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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 1-1

2019.06.27 조회 5,209 추천 34


 골목식당 리얼갑부 1권
 
 목차
 프롤로그
 1장. 밥값이라네
 2장. 중요한 건 멘탈
 3장. 건물주와 사골육수
 4장. 그 이름 강주혁
 5장. 아버지는 괜찮아
 6장. 오랜만에 오셨네요
 7장. 정신 좀 차려라
 8장. 국물 맛의 핵심은
 9장. 됐다. 먹자!
 10장. 오늘만 할인
 11장. 알아들었어?
 
 
 
 프롤로그
 
 
 
 인생 한 번 더럽게 꼬였다.
 장사는 망하기 직전에 여자 친구한테 차였고, 친구는 원수가 됐다.
 
 그런 나에게, 희망이 찾아왔다.
 
 난 결심했다.
 한 번뿐인 내 인생, 거침없이 살기로.
 
 
 
 1장. 밥값이라네
 
 
 
 “가게 접어야 하나?”
 차가운 이성은 그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슴은 미련을 놓지 못했다.
 군대 제대하고 공장 다니다 그럴듯한 회사에 들어갔다.
 하루 평균 네 시간 정도 자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고, 그러면서 알뜰살뜰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이천만 원이었다.
 은행을 통해 청년 창업대출로 천오백을 받았고, 같이 동업하기로 했던 친구한테 차용증까지 쓰고 이천만 원을 더 빌렸다.
 그 돈으로 권리금 천만 원, 보증금 이천에 월세 오십짜리 그럭저럭 장사 좀 되는 분식집을 인수했다.
 위치는 썩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대로변 안쪽의 골목이었지만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오 분 거리였다. 게다가 큰길로 나가는 길목이었고, 근처에 학생들도 많아 원룸 건물들도 즐비했다.
 또, 역 근처 상권도 발달되어 있어 수요는 충분할 거라고 봤다.
 무엇보다, 분식집 안쪽으로 재개발 호재까지 겹쳐 있어 앞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강형우는 그렇게 얻은 분식집에 미래를 걸었다.
 동네 구석의 오래된 가게, 때문에 많은 것을 손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내부공사와 인테리어에 천만 원을 투자했고, 직접 참여도 했다.
 우선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주방 동선을 효율적으로 바꾸었다.
 그 덕에 공사비가 올라갔지만 투자라고 생각했다.
 바닥 타일부터 화장실 청결제품, 벽장식 소품과 집기들까지 직접 골랐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워 간판 디자인까지 스스로 만들었다.
 이름은 지성분식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그 말의 앞을 따와 지은 거다.
 정성이 통했던 것일까?
 강형우의 분식집은 두 달 만에 동네 맛집에 등극했고 석 달째부터는 가끔 재료가 떨어지는 경우도 생겼다.
 넉 달째부터 야외 테이블에 파라솔 영업까지 시작했고, 직원까지 더 뽑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엄마나 여동생, 혹은 여자 친구가 도와주러 와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월매출 삼천만 원!
 테이블 여덟 개의 동네 분식집치고는 실로 대단한 성과였다.
 나이 스물일곱에 억대 연봉 사장.
 그 꿈이 코앞에 있었다.
 그랬는데······.
 
 “거시기, 이 개새끼.”
 후우, 욕이 안 나올라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장밋빛 미래를 망친 건 이십 년지기 친구 놈이었으니까.
 지금 지성분식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아니,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해야 파리라도 날리는 법 아니겠는가?
 그게 더 서글펐다.
 “후우~”
 나오는 건 한숨이요, 땡기는 건 담배였다.
 원인은 단순했다.
 
 ***
 
 지하철 출구 앞에 제법 큰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동시에 일 층에 여러 가게가 오픈했다.
 대한민국 식당을 평정한 김밥 천왕.
 차별화된 떡볶이와 튀김, 순대로 동네 분식을 쓸어버린 조가네 떡볶이.
 중식당의 대중화를 이끈다는 홍화반점.
 또 유명 프랜차이즈인 프랑스바게트와 엄마 버거, 심지어 번개치킨까지 한꺼번에 개업한 것이다.
 그게 불과 넉 달 전이었다.
 지하철역이 있지만 유동인구는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근처 사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정도였고 주요 번화가들 중간에 위치한 그저 그런 지역이었다.
 그런 동네에 대형 상가가 생겼고, 유명 가게들이 턱하니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동네 상권은 몸살을 앓았다. 마치 동네 구멍가게 입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선 격이었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불과 석 달 사이 동네 분식점 상당수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일단 업종이 겹치는 가게들이 첫 번째였다.
 김밥 천국이 그 시작이었다.
 IMF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 프랜차이즈는 당시 무수한 동네 분식점들을 잡아먹고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그저 그런 가게로 바뀐 상황이었다.
 김밥 천왕은 김밥 천국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세련된 카페식 인테리어와 깔끔한 음식 맛, 그리고 오픈 주방을 통해 위생을 강조했다.
 메뉴 역시 더욱 개량되었고 친절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까지 했었다.
 그 결과 십 년째 역 앞에서 장사를 하던 김밥집 사장은 가게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동네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화끈 오뎅이었다.
 처음 조가네 떡볶이에 손님이 몰릴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소위 말하는 오픈발이라 생각한 거다.
 무엇보다 오뎅집 사장은 음식 맛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법 육수와 숙련된 경험으로 만드는 튀김은 많은 단골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승부는 의외의 곳에서 벌어졌다.
 바로 청결과 서비스였다.
 떡볶이집의 진공포장은 오뎅집의 튀김 포장을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했고, 예쁜 여자 알바들의 미소는 단골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화끈 오뎅은 술장사를 병행해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시간문제였다.
 이후, 비슷한 업종들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가게를 내놨다.
 시장 떡볶이, 학교 앞 분식, 동네 반점, 옆집 국수, 형님네 버거, 최고빵 제과까지 모두가 폭격을 당했던 것이다.
 심지어 여러 번 방송출연까지 했던 삼십 년 전통의 우동집까지 조만간 닫는단다.
 겉으로는 장사가 힘들어서 접는 거라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사를 계속할 자신이 없었던 거다.
 사실 강형우도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지성분식은 일단 동네 맛집으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손님들도 꾸준했으며 단골들도 적지 않았기에 매출이 약간 주춤할 뿐일 거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문제는 대형 상가의 사기적인 공격이었다.
 짜장면 두 그릇에 탕수육 작은 걸 묶어서 단돈 만 원을 받았다.
 프라이드치킨 두 마리 포장 가격이 만 원이었고 떡볶이, 튀김, 순대 세트가 팔천 원에, 통닭다리 버거 세트가 오천 원이었다.
 그런 오픈 기념 할인 이벤트가 무려 석 달씩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할인권과 서비스 쿠폰들이 무시무시하게 뿌려졌고, 매일매일 엄청난 전단지가 동네를 휩쓸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
 동네 가게들 상당수가 사라져서 상권 독점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누구일까?
 강형우는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었고, 좌절하고 말았다.
 이 같은 방식을 알려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술김에 했던 말인데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하아, 진짜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연신 한숨만 쉬고 있던 가운데.
 딸랑.
 “어서 오세요.”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손님이 왔으니 자동적으로 인사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순간 강형우는 멈칫하고 말았다.
 “쯔, 다 죽어 가는구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피식 웃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두시 반.
 저 노인은 항상 이 시간에 지성분식을 찾았다. 왜냐하면 이때가 자신의 점심시간이었으니까.
 “어르신 오셨어요?”
 “왜? 내가 못 올 곳에 왔느냐?”
 “아, 아뇨.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강형우는 쓰게 웃으며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냈다.
 백발노인은 당연한 것처럼 주방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한잔해라.”
 “예? 아직 영업시간이······.”
 “사장 얼굴이 죽을상인데 손님이 오겠느냐? 가게 입구부터 기운이 안 좋은데.”
 백발노인은 가방을 열고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대충 봐도 소주병 크기였다.
 그 안에 무슨 뿌리가 서너 개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딱 봐도 범상치가 않았다.
 백발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산도라지다.”
 “도라지요?”
 “너처럼 또라이 같은 놈이지. 얼마나 악착같이 바위에 달라붙어 있는지, 잔뿌리까지 손상 없이 캔다고 고생 좀 했다.”
 자세히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어지간한 산삼도 저리 가라 할 만큼 길이가 엄청났다. 서너 개로 보였던 게 실제로는 한 뿌리였던 거다.
 무엇보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강형우는 잠시 계산을 했다.
 원래 일하는 시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비워도 멀쩡했지만 지난 일 년간 장사하면서 가능한 술은 피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점심 장사 타임은 끝났다.
 조금 있으면 오후 알바 지혜도 올 테고, 아침처럼 저녁까지 손님 하나 없이 공칠 확률이 컸다.
 그러니 한두 잔 정도는 괜찮으리라.
 무엇보다··· 조금 전 장사를 접기로 결심했기에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백발노인이 말했다.
 “강 사장, 알지?”
 “아! 예.”
 강형우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백발노인이 좋아하는 건, 우리 가게의 간판 메뉴인 지성라면과 지성김밥이었다.
 
 일단 조리용 육수부터 올린다.
 둘이서 먹을 물 양을 맞추고 곧 바로 사리면 두 개를 깠다.
 통을 열어 대용량 스프를 한 수저 크게 넣고, 특제 양념도 티스푼으로 두 개를 넣었다.
 그 뒤 다진 야채 한 줌을 넣은 다음 입구로 가 김밥을 준비했다.
 우선 김 위에 간이 된 밥을 펴고 깻잎을 깔고 우엉을 잔뜩 넣었다.
 그 위에 양파 마요네즈 소스를 뿌린 후 기름 뺀 참치를 올렸다. 두툼한 계란지단, 시금치, 맛살까지 더한 뒤 손으로 스윽스윽 단숨에 두 줄을 말았다.
 탕, 탕, 탕.
 리듬 타는 듯한 칼질에 김밥이 깔끔하게 잘렸고, 이내 예쁘게 접시에 올라갔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바글바글 끓는 물에 사리면을 넣고, 절구에 생마늘을 빻았다.
 두어 번 면을 들었다 놓는 사이 이 분 삼십 초가 지났다.
 빻은 마늘을 넣고, 가볍게 저은 다음 적당히 익은 면부터 그릇에 덜었다.
 그 뒤 계란물을 풀고 삼십초를 기다린 뒤 불을 껐다.
 그릇 두 개에 국물과 야채를 나눠 담은 뒤 특제 향미유를 살짝 뿌리면 끝이었다.
 습관처럼 타이머를 쳐다보는데, 팔 분이 지나 있었다.
 그럼에도 아쉬웠다. 최근 손님이 밀리지 않아서인지 손이 많이 느려진 모양이었다.
 “쩝,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지.”
 김밥 두 줄에 라면 두 그릇이니 뭐 그럭저럭이었다.
 라면과 김밥을 들고 테이블로 가니, 이미 백발노인은 세팅을 마친 상태였다. 수저를 놓고 노란 단무지와 김치를 먹을 만큼 덜어 놓은 뒤, 스텐 물컵을 소주잔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퐁!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향이 퍼졌다.
 “향이··· 좋네요?”
 “산삼보다 귀한 거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에이, 도라지가 좋아 봤자 도라지죠. 산삼에 비할 바가 됩니까?”
 피식 웃자 백발노인의 어깨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웃음을 참는 게 분명했다.
 “이런 또라지 같은 새··· 아니, 요즘 산도라지가 얼마나 귀한데. 험험, 이거 부르는 게 값이야. 돈 천만 원도 우습다고.”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라지가 천만 원이라니.
 “뭐, 한 백년 묵은 놈인가 보죠?”
 “꼴에 눈썰미는 있구나!”
 백발노인이 인정하니 오히려 머쓱해졌다.
 “알겠습니다. 일단 배부터 채우시죠.”
 라면이 앞에 놓이자 백발노인은 입맛을 다셨다.
 젓가락으로 가볍게 휘휘 젖더니 일단 면발을 한 움큼 들었다.
 후후 불어서 식힌 뒤, 다시 담그고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이내 입을 그릇으로 가져갔다.
 후루루루룹, 후루룹.
 순식간에 면발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런 뒤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켜는데, 꿀꺽꿀꺽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릴 정도였다.
 쓰읍, 진짜 맛있게 먹네.
 강형우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러면서 백발 노인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
 
 “지성 세트 나왔습니다.”
 오후 알바 지혜가 지성라면과 지성김밥을 내려놓았다.
 라면 3,000원, 참치김밥 2,000원.
 이걸 묶어서 4,500원에 팔았고, 덕분에 지성분식에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가 됐다.
 백발노인은 젓가락으로 잠시 음식을 살펴보더니 이내 식사에 들어갔다.
 대략 십 분이 안 걸렸을 거다.
 다 먹고 일어난 백발노인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라면 아주 맛있구먼. 미슐랭 별 두 개도 아깝지 않을 정도야.”
 강형우는 순간 멍한 표정으로 백발노인을 쳐다봤다.
 한때 인터넷에 돌던 벌칙인가, 뭔가가 떠올라서였다.
 “예. 감사합니다.”
 “그럼 잘 먹었네.”
 황당하게도 백발노인은 계산도 없이 그냥 가려고 했다.
 “저 어르신. 사천오백 원입니다.”
 “그래, 잘 먹었다니까?”
 “예?”
 대체 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백발노인은 당당했다.
 오히려 태연히 손가락을 들어 벽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저거야.”
 “예?”
 “저거라고.”
 “서, 설마요?”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는데, 백발노인이 말했다.
 “하긴,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동안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맞으세요?”
 “허허, 젊은 양반이 속고만 살았나. 하여간 잘 먹고 가네.”
 그렇게 백발노인이 사라졌고, 난 한참 동안 헛웃음만 흘려야 했다.
 노인이 가리킨 벽에는 장난삼아 적어 놓은 문구가 있었다.
 
