.
 “쟤는 말야. 이름부터 범상치가 않아. 강필타라잖아! 강필타! 강하게 필시 때려버릴 것 같지 않아?”
 벤치에서 누군가가 농담조로 하는 말에 모두가 싱글벙글했다. 반면에 상대팀 벤치에서는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저 분은 뭐하시는 분이냐.”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사회인야구 온 거 아닙니까?”
 “돗레에 채준석이 은퇴하더만 회사 들어갔나.”
 좌타석에서 천천히 배트를 흔들며 타격 자세를 잡고 있는 필타의 모습을 본 상대팀 선수들이 강필타의 위압감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공포에 빠진 것은 투수였다.
 ‘던질 곳이··· 없다!’
 던지면 분명히 홈런을 맞는다. 저 팔뚝, 저 큰 키, 저 커다란 덩치. 아까 스윙연습을 하는 걸 봤다. 무지막지한 힘이 실려 있는데다가 배트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배트스피드다.
 차라리 볼넷으로 한 점주고 시작하는 게 정신 건강상 더 좋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투수는 벤치를 힐끔 보고 감독이 보내고 있는 사인을 읽었다.
 작전 야구를 할 수준이 안 되는 사회인야구에서 무슨 놈의 사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팀에서는 유일하게 한 가지 사인이 존재한다.
 [너 이번에 또 사사구 주면 그때는 교체다.]
 ‘네네, 맞던가 말던가 스트라이크 던지겠습니다.’
 투수는 눈물을 삼키며 투구 모션에 들어갔다.
 운명의 순간.
 흔들거리던 강필타의 배트가 투수가 발을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날아오는 평범한 볼-
 ‘아씨! 빠졌다.’
 투수는 던지는 순간 손가락에서 공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투수가 던진 공은 타자의 한참 앞에서 바운드 되었고-
 슈웅-!!
 “잉?”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투수는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강필타의 하체가 밸런스가 무너지며 자신의 앞에 오기도 전에 떨어지는 공에 배트가 나가고 만 것이다.
 “허허, 저 친구 긴장했나보군.”
 관중석에서 시합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수염을 만지며 껄껄 웃었다.
 원바운드 공에 화려하게 헛스윙을 한 강필타는 멋쩍게 웃으며 헬멧을 고쳐쓴 뒤에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헛스윙 해줘서 땡큐네. 이제야말로 스트라이크를 던져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투수는 다시 투구 모션에 들어갔고, 그 순간 배트를 꽉 쥔 강필타는 강렬한 눈빛으로 투수를 노려보았다.
 와인드업-
 ‘아, 시발! 한가운데!’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 딱 치기 좋게 들어가는 볼-
 까앙!!
 투수는 알루미늄 배트의 중심에 볼이 맞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타구가 장외로 뻗어나가는-
 상상을 했다.
 “스트라이크으으!!”
 투수의 등 뒤에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콜이 들려왔다.
 필타는 한 가운데 들어가는 스트라이크를 쳐다보기만 한 것이다.
 “잉?”
 투수는 또 다시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은 투수뿐만이 아니라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공을 왜 안 치는 거야?”
 “내버려 둬! 너무 시시해서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쳐주려고 하는 거겠지.”
 멋쩍게 웃는 필타를 보며 투수는 생각했다.
 ‘뭐지? 저 녀석? 뭔가가 이상해···.’
 그리고 포수 사인을 읽는다. 커브다. 커브로 스트라이존 비슷하게 볼로 빼자. 그러면 잘 맞아도 내야 땅볼이나 똥플라이로 끝날지 몰라.
 하지만 여전히 상대팀 4번 타자의 공포에 헤어 나오지 못한 투수는 다음 공을 커브로 던지고 또 흠칫 놀라고 만다.
 ‘이것은 정중앙에서 살짝 높은 코스! 와, 진짜 홈런 맞는다! 오 마이 갓!’
 부웅-!!
 헛스윙.
 어이가 없을 정도로 느린 커브에 강필타의 배트가 돌아갔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에에에에에에에엑?!”
 심판 콜과 동시에 삼진을 잡은 투수가 기뻐하기는커녕 놀라 소리를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초등학생도 칠만 할 정도로 치기 좋은 밋밋한 커브에 삼진을 먹고 벤치로 돌아온 강필타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인마, 처음이고 하니 긴장해서 삼진 먹을 수도 있는 거지. 신경 쓰지 마. 다음에 치면 돼.”
 강필타의 선배가 그의 남산만한 배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딱!
 배트에 잘 맞은 타구가 쏜살같이 날아갔지만 쓰리 바운드만에 유격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커버에 들어오는 2루수에게 가볍게 토스, 그리고 2루수는 여유롭게 1루까지 송구. 원바운드성 송구였지만 1루수가 바운드를 맞춰 베이스 앞에서 따닥하고 잡아낸 뒤에 만세를 부른다.
 6-4-3 병살타. 무사 만루에서 득점 없이 1회 초 공격이 끝난다.
 “아자아아아!!”
 가장 기뻐하는 것은 강필타를 삼진으로 잡아낸 상대팀 투수였다.
 “뭐 이런 일이···.”
 “저렇게 이상적인 병살타는 사회인야구에서 처음 보네.”
 급격하게 벤치의 분위기는 다운.
 “수비하러 나가자. 어차피 오늘 저 팀에 투수 쟤 한 명밖에 없어. 다음 회에 10점정도 뽑아서 콜드로 이기고 회식이나 하러 가자.”
 감독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팀원들이 일제히 모자와 글러브를 챙기고 수비 위치로 나갔다.
 “필타 너, 수비 포지션은 어디어디 볼 줄 아냐?”
 세컨드 위치에서 강필타가 바운드로 던져주는 공을 잡아 송구연습을 마친 박홍만이 강필타에게 물었다.
 “저는··· 1루 밖에 못해요. 외야수는 발이 너무 느려서 타구를 못 쫓아간다고 너는 외야하지 말라고···.”
 “파하하! 살 좀 빼, 인마! 그러면 투수는? 왼손이니까 좌완투수라고 동아리에서 안 애끼던?”
 좌투좌타. 강필타는 천연적인 왼손잡이가 아니다. 글씨를 오른 손으로 쓰고 밥도 오른손으로 먹는다. 하지만 힘쓰는 일이나 스포츠계통은 거의 왼손을 즐겨 쓴다.
 “그게, 몇 번 투수해보긴 했는데···.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서 제구가 하나도 안 돼요.”
 “열심히 해라, 강필타!”
 “볼 백(back)!”
 내야와 외야의 연습구가 전부 벤치로 날아갔고, 수비가 시작되었다.
 1번 타자가 3루수 땅볼. 길게 이어지는 송구를 강필타가 1루에서 받으면서 첫 번째 아웃카운트가 무난히 올라갔다.
 2번 타자가 헛스윙 삼진. 3번 타자가 볼넷으로 1루에-
 까앙!
 상대팀 4번 타자가 강하게 때린 타구가 1루수인 강필타의 정면으로 날아들자 모두가 깜짝 놀라 그곳을 쳐다보았다.
 “후, 후우아···.”
 자신의 바로 얼굴 옆에서 타구를 받아낸 강필타가 가슴이 철렁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쓰리 아웃 체인지.
 ‘수비는 무난히 되는 편이군.’
 벤치에 있던 감독이 강필타를 보며 턱에 손을 가져갔다.
 놀랍게도 느린공을 던지는 상대편 투수는 땅볼과 플라이로 차곡차곡 아웃카운트를 늘여가고 있었다.
 “크으! 수비가 좋아, 수비가! 투수 자체는 진짜 별 볼일 없는데.”
 상대편 투수가 볼넷을 남발하고 안타를 두드려 막아도, 수비의 도움을 받아 무실점으로 2이닝을 막아내자 홍만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이를 갈았다.
 4회 초, 선두 타자 강필타.
 “필타야! 이번에야말로 한 방 부탁한다!”
 2회전, 다시 강필타를 상대하는 상대편 투수는 다시 압박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타임!”
 투수와 포수가 입을 가린 채 이야기한다.
 “오늘 운 좋은데 저 녀석만 거르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1점 리드 중이고.”
 투수가 말하자 포수가 고개를 저었다.
 “거를 제구력도 안 되는 놈이 무슨 고의사구야. 그냥 어렵게 던지던가. 그리고 나 아까 느꼈는데··· 저 녀석, 뭔가가 이상해.”
 “뭐가?”
 “···왠지 그냥 공갈포 타자 같지 않냐?”
 “설마! 절대 선출에 갑자원 대회까지 나간 놈일 거야.”
 “갑자원은 일본이고, 병신아. 하여튼 아까 삼진 잡았으니까 마음 가볍게 먹고.”
 그리고 포수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신발의 흙을 털던 투수는 생각했다.
 ‘그렇게 말해도 말야···. 무서운 건, 무섭다고!’
 와인드업.
 강필타가 배트를 멈추고 공을 노려본다. 친다. 친다. 친다. 절대 친다. 공을 던지는 투수도 그렇게 생각했고 강필타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타자에게 날아간 공은 포수가 몸을 던지듯이 팔을 뻗어 잡아야 할 정도로 크게 빠지는 공-
 그것을 쫓아나가며 강필타가 어이없는 스윙을 했다.
 ‘어?’
 그 모습을 본 상대편 투수가 포수의 말을 떠올렸다.
 [그냥 공갈포 타자 같지 않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삼진 한 번 잡았다고. 자신감 있게.
 제 2구.
 아웃 로우에 걸치는 절묘한 직구. 강필타는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된다, 된다. 잡을 수 있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투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감 있게 공을 던졌고, 그 결과-
 “스트라이크 아웃!”
 헛스윙 삼진.
 강필타는 아쉬워하며 타석에서 물러섰고, 강필타의 벤치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사람은 위기를 한 고비 넘기면 더욱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 상대편 투수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산인 강필타를 두 번이나 삼진으로 잡은 투수는 계속해서 자신감 있게 공을 뿌렸고, 그 결과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었다. 볼넷 하나 던지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마구 꽂는 상대편 투수의 공에 강필타의 팀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리고 강필타의 성적은 어땠는가.
 “스트라이크 아웃!”
 애석하게도 시합의 끝을 결정하는 것도 강필타의 몫이었다. 헛스윙 삼진. 이번 시합의 4번째 헛스윙 삼진이었다.
 2 : 0
 득점 인플레가 심한 사회인야구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투수전의 스코어였다.
 “에이씨.”
 단 2실점을 내주고 패전투수가 된 회사팀 에이스 투수가 신경질난다는 듯이 벽을 걷어찼고, 그 모습을 본 강필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패전 후의 미팅에서 감독이 말한다.
 “야구는 치지 못하면 지게 될 뿐이다.”
 짧게 그 말만을 남기고 미팅을 끝냈다.
 다른 선수들도 오늘 시합에서 거의 안타를 치지 못했지만, 그 말은 강필타에게 큰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 말을 들은 강필타는 매일 100번씩 휘두르던 배트를 300번 휘두르고 오른손에 잡힌 물집이 터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열린 시합에서도 강필타는 4번 타자 1루수로 출전.
 결과는 4타수 무안타. 3삼진. 처음으로 배트에 맞춘 타구가 형편없이 1루로 굴러가는 땅볼이었다.
 선배들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거라고, 다음 시합에는 칠 거라고 격려해주었지만 시합을 거듭할수록 그들의 인내심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30타수 무안타. 타순도 점점 뒤로 밀려나 9번 타순에 배치되었고, 강필타도 자신감을 더욱 잃어갔다.
 그는 밤마다 무심히 배트를 휘둘렀지만 안타를 치는 일은 없었다. 리그 도중에 입단한 강필타였지만 팀내 삼진 1위를 달리는 와중에 타율은 0할.
 마침내 감독은 강필타를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하기에 이른다. 큰 점수 차로 이기거나 질 때 대타 혹은 대수비로 기용. 하지만 절벽에 몰려도 강필타는 결과를 낼 수 없었다.
 “못 쳐도 어떻게 저렇게 못 치냐···.”
 동료들이 실망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는 것에도 강필타는 분한 마음을 삭히며 밤마다 배트를 휘두를 뿐이었다.
 사실 이런 일에는 이미 익숙해져버린 강필타였다.
 강필타가 휘두르는 배트에 공이 맞지 않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학년 때의 강필타는 초등학교 이후로 야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야구를 못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열심히 연습에 참여하다보면 언젠간 빛을 발하겠지 싶었다.
 1학년 때 이미 실력이 있는 동기들이 리그 시합에 나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빨리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어도 필타는 시합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 분명 스윙은 홈런스윙이지만 배트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면 되겠지.
 군대에서도 생활관 동료들끼리 배트와 공, 글러브만으로 야구를 하고 스스로 트레이닝을 할 정도로 노력했지만 강필타는 제대 후에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후배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었던 것이다.
 대타로 나온 자신은 항상 삼진-병살타-땅볼.
 왼손잡이라 외야수 혹은 1루수, 투수 밖에 할 수 없지만 발이 느려 외야수를 할 수 없는데다가 투수를 시키면 4구 연속 폭투. 결국 1루수라는 한정적인 포지션에 주루센스가 없고 공을 전혀 치지 못한다.
 매년 동아리 감독을 맡는 선배나 동기에게 있어 강필타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에 전혀 참여할 수 없었다. 후배들 앞에서 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이 입으로 지껄인들 후배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아무리 착실히 동아리 생활을 해봤자 시합을 뛰는 것은 술 먹다가 사고를 치고, 여자를 밝혀 들어오는 1학년 여자 신입생에게 껄떡이거나, 돈 문제로 동아리 동기끼리 갈등이 있는 실력 있는 녀석들이다. 아무리 뒤에서 노력한들, 실제로 야구 시합을 뛰는 녀석들은 재능과 실력이 있는 녀석들뿐이다.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노력해왔는가. 베이스볼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고 무조건 참가했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야구센스가 없는 강필타는 또 이렇게 새로운 야구팀에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회사생활에서도 마이너스로 작용하여 처음의 밝은 표정은 사라지고, 업무미스로 인해 미간의 주름까지 생겨버린 강필타.
 그의 역전 스토리는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다.
 입사 3달 째, 통관업무의 보직에도 이제 익숙해진 강필타는 아주 오랜만에 야구 시합이 없는 주말을 맞이했다.
 그는 최근 업무 스트레스와 야구 시합에서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껴 양쪽에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주말에 시합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라운드에서 무능한 자신을 보며 또 상처받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토요일 저녁, 친구들과의 술 약속도 제껴둔 채 집에서 푹 쉬기로 한 강필타는 몸이 근질근질한 것을 느꼈다.
 캐치볼을 하지 않으면 왼쪽 어깨가 근질근질 거린다.
 스윙을 돌리지 않으면 허리가 근질근질 거린다.
 야구를 하지 않으면 전신이 근질근질 거린다.
 실력은 없으나 그는 진성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27살의 천연야구청년이었기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배트를 배트가방에 넣고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현관을 나서려는 강필타를, 거실에서 TV를 보며 오징어를 우물거리던 여동생이 불러 세웠다.
 “오빠! 어디 가?”
 “잠시 오빠 공 좀 때리러 갔다 올게.”
 “그럼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좀 사다주라.”
 “알았어.”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인 여동생, 강규리가 부탁하는 것은 웬만한 것은 다 들어주는 강필타였다.
 강필타는 시내까지 걸어 나왔다. 강필타의 집에서 번화가인 시외버스터미널 주변까지는 걸어서 10분. 그러던 중 맥도날드 건물 옆의 어두운 골목길에 있는 작은 유료주차장의 구석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담배를 피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욘석들! 학생들이 교복 입고 담배 피면 안 되지!”
 강필타의 쩌렁쩌렁한 고함에 담배를 피고 있던 고등학생들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키가 190cm가 넘는 거한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에는 뭔가 긴 막대기가 든 가방을 들고 있는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 고등학생들 담배를 떨어뜨리며 벌벌 떨었다.
 “자, 잘못했어요!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잘못 걸렸다. 저런 위험하게 생긴 조폭한테 걸리다니, 하고 학생들은 생각하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담배는 몸에 해로워요! 특히 너희처럼 한참 공부할 나이에는 말야.”
 “다시는 안 필게요! 안 필게요!”
 “알았으면 됐다.”
 강필타는 짧은 설교 후에 등을 돌려 가던 길을 걸어갔다.
 주차장 뒤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이번에는 주점과 음식점이 이어진 먹자골목이 나온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약간만 걸어가 초록색 페인트로 칠해진 철제 계단을 오르면 2층에 허름한 야구배팅장이 있다.
 천 원에 15구. 얼마 전까지는 오백 원에 15구였지만 어째서인지 주인장이 두 배로 가격을 올렸다. 그래도 술 마신 청년들이 자주 찾아 공을 얼마나 맞추는가에 대해 내기를 하곤 한다.
 강필타도 입사 이전엔 이곳에 자주 오는 편이었다. 주인장 아저씨와 얼굴도 트고 지낼 정도다.
 강필타가 계단을 올라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들어서자, 배팅장에 두 그룹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안쪽에 있는 배팅케이지 안에서 날아오는 공에 배트를 갖다 대며 꺄아꺄아 거리는 여자 친구를 보며 즐겁게 웃는 남자 친구. 그리고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좌/우타 겸용 타석에서 내기를 하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들.
 강필타는 좌타자이므로 항상 좌/우타 겸용 타석이 빌 때까지 앞에서 팔짱을 끼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내기에 열중하며 환호성을 지르던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포스를 방출하고 있는 강필타를 발견하고 말았다.
 “저기···, 먼저 하세요.”
 “음? 내기하고 계시던 중 아니셨습니까? 괜찮습니다. 계속 하시죠.”
 강필타가 껄껄 웃으며 사양했지만 대학생들 중 한 명이 계속 저자세로 나오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여기 전세 낸 것도 아닌데요, 뭘. 선생님께서 한 번 치시고 난 다음에 저희가 계속 이어하겠습니다.”
 “친절도 하셔라, 껄껄껄.”
 강필타는 대학생들의 호의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시에 대학생 시절 자신에게 깍듯이 대하던 야구동아리 후배들이 생각나 약간의 향수에 빠졌다.