 <100세 이상 음식값 무료.>
 
 정말 백 세가 넘으신 게 맞나?
 아니면 나, 사기당한 거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손님들이 몰려들면서 다시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저녁 마감하고 나서야 다시 그 일이 떠올랐다.
 피식.
 이상하게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긴, 장사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도 있는 거지.
 가볍게 생각했는데 다음 날, 그 백발노인이 또 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
 
 몇 년 전부터 금연에 관한 규정이 강화되었다.
 술집이든 식당이든 내부 흡연은 금지였다.
 그때 몇몇 가게에서 장난삼아 적어 놓은 문구가 이거였다.
 100세 이상 흡연 가능!
 난 그걸 패러디 하듯이 장난삼아 써 놓았다.
 
 <100세 이상 음식값 무료>
 
 솔직히 그때만 해도 백 세가 넘은 어르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백발노인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머리는 백발이지만, 눈빛은 깨끗했다.
 등산로 정상까지도 거뜬해 보이는 정정한 체력에 의외로 검버섯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였다.
 솔직히 많이 봐줘야 칠십 정도?
 그것도 반올림해서다.
 그런 백발노인은 자신보다 열댓 살은 많아 보이는··· 정말 꼬부랑 할아버지를 데려왔다.
 설마? 백 세 넘으신 다른 어르신은 아니겠지?
 다행히 아니었다. 그 할아버지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오셨습니까? 어르신.”
 강형우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큰삼촌이 어제 이야기하더라고.”
 “예?”
 “라면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던데··· 요즘 보기 드물게 어른 공경하는 청년이 있다고 극찬을 하시더군.”
 강형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이름은 박첨기, 나이는 일흔여덟.
 그 외에도 내가 아는 잡다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가 이 분식집의 건물주라는 것!
 어쨌든 박첨기 어르신이 어제의 백발노인을 큰삼촌이라 부르고 있었다.
 강형우는 어이가 없어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험험, 이 어르신은 말일세. 우리 아버님이 형님으로 모셨던 분으로······.”
 건물주 박첨기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랬다.
 6. 25 전쟁 때 아버지를 구했단다. 이후 의형제를 맺었고,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뵈었기에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부하길 신선 같으신 분이니 잘 챙겨달랜다.
 당연하게도, 공짜로 먹고 가는 밥값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하여간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더니.
 그래도 부담이 없었던 것은 그때 한창 장사가 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한 끼 정도는 마음 편히 드릴 수 있었고, 실제로 그냥 챙겨 드리는 분들도 없지 않았으니까.
 
 그날 이후, 네 번째 방문했을 때, 백발노인이 말했다.
 “거, 젊은 사장이 사람을 참 못 믿네.”
 “예? 뭐가요?”
 “눈빛 보면 딱이지. 아직도 내 나이가 안 믿기나?”
 솔직히 의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메고 다니는 낡은 등산 가방.
 우습게 생각하고 한 손으로 들었는데 손목 빠지는 줄 알았다.
 시멘트 한 포대 정도의 무게, 대략 사십 킬로는 넘는 것 같았다. 이런 걸 메고 서너 시간씩 등산할 정도였으니 체력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었다.
 쉽게 비교하면, 군대에서 완전군장하고 반나절 행군하는 정도라 보면 된다.
 환갑 정도의 외모에 튼튼한 체력.
 게다가 술도 우라지게 잘 마셨다.
 한번은 저녁 늦게 가게를 찾아와서 산에서 캔 약초라며 달여 먹으면 체력에 좋다고 웬 풀뿌리를 건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다 하니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했다가 졸지에 안주를 만들어야 했다.
 나도 술은 잘 마시지만, 백발노인은 괴물이었다.
 혼자서 소주 여섯 병 정도 드셨을 거다.
 그러고도 무거운 등산 가방을 매고 멀쩡히 잘 걸어가셨고, 가는 길에 배고프다며 해장국에 해장술까지 두세 병 마셨다는 것이다.
 이러니 백 세 넘었다는 말이 믿기겠는가?
 솔직히 십여 년 전, 이문세와 설운도가 동갑 친구라는 말에 충격 받은 적이 있었다.
 이건 그 경우보다 더 했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이거 가져왔지. 확인해 보게.”
 백발노인이 내민 건 신분증이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손을 흔들자 백발노인이 손목을 잡았다.
 맙소사. 이게 무슨······.
 키 187㎝에 한때는 체중이 100㎏에 가까운 나였다.
 장사하면서 많이 빠졌다지만 그래도 90㎏는 넘는 근육질 체형이었다.
 또 학생 때는 싸움도 잘해 운동부 친구들도 꼼짝을 못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손목을 잡힌 채 마구 휘둘리고 있었다.
 턱.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니고, 확인해 보라니까.”
 강형우는 당황해하면서도 일단 신분증을 쳐다봤다.
 
 백수한무 (白壽限無).
 111101-1XXXXXX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6X 번지
 
 앵? 1911년생?
 이거 실화냐?
 가만, 올해가 2011년이니 우리나이로는 백하고도 하나다.
 순간 멍해 있는데,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절이 범어사다. 대충 보니 주소가 바로 그 근처였다.
 어라? 거긴 스님들 말고는 사람이 안 사는데?
 게다가 성함이······.
 “백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가벼운 읊조림이 어느새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어깨로 리듬까지 타면서.
 “커험!”
 백발노인의 눈매가 장난이 아니었다. 슈퍼맨 눈에서 레이저 나갈 때의 그 느낌이랄까.
 “아, 죄송합니다. 어르신 성함 가지고······.”
 “됐고. 내 호는 천경일세. 다들 그렇게 부르지. 자네도 천경 어르신이라 부르면 되네.”
 “예? 아~ 예.”
 왜 다들 천경이라는 호로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이름을 말한다면 누구라도 아까 전 그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대답하자마자 천경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순간 손을 슥~ 탁! 하면서 신분증을 가져간 뒤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한 그릇 부탁하네.”
 
 이후 천경 노인은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가게에 들렸다.
 그것도 일부러 내가 점심 먹는 시간에 찾아와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갔다.
 그러면서 가끔씩 이상한 짓을 하는데······.
 어느 날은 관상을 보겠다며 내 얼굴을 붙잡았다.
 “혀를 내밀고 헉헉대니 개고생할 상이야.”
 “한여름에 불 앞에서 요리해 보세요. 숨 빨리 못 쉬면 사람 죽어나가요.”
 “아니, 개팔자라니까. 상팔자가 되는 건 나중이지만.”
 도통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그리고 열흘이나 지났나?
 갑자기 손금을 봐 준다고 하더니 내 손목 관절을 뽑아 버렸다.
 “힘이 과했나 보이. 괜찮아, 다시 끼우면 되니까.”
 “예? 뭐라고··· 끄헉!”
 “그나저나 손금 선이 참 굵구먼. 얌생이처럼 가늘고 길게 살 팔자가 아니라, 내 똥 굵다고 굵직굵직하게 싸지르며 살 팔자네그려.”
 백 세 넘은 노인이 래퍼도 아닌데, 찰진 비트에 덩어리진 단어가 귀에 쏙쏙 박혔다.
 결국 그날 밤은 귀가 가려워 몇 번이나 자다 깨야 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는 웃으면서 넘길 일이었다.
 “자네 사주에 귀인이 셋이나 있는데, 첫 번째는 근시일 내로 찾아올 것 같고, 아니면 벌써 만났던가··· 정말 중요한 건 두 번째 같은데······.”
 “두 번째요?”
 “그래. 전생에서 알던 사이인데 자네 엄청 뜯어간 놈이야. 팬티 속에 엽전까지 탈탈 털어갔어.”
 “헐.”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아마 마구마구 퍼다 줄 걸세. 그게 만고의 이치니까.”
 뭐, 좋은 소리려니 했다.
 하지만 뒷말은 그냥 듣기 힘들었다.
 “그리고 여복이 없어.”
 “그건 또 무슨······.”
 “불혹에 이르기까지 여자가 없구먼. 게다가 그때 놓치면 평생 혼자 살 가능성이 커.”
 살짝 짜증이 났다.
 불혹이면 마흔인데, 그때까지 솔로라니.
 아니, 애초에 틀렸다.
 “저··· 여자 있는데요? 저기 카운터에 있는 애가 제 여친이거든요.”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거 뭐시냐. 진정한 인연이란 건 말이야··· 커험, 자네 왜 김밥을 도로 들고 가는 겐가?”
 천경 노인의 집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생년월일을 물어보더니 손가락을 꼽는 게 아닌가?
 “자축인묘, 진사오미··· 갑을병정에··· 묘시생이라······.”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요? 사주에 급살 맞아 죽는답니까?”
 “내 살다 밥상 걷어차는 놈은 봤어도, 용상 걷어차는 사주는 처음이네.”
 “예?”
 “그런 팔자려니 해. 어쨌든 나이 먹고 돈 걱정은 안 하는구먼. 젊을 때 개고생한 만큼······.”
 마지막 중얼거림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그 일도 며칠 만에 잊어버렸다. 장사가 너무 잘되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
 
 “역시 자네가 끓여준 라면이 최고야.”
 강형우는 천경 노인의 말에 회상을 끝냈다.
 천경 노인은 스텐 컵을 잡았다. 그리곤 강형우의 잔에 부딪힌 뒤,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크하! 좋다.”
 강형우 역시 눈치를 보면서 스텐 컵의 소주를 홀짝거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쭈우욱~
 그냥 입술만 댔는데 술은 순식간에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직후 엄청난 향이 터졌고 코를 뻥 뚫어버렸다.
 후아하~
 신음이 끝나기도 전, 뱃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뭔가가 회오리처럼 솟아오르더니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캬하~
 감탄사는 자동이었다.
 마치 묵은 울화들을 내뱉는 기분이랄까?
 “시원하냐?”
 “잘 모르겠지만··· 좋긴 좋네요.”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었다.
 고작 한 잔인데, 취기가 오르기 직전의 알딸딸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속도 편안했고, 라면이 남긴 약간의 느끼함까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천경 노인은 술병을 들었다.
 “내 동안의 비결이 무엇이냐 하면, 이 약술에 있다 이거지. 그러니까 한 잔 더 마셔. 힘이 펄펄 날 테니까······.”
 “아직 영업 안 끝났는데······.”
 말과는 다르게 컵을 잡은 손이 자동으로 내밀어졌다.
 다시 잔이 채워지고, 천경 노인이 권했다.
 “이거 두 잔으로 안 취해. 아니, 애초에 취하는 술도 아니라네.”
 안 취하는 술이 있을 리가?
 생각과는 다르게 또다시 잔이 입술로 향했다. 마찬가지로 술이 술술 넘어갔다.
 세상에 이런 맛이 다 있다니.
 “후아하~ 좋다.”
 “좋지?”
 천경 노인의 눈빛은 재롱잔치 끝나고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들 같았다.
 그만큼 순진했고,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때?”
 “좋긴 좋은데, 이만 마시려고요. 할 일도 많고······.”
 아쉽기는 했지만, 두 컵이면 적지 않은 양이었다. 주방에 서야 하는 이상 자제해야 하는 거다.
 천경 노인은 고개를 저은 뒤, 김밥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또다시 술을 따랐다.
 “크흐, 좋다. 내가 이 맛에 술을 못 끊어요.”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먹은 천경 노인은 단무지로 입가심까지 했다.
 “크험. 늙은 영감 헛소리라 생각하지 말고 들어. 원래 사람이란 말이야.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다 답답하면 술 마시고 술리대로 사는 거지. 그게 세상의 이치야.”
 말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아니, 많이, 이상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갑자기 천경 노인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나온 건, 또 술병이었다.
 하지만 술김에 보기에도 좀 전 백년 묵은 도라지술보다 더 특이해 보였다. 병 안에 든 건, 연한 분홍빛을 띤 꽃이었으니까.
 “이게 뭐죠?”
 “뭐긴? 술이지.”
 그냥 꽃으로 담근 술이라 하기에는 뭔가 달랐다.
 마치 시선이 빨려든다고 할까?
 멍한 표정으로 술병을 쳐다보는데, 천경 노인이 헛기침을 했다.
 “커험. 이건 내 선물일세. 그동안 얻어먹은 것도 있고, 자네가 기특해서인 것도 있고.”
 “굳이 이러실 건 없는······.”
 “떽. 어른이 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되는 거야.”
 강형우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천경 노인이 술병을 턱하니 식탁에 올렸다.
 “그동안 먹은 밥값이라고 생각하게.”
 
 ***
 
 “밥··· 값이요?”
 같이 식사하던 게 익숙해서인지 오히려 어색했다.
 무엇보다, 마치 먼 길을 떠날 사람처럼 느껴졌다.
 “혹시······.”
 “쯔. 상상이 과하면, 망상이 되는 법이지. 나 아직 죽을 날 안 받았어!”
 “그, 그야 당연히 그러시겠죠. 못해도 이삼십 년은 더 사실 것 같으신데요.”
 말해 놓고도 아차 싶었다.
 기억하기로 기네스북 최장수 기록이 110세 정도였나?
 “사람이 먼저 가는데 순서 없어. 내일 강 사장이 먼저 승천할지도 모르는 게야.”
 “에이, 설마요?”
 “어! 자네 뒤통수에 저승사자 있어!”
 강형우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보이는 건 오픈된 주방뿐. 사람 그림자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쯧쯔, 젊은 놈이 심약해서는······.”
 이건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대화의 타이밍이 절묘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서 진단 한번 받아 봐. 눈 밑 시커멓고 충혈된 거 보면 조짐이 있어.”
 “예? 저, 괜찮아요. 요 며칠 술을 좀 마셔서 그렇지, 사지 멀쩡하고 팔팔합니다. 보세요.”
 강형우는 어깨를 풀면서 소매를 걷었다.
 그런 뒤, 짧은 기합과 함께 팔을 접어 이두박근을 불룩 튀어나오게 했다.
 애들 주먹만 한 크기의 알통!
 하지만 천경 노인은 피식 웃었다.
 “나한테 팔씨름도 못이기는 주제에.”
 “큭.”
 반박 불가였다.
 무도를 수련했다는데, 그래도 나이 차이가 있지 하면서 붙었는데··· 참패했다.
 무슨 뿌리 깊은 나무도 아니고 꼼짝도 하지 않았던 거다.
 결국 난 제풀에 지쳐 항복하고 말았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병원을 다녀야 큰 병을 막을 수 있는 거야. 뭐, 듣든 말든 자네 자유니··· 크험, 험. 이제 일어나겠네.”
 천경 노인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가방을 짊어졌다.
 “벌써 가시려고요?”
 “선약이 있어. 그러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그럼··· 다음에는 언제······.”
 강형우의 머뭇거림에 천경 노인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사람 탈 쓰고 태어났다고, 아쉬워는 하는구나.”
 “그야, 뭐······.”
 같이 먹은 밥 그릇 수가 몇 개인데 감정이 없겠는가? 솔직히 마음이 복잡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볼 수 있을 거야.”
 “아! 그러시군요.”
 강형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잠시 주저하던 천경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뭐, 어려운 것만 아니면 괜찮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물까지 받았는데······.”
 강형우가 술병을 들어보였다.
 천경 노인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김밥이나 몇 줄 싸 주면 안 되겠나?”
 
 ***
 
 “진짜 신기하네.”
 술병을 돌려보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천장 불빛에 따라 꽃의 색들이 조금 달라졌는데 신기하게도 위에서 보면 빛까지 나는 것 같았다.
 몽연주, 분명 그렇게 들었다.
 자기 전에 마시면 무척 행복하고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나?
 그 대가로 받아간 건, 특제 지성김밥 다섯 줄이었다.
 “참 어르신도.”
 공짜로 먹었다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니었다. 그동안 밥값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궁금해서 좀 알아보기는 했다.
 아는 약방 사장님한테 물어보니, 툭 하고 던져놓은 약초 꾸러미가 무려 십만 원이란다.
 혹시나 싶어 저번에 받은 큼지막한 버섯을 꺼냈더니 도리어 오십 만원에 팔라고 애원까지 하더라.
 아는 사람만 안다는 버섯이라면서, 남자한테 최고라나 뭐라나?
 그날 이후, 어르신이 주는 건 꼬박꼬박 챙겼다.
 약초는 정성껏 달여서 어머니하고 동생들 챙겨 줬고, 버섯은··· 당연히 내가 우리고 우려서 먹었다.
 막내들은 아직 필요할 나이가 아니니까.
 “일단 이건 안쪽에 보관해야겠다.”
 주방 안쪽에 작은 방에 들어가려는데, 하필 문소리가 들렸다.
 결국 주방 한쪽에 몽연주를 밀어 넣고 나가 보니 한 여자가 보였다.
 이미진, 내 여자 친구다.
 예쁘고 몸매 좋고, 그만큼 성깔이 있었다.
 그러면서 적극적이어서, 술 몇 번 마시다 보니 사귀게 되었다.
 이미진이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오빠. 이야기 좀 해.”
 
 처음 장사를 시작하고 두어 달 정도 됐을 때, 겨우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한동안 불참했던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들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몇몇은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학교가 다르고, 입대시기가 달랐어도 한동네에 오래 살았기에 다들 친한 사이였다.
 남자 다섯, 여자 둘.
 이들을 주축으로 매달 모임 때마다 한두 명씩 추가되고 빠지는 식이었다.
 그때 만난 게 미진이었다.
 연희라는 친구가 친한 동생이라고 데려왔는데 얼굴 몇 번 보니 기억이 났다. 중학교 후배였고, 사는 집도 지성분식 근처의 빌라였다.
 미진이는 적극적이었다.
 두 번째 바래다줬을 때 갑자기 키스를 하더니 사귀잖다.
 짐승 같은 내 체격에 반했다나 뭐라나.
 그렇게 시작한 연애는 내 생각과 너무 달랐다.
 미진이는 단순히 연락을 자주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매시간 카오 톡이 울리는데, 그때마다 빠르게 대답해줘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사랑이 식었냐며 투덜거렸고 삐친 이모티콘을 보내왔던 거다.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미진이는 학원 강사였으니까.
 물론 톡 알람에 바로바로 반응하는 내 모습에 친구들이 그랬다.
 혹시 미진이가 아니라 미저리 아니냐고. 너무 집착이 심한 것 같다고.
 그래도 난 좋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얼굴도 예뻤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덕인지 몸매도 상당했고, 나름 또래들보다 훨씬 잘 꾸미고 다녔다.
 속된 표현으로, 같이 다닐 맛이 났다.
 다른 남자들이 미진이를 보고 흠칫할 때마다 기가 산다고나 할까?
 나 역시 외형적으로는 꿇리지 않아 잘 어울린다는 소리도 제법 들었다.
 그랬는데··· 아니, 아까까진 그랬던 우리 사이였는데.
 
 맞다.
 나 오늘 차였다. 그것도 아주 대차게.
 요약하면 이거였다.
 
 “오빤 나한테 너무 소홀한 것 같아.”
 “요즘 장사가······.”
 “오빠 밥벌인 건 알아. 하지만, 난 스물다섯이라고. 다른 친구들처럼 남친이랑 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그동안 쌓인 불만이 다 터졌다.
 근사한 호텔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괜찮은 레스토랑 정도는 갈 수 있지 않느냐?
 백 일 여행에 고작 광안리가 뭐냐?
 걸어서도 갈 수 있는데.
 오빠 꾸미고 다니는 거 보면 자기 친구들하고 함께 보기 부끄럽다.
 생일 선물 정도는 조금 무리해서 해줄 수 있지 않느냐?
 마지막으로.
 “고작 분식집이 뭐라고! 거기만 매달리는 오빠 이해하기 어려워. 그리고, 난! 이런 연애 계속할 자신이 없어.”
 “미안.”
 “아니! 미안해하지 마. 연락도 하지 말고. 앞으로 아는 체도 안 해줬으면 좋겠어.”
 
 ***
 
 “아주 술이 술술 들어가는구나.”
 가게 망해가서인지, 낮술 때문인지, 천경 노인이 떠나가서인지, 미진이한테 차여서인지 모르겠다.
 한 병만 마시고 자려 했는데, 자취방 구석에는 빈 소주병만 여섯 개였다.
 뒤져 보니 다른 술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있는 건, 요리용 맛술뿐.
 “한 번, 먹어··· 볼까?”
 혹시나 싶어 맛술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맛을 음미하기 위해 혀를 움직였는데······.
 “우웁, 씨발.”
 후다닥 싱크대에 토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취하기 위해 마셨는데 오히려 술이 깨버린 기분이랄까.
 “하아~ 쉽지가 않네.”
 잠시 갈등이 됐다.
 편의점 가서 소주하고 안주를 사 올까? 아니면 골목 입구 슈퍼? 아니야, 거긴 벌써 마쳤어.
 그러면 결국 내려가야 하는데 못해도 15분은 걸릴 거고······.
 온갖 잡생각을 하며 고민하는데 갑자기 뭔가가 보였다.
 바로 몽연주였다.
 “이거··· 가게 놔두고 온 거 아니었나?”
 솔직히 모르겠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데, 그걸 기억할 리가 없지.
 강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몽연주를 들었다.
 연꽃으로 담근 술이라고 했었나?
 그저 술병을 보기만 했는데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후우, 잠시만······.”
 일단 심호흡을 했다.
 맛술을 마시는 바람에 술이 확 깨긴 했지만, 이미 마신 양은 적지 않았다.
 평소 주량은 소주 서너 병, 다섯 병이 넘어가면 취기가 올라오고 여섯 병째면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혼자 마시는 술이니 갑자기 훅 갈지도 몰랐다.
 그런 걱정을 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컵에 몽연주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안주로 먹을 박살 난 생라면이 보였고.
 “후우. 씨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어느덧 열한 시.
 홧김에 따르긴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에라~ 마시고 죽자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휴우~ 나도 잘해보고 싶었는데······.”
 돈 많이 벌고 싶었다.
 성공해서 어머니 호강도 시켜드리고, 동생들 시집 장가도 잘 보내고 싶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비싼 차도 몰고, 그러다 나이가 되면 미진이와 결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계획은 나름 구체적이었다.
 지성분식이 잘되면 제일 먼저 확장할 생각이었다. 직영점도 두어 개 내고, 관련 업종으로 술집도 차리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대형 가족 외식 식당도 해보고 싶었다.
 거기까지 안정이 되면, 사업도 가능할 거다.
 왜 친척들만 체인점 내주는 가게들이 있지 않은가?
 ‘다미’ 꼬지라든가 ‘묵향’이라는 막걸리 집이 대표적이었다. 조리법과 양념을 가족끼리만 공유하는 것이다.
 덕분에 몇 개 없는 지점이지만 전부 장사가 잘 됐다.
 그걸 감안해서 꼽아둔 메뉴도 몇 개 있었다.
 치킨집, 혹은 족발집, 아니면 피자집이었다.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틈새시장은 있었고 나름 조사도 어느 정도는 해놨다.
 거기까지만 된다면 나중에 자식들 밥벌이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그 즈음 되면 건물도 한두 채 정도 살 수 있을 테고, 가게 물려주고 여유 있는 노후를 보내는 것도 가능할 거다.
 그게 강형우의 인생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곧 문 닫을 분식집 사장에 불과했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하는 게 올라왔다.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술이 필요했다.
 강형우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컵을 잡았다.
 홀짝 한다고 마셨는데 단숨에 술이 사라졌다.
 입가심으로 스프 범벅이 된 생라면 한 조각을 우적우적 씹었다. 아주 맵고 짜거워야 하는데, 입이 마비가 됐는지 맛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손은 또다시 술병을 잡았고, 컵을 채우고 있었다.
 “후우, 하아아~ 좋긴 좋구나.”
 낮에 먹었던 도라지술은 화악 했지만, 이 몽연주는 잔잔했다. 자극 없이 넘어갔는데 숨 쉴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열두 시였다.
 몽연주는 배 속으로 들어갔는지 온데간데없었고, 취침 시간을 알리는 알람만이 들려왔다.
 “자야지. 내일 일하려면 자야지.”
 강형우는 최면을 걸 듯 스스로에게 말하고, 침대로 몸을 올렸다.
 
 ***
 
 ♪~ ♪♪
 박차고 태어나서, 겁날 게 뭐가 있냐? 깨지고 박살 나도, 제대로 한판 붙어봐.
 딱 한 번 인생인데 기죽고 살지 마라.
 가슴을 활짝 펴고, 멋지게 사~ 는 거야~
 
 음악으로 설정해 둔 알람에 강형우가 꿈틀거렸다.
 그러길 잠시.
 “우와아악! 아, 씨발 꿈!”
 강형우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가슴을 쓸어내린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내 방이구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신 뒤, 폰을 확인했다.
 4시 53분, 슬슬 몸을 움직여야 할 때다.
 하지만 강형우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았다.
 