 강필타는 타석에서 들어서자마자 목장갑을 끼고 동전을 두 개 넣었다.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스윙연습을 할 시간은 없었다.
 제 1구.
 까앙!!!!!!!!!! 툭!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총알처럼 강필타의 배트에서 발사된 타구가 배팅장의 벽을 때리고 튕겨 나왔다. 빠른 템포로 날아오는 다음 공도 강필타는 풀스윙으로 맞춰 그물망으로 날려 보냈다.
 그 모습을 본 대학생들과 커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빠, 저 사람 혹시 프로야구선수 아냐?”
 “응···, 그런가봐.”
 커플의 짧은 대화가 끝날 무렵에-
 부웅-
 바깥쪽 공에 헛스윙!
 결과 15구 중 4구를 안타성 타구로 치고 6구를 파울로 때리고, 5구를 헛스윙한 강필타였다.
 ‘오늘은 컨디션 좋네.’
 강필타는 구슬땀을 닦으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배팅 케이지에서 나왔다.
 강필타는 야구배팅장의 공은 그나마 잘 치는 편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맞추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6년 넘게 자주 야구배팅장을 찾은 결과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바깥쪽으로 날아오는 공에는 쥐약.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에는 배트의 손잡이 쪽에 맞는 파울. 한 가운데로 날아오지 않으면 앞으로 쳐내질 못한다.
 그리고 강필타를 표본으로 하면, 야구배팅장에서의 타격연습은 실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알 수 있다. 실제 투수가 던지는 공과 배팅장의 머신이 던지는 공은 거리감도, 궤적도, 날아오는 각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총 3회, 3000원 어치의 배팅을 마치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강필타는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이곳의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선형으로 휘어 올라가는 철제 계단은 강필타 같은 거구가 있으면 두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 그래서 강필타는 다시 계단으로 올라왔고, 그것에 계단을 올라온 여성은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표했다.
 강필타는 계단을 올라온 여성의 모습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에 배트가방을 맨 모습. 묘한 동질감이라기보다는 입고 있는 복장이 같았다.
 목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숏컷 헤어에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뿔테 안경. 키가 크고 날씬하다. 160cm 중반 정도 될까. 트레이닝복 저지 위로 봉긋 솟아오른 가슴에도 눈길이 간다. 굉장히 수수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직장에 있는 노처녀 여선배들과는 다르다.
 그 모습에 홀린 강필타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녀는 주저 없이 배트를 꺼내 타석에 들어가 동전을 넣고 자세를 잡았다. 턱을 아래로 당기고 배트를 일자로 세운 뒤에 무릎을 굽힌다. 두 발을 평행하게 둔 스퀘어스탠스. 꽤나 멋진 폼이었다.
 까앙!
 그리고 날아오는 공을 간결한 스윙으로 맞추어 앞으로 날려 보낸다.
 백발백중. 하나도 빠짐없이 강한 타구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완전히 힘으로 때리는 강필타와는 정반대로 기술로 쳐내는 정밀한 타격.
 ‘저런 예쁘장한 아가씨가···. 그것보다 여기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강필타는 그 순간 그 아가씨에게 반해버렸다. 야구를 잘하는 여자. 15구 배팅을 마친 그녀는 타석에서도 나오지도 않고 그대로 동전을 넣어 다시 타격을 시작했다.
 그녀가 타격하는 모습에 매료된 강필타는 이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타격을 끝내고 들고 온 배트를 가방 안에 넣고 도망치듯이 배팅케이지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아.”
 강필타가 말 한 마디 걸어볼 순간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강필타의 시선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또 만날 수 있을까.’
 강필타는 아쉬움과 함께 배팅장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 아이스크림은?”
 “아, 미안. 공 때리는 데 집중하다 까먹어버렸다.”
 “아, 정말! 오빠는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저러니까 아직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도 없지.”
 투덜거리는 여동생의 말은 강필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보다 발바닥 반 사이즈 정도 작은 침대에 누운 강필타는 오늘 만난 그 여성이 타격하는 모습을 뇌내 재생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강필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배트를 챙겨 든 채 방을 나가 거실로 지나갔다.
 “오빠, 설마 또 배팅장 가? 그럼 이번에야말로 아이···.”
 여동생의 말을 무시한 채 마당으로 나간 강필타는 배트를 든 채 스윙에 열중했다.
 ‘이렇게인가?’
 부웅-
 ‘이렇게?’
 부웅-
 ‘아냐, 그녀는 좀 더 부드럽게··· 몸 쪽을 칠 때는 팔이 붙어 나온다는 느낌으로···.’
 아까 전에 봤던 그녀의 폼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스윙연습을 하는 강필타였다.
 그 정도로 열심히 배팅 연습을 한 강필타는 다음 주에 열린 시합에 5회 말 대타로 출전한다.
 부웅-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완전히 하체가 무너진 자세로 낮게 깔려 들어가는 커브에 삼진-
 ‘어라, 이게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연습해도 발전이 없는 강필타였다.
 강필타는 퇴근 후 매번 야구배팅장을 찾아갔지만 그때 만난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다음주에 열린 시합에서 강필타는 벤치를 지키고 있었다.
 사회인야구는 응원 콜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강필타가 대학 시절에 했던 동아리야구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큰 목소리로 타석에 있는 타자나 투수, 혹은 팀 전체를 응원한다.
 그 정신을 강필타는 회사 팀에 와서도 잊지 않으려 했다. 게다가 자신은 여기서 막내다. 비록 야구 실력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지라도 응원만큼은 큰 목소리로 하자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과장님! 여기서 안타 쳐주십시오!”
 강필타가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큰 목소리로 응원하기도 전에 접이식 의자에 앉아있던 팀원들은 귀를 막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기록원은 깜짝 놀라 강필타 쪽을 돌아보았다.
 “타자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매번 듣는 응원이지만 좀 부담스럽단 말이다.’
 타석에서 서있는 4번 타자 김 부장은 벤치 쪽을 한번 노려본 뒤에 투수를 응시하며 배트를 흔들었다.
 헛스윙 삼진.
 이날의 시합은 1회부터 5점을 내주고 그 뒤에는 상대팀 투수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2.08으로 리그 방어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에이스 투수였다.
 7점대 방어율이 팀 내 에이스를 하고 있을 정도로 투수진이 빈약한 사회인 야구에서 방어율이 2.08이라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한 수치다.
 구속이 125km까지 나오는 좌완 투수.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 업까지 구종이 다양한 이 투수는 근방에 있는 사회인야구인들에게는 명성이 자자했다.
 중학교 때까지 선수출신이라는 꼼수를 쓴 것도 아니라, 대학생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성장한 투수다. 초등학교 때 잠깐의 야구부 경험이 있다는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강필타와는 정반대로 대성한 타입인 것이다.
 강필타도 상대편 투수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이전에 시합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다. 강필타가 대학교 1학년 때 상대편 대학의 에이스 투수로 등판. 강필타의 눈앞에서 엄청난 탈삼진 쇼를 보여주었다.
 강필타는 지금처럼 응원만 열심히 할 뿐, 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었다.
 오늘 또한 강필타의 선배들은 리그 좌완 에이스 덕분에 삼진댄스를 추고 타석에서 물러날 뿐이었다.
 “아직 4회에요! 모두 힘냅시다! 피쳐, 파이팅! 피쳐, 파이팅!”
 강필타는 뒤질세라 응원을 했지만 동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와, 저걸 어떻게 쳐야하냐. 프로들은 쟤 공 다 치겠지?”
 “프로도 한 번은 삼진 먹을 것 같은데, 아.”
 말하는 순간 상대 팀 타자가 때린 공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를 뚫고 계속 굴러갔다. 주자 만루에서의 싹쓸이 적시타. 스코어는 8 : 0.
 “콜드당하겠는데.”
 “하는 수 없지 뭐.”
 상대편 투수는 파울 라인 밖에서 포수와 캐치볼을 하다가 동료들이 대량득점을 하는 장면을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제 앉아보세요.”
 포수를 앉히고 투구 연습을 하려던 투수는 문득 자신의 등 뒤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어, 유리 왔구나?”
 방긋 웃는 투수의 뒤에는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 차림의 단발머리의 여성이 서있었다. 유리라고 불린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손바닥만을 펴 보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어? 저 사람은 혹시···.’
 문득 상대편 투수에 신경을 써본 강필타는 그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강필타는 그 투수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야구배팅장에서 만난 그 여자···?!’
 두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합 내내 포커페이스로 일관하던 투수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저 투수는 야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얼굴도 잘생긴 편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사이가 좋아보였다. 분명 연인 사이겠지.
 강필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연애에 대한 것은 애저녁에 포기해버린 지 오래다. 여자들은 자신처럼 커다랗고 곰처럼 생긴 아저씨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상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것도 일단 잘생기고 봐야 한다.
 강필타의 순정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깨져버리려 하고 있었다.
 “어이, 강필타! 듣고 있냐?”
 “네?”
 고개를 떨구고 있던 강필타는 선배가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11점 차 됐거든? 다음 공격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 대타 준비하라고 부장···, 아니 감독님이. 하여튼 홍만이 다음 타석에 들어가면 되니까 준비해.”
 4회에 10점차로 콜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재미로 한다는 사회인야구. 지면 기분 나쁘기야 매한가지. 하지만 이런 좋은 날씨의 주말에 기껏 야구하러 나와 주었으니 벤치 멤버는 대타로라도 써주는 게 도리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감독이 이미 시합을 포기한 것이다. 4회 말 공격에 한 점이라도 낸다면 계속해서 시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편 투수가 너무 세다. 그렇기에 미리 포기하고 강필타를 대타로 낸다.
 실력도 없고 성격도 온순한 강필타라도 승부욕은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콜드로 지고 싶지 않아.’
 시선을 돌리자 트레이닝복의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서서 시합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고, 공수교대가 이루어졌다.
 “여러분! 한 점 내고 계속 합시다! 우선은 한 점! 한 점이에요! 아자, 아자, 파이팅!”
 수비를 마치고 들어온 야수들을 향해 힘껏 외치는 강필타였다. 강필타의 열의에 동료들은 마지못해 박수를 치며 여기저기서 기합을 넣었고, 감독인 부장은 그런 강필타의 모습을 곁눈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강필타는 이번 공격에서 3번째 타자. 아마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올리는 타자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첫 번째 타자는 예상대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그 다음 타자가 팔꿈치 보호대에 맞는 데드볼로 진루한 것이다. 상대편 투수는 심판에게 타자가 일부러 맞으러 들어갔다고 항의했지만 사회인야구 심판에게 그런 항의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주자 1루 상황에서 타자는 대타 강필타.
 ‘한 점···, 한 점 내서 계속 시합을 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타석을 지켜보고 있다.
 정확히는 던지고 있는 투수를 보고 있는 것이겠지만.
 뭐 어쨌든 좋아. 여기서 반드시 안타를 쳐서 그녀가 한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초구부터 힘껏 가자. 제구가 좋은 투수니까 휘두르면서 맞추면 될 거야.’
 강필타의 문제점은 스윙이 좋지만 전혀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투수가 하나, 둘, 셋하고 던지는 타이밍을 미리 타석 밖에서 생각해두고 타이밍을 맞춰 타격을 한다고 하지만, 강필타는 그렇게 하려 노력해도 타이밍을 전혀 맞추지 못했다.
 세트 포지션에서 순식간에 날아온 초구.
 이 투수는 공이 빠른 것뿐만이 아니라 쓰리쿼터의 투구 폼에서 투심처럼 공 끝이 살짝 휜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궤적은 볼이 몸 쪽에 날아오면 데드볼이 될 것 같다는 공포감에 타자의 타격폼을 흔들어놓는다.
 하지만 강필타는 그런 공포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타앙!
 머리 위의 그물망에 맞는 파울. 팀 동료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오!!”
 “필타가 저 녀석 공을 커트했어!”
 커트라기보다는 그저 배트 안쪽에 맞고 위로 솟구쳐 오른 것뿐이지만.
 포수에게서 공을 건네받은 투수가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뒤돌아섰다.
 ‘친다. 친다. 친다. 다음에는 분명히 친다!’
 강필타의 심리는 지금의 비장한 표정에 모두 드러나 있었다. 강필타는 대학 시절에는 성사되지 못한 이 대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투수는 뒤돌아서서 피식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제 2구.
 타앙!
 이번에도 뒷그물망에 맞는 파울.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강필타였지만 비장한 표정으로 여전히 투수를 노려본다.
 제 3구는 바깥쪽에 떨어지는 변화구. 강필타는 배트가 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강필타! 쳐라! 여기서 네 힘을 보여줘!”
 오랜만에 동료들이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기대 받고 있다. 여기서 치면 이 시합에서의 영웅은 될 수 없어도 동료들에게 환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야구.
 ‘직구를 노리자.’
 야구배팅장에서 연습해왔던 것처럼 하면 칠 수 있다. 강필타는 그날 보았던 그녀의 타격 폼을 떠올렸다.
 부드럽게 공을 맞추고 팔 힘으로 밀어낸다.
 제 4구.
 공이 날아오는 0.1초에 강필타는 반응했다. 이 공은··· 직구다!
 까앙!
 강필타가 크게 휘두른 배트에 검게 얼룩진 야구공이 맞아 날아갔다. 타구가 향한 곳은-
 유격수 정면.
 두 번의 바운드 끝에 유격수가 공을 잡고 커버에 들어오는 2루수에서 토스. 2루수가 아직 1루에 반도 오지 못한 강필타를 보고 여유 있게 1루에-
 6-4-3의 병살타.
 전력의 다해 달리던 강필타는 하늘을 보며 포효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시합이 끝난 뒤에 강필타는 한 가지 사실만을 확인했다.
 그녀가 아직 이곳에 있는가, 없는가.
 시선을 돌린 곳에 그녀는 상대편 에이스와 함께 나란히 서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짐을 챙기는 강필타는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에게는 꼴사나운 모습만을 보였다. 평범한 땅볼을 치고 병살타로 시합을 끝내는 모습이라니.
 꼴사나웠다. 자기 자신이 미웠다.
 그들은 자신이 병살타를 치든 삼진을 먹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겠지. 반응을 보인다면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몸집만 4번 타자라고 비웃을 것이 뻔하다.
 “저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강필타에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 전에 자신과 타석에서 대결했던 상대편 에이스 투수. 그 옆에는 물론 시크한 표정의 그녀도 있었다.
 “가파대학 야구동아리 맞죠?”
 강필타가 다닌 지방국립대학 이름을 정확하게 맞추는 상대편 에이스.
 “예, 그렇습니다만···.”
 “아, 역시. 제가 4학년 때 잠깐 본 기억이 있어서···.”
 “저를 기억해주신 겁니까?”
 강필타가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암요, 눈에 띠는 특징도 많으신 데다가 아까 열정적인 응원 듣고 기억났거든요.”
 이 투수가 강필타를 상대하면서 한 번 뒤돌아서서 웃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신이 4학년 때 동아리 야구를 하는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자기 팀을 응원하는 한 명의 거구가 있었다. 그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지금 기분이 최악인 강필타에는 아무래도 좋은 사실이었다. 상대방이 모처럼 호의를 갖고 말을 걸어왔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자기 자신에 화까지 났다.
 그 이유는 그의 옆에 서있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여성 때문이다.
 “아, 이 애는 제···.”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듣고 싶지 않았다. 말을 끊고 일어나 발걸음을 놀리는 강필타였다.
 창피한 모습을 보였기에 한 시라도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2. 역전의 사나이 강필타
 