 꿈을 꿨다.
 돌에 맞아 죽고, 칼에 맞아 죽었다. 화살도 맞아봤고, 몽둥이찜질도 당했다.
 한 번은 시위대의 앞에서 군인들의 총에 죽었다.
 그다음은 이름 모를 참호 안에서 사격하다 뭔가가 터지면서 기억이 끊겼다.
 노랑머리 외국인들과 혁명을 외쳤고, 흑인이 되어 자유를 소리쳤다. 인디언이 되어 긍지를 가슴이 담았고, 여자가 되어 우리도 사람이라고 내질렀다.
 또,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총질을 했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죽창을 들었다.
 “대체 몇 번의 인생을 꿈꾼 거지?”
 고작 다섯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수십 명의 인생을 살았다.
 물론 전부를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그 삶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인상이 남은 일부만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무슨 개꿈이냐.”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기는 했다.
 충격적인 드라마를 봤다거나, 재밌는 소설을 보고 잠들었을 때, 혹은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보고 누웠을 때가 그랬다.
 마치 자신이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와 관련된 꿈을 꾸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리얼해.”
 맞다. 그게 문제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자신은 실제처럼 살아 있었다. 마치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의 시간을 겪은 것처럼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니지. 아니야······.”
 강형우는 머리를 흔들면서 애써 개꿈을 지우려 했다.
 이럴 땐 합리적인 생각이 필요했다.
 그래, 참호에서 죽은 건 ‘태극기 휘날리며’ 때문이야. 군인들 총에 맞은 건 ‘화려한 휴가’고, 인디언이 된 건 ‘라스트 모히칸’이야.
 노랑머리 외국인은 ‘잔다르크’겠지?
 흑인은 ‘아미스타드’일 거고, 여자는··· 무슨 문학 소설일 테지.
 그렇게 애써 합리화를 했지만, 어느 순간 턱 막혀 버렸다.
 팔무존, 염황수라 장백호!
 이건 자신이 겪었던 수십 가지 인생 중에서 가장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장백호는 마치 무협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손에서 불을 피워 냈고, 수십 명을 태워 죽였으며 수백 명을 때려 죽였던 것이다.
 이거와 비교할 만한 건, 무협 소설의 먼치킨 주인공이었다.
 나쁜 놈 다 패 죽이는 그런······.
 문제는 이 장백호란 인간의 인생이 가장 강렬히 떠오른다는 거다.
 
 “생각 좀 정리하자!”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주변을 살폈다.
 가까스로 참고 있던 담배가 무척 땡겼다.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갑을 쪼개 피는 걸로 욕구를 달랬지만, 지금은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머리가 혼란스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강형우는 방에 불을 컨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쪽문을 통해 옥상으로 나갔다.
 평상 아래, 나무다리 틈 사이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었다.
 미진이가 볼까 봐 감춰 놓은 건데 다행히 몇 개비가 만져졌다.
 치익. 칙, 치칙.
 “가스가 다 됐나?”
 재수가 없으려니 라이터까지 말썽이었다.
 결국 주방 가스레인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레버를 돌렸는데······.
 펑!
 “앗뜨!”
 강형우는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털었다.
 냄새를 보니 머리카락이 그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닥에 떨어진 담배가 무사하다는 거.
 “하아, 이런 걸로 안심하다니··· 나도 참!”
 강형우는 떨어진 담배를 주운 뒤, 가스레인지를 쳐다봤다.
 이전 자취방 주인이 그 전 주인에게 물려받았다는 놈이었다.
 물려준 그 전 주인도 중고로 샀다는 녀석인데, 한 번씩 앙탈하다가 이번에 한번 심통을 부린 거다.
 돈 많이 생기면 저놈부터 갈아 치우던가 해야지.
 아니··· 이사가 먼저인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근사한 놈으로 바꿔주고 갈 거다.
 소박한 상상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킨 강형우는 다시 옥상으로 나갔다.
 연산3동 공영주차장 옆 마을버스 정거장.
 거기서 더 올라간 위치에 자취방이 있었다. 그만큼 지대가 높아 아랫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아! 경치만 봐도 취하겠다.”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지하철 배산역을 중심으로 여러 상가들이 오밀조밀 밀집되어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불빛들은 하늘에 뿌려진 별빛처럼 아름다웠다.
 문득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올랐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다.
 마치 이 광경이 그걸 말하는 것 같았다.
 산동네 옥상에서 보면 도심의 네온사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치열하게 발버둥 쳐야했다.
 그랬기에 강형우도 엄청난 노력을 했다.
 농담 삼아 자서전을 쓰면 백과사전 두께는 되지 않을까 했을 정도니까.
 실제로 지성분식 오픈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몇 년 동안 고생하면서 얻은 레시피와 각종 자료들을 참고로 했다. 그걸로 무수히 많은 테스트를 했고 몇 달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메뉴 하나하나를 완성해 나간 것이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았다.
 묵은지나 숙성 고추장 같은 건 시간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후우.”
 몇 모금 빨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담배가 다 타들어 갔다.
 이럴 때 나오는 건 푸념이었다.
 “쳇, 남들은 이럴 때 무슨 기연 같은 게 생긴다는데······ 난 뭐냐?”
 
 가끔 소설들 보면 그런 것들이 나온다.
 옥상에서 한탄하고 있는데 벼락을 맞는다든가, 아니면 유성 같은 게 떨어진다거나, 무슨 신인지 신발인지, 씨발 놈인지가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준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이후 특별한 능력이 생기거나, 무슨 시스템 창 같은 것들이 나타나 주인공의 성공을 돕기도 했다.
 특히 미래에서 온 인공지능은 만능이었다. 못하는 게 없었고, 뭘 해도 술술 잘 풀렸다. 심지어 현대에서, 슈퍼맨급의 초능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나 요즘 인기 있는 글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거였다.
 모든 걸 알기에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였다. 마치 맵핵을 켜고 게임하는 느낌이랄까?
 강형우는 그런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 이 주인공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번은 옆에 있던 태구라고 작가 지망생 친구 놈이 비웃음을 날렸다.
 “병신, 인마! 다시 돌아갔다 와도 의미 없어. 결국 너라는 놈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현실은 똑같이 흐를 거고, 지금 이 시간이 되면 똑같이 이 자리에서 소설이나 보고 있을 거라고.”
 여기까지야 장난기 가득한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태구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쩌면 우린 몇 번이나 회귀했을 수도 있어. 단지 그 기억이 떠오르기 전에 출근하고, 밥 먹고, 정신없이 일해서 잊어먹은 거일지도 있지.”
 역시나 작가 지망생다운 환상적인 개소리였다.
 현실에 치여서, 먹고 살기 바빠서 까먹는다니.
 태구 녀석은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고 말했다.
 “이 형님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라. 소설은 그냥 재미로 보는 거야.”
 “누가 뭐래?”
 “다들 처음에는 너처럼 아니라고 하지. 그러다 중증이 되면 이게 현실에서도, 아니,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겼으면 하게 되거든. 그러니까 그런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거고.”
 이놈 눈빛이 정신질환 초기 환자를 보는 의사처럼 바뀌었다.
 여기서 실수하면 안 된다.
 태구 녀석의 입은 소문의 근원이었다.
 수시로 친구 집 돌아다니면서 밥을 얻어먹는데 민심을 살피기 위해서라나?
 그러면서 어디 집에 수저가 몇 개고, 누구하고 누가 연애를 하고, 누구 집이 차를 바꿨는지까지 샅샅이 꿰고 있었다.
 심지어 옆집 아저씨네 개 복순이가 덜컥 새끼들을 낳았는데, 단번에 애들 아빠까지 맞춰버린 적이 있었다.
 자칭 암행어사.
 타칭 홍반장, 혹은 홍셜록이 이놈이었다. 희한하게도 동네일마다 안 끼는 데가 없는 거다.
 홍태구는 진지하게 말했다.
 “회귀니 뭐니 하는 상상은 딸딸이 칠 때 생각하는 거 하고 비슷해. 거기선 이상형이란 이상형은 다 불러올 수 있잖아. 문제는 그 이후다. 현자타임이 오면 더 서러워. 다시 모쏠의 서글픔이 화악~ 이렇게 가슴을 치는데······.”
 새끼, 비유 한 번 기가 막히다.
 이래서 작가 지망생인가.
 “어쨌든 여친이 없다는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거지. 남는 건 사라진 내 후손들과 구겨진 휴지뿐인 거고. 그러니까··· 그런 상상은 딱 책 볼 때만 해!”
 태구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었다.
 제목은 ‘십만 년 살다 회귀한 SSS급 남자가 유명 작가가 되어 재벌 되다!’였다.
 하여간 말과 행동이 다른 녀석 같으니라고.
 
 솔직히 태구 녀석의 말대로 그런 소설들은 재밌다. 게다가 잠시 그런 상상들을 하면 즐겁기도 했다.
 실제로 손님 뜸한 시간에 잠시 쉬면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간간이 보는 소설만큼 꿀잼은 드문 것이다.
 그랬기에, 새벽의 꿈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도 기연이라면 기연인건가?”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 약했다.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힘이 세진다거나 체격이 커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덩치는 여기서 더 커지면 곤란하다.
 안 그래도 주방이 좁아서 불편한데.
 “문제는··· 하필이면 그 기억이라는 건데······.”
 다른 사람들의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삶은 짧았고, 특히 마지막은 화끈하게 불태우고 불나방처럼 끝이 났다.
 선명하지 않은 건 그래서 같았다.
 
 하지만 장백호는 달랐다.
 화전민으로 살다가 우연히 사부를 만났고, 무공의 기초라는 내공을 배웠다. 그러다 삼세방이라는 사파가 쳐들어와 마을을 약탈했고 그 와중에 가족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장백호는 먹고 살기 위해 큰 도시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길 몇 년이 지났다.
 자신이 수련하는 내공이 불과 관련 있다는 걸 깨닫고 주방 일을 시작했으며, 그 가게에서 나중에 사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하게 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건지.”
 강형우는 그 처절한 복수극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마을을 약탈했던 삼세방이었다.
 삼세방은 지방 도시 몇 곳을 장악한 세 개의 문파가 합친 거였다. 대부분 지방 호족들로 백여 년의 역사를 자랑했지만 무너지는 데는 불과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장백호의 무공이 세 명의 방주와 장로들, 호위 무인들까지 단숨에 불태워버렸으니까.
 이후, 삼세방이 약탈한 재물들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면서 장백호는 본격적으로 무인의 길을 걷게 된다.
 팔무존.
 당대의 최고수 여덟을 그렇게 물렀다.
 염황수라 장백호는 그 중의 한명이었으며 그의 신분은 녹림의 총채주였다.
 “대단하긴 대단했지. 무공도 무공이지만, 말발이 정말······.”
 흔히들 십만 마교, 백만 개방이라 그랬다.
 하지만 장백호는 녹림의 숫자가 천만이 넘는다고 했다. 평범한 민초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도끼를 들면, 전부 녹림도가 된다는 것이다.
 다분히 뻥이 심하긴 하지만, 그때는 그런 시대였다.
 영락제 사후, 한왕 주고후가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역모를 준비하던 바로 그때였다.
 역병이 돌면 수십만이 죽고, 흉년이 들면 수백만이 죽었다.
 탐관오리들이 강호의 무뢰배들과 결탁해 축재를 일삼았으며 살인과 약탈이 횡횡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전란의 시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이들이 산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니 화전을 일구고 목피로 명을 이어가던 민초들의 숫자는 천만으로도 부족하리라.
 “이렇게 기억한다는 건······ 확실히 기연이긴 기연인 모양인데.”
 중요한 건, 어디 써먹을 데가 없다는 거다.
 육백 년도 훨씬 전의 인물이니, 그에 대해 알아봐야 뭘 하겠는가?
 “아니지. 아니야.”
 강형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장백호가 처음 사부를 만났을 때, 그때의 기억이 무척이나 선명했다.
 바로 내공이었다.
 