 
 왜 나는 야구를 못하는 걸까.
 노릇노릇 잘 익어가는 삼겹살을 눈앞에 두고도 시름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강필타였다.
 “인마, 이제 그만 좀 해라. 사회인 야구 시합에서 병살타 친 것 가지고 무슨 실연이라도 당했냐?”
 대학교 야구 동아리의 동기이자 절친인 김만덕은 만난 지 한 시간이 넘은 이 시간 동안 한숨만 쉬고 있는 강필타를 질책했다.
 “후우···.”
 넓은 의미로는 실연까지 당한 것이라는 생각에 강필타는 다시 한숨을 쉬며 잘 익은 삼겹살에 김치를 얹고 구운 마늘을 올려 입안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스트레스를 식욕으로 발산. 그리고 고기를 씹어 삼킨 뒤에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필타야, 야구는 그냥 즐기면 돼. 너무 스트레스 받을 거 없어. 우리 1학년 때 기억 나냐? 둘 다 형편없이 던져도 공을 던지고 받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잖아. 반은 뒤로 빠진 공을 주우러 다녔지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만덕이 손으로 공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말하는 것을 강필타는 약간 술에 취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 뒤로 군대 갔다 온 뒤에 넌 야구에 눈을 떠서 투수도 하고 빠따도 잘 쳐서 여름 대회 타격왕도 하고···. 야구 잘하면 재밌겠지. 근데 못하면 속만 썩는다!”
 “그럼 마, 야구를 그만하면 되잖아.”
 “······.”
 만덕이 진지하게 하는 말에 강필타는 입을 다문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싫잖아. 그러니까 조금 즐겨가면서 하자고. 야구 하는 거, 술 한 잔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인생의 유희지, 뭐.”
 만덕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주병을 내미는 것에 강필타는 잔을 내밀었다.
 시합 후에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던 강필타는 혼자 쓸쓸히 집으로 걸어갔다.
 강필타의 집은 번화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하지만 술에 취해 비틀거리느라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 되어도 도달하지 못하고 전봇대에 기대어 서있었다. 친구 만덕은 그를 집까지 바래다주려 했지만 강필타가 억지로 거절하고 온 참이었다.
 “하느니임···, 저는 야구를 좋아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아···. 그래서 운동신경도 안 좋은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남들보다 이 악물고 남들 놀 때 혼자 노력하고 그랬어요···. 근데 왜···. 7년이나 해도 공을 맞추지를 못 하는 겁니까아···. 왜요오···. 그저 남들 하는 것만큼만··· 하고 싶은데···.”
 전봇대에 대고 중얼중얼 푸념을 늘어놓는 강필타의 모습은 무척이나 처량했다.
 푸념의 대상은 존재유무를 알 수 없는 신이다. 신에게 빌어본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필타는 술김에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어디 가서 사회인야구 한다고 말도 못 해요오···. 아직 안타 한 번 쳐본 적도 없는데···. 그 여자분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그 순간 전봇대를 잡고 있던 강필타의 신체가 크게 무너졌고, 그대로 균형을 잃었다. 도로 쪽을 향해 성큼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균형을 잡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이었다.
 “어, 아니, 이제 집에 들어간다니까! 아, 진짜!”
 한 손에 휴대폰을 든 채 차를 운전하고 있는 여성이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무턱대고 달리던 여성의 눈앞에 눈부신 헤드라이트에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190cm 이상의 거한이 갑자기 나타났다.
 “꺄아아아악!”
 얼른 브레이크를 밟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쿵!
 술에 취한 강필타는 자동차와 정면충돌. 보닛을 위에서 구르다가 이내 지면으로 낙하.
 그때 불운하게도 강필타는 머리를 강하게 바닥에 부딪치고 말았다.
 시속 30km도 안 되는 저속이었다고는 해도 정면충돌. 큰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강필타는 충격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마치 신이 이제 그만 푸념을 늘어놓으라고 말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신이 간섭하는 세상치고는 너무나 억울한 이야기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강필타를 정면으로 치어버린 여성 운전자는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저지르고 만 것이다.
 여자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은 회식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몇 잔 마신 상태였던 것이다.
 “으으···.”
 강필타가 작게 신음한다. 살아있다. 여자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미안해요···.’
 여성 운전자는 핸들을 돌려 바닥에 쓰러져있는 강필타를 조심스럽게 피해 앞으로 운전했다.
 뺑소니를 당한 강필타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렸다.
 
 ****
 
 생각해보면 강필타의 야구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안타도 나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멋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아직까지 몸집이 자그마했던 강필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프로야구선수를 동경하여 어머니를 졸라 동네 리틀 야구단에 들어갔다.
 강필타는 작은 몸으로도 열심히 야구를 했지만 좀처럼 늘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또래보다 몸이 작고 운동에 재능도 없었다.
 하지만 주말에 열린 연습 시합에서 강필타는 안타를 쳤다.
 깨끗하게 맞아 외야로 흘러나간 안타가 아니라, 3루 방향으로 느리게 굴러간 내야안타였다.
 하지만 강필타는 행복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모든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항상 인상을 쓴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어 무서운 아버지에게도 용기를 내어 자랑했다.
 [아버지, 저 오늘 야구시합에서 안타를 쳤습니다.]
 [아직도 야구하고 다니냐.]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칭찬이 아니라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였다.
 [야구 따위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프로가 되려는 애들이 얼마나 피땀 흘리고 노력하고 있는지 네 녀석은 알고는 있는 거냐. 너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진 녀석들도 말이다. 그깟 공놀이 할 겨를이 있다면 공부나 하거라.]
 그 말은 마음 여린 아이인 강필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말이었다.
 ‘아버지···.’
 강필타는 어린 날의 회상 속에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왜 제 이름을 강필타로 지어주셨나요···. 강필타(姜必打). 반드시 친다는 제 이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하지만 이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헉···!”
 강필타는 급하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고··· 머리야···.”
 양팔로 머리를 감싸 매는 강필타. 그는 어젯밤을 기억을 되살렸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만덕과 술 한 잔하고 집까지 걸어간 것은 기억난다. 하지만 어떻게 집에 도착하여 지금 침대에 눕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것보다도 머리가 쑤실 듯이 아팠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겠지. 하지만 뒤통수를 만지던 강필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뒤통수와 정수리에 사이에서 무언가가 만져진 것이다. 뭔가 딱딱하면서도 물렁한···.
 ‘혹···?’
 “아야야야···!”
 계속 만지고 있으니 격통이 몰려왔다. 강필타는 자신의 온 몸이 쑤신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술 먹고 도대체 뭘 저지른 거야···.”
 어젯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필타는 간단하게 스트레치를 했다. 그리고 몸을 살펴보니 자잘한 생채기 같은 상처에 피딱지가 굳어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없다.
 거실에 나오니 소파에 앉아있던 여동생이 강필타를 돌아보았다.
 “오빠, 속 괜찮아?”
 “응···, 괜찮은 것 같긴 한데. 혹시 너 내가 어떻게 집에 온 건지 알고 있어?”
 “말도 마! 오빠 때문에 어제 난리 났다니까.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걸 어떤 아줌마가 발견해서 오빠 휴대폰으로 나한테 전화 걸어왔다니까! 나 혼자는 도저히 못 옮기니까 오빠 친구 김만덕 씨한테 전화하니까 오셔서 보시더니 ‘이 녀석은 나 혼자서 절대 못 옮겨.’하고 하시더니 다른 친구들을 불러 차로 오빠를 운반해서 방에 갖다놨어.”
 “······아, 그렇구나, 미안.”
 여동생의 말의 통해 강필타는 어젯밤의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역시 술 먹고 길거리에서 뻗었구나.
 이상하다.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았는데?
 술 마시고 처음 있는 일에 강필타는 당황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책상 위에 있는 지갑을 살펴보았다.
 다행이 지폐의 매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카드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분명 다행이지만 도대체 왜 전신이 아픈 걸까.
 강필타는 자신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어쩐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걸까.
 