 ***
 
 “쓰, 이거 되는 거 맞나?”
 기초적인 토납법이라고 했나?
 기초는 개뿔.
 지금껏 읽은 무협소설이 수백 권이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 존재하는 호흡은 책에 나오는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호~ 하면서 숨을 내쉰다. 그것도 폐를 쥐어짤 정도로 무식하게 공기를 내뱉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최대한 참는다. 숨이 막히고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핑 돌 때까지 무작정 버티는 거다.
 대략 이십에서 삼십 초 정도였다.
 그다음 목구멍을 조금씩 열어 가며 흐읍~ 하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무려 일 분에 걸쳐서 천천히.
 이것도 온몸에 나른함이 퍼질 때까지 해야 한다.
 가슴이 부풀고 배가 빵빵하게 나오고 손발이 저릿저릿할 때까지.
 그다음 억지로 침을 삼키면 평소보다 몸속 움직임을 잘 느낄 수 있단다.
 그때 아랫배가 찌릿하다는데··· 씨발, 어지러워 죽겠다.
 강형우는 결국 오 분도 하지 못했다. 하프 마라톤을 한 시간 삼십 분대로 끊는 강철체력인데도 말이다.
 결국 실패의 원인을 다른데 돌렸다.
 “후우, 담배를 끊어야 하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27년을 살면서 단전호흡 한번 해본 적 없었다. 게다가 난이도 역시 훨씬 높으니 한 번에 된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그 인간은 잘만 하던데.”
 장백호는 고작 여섯 살의 나이에 단번에 성공했다.
 타고난 무재라나 뭐라나.
 “역시 이것도 재능이 필요한 건가?”
 강형우는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서둘 일은 아니었다.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고, 그 방식과 내공의 흐름까지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직접 장백호의 인생을 살아 봤기에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한 번만 더 해 보자!”
 남자가 가오가 있지!
 한 번 했다고 포기하면 뭐가 되냐?
 무엇보다, 조금만 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는가?
 그냥 삽질을 할 때는 모르지만, 일단 한 번 파서 뭔가 푹 하고 흔적이 남으면 괜히 뿌듯한 거.
 문제는 그 전까지는 삽질의 연속이라는 거지만.
 “호오오오, 흐으으읍.”
 우선 숨을 내쉬어서 몸속의 찌꺼기를 뺀다.
 그다음 들이마셔서 기운을 채운다.
 그러라고 말 자체가 ‘호흡’이라 했다. ‘호’ 하고 내쉬고, ‘흡’ 하고 들이마시는 게 맞다고.
 근데, 이게 뭐냐?
 갑자기··· 되는데?
 
 
 
 2장. 중요한 건 멘탈
 
 
 
 아랫배가 뜨끔하다.
 막 어디라고 표현하긴 그런데, 왜 거 있잖아.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참았던 오줌 때문에 바짝 올라온 내 튼실한 물건(?)이 닿는 부분.
 딱 배꼽 아래 거기가 단전이었다.
 “호오오오~”
 아주 온몸을 쥐어짜듯 숨을 다 내뱉었다.
 그 상태에서 멈추고 억지로 뭔가를 삼키는데, 정말 찌릿 하게 느껴지는 게 있는 거다.
 공가공(空可供) 공가만(空可滿)이라 했나?
 비우는 것이 곧 이바지하는 것이요.
 그러하기에 채워지는 법.
 사실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비웠는데, 그 빈곳이 그냥 비워지는 게 아니라 뭔가로 차서 비운 것처럼 느껴진단다.
 사실, 모르겠다.
 그냥 그런가만 할 뿐.
 “흐으으으읍.”
 다시 숨으로 채우니, 있었던 게 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게 토납법이구나.
 강형우는 다시금 호흡에 집중했다.
 비우고, 비운만큼 모르는 뭔가가 채워지고.
 다시 숨을 들이마셔서 채우면, 차 있던 뭔가가 빠지면서 아랫배가 충만해지고.
 이게 무아지경이라 그러면 맞을 지도 모른다.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은, 아무런 잡념도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호오오오, 흐으으읍.”
 하면 할수록, 처음에는 살짝 짜릿하던 느낌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 정리를 했는데.
 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이거··· 맞는 건가?”
 확실히 했다는 느낌은 맞았다.
 왜냐? 장백호의 기억이, 경험이, 터득한 깨달음이 그게 옳다고 하고 있었다.
 근데 왜··· 뭐가 없지?
 내공 수련하면, 힘이 세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막 날아다니는 거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깨달음이 떠올랐다.
 아! 이 지랄을 몇십 년 해야 그렇게 되는 구나.
 “하, 그럼 그렇지. 첫술에 배부를 리가 있나?”
 솔직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미 절대고수에 오른 장백호의 경험과 기억 때문에 기초를 빠르게 느낀 거였다. 아니라면 평생을 해도 모를 그런 감각이었던 것이다.
 “하다 보면 되겠지.”
 길게 보기로 했다.
 솔직히 현대인이 무공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는가?
 그저 조금 튼튼해지고, 더위를 덜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다.
 장백호의 경험으로 느끼길 현대의 도시에서 내공을 모으기는 실로 어려웠다.
 일단 공기가 탁하고, 잡기가 많이 있었다.
 쉽게 표현하면 매연이라 보면 된다. 그러한 것들이 순수한 축기를 방해하기에, 잡기를 배제하는데 더 많은 호흡의 힘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정말 신기하네. 이게 된단 말이지?”
 일단 된다는 게 놀라웠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하다 보면 알게 될 일.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얻은 건, 호흡법이 전부가 아니었다. 장백호의 인생을 겪으면서 훨씬 더 값진 걸 발견했던 것이다.
 그건,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나머지는 부가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솔직히 장백호의 인생은 대단했다.
 항상 거침없이 살면서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한테나 당당했다. 동생을 아꼈고, 식구들을 사랑했으며, 최후에는 만인들의 존경 속에서 눈을 감았다.
 무엇보다, 그가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거다.
 그런 장백호의 인생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멘탈 갑!”
 이게 최고였다.
 
 실제로 장백호는 젊은 시절, 아주 그냥 다 씹어 먹어 버린다.
 발에 걸리면, 다 파헤쳐 버리고.
 앞을 막으면, 밟아서 뭉개고 지나가고.
 뒤통수 때리면, 맞아주고 통수부터 묻어 버렸다.
 거기다, 그렇게만 사는 게 아니라 엄청나게 꼬인 일도 간단히 해 버렸다.
 왜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 풀다가 짜증 나서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장백호는 거의 그런 인간이었다.
 힘으로 할 수 있는데, 왜 복잡하게 머리를 쓰냐?
 험험.
 그렇다고 그렇게 머리가 나쁜 인간이란 건 아니었다.
 장백호는 정당하게 통행세를 받기 위해 무식하게 힘으로 산을 뚫어서 길을 만들었다.
 산을 돌아가면 열흘, 하지만 그 길로 지나가면 사흘이었다.
 장사치들 입장에선 통행세를 내는 게 오히려 나은 상황.
 여기에 맛들인 장백호는 다양한 사업(?)까지 벌였다.
 사람 몸통만한 나무를 수십 개씩 뽑아와 계곡에 다리를 만들었고, 커다란 호수 밑을 파서 땅굴을 만들기도 했었다.
 계곡 사이를 날아다니며 줄을 연결해 다리를 놓기도 했고, 늪지대 중간에 바위 수십 개를 던져 넣어 메워 버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통행세를 받기 위해 아주 길 자체를 새로 만들어 버렸던 거다.
 그걸 지방 호족들이 인정을 해주었고, 무림맹주한테 인증까지 받았다.
 마지막으로 황제도 허가를 내줄 정도였다.
 뒷감당이 무서워서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살다간 장백호가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세상 한번 후련하게 잘 살았다.
 
 “진짜 멋진 삶이었지!”
 한번 사는 인생!
 이상하게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동시에 장백호처럼 남자답고 멋지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 나도 성공하자!
 우선 지성분식을 살려서 돈도 벌고,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확장부터 해보자.
 멋지게, 거침없이 살아보는 거다.
 지금이야 힘들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살면서 했던 말 중에 이게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미련이 생기면 후련할 때까지 해 봐라!
 딱, 지금의 나한테 필요한 말이었다.
 그래, 후련할 때까지 일단은 달려보는 거다. 부딪히고 깨져도 뒤는 돌아보지 말고.
 “후우~”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토납법은 효과가 있었다.
 일단 호흡 집중하는 동안 복잡했던 머리가 맑게 비워졌다. 한동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머리에 걸렸던 과부하가 풀렸던 것이다.
 그러자 최근의 일들이 하나하나 돌아볼 수 있었다.
 “하! 내가 참······.”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멘탈 갑! 이었다.
 덕분에 관조 비슷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
 
 얼마 전 지하철 역 입구에 큰 상가건물이 들어서면서 많은 가게들이 생겼다.
 특히 김밥천왕이 제일 문제였다.
 마치 노린 것처럼 지성분식과 대부분의 메뉴가 겹쳤다. 원래 체인점에 없는 세트 메뉴가 생겼고, 심지어 가격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오픈 이벤트로 할인이 들어갔다는 거다.
 메뉴 하나당 오백 원씩이니 세 개 시키면 천오백원이 저렴했다.
 학생들 용돈이야 뻔한 상황이고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방문한다 치면 한 달에 몇 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대부분의 단골들이 가게를 옮긴 이유가 그거였다.
 이후 매출은 바닥을 쳤고, 같이 일하던 주방 이모 두 분이 먼저 그만두겠다고 했다. 장사 안 되는 거 뻔히 보이니 미안해서 월급 못 받겠단다.
 그렇게 두 분을 보내고 열흘 뒤에, 이모 한 분이 김밥천왕에서 퇴근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속이 쓰렸다.
 정신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
 이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태구를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같이 동업하기로 했던 친구가 있었다. 무려 이천만 원이라는 돈을 빌려줬던 바로 놈이었다.
 조성기.
 그 녀석이 로또를 맞았단다.
 그것도 무려 20억짜리를.
 연락이 끊긴 게 그래서였다. 그 돈으로 낡은 건물을 사고, 담보 대출에 지인들 돈까지 무지막지하게 끌어들여 건물을 새로 올렸던 것이다.
 거기까지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갑자기 돈벼락을 맞았으니, 건물주가 돼서 신나게 살고 싶었겠지.
 문제는 이후의 행보였다.
 조성기는 자신이 술김에 떠들었던 이야기대로 사업을 진행시켰다.
 상권 독점!
 이 미친놈이 정말 그 짓을 시작한 것이다.
 황당한 건 첫 번째 목표가 나라는 점이었다. 지금까지의 일이 그래서 벌어진 것이다.
 절친했던 친구의 배신, 게다가 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 준 건 자신이었다.
 물론 방식은 달랐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도심 외각의 작은 마을.
 인구 오천 명도 안 되는 작은 동네에 네 개의 편의점이 동시에 생겼다.
 회사 브랜드도 다르고 서비스나 판매 제품도 미묘하게 달랐다.
 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파격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삼 개월이 지나자 동네 구멍가게 두 곳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입구에 있던 마트 하나도 결국 장사를 접기로 결정했다.
 이후 이 동네는 편의점 네 곳만 남았다.
 변화는 이때부터였다.
 마트에서 800원에 팔던 소주 한 병이 편의점에선 1,300원이었다. 과자 값도 15%가 올랐고, 휴지와 생리대를 비롯한 생필품은 20%를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은 편의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마트가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었으니까.
 이때서야 밝혀지는 사실이 있었으니, 편의점 네 곳의 사장이 동일인이라는 거였다.
 심지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비율까지 올린 상황.
 본사는 물건을 대주는 역할만을 할 뿐 가게 운영에 전혀 간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사장에게 남은 건 버는 족족 쓸어 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의 비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네 곳의 편의점들 때문에 어떤 가게도 마트도, 체인점도 이 동네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소주 한 병은 1,900원까지 올랐고, 아직 이 마을에는 편의점 네 곳이 전부였다.
 말 그대로 완벽한 상권 독점이었다.
 한 다리 건너서 듣기로, 사장은 투자금의 다섯 배 이상을 벌어갔다고 했다.
 아무런 투자도, 경쟁도, 노력도 없이.
 그건 말 그대로 독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만이 많든 적든, 어차피 살 사람은 다 사게 되어 있었으니까.
 