 ***
 
 여동생 규리의 만류로 월요일 퇴근 이후 야간진료를 하는 정형외과를 찾은 강필타는 의사소견 상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면에서 들이박는 뺑소니를 당하고도 멀쩡하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내구력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상하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회사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뭔가가 평소와는 다르다.
 화요일 업무 중에 이런 일도 있었다.
 “박 대리, 어디 갔어?”
 김 과장의 목소리에 사무실을 둘려본 강필타는 짧은 시간 내에 그가 지금 사무실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창문 밖에 내다보았는데, 우연히도 회사의 정문을 통과해 도로로 진입하고 있는 빨간색 스포티지 차량을 발견했다. [52나30XX]라고 적힌 번호판이 눈에 띄었다.
 “박 대리라면 지금 바이어 마중 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
 별 일 없이 넘어가려 했지만 강필타는 위화감을 느꼈다.
 사무실은 2층에 있다. 그래서 넓은 시야각이 확보 가능하지만 정문에서의 거리는 200m 남짓한 거리다.
 그런데 그 거리에 있는 차량의 번호판을 정확하게 읽었다고?
 자신은 원래 이렇게 시력이 좋았던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묘한 일에 강필타는 이번에는 야간진료를 하는 안과를 찾았다.
 “검사 결과 별다른 이상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있다면···, 시력검사가 말인데요. 좌안시력 1.9 우안시력 2.0으로 시력이 몹시 좋으시네요.”
 강필타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 군대 신체검사 때 잰 시력은 좌안 1.1 우안 1.2로 평범한 시력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력이 급상승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안과 의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의사는 귀찮은 듯 귀를 후비적거리며 건성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자신의 변화를 점점 깨닫기 시작하는 강필타였다.
 안과에서 나온 강필타는 아직까지 어안이 벙벙했다. 시력이 두 배 정도 좋아지다니···.
 마지막으로 시력 검사를 한 군대 신검이 벌서 7년 전이니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긴 했다. 그 동안 서서히 눈이 좋아졌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치곤 낮에 있었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차량 번호판을 읽어내는 신기는 전에 없던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쁠 것 하나 없는 좋은 소식이었다.
 강필타는 눈이 좋아진 만큼 야구를 할 때 공이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야구에 관련지을 만큼 강필타는 야구를 좋아했다.
 강필타가 주로 활동하는 시내 번화가는 뒷골목은 먹자골목이자 주점의 천국이었지만 도로변은 각종 병원들이 즐비해있다. 최근에 세워진 9층짜리 빌딩에는 각층마다 병원이 있을 정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강필타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깨닫고 도로변으로 나왔다.
 “이거 놓으라니까!”
 “망할 년이 어디다가 먼저 시비 걸어놓고 그냥 가려고 그래?”
 한 명의 여성과 세 명의 불량스러워 보이는 남자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며 웅성웅성 거리고 있었다.
 “뭘 봐, 새끼들아! 구경났어?”
 비가 오지도 않는데 머리카락이 물에 흠뻑 젖은 문신의 남자가 갤러리들을 보며 큰 목소리로 외치자 그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네가 먼저 짜증나게 따라왔잖아!”
 여성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것을 놓아주지 않았다.
 “우린 그냥 같이 놀자고 했을 뿐인데 마시던 커피를 얼굴에 뿌리는 미친년이 어딨냐?”
 남아서 실랑이를 구경하던 강필타는 정황을 파악했다.
 과연, 자세히 보니 긴 생머리의 여성은 예쁜 얼굴에 몸매가 날씬하다. 집요하게 길거리 헌팅하면서 쫓아오던 남자들한테 여자가 열 받아서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부어버렸고, 그것에 남자 세 명이 격분한 듯했다.
 이곳은 번화가에다가 대로변이니까 머지않아 경찰이 오겠지. 하지만 강필타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보세요, 진정하고 말로 합시다.”
 강필타가 네 사람을 중재하러 들어갔다. 오지랖이 넓은 성격인 강필타는 양손으로 두 사람의 손을 떼어놓았다.
 강필타는 거구인 자신을 보고 사람들이 위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끼어들면 이번 사건도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넌 뭔데 나대? 덩치 좀 크다고 우리가 우습게 보이냐? 응?”
 오히려 역효과였다. 처음 있는 사태에 강필타는 당황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 일단 진정하고 이야기로 풀어갑시다. 아가씨도 일단 커피 부어버린 건 좀 심하니까 사과하시고···.”
 강필타는 그렇게 말하며 여성을 돌아봤지만 이미 핸드백을 맨 생머리의 여성은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아씨! 저년이!”
 두 사내가 여성을 쫓아 달려갔지만 여성은 이내 골목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런 니미럴! 야,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응? 너 새끼 때문에 저 여자 놓쳤잖아. 어떻게 할 거냐고!”
 눈을 부라리며 강필타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남자였다. 여자를 구했지만 되려 위기에 빠진 강필타였다.
 강필타는 덩치는 크지만 온순한 성격이라 여태껏 제대로 된 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노는 애들 중에 강필타를 건드리는 녀석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입에서 달달한 소주냄새가 나는 이 남정네는 강필타를 때리기 위해 오른 주먹을 치켜 올렸다.
 ‘맞는다.’
 강필타는 자신이 대처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주먹에 눈꺼풀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반쯤 감긴 동공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이 비쳤다. 하지만 빠르지 않다. 아주 느리다. 마치 금붕어가 헤엄치는 것 같은 유유자적한 속도였다.
 왜지?
 짧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을 정도로 느린 주먹이었다. 이건 마치 슬로모션을 보는 것 같은-, 프로야구 중계에서 가끔 보여주는 그 슬로모션 같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相對性理論). 시간은 관측자에 대해 상대적이다.
 이 상황에 왜 이런 말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지만 강필타는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어-
 날아오는 주먹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러자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
 남자가 놀란 눈으로 강필타를 쳐다보았다. 마치 무협영화에서 잔챙이깡패를 상대하는 주인공 같다고 생각했다.
 가장 놀란 것은 남자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잡고 있는 강필타 자기 자신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강필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남자의 손을 부서질 듯이 힘을 주어 잡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야야야, 알았다! 알았어! 그만할 테니까 이거 놔줘!”
 남자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강필타는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와 남자의 주먹을 놓아주었다.
 “아이고, 아파라. 쳇, 운동선수인가? 재수 옴 붙었네, 퉤.”
 그렇게 말하고 길바닥에 침을 뱉고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길을 걸어가는 남자였다.
 강필타는 방금 일어난 그 현상에 너무 놀란 나머지 10분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선 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일요일.
 강필타는 화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점차 잊어가고 있었다.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날아오는 주먹이 느리게 보였던 일과 비슷한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잠시 자신이 착각한 것뿐이다.
 게다가 평일 동안은 늘어난 회사업무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야근도 있었으니까.
 토요일에는 회사 팀의 시합이 없었지만 일요일에는 시합이 배정되어 있었다. 강필타가 소속해 있는 ‘신성무역 사나이즈’는 2개의 리그에 가입해있었으니 거의 매주 시합이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2개의 리그에 가입해있는 것은 강필타의 회사 팀뿐만이 아니었다.
 “마, 사회인야구에서 퍼펙트 게임이라고 들어봤나.”
 “글쎄, 프로 투수가 와서 3부 신생팀 가지고 놀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강필타의 선배들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는 이미 6회 초였다. 그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성무역은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고, 단 한 개의 사사구도 얻어내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상대팀에겐 실책 하나 없었다.
 6회 초 현재 투아웃 상황까지 잡은 탈삼진 개수가 11개. 17개의 아웃카운트 중 야수들이 잡은 아웃카운트가 6개 밖에 없다. 신성무역은 상대팀 투수에게 완전히 ‘호구’잡히고 있었다.
 게다가 점수 차도 3점차 밖에 나지 않는데다가 시합의 진행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빨라서 콜드의 가능성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도 저번 주에 만난 투수에게.
 저번 주 토요일 만난 좌완 에이스가 유니폼을 바꿔 입고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리고 있었다.
 헛스윙 삼진.
 12개 째의 삼진을 멋지게 잡아내고 벤치로 돌아오는 사나이의 이름은 이혁. 저번 주에 강필타에게 이런 저런 의미로 상처를 심어준 남자의 이름이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그는 단신으로 여러 개의 강팀에 속해있었고, 정말 우연스럽게도 일주일 건너 똑같은 팀을 상대하고 있었다.
 강필타는 그런 이혁의 역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의 강필타는 다르다. 평소에 시끄러울 정도로 열성 띤 응원을 하던 강필타는 조용히 앉아서 관전하다가 파울볼이 나가면 공을 주우러가고 조용히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멋있다.
 역시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멋지다.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몇 번을 마음먹고 쉐도우 피칭이나 투수 훈련에 열을 올렸는지 모른다.
 저번에 자신이 눈여겨보던 여성 앞에서 창피를 주었던 남자라도 같은 사회인야구인으로서는 멋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렇게 빠른 공을 옆에서 봐도 저번처럼 느리게 보이는 일은 없었다.
 역시 그 때는 기분 탓이었겠지?
 “강필타! 대타 준비다.”
 회사 근무시간에도 귀신같은 부장인 감독의 호령이 떨어지자 강필타는 크게 대답하며 일어섰다.
 “예!”
 배팅장갑을 끼고 방망이를 들어 스윙연습을 한다.
 “와, 진짜 타석 아니면 스윙은 진짜 좋아. 저번에 선출이 쟤보고 저렇게 스윙 좋은 사람 처음 봤다던데.”
 “그러면 뭐하냐, 맞지도 않는데.”
 선배들이 비아냥거리는 소리에도 강필타는 꿋꿋이 스윙연습을 했다.
 신성무역의 수비가 의외로 빨리 끝나고, 강필타는 돌아오는 세 번째 타자의 자리에 대타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다시 저분과 대결할 수 있는 건가···.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하자.’
 선두타자 루킹 삼진. 바깥쪽에 절묘하게 걸치는 코스의 직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타자 헛스윙 삼진. 오늘따라 커브와 슬라이더가 예리하다.
 컨디션은 최고.
 7회 초에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낸 이혁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오는 것은 저번 주에 맞붙었던 거한. 엄청나게 눈에 띄는 사람이지만 이름은 아직 모른다.
 그가 대학교 1학년 때 목청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몇 번이나 배꼽을 잡고 웃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모른다. 그때 그는 무척이나 귀신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상대편 투수에게 최고의 방해공작을 한 1학년 때의 강필타였다.
 강필타가 타석에 서면 그 엄청난 거체 때문에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혁은 고작 그것 때문에 볼질을 할 정도로 경력이 짧은 투수가 아니었다.
 주자가 없으니 당연히 팔을 번쩍 들어 와인드업을 한다.
 강필타는 흔들고 있던 방망이를 멈추어 세워 배트를 휘두를 준비를 한다.
 그리고 125km의 볼 끝이 좋은 직구가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왔다.
 실밥은 살짝 45도 각도로 꺾여서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 이 사람의 직구다.
 하지만-
 뭔가가-
 투수의 손끝을 떠난 볼이 공기저항을 뚫고 회전하는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실밥의 회전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회전하는 직구.
 강필타는 눈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현상에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
 몸 쪽에 꽂힌 스트라이크.
 ‘그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불량배가 내지른 주먹이 아주 천천히 보였고, 그것을 잡았었다.
 ‘설마···.’
 강필타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와인드업을 하고 있는 이혁을 노려보았다.
 여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은 정상적이다.
 하지만 볼이 그의 손끝을 떠나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중지 하나만이 실밥 하나에 붙어 볼에 회전을 준다. 그리고 이번의 볼의 회전은 아까와는 다르다. 그러면서 점점 가까이 왔을 때는 바깥쪽으로 꺾여 나가는 것이 훤히 보였다.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볼은 흘러 나가버린 뒤였다.
 헛스윙한 순간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확실해···. 내게는 이제 확실히 보여!’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카운트.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혁이 이것이 마지막이다, 하고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직구에-
 처음부터 시동을 건 강필타는 그것을 정확히 보고 배트를 휘둘렀다.
 까앙!!!!
 지천을 뒤흔들 정도로 경쾌한 금속음이 사방에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하늘로 향해 있었다.
 볼이 날아오는 순간 강필타는 하반신과 허리를 완벽하게 회전시켜 몸 쪽 코스의 직구를 인정사정없이 강하게 때렸다. 강필타의 100kg가 넘는 육중한 체중이 모두 실린 파워로 휘두르는 배트의 중심에 직구가 정확히 맞아 나갔다.
 꽈배기처럼 꼬일 듯한 큰 모션의 백스윙을 마친 강필타는 자신이 때려낸 볼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국경을 횡단하는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타구는 높은 펜스를 훌쩍 넘어 날아가고 있었다.
 펜스를 넘어도 타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곳 민내천 야구장은 두 개의 야구장이 붙어있는데 하나의 펜스를 경계로 두 개의 외야가 나누어 있는 형태이고, 각각 A구장, B구장으로 나눈다. 참고로 이곳은 B구장이다.
 강필타가 친 타구는 그가 1루 베이스에 도착했을 때도 아직 떨어지지 않고 힘 있게 날아가, 반대편 A구장에서 시합을 하고 있던 2루수의 머리를 가볍게 넘어 떨어져, 마운드 위에서 세트 포지션을 잡고 있던 투수 쪽으로 굴러가 그의 발뒤꿈치에 닿았다.
 우안 시력이 2.0으로 좋아진 강필타는 그 순간을 볼 수 있었다.
 얼어있던 심판은 오른 손을 번쩍 들어 검지를 붕붕 돌렸다.
 “와아아아!! 홈런이다!”
 신성 사나이즈의 팀원들은 믿기지도 않는 장면에 양팔을 번쩍 올리며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마운드 위에서 아직까지 타구가 날아간 방향을 돌아보며 거친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고 있는 이혁은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수비를 하고 있던 상대 팀 선수들과 벤치 멤버도 마찬가지였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회인야구라고는 하지만 퍼펙트게임의 달성이 눈앞에 와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뇌리에서는 이미 그 사실은 깨끗하게 지워져버렸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강필타가 홈런을 때릴 때의 임팩트와 타구의 비거리만이 각인되고 말았다.
 “도대체··· 몇 미터를 날려버린 거야, 저 괴물은.”
 마침내 홈을 밟고 들어오는 강필타를 보며 상대팀 선수들은 혀를 내밀고 있었다.
 아무리 나무배트보다 반발력이 강하다는 알루미늄 배트라고는 해도 저 비거리는 사람의 힘이 아니다. 저런 비밀병기, 아니 핵병기를 여태까지 숨겨놓은 저 신성 사나이즈라는 팀은 도대체 뭐지.
 그들은 상대편 선수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홈으로 들어온 강필타의 헬멧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드디어 네가 해냈구나! 강필타!”
 “그렇지, 난 네가 조만간 홈런 때릴 거라고 믿고 있었어.”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며 함께 기뻐하는 선배들.
 강필타는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해서 견딜 수 없었다. 이 팀에 들어와서 처음 친 안타가 바로 홈런이라니. 하지만-
 “여러분,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충분히 칠 수 있어요!”
 강필타는 큰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말했고, 잠깐 조용해졌던 팀원들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이봐이봐, 홈런 하나 쳤다고 지금 기고만장해져가지고! 파하하하!! 기다려라, 강필타. 이 형도 너 입도 뻥긋 못하게 홈런 한 방 더 때리고 와줄게!”
 다음 타자인 홍만이 강필타의 헬멧을 세게 한 번 치고는 방망이를 어깨에 기댄 채 타석으로 향했다.
 강필타의 한 방이 신성 사나이즈의 사기를 한 번에 고양시켜놓았다.
 마운드 위에 서서 포수와 짧은 이야기를 나누던 이혁은 강필타를 힐끔 쳐다보았다. 강필타도 이혁을 쳐다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교차하고 있었다.
 강필타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걸로 한 번은 이 사람에게 이겼다. 갑자기 생긴 능력 덕분에 그의 공을 정확하게 때려낼 수 있었다고는 하나, 이긴 것은 이긴 것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으로 두 사람의 시선교환은 끝났고, 이혁은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가 다시 볼을 뿌렸다.
 삼구삼진.
 강필타에게 보란 듯이 기껏 사기가 오른 홍만을 잡아낸 이혁은 3 : 1의 스코어로 시합을 끝냈다.
 시합에서는 지긴 했지만 정리를 하고 원으로 둘러서서 미팅을 하는 신성 사나이즈의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였다. 마치 강필타가 시합에서 결승홈런이라도 뽑아낸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감독도 평소와 달리 쓴 소리를 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강필타.”
 “예!”
 “다음 시합부터 다시 4번 타자로 기용한다. 할 수 있겠나?”
 솔직히 말해 공이 느리게 보이는 이상한 능력 때문에 강필타에겐 자신이 있었다.
 “예!”
 “오오오오오!!”
 모두가 박수를 치는 가운데 강필타는 진정한 4번 타자로 다시 태어났다.
 강필타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단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이게 그냥 꿈이 아니길.
 이게 꿈이라는 결말이라면···,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무척이나 상심할 것이다.
 
 ***
 
 강필타는 눈을 떴다.
 오늘도 머리가 지끈했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더라. 또 기억이 날아간 것인가.
 최근에 술 마시고 기억을 잃는 일이 많아졌다. 자중하자고 생각하며 강필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헉!”
 욕실에서 거울을 본 강필타는 눈을 번쩍 떴다.
 “설마···, 꿈?”
 강필타는 허겁지겁 욕실에서 달려 나왔다. 그는 교복을 입은 채 거실에서 남자 아이돌 그룹이 댄스를 추고 있는 장면을 TV로 보고 있는 여동생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규리야! 오빠 가만히 있을 테니까 얼굴에 주먹 한 방 꽂아줄래?”
 “오빠, 아침부터 미쳤어? 왜 그래?”
 “괜찮으니까 제발 한 방만! 그, 그래. 만 원 줄게!”
 “갑니다~.”
 군말 없이 허리춤에서 정권을 쥐고 사정없이 오빠의 뺨에 꽂아 넣으려 하는 여동생 규리였다.
 순간 빠른 스피드로 날아오는 규리의 주먹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좋아! 꿈이 아니다!
 강필타는 그저 너무 기쁜 나머지-
 끝까지 날아오는 규리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안면으로 그대로 받아버렸다.
 퍼억!
 그리고 강필타의 시간은 정상으로 돌아갔다.
 태권도 유단자의 펀치에 턱뼈를 맞고 고통에 바닥을 뒹구는 오빠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 후 만 원짜리 한 장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규리는 쿨하게 지갑을 강필타에게 던지고는 돌아섰다.
 “또 맞고 싶어지시면 다음에 또 이용해주세요. 그럼 동생은 학교 갑니다.”
 그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강필타의 왼쪽 볼은 퉁퉁 부어있었다.
 사내에서는 아침부터 강필타의 무용담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들어보라고. 상대편 투수가 진짜 너무 잘 던져서 우리가 퍼펙트게임으로 지고 있는데, 마지막 타자로 들어선 막내가 투 스트라이크에서 딱 치더니 그게 다른 야구장 안에 떨어져서 투수한테까지 굴러갔다니까?”
 “에이, 박 대리님. 거짓말 하지 마세요. 오버가 너무 심하시네요.”
 여직원 한 명이 홍만의 이야기를 듣고 손사래를 치자 홍만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아, 진짜. 네가 그 자리에서 봤어야 하는 건데. 그래! 이번 주도 시합 있으니까 네가 직접 보러오면 되겠네. 안 그러냐? 필타야? 네가 얘 앞에서 또 멋지게 한 방 때려줘!”
 키보드를 두드리며 업무에 열중하고 있던 강필타는 쑥스러워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또 홈런 치도록 노력할게요.”
 솔직히 말해 저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너무 과한 자신감의 표출은 삼가는 게 좋다.
 강필타가 때려낸 홈런 볼은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케이스에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며 강필타는 행복감에 빠져 하루 종일 밝은 모습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그녀가 봤다면 좋았을 텐데···.’
 이혁과 같이 있던 트레이닝복의 그녀.
 저번에는 그녀의 앞에서 비참하게 병살타로 시합을 망치고 말았다.
 다음에 또 만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강필타는 퇴근 후 시내에 있는 야구 배팅장을 찾았다.
 깡! 깡! 깡!
 인코스, 아웃코스, 한 가운데, 아웃 로우.
 천천히 오는 궤적이 모두 보이니 손쉽게 걷어 올릴 수 있었다. 아니, 처음에는 보이긴 해도 이것을 어떻게 쳐야할까 고민하다가 휘두르면 타이밍이 맞지 않아 파울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학습이 되어 코스별로 어떻게 타격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몸 쪽 공은 두 팔을 배꼽에 붙여 그대로 나와야 한다.
 강필타는 이제 어떤 공도 자신이 원하는 스윙으로 갖다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거인의 넘치는 파워에 정확하게 공을 볼 수 있는 눈이 더해지면서 무시무시한 타격기술을 뽐내는 천재 타자를 만들어놓았다.
 강필타는 신이 나서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 공을 때려댔다. 완전히 자신의 눈에 적응한 뒤로부터는 단 한 번도 헛스윙을 하거나 파울을 때리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도중에-
 퍽!
 강필타가 때린 타구가 정확히 투수정면으로 강하게 날아가, 그물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 피칭 머신에 직격했다. 그리고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오지 않게 되었다.
 강필타의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 타구에 맞은 기계가 고장나버린 것이다.
 “아.”
 강필타는 그 자리에 서서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내가 부숴버린 건가?’
 