 당시에는 흘리듯이 이야기하고 말았다.
 조성기도 대충 듣다마는 듯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랬는데, 정말 그 같은 방법을 실행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 건가?”
 한참을 생각하던 강형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배산역을 중심으로 연산 3동과 연산 6동, 망미동이 겹쳐 있었다.
 여기서 지역 상권이라 함은 버스 두 정거장 이내를 말했다.
 사람이 걸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가 딱 그 정도기 때문이다.
 인구수는 대략 삼만 명 전후였다.
 편의점 세 군데, 분식집이 열, 치킨 집이 다섯에 중국집이 네 군데였다.
 배달하는 가게들과 식당, 술집을 치면 더 되기는 하지만 전부 합해서 서른 곳이 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먹는 쪽으로는 정말 뭐가 없는 동네였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로가 동서로 나 있는데, 북쪽과 남쪽은 산으로 막혀 있었다.
 택시 기본요금 거리에 부산에서도 손꼽히는 유흥가인 연산로터리가 있었다.
 반대쪽도 차로 5분만 가면 수영교차로, 광안리, 해운대가 나온다.
 가격 싸고, 청결하고, 서비스 확실한 가게들이 바로 근처에 있는데 왜 이런 동네구석에서 놀겠는가?
 때문에 배산역은 반쯤은 죽은 상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점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
 지하철역이 있고 학교가 여러 곳이었다. 학원도 있었고, 원룸도 많아서 최소한의 수요는 존재했던 것이다.
 그걸 조성기가 장악한다면?
 가격을 마구 올리는 짓은 못하겠지만, 최소 사오 년간은 경쟁 없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 터.
 무엇보다 그 자금을 발판으로 상가들을 늘린다면 다른 가게들이 상권에 진입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이후, 동네 안쪽 재개발만 끝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무려 일천 세대가 넘는 대단위 아파트가 그곳에 생길 테니까.
 “거기까지 본 건가?”
 자연스럽게 고개가 저어졌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조성기!
 이놈을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자신이 아는 조성기는 그렇게 치밀하거나 똑똑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한 망상증이 있어, 종종 사고까지 칠 정도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녀석이었다. 때문에 흑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아버지가 배우 안성기 팬이라 그 녀석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 별명이 거시기였다.
 이게 진화를 해서 중학교 때는 자지가 됐고, 고등학교 때는 쭈구리와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군대에서 고문관이 되었고, 전역 후 겜돌이와 노숙자가 된 것이다.
 그만큼 녀석의 인생은 좋지 못했다.
 체구도 작은 데다 소심해서 말도 잘 못했다.
 자신감도 없고, 존재감은 더욱더 없었다.
 성적은 뒤에서 20위권.
 그게 초등학교 동창들이 기억하는 조성기였다.
 강형우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조성기는 도시락이 되어 있었다.
 흔히 일진들이 말하는 빵 셔틀, 용돈 셔틀이었다. 심지어 반에서 왕따까지 당하고 있었는데, 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덕분에 강형우는 일 학년 내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 사이였다.
 한 동네 살아서 종종 마주쳤고, 홍태구와 같이 집에 와서 밥도 여러 번 얻어먹고 간 친구였으니까.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았다.
 조성기에 대한 괴롭힘이 사라진 건, 강형우가 정학을 맞고 나서였다. 그 녀석 때문에 일진 셋을 병원에 보냈고, 그놈들 형이라는 깡패들까지 모질게 두들겨 패 버린 것이다.
 이즈음 되면 인생이 풀릴 만도 한데, 조성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대신 간 군대에서도 자살 시도하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복귀를 꺼려한 사단장이 손을 써서 결국 상병 달고 의가사 제대를 했다.
 제대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놈이 꿈이, 게임 속의 성주란다. 무슨 판타지 세상도 아닌데 그게 인생의 목표라는 거다!
 살다 살다 이런 새끼는 처음 봤다.
 그래서 잘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멍청하게도 몇 달에 한 번 꼴로 아이템 사기도 당했고, 심지어 게임회사 직원을 가장한 사기꾼에게 천만 원이나 뜯기기도 했으니까.
 하여간 조성기 인생은 햇볕이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방사능 피폭급의 삶이라고나 할까?
 취업도 꽝, 연애도 꽝이었다.
 그럼에도 성주가 되고, 게임 지존이 되어, 돈 많이 벌어 PC방을 차리겠단다.
 동업을 제안한 건, 이런 놈이라도 열심히 일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거기에 보다 못한 친구들의 권유와 성기 아버지의 부탁도 있었다.
 그랬던 녀석인데······.
 확실히 세상일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조성기가 로또 1등에 걸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내가 망하게 생겼다.
 
 막 자괴감이 들려는데··· 갑자기 머리가 시원해졌다.
 역시 내공심법의 위력인가?
 입에서 단호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인정하자!”
 장백호는 항상 사고가 나면 이 말부터 시작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그걸 밟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조성기가 김밥천왕 사장인 건 맞았다. 그 건물도 그 녀석이 주인이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결과, 지성분식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강형우는 한동안 평소의 그답지 못한 행동들을 하고 말았다.
 일단 자신감을 잃었다.
 조금씩 핑계를 대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에 실수도 잦았고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미진이가 날 떠난 건 그래서일지도.
 맞다! 모두 내 잘못이다.
 “이렇게 인정하고, 마음 정리하고 나니 후련하기는 하네.”
 그런다고 딱히 현실이 바뀌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슴에 묵혀 있던 덩어리가 쑥 하고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새삼 새벽에 꿨던 꿈이, 장백호의 인생을 겪어봤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을 끙끙 앓던 것이 마음가짐 하나 바뀐 걸로 단번에 해결되었으니까.
 “이래서 멘탈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산뜻했다. 숙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묘한 자신감까지 치솟는 기분까지 들었던 것이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놓고 고민하는 거다.”
 일단 강형우는 수첩을 꺼냈다.
 꼬질꼬질한 가죽을 넘기고 제일 앞에 몇 가지 기억나는 글귀들을 적어 나갔다. 그리고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뒤에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장사 준비부터!”
 다른 건 몰라도, 가게 오픈은 철저히 혼자서 했다.
 여기에 자신만의 비법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으니까.
 강형우는 제일 먼저 주방 전체를 둘러봤다.
 “양념은 충분하고, 밥은 새로 지어야겠네.”
 한창 잘 나갈 때는 하루 평균 100인분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50인분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밥이 남지만 어차피 김밥용은 매일 새로 해야 했다.
 하루 지난 건 볶음밥이나 조리용으로 쓰면 된다.
 오히려 적당히 수분이 빠진 게 더욱 양념을 잘 먹고 접시에 담을 때도 깔끔하게 낼 수 있었으니까.
 “제일 먼저 밥물이지.”
 일단 물을 올리고 다시마 한 조각과 양파 세 개를 넣는다.
 끓으면 다시마만 건지고 물이 식을 때까지 놔두다가 양파를 건지면 끝이었다.
 이렇게 만든 밥물을 만드는 이유는 하나였다.
 실로 미묘한 차이지만, 정수기 물은 가볍다. 필터가 유해성분 뿐만 아니라, 각종 미네랄까지 제거하기 때문에 물 맛 자체가 평범해지는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차별화된 맛을 위해서는 사소한 부분부터 공들일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밥맛을 결정하는 건, 쌀알이 흡수하는 수분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 작은 차이가 전체 음식의 퀄리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일단 식혀놓고.”
 강형우는 쌀을 여러 번 씻은 다음 체에 담아 물기를 뺐다.
 무 하나를 꺼내어 토막을 낸 뒤, 믹서기에 갈았다. 그걸 다시 걸러 면포에 짠 다음 또 뭔가를 찾았다.
 깨끗이 씻어서 말린 뒤에 비닐 포장을 해 놓은, 배춧잎이었다.
 이게 강형우표 밥 짓기의 핵심이었다.
 “쌀을 삼분의 일, 그 위에 배춧잎 두 장, 다시 쌀을 넣고 또 배춧잎······.”
 배춧잎 위에 마지막 남은 쌀을 붓고 위를 덮은 다음 밥물부터 맞췄다. 손등이 약간 덮일 정도가 되자 미리 짜놓은 무즙을 한 컵 정도 넣었다.
 이제 남은 건 익히는 것뿐.
 강형우가 이렇게까지 공들여 밥을 짓는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메뉴가 많은 분식집들은 현실적으로 레토르트 식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작은 분식집 주방에서 갈비탕이나 감자탕 육수를 끓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레토르트 제품에는 당연하게도 많은 화학조미료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위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겐 약간의 소화 장애를 일으켰다. 트림도 안 나오고 속이 더부룩하고,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걸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는데 그 결과가 이거였다.
 무는 소화에 좋고, 변비에 좋고, 혈압에도 좋았다. 아밀라아제라는 효소 때문이었다.
 맞다. 누구나 과학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거다.
 마찬가지로 배추 역시 식이섬유가 풍부해 소화를 촉진시켰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지은 밥은 촉촉함이 오래갔다. 게다가 무와 배추의 수분 때문에 미세하게 단맛까지 감돌아서 밥맛이 끝장이었다.
 사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실제로 다양한 재료들에도 도전해 봤다.
 흑미, 기장, 콩, 현미 같은 잡곡들뿐만 아니라 감자, 호박, 고구마, 밤, 대추, 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전부 탈락이었다.
 전분과 수분, 밥 냄새, 색이 물드는 정도에서 생각한 조건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잡곡의 원가도 무시할 수 없어 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찾은 게 다시마였다.
 다시마는 오래 끓이면 끈적끈적한 진액이 나온다. 그게 밥과 섞이게 되면 쓴맛을 넘어서 미묘한 껄끄러움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소량을 살짝 우리는 정도로만 쓴다면 미세한 향과 약간의 감칠맛이 스며들면서 밥맛을 좋게 만든다.
 치이익~ 치익~
 압력 밥솥에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좋고~”
 강형우는 약불로 낮추고 다시 한 번 타이머를 확인했다.
 잠시 후, 대략 칠분 정도 지났을 때 수증기 근처로 코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손을 저어 향을 맡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불을 꺼 버렸다.
 이게 밥 양이 적으면 금방인데, 무려 30인분이나 되다 보니 뜸을 들이는 시간이 길었다.
 “잘됐나 볼까?”
 희한하게도, 이때가 되면 가슴이 설ㅤㄹㅔㅆ다.
 꼭 미팅 처음 가는 순둥이처럼 상대를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상황이랄까.
 “후우~ 하아아~ 좋다!”
 아주 그냥 냄새가 끝내줬다.
 강형우는 주걱을 들고 위에 밥을 살살 걷어 내었다.
 그런 뒤, 배추를 모두 들어내고 밥을 섞는데······
 흐음, 역시 이거다. 향이 아주 폭발한다.
 마치 후각 세포 전부가 거기에 홀린 듯한 느낌이랄까?
 그때였다.
 
 ♪~ ♪♪
 박차고 태어나서 짠짜잔, 짠짜잔.
 겁날 게 뭐가 있나~
 
 갑자기 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라? 웬일로 이 시간에······.”
 액정에 뜬 이름은 ‘밥 공장 사장’이었다.
 의아해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전화를 받자마자, 스피커가 폭발했다.
 -마! 이 새끼야!”
 
 
 ***
 
 “형, 미안해요.”
 -이 씨~ 미안하다면 다냐? 너 진짜 죽을래?
 “아니, 그게······.”
 와! 진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졸라 쪽팔려서 고개를 숙였는데, 스피커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새끼야! 술 처먹었으면 곱게 처잘 것이지! 엉? 새벽 한 시에 전화 걸어!
 “······.”
 -형수랑 애들 잠 깬 건 그렇다 치자.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고?
 “그게······.”
 -너 인마! 말도 없이 십 분 넘게 울기만 했거든?
 갑자기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방금 ‘밥 공장 사장’ 분석이 형에게 전화 왔을 때 뜬금없다 싶었다. 한 달에 서너 번 통화하는 게 전부였는데, 아침 7시도 안 된 이 시간에 연락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짜고짜 욕이라니.
 한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했다.
 내가 잠결에 전화를 했단다. 그리고는 그 새벽에 목을 놓아가며 열심히 울었다는 거다.
 말도 없이 그냥 무작정 울기만······.
 혹시나 싶어서 통화내역을 확인해 봤다.
 정말, 새벽 한 시에 내가 전화한 게 맞았다. 심지어 목록에는 미진이도 있었고, 성기와 태구도 있었다.
 다행인 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전화를 안 받았다는 거!
 솔직히 분석이 형 입장에선 황당했을 거다.
 새벽에 자다 깨서 전화를 받았는데, 난데없이 남자 울음소리만 계속 들렸을 테니.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정분석이 고함을 내질렀다.
 
 
 
 3장. 건물주와 사골육수
 
 
 
 -마! 발신번호에 네 이름 안 떴으면, 진짜 경찰청에 신고했을 거다!
 “형, 미안해요.”
 사과를 해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일단 흥분 상태라고나 할까?
 잠시 후, 정분석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앉았다.
 -너 솔직히 말해? 기억 안 나지?
 “예.”
 -하아, 돌겠네~ 진짜. 그러게 술 좀 작작 처먹으라니까.
 “형. 진짜 제가 실수했어요. 죄송해요!”
 폰 너머로 보이지도 않는데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정분석.
 그는 강형우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으니까.
 “후우~”
 스피커 너머에서 한숨이 들렸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괜찮은 척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간단히 요약하면, 잔다고 누웠는데 잠결에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울화라고 해야 할까?
 결국 폰을 들었고 이래저래 전화를 한 모양이다.
 후우~
 그나마 다행인 건, 형 말고 아무도 안 받았다는 게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마! 느그 형수가 너 불러 오라 그랬다. 집에서 밥 먹인다고. 그래, 오늘 저녁에 시간은 되냐?
 “예. 되기는······.”
 “그럼 와라! 나 마치면 네 시 반이니까, 너네 가게로 가마.”
 아주 뒷말을 자르는 건, 기본이었다.
 워낙 성질이 급한 형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날 잘 알아서였다.
 결국 분석이 형의 열변에 약속을 잡고 말았다.
 “예. 그렇게 할 게요.”
 -딱 준비하고 기다려라.
 통화를 끊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분석이 형이 마치고 여기 오면 다섯 시가 조금 넘을 거다.
 이전처럼 주방 아주머니가 있으면 상관이 없는데, 지금은 장사를 마쳐야 했다.
 최근의 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생긴 오해였다.
 “흐음, 어떻게 하나?”
 장사를 일찍 마친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영업시간은 고객과의 약속이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항상 지켰다. 손님이 단 한 명이라도 정해진 시간까지 가게를 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결국 강형우는 다시 폰을 들었다. 시간을 좀 늦추면 안 되냐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바로 전화가 왔다.
 -형우야. 미안하다. 내가 일이 있어서 그런데, 8시에 보자. 아우! 갑자기 미팅이 잡혀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뭔가 큰 건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너, 인마! 이번에 되면 같이······ 아니, 아니다. 나중 되어야 아는 거니까.
 잠깐 횡설수설하던 정분석은 일단 무조건 8시에 온다고 대기하고 있으라 했다.
 “이 형이 왜 이러지?”
 성격을 알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따지면 가족 다음으로, 가족 같은 사이었다. 실제로 가족이 될 뻔하기도 했고.
 “가만, 뭐라도 준비해야 하나?”
 형수 음식 솜씨는 엄청났다.
 그냥 쉽게 표현하면 국가공인 명장급!
 특히 불고기가 예술이었는데, 양념이 대박이었다. 고추장 없는 고추장 불고기라고 해야 할까?
 바나나 5, 파인애플 2, 당근 1, 양파 1, 배 1의 비율로 갈아 버린다. 거기에 화건초 고춧가루와 사천 고추를 조금 섞고 맛술과 꿀, 다진 마늘, 생강에 비법 양념을 살짝 넣으면 된다.
 이렇게 만든 양념은 고추장을 넣지 않았는데도, 고추장 같은 느낌이 났다. 매콤하면서 달달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 되는 것이다.
 고추장 불고기 생각하니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일단 아침 먹고 생각하자!”
 