 
 3. 전 마이너리거 황선진
 
 
 그는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였다.
 10개 대회에서 방어율 0.85. 투구이닝 88과1/3이닝. 탈삼진 92개. 150km를 넘나드는 직구와 폭포수 커브로 타자들을 춤추게 만드는 에이스였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지역 프로구단의 1차 지명을 거부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90만 불의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메이저 리그의 구단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입단한 그는 루키 리그에서 시작해 2년 만에 더블 에이까지 승격할 수 있었다.
 선발투수로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에 몇 년 안에 코리안 메이저 리거가 되어 우주 최고의 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 국내 언론은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3년 차에 트리플 에이까지 승격한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은 매 경기마다 터지는 피홈런 개수였다.
 잘 던진다가도 결정적인 홈런 한 방에 시합을 망치는 일이 많았다. 자책점은 3점대 초반으로 나쁘지 않은데, 시즌 중반이 끝나기도 전에 5패를 끌어안은 그는 그래도 이를 악물고 고된 마이너 생활을 버텼다.
 온 몸이 쓰라리고 아팠다. 지칠 대로 지쳤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자.
 조금만 더 버텨서, 조금만 더 좋은 성적을 낸다면 9월에 있을 로스터 확장 때는 꿈에도 그리던 빅 리그 승격도 기대해 볼 만하다.
 한국 기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우악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공을 뿌렸다.
 실력을 더 갈고 닦아 이 시련을 이겨낸다면···.
 이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이저리거라는 원대한 꿈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우지끈-
 자신의 몸 안에서 들려온 그 불길한 소리와 함께 그는 마운드 위에 쓰러졌다.
 그는 격통에 몸부림치며 마운드의 흙 위에서 뒹굴며 비명을 질렀고, 그는 자신의 왼쪽 팔꿈치를 부여잡으며 마운드의 흙을 있는 힘껏 잡아 쥐었다.
 그렇게 그는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날렸다.
 토미존 수술은 불가피했다. 피로했던 인대가 완전히 뚝하고 끊어져버렸으니까.
 무사히 수술을 마친 그는 눈앞에 보였던 메이저를 놓쳤지만 묵묵히 재활에 임했다. 힘겨웠던 마이너 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다시 메이저에 가고 말 것이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달리고 또 달렸다.
 
 ***
 
 강필타의 성적의 반전.
 강필타는 이혁에게서 초대형 홈런을 뽑아내고 각성한 다음 주 시합에서 4번 타자 1루수로 출전, 첫 타석에서 큼지막한 투런포를 날렸다.
 그리고 1회부터 빅 이닝 후에 그 다음 2회에 바로 돌아오는 타석에서도 선두 타자로 타석에 서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솔로 홈런.
 그리고 9 : 0이라는 큰 점수 차에서 4회에 투아웃 만루. 거를 수도 거를 이유도 없는 루징 게임에서 투수가 던지는 커브에 바로 반응. 스트라이크 존에서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걷어 올려 만루 홈런을 작렬시키고는 혼자 7타점을 올려 4회 13점 차 콜드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3타석 3타수 3안타 3홈런 7타점. 게다가 전 시합까지 합치면 4연타석 홈런의 무시무시한 성적이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사회인야구에 와도 이런 성적을 내긴 힘들 것이다.
 강필타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시력이 무척 좋아진데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가 순간적으로 슬로모션으로 보이는 이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인터넷에 찾아본 결과 이런 능력과 가장 비슷한 능력을 ‘뛰어난 동체시력’이라고 하기에 강필타도 이 능력을 동체시력으로 부르기로 했다.
 홈런을 때릴 수 있게 되자 강필타는 야구가 너무 재밌어서 버틸 수가 없었다. 주말의 시합이 끝나면 평일 동안 다음 주말을 학수고대하곤 했다. 그러다가 비가 오거나 시합이 없는 날은 무척이나 실망하여 친구 만덕과 소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강필타는 그 이후로 그야말로 리그를 폭격하다시피 했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때려내는 사회인야구 선수라니. 그는 선수 출신이 와도 못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4게임 연속 멀티 홈런을 기록하고 나서부터는 그 근방에 있는 사회인야구팀들이 모두 강필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내 강필타의 대처법을 알아내어 그것을 실행했다.
 포수가 강필타의 배트가 절대 닿지 못할 곳에 미트를 대고 투수에게 공을 던지라 지시했다.
 고의사구.
 강필타와 승부했다가 홈런을 맞는 것보다는 발이 느린 그를 1루에 보내는 것이 훨씬 이득인 계산이다. 강필타가 워낙 느리다보니 다음 타자에게서 병살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다.
 “쳇.”
 강필타는 입을 삐죽 내밀며 배트를 든 채 1루로 걸어갔다. 이래서는 재미가 없다. 즐기는 사회인야구에서 좀 이겨보자고 고의사구라니. 하지만 즐기기에는 강필타는 타석에서 너무나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상대팀이 평범한 땅볼을 잡지 못하는 에러를 연발하는 덕분에 강필타는 홈을 밟았다.
 1루 수비에 들어간 강필타는 1루 미트를 주먹으로 두들겼다.
 까앙!
 강필타의 동체시력은 타석에서만 발휘되는 한정된 능력이 아니었다.
 좌타자가 친 타구가 외야 쪽으로 강하게 날아가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강필타가 훌쩍 점프하여 자신의 머리 위로 지나려는 타구를 1루 미트로 잡아낸 뒤에 쿵 소리와 함께 지면에 착지했다.
 슈퍼 세이브 성공. 신장 195cm인 점을 이용한 멋진 수비였다.
 그것은 강필타의 눈에는 타구 또한 느리게 보였기에 가능한 재주였다. 덕분에 강필타는 내야에서 원바운드로 들어오는 악송구를 편안하게 잡아낼 수도 있었고, 덕분에 내야수들은 안심하고 강하게 송구를 할 수 있었기에 팀원 전체의 수비도 안정되었다.
 “이젠 뭐, 이게 신성 사나이즈인지 강필타와 여덟 난쟁이인지 모르겠다.”
 “필타가 이렇게 잘 하니까 야구하는 게 너무 재밌어졌어!”
 야구를 잘하게 된 이후로 강필타는 팀원들에게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고, 매번 칭찬을 들을 때마다 정말 기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이윽고 콜드 게임의 분위기로 치닫던 때에 상대팀은 강필타를 만루상황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투수와 포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한 점만 허용하면 9점 차로 아직 콜드는 아니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지?”
 포수가 말하는 말에 투수는 고개를 돌린 채 마운드의 흙만을 걷어찰 뿐이었다.
 만루에서의 고의사구.
 그만큼 강필타는 위협적인 타자였다. 하지만 투수는 툴툴거리며 불만을 뱉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지난 타석에서 전부 고의사구로 강필타를 내보낸 투수는 포수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이기지도 못하는 게임, 즐기자고. 여기서 또 포볼 내주면 난 아마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마치 야구 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모자를 고쳐 쥐며 포수에게 담담히 이야기하던 투수는 글러브로 타석을 가리켰다.
 “가서 앉아. 쳐맞든 말든 여기서 승부하자.”
 투수의 말에 포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다시 포수 자리로 돌아가 미트를 쫘악 뻗어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
 “와! 또 만홈이다! 강필타! 강필타!”
 만루 홈런으로 배터리의 패배.
 치트를 쓴 것처럼 사기적인 홈런 타자 강필타는 유유히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었다.
 그 모습을 우익수 쪽의 철망 너머에 서서 뒷짐을 지켜보고 있는 한 명의 노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강필타는 알지 못했다.
 
 ***
 
 “필타야, 너 뭘 잘못 먹었기에 요새 그렇게 야구를 잘하냐.”
 동네 친구이자 대학교 야구동아리 동문인 만덕은 술에 취해 꼬부라진 발음으로 필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만취상태인 강필타 또한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초록빛의 소주병을 손에 든 채 그것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술을 더 먹으면 돼~. 저번에 너랑 술 먹다가 기억 잃은 날 이후로 갑자기 공이 느리게 보이는 거 있지~.”
 “그 얘기 듣고 매주 너랑 이렇게 둘이서 술 먹고 있는데 난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에~? 너 집에서 몸에 좋은 거 몰래 먹고 있는 거 아니냐?”
 “그런 거 없어~.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추가요!”
 슬그머니 큰 목소리로 소주를 추가 주문하는 강필타는 이미 만덕과 합쳐 7병의 소주를 마신 뒤였다.
 강필타는 대식가이자 대주가이기도 했다. 특히 주량으로는 그를 이길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 보면 된다. 그와 마지막까지 오직 술로만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은 친구인 만덕 정도뿐이었다.
 “필타야~, 너 야구 잘해서 좋겠다만, 너무 야구만 하고 다니지 말고 가끔은 연애 좀 하고 다녀야 되지 않겠냐~. 벌써 우리 30대 다 되어 가, 인마. 그래서 결혼은 하겠냐.”
 “만덕이 너도 지금 여자 친구 없잖아.”
 “여자 친구가 있으면 맨날 너랑 술 먹겠냐. 나는 인마, 대학생 때 많이 사겨봤어! 그러다가 깨달은 거지. 이상한 애들 사겨봤자 얘들이랑 나중에 결혼할 것도 아니란 걸 말야. 그러니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찾기 전에는~”
 강필타는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또 이 래퍼토리로 영원히 주구장창 자신의 연애이론을 풀어나가는 연애박사 김만덕 씨다. 하지만 그가 몇 년째 여자 친구가 없었기에 강필타와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강필타, 너는 말이야~.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어, 인마! 우선 배가 그렇게 나와 가지고 여자가 쳐다보기는 하겠냐.”
 만덕의 말에 강필타는 배를 가렸다.
 “그런가···?”
 살은 좀 빼야겠다고 몇 년 전부터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식도락이 너무 좋았기에 다이어트는 3일도 못되어 실패하곤 했다.
 강필타는 아직 이름도 모를 그녀를 떠올렸다. 그때 최악의 병살타를 치고 난 뒤에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 뒤로 야구연습장에도 오지 않는다.
 “하아~.”
 강필타가 깊게 한숨을 내쉰 순간, 가게 입구 쪽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몰라, 무슨 야구선수가 왔다는 것 같은데.”
 안쪽에 앉아있던 강필타는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한 명의 미남이 서있었다.
 “황선진 선수! 사인 좀 해 주세요!”
 “황선진 선수! 같이 사인 좀 찍어요!”
 그곳에는 주로 여자들이 벽을 만들고 있었다.
 이젠 여자들도 프로야구에 관심이 많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있지만 그 중심에 서있는 훤칠한 키의 모델 같은 모습의 야구선수는 당장 드라마에 출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야구 선수치고는 긴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한 그는 무표정하게 서 있다가 열광하는 한 여성 팬을 손으로 거칠게 밀어내고는 차갑게 말했다.
 “비켜.”
 미성이지만 적의가 담긴 말에 여자들은 그 자리에서 침묵했고, 잠깐의 틈이 생기자 황성진은 비어있는 테이블로 걸어가 팔짱을 낀 채 앉았다.
 “인성 봐라. 역시 저럴 줄 알았다.”
 “쳇, 호스트 같이 생긴 놈이 잘난 척 하기는.”
 테이블에 있던 남자들이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갈 법했지만 그는 꾹 눈을 감은 채 무시로 일관했다.
 “저렇게 밥맛없이 팬서비스도 못하니까 임의탈퇴 당할 만하지.”
 그렇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구단 측에서 임의탈퇴를 공시하는 강력한 제제를 받은 선수였던 것이다.
 임탈 이전에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단, GL 트리플스에서 선발과 중간계투를 넘나들던 좌완투수. 150km의 강속구를 던지지만 들쭉날쭉한 제구력으로 인해 매년 평범한 성적을 내던 황선진은 잘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아 유니폼 판매량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약물복용 의혹, 깨끗하지 못한 여자관계, 음주운전, 수차례 불미스러운 사건이 화두가 될 정도로 사생활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선수였다.
 그런 그는 이번에 있었던 벤치 클리어링 때의 외국인 선수 폭행사건의 주범이었던 것이 큰 문제가 되어 이번에는 임의탈퇴에 이르게 되었다.
 구단 측에서 사과를 하고 임의탈퇴라는 중징계를 내렸지만 KBO측에서도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 시합과 2군 시합에 출전할 수 없고, 구단시설을 이용한 훈련불가라는 징계를 내렸기에 이번 시즌은 완전히 근신하게 된 황선진이었다.
 소문이 안 좋았기에 남자들은 황선진을 알아봐도 접근하지 않았지만, 여자들은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황선진에게 몰려들었다가 냉정하게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던 황선진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인 좀 해주세요.”
 황선진은 순간적으로 담배를 떨어뜨릴 뻔 했다. 너무나 위압적인 덩치의 거한이 자신의 앞에 펜과 야구공을 든 채 저승사자의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선진에게는 위압감 넘치는 조폭 같은 인상의 아저씨가 서있었지만 강필타는 사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양손에 든 야구공과 사인펜을 내밀고 있었다.
 “사복 입곤 사인 안 합니다.”
 순간적으로 위축되었던 황선진이었지만 이내 눈을 감고 쿨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해주세요, 네? 저 황선진 선수 미국 갈 때부터 팬이었단 말이에요!”
 강필타의 말에 황선진은 싫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바보 같았던 그때의 자신이 무식하게 공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눈에 선했다.
 어린 아이처럼 사인을 조르는 거한을 눈앞에 둔 황선진은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지친 마이너 생활, 구장 앞에서 짐을 한 가득 짊어지고 구장으로 들어가는 자신에게 야구공과 사인펜을 내밀던 푸른 눈의 어린 소녀-
 “아, 시끄럽네, 진짜.”
 황선진은 사인해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강필타에게서 사인펜과 야구공을 빼앗아 대충 사인을 휘갈긴 다음 그것을 강필타에게 넘겼다.
 “앗싸! 그럼 황선진 선수! 식사 맛있게 하시고 힘내세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가는 강필타의 뒷모습을 황선진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야구 선수 누구던데?”
 테이블로 돌아온 강필타에게 만덕이 묻자 강필타는 사인볼을 내밀며 황선진이라 대답했다.
 “그런 놈 사인 받아서 어따 쓰냐.”
 멀리서 들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척 만 척 황선진은 먼저 시킨 소주 한 병을 기울여 스스로 잔을 채운 뒤에 원샷 했다.
 잊으려고 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또 혼자 마시는 겐가.”
 그런데 어느샌가 소리도 없이 나타난 정장 백발의 키 작은 노인이 황선진의 눈앞에 앉으며 점잖게 말했다.
 “냅두시죠.”
 “술이란 자고로 함께 마셔야 맛이 깊은 법이지.”
 노인은 종업원에게 받은 소주잔을 들어보였다. 황선진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못해 병을 들어 노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방금 주문한 계란말이가 나오자 나무젓가락을 뜯어 그것을 집어 드는 황선진에게 노인이 말했다.
 “저번 시합에 페르난도의 안면에 한 방 먹여줬다고 들었다.”
 섬상 라이거스 외국인 용병 타자 페르난도 루나. 멕시코 출신의 전 메이저리거다.
 그는 저번 시합에 쓰리 볼 상황에서 황선진이 던진 직구에 엉덩이를 맞고 욕설을 퍼부으며 황선진에게 향했는데, 그것에 황선진이 뛰쳐나가 그의 안면에 정권을 꽂는 것이 중계카메라에 그대로 찍혀 방송되었다.
 “······그랬는데요.”
 당연하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뒤에 황선진은 뜨거운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이번엔 왜 그랬나?”
 “그 자식이 저번 시합부터 되도 않는 걸로 시비 걸어왔으니까요.”
 황선진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 페르난도와 황선진은 5년 전 트리플 에이에서의 팀 동료였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는 비 주전 선수 페르난도와 구단자체가 애지중지하는 특급 유망주, 그 사이는 순탄하지 못했다.
 무뚝뚝한 성격의 황선진은 같은 팀의 마이너리거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하도 말 수가 적고 남과 어울릴 줄을 모르는 성격에 구단 측에서 특별대우까지 해주고 있으니 다른 마이너리거들에게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황선진의 마이너 생활이 힘들어진 이유도 그것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따돌림의 주체가 되는 것이 바로 지금 한국에 용병으로 와있는 페르난도였다.
 황선진은 그것을 꾹 무시해왔지만 저번에 자신에게서 홈런을 뽑은 다음날 시합 전 연습시간에 페르난도가 자신을 향해 하는 말에 무척이나 열이 받아 있었다.
 [너희 한국인들은 그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투수들? 너무 쉬워. 너희 리그는 마치 루키리그 같군. 너 같은 실패한 마이너리거도 1군에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하하하하하.]
 자신의 이마를 콕콕 찌르며 하는 페르난도의 역겨운 말에 황선진은 살의까지 느꼈고, 시합 도중 쓰리 볼에 몰리자 그냥 엉덩이에 전력으로 꽂아버린 것이었다.
 “그 자식, 한국야구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갈며 말하는 황선진을 보며 노인은 껄껄 웃었다.
 “그렇다고 엉덩이에 152km를 꽂으면 쓰나. 실력으로 이겨보였어야지.”
 “아, 됐어요. 이제 야구 안 할 거니까.”
 “야구 안하면 앞으로 뭐 해서 먹고 살려고?”
 “몰라요, 돈 있는 거 가지고 사업이나 하던가, 전에 모델 소속사에서 온 제의나 받아들이던가. 야구는 이제 지긋지긋하거든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황선진은 의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이저의 꿈은 이제 접은 게냐?”
 “······.”
 노인의 뜬금없는 말에 황선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허탈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영감님. 나이 스물여덟 먹고 마이너리거 놈한테 무시당하는 KBO에서 방어율 5점대에 제구가 안 되서 패전조로 나오는 놈한테 메이저? 나 참, 어이가 없어 가지고.”
 황선진은 새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확히 10년 전에 말이다. 지금처럼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먹는 똘망똘망한 눈빛의 야구소년이 내 앞에서 했던 말이 떠오르는구나.”
 [저는 꼭 메이저로 가서 박찬호, 류현진을 이을 한국인 최고의 메이저리거가 될 겁니다.]
 “···꼭 남의 흑역사를 끄집어내야겠소?”
 “껄껄껄···.”
 “아이씨,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러 여기에 불러낸 거요? 영감님.”
 답답하다는 듯이 황선진이 말하자 노인은 그윽한 시선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암만 그래도 야구는 계속해야하지 않겠나. 이번 주 토요일에 유니폼 바지랑 글러브 챙겨서 시민야구장으로 나오게나.”
 “뭐하게요. 허리도 제대로 못 펴시는 분이 저한테 개인 훈련시켜 주시게요?”
 “뭐, 비슷한 거지. 어쨌든 나오게나.”
 
 ***
 
 노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시민야구장에 차를 끌고 나온 황선진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있는 촌극에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유격수와 2루수가 동시에 콜을 하다가 결국 그들의 사이에 뚝하고 떨어져버리는 평범한 내야플라이. 그것을 잡아 3루로 뛰고 있는 주자에 던졌더니 송구는 크게 빗나가 외야로. 그 덕분에 평범한 내야플라이를 친 타자는 에러만으로 홈에 들어오게 되었다.
 ‘와, 어떻게 저렇게 인간이 야구를 못할 수가 있지.’
 프로의 무대에서 야구를 해온 황선진에게는 크나큰 문화충격이었다.
 “왔구만.”
 언덕 위에 서있던 황선진을 발견한 노인이 지팡이로 몸을 지탱한 채 한 손으로 그를 불러들였다.
 “다음 시합이니 워밍업하고 준비하세.”
 “워밍업이라뇨, 설마···.”
 “이보게, 그걸 주게.”
 노인은 황선진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옆에 있던 유니폼을 입은 중년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그가 주섬주섬 들고 나온 것은 신품의 유니폼 상의였다. 그것도 여기에 모여 있는 모두와 같은 유니폼···.
 “설마 영감님, 저보고···.”
 “시간이 없네. 거기 자네, 이 친구와 함께 캐치볼을 해주게.”
 노인은 황선진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이 영감님이 진짜 노망이 났나! 왜 갑자기 프로한테 망할 사회인야구를 하라고 하세요! 아, 진짜! 어울려주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안 해요! 나 무조건 안 해요!”
 드디어 폭발한 황선진은 드물게 큰 목소리로 항변했지만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황선진의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하라면 하게. 잔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사무국에 징계를 좀 줄여달라고 건의해 볼 테니까 말일세.”
 “······.”
 오랜만에 보는 위협적인 노인의 모습에 황선진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비닐 팩에 든 유니폼을 내려다보았다.
 [11 황선진]
 프로 때 자신의 등번호와 이름까지 마킹되어 있었다.
 혹시 사회봉사 같은 건가···?
 야구를 접을까 진심으로 생각했지만 징계수준이 낮춰진다면야···.
 “저기, 정말 황선진 선수가 우리 팀에 들어오시는 겁니까?”
 감독으로 보이는 중년의 배불뚝이 남성이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묻자, 노인은 무서운 눈빛으로 황선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후우···.”
 황선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끄덕였다.
 “암, 그래야지. 자네는 유격수 4번 타자라네.”
 “···투수가 아니고요?”
 “자네 사회인야구 규정도 모르는가? 선수 출신은 선발투수 불가에 최장 2이닝 이상 투구할 수 없게 되어있다네.”
 “···그런 걸 제가 알 리가 없잖아요. 사회인야구를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데.”
 “그렇다면 사회인야구는 초짜라는 말이 되겠구만?”
 노인이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황선진은 울컥했지만 그것을 한숨으로 승화하고는 유니폼 상의를 입었다.
 “저저저저거, 황선진 아니야?”
 뒤늦게 도착한 상대편 팀이 내야에 팔짱을 낀 채 서서 펑고 연습에 참여하고 있는 황선진을 알아보고 지목하며 말했다.
 “잠깐 타임! 어째 프로야구선수가 시합에 참가합니까? 선수등록은 한 겁니까?”

댓글(2)

혹노고    
왠만하면 그냥 읽고 마는데 이거 완전 지뢰네 손 안덴사람 손데지 마세요 최악이야
2019.07.30 21:57
Ginx    
뒤에 가서 억지 발암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사이다 원하는 사람 비추입니다.
2020.05.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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