 ***
 
 “오늘의 메뉴는, 제육덮밥!”
 나름 시그니처 메뉴로 준비한 것 중에 하나였다.
 지성세트의 라면과 김밥, 그리고 제육과 낙지, 소세지 덮밥이 그거였다. 그리고 고생해서 우린 사골육수로 만드는 몇 가지가 더 있었다.
 솔직히 찌개와 탕 종류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전문분야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 메뉴들은 분식집과 정식집의 경계에 있어서였다.
 일종의 구색 맞추기로만 하는 메뉴일 뿐!
 “자, 돼지 비계부터.”
 이게 제육볶음의 핵심이었다.
 비계로 낸 기름에 고춧가루와 비법 양념, 그리고 바로 빻아서 넣은 마늘을 넣는 것!
 거기에 다진 야채를 반 줌 넣고 전분물을 약간 넣어서 달달 볶으면 된다.
 마무리로 후추, 파슬리 톡톡 뿌리면 끝!
 그렇게 만들어진 제육볶음은 밥하고 무척 잘 어울렸다.
 강형우는 삭삭 비워진 접시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맛있는데, 왜 손님들이 오질 않는지.”
 솔직히 메인 요리에 들인 공은 적지 않았다.
 일단 제육볶음 같은 경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셀 수가 없었다.
 못해도 십만 그릇은 넘지 않았을까?
 거기에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기 위해 무수히 많은 공부를 했다.
 황금 조리법, 삶의 달인, 생생한 특공대를 비롯한 방송들을 빼놓지 않고 봤고, 무수히 많은 인터넷 쿡방과 블로그들까지 살펴봤었다.
 그걸 기반으로 양념을 더하고 빼는 것만 무려 수십 차례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장사가 가능한 수준까지 조리과정을 손봤다.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제육덮밥의 경우, 고객 만족도가 높았다. 실제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찾아와서 먹는 아저씨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분들은 요즘 뭐하시나 몰라.
 “일단 설거지나 하자!”
 강형우는 후다닥 그릇을 씻고 나서···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는, 내공 수련이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잡념은 사라질 테니까.
 하지만 가게 입구 너머로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심란해졌다.
 “내가 판단을 잘못하고 있나?”
 사실 그 동안은 냉정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인근에 새로 생긴 경쟁가게가, 단순히 가격을 할인하는 것 때문에 매출이 이렇게 하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학생들이 줄까지 서서 먹질 않았던가?
 “확실히 뭔가가 있어.”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
 그렇다고 가게를 내팽개치고 알아보러 다닐 수도 없었다.
 “에이, 호흡도 집중 안 되고, 가만히 있으면 심란하기만 하지.”
 강형우는 결국 걸레부터 들었다.
 주방을 대청소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고, 가게 입구까지 쓸고 정리했다.
 “깨끗하니까 좋네.”
 사실 크게 티는 나질 않았다. 평소에도 워낙 깨끗했고, 어제 온 손님도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가게가 이렇게 넓었나?”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여덟 개였다. 다소 간격이 빡빡하긴 하지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보니 괜히 가게가 훤하게 보였던 것이다.
 갑자기 허전해졌고 동시에 울컥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노력이 배신당한 기분이랄까?
 그때였다.
 가게 바깥으로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건물주인 박첨기 어르신이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박첨기가 별말 없이 테이블에 앉자 강형우는 눈치를 살폈다.
 “손님 왔는데, 물은 안 주냐?”
 “예? 아!”
 강형우는 잽싸게 물과 컵을 가져왔고, 동시에 메뉴판을 옆에 놔뒀다.
 박첨기는 물로 입을 축인 뒤 슬쩍 메뉴판을 살폈다.
 “뭐가 이렇게 많나?”
 솔직히 음식 종합선물세트라는 김밥천국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된다.
 이래저래 치면 열 몇 종류 정도?
 잠시 후, 박첨기가 주문을 했다.
 “사골 떡만둣국 하나 주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강형우는 주방으로 들어가 물부터 올린 뒤, 떡을 한줌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냉동실에 얼려놓은 사골 육수 비닐을 뜯고, 왕만두 네 개를 꺼냈다.
 한 일분 정도 기다렸다가 물이 끓자 바로 만두를 넣고 사골 육수까지 넣어버렸다.
 이미 육수에 간이 다 되어 있어 복잡한 조리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끓으면 계란을 풀고, 파를 송송 썰어 듬뿍 올리면 끝이었다.
 “떡만둣국 나왔습니다.”
 박첨기는 별다른 말도 없이 숟가락으로 만두를 잘게 자르고 후루룹 마시듯 먹기 시작했다. 한입 먹구 여러 번 오물거린 다음 삼키는 식으로 말이다.
 강형우는 일이 있는 척 카운터로 향했다.
 
 ***
 
 기억하기로 박첨기는 치아가 좋지 않아서 외식도 잘 안 한다고 들었다.
 그걸 알기에 평소보다 1분 이상 더 끓였다.
 냉동만두가 약간 퍼질 정도가 되야 딱 먹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
 생각해보니, 박첨기 어르신은 지성분식 오픈하고 딱 두어 번 들려서 맛을 보고 갔을 뿐이었다.
 애들 분식은 자기 입에 맛질 않다나 뭐라나.
 어쨌든 15분이 넘도록 천천히 식사하던 박첨기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릇을 잡고 후루룹 마시더니 이내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흐으음. 좋군.”
 박첨기는 잠시 눈을 감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자네, 일로 와서 좀 앉게.”
 “예!”
 박첨기는 손님이기도 하지만, 건물주였다.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 바로 그런 존재 말이다.
 강형우가 앉자 박첨기는 물끄러미 빈 그릇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는데, 국물 한 방울 안남기고 삭삭 비운 것이 민망한 모양이었다.
 “험험. 사실 사골이라는 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끓이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
 “예.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젊은 사람이 사골 육수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오다가다 한 번씩 들릴 때는 장사 잘 되냐고 물어볼 뿐, 크게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를 찬찬히 살펴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처음에 배울 때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고기 부위하고 뼈 종류에 따라 삶는 방식이나 피 빼는 법도 달랐고, 가게마다 노하우가 천차만별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일단 말이 트이니까 술술 나왔다.
 손님과 대화하는 게 그리웠던 것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가게 쉬는 날 한 번씩 만들어 놓습니다.”
 한번 할 때 만드는 양은 대충 30인분 정도였는데, 실제 많이 나가는 메뉴가 아니라서 그 정도면 충분했다.
 “초벌로 푹 삶아서 핏물 제거하고, 그 다음 솔질로 뼈 사이 이물질을 청소하죠. 그걸 다시 냉수에 서너 번 세척한 다음에야 솥에 넣습니다.”
 처음엔 두 시간 우리면서 국자로 계속 걸러 줘야 한다.
 그다음 첫 육수를 걷어 내고 다시 깨끗한 새 물에 또 네 시간을 우린다.
 이걸 반복하면 육수가 세 종류가 나오는데 그걸 섞어서 적당히 간을 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나온 양은 30인분 정도였다. 장시간 우리면서 졸아들기 때문에 많지 않았던 거다.
 사실 한 번 할 때 귀찮고 번거로워 그렇지 이렇게 한번 해 놓으면 두고두고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사골 육수가 들어가는 음식들은 무려 6,000원짜리였다.
 특 분식 세트 다음으로 비싼 가격!
 “평안도식 설렁탕 우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맞는가?”
 박첨기의 짐작에 강형우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 방식으로 만드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어머니 박혜숙과 정분석뿐이었다.
 “역시 맞는 모양이군. 하긴 분식집이니······ 사골에 돈을 많이 쓸 수 없겠지.”
 박첨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를 떠올리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강형우가 이 같은 방식을 선택한 건 이유가 있었다.
 잡뼈와 부산물을 많이 쓰면 그만큼 재료비를 아낄 수 있었다. 대신 국물이 탁해지고 잡냄새가 많이 나며 찌꺼기까지 많이 생긴다.
 때문에 계속 불앞을 지켜야 했다.
 국자 계속 기름과 찌꺼기를 걷어 내야 하므로.
 한마디로 비용을 아끼는 만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괜히 음식 장사가, 사람 노동력을 갈아 넣는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 거다.
 그때 박첨기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긴가민가했는데······ 우리 내자가 설렁탕을 기가 막히게 잘 끓였거든. 그때야 곰탕과 설렁탕도 구별 못했으니, 고깃국물이라면 무조건 몸에 좋다고만 알았지.”
 가난한 시절, 평범한 공장 직원에겐 곰탕 한 그릇도 사치였다.
 “월급이 이십만 원도 안 되는데, 곰탕 한 그릇이 천오백 원이나 했으니 쉽게 먹어지겠나?”
 강형우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약간 당황했는데, 박첨기가 가볍게 웃었다.
 “대충 지금 물가로 열 배 정도라고 보면 될 거야. 그러니까, 고깃 국물 한 그릇이 만오천 원이나 했다는 거지.”
 소가 귀한 시절이라 했다.
 당시에는 공장장 정도나 되어야 가끔 곰탕이나 설렁탕을 먹을 뿐, 말단 사원인 자신에겐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뼈 빠지게 일했지. 헌데 서른 중반에 병이 들었어.”
 당시에는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단다. 만성피로에, 조금만 움직여도 무기력해지고 심지어 음식조차 제대로 소화를 못 시켰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골병이었다.
 과도한 노동에 부실한 식사가 겹쳤고, 잦은 출장에 하루 서너 시간도 못 자고 일을 했으니.
 “그때 내자가 어디서 들었는데, 사골이 몸이 좋다고 하더라고.”
 박첨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팔다 남은 잡뼈와 내장 부스러기를 싸게 구해 와서 사골을 우렸다고 했다. 친정집에서 배운 방식으로 밤새도록 찌꺼기를 걸러내면서 말이다.
 “고깃국물 덕인지, 내자의 정성 때문인지 석 달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 털고 일어나서 큰 병원에 가 보니, 황당하게도 영양실조라 했다.
 잘 먹기만 해도 낫는 병!
 그걸 몰라서 일 년 넘게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다시 건강해졌고, 그때부터 일도 하나씩 잘 풀리더라고.”
 피죽 먹고 다니던 얼굴에 기름이 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박첨기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그러면서 운 좋게 큰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첨기는 물로 또다시 목을 축였다.
 “옛날이야기는 그즈음 하고, 사실 진즉 와서 먹어봤어야 했는데, 내 나이가 되니 분식이 영~ 입에 맞지 않더라고.”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지성분식이 메뉴 대부분은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간이 맞춰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큰삼촌이 그러시더라. 이 집 음식은 뭔가 다르다. 직접 먹어 보고 평가해 봐라. 그래서 들린 거라네.”
 아! 천경 어르신이 일러두신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박첨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수준이 높아서 놀랐다네. 그리고, 우리 내자가 해 줬던 국물 맛을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지.”
 “아!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래서 묻는데··· 자네 혹시 가게 내놓을 생각인가?”
 박첨기가 웃으면서 묻는데, 비수 하나가 가슴에 팍 박히는 기분이었다.
 사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변덕이 들었다.
 접을까? 말까?
 지금 정리하면 어떻게든 되는데.
 다행히 벌어놓은 돈이 있어 은행 대출은 해결했고, 조성기한테 빌린 돈은 보증금 빼서 주면 된다.
 아쉬운 건, 잘될 때 번 돈을 모조리 가게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조금씩 인테리어도 바꾸고, 장식도 추가했고, 제일 중요한 건 조리 기구를 다양하게 업그레이드 했다는 것이다.
 진공포장기에 전자식 조리기, 칼도 ‘칼있쓰마’라는 전문 업체에 들려 구입했다.
 먼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매출이 안 나올 때는 권리금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아니, 중고 가격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이대로 정리하면 지난 시간 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된다.
 그렇다고 망해가는 가게를 계속 끌어안고 있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하지만 장백호의 말대로 후련할 때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아직 마음을 명확히 못 정했습니다.”
 강형우는 일단 그렇게 말했다.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인 박첨기는, 천천히 가게를 둘러봤다.
 “자네 오기 전에 아주머니가 있을 때하고 확실히 많이 달라졌어. 막눈인 내 눈에도 다른 게 보일 정도니.”
 “꾸민다고 고민 많이 했었죠.”
 강형우가 머리를 긁적이자 박첨기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 나이 되도록 살면서 터득한, 개똥철학 같은 게 하나 있다네. 들어보지 않겠나?”
 “경청하겠습니다.”
 박첨기는 자신이 먹었던 사골 떡만둣국 그릇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음식은 정성이지. 그리고 그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라네.”
 “예.”
 “다 늙어 깐깐함만 남은 내 입에도 잘 맞는데··· 어찌 사람들 입에 맞질 않겠는가?”
 강형우는 약간의 혼란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전에 아주머니가 이 자리에서만 이십 년을 장사했어. 주방 안쪽 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애들 둘이나 키웠다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말하길 칼국수가 잘 팔려서 단골들이 적지 않았고, 실제로 가게를 넘기고 이사 갈 때도 더 큰 곳으로 이전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터가 좋은 곳이니 자신도 잘될 거라고 덕담도 하셨고.
 “처음 월세가 이십오만 원이었지. 그러다 오 년 지나서 삼십이 됐고, 다시 십 년을 채워서 오십이 됐다네.”
 물가 상승률을 계산하면 많이 올린 건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한 골목 옆에는 월세가 칠십도 넘었으니, 여기가 비싼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 장사가 안 된다고 들었을 때, 젊은 총각이 일 년도 못 채우고 나가겠구나 싶었네.”
 박첨기는 이 건물 말고도 건물 두 채가 더 있다고 했다.
 그는 건물 주인 입장에서 세를 많이 받는 것도 좋지만, 가게가 차 있는 게 더 좋단다. 그런데 유독 젊은 사람들만 장사가 조금만 안 되도 접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은 했다네. 그래서 어지간하면 해달라는 대로 해줬지. 솔직히 이번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 거고.”
 진지한 표정과 말투를 보니, 뭐라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박첨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 장사는 길게 봐야 한다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런 생각을 읽은 것일까?
 박첨기는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원할 때까지 월세를 내지 않아도 좋아!”
 
 ***
 
 간단히 말하면, 공짜는 아니었다.
 어차피 보증금이 걸려 있으니까.
 하지만 매달 월세 50만 원을 아낄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기회가 생기는 거다.
 어쨌든 건물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보증금 다 깔 때까지 있어도 좋다.
 그 이후에도 계속 장사하고 싶으면 매달 월세만 제때 내면 된다.
 오! 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이신가.
 물론 나쁘게 생각하면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월세만 매달 천만 원이 넘게 받는 분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제안을 하겠는가?
 물론 박첨기는 조건을 걸었다.
 계약 연장 시, 장사가 잘되면 아주머니와 협의했던 것처럼 월세를 올리겠단다.
 또 하나 옵션이 있었다.
 이자라고 생각하고, 한 달에 서너 번씩 들려서 사골 만둣국을 먹고 가겠다고.
 맛이 변하지만 않으면, 조건은 계속 유효하다나 뭐라나?
 “그나저나, 천경 어르신이 말한 귀인이 건물주 아저씨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하신 건물주님!
 결국 이번에도 사골 만둣국 값을 지불하지 않았다.
 잘 먹었네 하면서 슬쩍 나가시는데, 정신이 없어서 미처 달라고 하지 못했던 거다.
 하아~ 이거 원가만 무려 2,200원 짜리인데.
 따지면 소소한 투정이긴 하다.
 실제로 천경 어르신한테 받은 건 음식값의 수십 배였고, 주인아저씨가 내건 조건도 냉철하게 계산하면 그 몇 배나 이익이었으니까.
 “뭐, 그래도 잘된 건 잘된 거니까.”
 어쨌든 개시가 좋아서일까?
 이날 무려 여섯 테이블이나 손님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이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칭찬까지 하고 가셨다.
 “그래, 다시 장사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초심! 초심인 거다!”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희망이 보였다. 거기에 자신감까지 붙으니 오히려 활력까지 넘치려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릇 세 개나 깨먹었다.
 
 ***
 
 “차였구나?”
 정분석은 씨익 웃었다.
 아무리 친한 형이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놀릴 줄은 몰랐다.
 “사실 잘됐지. 음식하다 말고 카오톡 보고, 카오카오 울릴 때마다 폰 본다고 손 베이기도 했으니.”
 “그건 잠깐 실수한 거고요.”
 “마! 형님이 맞다면 맞는 거다. 세상에 땡초 썰다가 휴대폰 확인하는 놈이 어디 있냐?”
 끄응.
 갑자기 그때의 흑역사가 떠올랐다.
 매운 고추를 다듬던 손으로 폰을 만졌고, 벨이 울리자 습관적으로 얼굴에 가져다 대었다.
 그 결과 입술이 퉁퉁 붓고, 눈이 매워서 한참을 울어야 했다.
 “내가 봤을 때, 걔가 좀 과하기는 했다. 남친이 시종도 아니고, 채팅로봇도 아닌데, 무조건 1분 내로 톡을 보내라니······.”
 “에이, 그렇게까진 아니었거든요.”
 “그건 너만 모르는 거지. 회사 회식할 때 니가 어떤 추태를 부렸는데.”
 “그냥 좀 일찍 들어간 거 가지고······.”
 강형우는 애써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이제와 들어 보니 조금 과하기는 한 모양이다.
 노래방에서 3차를 달린(?)다고 벨소리를 못 들었다.
 5분 뒤 전화가 왔는데, 미진이가 울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어떤 년하고 같이 있기에 자기 말을 씹냐면서!
 문제는 그게 영상통화라는 거다.
 스피커를 통해 음악 소리가 묻힐 정도로 욕설이 울려 퍼졌으니 모두가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금방 화를 풀기는 했지만, 한 번씩 미진이가 울컥할 때마다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집착이 과한 부분은 있었다.
 자기가 외동딸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설마 세상의 모든 외동딸들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나 주차하고 있을 테니까, 넌 옆에 마트 가서 술이나 좀 사와라!”
 “예.”
 소주 여섯 병을 사고 아파트 단지 입구로 들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올라갔다.
 온천천 로얄 아파트.
 여기 40평대가 오억 정도 할 거다!
 분석이 형은 대출 한 푼 없이 아파트를 사 버렸다. 게다가 BMW를 몰고 다녔고, 곰 같은 형수와 짐승(?) 같은 조카들을 셋이나 키우고 있었다.
 연 매출 이십억이 넘는 알짜 회사 대표.
 동시에 유명 야식 가게도 지금은, 일곱 개나 운영했다.
 말 그대로 정분석은 인생의 롤모델이나 마찬가지였다.
 저 형처럼 성공하고 싶었다.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나만의 가게를 운영하고 싶었다.
 그게 지금의 내 마음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이 형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던 것이다.
 
 ***
 
 IMF 때,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던 시절, 집안 형편을 생각해 대학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
 무조건 대학은 나오란다. 그 이후에 니 인생을 살아도 되니까 졸업장은 따라고 했다.
 다행히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그럭저럭 적당한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 석 달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보험사는 보상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지인의 도움 덕에 일부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가계가 기우는 건 당연한 상황.
 결국 나는 대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입대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용케 취직할 수 있었다.
 무지개 공단.
 지하철 1호선 종점에서 버스 타고 20여 분을 들어가야 하는 곳에 첫 직장이 있었다.
 출퇴근은 엄두도 못 냈기에 숙소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공돌이로 살았다.
 주야 3교대, 말만 그럴 뿐 거의 5일을 잔업해야 했다. 2교대 보다 더해서 거의 16시간을 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때문에 쉬는 날은 피로에 쩔어 하루 종일 잠만 자야 했다.
 유일한 낙은 식사시간이었다.
 겨우 50여 명 규모의 공장이라 식당 운영을 외주로 줬는데 음식이 아주 때깔 나게 잘 나왔다. 그래서 두 그릇씩 먹었고, 운 좋게도 그 모습이 급식회사 사장님 눈에 띄었다.
 “너 마음에 든다. 내가 키워줄게. 같이 일하자.”
 공장 생활에 지쳐 있어 잠시 고민도 했었지만 그 말에 선뜻 따르기가 힘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사장 형을 약간 무시했었다.
 허름한 스타렉스를 끌고 반찬통이나 나르던 형이었다. 설거지 거리와 먹다 남은 음식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도 나를 좋게 본 것이 고마워서 친해지게 되었다.
 형은 계속 나에게 같이 일하자 말해주었고.
 그러다 간만에 시간이 되어 밖에서 따로 만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밤늦도록 마신 뒤 숙소로 돌아가려니 버스도 끊긴 것 같아 조금 난감해하던 차에 형이 잠깐 기다려 보라며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뽕뽕!
 근사한 차 한 대가 앞에 섰다.
 마크가 BMW였다.
 차를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크고 고급스러워 보였고, 순간적으로 차 주인이 부러웠다.
 그때 운전석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신 분이 내렸다.
 그러면서 정분석에게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사장님, 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고맙죠.”
 정분석도 정중히 고개를 숙였고, 곧 대리기사님께서 일하던 공장 근처 숙소로 차를 몰았다.
 솔직히 충격받았다.
 이 형 차··· 원래 짬 스타렉스 아니었나?
 
 
 
 4장. 그 이름 강주혁
 
 
 
 이직을 생각했기에 좀 더 알아봤다.
 이름 정분석. 나이 서른여섯.
 출장급식업체 ‘내 밥상, 니 밥상’ 대표이자 연매출 20억이 넘는 알짜 회사 사장이었다.
 실제로 큰 공장 두 곳의 식당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었으며, 배달도 제법 많이 했고, 공단 내에서도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했다.
 난, 두말없이 회사를 옮겼다.
 거기서 삼 년을 일했다.
 바닥 청소부터 시작해 조리부를 거쳐서 영업까지 했고 그제야 세상이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요식업, 외식업계, 식품산업. 그리고 창업과 프랜차이즈.
 알려진 것과 다르게 이 세계의 뒷편은 엄청났다.
 분석이 형이 그랬다.
 연 매출 20억이 넘는 자기 회사는, 전체 시장으로 봤을 때 고작 구멍가게라고.
 무엇보다······.
 “맛집 골목 하나 성공하면, 그 일대 연매출이 몇십억이야. 한 동네에서 제대로 자리 잡으면 이년 만에 아파트를 살 수 있고, 구역 급으로 올라서면 반년 만에 외제차 몰아.”
 “정말요?”
 “속고만 살았냐?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밀면 가게가 하루에 손님만 천오백 명을 받는댄다. 오천 원 잡고 곱하면 월 매출 이억이 넘어.”
 자투리 자르고, 옵션 붙이면 연 매출 이십오억이다.
 메뉴는 밀면에 만두가 전부인데도.
 보석이 형이 설명하길 방금 말한 밀면집은 도시급이었다. 부산에서 삼대 밀면, 오대 밀면 하면 빠지지 않는 가게라는 것이다.
 여기서 전국구급으로 가면, 아예 매출의 급이 달랐다.
 가족 단위의 직영점으로 최소 다섯 개 이상의 대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적게는 연 매출 수십억에서 많게는 백억 대에 이른단다.
 “그 정도 되면 거의 기업이라고 봐야지. 쉽게 설명하면 프랜차이즈들이 그래.”
 그럭저럭 자리 잡은 치킨 체인이 백억 대 초반에서 후반까지였다. 거기에 조금 고급지다 싶으면 연 매출이 천억이 넘는다는 것이다.
 업계 1위라는 미스터 보스 피자가 본점 연 매출만 이천억이 훨씬 넘는다나?
 “중요한 건, 한 번 자리 잡으면 어지간한 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십년 장사한다 생각해 봐. 사고만 안 치면 사돈에 팔촌까지 삼대가 먹고 살아.”
 집안 소유의 회사가 있으니 취직은 걱정 없고, 월급은 적어도 복지가 확실하다. 아들딸, 시집 장가 갈 때 못해도 집 한 채는 기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끼리 함께 일할 수 있는 거지.”
 그 한마디가 가슴에 확 박혔다.
 엄마 박혜숙은, 고향 친구네 국밥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동생 강영지는 고등학생이고, 그 밑으로 쌍둥이들은 중학생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진로조차 정하지 못한 상황.
 만약 자신이 식당을 해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동생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그 이후에는 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시킬 수도 있었고.
 “식당이라······.”
 이건 가장이기에 해야 하는 고민이었다.
 당장 월급이 세서 이 회사에 있는 거지만, 천날 만날 죽을 때까지 붙어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고 독립을 해야 한다면 음식장사도 나쁘지 않을 터.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내게 새로운 지향점이 생겼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눈앞에 성공적인 롤 모델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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